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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료

혹업고의 관계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7. 8. 24. 0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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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uddhism007.tistory.com/3473

● 이하 글은 단상_조각글 내용을 주제별로 '편집중'인 상태의 글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몸을 놓고 자신이라고 보듯 

남을 대할 때도 그에 준하는 부분을 놓고 

남이라고 보는 것이고 


어떤 기계 예를 들어 핸드폰을 볼 때도
마찬가지 방식이 사용된다. 


그런 가운데 사람이 어떤 정신활동이나 육체활동을 하는 것과 

이런 기계나 전자제품이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기계 제품의 동작에 적용되는 

물리적 화학적인 반응관계를 놓고 

이것을 생명에 적용하여 

생명의 정신이나 육체적 활동을 설명하려는 

입장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생명에 대한 일반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이것이 바로 망상분별의 한 형태라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디에 오류가 있는가를 

잘 헤아려야 한다고 본다. 


물리나 화학 생물의 활동 법칙에서 

자극 -> 반응 (자극 ) -> 반응  -> ....


이런 연쇄적인 관계가 

곧 어떤 이가 눈을 뜨면 

어떤 모습을 보고 

생각을 하고 

또 그에 따라 활동하다가 

병들고 죽어가는 관계라고 

이해하기 쉬운데 


왜 이런 이해가 엉터리 망상분별이라고 지적하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면 

반대로 자신을 포함해서 

생명이 자신의 눈으로 볼 때 

여기서 병들고 죽어서 

육체가 썩고 불타거나 해서 사라지면 

그것으로 그 생명은 끝이다. 

이렇게 생각히기 쉬운데 


이것을 늘 무엇은 그대로 항상 존재한다는 상견과 함께 

또 하나의 망상분별에 바탕한 사견의 하나로서 

단견에 해당하는 내용이 된다. 


단견이란 한번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이고 

그 이후에는 그와 관련지을 것이 하나도 전혀 없다. 

이런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유무의 논의를 따질 때 

어떤 a 가 있다고 하면 

그 a 가 항상 있다거나 

어떤 것이 항상 없다는 것은 

'항상' 이란 내용과 관련된 망상분별이 된다. 


그런데 없다가 있고 있다가 없다고 하면 

한번의 생과 한번의 멸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유무 논의가 조금 복잡한 형태가 되면 

결국 이런 형태까지도 포함해서 

유무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한 정지단면을 놓고 

a 가 있다 없다. 이렇게만 논의할 수도 있지만, 


있고 있고 있고....항상 있다. 

없고 없고 없고... 항상 없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도 살펴야 하는 것이다. 


또 없다가 있다. [ 생 ]

있다가 없다. [ 멸 ]

이런 경우는 어떤가. 


그런데 결론적으로 기본적으로 이런 내용은 망상분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멸관이란, 


어떤 것이 있다가 없어지면 

그 이후 죽 무한히 없게 된다. 

이런 내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것이 문제되는가하면 

현실에서 자신이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고 그 이후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현실을 무작정 살아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작정이란, 완전히 무계획하게 살아가려는 

입장은 아니지만, 

여하튼 자신의 죽을 때까지만 고려하고 

그 이후는 자신은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여기는 가운데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범위를 좁혀서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그러니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이는 한마디로 무작정 생각없이 

마치 가을에 수확할 열매의 씨를 

봄철만 놓고 생각하면서 

씨를 뿌려보았자 씨만 없어지고 

그 이후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가을에 대한 준비나 대책이 전혀 없이 

살아가려는 입장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무작정 또는 무대포로 

고집을 피우고 살아가려는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무 논의에서는 

앞과 같이 무엇이 항상하다는 견해나 

무엇이 한번 사라지면 그 후로 무한히 없다는 견해 등을 

상견이나 단견이라고 해서 

대표적인 망상분별의 사례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멸이 있다고 하는 것도 

역시 유무 논의에서는 부정하는 것이다. 


무 + 유 = 생

유 + 무 = 멸 

을 놓고 

이것을 부정하면 

이 상태에서 

어떤 방향으로 다시 나아가기 쉬운가하면 

위와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유,유,유,유 = 항상

유. 무무무무무 = 단멸 

이런 형태로 또 망상분별을 전개해 나아가기 쉬운 것이다. 


즉 생멸을 처음 부정하면 

그 의미가 

생과 멸에 해당되지 않는 또 다른 유형으로 

항상된다거나 단멸한다는 내용을 제시한 것처럼도 

여기게 된다는 의미다. 


여하튼 망상분별이 어떤 사정과 유형으로 

증폭되고 전개되는가는 개별 사정마다 

다 사정이 다르지만, 

여하튼 위와 같은 견해들이 

대표적인 망상분별 증상으로서 

그 폐해와 독이 심하다고 

제시되는 사례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사실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하면 


처음 한 정지단면에서 

어떤 a 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를 

논의할 때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갖는 

사람으로서 영희라는 아이가 있다고 할 때 

이 영희가 10 년전에 행방불명되어버렸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가 

그 사진을 하나 가지고 

계속 전단지를 만들어서 

거리거리마다 뿌리면서 

영희를 찾아달라고 요구한다고 해보자. 


이런 수사를 맡아 진행할 때 

지금 영희가 어디 있는가도 문제된다고 보지만, 


여하튼 가장 기초적으로 

어느 한 단면에라도 

영희가 과연 있는가 없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부분을 건너 뛰고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진행하면 

수사가 대단히 이상한 수사가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알고보니 10 년전에사진을 찍을 당시부터 

그에 해당하는 진짜의 영희가 그 현장에는 없었고 

그 실재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현실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었다. 


이런 것을 기본적으로 앞에서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건너뛰고 

계속 영희의 행방을 수사하는데 


사실 현실적으로도 그 이후 문제가 계속 많이 나타난다. 


10 년전의 사진과 같은 영희는 

상식적으로 

지금 순간에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완전히 같은 어떤 이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정말 바로 그런 사정때문에 

그 사람이 찾는 영희가 아님도 분명한 것이다. 


그리고 정작 dna 검사도 하고 

여러 조사를 해서 찾는다고 해도 

영희를 찾아 확인해보니 

머리는 다른 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쓰고 있고 

이는 임플란트이고 

콩팥은 다른 이에게서 이식받은 것이고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는 경우도 

있는데 

엄밀하게 보면 

아무리 dna 구조는 같다고 해도 

그 재료 자체가 10 년전의 재료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이를 레고블록으로 만든 어떤 건물로 비유하면 

10 년전에 사진 찍은 어떤 건물과 


10 년후의 건물이 같은 건물이다 아니다를 

그 설계도의 기본 골격을 놓고 

따진다고 하지만, 


레고 블록 차제가 10 년전의 그 건물이 

만들어진 레고블록을 기준으로 한다면 


다른 레고블록 상자에 들어 있던 블록만으로 

만들어진 새 레고블록 건물을 가지고 


그것이 10 년전의 그 건물과 

동일한 건물이라고 붙잡고 고집하는 상태와 

같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지적하는 입장과 

10 년 전의 그 사진과 어떤 인물이 

dna 와 지문을 통해 보니 완전히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입장 사이에서 

누가 억지를 피우는 것 같은가. 


접니당. 



그런데 여기에 기본적으로 지적할 문제가 또 있다. 


이런 수사를 하거나 

관찰 보고를 하는 이가 

가장 중대한 착각을 범하고 있는 점이다. 


저와 같은 핸드폰을 놓고 

전기도 연결하면서 

상태를 관찰하는 것은 좋다고 보지만, 


이 상태에서 중요한 무엇을 빠뜨리는가 하면 


그렇게 관찰한 내용 일체가 

그 관찰자의 마음에 얻어진 내용이라는 점을 

빠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자신의 마음 안의 어떤 내용이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본 대상의 내용이라거나 

마음안의 각 부분이 

그런 관계를 서로 보인다고 파악하는 것은 

곤란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중대한 오류를 발생시키는 

문제점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도 그런 내용을 보고 

다른 이도 그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보면 

비록 자신이 본 내용은 자신의 마음안의 내용이지만, 

그에 일치하거나 비례하거나 비슷한 내용이 

그 마음 밖에 그처럼 실재한다고 

추리해서 나아가는 것이 

또 그 다음 망상분별의 증폭현상인 것이다. 



지금 유무 논의에서 핵심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은 

사정이 바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이다. 


언뜻 생각하면 자신도 보고 남도 보고 

오늘도 보고 내일도 그 내용을 보기에 

그처럼 마음에서 얻는 내용에 상응하고 

일치하고 비례하는 어떤 내용이 

그 마음 밖에도 그처럼 있을 것같다고 

추리하는 사정은 이해하는데 


이것이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사정임은 이해하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서 제시하는 것이다. 



수소와 산소를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물이 나온다는 것은 오늘날 상식적인 이해인데 


이제 이 물을 수소에서 찾아보고 

산소에서 찾아보면 

물이 얻어진다고 할 것인가 .


쉽게 설명하면 사정이 그렇고 

조금 더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침대에서 황금을 캐는 꿈을 꾸고 

그것을 정원에 묻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잠을 잔 침대나 집의 마당에 

그런 황금이 있다고 주장하면 

적절한 것인가. 


이 비유처럼 상황이 그렇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무소유 불가득 공의 내용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꿈은 같은 방에서 같이 잠을 잔다고 해서 

서로 다 같이 황금을 캐는 꿈을 꾸고 

꿈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그런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 이 비유가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문제가 바로 현실에서 그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에 

들어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또 하나 문제는 

자신이 세상을 관찰하는 가운데 

세상을 이루는 재료가 

액체 기체 고체 에너지 이런 식으로 

자신 나름대로 분류를 하는 가운데 

이것이 형태를 매번 바꾸어 가지만 

그 기본재료는 늘고 줆이 없다고 파악한다면 


이 가운데에서 

사실 무엇이 가장 기본되는 재료인가를 

착각을 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소풍간 돼지가 인원점검을 할 때 

자기 자신을 빠뜨리고 매번 

다른 돼지의 수를 세는 현상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얻은 내용 가운데 

몸 부분을 놓고 자신라고 여기는 현상은 

그런 내용을 얻는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여 빼놓고 

거꾸로 마음에 들어온 손님이나 티끌과 같은 것을 놓고 

자신이라고 여기는 현상이다. 



간단히 


영원하지도 않고 

자신의 뜻처럼 늘 되어서 고통을 주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영원불변한 실체를 갖고 빼대가 있다고 할 진짜라고 할 내용도 아닌 것을 

놓고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엉터리고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하는 근본 사정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반복해 제시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늘 갖고 다니던 핸드폰이나 

또는 매번 신고 다니는 신발 

또는 그 신발에 붙은 껌을 

매번 자신이 대하고 

자신이 정이 들고 

자신이 애착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곧 자신이라고 여기고 


그것이 부서지거나 어느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면 

그것과 함께 자신까지 들어가서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이라고 

제시하는 사정인 것이다. 


무엇이 잘못이어서 

그런 생사고통을 겪는가는 

위에 그 대강의 원인이 제시되어 있다. 


꿈에서 황금을 마당에 묻는 꿈을 꾼 이가 

그 꿈 내용이 옳은 내용이 아님을 이해하게 되면 


그 꿈을 꾸고 난 다음에 

마당에 황금이 있다고 소리치면서 

삽을 들고 몇 십년을 파 내려가는 행위는 

적어도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상황에서 

그런 일을 하는 이가 있다고 보듯 


현실에서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엉뚱한 망상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엉뚱하지만 매 순간 그런 망상에 바탕해서 

집착을 일으킨 내용에 껌이나 본드 접착제처럼 접착되어서 

그에 바탕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하고 자세와 태도를 취하면서 

그로 인해 그 전제에서는 

그가 도저히 생생한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는 

상태로 묶여 끌려가게 된다는 

문제점을 반복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본래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도 

그러나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그런 전제에서 무한히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 헤메 돌아다니는 상태가 되는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는 그런 관계로 그런 결과를 맞이하는 것을 

반복하므로 

이것을 혹-업-고의 관계라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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