Edith Piaf - Les Histoires De Coeur
불기2563-02-14_방광반야경_001
Vincent Liben - Puerto Loco
http://buddhism007.tistory.com/5383
● [pt op tr] fr sfed--방광반야경_K0002_T0221.txt ☞제3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구화구사라(漚惒拘舍羅)가 없으면 5음은 행상(行相)이 되며, 만약 5음에 항상함이 있다고 생각하면 행상이 되며, 5음이 무상하다고 생각하면 행상이 되며, 5음이 괴로움이라고 생각하고 5음이 이 아소(我所)라고 말하면 행상이 되며, 5음이 적정하다고 생각해도 행상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구화구사라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을 배우는 것도 또한 행상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스스로 ‘나는 반야바라밀을 행한다’고 생각하고 얻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면 또한 행상이 됩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이것도 또한 행상이 됩니다. 이와 같이 배우는 자는 마땅히 이 보살이 구화구사라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보리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이와 같이 배운다면 색에 머무는 것이 되며, 색을 분별하여 앉는 것이 되며, 색을 분별하면 색을 구하는 행을 짓습니다.
이미 이와 같이 행하면, 생로병사의 고통을 여의지 못하게 됩니다. 보살은 다시 구화구사라가 없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에 처하여 6정(情)으로 분별하고 다시 18성(性)으로 분별하고 다시 37품과 부처님의 18법에 머물고 각각 분별하고 계교하여 색을 구하므로 또한 다시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보살은 오히려 성문ㆍ벽지불도 증득할 수 없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구화구사라가 없다고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구화구사라가 있는지 어떻게 마땅히 알겠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서 상행(相行)을 짓지 않고, 또한 5음이 유상(有常)ㆍ무상(無常)하다고 말하지 않고, 5음에서 또한 고락행(苦樂行)을 짓지 않고 또한 아소이다 아소가 아니다라는 행을 짓지 않고, 5음에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이라는 행을 짓지 않고 5음에서 또한 적정하다는 행도 짓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리불이여, 5음을 공하다고 하면 5음이 아닌 것이 되며, 5음이 공을 여읜 것도 아니고 공이 5음을 여읜 것도 아니므로 5음이 바로 공이고 공이 바로 5음입니다.
6바라밀ㆍ37품과 부처님의 18법이 모두 공하며, 가령 공이라 하는 것은 또한 18법을 여의지 않고 18법도 또한 공을 여의지 않습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이것이 곧 구화구사라입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곧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이룰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또한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고 또한 행함을 보지 않고 행하지 않음도 보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는 것입니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반야바라밀의 모양은 본래 실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있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보살은 모든 법에 있는 바가 없음을 빠짐없이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든 법에 생함이 없는 삼매라고 이름하니, 모든 보살마하살의 무량하고 무한하고 광대한 작용으로 성문ㆍ벽지불이 알 바가 아닌 것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를 여의지 않으면 곧 속히 아뇩다라삼야삼보를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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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반야경』 3권(ABC, K0002 v5, p.23c01-p.24b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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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이렇게 배워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6바라밀과 37품과 부처님의 18법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또한 얻을 것도 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
『방광반야경』 3권(ABC, K0002 v5, p.24c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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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63/02/15/금/19:46
등산후 피로 증세가 겹쳐 계속 경전 살피는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이번에 살피는 『방광반야경』 제 3 권 12. 공행품에 먼저 행상(行相)이란 표현이 나오고 구화구사라란 표현도 나오고
색에 머문다. 색을 분별하여 앉는다. 색을 구한다. 이런 내용이 나오고 그렇게 도면 생로병사의 고통의 벗어날 수가 없다. 그 뿐 아니라 성문, 벽지불도 증득할 수 없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더더욱 얻을 수 없다.
이렇게 내용을 제시한다.
그런데 글자가 한글이어서 쉽게 그 내용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보지만,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게 된다.
내용을 안다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일반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보라. 이렇게 요구받고 직접 설명해보려면 그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전문적 수행자를 향해 노력하는 수행자 입장에서는 늘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현실을 놓고 보면 이미 그 어려운 사정을 제시했지만, 경전의 내용을 이해하고 수행에 스스로 진입해 잘 수행해나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다른 이를 상대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한층 더 사정이 어렵다.
그리고 전도망상에 바탕해 행하는 일반적 입장에서는 이 문제보다도 더 해결이 절실하다고 보고 집착하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어떻게 보면 일반 현실에서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사건 사고의 당사자가 되지 않는 것부터가 잘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 다음 현실에서 각 주체가 집착하는 소원을 뜻대로 성취하는 것도 또 문제다.
현실에서는 이런 내용 자체가 문제인데 수행에 진입하려면 이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집착하는 그것들이 모두 집착할 가치가 없는 것임을 이해하고 집착을 제거하는 수행부터가 기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말처럼 쉬운가 하면 쉽지 않다.
그렇게 수행을 해서 어느 정도 수행이 이뤄지면 또 앞과 같은 내용을 다시 만나고 이 내용이 무슨 내용인가를 다시 이해하고 이에 바탕해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나가는 것이 요구된다.
지금 대하는 『방광반야경』은 수행을 막 시작한 상태에서 바로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은 일단 아니라고 보게 된다.
색이 무엇이고 상이 무엇인가. 그리고 상을 행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색에 머물거나 머물지 않는 것인가. 이런 문제부터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불교 용어에 대하여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갖추어져야 그 바탕에서 추가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장경 문헌에 그저 글자가 적혀 있다고 읽어나가면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고 일단 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