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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54-08-19_삼구족경우바제사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07. 4. 4. 06:31



®

『삼구족경우바제사』
K0568 
T1534

삼구족경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삼구족경우바제사_K0568_T1534 핵심요약



♣0568-001♧
『삼구족경우바제사』

삼구족경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삼구족경우파제사


 

삼구족경우바제사

[석론(釋論)은 있으나 경본(經本)은 없다]



원위(元魏) 비목지선(毘目智仙) 등 한역

김 진철 번역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바가바(婆伽婆)께서는 비사리(毘舍離)의 대림정사(大林精舍)에서
대비구승(大比丘僧)과 대보살(大菩薩) 대중과 함께 계셨다.



■ 그때 세존께서 무구위덕대역사(無垢威德大力士)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은 세 가지를 구족하여야 하느니라. 


■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 보시의 구족이요, 

둘째 계의 구족이요, 

셋째 들음의 구족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이 세 가지를 구족해야 하는 것이니라.”


세존께서 설법을 마치자
무구위덕대역사가 듣고서 마음으로 환희하였으며, 

또 저 비구와 모든 보살이 세존의 설법을 듣고 모두 찬탄하였다.




이와 같은 보살의 세 가지 구족을 내가 지금 해석하겠다. 


무슨 뜻인가? 

저 때[垢] 없이 뛰어남과 한량없음을 구족하고
부지런한 정진을 올바로 내어서 상호로 몸을 장엄하신, 

백천의 수많은 햇빛보다 밝은 광명이신 세존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한량없는 종자를 구족하시어

몸을 출현하시니 삼계의 주인이며

으뜸으로 뛰어난 상호가 모인 것은

태양보다 뛰어난 모니(牟尼)이시니

누구를 이익하게 하기 위하여

이 경을 말씀하시는가?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비사리 대림정사에 노니시며, 

무슨 뜻으로 이름을 세존이라 하시며, 

무슨 까닭으로 세존께서는 비사리 대림정사에 노니시고 다른 곳은 가시지 않습니까? 

선남자들을 위하여 이 보살의 세 가지 구족을 말씀하소서. 

무슨 인연으로 이와 같이 세 가지 구족을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말씀하십니까? 


또 어찌하여 보살은 오직 이와 같은 세 가지를 구족하여야 하며, 

마땅히 또 다른 법을 구족할 것이 있습니까? 


또 이 세 가지를 말씀하신다면, 

대해혜경(大海慧經)과는 어찌하여 서로 어긋납니까? 


거기에서는 보살은 40가지를 구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보살은 보시를 구족하고
더 나아가 보살은 방편을 구족하여야 한다고 하셨고, 


『미륵해탈경(彌勒解脫經)』에서는
“선남자야, 보살은 한량없는 구족을 만족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또 ‘대승경(大乘經)’에서는
세존께서 보살을 위하여 한량없는 구족을 말씀하셨는데, 

거기에서 말씀하신 것이 어찌하여 서로 다릅니까? 




또다시 성자(聖者) 용수(龍樹)는 게송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정한 도 모두 구족하심을

다른 이는 말하지 못하지만

부처님의 무량한 지혜라서

구족함을 능히 말씀하시도다.


부처님의 가없는 공덕

이 선근을 구족하셨으니

보리(菩提)도 이와 같아서

한량없는 구족 있도다.


■ 다른 곳에서 보살이 무량한 구족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면, 

이 수다라와는 어찌하여 서로 어긋납니까? 


선남자란 바로 종성(種姓)의 뜻인데, 

무슨 까닭으로 보살을 이름하여 종성이라 합니까? 

이 뜻을 자세히 말씀하여 주소서.



무슨 뜻으로 이름을 구족이라 하며, 

시구족(施具足)은 무슨 까닭으로 시(施)라 이름하고 몇 가지 시가 있으며, 

계구족(戒具足)은 무슨 까닭으로 계라고 이름하고 몇 가지 계가 있으며, 

문구족(聞具足)은 무슨 까닭으로 문(聞)이라 이름하며 몇 가지 문이 있습니까? 

또 시계(施戒)의 두 가지 구족[二具足]은 누(漏)이고 문구족은 곧 누가 아닌데[不漏], 

무슨 인연으로 누와 누가 아닌[漏不漏] 두 가지 구족으로써
일체지(一切智)의 새지 않는[不漏] 법을 얻는지 그 뜻을 자세히 말씀하여 주소서.


또 시구족(施具足)은 몇 가지 인연이고, 

계구족, 

문구족은 몇 가지 인연입니까? 



■ 또 세존께서는 세 가지 구족을 말씀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처음에는 시(施), 

중간에는 계(戒), 

끝에는 문(聞)을 말씀하셨는지 그 뜻을 자세히 말씀하여 주소서. 

요긴한 것을 말씀하시어 세존께서는 나타내 보여 주소서. 


무엇을 시구족이라 하고, 

무엇을 계구족이라 하며, 

무엇을 문구족이라 합니까?




“이것은 모두 어려운 것이니, 

내가 지금 해석하리라. 

무슨 까닭으로 세존께서는 시(施)ㆍ계(戒)ㆍ문(聞) 등
한량없고 때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보시를 구족하고, 

몸은 허공과 같이 때 없는 법에 머물러서 이 경을 말씀하셨는지, 

그 뜻을 지금 말하리라.”





게송으로 말하겠다.


제일의 시(施)ㆍ계(戒)ㆍ문(聞)

고요하고 바르게 고행하는 몸

허공같이 뛰어난 법 지니시고

훌륭한 광명 구족하시어

사람과 하늘이 성자께 예배하며

세간 제일의 각자(覺者)이시다.

세 가지 고통[三苦] 제하여 더러움 없는데

무슨 뜻으로 이 경 말씀하십니까?


지금 이 뜻을 말하여 보리심을 발해서 보살 업(業)의 상응을 배우고, 

모든 지혜로운 사람을 요익하게 하기 위하여 이 뜻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보살이 이미 보리심을 발하고 나서는 차례로 시(施) 등 세 가지를 구족하여야 하나니, 

이 보리의 업은 오직 발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는 것이니라. 



게송으로 말하겠다.


보리심 발한다면

중생의 고뇌가 애처로워서

그 착한 업에 상응하여

부처님께서 이 뛰어난 경 말씀하셨느니라.


또 다시 무슨 뜻으로 부처님께서는 이 경을 말씀하셨는가? 


겁 많고 연약한 자를 위하여 겁 많고 연약함을 없애기 위함이요, 

저 처음 보살행을 하는 이가 한량없는 갖가지 법을 듣고서 닦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그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에 겁 많고 연약한 마음을 내자, 

부처님께서 그 뜻을 아시고
 겁 많고 연약함을 없애어 그를 요익하게 하려는 까닭으로 이 경을 말씀하시면서

“선남자야, 

보살은 오직 세 가지를 구족할 뿐이다”라고 하시고는
세존께서 말로 나타내어
“너희들은 겁 많거나 연약해서는 안 된다. 

만약 내가 과거에 헤아릴 수 없는 보살의 구족에 대하여
자세히 말한 것을 중요한 것만 말하면
세 가지 구족으로 포섭된다”라고 하셨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만약 모든 불자가

무량겁 동안 경을 두려워하고

훌륭한 법에 대해 겁내고 나약해도

오랜 뒤에는 보리를 얻으리.


여래의 자연지(自然智)로

그를 요익하게 하고 편안히 위로하나니

이 때문에 으뜸가는 각자께서

이 수다라를 말씀하셨느니라.



또 다시 어떤 뜻으로 부처님께서는 이 경을 말씀하시는가? 


보살이 일체지(一切智)와 제일의 뛰어난 집[第一勝舍]에 나아감을 얻고자 하면, 

자기를 돕는 자량(資糧)의 승(乘)과 도(道)의 방편으로 이 뜻을 나타내 보여야 하니, 

대도사(大導師)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너희들이 일체지와 제일의 뛰어난 집에 나아감을 얻고자 하면, 

모름지기 도의 자량으로 보시의 구족[施具足]을 취하여야 하며, 


만약 타고 가는 것[乘]을 구하고자 하면
계행의 구족[戒具足]을 취하여야 하고, 

도의 방편을 알려면 들음의 구족[聞具足]을 취하여야 한다”고 하시어
이 뜻을 나타내 보였느니라.




게송으로 말하겠다.


불자가 만약 일체지와

뛰어난 집에 나아가려면

그 사람은 기꺼이 도의 자량 등의

깨달음에 상응하여야 하나니

세존께서 저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이 경을 말씀하셨느니라.



또 다시 어떤 뜻으로 부처님께서는 이 경을 말씀하셨는가? 

보살이 경계와 지혜와 태어남의 세 가지를 구족하기를 희망하면, 

그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의 이익됨을 깨달아야 한다. 


세존께서 이미 나타내 보이셨으니, 

만약 너희들이 경계와 지혜와 태어남을 얻고자 하면
원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세 가지의 구족을 닦아 채워야 하나니, 

만약 베푸는 것을 구족하면 마땅히 경계를 얻고, 

만약 계를 구족하면 너희들은 태어남을 잘 얻고, 

만약 들음을 구족하면 너희들은 지혜를 얻을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보살이 만약

훌륭하고 미묘한 경계를 희망하고

열등하지 않은 훌륭한 탄생을 바라고

으뜸가는 증상(增上)의 지혜를 바란다면

인(因)의 이익됨을 나타내 보이시려고

세존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네.


또다시 어떤 뜻으로 이 경을 말씀하셨는가? 

보살이 다섯 가지 두려움 건너기를 원하면, 

그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因)의 이익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살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不活畏]이요, 

둘째 나쁜 이름을 들을까 하는 두려움[惡名畏]이요, 

셋째 죽음의 두려움[死畏]이요, 

넷째 악도에 떨어질까 하는 두려움[惡道畏]이요, 

다섯째 대중과 위덕 있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大衆威德畏]이니, 

세존께서 이미 보이심이라. 


만약 너희들이 다섯 가지 두려움을 넘으려면
세 가지의 구족을 닦아 채워야 하느니라. 


만약 베푸는 것을 구족하면
살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과 나쁜 이름을 들을까 하는 두려움을 여읠 것이요, 

만약 계를 구족하면 죽음의 두려움, 

악도의 두려움을 여읠 것이요, 

만약 들음을 구족하면 대중과 위덕 있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여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으뜸가는 선서자(善逝子)로서

갖가지 두려움 여의려면

지혜로운 이는 깨달아 보이시네,

으뜸가는 광대하고 뛰어난 인(因)을.

이 때문에 모니(牟尼) 존자께서는

이 경을 말씀하셨네.



또다시 어떤 뜻으로 부처님께서는 이 경을 말씀하셨는가? 


저 의심하는 이를 위하여 의심을 끊기 위한 까닭이다. 

저 대중 가운데는
 사람ㆍ하늘ㆍ아수라ㆍ용(龍)ㆍ야차(夜叉)ㆍ구반다(鳩槃茶) 등이 있었는데, 

세존의 뛰어난 신(身)ㆍ구(口)ㆍ의(意)의 불가사의함을 듣고 이와 같은 마음을 내었다.

“세존께서는 몇 가지를 구족하셨기에
이 세 가지 불가사의를 얻으셨는지 알지 못하겠다.”



이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런 의심을 끊기 위하여 이 경을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의 수행은 세 가지를 구족하여야 한다. 

이것을 이미 세존께서는
지난날 보리심을 내셔서 세 가지를 구족하고 원만하게 하셨기 때문에
세 가지 불가사의함을 얻었느니라.”



게송으로 말하겠다.


만약 사람ㆍ하늘ㆍ아수라

용ㆍ구반다 등이

부처님의 뛰어난 공덕 들으면

그 인(因)을 이해하지 못할 터이니

모니(牟尼)께서 그 의심 끊어 주려고

이 경을 말씀하셨다.




또 다시 어떤 뜻으로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는가? 

보살이 여래의 종성(種姓)에 태어나서 법의 종성 가운데 상응하여 나타내 보인 것이니, 

세존께서 이미 보이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바라문의 성(姓)이나
찰제리의 성으로 태어나면, 

이와 같은 사람은 법성(法性)과 상응하고, 

만약 법의 종성[法種]을 여의면 이는 낮은 것[卑劣]이다. 



그 사람이 만약 여래의 종성(種姓)에 태어나면 법성을 여의지 않은 것이다. 

만약 법성인 여래의 종성에 태어나면 베푸는 것 등의 세 가지를 원만하게 구족하였음이요, 

만약 만족하지 않다면 이것은 비열함이다. 


이 때문에 여래께서 이와 같이 가르쳐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구족하여 만족하면 후생에는 천하지 않을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만약 부처님[善逝]의 족성으로 태어나

허물을 여의고 크게 부유하고 즐거우면

하늘 사람의 예찬을 받으리니

모니왕(牟尼王)께서는 그로 하여금

스스로 법의 뜻을 여의지 않게 하려고

이 무구경(無垢經)을 말씀하셨다.



또 다시 어떤 뜻으로 부처님께서는 이 경을 말씀하셨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스스로 이른바 대승의 제일 견고함을 행하면 이는 큰 중생이지만, 

오직 입으로만 가르쳐 말해서
세간의 모든 중생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보살행을 배우고 모든 공덕을 닦아도 진실함이 없다. 



이와 같은 사람은 말대로 상응하고 행(行)대로 상응해야 이익이 있느니라. 

이 때문에 여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일체행 닦는 것을 알게 하셨다. 


여래이신 세존께서는 그 사람에게 설하셨다.

이 보리는 말로써만 얻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수많은 고행을 하여야만 성취하느니라. 


나는 어떻게 얻었는가? 

나는 지난날 보리의 일체행의 지혜를 성취하기 위하여 모든 중생이 이롭기를 희망하고, 

그 태어난 곳마다 갖가지 고행을 하고 갖가지를 버렸으니, 

말하자면 갖가지 맛 좋은 음식과 갖가지 말과 수레와 앉고 눕고 하는 등의 처소와 동산과 연못, 

기쁘게 노는 곳과 큰 집, 

논밭[田業]과 고을과 마을, 

보배로운 장신구와 상투의 진주[冠髻眞珠] 및 비유리(毘琉璃:청색), 

금과 영락(瓔珞)의 여러 가지 보배와 금강(金剛)의 모든 장엄구와, 

흰 코끼리ㆍ소ㆍ말ㆍ물소ㆍ수레와 가마ㆍ장엄구 등과 타고 다니는 여러 소나 말 등과 시종하는 종 등을 다 버리고 베풀었다.


과거 옛날 옛적에 내가 당시 일체장엄견왕(一切莊嚴見王)의 몸이 되었을 때
성읍(城邑)과 취락(聚落)ㆍ국토ㆍ산천ㆍ바닷가의 대지(大地) 및
인민과 모든 수풀과 갖가지 종자를 심은 것과
모든 약초와 한량없는 꽃과 과일과 곱고 깨끗한 묘한 보배며 갖가지 장엄과 조와 콩 등
창고에 가득한 재물과 보배를 빈궁한 이에게 보시하였다.


또다시 본래 선아 동자(善牙童子)였을 때, 

나는 그때 사랑하는 처자를 베풀어 주는데 인색하지 아니하였다. 


또다시 지난 옛날 선왕(善王)이 되었을 때, 

궁전에 가득한 궁녀 만 명을 베풀어 주는데 인색하지 아니하였다.


또다시 지난날 보계왕(寶髻王)이 되었을 때, 

바로 염부제(閻浮提) 위에서 몸의 보계(寶髻)인 미묘하게 장엄한 관을 벗어서 보시함에 인색하지 않았다.


또 다시 지난날 가시왕(迦施王)이 되었을 때는
윗몸의 아끼는 부분[上身愛分]을 베풂에 인색하지 않았고, 


또다시 지난날 무원승왕(無怨勝王)이 되었을 때는
몸과 귀ㆍ코를 베풀기에 인색하지 않았고, 


다시 지난날 월광왕(月光王)이 되었을 때는
푸른 연꽃같이 티 없고 평평하고 넓고 길고 좋은 눈을 연꽃 같은 얼굴에서
내 손으로 뽑아내어 베풀어 주었고, 


다시 지난 옛날 화덕왕(華德王)이 되었을 때는
희고 깨끗하고 때가 없어서
마치 흰 눈과 군타(君陀)꽃과 젖빛 같은 이[齒鬘]를 뽑아 보시함에 인색하지 않았다. 

또다시 지난날 선면왕(善面王)이 되었을 때에 넓고 아름답고 길고 엷으며, 

청정하고 때 없는 연꽃잎 같은 입 안의 혀뿌리를 자신의 손으로 뽑아 베풀었으며, 


또 지난날 급구자왕(給求者王)이 되었을 때
일체 세간의 빈궁한 걸인으로서 자신을 기억하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모든 구슬과 금 등의 보배로 교묘히 자신의 보배 손을 만들어 가지고 베풀었으며, 


또 지난날 지족왕(知足王)이 되었을 때 손과 발을 보시하였으며, 

또 옛적에 일찍이 광금염부제왕(光金閻浮提王)이 되었을 때 손과 발가락을 가지고 베풀었으며, 

또 옛적 구선어대부왕(求善語大富王)이 되었을 때
법을 사랑하는 까닭에 손톱ㆍ발톱을 가지고 자신의 살을 도려내어 보시하였으며, 



또 옛적 시일체요익왕자(示一切饒益王子)가 되었을 때 스스로 몸의 피를 병든 사람에게 주었고, 

또 옛적 이익선왕(利益仙王)이 되었을 때 몸의 살을 베고 발을 잘라서 보시하였고, 

또 지난날 거소마왕(居素摩王)의 동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몸의 뼈를 부수어 골수를 보시하였고, 

또 옛적에 니라나동자(尼囉拏童子)가 되었을 때는 심장[心]을 보시하였고, 


또 지난날 항악왕(降惡王)이 되었을 때는
대장ㆍ소장ㆍ젖ㆍ간ㆍ폐ㆍ태[胞]ㆍ콩팥ㆍ위(胃)ㆍ쓸개ㆍ지라ㆍ지방ㆍ두뇌를 가지고 보시하였으며, 

또 지난날 정장왕(淨藏王)이 되었을 때는 몸의 껍질을 보시하였고, 

또 지난번 금협록왕(金脅鹿王)이 되었을 때도 몸의 껍질을 베풀었으며, 

또 지난날 광명왕(光明王)이 되었을 때 모든 몸의 부분을 조각조각 나누어 베풀어 주었으며, 


또 지난날 성취일체요익도주(成就一切饒益導主)가 되었을 때 모든 아끼는 물건을 다 베풀어 주었고, 

죽임을 당하게 된 자를 대신하여 몸을 버려서 그를 구제하여 주었으며, 

또 지난 옛적 종이 되었을 때는 자신의 몸을 버려 모든 중생에게 주었으며, 

또 지난 옛적 구선어대부왕(求善語大富王)이 되었을 때는 높이가 천 주(千肘)나 되는 산 위에서 큰 불 구덩이에 몸을 던졌으니, 

훌륭한 법의 구절의 설법을 듣는 인연을 맺기 위한 까닭이었다.

또다시 지난날 일체시왕(一切施王)이 되었을 때는, 

두려움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나에게 온 자에게 몸의 살을 다 베어서 저울을 써서 베풀어 주었으며, 

또 지난날 불린왕(不悋王)이 되었을 때는 죽임을 당하게 된 자에게 스스로 자기 몸을 버려서 구제하여 이롭게 하였으며, 

또 지난날 대비 장자(大悲長者)가 되었을 때는 성 안에 들어가 옥에 들어 있는 자를 놓아 풀어 주었으며, 

또 옛적 상왕(象王)이 되었을 때는 자신의 몸으로 다리를 만들어 모든 중생을 건너게 해주었으며, 

또 지난날 어구구타(魚龜瞿陀)가 되었을 때는 모든 고통을 받았으나 인내하였으며, 


또 지난날 사자록왕(師子鹿王)이 되었을 때는
힘줄과 핏줄을 아끼지 않고 대중을 구제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원수의 생명을 구원하였으며, 


또 지난날 비심(悲心) 선인이 되었을 때는 자신의 팔을 태워 길 잃은 중생에게 길을 밝혀 주었으며, 

또 지난날 설인(說忍) 선인이 되었을 때는 내 몸을 잘게 저며 원수를 구하였으며, 



또 지난날 불휴식견등주 보살(不休息堅等住菩薩)이 되었을 때는
남이 집에 들어와서 내 처를 엄습하는데
자재할 힘이 있었지만 능히 참아서 성내지 않았느니라.


또다시 지난날 곰의 몸이 되었을 때는
생명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이 내가 있는 곳에 오면
내가 모두 편안하게 위로하여 스스로 사랑하는 몸을 버렸느니라. 


또 옛적에 상선(上仙)이 되었을 때는
마음이 정법을 사랑해도
정법이 부족하고 없어서 법에 목마르고, 

정법을 사랑한 까닭에 몸을 쪼개어서 껍질을 취하고
피를 취하고 뼈를 취하여 법의 말씀을 글로 썼고, 


또 지난 옛날 왕의 동자(童子)가 되었을 때는
병든 이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베풀어서 제일 구하기 어려운 약을 만들어 그에게 베풀어 주었으며, 

또 지난날 승복덕왕(勝福德王)이 되었을 때는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재물을 다 썼고, 

원수의 집에 가까이 가서 내 몸을 스스로 결박하여 남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였으며, 


또 지난날 마나바(摩那婆:儒童)가 되어 깊은 산 속에 있을 때는
호랑이가 굶주려서 졸고 있는 것을 깨워서 스스로 몸을 버려 보시하여 배부르게 하였으며, 


또 지난날 정진(精進) 비구가 되었을 때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체지의 지혜에 상응하는 행을 구하였으며, 

중생을 순숙시키고 정법을 보호하는 까닭에 모든 고뇌와 갖가지 속임과 능멸함을 능히 참아서 성내지 아니하였으며, 

또 옛적 견갑(堅鉀)이 되었을 때에는
한 부처님[一正遍知]의 정법(正法)과 상법(像法) 가운데서
부지런히 고행하여 계를 지키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며, 

8만 4천의 몸을 받아 이와 같이 하였으며, 


아승기(阿僧祗) 나유타(那由他) 백천의 고뇌를 나는 다 겪어 왔고, 

나는 일체지의 지혜를 희구(悕求)하여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보리심에서 물러서지 않았으며, 

대승(大乘)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며, 

본래의 원[本願]을 버리지 않았고, 

보살업의 큰 갑옷[鉀]을 풀어 버리지 않았으며, 

보살의 업에 대하여 겁내거나 연약하지도 않았고, 

일찍이 보시[檀]바라밀을 버리지 않았으며, 

일찍이 계[尸]바라밀을 버리지 않았으며, 

일찍이 인욕[羼提]바라밀에서 물러나 떨어지지 않았으며, 

일찍이 정진[毘梨耶]바라밀을 깨뜨려 버리지 않았으며, 

일찍이 선정바라밀을 놓아 버리지 않았으며, 

일찍이 반야바라밀을 닦는데 게으르거나 피곤해 하지 않았으며, 

섭법(攝法)을 버리지 않고 모든 보살의 도를 수행하였으며, 

청정하게 구족하여 어긋나지도 않고 틀리지도 않았으며, 

일체 보살의 땅에 굳게 머물러 게으르지 않았으며, 

일체 보살의 삼매와 삼마발제(三摩跋提)로 모든 중생을 가르쳐 보리심을 내게 함에 피곤하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모든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모으는데 은혜를 얻지 아니함이 없었으며, 

모든 보살행을 발하고 행하여 물러나지 않는 마음에 굳게 머물렀으며, 

항상 일체 보살의 모든 소원의 법문을 채우고자 함에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고, 

모든 공덕을 모으고 수행하는데 겁내고 약하지 않았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세간의 가장 훌륭한 곳이라서
유학(有學)ㆍ무학(無學)ㆍ벽지불(辟支佛)의 지혜로는 능히 증득하지 못하고, 

능히 들어가지 못하며, 

능히 관찰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 부처님 법의 이름은 쉽게 들을 수 없으며, 

가령 적은 공덕을 고르게 모아서 수행하여도 곧 능히 얻지 못하니, 

선근이 적은 이가 능히 얻지 못하는 것이 이와 같다. 


■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마땅히 성불하리라’ 하는
이러한 으뜸가는 서원[宗願]이 있다면, 

이 때문에 훌륭하게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공덕법을 모으고 수행하는 것이라서
‘나는 이러한 곳을 희망하고 이와 같은 뜻을 얻기를 바란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느니라.





■ 무슨 뜻으로 세존이라 이름하는가? 

그 뜻을 지금 말하겠다. 

세존이라 말한 것은 공양의 뜻이다. 

다시 다른 뜻이 있는데
보리심우바제사(菩提心優波提舍)와 같나니, 

그 뜻을 알아야 한다.



무슨 까닭으로 세존께서는 비사리의 대림정사에 노니시고
다른 곳으로는 가지 않으셨는가? 


그 뜻을 지금 말하겠다. 

이와 같이 힐난(詰難)한다면, 

세존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상응하지 못할 것이다. 

그 모든 처소마다 이러한 힐난이 있게 될 것이니, 

만약 다른 처소에 계시더라도 이러한 힐난이 없지 않을 것이다. 



다시 다른 뜻이 있는데 보리심우바제사와 같나니, 

그 뜻을 알아야 한다. 


무슨 인연으로 이와 같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세 가지 구족을 말씀하셨는가? 


그 뜻을 지금 말하겠다. 

세 가지 부분으로 상대한다는 뜻이니, 

이 세 가지로써 탐내고 질투하고 파계하고 우치한 것을 대치(對治)하는 것이다. 


■ 시구족(施具足)으로 탐내고 질투함을 대치하는 것이요, 

계구족(戒具足)으로 파계를 대치하는 것이요, 

문구족(聞具足)으로 우치함을 대치하는 것이다. 



또 세 가지 복덕을 나타내 보임이니, 

보시의 구족은 베푸는 복덕을 보여 주는 것이요, 

계를 구족함은 바른 행의 복덕을 나타내고, 

듣는 것을 구족함은 수행의 복덕을 나타낸다. 


또 뜻이 있으니, 

모든 중생이 따르고 순숙(淳熟)해지는 것이 보시ㆍ지계행의 구족이니, 

모든 중생이 이미 순숙한 후에 능히 듣고, 

듣고 나서는 관찰하고 상응하여 순숙해진다. 


이와 같이 모든 중생에게 수순하여 순숙하고 상응하니, 

이 때문에 세 가지로 말씀하셨다.


또 다시 두 가지 구족하는 뜻이 있으니, 

모든 부처님 법을 모아서 머무는 곳과
어지럽지 아니한 법을 얻는 것이다. 


어지럽지 아니함에 의지하면 문구족(聞具足)이 여법해서
모든 부처님 법을 올바로 깨달아 다 구족하니,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 법을 모아 머무는 곳을 얻는다. 

이와 같은 인연의 까닭으로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 



오직 세 가지만 구족하면
마땅히 다시 나머지 법을 구족하게 된다고 하는 그 뜻을 지금 말하겠으니, 

이처럼 세 가지는 모든 구족(具足)을 포섭하며, 

혹 부처님께서 널리 말씀하신 한량없는 구족도 모두 이 가운데 포섭되어 있다. 



대해혜(大海慧)수다라 가운데 세존께서 말씀하신, 

보살이 지니는 일체 구족과 복덕 구족과 지혜의 구족을 포섭함이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세존께서
“보살이 만약 복덕 구족을 수행하면 이 인연으로 높고 뛰어나고 부귀하며, 

다시 능히 남으로 하여금 높고 뛰어나고 부귀하게 하며, 

지혜가 구족하므로 입으로 좋은 말을 해서 모든 중생이 듣는 자마다 환희하나니, 

그 보시와 지계는 복덕 구족이요, 

들음은 지혜 구족이다. 

이와 같이 어김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 무슨 까닭으로 보살을 종성(種姓)이라 하는가? 

그 뜻을 지금 말하리라. 

어떤 스승이 여래가 탄생하는 곳에 네 가지 가문[家]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게송으로 말하겠다.


■ 성제(聖諦)와 사(捨), 

적정(寂靜)과 지혜

이 네 가지는 참으로 훌륭한 가문이니

부처님[正遍知] 탄생할 가문이라고

스승은 종성이라 말씀하셨네.


또 훌륭한 방편 이것이 보살의 아버지이고, 

반야바라밀 이것이 보살의 어머니라서
그와 같이 무구(無垢)의 이름을 경에서 말씀하셨다. 


■ 곧 반야는 보살의 어머니이고
방편은 아버지이니, 

모든 중생의 도사(導師)는 이로 말미암아 나지 아니함이 없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지니는 까닭으로 어머니 같고, 

방편이 생기는 것은 아버지가 자식을 낳는 것과 같다. 

부모와 같기 때문에 종성(種姓)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종성은 아버지ㆍ어머니의 두 가지와 서로 비슷한 뜻이며, 

또 사마타(奢摩他)ㆍ비바사나(毘婆舍那) 등 이와 같은 종성은 정변지를 낳는 것이다. 


모든 성(姓) 가운데 이 가문이 제일이라서
모든 훌륭한 법이 성(姓)이요 가문[門]이다. 

경 가운데 말씀과 같이 부처님 정법 가운데 두 법이 쌍으로 행하는데, 

사마타는 아버지이고 비바사나는 어머니이니, 

그 두 법은 종성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비바사나는 어머니

사마타는 아버지

모든 보살을 낳으니

비바사나를 인함이요

사마타 등 때문에

모든 정각(正覺)이 있도다.



또 다시 뜻이 있으니, 

모든 불보살이 현전(現前)하여 대비삼매에 바로 머무는 것은 이 두 법이 바로 여래의 종성이기 때문이다. 

이 두 법으로 인하여 여래가 탄생하고 모든 불보살이 현전하며 바로 머무는 것이니, 

삼매가 아버지가 되고
대비(大悲)가 어머니가 된다.


또한 다시 이와 같이 이 불보살이 현전하여 바로 머무는 것은
삼매가 아버지가 되고
인욕은 보살의 어머니가 되니, 

이것이 바로 종성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불보살이 현전하시어

바로 머무는 삼매가 아버지요

대비와 인욕과 지계는

바로 보살의 어머니로다.


이 게송은 무슨 뜻을 밝히는 것인가? 

보살의 종성의 뜻을 설명한 것이다.




무슨 뜻으로 이름을 구족이라 하는가? 

그 뜻을 지금 말하겠다. 

온갖 사물을 추구해 찾아서
곳곳에서 가져다가 모두 쌓고 모으고는 헤아려 비교하고
두루 분별하여 더 많은 이익을 고르게 모으기 때문에 구족이라 한다. 

또한 다시 많은 법을 고르게 모은다는 뜻으로 구족이라 이름하고, 

또 뜻이 있으니, 

보리를 걸머지고 있는 까닭으로 구족이라 한다. 


마치 외도의 재(齋)가 큰 모임이 구족하여
처음으로 양(羊) 등을 가지고 와서 장만하고 주선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리를 앞에서처럼 구족하고 뒤에 보리를 깨친다. 


또 많은 법을 말함을 구족이라 하니, 

마치 약을 고루 모아 섞어서 가루약을 만드는 것과 같이 구족한다. 



또 뜻이 있으니, 

앞의 종성(種姓)의 법을 굳게 가져 잃지 않고서
다시 피안을 향하여 가는 큰 선박처럼
먼저 고루고루 모은 후에 보배 섬으로 향하는 것이다. 



또 뜻이 있으니, 

바르고 원만하여 사특하지 않게 관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뜻 때문에 구족이라고 이름한다. 

또 항상 모든 수승한 행을 수행하는 까닭으로 구족이라 이름하고, 



또 구족이라는 것은 뛰어넘고자 해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벗어나서 피안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이요,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는 것은
게으르거나 태만하지 않다는 뜻이자
삼계(三界)를 지나간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름하여 구족이라고 한다.



또 구족이란 것은 평등하게 모음을 닦고, 

평등하게 짊어짐[負]을 닦고, 

평등하게 행함을 닦고, 

평등하게 일으킴을 닦고, 

평등하게 지음을 닦고, 

평등하게 지님을 닦고, 

평등하게 머묾을 닦고, 

평등하게 기름[養]을 닦기 때문에 구족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평등하게 기름을 닦는다는 것은
모든 중생을 의사처럼 병을 치료하고 여러 가지 병을 고쳐 주는 것과 같은 것이요, 


짊어짐을 닦는다는 것은 6바라밀로서 배에 타는 것과 같은 것이요, 

행함을 닦는다는 것은 대승의 설법 등이요, 

일으킴을 닦는다는 것은 보살이 배우고 닦는 것이 활 쏘는 것을 배우는 것과 같아서
먼저 발을 바르게 멈추는 것과 같은 것이요, 

지음[作]을 닦는다는 것은 모든 보살이 모든 업을 교묘히 짓는 것이니, 

마치 솜씨가 뛰어난 사람과 같은 것들이다. 


지님을 닦는다는 것은 항상함[常]과 덧없는[無常] 것 등이 저울대처럼 평등한 것이다. 

머묾을 닦는다는 것은 모든 보살이 능히 법의 집을 떠받치는 것이 마치 집의 굵은 기둥과 같음이요, 

모음을 닦는다는 것은 모든 정법(正法)을 벌이 꿀을 모으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등의 뜻이 있는 까닭으로 구족이라고 한다.


또는 자유롭다는 뜻, 

혹은 화합한다는 뜻, 

혹은 많다는 뜻, 

혹은 특별히 다르다는 뜻, 

혹은 넓다는 뜻, 

혹은 넓고 너그럽다는 뜻, 

혹은 뛰어나다는 뜻, 

혹은 견고하다는 뜻, 

혹은 굳다[牢固]는 뜻, 

혹은 고르게 모은다는 뜻, 

혹은 화합의 뜻, 

혹은 사물의 뜻, 

혹은 재물의 뜻, 

혹은 가진다는 뜻, 

혹은 쌓아 모은다는 뜻, 

혹은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는 뜻 등이 있는 까닭에 구족이라 이름한 것이다.




■ 무슨 까닭으로 베푼다[施]고 이름하였는가? 

그 뜻을 지금 말하겠다. 

만약 탐욕과 빈궁함을 깨뜨려서 큰 부와 즐거움을 얻으면 복과 덕을 구족하기 때문에 이름하여 베푼다고 한다. 

이 보시에는 몇 가지가 있는가? 



지금 그것을 말하겠다. 

대략 세 가지이니, 

어떤 것이 셋인가? 

첫째 삶을 도와주는 보시[資生施]요, 

둘째는 두려움을 없애 주는 보시[無畏施]요, 

셋째는 법을 말해 주는 보시[法施]이다.



■ 삶을 도와주는 보시란
이른바 음식 등 갖가지를 베풀어 주는 것이다. 

이 삶을 도와주는 보시는 빛과 향기와 맛이 뛰어나고 청결하고 여법하여야 하나니, 

탐욕의 번뇌를 멀리 여의어야 하고 인색의 번뇌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탐욕의 번뇌를 여읜다는 것은 마음에 조금도 거리낌 없이 이와 같이 베풀어서 자기 손으로 많이 베풀어 줌이요, 

인색의 번뇌가 없다는 것은 부(富)의 즐거움을 갖지 않고 이와 같이 베풀어 줌이요, 

두려움을 없애 주는 보시는 말하자면 능히 사자와 호랑이ㆍ자라ㆍ왕ㆍ물ㆍ도적 등 이와 같은 모든 두려움에서 구제하여 주는 것이다.



■ 어떤 것이 법을 베푸는[法施] 것인가? 

전도(顚倒)되게 설법하는 이를 위하여 바르게 설법하여 주고, 

차례로 글귀를 배우는데 그 올바른 것을 취하도록 가르쳐 주니, 

자세히 말하면 한량없는 갖가지 성스럽고 다함없는 뜻이 있어서 말로 헤아릴 수가 없다.

보살의 베푸는 업은 이른바 보살이 음식을 구하는 자에게는 음식을 주는 것이니, 

바로 모든 중생에게 물질과 수명과 안락과 변재(辯才)를 보시하는 것이다.

또 보살의 보시는 마음의 혼탁함 등의 허물을 다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 그 탁한 마음으로 베푸는 것에는 열네 가지가 있다. 

첫째 마음이 탁함이요, 

둘째 먼저 투기함이요, 

셋째 시기하는 마음이요, 

넷째 거만한 마음이요, 

다섯째 거만함을 없애지 아니함이요, 

여섯째 성내는 마음이요, 

일곱째 간택(簡擇)함이요, 

여덟째 의심함이요, 

아홉째 괴로워함이요, 

열째 어지러운 마음이요, 

열한째 이름을 앞세우는 것이요, 

열두째 위의 법[上法]에 의존하여 날짜와 시간 등을 선택하여 차례로 보시를 행함이요, 

열셋째 해태(懈怠)함이요, 

열넷째 과보의 힘을 앞세움이다. 


이와 같은 등의 법이 능히 마음을 물들이기 때문에 탁한 마음이라 하며, 

마음의 체(體)에 탁함이 있기 때문에 탁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질투를 앞세워 보시하는 이는 부를 얻어도 즐거움은 적고 권속이 사랑하지 아니하며, 

시기를 앞세워 보시하는 이는 비록 부의 즐거움을 얻어도
뛰어난 과보를 즐거이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하열(下劣)함을 기뻐하나니, 

자리를 펴고 앉고 눕고 잠자는 등의 장소와 음식의 풍부함과 즐거움을 탐내고 집착하면서 여의지 못한다.


거만을 앞세워 베푸는 이는 비록 부의 즐거움을 얻었다 할지라도
하열한 성(姓)으로 태어나고 마음이 정직하지 않다. 

또 먼저 거만을 없애버리지 않고 보시하는 이는 뒤에 과보를 받을 때 남을 의탁하여 생활하니, 

가령 임금을 섬기는 사람이 되는 등의 일이다. 


예를 들면 재주 있는 아이나, 

나졸[卒]이나, 

속이는 사람이나, 

막고 보호하는 순라나, 

갖가지로 부림을 받는 하인이나, 

저울질하는 저자의 관리[市官]나, 

집의 문을 지키거나, 

짐승을 놓아기르거나, 

태자를 섬기는 하천한 관리나, 

남을 두렵게 겁주거나, 

도박 등을 하는 사람이나, 

힘으로 떠밀어 서로 치거나, 

이런 갖가지 방편을 써서 강한 힘으로 물건을 취하고
다시 용맹스럽게 날뛰어서 겁탈하는 도적 등이니, 

이와 같은 등의 업으로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



먼저 성내어 보시하는 이는
뒤에 힘 있는 축생 등의 몸을 얻나니, 

사자ㆍ범ㆍ표범ㆍ이무기ㆍ곰ㆍ갈색 곰ㆍ큰 암원숭이 등으로 태어난다.

간택하여 보시하는 이는 후에 과보를 얻을 때 농사로 생활하거나 산지기가 되거나 나무를 심거나, 

혹은 나무를 기르는 등의 적은 과보를 얻어서 스스로 생활한다.


먼저 의심하며 보시하는 이는
뒤에 과보를 얻을 때 부의 즐거움이 항상하지 못하다.


먼저 고뇌하며 베푸는 이는
비록 부의 즐거움을 얻을지라도
오랑캐로 태어나 좁은 곳이나 혹은 재앙이 싹트는 곳이나 변방에 태어나게 된다.


어지러운 마음으로 보시하는 이는
부를 얻어도 즐거움이 적거나, 

혹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이름을 앞세워 보시하는 이는
비록 부의 즐거움은 얻었다 할지라도 재물의 부를 얻었을 뿐이라서 다시 기쁨을 잃는다.


위의 법에 의존하여 날과 시간을 선택하는 등
차례로 보시하는 이는
비록 부의 즐거움은 받는다 할지라도 애써 부지런히 일하는 고생을 면하기 어렵다.


해태하며 베푸는 자는
뒤에 부의 즐거움을 비록 얻었다 할지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과보를 위하여 보시하는 이는
뒤에 비록 과보를 얻는다 할지라도 얻는 것이 어려운데다 적다.




이와 같이 보살은 처음의 과실을 다 관찰하고, 

관찰을 마치고는 스스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청정한 마음이 생기고 나면 탁한 마음을 멀리 여의고, 

탁한 마음을 멀리 여의고 나서는
바른 믿음이 상응하고
자비 등의 공덕이 상응하고 화합해서 손수 베풀어 준다.


먼저 믿고 보시하면
좋은 곳에 태어나서 종족의 성(姓)과 뛰어난 세력과 물질[力色]과 뛰어난 부와 즐거움, 

권속의 자재함과 말솜씨[辯才]와 명예와 안락과 수명을 얻는다. 

남이 속이거나 능멸하지 아니하며, 

사람들이 제일 자재하다고 찬탄하며, 

앉는 자리, 눕는 곳, 자는 곳 등의 장소가 훌륭하고, 

집이 장엄하고, 

음식ㆍ의복ㆍ바르는 향ㆍ여러 가지 향, 

빛과 모양ㆍ소리ㆍ맛ㆍ촉감, 

이와 같은 등을 얻어서 풍부하고 즐거운 곳에 머무느니라.






■ 무슨 까닭으로 계(戒)라고 이름하는가? 

그 뜻을 지금 말하겠다. 


만약 능히 법 아닌 율의와 악(惡)하고 불선(不善)한 법이 적정해지면, 

능히 착한 도(道)가 생겨서 능히 삼매를 얻나니, 

이와 같은 것을 계라고 이름한다. 



계는 몇 가지가 있는가? 

그 뜻을 지금 말하겠다. 


■ 간략히 세 가지가 있으니, 

말하자면 율의계(律儀戒)ㆍ섭선법계(攝善法戒)ㆍ섭중생계(攝衆生戒)이다. 

저 계라고 하는 율의계란 보살이 바로 취하는 7중(衆)의 율의이니, 

말하자면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式叉摩那)ㆍ사미(沙彌)ㆍ사미니(沙彌尼)ㆍ우바새ㆍ우바이의 계인데, 

출가든 재가든 이와 같이 차례로 다 지켜야 할 것을 말한다.


■ 어떤 것이 보살의 섭선법계인가? 

보살이 가진 착한 법과 계를 다 바르게 가지고 나서
그런 뒤에 큰 보리의 착함을 모으고 닦는 것이니, 

몸과 입과 뜻 등의 착함이 이와 같다. 

간략히 섭선법계를 말하였다.


또 다시 보살은 어느 곳에 의지하는가? 

계에 의지하고 계에 머무른다. 

그런 뒤에 들음[聞]을 닦고, 

다음에 사유를 닦고, 

나중에는 사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를 오로지 즐겨 행한다. 


어른 앞에서 정면으로 말할 때는
먼저 예배를 한 후에 일어나 합장하나니, 

항상 이렇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때때로 어른을 존경하고 존중함으로써 공양하고, 

항상 병자에게는 자비심으로 공양하여 주고, 

만약 착한 말을 들으면 착하다고 찬탄하여 주고, 

공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진실한 공덕을 말해 주니,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서 널리 시방을 위하느니라. 



이처럼 시방 모든 중생의 모든 복덕을 부지런한 마음으로 따라서 기뻐하고[隨喜], 

기쁜 마음이 생기고 난 뒤에는 입으로 말하느니라. 

남이 나에게 일체를 범하여 접촉해 오는 것은 다 능히 인내하여 받으며, 

닦는 일체의 몸ㆍ입ㆍ뜻의 착함은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취하기를 원할 것이다. 



때때로 3보에 갖가지 공양을 하고, 

일체의 갖가지 공양을 베풀고 나서는
입으로 바른 서원을 말해서 상응하는 정진으로 항상 착한 부분을 보호하나니, 

몸을 방일하게 하지 않고 입으로 배운 구절을 외우고 뜻으로 생각하고 행해서 6근의 문[根門]을 보호하고 먹는 것은 만족한 줄 알아야 한다. 

초저녁이나 밤중에도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착한 이를 친근하고 선지식에 의지하며, 

스스로 자기 잘못을 알고 과실을 범한 줄 알고 나서는 범한 것을 고칠 줄 알아야 한다.

불보살과 모든 복덕 있는 사람을 범했다면 마음을 다해 참회해야 하나니, 

이와 같은 부분의 착한 법을 섭취하고, 

착한 법을 얻고 나서는 지켜 보호하고 더 키워 나가야 하느니라. 

이와 같은 계를 바로 보살의 섭선법계(攝善法戒)라고 이름하느니라.


■ 어떤 것이 보살의 섭중생계인가? 

그것을 요약해서 말하면 열한 가지가 있다. 

이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열한 가지인가? 

첫째, 갖가지로 중생을 요익하고 갖가지 인연에 상응함이요, 

둘째, 중생이 병이 들든 들지 않든 갖가지 모든 고통에 공양하고 반려가 되는 등이요, 

셋째, 세간과 출세간의 뜻이니 저 법의 교설처럼 먼저 방편을 보이고 먼저 도리를 보이는 것이요, 

넷째, 중생의 은혜를 갚음이니, 

은혜 갚음을 잊지 않고 마땅함을 따라 보호하고 갚음을 따라 공급함이요, 

다섯째, 사자ㆍ호랑이ㆍ왕ㆍ물ㆍ불ㆍ도적 등 갖가지 두려운 곳에서 모든 중생을 보호해 줌이요, 

여섯째, 모든 친하고 착한 벗이 부(富)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재앙과 죄를 근심하고 슬퍼하면 능히 없애 줌이요, 

일곱째, 빈궁하여 고뇌하고 구걸하는 중생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해 주고, 

선을 행하는 사람은 올바르게 버리는 법에 의하여 공덕을 섭취함이요, 

여덟째, 먼저 신문(訊問)하고 뒤에 신문함을 때에 맞게 대답함이요, 

아홉째, 남이 불러서 먹고 마시는 등 세간의 이익에 피차 왕래함이니, 

요점을 말하면 일체의 이롭지 않은 일은 귀하게 여기지 말며 다 버리고 여의어서 마음을 따라 나아갈 것이요, 

열째, 자신의 진실한 공덕에 환희의 마음을 내면서
공평하고 깨끗하고 바르게 취하여 궁극적인 제창과 교설로 마음을 윤택하고 이롭게 한다. 

혹 형벌을 받거나, 

혹 배척당하거나, 

혹 쫓겨나거나, 

혹 때로 내쫓김을 당하는 등
온갖 이와 같이 좋지 못한 곳에 내몰린 자들을 위하여
좋은 곳으로 옮겨 머무르게 해서 넉넉하고 유익하게 해준다. 


열한째, 

신통력으로 지옥 등의 헐뜯고 비방하는 불선(不善)을 보여서
그들로 하여금 불법에 들어와 중생을 교화하게 하고, 

그들을 환희하게 해서 미증유(未曾有)를 얻게 한다.


또 성자 무진의 보살은 67가지를 말씀하였으니, 

말하자면 모든 중생에 대해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를 이와 같이 하는 까닭이요, 

또 보살장경(菩薩臧經) 중에 널리 한량없는 여래(如來)의 계(戒)를 설하고 있는 까닭이다.


또한 다시 이 계는 한량없고 가없는 공덕을 고르게 모아 놓았으니, 

이와 같은 공덕을 지금 조금만 말하겠다. 

이른바 계는 출가인의 계를 말한다. 


마치 큰 부자가 몸이 젊어서 기쁘고 즐거운 것처럼
착한 법 가운데서 증장(增長)함은 어머니와 같고 악한 법 가운데서 능히 보호함은 아버지와 같으니, 

세속에 있는 사람이 재물이 있는 까닭으로 일체를 이롭게 하고 다 성취하게 하는 것과 같다. 

출가한 사람의 계도 마찬가지라서 바르게 인도함이 이와 같으니, 

가령 사람이 바르게 행하면 곧 쇠퇴하거나 손해됨이 없으니, 

마치 착한 사람이 은혜 갚음을 구족하게 받는 것과 같고, 

세간 사람이 신명을 사랑하며 아끼는 것과 같으니라. 

또한 뛰어난 지혜가 세상에서 찬탄을 받는 것과 같고, 

임금님의 말씀을 삼가는 것과 같으니,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 계를 보호함도마찬가지다. 


해탈을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부처님께 귀의하여야 하고 좋은 곳[善道]에 태어나려면 마땅히 계에 귀의해야 하나니, 

몸을 편안하게 하는 근본은 계가 으뜸가는 선지식이니라. 

악을 만나도 착한 벗은 버리지 아니하나니, 

계도 이와 같아서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자 해서 죽음에 이르러도 버리지 아니한다. 



가령 여인이 세상 사람의 장엄을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고, 

사람의 뛰어난 행으로는 아첨하지 아니함이 으뜸인 것과 같고, 

청정한 행[梵行]을 하는 가운데는 부드럽게 보임이 뛰어난 것과 같고, 

크게 귀하고자 하면 불환(不幻)을 근본으로 삼는 것과 같고, 

방일하지 아니하면 공덕이 많고 넉넉한 것과 같다. 



뛰어난 법을 증득하고자 하면 관찰에 의하여 얻나니, 

마치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에도 착한 벗을 가까이하는 것과 같고, 

학인(學人)의 시절을 희망함은 바다가 지나침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중생이 땅에 의지하여 머물러 사는 것처럼
계에 의하여 모든 뛰어난 법을 지녀서 머무는 것이며, 

물이 능히 모든 종자를 윤택하게 하는 것처럼 계는 능히 착한 법의 종자에 진액이 윤택하게 하니, 

불의 뿌리가 이루어지는 것과 같고, 

바람이 능히 나부껴서 분분히 피어나게 함과 같다. 


사물[物]이 가고 멈추는 데는 허공이 가로 막지 아니하는 것처럼
불과를 증득[證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계는 단단한 병(甁)과 같고 계는 보배를 감춘 것과 같으니, 

바라는 바를 따르는 것과 같고 젖 짜는 소가 여물을 먹는 것과 같다. 



사람이 지팡이로 인하여 가고 머무는 것과 같고, 

숨 쉬는 것이 명(命)에 의함과 같고, 

명의 지혜가 뛰어남과 같고, 

나라에 임금이 있어 백성이 의지하는 것과 같고, 

군대에 장수의 공덕과 군사의 무리가 있는 것처럼 계는 바로 통솔하는 장수이고, 

여인의 모든 즐거운 행은 다 부주(夫主)로 인한 것과 같다.


길을 가는 사람이 양식을 싸가지고 가는 것처럼
천도(天道)를 행하는 데는 계(戒)가 바로 양식이 된다. 



광야를 가는데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서 잘 인도하는 것처럼
선법(善法)을 행하는 자에게는 계가 바로 앞의 길잡이가 된다. 


큰 바다를 잘 건너가는 배처럼 사람이 방편으로써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데는 계로써 배를 삼으며, 

병자의 약처럼 번뇌에 병든 사람에게는 계가 좋은 약이니라. 

전쟁터에는 병기가 있는 것처럼 마왕과 싸움하는 데는 계로써 막아야 하나니, 

도와주는 친우와 같아서 버리지 아니한다. 

계는 성현이라 캄캄한 가운데 등불처럼 밝게 비추니, 

미래의 큰 어두움에는 계로 등불을 삼아라. 

강을 건널 때는 다리를 인하여 건너는 것처럼 3악도를 벗어나는 데는 모든 방편 중에 계가 가장 크며, 

맑고 서늘한 집이 능히 큰 더위를 식히듯 번뇌의 큰 열기는 계가 능히 청량하게 한다.

두려움이 있는 건강한 아이가 칼이나 몽둥이를 가지고 의지하는 것처럼 악도를 두려워하는 이는 계야말로 바로 귀의할 곳이니, 

보살이 진실의 집에 머무는 것과 같고, 

착한 범부가 자기 물건으로 여기는 것과 같고, 

보살인 사람이 베푸는 집에 머무는 것과 같고, 

길을 가는 사람이 행하는 길과 같다. 


보살인 사람이 가가(家家:有學)에 머무는 것처럼 과(果)를 얻은 사람은 능히 남을 위하여 말하고, 

보살인 사람이 지혜의 집에 머무는 것처럼 움직이지 아니하는 사람은 평탄하고 청정하다. 


아첨이 정직을 버리는 것은 탐욕이 보시를 버림과 같고, 

질투하는 사람이 질투하지 않는 마음을 버리는 것과 같고, 

변하고 거짓된 사람의 마음은 관찰하지 못하는 것과 같고, 

침착하고 잘 살피는 사람이 고고한 마음을 여의는 것과 같고, 

삼가고 조심하는 사람이 방일의 허물을 버리는 것과 같으며, 

왕이 안목이 있든 없든 우매한 사람은 그 경계가 아닌 것과 같다. 



8성도(聖道)의 부분은 해탈과 상응하나
관찰하지 않는 사람은 거리가 아주 머니, 

아라한이 열반법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같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차례로 설법하는[善轉] 것과 같고, 

정법에 머물면 과를 증득해 머무는 것과 같고, 

부처님 세존께서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것과 같고, 

종이 주인의 물건을 섬길 때 방향과 처소가 다 상응하는 것과 같고, 

사람이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으면 마음이 안온한 것과 같고, 

좋은 시절을 조작(造作)하게 되어서 후회하지 않는 것과 같고, 

보살의 염원이 끝내 해탈을 얻는 것과 같고, 

좋은 밭에 좋은 종자를 심으면 커서 많은 수확을 얻는 것과 같고, 

시절이 방정(方正)하면 인연이 구족하는 것과 같다.

지혜와 색(色)이 사랑하고 즐거워함을 스스로 많이 수용하니, 

선근이 완숙하면 세력이 있는 것과 같고, 

스스로 선행을 해서 자신의 마음이 기뻐하는 것과 같고, 

사람이 죄 없으면 금생이나 내생에도 두려울 바 없는 것과 같고, 

용맹스럽고 건강한 사람이 바른 행과 계율에 의지하는 것과 같고, 

바른 행을 좋아하고 기뻐해서 스스로 닦는 것과 같고, 

사랑[慈]을 닦는 이가 마음이 착해서 안락한 것과 같고, 

기쁨[喜]을 닦는 이가 마음이 항상 경사스럽고 즐거운 것과 같고, 

연민[悲]을 닦는 이가 마음으로 바르게 믿는 것과 같고, 

버리는 것[捨]을 닦는 이가 마음이 항상 수순(隨順)하는 것과 같다. 


네 가지 바른 법[慈悲喜捨]은 여실한 진리의 믿음이니, 

세간법의 장애가 고요해지면 수순하여 즐겁게 행하는 것과 같고, 

들음으로 인하여 변재를 얻는 것과 같고, 

솜씨 있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두려울 바가 없는 것과 같고, 

지혜가 밝은 사람이라면 명칭이 있는 것과 같고, 

착하게 말하는 사람은 파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법답게 법을 수순하면서 능히 증득을 이루어 해탈의 정각을 밝힌 사람은
올바른 도가 그리운 듯해서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선정을 닦아서 도 닦는 것을 벗으로 삼는다. 


가령 인연이 건전하면 두려움이 없으니, 

산에 보배가 풍요롭듯 공덕의 보배도 풍요롭고, 

바다의 주처(住處)에는 그 풍요로움이 희유해서 여래 제자의 계는 바다와 같다. 

도에 들어가서 믿는 대로 행한다면 과(果)를 얻는다.

깨달아 아는 이는 도리에 의하여 행하나니, 

비록 물이 없다 할지라도 능히 깨끗하게 씻어서 목욕해서 뿌리와 줄기, 

잎이 없어도 향기로운 것[物]이 생겨난다. 

뚫리지도 않고[不穿] 밝지도 않아서 금도 아니요 보배도 아니요 진주도 아니지만, 

그러나 이 장엄이 비록 경계는 아니나
능히 후세에 즐거운 보(報)를 내어서
세간 사람과 하늘ㆍ아수라ㆍ마(魔)ㆍ하늘[梵]ㆍ모든 사문ㆍ바라문 등이 칭찬하는 바이다. 

이는 다른 즐거움을 인한 것이 아니라 바로 천도(天道)인 열반의 방편을 얻는 것이다.


구제함이 삿되지 아니하면 진흙물에 빠지지 않으니, 

돌을 여의고 돌을 얻어야 바로 건널 것이다. 

믿음으로 건너야 강을 건널 수 있으리니, 

재물 같은 것 등 갖가지 허물은 여의어야 한다. 

도에 허물되는 것은 여의어야 하나니, 

양식[資糧]ㆍ섶[柴薪]ㆍ물ㆍ샘은 똑바로 우회하지 아니하고
높게도 아니하고 낮게도 아니할 것이다. 



악한 벌레,
뱀이나 전갈, 푸른 파리, 

모기ㆍ추위ㆍ더위ㆍ도적 등 악한 물건은 도를 여의게 한다.

보습을 쓰지 아니하며 심지도 않고 익히지도 않지만 가지가지 전답이 기름지고 풍요롭고, 

비록 나무를 심은 것도 없고 약초도 없고 숲도 없으나 맛좋은 과일을 얻어 감로와 같다. 


높은 언덕에도 있지 않고 낮은 습진 곳도 아니니, 

다른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남이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항상 신선한 꽃다발로 마르지도 않고 시들지도 않는 것과 같다. 


좋은 냉수로 뿌려 더위를 물리치고, 

오직 막고 보호하지도 않고 연장이나 무기로 싸우지도 않는다. 

재물과 함께 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되 즐거움을 갖추어 얻는다. 

항상 부의 즐거움을 얻어서 싸움하는 곳을 여의고, 

큰 보배산과 같아 가치는 한량없으나 바다를 벗어나지 아니한다. 


대중의 두려움, 

생명의 두려움, 

형벌의 두려움, 

살지 못살지 하는 두려움, 

악도(惡道) 등의 두려움을 벗어난다.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 항상 몸을 구족한다. 

이와 같은 갖가지 공덕은 계와 상응하는 까닭이다.




■ 무슨 까닭으로 들음이라고 이름하는가? 

그 뜻을 지금 말하겠다. 


이른바 착하지 못한 법은 고요함과 상응하나니,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옳은 말이 아니다. 

수다라 등 12부경이 언어의 설법이니, 

이런 까닭으로 듣는다고 이름한다. 



성자 무진의보살이 80가지를 말씀하였으니, 

이른바 욕수행(欲修行)과 순심행(順心行) 등이다. 







■ 무슨 까닭으로 새어 나가는 것과
새어 나가지 아니하는 것[漏不漏] 두 가지를 구족하여 일체지를 얻는다고 하는가?


새어 나가지 아니하는 법, 

그 뜻을 지금 말하겠다. 

지혜로 관찰하면 오직 한 맛[一味]이라서 꿀벌의 왕과 같으니, 

비유하면 벌의 왕이 갖가지 다른 것을 모아서 다 한맛의 꿀로 만드는 것과 같다. 


보살도 마찬가지라서
새어 나감과 새어 나가지 아니하는 두 가지를 구족하여
지혜의 힘으로써 모두 한맛으로 삼으며, 


또 서원의 방편으로
새어 나감과 새어 나가지 아니하는 두 가지를 구족하여 일체지를 얻게 하나니, 

새어 나가지 아니하는 법은 『보적경(寶積經)』의 말씀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비유하면 동서남북 사유 상하에 있는 큰 강물과
아울러 그 작은 강[支流]의 모든 물이 모여서 큰 바다에 들어가면, 

그 모든 물은 평등하여 한맛이 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짠맛이 이와 같은 것이다. 


가섭아, 

보살도 이와 같아서
갖가지 문으로 모든 선근을 모아 보리를 원하기 때문에
일체를 한맛으로 만드니, 

바로 일체지의 맛이니라.”





■ 보시[施]ㆍ지계[戒]ㆍ들음[聞] 등 몇 가지 인연의 뜻을 지금 말하겠다. 



보시의 구족이란 두 가지 인연이다. 

첫째 빈궁함을 여의는 것이요, 

둘째 큰 부를 얻는 것이다. 



계를 구족함에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 3악도를 여읨이요, 

둘째 선한 길에 태어남이다. 


들음을 구족함에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이른바 어리석음을 여의는 것과 큰 지혜를 얻음이다.




또 다시 보살은 세 가지를 구족한다.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보시로 중생을 포섭하는 것, 

중생을 포섭하고 나서는 지계와 듣는 것에 머물게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남을 이롭게 하는 행을 구족하고 자기에게 이익 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나니, 

이와 같이 자기에게 이익한 행을 하느니라.







■ 세 가지 구족함을 말하는 데 무슨 까닭으로
처음은 보시, 

중간은 지계, 

뒤에는 듣는 것이냐? 



그 뜻을 지금 말하겠다. 


점차적인 뜻에 의거하여 부처님법이 저 큰 바다와 같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비유하면 큰 바다가 점차로 깊어지듯이
부처님 법도 그러해서
처음에는 보시를, 

중간에는 지계를, 

끝에는 듣는 것[聞]을 말하느니라. 


또한 다시 뜻이 있으니, 

재가 보살은 먹는 것 등을 베풀고 나서
그런 후에 출가함의 공덕을 듣고, 

듣고 나서 믿음이 깊어지면 집을 버리고 출가하고, 

이미 출가하고서는 바야흐로 청정한 계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계에 머무는 까닭에
세간의 업을 여의고 위없는 것을 얻어 들으니, 

이런 까닭으로 제일 끝에 들음의 구족을 말한 것이다. 



또 뜻이 있으니, 

보살이 상품세계에 태어나는[上生] 차례의 최초에
나와 남을 이익하게 하나니, 

이런 까닭으로 보시를 행한다. 


그 보시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행할 것인가?’를 사유하자, 

세존께서는 계와 지계하는 사람을 말씀하셨고, 

’다음 차례의 상응은 무엇인가?‘라고 사유하자
이에 듣는 것을 말씀하셨다. 


요점을 말하면, 


■ 보시를 구족한다는 것은 세존께서 단바라밀을 나타내 보이심이요, 

지계구족이란 시(尸)바라밀이요, 

듣는 것이 구족함이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 바라밀을 보이신 것이다. 


또 뜻이 있으니, 

보시ㆍ지계는 복과 덕을 구족하고, 

듣는 것은 지혜를 구족함을 보이신 것이다. 


■ 또다시 뜻이 있으니, 

보시ㆍ지계의 구족함은 장애도(障礙道)를 보인 것이요, 

듣는 것이 구족함은 무애도(無礙道)를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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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구족경우바제사번역기[三具足經憂波提舍飜譯之記]



보시ㆍ지계ㆍ들음, 

이 세 가지는 여러 가지 행을 갖추어 포섭한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구족(具足)이라 이름하셨다. 

법문이 깊고 오묘하니 얕은 식견으로는 엿볼 수 없다. 

천친(天親)보살이 자비한 마음으로 열어 보였지만 오직 뜻만 드러냈을 뿐, 

문장의 구절은 해석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바제사(憂波提舍:論)라 이름한다. 

옛날에 중국(中國)에서 간행했다가 지금은 위나라 도읍에 나타났다. 

삼장 법사 비목지선(毘目智仙)과 바라문(婆羅門) 구담류지(瞿曇流支)와 법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사문 담림(曇林)이 업성(鄴城) 안에 있는 금화사(金華寺)에서 흥화 3년 신유월(辛酉月)에 수삭(戍朔)을 세우고 경오(庚午) 13일에 1,110언(言)을 번역하였다.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어사중위(御史中尉) 발해(渤海) 사람 고중밀(高仲密)이 아뢰어 청하여 공양하고 수호하면서 유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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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hbi5079

◈Lab value 불기255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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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삼구족경우바제사_K0568_T1534.txt ☞삼구족경
sfd8--불교단상_2554_08.txt ☞◆vhbi5079
불기2554-08-19
θθ



■ 선물 퀴즈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

공무변처(空無邊處)의 준말.


답 후보
공처(空處)
관문(觀門)

관심(觀心)
관정(灌頂)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
교답미(喬答彌)
교의(敎義)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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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0568 

05gfl--가치_단상_2010_0819.TXT

가치단상_2010_08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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