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불교진리와실천

불설우란분경_K0277_T0685_공부 본문

과거조각글백업이전대상-2560

불설우란분경_K0277_T0685_공부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3. 8. 28. 04:37



®



≪K0277≫ (11-621), 

K0277V11P0621a01L; 佛說盂蘭盆經


≪T0685≫ (16-779),  

T16n0685_p0779a27(00)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

K.277(11-621), 

T.685(16-779) 


#

[요약 불설우란분경@]

서진(西晉) 축법호(竺法護) 한역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실 때에 

대목건련(大目乾連)이 

비로소 여섯 가지 신통[六通]을 얻고 나서 

부모를 제도하여 젖 먹여 길러 준 은혜를 갚고자 하였다.


곧 도안(道眼)으로 세간을 관찰하니, 

그 죽은 어머니는 아귀에 태어나 

음식은 보지도 못하고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목건련이 슬피 울며 발우에 밥을 담아 어머니께 갖다 주니, 

어머니는 발우와 밥을 보자 

덥석 왼손으로 발우를 잡고 오른손으로 밥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밥이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갑자기 불덩이로 변하여 먹지 못했다. 


이것을 보고 목건련이 슬프게 소리쳐 울며 

부처님께 달려가 이러한 광경을 자세히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목건련의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너의 어머니는 죄의 뿌리가 깊어서 

네가 비록 효순(孝順)하여 

이름이 천지를 진동할지라도 

너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천신(天神)․지신(地神)․사마외도(邪魔外道)․

도사(道士)․사천왕신(四天王神) 들도 어찌하지 못하니, 


반드시 시방의 여러 스님들의 위신력을 얻어야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제 너에게 구제하는 법을 말해 주어 온갖 어려운 이가 

모두 근심과 괴로움을 여의고 죄업(罪業)을 소멸하게 하리라.


시방의 여러 스님들이 7월 15일에 자자(自恣)할 때에 


7세(世)의 부모나 현재의 부모가 액난에 있게 될 이를 위하여 

밥과 

온갖 맛있는 것과 

다섯 가지 과일과 

물 긷는 그릇과 

향유(香油)와 

초와 

평상과 

와구(臥具)를 갖추고, 

세상에서 제일 맛난 음식을 그릇에 담아 

시방의 여러 대덕 스님들께 공양하여야 할 것이다.


이 날에는 모든 성현들이 


산간에서 선정을 닦거나, 

네 가지 도과(道果)를 얻거나, 

혹은 나무 밑에 경행(經行)하거나, 

여섯 가지 신통이 자재하여서 성문․연각을 교화하거나, 

10지(地) 보살이 방편[權]으로 비구의 모습을 나타내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발우와 밥을 받는다.


그리하여 청정한 계와 성현들의 도가 구족하니, 

그 덕이 끝이 없다. 


누구라도 이 자자하는 승가에게 공양하는 이는 

현재의 부모와 

7세의 부모와 

6종(種) 친속이 

3도(途)의 괴로움을 벗어나서 곧 해탈할 것이며, 

의식(衣食)이 저절로 이를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부모가 현존한 이는 

백 년 동안 복락을 받을 것이며, 


만일 이미 돌아가신 7세 부모는 천상에 태어나되 

자재하게 화생하여 천화광(天華光)에 들어가 

무량한 쾌락을 받을 것이다.”


그때 부처님께서 시방의 여러 스님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두 먼저 시주(施主) 집을 위하여 

선정(禪定)에 들어 마음을 안정한 뒤에 공양을 받으라. 

처음 그릇을 받았을 때에는 

먼저 불탑 앞에 높고 

여러 스님들이 축원을 마치면 

자기 밥을 받으라.”


그때 목건련 비구와 이 모임의 대보살들이 

모두 크게 환희하였으며, 

목건련의 슬피 우는 소리도 없어졌으며, 

목건련의 어머니는 이 날로부터 1겁 동안 마귀의 고통을 벗어났다.

... 

선남자야, 

만일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ㆍ

국왕(國王)ㆍ태자(太子)ㆍ왕자(王子)ㆍ대신(大臣)ㆍ재상(宰相)ㆍ삼공(三公)ㆍ백관(百官)․만민(萬民)들이 

효(孝)와 자애[慈]를 행하는 이는 


모두 현재의 부모나 과거의 7세 부모를 위하여, 

7월 15일 불환희일(佛歡喜日)1)인 승자자일(僧自恣日)2)에 

온갖 맛있는 것을 우란분(盂蘭盆) 안에 담아 

시방의 자자(自恣)하는 스님에게 베풀고 발원하되, 


‘현재의 부모는 수명이 백 년이고 병이 없으며, 

모든 고뇌와 근심이 없게 하고, 

7세의 부모는 아귀(餓鬼)의 고통을 떠나서 

사람과 하늘에 태어나서 복과 즐거움이 다함이 없게 해 주십시오’라고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선남자와 선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불제자로서 효순을 닦는 이가 생각마다 

항상 부모를 생각하고 공양하되 

7세의 부모에 이르기까지 하라. 


7월 15일은 항상 효순한 마음으로 낳아 주신 부모와 

나아가 7세의 부모를 위하여 우란분을 만들어 

부처님과 스님에게 이바지하여, 

부모가 길러주고 사랑하여 준 은혜를 갚으라. 


너희들 일체의 불자는 마땅히 이 법을 받들어 지녀야 한다.”

그때 목건련 비구와 4배(輩)3) 제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 아래는 원문_번역본 ] 

한글대장경 번역문 FR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v1/search.asp






K0277V11P0621a.BMP

K0277V11P0621B.BMP

K0277V11P0621C.BMP



한글대장경 번역문 FR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v1/search.asp

[1 / 3] 쪽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


불설우란분경


 서진(西晉) 축법호(竺法護) 한역

 김성구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실 때에 

대목건련(大目乾連)이 

비로소 여섯 가지 신통[六通]을 얻고 나서 

부모를 제도하여 젖 먹여 길러 준 은혜를 갚고자 하였다.


곧 도안(道眼)으로 세간을 관찰하니, 

그 죽은 어머니는 아귀에 태어나 

음식은 보지도 못하고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목건련이 슬피 울며 발우에 밥을 담아 어머니께 갖다 주니, 

어머니는 발우와 밥을 보자 

덥석 왼손으로 발우를 잡고 오른손으로 밥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밥이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갑자기 불덩이로 변하여 먹지 못했다. 


이것을 보고 목건련이 슬프게 소리쳐 울며 

부처님께 달려가 이러한 광경을 자세히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목건련의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너의 어머니는 죄의 뿌리가 깊어서 네가 비록 효순(孝順)하여 

이름이 천지를 진동할지라도 

너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천신(天神)․지신(地神)․사마외도(邪魔外道)․

도사(道士)․사천왕신(四天王神) 들도 어찌하지 못하니, 


반드시 시방의 여러 스님들의 위신력을 얻어야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제 너에게 구제하는 법을 말해 주어 온갖 어려운 이가 

모두 근심과 괴로움을 여의고 죄업(罪業)을 소멸하게 하리라.



[2 / 3] 쪽 


시방의 여러 스님들이 7월 15일에 자자(自恣)할 때에 


7세(世)의 부모나 현재의 부모가 액난에 있게 될 이를 위하여 

밥과 온갖 맛있는 것과 다섯 가지 과일과 

물 긷는 그릇과 향유(香油)와 초와 평상과 와구(臥具)를 갖추고, 

세상에서 제일 맛난 음식을 그릇에 담아 

시방의 여러 대덕 스님들께 공양하여야 할 것이다.


이 날에는 모든 성현들이 


산간에서 선정을 닦거나, 

네 가지 도과(道果)를 얻거나, 

혹은 나무 밑에 경행(經行)하거나, 

여섯 가지 신통이 자재하여서 성문․연각을 교화하거나, 

10지(地) 보살이 방편[權]으로 비구의 모습을 나타내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발우와 밥을 받는다.


그리하여 청정한 계와 성현들의 도가 구족하니, 

그 덕이 끝이 없다. 


누구라도 이 자자하는 승가에게 공양하는 이는 

현재의 부모와 7세의 부모와 6종(種) 친속이 

3도(途)의 괴로움을 벗어나서 곧 해탈할 것이며, 

의식(衣食)이 저절로 이를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부모가 현존한 이는 

백 년 동안 복락을 받을 것이며, 


만일 이미 돌아가신 7세 부모는 천상에 태어나되 

자재하게 화생하여 천화광(天華光)에 들어가 

무량한 쾌락을 받을 것이다.”



그때 부처님께서 시방의 여러 스님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두 먼저 시주(施主) 집을 위하여 

선정(禪定)에 들어 마음을 안정한 뒤에 공양을 받으라. 

처음 그릇을 받았을 때에는 

먼저 불탑 앞에 높고 

여러 스님들이 축원을 마치면 

자기 밥을 받으라.”


그때 목건련 비구와 이 모임의 대보살들이 

모두 크게 환희하였으며, 

목건련의 슬피 우는 소리도 없어졌으며, 

목건련의 어머니는 이 날로부터 1겁 동안 마귀의 고통을 벗어났다.



그때 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를 낳아 준 어머니는 삼보(三寶)의 공덕의 힘과 

여러 스님들의 위신력을 입은 때문이지만, 

만일 미래 세상의 불제자들이 효순을 행하는 이도 

또한 이 우란분(盂蘭盆)을 받들어서 

현재의 부모와 7세의 부모를 구제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우 기특한 물음이다. 

내가 바로 말하려는 것을 네가 다시 묻는구나. 



[3 / 3] 쪽 


선남자야, 

만일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ㆍ

국왕(國王)ㆍ태자(太子)ㆍ왕자(王子)ㆍ대신(大臣)ㆍ재상(宰相)ㆍ삼공(三公)ㆍ백관(百官)․만민(萬民)들이 

효(孝)와 자애[慈]를 행하는 이는 


모두 현재의 부모나 과거의 7세 부모를 위하여, 

7월 15일 불환희일(佛歡喜日)1)인 승자자일(僧自恣日)2)에 

온갖 맛있는 것을 우란분(盂蘭盆) 안에 담아 

시방의 자자(自恣)하는 스님에게 베풀고 발원하되, 


‘현재의 부모는 수명이 백 년이고 병이 없으며, 

모든 고뇌와 근심이 없게 하고, 

7세의 부모는 아귀(餓鬼)의 고통을 떠나서 

사람과 하늘에 태어나서 복과 즐거움이 다함이 없게 해 주십시오’라고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선남자와 선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불제자로서 효순을 닦는 이가 생각마다 

항상 부모를 생각하고 공양하되 

7세의 부모에 이르기까지 하라. 


7월 15일은 항상 효순한 마음으로 낳아 주신 부모와 

나아가 7세의 부모를 위하여 우란분을 만들어 

부처님과 스님에게 이바지하여, 

부모가 길러주고 사랑하여 준 은혜를 갚으라. 


너희들 일체의 불자는 마땅히 이 법을 받들어 지녀야 한다.”

그때 목건련 비구와 4배(輩)3) 제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 승가의 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을 말한다.

2) 승가가 안거를 마치고 마지막 날에 서로 자기의 죄과를 참회하고 

고백하며 서로 훈계하는 일을 행하는 날로서, 

7월 15일을 말한다.


3) 출가와 재가의 남녀로서,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넷을 말한다.


[출처: 


///



K0277V11P0621a01L; 佛說盂蘭盆經        傷

K0277V11P0621a02L; 西晉月氏三藏竺法護譯

K0277V11P0621a03L; 聞如是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

K0277V11P0621a04L; 獨園大目乾連始得六通欲度父母

K0277V11P0621a05L; 報乳哺之恩卽以道眼觀視世閒見

K0277V11P0621a06L; 其亡母生餓鬼中不見飮食皮骨連

K0277V11P0621a07L; 立目連悲哀卽鉢盛飯往餉其母母

K0277V11P0621a08L; 得鉢飯便以左手障飯右手摶飯食

K0277V11P0621a09L; 未入口化成火炭遂不得食目連大

K0277V11P0621a10L; 叫悲號啼泣馳還白佛具陳如此

K0277V11P0621a11L; 佛言汝母罪根深結非汝一人力所

K0277V11P0621a12L; 奈何汝雖孝順聲動天地天神地神

K0277V11P0621a13L; 邪魔外道道士四天王神亦不能奈

K0277V11P0621a14L; 何當須十方諸衆僧威神之力乃

K0277V11P0621a15L; 得解脫

K0277V11P0621a16L; 吾今當爲汝說救濟之法令一切難

K0277V11P0621a17L; 皆離憂苦罪障消除

K0277V11P0621a18L; 佛告目連十方衆僧於七月十五日

K0277V11P0621a19L; 僧自恣時當爲七世父母及現在父

K0277V11P0621a20L; 母厄難中者具飯百味五果汲灌盆

K0277V11P0621a21L; 器香油錠爥牀敷臥具盡世甘美以

K0277V11P0621a22L; 著盆中供養

K0277V11P0621b01L; 十方大德衆僧當此之日一切聖衆

K0277V11P0621b02L; 或在山閒禪定或得四道果或樹下

K0277V11P0621b03L; 經行或六通自在教化聲聞緣覺或

K0277V11P0621b04L; 十地菩薩大人權現比丘在大衆中

K0277V11P0621b05L; 皆同一心受鉢和羅飯具淸淨戒聖衆

K0277V11P0621b06L; 之道其德汪洋其有供養此等自恣

K0277V11P0621b07L; 僧者現在父母七世父母六種親屬

K0277V11P0621b08L; 得出三塗之苦應時解脫衣食自然

K0277V11P0621b09L; 若復有人父母現在者福樂百年若

K0277V11P0621b10L; 已亡七世父母生天自在化生入天

K0277V11P0621b11L; 華光受無量快樂時佛勅十方衆僧

K0277V11P0621b12L; 皆先爲施主家呪願七世父母行禪定

K0277V11P0621b13L; 意然後受食初受盆時先安在佛塔

K0277V11P0621b14L; 前衆僧呪願竟便自受食

K0277V11P0621b15L; 爾時目連比丘及此大會大菩薩衆

K0277V11P0621b16L; 皆大歡喜而目連悲啼泣聲然除

K0277V11P0621b17L; 滅是時目連其母卽於是日得脫一

K0277V11P0621b18L; 劫餓鬼之苦

K0277V11P0621b19L; 爾時目連復白佛言弟子所生父母

K0277V11P0621b20L; 得蒙三寶功德之力衆僧威神之

K0277V11P0621b21L; 力故若未來世一切佛弟子行孝

K0277V11P0621b22L; 順者亦應奉此盂蘭盆救度現在父

K0277V11P0621c01L; 母乃至七世父母爲可爾不

K0277V11P0621c02L; 佛言大善快問我正欲說汝今復問

K0277V11P0621c03L; 善男子若有比丘比丘尼國王太子

K0277V11P0621c04L; 王子大臣宰相三公百官萬民庶人

K0277V11P0621c05L; 行孝慈者皆應爲所生現在父母過

K0277V11P0621c06L; 去七世父母於七月十五日佛歡喜

K0277V11P0621c07L; 日僧自恣日以百味飮食安盂蘭

K0277V11P0621c08L; 盆中施十方自恣僧乞願便使現在父

K0277V11P0621c09L; 母壽命百年無病無一切苦惱之患

K0277V11P0621c10L; 乃至七世父母離餓鬼苦得生天人

K0277V11P0621c11L; 中福樂無極

K0277V11P0621c12L; 佛告諸善男子善女人是佛弟子

K0277V11P0621c13L; 修孝順者應念念中常憶父母供養

K0277V11P0621c14L; 乃至七世父母年年七月十五日常

K0277V11P0621c15L; 以孝順慈憶所生父母乃至七世父

K0277V11P0621c16L; 母爲作盂蘭盆施佛及僧以報父母

K0277V11P0621c17L; 長養慈愛之恩若一切佛弟子應當

K0277V11P0621c18L; 奉持是法

K0277V11P0621c19L; 爾時目連比丘四輩弟子聞佛所說

K0277V11P0621c20L; 歡喜奉行

K0277V11P0621c21L; 佛說盂蘭盆經

K0277V11P0621c22L; 己亥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우란분

盂蘭盆

盂 사발 우蘭 난초 란(난)盆 동이 분



우란분


[Kor]우란분[Chn]盂蘭盆[San]ullambana[Tib]spyangs pa ; 'jus pa[Eng]hanging on invertedly

[mean]울람바나의 음역. 

거꾸로 매달리는 심한 고통. 

아귀도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 

영혼을 뜻하는 이란어 우르반(urvan)을 이 말의 원어로 보는 설도 있다.[syn]동}

오람바나(烏藍婆拏) * 도현(倒懸).[ref][k]우란분절


From Korean Dic

우란분

우란분(盂蘭盆←ullambana 범)

[명사]불교에서, 하안거(夏安居)의 끝 날인 음력 칠월 보름에 지내는 행사.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 괴로워하는 망령을 위안하는 행사임.


From fk-ks-v10

우란분

【盂蘭盆】 p3454-上≫梵名 Ullambana 之音譯. 

爲漢語系佛敎地區, 根據盂蘭盆經而於每年農曆七月十五日擧行超度歷代宗親之儀式. 

又作烏藍婆拏. 意譯作倒懸. 

又稱盂蘭盆會․盆會. 

乃梵語 avalambana(倒懸)之轉訛語, 比喩亡者之苦, 有如倒懸, 痛苦之極. 

玄應音義卷十三․翻譯名義集卷九․釋氏要覽卷下, 及盂蘭盆經略疏等均謂, 

「盂蘭盆」一詞, 原爲音譯之訛, 蓋「盆」係梵語 bana 之音, 

而非如法苑珠林卷六十二所引大盆淨土經之言, 

謂「俱以七寶盆鉢施與佛及僧」之「盆鉢」, 

然歷代誤援其義者則不乏其例. 

初於唐代慧淨之盂蘭盆經贊述中, 卽謂置珍饈美味於盆中, 

以奉佛施僧而救倒懸之苦;


宗密之盂蘭盆經疏卷下則謂「盂蘭」卽倒懸之義, 

「盆」則爲救護之器, 

故以盂蘭盆釋爲「救倒懸․解痛苦」之義;

此一說法, 後世多採之. 


又據宋代遇榮之盂蘭盆經疏孝衡鈔卷上載, 

盂蘭盆經之經題, 

意譯爲覺者說救倒懸器經, 

盆字爲訛略語, 舊譯盆佐那, 新譯門佐羅․

門佐曩, 卽救器. 

蓋「門佐曩」爲梵語muñcana 之音譯, 乃巴利語 muccana 及梵語 mocana 之轉訛語, 

然「門佐曩」有「救護」之意而無「器皿」之意, 

故遇榮之說亦有訛誤.  


盂蘭盆之起源極早, 印度兩大史詩之一的摩訶婆羅多(梵 Mahābhārata)

第一大章之第十三章․第十四章, 及第四十五章至第四十八章等之中, 

皆有關於盂蘭盆之敘述. 


又摩奴法典第九章․

摩訶婆羅多第一大章之第七十四章等, 

其中皆有梵語 putra(子息)語源之說明, 謂男兒必須拯救(梵 trayate)墮於地獄(pun)之父之義. 


因印度古來卽相信無子嗣者於死後必墮入惡處, 

故婆羅門於二十歲修業圓滿後, 遂歸家娶妻生子, 以祭祀祖先之靈.  


據盂蘭盆經所載, 

佛弟子目連以天眼通見其母墮在餓鬼道, 

皮骨相連, 日夜苦悶相續;

目連見已, 以鉢盛飯, 往餉其母, 然其母以惡業受報之故, 飯食皆變爲火炎. 


目連爲拯救其母脫離此苦, 乃向佛陀請示解救之法. 

佛陀遂指示目連於七月十五日僧自恣日

(印度雨季期間, 僧衆結夏安居三個月, 此日乃安居結束之日), 

以百味飮食置於盂蘭盆中以供養三寶, 能蒙無量功德, 

得救七世父母. 

盂蘭盆經(大一六․七七九下):

「是佛弟子修孝順者, 應念念中常憶父母供養, 乃至七世父母, 

年年七月十五日常以孝順慈憶所生父母, 

乃至七世父母, 爲作盂蘭盆, 施佛及僧, 

以報父母長養慈愛之恩.」另據大盆淨土經載, 

甁沙王․須達居士․末利夫人等依目連之法, 造五百金盆供養佛及衆僧, 

以滅除七世父母之罪業.  

我國最早行盂蘭盆會者傳爲梁武帝, 

據佛祖統紀卷三十七載, 

大同四年(538) 武帝曾至同泰寺設盂蘭盆齋. 

又釋氏六帖卷四十五載, 

梁武帝每逢七月十五日, 

卽以盆普施諸寺. 


其後蔚成風氣, 歷代帝王臣民多行此會, 

以報父母․祖先恩德. 


據法苑珠林卷六十二祭祠篇․

佛祖統紀卷五十一等載, 


唐代諸帝如代宗․

德宗等皆極重視盂蘭盆供. 


另據大宋僧史略卷中內道場條載, 

代宗將過去施盆於寺之儀式改設於宮內, 

供奉更莊嚴之器物. 


至於民間行盂蘭盆會之盛況, 

如日僧圓仁之入唐求法巡禮行記卷四會昌四年(844)條所載, 


長安諸寺在七月十五日供養, 作花蠟․花餅․

假花等爭奇鬥艶, 竝於佛殿前鋪設供養, 

全城士庶巡寺隨喜, 競修功德. 

又據盂蘭盆經疏序載, 

僧衆亦循例於是日各出己財, 

造盆供養三寶.  


宋代盂蘭盆之風習依舊, 

然盆供之富麗莊嚴與供養佛僧之情形漸減, 


而形成薦亡之行事. 


據東京夢華錄卷八中元節條載, 

是日焚燒冥錢, 衣服, 竝上演目連救母雜劇等. 

高承於事物紀原一書中, 

指責當時之盆會已失供養佛僧之意. 

又據南宋吳自牧之夢梁錄卷四載, 


僧寺於七月十五日設盂蘭盆會, 

集施主之財米等而爲之行薦亡儀式. 


因知其後盂蘭盆會已成爲寺院中每年重要行事之一. 

據敕修百丈淸規卷七節臘章月分須知條及幻住庵淸規載, 

盆會之內容僅限於諷經施食而已. 


明代袾宏於正訛集中, 

指出世人以該日施食鬼神爲盂蘭盆會之非. 


淸代儀潤欲綜合諸說, 

乃謂宜於白日奉蘭盆以供養三寶, 

而於夜間普度鬼神. 然諸寺院遵行者不多, 

而民間一般仍多以薦亡度鬼爲主. 


此外, 在盂蘭盆會中所設之齋食供養, 

稱盂蘭盆齋;


供佛僧之百味飮食․百種器具, 稱盂蘭盆供;

後世多以瓜․果․麵․餅․茶․飯等, 供養餓鬼.  


日本則於推古天皇十四年(606)起, 

諸寺於四月八日及七月十五日有設齋之行事. 


齊明天皇三年(657), 始設盂蘭盆會, 

因與祖先崇拜之民俗相融, 

故其後卽盛行於朝野, 至今不輟. 


因供奉亡靈, 故亦稱魂祭․靈祭․精靈祭․精靈會. 

又行盆會爲除亡者之苦患, 

而淨土眞宗亦以之爲追善․追福之修法, 乃稱歡喜會.  


現今於七月十五日, 

僧院循例擧行盂蘭盆會, 

在諷經施食之外, 

竝有供僧大會, 

近年臺灣佛敎界更醞釀訂定該日爲僧寶節. 


此日亦爲民間所謂之中元節, 於民間之信仰, 

盛傳此日地獄門大開․釋放餓鬼之說, 

故民間多於此日屠殺牲畜, 

備辦飮食, 宴請諸餓鬼, 

亦請道士誦經超度, 稱爲中元普度;


蓋世人多以爲於此日備辦諸妙好食品宴請餓鬼, 

可消災免難, 保佑平安順利. 然以佛敎戒殺之立場觀之, 

如此作法非但不能獲益, 反造貪瞋殺業, 

故其意義․果報實與佛敎之盂蘭盆逈異. 


[慧琳音義卷三十四․釋氏通鑑卷九․盂蘭盆經折中疏(靈耀)․

百丈淸規證義記卷八(儀潤)․老學庵筆記卷七(陸游)․

元亨釋書卷二十․卷二十二]




우란분

盂蘭盆 

[명사]《불교》아귀도에 떨어진 망령을 위하여 여는 불사(佛事). 

목련 존자가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받아 

여러 수행승에게 올린 공양에서 비롯한다. 

하안거(夏安居)의 끝 날인 음력 칠월 보름을 앞뒤로 한 사흘간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조상이나 부처에게 공양한다. 

≒우란분공·우란분재·우란분회·우분재.【



● 우란분경에 나오는 우란분재와 백중과의 관계에 대한 보충 


○ 백중 


출처 - 민족문화대백과 


백중 


명절의 하나. 음력 7월 15일로 백종(百種)·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내용


○ 백종은, 이 무렵에 과실과 소채(蔬菜)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백가지 곡식의 씨앗[種子]을 갖추어 놓았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 중원은 도가(道家)의 말이다. 

도교에서는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일년에 세 번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원(元)’이라 한다.

1월 15일을 상원(上元), 10월 15일을 하원(下元)이라고 하며 

7월 15일의 중원과 함께 삼원(三元)이라 하여 초제(醮祭)를 지내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 망혼일이라 하는 까닭은 이날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음식·과일을 차려놓고 천신(薦新)을 한 데 있다.

 


○ 불가(佛家)에서는 

불제자 목련(目蓮)이 그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7월 15일에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공양했다는 고사에 따라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어 공양을 하는 풍속이 있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나 고려 때에는 일반인까지 참여했으나 

조선시대 이후로 사찰에서만 행해지고 민간에서는 소멸되었다.

 

 ○ 백중이 되면 여러 행사가 있어왔다. 


▼ 우선 각 가정에서 익은 과일을 따서 조상의 사당에 천신을 한 다음에 먹는 

천신 차례를 지냈으며, 

옛날에는 종묘(宗廟)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을 하는 일도 있었다. 


▼ 농가에서는 백중날이 되면 머슴을 하루 쉬게 하고 돈을 준다. 

머슴들은 그 돈으로 장에 가서 술도 마시고 음식을 사먹고 물건도 산다. 

그래서 ‘백중장’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백중장은 장꾼들이 많고 구매가 많은 장이다. 

취흥에 젖은 농군들은 농악을 치면서 하루를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씨름판이 벌어지며 

장터에는 흥행단이 들어와서 활기를 띠기도 한다. 

이러한 백중 명절은 중부 이남지방이 성대하다. 

또한 이날은 그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위로하며 논다. 

이것은 바쁜 농사를 끝내고 하는 농군의 잔치로서 이것을 ‘호미씻이’라 한다.


▼ 제주도에서는 일손을 쉬지 않고 바다에 나가 일을 더 많이 한다. 

백중날에 살찐 해산물들이 많이 잡힌다고 하며 밤에는 횃불을 들고 늦도록 해산물을 따기도 한다. 

한라산에는 ‘백중와살’이라는 산신이 있어 

백중을 고비로 익은 오곡과 산과(山果)를 사람들이 따 가면 

허전하여 샘을 내고 바람을 일으킨다고 해서 산신제를 지내는 일도 있다.

 

▼ 신라 때에는 백중을 기해서 삼 삼기가 시작되었다. 

도성 안의 부녀자를 두 파로 나누고 공주로 하여금 각 파를 이끌어 

한 달 동안 삼을 삼아 8월 가윗날에 그 성적을 심사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 한턱 내도록 하는 것이다.

백중 무렵이 되면 삼이 자라서 

그 껍질을 베끼기에 알맞게 익은 때이므로 

직조작업을 권장하는 뜻에서 

왕녀를 주축으로 하여 

집단작업인 두레삼 삼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경도잡지(京都雜志)』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한국세시풍속』(임동권, 서문당, 1976)

『한국민속대관』 4-세시풍속·전승놀이-(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2)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백중 [百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 백중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백중

[ 百中 ] 




분야

정일


계절

가을(음력 7월)


날짜

음력 7월 15일(양력2013년8월21일)


풍속

백중놀이(百中-), 씨름, 들돌들기, 호미걸이(경기도), 

밀양백중놀이(密陽百中-), 풋굿(경상도)


다른이름

백종(百種), 머슴날(칠석), 망혼일(亡魂日), 머슴의생일, 중원(中元), 

호미씻는날, 축수한날, 머슴명일(전라북도전주), 상놈명절(경상남도함안)


관련속담

백중날은 논두렁 보러 안 간다, 

백중 무수기에는 메밀농사 끝에 늘어진 불 보려고 구멍에 든 소라 다 나온다, 

백중에 물 없는 나락 가을할 것 없다, 

백중에 바다 미역하면 물귀신 된다, 

칠월 백중사리에 오리 다리 부러진다




목차


정의

 

음력 7월 15일에 해당하며 세벌김매기가 끝난 후 

여름철 휴한기에 휴식을 취하는 날. 

농민들의 여름철 축제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고,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백중놀이를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던 농민명절을 뜻한다.

 

이칭

 

백중(百中)의 이칭으로는 백중(白中), 백중(百衆), 백종(百種), 

백종절(百種節), 중원일(中元日), 망혼일(亡魂日) 등이 있다. 

민간에서는 백중이란 말로 통일되어 있다. 


백중은 원래 불가에서 부처의 탄생, 출가, 성도, 열반일을 합한 4대 명절에 더하여 

우란분재(盂蘭盆齋)가 행해지는 5대 명절에 해당된다. 

우란분(盂蘭盆)은 범어의 ‘Ullamana’를 음사(音寫)한 오람파라(烏籃婆拏)가 와전된 것이다.

 

내용

 

백중에 관한 기록들은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 17세기 김육(金堉)의 『송도지(松都志)』에 7월 15일을 백종이라 부르고 있다. 

남녀가 주식(酒食)을 차려놓고 삼혼(三魂)을 부르며 우란분재의 고풍(古風)이라 하였다. 



○ 『송남잡지(松南雜識)』에서는 ‘百種·白中’을 병기하였다. 

『규합총서(閨閤叢書)』, 『이운지(怡雲志)』,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百種’으로만 명기된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7월 15일은 속칭 백종이라 부르며 

백종에는 중들이 백 가지의 화과(花菓)를 갖추어서 우란분을 설치하고 불공한다고 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백종절이라고 하여, 

중원일에 백종의 꽃과 과일을 부처님께 공양하며 복을 빌었으므로 그날의 이름을 백종이라 붙였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를 그대로 인용하여 백종일이라 불렀다. 

사찰에서 행하는 우란분회와 달리 민간에서는 망혼일이라 하여 

여염집에서 중원 달밤에 채소, 과일, 술, 밥을 갖추어 죽은 어버이 혼을 부른다고 하였다. 

한편 충청도 풍속에 15일에는 노소가 저자로 나와 마시고 먹으며 즐길 뿐더러 씨름놀이도 하고, 

경사대부 집에서 초하룻날이나 보름날에 올벼[早生稻]를 사당에 천신한다고도 했다.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도 백종절이라고 하였으며, 

서울사람들은 성찬을 차려서 산에 올라가 가무를 즐겼다고 하였다. 


백종은 백 가지 맛을 이르는 것이며, 

혹은 백가지 곡식의 씨를 중원에 진열하였으므로 백종이라고 한다고 하면서 

이는 황당무계한 설이라고도 하였다. 


20세기 초 장지연의 『조선세시기(朝鮮歲時記)』에서 속칭 백종절이라 하고 백중이라 하였다. 

도시의 사녀(士女)가 주찬을 성대하게 차리고 

산에 올라가 가무로 놀이를 하니 

그 풍속이 신라와 고려부터의 풍속이라고 하였다. 


숭불(崇佛)로 인해 우란분공을 위하여 백종의 채소와 과일을 구비하였던 탓으로 

백종이란 말이 생겼다고도 하고 

혹은 백곡지종(百穀之種)에서 나왔다고는 하나 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백중에는 민간에서 망혼제(亡魂祭)를 지내고, 

절에서는 스님들이 석 달 동안의 하안거(夏安居)를 끝내는 날이기도 하다. 


즉 우란분재와 백중은 조상영혼의 천도, 참회와 중생제도, 

나아가서 일꾼들이 즐기는 농촌축제의 날이 된다. 


백중은 한마디로 먹고 마시고 놀면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다. 

백중놀이는 두레먹기에서 두드러진다. 


백중에 열리는 두레먹기야말로 두레일꾼들이 모처럼 노동의 피로를 풀어내는 축제였다. 

백중놀이는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소 상이하게 나타나며, 

호미걸이, 호미씻이, 술멕이, 풋굿, 질먹기, 진서턱(진세턱) 등이 대표적이다. 


여름철 우물고사도 중요한 행사였는데 

지역에 따라서 백중과 칠석에 혼재되어 나타나므로 

칠석놀이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백중날에 머슴들에게는 백중빔이라고 하여 새 옷을 장만해 주었으며, 

모처럼의 휴가를 주어 백중장에서 즐기도록 하였다.


두레에 들어가야 할 청소년은 진서라고 부르며 

두레에 내게 되는 술은 진서술이라고 부른다. 

진서턱을 내는 시기는 7월 백중 무렵에 곁들여서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진서턱은 전국적인 명칭은 아니다. 

전라도에서는 모두 진서턱이 확인된다. 


충청도에서는 금강을 기점으로 부여군 남쪽에서 일부 확인이 된다. 

이로써 남도에 국한된 지역 명칭임을 알 수 있다. 


꽁배술 풍습은 주로 충청도에서 많이 쓰인다. 

꽁배란 두레에서 심부름하는 청소년층을 일컬으며, 

꽁배가 연령이 차서 두레성원이 되고자 할 때, 

백중날 동이로 술을 내는 꽁배술을 거쳐 허락을 얻는다. 


호남이나 호서지방은 들돌들기, 돌독들기, 등돌들기, 진쇠돌들기, 당산돌들기가 많으며 

경상도에서는 힘발림이라는 명칭도 쓰인다. 

들돌을 두는 위치는 대개 여름철 노동의 피로와 더위를 피하는 휴식 장소이기도 한 당수나무 밑이다. 


들돌의 주된 기능은 역시 7월 백중에 마을 청장년들이 시원한 나무 밑에 모여 힘을 겨뤄 장사를 뽑는 것이다. 

경남 밀양 감천의 백중놀이에서 놀아지는 힘발림은 그해 가장 일을 부지런히 한 머슴들 중에서 

씨름과 더불어 무거운 돌을 들도록 하여 힘센 사람을 뽑아 좌상과 우상으로 삼았다. 


한 해 농사짓기 전 두레농군을 입사시키는데도 쓰였다.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청소년은 힘발림을 통과해야 했다. 

물론 별도로 꼼배기참이라고 하여 어른들에게 술을 올려야 했다. 


전북 고창군 상평에서는 품앗이를 하려면 백중날 들독(들돌)을 들어서 품앗이를 결정했다. 

들독을 못 들면 장정품앗이를 주지 않았다. 


경기도 일원에서는 호미걸이가 많이 쓰였다. 

호미걸이는 호미나 악기를 낭대[農旗]의 버레줄에 주렁주렁 걸어두는 의례다. 

삼남에 호미걸이 명칭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경기 지역에 고유한 명칭으로 보인다. 

8월 초순, 칠석, 백중 등 형편에 맞게 이루어졌다. 

장소는 시원한 정자나무 아래나 마을이 바라다보이는 탁 트인 산중턱이 많이 쓰였다. 


백중놀이는 장터에서 별도로 열렸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백중놀이란 머슴들이 장터로 가서 노는 놀이를 뜻하였다. 

백중날은 머슴들이 주동이 되어 장터에 가서 씨름대회에 참가하였다. 

상인들은 시장 경기를 부추기는 방법의 하나로 씨름대회를 열었으며, 

음식장사, 술장사 등 난장(亂場)이 섰다. 


머슴들은 씨름에 이기면 송아지를 끌고서 기세를 올리면서 자기 마을로 돌아왔다. 

백중놀이에서 머슴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충청도에서는 백중보다 칠석날 두레먹기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충청 서해안과 내륙 모두에 걸쳐서 칠석이 중시되었다. 

반면에 백중은 아예 머슴날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백중날 머슴에게 돈도 주고 무명으로 여름 한복을 한 벌씩 해 주었기에 

새 옷 입고 장에 나가서 술도 마시고 하루를 즐겼다. 

칠석날 두레먹기가 성했다는 것일 뿐, 획일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전라도에서는 술멕이와 풍장놀이, 장원례 등으로 부르는데 

술멕이는 글자 그대로 ‘술먹는날’이란 뜻이다. 

충남과 전북의 경계선인 금강을 기점으로 술멕이의 경계선이 그어진다. 

따라서 남도에서 쓰인 풍습이 북상하다가 금강 유역에서 멈춘 것으로 보인다. 

술멕이날은 대개 칠월 칠석이나 백중날이었다. 


날짜 선택에 어떤 일정한 경향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술멕이날은 마지막 김매기날에 행하는 만두레 행사와 분리되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술멕이날은 마을풍물패가 동원되어 당산굿을 쳤으며,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동네잔치를 벌였다. 

술멕이날이 다가오면 사전에 도로닦기, 잡초제거 같은 대청소도 이루어졌다. 


풋굿은 경상도 말로 풋구, 푸꾸, 풋꾸라고 부른다. 

문헌에 초연(草宴)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나, 

일반 민중들이 쓰던 말은 아니다. 


풋굿은 세벌논매기가 끝났을 때 백중에 놀아진다. 

농민층이 많이 참가하는 행사이나 지주가 많은 양반 출신들의 동성촌락인 경우에는 

머슴잔치라는 인상이 짙다. 


일제강점기에 송석하(宋錫夏)는 경상도지방의 ‘나다리’를 보고하고 있으며, 

이는 풋굿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의 질먹기에서 질은 김매기의 ‘김’에서 나온 말이다. 

김매기를 끝내고서 잔치를 먹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느 지방과 마찬가지로 음력 7월 15일 백중날 질을 먹는다. 

마을의 시원한 솔밭이나 성황당 마당 같은 곳에 모여서 김매기 노동의 결산을 먼저 한다. 

이날은 ‘머슴의 생일’이라고 하여 머슴살이하는 고용인들에게 주인집에서 상을 차려낸다.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면서 피로를 풀어내는 방식은 다른 지방과 다를 게 없다.

 

의의

 

농민들에게는 일년에 두 차례 거대한 농민축제가 존재했다. 

겨울철 휴한기인 정월대보름과 여름철 휴한기인 7월 백중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보름과 달리 7월 백중은 

두레의 소멸과 더불어 거의 잊혀져가는 풍습이 되었으며, 

밀양백중놀이 등에 그 잔재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洪錫謨 外·李錫浩 譯註. 朝鮮歲時記, 1991

주강현. 한국의 두레1. 집문당, 1997

주강현. 한국의 두레2. 집문당, 1997

京都雜志, 閨閤叢書, 東國歲時記, 松南雜識, 松都志, 燃藜室記述, 洌陽歲時記, 慵齋叢話, 怡雲志, 怡雲志, 玄應音義, 荊楚歲時記



[네이버 지식백과] 백중 [百中]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네이버 지식백과답변



◈  음력 7월 보름, 백중(百中)

 

 

 1. 백중의 어원

 


백중(百中)은 음력 7월 보름에 드는 속절(俗節)이며, 

백종(百種)·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종(百種)은 이 무렵에 여러가지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하여 유래된 말이요, 

중원(中元)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삼원(三元)의 하나로서 

이날에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 데서 연유하였다. 

또한 망혼일(亡魂日)이라 한 까닭은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음식·과일을 차려 놓고 천신(薦新)을 드린 데에서 비롯되었다.

 


2. 백중의 유래

 



입하(立夏)로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녀름짓다'라는 옛말처럼 

밭매기와 논매기 등 농사일이 한창인 계절이다. 

그러나 '어정 7월, 동동 8월' 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농촌의 7월은 바쁜 농번기를 보낸 뒤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을 추수를 앞둔 달이어서 

잠시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백중'이라는 속절(俗節)을 두어 농사일을 멈추고, 

천신의례 및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노동의 지루함을 달래고 

더위로 인해 쇠약해지는 건강을 회복하고자 했다. 

백중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간행 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불가의 중들이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는 큰 명절로 여긴다. 

상고하면《형초세시기(荊楚歲時 記)》에 이르기를 

중원일(中元日)은 승니, 도사, 속인들이 모두 분(盆)을 만들어 이것을 절에 바친다고 했다.

또 상고하면《우란분경(盂蘭盆經)》에 

목련비구(木蓮比丘)가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갖추어 분 안에 넣어 갖고 

시방대덕(十方大德)에 공양한다고 하였다. 

지금 말한 백중일이 백과를 가리키는 것이다. 

고려 때는 부처를 숭상하고 

이날이 오면 항상 우란분회(盂蘭盆會)를 베풀었다.

오늘날 불당에서 재를 올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백중의 유래는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우란분회를 열어 여러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께 공양하고, 

조상의 영전에 바쳤다. 

조선시대 때에는 억불숭유정책으로 승려들만의 불교의식이 되고 말았다.


 

또 조선 후기에 간행된《송남잡식(松南雜識)》의 기록에 의하면 

우란분회 때 승려들이 발을 닦아 발뒤꿈치가 하얗게 되어 백종(白踵)이라 한다는 설도 있으나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편 제주도에는 백중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진성기의《남국의 민속》(下)에 소개되고 있는 이 설화에 의하면 

백중은 농신(農神)으로 상정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주도의 목동이 곡식과 가축을 지키려고 옥황상제의 명을 어겼는데, 

이로 인해 노여움을 받아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후 농민들이 그가 죽은 날인 음력 7월 14일을 백중일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어 그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이렇게 볼 때 백중은 본시 우리 나라 고대의 농신제일(農神祭日)이었던 것이 

삼국시대 이후 불교의 우란분회의 영향을 받아 

그 원래의 의미가 상실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3. 백중의 풍속

 

백중에는 여러 풍속이 전해온다. 

각 가정에서는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에 천신(薦新)을 올렸으며, 

궁중에서는 종묘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을 올리기도 하였다. 

농가에서는 백중날 머슴들과 일꾼들에게 돈과 휴가를 주어 즐겁게 놀도록 하였다.


따라서 이 날이 되면 머슴들과 일꾼들은 

특별히 장만한 아침상과 새옷 및 돈을 받는데 이것을 '백중돈 탄다' 라고 하였다. 


백중돈을 탄 이들은 장터에 나가 물건을 사거나 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이때 서는 장을 특별히 '백중장' 이라 하여 풍장이 울리고 

씨름 등을 비롯한 갖가지 흥미 있는 오락과 구경거리가 있어서, 

농사에 시달렸던 머슴이나 일꾼들은 마냥 즐길 수 있는 날이다.


 

지역에 따라 이 날 농신제(農神祭)와 더불어 집단놀이가 행해지는데 

이를 '백중놀이'라고 한다. 

이 놀이는 농촌에서 힘겨운 새벌논매기를 끝내고 

여흥으로 여러가지 놀이판을 벌여 온 데서 비롯된 것으로서 

일종의 마을잔치이다.


이날은 그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하루를 즐기는데, 이를 '호미씻이'라 한다. 


호미씻이는 지방에 따라서 초연(草宴), 풋굿, 머슴날, 장원례(壯元禮)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마을 사람들은 장원한 집의 머슴 얼굴에 검정칠을 하고 

도롱이를 입히고 머리에 삿갓을 씌워 우습게 꾸며 지게나 사다리에 태우거나 

아니면 황소 등에 태워 집집마다 돌아다닌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 그 집주인은 이들에게 술과 안주를 대접하니, 

이날을 머슴날이라고 하기도 한다.


마을 어른들은 머슴이 노총각이나 홀아비면 

마땅한 처녀나 과부를 골라 장가를 들여주고 살림도 장만 해 주는데, 

옛말에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 라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제주지방에는 백중날에 살찐 해산물들이 많이 잡힌다고 하여 

쉬지 않고 밤늦도록 해산물을 채취하기도 하고, 

또 한라산에 '백중와살'이라는 산신이 있어 

백중을 고비로 익은 오곡과 산과(山果) 를 사람들이 따가면 허전하여 샘을 낸다고 하여 

산신제를 지내기도 한다.


신라의 풍속에 백중일을 기해서 부녀자들의 삼삼기 풍속이 있었다. 

이에 대한 유래는 고려 중기에 간행된《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 3대 유리왕조의 

삼삼기 풍속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이 6부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어서 두 왕녀에게 각각 한 패씩 거느리게 하고 

7월 기망(旣望,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길쌈을 시켰는데, 

그 공의 다소를 보아 진편이 이긴 편에 음식 대접을 하고, 

이어서 가무백희를 하니 이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러한 풍속은 근래까지도 경남지역에서 '두레삼'이라하여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남 지역에서는 친한 부녀자들끼리 품앗이로 한 집씩 돌려가며 삼을 삼는 풍속이 전역에 분포하는데, 

이를 두레삼이라 한다. 


이때 주인집에서는 음식대접을 하기도 하고, 

혹은 편을 나누어 경쟁을 하여 

진편이 이긴 편에 음식대접을 하기도 한다.


http://www.sesistory.pe.kr/main/left-12.htm


FR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130103&docId=63246721&qb=67Cx7KSR&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m0uxc5Y7tlssvSXRiVsssssstV-506627&sid=Uh0CxHJvLBgAADVuLes


///



○ 네이버지식백과 - 백중기도


벡중은 음력 7월 보름(15일)을 말하는데,

과일과 음식 등 백 가지를 공양한 백종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여름 안거(더위를 피해 일정한 장소에서 스님들이 수행하는 일)를 마치는 날로

이날 수행을 마치는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으로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구원한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우란분절이라고도 하며 불교에서는 부처님 오신날, 부처님께서 깨달은 날,

출가하신 날과 열반에 든 날과 함께 다섯 명절의 하나입니다.

 

참고로 백중기도는 일반적으로 49일간 합니다.

올해(2012년)는 오늘 즉 양력 7월 15일(음력 5월 26일) 입재를 하여 양력으로 9월 1일(음력 7월 15일)이 회향일이 됩니다.

즉 돌아오는 토요일에 첫재를 시작하여 매주 토요일 재를 올리게 됩니다.

물론 절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고 마지막 보름 정도나 일주일 정도만 재를 지내기도 합니다.

 

백중을 맞아 올리는 천도재는 여러분들이 합동으로 함께 하기에 영가 일위당 축원금도 크게 들지 않습니다.

사전에 님이 가시고 싶은 절을 찾아 기도를 접수하고 재에 참석하도록 하십시오.

 

천도재란 돌아가신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의미도 있지만

살아있는 분들의 공덕도 많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FR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3&docId=154717093&qb=67Cx7KSR&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Rm0uxc5Y7tlssvSXRiVsssssstV-506627&sid=Uh0CxHJvLBgAADVuLes

- 년도와 날짜 내용 보충 -
///




///





●우란분경 



Ω♠문서정보♠Ω

™[작성자]™ Prajna Citta

◑[작성일]◐ 2013-08-28-수-05-31

♨[수정내역]♨

▩[ 디스크 ]▩ [DISK] ●우란분경 G:/개인_불교공부/K0277_T0685_불설우란분경.txt ♠

ж[ 웹 ]ж [web] http://buddhism007.tistory.com/612 ♠

⇔[ 관련문서]⇔

{!-- 관련 문서 링크--}

인터넷상의 목록 http://buddhism007.tistory.com/604

디스크상의 목록 ●불교 O:/G/G/08/budr/budr-catalog.htm

Ш[ 관련 문서 인용 부분 ]Ш

ㅹ[ 코멘트 등 정리 내역]ㅹ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