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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1-12-28_가섭결경_001 본문
『가섭결경』
K1027
T2027
가섭결경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가섭결경_K1027_T2027 핵심요약
♣1027-001♧
『가섭결경』
가섭결경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 Ferrat - Pauvre Boris.lrc
『가섭결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정작 경전 내용을 다 외운 아난은
왜 처음에 경전 결집과정에서 배제를 당했는가.
그리고 정작 아라한이 된 이들은 또
왜 그 경전을 다 외우지 못하여
굳이 아난에게 의존하였는가.
그리고 가섭결경 첫부분에 나오는 내용처럼
왜 아라한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그냥 멸도를 택해서 열반에 들어가 버렸는가.
그런데 또 왜 가섭존자는
굳이 경전을 결집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가.
그리고 가섭존자는 빈두로파라타존자님과 함께
부처님 멸도후에도 끝내 열반에 들지 않은 분으로 유명한데
특히 가섭존자님은
미륵보살님이 성불하는 그 시점까지 계속 계셨다가
미륵보살님을 친견하는 것으로 제시되는데
가섭존자는 또 왜
다른 아라한처럼 멸도에 들지 않고 그런 것인가.
이런 여러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가섭존자의 이런 경전 결집과 관련해서는
우선 난타로 끝나는 두 분이 연상이 된다.
첫 분은 발난타(跋難陀)라는 분이고
두번째는 토라난타라고 하는 비구니 분이다.
이 분들이 상당히 가섭존자를 불쾌하게 만든 분들로 제시되는데
그 사정을 이미 살핀 『불설장아함경』이나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등에서 살필 수 있다.
참고
어떻게 보면 바로 이런 분들 때문에
역설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대하는 경전 내용이
풍부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가섭결경의 내용을 대하다 보면
처음에 제시한 의문을 또 갖게 마련이다.
치매와는 정반대의 입장이라고 보아야 하고
경전 내용을 대부분 기억하는 아난존자가
정작 경전 결집의 첫과정에서는
아라한이 아니라는 사정으로 가섭존자에 의해
내쫒김을 당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당시 아라한 가운데는
게송을 1 구절도 외우지 못한 분도 계셨다고
전해진다는 점이다.
이 점이 일단 이상하지 않은가.
또 하나는 아라한들이 경전 결집과정에
참여하라는 가섭존자의 통고를 받고
참여하지 않고 그냥 열반에 드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다.
왜 그러는가.
이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또 하나 앞의 축생과 목동의 사례를 놓고 볼 때
축생이 평생 목장 주인에게 봉사하다가
결국 도살을 당하면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은
인간이 욕게에서 번뇌에 묶여 사역을 당하면서
살다가 죽는 것과
그 성격이 매 마찬가지라고 보게 되는데
그런데 이런 죽음과
아라한이 열반에 드는 것은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것인가.
이런 의문을 다시 갖게 마련이라고 본다.
○ [pt op tr] ▼mus0fl--Florent Pagny - Marc Lavoine - Un Ami.lrc
● 아라한의 열반과 죽음의 차이
우선 아라한이 맞이하는 열반과
일반 생명이 맞이하는 죽음은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가 부터
이 문제를 살펴나가기로 한다.
오늘 살필 부분은
이전에 살핀 『회쟁론』의 내용과 관련해서
참고 http://buddhism007.tistory.com/3825#1427
조금 더 살필 부분과 관련된다.
이미 이 앞에서 살핀 회쟁론에서도
그 대강을 살폈다고 보지만
아라한이 생사를 벗어난 상태와
일반 생명이 죽음을 맞이하는 상태를 놓고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일반 생명은 죽고 나서도
계속 다른 생명형태로 윤회를 계속하지만,
그러나 생사를 벗어나 열반에 드는
아라한이나 부처님은
열반 이후에는 그런 분과 관련된 내용은
일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또 그렇지 않으면
어차피 죽는 것은 다 마찬가지고
죽으면 또 어떤 생명이던 그와 관계된 것은
이후 일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를 대하는 경우도
또 대단히 많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 것을 잘 정리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것은 곧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얻어야 할 수행목표 상태와
관련된 내용이라서
수행자에게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보게 된다.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수행을 무량겁에 걸쳐 열심히 닦고 닦아서
최종적으로 어떤 u 의 상태를 얻었는데
그것이 세상에서 아무런 것도 없는 상태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는 것인가.
이런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일반인의 입장까지 함께 고려하면
수행자나 일반 생명이나 죽으면
그 이후에는 그와 관련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어차피 다 매 마찬가지인데
수행자만 엉뚱하게 공연히 그런 노력을 한 가운데
죽는 것 뿐인가.
이런 의문도 갖게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살펴야 하는데
과거에 열반경을 살필 때도
이런 내용을 언급한 바가 있고
아함경이던 열반경이던 이런 내용에 대해서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앞에 처음 제시한 의문들부터
또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본다.
즉, 정작 경전 내용을 다 암기한 아난은
왜 유학- 즉 배워야 할 바가 남은 상태로서
아라한이 아니고,
또 정작 한 게송도 제대로 못 외우는 분은
무학 - 즉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상태로서
아라한이 되어 생사를 벗어난 상태가 되었다고 하는가.
이런 부분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이 사정은 사실 간단하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금강경에서도 뗏목의 비유로 그 내용이 제시되고
또 이전에 살핀 회쟁론과 관련된
가정적 항변의 논의 성격을 살피는 가운데에서도
그 가정적 항변의 논의가 갖는 성격과 그 사정을 살폈다고 보는데
아난이 다 외운다는 그 경전의 내용이란
비유를 하면
긴 강이나 바다를 건너가야 하는 상황에서
각 강가 기슭이나 바닷가마다
그 특수한 사정에 맞게 제공되는
다양한 뗏목과 같다고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각 경우마다 그런 강과 바다를 건너는데
사용되는 뗏목의 형태나 특성은
각 경우마다 무량하게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뗏목을 통해서 생사의 강을 건너서
생사를 벗어난 상태와
그렇지 못한 상태는 구별된다.
그래서 그 가운데 아난 존자의 경우는
그런 뗏목을 다른 경우와는 달리
각 경우마다 수없이 다양한 뗏목을 다 수집해서
모으고 보관하고 있는 상태인데
다만 정작 그 뗏목을 사용해서 강을 건넌 상태는 또 아니기에
가섭존자에게 그런 사항을 지적받게 된 사정이고
그러나 또 곧바로 그 뗏목을 직접 사용해서
곧바로 강을 건너고
아난만이 갖고 있는 그런 내용을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전의 중요 내용을 대부분
대하게 된 사정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인간에게 붙잡힌 축생의 죽음의 상황과
아라한의 멸도 반열반의 의미와
멸도하지 않고 남아 있는 아라한이 생사를 벗어났다고 하는 상태
이 내용들이 서로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부터 살피기로 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처음 가섭결경에 나온 아난의 상태가 이 가운데 어느 상태에
있었기에 처음 가섭존자에 의해 경전 결집과정에서
배척을 당하였는가도 함께 살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미 수행과 수행목표에 관련된 내용을
『회쟁론』에서 대강 살폈다고 보는데
이것을 놓고 이 각 상태를 이해하면 훨씬 더 쉽다.
다만 그 앞 내용을 먼저 살피지 않았다면
또 오히려 이런 방식의 설명이 더 어렵게 느낄 수도 있다.
일단 그림을 놓고 다시 살피기로 하자.
[img2-9]
08pfl--image/8식-9.jpg
위 그림은 현실에서 처음 눈을 뜨고 어떤 모습을 보고
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그 내용을 나타낸 것이다.
자신이 지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뜰 때
그 순간 보게 되는 모습을 모두 1 ! 안에 있는 내용이라고 위 그림에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의미있고 중요하다고 보는 내용은
그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몸이라고 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 형태로서 표시하고 a! 라고 표시한 것이다.
그래서 ◇ 부분이 지금 논의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래서 지금 논의하는 ◇ 부분이 무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너무 기본적이라고 보기는 하지만,
일단 눈을 한 번 감고 다시 뜨는 가운데
앞 순간에 보지 못했다가 뜨는 순간부터 보게 되는 어떤 내용이
무엇무엇언가를 스스로 잘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실험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상당히 중요하다.
이제 바로 본 논의로 넘어가자.
현실에서 그렇게 눈을 떠서 보게 되는 모습 가운데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붙잡어서 본다고 할 때
이 부분에서 오늘 자신의 손이나 발이라고 보는 부분이 잘려 나가고
피가 흐르고 있는 상태라면 어떤가.
당연히 119 에 전화를 걸어서 구급차를 부르고
응급실로 가야 할 상황이 아닌가.
현실에서 생사고통에 직면하는 상황이란 사실은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수행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생사를 벗어나는 문제와
바로 직결되는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 부분을 a! 라고 표시하고
그 정체가 무언가를 살피는 문제가 중요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무언가?
일단 다음과 같이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자신은 그것을 놓고 자신이라고 여기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 내용을 또 a@라고 표시하고
6@ 영역에 표시해 넣은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관념분별을 행하는 영역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이렇게 행하고
그 내용을 얻는 것이므로
큰 어려움이 없고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놓고
그 정체가 과연 무엇이고
그 상호관계는 어떻고
그런 가운데 그것이 과연 그런 생각을 갖고
그렇게 대할 실다운 내용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관념영역에서 무슨 소설을 쓰건
그것은 그 자신의 자유라고 할 수는 있는데
그러나 감각현실 영역에서 얻는 어떤 부분을 붙잡고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라고 하는 단계부터는
그것은 문제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상태에서
무엇을 행해서
이런 기본 내용을 변화시키면
그것은 또 문제가 더 심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
자신이 눈을 떠서 보니
손과 발이 묶여 있고
그리고 손이 잘려 나가고 피가 흐른다는 상황이 되면
그것은 바로 생사고통을 당장 생생하게 겪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기에 더 문제가 심각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첫 문제를 이제 간단히 살피기로 하자.
처음에 눈을 떴을 때 보는 내용은
단지 자신이 자신으로 보는 그 모습만 본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자신이 자신 외부의 세계나 외부 대상으로 평소 여기는
내용들도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눈을 뜰 때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고
눈을 감으면 또 못 보게 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이다.
즉 1! 라는 영역에서 ◇ 로 표시하여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이나
그외 부분이나
다 자신의 눈으로 얻는 감각현실이고
그 모두가 자신의 마음에 맺힌 내용인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첫번째 문제다.
그래서 일단 평소에 자신이 눈을 뜨고 생활하는 가운데
자신이 눈을 떠서 보는 내용을 놓고
평소에 어떻게 생활해왔는가를
있는 대로 서술하면
그것이 바로 기본적인 전도몽상 상태를 있는 대로 기술하는
내용이 되는 것이다.
대강 다음과 같다.
◇ 부분은 나 자신의 몸이고 그 외 부분은 외부 세계의 내용이다.
◇ 부분으로 외부 세계에 있는 화분이나 꽃이나 컵으로 보는 부분과 부딪히면
촉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 부분은 자신의 감관이 있는 주관이고
나머지 부분은 자신의 주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눈은 이런 외부대상을 상대로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고
결국 그런 외부대상들은 자신의 주관이 이런 관계로 그런 시각정보나 촉각정보를 얻게 해주는 것으로서
정신과는 별개의 물질적 존재인 것이다.
대강 이런 식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고 서술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뒤집혀진 망상분별 내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서도 이러이러한 생각과 분별 자체만 놓고 보면
다른 분별과 그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소설가가 누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전개해가면서
소설 줄거리를 작성한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이 문제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그가 대한 감각현실 각 내용에 대해서 적절하지 않은 내용인데
그 사실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고
매 순간 그 생각을 바탕으로
현실에 임해 그것을 그렇게 대해 나간다는 것이 첫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회쟁론을 살필 때도 그렇고 다른 논서를 살피는 과정에서도
일부 언급했지만,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런 ◇과 같은 부분이 자신이라고 여길 도리 밖에 없다고 보는
다양한 사정이 있고
그것이 그런 망상분별증을 해결하기 힘들게 만드는 사정임을
제시한 바 있다.
기존에 제시한 내용의 반복을 피해서
몇몇만 제시한다면
자신이 위와 같은 상태에서
흘리는 피를 닦기 위해서 붕대가 있는 저 책상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면
다른 부분은 별 변화가 없는데
◇ 부분만 그런 생각에 따라 같이 움직임을 보게 된다.
이런 등등의 내용이다.
기존에 이렇게 ◇ 부분을 자신이라고 망상을 일으켜서 대하게 되는
사정을
상-락-아-정의 사유로 나열해서 제시한 바 있는데
앞에도 이미 그런 사정으로 그런 내용들이 그렇게 제시된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알고 보면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은데
바로 그러그러한 사정으로
거의 대부분
앞에 제시한 것과 같이
현실에서 얻는 1! 의 내용을 놓고
앞제 제시한 것처럼 그 내용을 파악한 가운데 그렇게
그에 집착을 일으켜 일반적으로
행위를 해 나가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런 내용의 정체에 대해서도
그러한 내용이 하나같이 실답다고 여기면서
그런 내용은 그런 사정으로 #실재에도 그렇게 있고
더 나아가 그런 내용은 진짜라고 할 실체라고 하거나
그런 실체를 갖는 내용이라고 하면서
그 내용을 하나같이 다 실답게 여기는 상황이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아나가게 되는 근본 원인이고
그렇게 처음 시동키를 돌려서 현실에 임하기에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3 악도라는 수용소로 향해 가는
기차에 처음 올라타게 되는 그 사정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img2-9]
08pfl--image/8식-9.jpg
그래서 앞에서 본 그림을 다시 놓고
문제되는 인간에게 붙잡힌 일반 축생의 죽음과
생사를 벗어난 아라한의 차이가
어디에 있다고 하는가를 위 그림을 놓고 간단히 살펴보자.
처음 일반적으로 자신이나 영희, 소, 말 이런 식으로 보는 내용이 무언가하면
◇ 부분이다.
그것이 자신의 몸이라고 보면 자신인 것이고
그와 비슷한 다른 몸이면 영희라고 하는 것이고 그런 식이다.
그것은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고
자신이 처해 살아가고 있는 욕계
인간과 축생은 일단 거의 대부분 그렇게 보고 이것을 대하는 상황인 것이다.
자신도 소를 보면 그 부분을 소라고 보고
소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자신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의 입장에서는 마치 평소의 자신처럼
◇ 부분을 소 자신이라고 보고 열심히
여물도 먹고 생활하여서
한마디로 다른 생명과 같이
먹고 싸고 놀고 하고 쉬고 자고 그런 활동을 하였는데
어느날 살이 상당히 쪘다고 본 목장 주인이
이 소를 도살장으로 보내서
그 소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는 이 장면이 첫 문제다.
그 소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그것을 그렇게 보고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의 경우가 그렇듯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아라한은 처음 부처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유학의 상태에서 배울 때부터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우고 익히면서
평소 일반적으로 ◇ 과 같은 부분을 자신이라고 망상분별을 일으켜 대하면서
그로 인해 온갖 번뇌를 일으키고
그에 대해 집착하면서 무언가 업을 행하는 상태에서
그것을 각 단계마다 다 중지하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열심히 하는 가운데
나중에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완전히 제거한 상태가
되었다고 할 때
그런 생사묶임에서 풀려나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
즉 심해탈과 혜해탈을 얻었다고 하면서
계, 정, 혜, 해탈, 해탈지견,
이런 노래를 읊고 다니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아함경 등에서 반복해 제시되는
내용인 것이다.
이를 자세히 보면 계, 정, 혜 이런 내용이
해탈의 상태로 이끄는 수행방안의 핵심내용인 것이고
또 그런 수행으로 해탈을 얻고
그 상태에서 읊게 되는 해탈지견의 게송이
곧
아생이진 범행이립 소작이작 자지불수후유
의 내용이다.
그래서 처음 자신이 이런 내용을 놓고 여기에
자신이 문제삼는 ◇와 같은 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a@가 있다고 여기고
또 그런 a@의 생멸이나 생사 현상이 있다고 여기고
이런 망상분별을 갖고 임했는데
그러나 이제 그런 망상분별을 제거했고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자신을 계속 생사고통의 현장에 묶어서
앞의 소의 비유상황을 놓고 비유하면
소가 축사를 벗어나는 것을 소를 키우는 목장 주인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꺼려하고 계속 소를 그 상태로 묶어두려고 하는 사정이 있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그 소와 목장 주인간에 얽힌 소의 업의 장애라고
표현한다면
그런 업의 장애를 그가
그간 수행을 열심히 행하고 해결하여
그래서 그런 묶임에서 풀려났고
그래서 이제는 이런 생사고통을 받는 현장에
다시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내용을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고 해도
다른 사람 눈에는 여전히
그 사람이 저기에 있다가 여기로 오고 가고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전과 다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그런 상태가 되었다고 하는 아라한들이
다른 이의 상태와는 무슨 차이가 있는 상태가 된 것인지를
여전히 잘 파악하기 힘들다고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여기에는 아난이 앉아 있고
여기에는 아나율과 가섭존자가 또 앉아 있고
또 부처님도 계시다고 하고
그 옆에는 소를 끌고 온 농부가 한 분 있다고 한다면
도대체 이 분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겉 모양만 놓고 보면 잘 판단이 안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 상황을 다시
다음 그림을 놓고 살펴보는 것이 낫다고 본다.
그런데 살피기 전에
일단 조금 쉬기로 한다.
08pfl--image/8-vinyl-magic.jpg
mus0fl--Alain Souchon - Le Mystère.lrc
이제 실재~ 감각현실 ~ 관념분별의 관계를 놓고
현실에서 어떤 소나 사람이 죽었다고 여기는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살피기로 하자.
먼저 앞의 그림은 이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비닐마술의 비유를 들기 위해서 작성한 그림이다.
비닐마술이란 한 비닐에는 세모를 그려 놓고
또 다른 비닐에 큰 동그라미를 그려 놓은 상태에서
그 두 비닐을 겹쳐 놓고 대하면
안이 세모인 도너츠 모양이 나타나 보인다는 그런 마술이다.
원래 각 비닐에는 그런 도너츠가 없는데
그렇게 도너츠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마술이라고 할 만한데
알고 보면 별로 놀라운 마술은 또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 현상이 현실에서
그렇게 나타나고 그 부분이 처음 문제된다고 제시하고자
드는 비유인 것이다.
다시 원래 살피던 그림을 보자.
[img2-9]
08pfl--image/8식-9.jpg
1,2,3,4,5 라고 표시한 것은
현실에서 사람이 각 감관으로 얻는 감각현실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보는 일체의 내용은 색깔인 것이어서 그것을 색이라고 일반적으로
표현하는데
1,2,3,4,5 는 그래서 색성향미촉을 얻는 그런 내용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감각현실이라는 점에서는 공통하기에
이 모두를 다 합쳐서 표현할 때도 색이라고 또 표현하게 된다.
이들 내용은 결국 눈으로 볼 수도 있고
만지면 촉감도 느끼고 그런 내용들인 것이다.
앞에서 이 내용을 전도몽상 상태에서는 무엇이라고
분별하는가를 보았는데
여하튼 그 내용이 위 그림에 1,2,3,4,,5 의 영역의 내용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어떤 소설가가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은 그런 색이 아닌 것이다.
그 생각이 어떤 색깔로 보이거나
어떤 촉감으로 만져지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것은 결국 관념분별 영역에서 일으키는
관념분별 내용으로서
앞을 색이라고 표현한다면, 이것은 그런 색이 아닌 그런 것이라고
일단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전도몽상 분별의 문제를 살필 때도 언급했는데
원래 각 감관이 이런 1,2,3,4,5 의 영역에서 어떤 내용을 얻기 이전의
본 상태를 #실재라고 표현한다면
이들 각 내용의 발생관계는
#실재 ~ 감각현실 ~ 관념분별 이런 단계라고
일반적으로 보게 된다.
즉 어떤 주체가 어떤 감관을 통해서 어떤 감각현실을 얻거나 얻지 않거나
그와 관계없이 실재하는 무언가를 # 실재라고 표현한다면
그 상태에서 어떤 주체가 어떤 감관으로 어떤 내용을 얻는 부분이
1,2,3,45, 인 것이고
그것은 그가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그런 내용으로
얻는 것인데
다시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또 하면
그 내용을 6 @ 영역에서 일으킨 것이 된다는 이런 의미다.
그리고 전도몽상 분별의 문제를 살필 때
이런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을 얻거나 얻지 않거나 할 수 있는데
그렇게 각 영역에서 얻었다고
그것만 가지고 이것을 문제삼는 것은 아니라고 제시하였다.
간혹 관념분별을 일으키고 상을 취하고 머물고 상에 집착하고
그에 바탕해서 무언가를 행하는 즉 색성향미촉 이런 내용을 행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할 때
이들 내용 자체를 처음부터 얻는 것이 문제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이후 이들 내용을 놓고
망상분별을 일으켜서 그것을 실답다고 보고 대하는
그 단계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현실에서 자신의 손과 발이 잘려지고 피가 흘러서
이리저리 구르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이
앞에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하면
사실은 그 상태에서 문제라고 보는 상황은
그 감각현실이라고 대부분 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알고보면 그 감각현실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라고 하는가 하면
그런 감각현실을 얻은 상태에서
그 각 부분을 그렇게 보고 대하면서
그 부분을 그것이라고 취하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속 그것을 붙잡고 늘어지는 현상 이 부분이
문제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렇게 그 부분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착을 갖는 가운데
온갖 행위를 하는 것이 두번째 단계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부분이 변화하는데
이상하게 자신이 그런 집착에 바탕해서
그렇게 좋음을 얻고 나쁨을 제거한다고 임하고 행하면
그 상태가 결국 3 악도에서 고통을 받는 상태로 향해 가는
기차에 묶여서 끌려 가는 상태가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는 3 악도에 묶여 끌려가 고통을 받는 상태가
되는데 예를 들어 한번 소나 닭의 몸으로 태어나서
그 세계를 대하게 되면 그 상태는 또 앞과 마찬가지로
한 생을 그렇게 보낼 도리 밖에는 없고
또 그 이후도 마찬가지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날 계기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무량겁에 걸쳐서 쉽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욕계의 상황인데
욕계의 상황이란 결국 이런 망상분별과 집착[망집]이 대단히
심화되어서
앞의 비닐판 비유를 놓고 보면
각 영역에는 없는 도너츠를 놓고
그것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그런 도너츠가 생기고 멸하는 현상이
거기에 있다고 집착하면서 임하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그러면 원래 각 비닐은 어떤가하면
그런 도너츠는 없는 것이고
세모가 그려진 비닐에는 세모만 있는 것이고
동그라미가 그려진 비밀에는 동그라미만 있는 것이다.
또 그것은 본 바탕의 #실재를 놓고 보면
굳이 꼭 그렇게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욕계에서 임하는 가운데
어떤 이가 마음을 한 대상에 집중해서
심일경성의 상태로 임하게 되면
그 상태에서부터는 그 도너츠에 대한
망상분별이 일단 해소되면서
색계에 진입하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다시 그런 상태에서 더 집중하고 임하면
색계에서 다시 무색계로 진입해 들어가는데
이 색계나 무색계 역시 실답지 않은 분별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적어도 욕계에서 보는 그런 3 악도의 생사고통은
일단 없는 상태이기에
이 색계와 무색계의 상태는 모두 하늘의 상태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색계는
허공 공간에 해당하는 것이 끝없이 펼쳐진
그런 상태로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이런 형태로 제시되는데
그 구체적 상태를 직접 경험하던 못하던
그 하늘의 명칭에 들어간 내용을
잘 음미하면
이들 각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를
음미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색계 무색계는
처음 심일경성의 상태가 의미하듯
분노를 가져서 무엇에 차분히 집중해서 임하는 상태와는
거리가 멀기에 일단 분노로 일으키는 번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일반적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 욕계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보면
간단히 보면 여름철에 본 파리나 벌이나 나비는
1 년이 지나가는 이 즈음에는 찾아 보기 힘들다.
단 1 년만으로 그 주체가 행할 중요한 일은
다 마치고 세계를 떠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상황을 벌을 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숲에 벌통을 놓고 벌이 자유롭게 숲을 날아다니도록만 해주면
벌이 1 년을 보내고 난 즈음에는
꿀을 수확하는 상태가 된다고 보고
현실에서 벌을 치는 분들이 그렇게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욕계안에서도 이런 여러 생명의 차별을
나열한다면
그 가운데 다양한 상태가 있다고
욕계를 6 가지 범주로 나누어 제시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볼 때 생물도감에서 개의 범주에 드는
개를 나열하다보면
어떻게 치와와가 불독이나 세퍼트와 같은 개에 들어가는가.
이런 의문을 갖기는 하는데
그래도 하나의 개의 범주에 넣은 것은
그들 사이에 일정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으로 개나 고양이 소 이런 생명들이
다 제각각 사정이 다른데 이들은 모두 축생의 범위에
넣게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개 이야기를 적다 보니
일전에 본 동영상 내용이 갑자기 생각나는데
이 내용과 조금은 관련이 된다고 본다.
과거에 스타들의 전생 이런 프로가 있었는데
어떤 유명한 코미디언 분이 그런 프로에
참여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동료 코미디언들이 같이 옆에서
그 상황을 다 같이 지켜보는데
처음에 그런 최면에 든 코미디언분이
과거 전생에 대해서 말을 하는데
상황이 자신이 개로 활동하는 상태임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동료 코미디언들이 이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중에 더 들어보니
그 동료코미디언들이 대부분 그 코미디언이
개로 활동할 당시 연인관계를 형성해 상대한
동료개들이었음을 거기서 말을 해서
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게 한 것이다.
알고보니 동료 코미디언들이
과거 생에 서로 3 각 관계로 얽혀서
연정의 관계에 있었고
어떻게 보면 불륜관계였던 당사자가
지금 현실에서도 그처럼 서로 굉장히 밀접한 관계로
지내고 있다는 내용까지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최면을 다 믿을 것은 아닌데
그 당사자만은 대단히 그 상황에서
심각하게 그 내용을 서술하고
그 당시 가졌던 그런 생각이
또 이번 생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토대인 것 같다고 최면을 깨고 나서도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한 것을 본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 코미디언만 유독 그렇다고
보기는 힘든데
왜 상황이 어차피 대부분 다 마찬가지인데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경우가
드문가.
이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지렁이가 어떤 슾지에 산다면
지렁이 입장에서는 지렁이도
무언가 좋다고 보는 것을 추구하면서
매 순간순간 먹고 싸고 놀고 하고 쉬고 자는 활동을
끊임없이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그 상황에서 매 순간 얻는 내용을
다음 생으로 가지고 갈만한 내용이
사실은 이 내용 정도 밖에는 없는 것이
또 현실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현실의 지금 자신을 놓고 생각을 해본다면
이 상황이 또 마찬가지다.
본인이 오늘 글을 쓰면서 4 개월전의 이야기를 했는데
4 개월전에도 무언가 그날 먹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자지 않았겠는가.
그런 가운데 오늘을 놓고 보아도 마찬가지다.
오늘 점심때 무언가를 먹었는데
지금 이 순간 그것을 눈을 감고
그 때 먹은 것을 정확하게 다시 되살려 보자.
이렇게 실험을 해본다고 하자.
그 순간에 그것이 떠오르면
일단 그 다음 다음 순간도 떠오를 수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이 순간에 떠오른다는 것은 그것은 아니고
그와 관련된 무엇이기는 한데
그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 실험에서 그렇게 떠오르는 것 가운데에서도
앞에서 실험을 해보면
4 개월전에 외운 게송이 오늘 생각이 안 나는데
그러나 무언가는 조금 생각이 난다.
그런 형태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또 전혀 없는 상태인가 하면
같은 내용을 처음 볼 때와 두번째 볼 때는
서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현실에서 당장 실험을 할 수 있는 내용을
놓고 잘 음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눈으로 보는 내용은
귀로 듣는 영역에서는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이런 것도 헤아려 보고
눈으로 보는 내용이 본래 그 자체로 실답지 않고
귀로 듣는 영역에서는 전혀 그 유무를 따질 수 없는
무엇이라고 해도
그렇다고 그것이 전혀 없다고 할 내용인가를
또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자신의 감관을 이용해서
무엇이 얻어진다고 해서
방울뱀이나 박쥐나 돌고래가 각기 갖는 감관으로
얻는 어떤 내용이 전혀 얻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할 도리는 또 없는 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지금은 자신이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하지만,
자신과 달리 각 생명이 처한 어떤 상황에서
제 각각 자기 나름의 어떤 내용을 그렇게 생생하게 얻으면서
그런 바탕에서 열심히
방울뱀은 방울뱀대로 그렇게 생활하고
박쥐나 돌고래나 메뚜기나 각 생명이 각기 살아감을
지금 보고 있듯
그 상황이 바로 욕계에서 그렇게
다양한 형태로 펼쳐져 있다는 것을
일단 생각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에 살아가면서 호주나 아프리카를 한 번도 안 가본 입장은
호주에 캥거루가 있다는 것을 말만 들을 뿐인데도
그런 캥거루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부처님이 욕계 안에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고
그 가운데 특별히 전문적으로 고통을 심하게 받는 상태로
살아가는 생명이 그렇게 있다고 제시하는 내용으로
이 욕계내 3 악도의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캥거루 하나만 놓고도 자신이 직접 보지 않는한
그런 내용을 못 믿겠다고 임하면 별 도리는 없고
매번 직접 가서 현장을 경험해야 하는데
그 방안이 사실은 앞에 소개한
그런 정려 수행의 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행을 처음 떠나는 상태에서 가능하다면
독충이 수없이 많고 늪지와 독사 이런 것이 가득하고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이나 식량은 얻기 힘든 곳을
먼저 방문할 것인가.
아니면 처음에 유명하고 깨끗한 문명시설이 갖춰진
휴양지부터 먼저 하나하나 방문하면서
견문을 넗히는 것이 좋다고 보겠는가.
물론 각 입장마다 다 다르겠지만,
첫 방문지부터 지옥 아귀
그 가운데에서 상태가 극심한 아비지옥의 현장에
들어가면
현실에서 마치 여기저기 시체가 뒹굴고
폭발물이 터지고 하늘에는 독극물 화학물질이 살포되면서
보이는 대로 칼로 찌르고 총을 쏘면서 쫒아 다니는
전투에 임하고 있고
또 여기저기서 심한 부상을 입은 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그런 현장부터 먼저 방문하는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정신적 충격을 받고
오히려 수행에 장애가 되기 쉽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글자로만 일단 보고 그런가보다 이해하고
수행 단계에서는 색계 무색계를 방문해서
각 하늘 세계를 경험하고
그 상태에서 왜 이런 엉뚱한 상태로
각 세계에서 생사에 묶이고 있는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실재와 감각현실 관념분별의 관계를 놓고 보자.
처음 # 실재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감각현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런 내용들인 것이다.
현실에서 눈을 떠서 보던 눈을 뜨지 않고 무엇을 보지 않던
어떤가.
별 관계없는 것이다.
관념분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본래 # 실재도 거기에 실답다고 볼
어떤 진짜의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고 [ 무아, 무자성, 승의무자성, 인무아, 법무아 ]
그래서 실답지 않기로 말하면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과 별 차이는 없지만,
그러나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은 이보다 더
실답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앞에 제시한 것처럼
그것만 놓고 보면
있어도 무방하지만, 없어도 무방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 내용을 얻고
앞과 같이 임하면
그 상태에서는 곧바로 이것을 소재로
욕계의 생사현실에 묶여서
각 영역에는 본래 얻을 수 없는 그런 도너츠를 놓고
매순간 그것이 있다 없다 이렇다 저렇다 이러면서
생사고통을 겪어나가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내용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처음에 그 상황에서 집착을 갖고
수행의 방향으로 임하지 않고 잘못 임하면
어떻게 된다고 하는가 하면
앞에서 지렁이나 축생의 사례를 들었듯
서로 내용이라고 할 것은
먹고 싸고 놀고 하고 쉬고 자고 하면서
자신의 입장에서 좋다고 보는 것을
그렇게 추구하고 사는데
그것이 바로 서로가 서로를
지극히 심한 고통을 주고 받는 상태로 끌고 가는
동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겁을 보내면서
매 순간 그렇게 생생한 고통을 얻었다고 해도
정작 그 내용을 그 다음 순간이나
다음 생의 단계로 보관해 가지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가운데 남는 것은 물론 그런 감각현실 형태가 아니다.
그런데 그 내용도
자신이나 다른 입장에서 볼 때
다음 순간이나 생으로 가져가야 좋다고 볼 사정도
그렇게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런 상태의 생명이 매 생을
앞 뒤가 끊겨서 매 순간 임하게 되는
분단 생사과정의 사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조금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면,
과거에 노예제도가 각 세계에서
대부분 운영되었던 것이 현실인데
어떤 주인이 자신들의 노예가 더 똑똑하고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학교도 다니게 하고
여러가지 활동을 하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경우가
있었겠는가를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노예가 처음 발생한 것은
서로 죽이겠다고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포로로 잡힌 상대나
돈을 빌려간 다음 도저히 갚지 못하겠다고 해서
그런 노예로 생활하게 된 상태가 시작되었다면
그 이후 그런 배려를 하는 것이 보통인가
아닌가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사정을 알고보면
과거에 세종대왕이 모든 사람이 쉽게
그 뜻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글을 사용하자는
운동을 한 번 했는데
그것이 무슨 엉뚱한 이야기인가.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또 당시 사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원래 이런 관계로 한 번 얽혀 들어가
어떤 수용소에 갇히면
그 수용소가 춥다고 따뜻하게 해주려고 하는 일도 없고
덥다고 시원하게 해주려는 일도 없고
그냥 죽거나 말거나 계속 그 상태로 끌고가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인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일괄 포맷처리를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그 일이 지난 후
그와 관계된 동상을 하나 어디 세워서
대대로 오래 기억하게 하려고 한다면
대단히 싫어하게 된다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왜 그러겠는가.
그 자체가 우선 불쾌하다고 여기게 되는 내용도 되지만,
그런 상태면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또 그 반대 내용이 되돌아오고
그래서 계속 그렇게 돌고 돈다고 보기에
그런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포맷처리를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앞의 실험과정에서 보듯
그 내용들이 각 주체의 내부에 씨의 형태로 잠재되어 있어서
그것이 열매를 맺게 될 적절한 상황을 맞게 되면
또 다시 열매로 나타나는 현상이
계속 일어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지금 또 실험을 해보자.
생각해내라. 이것이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대부분 틀렸다고 보아야 한다.
답은 라이터다.
엉뚱한가.
그런데 라이터로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으면 앞과 상황이 마찬가지인데
또 대부분 무엇을 꺼내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가스, 가게, 담배.
이런 것들이다.
처음에 왜 그것이 생각이 나지 얂았는가.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런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그것이 일체 없었다면,
왜 두번째에서는 생각이 나는가.
이런 문제다.
그래서 어떤 내용은 다음 순간에도
다시 그대로 꺼내지 못하지만,
현실에서 행하고 얻는 어떤 내용은
그렇게 씨의 형태로
잠재적으로 보관되고
그것이 다음 순간에나 다음 생에 열매 형태로 변해서
나타나게 된다는 이 현상을 잘 살펴야 하는 것이다.
탁구를 치는 이가 있다면
한 5 년 정도 쉬고 나서
다시 탁구를 치려고 나가면
처음 탁구장에 들어와 탁구를 치는 이와는 달리
곧바로 원래 수준을 회복하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앞의 현상에서 씨로 작용하는 내용들이
무엇들인가를 일단 살피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라이터로 생각이 나는 것 이런 문제가 제시될 대
여기서 어떠한 이가 대하는
'라이터'라는 것의 정체가 무언가.
일단 언어인 것이다.
그 언어는 또 본 정체가 무언가하면 관념분별인 것이다.
그래서 일단 이런 내용을 놓고 잘 살펴야 하는데
문제는
원래 본 바탕이라고 할 # 실재나 ~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 이 각 영역이
하나같이 실답지 않은데
그러나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그런 상태에서 비닐마술의 내용에서 제시한 것처럼
그런 것을 통해 그 상황에 실답게 있다고 여기는 그런 도너츠는
일단 위 각 영여에는 그렇게 실답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결국
욕계의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내용은 '일단 아닌'
그러나 그렇게 생생하기도 하고 또렷하기도 한
또는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그런 그 무엇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생사 고통을 심하게 겪고
무언가 A의 생멸이 있다고 본다면
그런 내용이 어느 영역에 있는가 하면
앞의 비닐판 마술 비유에서
세모가 그려진 비닐층
동그라미가 그려진 비닐층에 있는 것이 아닌데
그러나 이를 재료로 있다고 보게 되는 그런 도너츠 상태에
그렇게 있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도너츠를 보게 한
세모는 무엇인가.
그것은 비록 도너츠를 보는 이가 그 도너츠에 해당하는 실다운 부분이라고
그 세모를 대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세모 자체는 그 도너츠는 아닌 그런 생생한 세모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자꾸 저기 영희가 있고
영희가 여기로 오고
그러다가 자동차에 받혀서 저기 쓰러져서 피를 흘리고
죽었는데
왜 이 현실에 영희가 없고
오고감도 없고
생사도 없다고 하는가.
이렇게 문제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전도몽상분별증상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생하게 그런 내용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런 내용이 그 상황에서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가는
바로 비닐판 마술 상황과 같은 것이다.
그 현장에 생멸이나 생사가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그렇게 보는 사정을 다시 풀어서 설명하면
자신이 볼 때
감각현실에서 무언가가 나타나기도 하고
무언가가 이러저리 변화도 하고 그랬다는 내용
즉 비닐판 마술에서 세모에 해당하는 내용을
그렇게 얻었다고 기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런 내용으로서 생생하게
얻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런 생생한 그 무엇이지만,
지금 그가 주장하는 '그런 내용이 아닌' 그런 생생한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놓고 그렇게 생각하는 내용도 또 마찬가지다.
같은 구조의 이야기를 두번 할 일은 아닌데
여하튼 그 동그라미도 그렇게 또렷한 동그라미인 것은 맞는데
그것은 동그라미이지
그것이 그 안에 그렇게 앞 비닐에 있는 생생한 세모를
그 구성부분으로 갖고 있는 그런 도너츠는 아니다
이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각 영역의 세모나 동그라미도
알고보면 상황이 마찬가지인 것이다
모두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본래 하나같이 실답다고 볼 내용도 아닌
이런 내용을 얻게 되면
그 상태에서 그런 내용을 가지고
앞과 같은 내용이 거기에 실답고 있다고 하면서
오히려 앞과 같은 내용을 두고
그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자신이 말하는 그 끔직한 내용들이
여기 이렇게 생생하게 있고
이것이 각기 무엇인지는 자신이 또렷하게 다 분별하는데
무슨 이야기인가
이렇게 임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증상이 그렇게 여기고 대할만한 사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대단히 뿌리가 깊어서
왠만해서는 이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또 그런 상태에서 그 각 내용을 그렇게 실답게 보고 임하면
그에 바탕해서 매 순간 그러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그래서 그 과정이
결국 고진감래던 감진고래던 간에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약간의 좋음을 징검다리 삼아서
열심히 생사고통을 주고 받으며
고통을 증폭해 받는 상태로 묶여 나아가게 된다 .
이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하는가하는 문제에서
여기에서 문제되는 한 단면을 놓고
그 내용의 정체가 과연 무언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집착을 갖고 그렇게 대할
실다운 내용인가를 잘 음미해야 한다.
이는 마치 자신이
방울뱀이나 박쥐를 놓고
그 방울뱀이나 박쥐가 생생하게 얻고 대하는 내용이
하나같이 엉터리임을 설명하는 입장에서 대하면서
바로 그런 입장으로
자신의 상황도 잘 헤아려 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 대하는 그런 내용의
본 사정이 그런 것이 아니고
그래서 실답지 않은 내용임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그 바탕에서
집착을 제거하고
수행에 임해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업의 장애도 해소하고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는 게기를 얻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 쉬고
원래 살피고자 한
소의 죽음과 아라한의 열반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이어 살피기로 한다.
○ ▼mus0fl--Julien Clerc - La Rue Blanche, Le Petit Matin Bleu.lrc
간단하게 살피려고 했는데 또 글이 길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옥상기지에서 쉬는 동안
복잡해서 골치는 아프지만,
많이 쓰는 것도 좋겠다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노래를 듣게 된다.
앞에서 소의 죽음과 아라한의 열반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이어 살피기로 했는데
처음 소는 왜 소로 태어나서 삶을 시작했고
사람은 또 왜 사람으로 태어나서 삶을 시작했는가
이 문제를
현재 이 순간 어떤 이가
왜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보는 실재
그리고 실답고 할 진짜의 내용도 없는 그런 #실재를 바탕으로
다시 그런 실답지 않은 ! 감각현실을 얻고
또 그런 실답지 않은 @ 관념분별을 행하고
그런 가운데 그 상태에서 다시 실답지 않은 도너츠가
각 영역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특히 그 가운데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그런 상태를
매 순간 대하고 있게 되었는가
그 사정을 살펴야 한다고 본다.
처음 #실재 ~ ! 감각현실 ~ @ 관념분별의
발생 단계를 살필 때도 이를 살폈지만,
원래 발생단계를 놓고 존재의 관계를 살피면 앞과 같다고 보지만,
그러나 이것을 문제삼는 상황에서
그 문제를 삼는 입장은
이와는 반대 순서로 이것을 살펴나가게 된다고 제시한 바 있다.
무언가를 놓고 문제를 삼는 단계는
결국 관념분별을 가지고 그 문제를 살피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자신이 눈을 떠서 어떤 내용을 얻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이 내용 안에서 왜 어떤 부분은
자신이라고 보게 되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보게 되는가 그 사정을
헤아리려면 또 이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
앞의 그림인데
각 경우에 그 설명을 생략하고 넘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이를 그림을 또 붙여 놓고 살피면 다음과 같다.
[img2-9]
08pfl--image/8식-9.jpg
한 순간에서 눈을 떠서 보는 내용 가운데 ◇ 부분을
자신이라고 보고 대한다고 하자.
그것은 꼭 눈으로 보는 내용만 그런 것은 아니고
2,3,4,5 로 표시한 영역도 사정이 같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1! 의 내용을 놓고 설명하는 것과
사정이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자신으로 보는 ◇ 을
잘 붙아두는 것이 실험과정상 필요하다.
붙잡으려 한다고 해서 붙잡인다고는 보지 않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여보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갓난 아이 였던 시절로 돌아가서
그 상황에서 그 갓난아이가 지금의 자신처럼
자신이라고 보게 되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서
그런 부분을 또 찾아내 잡아보려고 노력해보자.
그 때도 그런 ◇ 부분을 자신이라고 본 것이고
지금은 지금대로 그런 ◇ 부분을 자신이라고 보는 가운데
매 순간 그렇게 임하면서 점차 오늘까지 살아 온 것이다.
이것이 전도몽상 상태에서 생사를 겪어 나가는
진행중인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매순간 매순간은 잘 파악하지만,
조금씩 ◇ 의 구체적 내용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벌려 놓고 대하면
갓난아이 당시에 자신이라고 생각한 ◇과
지금 자신이라고 생각한 ◇은
달라도 너무 다른 상태가 되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이것을 모두 자신이라고 대하는 상황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이 차이 나는 두 ◇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겠는가가 첫 퀴즈다.
레고블럭으로 매번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이가 있다면
그 블럭을 가지고 매 순간 무엇을 그렇게 만들어 내는데
원래 부품이 엇비슷하다고 보아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5 년전에 무엇을 만들던 작품과
10 년전 작품을 만들던 블럭이 블럭 자체로서
다 달라진 상태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매 순간 그 내용을 그렇게
전도몽상 상태로 그런 내용이 자신이라고 보는 생각을 갖고
그렇게 임한다는 그 증상만은 매 순간
어느 정도 공통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런 판단을 행하는 정신 영역안의 내용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과거에 생각한 생각 내용은 지금 순간에는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이고
지금 생각하는 내용은 또 과거당시에는 거의 없었던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라고 보면서 그 구성요소를 나열하는 것을
하나하나 검토하면 사정이 다 이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상태에서도 앞의 전도몽상 분별을 행하는 입장에서는
굳건하게 계속 그런 것을 붙잡고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집착하고 매 순간 나아간다는 의미다.
그런데 매순간 그처럼 자신이라고 보는 그런 ◇ 부분을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그런 사정이 있다고 앞에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알고보면
자신이 보는 그런 ◇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근원은 그 밑바탕에서부터 그렇게
망상분별을 일으켜서 그런 내용을 그런 상태로
대하게 된 기본 사정 때문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 사정은 대강
근본정신과 관련된 내용으로
위 그림처럼 대강 제시하고
여기서는 생략하는데
일단 그렇게 처음에 앞과 같이
그런 내용을 자신이라고 보게 된 요소를 놓고
만일 자신을 찾는다면
그것은 위 그림에서처럼
자신의 마음에 들어와 일시 머무르는 손님과 같고
레고 블럭덩어리와 같은 것을 놓고
자신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위 그림에서 갑A@ 이런 형태에서
그 화살방향이 가리키는 그런 내용을 차라리 놓고
자신이라고 보는 것이 낫다는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현실에서 1,2,3,4,5 와 6 의 관계는
처음 이런 상태를 생성시키는 단계에서
근본정신인 8 과 7 의 관계와 어느정도
유사하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앞에서 처음 살핀
# 실재 ~ ! 감각현실 ~ @ 관념분별 사이에선
무슨 관계인가가 일단 다시 문제된다.
원래 앞에서 무엇을 그런 자신이라고 보던간에
본래 # 실재를 바탕으로 그 내용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런 내용은 있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일단 '그런 내용은 아닌' - 그러그러한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현실에서 무엇인가를 놓고
무엇이 없어져서 큰일이다.
무엇이 파괴되고 무엇이 끊어지고 죽게 되고
생사가 달려있어서 큰일이다라고 내용을 제시하는데
본 바탕의 # 실재는 일단 그런 것은 아닌
그러그러한 것이라고 제시하는 의미다.
# 실재만 그런 것이 아니고
감각현실도 그렇고
또 알고보면 그런 온갖 문제를 제기하는 관념분별이
가장 그 문제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내용이라고는 보지만,
알고 보면 그 내용도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처음에 제시하는 것이다.
범인 피해자 사살하고 현장에서 즉사
이런 글자를 여기에 적어 놓으면
대부분 공포스럽게 여기고 놀랄 수 있지만,
그러나 잘 살피면
그냥 내용이 공허한 그런 관념이고 명칭일 뿐이라는 의미다.
다만 본래 상태는 그런데
전도망상을 일으키고 생사현실에 임하는 입장은
앞 재료를 모두 가지고
그렇지 않다고 보고
대단히 실다운 내용이라고 보면서
이것을 대하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그런 입장과 그렇지 않은 입장의
기본적인 차이인 것이다.
그래서 처음 비닐판 마술 비유를 놓고 제시한다면
처음에 부처님이 제시한 내용은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그런 내용을 다 나열한 다음
거기에 그런 내용은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그 감각현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실재 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 공 ]
더 나아가 그에 해당하는 진짜라고 할 내용도 없다. [ 무아, 무자성 ]
그래서 이 관계는
마치 침대에서 누어서 자면서 황금 꿈을 생생하게 꿀 때
그 황금과 그 침대의 관계처럼
비록 그 황금꿈을 아주 생생하게 꾼 것은 사실이더라도
그 내용은 그런 사정으로 실답지 않은 것이라고 잘 관해야 한다고
이런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사정이 그러므로 그런 줄 알면
일단 그에 대해서 실답다고 여기지 않고
따라서 그에 집착을 갖지 않게 되고
또 그런 바탕에서는
좋다고 탐욕 탐착심을 갖고 그것을 대하고
또 나쁘다고 분노를 일으키면 대하는 그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게 되고
또 그에 바탕해서 당장 자신에게 좋다고 보는 것을 집착하면서
추구하게 되지 않는다.
그러면 그런 생사의 고통을 묶여서 받는 상태에 묶여 끌려 들어가지 않게 되고
그런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게 된다
이런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처음 실재~ 감각현실 ~ 관념분별의 관계를 놓고
자신이 생각하거나
감각한 내용이
그렇게 각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실다운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관하면
기본적으로 그 상황에서
마치 비닐판 마술에서 각 비닐에 없는 도너츠가 실답게 있다고 보면서
집착을 갖고 임하는 상태에서 풀려나듯,
그 상태에 그런 생사나 생멸이
실답게 있다고 보는 상태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바로
그 상태에서 풀려나지 못하는 사정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부처님이 그런 내용을
모두 제자들에게 제시하고 가르친다고 할 때
원래는 바로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서
풀려나야 하는데
바로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오랜 기간 그런 바탕에서
앞에서 설명한 내용을 행해 온 사정이 있기에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님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당장
3 악도를 면하고 하늘에 올라가서 수행을 해도 될 것 같은데
그것이 곤란한 상태인 것이다.
비유를 하면 다음과 사정이 같다.
어느 밀림 지역 가까운 곳에 고급호텔이 있는데
대부분 거기에서 장기간 투숙하면서 생활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호텔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이들은 많은데
그 호텔 주인은 그것을 별로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 호텔에 들어가서 그렇게 장기간 머물 수 있으려면
일단 거기 들어가서 호텔 주인을 상대로
계속 비방하고 시비하는 마음으로 그 호텔을 방문하면
당연히 호텔주인이 나가달라고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 반대라고 해도
어떠한 이가 밖에서 너무 사고를 많이 일으키고
다른 이를 괴롭힌 상태여서
그를 만일 호텔에 투숙시키게 되면
잘못하면 호텔 자체가 폭파당하는 수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 호텔 주인도 그 손님을 투숙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와 비슷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너무 많은 사고를 일으켜서
그것이 쌓여 있는 상태가 되면
당장 그것이 폭발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런 사정으로
그런 업의 장애를 일단 수행을 통해서 해소시키는 것이
또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수행에 진입해서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면
처음에는 그런 하늘과 인간 세계를 7 차례 정도
오가는 가운데 꾸준히 수행을 계속해서
그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풀려나게 된다고 보는 것이고
또 그 상태가 조금 다르면
지금 생은 안 되지만,
일단 하늘에 올라간 다음에 그렇게 된다고 제시하고
여기서 아라한이라고 제시하는 경우는
그 사정이 또 앞과 달라서
이번 생에 그렇게 당장 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결국 처음에 생사고통에 묶이게 한
여러 요소
즉 처음에 전도몽상을 일으키고 묶인 정도
그리고 그에 바탕해서
탐욕 분노 어리석은 견해를 일으키고 그에 집착하는 정도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한 생각 말 행위 (신구의 3 업)의 내용과 정도
이런 것들이 모두 생사고통을 받는 방향은 중지되고
기본적으로 그런 상태를 벗어나고
그 이후 행하는 성격이나 내용이 수행의 방향으로 전환되어
꾸준히 행해져서 그런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원래 상태가 그런 상태가 아니므로
이제 그 사정을 원래 있는대로 잘 관하면 되었지
원래 상태가 그렇지 않은데
그것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원칙상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게 사정을 잘 관하는 입장만
그렇게 된다는 의미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눈이 있는 사람이 옆에 있고
눈먼 사람이 있으면
눈이 있는 사람만 그 상황에서 태양빛을 보는 것과 같다.
한 상황에서 장님도 있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다르듯
각 생명의 사정도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개가 냄새 맡고 듣는 소리를 사람은 일부 맡고 일부 보지만,
다 같다고 보지 않듯
박쥐나 방울뱀이나 돌고래나 인간이나 서로서로
그처럼 상황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태에서 어떤 이가
현실의 본 상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도
다른 생명은 여전히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그렇게 본다고 하니
정말 그렇다면
다른 생명이 자신의 손을 자르고 발을 잘라도
정말 괜찮다고 임할 수 있어야 된다는 의미다.
앞의 원칙적 입장이 그런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이론은 그렇지만,
자신이 그런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이해해도
그런 현상 자체가 바로 없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그런 상대와 얽힌 업의 장애현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수행을 하기 직전에
남의 집을 999 채를 불 태우고
그 가족 999 명을 다 죽인 상태에서
수행을 시작하고
본래 그런 것이 아님을 관하게 되었다고 가정을 해보는 것이다.
자신이 정말 그렇다면
이제 그 상대방이 자신을 찾아ㅇ와 999번을 불에 넣고 태운다고 해도
그 원리를 바탕해서
그 역시 무방하다고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칙적인 수행방안은
바로 그렇게 잘 관하고
이전처럼 그렇게 상대가 불을 태우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계속 넣어져서 자신의 몸이라고 보는 부분을 태운다해도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관하고
평안이 참고 임하라는 의미다.
문제는 이론상은 그런데
그런 이론만으로 그런 상황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일체가 그 실재가 실답지 않고 그 내용을 얻을 수 없어 공하고
그래서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 진여는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생사를 본래 얻을 수 없고
적어도 그런 것은 아닌 그 무엇이어서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이 본 바탕만 기준으로 삼고 임하면
문제삼을 것이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청정함이 떡 하고 있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생사 고통이나
더러움이라고 보는 내용들을 얻을 수 없고
진짜라고 할 무엇도 없는 것이지만, [무아, 무자성, 승의무자성]
적어도 '앞과 같은 것은 아닌' - 그런 그 무엇인 것이다.
그래서 이 상태를 현실에서 심각하고 생생하게 대하고
끔직하게 여기고 문제삼는 그런 생사고통과 상대적인 의미에서
적어도 그런 것은 아닌 - 그러나 전혀 없는 것도 아닌 -
그런 어떤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표현해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본 바탕은 원래 그렀다는 것이지
이것이 어떤 특별한 수행을 해서 그렇게 새삼 된 것도 아니고
원래 그 실재의 정의 자체가 그렇듯
본래 그런 상태라고 그렇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처음부터 이렇다 저렇다 문제삼을 이유도 없지만,
그러나 이 본 바탕을 놓고 보면
어떤 것을 어떤 특별한 수행을 통해 얻어낼 바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그런 본 사정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무엇이 문제였고
또 수행으로서 해결해야 할 바라고 한 것인가하면,
본래 본 바탕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앞과 같이 그런 상태로
각 영역에서 실답지 않은 그런 내용을 일으켜 얻고
최종적으로 도너츠와 같은 내용을 얻고 나서는
그런 생사고통이 실답게 있다고 여기면서
생사고통을 아주 생생하고 끔직하게 겪어나가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고
그래서 처음 수행이 제시된 사정도
본래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그런 부분을
그 본 바탕에서 제거해내고자
앞과 같은 내용들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말하면 이 내용만으로
곧바로 그런 고통을 겪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은데
이제 그 내용을 그렇게 잘 이해하고
그 상태에서 톱을 하나 가져와서
자신의 손을 하나씩 잘라보면
그것이 이론처럼 잘 안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내용을 잘 이해하고 외우고 알지만,
정말 그렇게 생사고통을 완전히 벗어난 상태가
되었는가는 이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의미다.
그리고 욕계내 상황은 적어도 이렇다는 의미다.
그리고 욕계내 각 상태의 사정과 내역이 층층으로 되어 있어서
결국 욕계에서 가장 좋은 상태로 6 육천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이런 순환과정에서 극히 좋은 상태를 제시한 것이고
욕계에 임하면
앞과 같은 사정으로
지옥이나 아귀 축생계를 한없이 돌아다녀야 할 사연도
그만큼 무량하게 많이 쌓인 상태라는 의미다.
그래서 알고보면 수행자를 방해한다는 마파순은
지옥에 갇힌 중생이 아니고
알고보면 이런 욕계 안에서
지극하게 선하고 훌륭한 일을 꾸준히 많이 쌓아서
욕계 하늘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상태로 있는 그런 상태라는 의미다.
현실에서 어떤 직장을 놓거나 학교를 놓고
시험을 본다면
대부분 가장 좋은 직장 가장 좋은 학교를 희망하고
지망하는 것은 사실인데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 그렇게 되지 못하고
아주 극소수만 그런 상태가 된다고 보듯,
각 입장에서 희망하는 내용이야
대부분 그런 상태를 원하지만,
그러나 그런 상태가 되는 방안은
현실에서 임하는 그런 방안으로는 곤란하고
또한 현실의 대부분 경우는 이런 경우 보다는
3 악도에서 자신을 묶어서 끌고 가려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잘 이해가 안되면
자신의 현실 사정을 잘 놓고
자신이 스스로 어떤 객관적인 제 3 자인
재판관이 되어서 검토를 해보고
자신이 그런 3 악도 보다는
하늘의 상태에 머물거나
또는 아예 이런 생사묶임에서 벗어날
사유를 제시해보는 것이
그 사정을 이해하는데 빠르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정이 어렵다.
소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왜 90 겁도 아니고 무량겁을 걸쳐서
그런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로 한없이 지내야 하는가.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악순환이 또 다른 악순환을 일으키고
그것이 계속 증폭되어서 그렇다고 제시하게 된다.
지장보살님이 3 악도 구출 전문인데
그 분의 설명에 의하면
처음에는 실답지 않다고 할 물방울 하나로 시작했는데
한 쪽에서는 그것으로 실답지 않은 도너츠를
계속 좋고 좋은 내용으로 주고 받아가면서
키워 나간 사정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경우는
처음 실답지 않은 물방울 하나를 가지고
유리창 파손
그 다음에는 자동차 폭파
그 다음에는 주택 방화
그 다음에는 납치
이런 형태로 계속 증폭해나가서
그렇게 되었다고 제시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앞에서 처음 제시한 원칙은
이 각 경우에 다 원칙적으로 다 해당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그것을 제거하고
이것을 벗어나는 방안을
수행방안으로 그렇게 제시하게 된다는 의미다.
일단 여기까지 보고
나머지 오늘 테스트를 마친 시제품 사용 설명까지
제시해야 하는데 일단 쉬기로 한다.
○ ▼mus0fl--Johnny Hallyday - Laura.lrc
그래서 처음 제시한 문제로서
소가 죽음을 당한 내용과
아라한이 처음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해탈했다는 내용
그리고 이제 멸도해서 반열반에 들었다는 내용
그리고 어떤 수행자는 아직 그런 상태는 아니지만,
하늘과 인간세계를 몇번은 오가는 가운데 열반에 들 상태에 이르렀다는 내용
그리고 어떤 아라한은 끝내 열반에 들지 않는다는 내용은
앞의 내용을 놓고 살피면 다음과 같이
구별할 수 있다.
[img2-9]
08pfl--image/8식-9.jpg
다시 앞의 그림을 놓고 보면
원래 #실재 ~ ! 감각현실 @ 관념분별 이렇게 존재가 문제되는 영역에서
12345 영역에서 얻는 감각현실이나
6 영역에서 얻는 관념분별을 얻어도 그만 얻지 않아도 그만인 그런 내용이라는 의미다.
그래도 본 바탕인 근본정신은 관계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단계에서 위와 같은 여러 정신이 생성 분화되는 가운데
전도몽상을 일으켜 업을 행하면
그로 인해 각 세계에 묶여서
그런 형태로 1,2,3,4,5, 6,, 7 와 같은 정신을 생성시키고
또 그 바탕에서 그런 내용을 얻고
그것을 대하게 되었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보면
처음 문제삼은 것처럼
1! 과 같은 영역에서 일정 부분을 자신이라고 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가운데
그 각 내용을 놓고
그런 내용이 그런 실다운 내용이라고 대하는 가운데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 사정을
그처럼 무명(어리석음) - 행 - 식 - 명색 - 6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병사
이런 연기관계로 그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는 그런 생사가 있다고 보는 것인데
앞에서 본 것처럼
소가 이번 생에 한 번 죽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이후 그 소와 관계된 것은 일체 없게 되는 것이 아닌
사정을 또 위 내용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어느 계기를 통해서
현실의 본 상태를 올바로 관하고
전도몽상과 그에 바탕한 집착을 제거하고
그 집착에 바탕한 행위 반응(신구의3업)을 제거하고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야
이제 그 업의 장애가 해소되고
그래서 그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본래 실재 ~ 감각현실 ~ 관념분별의 관계를 살피면
본래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생사현실의 고통으로 문제삼는 그런 내용은 아니지만,
그 상태에서 앞과 같은 상태를 일으키는 것이므로
이것을 완전히 제거하고 없애서
더 이상 다음 생에서 1234567 이런 내용 등을
분화 생성시키지 않는 상태를
회신멸지의 반열반 상태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단계에서 비록 그렇지 않더라도
앞과 같은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한 상태는
그것만으로 이미 생사를 벗어난 상태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망상 분별의 내용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많은 감각을 다양하게 얻고
또 분별을 많이 행하는 것을
지적으로 많이 성숙한 상태로 보는 것인데
그런데 원래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그것은 비유하면
공연히 어떤 이가 잠을 자면서 꿈을 많이 꾼다거나
또는 공연히 만화나 공상소설 시나리오를 많이 지어낸다거나
그런 상태와 사정이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생사현실의 고통을 얻을 수 없는
본 바탕의 청정한 니르바나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현실에서 의미를 두는 그런 내용을
일체 제거한 회신멸지
즉 몸을 재로 만들고 쓸데없고 실답지 않는 내용을
다 제거해 버린 상태를 원칙적으로
멸도되고 제도된 상태로 보는 것이다.
그것이 멸도 반열반에 든 아라한과
그런 상태를 잘 깨닫고 현실에 집착없이 임하고 수행에 임하는 상태와의
구별이라면 구별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용만 많이 알고
정작 생사고통에 직면해서 그런 집착을 끊고 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경우는 또 그런 상태가 아닌 것이다.
비유하면 여전히 최면에 걸린 상태가 조금은 남아 있는
그런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경전의 내용을 뗏목이라고 비유하는 것도
사정이 이와 같다.
그리고 이전에 회쟁론에서 제시한 가정적 항변의 무량한 if 논의의 내용도
사정이 같다.
경전의 내용은 그런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한 방편이고
가정적 항변 논의도 앞과 같은 상태로 전도망상이 심화된 상태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제시하는 내용인데
예를 들어 그런 내용 가운데에서
부처님이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면
이런 내용을 통해서 그 내용이 제시하는 본 상태로
회복이 되어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이 상태에서
자신이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란 내용을 얻었다.
이렇게 임하면
뗏목을 붙들고 임하는 상태일 뿐이라는 의미다.
그런 경우 각 경우에 해당하는 뗏목을 많이
보관하고 지니는 상태지만,
정작 그 뗏목을 사용해서 생사의 강을 건너 벗어나온
상태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사를 완전히 벗어난 아라한이 되어도
또 사정상 생사현실에 남아서
실답지는 않지만, 그렇게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을 위해서
완전히 열반에 들지 않고 임해야 할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제시한 죽음을 맞이한 소의 상태와
이런 상태들이 구별되는 것이다.
소는 소대로 평생 열심히 자신을 기준으로
좋은 것을 구하고 사는데
욕계에서 왜 생사고통에 묶였는가 하는 사정이 있듯
그런 상태에서 인간도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이다.
그 삶의 기간도 도리천만 해도 도리천의 하루가
인간 세상의 100 년에 해당하지만,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이런 식으로
갈수록 점점 늘어나서
타화자재천의 1 일은 인간세상의 1600 년이고
수명은 수명대로 평균 1만 6 천 세 정도로 제시되는 것이다.
그 위의 색계 무색계의 상태는 또 이보다 더 길어지는 것이 된다.
그것은 반대로 보면
인간을 기준으로 우유에 유산균음료를 넣고 유산균을 배양할 때
그 유산균들이 1 세대를 보내는 기간을 놓고
이것을 생각하고 그 수명의 기간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이런 욕계 색계 무색계 전체가
이런 생사에 묶여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특히 욕계 안에서 3 악도의 상황은
그 생사고통이 특히 극심하게 받는 상태인 것이다.
하나같이 실답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그것을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는 가운데
생생한 고통을 아주 실답게 받는 상태인 것이다.
지옥 아귀는 따로 놓는다고 해도
현실에서 보는 축생들이 한 생을 보내는 상태가
바로 그런 현실 상황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대하는 한 단면과
그 본 성격이 다른 것이 아닌데
다만 그렇게 삶을 전개해 나가게 된 사정이
그렇게 되었다는 의미다.
현실에서 자신이 볼 때 대부분의 현실이
그렇게 인과로 이뤄지는데
그런 삶을 그런 형태로 시작하는 첫부분은
뽑기로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 아님을
위 내용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생사를 벗어날 방안을
한 단면을 놓고 잘 헤아려서
이를 수행의 방향으로 전환해 벗어나와야 함을
원칙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전에 살핀
불보살 가피 중첩의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고 본다.
한 단면만 놓고 보면
어떤 한 주체가 극심하게 다른 주체로부터
피해를 보고
그래서 죽음을 당하는 그런 상태가 현실에 많다.
그런데 그것을 넒고 길고 깊게 관찰하면
그런 관계가 대단히 많이 가해와 피해의 관게로
중첩이 되어 있는 상태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 부처님 일족이 침입을 받아
멸족을 당한 관계도 사정이 같고
다른 내용들도 사정이 같은 것이다.
짧게 보면 당장 그런 현실과
그 직전의 내용만 관계를 갖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길에서 어떤 이가 다른 이를 심하게 폭행해서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폭행하는 이가 나쁘다고 보고 말릴때
그가 말하기를 저 사람이 어제 우리집을 불태운 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 사정을 또 다시 보게 되는데
그런데 다시 그렇게 맞는 이가 또 말하기를
사실은 저 사람이 1 주일전에 우리 부모집을 불 태운 이다.
이렇게 또 말하는데 이 사정을 보면 또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사정이 그렇게 계속 얽혀있는데
그것은 과거만 그런 것이 아니고
무언가를 계기로 수행으로 전환해 그 관계를 벗어나오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무량하게 그런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고
각 주체별로 또 각 측면별로 그렇게
넓고 길고 깊게 그런 가해와 피해를 주고 받는 가피관계가 중첩되어 있는 것인데
그것을 수행을 통해서
다른 의미의 가피 즉 불보살의 가피관계로 전환해 바꾸어 나오지
못하면 무량겁을 두고도 해결이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오늘날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시는 관세음보살님도
처음 그런 상태에 진입하기 직전에는
바로 그런 범죄로 인해 동생과 함께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희생을 당한 사건의 피해자였다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알고보면 당시 아버님이 오늘날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어머님은 아미타부처님이고
동생은 대세지 보살님이고 그렇다는 내용인데
그러나 그 당시는 그런 비극적인 사고를 당한
범죄사건의 희생자들이었다는 의미다.
문제는 그 상태에서
그 분들이 일반적으로 행하기 쉽다고 보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고
앞과 같은 가피의 중첩관계를 통해서
오히려 중생들을 이와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서원을 일으키는 계기로 삼아서
이를 수행으로 전환해 나온 것이
그 첫 대목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각 경우에 그렇게 임하지 않으면
최근에 살핀 불설해태경자경에서 제시되는 내용처럼
설령 91 겁이 앞으로 다시 지난다고 해도
상태가 나아질 도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참고 불설해태경자경 http://buddhism007.tistory.com/3833
◈Lab value 불기2561/12/28/목/09:35 |
♧ 잡담 ♧치매환자의 요양 방안 위 문서정보란에도 내역이 적혀 있지만, 불기2561-09-02-가섭결경 http://buddhism007.tistory.com/3532 이전까지는 그런 경우 생략을 하고 불기2561-09-02-가섭결경 http://buddhism007.tistory.com/3532 4 개월전에 살핀 내용이다. 쉬는 동안 식사도 하고 사실 경전에 등장하는 분들의 이름이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쓰고나니 대단히 길게 되었다. 모든 중생의 성품은 청정하여 본래부터 생겨나거나 없어질 수 없네. 이 몸과 마음은 환술[환幻]으로 생겨난 것이니 환술로 만들어진 것에는 죄와 복이 없다네. 迦葉佛賢劫第三偈曰 가섭불현겁제삼게왈 一切衆生性淸淨 從本無生無可滅 일체중생성청정 종본무생무가멸 卽此身心是幻生 幻化之中無罪福 즉차신심시환생 환화지중무죄복 이런 내용이다.
일단 조금 쉬었다가 이 내용을 살펴나가기로 한다.
쉬는 동안 여러가지 사건 사고 내용을 보았는데 >>> 2017_1228_1335 ~ http://stoo.asiae.co.kr/news/naver_view.htm?idxno=2017122811090655201 자니윤, 충격 근황 공개…치매로 요양병원서 생활 중 자니윤은 영어로 코미디를 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라고 보게 된다. 코미디로 웃음을 만들어 주는 일은 단순한 대화로 되는 것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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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3836#9079 θθ |
>>>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shishflowe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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