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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1-12-09-대승유식론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1(2017)

불기2561-12-09-대승유식론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7. 12. 9. 16:52



®

『대승유식론』
K0610  
T1589

대승유식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대승유식론_K0610_T1589 핵심요약




♣0610-001♧
『대승유식론』




대승유식





대승(大乘)에서 

‘3계(界)에 식(識)만 있을 뿐이라’고 내세움은, 

경에서 

‘불자(佛子)여, 3계(界)란 마음만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나니, 

그는 마음[심心]과 뜻[의意]과 의식[식識]에 대한 총괄적인 명칭이다. 

그 마음이란, 

서로 응함[상응相應]이 있는 법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뿐[유唯]이라는 말은 

색진(色塵) 따위를 제외하는 말로 쓰인 것이다. 




○ 서로 대립되는 내용을 논술한 세친의 정체


오늘 세친의 『대승유식론』을 살핀다. 
세친 논사는 이 유식론을 서술하기 전까지는 
유부나 경량부의 대표 논사로 알려져 있다. 
세친 논사는 유식학파 입장과는 상당히 차이가 큰 

『구사론』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처럼 유식학파입장과 상당히 대립되는 논서를 저술한 세친 논사가 
유식학파의 논서를 저술하게 된 것은 
세친의 형인 무착 논사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오늘 살피는 『대승유식론』은 
그런 배경을 갖고 있는 논서라는 배경사정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 논서에서는 
현실에서 대하는 것들이 왜 하나같이 실답지 않은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전개된다. 

그런데 이 『대승유식론』에서 
세친의 입장에 반대되는 입장들이 
현실에서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입장에 더 가깝다.
그리고 과거 세친의 입장과도 가깝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세친논사와 같이 대단히 유명한 논사도 
처음에는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 및
자신이 현실에서 대하는 것의 본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대단히 힘들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세친이 저술한 『구사론』이나 『유식론』의 입장이 너무 현격하게 차이나므로 
오늘날 문헌학자들 일부는 이 두 논서를 서술한 세친은 서로 다른 인물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의 인물의 정체가 한 형태로만 평생 결정되어 고정된다고 보는 자체가 문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이 논서의 주된 내용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는 갑이라는 사람이 축구선수면 
축구만 해야 되지, 농구까지 할 수는 없다거나 
심지어 탁구까지 잘해서 금메달을 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축구선수로 등록된 갑이 농구나 탁구선수로도 등록되어 있는 경우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종목에 함께 선수로 등록되어 있는 갑은 
아마 이름만 같을 뿐 한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보기 쉽다. 

그러나 현실을 놓고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어떤 연구를 하는 학자도 마찬가지다. 
처음 석사과정에서 논문을 쓸 때는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논문을 써 제출했지만, 
박사과정에서 논문을 쓸 때는 
'지구 뿐만 아니라 태양도 함께 돌고 있다'고 생각하고 새 논문을 쓰고 
나중에 더 열심히 연구한 이후에는 
드디어 '지구와 태양이 도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망상분별에 바탕해서 이런 내용들을 이처럼 잘못 파악했다'라고 
사정을 올바로 파악하고 논문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이 오히려 현실에서는 더 일반적이다. 




○ 유식론 판본과 살피는 방식 

처음 『대승유식론』과 『유식이십론』을 같이 정리를 하며 살폈는데 
본 내용에 조금 관심이 있는 경우는 
조금 더 자세한 주석이 붙어 있는 
『유식이십론』을 먼저 참조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참고 


sfed--유식이십론_K0608_T1590.txt

http://buddhism007.tistory.com/3784




원래 논서 내용을 살피려면 

마구 건너뛰어가면서 문단을 살피기 보다는 
한 문장을 붙잡고 
왜 그런 if 문장에서 
그 다음 결론이 제시되게 되는가
그리고 이 결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놓고 
아주 깊게 살펴나가야 한다. 

그래서 매번 처음 논서를 대하면 
일단 문단정리부터 좀 잘 해서 
어떤 부분이 논의를 진행하는 주체가 주장하는 내용이고 
또 어떤 부분이 그와 대립되는 상대방이 주장하는 내용이고 
그 각 입장의 논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런 각 주장 가운데 어떤 입장이 어떤 이유로 보다 적절한가 
이런 것을 일일히 살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골치가 아파오고 
에너지가 대부분 소진된다. 

알고보면 현실에서 얻는 그 일체의 내용이 
모두 마음안의 내용이고 
그렇게 현실에서 얻는 그 일체의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실재 대상이라고 할 내용은 없다는 내용이 
본 논서의 결론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기존에 다양한 방식으로 
오래전 부터 제시해온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전 페이지를 살피면 
그런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그림도 제시한 내용을 대할 수 있다. 

또 현실에서 자신이 대하는 내용들이 자신의 마음 안의 내용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실험방법도 반복해서 제시했다. 

그런데 그런 방안도 있지만, 
또 논사에 따라서는 다른 방안으로 이를 밝힐 수도 있다.  
따라서 『대승유식론』에서 제시하는 방안도 
함께 잘 살펴야 한다. 

그러나 막상 논서를 살피게 되면 
처음  어떤 주장이 어떤 입장의 누구의 주장이고 
어떤 주장이 그 상대의 주장인지 자체도 파악하기 힘들고 
내용이나 표현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된다. 

오늘 논서를 살피면 
지옥이나 아귀의 상태를 놓고 논의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도깨비가 뿔이 있다거나 없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다른 주장이 옳고 그름을 밝히고자 하게 되면 
대부분 문제되는 도깨비의 존재부터가 확실한지 문제되기에 
이런 주장은 문제가 있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본 논서에서 지옥이나 아귀의 사례를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옥이나 아귀가 있는지 없는지 자체가 
일반적으로 명료하지 않다고 보기에 이런 주장은 문제라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이는 세친 및 세친의 상대는 우선 
그간의 수행을 통해 이미 확립된 내용으로 이해하는 상태이기에 
이처럼 논의하게 된다고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일반적 입장에서는 사정이 그렇지 못하므로 
이런 논증 방안을 일반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사실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일체가 
모두 자신의 마음 안에 얻어지고 
마음 안에 머무는 내용이라는 것은 
현실에서 누구나 간단한 실험만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하튼 그런 입장에서 지금까지 그런 내용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논서 내용은 내용대로 
다양한 주제를 관련시켜 논의하므로 
한 문장 한 문장을 놓고 자세히 살피면서 조금 깊게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 가운데 일반인 입장에서도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정리해 제시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판본 정리부터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상태이므로 
이는 뒤로 미루기로 한다. 





● 유식무경

한편, 본 『대승유식론』 의 이해를 위해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일체가 모두 자신의 마음 안에 얻어지고 
마음 안에 머무는 내용이며 이들 안에는 외부대상이 없다는 사정을 
쉽게 살피는 방안을 간단히 
기초적으로 먼저 살피기로 한다. 

이들 내용은 비록 과거에 많이 반복했지만, 
본 논의에서 살피는 내용과 관련된 부분들을 찾아 링크를 일일히 걸기도 복잡하므로 
우선 간단하게 참조용 그림만 뽑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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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http://buddhism007.tistory.com/228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http://thegood007.tistory.com/1172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08pfl--image/8-vinyl-magic.jpg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감았다 뜰 때 무언가를 보게 되고 
다시 그것을 일정 부분으로 나누고 묶어 
어떤 부분이 자기의 몸이라거나 
영희라거나 꽃이나 바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승유식론』에서는
그런 감각현실이나 
그런 생각내용의 정체가 무언가에 대해 논의를 한다.


이 내용의 이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게 되는 그 일체의 내용이나 
또는 생각하게 되는 그 일체의 내용이  
자신의 마음에 이미 들어온 마음안 내용임부터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현실에서 간단히 파악하려면 
다음의 실험을 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img2-49] [그림] - 이하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 표현교정, 수정, 보완/ 문단 재배치 순서 정리 등 ] 작업중입니다. -

작업 시점 2563_1209_230956



1 자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가운데 
눈을 뜨는 순간 자신이 얻게 되는 내용을 일단 
마음에서 잘 붙잡아 두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제 그 내용이 눈을 감으면 사라지는데 
처음에 붙잡은 내용이 그 정체가 무엇인가부터 
일단 잘 음미해보는 것이다. 

1 앞과 같이 붙잡어 둔 내용을 일단 감각현실로 부르기로 하고 
그런 내용에 대해서 각 부분이 바위이고 꽃이고 영희고 
자신의 손발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내용은 관념분별내용이라고 또 부르기로 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다시 눈을 감으면 처음 얻은 감각현실이 사라진다고 할때 
자신이 눈을 감으면 그 상태에서 그렇게 눈을 뜰 때 
그런 내용을 얻게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눈을 감거나 뜨거나 관계없이 
무언가가 있다고 할 것인가 
이런 의문을 한 번 가져 보는 것이다. 

그런 경우 자신이 그 내용을 직접 얻지는 못하지만, 
그런 내용을 실재라고 표현해보는 것이다. 
이것도 알지브라 방식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전에서 이를 진여라고 보통 표현하는데 
그것은 일단 앞과 같은 과정으로 
그 정체를 찾아나갈 때 
여하튼 그것이 자신이 현실에서 감각하거나 생각한 내용과 관련해서 
그 비슷한 것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보통 생각하기에 
같을 여자를 사용해서 일단 그것을 찾는데 
그런 과정에서 그 참된 내용이 무언가를 문제삼을 때 
진여라고 표현하게 된다고 일단 이해해보기로 한다. 

한국 가수가운데 타타타 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가 있는데 
이 타타타라는 말이 현지 발음과는 조금 차이는 있다고 하지만, 
여하튼 그런 실재를 가리키는 범어 용어라는 것도 
참고로 이해하면 좋다고 본다. 


그래서 이렇게 일단 그 존재가 서로 성격이 조금씩 차이나고 
그 존재의 본 정체가 문제되는 내용들이 일단 구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들 상호간의 관계가 문제되는 것이다. 

여기서 자신이 눈을 뜰 때 그 순간 보게 되는 내용 일체가
그 정체가 무언가라고 물으면 

보통 이 내용을 자신의 외부에 있는 외부세계의 내용이고 
자신이 손을 뻗치면 만지게 되고 
그래서 촉감을 느끼거나 
냄새도 맡게 되므로 
자신의 손이 대하게 되는 대상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눈은 눈이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손으로 만지면 눈을 만질 수 있다고 할 때 
그 눈이 대하는 대상도 앞의 내용이라고 또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해 어떤 부분이 바위나 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렇게 생각하는 내용은 정신적인 내용이지만, 
자신이 눈을 떠서 보게 되는 그 내용 일체는 
그런 정신적 내용이 아닌 외부 세계이고 외부 대상이고 
그래서 정신과는 구분되는 것으로서 
물질이라는 표현으로 정신과 구분되는 것이라고 
표현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물리학자나 과학자나 대부분 이런 바탕에서 
세계는 물질과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지금 유식론에서 문제삼는 것은 
일단 현실에서 대부분 상식적으로 이렇게 이해하는 내용 전반이 
엉터리라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엉터리라면 
자신이 눈을 떠서 본 내용의 본 정체는 무엇이고 
앞에서 진여나 실재라고 제시한 내용과 
감각현실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가가 
또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유식론에서 주로 비판하는 주장들은 
사실은 이 두번째 논의와 주로 관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첫번째 일반적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내용은 
불교 내에서는 이미 기초적으로 엉터리라는 것이 
파악된 상태라고 할 수 있기에 
그것을 문제삼기 보다는 
그렇게 눈으로 보게 된 내용과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가 
오히려 주된 논의 주제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앞과 같은 바탕에 있던 입장은 
자신이 보거나 생각하는 내용이 
그대로 실재(진여)에도 그처럼 그대로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과연 그런가가 문제가 되고 
이에 관한 논의가 복잡하게 전개되는 사정이 있다. 


그런데 일단 이런 논의에 기초로서 
현실에서 자신이 세계의 모습이라고 보고 듣고 하는 
그 일체가 왜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 안에 들어와 있는 내용이라고 하게 되는가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실험방법은 간단하다. 

1 자신의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면서 
왜 자신은 자신의 이마나 눈썹을 보지 못할까 
이런 것을 먼저 의문을 가져 보기로 한다. 

1 그리고 두번째 그렇게 눈을 뜬 상태에서 
돗수가 다른 색안경을 구해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는 가운데 
모습이 조금도 변화하지 않는 부분을 찾아 본다. 

그런데 처음 그런 내용이 
자신이 자신의 외부에 독립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왜 자신이 안경을 하나 썼다 벗었다 하는데에 따라 
그것이 그렇게 다 변화할 수 있는가
자신이 초능력자인가 생각해본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왜 그렇게 일시에 변화하는가. 
그 답을 헤아려 본다. 

따라서 자신이 자신 외부에 독립해 있다고 본 그런 내용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한다. 


1 그 다음 실험은 위에 준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논서에서 소개되는 것처럼 
손가락을 눌러서 달이 2 개로 보일 때까지 연습한다. 
이제 그렇게 연습해 성공할 때 보이는 두번째 달 가운데 
어느 것이 외부의 달인가 이런 것을 
또 앞 실험에 준해서 생각해본다. 

1 이제 무인도에 자신이 고립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이 실험을 자신이 신뢰하는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행하게 하면서 
그가 실험을 하는 매 단계마다 보고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그 제 3 자의 실험과 보고를 음미해본다. 

제 3자가 눈을  감으면 무엇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고 
눈을 뜨면 보인다고 보고한다면, 
그 광경을 계속 지켜보는 이는 그 상황에서 
무슨 변화가 있다고 보는가. 

그런데 이 상황이 사실은 자신이 처음 
눈을 뜨고 감는 그 상황과 마찬가지라고 놓고 
다시 자신이 처음에 행한 실험의 의미를 
잘 헤아려 보는 활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경우, 자신과 상대의 두 입장을 
또 한번 바꾸어서 
다시 음미하는 것이 또 필요하다. 

즉 제 3 자가 자신이 눈을 감고 뜨고 하는 활동을 하고 
그 변화를 보고할 때는 
그 제 3 자는 자신을 어떻게 관찰하고 이해하겠는가를 
또 한번 뒤집어서 음미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에 관련된 그림이 결국 앞에 제시한 
여러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단 그런 실험을 통해서 

평소 자신이 눈을 떠서 대하는 그 일체는 
자신의 외부에 있는 내용이 아니고 
더욱이 자신의 감관이나 마음이 대하는 외부 대상도 아니고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정신과 구분되는 물질도 아니라는 것부터 
일단 잘 확인해야 한다. 

이 때 자신의 마음이 본 내용이 마음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인데 
이 내용과 마음의 관계가 무엇인가가 또 문제되지만, 
여하튼 자신이 대하는 감각현실이나 
또 이데 대해 생각하는 분별 내용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살필 때는 

먼저 그런 내용이 자신의 마음 외부에 별도로 있는 어떤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 이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 내용이다. 


그런데 거울에 비추인 어떤 의자나 꽃 모습을 놓고 
그것이 거울은 아닌데 
그러나 거울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가 
문제되면 무엇이라고 답하게 되는가를 일단 
또 생각해야 한다. 

거울에 비추인 꽃 모습이 원래 거울이 하는 기능을 하는 
거울 자체인가. 
거울 자체는 아닌데 그렇다고 거울을 떠나 
거울 밖에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지금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볼 때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도 
이런 문제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또 한편 
좀 더 복잡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앞과 같이 자신이 현실에서 눈을 떠 보는 그 일체의 내용과 
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그 일체의 내용이 
다 함께 자신의 정신 안에 있는 내용들임을 확인할 때 

그런 내용의 본 바탕이 된다고 할 실재는 
과연 이들 내용과는 무슨 관계인가가 이후 또 복잡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여하튼 이런 내용을 지금까지 대단히 많이 반복 제시했으므로 
대강 여기서는 이 정도만 제시한다. 

그런데 이 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하면 
현실에서 대단히 집착을 갖고 실답게 여기면서 
대하는 그 일체가 
사실은 전도망상에 바탕해 집착을 갖고 대하는 내용들이고 

현실에서 그에 대해 그런 집착을 갖고 임하면 
그런 전제에서 그런 번뇌에 묶여 사역을 당하는 가운데 
대단히 심각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되므로 

빠른 시일내에 그런 자세를 시정하고 
현실에서 임하는 자세 자체를 
기존 방안과는 달리해서 
수행의 방안으로 임해야 
그런 생사고통에 묶인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 도달하기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논의가 
오늘 살핀 것과 같은 논의다. 




그래서 실재를 놓고 따지면 
현실에서 보는 어떤 갑이란 사람이나 A라는 어떤 물건은 
그런 실재와는 무관하다. 

그런 실재는 그처럼 현실에서 분별해 나누는 
이런 것 저런 것에 무관한 것이다. 
이렇게 제시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그 내용을 직접 파악하기 힘들다고 보는 
본바탕인 실재를 붙잡고 고민하기 보다는 
현실에서 관계가 문제되는 두 내용을 모두 다 얻는다고 보는 
꿈과 현실의 내용을 놓고 
이 둘 사이의 관계를 먼저 살피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침대에서 누워서 잠을 잤는데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착륙해보니 
황금이 가득한 동굴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런데 무인도라서 여기에서는 황금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뗏목을 만들어 황금을 싣고 나오다 
중간에 바다에 다 황금을 빠뜨리고 간신히 살아나오는 
꿈을 꾸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가운데 꿈을 깨나서침대를 보니 
꿈에서 본 바다나 황금이나 무인도가 다 없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꿈에서 본 황금을 얻는 것이 대단히 필요하다고 보고 
다시 방안의 침대에서 그것을 찾아나선다고 해보자. 
그래서 이제 깨어서 보게 되는 방과 침대에서 
어느 부분이 꿈에서 본 무인도였고 
또 어느 부분이 바다였는가. 

꿈에서 본 내용과 깨어서 보는 내용들을 대조해가면서 
그 상호 관계를 상호간에 비례관계를 통해서 찾아나가면 
혹시 자신이 꿈에서 빠뜨린 황금도  방 안에서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또 방안의 그에 해당하는 지점을 잘 변경시키면 
다음 꿈에서부터는 그 전 꿈에서 잃어버린 황금을 
다시 잘 찾아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한 5 분간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일반적으로 다음처럼 말하게 된다. 

꿈 내용은 아무리 꿈 꿀때는 생생했다고 해도 
실답지 않은 것이므로 
현실에서나 이후의 꿈에서 그렇게 
찾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이 관계를 잘 이해하고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들의 본 정체를 잘 파악하기 위해서 

실재와 감각현실 
실재와 관념분별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이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살피는 것이 문제될 경우 

그 관계가 결국 
앞에서 제시한 현실과 꿈의 관계와 
그 사정이 같음을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과 꿈의 관계는 잘 이해해도 
위 부분에서는 대부분 그렇게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이 문제가 쉽지 않고 
바로 그 사정 때문에 
현실에서 대하는 자신의 모습이나 
자신의 것 
자신의 생명, 수명, 등등에 대해서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기가 쉽지 않다. 

또 그런 사정으로 
이 집착으로 인해 
지옥 아귀 축생세계로 묶여 끌여 들어가지 않기가 
쉽지 않다. 

마치 포로를 생포해 끌고 갈때 
손이나 발을 철사 하나로 묶어서 
처형장으로 끌고 간다고 해도 
사람들이 손이나 발을 스스로 끊고 도망가기가 쉽지 않은 것과 같다. 
그 전후 사정을 알아도 실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사정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거의 99 % 그런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유식론에서 그런 사정을 
자세히 논의하는 사정이 있다. 

문제는 이런 논의는 
대단히 살피기가 어렵다. 

오늘 이 논서를 살피는 가운데 
갑을간의 대립적인 입장에서 논의가 전개될 때 
그것을 구분해주는 것 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진제스님이 번역한 『대승유식론』과는 조금 다른 판본
현장 스님의 『유식이십론』의 번역본에   
주석이 비교적 풍부하게 달려 있음을 보고 참조하게 된다. 

일단 『유식이십론』을 살피면서 
이후에 진제스님의 『대승유식론』의 내용을 
대조해서 좀 더 시간을 두고 다시 살피고 
좀 더 정리를 해서 살피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런데 수행자 입장에서는 
이런 논서를 대할 때 
반드시 논서의 저자와 공감하고 
논서의 저자의 대변인으로서 
이런 논서를 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정을 살피면 
이 논서의 저자 자신이 
그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세친이 
유부와 경량부 유식학파 이런 3 입장을 
대표하는 논사라고 제시되는데 
이미 이들 각 학파의 입장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서로 일치하는 입장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이 어떤 논서를 어떤 계기로 대했다고 해서 
그 논서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고 대하면 
다른 논서를 대할 때는 곤란해진다. 

그런데 그가운데 어떤 특정 논서를 먼저 대했다면 
이제 그와 다른 입장의 주장을 제시하는 논서를 대하게 될 때마다
곤란해진다. 
그래서 논서는 본래 그렇게 갑론을박 하는 상태에서 
해당 주제를 좀 자세히 논의해보고 살펴보자는 입장으로 대하는 것이 낫다. 

미리 수행자가 자신이 어떤 계기로 대하게 된 논서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편견을 갖고 대하면 
오히려 곤란하다.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그렇지 않고 
일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일단 개방적인 자세를 취한 가운데 
내용을 살피는 것이 오히려 낫다. 

하루에 너무 많이 정리를 해서 시간이 다 지나갔는데 
정리만 했지 정작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사정만 먼저 살피고 마친다. 






◆vnka1424

◈Lab value 불기2561/12/09/토/16:52




 



○ [pt op tr]  mus0fl--Charles Aznavour - On Ne Sait Jamais.lrc 

○ [pt op tr]Uhlan_avec_son_cheval_-_Wojciech_Kossak,_1917




♥ 잡담 ♥구류손여래와 어일피불어일불어피차

과거 7 불 가운데 
네 번째 현겁의 첫번째 부처님으로 
구류손여래님이 계신다. 

과거 7 불은 
과거세에 일곱 부처님만 계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 무량한 부처님을 나열하는 대신 
7 부처님을 대표로 제시하는 의미다. 

7 이란 숫자가 그런 의미가 있는지 몰라도 
동방에 부처님을 나열할 때도 동방의 7 부처님을 대표로 제시하는데 
이것도 같은 취지라고 본다. 
오늘 글 제목을 구류손 여래와 어일피불어일불어피차 
라고 제목을 단 것은 
『대승유식론』이 뽑혀 살피는 가운데 
이런 내용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img2-49] [그림] - 이하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 표현교정, 수정, 보완/ 문단 재배치 순서 정리 등 ] 작업중입니다. -

작업 시점 2563_1209_173301


이전에서 진학문제나 투자 문제와 관련해서 
소원의 성취 방안을 살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일반적으로 
자신이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들이 
하나같이 실답지 않고 
자신의 소원이 100% 성취되었다고 하는 하나의 단면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또 그런 내용을 성취하는 자신도 얻을 수 없다는 등을 제시하면 
대부분 상당히 의아하게 여기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이도 
실질적으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상태이기에 
거의 일반인과 엇비슷한 경계선에서 현실을 대하는 가운데 
이런 논의를 함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구류손부처님의 명호를 보다보면 
한자로 구류손(拘留孫)이라고 표기하는데 
구류(拘留)란 법률용어로 
30 일 미만 교도소나 경찰서 유치장에 가두어 두는 
형벌을 의미하기에 
손자를 구류에 처하는 부처님 이런 연상이 된다. 

그런데 구류손 여래님이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기셨다고 한다. 


몸이 실체가 없음을 보는 것이 부처님의 봄이요,

마음이 허깨비와 같음을 깨닫는 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이네. 

몸과 마음의 본성이 공한 줄 안다면 이 사람이 부처와 무엇이 다른가! 


見身無實是佛見 了心如幻是佛了 

견신무실시불견 료심여환시불료 


了得身心本性空 斯人與佛何殊別 

료득신심본성공 사인여불하수별 



게송 가운데 何殊別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문장으로 끝나면 
초보 수행자 입장에서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당황하게 된다. 

방법이 있다. 
다시 여쭤 보는 것이다. 

만일 그것만으로 모두 다 같은 부처님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7 부처님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그런 상태가 부처님과 다르다면 
세상에 왜 7 부처님 그리고 심지어 
무량한 부처님들이 나열될 수 있겠는가. 

여하튼 의문문으로 끝나는 게송은 
그 의문문에 대해서 
그 답이 무엇일까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일피불어일불어피차
라는 내용은 
본래 이 - 어일피불어일불어피차 
이렇게 같이 붙여 외어야 효용이 있는데 
그러나 단기기억의 길이의 폭이 좁은 본인 입장에서는 
외우기 힘든 게송이다. 

4 글자 5 글자 이정도가 짧게 외우는데 편한데 
그렇게 외우면 끊기는 부분마다 
다시 다음 부분을 이어나가기가 힘이 들기에 
한번에 되도록 많이 묶어서 외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구슬이 1000 개정도가 떨어져 있을 때 
이것이 몇개인가를 세보라고 할 때 
1 개씩 세는 경우가 있고 
2 개씩 묶어서 세는 경우가 있는데 
한번에 10 개씩 묶어서 세면 대단히 빨리 셀 수 있는 것과 같다. 

노력하면 한번에 100 개씩 1000 개씩 묶어서 
셀 수도 있다고 이론적으로 제시하지만, 
현실적으로 10 개도 힘들다. 

3 개나 5 개씩 묶어서 세는 것은 그래도 
연습을 많이 하면 되는데 
여하튼 이처럼 한번에 되도록 많이 묶어 다니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於一彼 不 於 一不於 彼此

이런 게송은 화엄경에서 나오는 게송이다. 

본인이 이렇게 제시하면 
화엄경을 많이 본 분은 
이런 게송은 없다고 여기게 쉽다. 
물론 문제가 되면
화엄경 판본이 대단히 많아서 
용궁에 있는 판본까지 참조해서 
문제를 살펴야 한다고 보지만, 
본인이 제시하는 게송은 
맹구(눈먼 거북이)가 가로로 된 신문 제목을 세로로 읽기 방법으로 뽑아낸 것처럼
뽑아낸 게송이어서 고려대장경 판본에 분명 있지만, 떳떳하게 제시하기는 곤란하다. 

여하튼 
於一彼不 於 一不於彼此
어일피불어  일불어피차 

이 게송의 뜻이 무언가.

우선 여기서 일이라고 표현된 것은 
본래 모든 현상의 본 바탕이 되는 실재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놓고 
피차(彼此)는 현상에서 분별을 통해서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분별하고 나누는 그런 내용을 
가리킨다고 이해하기로 하자.

그런 가운데 
실재와 그런 현상간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제시하는 내용으로 이해하면 
조금 감상이 쉬울 수 있다. 



일단 쉬기로 한다. 



 



○ [pt op tr]  mus0fl--Adamo - Elle.lrc 


☎잡담☎디스크 사용모드 

오늘 조금 정확히 표현하면 날짜 경계선을 지났기에 어제 디스크 정리 체계를 거의 79% 마쳤다. 

디스크 이용 기본 모드를 전날까지는 대략 25 개 정도가 되리라 보았는데 
작업을 하다보니 35 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는 기본 모드가 그렇고 
사용자별로 무량하게 달리 적용할 수 있기에 
무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개별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모드만 사용하면 되므로 별 관계가 없다. 

그리고 사용 모드에 따라서 버튼을 누르면 
작동되게 되는 메뉴를 윈도우 트레이 박스에 넣는데 성공했다. 
사용할 때 트레이 박스를 열어 클릭하면 
윈도우창 아래에서 보통 보게 되는 막대형으로 생긴 버튼바가 나타나서 
그 안의 버튼을 누르면 사용자별로 자신의 사진 슬라이드쇼도 열람하고 
필요한 자료도 보고 
또 자신이 주로 듣는 범주의 곡도 청취하고 
기타 등등 자신이 평소 주로 하는 작업을 
쉽게 행할 수 있는 방식이다. 

기본모드가 많이 나누어지게 된 것은 
주로 사진 슬라이드쇼를 감상할 때 
각 개인별로 설정사항이 많이 차이나기 때문이다. 

또 한편 문서작업을 할 때 
참고하는 자료 등이 다 제각각 다르기에 
또 그런 점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본인 경우 
핫키를 누르면 
오늘 살필 경전이 먼저 뽑혀 나오고 
관련 사전 자료 창도 열리고 
그날 정리했으면 하는 사진 폴더 창도 열리고 
그렇게 해서 대략 한 15 가지 정도되는 창이 열린다. 

그런데 doctr 님 경우는 
주식차트창 
주식종목별창 
코인거래소창 
외국 환율시세창 
외국 코인 거래소창 
그리고 사서삼경의 임의 페이지 
이런 식으로 기본 창이 여려개 열리게 되는 차이가 있다. 

물론 자료창이 많이 열린다고 해서 
공부를 반드시 잘 하거나 
투자를 반드시 잘 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필요한 자료를 참조하는데 
매번 이용이 불편하면 곤란하기에 
매번 반복되는 작업을 버튼으로 압축시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추후 개별 사용자마다 
자신이 원하는 자료창이 열리고 
또 그에 따라 필요한 문서작성용 스크립트도 또 따로 필요하기에 
이런 사정으로 기본 모드가 대단히 다량하게 나뉘어진다. 

mun 님의 경우에는 버튼을 누르면 
이상한 사이트로 연결되도록 한 것 같은데 
이런 경우도 지원해주지 않으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내는데 상당히 지장이 있다. 

구축이란 단어는 한자를 어떻게 적는가에 따라 두가지 상반된 의미가 있다. 
기본적으로 쫒아내고 몰아낸다는 말도 되는데 
쌓아서 시설을 만들어낸다는 말도 된다. 

일찍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내용을 놓고 
mun 님이 두가지 내용이 다 타당하다면서 
내용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런데 현실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사용하는 편리한 문명도구는 
어떻게 보면 그런 과정으로 대단히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그래서 대단히 저렴하게 공급되는 사정도 있다. 
이는 이런 보급이 양질의 건전한 여가 활동을 몰아내는 구축을 일부 행하는 측면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다시 양 측면에서 또다른 것을 세우는 기능도 갖는다. 
우선 이에 대한 반응으로 양질의 건전한 여가활동은 또 다른 특별한 형태로 특화 발전하게 되고 
또 이렇게 환경이 바뀐 바탕에서 또 다른 내용이 설립된다. 
쉽게 말해 pc 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는 청소년들이 많기에 
컴퓨터나 하드디스크가 이처럼 대단히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그런 바탕에서 현재 한글대장경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환경이 바뀌는 것과 같다. 

그래서 mun 님 방식을 한 측면만 놓고 보면 적극권장할 수 없지만, 
사용자가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도리도 없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이런 바탕에서 수행에 더 정진하게 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이론상 어떤 학생이 공부를 잘하게 한다고 할 때 
24 시간 학습만 계속 행하게 하고 
단 한순간도 쉬거나 오락을 하지 못하게 하면 정말 공부를 잘 하게 될 것 같지만, 
그런 경우는 오히려 대단히 불행한 비극적인 상태가 곧바로 되기 쉽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3783#1424
sfed--대승유식론_K0610_T1589.txt ☞대승유식
sfd8--불교경율논코너sp_2561_12.txt ☞◆vnka1424
불기2561-12-09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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