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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51.04.04 00:39
- ™The Realization of The Good & The Right In Wisdom & Nirvāṇa Happiness, 善現智福
- ॐ मणि पद्मे हूँ
불교진리와실천
유가사지론_K0570_T1579_001_01 본문
『유가사지론』
K0570
T1579
제1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유가사지론』 ♣0570-001♧
제1권
♥아래는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페이지 내용 업데이트 관련 안내]
❋본문
◎[개별논의]
○ [pt op tr]
○ 유가사지론-고려대장경판본
❋❋본문 ♥ ◎[개별논의]
『유가사지론』 ♣0570-001♧
◎◎[개별논의] ♥ ❋본문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c Anthony - Je Ne Suis Pas Un Heros.lrc
● 유가사지론을 쉽고 재미있게 읽어 나가는 기본자세
이번에 경률논장 연구코너가 신설되었다.
이 논장 코너에서 『유가사지론』을 선택해 살피기로 했다.
『유가사지론』을 읽어 본다.
- 표현의 난해함
우선 논서안에 평소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형태의 용어가 많다.
일반적으로 대하는 문장에서 80% 정도의 내용을 이해해야 내용이해가 쉽게 된다.
그래야 또 흥미를 갖고 대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 각 내용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재미가 없음
한편 이 논서에서는 항목을 백과사전식으로 자꾸 나열해가며 설명해간다.
그래서 내용이 대단히 자세하고 번잡한 편이다.
그런데 논서 자체에서 이들 내용을 제시하는 취지도 친절하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이들 내용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잘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각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흥미를 잃게 되기 쉽다.
그래서 이런 논서를 흥미있게 즐겁게 잘 대하고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를 살피는 이가 자세를 조금 바꿔 대할 필요가 있다.
즉, 수동적으로 내용을 읽어가려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다음처럼 스스로 혼자 질문을 제기하며 대할 필요가 있다.
왜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가.
이런 내용을 살피려는 취지가 무엇인가.
이들 내용을 알게 되면 어떤 효용을 얻는가.
이런 식으로 먼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그 다음 그런 취지를 위해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제시하는가.
그 표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과연 옳은가.
또는 가치적으로 올바른가.
이렇게 독자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살펴나가는 것이 좋다.
그래서 자신이 능동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찾아가며 내용을 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편 이를 위해 경전과 논서를 마치 연극대본처럼 여기며 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제시된 내용과 관련한 문답을 주고 받는 역할을 맡아 해보는 것도 도움된다.
처음 질문을 하는 입장이 되어 질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일정한 내용을 답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다시 그에 대해 답을 하는 역할도 스스로 맡아 해본다.
그런 가운데 이 보다 더 좋은 다른 답은 없는가를 생각해본다.
또 매번 왜 이런 내용이 이 대목에서 제시되어야 하는가라고 의문도 제기해본다.
그리고 자신이 연극대본을 바꿔 써본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이런 식으로 자꾸 문제를 제기해 보면서 살핀다.
그런데 주어진 내용을 그냥 따라 읽어간다고 하자.
그러면 곧바로 졸립게 되기 쉽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자신이 능동적 적극적으로 임하며 내용을 대하는 것이 좋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유가사지론』 첫부분에 다음처럼 제시된다.
...
무엇을1) 유가사지(瑜伽師地)2)라고 하는가?
무엇 등을 17이라고 하는가?
17지(地)를 말한다.
....
무엇을11)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라고 하는가?
5식신(識身)의 자성(自性)
그것12)의 소의(所依)
그것의 소연(所緣)
그것의 조반(助伴)13)
그것의 작업(作業)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총괄하여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라고 한다.
무엇14) 등을 5식신(識身)이라고 하는가?
소위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이다.
이런 형태로 내용이 나열된다.
그런데 과연 어떤 이가 유가사지가 무엇인가를 궁금해하고 물어보았는가.
또는 5 식 신상응지나 5 식신이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물어보았는가.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냥 미륵보살님이 이런 내용을 체계적으로 벌여 세워서 설명하고자 것이다.
미륵보살님은 다음 입장일 것이다.
어떤 이가 현실에서 생활하다가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런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수행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해서 성불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내용과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이렇게 죽 나열해 설명해가게 된다.
이처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내용을 읽는 독자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이런 논서를 별 생각없이 죽 읽어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내용 하나하나의 표현이 우선 낯설고 어렵다.
그리고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와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살펴서 얻을 이익과 효용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논서를 살펴야 할 취지나 동기도 스스로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논서가 제시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더욱이 그 내용이 대단히 길다. 그래서 질려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래서 이런 논서를 멀리하게 되기 쉽다.
일반 사정이 그렇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이런 논서를 대하게 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한 번 읽고 이해해보려고 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표현과 내용이 어렵다.
그래서 내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수동적으로 줄을 따라 읽어나가게 된다.
그러면 알지 못하는 내용이 계속 나열될 뿐이다.
그런 사정으로 곧바로 졸립게 된다.
그래서 조금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한편,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다시 이런 내용이 왜 문제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해보자.
또 이들 내용을 왜 이처럼 제시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해본다.
이런 식으로 능동적으로 자꾸 자신이 질문을 제기해보기로 하자.
어떤 내용을 논의할 실익이나 취지를 이해해야 그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런 노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이 경우 주어진 내용을에 대해 자신이 능동적으로 질문하고 답하는 역할을 오가며 맡아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이 내용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 내용의 불명료성
논서의 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논서가 다루는 주제 성격상 이런 어려움이 증가 된다.
마음 안 내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번역서나 원문의 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는 다른 개설서나, 불교사전 등의 도움을 충분히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조금이라도 내용을 읽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먼저 각 내용은 쉽게 말해 무슨 의미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해본다.
그리고 이에 대해 또 자신이 자문자답을 해본다.
한 문장내 단어의 10% 이상에 대해 그 의미를 모른다고 하자.
그러면 내용 이해를 당연히 하기 힘들다.
이런 경우는 먼저 사전 등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하나하나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내용의 방대함
독자 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간단히 내용을 제시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현재 논서는 100 권에 달한다.
그래서 인내를 요구한다.
독자는 내용을 읽으면서 자신이 읽은 내용을 간단히 압축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좋다.
읽어도 책을 덮으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헛수고를 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읽은 내용은 어느 정도 골격이나 키워드를 추려 잘 정리해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후 최소한 핵심단어나 키워드라도 생각이 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 연구에 도움이 된다.
● 유가사지론 목차
우선
유가사지론의 첫부분을 살피는데 다음 내용이 나온다.
>>>
무엇을1) 유가사지(瑜伽師地)2)라고 하는가?
>>>
무엇 등을 17이라고 하는가?
17지(地)를 말한다.
>>>
첫째는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
둘째는 의지(意地),
셋째는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
넷째는 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
다섯째는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
여섯째는 삼마희다지(三摩呬多地),
일곱째는 비삼마희다지(非三摩呬多地),
여덟째는 유심지(有心地),
아홉째는 무심지(無心地),
열째는 문소성지(聞所成地),
열 한째는 사소성지(思所成地),
열 둘째는 수소성지(修所成地),
열 셋째는 성문지(聲聞地),
열 넷째는 독각지(獨覺地),
열 다섯째는 보살지(菩薩地),
열 여섯째는 유여의지(有餘依地),
열 일곱째는 무여의지(無餘依地)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처음 제시한 17 지는
결국 이 논서의 골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 외울 필요가 있다 .
어렵지 않다.
첫째는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
둘째는 의지(意地),
셋째는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
넷째는 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
다섯째는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
여섯째는 삼마희다지(三摩呬多地),
일곱째는 비삼마히다지(非三摩呬多地),
여덟째는 유심지(有心地),
아홉째는 무심지(無心地),
열째는 문소성지(聞所成地),
열 한째는 사소성지(思所成地),
열 둘째는 수소성지(修所成地),
열 셋째는 성문지(聲聞地),
열 넷째는 독각지(獨覺地),
열 다섯째는 보살지(菩薩地),
열 여섯째는 유여의지(有餘依地),
열 일곱째는 무여의지(無餘依地)이다.
한자어 앞부분을 일단 떼어서 문장을 만든다.
유가사지론 17지 - 오의유무무 삼비유무문^
^문-사수성독보 유무
이렇게 된다.
한글로 놓고 보면 말이 잘 안된다.
그런데 한자어를 넣어서 말이 되도록 시감상을 해본다.
그렇게 해서 제목과 함께 묶어 외우는 것이 좋다.
이들 첫 글자를 한문으로 떼어 붙여 보자.
그리고 이를 한시로 여기고 바꾸어 감상해보자.
유가사지론 17지 = 五意有無無
유가사지론 17지에서 5 개의 뜻은 있고 없음 자체가 없는데
三非有無聞
(더욱이) 3 개는 아닌데, 있고 없음의 들음이 있다.
여기서 앞 뒤가 대구가 된다.
5의 ~유무무
3비 ~ 유무문
思修聲獨菩
그리고 (^들을 때는 ) 소리를 생각하고 닦아서, 홀로 걷고(菩 => 보행의 보^)
有無
유무를 살펴라.
물론 이런 시감상은 엉터리다.
이런 시감상 내용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또 반드시 이렇게만 시감상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억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 나름대로 일단 말이 되는 형태로 바꾸어
첫글자만 따서 외우는데 사용하면 된다.
묶어진 것은 필요시 각 부분을 떼어내기 쉽다.
그러나 그 반대방향은 쉽지 않다.
즉 떨어진 것을 묶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10 번째 20 번째 이런 부분에 놓이는 글자는
끝에 한번 시작부분에 한번 이렇게 두번 중복하는 것이 좋다.
이런 방식이 각 부분을 떼어서도 외우고 합쳐서도 외우는데 좋다.
10 개씩 각 방에 잘 집어넣는다.
그래서 방 위치만 보고 몇번째 내용이라고 바로 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되도록 노력한다.
비삼마희다지는 유가사지론 17 지 가운데 몇번째인가.
이런 것은 누가 물어보지 않는다.
그래도 유가사지론을 살피는 이상
상식적으로 바로 파악이 되는 상태가 빨리 되어야 한다.
그것이 수행과정에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방안은
논서를 살피는 중간중간에
중요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매번 응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각 부분을 이처럼 잘 정리해가야 한다.
그래서 페이지를 닫으면
방금 전에 살핀 내용이 무엇인지 조금은 생각이 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극복이 안 된다고 하자.
그래서 책만 덮으면 방금전에 무엇을 보았는지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열심히 보아도 큰 의미가 없다.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대할 때는
결국 이 내용을 잘 이해하고 실천해 좋음을 빨리 쉽게 잘 얻어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어떤 정보를 대할 때 이런 정보에 대해
이해 - 정리 - 결합 - 암기 - 재생 - 현실 변형 적용하는 방안부터 잘 익혀야 한다.
뽑혀진 노래를 듣다보니 다 잘 외운다고 하는 듯 하다.
이미 경장코너에서 『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도 품명을 외우는 방안에서 소개했다.
이처럼 연상을 통해 암기한다고 하자.
그러면 79 개 품명도 외울 수 있다.
따라서 17 개 정도 외우는 것은 쉽다고 여기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
● 논서의 논의 취지
이 논서는 무엇에 대해서 논의하고 그것을 논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이것을 살펴야 하는가.
처음 질문은 이 부분이다.
무엇을1) 유가사지(瑜伽師地)2)라고 하는가?
>>>
17지(地)를 말한다.
무엇 등을 17이라고 하는가?
『유가사지론』이 불교내에서 나름 유명한 논서이다.
그래서 불교에 관심이 있는 경우라면
『유가사지론』이라는 논서 명칭은 한 두번 들어보게 된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유가사지라고 하는 것인가.
이렇게 일단 의문을 가져보아야 한다.
그런데 불교에 아예 별로 관심이 없었던 입장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이런 질문 자체가 일어나지 않기 마련이다.
이 경우는 먼저 다음 질문부터 차례대로 해야 할 것이다.
현실에서 살아가려면 누구나 다음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자신이 늘 대하는 자신과 세계가 있다.
그런데 이들의 본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이 가운데 좋은 것은 무엇이고 나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또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나타나는가.
그런데 자신이 이 가운데 좋은 것을 많이 오래 다양하게 얻고자 한다고 하자.
그리고 반대로 나쁜 것을 일체 얻지 않거나 줄이고자 한다고 하자.
그렇게 되려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을 살면서 갖게 된다.
이들 문제는 현실을 살아가는 한 일반적으로 갖게 된다.
자신이 평소 의식을 명확하게 하던 않던 사정이 같다.
그리고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자신이 어떤 형태로던 얻어야 한다.
그래야 그에 바탕해서 무언가를 행해 나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를 행하기 어렵다.
또 자신이 무언가를 지금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결국 위와 같은 답에 어떤 형태로던 자신이 답을 얻은 경우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자신이 어떤 거리를 걷고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음 질문을 해보자.
하필이면 많은 거리 가운데 그 거리를 걸어가는가.
그리고 하필 걸어가고 차를 타고 가지 않는가.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하자.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입장에서는 여하튼 그렇게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기 때문이다.
또는 그것이 나쁨을 덜 주게 되는 방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행과 관련해서는 다음 질문이 조금 더 추가된다.
일반적으로 세상과 자신의 정체에 대해 제시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타나는 인과에 대해 제시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해 제시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좋은 것을 얻고 나쁜 것을 피하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서도 또 제시한다.
그런데 부처님이 설한 경전에서는 하나같이 일반적인 내용과는 대단히 동떨어진 내용을 제시한다.
그래서 그 사정이 무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이 결국 『유가사지론』에서 순서적으로 나열해 제시하는 각 내용과 맞 닿아 있다.
일반적으로 중생들은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다시 죽어서 3 악도에 들어가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사정이 있다.
처음 문제에 대해 망상분별에 바탕해 엉터리 내용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서 업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먼저 현실 세계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수행을 올바로 행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에 묶이게 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그 바탕에서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무량하게 좋고 좋은 복덕과 지혜를 얻어야 한다.
또 그러려면 이러이러한 수행을 행한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내용을 17 가지로 나열해 살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기본 배경을 이해하고 논서를 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첫 부분은 현실 내용을 기본적으로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외부 세계 내용으로 이해하는 내용들이 있다.
그런데 이는 즉, 각 주체가 감각기관을 통해 얻는 감각현실이다.
그래서 5 식신과 관련된다.
이 첫부분은 현실의 기본 정체나 사정을 이해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후 3 계 6 도의 세계 상황과 생사윤회의 과정이 제시된다.
이는 일반적으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지옥이나 아귀계 하늘등은 일반인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다.
그래서 이 내용도 살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생사현실의 바탕에서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보살도를 닦아 한다.
그래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한 수행 방안들이 나열된다.
그래서 이렇게 기본적인 사정을 대략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경우 이제 왜 그것을 먼저 '유가사지'라고 표현한 것인가.
또 왜 그것을 17 가지로 분류해서 나열해 세우는가.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일단 앞에서 제시된 정도로만 대강 이해하기로 한다.
그런 바탕에서 자신이 한 번 의문을 제기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도 한번 제시해보려고 노력하기로 한다.
그런 방식으로 논서를 대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논의의 취지나 주제에 공감을 못한다고 하자.
그런 바탕에서는 내용을 읽어도 소화가 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정작 그런 질문을 던진다고 하자.
그러나 논서를 살펴보면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답해주지 않는다.
논서는 쓰여진 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머지 부분은 또 관련된 서적이나 사전 등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이 보충해 답을 얻어내야 한다.
그런데 또 어떤 부분은 너무 자세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하튼 이런 논서를 살피는 가운데
처음 대하는 어려운 용어는 기본적으로 잘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먼저 주석란을 잘 참조해보야 한다.
아니면 불교사전 등이나 인터넷 사전 사이트에 검색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들 기본 용어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낯선 용어가 많다.
그러나 이를 일일히 다 나열해서 살피는 것은 조금 어렵다.
그래도 꼭 필요하다고 보는 부분은 뽑아서 살펴야 한다.
그것이 전문적 수행을 지향하는 연구인이 해야 할 연구작업이다.
● 안식(眼識)에 대한 이해
처음 『유가사지론』에서 안식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안식은 눈을 뜨면 보이고 감으면 사라지는 내용을 얻는 것을 말한다.
그런 내용을 얻고 각 부분이 꽃이다 바위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분별 내용도 이와 관련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안식은 아니다.
그런데 일단 눈으로 떠서 보는 내용과 관련해서 대단히 많은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이 주제는 『관소연론』의 주제와도 관련이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대부분 일으키는 망상분별과도 관련이 깊다.
그래서 현재 그 부분을 조금 자세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떠서 사과를 하나 손으로 집어서 눈앞에 두고 이것을 바라본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눈을 뜨면 그 사과모습이 보인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눈을 떠 사과라고 여기는 그 부분을 A 라고 표현해보자.
그런데 이 A 부분을 자신이 '사과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기서 안식의 문제가 아니다.
이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사과라고 여기면서 대하게 되는 일정 부분으로 A가 있다.
그런데 바로 그런 A 부분을 눈을 떠 처음 얻어내는 부분이 안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런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 A 의 정체가 무언가에 대해서 많은 혼동을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이에 대해 이해하는 내용이 있다.
물론 이들 판단은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이후로는 그런 판단들이 잘못인 사정을 자세히 살피게 된다.
그러나 현재 내용은 모두 이런 잘못된 망상분별을 갖고 있는 이들을 상대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일단, 이들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상대가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 때문에 우선 일반적인 입장을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전제로 이들 내용을 살펴나가게 된다.
물론 이렇게 방편상 받아들이는 내용은 원칙적으로 망상분별이고 잘못된 판단이다.
그래서 이 두 사정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 눈을 떠 대하는 부분의 성격에 대한 혼동 망집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눈을 떠서 보게 되는 한 부분 A가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 A란 부분이 갖는 성격이나 의미를 제각각 다르게 다양하게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눈을 떠서 꽃에 해당한다고 여기는 부분을 보았다고 하자.
그것을 A 부분이라고 표시하자.
이 때 일반적으로 각 주체는 그 A 부분이
- 자신이 대하는 외부 세계의 한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 볼 때 눈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 자신의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성격이 다른 '외부물질'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자신의 다른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기도 하다고 잘못 여긴다.
즉 자신의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을 때에도 그런 모습을 대상으로 한다고 잘못 여긴다.
- 그리고 손으로 쥐거나 동작할 때 대하는 행위의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영희나 철수가 눈을 통해 무언가 볼 때 영희나 철수의 눈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영희나 철수가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을 때 그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영희나 철수가 손으로 쥐거나 동작할 때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자신이나 관념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대상'으로 여긴다.
- 그런 가운데 영희나 철수가 관념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대상'이기도 하다고 잘못 여긴다.
- 또 그런 사정 때문에 그 부분에 바로 그런 관념분별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
또는 그 부분이 바로 그런 관념분별 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
- 한편, 자신의 경우 A 라는 부분은 자신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이는 자신이 감각과정에서 눈을 통해 감각해 얻는 '감각결과물'이기도 하다.
- 또 그런 사정으로 자신의 '마음안 내용물'이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눈을 떠 얻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일치해서 옳은 내용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각기 그 A란 부분이 갖는 성격이나 의미를 각기 잘못 파악한다.
그리고 각 입장에서 그 성격이나 의미를 서로 다르게 파악한다.
그래서 논의에서 혼동을 일으키고 혼란스런 논의를 진행하기 쉽다.
A 라는 일정 부분을 지목해 서로 같이 붙들고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서로 같은 A 부분을 놓고 논의하는 같은 바탕에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나 그 A 부분이 위에 나열한 다양한 의미와 성격을 갖는 것으로 제각각 이해한다.
그리고 또 그런 바탕에서 이런 A 부분이 갖게 되는 서로 다른 지위와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논의에서 서로간 혼동을 일으키고 혼란스런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처음에 먼저 잘 살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각 주체가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게 된다고 하자.
이런 경우 A 란 부분과 관련해 결론적으로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 먼저 이와 관련해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서로 잘 구분하고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 그리고 A가 자신이 눈을 떠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눈이 상대한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또 자신이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을 때 그 각 감관이 대하거나 손으로 쥐거나 동작할 때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그리고 A는 또 다른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떠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서 그들이 대한 '외부대상'이라고도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또 영희나 철수가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을 때 그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또 영희나 철수가 손으로 쥐거나 동작할 때 그 행위의 외부대상이라고도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그리고 A란 내용을 얻고 나서 어떤 생각이나 관념내용을 일으킬 때 그런 사정으로 이런 관념 내용이 그 A 부분에 '있다'거나
그 A는 그런 관념내용'이다'라고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더 나아가 자신이 그 A 부분을 붙잡고 더 나아가 자신과 논의하는 영희나 철수도 같이 그 A 부분을 붙잡고 있는 상황에서
그 A 부분에 대해 논의하더라도 자신이나 영희 철수가 자신과 같은 내용을 놓고 논의한다고 잘못 이해하면 곤란하다.
즉 자신이 눈을 떠 대하는 A 부분을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떠 대하는 A 라고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 자신의 경우에는 A 라는 부분이 자신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즉 그 A가 자신이 눈을 떠 얻어낸 결과물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A는 자신의 눈이 대한 외부대상이기도 하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들은 외부대상과 그에 대한 인식내용이 서로 일치한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처럼 얻어낸 A는 그런 사정으로 옳은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처럼 잘못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유가사지론』에서 제시하는 유식무경의 입장이기도 하다.
참고 관소연연론』 관련 조각글 편집중 내용
불기2562-05-07_관소연연론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3/2562-05-07-k0628-001.html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Indochine - Belfast.lrc
눈을 떠서 얻는 내용이 갖는 의미나 성격이 무언가.
이에 대해 대강내용을 앞 부분에 제시했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 보면
이는 아예 이치에 맞지 않는 황당무계한 내용으로 여기게 된다.
또는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고 골치아프다고 여기기 쉽다.
여기서는 처음에 제시한 내용들을 쉽게 이해할 실험방안을 먼저 소개한다.
한편, 『유가사지론』 이나 유식학에서 제시하는 좀 더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어 유식무경, 삼능변, 또는 수행과 전식득지 등의 내용들과 같은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이어 살펴나가야 한다.
경전에서는 각 생명이 무량겁에 걸쳐 생사윤회를 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제시되고 확인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렇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현실에 임해야 하는가.
어떻게 임해야 이런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그리고 무량겁에 걸쳐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는 상태가 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우선 가장 기초적으로 첫 부분에 제시한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이에 대해 간단히 혼자서도 실험해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이 내용부터 여기서 살피기로 한다.
우선 자신이 눈을 떠서 얻는 내용들이 있다고 하자.
이들 내용은 왜 외부 세계의 내용이 아니라고 하는가.
더 나아가 자신의 정신과 별개로 떨어진 외부물질이 아니라고 하는가.
그리고 자신의 눈이 대하는 대상도 아니라고 하는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자.
현실상황에서 자신이 손으로 사과를 집어서 자신의 눈앞에 올려 놓아 보자.
그리고 자신과 상태가 비슷한 영희나 철수를 옆에 함께 위치하게 한다.
그리고 이 실험을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영희나 철수나 대부분 비슷한 상태다.
그리고 다 함께 엇비슷한 망집상태다.
따라서 잘못된 망상분별을 고집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왜 그렇게 임하게 되는가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놓고 잘 실험해야 한다.
여기서는 책상에 사과를 놓고 관찰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설령 드넓은 천체를 관찰하는 경우에도 이 내용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어떤 경우는 태양아니 달이 저렇게 동그랗게 떠 있다고 여기는 경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상황에서 이들 내용은 하나같이 자신의 얻어낸 내용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이들 내용은 자신의 마음에 얻어진 내용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밖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이에 대한 기본적 실험 내용은 다음이다.
○ 생사현실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실험해 확인하는 방안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2562-02-13-k0694-001.html#003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생사현실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실험해 확인하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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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위 내용을 간단히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자신이 돗수나 색이 다른 안경을 여러개 준비해서 쓰고 벗고를 반복해보자.
이 상황에서 평소 자신이 외부세계나 외부 대상 외부물질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이 행할 때마다, 이들 내용이 이로 인해 한번에 다 변한다.
여하튼 실험 결과는 이와 같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사정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자.
자신이 달을 보면서 자신의 눈을 손으로 눌러 대하면 두 개로 보이게도 된다.
잘 안 되면 그렇게 보일 때까지 연습해본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어느 것이 외부세계에 있는 달인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어떤 하나가 자신이 손으로 눌러 만든 달인가를 또 생각해보자.
원래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고 다니던 이는 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자.
처음 보던 내용이 외부 세상이라고 하자.
그런데 자신이 안경을 벗고 대하면 그런 외부세상이 왜 그렇게 변하게 되는가를 잘 생각해보자.
이들 내용이 모두 자신이 평소 대하던 내용이 외부 세계의 내용이라고 하자.
그리고 자신의 정신과 별개의 외부물질이라고 하자.
그리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위 실험과 같은 결과가 왜 그렇게 되는가를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실험을 통해 결국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사정이 그렇지 않기에 그렇게 된다고 이해해야 한다.
이제 자신과 상태가 거의 비슷한 영희나 철수를 옆에 함께 위치하게 한다.
그리고 위 실험을 행해보자.
그러면 그 사정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메뚜기나 바퀴벌레 개미 파리 등은 자신과 상태가 비슷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메뚜기나 바퀴벌레 등을 옆에 놓고 실험해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더 이상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다만 이 경우는 언어가 소통이 안 되기에 어려움이 많다.
그런데 여하튼 위와 같은 실험을 해보기로 하자.
그래서 옆에서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게 한다.
그러면 그 때마다 영희나 철수는 뭔가가 나타나고 사라지고 한다고 보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을 옆에서 자신이 지켜보기로 하자.
그러면 이 상황에서 별 변화를 볼 수 없다.
그리고 여전히 사과는 그대로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도 영희와 철수는 그 상황에서 눈을 감고 뜨고를 반복하는 가운데 그런 보고를 한다.
그래서 이 상황의 의미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그 상황에서 철수나 영희가 눈을 떠서 사과 모습을 본다고 하자.
이 때 그 내용은 철수나 영희 영역안에서 얻어지는 어떤 변화이고 내용이라고 추리하게 된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서 이심전심으로 그 사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영희나 철수의 상황은
자신의 처음 눈을 뜨고 감는 가운데 경험하는 그 상황과
사정이 마찬가지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처음 눈을떠서 대한 그 일체는 사실은 자신 마음안의 내용이다.
그래서 이것이 자신의 눈이 대하는 외부 대상도 아님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또한 자신의 마음과 떨어져 있는 외부 세계 내용이 아님을 확인해야 한다.
또한 이들 내용은 자신의 마음과 동떨어져 있는 외부물질이 아님을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제 두번째 실험으로 가보자.
그 상황에서 사과를 하나 놓고 이 사과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네고 다시 돌려 받고 해보자.
분명히 자신의 손이 그 사과를 접촉할 때 촉감을 얻는다.
영희나 철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의 손이 상대한 대상은 그 사과라고 여기기 쉽다.
이 경우도 잘 이해해야 한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동작을 똑같이 하면서 눈을 감는 실험을 해보자.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런 동작을 못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또 그 상황에서 자신이 그 직전에 얻던 촉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촉감을 얻는 데 기여한 것은 자신의 눈이 본 그런 내용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두번째로 자신의 손이 대한 대상도 마찬가지다.
즉, 자신의 시각정보 안에서 어떤 부분이 어떤 부분을 만지거나 대해서
자신이 촉감을 얻는 것이 아니다.
또 자신이 그 상황에서 어떤 동작을 행한 대상도 그런 시각정보가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지 현실에서는 그 상황에서 시각을 통해 그런 내용을 함께 같이 얻는 것 뿐이다.
그래서 자꾸 그렇게 시각정보의 그 부분이 곧 외부대상이나 동작의 대상인 것처럼 잘못 여기게끔 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 그렇게 여기게 되는 데에는 깊은 사정이 있다.
이 사정은 따로 자세히 살핀다.
그러나 여하튼 그런 사정 때문에
현실에서 각 주체는 처음에 일으킨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또 그 상황에서 도무지 잘 벗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위와 같이 실험을 통해서
자신이 눈을 떠 보게 되는 내용이
자신의 눈이 대하는 대상도 아님을 먼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외부세계나 마음 밖의 외부 물질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곧 마음안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제시받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망집을 일으키고 대하던 입장에서는 다시 다음의 망집을 일으키기 쉽다.
즉,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된다.
사정이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자신이 현실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마음에서 얻고 또 어떤 분별을 행한다.
그것은 그런 내용에 해당하는 무언가 실다운 것이 자신의 마음 밖에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다시 고집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 실험부터 잘 살펴야 한다.
처음 사과를 하나 놓고 눈으로 보고
그 사과를 자신의 손으로 만지는 실험을 놓고 다음을 잘 살펴보자.
이 상황에서 자신이 눈으로 본 내용이
자신이 손으로 만진 촉감안에서 찾아지는가.
그렇지 않다.
매번 사과를 눈으로 보는 가운데
그 사과를 손으로 만지면 그 촉감을 얻는 경험을 반복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그 상황에서 자신이 눈으로 본 내용 안에서 촉감이 찾아지지 않는다.
즉, 그렇게 촉감에 해당한 내용이 시각정보에서는 찾아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정작 눈으로 사과로 여기는 그 부분을 손을 대면
매번 그런 촉감을 그렇게 얻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
한편, 반대로 촉감을 기준으로 잡고 살펴보자.
그리고 그런 촉감에서 자신이 눈으로 본 그런 내용이 찾아지는가를 살펴도 마찬가지다.
촉감과 눈으로 본 내용은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사정은 그렇다.
그래도 그렇게 각 내용을 반복해 얻게 된다.
이러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사정이 그러함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처럼 자신이 그런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반복해 얻는다.
그런데 사정이 그러니까 자신이 눈으로 본 모습은 촉감에 있어야 한다고 고집한다고 하자.
그것은 잘못임을 위의 사례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앞의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즉, 현실에서 자신이 일정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매번 반복해 얻는다.
사정이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 밖에 그런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고 하자.
또는 그런 내용이 마음 밖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고집한다고 하자.
이는 앞의 입장과 비슷하다.
그리고 잘못이다.
그래서 다음 관게를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자신이 사과로 보는 모습에 손만 대면 촉감을 느낀다.
=> 그러니 사과로 보는 모습에는 촉감이 들어 있어야 한다.
=> 그런데 아무리 눈으로 보는 사과 모습을 뚫어지게 살펴보아도 촉감은 찾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실재 본 바탕과 눈을 통해 보는 내용의 관계도 이에 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실험을 해보자.
자신은 그렇다고 하자.
그리고 이제 옆에서 영희나 철수가 무언가를 보고 만지는 모습을 관찰해보자.
그런 경우 꼭 자신이 사과라고 보는 그 내용을 대상으로 해서
무언가를 보고 각 감각도 얻는 것처럼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대상으로 동작을 하는 것처럼 잘못 여기기 쉽다.
그렇게 잘못 여기게 되는 배경사정은 앞과 사정이 같다.
그래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서 업을 행해나가게 된다.
위와 같은 바탕에서는 그런 망집을 일으키는 것이 대단히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된다.
그리고 최소한 현실에서 무언가를 행하고 생활하려면 이런 현실 사정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또 한편
그 주체가 이후 그런 전제와 바탕에서
지극히 극심한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받아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
원래는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각 주체가 망집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이 그렇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해나간다.
그러면 그런 전제에서는 그 이후로 극심한 고통을 쉼없이 받아나가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미리 원인 부분을 제거해야 그런 상태를 예방할 수 있다.
또 한편, 그리고 원인 단계에서 제거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래서 이 문제를 살피는 것이다.
>>>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Frederic Recrosio - Quand Elle Tonne.lrc
영희나 철수가 무언가를 보고 만지는 과정에 대해서 관찰해보자.
이 실험은 간단하다.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떴다 감았다 한다.
그런 가운데 무언가가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손으로 사과를 만지면 촉감이 느껴진다고 보고한다.
또는 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보고한다.
이런 상황을 자신이 관찰하는 것이 이 실험이다.
그리고 보고서를 쓸 때만 이 상황을 잘 해석하면 된다.
그런데 대부분 이 상황을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고 적게 된다.
'자신이 사과로 보는 것'을 영희나 철수가 대상으로 삼아서 무언가를 본다고 잘못 이해한다.
또 '자신이 영희나 철수의 눈으로 보는 것'이 이 과정에서 관계해서 영희나 철수가 보게 된다고 잘못 이해한다.
또 '자신이 영희나 철수로 보는 이'가 어떤 내용을 보는 주체라고 잘못 이해한다.
앞 내용을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이 상황을 그렇게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의 본 내용을 이처럼 잘못 이해하면 곤란하다.
영희가 사과를 만지는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렇게 각 내용의 정체를 잘못 이해한 가운데 학술 보고를 하면 곤란하다.
이 상황은 그가 이해하는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앞과 같은 이해는 잘못이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이해가 잘못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
이제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바꾸어 다시 실험해보자.
이번에는 갑수 자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실험을 한다.
그리고 이를 영희가 관찰해 보고하기로 한다.
이처럼 상황을 바꾸어 보자.
앞에서는 영희와 철수가 그런 실험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를 앞처럼 잘못 해석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런 가운데 이들 실험이 각기 무엇이 같고 다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제 갑수 자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한다.
그런 가운데 영희가 이 상황을 다음처럼 이해해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해석이 맞는가를 살펴보자.
즉, 갑수자신이 무언가를 본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영희는 다음처럼 이해한다고 하자.
우선 '영희가 눈을 떠 본 어떤 한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부분을 갑수 본인이 대상으로 삼아서 그런 내용을 얻는 다고 영희가 이해한다고 하자.
한편, '영희가 갑수 본인의 눈으로 보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으로 갑수 본인이 어떤 내용을 보게 된다고 영희가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영희의 이해가 맞는가를 검토해보자.
그런데 그런 영희의 이해는 잘못이다.
그런데 영희의 이해가 옳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제 그 상태에서 영희가 눈을 감아 보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태에서는 갑수 본인은 눈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갑수 본인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영희의 처음 이해는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만일 '영희가 눈을 떠 본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서 갑수 본인이 무언가를 보게 된다고 하자.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제 그 상태에서 영희가 눈을 감아 보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태에서는 갑수 본인은 볼 대상이 없어서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영희의 처음 이해는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갑수 본인은 '영희나 철수와 같은 다른 이의 마음안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
무엇을 보는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희나 철수도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사과 모습과 같은 어떤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
무언가를 보거나 만지는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위 실험에 대한 처음 해석은 잘못이다.
이렇게 해서 기본적인 오류에 대한 실험은 마친다.
그런데 망집 증상은 이것으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 경우 다음 내용이 다시 제시된다.
즉 자신이 무언가를 보게 될 때는 그것은
그런 과정으로 자신이 마음에서 얻어낸 마음안 내용이다.
즉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다시 다음 주장을 하기 쉽다.
즉, 그런 내용을 자신이 얻게 된 배경에는
자신의 마음 밖에 자신이 본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다시 주장하기 쉽다.
또는 그와 비례하거나 유사한 것이 마음 밖에 실재해서
그런 내용을 눈을 뜨면 보게 된다고 주장하기 쉽다.
물론 이런 주장은 일단 앞 주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이 문제도 또 다시 살펴야 한다.
그래서 위 문제를 살필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이미 자신이 얻은 여러 내용들간의 관계부터 잘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현실에서 이미 얻어놓은 각 내용들간에서
과연 앞 주장과 같은 관계가 발견이 되는가부터 기초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 경우 실험은 같다.
사과를 하나 놓고 눈으로 본다.
또 손으로 두드리면서 소리도 들어본다.
또 코를 대어서 냄새도 맡는다.
그리고 입으로 맛도 본다.
그리고 손으로 만지면서 촉감도 얻는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가능하면 시까지 써 본다.
현실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얻어내는 내용이 여러 가지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자신이 각기
같은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서 이런 것을 한 것인가부터 잘 검토해야 한다.
앞에서 대상이라고 여긴 것이 대상이 아님을 제시했다.
그런데 현실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얻는 입장은
분명 손으로 하나의 사과를 만지는 그 상황에서 각기 다른 내용을 얻는다고 보게 된다.
즉 자신이 사과라고 보게 되는 그 부분을 놓고
손을 갖다 대는 그 순간 => 촉감을 얻는다.
이런 관계를 반복 경험한다.
그래서 결국 눈으로 보는 사과와
촉감을 얻게 된 내용은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얻는 색,성,향,미,촉,법은 모두 사과와 관련된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들 각 내용을 놓고 서로 대조를 해보기로 하자.
한 영역에서 어떤 내용이 얻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 얻어지지는 않는다.
그 상호 관계를 찾아보면 그런 관계성은 찾아지지 않는다.
손을 마주칠 때마다 귀로 매번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자신이 눈으로 본 손 모습과
귀로 들은 소리가 어떤 점에서 같은가를 비교해보자.
그런 관계성을 검토하면 이 두 내용은 어떤 한 부분도 같지 않다.
그런데도 매번 손을 마주치면 손과는 엉뚱한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엉뚱한 촉감도 얻는다.
현실에서는 이런 관계로 한 영역에서 어떤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한 영역에서 그처럼 어떤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것을 들고 다른 영역으로 무리하게 그 내용을 밀어 넣으려 하지 않는다.
즉 귀로 듣게 된 소리를 눈의 영역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이 모두 마음안 내용임을 확인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그런 내용을 마음 밖 실재 영역에 무조건 밀어 넣으려 한다고 하자.
그것은 앞 경우 귀로 듣게 된 소리를 눈의 영역으로 무조건 밀어 넣으려는 것과 성격이 같다.
그런데 문제는 사정이 그렇다는 증거를 하나도 얻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그 실재의 사정이 그렇다고 고집을 갖는다.
이런 자세가 일단 문제다.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은 모두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마음 밖의 내용이 무언가를 찾는다.
그래서 마음이 마음 밖의 내용을 놓고 찾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마음 밖 내용이 '마음안에 얻어진 내용'과 같다거나, 비례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관계해 얻어진 내용이 실다운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야 자신이 현실에서 임하는 모든 내용이 실답게 여겨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망집 증상이 이후 초래하는 내용이 대단히 좋지 않다.
그리고 이 부분이 생사현실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살펴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대강 살폈다.
그런데 처음에 제시한 문제를 놓고 다시 설명해야 한다.
결국 처음에 일반적으로 자신이나 영희 철수가 무언가를 본다.
또는 만지거나 일정한 동작을 행한다.
이 경우 그 대상이 된다고 이해한 내용들이 사실은 그 대상이 아니다.
위 내용은 결국 이를 살핀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은 잘못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해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상태가 대단히 안 좋게 된다.
그것이 생사고통의 문제다.
이 점을 여기에서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렇게 잘못된 망상분별을 계속 붙들고 업을 행해나가게끔 하는 사정이 있다.
그 사정은 위 실험에 이미 다 들어 있다.
그 사정은 앞에 제시한 것과 같다.
그러나 영희나 철수가 사과를 놓고 눈을 감고 뜨고 하는 동작을 한다고 하자.
그리고 결과를 보고한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이 눈을 떠서 그 상황을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다 보면 자신이 눈으로 본 사과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눈으로 본 영희나 철수의 눈이 있다.
이들은 모두 영희나 철수가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 무언가 관계가 있다고 여기게끔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관계성을 자신이 매번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이후 조금 성격이 다른 논의로 옮겨 가게 된다.
이것도 실험은 거의 비슷하다.
자신이 위 상황에서 사과를 치우거나, 무엇으로 덮어 가리거나 한다.
또 방안의 불을 켜거나 끄거나 해본다.
또 영희나 철수의 눈을 무언가로 덮거나 덮지 않거나 해본다.
현실에서 이들 각 내용이 영희나 철수가 보고하는 내용에 변화를 가져다 준다.
여기서 연기(인과)관계의 공식을 살펴야 한다.
---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
---
앞에서 행한 실험에서는
이것이 부분적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점을 살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앞에 나열한 내용들이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영희나 철수가 무언가를 보거나 만지는 과정을 옆에서 관찰할 때와,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보거나 만지는 과정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이 점을 다시 주의해야 한다.
●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Black M C'est tout moi.lrc
Lab value 불기2563/01/06/일/13:13
앞에 대략 내용을 살폈다.
그런데 우선 이렇게 살핀 내용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평소 자신이 눈을 떠 대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적으로 이를 자신과 떨어져 있는 외부 세계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을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정신과는 별개의 외부 물질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한편, 이들 내용은 영희나 철수와 함께 얻는 같은 내용으로서
모든 이가 다 함께 객관적으로 얻는 실재라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영희와 손을 붙잡고 악수를 한다고 하자.
그리고 철수에게 사과를 건네고 철수는 받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 상황에서 자신이나 영희의 손이나 사과를 놓고 그렇게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데 처음 실험을 통해 그렇게 보던 내용들은 알고보면 자신의 마음 안 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아님을 먼저 확인한다.
그런데 이것은 특히 평소 자신이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것들에서 갖는 의미가 중요하다.
즉, 평소 자신이 가장 집착을 갖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과 자신의 것, 자신의 재산, 자신의 가족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대하는 영희 철수와 같은 타인. 이런 부분들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에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내용들이 일단 자신이 평소 이해하던 그런 지위와 그런 성격들을 갖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 이해하던 세계와 자신의 내용은 사실은 엉터리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다시 이런 이해가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또 살펴야 한다.
처음 일반적으로 잘못 이해하는 내용을 바탕해 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런 고통을 겪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굳이 이런 망상분별이 잘못된 분별 판단임을 문제삼을 이유 자체가 없다.
그런 경우 위와 같은 논의는 단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의미 밖에는 없다.
즉 자신이 대하는 내용이 과연 그 정체가 무얼까 궁금했는데 그 의문을 해소한다는 의미 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물론 현실에서 희희낙락하며 임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의 바탕에서 견디기 힘한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그런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것을 벗어날 것인가가 문제된다.
한편 그런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사실은 알고 보면 그 전에 그런 생사고통을 겪게끔 자신이 무언가 원인이 되는 업을 행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또 그런 행위(업)을 행하게 되는 데에는 일정한 분별 판단이 전제가 된다.
사정이 이와 같다.
그래서 그 생사고통을 제거하려면 미리 그 원인단계에서 원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사고통을 미리 예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예방하려면 미리 어떤 자세로 세상을 대하고 임했어야 하는가.
이것을 또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위 내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런 사정 때문에 위 내용들을 하나하나 살핀 것이다.
그래서 위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집착하고 평소 대하는 그런 내용들이 사실은 그런 내용이 아님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신경을 기울이고 자신이라고 대할 부분은
오히려 차라리 다른 부분에 따로 숨겨져 있음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평소 앞과 같은 망상분별에 바탕해 행하던 업은 중지해야 한다.
그것을 원인으로 생사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한편, 그 반대로 그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수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올바른 상황판단을 바탕으로 수행에 잘 임해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이런 사정과 함께
본 사정이 위와 같은데도 일반적으로 망집을 일으켜 임하게 되는 사정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유가사지론』에서나 경전에서 내용을 제시할 때는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형태와 엇비슷하게 내용을 제시하게 되는 사정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본래 어떤 주체가 세상과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런 감각현실 및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에서는
그런 내용을 비록 그런 형태로 얻는다.
그런데 정작 그 주체가 이해하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제시하려는 입장에서
그런 사정을 상대에게 이해시키고 설명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일단, 상대의 바탕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그 부분을
일단은 시설 방편을 통해 여하튼 무언가로 가리켜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설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정 때문에 일반적으로 잘못 이해하는 내용을 일단 그대로 받아들여 설명하게 된다.
그래서 이는 강에 건너가게 하기 위한 뗏목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뗏목을 이런 취지로 제시해 설명을 하게 된다.
그런 경우 망집상태에서는 다시 그런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경전이나 논서가 제시한 것으로 잘못 오해하게 된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런 내용은 기본적으로 잘못이다.
그렇지만, 망집을 일으킨 이를 상대로 설명하고자 할 때는 별 도리가 없다.
그런 망집 상태에 있는 상대가 그 용을 이해하게끔 하려면
상대 입장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내용을 그렇게 시설해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내용을 살피고 설명할 도리 밖에는 없다.
따라서 그런 사정까지 미리 잘 이해해야 한다.
원래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볼 때 그것이 무엇을 대상으로 해서 보게 된 것인가.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마음안의 내용은 그런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안의 내용을 가지고 이 결과물을 얻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는 원래 곤란하다.
사정이 그렇다.
본 바탕은 어떤 주체가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본 바탕 실재 영역에서 무엇을 얻어내 제시할 도리는 본래 없다.
또 그런 결과 얻어진 감각현실도 사실은 사정이 마찬가지다.
비유하면 꿈과 같다.
꿈에서 황금이 없어졌다고 하자.
그 사정을 꿈을 꾼 침대의 배게나 이불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경우 그 내용을 일단 시설해 설령 제시해도 상대가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도리도 없다.
그러나 상대가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은 해야 한다.
생사현실의 상황이 이와 같다.
경전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대상이나 주체에 대한 내용이 잘못이라고 제시한다.
그런데도 그런 대상이나 주체를 가지고 설명을 행한다.
그래서 조금은 이상할 수 있다.
일반적 입장에서 각 부분이 일정한 관계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그처럼 시설해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입장에서는 수없이 매번 반복해서 그런 내용을 대한다.
그래서 확실하게 옳다고 보는 그런 내용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처음 제시하는 세속제 내용이다.
즉 이는 세속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통용되는 진리(세속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세속제를 제시하는 취지는
이를 통해서 본 바탕과 현실의 본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함이다.
즉 승의제를 이해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뗏목)이다.
따라서 이런 기본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유가사지론』에서 제시하는 내용,
처음 안식과 관련된 자상, 소의, 소연, 조반, 작업 등의 내용을 살펴나가야 한다.
『유가사지론』에서 안식에 대해 살피는 이들 항목을 짧게 줄여보면
자-소-연-조-작--이렇게 된다.
여하튼 이 내용을 잘 살핌으로서 이를 통해 본래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런 바탕에서도 다시 일반적 입장이 취하는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일반적 입장에서 이떤 사정으로 그렇게 현실을 대하게 되는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이 사정을 설명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사정을 그렇게 잘못 이해하는 이를 상대로 설명해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다시 자-소-연-조-작..의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이 상황을 쉽게 비유로 이해하려면 다음처럼 이해하면 쉽다.
게임기 안에서는 일정 부분에 커서를 대면 어떤 아이템이 나타난다.
그리고 첫 스테이지에서 어떠어떠하게 행하면 다음 스테이지에서 캐릭터가 어떤 상태로 변한다.
예를 들어 때로는 돼지 캐릭터로 변하거나 또는 왕 캐릭터가 변한다.
그것은 그 게임에 임하는 이상 게임에 임하는 다수가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는 그런 내용이다.
그것은 게임의 법칙이다.
그런데 이런 게임안의 내용을 가지고
그 게임의 본 사정, 게임 화면 밖의 본 바탕의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게임안에서 반복해서 안타깝고 고통스런 상태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 게임안에서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고 실천해가야 한다.
게임안에서는 대단히 그 관계가 반복해서 얻게 된다.
그래서 그 내용이 맞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은 그 본 사정은 그렇지 않음을 처음 잘 이해해야 한다.
화면의 커서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이 어떤 화면의 색소를 맞 닿는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아이템이 생겨나고 화면이 바뀌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그 사정을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서는 반복해서 대하는 그 내용을 놓고 이 사정을 잘 이해해나가야 한다.
● 망집을 일으키는 사정의 이해
생사에 묶이지 않으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앞에 제시한 여러 판단들이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이 어떤 이유로 잘못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꾸 위와 같은 형태로 잘못된 분별을 일으켜 현실을 대하게끔 된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그 배경 사정까지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에서 자신이 사과를 들어서 철수에게 건넨다고 하자.
또는 영희가 자신에게 사과를 건네서 자신이 받는다고 하자.
현실에서는 이런 일상적 활동을 한다.
이런 현실 상황을 놓고 위 내용에 대해 잘 판단을 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분명 자신의 손이 그 사과를 상대해 불잡고 또 영희에게 건넨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고 부분은 그런 동작을 하는 대상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또 이 현실에 그런 행위도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그런 행위를 하는 자신도 그런 형태로 있다고 여기면서 현실에 임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을 살펴 이해하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인 핵심이다.
그리고 또 지금 살피는 『유가사지론』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이 된다.
그런데 더 나아가 다음 내용까지 살펴야 한다.
이런 내용은 잘못된 망상분별이고 잘못된 판단이다.
그러나 이들 내용이 잘못임을 설명하고자 할 때
이들 잘못된 내용을 가지고 설명을 행하게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설명하게 되는가 하는가를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들을 결국 『유가사지론』에서 제시된 내용을 통해 기본적으로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 임해 수행을 잘 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른 중생도 그처럼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 망집을 제거함과 수행
수행에 있어서 잘못된 망상분별이 잘못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내용이 생사현실에서 이후 어떤 방향을 제시해주는가를 살펴야 한다.
일단 현실에서 사과를 잡고 건네는 활동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런 사과가 그런 동작을 하는 행위 대상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그런 동작이 실답게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 그런 동작을 하는 자신이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망상분별을 일으키게끔 된다.
그런데 이것이 근본 무명(어리석음)으로부터 발생한 망상분별증의 표면적 증상이다.
즉, 그 근본 바탕에서 일으킨 근본어리석음 무명 망집 상태에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현실의 의식 표면에서 다시 위와 같은 망상분별과 집착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망집에 바탕해서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3 악도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위와 같은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겪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증상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현실에서 이들 분별이 잘못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현실적으로 충분하지 않다.
원칙적으로 위와 같은 내용을 이론적으로만 이해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내용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자.
그러면 곧 생사현실 안의 모든 생사고통을 다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여기기 쉽다.
그러나 생사현실 사정이 그렇지 않다.
현실이 실답지 않음만 관하면 온갖 생사고통을 곧바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수행은 오로지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론적으로 잘 관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가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이를 통해 벗어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역시 그 자신만 놓고 보면 그런 업을 중단할 필요성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업으로 생사고통을 겪어도 역시 위와 같이 그 이론만으로 극복해 벗어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정작 꿈은 아니다.
현실은 정작 꿈과 달리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현실이 실답지 않다.
그러나 대단히 실답게 여겨지는 사정이 있다.
즉 하나하나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이는 수많은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와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받아나가게 된다.
이런 점이 꿈과는 다르다.
그래서 현실을 대부분 대단히 실답게 여기며 대하게끔 된다.
그래서 이 현실문제의 극복이 꿈처럼 쉽고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꿈과는 달리, 생사현실에서 겪는 고통은 수행으로 달리 대처할 필요가 있게 된다.
이런 사정에 대해서는 『회쟁론』에서 살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참조하기로 한다.
●실답지 않은 현실 내용을 실답게 여기게 되는 사정
https://buddhism007.tistory.com/3825#032
sfed--회쟁론_K0630_T1631.txt
sfd8--불교단상_2561_12.txt ☞ ☞●실답지 않은 현실 내용을 실답게 여기게 되는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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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렇다 해도 꿈은 아니다.
그리고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여겨지게끔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배경 사정이 있다.
간략하게 그 사정을 살피기로 하자.
이미 그 대강의 사정을 위에서 살핀 것이기도 하다.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론적으로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여전히 현실에서 손을 뻗쳐 사과를 집으면 그 때 촉감을 느끼게 된다.
또 사과를 집어 영희에게 건네면 그 사과부분만 떼어 옮겨가 영희가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수많은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와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받아나가게 된다.
그래서 주어진 현실을 대부분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며 받아들이게끔 된다.
그런 가운데 당장 자신의 손발이 잘리고 부러지는 상태처럼 생사고통의 상황에 처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상황 자체가 실답지 않고 잘못된 분별임을 이론적으로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것만으로 곧바로 그 생사고통을 극복하기 힘들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론적으로 위와 같은 내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론대로 현실에 임할 수 있게 될 수 있도록 수행하는 노력이 원칙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곧바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현실 사정상, 그런 바탕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묶이지 않기 위한 수행이 함께 필요하다.
그래서 예방 차원에서 먼저 현실에서 의식표면에서 일으키게 되는 위와 같은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한 업을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쌓여진 업의 장애를 수행을 통해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칼로 자꾸 손을 베내 피를 흘리는 상황과 같다.
그 상황 자체가 실답지 않고 이를 통해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원칙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그런 생사고통을 직접 겪는 상황을 그 이론만으로 곧바로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그처럼 피를 흘리는 상태를 예방하는 차선책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피를 흘리지 않으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일단 그처럼 칼로 베게 하는 원인이 되는 망집과 그에 바탕한 업을 중지해야 한다.
그런데 또 그것만으로 당장 피가 멈추지는 않는다.
과거에 베낸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가 더 이상 흐르지 않도록 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칼로 손을 자꾸 베게 하는 행위를 멈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과거에 쌓아 놓은 업의 장애까지 함께 제거하고 치유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즉 생사고통을 받는 원인을 새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한편, 과거에 만들어 놓은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된 상태를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즉 일반적으로 행하는 분별이 망상분별로서 옳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런 망집에 바탕한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업의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
즉, 기본적인 계에 해당하는 수행덕목 즉 보시, 정계, 안인, 정진 항목을 잘 성취해 나가야 한다.
이런 수행덕목이 그 주체의 업의 장애를 제거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런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망집증상을 발생시키는 배경사정까지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즉, 현실은 실답지 않고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각 주체는 생사현실이 그처럼 있다고 여기며 임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되는가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생을 출발하기 전 단계에서 근본적으로 이런 망집을 일으키게끔 하는 부분까지 잘 제거해야 한다.
처음 생을 출발할 때 하필 그런 환경에서 그렇게 잘못된 판단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상태로 삶을 대하게끔 삶을 출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이면 사람, 축생이면 축생, 그리고 각 주체마다 다르다.
제 각각 독특한 개성과 자질을 갖고 삶을 출발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되는가를 함께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위 부분도 앞의 수행덕목을 실천할 때 잘 고려해야 한다.
생사현실에서 이와 같은 증상을 잘 제거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 망집이 이후 생에도 계속 영향을 미쳐 악순환을 밟아 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두 측면에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한편 자신만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래서 온 생명을 모두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한다고 하자.
이런 수행자를 보살 수행자라고 칭한다.
이런 경우는 다시 중생들이 생사고통을 받는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상태에서 중생들에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노력을 다시 기울여야 한다.
그런 경우 먼저 수행자 자신부터 앞과 같은 수행을 통해 스스로 생사에 묶이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편 생사현실에 들어가서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방편을 잘 구족해 임해야 한다.
즉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생사현실에서 역시 앞의 기초적인 계의 항목을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이런 바탕이 되어야 이후 지혜 자량을 구족해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중생을 잘 제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보살 수행자의 수행은 중생이 임하는 3 계 6 도에 펼쳐져 있게 된다.
그래서 이것이 곧 각 현실 상황에 맞추어서 점차 수행을 행해가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사정이 곧 유가사지론에서 17 지로 나열하는 항목이 된다.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하면 한편으로는 일반인의 경우와 사정이 같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대하는 감각현실은 대단히 생생한 형태로 매 순간 반복된다.
그리고 또 이에 바탕해 일으키는 분별은 대단히 명료하게 행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분별내용이 그 현실에 그처럼 실답게 있다고 여기게끔 되는 측면이 있다.
원래 수행자가 처음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부터 수행을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처음 망집에 바탕해 집착하고 대하던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배가 침몰하는 상태에서 신발에 붙어 있는 먼지와 같다.
그런 상황에서 신발에 붙은 먼지에 초점을 맞추고 집착해 매달린다고 하자.
그러면 위험해진다.
그런데 현실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항목들이 대부분 사정이 위와 같다.
즉,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면 아무 쓸모도 없다.
또 이후 생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대단히 나쁜 과보를 받게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내용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임한다.
그리고 정작 자신이 올라탄 배가 침몰하는 것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처음 현실 일체가 무상함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1 생을 마친다고 자신의 삶이 끝나고 아주 없게 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넓고 길고 깊게 인과를 관찰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업을 행하면 장차 무량겁에 걸쳐 어떤 생사고통을 받는가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업을 잘못 행하한다고 하자.
그러면 살아서도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그 뒤에도 무량겁에 걸쳐 장구한 고통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일단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을 통해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가는 상태로부터 벗어나와야 한다.
○ 수행에서 악취공견의 문제점
일체가 차별없이 실상이 공하다.
이런 사정을 잘 관해서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에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던 것을 제거해야 한다.
또 수행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그 어려움을 제거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 이 내용을 적용해야 한다.
한편, 수행이나 수행으로 얻는 결과에 대해 이를 잘못 적용하면 곤란하다.
자칫 수행이나 수행결과에 대해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는 내용을 적용한다고 하자.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고 실답지 않다.
그래서 그런 사정으로 아무 수행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기게 되기 쉽다.
그리고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하다고 여기고 잘못 임하기 쉽다.
그러면 곤란하다.
원칙적으로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렇기에 그 내용만으로 생사고통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기기 쉽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정작 꿈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현실은 일반적으로 매순간 생생하게 얻는다.
그리고 명료하게 분별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대단히 실답게 여겨지게끔 된다.
그래서 현실이 실답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실답게 여겨지게 된다.
그런 경우 그처럼 실답게 여겨지게 되는 그 정도가 있다.
또 그 안에서 그만큼 대단히 생생하게 극심하게 겪게 되는 생사고통이 있다.
그리고 그 정도에 비례헤서 이를 극복할 수행이 필요하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고 실답지 않다.
그런데 그 내용만 잘 이해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억울하게 자신이 묶여 손과 발이 잘라지는 상태에 처했다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 그 생사고통을 평안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런 상태에서 또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극복하게 되기 쉽지 않다.
일체가 공하고 실답지 않다.
그런데 그 내용은 수행 부분에 먼저 적용해야 한다.
즉 먼저 생사고통을 받게끔 하는 업을 중단하고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수행도 대단히 힘들다.
그리고 다시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과정에 먼저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어려움이 실답지 않다는 것을 잘 관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 이들 내용을 먼저 적용해야 한다.
즉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고 실답지 않다.
이런 내용을 잘 이해한 바탕에서 이들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부처님이 경전에서 제시한 것처럼 수행을 잘 정진해 성취해야 한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 이 내용을 제시하는 취지를 잘못 이해해서 이를 거꾸로 적용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하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또 원래 망집에 바탕해 행하던 반응과 업이 있다.
이런 업을 그대로 행해도 된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또 그렇게 해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아도 역시 무방하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그런 경우 막상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론처럼 그렇게 쉽게 고통을 극복해 벗어나지 못한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 일체가 공하다는 그 이론을 잘못 취해 적용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매번 하필 극심한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 나가게 된다.
이는 공함을 수행과정에 잘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망집에 바탕한 업을 끊고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수행 부분에서 잘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수행을 이들 내용을 바탕으로 잘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 처하는 것이다.
설령 일반 현실에서 이런 수행이 설령 잘 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직접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에 처하면 그런 수행마저도 잘 안 된다.
그런 것이 현실이다.
이런 경우 일체가 차별없이 공함을 잘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이를 잘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그 수행을 끝내 잘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수행자가 수행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조차 그런 내용으로 잘 극복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원칙적으로 일체가 공함은 지옥과 극락에 모두 적용된다.
그러나 이런 현실 사정 때문에 처음 수행하는 입장일수록
수행 순서를 뒤바꾸지 않고 잘 밟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높은 단계의 수행자 경우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사정이 그렇기때문에 생사현실에서 기본적인 수행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망집을 일으킨 입장에서 임한다.
그 경우 각 내용을 현실에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각 기본 수행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수행을 통해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 수행이 어느 경우나 중요하다.
그렇게 된 배경사정이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이나 『유가사지론』과 같은 내용을 대할 필요가 있다.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입장은 우선 다음과 같ㄷ다.
중생을 제도하려면 먼저 중생에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상태의 중생이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망집 상태의 중생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각 내용을 전제로 놓고 설명해가야 한다.
그런 가운데 점차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마음과 관련한 내용들을 하나하나 설명해가게 된다.
생사현실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런 각 내용을 방편으로 언어시설을 통해 시설해 설명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처음 이를 통해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다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다른 중생을 제도해나가게 된다.
이런 경우에도 그 사정은 앞과 마찬가지다.
즉 이런 경우에도 중생에 눈높이를 맞추어 다시 임해야 한다.
중생은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켜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각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자꾸 망집을 일으켜 대하게 된다.
따라서 그렇게 되는 배경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체가 그 본 바탕인 실재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러나 그런 사정으로 아무렇게 생사현실에도 임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공함은 이런 내용을 제시하기 위한 취지가 아니다.
현실이 실답지 않다.
그런데 그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실답게 겪는다.
이것이 문제다.
이런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먼저 그런 생사고통을 받게끔 하는 업을 끊고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잘 성취하는데 이들 내용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계속 수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에 생멸을 얻을 수 없음을 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도 상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고통을 평안히 참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안인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생법인을 증득하게 된다.
그리고 불퇴전위에 올라 수준이 높은 수행자가 되게 된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해도 그런 바탕에서 행할 내용은 수행이다.
불퇴전위에 이르러 행할 수 있는 방편이 제한이 없다.
그리고 그로 인해 지옥도 극락과 차별없이 대할 수 있다.
그렇다해도 중생을 제도하고자할 때는 먼저 선교방편을 사용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먼저 수행자 자신이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중생제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수행자가 지옥에 가게 되는 방편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해도 중생제도를 위해서는 이를 피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위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정진해야 한다.
따라서 일체가 공하다고 하여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한 것이 아니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렇다고 하여 수행을 행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래서 아무렇게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일체가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하필 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반복해 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수행자 자신부터 고통을 받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걸려 고통받게 된다.
또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
또 다른 이에게 붙잡혀 자신의 신체가 구금당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
또는 다른 이에게 부림을 받는 상황에 놓여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 스스로도 이를 극복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는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는 한층 더 힘든 것이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렇다고 망집에 바탕해 업을 함부로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로 인해 당장 다른 중생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게 된다.
그리고 중생제도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하필 대단히 생생하게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에 반복해 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수행자 자신도 문제다.
더욱이 중생제도에도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는 내용을 잘못 취하면 곤란하다.
즉, 악취공견에 바탕해 수행에 잘못 적용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한편 수행에 정진하는 과정이라고 하자.
이런 경우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는 사정을 잘 관해야 한다.
그리고 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 가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제시한 수행목표나 수행덕목에 대해서 잘못된 망집을 다시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즉, 수행을 하지만,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수행하면 안 된다.
원래 생사현실에서 중생들이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약으로서 수행방안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 수행방안과 목표에 집착을 일으켜 가지면 곤란하다.
그러면 그 약이 오히려 부작용을 발생시키는 독이 된다.
본래 생사현실에서 생사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망집을 일으키고 대하면
마치 최면 걸린 이가 현실에 없는 것을 자꾸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옷과 바지를 뱀이나 독사로 여기고 고통을 받는 상황처럼 된다.
그래서 이를 처음 문제라고 보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방안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그 방안으로 제시한 수행방안에 대해 다시 망집을 일으키면 곤란하다.
>>>
거리에 서서 자동차나 사람이 오가는 상태를 대한다고 하자.
이 경우 차를 타고 엑셀을 밟으면 차가 가고 풍경도 바뀐다.
이런 경우 대부분 거기에 그런 자동차나 사람이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 일체가 그렇지 않다고 경전에서 제시한다.
그래서 이 측면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하던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이미 있는 업의 장애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심하게 받는 3 악도에 묶여 끌려 가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망집에 바탕해 임하는 입장은 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행하던 반응과 업을 매 순간 반복해 나간다.
현실에서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상황은 삶 전반에 걸쳐서 공통된다.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대단히 안락한 가운데 희희낙락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넓게 보면 세상에는 자신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축생이 많이 있다.
축생은 인간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에서 살아간다.
한편,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다른 이도 많다.
그런데 한 인간은 축생이나 다른 우월한 이를 대할 때 매 경우 망집에 바탕해 행해간다.
우선 현실에서 한 주체는 집착하는 좋음을 당장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나쁨과 고통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망집에 바탕해 이를 위해 매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당장 취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반응이 있다.
그래서 이런 반응을 매 순간 행해가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게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현실에서 그렇게 해서 죽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장구한 생사고통을 3 악도에서 받아나가는 서막이다.
그리고 경전에서 이런 사정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중요하다.
망상분별은 옳지 않은 내용이다.
본 바탕에서나 현실에서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그렇게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그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에 바탕한 업도 중지해야 한다.
반대로 수행의 방향으로 행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에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경전에서 제시한 내용을 잘 실천해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것이 잘 안 된다.
우선 그 가장 근본적인 사정은 망상분별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리에 저기 지나가는 영희는 분명 영희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생각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 제시한 내용이다.
한편,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이 어디론가 가야 겠다고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하자.
그러면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그 부분이 함께 따라 변화한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외부 세계의 내용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한편, 그런 부분을 영희나 철수는 자신이라고 여기는가, 여기지 않는가.
또 자신이 영희나 철수라고 여기며 대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또 영희나 철수는 또 제각각 자신이라고 여기는가. 여기지 않는가.
영희도 그렇고 철수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객관적 실재인 것처럼 잘못 여기게 된다.
한편, 자신이 사과를 손으로 붙들고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해보자.
이 상황에서 그것이 사과로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사과로 보인다고 답하게 된다.
다시 그 사과의 정체와 지위가 무언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래서 그 사과가 자신의 눈이 대한 대상인가 아닌가를 묻는다고 하자.
또 그 사과는 자신의 손이 대한 대상인가 아닌가를 묻든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그것은 자신이 대한 대상이라고 답하게 된다.
현실에서 사과를 손에 쥐고 옆에 있는 영희나 철수에게 건넨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자신과 영희와 철수가 다 그것을 사과로 여기고 대한다.
또 한편 제각기 그것은 자신의 눈으로 대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런 식으로 대하게 된다.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 철수도 자신처럼 답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들 내용도 역시 객관적 실재인 것처럼 잘못 여기게 된다.
현실 사정이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내용을 망상분별이라고 제시한다.
경전에서는 그런 내용이 하나같이 현실이나 본 바탕에서 얻어낼 수 없음을 제시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앞과 같은 내용이 오히려 더 옳고 적절한 내용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면서 대하게 된다.
그래서 그것이 망상분별인 사정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즉 그것이 옳지 않은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왜 자신이 그런 망상분별에 묶인 채 삶을 살아가게 되는가.
현실에서는 이런 잘못된 망상분별 내용을 오히려 대단히 옳고 적절한 내용으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근본 사정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현실에서 의식 표면의 내용만 놓고 살펴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표면적인 의식 부분에서 각 영역에서 얻는 내용들이 있다.
이들은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 및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본 바탕인 실재가 공하다.
그리고 여기에 진짜라고 할 실체는 없다.
이런 내용을 무아 무자성 공으로서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만 살펴서는 앞의 문제가 간단히 잘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켜 삶을 시작하게 된 그 배경까지 잘 살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 결국 『유가사지론』 첫 부분에서부터 살펴나갈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본적인 수행을 통해
일단 그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런 상태에서 이들 사정을 살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아니면 이들 내용을 살펴나가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시시비비를 따지고 다툼에 임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사과를 놓고 서로 차지하고자 치열하게 다툰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는 위 문제를 살필 바탕이 마련되기 힘들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정려 수행을 해서 색계 무색계의 사정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마음의 정체도 살펴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 바탕이 잘 마련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론상 이들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하자.
그리고 현실에서 그에 바탕한 수행이 잘 안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우선 당장은 자신이 대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집착에 바탕해 행하는 활동부터 일단 중단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은 자신이 바다에 빠져 들어가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엉뚱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분주히 임하고 있다.
그래서 우선 당장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명이 우주보다 가치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를 우선 숫자로 대강 최소한 469 조원은 초과한다고 적어 보자.
그런데 그런 자신의 생명과 신체가 죽음을 맞이해 언젠가는 0 의 상태가 된다.
자신은 자신의 신체나 자신의 것에 대해 평소 애착을 갖고 대한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하면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0 의 상태가 된다.
이 사실을 먼저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가운데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상태다.
그래서 평균잡아 하루당 100 억원을 초과하는 가치가 없어져 가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사과나 신발 자동차나 집 하나를 더 취하고 취하지 못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아님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런 입장에서는 이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하다.
한 생으로 고통이 끝나지 않고 무한히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경우 보잘것 없는 것에 대해 집착을 갖고 임하는 자세가 문제다.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3 악도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실 매 상황에서 각 주체가 초점을 맞추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이를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행위를 해간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매순간 그렇게 할 도리 밖에는 없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반응이나 행동을 취해간다.
각 주체가 생사현실에서 매순간 그와 같이 행해간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현실 사정을 먼저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수행부터 먼저 성취를 잘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이런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유가사지론』을 살피는 첫 부분에서 이런 기초 내용을 기본적으로 소개해야 한다.
우선 자신이 대하는 현실내용이 있다고 하자.
대부분 이를 외부세계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들은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별개의 외부 물질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이들 현실 내용 일체가 자신의 마음안 내용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은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내용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사정이 그와 같다.
그런데 현실 내용은 자신이 그런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현실내용이 하필이면 그런 형태로 나타나는가를 다시 잘 파악해야 한다.
♥ 잡담 ♥
『유가사지론』을 살피는 가운데 기초적 부분을 살피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1 권 첫부분에서 살펴나갈 내용이 조금 분량이 많아진다.
따라서 페이지를 조금 나누기로 한다.
그리고 페이지가 분량이 차면 다음 페이지로 이어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후 내용은
이런 기초적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가운데
상당히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수행방안을 하나하나 제시한다.
따라서 이들 내용을 잘 살펴 현실에서 실천해나가면 된다.
그래서 첫 부분에 페이지를 조금 많이 배당해 놓았다.
이곳 경전 코너는 년중 시리즈 형태로 이어서 작성하는 코너다.
따라서 한 페이지 분량이 다 차기전까지는 계속 이어서 살피게된다.
눈을 떠서 얻는 내용이 갖는 의미나 성격에 대해서는 그간 많이 살폈다.
그래서 링크를 걸고 생략하고자 한다.
다만 현재는 본인도 조각글 해당 부분을 찾아내는데 시간이 걸리고 힘들다.
그런 사정으로 과거 조각글 정리작업을 병행해간다.
그러나 과거 분량을 정리하려면 다시 하루가 걸리게 된다.
그래서 여러모로 어렵다.
그런데 이 내용은 최근에 링크로 다음 부분에 정리해 놓았다.
이를 위해서 준비한 핫키가 an ,s 핫키다.
오래 되면 잊어 버리기에 일단 적어 놓는다.
Lab value 불기2565/10/19/화/15:19 이상 표현 재교정마침
불기2566-03-28 재교정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David & Jonathan - Bella Vita.lrc
Lab value 불기2563/01/04/금/19:50
◆vgju1770
4. 재무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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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8p/--5587
™善現智福 키워드 연결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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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사지론_K0570_T1579 [문서정보]- 경전논의 키워드
K0570
T1579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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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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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유가사지론』 ♣0570-001♧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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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지론』 ♣0570-001♧
◎◎[개별논의] ♥ ❋본문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c Anthony - Je Ne Suis Pas Un Heros.lrc
● 유가사지론을 쉽고 재미있게 읽어 나가는 기본자세
이번에 경률논장 연구코너가 신설되었다.
이 논장 코너에서 『유가사지론』을 선택해 살피기로 했다.
『유가사지론』을 읽어 본다.
- 표현의 난해함
우선 논서안에 평소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형태의 용어가 많다.
일반적으로 대하는 문장에서 80% 정도의 내용을 이해해야 내용이해가 쉽게 된다.
그래야 또 흥미를 갖고 대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 각 내용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재미가 없음
한편 이 논서에서는 항목을 백과사전식으로 자꾸 나열해가며 설명해간다.
그래서 내용이 대단히 자세하고 번잡한 편이다.
그런데 논서 자체에서 이들 내용을 제시하는 취지도 친절하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이들 내용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잘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각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흥미를 잃게 되기 쉽다.
그래서 이런 논서를 흥미있게 즐겁게 잘 대하고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를 살피는 이가 자세를 조금 바꿔 대할 필요가 있다.
즉, 수동적으로 내용을 읽어가려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다음처럼 스스로 혼자 질문을 제기하며 대할 필요가 있다.
왜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가.
이런 내용을 살피려는 취지가 무엇인가.
이들 내용을 알게 되면 어떤 효용을 얻는가.
이런 식으로 먼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그 다음 그런 취지를 위해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제시하는가.
그 표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과연 옳은가.
또는 가치적으로 올바른가.
이렇게 독자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살펴나가는 것이 좋다.
그래서 자신이 능동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찾아가며 내용을 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편 이를 위해 경전과 논서를 마치 연극대본처럼 여기며 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제시된 내용과 관련한 문답을 주고 받는 역할을 맡아 해보는 것도 도움된다.
처음 질문을 하는 입장이 되어 질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일정한 내용을 답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다시 그에 대해 답을 하는 역할도 스스로 맡아 해본다.
그런 가운데 이 보다 더 좋은 다른 답은 없는가를 생각해본다.
또 매번 왜 이런 내용이 이 대목에서 제시되어야 하는가라고 의문도 제기해본다.
그리고 자신이 연극대본을 바꿔 써본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이런 식으로 자꾸 문제를 제기해 보면서 살핀다.
그런데 주어진 내용을 그냥 따라 읽어간다고 하자.
그러면 곧바로 졸립게 되기 쉽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자신이 능동적 적극적으로 임하며 내용을 대하는 것이 좋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유가사지론』 첫부분에 다음처럼 제시된다.
...
무엇을1) 유가사지(瑜伽師地)2)라고 하는가?
무엇 등을 17이라고 하는가?
17지(地)를 말한다.
....
무엇을11)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라고 하는가?
5식신(識身)의 자성(自性)
그것12)의 소의(所依)
그것의 소연(所緣)
그것의 조반(助伴)13)
그것의 작업(作業)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것을 총괄하여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라고 한다.
무엇14) 등을 5식신(識身)이라고 하는가?
소위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이다.
이런 형태로 내용이 나열된다.
그런데 과연 어떤 이가 유가사지가 무엇인가를 궁금해하고 물어보았는가.
또는 5 식 신상응지나 5 식신이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물어보았는가.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냥 미륵보살님이 이런 내용을 체계적으로 벌여 세워서 설명하고자 것이다.
미륵보살님은 다음 입장일 것이다.
어떤 이가 현실에서 생활하다가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런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수행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해서 성불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내용과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이렇게 죽 나열해 설명해가게 된다.
이처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내용을 읽는 독자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이런 논서를 별 생각없이 죽 읽어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내용 하나하나의 표현이 우선 낯설고 어렵다.
그리고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와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살펴서 얻을 이익과 효용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논서를 살펴야 할 취지나 동기도 스스로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논서가 제시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더욱이 그 내용이 대단히 길다. 그래서 질려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래서 이런 논서를 멀리하게 되기 쉽다.
일반 사정이 그렇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이런 논서를 대하게 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한 번 읽고 이해해보려고 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표현과 내용이 어렵다.
그래서 내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수동적으로 줄을 따라 읽어나가게 된다.
그러면 알지 못하는 내용이 계속 나열될 뿐이다.
그런 사정으로 곧바로 졸립게 된다.
그래서 조금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한편,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다시 이런 내용이 왜 문제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해보자.
또 이들 내용을 왜 이처럼 제시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해본다.
이런 식으로 능동적으로 자꾸 자신이 질문을 제기해보기로 하자.
어떤 내용을 논의할 실익이나 취지를 이해해야 그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런 노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이 경우 주어진 내용을에 대해 자신이 능동적으로 질문하고 답하는 역할을 오가며 맡아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이 내용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 내용의 불명료성
논서의 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논서가 다루는 주제 성격상 이런 어려움이 증가 된다.
마음 안 내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번역서나 원문의 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는 다른 개설서나, 불교사전 등의 도움을 충분히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조금이라도 내용을 읽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먼저 각 내용은 쉽게 말해 무슨 의미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해본다.
그리고 이에 대해 또 자신이 자문자답을 해본다.
한 문장내 단어의 10% 이상에 대해 그 의미를 모른다고 하자.
그러면 내용 이해를 당연히 하기 힘들다.
이런 경우는 먼저 사전 등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하나하나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내용의 방대함
독자 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간단히 내용을 제시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현재 논서는 100 권에 달한다.
그래서 인내를 요구한다.
독자는 내용을 읽으면서 자신이 읽은 내용을 간단히 압축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좋다.
읽어도 책을 덮으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헛수고를 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읽은 내용은 어느 정도 골격이나 키워드를 추려 잘 정리해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후 최소한 핵심단어나 키워드라도 생각이 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 연구에 도움이 된다.
● 유가사지론 목차
우선
유가사지론의 첫부분을 살피는데 다음 내용이 나온다.
>>>
무엇을1) 유가사지(瑜伽師地)2)라고 하는가?
>>>
무엇 등을 17이라고 하는가?
17지(地)를 말한다.
>>>
첫째는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
둘째는 의지(意地),
셋째는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
넷째는 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
다섯째는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
여섯째는 삼마희다지(三摩呬多地),
일곱째는 비삼마희다지(非三摩呬多地),
여덟째는 유심지(有心地),
아홉째는 무심지(無心地),
열째는 문소성지(聞所成地),
열 한째는 사소성지(思所成地),
열 둘째는 수소성지(修所成地),
열 셋째는 성문지(聲聞地),
열 넷째는 독각지(獨覺地),
열 다섯째는 보살지(菩薩地),
열 여섯째는 유여의지(有餘依地),
열 일곱째는 무여의지(無餘依地)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처음 제시한 17 지는
결국 이 논서의 골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 외울 필요가 있다 .
어렵지 않다.
첫째는 5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
둘째는 의지(意地),
셋째는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
넷째는 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
다섯째는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
여섯째는 삼마희다지(三摩呬多地),
일곱째는 비삼마히다지(非三摩呬多地),
여덟째는 유심지(有心地),
아홉째는 무심지(無心地),
열째는 문소성지(聞所成地),
열 한째는 사소성지(思所成地),
열 둘째는 수소성지(修所成地),
열 셋째는 성문지(聲聞地),
열 넷째는 독각지(獨覺地),
열 다섯째는 보살지(菩薩地),
열 여섯째는 유여의지(有餘依地),
열 일곱째는 무여의지(無餘依地)이다.
한자어 앞부분을 일단 떼어서 문장을 만든다.
유가사지론 17지 - 오의유무무 삼비유무문^
^문-사수성독보 유무
이렇게 된다.
한글로 놓고 보면 말이 잘 안된다.
그런데 한자어를 넣어서 말이 되도록 시감상을 해본다.
그렇게 해서 제목과 함께 묶어 외우는 것이 좋다.
이들 첫 글자를 한문으로 떼어 붙여 보자.
그리고 이를 한시로 여기고 바꾸어 감상해보자.
유가사지론 17지 = 五意有無無
유가사지론 17지에서 5 개의 뜻은 있고 없음 자체가 없는데
三非有無聞
(더욱이) 3 개는 아닌데, 있고 없음의 들음이 있다.
여기서 앞 뒤가 대구가 된다.
5의 ~유무무
3비 ~ 유무문
思修聲獨菩
그리고 (^들을 때는 ) 소리를 생각하고 닦아서, 홀로 걷고(菩 => 보행의 보^)
有無
유무를 살펴라.
물론 이런 시감상은 엉터리다.
이런 시감상 내용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또 반드시 이렇게만 시감상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억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 나름대로 일단 말이 되는 형태로 바꾸어
첫글자만 따서 외우는데 사용하면 된다.
묶어진 것은 필요시 각 부분을 떼어내기 쉽다.
그러나 그 반대방향은 쉽지 않다.
즉 떨어진 것을 묶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10 번째 20 번째 이런 부분에 놓이는 글자는
끝에 한번 시작부분에 한번 이렇게 두번 중복하는 것이 좋다.
이런 방식이 각 부분을 떼어서도 외우고 합쳐서도 외우는데 좋다.
10 개씩 각 방에 잘 집어넣는다.
그래서 방 위치만 보고 몇번째 내용이라고 바로 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되도록 노력한다.
비삼마희다지는 유가사지론 17 지 가운데 몇번째인가.
이런 것은 누가 물어보지 않는다.
그래도 유가사지론을 살피는 이상
상식적으로 바로 파악이 되는 상태가 빨리 되어야 한다.
그것이 수행과정에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방안은
논서를 살피는 중간중간에
중요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매번 응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각 부분을 이처럼 잘 정리해가야 한다.
그래서 페이지를 닫으면
방금 전에 살핀 내용이 무엇인지 조금은 생각이 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극복이 안 된다고 하자.
그래서 책만 덮으면 방금전에 무엇을 보았는지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열심히 보아도 큰 의미가 없다.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대할 때는
결국 이 내용을 잘 이해하고 실천해 좋음을 빨리 쉽게 잘 얻어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어떤 정보를 대할 때 이런 정보에 대해
이해 - 정리 - 결합 - 암기 - 재생 - 현실 변형 적용하는 방안부터 잘 익혀야 한다.
뽑혀진 노래를 듣다보니 다 잘 외운다고 하는 듯 하다.
이미 경장코너에서 『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도 품명을 외우는 방안에서 소개했다.
이처럼 연상을 통해 암기한다고 하자.
그러면 79 개 품명도 외울 수 있다.
따라서 17 개 정도 외우는 것은 쉽다고 여기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
● 논서의 논의 취지
이 논서는 무엇에 대해서 논의하고 그것을 논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이것을 살펴야 하는가.
처음 질문은 이 부분이다.
무엇을1) 유가사지(瑜伽師地)2)라고 하는가?
>>>
17지(地)를 말한다.
무엇 등을 17이라고 하는가?
『유가사지론』이 불교내에서 나름 유명한 논서이다.
그래서 불교에 관심이 있는 경우라면
『유가사지론』이라는 논서 명칭은 한 두번 들어보게 된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유가사지라고 하는 것인가.
이렇게 일단 의문을 가져보아야 한다.
그런데 불교에 아예 별로 관심이 없었던 입장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이런 질문 자체가 일어나지 않기 마련이다.
이 경우는 먼저 다음 질문부터 차례대로 해야 할 것이다.
현실에서 살아가려면 누구나 다음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자신이 늘 대하는 자신과 세계가 있다.
그런데 이들의 본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이 가운데 좋은 것은 무엇이고 나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또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나타나는가.
그런데 자신이 이 가운데 좋은 것을 많이 오래 다양하게 얻고자 한다고 하자.
그리고 반대로 나쁜 것을 일체 얻지 않거나 줄이고자 한다고 하자.
그렇게 되려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을 살면서 갖게 된다.
이들 문제는 현실을 살아가는 한 일반적으로 갖게 된다.
자신이 평소 의식을 명확하게 하던 않던 사정이 같다.
그리고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자신이 어떤 형태로던 얻어야 한다.
그래야 그에 바탕해서 무언가를 행해 나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를 행하기 어렵다.
또 자신이 무언가를 지금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결국 위와 같은 답에 어떤 형태로던 자신이 답을 얻은 경우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자신이 어떤 거리를 걷고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음 질문을 해보자.
하필이면 많은 거리 가운데 그 거리를 걸어가는가.
그리고 하필 걸어가고 차를 타고 가지 않는가.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하자.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입장에서는 여하튼 그렇게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기 때문이다.
또는 그것이 나쁨을 덜 주게 되는 방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행과 관련해서는 다음 질문이 조금 더 추가된다.
일반적으로 세상과 자신의 정체에 대해 제시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타나는 인과에 대해 제시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해 제시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좋은 것을 얻고 나쁜 것을 피하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서도 또 제시한다.
그런데 부처님이 설한 경전에서는 하나같이 일반적인 내용과는 대단히 동떨어진 내용을 제시한다.
그래서 그 사정이 무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이 결국 『유가사지론』에서 순서적으로 나열해 제시하는 각 내용과 맞 닿아 있다.
일반적으로 중생들은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다시 죽어서 3 악도에 들어가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사정이 있다.
처음 문제에 대해 망상분별에 바탕해 엉터리 내용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서 업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먼저 현실 세계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수행을 올바로 행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에 묶이게 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그 바탕에서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무량하게 좋고 좋은 복덕과 지혜를 얻어야 한다.
또 그러려면 이러이러한 수행을 행한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내용을 17 가지로 나열해 살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기본 배경을 이해하고 논서를 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첫 부분은 현실 내용을 기본적으로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외부 세계 내용으로 이해하는 내용들이 있다.
그런데 이는 즉, 각 주체가 감각기관을 통해 얻는 감각현실이다.
그래서 5 식신과 관련된다.
이 첫부분은 현실의 기본 정체나 사정을 이해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후 3 계 6 도의 세계 상황과 생사윤회의 과정이 제시된다.
이는 일반적으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지옥이나 아귀계 하늘등은 일반인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다.
그래서 이 내용도 살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생사현실의 바탕에서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보살도를 닦아 한다.
그래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한 수행 방안들이 나열된다.
그래서 이렇게 기본적인 사정을 대략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경우 이제 왜 그것을 먼저 '유가사지'라고 표현한 것인가.
또 왜 그것을 17 가지로 분류해서 나열해 세우는가.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일단 앞에서 제시된 정도로만 대강 이해하기로 한다.
그런 바탕에서 자신이 한 번 의문을 제기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도 한번 제시해보려고 노력하기로 한다.
그런 방식으로 논서를 대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논의의 취지나 주제에 공감을 못한다고 하자.
그런 바탕에서는 내용을 읽어도 소화가 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정작 그런 질문을 던진다고 하자.
그러나 논서를 살펴보면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답해주지 않는다.
논서는 쓰여진 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머지 부분은 또 관련된 서적이나 사전 등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이 보충해 답을 얻어내야 한다.
그런데 또 어떤 부분은 너무 자세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하튼 이런 논서를 살피는 가운데
처음 대하는 어려운 용어는 기본적으로 잘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먼저 주석란을 잘 참조해보야 한다.
아니면 불교사전 등이나 인터넷 사전 사이트에 검색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들 기본 용어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낯선 용어가 많다.
그러나 이를 일일히 다 나열해서 살피는 것은 조금 어렵다.
그래도 꼭 필요하다고 보는 부분은 뽑아서 살펴야 한다.
그것이 전문적 수행을 지향하는 연구인이 해야 할 연구작업이다.
● 안식(眼識)에 대한 이해
처음 『유가사지론』에서 안식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안식은 눈을 뜨면 보이고 감으면 사라지는 내용을 얻는 것을 말한다.
그런 내용을 얻고 각 부분이 꽃이다 바위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분별 내용도 이와 관련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안식은 아니다.
그런데 일단 눈으로 떠서 보는 내용과 관련해서 대단히 많은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이 주제는 『관소연론』의 주제와도 관련이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대부분 일으키는 망상분별과도 관련이 깊다.
그래서 현재 그 부분을 조금 자세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떠서 사과를 하나 손으로 집어서 눈앞에 두고 이것을 바라본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눈을 뜨면 그 사과모습이 보인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눈을 떠 사과라고 여기는 그 부분을 A 라고 표현해보자.
그런데 이 A 부분을 자신이 '사과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기서 안식의 문제가 아니다.
이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사과라고 여기면서 대하게 되는 일정 부분으로 A가 있다.
그런데 바로 그런 A 부분을 눈을 떠 처음 얻어내는 부분이 안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런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 A 의 정체가 무언가에 대해서 많은 혼동을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이에 대해 이해하는 내용이 있다.
물론 이들 판단은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이후로는 그런 판단들이 잘못인 사정을 자세히 살피게 된다.
그러나 현재 내용은 모두 이런 잘못된 망상분별을 갖고 있는 이들을 상대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일단, 이들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상대가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 때문에 우선 일반적인 입장을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전제로 이들 내용을 살펴나가게 된다.
물론 이렇게 방편상 받아들이는 내용은 원칙적으로 망상분별이고 잘못된 판단이다.
그래서 이 두 사정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 눈을 떠 대하는 부분의 성격에 대한 혼동 망집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눈을 떠서 보게 되는 한 부분 A가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 A란 부분이 갖는 성격이나 의미를 제각각 다르게 다양하게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눈을 떠서 꽃에 해당한다고 여기는 부분을 보았다고 하자.
그것을 A 부분이라고 표시하자.
이 때 일반적으로 각 주체는 그 A 부분이
- 자신이 대하는 외부 세계의 한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 볼 때 눈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 자신의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성격이 다른 '외부물질'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자신의 다른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기도 하다고 잘못 여긴다.
즉 자신의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을 때에도 그런 모습을 대상으로 한다고 잘못 여긴다.
- 그리고 손으로 쥐거나 동작할 때 대하는 행위의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영희나 철수가 눈을 통해 무언가 볼 때 영희나 철수의 눈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영희나 철수가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을 때 그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영희나 철수가 손으로 쥐거나 동작할 때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 또 자신이나 관념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대상'으로 여긴다.
- 그런 가운데 영희나 철수가 관념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대상'이기도 하다고 잘못 여긴다.
- 또 그런 사정 때문에 그 부분에 바로 그런 관념분별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
또는 그 부분이 바로 그런 관념분별 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
- 한편, 자신의 경우 A 라는 부분은 자신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이는 자신이 감각과정에서 눈을 통해 감각해 얻는 '감각결과물'이기도 하다.
- 또 그런 사정으로 자신의 '마음안 내용물'이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눈을 떠 얻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일치해서 옳은 내용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각기 그 A란 부분이 갖는 성격이나 의미를 각기 잘못 파악한다.
그리고 각 입장에서 그 성격이나 의미를 서로 다르게 파악한다.
그래서 논의에서 혼동을 일으키고 혼란스런 논의를 진행하기 쉽다.
A 라는 일정 부분을 지목해 서로 같이 붙들고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서로 같은 A 부분을 놓고 논의하는 같은 바탕에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나 그 A 부분이 위에 나열한 다양한 의미와 성격을 갖는 것으로 제각각 이해한다.
그리고 또 그런 바탕에서 이런 A 부분이 갖게 되는 서로 다른 지위와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논의에서 서로간 혼동을 일으키고 혼란스런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처음에 먼저 잘 살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각 주체가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게 된다고 하자.
이런 경우 A 란 부분과 관련해 결론적으로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 먼저 이와 관련해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서로 잘 구분하고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 그리고 A가 자신이 눈을 떠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눈이 상대한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또 자신이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을 때 그 각 감관이 대하거나 손으로 쥐거나 동작할 때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그리고 A는 또 다른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떠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서 그들이 대한 '외부대상'이라고도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또 영희나 철수가 귀,코,입,몸 등으로 소리,향기,맛,촉감을 얻을 때 그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또 영희나 철수가 손으로 쥐거나 동작할 때 그 행위의 외부대상이라고도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그리고 A란 내용을 얻고 나서 어떤 생각이나 관념내용을 일으킬 때 그런 사정으로 이런 관념 내용이 그 A 부분에 '있다'거나
그 A는 그런 관념내용'이다'라고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 더 나아가 자신이 그 A 부분을 붙잡고 더 나아가 자신과 논의하는 영희나 철수도 같이 그 A 부분을 붙잡고 있는 상황에서
그 A 부분에 대해 논의하더라도 자신이나 영희 철수가 자신과 같은 내용을 놓고 논의한다고 잘못 이해하면 곤란하다.
즉 자신이 눈을 떠 대하는 A 부분을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떠 대하는 A 라고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 자신의 경우에는 A 라는 부분이 자신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즉 그 A가 자신이 눈을 떠 얻어낸 결과물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A는 자신의 눈이 대한 외부대상이기도 하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들은 외부대상과 그에 대한 인식내용이 서로 일치한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처럼 얻어낸 A는 그런 사정으로 옳은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처럼 잘못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유가사지론』에서 제시하는 유식무경의 입장이기도 하다.
참고 관소연연론』 관련 조각글 편집중 내용
불기2562-05-07_관소연연론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3/2562-05-07-k0628-001.html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Indochine - Belfast.lrc
눈을 떠서 얻는 내용이 갖는 의미나 성격이 무언가.
이에 대해 대강내용을 앞 부분에 제시했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 보면
이는 아예 이치에 맞지 않는 황당무계한 내용으로 여기게 된다.
또는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고 골치아프다고 여기기 쉽다.
여기서는 처음에 제시한 내용들을 쉽게 이해할 실험방안을 먼저 소개한다.
한편, 『유가사지론』 이나 유식학에서 제시하는 좀 더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어 유식무경, 삼능변, 또는 수행과 전식득지 등의 내용들과 같은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이어 살펴나가야 한다.
경전에서는 각 생명이 무량겁에 걸쳐 생사윤회를 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제시되고 확인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렇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현실에 임해야 하는가.
어떻게 임해야 이런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그리고 무량겁에 걸쳐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는 상태가 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우선 가장 기초적으로 첫 부분에 제시한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이에 대해 간단히 혼자서도 실험해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이 내용부터 여기서 살피기로 한다.
우선 자신이 눈을 떠서 얻는 내용들이 있다고 하자.
이들 내용은 왜 외부 세계의 내용이 아니라고 하는가.
더 나아가 자신의 정신과 별개로 떨어진 외부물질이 아니라고 하는가.
그리고 자신의 눈이 대하는 대상도 아니라고 하는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자.
현실상황에서 자신이 손으로 사과를 집어서 자신의 눈앞에 올려 놓아 보자.
그리고 자신과 상태가 비슷한 영희나 철수를 옆에 함께 위치하게 한다.
그리고 이 실험을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영희나 철수나 대부분 비슷한 상태다.
그리고 다 함께 엇비슷한 망집상태다.
따라서 잘못된 망상분별을 고집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왜 그렇게 임하게 되는가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놓고 잘 실험해야 한다.
여기서는 책상에 사과를 놓고 관찰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설령 드넓은 천체를 관찰하는 경우에도 이 내용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어떤 경우는 태양아니 달이 저렇게 동그랗게 떠 있다고 여기는 경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상황에서 이들 내용은 하나같이 자신의 얻어낸 내용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이들 내용은 자신의 마음에 얻어진 내용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밖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이에 대한 기본적 실험 내용은 다음이다.
○ 생사현실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실험해 확인하는 방안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2562-02-13-k0694-001.html#003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생사현실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실험해 확인하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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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위 내용을 간단히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자신이 돗수나 색이 다른 안경을 여러개 준비해서 쓰고 벗고를 반복해보자.
이 상황에서 평소 자신이 외부세계나 외부 대상 외부물질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이 행할 때마다, 이들 내용이 이로 인해 한번에 다 변한다.
여하튼 실험 결과는 이와 같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사정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자.
자신이 달을 보면서 자신의 눈을 손으로 눌러 대하면 두 개로 보이게도 된다.
잘 안 되면 그렇게 보일 때까지 연습해본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어느 것이 외부세계에 있는 달인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어떤 하나가 자신이 손으로 눌러 만든 달인가를 또 생각해보자.
원래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고 다니던 이는 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자.
처음 보던 내용이 외부 세상이라고 하자.
그런데 자신이 안경을 벗고 대하면 그런 외부세상이 왜 그렇게 변하게 되는가를 잘 생각해보자.
이들 내용이 모두 자신이 평소 대하던 내용이 외부 세계의 내용이라고 하자.
그리고 자신의 정신과 별개의 외부물질이라고 하자.
그리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위 실험과 같은 결과가 왜 그렇게 되는가를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실험을 통해 결국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사정이 그렇지 않기에 그렇게 된다고 이해해야 한다.
이제 자신과 상태가 거의 비슷한 영희나 철수를 옆에 함께 위치하게 한다.
그리고 위 실험을 행해보자.
그러면 그 사정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메뚜기나 바퀴벌레 개미 파리 등은 자신과 상태가 비슷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메뚜기나 바퀴벌레 등을 옆에 놓고 실험해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더 이상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다만 이 경우는 언어가 소통이 안 되기에 어려움이 많다.
그런데 여하튼 위와 같은 실험을 해보기로 하자.
그래서 옆에서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게 한다.
그러면 그 때마다 영희나 철수는 뭔가가 나타나고 사라지고 한다고 보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을 옆에서 자신이 지켜보기로 하자.
그러면 이 상황에서 별 변화를 볼 수 없다.
그리고 여전히 사과는 그대로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도 영희와 철수는 그 상황에서 눈을 감고 뜨고를 반복하는 가운데 그런 보고를 한다.
그래서 이 상황의 의미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그 상황에서 철수나 영희가 눈을 떠서 사과 모습을 본다고 하자.
이 때 그 내용은 철수나 영희 영역안에서 얻어지는 어떤 변화이고 내용이라고 추리하게 된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서 이심전심으로 그 사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영희나 철수의 상황은
자신의 처음 눈을 뜨고 감는 가운데 경험하는 그 상황과
사정이 마찬가지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처음 눈을떠서 대한 그 일체는 사실은 자신 마음안의 내용이다.
그래서 이것이 자신의 눈이 대하는 외부 대상도 아님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또한 자신의 마음과 떨어져 있는 외부 세계 내용이 아님을 확인해야 한다.
또한 이들 내용은 자신의 마음과 동떨어져 있는 외부물질이 아님을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제 두번째 실험으로 가보자.
그 상황에서 사과를 하나 놓고 이 사과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네고 다시 돌려 받고 해보자.
분명히 자신의 손이 그 사과를 접촉할 때 촉감을 얻는다.
영희나 철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의 손이 상대한 대상은 그 사과라고 여기기 쉽다.
이 경우도 잘 이해해야 한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동작을 똑같이 하면서 눈을 감는 실험을 해보자.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런 동작을 못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또 그 상황에서 자신이 그 직전에 얻던 촉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촉감을 얻는 데 기여한 것은 자신의 눈이 본 그런 내용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두번째로 자신의 손이 대한 대상도 마찬가지다.
즉, 자신의 시각정보 안에서 어떤 부분이 어떤 부분을 만지거나 대해서
자신이 촉감을 얻는 것이 아니다.
또 자신이 그 상황에서 어떤 동작을 행한 대상도 그런 시각정보가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지 현실에서는 그 상황에서 시각을 통해 그런 내용을 함께 같이 얻는 것 뿐이다.
그래서 자꾸 그렇게 시각정보의 그 부분이 곧 외부대상이나 동작의 대상인 것처럼 잘못 여기게끔 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 그렇게 여기게 되는 데에는 깊은 사정이 있다.
이 사정은 따로 자세히 살핀다.
그러나 여하튼 그런 사정 때문에
현실에서 각 주체는 처음에 일으킨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또 그 상황에서 도무지 잘 벗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위와 같이 실험을 통해서
자신이 눈을 떠 보게 되는 내용이
자신의 눈이 대하는 대상도 아님을 먼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외부세계나 마음 밖의 외부 물질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곧 마음안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제시받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망집을 일으키고 대하던 입장에서는 다시 다음의 망집을 일으키기 쉽다.
즉,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된다.
사정이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자신이 현실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마음에서 얻고 또 어떤 분별을 행한다.
그것은 그런 내용에 해당하는 무언가 실다운 것이 자신의 마음 밖에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다시 고집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 실험부터 잘 살펴야 한다.
처음 사과를 하나 놓고 눈으로 보고
그 사과를 자신의 손으로 만지는 실험을 놓고 다음을 잘 살펴보자.
이 상황에서 자신이 눈으로 본 내용이
자신이 손으로 만진 촉감안에서 찾아지는가.
그렇지 않다.
매번 사과를 눈으로 보는 가운데
그 사과를 손으로 만지면 그 촉감을 얻는 경험을 반복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그 상황에서 자신이 눈으로 본 내용 안에서 촉감이 찾아지지 않는다.
즉, 그렇게 촉감에 해당한 내용이 시각정보에서는 찾아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정작 눈으로 사과로 여기는 그 부분을 손을 대면
매번 그런 촉감을 그렇게 얻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
한편, 반대로 촉감을 기준으로 잡고 살펴보자.
그리고 그런 촉감에서 자신이 눈으로 본 그런 내용이 찾아지는가를 살펴도 마찬가지다.
촉감과 눈으로 본 내용은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사정은 그렇다.
그래도 그렇게 각 내용을 반복해 얻게 된다.
이러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사정이 그러함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처럼 자신이 그런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반복해 얻는다.
그런데 사정이 그러니까 자신이 눈으로 본 모습은 촉감에 있어야 한다고 고집한다고 하자.
그것은 잘못임을 위의 사례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앞의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즉, 현실에서 자신이 일정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매번 반복해 얻는다.
사정이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 밖에 그런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고 하자.
또는 그런 내용이 마음 밖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고집한다고 하자.
이는 앞의 입장과 비슷하다.
그리고 잘못이다.
그래서 다음 관게를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자신이 사과로 보는 모습에 손만 대면 촉감을 느낀다.
=> 그러니 사과로 보는 모습에는 촉감이 들어 있어야 한다.
=> 그런데 아무리 눈으로 보는 사과 모습을 뚫어지게 살펴보아도 촉감은 찾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실재 본 바탕과 눈을 통해 보는 내용의 관계도 이에 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실험을 해보자.
자신은 그렇다고 하자.
그리고 이제 옆에서 영희나 철수가 무언가를 보고 만지는 모습을 관찰해보자.
그런 경우 꼭 자신이 사과라고 보는 그 내용을 대상으로 해서
무언가를 보고 각 감각도 얻는 것처럼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대상으로 동작을 하는 것처럼 잘못 여기기 쉽다.
그렇게 잘못 여기게 되는 배경사정은 앞과 사정이 같다.
그래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서 업을 행해나가게 된다.
위와 같은 바탕에서는 그런 망집을 일으키는 것이 대단히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된다.
그리고 최소한 현실에서 무언가를 행하고 생활하려면 이런 현실 사정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또 한편
그 주체가 이후 그런 전제와 바탕에서
지극히 극심한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받아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
원래는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각 주체가 망집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이 그렇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해나간다.
그러면 그런 전제에서는 그 이후로 극심한 고통을 쉼없이 받아나가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미리 원인 부분을 제거해야 그런 상태를 예방할 수 있다.
또 한편, 그리고 원인 단계에서 제거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래서 이 문제를 살피는 것이다.
>>>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Frederic Recrosio - Quand Elle Tonne.lrc
영희나 철수가 무언가를 보고 만지는 과정에 대해서 관찰해보자.
이 실험은 간단하다.
영희나 철수가 눈을 떴다 감았다 한다.
그런 가운데 무언가가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손으로 사과를 만지면 촉감이 느껴진다고 보고한다.
또는 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보고한다.
이런 상황을 자신이 관찰하는 것이 이 실험이다.
그리고 보고서를 쓸 때만 이 상황을 잘 해석하면 된다.
그런데 대부분 이 상황을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고 적게 된다.
'자신이 사과로 보는 것'을 영희나 철수가 대상으로 삼아서 무언가를 본다고 잘못 이해한다.
또 '자신이 영희나 철수의 눈으로 보는 것'이 이 과정에서 관계해서 영희나 철수가 보게 된다고 잘못 이해한다.
또 '자신이 영희나 철수로 보는 이'가 어떤 내용을 보는 주체라고 잘못 이해한다.
앞 내용을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이 상황을 그렇게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의 본 내용을 이처럼 잘못 이해하면 곤란하다.
영희가 사과를 만지는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렇게 각 내용의 정체를 잘못 이해한 가운데 학술 보고를 하면 곤란하다.
이 상황은 그가 이해하는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앞과 같은 이해는 잘못이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이해가 잘못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
이제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바꾸어 다시 실험해보자.
이번에는 갑수 자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실험을 한다.
그리고 이를 영희가 관찰해 보고하기로 한다.
이처럼 상황을 바꾸어 보자.
앞에서는 영희와 철수가 그런 실험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를 앞처럼 잘못 해석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런 가운데 이들 실험이 각기 무엇이 같고 다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제 갑수 자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한다.
그런 가운데 영희가 이 상황을 다음처럼 이해해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해석이 맞는가를 살펴보자.
즉, 갑수자신이 무언가를 본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영희는 다음처럼 이해한다고 하자.
우선 '영희가 눈을 떠 본 어떤 한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부분을 갑수 본인이 대상으로 삼아서 그런 내용을 얻는 다고 영희가 이해한다고 하자.
한편, '영희가 갑수 본인의 눈으로 보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으로 갑수 본인이 어떤 내용을 보게 된다고 영희가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영희의 이해가 맞는가를 검토해보자.
그런데 그런 영희의 이해는 잘못이다.
그런데 영희의 이해가 옳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제 그 상태에서 영희가 눈을 감아 보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태에서는 갑수 본인은 눈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갑수 본인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영희의 처음 이해는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만일 '영희가 눈을 떠 본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서 갑수 본인이 무언가를 보게 된다고 하자.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제 그 상태에서 영희가 눈을 감아 보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태에서는 갑수 본인은 볼 대상이 없어서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영희의 처음 이해는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갑수 본인은 '영희나 철수와 같은 다른 이의 마음안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
무엇을 보는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희나 철수도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사과 모습과 같은 어떤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
무언가를 보거나 만지는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위 실험에 대한 처음 해석은 잘못이다.
이렇게 해서 기본적인 오류에 대한 실험은 마친다.
그런데 망집 증상은 이것으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 경우 다음 내용이 다시 제시된다.
즉 자신이 무언가를 보게 될 때는 그것은
그런 과정으로 자신이 마음에서 얻어낸 마음안 내용이다.
즉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다시 다음 주장을 하기 쉽다.
즉, 그런 내용을 자신이 얻게 된 배경에는
자신의 마음 밖에 자신이 본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다시 주장하기 쉽다.
또는 그와 비례하거나 유사한 것이 마음 밖에 실재해서
그런 내용을 눈을 뜨면 보게 된다고 주장하기 쉽다.
물론 이런 주장은 일단 앞 주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이 문제도 또 다시 살펴야 한다.
그래서 위 문제를 살필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이미 자신이 얻은 여러 내용들간의 관계부터 잘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현실에서 이미 얻어놓은 각 내용들간에서
과연 앞 주장과 같은 관계가 발견이 되는가부터 기초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 경우 실험은 같다.
사과를 하나 놓고 눈으로 본다.
또 손으로 두드리면서 소리도 들어본다.
또 코를 대어서 냄새도 맡는다.
그리고 입으로 맛도 본다.
그리고 손으로 만지면서 촉감도 얻는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가능하면 시까지 써 본다.
현실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얻어내는 내용이 여러 가지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자신이 각기
같은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서 이런 것을 한 것인가부터 잘 검토해야 한다.
앞에서 대상이라고 여긴 것이 대상이 아님을 제시했다.
그런데 현실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얻는 입장은
분명 손으로 하나의 사과를 만지는 그 상황에서 각기 다른 내용을 얻는다고 보게 된다.
즉 자신이 사과라고 보게 되는 그 부분을 놓고
손을 갖다 대는 그 순간 => 촉감을 얻는다.
이런 관계를 반복 경험한다.
그래서 결국 눈으로 보는 사과와
촉감을 얻게 된 내용은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얻는 색,성,향,미,촉,법은 모두 사과와 관련된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들 각 내용을 놓고 서로 대조를 해보기로 하자.
한 영역에서 어떤 내용이 얻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 얻어지지는 않는다.
그 상호 관계를 찾아보면 그런 관계성은 찾아지지 않는다.
손을 마주칠 때마다 귀로 매번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자신이 눈으로 본 손 모습과
귀로 들은 소리가 어떤 점에서 같은가를 비교해보자.
그런 관계성을 검토하면 이 두 내용은 어떤 한 부분도 같지 않다.
그런데도 매번 손을 마주치면 손과는 엉뚱한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엉뚱한 촉감도 얻는다.
현실에서는 이런 관계로 한 영역에서 어떤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한 영역에서 그처럼 어떤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것을 들고 다른 영역으로 무리하게 그 내용을 밀어 넣으려 하지 않는다.
즉 귀로 듣게 된 소리를 눈의 영역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이 모두 마음안 내용임을 확인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그런 내용을 마음 밖 실재 영역에 무조건 밀어 넣으려 한다고 하자.
그것은 앞 경우 귀로 듣게 된 소리를 눈의 영역으로 무조건 밀어 넣으려는 것과 성격이 같다.
그런데 문제는 사정이 그렇다는 증거를 하나도 얻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그 실재의 사정이 그렇다고 고집을 갖는다.
이런 자세가 일단 문제다.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은 모두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마음 밖의 내용이 무언가를 찾는다.
그래서 마음이 마음 밖의 내용을 놓고 찾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마음 밖 내용이 '마음안에 얻어진 내용'과 같다거나, 비례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관계해 얻어진 내용이 실다운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야 자신이 현실에서 임하는 모든 내용이 실답게 여겨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망집 증상이 이후 초래하는 내용이 대단히 좋지 않다.
그리고 이 부분이 생사현실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살펴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대강 살폈다.
그런데 처음에 제시한 문제를 놓고 다시 설명해야 한다.
결국 처음에 일반적으로 자신이나 영희 철수가 무언가를 본다.
또는 만지거나 일정한 동작을 행한다.
이 경우 그 대상이 된다고 이해한 내용들이 사실은 그 대상이 아니다.
위 내용은 결국 이를 살핀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은 잘못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해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상태가 대단히 안 좋게 된다.
그것이 생사고통의 문제다.
이 점을 여기에서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렇게 잘못된 망상분별을 계속 붙들고 업을 행해나가게끔 하는 사정이 있다.
그 사정은 위 실험에 이미 다 들어 있다.
그 사정은 앞에 제시한 것과 같다.
그러나 영희나 철수가 사과를 놓고 눈을 감고 뜨고 하는 동작을 한다고 하자.
그리고 결과를 보고한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이 눈을 떠서 그 상황을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다 보면 자신이 눈으로 본 사과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눈으로 본 영희나 철수의 눈이 있다.
이들은 모두 영희나 철수가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 무언가 관계가 있다고 여기게끔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관계성을 자신이 매번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이후 조금 성격이 다른 논의로 옮겨 가게 된다.
이것도 실험은 거의 비슷하다.
자신이 위 상황에서 사과를 치우거나, 무엇으로 덮어 가리거나 한다.
또 방안의 불을 켜거나 끄거나 해본다.
또 영희나 철수의 눈을 무언가로 덮거나 덮지 않거나 해본다.
현실에서 이들 각 내용이 영희나 철수가 보고하는 내용에 변화를 가져다 준다.
여기서 연기(인과)관계의 공식을 살펴야 한다.
---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
---
앞에서 행한 실험에서는
이것이 부분적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점을 살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앞에 나열한 내용들이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영희나 철수가 무언가를 보거나 만지는 과정을 옆에서 관찰할 때와,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보거나 만지는 과정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이 점을 다시 주의해야 한다.
●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Black M C'est tout moi.lrc
Lab value 불기2563/01/06/일/13:13
앞에 대략 내용을 살폈다.
그런데 우선 이렇게 살핀 내용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평소 자신이 눈을 떠 대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적으로 이를 자신과 떨어져 있는 외부 세계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을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정신과는 별개의 외부 물질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한편, 이들 내용은 영희나 철수와 함께 얻는 같은 내용으로서
모든 이가 다 함께 객관적으로 얻는 실재라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영희와 손을 붙잡고 악수를 한다고 하자.
그리고 철수에게 사과를 건네고 철수는 받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 상황에서 자신이나 영희의 손이나 사과를 놓고 그렇게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데 처음 실험을 통해 그렇게 보던 내용들은 알고보면 자신의 마음 안 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아님을 먼저 확인한다.
그런데 이것은 특히 평소 자신이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것들에서 갖는 의미가 중요하다.
즉, 평소 자신이 가장 집착을 갖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과 자신의 것, 자신의 재산, 자신의 가족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대하는 영희 철수와 같은 타인. 이런 부분들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에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내용들이 일단 자신이 평소 이해하던 그런 지위와 그런 성격들을 갖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 이해하던 세계와 자신의 내용은 사실은 엉터리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다시 이런 이해가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또 살펴야 한다.
처음 일반적으로 잘못 이해하는 내용을 바탕해 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런 고통을 겪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굳이 이런 망상분별이 잘못된 분별 판단임을 문제삼을 이유 자체가 없다.
그런 경우 위와 같은 논의는 단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의미 밖에는 없다.
즉 자신이 대하는 내용이 과연 그 정체가 무얼까 궁금했는데 그 의문을 해소한다는 의미 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물론 현실에서 희희낙락하며 임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의 바탕에서 견디기 힘한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그런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것을 벗어날 것인가가 문제된다.
한편 그런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사실은 알고 보면 그 전에 그런 생사고통을 겪게끔 자신이 무언가 원인이 되는 업을 행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또 그런 행위(업)을 행하게 되는 데에는 일정한 분별 판단이 전제가 된다.
사정이 이와 같다.
그래서 그 생사고통을 제거하려면 미리 그 원인단계에서 원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사고통을 미리 예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예방하려면 미리 어떤 자세로 세상을 대하고 임했어야 하는가.
이것을 또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위 내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런 사정 때문에 위 내용들을 하나하나 살핀 것이다.
그래서 위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집착하고 평소 대하는 그런 내용들이 사실은 그런 내용이 아님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신경을 기울이고 자신이라고 대할 부분은
오히려 차라리 다른 부분에 따로 숨겨져 있음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평소 앞과 같은 망상분별에 바탕해 행하던 업은 중지해야 한다.
그것을 원인으로 생사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한편, 그 반대로 그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수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올바른 상황판단을 바탕으로 수행에 잘 임해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이런 사정과 함께
본 사정이 위와 같은데도 일반적으로 망집을 일으켜 임하게 되는 사정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유가사지론』에서나 경전에서 내용을 제시할 때는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형태와 엇비슷하게 내용을 제시하게 되는 사정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본래 어떤 주체가 세상과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런 감각현실 및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에서는
그런 내용을 비록 그런 형태로 얻는다.
그런데 정작 그 주체가 이해하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제시하려는 입장에서
그런 사정을 상대에게 이해시키고 설명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일단, 상대의 바탕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그 부분을
일단은 시설 방편을 통해 여하튼 무언가로 가리켜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설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정 때문에 일반적으로 잘못 이해하는 내용을 일단 그대로 받아들여 설명하게 된다.
그래서 이는 강에 건너가게 하기 위한 뗏목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뗏목을 이런 취지로 제시해 설명을 하게 된다.
그런 경우 망집상태에서는 다시 그런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경전이나 논서가 제시한 것으로 잘못 오해하게 된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런 내용은 기본적으로 잘못이다.
그렇지만, 망집을 일으킨 이를 상대로 설명하고자 할 때는 별 도리가 없다.
그런 망집 상태에 있는 상대가 그 용을 이해하게끔 하려면
상대 입장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내용을 그렇게 시설해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내용을 살피고 설명할 도리 밖에는 없다.
따라서 그런 사정까지 미리 잘 이해해야 한다.
원래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볼 때 그것이 무엇을 대상으로 해서 보게 된 것인가.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마음안의 내용은 그런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안의 내용을 가지고 이 결과물을 얻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는 원래 곤란하다.
사정이 그렇다.
본 바탕은 어떤 주체가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본 바탕 실재 영역에서 무엇을 얻어내 제시할 도리는 본래 없다.
또 그런 결과 얻어진 감각현실도 사실은 사정이 마찬가지다.
비유하면 꿈과 같다.
꿈에서 황금이 없어졌다고 하자.
그 사정을 꿈을 꾼 침대의 배게나 이불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경우 그 내용을 일단 시설해 설령 제시해도 상대가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도리도 없다.
그러나 상대가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은 해야 한다.
생사현실의 상황이 이와 같다.
경전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대상이나 주체에 대한 내용이 잘못이라고 제시한다.
그런데도 그런 대상이나 주체를 가지고 설명을 행한다.
그래서 조금은 이상할 수 있다.
일반적 입장에서 각 부분이 일정한 관계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그처럼 시설해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입장에서는 수없이 매번 반복해서 그런 내용을 대한다.
그래서 확실하게 옳다고 보는 그런 내용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처음 제시하는 세속제 내용이다.
즉 이는 세속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통용되는 진리(세속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세속제를 제시하는 취지는
이를 통해서 본 바탕과 현실의 본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함이다.
즉 승의제를 이해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뗏목)이다.
따라서 이런 기본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유가사지론』에서 제시하는 내용,
처음 안식과 관련된 자상, 소의, 소연, 조반, 작업 등의 내용을 살펴나가야 한다.
『유가사지론』에서 안식에 대해 살피는 이들 항목을 짧게 줄여보면
자-소-연-조-작--이렇게 된다.
여하튼 이 내용을 잘 살핌으로서 이를 통해 본래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런 바탕에서도 다시 일반적 입장이 취하는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일반적 입장에서 이떤 사정으로 그렇게 현실을 대하게 되는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이 사정을 설명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사정을 그렇게 잘못 이해하는 이를 상대로 설명해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다시 자-소-연-조-작..의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이 상황을 쉽게 비유로 이해하려면 다음처럼 이해하면 쉽다.
게임기 안에서는 일정 부분에 커서를 대면 어떤 아이템이 나타난다.
그리고 첫 스테이지에서 어떠어떠하게 행하면 다음 스테이지에서 캐릭터가 어떤 상태로 변한다.
예를 들어 때로는 돼지 캐릭터로 변하거나 또는 왕 캐릭터가 변한다.
그것은 그 게임에 임하는 이상 게임에 임하는 다수가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는 그런 내용이다.
그것은 게임의 법칙이다.
그런데 이런 게임안의 내용을 가지고
그 게임의 본 사정, 게임 화면 밖의 본 바탕의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게임안에서 반복해서 안타깝고 고통스런 상태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 게임안에서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고 실천해가야 한다.
게임안에서는 대단히 그 관계가 반복해서 얻게 된다.
그래서 그 내용이 맞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은 그 본 사정은 그렇지 않음을 처음 잘 이해해야 한다.
화면의 커서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이 어떤 화면의 색소를 맞 닿는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아이템이 생겨나고 화면이 바뀌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그 사정을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서는 반복해서 대하는 그 내용을 놓고 이 사정을 잘 이해해나가야 한다.
● 망집을 일으키는 사정의 이해
생사에 묶이지 않으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앞에 제시한 여러 판단들이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이 어떤 이유로 잘못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꾸 위와 같은 형태로 잘못된 분별을 일으켜 현실을 대하게끔 된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그 배경 사정까지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에서 자신이 사과를 들어서 철수에게 건넨다고 하자.
또는 영희가 자신에게 사과를 건네서 자신이 받는다고 하자.
현실에서는 이런 일상적 활동을 한다.
이런 현실 상황을 놓고 위 내용에 대해 잘 판단을 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분명 자신의 손이 그 사과를 상대해 불잡고 또 영희에게 건넨다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고 부분은 그런 동작을 하는 대상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또 이 현실에 그런 행위도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그런 행위를 하는 자신도 그런 형태로 있다고 여기면서 현실에 임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을 살펴 이해하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인 핵심이다.
그리고 또 지금 살피는 『유가사지론』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이 된다.
그런데 더 나아가 다음 내용까지 살펴야 한다.
이런 내용은 잘못된 망상분별이고 잘못된 판단이다.
그러나 이들 내용이 잘못임을 설명하고자 할 때
이들 잘못된 내용을 가지고 설명을 행하게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설명하게 되는가 하는가를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들을 결국 『유가사지론』에서 제시된 내용을 통해 기본적으로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 임해 수행을 잘 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른 중생도 그처럼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 망집을 제거함과 수행
수행에 있어서 잘못된 망상분별이 잘못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내용이 생사현실에서 이후 어떤 방향을 제시해주는가를 살펴야 한다.
일단 현실에서 사과를 잡고 건네는 활동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런 사과가 그런 동작을 하는 행위 대상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그런 동작이 실답게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 그런 동작을 하는 자신이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망상분별을 일으키게끔 된다.
그런데 이것이 근본 무명(어리석음)으로부터 발생한 망상분별증의 표면적 증상이다.
즉, 그 근본 바탕에서 일으킨 근본어리석음 무명 망집 상태에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현실의 의식 표면에서 다시 위와 같은 망상분별과 집착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망집에 바탕해서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3 악도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위와 같은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겪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증상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현실에서 이들 분별이 잘못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현실적으로 충분하지 않다.
원칙적으로 위와 같은 내용을 이론적으로만 이해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내용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자.
그러면 곧 생사현실 안의 모든 생사고통을 다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여기기 쉽다.
그러나 생사현실 사정이 그렇지 않다.
현실이 실답지 않음만 관하면 온갖 생사고통을 곧바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수행은 오로지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론적으로 잘 관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가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이를 통해 벗어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역시 그 자신만 놓고 보면 그런 업을 중단할 필요성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업으로 생사고통을 겪어도 역시 위와 같이 그 이론만으로 극복해 벗어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정작 꿈은 아니다.
현실은 정작 꿈과 달리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현실이 실답지 않다.
그러나 대단히 실답게 여겨지는 사정이 있다.
즉 하나하나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이는 수많은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와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받아나가게 된다.
이런 점이 꿈과는 다르다.
그래서 현실을 대부분 대단히 실답게 여기며 대하게끔 된다.
그래서 이 현실문제의 극복이 꿈처럼 쉽고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꿈과는 달리, 생사현실에서 겪는 고통은 수행으로 달리 대처할 필요가 있게 된다.
이런 사정에 대해서는 『회쟁론』에서 살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참조하기로 한다.
●실답지 않은 현실 내용을 실답게 여기게 되는 사정
https://buddhism007.tistory.com/3825#032
sfed--회쟁론_K0630_T1631.txt
sfd8--불교단상_2561_12.txt ☞ ☞●실답지 않은 현실 내용을 실답게 여기게 되는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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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렇다 해도 꿈은 아니다.
그리고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여겨지게끔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배경 사정이 있다.
간략하게 그 사정을 살피기로 하자.
이미 그 대강의 사정을 위에서 살핀 것이기도 하다.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론적으로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여전히 현실에서 손을 뻗쳐 사과를 집으면 그 때 촉감을 느끼게 된다.
또 사과를 집어 영희에게 건네면 그 사과부분만 떼어 옮겨가 영희가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수많은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와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받아나가게 된다.
그래서 주어진 현실을 대부분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며 받아들이게끔 된다.
그런 가운데 당장 자신의 손발이 잘리고 부러지는 상태처럼 생사고통의 상황에 처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상황 자체가 실답지 않고 잘못된 분별임을 이론적으로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것만으로 곧바로 그 생사고통을 극복하기 힘들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론적으로 위와 같은 내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론대로 현실에 임할 수 있게 될 수 있도록 수행하는 노력이 원칙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곧바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현실 사정상, 그런 바탕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묶이지 않기 위한 수행이 함께 필요하다.
그래서 예방 차원에서 먼저 현실에서 의식표면에서 일으키게 되는 위와 같은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한 업을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쌓여진 업의 장애를 수행을 통해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칼로 자꾸 손을 베내 피를 흘리는 상황과 같다.
그 상황 자체가 실답지 않고 이를 통해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원칙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그런 생사고통을 직접 겪는 상황을 그 이론만으로 곧바로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그처럼 피를 흘리는 상태를 예방하는 차선책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피를 흘리지 않으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일단 그처럼 칼로 베게 하는 원인이 되는 망집과 그에 바탕한 업을 중지해야 한다.
그런데 또 그것만으로 당장 피가 멈추지는 않는다.
과거에 베낸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가 더 이상 흐르지 않도록 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칼로 손을 자꾸 베게 하는 행위를 멈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과거에 쌓아 놓은 업의 장애까지 함께 제거하고 치유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즉 생사고통을 받는 원인을 새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한편, 과거에 만들어 놓은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된 상태를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즉 일반적으로 행하는 분별이 망상분별로서 옳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런 망집에 바탕한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업의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
즉, 기본적인 계에 해당하는 수행덕목 즉 보시, 정계, 안인, 정진 항목을 잘 성취해 나가야 한다.
이런 수행덕목이 그 주체의 업의 장애를 제거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런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망집증상을 발생시키는 배경사정까지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즉, 현실은 실답지 않고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각 주체는 생사현실이 그처럼 있다고 여기며 임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되는가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생을 출발하기 전 단계에서 근본적으로 이런 망집을 일으키게끔 하는 부분까지 잘 제거해야 한다.
처음 생을 출발할 때 하필 그런 환경에서 그렇게 잘못된 판단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상태로 삶을 대하게끔 삶을 출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이면 사람, 축생이면 축생, 그리고 각 주체마다 다르다.
제 각각 독특한 개성과 자질을 갖고 삶을 출발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되는가를 함께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위 부분도 앞의 수행덕목을 실천할 때 잘 고려해야 한다.
생사현실에서 이와 같은 증상을 잘 제거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 망집이 이후 생에도 계속 영향을 미쳐 악순환을 밟아 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두 측면에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한편 자신만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래서 온 생명을 모두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한다고 하자.
이런 수행자를 보살 수행자라고 칭한다.
이런 경우는 다시 중생들이 생사고통을 받는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상태에서 중생들에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노력을 다시 기울여야 한다.
그런 경우 먼저 수행자 자신부터 앞과 같은 수행을 통해 스스로 생사에 묶이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편 생사현실에 들어가서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방편을 잘 구족해 임해야 한다.
즉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생사현실에서 역시 앞의 기초적인 계의 항목을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이런 바탕이 되어야 이후 지혜 자량을 구족해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중생을 잘 제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보살 수행자의 수행은 중생이 임하는 3 계 6 도에 펼쳐져 있게 된다.
그래서 이것이 곧 각 현실 상황에 맞추어서 점차 수행을 행해가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사정이 곧 유가사지론에서 17 지로 나열하는 항목이 된다.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하면 한편으로는 일반인의 경우와 사정이 같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대하는 감각현실은 대단히 생생한 형태로 매 순간 반복된다.
그리고 또 이에 바탕해 일으키는 분별은 대단히 명료하게 행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분별내용이 그 현실에 그처럼 실답게 있다고 여기게끔 되는 측면이 있다.
원래 수행자가 처음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부터 수행을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처음 망집에 바탕해 집착하고 대하던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배가 침몰하는 상태에서 신발에 붙어 있는 먼지와 같다.
그런 상황에서 신발에 붙은 먼지에 초점을 맞추고 집착해 매달린다고 하자.
그러면 위험해진다.
그런데 현실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항목들이 대부분 사정이 위와 같다.
즉,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면 아무 쓸모도 없다.
또 이후 생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대단히 나쁜 과보를 받게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내용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임한다.
그리고 정작 자신이 올라탄 배가 침몰하는 것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처음 현실 일체가 무상함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1 생을 마친다고 자신의 삶이 끝나고 아주 없게 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넓고 길고 깊게 인과를 관찰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업을 행하면 장차 무량겁에 걸쳐 어떤 생사고통을 받는가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업을 잘못 행하한다고 하자.
그러면 살아서도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그 뒤에도 무량겁에 걸쳐 장구한 고통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일단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을 통해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가는 상태로부터 벗어나와야 한다.
○ 수행에서 악취공견의 문제점
일체가 차별없이 실상이 공하다.
이런 사정을 잘 관해서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에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던 것을 제거해야 한다.
또 수행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그 어려움을 제거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 이 내용을 적용해야 한다.
한편, 수행이나 수행으로 얻는 결과에 대해 이를 잘못 적용하면 곤란하다.
자칫 수행이나 수행결과에 대해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는 내용을 적용한다고 하자.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고 실답지 않다.
그래서 그런 사정으로 아무 수행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기게 되기 쉽다.
그리고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하다고 여기고 잘못 임하기 쉽다.
그러면 곤란하다.
원칙적으로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렇기에 그 내용만으로 생사고통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기기 쉽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정작 꿈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현실은 일반적으로 매순간 생생하게 얻는다.
그리고 명료하게 분별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대단히 실답게 여겨지게끔 된다.
그래서 현실이 실답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실답게 여겨지게 된다.
그런 경우 그처럼 실답게 여겨지게 되는 그 정도가 있다.
또 그 안에서 그만큼 대단히 생생하게 극심하게 겪게 되는 생사고통이 있다.
그리고 그 정도에 비례헤서 이를 극복할 수행이 필요하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고 실답지 않다.
그런데 그 내용만 잘 이해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억울하게 자신이 묶여 손과 발이 잘라지는 상태에 처했다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 그 생사고통을 평안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런 상태에서 또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극복하게 되기 쉽지 않다.
일체가 공하고 실답지 않다.
그런데 그 내용은 수행 부분에 먼저 적용해야 한다.
즉 먼저 생사고통을 받게끔 하는 업을 중단하고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수행도 대단히 힘들다.
그리고 다시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과정에 먼저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어려움이 실답지 않다는 것을 잘 관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 이들 내용을 먼저 적용해야 한다.
즉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고 실답지 않다.
이런 내용을 잘 이해한 바탕에서 이들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부처님이 경전에서 제시한 것처럼 수행을 잘 정진해 성취해야 한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 이 내용을 제시하는 취지를 잘못 이해해서 이를 거꾸로 적용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하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또 원래 망집에 바탕해 행하던 반응과 업이 있다.
이런 업을 그대로 행해도 된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또 그렇게 해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아도 역시 무방하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그런 경우 막상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론처럼 그렇게 쉽게 고통을 극복해 벗어나지 못한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 일체가 공하다는 그 이론을 잘못 취해 적용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매번 하필 극심한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 나가게 된다.
이는 공함을 수행과정에 잘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망집에 바탕한 업을 끊고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수행 부분에서 잘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수행을 이들 내용을 바탕으로 잘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 처하는 것이다.
설령 일반 현실에서 이런 수행이 설령 잘 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직접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에 처하면 그런 수행마저도 잘 안 된다.
그런 것이 현실이다.
이런 경우 일체가 차별없이 공함을 잘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이를 잘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그 수행을 끝내 잘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수행자가 수행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조차 그런 내용으로 잘 극복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원칙적으로 일체가 공함은 지옥과 극락에 모두 적용된다.
그러나 이런 현실 사정 때문에 처음 수행하는 입장일수록
수행 순서를 뒤바꾸지 않고 잘 밟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높은 단계의 수행자 경우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사정이 그렇기때문에 생사현실에서 기본적인 수행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망집을 일으킨 입장에서 임한다.
그 경우 각 내용을 현실에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각 기본 수행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수행을 통해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 수행이 어느 경우나 중요하다.
그렇게 된 배경사정이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이나 『유가사지론』과 같은 내용을 대할 필요가 있다.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입장은 우선 다음과 같ㄷ다.
중생을 제도하려면 먼저 중생에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상태의 중생이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망집 상태의 중생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각 내용을 전제로 놓고 설명해가야 한다.
그런 가운데 점차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마음과 관련한 내용들을 하나하나 설명해가게 된다.
생사현실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런 각 내용을 방편으로 언어시설을 통해 시설해 설명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처음 이를 통해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다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다른 중생을 제도해나가게 된다.
이런 경우에도 그 사정은 앞과 마찬가지다.
즉 이런 경우에도 중생에 눈높이를 맞추어 다시 임해야 한다.
중생은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켜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각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자꾸 망집을 일으켜 대하게 된다.
따라서 그렇게 되는 배경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체가 그 본 바탕인 실재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러나 그런 사정으로 아무렇게 생사현실에도 임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공함은 이런 내용을 제시하기 위한 취지가 아니다.
현실이 실답지 않다.
그런데 그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실답게 겪는다.
이것이 문제다.
이런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먼저 그런 생사고통을 받게끔 하는 업을 끊고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잘 성취하는데 이들 내용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계속 수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에 생멸을 얻을 수 없음을 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도 상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고통을 평안히 참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안인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생법인을 증득하게 된다.
그리고 불퇴전위에 올라 수준이 높은 수행자가 되게 된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해도 그런 바탕에서 행할 내용은 수행이다.
불퇴전위에 이르러 행할 수 있는 방편이 제한이 없다.
그리고 그로 인해 지옥도 극락과 차별없이 대할 수 있다.
그렇다해도 중생을 제도하고자할 때는 먼저 선교방편을 사용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먼저 수행자 자신이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중생제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수행자가 지옥에 가게 되는 방편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해도 중생제도를 위해서는 이를 피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위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정진해야 한다.
따라서 일체가 공하다고 하여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한 것이 아니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렇다고 하여 수행을 행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래서 아무렇게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일체가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하필 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반복해 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수행자 자신부터 고통을 받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걸려 고통받게 된다.
또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
또 다른 이에게 붙잡혀 자신의 신체가 구금당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
또는 다른 이에게 부림을 받는 상황에 놓여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 스스로도 이를 극복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는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는 한층 더 힘든 것이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그렇다고 망집에 바탕해 업을 함부로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로 인해 당장 다른 중생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게 된다.
그리고 중생제도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하필 대단히 생생하게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에 반복해 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수행자 자신도 문제다.
더욱이 중생제도에도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는 내용을 잘못 취하면 곤란하다.
즉, 악취공견에 바탕해 수행에 잘못 적용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한편 수행에 정진하는 과정이라고 하자.
이런 경우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는 사정을 잘 관해야 한다.
그리고 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 가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제시한 수행목표나 수행덕목에 대해서 잘못된 망집을 다시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즉, 수행을 하지만,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수행하면 안 된다.
원래 생사현실에서 중생들이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약으로서 수행방안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 수행방안과 목표에 집착을 일으켜 가지면 곤란하다.
그러면 그 약이 오히려 부작용을 발생시키는 독이 된다.
본래 생사현실에서 생사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망집을 일으키고 대하면
마치 최면 걸린 이가 현실에 없는 것을 자꾸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옷과 바지를 뱀이나 독사로 여기고 고통을 받는 상황처럼 된다.
그래서 이를 처음 문제라고 보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방안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그 방안으로 제시한 수행방안에 대해 다시 망집을 일으키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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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서서 자동차나 사람이 오가는 상태를 대한다고 하자.
이 경우 차를 타고 엑셀을 밟으면 차가 가고 풍경도 바뀐다.
이런 경우 대부분 거기에 그런 자동차나 사람이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 일체가 그렇지 않다고 경전에서 제시한다.
그래서 이 측면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하던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이미 있는 업의 장애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심하게 받는 3 악도에 묶여 끌려 가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망집에 바탕해 임하는 입장은 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행하던 반응과 업을 매 순간 반복해 나간다.
현실에서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상황은 삶 전반에 걸쳐서 공통된다.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대단히 안락한 가운데 희희낙락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넓게 보면 세상에는 자신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축생이 많이 있다.
축생은 인간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태에서 살아간다.
한편,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다른 이도 많다.
그런데 한 인간은 축생이나 다른 우월한 이를 대할 때 매 경우 망집에 바탕해 행해간다.
우선 현실에서 한 주체는 집착하는 좋음을 당장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나쁨과 고통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망집에 바탕해 이를 위해 매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당장 취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반응이 있다.
그래서 이런 반응을 매 순간 행해가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게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현실에서 그렇게 해서 죽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장구한 생사고통을 3 악도에서 받아나가는 서막이다.
그리고 경전에서 이런 사정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중요하다.
망상분별은 옳지 않은 내용이다.
본 바탕에서나 현실에서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그렇게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그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에 바탕한 업도 중지해야 한다.
반대로 수행의 방향으로 행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에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경전에서 제시한 내용을 잘 실천해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것이 잘 안 된다.
우선 그 가장 근본적인 사정은 망상분별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리에 저기 지나가는 영희는 분명 영희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생각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 제시한 내용이다.
한편,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이 어디론가 가야 겠다고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하자.
그러면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그 부분이 함께 따라 변화한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외부 세계의 내용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한편, 그런 부분을 영희나 철수는 자신이라고 여기는가, 여기지 않는가.
또 자신이 영희나 철수라고 여기며 대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또 영희나 철수는 또 제각각 자신이라고 여기는가. 여기지 않는가.
영희도 그렇고 철수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객관적 실재인 것처럼 잘못 여기게 된다.
한편, 자신이 사과를 손으로 붙들고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해보자.
이 상황에서 그것이 사과로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사과로 보인다고 답하게 된다.
다시 그 사과의 정체와 지위가 무언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래서 그 사과가 자신의 눈이 대한 대상인가 아닌가를 묻는다고 하자.
또 그 사과는 자신의 손이 대한 대상인가 아닌가를 묻든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그것은 자신이 대한 대상이라고 답하게 된다.
현실에서 사과를 손에 쥐고 옆에 있는 영희나 철수에게 건넨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자신과 영희와 철수가 다 그것을 사과로 여기고 대한다.
또 한편 제각기 그것은 자신의 눈으로 대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런 식으로 대하게 된다.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 철수도 자신처럼 답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들 내용도 역시 객관적 실재인 것처럼 잘못 여기게 된다.
현실 사정이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내용을 망상분별이라고 제시한다.
경전에서는 그런 내용이 하나같이 현실이나 본 바탕에서 얻어낼 수 없음을 제시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앞과 같은 내용이 오히려 더 옳고 적절한 내용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면서 대하게 된다.
그래서 그것이 망상분별인 사정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즉 그것이 옳지 않은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왜 자신이 그런 망상분별에 묶인 채 삶을 살아가게 되는가.
현실에서는 이런 잘못된 망상분별 내용을 오히려 대단히 옳고 적절한 내용으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근본 사정을 다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현실에서 의식 표면의 내용만 놓고 살펴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표면적인 의식 부분에서 각 영역에서 얻는 내용들이 있다.
이들은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 및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본 바탕인 실재가 공하다.
그리고 여기에 진짜라고 할 실체는 없다.
이런 내용을 무아 무자성 공으로서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만 살펴서는 앞의 문제가 간단히 잘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켜 삶을 시작하게 된 그 배경까지 잘 살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 결국 『유가사지론』 첫 부분에서부터 살펴나갈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본적인 수행을 통해
일단 그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런 상태에서 이들 사정을 살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아니면 이들 내용을 살펴나가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시시비비를 따지고 다툼에 임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사과를 놓고 서로 차지하고자 치열하게 다툰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는 위 문제를 살필 바탕이 마련되기 힘들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정려 수행을 해서 색계 무색계의 사정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마음의 정체도 살펴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 바탕이 잘 마련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론상 이들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하자.
그리고 현실에서 그에 바탕한 수행이 잘 안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우선 당장은 자신이 대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집착에 바탕해 행하는 활동부터 일단 중단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은 자신이 바다에 빠져 들어가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엉뚱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분주히 임하고 있다.
그래서 우선 당장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명이 우주보다 가치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를 우선 숫자로 대강 최소한 469 조원은 초과한다고 적어 보자.
그런데 그런 자신의 생명과 신체가 죽음을 맞이해 언젠가는 0 의 상태가 된다.
자신은 자신의 신체나 자신의 것에 대해 평소 애착을 갖고 대한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하면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0 의 상태가 된다.
이 사실을 먼저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가운데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상태다.
그래서 평균잡아 하루당 100 억원을 초과하는 가치가 없어져 가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사과나 신발 자동차나 집 하나를 더 취하고 취하지 못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아님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런 입장에서는 이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하다.
한 생으로 고통이 끝나지 않고 무한히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경우 보잘것 없는 것에 대해 집착을 갖고 임하는 자세가 문제다.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3 악도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실 매 상황에서 각 주체가 초점을 맞추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이를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행위를 해간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매순간 그렇게 할 도리 밖에는 없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반응이나 행동을 취해간다.
각 주체가 생사현실에서 매순간 그와 같이 행해간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현실 사정을 먼저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수행부터 먼저 성취를 잘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이런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유가사지론』을 살피는 첫 부분에서 이런 기초 내용을 기본적으로 소개해야 한다.
우선 자신이 대하는 현실내용이 있다고 하자.
대부분 이를 외부세계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들은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별개의 외부 물질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이들 현실 내용 일체가 자신의 마음안 내용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은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내용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사정이 그와 같다.
그런데 현실 내용은 자신이 그런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현실내용이 하필이면 그런 형태로 나타나는가를 다시 잘 파악해야 한다.
♥ 잡담 ♥
『유가사지론』을 살피는 가운데 기초적 부분을 살피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1 권 첫부분에서 살펴나갈 내용이 조금 분량이 많아진다.
따라서 페이지를 조금 나누기로 한다.
그리고 페이지가 분량이 차면 다음 페이지로 이어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후 내용은
이런 기초적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가운데
상당히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수행방안을 하나하나 제시한다.
따라서 이들 내용을 잘 살펴 현실에서 실천해나가면 된다.
그래서 첫 부분에 페이지를 조금 많이 배당해 놓았다.
이곳 경전 코너는 년중 시리즈 형태로 이어서 작성하는 코너다.
따라서 한 페이지 분량이 다 차기전까지는 계속 이어서 살피게된다.
눈을 떠서 얻는 내용이 갖는 의미나 성격에 대해서는 그간 많이 살폈다.
그래서 링크를 걸고 생략하고자 한다.
다만 현재는 본인도 조각글 해당 부분을 찾아내는데 시간이 걸리고 힘들다.
그런 사정으로 과거 조각글 정리작업을 병행해간다.
그러나 과거 분량을 정리하려면 다시 하루가 걸리게 된다.
그래서 여러모로 어렵다.
그런데 이 내용은 최근에 링크로 다음 부분에 정리해 놓았다.
이를 위해서 준비한 핫키가 an ,s 핫키다.
오래 되면 잊어 버리기에 일단 적어 놓는다.
Lab value 불기2565/10/19/화/15:19 이상 표현 재교정마침
불기2566-03-28 재교정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David & Jonathan - Bella Vita.lrc
Lab value 불기2563/01/04/금/19:50
◆vgju1770
◈Lab value 불기2563/01/04 |
○ 2018_0419_130613_can.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ablo-picasso-portrait-of-corina-romeu-1902 ○ 2020_0525_174532_can.jpg ♥Rio Abiseo National Park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Adamo - En Blue Jeans Et Blouson De Cuir ♥단상♥♥ 잡담 ♥니르바나 무복수지작전과 니르바나 행복론 니르바나 행복론에서 뽑혀 나온 주제 절대적 가난과 상대적 가난 문제를 살피고 있다. 경장 율장 논장 코너의 조각글란에는 잡담과 함께 니르바나 행복론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기회대는 대로 적어나가기로 하였다. 이는 니르바나 무복수지(무량한 복덕 수명 지혜) 연구작전에 필요하다. 오늘 생각한 것은 가난의 의미를 살핀다. 이와 함께 현실에서 어떤 이가 가난한가. 이 원인을 먼저 살피게 되었다. 긴 이야기는 시간이 늦어 적기 힘들다. 우선, 처음 주어진 외부 환경 그 뒤에 변화하는 상황 [ - 보통 운이라고 표현하는 내용 ] 자신의 선천적 소질, 적성 환경 그리고 자신의 후천적 실력 그리고 자신의 마음과 뜻 이렇게 요소를 뽑아 내어 보았다. 이것은 가난한 상황을 만든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방안도 이 부분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 부분을 변화시켜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이들 요소를 나열하게 된다. 일단 원인을 제거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타난 결과가 다시 만들어 내는 부작용을 제거 차단한다. 그리고 현재 가난한 상태를 다시 부유하고 풍요로운 상태로 바꾼다. 그래서 수행에 진입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니르바나 행복론의 초점이다. 그런데 이렇게 작성하면, 잘 보지 않을 것 같다. 무언가 유가사지론 형태를 닮아 가기 때문이다. 원래는 독자가 능동적으로 알아서 자신이 질문하고 답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글을 적는 입장에서 그렇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글을 적으면 곤란하다. 그러면 통상적으로 처음부터 글을 안 보게 된다. 그래서 글 적는 입장에서는 이 부분부터 연구해야 한다. 즉 어떻게 독자의 관심을 끌고 글 내용을 쉽고 재미있고 명쾌하고 간단하게 적어나갈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일단 조금 쉬고 이어나가기로 한다. >>> 오늘 등산훈련이 예정되어 있어 재촉이 심하다. 일단 여기까지 적고 마치기로 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Jacques Goldman - Quand La Musique Est Bonne.lrc Lab value 불기2563/06/17/월/05:40 ○ 일반 기업회계와 가치회계와 수행회계의 문제 ● ifrs 돼지소풍회계와 가치회계 관계성 현실에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ifrs 항목을 공부 중이다. ifrs 는 국제회계기준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 를 의미한다. 일단 약자에 모음이 없어서 그런지 발음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에프알에스 이렇게 발음하려니 힘들다. o 를 하나 넣어서 ifros 라 적고 아이프러스 또는 이프 로스 이렇게 쉽게 발음하면 좋을 듯 하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통용이 안 될 것 같다. 회계장부를 살피는 이유는 다음이다. 일반적인 현실에서 중요한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보는 항목들을 기업이 생산하고 보유한다. 회계장부는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을 파악하기 쉽게 숫자로 적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 눈높이를 맞추어 현실에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 무언가를 파악해보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 회계장부에서 다루는 항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회계 항목을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자산=부채+자본 항목과 관련해 중요한 항목이 빠져 있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다음을 살피기로 한다. ○ 법인의 경우 회사 경영가나 회계사의 입장에서법인의 회계장부를 작성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법인체는 말그대로 법이 만든 로보트 인간이다. 어떤 주식회사의 실질 지배주주를 회장이라고 칭한다. 이런 경우 회장은 법인의 자산이 곧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인의 자산은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영희나 철수의 자산처럼 생각해야 한다. 법인의 자산은 법으로 만들어진 인격체인 법인의 자산이다. 일종의 로보트인 법인의 자산이다. 그래서 자신이 100% 회사 주식을 보유했다고 해도 법인의 자산을 자신의 집 금고로 빼돌렸다고 하면 범죄가 될 수 있다. 법인의 자산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다른 입장들이 많다. 예를 들어 법인에 돈을 빌려준 은행이나 채권자가 있다. , 또 법인에 투자하려고 하는 주주가 있다. 또 법인에 세금을 매길려고 하는 세무당국이 있다. 이들이 법인과 그 주주를 일단 별개의 인격체로 본다. 따라서 법인이 가진 자산은 일단 법인의 것이다. 주주는 법인의 자본[자산-부채] 부분의 지분을 소유한 형태다. 그래서 주주 개인이 법인이 만들어낸 이익에 대해서 배당금을 받는다. 이와 별개로어떤 회사의 비품을 주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함부로 집에 들고 온다고 하자. 그러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기업활동에 회계장부를 통해 자산 내역을 파악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법인이 보유한 자산 내역을 파악한다고 하자. 그러면 ifrs 방식으로 회계 항목을 구성해도 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 출처 : 본인이 소수주주가 아닌 국내 모회사 재무상태표--- from dart ] ○ 자연인인 개인의 경우 그런데 단순한 개인이 자신의 자산을 ifrs 회계 기준에 맞추어서 한번 작성해본다고 하자. 개인은 법인이 아니다. 자산 = 부채 + 자본 이런 형태로 항목을 적어야 한다. 그러면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결국 법인의 배후에는 개인이 있기 마련이다. 즉, 그 법인을 통해서 이익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개인이 있다. 따라서 결국 이 문제를 누구나 살펴야 한다. 다만 모든 개인이 다 ifrs 형태로 회계장부를 작성할 필요성은 별로 없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지 평범한 어떤 가정주부라고 하자. 그런 경우 가정에서 단순히 가계부 정도를 기재하면 충분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본인의 경우도 그렇다. 그런데 여하튼 개인이 자신이 가진 자산=부채 자본 항목을 통해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역시 기업에 준해서 보유한 가치를 파악하기 쉽다. 그런 가운데 기본적으로 기업에서 사용하는 회계 항목을 살펴보게 된다. 회계가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로 어려움이 많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 법인의 보유자산과 단순한 개인의 보유자산을 평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무엇이 가장 큰 차이가 있는가를 우선 생각해보게 된다. 자연인 영희나 철수가 현실에서 어떤 활동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기본적으로 가진 자산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활동을 해서 어떤 상태를 얻고자 하는 것이 삶의 목표인가를 살펴보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런 경우 ifrs 회계에서 재무상태표와 포괄손익계산서 이런 내용에 준한 항목을 찾아 내 살피게 된다. 그런 가운데 살펴보니 ifrs 항목설명에 무언가가 빠져 있다. 그리고 숫자로 기재하기 힘든 부분이 있음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개인인 영희나 철수가 자기가 가진 자산을 평가하고자 한다고 하자. 이런 가운데 자신의 두 눈 값을 평가해서 적어놓고자 한다고 해보자. 이 두 눈 값을 평가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 항목을 어디에 기재해 놓을지도 일단 고민을 하게 된다. 유형자산 이런 항목에 적으면 될 듯도 하다. 그러나 이는 주로 토지 건물, 기계 이런 것을 평가해 적는 부분이다. 그래서 조금 애매하다. 그래도 적어 넣으려면 이 항목이 적당해 보인다. 그런데 법인은 이런 고민이 필요없다. 그것이 법인과 자연인인 사람의 차이다. 이런 점을 일단 확인하게 된다. 개인이 법인의 흉내를 내서 ifrs 항목을 적용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잘못하면 소풍간 돼지가 자신을 빼고 인원을 세는 경우처럼 되기 쉽다. 눈은 눈 자신을 못 본다. 마음도 마음 자신을 직접 보지 못한다. 그리고 외부 사물만 보게 된다. 그런 가운데 가치를 평가하면서 장부를 적기 쉽다. 그래도 손과 발은 잘 보이므로 적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것도 함께 빼먹기 쉽다. 그런데 이런 항목을 평가해 적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를 도대체 얼마로 적어야 할까 이것을 또 고민해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ifrs 에 if 라는 부분에 주목해본다. 그리고 집에 30 년된 전자피아노를 놓고 If 문장으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예를 들어 저울 한쪽에 이 피아노를 놓고 다른 쪽에 현금을 적당히 놓는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 취해야 한다. 그래서 피아노를 취하면 다른쪽 저울에 놓은 현금은 갖지 못한다. 반대로 현금을 가지면 피아노는 사라져야 한다. 이 때 구체적 현금액이 중요하다. 이 현금은 그 자체를 그대로 가져도 된다. 그런데 그것으로 또 다른 것을 살 수 있다. 그래서 꼭 피아노가 필요하다고 하자. 그런 경우 얼마면 지금 갖고 있는 중고피아노와 같거나 조금 더 좋은 것을 구할 수 있나를 놓고 살피면 된다. 알아보면 한 5 만원이면 된다. 그런데 오래되었지만 정이 들었다거나 개인적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이와 좀 더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런데 이것은 if 문장에서 해보는 평가방법이다. 현금과 문제되는 물건 가운데 하나만 가져야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어느 정도 현금일 때 물건을 포기하고 현금을 가질 것인가. 이를 놓고 따지면 대강 주관적인 가치평가가 이뤄진다. 개인적으로 피아노는 정때문에 한 50 만원정도해야 할 것 같다. 단지 5 만원 받기 위해서 중고로 팔기는 싫다. 이제 49 만원 받는다고 하다고 하자. 그런 경우 남이 사용하던 중고 피아노를 5 만원에 구해 대신 놓는다고 하자. 그리고 남은 44 만원을 가지고 다른 일을 하기는 싫다고 하자. 그런데 남은 금액이 45 만원 정도되면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고 하자. 이렇다면 50 만원 정도로 자신이 피아노의 가격을 주관적으로 평가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시장에서 그 가격으로 팔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되는 각 내용의 가치평가를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문제되는 이 두개를 다 함께 취해도 된다. 즉 피아노도 갖고 돈도 가져도 된다. 그리고 꼭 하나만 취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격이나 가치 평가를 해보려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if 문장을 사용해야 위와 같은 비교 평가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두 눈을 놓고 평가해보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가격을 적기 곤란해진다. 그런데 두 눈이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상태가 현실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경우도 앞과 같이 평가해보아야 한다. 두 눈이 없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현금이 얼마가 주어지면 원래 두 눈이 있던 상태와 비슷해질까. 이런 if 의문문을 놓고 곰곰히 고민해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 표시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자. 그러면 답하기가 곤란하다. 자신의 두눈 값을 금액으로 적으면 자신의 존재가치도 그 금액 수준으로 고정시키는 것이 된다. 겸손의 표현이 아니면 별로 좋지 않다. 그러나 > 부등호 기호를 사용한다고 하자. 그러면 대강 숫자로 확인할 수는 있다. 자신의 두눈 > 1 원은 너무 당연하다. 자신의 두눈 > 1 억원도 주관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이 말은 자신의 두 눈이 1 억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최소한 1 억원보다는 높다라고는 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서 팔고 살 일이 없는 보유항목들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If 구문을 사용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항목도 드디어 ifrs 회계 장부 항목에 적당히 숫자를 적어 넣을 수가 있게 된다. 그래서 일단 유형자산 내에 세부 항목을 하나 만든다. 그래서 각 신체부위부터 부등호 기호를 사용해 적어 나가보기로 하자. 숫자로 적어 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보통 이들 내용에 대해 단지 막연히 대단히 가치가 높고 귀하다고 여기고 임한다. 그런데 이런 자세와 숫자로 명확이 대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평소 다른 사물의 가격들이 자신의 의식을 채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숫자를 동원해야 자신의 의식이 매몰당하지 않게 된다. 즉, 단순히 가치가 높다라고만 생각하고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쉽게 이를 무시하게 된다. 그래서 숫자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예를 들어 신체 부위표를 하나 놓고 자신의 심장은 > 현금액 얼마 ( _) 자신의 눈 하나는 > 현금액 얼마 ( _) 자신의 두 눈은 > 현금액 얼마 ( _) 자신의 콩팥 하나는 > 현금액 얼마 ( _) 자신의 간 하나는 > 현금액 얼마 ( _) ... 자신의 손가락 하나는 > 현금액 얼마 ( _) 이런 식으로 부등호 기호를 사용해 표시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최소한 평가하는 현금액을 표시해 놓고 회계장부를 바라보기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러면 외부 사물 (주택, 토지..) 이런 가격표에 매몰당한다. 평소 생활에서 가치가 전도되어 뒤집히는 현상이 있다. 이런 가치전도현상이 이로 인해 대부분 나타난다. 그렇게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어떤 노력을 해서 이로 인해 10 억원 되는 주택은 얻을 수 있다. 그 대신 가격을 잘 모르는 눈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일단 해볼 필요가 있다. 위 기업이 현실 국내기업이다. 따라서 재무상태표에 적힌 금액을 잘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if 구문을 동원해 본다. 그리고 그 금액을 받는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이 그런 부위를 떼내 제공할 수도 있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그런 금액을 잘 평가해 적으면 된다. 일단 여기까지 오늘 회계 공부를 마치고 쉬기로 한다. ●부등호 기호와 숫자로 환산해본 개인의 기본자산액 이번에 회계 공부를 해보았다. 그래서 모든 생명이 다함께 모두 469 조원을 초과한 자산을 보유한 상태임을 살폈다. 물론 몇만원 많게는 몇백억원씩 소소한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한편 여기서 469 조원은 올해 국가예산액에 해당한다. 다만 이 금액은 어차피 부등호 기호를 사용하는 것이므로 큰 의미는 없다. 다만 생명이 갖는 가치를 숫자로 명확히 인식하기 위해 동원하는 숫자다. 이들은 부등호기호를 사용해 표시한 금액이다. 그래서 숫자로 자신들이 보유한 기본 자산액을 스스로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기본적으로 자신이 보유한 기본 자산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주변 생명이 이처럼 가치가 있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도 덩달아 그런 가치를 보유하게 된다. 따라서 이는 덩달아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날개가 떨어진 파리의 날개 하나를 469 조원이 있어도 새로 만들어 붙이기 곤란하다. 그런데 자신은 최소한 파리보다는 상태가 좋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보다는 최소한 몇만원이라도 더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대하는 국제회계기준 약어는 ifrs 다. 그런데 이를 ifros 로 철자를 바꾸어 시감상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위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ifrs = > ifros => if loss + if plus 이렇게 음을 바꾸어보자. 문제되는 어떤 것이 만일 세상에 없는 경우를 가정을 해본다. 그리고 또 반대로 만일 있게 되는 경우를 가정해본다. 그래서 그 차이를 비교해 가치를 평가해보기로 한다. 이것을 if loss + if plus => ifrs 의 의미라고 시감상해보자. 자신이 눈을 떠서 세상을 본다고 하자. 이런 경우 한 구석에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평소 그런 자신 외의 부분을 외부 세상이라고 여기고 대한다. 이런 상태에서 이 두부분을 놓는다. 그리고 이 가운데 오직 어느 한 부분만을 차지해야 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먼저 자신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자. 그러면 나머지 외부 세상은 갖지 못하고 사라진다고 하자. 또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머지 외부 세상를 선택한다고 하자. 그러면 반대로 현재 자신으로 대하는 부분은 모두 사라지고 차지하지 못한다고 하자. 이 가운데 어떤 경우를 자신이 선택하고자 하는가. 이것이 이 두 부분의 가치를 서로 비교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은 우주보다 가치있다고 여긴다. 이는 우주가 현금 469 조원이라는 뜻은 아니다. 우주가 그 정도 현금가치 밖에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하튼 숫자로 그 가치를 명확히 인식하는 데에는 충분할 수 있다. 본인 몸 상태가 별로 안 좋다. 그래서 기본 자산이 469 조원이라고 해도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자. 그러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그리고 마음과 몸 상태에 따라서 그 구체적 내용이 매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기본자산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좀 더 좋고 좋은 상태로 만들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는 이후에 다시 살펴나가기로 한다. . ■■■ ● 원가계산을 잘못해 물건을 팔아댄 사장의 손해복구방안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k0952t1545156.html#001 sfed--아비달마대비바사론_K0952_T1545.txt ☞제156권 sfd8--불교경율논코너sp_2563_06.txt ☞ ☞● 원가계산을 잘못해 물건을 팔아댄 사장의 손해복구방안 ---- ■■■ ● 회계와 관련한 갈증중독증상의 해결방안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k0952t1545156.html#002 sfed--아비달마대비바사론_K0952_T1545.txt ☞제156권 sfd8--불교경율논코너sp_2563_06.txt ☞ ☞● 회계와 관련한 갈증중독증상의 해결방안 ---- ■■■ ● 회계와 관련한 갈증-중독증상의 해결방안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k0952t1545156.html#003 sfed--아비달마대비바사론_K0952_T1545.txt ☞제156권 sfd8--불교경율논코너sp_2563_06.txt ☞ ☞● 회계와 관련한 갈증-중독증상의 해결방안 ---- ■■■ ● 가치회계의 가치평가방안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k0952t1545156.html#004 sfed--아비달마대비바사론_K0952_T1545.txt ☞제156권 sfd8--불교경율논코너sp_2563_06.txt ☞ ☞● 가치회계의 가치평가방안 ----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k0570t157900101.html#1770 sfed--유가사지론_K0570_T1579.txt ☞제1권 sfd8--불교경율논코너sp_2563_01.txt ☞◆vgju1770 불기2563-01-04 θθ |
4. 재무제표
재무상태표 |
제 51 기 1분기말 2019.03.31 현재 |
제 50 기말 2018.12.31 현재 |
(단위 : 백만원) |
제 51 기 1분기말 |
제 50 기말 | |
---|---|---|
자산 | ||
유동자산 | 82,311,689 | 80,039,455 |
현금및현금성자산 | 5,573,010 | 2,607,957 |
단기금융상품 | 28,107,265 | 34,113,871 |
매출채권 | 28,119,553 | 24,933,267 |
미수금 | 1,256,625 | 1,515,079 |
선급금 | 873,794 | 807,262 |
선급비용 | 2,462,807 | 2,230,628 |
재고자산 | 14,336,408 | 12,440,951 |
기타유동자산 | 1,582,227 | 1,390,440 |
비유동자산 | 138,335,268 | 138,981,902 |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 | 1,252,240 | 1,098,565 |
당기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 | 7,147 | 7,413 |
종속기업, 관계기업 및 공동기업 투자 | 55,999,043 | 55,959,745 |
유형자산 | 70,498,616 | 70,602,493 |
무형자산 | 2,876,176 | 2,901,476 |
장기선급비용 | 3,698,287 | 4,108,410 |
순확정급여자산 | 372,940 | 562,356 |
이연법인세자산 | 625,153 | 654,456 |
기타비유동자산 | 3,005,666 | 3,086,988 |
자산총계 | 220,646,957 | 219,021,357 |
부채 | ||
유동부채 | 44,319,180 | 43,145,053 |
매입채무 | 10,044,631 | 7,315,631 |
단기차입금 | 7,385,745 | 10,353,873 |
미지급금 | 10,406,509 | 8,385,752 |
선수금 | 222,715 | 214,615 |
예수금 | 419,704 | 572,702 |
미지급비용 | 3,391,384 | 6,129,837 |
미지급법인세 | 8,926,088 | 7,925,887 |
유동성장기부채 | 123,345 | 5,440 |
충당부채 | 2,732,294 | 2,135,314 |
기타유동부채 | 666,765 | 106,002 |
비유동부채 | 2,578,260 | 2,888,179 |
사채 | 44,339 | 43,516 |
장기차입금 | 171,994 | |
장기미지급금 | 1,943,317 | 2,472,416 |
장기충당부채 | 416,025 | 372,217 |
기타비유동부채 | 2,585 | 30 |
부채총계 | 46,897,440 | 46,033,232 |
자본 | ||
자본금 | 897,514 | 897,514 |
우선주자본금 | 119,467 | 119,467 |
보통주자본금 | 778,047 | 778,047 |
주식발행초과금 | 4,403,893 | 4,403,893 |
이익잉여금 | 167,238,732 | 166,555,532 |
기타자본항목 | 1,209,378 | 1,131,186 |
자본총계 | 173,749,517 | 172,988,125 |
자본과부채총계 | 220,646,957 | 219,021,357 |
※ 제49기 및 제48기는 종전 기준서인 K-IFRS 제1039호와 K-IFRS 제1018호,
제1011호, 제2031호, 제2113호, 제2115호, 제2118호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손익계산서 |
제 51 기 1분기 2019.01.01 부터 2019.03.31 까지 |
제 50 기 1분기 2018.01.01 부터 2018.03.31 까지 |
(단위 : 백만원) |
제 51 기 1분기 |
제 50 기 1분기 | |||
---|---|---|---|---|
3개월 |
누적 |
3개월 |
누적 | |
수익(매출액) | 37,038,395 | 37,038,395 | 42,606,978 | 42,606,978 |
매출원가 | 26,452,223 | 26,452,223 | 25,196,260 | 25,196,260 |
매출총이익 | 10,586,172 | 10,586,172 | 17,410,718 | 17,410,718 |
판매비와관리비 | 6,689,249 | 6,689,249 | 6,209,821 | 6,209,821 |
영업이익(손실) | 3,896,923 | 3,896,923 | 11,200,897 | 11,200,897 |
기타수익 | 255,526 | 255,526 | 270,127 | 270,127 |
기타비용 | 184,836 | 184,836 | 40,883 | 40,883 |
금융수익 | 643,068 | 643,068 | 799,826 | 799,826 |
금융비용 | 456,280 | 456,280 | 660,990 | 660,990 |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손실) | 4,154,401 | 4,154,401 | 11,568,977 | 11,568,977 |
법인세비용 | 1,065,773 | 1,065,773 | 3,116,519 | 3,116,519 |
계속영업이익(손실) | 3,088,628 | 3,088,628 | 8,452,458 | 8,452,458 |
당기순이익(손실) | 3,088,628 | 3,088,628 | 8,452,458 | 8,452,458 |
주당이익 | ||||
기본주당이익(손실) (단위 : 원) | 455 | 455 | 1,244 | 1,244 |
희석주당이익(손실) (단위 : 원) | 455 | 455 | 1,244 | 1,244 |
포괄손익계산서 |
제 51 기 1분기 2019.01.01 부터 2019.03.31 까지 |
제 50 기 1분기 2018.01.01 부터 2018.03.31 까지 |
(단위 : 백만원) |
제 51 기 1분기 |
제 50 기 1분기 | |||
---|---|---|---|---|
3개월 |
누적 |
3개월 |
누적 | |
당기순이익(손실) | 3,088,628 | 3,088,628 | 8,452,458 | 8,452,458 |
기타포괄손익 | 78,192 | 78,192 | (22,220) | (22,220) |
후속적으로 당기손익으로 재분류되지 않는 포괄손익 | 78,192 | 78,192 | (22,220) | (22,220) |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평가손익 | 106,557 | 106,557 | 13,198 | 13,198 |
순확정급여자산 재측정요소 | (28,365) | (28,365) | (35,418) | (35,418) |
후속적으로 당기손익으로 재분류되는 포괄손익 | ||||
총포괄손익 | 3,166,820 | 3,166,820 | 8,430,238 | 8,430,238 |
자본변동표 |
제 51 기 1분기 2019.01.01 부터 2019.03.31 까지 |
제 50 기 1분기 2018.01.01 부터 2018.03.31 까지 |
(단위 : 백만원) |
자본 | |||||
---|---|---|---|---|---|
자본금 |
주식발행초과금 |
이익잉여금 |
기타자본항목 |
자본 합계 | |
2018.01.01 (기초자본) | 897,514 | 4,403,893 | 150,928,724 | (4,660,356) | 151,569,775 |
회계정책변경누적효과 | 61,021 | (61,021) | |||
수정후 기초자본 | 897,514 | 4,403,893 | 150,989,745 | (4,721,377) | 151,569,775 |
당기순이익(손실) | 8,452,458 | 8,452,458 | |||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평가손익 | 13,198 | 13,198 | |||
순확정급여자산 재측정요소 | (35,418) | (35,418) | |||
배당 | (2,929,530) | (2,929,530) | |||
자기주식의 취득 | (875,111) | (875,111) | |||
자기주식의 소각 | (2,228,135) | 2,228,135 | |||
2018.03.31 (기말자본) | 897,514 | 4,403,893 | 154,284,538 | (3,390,573) | 156,195,372 |
2019.01.01 (기초자본) | 897,514 | 4,403,893 | 166,555,532 | 1,131,186 | 172,988,125 |
회계정책변경누적효과 | |||||
수정후 기초자본 | 897,514 | 4,403,893 | 166,555,532 | 1,131,186 | 172,988,125 |
당기순이익(손실) | 3,088,628 | 3,088,628 | |||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평가손익 | 106,557 | 106,557 | |||
순확정급여자산 재측정요소 | (28,365) | (28,365) | |||
배당 | (2,405,428) | (2,405,428) | |||
자기주식의 취득 | |||||
자기주식의 소각 | |||||
2019.03.31 (기말자본) | 897,514 | 4,403,893 | 167,238,732 | 1,209,378 | 173,749,517 |
현금흐름표 |
제 51 기 1분기 2019.01.01 부터 2019.03.31 까지 |
제 50 기 1분기 2018.01.01 부터 2018.03.31 까지 |
(단위 : 백만원) |
제 51 기 1분기 |
제 50 기 1분기 | |
---|---|---|
영업활동 현금흐름 | 3,106,972 | 13,056,587 |
영업에서 창출된 현금흐름 | 2,976,890 | 12,448,884 |
당기순이익 | 3,088,628 | 8,452,458 |
조정 | 4,891,329 | 6,447,338 |
영업활동으로 인한 자산부채의 변동 | (5,003,067) | (2,450,912) |
이자의 수취 | 98,290 | 94,118 |
이자의 지급 | (73,267) | (53,935) |
배당금 수입 | 170,987 | 615,485 |
법인세 납부액 | (65,928) | (47,965) |
투자활동 현금흐름 | 2,866,813 | (2,629,346) |
단기금융상품의 순감소 | 6,006,606 | 5,373,207 |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의 처분 | 1,868 | |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의 취득 | (6,701) | |
당기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의 처분 | 268 | 532 |
당기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의 취득 | (460) | |
종속기업, 관계기업 및 공동기업 투자의 처분 | 148 | |
종속기업, 관계기업 및 공동기업 투자의 취득 | (166,215) | (58,755) |
유형자산의 처분 | 105,460 | 141,569 |
유형자산의 취득 | (2,821,582) | (7,870,910) |
무형자산의 처분 | 90 | |
무형자산의 취득 | (250,866) | (218,113) |
현금의 기타유입 | (247) | 1,568 |
재무활동 현금흐름 | (3,008,810) | (5,421,419) |
단기차입금의 순감소 | (2,981,772) | (4,546,306) |
자기주식의 취득 | (875,111) | |
장기차입금의 상환 | (26,785) | |
배당금의 지급 | (253) | (2) |
외화환산으로 인한 현금의 변동 | 78 | |
현금및현금성자산의 증가 | 2,965,053 | 5,005,822 |
기초현금및현금성자산 | 2,607,957 | 2,763,768 |
기말현금및현금성자산 | 5,573,010 | 7,769,590 |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 |
제 50 기 2018.01.01 부터 2018.12.31 까지 | |
제 49 기 2017.01.01 부터 2017.12.31 까지 | |
제 48 기 2016.01.01 부터 2016.12.31 까지 | |
(단위 : 백만원) |
과 목 | 제 50 기 | 제 49 기 | 제 48 기 | |||
---|---|---|---|---|---|---|
Ⅰ. 미처분이익잉여금 | 18,556,368 | 14,031,533 | 38,248 | |||
1. 전기이월이익잉여금 | 30 | 31 | 30 | |||
2. 회계정책변경누적효과 등 | 58,324 | - | - | |||
3. 분기배당액 제50기 - 주당배당금(률) : 1,062원(1062%) 제49기 - 주당배당금(률) : 21,000원(420%) 제48기 - 주당배당금(률) : 1,000원(20%) |
(7,213,815) | (2,896,772) | (141,540) | |||
4. 자기주식 소각 | (7,103,298) | (11,872,563) | (11,399,991) | |||
5. 당기순이익 | 32,815,127 | 28,800,837 | 11,579,749 | |||
Ⅱ. 임의적립금 등의 이입액 | - | - | 3,812,135 | |||
1. 기업합리화적립금 | - | - | 3,812,135 | |||
Ⅲ. 이익잉여금처분액 | 18,556,338 | 14,031,503 | 3,850,352 | |||
1. 기업합리화적립금 | 5,000,000 | 3,000,000 | - | |||
2. 배당금 주당배당금(률) 제50기 - 보통주 : 354원(354%) 우선주 : 355원(355%) 제49기 - 보통주 : 21,500원(430%) 우선주 : 21,550원(431%) 제48기 - 보통주 : 27,500원(550%) 우선주 : 27,550원(551%) |
2,405,428 | 2,929,530 | 3,850,352 | |||
3. 연구및인력개발준비금 | 10,000,000 | 8,000,000 | - | |||
4. 시설적립금 | 1,150,910 | 101,973 | - | |||
Ⅲ. 차기이월미처분이익잉여금 | 30 | 30 | 31 |
※ 제49기 및 제48기는 종전 기준서인 K-IFRS 제1039호와
K-IFRS 제1018호, 제1011호, 제2031호, 제2113호, 제2115호, 제2118호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
■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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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근식(根識)이라고도 한다.
안식(眼識)ㆍ이식(耳識) 등 모든 식이 의지할 곳이 되는 근본 심식(心識)인 아뢰야식을 말함.
답 후보
●
근본식(根本識)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
금강륜(金剛輪)
금강신(金剛身)
금강지(金剛智)
기(器)
기별(記別)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참조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10/k0570-t1579-001.html#1770
s8p/--5588
s8p/--5587
™善現智福 키워드 연결 페이지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keyword.html
○ [pt op tr]
● 유가사지론_K0570_T1579 [문서정보]- 경전논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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