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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3-03-19_잡아함경_0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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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3-03-19_잡아함경_03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9. 3. 19. 23:22



®

『잡아함경』
K0650
T0099

잡아함경 제31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잡아함경_K0650_T0099 핵심요약



♣0650-031♧
『잡아함경』

잡아함경 제31권


861. 도솔천경(兜率天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인간 세계의 400년은 도솔천[兜率陀]1) 의 하루 낮 하룻밤이다.
이와 같이 30일을 한 달, 열두 달을 1년으로 계산하면, 도솔천의 수명은 4,000년이다.

그런데 어리석고 들은 것이 없어 무식한 범부(凡夫)들은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지옥ㆍ축생ㆍ아귀 가운데에 태어난다.
그러나 많이 들어 아는 것이 많은 거룩한 제자들은 거기서 목숨을 마치더라도 지옥ㆍ축생ㆍ아귀 가운데에는 태어나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862. 화락천경(化樂天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인간 세계의 800년은 화락천(化樂天)2) 의 하루 낮 하룻밤이다.
이와 같이 30일을 한 달, 열두 달을 1년으로 계산하면, 화락천의 수명은 8,000년이다.
그런데 어리석고 들은 것이 없는 무식한 범부들은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지옥ㆍ축생ㆍ아귀 가운데에 태어난다.
그러나 많이 들어 아는 것이 많은 거룩한 제자들은 거기서 목숨을 마치더라도 지옥ㆍ축생ㆍ아귀 가운데에는 태어나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863. 타화자재천경(他化自在天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인간의 1,600년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3) 의 하루 낮 하룻밤이다.
이와 같이 30일을 한 달, 열두 달을 1년으로 계산하면, 타화자재천의 수명은 1만 6,000년이다.

그런데 어리석고 들은 것이 없는 무식한 범부들은 거기서 목숨을 마치면 지옥ㆍ축생ㆍ아귀 가운데에 태어난다. 
그러나 많이 들어 아는 것이 많은 거룩한 제자들은 거기서 목숨을 마치더라도 지옥ㆍ축생ㆍ아귀 가운데에는 태어나지 않느니라.”

...




● 각 세계별로 달라지는 시간의 길이

『잡아함경』 31 권 861 도솔천경에 다음과 같이 내용이 나온다. 


인간 세계의 400년은 도솔천[兜率陀]1) 의 하루 낮 하룻밤이다. 
이와 같이 30일을 한 달, 열두 달을 1년으로 계산하면, 도솔천의 수명은 4,000년이다. 

그래서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시간으로 환산하면 

400 * 30 * 12 * 4000 
이렇게 계산해야 한다. 

576,000,000 년  

평균수명 인간 세계 기준 환산 =  5억 76,00 만 0,000 년 


그런데 왜 세계마다 이렇게 시간의 길이가 달라지는가. 

이것은 각 세계를 직접 방문하여 그 세계의 사정을 살피는 한편,
또 기존에 있던 세계의 사정을 놓고 이 두 세계의 내용을 다시 비교해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부처님이 제시한 내용을 그저 믿거나 말거나 지어낸 이야기로 간주하기 쉽다. 

그런데 직접 그런 상태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현실에서 직접 관찰 가능한 내용을 놓고 
그런 시간의 길이가 차이가 나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가운데 
그 사정을 이론상 추리하고 이해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이 한 생을 보내는 데에 있어서 
무엇을 주로 의존하게 되는가. 
그리고 한 생 동안 주로 무슨 활동을 의미있게 행하고 마치고 
죽어가는가. 
이것을 먼저 잘 관찰해야 한다. 

출생 - 성장 - 교육 - 직업 활동 - 결혼 - 출산 - 질병 - 사망 

대강 이런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한 생을 마치는 기간이 알고보면 각 주체마다 다 다르고
그 개별적인 사연도 다 다르다. 

그래서 인간의 평균수명을 잡는다면 대략 요즘은 평균수명 80 세 이렇게 제시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시기나 상황따라 다 다르다. 
전쟁이나 기근 천재지변이 잦은 시기는 그것이 대폭 감소되기 마련이다. 

로마시대에도 80 세 90 세 살아가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평균적으로 보면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리고 또 청년기에 죽어가는 경우도 많고 
이러다 보면 평균수명을 대폭 끌어 내리게 된다. 

통계자료가 없더라도 충분히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평균수명이 늘어 나려면 기본적으로 
그 세계에 살아가는 각 주체의 선업이 쌓이고 
그래서 복락을 누릴 조건이 갖추어져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제시하게 된다. 

각 개인별로는 그것은 복덕이 쌓여야 가능한 문제다. 
그것이 안 되면 일단 주변에 있는 의사가 치료 방법을 모르거나
어떤 거의 불가능한 진료비를 지불하지 않으면 진료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살아가는데 갑자기 무장괴한이 침입해 자신을 살해하고 사라지거나 
이런 형태가 되어서 평균수명을 보장받기 힘들다. 


그런데 여하튼 그래도 인간세계에서의 평균적인 내용은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다른 생명과는 일단 크게 구분된다. 

그래서 각 생명을 놓고 
이 각각이 평균적으로 어떤 기간을 살고 
그 기간에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가를 놓고 보면 
그런 차이를 또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바이러스나 세균부터 시작하면 
훨씬 이해가 빨라진다. 


이제 1년 단위로 생활하고 없어져 가는 듯한 
파리나 모기 정도를 놓고 보아도 조금 이해가 빨라진다. 

그런데 파리나 모기를 놓고 보면 
몇 달 동안에 인간들이 일 생을 거쳐서 행하는 대부분 중요한 활동을 
거의 다 마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서 1 년이 지난다해도 걸음마 정도 하기 힘든 상태인데 
그 기간에 이미 결혼식을 치루고 아이 낳고 이런 상태로 쉭쉭 지나간다는 의미다. 

왜 그렇게 차이가 발생하는가. 
이 문제를 잘 살피면 

왜 각 세계마다 시간의 길이 자체가 달라지는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야구르트 균을 우유에 넣고 관찰해보면 
몇 일 사이에 몇 세대가 진행된다는 것도 보게 된다. 

여하튼 그런 사정을 놓고 
경전 내용을 미루어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선 중요한 것은 
선업을 닦아서 하늘에 올라가게 되는데 
그 각 하늘 단계마다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 비율을 하나의 산을 놓고
산 전체의 흙과
손안에 쥔 흙의 비율로 제시하는 것이다. 

요즘 공무원시험 합격률을 100 대 1 이렇게 제시한다면, 
하늘 입학 시험 합격률은 전체 산의 흙대 손안에 쥔 흙의 비율 
이렇다는 의미다. 

그런데 처음 인간 세계에서 바로 윗 하늘이 되는 4 천왕 세계 합격비율이 그렇고 
그 4 천왕 중생 가운데 다시 그 윗 하늘 도리천 세계 합격비율은 또 마찬가지라고 
경전에 제시된다. 

그렇게 계속 올라서 

도솔천 - 화락천 - 타화자채전 이렇게 제시되는데 
욕계에서 가장 높은 하늘이 곧 타화자재천이 되는 것이다. 

보통 하나만 계산하면 그 사정을 잘 모른다. 

늘 대충 계산하고 현실에 임하는 경우 
x 나  x제곱이나  x 3 제곱의 문제나 
값이 다 같다고 쉽게 여기고 지나치기 쉽다. 

처음 1 을 넣어 보니 다 1 이 나오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세번 정도는 늘 계산을 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


4천왕천 = 
도리천  =
야마천  = 
도솔천 = 400 * 30 * 12 * 4000 =  576,000,000 년  
화락천 = 800 * 30 * 12 * 8000 =  
타화자재천 = 1600 * 30 * 12 * 16000 =  16 배 


이렇게 놓고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미루어 채워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복락을 누리는 양과 기간이 각 하늘마다 길고 많고

욕계의 하늘을 넘어서
색계나 무색계로 나아가면 이 정도가 더 심해지게 된다. 

그런데 수행자는 그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경전 내용이 더 중요하다. 
그 사정이 왜 그런가를 또 잘 이해해야 한다. 
수행자에게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 



우선 각 세계마다 시간의 길이에 차이가 있게 되는 사정을 
또 다른 경전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을 우선 기본적으로 참고해보기로 한다. 



mus0fl--Tete - L'abominable Hyde.lrc 


“세존이시여, 이 모든 불국토의 시간의 장엄에 우열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나의 이 사바세계의 석가모니불 국토의 1겁은 저 극락세계 무량광불 국토의 1주야(晝夜)가 되고, 극락세계의 1겁은 가사당(袈裟幢) 세계의 금강견고환희불(金剛堅固歡喜佛) 국토의 1주야가 되며, 가사당 세계의 1겁은 불퇴륜음(不退輪音) 세계의 극묘원만홍련부신불(極妙圓滿紅蓮敷身佛) 국토의 1주야가 되고, 불퇴륜음 세계의 1겁은 절진(絶塵) 세계의 법당불(法幢佛) 국토의 1주야가 되고, 명등(明燈) 세계의 1겁은 묘광(妙光) 세계의 변조불(遍照佛) 국토의 1주야가 되며, 묘광(妙光) 세계의 1겁은 난초(難超) 세계의 신방법광불(身放法光佛) 국토의 1주야가 되고, 난초 세계의 1겁은

K0101V008P1239b

 

장엄(莊嚴) 세계의 일체신통혜광왕불(一切神通慧光王佛) 국토의 1주야가 되며, 장엄 세계의 1겁은 경륜(鏡輪) 세계의 월각불(月覺佛) 국토의 1주야가 되느니라.

선남자야, 이와 같이 세계가 계속 차츰 불어 나가 10불가설 구지 나유타 백천 불토의 티끌 수 같은 세계의 불토를 채우고, 그 최후 세계 불토의 1겁은 연화덕(蓮華德) 세계의 현덕불(賢德佛) 국토의 1주야가 되는데 그 세계의 모든 보살 대중들은 다 수승한 보현보살 행의 자리를 닦느니라.

선남자야, 모든 세계의 주야가 차츰 불어 나가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의 수명과 신상과 보살 세계의 장엄도 또한 그러하나니, 그것은 저 유정들의 복이 차츰 불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현시무변불토공덕법문(顯示無邊佛土功德法門)’을 듣고, 기뻐하여 믿고 존중하며 수지하고 독송하며 이치대로 생각하고 남에게 널리 설명해 주면, 목숨을 마칠 때에는 시방 불토의 무량한 부처님께서 다 그 앞에 나타나 위안하고 칭찬하시어 그의 무량한 선근을 더욱 증진시켜 주시므로 그는 그 원을 따라 모든 부처님의 깨끗한 국토에 왕생하고 나아가서는 위없는 정등보리에 이르며, 생마다 항상 숙명(宿命)을 기억하면서 보살행을 닦아 빨리 원만해지느니라.”


『현무변불토공덕경』 1권(ABC, K0101 v8, p.1239a01-b02)


참고 『대방광불화엄경』 수량품 















◆vuru8317

◈Lab value 불기2562/03/19




○ [pt op tr]  mus0fl--Keren Ann - Sailor & Widow.lrc


♥ 잡담 ♥가치와 선택











●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 사정과 불교

◈Lab value 불기2563/03/21/목/13:44 

요즘 경전 공부하는 가운데 약간의 염증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년초에 기획한 경율논 코너가 주는 중압감이 작용해서일 수도 있고 
또 매번 경전을 살필 때마다 랜덤 추출되는 경전을 앞일자로 미리 예약해 놓는 가운데  
경전이 몇개월 분량 미리 올려져 있는 상태여서  
매일 살피게 되는 경전 들에 대해 집중도가 상당히 떨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매일 대하는 경전을 살필 때 오늘은 이 분량만 살피면 된다. 
이런 마음이 아니고 이것을 빨리 살피고 또 다른 것도 살펴야 하고 바쁘다. 
이런 가운데 집중이 잘 안 되고 
또 살피는 내용은 대부분 과거에 여러번 반복한 내용이라는 느낌을 가지는 한편, 
그런 가운데 밀려 있는 분량에 대해서는 많은 분량에 미리 질리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또 한편 현실에서는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일이 바쁜 한편 
다양한 용처 때문에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늘려야 한다는 마음도 생기게 된다. 

물론 이런 일도 뜻대로 잘 되는 것은 아니어서, 
비록 희망은 갖더라도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과거에 공자라는 분은 
만일 자신 뜻대로 된다면 말을 모는 마부라도 되겠다. 
그러나 부자가 된다는 것이 뜻과 같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현실 사정이 그렇다. 


子曰자왈
富而可求也부이가구야 : 부라는 것이 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雖執鞭之士수집편지사 : 비록 채찍을 휘둘러 말 부리는 일이라도 
吾亦爲之 오역위지      : 내 기꺼이 하겠지만
如不可求 여불가구      : 그렇게 구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從吾所好 종오소호      : 내가 좋아 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겠다. 
 
論語논어 述而술이 11章:
 

현실이란 수많은 인연이 결합되어서 현실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보게 되는데 

그런 수많은 요소가 다 자신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살핀 경전에서는 재물이란 
그런 원인으로 얻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이 탐착심을 갖고 
이를 대한다는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

탐착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서

재물이 나로부터 없어질까 염려하여

어리석은 이 힘써 재물 구하지만

지혜 있는 자 그러한 탐착 없다네.


간탐하여 믿지 않는 이여,

비열하기 아이 종[僕]과 같아서

안팎으로 애타게 탐하며 아첨하나니

성현은 칭찬하지 않는 것이라네.


서적이나 시송(詩頌)을 말하여

음녀같이 여러 사람 유혹하며

뜻도 졸렬하고 성질 거치나니

간탐하는 사람들 질투 많다네.


이리 같은 성격에 친구 없고

사람 친하려고 겸손함 보이지만

재물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나니

지자(智者)는 그를 믿지 않는다네.


재물 때문에 이런 일 하고서

독한 마음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지자는 그를 살피고

간탐 질투의 나쁜 일 버린다네.


금과 구슬 모든 보물은

복으로 얻어 이루거늘

이것 때문에 다투며 소송하나니

그를 제지하려 법을 세웠다네.


사람 중의 거룩하신

자씨불상(慈氏佛上)여래 시절 만나면

금과 보배의 땅 절로 있으리니

어찌 다시 태어날 줄 알소냐.


5욕락은 모두 허위인 것이거늘

그에 미혹하여 속는구려.

욕락은 몹시 더운 여름 같거늘

아지랑이 속에서 지치기만 하네.


...

『불설보살수행경』

서진 백법조역

K0369 
T0330



그런데 여기서는 현실에서 
재물에 대한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할 사정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 전반을 통해서 강조되는 내용은 
현실에서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재물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고 
생사를 벗어나는 수행부분도 사정이 같다. 

그런데 왜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에 이 부분을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뽑혀진 『잡아함경』 구절만 놓고 보면 
우선 시간의 길이가 각 세계마다 상대적으로 다르게 되는 사정도 살피고 
또 각 세계마다 평균수명이 다른 사정을 먼저 살펴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는 욕계에서 가장 선업을 많이 닦아 오르게 되는 
타화자재천의 평균수명이 그렇게 길고 길 뿐 아니라 
그 곳에서 누리는 복락이 대단한데 
왜 그런 타화자재천과 같은 곳이 
수행의 목표점이 되지 않는가 하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물론 그 사정은 경전의 매 뒷 부분에 적혀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집착의 문제와 관련시켜서 함께 살피는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 


>>>




현실에서 이 집착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마파순이 갖는 입장인데 
한마디로 집착이 있어야 즐거움이 있다. 
이런 입장이다. 
이는 부처님의 입장과 정반대다. 

그래서 이런 입장과 함께 집착이 갖는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집착이 현실에서 일으키는 문제를 대강 다음과 같이 압축해 보았다. 
- 집착은 고통을 얻게 되는 원인이다. 

- 집착에 바탕해 행하면 그에 따라 고통의 과보를 받게 된다. 

- 더욱이 집착은 뜻하는 바를 잘 성취하게도 하지 못한다.


- 집착을 갖고 성취를 한다해도

그것은 가치가 대단히 큰 것에 대해 눈을 가려 얻지 못하게 하면서 

가치가 대단히 적은 것을 얻게 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 내용들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고 진짜의 내용이 아니다.

또 그것은 무상하고 영원한 것도 아니다.


이런 내용들로 압축할 수 있다.





부에 대한 이런 내용은 현실에 대한 소극적인 자세로 여겨지기 쉽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부란 가치를 이루는 재료를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사칙연산만 잘 하면 이룰 수 있다. 

어떤 시골 마을에 벚나무나 매화 나무만 잘 심고 가꾸고 
이벤트만 적절히 만들어도 그것으로도 수익을 잘 거둘 수 있다. 
이것이 사칙연산과 성격이 같다는 의미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것이 한 주체가 누구나 삶의 병목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문제

즉 자신이 혼자 생각할 때 
자신은 우주보다 더 가치있다고 여기게 마련인데 
그러나 자신의 사망으로 자신이 의미를 둔 그 모든 것이 
모두 0 이 되는 문제를 잘 해결해주지 못하는 점이 문제다. 



올해 국가예산액 469 조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금액이 우주의 가치보다 더 큰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 정도를 기준으로 자신의 생명이 갖는 가치라고 대강 놓고, 
그런 가운데 자신은 아무리 길다고 해도 100 년 정도 살다가 
죽게 되어 그런 가치가 모두 0이 된다고 보면

1 년당 감가상각비가 4 조원을 초과하는 금액이 없어져간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하루만 잡아도 100 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이 감가상각비로 없어져간다. 


그래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하는데 

마부가 되어서 아무리 하루에 돈을 많이 벌어대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제가 현실에 없다면 모르는데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모든 이가 고민해야 할 핵심 문제다. 


그래서 생계가 해결되는 이후부터 

잔돈에 집착하고 초점을 맞추면 

위 문제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선택을 잘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눈을 뜨면 자신의 초점을 맞추게 하고 

끌어들이는 내용이 매 순간 있다. 


아름다운 여인의 미소라거나, 

투자 정보라거나, 

이런 것도 초점을 끌고 

부동산 시세가 오르고 내리고 이런 현상도 그렇다. 

그런데 그 때마다 자신의 마음의 초점을 잘 조정하지 않으면 

이후 거기에 함몰되게 된다. 


그것도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물론 아닌데, 

우주보다 더 가치가 높은 것을 담아 둘 수 있는 마음에 

상대적으로 신발에 붙은 껌도 아니고 티끌도 안 되는 그런 정도의 내용만 

마음에 가득 채우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해서는 하루의 감가상각비도 제대로 충당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한참 보내다 보면 

설령 쌓아 놓은 재산이 어느 정도 있다해도 

자신의 장례비 용도 외는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별 쓸모가 없게 된다. 

그래서 이것이 큰 문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3adNVOZJYs



학교 다닐 당시 대하던 수학문제가 잘 풀리지 않지만, 

그러나 집중해서 잘 대하면 해결방안이 찾아지고 
뒷 부분에는 그 문제 해답도 제시되어지듯, 


삶에서 매 순간 엄청난 가치가 감가상각비로 사라져가고 

끝내는 0 이 된다는 이 문제도 해결방안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첫번째 방안은 
일단 자신의 생계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던 해결되어서

하루던 한달이던 어느 정도 우주보다 가치있는 자신의 생명이 

이어지게 된다고 여긴다면 

그 상태에서는 이후 자신의 초점을 흐리는 것,

그리고 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온갖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서 

집착을 갖지 않고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것이 첫번째 방안이다. 


이것이 처음에 안 되면 
이후 그는 최면 걸리듯 쓸데없는 티끌과 같은 진흙뻘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고 
그 이후 그 진흙뻘로부터 벗어 나오지 못하고 

그리고 위 문제도 결국 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의미없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만 계속 하다가 삶을 마치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만든 결과물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이 비유에서 낙타가 갖는 문제점이다. 

현실 사정이 그렇지 않다면 관계없는데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문제에서 예외인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현실에서 온갖 쓸데없는 것들에 집착을 갖고 대하면 
곤란한 사정을 잘 파악하고 집착을 제거하는 첫번째 할 일이다.



두번째는 현실의 단면을 붙잡고 자신이 평소 자신이라고 본 내용을 놓고 

그 정체를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앞에서 처음 제시한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다 찾아진다. 

이전 페이지에서도 이 부분을 한번 대략 살폈는데 
결국 같은 문제다. 


앞에서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하는 사정을 
제시했는데 

이는 현실 일반 내용 뿐만 아니라 수행 전반에 대해서도 사정이 같다. 

그래서 왜 집착을 갖고 임하는 자세가 
이런 문제와 관련되는지를 잘 살펴나가야 한다. 




- 집착은 고통을 얻게 되는 원인이다. 

- 집착에 바탕해 행하면 그에 따라 고통의 과보를 받게 된다. 

- 더욱이 집착은 뜻하는 바를 잘 성취하게도 하지 못한다.


- 집착을 갖고 성취를 한다해도

그것은 가치가 대단히 큰 것에 대해 눈을 가려 얻지 못하게 하면서 

가치가 대단히 적은 것을 얻게 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 내용들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고 진짜의 내용이 아니다.

또 그것은 무상하고 영원한 것도 아니다.


여하튼 이런 내용을 잘 이해하고 
현실의 매순간 대하는 내용에 대해서 
일으키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무량겁에 걸쳐 위 내용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 집착은 고통을 겪는 원인이다. 

설령 현실에서 대하고 판단하는 내용들이 
하나같이 망상분별에 바탕한 엉터리 내용이더라도 
그것이 이후 그에게 어떤 고통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실답지 않더라도 그대로 방치해도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생사현실에서 겪는 그 일체의 고통은 
모두 이런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하기 때문이다. 



>>>
좀 더 자세히 사정을 보면 
그런 망집을 일으킨 후 
자신이 매순간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이 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내용을 
매 순간 선택하고 행하면 
망집 번뇌 -  업 => 3 악도의 생사고통 [혹-업-고]의 관계로 
생사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겪는 각 주체는 
위와 같은 관계로 그런 상태에 묶이게 되기에 
이 사정을 잘 관하고 
가장 근본이 되는 망집을 일으키는 단계에서부터 
미리 이 부분을 제거해야 그런 사태를 예방할 수 있기에 
이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망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다시 그 다음에 나열되는 내용을 하나하나 잘 판단해서 
현실에서 일으키는 망집을 잘 제거해야 한다.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집착을 갖는 것들은 
그에 집착하게 되면 대단히 가치가 적은 것이 자신의 마음을 가리고 
그로 인해 대단히 가치가 큰 것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얻게 하는 수행덕목인 경우에도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자칫 현실에서 망집으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나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실다운 자신과 자신의 것이 아님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집착은 잘 제거하지만, 
대신 무량겁에 걸쳐 생사를 이어가는 아뢰야식과 같은 근본 정신이나 
또는 수행덕목에 대해 집착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집착은 이런 경우에도 일으켜 갖지 않아야 한다. 
이는 처음 집착이 일으키는 문제를 
또 다른 집착으로 대체하여 오히려 그 문제가 더 커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집착을 가지면 그 만큼 그 뜻을 잘 이루게 된다고 일반적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그런 집착을 통해 얻고자 한 좋음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로 묶이게 만든다. 



그것은 어떤 주체가 욕계안의 망집상태에서 
어떤 뜻을 일으키고 이룬다는 것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단순하게 그 주체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런 형태로 업을 행하며 욕계 현실에 임하는 다수간에서 
업의 장애를 일으키는 형태로 묶이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자신이 무언가 집착하여 그것을 대단히 좋다고 여기게 되면 
우선 그 주체는 그것을 아끼고 다른 생명에게 그것을 베풀지 않게끔 된다. 
또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하는 가운데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것, 예를 들어 생명이나 신체 재산 가족 명예 등등을 함부로 침해하고 나쁨을 가하게 된다. 
또 반대로 자신이 집착하는 자신의 좋음 예를 들어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가족 명예 등이 다른 주체에 의해 침해를 받게 되면 
불같이 분노를 일으키고 그 상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갖고 
상대를 용서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그 상대에게 보복하여 해치려고 하게 된다. 

현실에서 한 주체가 자신이 좋아하는 맛있는 닭고기를 먹는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자. 
이 현실 장면은 하나인데 
자신이 이 현실을 이해하는 측면과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측면이 다 다르다. 

그래서 자신이 무언가를 집착해서 추구하는 것이 
자신의 뜻대로 최종적으로 좋음을 가져다 주지 않고 
현실에 임하는 각각의 주체간에 가해와 피해의 관계로 서로 얽히게 하는 한편 
오히려 자신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 묶는 업의 장애를 
만들게 되는 인과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 집착은 뜻하는 바를 잘 성취하게도 하지 못한다.


단순하게 보면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현실에 그대로 있다고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한편 
이에 바탕해서 무언가를 꼭 ~ 해야 한다거나 ~하지 않아야 한다는 형태로 집착을 갖고 임하면 
그런 뜻을 잘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것이 수행이라면 수행도 그런 집착으로 인해 잘 이루게 되는 것이고 
또 그것이 현실에서 갖는 소원이라면 또 그 소원도 이로 인해 
잘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우선 수행자가 어떤 집착을 갖고 수행을 하는 것과 
수행에 대한 의지를 꾸준히 갖고 정진하는 것을 혼동하면 곤란하다. 
수행의 원칙은 상을 갖지 않고 집착을 제거한 가운데 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집착은 어떤 뜻을 성취해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우선 그 뜻이 성취되기 전까지 집착은 집착을 가진 주체를 아귀의 형태로 만든다. 
성취되기 전까지 갈구하면서 고통을 받게 하고, 
성취된 이후는 그 상태를 아끼면서 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성취된 후 그 상태가 사라질 때 그로 인해 
그 주체에게 괴로움을 가져다 주는 원인도 집착이다. 
이 각 경우에 집착이 없으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더욱이 집착은 어떤 뜻을 갖고 추구하는 과정에서 
꼭 ~ 해야 한다거나 ~하지 않아야 한다는 형태로 
그 주체를 경직되고 강박하게 되어서 
정작 그가 어떤 뜻을 원만히 잘 성취하는 것을 방해하게 된다,. 

쉽게 생각해서 9회말 만루 투아웃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수가 꼭 홈런을 쳐서 이겨야 한다고 집착할수록 
그의 몸은 더 잘 움직이지 않게 되고 
잘 치지도 못하는 것과 상황이 같다. 


현실적으로 어떤 것에 집착을 갖고 간절히 절실히 원하고 추구해나가면 
그것이 뜻대로 잘 이뤄지게 되는가를 놓고 생각해보자. 

쉽게 생노병사를 놓고 이 문제를 생각해보면 쉽다. 
세상에 어떤 이가 죽고 싶어 하는가. 
누구나 간절히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그 가운데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이가 과연 있는가.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어떤 뜻이 성취되는 것은 
누가 더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사자와 물소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생존을 위해서 물소는 물소대로 사자로부터 간절히 도망가기를 원한다. 
그런데 사자도 굶은 상태에서 간절히 물소를 붙잡아 식사로 먹기를 원한다고 해보자. 
그런 상황에서 어느 쪽의 간절한 희망이 성취될까 이렇게 놓고 살펴보자. 

왜 다 같이 간절히 원하는데도 안 되는 경우가 현실에 그렇게 많고 많은가. 


이 사정은 처음 업의 장애를 만드는 문제와 함께 관련시켜 살필 필요가 있다. 
무엇이 좋고 나쁜가에 대해서 입장마다 우선 다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나무를 키우고 싶어하는데 
어떤 이는 나무가 앞에 있어 가리는 것이 대단히 싫다고 여긴다고 해보자. 

여기서 나무를 심고 키우는 것을 희망하는 입장에서 이것을 보면 

어떤 소원을 간절히 원하는데, 
그것이 현실에서 성취가 잘 안 되는 사정이 보인다. 
현실에서 나무를 심고 가꾸기는 힘든데 
그러나 뽑고 자르기는 쉽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위 비유상황처럼 
나무를 키우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을 집착한다고 그 소원이 잘 성취된다고 이 상황을 단순히 이해해서는 안 된다. 


기껏 나무 심고 물주고 있는데 

뽑거나 자르려고 하고 장애나 방해하려고 간절히 원하는 입장들이 있을 때 

이런 경우를 모두 마음을 되돌려서 장애나 방해를 
반대 방향으로 협조의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알아내 실천하고 
그래서 끝내 잘 성취하기를, 원해야 성취가 된다. 

그래서 이렇게 처음의 소원이 변화되는 경우 
그것도 물론 소원은 소원이지만, 
조금 성격이 달라지기에 서원이라고 바꿔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 
그 주체가 그런 나무를 키우려는 의지 자체가 없고 
그런 노력 자체가 아예 없다면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수행은 열심히 정진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에 대해서 상을 취하고 집착을 갖고 
무언가 얻을 것이 있다고 임하면 곤란하다. 





●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할 사정 - 대단히 가치가 적은 것을 얻는 대신 대단히 가치가 큰 것을 잃게 한다. 

현실에서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에 집착하면 
이를 통해 그것을 잘 얻어낼 수 있고 
또 얻어 낸 후 그것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기기 쉽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무엇을 얻고 잃는 것은 
비록 그가 그 상황을 그렇게 이해하고 대할지는 모르지만, 
사실은 그런 사정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설령 그렇다 해도 
그가 집착하고 얻는 내용이 갖는 가치는 대단히 적은 것이다. 


앞에서도 그 사정을 이미 제시했지만, 
자신의 생명을 가치를 재는 가치저울의 기준추라고 놓고 가치를 비교하면 
그것은 신발에 붙은 껌이나 티끌 보다도 못한 것이다. 

다만 그 주체가 그 상황에서 그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대하기에 
그것이 대단히 큰 가치를 갖는 어떤 것인 것처럼 잘못 착각을 일으키고 대하게 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망집 현상이다. 
그렇게 평생 노력해서 앞에서 
처음 제시한 자신의 생명에 대한 하루 감가상각비용만이라도 
그것이 해결해줄 수 있다면 모르는데 결코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이 문제를 우선 현실에서 잘 해결하려면 
처음 매 순간 자신이 무량한 현금을 가지고서라도 끝내 바꿔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 
무언가부터 먼저 잘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현금 수익을 거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 그런 높은 돈 이상의 가치를 갖는 내용들로 
쉼없이 자꾸 바꿔 얻어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즉, 현실에서 평소 노력으로 돈으로 바꿀 수 있고 돈 이하의 가치를 갖는 것들을 얻게 된다면, 
이것을 통해 다시 돈으로 끝내 바꿀 수 없는 돈을 초과하는 가치를 갖는 것들을 바꿔 얻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그만큼 현명한 것이다. 

이 반대로 행하면 그 만큼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 
비유하면 황금을 가지고 당장 자신이 다 먹지도 못하고 보관도 못하고 
하루만 지나면 다 썩어 없어질 우유를 한 트럭어치 사놓는 행위와 
그 사정이 비슷하다. 

비유상황에서는 이와 반대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하면 일단 
앞에서 처음 살핀 감가상각비용의 문제상황도 어느 정도 해결된다. 

그래서 가치 저울을 놓고 
현실에서 가치를 갖는다고 보는 여러 내용을 나열해 놓고 
무엇이 무엇보다 얼마큼 가치가 높은가 하는 문제를 
처음에 잘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끝내 
생명보다도 더 가치가 높은 것이 무엇이고 
그 가운데서도 가치를 가장 많이 갖는 것이 무엇인가
이 문제부터 잘 해결해야 한다. 


무엇이 그런 가치를 갖는 것인가하는 부분에 대해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결국 불, 법, 승 3 보나 
7 재나 10 무진장으로 그런 것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결국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 있게 하고 
무량한 겁에 걸쳐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얻게 하는 
수많은 수행덕목과 수행목표들이 모두 다 그런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결국 가치저울을 놓고 
어떤 것이 어떤 것보다 가치가 많은가 하는 
일종의 가치 산수문제를 스스로 잘 대해서 헤아려 풀면 그 답이 얻어진다. 


그러면 그 이후 그런 내용을 현실에서 실천해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끝내 
처음 자신의 삶에서 갖는 모든 가치가 
생사과정에서 끊기고 0 이되는 단락생사의 문제를 
수행을 통해서 해결하면 
그 문제 자체가 원천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 제시한 내용들이 
결국 바로 그 부분에 기여하기에 
또 그것이 그런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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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에서 타화자재천이 누리는 평균수명을 제시하고 대단히 많은 복락을 제시하고 
또 다른 경전에서는 이보다 훨씬 수명과 복락이 더 길고 많은 색계나 무색계의 하늘도 제시하지만, 
왜 그런 상태가 끝내 수행자의 수행목표점이 되지 않는가는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이는 수학의 무한 문제를 이해하는 것과 사정이 같다. 


예를 들어 겁이란, 초, 분, 일, 월, 년, 이런 식으로 시간을 세는 시간의 단위 가운데 
대단히 긴 기간을 나타낸다. 
그래서 예를 들어 1조겁이라고 한다면 
이는 상상하기 힘든 대단히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1 조겁을 1 찰나와 9조겁을 벌여 놓고 살피면 
1 조겁이라는 시간은 어느 쪽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인가하면 
1 찰나쪽에 가깝다고 보게 된다.  

이는 무한의 문제는 아닌데 
단지 9 조겁만 놓고 보아도 이미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이를 통해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선택 문제에서 
인간이 누리는 삶의 기간이나 복락과 
타화자재천에서 누리는 복락을 놓고 비교하여 
타화자재천이 누리는 수명과 복락이 대단히 길고 많다고 보고 
이것을 붙잡아서 나아가는 가운데 
결국 무한에서 그 부분을 빼고 나머지 부분이 엉망이 된다면 
이것을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고 경전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지금의 자신의 입장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그것이 상당히 복락을 누리는 기간이나 양이 길고 많다고 본 것 뿐이다. 

그리고 이는 처음 제시한 내용 
즉 자신이 상대적으로 대단히 미미하고 하찮은 것임에도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대하면 
마치 그것이 대단히 가치가 많은 것처럼 
잘못 여겨지는 가치판단의 잘못과 관련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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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할 사정 - 무상함, 진짜가 아님, 실답지 않음 


우선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현실의 일체는 무상하다는 부분이다. 

눈으로 보는 것 일체는 눈 한번 감고 뜨는 그 순간만 놓고도 
지속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이는 아무리 현실 일체가 다 무상하고 영원하지 않다고 제시해도 
그래도 딱 한번 만이라도 자신의 소원을 성취했으면 좋겠다고 여기면서 그에 매달린다. 



또 이들 일체는 
자신이 대하는 내용은 그 일체가 마음안의 내용일 뿐이며 
그 일체가 다 실답지 않고 참된 진짜의 내용이 아니라고 제시하면서, 

이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대부분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눈을 떠 대하는 내용이나 듣고 맡고 맛보고 촉감으로 얻는 내용을 
외부 세상, 외부대상, 외부의 물질,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여기며 대하는 가운데 

이들 현실 내용은 
마치 게임기에서 매번 반복해 만나는 내용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철수나 영희도 같이 얻고 

또 지금뿐만 아니라 몇천년전이나 몇천년 후에도 그런 형태로 반복해 장기간 얻고 
또 단순히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느낌 관념 이런 형태로 
대단히 다양한 내용을 반복해 얻게 된다는 사정으로 
이것은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면서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지 못한다. 


물론 이처럼 생사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을 실답다고 잘못 여기면서 
대하게 되는 위와 같은 기본 배경 사정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현실에 망집을 일으키며 임하게 만드는 
그 근본 배경 사정까지 잘 이해하고 이것을 끊어내야 하는데 
그러나 현실에서 처음 그런 집착을 제거하여 벗어나지 못하면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그 첫 부분에 아예 진입자체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왜 이렇게 생생하고 실다운 현실 내용을 
실답지 않다고 하는가. 거꾸로 반문하면서 
결국 그런 망집에 바탕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생생하고 실답게 
무량겁에 걸쳐서 반복해 받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경전에서 
처음 기본적으로 
현실 일체가 무상하다. 
무아다. 무자성이다. 
공하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은 
현실에 대해 갖는 지적호기심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제시하는 단순한 내용이 아니다. 

현실 일체가 갖는 이런 내용을 잘 파악해서 
현실에 대해 갖는 집착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서 
망집에 바탕한 묶임에서 벗어나오게 하기 위한 내용들인 것이다. 

그래서 처음 위와 같은 기본 내용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mus0fl--Gerard Berliner - Et Mourir De Plaisir.lrc 


현실은 무상하고, 
마치 침대에 누어 꾸는 황금이나 바다꿈처럼 
매 순간 생생하게 매 순간 얻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들로서 
실답지 않다. 
마치 손으로 쥐고 눈으로 보고 만지는 사과와 같다. 
눈으로 본 모습은 손으로 만지는 촉감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고 
촉감도 반대로 눈으로 보는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이처럼 각 영역에서 생생하게 그 내용을 얻지만, 
그런 조건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뿐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들이라는 점에서 
그런 내용을 얻는 관계가 라면-바위-사과-벽돌-사람의 관계와 같다고 비유로 설명하고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또 현실은 꿈과 달리 

자신뿐만 아니라. 철수나 영희도 같이 얻고 

또 지금뿐만 아니라 몇천년전이나 몇천년 후에도 그런 형태로 반복해 장기간 얻고 
또 단순히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느낌 관념 이런 형태로 
대단히 다양한 내용을 반복해 얻게 된다는 사정때문에 
생사현실은 꿈이 아니고 
이를 방치하기 곤란하다. 

이를 방치하면 위와 같은 형태로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을 반복해 
각 주체가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며 
이를 받아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앞에 나열한 생사현실이 갖는 특성, 
즉 실답지 않지만, 그러나 꿈과는 달리 보게 되는 특성은 
생사현실은 꿈과는 다르게 좀 더 실다운 내용으로 여기게 하는 측면이다. 

그렇게 되는 사정은 
처음 각 주체가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근본정신이 제 7 식과 1,2,3,4,5,6 식을 분화 생성시키는 과정에서 
공한 가운데 3 중에 걸친 망상분별을 일으켜 단단히 매듭이 지어진 상태에서 
삶을 출발하고 그 바탕에서 매 순간 대하다가 
삶을 마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삶을 살아가는 상태에서는 
이런 현실 상태 자체를 만들어낸 기본 상태를 벗어나기가 대단히 곤란하다. 

여하튼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실답게 여기게끔 만드는 요소로 인해 
생사현실은 꿈과는 달리 취급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꿈과는 달리 생사현실에서 수행이 요구되는 사정이기도 하다. 

생사현실을 얻는 관계를 a+b => C 라고 할 때 
바로 이 관계식 자체가 그렇게 얻는 현실 C 가 
무상하고 고통을 가져다 주고, 무아, 무자성이고 공하고 실답지 않다는 등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또 이런 관계로 C 가 반복해서 다수에 의해 얻어진다는 사정이 
그 C 를 현실에서 무시하기 곤란하고 오히려 
실답다고 받아들이게끔 하는 사정이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어떤 도박장에서 유통되는 칩이나 딱지가 
진짜 돈은 아니지만, 그것이 매번 반복해서 거래되고 
또 도박장 안에서 다른 것과 교환이 되게 되면, 
그런 사정으로 그 칩이나 딱지도 실답게 여겨지는 현상과 같다. 

그리고 게임기의 상황과도 같고 
예를 들어 바둑이나 장기, 
또는 운동 경기나 소설이나 만화나 꿈도 자꾸 반복해서 또 대하게 되는 경우 
이와 사정이 비슷해지게 된다. 


이들의 내용이 비록 사실이 아니고 엉터리임을 이해하지만, 
그것들이 자주 반복되면 그 만큼 그것이 실다운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부분을 잘 대해서 해결해야 한다. 

보통 꿈은 같은 내용을 반복해 꾸지 않지만, 
본인도 어떤 꿈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비슷한 꿈을 반복해 꾸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가끔 꿈과 같은 어떤 내용이 실답게 있었서 그런가 생각하기도 하고 
또는 이것이 현실이 아니었던가 하는 혼동도 겪기도 한다. 
마치 장자가 나비 꿈을 꾸다가 깨서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가. 장자가 나비꿈을 꾸었던 것인가. 
혼동을 겪는 상황과 비슷하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명백히 어떤 이가 꾸며낸 소설이라고 할 내용인데 
예를 들어 어떤 소설을 평생을 걸쳐서 반복해 대하다 보면 
흥보전의 흥보나 서유기의 손오공이나 춘향전의 춘향이나 
신델렐라나 백설공주 등등 이런 소설속 인물들이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 성격이 꾸며낸 것인데 그것을 반복해 대하게 되고 
또 일정부분은 마치 현실인 것처럼 일정한 효용을 발휘한다는 점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상하다. - 나름대로 오래 지속된다. 
실답지 않다. - 그렇지만 매순간 각 내용을 대단히 생생하게 얻고 또 다수 주체가 무량겁에 걸쳐 비슷한 형태로 반복해 얻는다. 

진짜라고 할 참된 영원불변한 내용이나 그 뼈대가 없다. - 그래도 어느 정도 골격과 뼈대가 있는 것처럼 유지된다. 

각 주체가 이들 측면들 가운데 어느 부분에 치우치는가에 따라 
현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그런데 이 논의의 핵심은 
그런 사정 때문에 현실 내용을 실답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닌가에 있다기 보다는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이 바로 이 영역에 있고 
이런 바탕에서 극심하게 겪는다는 점을 더 중시해야 한다. 

이것이 실다운가 아닌가를 문제삼는 취지는 
이런 영역안에서 생생하게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겪게 되는 생사고통을 제거하고 없애기 위해서 
이 내용을 문제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이 위와 같은 측면때문에 실답다고 하더라도 이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을 실답다고 여긴다고 해서 이 생사고통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자세히 헤아리면 실답지 않고 진짜가 아닌데도 
그러나 대단히 진짜처럼 여겨지게 하며 반복해 나타나는 것으로서 
생사고통을 대단히 생생하게 실답게 여기며 받아가게 만든다는 
이 측면이 바로 생사현실의 문제인 것이다. 

그 사정이 곧 처음에 제시한 내용이다. 

실답게 여겨진다. => 그래서 그 내용에 집착을 갖는다. 
=> 그리고 매순간 그런 집착에 바탕해서 행할 도리밖에 없다고 보게 되는 반응을 행하게 된다. 
=> 그리고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 되는 생사고통을 그처럼 생생하게 받아나가는 상태로 묶이게 된다. 

이 부분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뒷 부분 즉 생사고통을 당장 직면해서 극심하게 받는 상황이 가장 문제다. 
물론 생사고통을 직접 생생하게 받는 그 상황에서도 그 성격은 같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이 상황에서도 위에 제시한 내용들을 통해 그 상황을 벗어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마치 현실에서 손을 톱으로 잘라내는 상황에 처할 때 
그 현실이 위와 같은 사정으로 실답지 않고 공하고 진짜가 아니고 없다 
이 내용만을 통해서 그 고통을 평안히 참고 견디는 것을 기대하기 힘든 것과 사정이 같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기 전에 
그 이전 단계에서 그런 상태로 묶이게 되는 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하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런 업을 행하게 되는 바탕으로 
현실에서 일으키는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집착을 제거하려면 
현실 내용이 실답게 여겨지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기준으로 현실을 대하면 곤란하고 
각 내용을 놓고 그것을 실답지 않다고 보게 되는 측면 
그리고 진짜라고 할 참된 뼈대가 없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그에 대한 갖는 집착을 제거하고 
그리고 그런 집착에 바탕해 행하게끔 되는 업을 제거해서 
그런 과보를 받는 상태에 묶여 들어가지 말라고 제시하는 측면이다. 

그래서 이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비닐 한면에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또 다른 비닐에 세모를 그려 놓고 
이를 겹쳐 놓고 대하면 안이 세모인 도너츠 모양이 나타나 보이게 된다. 
대부분 사정이 마찬가지다. 
각 비닐 영역에 그런 도너츠는 없다. 
동그라미가 그려진 비닐에는 세모가 없다. 
이 사정을 제시하지만, 
그런데 그렇게 겹쳐 놓고 대하는 상황에서는 안이 세모인 도너츠 모양이 그렇게 보이는 것도 
부정하기 곤란하다. 

현실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과를 하나 손에 쥐고 
눈으로 사과를 보고 
사과를 손으로 두드리면서 소리를 듣고 
사과를 코로 냄새를 맡고 
사과를 입으로 맛을 보고 
또 사과를 손으로 만져 촉감을 얻고 
이것이 사과라고 생각한다는 현실 상황도 마찬가지다. 

위 상황에서 분명 하나의 사과를 대상으로 
각 영역에서 각기 다른 내용을 얻는 것처럼 여기게 되는데 
이 사실 자체가 눈으로 보는 색과 소리나 냄새나 맛과 촉감이 
다른 영역에서 얻어지지 않고 오직 그 영역에서만 얻는 엉뚱한 내용임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내용을 매번 반복해서 그런 형태로 얻기에 
그런 내용이 오히려 실다운 내용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에 대해 일으키는 관념분별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앞과 같은 상황에서 사과를 옆에 있는 철수에게 건네면 
철수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같은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런 측면들이 
이들 현실을 대단히 생생하고 실다운 것이라고 여기게끔 
망상분별을 증폭시키고 또 지지하는 내용들이 된다. 

그래서 알고보면 이들 내용이 각 주체의 마음안에 얻어지는 내용이지만, 
그러나 자신밖에 있는 외부세상이고 
자신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고 
자신의 마음과는 별개의 외부물질이고 
그리고 영희나 철수 등등이 모두 다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인 것처럼 
여겨지게끔 된다. 

그리고 이런 형태로 그러한 바탕에서 
그러한 영역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것이 
바로 생사현실의 문제다. 


그것을 아직은 조금 여유가 있고 
당장 그런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가 아닌 
현실에서 미리 예방하고 막지 못하여 
직접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축생 아귀 지옥의 상황에서 
그 상태를 벗어나려고 하면 대단히 곤란하다. 
그래서 현실에서 수행을 통해 이런 상태를 예방할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게임기의 상황을 놓고 비유하면 쉬울 수 있다. 

일정 화면에 커서를 놓으면 어떤 아이템이 얻어지거나 폭탄이 터지거나 한다고 해보자. 
커서를 놓는다는 것과 이로 인해 이런 화면 내용이 얻어진다는 것은 
제각각 내용이 서로간에 엉뚱한 내용이고 엉뚱한 관계다. 
그런데 게임에 임하는 이상 
수많은 주체가 이런 관계로 이런 현상을 반복해 겪게 된다. 

생사현실도 마찬가지다. 
각 영역에서 얻는 내용이 서로간에 대단히 엉뚱하다. 
그런데 이 생사현실에서 
그런 망집에 바탕해 일정한 업을 행하면 
그로 인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묶이게 된다. 
이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들 내용 하나하나가 다 위에 제시한 것처럼 
무상하고 진짜가 아니고 다른 영역에서 얻어지지 않고 실다운 내용이 아니지만, 
그런 업을 행하면 그런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는 관계가 
무량한 주체에게 무량한 겁에 걸쳐 무량하게 반복되는 것이다. 

한번 업을 행하면 무량겁에 걸쳐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경전 내용이 제시하는 측면이 바로 위 부분이다. 
이를 잘못 이해하면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이들 내용이 그만큼 실답다라고 제시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생사현실이 그런 형태로 연기해 나타난다는 사정 때문에 
그 현실의 단면 하나하나가 다 실답지 않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정은 그렇지만, 그런 생사현실이 그런 관계로 무량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해결해야 할 생사현실안의 생사고통이 갖는 문제다. 

a + b => C 의 관계로 C 가 매번 그렇게 무량한 겁에 걸쳐 
나타난다는 내용이 바로 이 내용이다. 
그런데 그 관계식 자체가 바로 그런 C 가 그런 사정때문에 
무상하고 참된 진짜의 내용이 아니며 실답지 않다는 등의 내용을 함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식은 또 한편 
그처럼 각 내용이 실답지 않아서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할 내용인데도 
바로 그런 식이 나타나는 관계를 통해 
그런 내용이 무량하게 반복해 나타나게 됨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생사현실에서 해결해야 할 생사고통의 문제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그 문제 해결이 말처럼 쉽지 않기에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통해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기도 하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435#8317 
sfed--잡아함경_K0650_T0099.txt ☞잡아함경 제31권
sfd8--불교단상_2562_03.txt ☞◆vuru8317
불기2563-03-19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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