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다의적인 의미와 용법을 지니고 있다. 불교사전만 보아도 그 사정을 알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문제삼게 되는 존재 일체를 법이라고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고정적인 의미, 예를 들어 ‘법’이라는 단어로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경전에서 언급하는 법이라는 말은 사회적인 규범을 뜻하는 일반적인 용례로부터, 다르마라는 원어가 지니고 있는 ‘성질(性質), 본질, 특수한 속성, 사물(事物), 교법(敎法), 정법(正法), 묘법(妙法), 미덕, 의무’ 등등 수많은 어의로 해석된다.
그래서 각 구절의 맥락에 따라 적절하게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어원적으로 dharma는 ‘쥐다, 갖다, 유지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드리’(dhṛ)라는 어근에서 나온 명사라고 한다. 그래서 dharma 는 어떤 사물의 형태나
그 사물을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형태로 고유하게 유지시켜 주는 힘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 배경에서 dharma가 위와 같은 다양한 의미를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법을 설명할 때 임지자성 궤생물해 이런 표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제 성품을 가졌고[임지자성任持自性] 물건에 대한 이해를 일으키는[궤생물해軌生物解] 뜻을 가진 것을 법이라 한다고 설명한다. 풀이가 더 어려운 측면도 있다.
현실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에 대해 그런 것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고 또 그것이 a 인가 아닌가. 또는 a 와 같은가 다른가 또 그것이 좋은가 나쁜가 또 그것이 선한가 악한가를 따진다. 그런 문제를 살피는 어떤 존재 일체를 다 법이라고 불교에서 부르게 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경우에 법이란 단어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가는 사전풀이를 기계적으로 대입해서 인터넷 구글 번역기처럼 임해서 해석하려면 곤란하다. 결국 구체적 문장과 맥락을 통해서 법이란 단어가 그 구절안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이런 법에 대해 파악할 때 자상과 공상의 관계가 전도망상분별 증상과 관련이 깊은 사정을 다시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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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상과 공상 망상분별의 사정
자상과 공상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진을 하나 놓고 살피기로 한다.
○ [pt op tr]20101020_Sheep_shepherd_at_Vistonida_lake_Glikoneri_Rhodope_Prefecture_Thrace_Greece
일반적으로 이 사진에 '양'이 있다고 하게 된다. 영어로는 sheep 이다.
그런데 여기서 양을 의미하는 Sheep을 발음할 때 이를 ship 으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다. 또는 영어에서 욕으로 사용되는 shit 로 잘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발음을 듣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서로간에 큰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다. 언어에서 이런 현상은 흔히 발생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도 공상과 자상의 문제가 관련된다.
sheep 을 한글로 '양'이라고 표현해보자. 그런데 저 사진에서 각 부분마다 그런 '양'이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렇게 여기는 현상이 곧 전도망상분별 증상이다.
각 부분에 양이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 왜 각 부분이 다른 부분과 달리 양이라고 하는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좌표로 표시하기 곤란하지만, 왼쪽 부분과 오른쪽 부분에 다 함께 '양'이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이 때 이 각 부분에 양으로 함께 표현할 공통점이 무언가부터 찾아내야 한다. 단 하나라도 공통된 점이 있어서 찾아내면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그 각 부분을 다 양이라고 하는 상태이기에 전도몽상 분별 편집증 내지 망집현상이라고 칭하게 된다.
따라서 각 부분이 다 함께 양이라고 여기면 위 사진을 놓고 그 내용을 찾아내면 된다.
이 문제는 자신을 찍은 똑같은 사진 두장을 놓고 살펴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위 주제와 관련된다. 그리고 그런 것을 얻을 수 없음을 『백자론』에서 논의한다.
『백자론』에서 '있다'고 하면 차라리 '없다'고 비판하고 '없다'고 하면 차라리 '있다'고 비판하겠다고 한다. 이는 그런 망집상태를 깨기위해 가정적 항변 방식으로 임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렇게 가정적 항변 방식으로 임하는 입장은 있다고 한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한 것도 아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에서 자꾸 있다거나 없다는 주장을 행한다. 그리고 그 증상이 바로 생사고통을 각 주체가 극심하게 받아나가는 기본 바탕이다. 따라서 일단 그런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그 각 주장의 문제점을 살펴서 그런 자세를 시정하고자 하는 취지다.
○ [pt op tr] ▼mus0fl--Joe Dassin - Si Tu T'appelles Melancolie.lrc
문제만 제출하고 페이지를 닫으면
답답함을 느끼게 되기 쉽다. 옥상기지에서 그런 메세지를 들었다. 입장따라 제각기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며 시시비비를 다투며 시그럽게 되는 사정에 대해 메세지를 전하는 듯하다. 잘못하면 전도몽상분별 편집증을 가진 환자들 사이에서 고립되기 쉽다.
여하튼 앞 문제를 살펴보자. 이 문제는 두 마리의 양을 놓거나, 같은 두장의 사진을 놓거나 또는 한 장의 한 부분의 내용만 놓고 살펴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한 부분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두 부분으로 나아갈 바탕 자체가 얻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는 한 부분이나 모든 부분이 다 잘 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라며 거꾸로 답답해 하기 쉽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자.
지금 사진은 눈을 통해 모습을 본다. 그리고 눈이 천냥이라는 말처럼 현실에서 어떤 이가 얻는 정보는 거의 90% 눈으로 얻게 된다. 그리고 이 눈에 관련된 내용은 다른 감관 귀나 코 등에도 다 같은 형태로 적용된다.
그래서 이 하나의 문제를 잘 이해하면 곧바로 3 해탈문을 찾아내서 생사 해탈을 얻게 된다. 그리고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그 문의 반대방향인 생멸문을 통해 다시 생사현실에 들어가 중생과 눈높이를 맞춘 가운데 중생제도를 위한 온갖 수행을 다 원만하게 잘 행할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의 한 단면을 붙잡고 어떤 부분이 양이라고 여겨지면 어떤 부분이 과연 그런가부터 잘 생각해야 한다.
어떤 이가 어떤 사진을 보고 거기에서 양이 100 마리가 보인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그 주체가 그 사진을 대해 100 여개에 해당하는 각 부분이 모두 양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게 됨을 의미한다.
이는 그가 그 100 부분에 양이라고 지칭할 만한 어떤 공통된 내용이 각 부분마다 모두 그렇게 있다고 여김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엇이 과연 그런가를 일단 찾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각 부분에서 그런 것은 얻을 수 없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다음도 이해해야 한다. 그 각 부분은 곧 실재의 영역에서의 실상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실상에는 그런 내용이 들어 있지 않음까지 잘 이해해야 한다.
존재의 영역을 놓고 이 문제가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된다. 따라서 이를 각 측면에서 잘 정리하지 않으면 혼동이 발생하기 쉽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일단, 눈을 뜨면 앞과 같은 사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처럼 보게 된 내용은 우선 문제가 아니다. 한편 그 모습에서 각 부분을 이렇게 묶고 저렇게 나누어가며 그 각 부분이 양이라거나 어떤 부분은 풀밭이라거나 이렇게 생각을 일으킨다. 이 경우 그렇게 일으킨 관념 자체도 문제가 아니다.
이 상태에서 그런 감각현실은 그런 생각을 일으키게 한 재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감각현실 영역에는 그런 생각 내용은 들어 있지 않음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곧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관념에 해당하는 '자상'이 없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그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곧 망집현상이다.
즉 자신이 그런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을 대해 일정한 생각을 일으키면, 그런 생각 내용이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도 그처럼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나누고 묶은 부분을 그런 분별을 바탕으로 취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머물고 행위를 해나간다. 이것이 바로 문제다.
그런 분별이 '나 자신'이라면 그렇게 일정부분을 취해 그 부분이 나라고 여긴다. 즉, 그렇게 아상을 갖고 그 부분을 취해 머문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서 온갖 업을 행해 나가게 된다.
한편, 그런 감각현실 및 관념분별은 다 함께 본래 본 바탕의 영역 - 즉 실재 영역- 에서는 '얻을 수 없음'을 또 살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얻는 그런 내용들은 실재의 지위에 있는 실상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실재의 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아무리 생생해도 그것은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얻을 수 없고 공하다. 따라서 현실내용은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감관 등이 관여해 임시적으로 화합해 얻는 것뿐이다. 따라서 현실 내용은 집착을 가질만한 것이 아니다. 즉, 실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취지에서 실상이 공함을 파악하는 것이 수행에 큰 의미를 갖는다.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고 그 실상이 공하다는 것은 꿈과 사정이 같다. 꿈을 꾸었는데 꿈이 실답지 않다고 함은 자면서 그런 꿈을 꾸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꿈은 자는 동안 생생하게 꾸었다. 그런데 그런 꿈 내용은 현실의 영역에서 얻는 내용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꿈은 결국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런 조건에서 임시적으로 얻은 것 뿐이다. 그런 사정으로 꿈이 비록 생생해도 그꿈은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실답지 않은 꿈에 집착을 갖고 대하면 곤란하다.
현실내용이 실답지 않다는 것도 이런 꿈과 사정이 같다.
현실에서 이런 저런 내용을 생생하게 얻는다. 그런데 그런 현실내용을 실답지 않음은 다음을 나타낸다. 우선 그런 현실내용은 실재의 지위에 있는 실상이 아니다. 그리고 실재 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 본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감관이 관여하여 임시적으로 얻는 것 뿐이다. 따라서 현실은 꿈과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는 현실내용이 그런 사정으로 실답지 않기에 집착을 갖고 대할 내용이 아님을 제시하는 것이다. .
현실에서 어떻게 본 바탕을 생각하던지 실재는 본래부터 그러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본 바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본 사정이 그런데도 그렇게 사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현실 내용을 실답게 여기고 생사고통을 받는 점이다.
즉, 현실내용을 실답게 여기고 집착을 갖는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아 나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문제다.
꿈의 비유를 놓고 다시 이 상태를 이해해보자. 만일 가정해서 꿈이 실답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꿈의 내용을 놓고 자꾸 무언가를 행하게 도니다.
마찬가지로 현실을 실다운 것으로 여기고 집착을 갖고 업을 행하면 그로 인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 묶여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무량한 기간 지내게 된다. 이런 문제점이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본 바탕의 실재를 문제삼고 따지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 그보다는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두 측면 사이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래서 실재와 관련된 문제는 오히려 조금 깊게 사색하는 철학자들이 일으키는 전도몽상 증상과 관련이 깊다.
현실에서 얻는 내용과 관련해 그 실상은 어떤가 그런 내용은 본래 실재 영역에서 얻는가 얻지 못하는가.
그래서 현실에서 얻는 그런 내용은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실다운 것인가 아닌가. 이런 부분의 논의가 그런 경우다.
그런데 여하튼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의 관계에서부터 망상증상을 일으킨다 . 그리고 이 두 내용의 관계를 잘 정리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실재의 문제를 살피게 되면 이에 대해서도 앞과 같은 방식으로 망집을 증폭시키게 된다.
처음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사이의 관계는 무상해탈문을 통해 잘 정리해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본 바탕이 되는 실재와 이들 사이의 관계는 다시 공해탈문을 통해서 벗어나야 한다.
여하튼 이 문제는 결국 현실에서 눈으로 보는 한 내용을 놓고 그 본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다.
이를 다시 정리해보자. 현실에서 어떤 이가 양이라고 보는 그 각 부분은 우선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실상이 아니다.
한편 실재의 내용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것은 '아닌' 그 어떤 것이ㅏㄷ. 그래서 화합관계를 통해 어떤 내용을 얻는 주체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실재의 내용은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같다 다르다 좋다 나쁘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의 온갖 이분법상의 분별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란 표현을 빌려 실재는 공하다라고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현실에서 자신이 양이라고 보는 그 부분에는 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념내용도 또한 얻을 수 없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를 실험을 통해 간단히 이해해보자.
자신이 눈으로 사진을 보고 앞 순간에 양이라고 본 부분과 그 다음 순간에 본 양이 같은지 다른지를 판단해보자.
그래서 일단 양을 뚫어지게 잘 본 다음 눈을 감아보자.
그리고 그렇게 눈을 감은 상태에서 그 직전에 본 양 모습이 한 부분이라도 떠오르는가를 스스로 잘 헤아려 보자. 떠오르는가 스스로 헤아려보면 직전에 본 그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생각은 떠오른다. 그런데 앞 순간에 눈으로 본 그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직전에 본 양의 모습이 지금 보는 양의 모습과 같은가 다른가가 문제되면 대부분 같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또 다음 문제를 살펴야 한다. 앞 뒤 순간에 본 양이 다 같다고 판단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 판단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비교를 하고 그런 판단을 한 것인가. 그 판단 과정에서 문제되는 것을 직접 놓고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는 직전에 본 모습을 그 상황에서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망상분별 상태에서는 마치 자신이 직전에 본 모습을 놓고 어떤 판단을 행하는 것처럼 스스로 여긴다.
결국 일반적으로 그 상황에서 관념 내용을 가지고 그런 판단을 행한 것뿐이다. 이 때 그 관념내용은 직전에 눈으로 본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 관념내용에는 직전에 본 감각현실이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행하는 감각현실을 놓고 행한 판단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행한 같고 다름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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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한 정지된 단면에서도 똑같이 발생한다. 한 정지단면을 놓고 어느 부분이 무엇이라고 여길 때 그 자신은 감각현실을 가지고 그런 판단을 한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으로 붙잡는 부분은 그 생각에 해당하는 자상이 아니다. 또 그 생각에 그런 자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리키고 붙잡는 그 부분에서 그런 생각에 해당하는 공상도 역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자상과 공상의 관계를 기초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감각현실에 그런 관념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얻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서 집착을 일으키고 말하고 행위를 해나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병원에서 생활하는 망상증 환자의 상태와 같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다른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병원에 있는 어떤 화분만 보면 거기에 우주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소리친다고 하자. 그리고 그 화분을 발로 걷어찬다. 그런 경우 망상증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사정이 바로 이와 같다.
이제 정지된 한 단면에서 두 부분을 붙잡고 자신이 왼쪽 부분의 양과 오른쪽 부분이 양이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판단한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공통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 앞의 설명을 바탕으로 이 부분이 저 부분과 같다거나 다르다고 잘 판단했다면 그 상황에서 그 주체는 과연 무엇을 가지고 그런 판단을 잘못 행한 것인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이 상황에서 감각현실의 각 부분을 떼어 그런 비교판단을 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눈으로 본 그 감각현실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관념분별을 바탕으로 판단을 행한 다음 그것을 감각현실에 갖다 붙이는 것이다.
이 문제는 처음에 정지된 단 하나의 단면을 놓고서도 발생한다. 즉, 어떤 이가 사진의 한 부분을 양이라고 생각할 때에도 똑같이 발생한다.
처음 그렇게 그가 가리키고 잡아내는 그 감각현실의 한 부분을 상(相 Lakṣaṇa)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가 그 부분을 대해 일으키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내용으로서 상(想 Saṃjña)은 그런 부분 즉 상(相 Lakṣaṇa)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 상황에서 그가 그런 부분을 대해 그런 생각을 '일으킨' 것뿐이다. 그 부분에 그런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둘을 섞어 혼동하면 앞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또 그런 상태에서 실재의 문제를 살피면 이와 똑같은 자세로 임해서 실재에 관해서도 역시 엉터리 주장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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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재에 대한 가정적 항변 방식의 논의
실재에 관련해 가정적 항변방식을 전개할 경우 이들 논의는 현실 내용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왜냐하면 살피고자 하는 실재는 그 내용을 누구도 직접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재가 공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라면 그 내용을 얻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래서 실재는 얻지 못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상대는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실재가 있다거나 어떠하다는 엉터리 주장을 계속 반복한다. 그런 경우 실재 영역에서 직접 어떤 자료를 얻지 못하기에 원칙적으로 상대와 논의를 진행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방안을 달리해서 그런 상대의 억지 주장을 그대로 일단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 주장의 문제점을 살피게 된다. 그래서 그런 주장을 전제로 하면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그 주장이 엉터리가 됨을 다양한 방안을 통해 제시한다. 그래서 상대가 처음 주장을 폐기하게끔 이끄는 것이다.
가정적 항변의 방식에서는 상대가 주장하는 내용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이 동원된다.
그 사정을 『회쟁론』에서 이미 살폈다. 그리고 앞의 방식도 그런 방식의 하나다.
실재에 대한 논의는 어떤 이의 주관과 관계없이 그대로 실재하는 내용을 살핀다.
그래서 상대의 주장 내용이 어떤 내용과 의존해야 비로소 성립되는 내용임을 밝히면 실재가 가져야 하는 기본 성격과 모순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점을 제시해 상대 주장을 폐기시킬 수 있다.
한편 상대의 체계나 주장을 바탕으로 하면 상대 주장이 자체적으로 모순이 됨을 제시할 수도 있다.
또는 상대의 주장은 현실내용과 서로 모순됨을 밝힐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로 상대의 입장을 깨뜨리게 된다. 그래서 상대가 처음 행한 주장을 포기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부 논리학자나 철학자가 이해하는 귀류논증체계와는 다르다.
귀류논증을 행할 때 사용하는 추론체계나 추론과정은 그 논증자가 그런 각 내용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가정적 항변방식은 그렇지 않다. 그런 내용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오직 상대 입장을 받아들이는 경우 그렇다는 의미일 뿐이다.
한편 귀류논증을 통해서 주로 어떤 내용이 잘못임을 밝히는 한편 이와 모순되는 내용을 간접적으로 내세우기 위한 취지로 사용한다. 즉, 간접적 증명방식으로 사용하려는 취지로 사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상대가 여자라는 주장이 잘못임을 밝히는 것은 이를 통해서 그 상대가 여자가 아니고 '남자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 진행한다. 그러나 여기서 가정적 항변방식은 그렇지 않다.
원칙적으로 상대의 주장이 잘못이다. 그러나 상대가 고집을 굳히지 않으므로 일단 가정적으로 상대 주장을 다 그렇다고 받아들이면 문제가 발생함을 보여 그 주장을 폐기시키는 데 목표를 둘 뿐이다. 그리고 그와 모순되는 내용을 내세우기 위한 취지가 아니다.
그래서 '있다'라고 하면 문제가 발생해서 그 주장을 폐기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는 '있다'라는 주장을 깨뜨리기 위한 것일 뿐 그와 모순되는 '없다'를 내세우기 위한 노력이 아니다.
이런 가정적 항변의 성격을 잘 이해해야 『100론』이나 『중론』이나 『12문론』 등등의 논서를 살피면서 혼동을 일으키지 않고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첫 문제부터 잘 살펴야 한다. 그래야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을 놓고 아상이나 중생상을 취하거나 머물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무상해탈문에 들어가 생사고통의 현실에서 평안히 안인의 자세로 임할 수 있게 된다. [무상해탈문]
한편 실상은 공하다라는 사정도 잘 관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현실 내용은 실상이 아니고 본 바탕에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렇게 화합해서 얻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내용이 실답다는 망집을 제거할 수 있다. [공해탈문]
한편 현실에서 망상분별에 바탕해서 쓸데없는 소원을 갖고 추구하며 업을 행한다. 그로 인해 3 악도로 묶여 끌려가게 된다. 따라서 무원무작삼매에도 들어가서 그런 망집에 바탕해 일으킨 부질없는 소원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소원을 추구하는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무원무작해탈삼매문]
이 3 해탈문을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기본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 해탈문과 반대 방향인 생멸문을 통해 생사현실에 다시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을 제도하려는 무량방편문을 닦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평소 대하는 내용의 정체를 잘 살펴야 한다. 평소 자신이 대하는 내용을 살피고 이후 눈을 감고 직전에 본 내용이 떠오르는가 아닌가를 살피는 것은 이런 취지에서이다.
직전에 본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양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자신이 평소 무엇이 같다거나 다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엇을 가지고 판단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 어떤 성품이나 모습이 있다고 여기면 그 내용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자신이 문제삼는 감각현실과 무슨 관계인가를 잘 음미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평소 이 부분 저 부분이 모두 어떤 공통된 내용[공상]을 갖는다고 여긴다면 과연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여긴 것인가를 잘 헤아려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사진 각 부분에 일정한 공통된 내용이나 모습이 있다고 여긴다면 그런 판단이 왜 엉터리 전도 망상분별인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각 부분을 대하면서 일정한 분별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런 분별을 일으키는 것과 분별영역에서 일으키는 망상분별 증상은 성격이 크게 다르다. 물론 이 둘은 엇비슷해 보인다.
어떤 이가 생각을 일으킨 후 그런 내용이 감각현실 부분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부분부터가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이것이 해결안되면 곤란하다.
그런 경우 다시 실재의 문제를 살필 때 그런 망집을 증폭시키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본 감각현실과 분별한 내용은 모두 그 본 바탕인 실재에도 그렇게 있다고 잘못 여기고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처음부터 잘 살펴야 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Garou Et Claude Dubois - Femme De Societe.lrc
앞의 설명은 그간 많이 반복했다.
● 비닐마술과 망상의 치유
현실에서 대부분 일으키는 망상분별 증상을 쉽게 이해하려면 비닐마술을 놓고 살피면 쉽다.
비닐마술은 다음 내용이다.
하나의 비닐에 세모를 그려 놓고 또 다른 비닐에 큰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이 둘을 포개 놓으면 이제 안이 세모인 도너츠 모양이 나타나 보이게 된다.
이 상황에서 세모가 그려진 비닐을 붙잡고 다른 비닐의 동그라미가 그렇게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 그 세모는 '도너츠의' 세모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거기에 도너츠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 마찬가지로 동그라미가 그려진 비닐을 붙잡고
거기에 다른 비닐의 세모가 그렇게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동그라미는 '도너츠의' 동그라미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거기에 도너츠가 실답게 있다고 잘못 여긴다.
이런 경우가 다 문제다.
지금 이 비닐 마술의 경우는 각 비닐의 세모나 동그라미가 형체가 뚜렷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전도망상을 일으키고 접착된 상태에서는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이 서로 구분이 잘 안되게 된다. 즉, 비닐마술에서의 각 비닐의 세모나 동그라미가 구분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감각현실과 관념내용부터 잘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 눈을 뜨고 감고를 반복하는 가운데 눈을 뜨면 그 순간 보게 되는 내용부터 따로 잘 붙잡아 두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그 상태에서 눈을 감으면 그 직전에 본 모습이 그대로 떠오르는가부터 잘 실험해야 한다.
한편 이와 달리 눈을 감거나 뜨거나 관계없이 계속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을 앞 내용과 잘 구분해 붙잡아 둔다.
그리고 이들 각 내용의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감각현실에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있는가 없는가부터 잘 헤아려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서로 잘 구별하지 못하면 망집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사진에서 양이 어떤 것인가를 가리켜보라고 하면 손가락으로 사진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또 거리에서 영희가 어디 있는가라고 물으면 감각현실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그 부분이 영희라고 답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일으킨 관념내용을 바탕으로 현실 각 부분을 그처럼 붙잡어 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각 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모두 그처럼 공통되게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공상] 그리고 매 순간 그런 생각으로 그런 각 부분을 취하고 머물게 된다.
특히 그런 생각이 자신에 관한 것이면 그로 인해 대단히 극심한 생사현실의 고통에 묶이게 된다. 그런데 망집을 일으킨 경우 이 문제가 해결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문제다.
그런 경우 앞 비닐판 마술의 비유상황을 놓고 잘 헤아려야 한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보게 된 도너츠를 붙잡고 그 정체가 무언가를 잘 음미해야 한다.
현실에서 생사나 생멸 현상이 이 비유속의 도너츠와 성격이 같다. 현실에서 그런 관념을 일으킬때 그 내용이 현실 각 영역에 그처럼 각 부분에 실답게 있다고 잘못 여긴다. 현실에서 그런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업을 행한다. 그렇게 되면 그런 망집을 일으키게 한 재료도 함께 변화하며 엉망이 된다.
그러면 그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는 3 악도에 묶이게 된다. 그리고 이후 무량한 기간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그 근본원인을 잘 제거해야 한다. 즉 근본 원인이 되는 망상부분을 잘 제거해야 한다.
따라서 처음 한 현실 단면을 놓고 그처럼 엉터리로 대하는 자세를 고쳐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수행의 자세로 전환해 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서 벗어나올 계기를 얻기 힘들다.
이런 기본 사정을 잘 이해하기 위해 비닐판 마술을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평소 잘 꾸는 꿈의 상황도 잘 음미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비유들을 놓고 현실에서 취하는 자세 가운데 무엇이 문제인가를 미루어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다시 이에 바탕해서 본 바탕의 영역의 문제 즉 실재의 문제를 또 살펴야 한다. 이는 앞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다. 그래서 본 바탕이 되는 실재에서는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실재는 공하다라는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 내용이 아무리 생생해도 그것은 집착을 가질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갖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그런 바탕에서 수행을 잘 성취해서 업의 장애를 해소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현실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제도를 위해 무량한 수행에 잘 임해야 한다.
노래를 듣다보니 일단 예쁘고 보아야 한다는 메세지가 들린다. 그리고 예쁜 것은 좋지만 전도몽상에 바탕한 집착과 고집 증상은 곤란하다. 그래서 잘 해결이 안 되면 마술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던지 아미타 부처님께 도움을 요청해 잘 해결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하는 듯 하다.
♥ 잡담 ♥필요는 발명의 모친 -발씨 가문 구성원 발굴 - 발견 - 발명 - 발상
● 사회문제의 인과관계 파악과 대처방안
발명의 어머니가 필요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발굴이라고 한다.
아버님은 발견이라고 한다. 가계도가 발굴 - 발견 - 필요 - 발명으로 이어진다. 영화에 나오는 닥터 Zones 또는 쥬니어 Zones 와 비슷하다.
그런데 발명군은 할아버지와 아버님이 찾아온 것을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만 주로 한다고 한다. 그런데 발명군이 사칙연산과정에서 검산을 잘 안해 매번 심대한 장애를 준다.
구글 다음 네이버 관광을 다니면
관광업체에 불이익이 있게 된다고 걱정할 수도 있다.
이는 비트코인이 범죄나 투기를 유발한다고 걱정하는 일과 비슷한 생각이다.
이런 문제를 살필 때는 문제되는 것을 빼고 넣고 해서 어떤 다른 내용이 영향을 받는가를 살펴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구글 다음 네이버 관광을 다녀와도 직접 가봐할 곳은 가게 된다. 구글 다음 네이버 관광을 다녀오지 못해도 직접 가봐할 곳은 가게 된다.
구글 다음 네이버 관광을 다녀와도 직접 가볼 수 없는 곳은 가지 못한다. 구글 다음 네이버 관광을 다녀오지 못해도 직접 가볼 수 없는 곳은 가지 못한다.
결국 직접 어떤 장소를 가고 못가고는 이와 별 관계없다.
그래서 구글 다음 네이버 관광이 관광업분야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것은 가상화폐가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거나 범죄를 조장한다는 생각과 비슷하다.
요즘 가상화폐 규제가 거론된다. 그 이유로 세탁업의 활성화나 투기행위의 유발 문제를 든다.
이 역시 범죄나 부정행위와 이런 코인의 관계를 앞처럼 놓고 살피면 쉽다. 세탁과정이 어려워서 범죄나 부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범죄 행위자가 세상에 별로 없다.
현실에서 5 만원권을 10 조원을 발행하면 80% 가 유통이 되지 않고 사장된다는 보고된다. 그 사정은 그것이 떳떳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5 만원권을 발행한 한국은행이 범죄와 부정행위를 조장하는 기관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대부분 물건의 가격이 변동한다. 어떤 사회 문제현상을 해결하고자 할 때는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가라는 관계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떳떳하지 못한 경우 돈이 유통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관은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 피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범죄는 범죄가 행해지는 부분에서 행하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관계없이 자금이 사회에서 순환을 하여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부분을 차단하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걸레가 문제라고 하자. 그런데 그 걸레를 깨끗한 천으로 만들려는 부분을 문제라고 차단하면 곤란하다. 그렇게 하면 깨끗한 천이 더럽게 되는 일이 예방되는 효과도 거의 없다.
비닐포대에 돈을 담아서 밭에 묻어둔다. 그런데 그런 돈을 벌게 된 부정하고 불법한 일이 문제다. 설령 그 돈을 금융기관에서 유통하지 못하게 해도 계속 하겠다고 임하게 된다. 이는 그런 범죄 행위 자체를 행하기 어렵게 해야 방지된다. 그리고 단지 그 돈을 세탁을 못하게 하는 것으로는 방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범죄를 행하면 체포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놓고 문제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범죄를 에방하고자 그 자금을 금융기관에서 유통되는 것을 막는 것은 전도된 대책이다.
게임산업은 아이들이 하루종일 공연히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일을 하게 한다. 그래서 몇십조원의 수익을 올린다. 그래서 이것을 한국에서만은 원천 봉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러면 pc 업체와 게임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 게임이 대부분 살생, 폭력을 주제로 해서 문제가 심각하다. 게임이나 영화나 처음부터 끝까지 잔인한 폭행과 살상행위가 전개되어 마음이 불쾌해진다.
그런데 흡연은 오히려 이런 행위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그런데 피가 난무한 잔혹한 살상 행위는 괜찮다고 허용하고 담배흡연은 문제라고 보고 화면에서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
불법자금을 획득하는 행위는 방치하고 그 자금을 유통시키는 것만 막으면 된다고 잘못 여긴다.
너무 이야기가 길어졌다. doctr 님이 본인의 소액투자자의 투자방안을 잘 검토해서 큰 피해가 없다고 한다. 거래소를 외국으로 옮기는 방안과 절차도 알아봐야 할지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 자금이 별로 크지 않다고 하지만, 국내에서 순환할 자금이 공연히 외국으로 옮겨가는 효과만 나타난다.
그런데 역시 인과문제를 잘못 판단하기 때문이다.
mun님이 이에 대해 다음처럼 지적한다. 처음에 깨끗한 천을 걸레로 만드는 부분과 행위는 차단하고 규제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걸레든 깨끗한 천이 되어 순환을 시작하고 경제 전반에 도움을 주기 시작하는 부분부터는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
범죄는 차단해야 한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나온 이가 범죄와 손을 끊고 세탁업을 시작하려 한다면 세탁업을 하는 부분은 막아서는 안 된다. 이와 마찬가지다.
이 부분을 막아 처음 범죄를 덜하게 된다면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히려 다른 부분만 비정상적으로 만들게 된다.
doctr 님이 겨우 2500 억원의 연구실 기금을 가지고 해외 거래소에서 거래를 하겠다고 임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여하튼 세계 어느 곳이라도 한 거래소가 남아 있으면 그곳에서 거래를 하게 되면 효과가 없다.
그런데 코인에 투자하는 사정을 알아본 다음과 같다.
투자종목마다 왜 한 종목이 오르는지 내리는지를 잘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종목은 분식 회계까지 개입하고 고급사기가 많이 개입된다. 그래서 차라리 실물 배경이 처음부터 없는 것을 투자하는 것이 속이 더 편하다고 한다.
구글 다음 네이버 관광과 함께 이런 문제를 함께 살피는 것은 인과문제를 잘 살펴야 어떤 문제현상을 차단하는 대책이나 방안도 잘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호 관련성이 없는 것을 공연히 붙잡고 임하면
일만 힘들다. 그리고 효과가 없는 일을 행하는 것이 된다.
영화장면마다 칼로 사람을 쉼없이 난자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담배 피는 장면을 곳곳마다 지우면 사람들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것과 같다.
이전 글에서 법의 문제를 살피려다 살피지 못했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법과 현실의 법은 조금 다르다. 그러나 여하튼 관련성이 있다.
인과를 살펴야 3 악도를 면할 수 있는 점은 공통하기 때문이다.
요즘 금감원에서 한 직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700 만원 수익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발명군의 아들 발상군이 이런 보고를 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앞으로는 한국은행이 직접 가상화폐를 발행해서 공급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컴퓨터 cpu 를 괴롭히는 채굴를 통해서 가상화폐를 얻지말고 한국은행이 원천적으로 제작해 공급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유통과정에서 위변조만 되지 않는 형태로 직접 가상화폐를 발행해서 가상화폐 거래소에 공급하는 방안이 좋다.
그런데 이것이 긍정적인 기능을 갖는 것은 순환이 되기 때문이다.
몸도 어느 부분에 피가 안 돌아 전혀 피가 공급이 안 되거나 또는 어느 부분만 가득 피가 고여 있으면 그로 인해 몸을 전체적으로 병들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한국은행에서 공급한 5 만원권의 80 % 가 순환이 안 되고 보관이 되면 고용이나 산업에 도움이 될 수가 없다. 다만 언젠가는 무언가를 살 기회만 보고 장기간 고여 있게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유보금만 쌓아 놓고 투자를 하지 않게 되면 다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사회 전반이 힘들게 된다.
피가 어느 부분에서 순환이 안 되거나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피를 몰리면 각 부분마다 다 제각각 통증을 호소하게 된다.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하튼 발굴 - 발견 - 발명 - 발상 이 발씨 가문의 활동을 다양한 형태로 장려할 필요가 있다.
● 불확실하고 무량한 if 에서 평안함을 얻는 방안
투자과정에서 대부분 매번 과거 시세 변동표를 보면 그 내용을 잘 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도박하는 심정으로 투자를 행하기 쉽다. 그러면 곤란하다.
도박을 반복하면 수학상 이론적으로 원래 출발상태가 될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고 마이너스 '-' 형태가 된다. 이론상 그 자체에 누수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투자문제는 기록을 통해 과거의 시세 변동을 다 알더라도
장래 내용은 매순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500 조 미만의 소액투자를 하는 경우를 포함해 투자를 하는 경우는 다 함께 현명한 투자를 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우선 알수 없는 장래의 무수한 경우수를 놓고 무량한 if 문제에 들어가서
매 순간 문제되는 값을 정확하게 얻어내려고 임하면 곤란하다.
그보다는 각 경우 다른 선택에 따른 결과들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두 값을 놓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0 과 00[무한, 무량] 이라는 두 글자를 써 놓고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 각 경우에 도달했을 때 그 각 경우 그 상태에서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가를 먼저 잘 판단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그런 내용들 가운데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당장 열심히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투자를 잘해 그 수익금으로 대학교를 건설하려고 한다고 하자. 또는 사찰을 건설해 운영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데 매 순간 도박하는 심정으로 알지도 못하는 종목을 붙잡고 고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는 매 순간 가격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그 값을 정확히 알아내려는 자세도 곤란하다.
그런 방안보다는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교나 사찰이 다 건설되었다고 하고 그 상태에서 자신은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한 것인가를 먼저 잘 헤아려서 그 가운데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행하면 된다.
투자를 해서 수익을 많이 얻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매번 무량한 if 문제를 붙잡고 신경을 쓰다보면 다른 병이 생기게 된다.
개인적으로 생명이 소비되고 단축된다. 자신은 이를 일일히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은 스스로 우주보다 가치가 높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한편 그 생명이 대략 100 년 안에 일정 시점에 사망으로 0 이 된다. 따라서 대략 우주보다 높은 그 가치를 100 등분한 비용이 매 변 생명에 대한 감가상각비용으로 소모되게 된다.
그래서 도박행위를 반복하면 그 도박에 들인 시간만큼 감가상각비용에 해당한 손해를 이미 기본적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모이면 사회문제가 된다.
이 때 자신의 생명을 얼마로 책정하고 계산할 것인지 먼저 문제될 수 있다. 생명 > 우주가치 > 국가 1년 예산액 > 500 조원 이 정도만 놓고 계산해도 1년당 최소 5조원을 초과하는 감가상각비가 소모된다. 그래서 투자를 해서 원금을 그대로 유지해도 엄청난 손해다.
그러나 사회문제는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부분을 하나 막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생사전반과정이 다 이와 같은 성격을 갖고 있음을 잘 파악하고 임해야 한다.
자동차를 몰고 거리를 달리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사고가 나서 자신이 장애자가 될 것을 미리 알수 없다. 사업가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 그런 사업에 투자를 해서 파산할 것인지 아닌지는 미리 알기 힘들다. 그런데 삶 자체가 다 그렇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것만 그렇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무량한 if 문장을 놓고 선택하는 문제는 단지 경제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삶의 전반이 다 그렇다. 따라서 이 사정을 잘 이해한 가운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생사문제를 놓고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생사문제를 놓고 누가 어떻게 안정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축사에 닭이나 오리 돼지 소로 태어나거나 사람과 하늘 세계[인천]에 태어나거나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내용이 우연에 의해 그렇게 된다고 여기고 도박적인 자세로 임하기 쉽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부분이 중요하다. 따라서 바로 이 부분에 집중을 해야 한다. 그 방안이 바로 해결하기 복잡한 무량한 if 문제를 가장 단순하게 해결하고 매 순간 평안하게 임하는 방안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뜻이 뜻대로 다 성취되었을 때 정작 자신은 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한 것인가를 잘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곧 경전에서 제시하는 수행방안이다.
아름다운 풍광 스크립트에서 한국 및 외국 사찰 방문을 기획중인데 이런 사찰 방문시 표시하는 깃발과 일반 세계 유적지나 아름다운 풍광 방문시 표시하는 깃발을 구분하려고 생각 중이다.
처음엔 ▷ ▶ 깃발을 사용하기로 정했다. 그런데 이 기호는 이곳 저곳에 너무 많이 사용하였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는 기호를 찾아보게 된다. 새 기호 찾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유니코드 모든 문자가 나타나는 스크립트를 하나 만들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관련되기에 ♡♥과 ♨☏ 두 후보를 놓고 생각중이다.
사찰 방문 기호는 일단 ♡로 정했다.
♨☏도 관광과 밀접한데 사찰에서 온천이 연상되면 곤란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다음과 같이 기호를 구분하게 되었다. ♡ - 한국 내지 외국 사찰
♥ - 일반 대학 내지 도시 풍경
다만 지명이 영어로 시작하면 무조건♥ 기호가 붙게 된다. 그래서 영어명으로 된 사찰은 조금 수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방문을 한 곳을 사찰과 기타장소로 구분하기 위해서다.
미리 방문할 장소의 목록부터 기호를 구분하는 방안도 있지만 조금 더 번거롭다.
주소를 찾아가는 스크립트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또 조금 특이한 사정이 있다. 그래서 또 조금 손을 봐야 한다. 그래서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런 가운데 아름다운 사진 공양 코너 스크립트를 정상 가동하기로 하였다.
사찰주소록이 오래된 목록이다. 그래서 상당수가 해당 지번에 사찰이 없다. 있더라도 로드뷰 스트리트뷰 등이 지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이트마다 해당 사찰을 볼 수 없기도 하고 제각기 다르다.
청주 불교대학이란 곳이 처음 뽑혀 나와 찾았다. 그런데 나오지 않아서 힘이 들었다. 알고보니 주소가 청원구로 행정구역이 변동되어서 그렇다.
너무 오래된 목록이라 매번 사찰을 찾는데 힘이 든다. 새로 바뀐 주소를 보기 위해 모든 주소가 나오는 전화번호부 CD 를 알아보니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그것도 올해버전부터 이전 버전에 비해 대략 7 배나 비싸졌다. 그 사정을 헤아려보니 일단 우편번호체계가 5 자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주소도 지번에서 도로명주소로 바뀌었다. 그래서 전국 주소를 놓고 힘든 변환착업을 해야 했기에 비싸진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본인 입장에서는 구글이나 daum이나 네이버로 사찰을 방문하며 관광하기 위해 그처럼 투자를 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오래된 주소록을 통해 하나하나 방문하면서 과거 목록과 주소가 바뀐 경우 그 변경 내용을 그 때마다 기존 주소록에 반영해나가야 할 듯하다.
○ [pt op tr] ▼mus0fl--Le Livre De La Jungle - Etre Un Homme Comme Vous.lrc
옥상기지에서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전해준다.
공부 => 생사해탈 => 성불 이런 것이 답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부다.
아무리 가사를 살펴도 공부란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가 할 수 있지만, 이 문제가 어제 논의한 자상과 공상의 문제다.
여기서 공상은 상상을 하는 공상의 의미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상과 공상의 문제에는 바로 그런 성격의 문제다. 그리고 그것이 곧 전도망상분별 편집증 즉 망집현상과 관련된다.
어제 『백자론』을 살피면서 논의하던 내용도 조금 더 이어서 논의를 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하다.
다라니나 불어노래를 들을 때도 발음을 조심해야 하고 담겨진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 불어 노래를 들을 때 공부!가 중요하다는 메세지를 전한다고 시감상하는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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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Garou Et Claude Dubois - Femme De Societe.lrc 2015_0812_205423_nikon.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argent_-_Capri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argent_-_Capri.jpg John Singer Sargent (1856–1925) English: The painting is of Rosina Ferrara doing a tarantella dance on the rooftop of (probably) Sargent's hotel.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shishflower3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shishflower3.jpg Author Ashish8460 ● [pt op tr] 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