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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6-23_불설제법본무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6-23_불설제법본무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6. 23. 20:17



®

불설제법본무경
K0169
T0651

불설제법본무경 상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불설제법본무경_K0169_T0651 핵심요약 



♣0169-001♧

불설제법본무경 상권





◆vnzp9370

◈Lab value 불기2562/06/23/토/20:20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Renaud - Johnston's Motor Car.lrc


♥ 잡담 ♥1800장의 행위예술감상 
 

어릴 때 영어 공부한다고 1800 제 이런 책을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면서 1800 여장의 그림을 하나하나 보다 보니 
나중에는 해도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밀려 든다. 
그러나 한 번 감상했으면 끝까지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끝까지 보고 말았다. 

인턴연구원이 자신이 축구 응원을 한다면서 
옆에서 축구 게임을 하는데 
나중에 너무 열심히 게임을 해서 손이 삔 것 같다고 하는데 
본인도 그런 심정을 느낀다. 

그래도 열심히 보았으니 한 장은 올려 놓아야 한다고 보고 
올려 놓게 된다. 


○ [pt op tr]Nicholas-Roerich-temple


그림에 최면적 요소가 들어있다는 데 어디에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일단 그림을 보니 세상 일체가 모두 다 니르바나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에 살피는 불설제법본무경은 
이전에 살핀 대반야바라밀다경전과 상당히 관련이 되는 경전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에서 
일체중생성청정 이라거나 
생사 즉 열반이라거나 
죄복개공무소주라거나 
이런 등등의 내용을 제시받으면 
조금 당황하게 된다. 

이전 대반야바라밀다경전에서도 
다음 내용을 제시받았다. 
지금 생각나면 천재라고 할만한데
제목만 생각나면 영재급이다. 
본인이 지금 생각해보려고 하는데 중국배우 
난신해품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면 수재다. (?)
중국배우가 생각나면 곤란한데 
그나마 본 내용을 생각해낼 기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믿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난신해품인가. 
이렇게 놓고 시간을 들여서 난신해품에서 보았던 내용을 
떠올려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행히 본인이 글을 적었기 때문에 
그렇게 까지 어려운 것은 아니다. 

A의 청정함은 곧 B 의 청정함이다. 
그 이유는 
A의 청정한과 B 의 청정함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고 
나누어지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축구시합에서 
A 팀이 이기면 A 가 이긴 것이지 
B 가 이긴 것인가. 
그렇지 않은데 왜 그렇다고 하는가. 

이것이 경전 구절을 이해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소다. 

일체중생성청정 이라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일체 중생에 세상에서 모두가 다 함께 비난할 만한 
흉악한 범인을 놓고 이 내용을 검토해보자. 
과연 그렇다고 보겠는가. 
그렇다고 추상적으로 보게 되는 경우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그 흉악범이 자신을 가지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도 그렇다고 하겠는가. 

형법전에 나오는 온갖 범죄를 자신에게 어떤 이가 
그렇게 행했다. 
그래서 생각만해도 치가 떨리는데 
이 상황에서 부처님이 일체중생 성청정이라고 제시하는 한편, 
그렇게 심하게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불쾌한 그런 상태마저도 
모든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평안하고 안락한 니르바나다. 
이렇게 제시하는 것이니 
이것이 믿고 이해하기가 쉬운 일인가. 

그런데 이번에 살피는 불설제법본무경에서는 
왜 그런가 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이전에도 왜 반야바라밀다 경전이 
그렇게 내용을 질리게 하는 형태로 반복구를 많이 사용하면서 
내용은 긴가 이런 부분에서 잠깐 살폈는데
사정이 있다. 

부처님이 처음 그 부분을 언급하고 계시다.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 부분을 인용을 하여 살펴보자 

다음이다. 

...

선가자야, 

너는 지금 이에 대한 인연을 물을 필요 없다. 


선가자야, 

이는 초업(初業)보살이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이를테면 


공견(空見)ㆍ무상견(無相見)ㆍ무원견(無願見)ㆍ


무생견(無生見)ㆍ무유견(無有見)ㆍ무상모견(無相貌見)ㆍ


열반견(涅槃見)ㆍ불타견(佛陀見)ㆍ보리견(菩提見)은, 


선가자야, 

초업보살 앞에서는 이 법을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선근(善根)이 끊어지는 일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보리(佛菩提)에서 곧 비도(非道)를 행하여 

만약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에 떨어지면 

여래가 어떤 뜻으로 이 법을 말하셨는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원래 반야바라밀다경전을 비롯해서 
생사 즉 열반 이런 등등의 내용을 제시하는 경전은 
사실은 초보자를 상대로 제시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기 쉬운 가르침이 된다. 

그 사정이 위에 적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경전 자체에도 
그런 가르침을 제시하는 대상은 
기본 내용을 이미 다 성취하고 완성한 
최고의 상태 
예를 들어 지혜제일 사리자 존자 
해공제일 수보리존자 
그리고 하늘의 제석 
이런 상태를 대상으로 가르침이 베풀어지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그 경전을 대해야 
위에서 제시한 그런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사정이 있는데 
그러나 이렇게 의문을 가질 입장도 있다. 

아니 진리가 갑이 알고 적용해야 할 진리가 따로 있고
을이 알고 적용해야 할 진리가 따로 있는가. 
이렇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수준이 낮으면 그렇게 임하게 되므로 
그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내용이 위에 간단하게 적혀 있는 것이다. 

최고의 흉악범이나 수행자나 마찬가지다. 
이런 내용을 대하면 
수행자는 사정이 그러므로 이 내용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모든 극악한 상태를 놓고 이를 다 평안히 받아들이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정진하게 되는데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경우는 
오히려 이 내용이 마치 
흉악한 범죄를 마음대로 행해도 된다 
이렇게 부처님이 제시한 것으로 이해하고 

단견과 상견과 같은 망집에 바탕해서
위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도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리고 정작 행해야 할 수행이나 선근을 끊어 버리고 
떡 임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문제다. 

그래서 잘 살펴야 하는데 
그 사정을 그렇게 놓고 
잘 살필만한 수준이 되어야 
부처님이 어떤 뜻으로 그런 가르침을 말하셨는지를 
잘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다. 

결론만 간단히 제시하면 
금강경이다. 

해야 할 수행을 무량하게 정진하되 
집착을 갖지 말고 상을 취해 상에 머물지 말고 그렇게 해야 한다. 

무량하게 중생을 무량하게 제도하되 
그러나 중생이나 그런 제도를 행하는 수행자 자체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관한 바탕에서 그렇게 행해야 한다.
이 의미다. 

이 두 측면을 다 잘 이해하고 잘 사용해야 한다. 
이런 의미다. 

그런데 그 한 측면이 
기본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이미 성취된 상태에서는 
위 내용을 통해서 잘 이해되고 잘 성취되는데 반해서 
기본적인 계, 정, 혜 수행 자체가 잘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처음 수행자체도 잘 되지 못하게 하는 부작용이 속출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이하는 살필 필요도 없게 된다. 
이런 문제다. 


그런데 결론만 그렇게 이해하면 
유마경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수행자가 속박된 상태
즉, 방편이 없이 지혜만 가진 상태
또는 지혜가 없이 방편만 가진 상태를 떠나고 
해탈을 얻고 중생제도를 잘 성취할 수 있는가. 

즉, 무분별의 반야지혜와
세속의 분별적 방편지혜를 다 구족해서 
무분별 반야지혜의 측면에서는 
일체가 차별없이 다 공하여 
생사 즉 열반임을 잘 관하고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복덕자량과 세속에서 행하는
분별적 방편지혜를 모두 잘 구족해서 
이를 바탕으로 중생을 잘 제도해나갈 수 있는가. 

위 내용만 살피는 경우
초보소행자도 마땅히 이론상은 그래야 되는데 
그러나 대부분 위 내용을 취하고 나서는 
부처나 자신이나 알고보면 차별이 없다는 등 
지옥이나 극락이나 다 청정한 니르바나라는 등 하면서 
곧바로 증상만을 일으키고 
속된 말로 까불게 되기 쉽다는 의미다. 

그러면 생사현실=>  즉 열반의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 => 즉 고통을 극심히 받아나가는 생사현실이 되기 쉬운 것이다. 


사실 원래 제시한 내용대로 생사현실 즉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가 될 수 있으려면
앞에 제시한 것처럼 자신이 직접 어떤 흉악범에게 붙잡혀 묶인 가운데 
자신의 손과 발을 톱으로 하나하나 잘리우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것이 곧 청정한 니르바나임을 관하고 
그 상태에서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없이 
평안히 참고 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앞에 제시한 내용대로 생사 현실 일체가
모두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행을 통해 정말 그런 상태에서 안인을 성취하고 
그래서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그런 경우에도 처음이 망집상태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상태에 이르게 되면 
그런 경우 위 내용이 단순히 이론으로서뿐만 아니라 
현실 일체를 모두 다 극락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온 생명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편에 제한을 두지 않고
온갖 방편을 다 사용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수행자가 되었다고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 전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 내용은 오히려
그런 상태가 아닌 수행자 자신부터 
생사 고통을 극심하게 받게 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즉, 수행자 자신부터 실제로 그런 상태를 평안하게 참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도 
말로만 그렇다고 여기면서 
이제 거꾸로 그런 성격의 내용을
매 경우마다 수행자 자신이
오히려 앞의 사례의 흉악범과 같은 상태로 
다른 이에게 함부로 적용하려는
그런 이상한 상태가 되기 쉽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했기에 
다른 수행자를 놓고 자신의 입장에서 마땅치 않다고 보면서
일일이 시비를 걸고 임하는 가운데 
업의 장애를 스스로 쌓게 되고 
자신부터 결국 급하게 신속히 지옥에 들어가 임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만일 앞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었다면 
어떤가. 
그렇다 해도 그 수행자 자신부터 
어느 경우나 극락의 상태에 있는 것이고 
또 사정이 그렇기에 모든 경우를 놓고 
평안하게 대하는 가운데 
오로지 그 상대를 좋고 좋은 상태로 이끌 방편을
매 상황마다 잘 찾아내서 잘 사용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 부분이 위 경전 뒷부분에 
부처님 자신의 사례를 통해서 제시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아직 그런 상태가 아닌 수행자를 상대로 
잘못 내용을 제시하면 
효능보다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다는 의미다. 


이런 각 측면의 부작용을 먼저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이 측면에서는 =>
이를 통해 현실에서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측면을 취해서 
집착과 번뇌를 제거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러나 자칫 이를 통해 
무량한 선법까지 같이 제거하고 없애는 부작용이 생긴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 
수행을 정진해서 일정한 수행결과를 증득하고 
성취해야 한다는 기본 경전의 내용만 취하면 어떤가.

이 경우는 이런 내용을 통해서
수행에 정진하여 그런 과보를 얻는 것 까지는 좋은데 . 
그러나 이로써 그 수행자가 거꾸로
그런 수행목표나 수행방안에 망집을 다시 일으켜서 
이를 대하는 가운데 
병을 고치기 위한 약에 다시 집착해 
그 약으로 병에 걸려 오히려
유소득을 방편으로 수행하여
그로 인해 더 신속하게 번뇌를 일으키고 지옥에 들어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계를 성취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복덕자량을 구족한다는 측면에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서 수행자가 얻는 복덕자량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성취해햐 할 방편인 것이다. 
그런데 앞처럼 수행이나 수행을 통해 얻는 과보가 
정말 실답게 있는 것으로 여기면 
다른 것에 대한 망집은 제거하면서 
정작 이런 수행과 이를 통한 과보나 복덕에 
오히려 집착하고 임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생사현실에서 생사에 묶이게 한 상태를 
벗어나게 한 약이 이 측면에서는 거꾸로 
병을 일으키게 한 것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수행자는 그런 내용 역시도 마찬가지로 
얻을 수 없음을 관하고 수행에 정진하여 
그 수행을 통해 무량한 복덕을 얻지만,
그 복덕을 중생제도의 목적에 사용할 뿐 
스스로는 그 복덕을 받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금강경에 나오는 '불수복덕'이란 구절이 의미하는 바다. 

또 앞과 같은 상태가 되면 
다음 부작용도 나타난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수행을 집착하면
그 수행을 잘 해야 한다고 여기는 가운데
오히려 그로 인해 온갖 문제를 놓고
다른 상대를 비난 비방하고 시비를 일으키면서 
온갖 업의 장애를 일으키는 사례가 있는데
이런 사례가 그런 경우다. 

즉, 정작 자신은 망집을 제거하지 못했으면서 
다른 수행자를 놓고 온갖 잔소리도 하고 
시비도 일으키는 가운데 상대의 수행에 장애를 일으키고 
그런 결과 그 과보를 극심하게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두 측면이 그런 부작용이 있지만,
그 측면이 갖는 취지를 놓고 이를 잘 관하고 대하면
그 두 측면이 다 장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나 여타 경전에서 
모두 이런 측면으로 가르침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뗏목을 시설해 제공했는데 
자칫 이 뗏목에 집착하면 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뗏목을 그런 취지로 적절하게 잘 사용하되 
그런 부작용은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단 쉬자.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4935#9370
sfed--제법본무경_K0169_T0651.txt ☞제법본무
sfd8--불교단상_2562_06.txt ☞◆vnzp9370
불기2562-06-23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mus0fl--Renaud - Johnston's Motor Car.lrc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rnst-Ludwig-Kirchner-trees.jpg!HD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strophytum_flower_221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ummer_Palace_at_Beijing_13



♥Kopřivná (Village, Šumperk) ,Czech_Republic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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