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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2-02-13_불설마요란경-K0694-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2-13_불설마요란경-K0694-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2. 13. 13:10



®


『불설마요란경』
K0694
T0066

마요란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불설마요란경』 ♣0694-001♧





마요란






♥아래는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페이지 내용 업데이트 관련 안내]




♣0694-001♧
♧불설마요란경 제1권

♣0694-001♧
♧불설마요란경 제1권





불설마요란경
불설마요란경(佛說魔嬈亂經)
역자 미상




그때에 악마 파순이 스스로 제 몸을 아주 작게 만들어 존자 목건련의 뱃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목건련은 생각하였다.
‘내 배가 왜 갑자기 무거워지는가.
마치 콩을 먹은 것 같구나.
나는 여기상 (如其像) 삼매에 들어 그 삼매의 힘으로 내 배를 관찰해 보리라.’
이에 그는 감독하던 곳을 떠나 거니는 길 언덕에 이르러 니사단(尼師壇)를 펴고 두 다리를 맺고 앉았다.
그는 곧 여기상삼매에 들어 그 삼매의 힘으로 자기 배를 관찰해 보았다.


존자 목건련은 파순에게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이 계셨는데,
이름을 구루손(拘樓孫) 무소착ㆍ등정각이라 하셨다.
그 때 나 역시 악마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누이가 있었는데 가라(迦羅)라는 이름이었으며,
너는 그 누이의 아들이었다.
너 악마 파순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너는 나의 조카이다.
악마 파순이여,
저 구루손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에게는
비루(毗樓:음성이란 뜻)살야(薩若)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어질었으며 다른 여러 제자들보다 훌륭하였다.




그 존자 비루는 범천에 살면서
향기로운 소리가 1천 세계에 가득 찼었는데,
어떤 제자도 그와 같은 이가 없었고
소리가 같은 이가 없었으며 그와 비슷한 이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설법을 잘 하였다.
파순이여, 그 때문에 그 존자 비루를 비루살야라고 이름하였던 것이다.




그가 마을의 성을 의지해 머무를 때에 아침 일찍 일어나 옷을 입고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마을의 성에 들어가 걸식하는데 그 몸을 보호하였으며,
모든 감관을 두루 갖추었고 생각은 언제나 고요하였다.
그가 마을의 성에 들어가 걸식하기를 마치고
오후에 돌아와서는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고,
니사단을 들어서 오른 어깨에 걸치고 고요한 곳이나 나무밑 혹은 빈 곳에 이르러
니사단을 펴고 두 발을 맺고 앉아
가볍고 빠르게 생각 끊긴 선정[想知滅正受]에 들어갔다.
그 때 양치는 사람ㆍ소 먹이는 사람ㆍ나무꾼ㆍ혹은 길 가던 사람이
그가 빨리 생각 끊긴 선정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문은 지금이 고요한 곳에 앉아 목숨을 마쳤다.
우리는 마른 초목이나 쇠똥,
혹은 나뭇가지를 쪼개어 그 몸을 덮고 불을 붙이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그 양치는 사람ㆍ소 먹이는 사람ㆍ나무꾼ㆍ길 가던 사람들은
마른 초목이나 쪼개어진 초목으로 그 몸을 덮고 불을 붙이고는 그곳을 떠나 돌아갔다.
이에 존자 살야는 밤을 지낸 뒤 삼매에서 일어나
가볍고 빠르게 그 옷을 거두어 털고서 마을의 성으로 돌아갔다.


파순이여,
이런 이유로 그를 살야(薩若:다시 살아났다는 뜻)라 하는 것이다.




파순이여,
이에 저 구루손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의 제자는
악마에게 잡혀
그 머리와 발우가 깨졌으며
옷이 찢긴 채 곧 구루손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에게 갔다.

그 때에 구루손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한량없는 백천 무리에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시다가
멀리서 머리가 깨지고 가사와 발우가 깨지고 찢겨진 제자가 오는 것을 보고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사랑하는 마음[慈]을 하나의 방향에 가득 채워 올바르게 누리며 머무르고,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상ㆍ하의 모든 곳에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하여 원한도 없고 둘도 없고 성냄도 없으며,
극히 넓고 극히 크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량하게 모든 곳에 두루 채워 올바르게 누리며 머물러야 한다.
이와 같이 가엾이 여기는 마음[悲]ㆍ기쁘게 하는 마음ㆍ보호하는 마음[護]을
모든 곳에 두루 채워 올바르게 누리며 머무르면,
설령 악마가 그 틈을 구하고 그 인연을 찾더라도 그 틈을 누리지 못하고 그 인연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파순은 이 말을 듣고 곧 생각하였다.
‘나는 이런 방편으로는 저 사문의 틈을 노릴 수 없고 저 사문의 인연도 얻을 수 없다.
나는 차라리 저 바라문이나 거사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너희들은 저 정진하는 사문을 공경하고 섬기며 예배하고 공양하라.〉
그리하여 다소 공양하고 받들며 섬기고 예배하여 만일 그 마음이 흔들리면
악마인 나는 그 틈을 구하고 그 틈을 찾고 그 인연을 찾다가 그 틈을 노리고 그 인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구루손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의 제자는 공양과 공경을 받고 예배를 받았다.
그리고 곧 구루손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 계신 곳으로 갔다.

그 때에 구루손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한량없는 백천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시다가
그 제자가 다른 이의 공양과 공경을 받고 섬김과 예배를 받고 멀리서 오는 것을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보는가.
저 악마 파순은 바라문과 거사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정진하는 사문을 공양ㆍ공경하고 섬기며 예배하라고 하였다.
그 정진하는 사문을 많거나 적거나 공경하고 섬기며 예배하고 공양하여,
만일 그 마음이 흔들리면 저 악마 파순은 그 틈을 구하고
그 인연을 찾다가 그 틈을 타고 그 인연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모든 행은 항상 머무르지 않는다고 알라.
그리하여 그것은 다하는 것ㆍ떠나는 것ㆍ사라지는 것ㆍ그치는 것이라 보고 잠깐 머무르는 것이라 보라.
그리하여 저 악마 파순로 하여금 그 틈을 구하고 그 인연을 찾더라도
그 틈을 타지 못하고 그 인연을 얻지 못하게 하라.’


이때 존자 비루는 그 뒤를 따르는 비구가 되었다.
그 때에 악마는 다른 곳에서 나이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몸을 바꾸고서
몽둥이를 들고 길 가에 섰다가
존자 비루의 머리를 때려서 피를 흘리게 하였다.



구루손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존자 비루가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뒤따라 온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쁜 악마의 소행인데, 싫증을 내지도 않는구나.’


그 파순은 지옥에서 네 가지 일을 고루 받으니
여섯 감관의 즐거움이 없고 몸이 현재로 고통을 받으며 갈고리에 찍히고 사슬에 묶이게 되었다.



존자 목건련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어찌하여 지옥에 머물면서
온갖 나쁜 일 받게 하는가.
부처님이나 바라문을 범하고
또 이 비구들을 범하였기 때문이다.


알아야 한다,
악마여.
애욕이 다하면 해탈 얻는다고
비구를 위하여 이렇게 말하노니
그 말 듣기도 그처럼 하라.







○ 2020_0905_112206_can_ar47 오대산 월정사
















अरपचन नचपरअ
● 논의주제






अरपचन नचपरअ
● 존재에 대한 일반적 망집-업-생사고통과 수행



<차례>
● 존재에 대한 일반적 망집-업-생사고통과 수행

-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수행의 필요성- 생사고통의 제거
-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
- 생사현실의 정체와 성격
-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 과정
- 현실의 정체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올바른 이해
- 생사고통의 기초적 예방방안 ( 10 선법 및 인천교적인 방안)
- 3계의 생사묶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

- 현실의 정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망집의 제거
- 자신의 정체에 대해 잘못된 분별과 집착의 제거 [아집(我執) 번뇌장(煩惱障)의 제거 ]
- 일반 현상에 대해 잘못된 분별과 집착의 제거 [법집(法執), 소지장(所知障)의 제거 ]-

- 생사현실 일체를 부정하려는 입장과 긍정하는 입장 - 생사 즉 열반의 이론적 이해
- 생사현실내 안인성취와 생사 즉 열반의 실증
- 생사고통을 방치해도 무방하다거나 막행막식도 무방하다는 잘못된 악취 공견의 제거
- 무량행문을 통한 무량 방편지혜 구족과 중생제도





-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수행의 필요성- 생사고통의 제거


현실에서 눈을 떠 세상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의 몸도 보이고 영희나 철수나 꽃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의 정체에 대해 기본적으로 올바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는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




생사현실에서 각 주체는 심한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우선 망집에 바탕해 엉터리로 일정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취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우선 각 주체는 생노병사 과정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생노병사고]

각 주체는 원하는 바와는 달리 이런 생노병사 과정을 맞이해가며 고통을 겪게 된다.
우선 각 주체는 처음 낯선 환경에 태어나 고통을 겪으며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덧 뜻과 달리 늙어간다.
그래서 각 신체 기능이 쇠퇴해져 불편과 고통을 겪게 된다.
또 살면서 사고나 질병을 만나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다가 죽음에 직면하면 이를 피하지 못하고 고통과 두려움을 겪게 된다.

한편 그는 망상분별의 바탕에서 살면서 생사현실의 정체와 그 과정에 대해 잘못 이해한다.
그런 가운데 망집해 바탕해 우선 자신과 자신의 것을 집착한다.
그리고 자신의 좋음에 탐착하고 나쁨에 분노로 반응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현실을 대하고 관찰한다.

즉 대단히 좁게 오직 자신만을 집착한다.
또 짧게 인과를 관찰하며 우선 당장만을 집착한다.

예를 들어 생사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자신과 관련된 것은 모두 끝이라고 잘못 여긴다. [단멸관]
그래서 그는 오직 현재의 한 생만을 고려하며 삶에 임한다.

또 얕게 자신이 초점을 맞추는 부분만을 집착한다.

그런 가운데 그런 좋음을 얻고 나쁨을 제거하고자 희망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소원을 성취할 방안도 좁고 짧고 얕은 인과 관찰에 바탕해 찾는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나간다.
그런 경우 이로 인해 욕계내 다른 생명과 자연스럽게 가해와 피해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망집에 바탕해 소원을 일으키고 업을 행해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업의 장애를 쌓아 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사현실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하게끔 된다. [혹-업-고/ 욕계내 3악도]

한편 이처럼 어떤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업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받게 되는 주체가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배가 고파서 음식을 섭취하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에도 대부분 이를 통해 고통받게 되는 다른 생명이 있게 된다.
그런 경우 그 상대는 또 반대로 그 반대쪽 상대를 해치고 장애하는 업을 행하게 된다.
그런 결과 우선 각 주체는 현실 생활에서 구하는 것을 뜻대로 얻지 못하게 된다. [구부득고]
또 이들은 이를 통해 서로간에 해치고 보복을 행하는 원수관계가 된다.
그래서 각 주체는 살면서 원하지 않는 원수를 만나 서로간 고통을 겪게 된다. [원증회고]
또 반대로 사랑하는 이와는 헤어지는 고통을 겪게 된다. [애별리고]
그래서 망집에 바탕해 일정한 부분을 잘못해 자신으로 취한다고 하자.
그리고 이처럼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그로 인해 그 삶 자체가 모두 고통으로 귀결된다. [오음성고]

결국 현실 일체는 본질적으로 화합을 통해 얻는 것으로서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현실 일체가 변천해가는 가운데 망집에 바탕한 삶은 고통을 맞이하게 된다. [행고]
생사현실 안에서 일시적으로 좋음을 얻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가 애착을 갖는 일체[오음]는 끝내 변화하고 허물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를 통해 결국 고통을 받게 된다. [괴고]
그리고 삶의 현실에서는 각 주체가 원치않는 고통을 직면해 받는 상황에 처한다. [고고]


그래서 삶에서 이런 생사고통이 문제된다.
그런데 이런 고통을 삶에서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먼저 생사고통의 정체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이 발생하는 원인과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이에 바탕해서 생사 고통을 예방하고 또 벗어날 수 있다.


- 생사현실의 정체와 성격

우선 생사현실에서 얻는 일체는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 본 바탕 실재는 공하다.
그리고 생사현실 일체는 그 주체의 마음이 얻어낸 마음 안 내용이다.
그런 사정으로 생사현실은 마치 꿈과 성격이 같다.
즉,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따라서 이에 대해 잘못된 망상분별에 바탕해 집착을 갖고 대하면 곤란하다.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꿈 자체는 생생하게 꿀 수 있다.
그러나 그 꿈 내용은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 얻을 수 없다.
단지 꿈을 꾸는 조건에서 일시적으로 화합해 얻어내는 것 뿐이다.
그래서 꿈은 실답지 않다.

그런데 생사현실이 마치 이런 꿈과 성격이 같다.
생사현실은 그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 그런 내용을 각 주체의 마음에서 화합해 얻어내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것은 실답지 않다.


-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 과정

생사현실에서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리고 생사현실의 정체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온갖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즉 일정한 내용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또는 생멸한다는 등으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이 실다운 내용이라고 집착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망집에 바탕해 일정한 업을 행하게 된다.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다른 주체와 가해와 피해 관계를 중첩해 쌓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해 묶이게 된다. [ 혹- 업 - 고 ]


- 생사고통의 기초적 예방방안 ( 10 선법 및 인천교적인 방안)

생사현실에서 생사 고통을 겪게 되는 데에는 일정한 인과 관계가 있다.
즉, 망상분별 번뇌 - 이에 바탕해 행하는 업 - 고통의 인과관계가 있다. [ 혹- 업 - 고 ]

따라서 생사고통을 예방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이론상 가장 근본적으로 잘못된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것이 쉽지 않다.
생사현실에 처한 주체는 그 망상분별이 뿌리 깊다.
그런 상태에서 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래서 곧바로 그 망상분별을 제거하는 것이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처음에는 기초적으로 고통을 예방할 수 있도록 방안을 취해야 한다.
즉 그런 망상 상태에서도 일단 고통에 곧바로 처하지 않을 방안을 일단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기초적으로 10 선법과 같은 인천교적 가르침이 제시된다.
이는 우선 당장 고통이 심한 3 악도에 처하지 않게 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일단 하늘과 인간을 오가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천교]


- 3계의 생사묶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

한편, 10 선법등을 통해 일단 극심한 생사고통으로부터 멀어졌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제 그런 바탕에서 점차 수행을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계의 수행덕목을 기본적으로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 계의 성취와 복덕자량]
그리고 이후 끝내 망상분별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데 이르러야 한다.


- 현실의 정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망집의 제거

한 주체는 현실에서 다양한 내용을 얻는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현실 내용 각 부분의 정체와 성격에 대해 잘못된 분별을 행한다.
그래서 자신과 외부세상과 관련해 잘못된 분별을 행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과 자신의 것에 대해 가장 강한 집착을 갖는다.
그리고 이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가장 근본원인이 되는 망상분별과 그에 바탕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먼저 자신에 대해 일으키는 잘못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외부 세상에 대해 일으키는 잘못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 현실의 집착의 제거

어떤 이가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자.
그런데 먼저 이렇게 얻는 현실내용의 정체나 성격을 잘못 이해한다.
예를 들어 그런 상황에서 그가 대하는 현실 내용의 정체가 무언가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우선 그 가운데 일부분을 스스로 자신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분별을 바탕으로 다시 그 나머지 부분은 자신 밖의 외부 세계 내용들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이 얻어낸 감각현실을 자신과 외부로 2 분해 구분해 대하게 된다.

그런데 우선 그처럼 일정부분을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기고 대하게끔 되는 사정이 있다.

먼저 한 주체는 그런 부분이 자신이 살아 가는 동안 늘 파악되는 부분으로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런 부분이 늘 영원히 유지되는 내용으로서 자신이라고 잘못 여긴다. [상일]
또 그 부분이 자신 뜻대로 움직이기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잘못 여긴다. [주재]
그리고 그 부분이 감관이 위치하고 주관이 위치한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그 부분은 다른 부분과 달리 깨끗한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상-락-아-정]

그래서 그 부분을 곧 자신으로 잘못 취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이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잘못된 방향으로 행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집의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미리 예방하려 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신견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신에 대한 망상분별은 뿌리가 깊다.
즉 삶을 출발하는 이전 단계에서부터 잘못된 신견을 바탕으로 삶을 출발하게 된다. [구생기신견]
그래서 생을 유지하는 상태에서는 이는 쉽게 제거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선 방편상,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생사고통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선 현실에서 자신에 대해 잘못 갖는 망상 분별을 일단 그대로 둔다.
그런 가운데 일단 10 선법과 같은 기초적 수행을 먼저 행하게 한다.
그래서 인천을 오갈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일단 욕계 내 3 악도 고통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그런 상태는 완전히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난 상태는 아니다.
여전히 생사윤회에 묶여 있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이제 생사의 묶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수행을 행해야 한다.

그래서 먼저 수행에 임해 계의 덕목을 성취하여 업의 장애를 제거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복덕자량을 쌓는다.
그런 가운데 그런 부분에 대해 잘못 일으키는 망상분별을 점차 시정하고 제거해야 한다.

우선 현실에서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이처럼 현실에서 갖는 신견은 분별기에 형성된 신견이다.
그런데 이는 또 태어니기 전 근본적으로 제 7식을 바탕으로 일으킨 신견[구생기 신견]에 바탕한다.
그리고 이런 구생기 신견은 1 생에 걸쳐 계속 지속된다.
따라서 삶을 유지하는한 이는 쉽게 제거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에 바탕해 후발적으로 일으킨 분별기신견도 역시 문제된다.
즉, 이후 이에 바탕해 부작용을 계속 일으키게 된다.
즉 이에 바탕해 계속 잘못된 업을 행하게 한다.
따라서 일단 분별기 신견부터 잘 제거해야 한다.

앞에서 현실에서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기게 되는 사정을 살폈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살피면 그 부분은 그런 특성을 갖지 않는 사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평소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뜨고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손으로 가리켜보자.
그런 부분이 그런 부분의 하나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늘 그런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는가부터 살펴보자.
잠시간만 살펴보아도 사정이 그렇지 않다.
더욱이 갓난아이시절- 청소년시절 - 장년 시절 - 노년시절을 통해 살펴보아도 사정이 같다. [무상]

한편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이 자신 뜻대로 되는 부분도 아니다.
현실에서 자신이 원해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아니다.

한편,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이 자신의 주관이나 감관이 위치하는 영역도 아니다.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은 자신이 현실에서 얻어낸 내용이다.
자신이 얻어낸 내용안에 이를 얻게 한 자신의 감관이나 주관이 들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한편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은 사실은 깨끗하지 못함도 이해해야 한다.
피 고름과 소대변이 차 있다. 또한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내용이다. [부정관]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 갖는 집착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실에서 그처럼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이 무상함부터 이해해야 한다.
또 나머지 현실도 역시 무상한 존재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그에 대한 집착을 완화시킨다. [무상]
한편, 일정 부분을 잘못 자신으로 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에 바탕해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번뇌를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업을 행해감으로써 생사고통을 받아 나가게 됨을 이해해야 한다. [고~ 고집]

한편 그런 가운데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에 참된 진짜로서의 자신이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무아]
그리고 본래 본 바탕 실재에서는 생멸 및 생사 고통을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열반적정]
더 나아가 본 바탕 실재에서는 그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공함도 이해해야 한다. [공]
그래서 기본적으로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 일체개공의 법문을 이해한다.

이처럼 일체에 대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본 진리의 이해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에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견해가 잘못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 [참조: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에 대한 잘못된 망집]

그리고 이런 내용을 통해 현실에서 잘못 갖는 망상분별로서 아상과 아집을 기본적으로 제거한다.
그리고 이런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중단시킨다.
이런 수행을 통해 생사 고통을 예방하고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게 한다.


- 자신의 정체에 대해 잘못된 분별과 집착의 제거 [아집(我執) 번뇌장(煩惱障)의 제거 ]

망집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해 갖는 망집을 잘 제거해야 한다.
한편, 이런 아집을 제거함과 함께 일반 세상에 대해 갖는 망집도 함께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내용은 서로 관련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떠서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자.
그리고 그 가운데 일정 부분을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잘못된 분별에 바탕해 평소 자신과 외부를 구분하게 된다.

그래서 그 나머지 부분은 곧 자신 밖의 외부 세계를 구성하는 내용들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들을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또 그것은 자신의 정신 밖에 있는 내용으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자신의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 물질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모두가 다 함께 같이 얻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여긴다.
즉, 자신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비롯한 세상 사람이 다 이들 내용을 대하는 것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자신과 자신의 것에 대해 집착을 일으켜 업을 행해 나가게 된다.
따라서 이런 망집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한 주체가 눈을 뜨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렇게 얻는 내용은 각 주체별로 그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 현실 내용의 성격이나 의미에 대해서는 이처럼 크게 잘못 이해한다.
물론 현실에서 이처럼 잘못된 분별을 행하게끔 만드는 일정한 배경 사정이 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처음 이해해야 할 내용이 있다.

우선 이와 같은 이해가 잘못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경우 그런 부분의 본 정체는 무엇인가를 다시 이해해야 한다.
한편, 그렇게 각 부분에 대해 잘못 여겼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렇게 잘못 여긴 내용들은 다시 어디에서 올바로 찾아야 하는가도 함께 살펴야 한다.
한편 이 경우 사실이 그러함에도 현실에서 그렇게 잘못 여기게끔 되는 배경사정까지도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우선 먼저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나머지 부분에 대한 잘못된 이해도 함께 시정해야 한다.

우선, 각 주체가 얻는 현실 내용이 있다고 하자.
감각현실이나 느낌 관념 분별 등이 모두 그러하다. (마음 내용)

이 일체는 일단 모두 그가 현실에서 얻어낸 내용이다.
한편, 이들 현실 내용은 그 주체의 '마음'이 얻어낸 내용이다.
즉 이들 현실 내용은 모두 마음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이해를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존재를 시설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마음의 존재를 시설하고 살피는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하다.
그래서 마음의 문제를 파악하기 이전에 다음 사실부터 먼저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즉, 일단 이들 현실 내용이 '그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예를 들어 눈을 떠서 얻는 감각현실이 있다고 하자.
이는 눈을 감으면 얻지 못한다.
그런데 눈을 뜸으로서 그가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일단 이들 현실내용 일체는 그가 '얻어낸 내용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경우 이는 곧 위에 나열한 판단들이 모두 잘못된 판단임을 뜻한다.
따라서 이에 바탕해 우선 다음 내용부터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평소 자신이 현실에서 얻어내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들 내용 가운데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여긴다고 하자.
이런 이해는 잘못이다.
자신이 얻어낸 내용 안에 그 내용을 얻어낸 자신이 거꾸로 들어가 있을 수는 없다.

이를 비유로 이해해보자.
어떤 그릇에 물건이 담긴다고 해보자.
이런 경우 그 물건들은 하나같이 그 그릇이 담아 놓게 된 것들이다.
그런데 그 그릇에 담긴 물건들 가운데 어떤 것을 붙잡는다고 하자.
그리고 그것이 그런 물건들을 담는 그릇이라고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는 거꾸로 잘못된 이해다.
어떤 것이 무언가를 얻어낸다고 하자.
그런데 그처럼 '얻어낸 내용' 안에 거꾸로 '그것을 얻어내는 주체'가 들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다.


평소 자신의 몸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래서 그 부분의 본 정체가 무엇인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일단, 그런 부분은 사실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얻어내는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살핀다면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내용의 일부다.
그렇다고 그런 부분이 자신과 완전히 무관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는 자신과 관련은 된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단지 자신이 걸친 옷과 같은 부분이라고 비유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편, 그런 부분이 자신이 아니라고 하자.
그렇다면 스스로 자신으로 여길만한 부분은 그러면 무엇인가도 잘 파악해야 한다.
한편 그런 부분 대신 스스로 자신으로 여길만한 부분을 찾아낸다고 하자.
이런 경우 다시 그런 부분에는 참된 진짜로서의 자신이 있는가의 문제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 갖는 잘못된 분별을 잘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대부분 현실내용 가운데 일부분을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고 대하게끔 된다.
따라서 다시 현실에서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자꾸 잘못 여기게 되는 배경사정도 함께 파악해야 한다.
즉 어떤 구조와 기제에서 그처럼 현실에서 잘못 임하게 되는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 일반 현상에 대해 잘못된 분별과 집착의 제거 [법집(法執), 소지장(所知障)의 제거 ]-

현실에서 일정부분을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에 잘못 집착한 가운데 업을 행해 나간다.
그래서 이를 먼저 시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 그 나머지 부분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처음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겼다.
그래서 이에 바탕해 그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잘못 판단하다.
즉 그 나머지 부분을 외부세상으로 잘못 여긴다.
또 나머지 부분을 자신이 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또 이들은 마음과는 별개의 외부 물질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들을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이들을 자신과 자신의 것으로 잘못 여기며 집착을 갖고 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해나가게 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이해를 시정해야 한다.


우선, 이들 현실 내용 일체는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이들 현실 내용은 자신 내부에 들어온 내용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 현실 내용이 자신 바깥에 있는 외부 내용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이들 현실 내용은 자신 밖에 있다고 할 외부 세상이 아니다.

한편 이들 현실 내용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그 자신이 얻어낸 내용안에 그 내용을 얻게 한 자신의 감관이나 주관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자신이 얻어낸 내용안에 그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 들어 있을 수도 없다.
즉 현실 내용은 감관이 상대한 외부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감관을 통해 얻어낸 내용물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 안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은 없다.

한편 현실 내용 일체는 모두 그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또 이들 현실 내용은 그 주체의 마음이 얻어낸 내용이다. (마음 내용) [유식무경]
마음의 문제는 별도로 이후에 다시 살피기로 한다.
그러나 여하튼 이들은 마음과 별개로 떨어져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과 별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마음과 구분되는 물질이라고 할 바가 아니다.

또 현실 내용은 한 주체가 그 입장에서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이는 한 주체가 얻는 주관적 내용이다.
그래서 이는 그 주체를 떠나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내용이 아니다.

결국 일반적으로 평소 행하는 판단은 거꾸로 뒤집힌 전도망상분별이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올바로 잘 파악해야 한다.



한편 이와 함께 현실의 본 바탕 실재의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현실 내용 일체는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런데 이 경우 자신이 얻어낸 내용 밖에는 어떤 내용이 어떻게 있는가를 문제삼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은 무엇인가를 찾게 된다.

그래서 이를 본 바탕 실재라고 표현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본 바탕 실재는 어떤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현실에서 얻어내는 내용은, 이 본 바탕 실재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내용을 서로 대조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처음 자신이 얻는 내용 가운데 일부를 외부 세상이라고 잘못 여겼다.
또 일부를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겼다.
또 이들을 외부 물질로 잘못 여겼다.
그리고 이들을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여겼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잘못이라고 하자.

이 경우 먼저 그런 부분의 본 정체는 무언가를 이해해야 한다.

이 경우 그런 현실 내용의 각 부분은 일단 모두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이해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피면 그것은 모두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마음 내용이다.
이는 마음과 관련해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단, 평소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이해가 잘못임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제 반대로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즉, 그렇게 잘못 여긴 내용들에 올바로 해당할 부분은 대신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즉, 평소 일정 부분을 외부세상, 외부대상, 외부물질,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했다.
그런데 그런 각 부분이 그런 성격의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외부세상, 외부대상, 외부물질, 외부 객관적 실재로 올바로 이해할 내용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이 얻어낸 내용들 밖에서 일단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을 놓고 살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얻는 내용 밖'에 그런 내용을 대신 찾아 나선다고 하자.
그런데 이는 결국 본 바탕 실재가 무언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그런 가운데 이 실재에 대한 논의는 입장이 다양하다.

우선 그런 실재는, 자신이 얻는 현실내용과 일치한다는 입장을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자신이 얻는 현실내용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비례하거나 유사하다는 입장도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자신이 얻는 현실 내용외에 일체 내용이 전혀 없다는 극단적 입장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유무의 양변에 치우친 잘못된 입장이다.

현실 내용은 자신이 관계해 얻어내는 내용이다.
그런데 자신과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 실재가 무언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런데 현실에서 한 주체는 자신이 관계해 얻어내는 내용만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그런 주체로서는 문제삼는 본 바탕 실재 내용을 끝내 얻어낼 수 없다.
즉 자신이 관계하지 않는 내용을 각 주체는 끝내 직접 얻을 수 없다. [불가득]

그러나 이는 본 바탕 실재가 전혀 아무 것도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즉, 어떤 내용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 한편 얻지 못하는 가운데 어떤 내용을 있다고 단정해 제시할 도리도 없다.
그래서 그것은 현실에서 문제삼는 2 분법적인 분별을 모두 떠난다.
즉, 무엇이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의 2 분법상의 분별을 일체 행할 수 없다. [불이법]
그래서 실재는 언설로도 표현할 수 없다. [언어도단]
그래서 본 바탕 실재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빌려 공하다고 표현하게 된다. [불가득 공]

그런 가운데 현실을 이런 본 바탕 실재와 관련해 그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실 내용은 한 주체가 현실에서 생생하게 얻고 명료하게 분별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 본 바탕 실재는 그 내용을 한 주체가 얻지 못하고 공하다.

그래서 이렇게 두 측면의 내용을 대조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은 마치 침대에서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그 성격이 같음을 이해할 수 있다.
즉 현실내용은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본 바탕 실재는 한 주체가 얻지 못한다.
그래서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본 바탕 실재에 대한 이해를 통해 현실 내용 일반에 대해 갖는 집착을 제거할 수 있다.
즉 법집을 제거할 수 있다. [법집의 제거]


- 생사현실 일체를 부정하려는 입장과 긍정하는 입장 - 생사 즉 열반의 이론적 이해

생사현실내 생사고통이 문제된다.
그래서 이 생사고통을 제거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리고 생사고통을 다 제거하고 벗어난 상태를 니르바나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현실 내용은 한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그리고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한편, 생사현실은 본 바탕 실재와 비교한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그처럼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에서 잘못된 망집을 일으켜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따라서 이제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을 남김없이 없앤다고 하자.
그래서 본 바탕 실재만 남겨 놓는다고 하자. [택멸 ]
그런 경우 본 바탕에는 본래 이런 생사고통 자체를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본 바탕 실재는 곧 니르바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과 함께 생사현실내 겪는 생사고통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근본적으로 제거함에 있어 위와 같은 상태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 생사 현실 일체를 다 부정하거나 제거해 없애려는 경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원래 수행 목표가 그런 것은 아니다.
생사현실에서 고통만 제거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생사현실과 고통의 본 정체와 발생과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칫 하면 종기가 문제된다고 몸 자체까지 다 제거해 없애려 하기 쉽다.

따라서 다시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현실이 곧 니르바나(고통이 없는 상태)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 바탕 실재는 본래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 니르바나다.
그런데 생사현실은 이런 본 바탕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본 바탕의 이런 사정을 생사현실 안에서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리고 생사현실 안에서 그런 측면을 99% 취해서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생사현실도 곧 니르바나와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고 임할 수 있게 된다. [생사 즉 열반]
그러면 생사현실 안에서도 생사고통이 없는 니르바나의 상태처럼 여여하게 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마치 꿈 안에서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과 성격이 같다.
이를 꿈에 비교해 살펴보자.
꿈을 꿀 때 반복해서 악몽에 시달린다고 하자.
그러나 꿈을 깨면 그것이 꿈임을 이해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꿈을 꿀 때는 다시 그것을 모른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악몽에 번번히 시달린다고 하자.
그런 경우 오직 꿈을 깨고 다시는 꿈을 꾸지 않는 상태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그가 노력해서 꿈을 꾸는 가운데에서도 그것이 꿈인 것을 알며 꿈을 꾼다고 하자.
그러면 꿈을 꾸어도 관계가 없다.
그런 경우는 굳이 꿈을 꾸지 않으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꿈 안에서 얻는 다른 좋음 등도 굳이 포기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런데 생사현실 사정이 이와 같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그러한 본 바탕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가운데 먼저 생사현실을 본 바탕과 대조해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은 마치 침대에서 누어 꾸는 바다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대한 망집을 제거할 수 있다.
한편, 그런 가운데 다시 생사현실 자체는 본 바탕 실재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님도 잘 이해한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이를 본 바탕 실재의 측면으로 이를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이 곧 니르바나의 상태임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상태가 되면 굳이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다고 하여 이를 제거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생사현실내 무량한 선법도 굳이 제거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 이런 입장에서 생사현실내 생사고통이나 수행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다.


- 생사현실내 안인성취와 생사 즉 열반의 실증

생사현실안에서 생사현실이 곧 꿈과 같음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 경우 생사현실 안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당면할 때도 이것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고 하자.
그러면 이론으로만 생사즉 열반이 이해된 것 뿐이다.
그런 경우에는 본래 니르바나인 현실을 거꾸로 생사고통으로 대하는 상태로 남게 된다. [생사즉 열반 => 열반즉 생사]
본래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망집에 바탕해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는 상태로 남게 된다.

생사현실에서 안락함을 누리는 상황에서는 생사현실이 꿈과 같음을 이해할 필요성도 거의 없다.
그것이 필요한 것은 극심한 생사고통에 직면할 상황이다.
본 바탕이 공하다
수행자가 이를 잘 이해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현실의 극한 고통의 상황에서도 평안히 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안인수행이 성취된다고 하자.
그 경우에는 그 수행자가 직접 생사현실 즉 니르바나 (생사 즉 열반) 이라는 명제를 실제로 증득한 상태가 된 것이다.
결국 수행자가 생사즉 열반을 현실에서 증득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생사현실의 극한 고통도 안인 수행으로 잘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상태가 수행에서 갖는 의미가 깊다.
이것이 곧 무생법인이 의미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이상 이전 상태로 물러나지 않은 불퇴전위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대단히 수준 높은 수행자의 상태가 된다.
그래서 사바세계(인토)에서는 이런 수행을 잘 성취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무생법인, 안안의 성취, 불퇴전위의 증득]



- 생사고통을 방치해도 무방하다거나 막행막식도 무방하다는 잘못된 악취 공견의 제거

한편 생사현실이 꿈과 같음을 잘 이해하며 대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경우 생사현실의 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함만을 치우쳐 강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사정때문에 생사현실에서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방치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또는 이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또는 사정이 그렇기에 이전처럼 망집에 바탕해 그대로 행해도 된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또는 사정이 그렇기에 오히려 더 심하게 악을 행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그래서 생사현실내 무량한 온갖 선법까지 다 무시하고 제거하려 하기 쉽다. [악취공견]

생사현실이 완전히 꿈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단지 꿈만 깸으로써도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사현실은 꿈과 성격이 비슷하다.
그러나 생사현실은 정작 꿈은 아니다.
그리고 생사현실은 꿈과 달리 대단히 실답게 여겨지는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
즉,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와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일정한 결과를 엇비슷하게 반복해 받아나간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꿈과 달리 실답게 여겨지는 정도가 강하다.
그래서 이런 생사현실에서 겪게 되는 생사고통도 그대로 방치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생사현실을 실답게 여기는 그 정도에 비례해 이를 극복할 수행방안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공함을 이해한다고 해도 수행과정에서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작은 어려움도 극복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원래의 망집 상태로 물러나 머물며 마음대로 행하려 하기 쉽다.
그런데 이런 경우 생사현실이 차별없이 공함이 그렇게 행함에 대한 근거가 되어준다고 잘못 오해하기 쉽다.

그런데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전 망집상태보다 훨씬 더 심하게 업을 행하게 되기 쉽다.
또 그로 인해 훨씬 신속하게 생사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가 수행과정의 작은 어려움도 그런 이론으로 잘 극복하지 못했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시 그런 업으로 심한 고통에 처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이론적 이해만으로는 그런 고통을 더욱 극복하기 힘들게 된다.

한편 생사현실이 모두 차별없이 공함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리고 이를 통해 그런 고통도 잘 극복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굳이 생사현실 안에서 스스로 업의 장애를 쌓아 고통에 처할 필요는 없다.
일체가 공하다. 현실이 꿈과 같다.
그렇다고 생사현실의 온갖 선법까지 다 함께 없앨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는 중생 제도에도 도움되지 못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실상의 측면과 생사현실의 측면을 놓고 2 중적으로 임해야 한다.
즉, 고통과 번뇌는 일체의 실상이 차별없이 공함을 관하여 제거하고 극복한다.
또한 수행과정에서 겪는 작은 어려움도 이를 통해 잘 극복한다.
한편 그런 가운데 아직 남은 업장으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이를 바탕으로 이런 생사고통을 잘 극복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하는 수행을 잘 성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을 생사고통으로부터 잘 제도해나갈 필요가 있다.


- 무량행문을 통한 무량 방편지혜 구족과 중생제도

수행자가 중생제도를 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중생 스스로는 생사현실을 벗어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수행자가 중생이 있는 생사현실에 같이 들어가 임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수행자는 그 자신부터 생사현실에서 먼저 계를 잘 성취해야 한다.
수행자 자신부터 계를 잘 성취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 결과 수행자 자신부터 생사현실에서 복덕자량을 구족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수행자 자신부터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거나 죄인으로 묶여 지낸다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는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 힘들다.

그리고 계를 구족함으로써 수행자자신부터 업의 장애를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사현실 안에서 복덕자량을 먼저 잘 구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되어야 수행자가 이후 지혜자량을 잘 구족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수행자가 불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잘 제도해나갈 수 있다.
따라서 수행자는 망집을 제거한 바탕에서 무량한 선법을 잘 성취해나가야 한다.

그런 가운데 중생을 제도할 구체적인 방편지혜를 닦아 나가야 한다.
이 경우 중생제도시에는 선교방편을 원칙적으로 취해야 한다.
그러나 또 한편, 중생 가운데는 선교방편으로 도저히 제도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수행자가 그런 사정으로 중생제도를 회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도 중생을 끝내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수행자가 중생제도를 위해 제한없이 온갖 방편을 다 사용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수행자부터 업의 장애를 쌓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수행자는 중생제도를 위해 지옥에 임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수행자는 자신부터 생사현실의 어떤 극한 상황도 평안히 참고 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를 위해 안인을 잘 성취하고 무생법인을 증득해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수행자는 문수보살과 같은 서원을 가져야 한다.
즉, 자신이 설령 지옥에 임하게 되더라도 피하지 않고 중생을 끝내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중생이 갖는 무량한 번뇌에 대응해 이를 해결할 무량한 방편지혜를 닦아야 한다.
그리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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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fl--Alain Bashung - Tant De Nuits.lrc





अरपचन नचपरअ
● 생사현실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실험해 확인하는 방안



<차례>
● 생사현실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실험해 확인하는 방안

- 생사현실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확인할 필요성
○ 1- 눈을 뜨고 감는 행위를 반복하는 실험
- 감각현실의 보관 곤란성
- 감각현실과 분별내용의 구분
- 감각현실은 그 자신이나 외부 세상, 외부대상, 외부물질, 객관적 실재가 아님을 파악하기
○ 2- 눈을 눌러 두개의 달 만들기
○ 3- 돗수가 다른 색안경 이용해 실험하기
○ 4- 다른 사람의 관찰과정을 관찰하기
○ 2!가 얻는 내용이 2! 안의 내부내용 (마음내용)임을 추정함
● 현실 내용이 자신이 얻어낸 '마음' 내용임을 확인하기




- 생사현실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확인할 필요성

생사고통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자신과 세계의 정체에 대해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마음 현상도 살펴야 한다.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욕계내에서 각 주체간에 가해와 피해관계가 되어 업의 장애가 쌓이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악도의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수행을 통해 생사고통을 예방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의 묶임에서 해탈해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청정한 니르바나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어떤 주체가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대하고 얻는다.
그런데 얻는 내용은 별 차이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얻는 현실내용의 정체를 무엇으로 보는가에서 서로 입장이 극과 극으로 다르다.
현실의 일반적인 입장과 경전 입장이 서로 크게 차이난다.

현실의 일반적인 입장은 주로 다음과 같다.
즉, 자신이 얻는 현실 내용 가운데 일 부분을 자기자신의 몸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그 나머지부분을 외부세계 내용으로 잘못 이해한다.
또 그런 현실 내용을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또한 그런 현실내용이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별개의 외부물질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한편 그런 현실내용이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이해한다.
즉 그런 내용이 자신과 영희나 철수가 모두 함께 같이 대하는 객관적 외부 실재로 잘못 이해한다.

- 현실 내용의 본 정체

그런데 이들 현실 내용일체는 '그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그런데 자신이 얻어낸 내용 안에 이런 내용을 얻어낸 자신이 들어 있을 수는 없다.
또 자신이 얻어낸 내용을 자신 외부 세상이라고 할 수 없다.
또 자신이 얻어낸 내용 안에 이런 내용을 얻어내게 한 외부 대상이 들어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들 현실 내용은 그 주체의 '마음'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자신이 얻어낸 현실 내용을 마음과 별개의 외부 물질이라고 이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들 현실 내용은 그 주체가 관계해 그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따라서 이를 모든 이가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할 수도 없다.


- 자신이 얻어낸 내용 밖의 본 바탕 실재

한편, 그 주체와 관계없이 있다고 할 본 바탕 실재가 무언가가 문제된다.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러면 본 바탕 실재에 그런 내용이 있어서 그런 내용을 그처럼 얻는다고 여긴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일정 부분이 자신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또 나머지 부분은 외부세상, 외부대상, 외부물질,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런데 이들 부분이 모두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또 이들 부분은 모두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마음내용'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다시 자신이 얻어낸 내용 밖의 내용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자신과 관계하지 않고도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은 무엇인가의 문제가 있게 된다.
먼저 이 둘은 조금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장래 어딘가를 여행을 간다고 하자.
또는 자신의 감관 등이 변화되는 등 기본과 다른 어떤 상태가 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자신이 얻어내게 될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들 내용도 지금 자신이 얻어낸 내용 밖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내용은 역시 자신이 관계해 얻어내게 되는 내용들이다.
따라서 이 둘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본 바탕 실재로 문제삼는 것은 어떤 주체와도 관계하지 않고도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뜨면 바위 등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다시 눈을 감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경우 직전에 자신이 본 바위 등은 세상에서 사라져 없게 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비록 보지 못해도 그런 내용은 그대로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관계하지 않고도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 내용이 무언가 하는 문제를 살피게 된다.

이런 경우 그 실재에 대해서는 이론상 다음과 같이 여러 형태로 추론할 수 있다.

우선 본 바탕 실재는 자신이 감각해 얻은 현실 내용과 일치한다고 추리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 설일체유부 ]

또는 실재는 자신이 감각하지 못한 상태와 일치하는 내용이라고 추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감아 내용을 얻지 못한 상태와 일치한다고 추리할 수도 있다.

또는 실재는 자신이 얻는 현실 내용과 적어도 유사하거나 비례하는 어떤 내용이라고 추리할 수도 있다. [경량부]
또는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라고 추리할 수도 있다. [ 유식학파 일부 ]


그런데 우선 각 주체는 자신이 얻어내는 내용만 얻어낼 수 있다.
그런 사정으로 각 주체는 여기서 문제삼는 실재를 끝내 직접 얻을 수 없다.
그렇다고 실재 영역에 아무 내용도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하기에 그에 대해 무엇이 있다 없다라고 분별을 행할 수 없다.

그래서 본 바탕 실재에 대한 일반적인 입장은 잘못된 판단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입장은 뒤바뀐(전도된)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이를 올바로 파악하면 이를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사 현실단면에 이런 생사묶임에서 벗어나는 출구가 있다.
즉 이는 3계의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오는 해탈문이다.
또한 색계와 무색계로의 입구도 있다.
그리고 반대로 생사현실 단면에 이런 생사고통에 묶여 들어가게 되는 입구가 있다.
또한 지옥과 아귀 축생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문도 있다.
또한 시공간과 관련된 논의를 살필 재료도 현실 한 단면에 모두 들어 있다.
이처럼 해탈문과 생멸문을 자신이 대하는 하나의 현실 단면에서 모두 찾아낼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기본적으로 현실 일체 내용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점차 이들 현실 내용이 자신의 '마음'에서 얻어내는 내용임을 살펴나가야 한다. (마음내용)
그래서 일단 이 부분부터 확인해야 한다.



- 현실내용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확인하는데 필요한 재료와 실험 방법

먼저 현실 내용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확인해보자.
이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재료는 모두 자신이 대하는 현실 단면에 들어 있다.

따로 어떤 특별한 실험도구나 실험실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런 사정을 스스로 관찰하고 확인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안은 자신이 대하는 그 현실 단면에 모두 들어 있다.

그래서 현실 단면에서 이 사정을 쉽게 실험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런 실험은 누구나 의지만 가지면 스스로 이를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다.
어떤 과학실험실에는 복잡한 관찰기구를 사용할 수도 있다.
병원에서는 복잡한 진단기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과 세계의 정체를 연구하는데 이런 복잡한 측정 도구가 필요하지는 않다.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생사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다.



○ 1- 눈을 뜨고 감는 행위를 반복하는 실험

자신의 감각기관은 눈,귀,코,입,몸이다.
그런데 감각기관에서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눈을 살피자.
일반적인 현실 상태에서 눈을 뜨고 감는 활동을 반복한다.
이를 통해 현실 내용은 그런 동작을 통해 '자신이 얻어내는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다.

- 이 실험과정에 어떤 특별한 실험도구가 따로 필요없다.
단지 위와 같은 동작을 하면서 스스로 그 내용을 잘 관찰해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이런 실험을 함에 있어 먼저 기초적으로 다음 사정부터 잘 살필 필요가 있다.

- 감각현실의 보관 곤란성

먼저 눈을 뜨면 나타나 얻는 내용부터 살피기로 하자.
이 경우 눈을 뜨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일정한 내용이 사라진다.
이를 매 순간 잘 확보해 보기로 하자.

이는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관하는 일은 사실은 잘 안 된다.
눈을 떠 감각하는 내용은 그 순간에 생생하게 얻는다.
그러나 눈을 감고나서 그 직전에 본 내용을 다시 그대로 꺼내보려고 하자.
그러면 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를 한 3 초후까지라도 그대로 보관해 보려고 해보자.
이 역시 되지 않는다.

소리나 냄새, 맛, 촉감 등도 사정이 같다.
예를 들어 '아버지'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는 상황이라고 하자.
그런데 '아'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에 '버지'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버'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에는 '아'나 '지'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또 '지'라른 소리를 듣는 순간에 앞에 들은 '아'나 '버'를 그대로 들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이후 순간까지 보관해 놓을 수 없다.

이런 감각현실내용은 다음 순간까지 보관할 수 없다.
또 다음 순간에 그전 내용을 그대로 다시 되살려 꺼낼 수 없다.

그래서 감각현실이 갖는 이런 특성을 기본적으로 잘 파악해야 한다.

평소 계속 눈을 뜨고 생활하며 사과를 대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감각내용을 계속 유지시키거나 보관할 수 있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즉, 한 순간에 얻는 감각현실이 다음 순간까지 계속 유지된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런데 매 순간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사실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한 순간에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다시 다음 순간에 새 내용을 얻는다.
다음 순간에 얻는 내용은 이전 순간에 얻은 내용을 유지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한 순간에 얻는 감각현실 내용을 확보하는 일은 본래 성취하기 곤란하다.
그렇지만, 여기서 이런 감각현실에 대해 먼저 살펴나가야 한다.
그래서 일단 그 내용을 잘 파악해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감각을 통해 얻는 내용에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다른 내용들과 잘 구분해서 파악해보아야 한다.

이 실험은 어떤 특별한 실험도구나 실험환경이 필요없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내용이 마음의 이해에 대단히 중요하다.


- 감각현실과 분별내용의 구분

망상분별 상태에서는 감각현실과 관념적 분별을 혼동하기 쉽다.

예를 들어 눈을 통해 감각해 얻는 감각현실 내용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생각해 일으키는 분별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 두 내용은 한 순간에 함께 자신 안에 머물 수 있다.
그런 사정으로 이 둘의 지위나 성격을 서로 혼동하며 임하기 쉽다.

이 두 내용을 다음처럼 구분해보자.
현실에서 눈 뜨고 감는 일은 쉽게 행할 수 있다.
현실에서 눈을 감아 보자.
그러다가 눈을 뜨면 그 때 비로소 얻게 되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이를 앞으로 '감각현실'이나 '감각내용'이라고 표현해 부르기로 한다.
따라서 '눈을 통해' 얻는 감각현실이란, 결국 다음 내용을 가리킨다.
눈을 뜰 때 그 순간 얻게 되고, 눈을 감으면 사라지는 내용 일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눈을 반복해 떴다 감았다를 반복한다고 하자.
그리고 매번 이런 순간에 비로소 얻게 되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서 이 내용을 자신이 얻는 다른 내용들과 잘 구분해 본다.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고 이들 내용을 대한다.

이를 다시 관념 분별내용과 구분해보자.
앞과 같이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반복하는 상황이라고 하자.
이 상황에서 '바위'나 '사과'에 대해 생각한다고 하자.
이런 생각은 눈을 감거나 뜨거나 관계없이 계속 행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그 내용은 감각현실이 아니고 분별내용이다.
따라서 한 주체가 얻는 내용들 사이에서 이런 기본적인 구분을 잘 해야 한다.

따라서 이후 논의 과정에서 이 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에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
그런데 논의과정에서 감각현실과 분별내용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마음 내용을 살펴나가기 곤란하다.
따라서 이들을 기본적으로 잘 구분해야 한다.

- 감각현실은 그 자신이나 외부 세상, 외부대상, 외부물질, 객관적 실재가 아님을 파악하기

한편 평소 자신의 몸이나 외부세상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먼저 그런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잘 확인해보기로 한다.

평소 자신과 관련시켜 이해하는 부분이 여럿 있다.

예를 들어 눈을 떠서 볼 때 보이는 내용이 있다.
그외 소리, 냄새, 맛, 촉감 같은 감각내용도 있다. (5식)
그리고 자신이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떠올릴 수 있는 '분별 내용'도 있다.
그 외에 느낌이나 행위 등도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감각하고 느끼고 분별하는 정신작용 자체도 있다.
또 이와는 다른 영역의 내용들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각이나 분별을 못한다고 하자.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신체를 유지해 가게 된다.
이런 경우도 이에 포함시킬 수 있다. (제7식)

그런데 여기서 감각현실을 놓고 먼저 확인해보자.
앞에서 눈을 뜰 때 얻는 내용을 잘 확보해 보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눈을 통해 얻게 되는' 감각현실로 표현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이를 외부 내용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주의해야 한다.

관념분별 내용도 한 주체가 얻는다.
그러나 이는 평소 눈으로 보지 못한다. 그리고 만지지도 못한다.
이런 점이 감각현실과 다르다.
그런 가운데 마음에서 떠올리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외부내용이라고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눈을 떠서 보는 색상 모습은 그렇지 않다.
소리, 냄새, 맛, 촉감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이런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다음처럼 잘못 이해한다.
즉, 일반적 입장에서 자신이 얻는 현실 내용 가운데 일 부분을 자기자신의 몸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그 나머지부분을 외부세계 내용으로 잘못 이해한다.
또 그런 현실 내용을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또한 그런 현실내용이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별개의 외부물질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한편 그런 현실내용이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이해한다.
즉 그런 내용이 자신과 영희나 철수가 모두 함께 같이 대하는 객관적 외부 실재로 잘못 이해한다.

그래서 먼저 이런 감각현실이 그런 내용이 아님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가장 먼저 이들 감각현실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실험은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 뿐이다.

즉, 자신이 감각현실을 얻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런 경우 눈을 뜨면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얻지 못한다.

이제 이렇게 얻는 감각현실을 놓고 생각해보자.
이들 감각현실은 이런 동작을 하는 자신이 그런 내용을 얻어낸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얻어낸 내용 안에 그 내용을 얻어낸 자신이 거꾸로 들어가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이 아님]

한편 그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다.
우선, 이들 현실 내용 일체는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이들 현실 내용은 자신 내부에 들어온 내용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 현실 내용이 자신 바깥에 있는 외부 내용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이들 현실 내용은 자신 밖에 있다고 할 외부 세상이 아니다. [외부세상이 아님]

한편 이들 현실 내용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그 자신이 얻어낸 내용안에 그 내용을 얻게 한 자신의 감관이나 주관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없다.
또 한편 자신이 얻어낸 내용안에 그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 들어 있을 수도 없다.
즉 현실 내용은 감관이 상대한 외부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감관을 통해 얻어낸 결과로서의 내용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 안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나 주관은 들어 있지 않다. [외부대상이 아님]

한편, 이들 내용은 자신의 활동에 의존해 얻는다.
이 실험에서 이들 내용은 자신의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서 얻어지고 변화되고 사라진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자신이 눈을 뜨고 감는 활동에 의존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은 그런 활동이나 관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자신의 활동과 관계없는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 현실 내용은 자신과 관계없이 외부에 그대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객관적 실재라고 할 수 없다. [외부의 객관적 실재가 아님]
이런 사정을 위 실험을 통해 기본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2- 눈을 눌러 두개의 달 만들기

처음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반복했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다음 추가실험을 덧붙이기로 한다.

우선 자신의 손가락을 이용해서 자신의 눈을 누르거나 한다.
그래서 자신이 보는 사물이 두개 겹쳐 보이거나 이전과 달리 보이게 한다.
약간의 연습이 필요하다.

경전에서는 이를 제 2의 달[月] 이라고도 표현한다.
이는 다음 실험이다.
달이 떠 있는데 손가락으로 눈을 누른다.
그래서 달 모습이 이전과 달라진다.
그리고 두 개로 보인다고 하자.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이다.
처음 달이 하나만 보이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일반적으로 각 주체가 눈을 뜨고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내용은 외부 세계를 구성하는 내용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또 이는 자신의 마음 밖에 따로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마음과는 성격이 다른 외부 물질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가 다 함께 대하는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한다.
즉,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다 자신과 같은 내용을 대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들은 잘못된 판단이다.

달을 놓고 실험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이해한 내용이 옳다고 고집하기 쉽다.
그런 경우 앞과 같이 손으로 눈을 눌러 달 모습을 전과 다르게 만든다고 하자.
그래서 한번에 두개의 달이 보이게 했다고 하자.
그리고 처음의 판단을 바탕으로 다시 검토해 보자.

이제 처음 하나였던 달이 외부 세상의 달이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제 달이 두개로 보인다고 하자.
이 경우 외부 세상에 달이 두 개 생겼다고 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여전히 처음 본 달이 외부 세상의 달이라고 고집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이 손으로 눈을 눌러서 순간 외부 세상의 달을 두개로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사실이 아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 본 달을 외부 세상의 달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처음에 자신이 본 달을 자신의 감관이 대한 달로 잘못 여겼다고 하자.
그런데 달이 두 개가 보인다.
그런 경우 두 달 가운데 어떤 부분이 외부대상으로서 달인가.
한편 그것이 대상이라면 감관을 통해 자신이 보게 되는 달 모습이 따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달 가운데 어떤 부분이 감관을 통해 얻어낸 내용인가.
그런 가운데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와 성격이 다른가를 검토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를 통해 평소 자신이 대하던 내용 자체가 본래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이해해야 한다.


○ 3- 돗수가 다른 색안경 이용해 실험하기

돗수가 다른 색안경을 하나 구한다.
그리고 눈을 뜬 상태에서 그것을 계속 썻다 벗었다 한다.
그런 가운데 매 순간 얻는 내용이 어떤가를 스스로 확인해본다.

이는 눈을 눌러 두개의 달을 만드는 실험과 성격이 비슷하다.
다만 오늘날 돗수가 다른 색안경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따라서 과거와 달리 이런 방안을 사용할 수 있다.

처음 눈을 떠 얻게 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 경우 이들 내용의 일부를 처음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리고 나머지를 외부 세계이며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런데 이들 내용이 자신이 안경 하나 쓰고 벗음에 따라 크기나 색이 일순간에 다 변화한다.
그렇다면 자신은 안경 하나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순간 변화시키는 대단한 초능력자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처음 본 현실 내용을 자신이나 외부 세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 자신이 눈을 통해 얻는 현실 내용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다시 잘 검토해야 한다.
즉, 처음에 자신의 몸이나 외부세계로 이해한 내용은 사실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즉 자신이 얻어낸 감각현실이다.

한편, 이처럼 자신이 얻어낸 현실 내용은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마음내용이다.
따라서 마음의 시설문제와 함께 이런 사정을 다시 살펴나가야 한다.


○ 4- 다른 사람의 관찰과정을 관찰하기

현실 내용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자신이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또 눈을 손으로 누르는 실험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무인도에서 혼자 생활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실험에 참여시킨다.
이 경우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다.

그리고 자신과 여러 조건이 유사하다고 보는 사람이면 좋다.
그래서 그런 타인을 자신의 옆에 세운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서 다른 이가 앞과 같은 실험을 그대로 행하게 한다.
그리고 그 각 경우마다 그가 경험하는 변화를 보고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은 이 내용을 옆에서 지켜본다.
그런 가운데 다른 사람의 상태가 자신의 같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그가 보고한 내용을 다시 검토해 본다.

그런데 자신이 그 상황에서 다시 그런 실험을 한다.
이 경우 자신도 그처럼 그렇게 상대에게 보고한다.
그런 가운데 평소 자신이 대한 내용의 의미와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의외로 많다.

먼저 실험 상대를 고를 때 자신과 유사한 상대를 선정해야 한다.
각 생명의 상태가 다 다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문어, 두더쥐, 박쥐, 메뚜기 등을 놓고 실험한다고 하자.
그 경우 먼저 의사 소통이 곤란하다.
또 각 주체가 각 상황에서 얻는 내용이 엇비슷하다고 추정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이 내용을 자신에 적용하기 곤란하다.

이런 사정으로 이 실험에서는 자신과 거의 상태가 비슷한 상대를 선택한다.
다만 어느 경우나 다른 이가 얻어낸 내용을 직접 관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자신과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잘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서로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기본적 언어표현능력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상대가 언어로 보고해주는 내용을 살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각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과 자신의 입장을 바꾸어 오가며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입장을 다시 바꾸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그 상황에 들어가 관찰하고 또 보고해 본다.
그리고 이 내용을 다시 다른 이의 입장에서 거꾸로 다시 검토해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나 일반인은 전도된 망상분별을 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 실험을 잘 한다고 하자.
그러면 전도망상분별 증상을 벗어나올 3 해탈문을 찾아낼 수 있다.
이 문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을 붙여 놓고 설명하기로 한다.

08pfl--image/진리의오류55-4.jpg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3/k0650-t0099-001-01.html#056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
03fl--ghpt/r1030.htm
[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4.jpg




1 이라는 사람이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뜬다고 하자.
그런 경우 눈을 뜰 때 얻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위 그림은 그런 내용을 대강 나타낸 것이다.

그 경우 각 부분의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1! 부분은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게 되는 부분이다.
2! 부분은 그런 자신과 유사하다고 여기게 되는 다른 사람 부분이다.
3! 부분은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없으나 자신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여기게 되는 생명체 부분이다.
4! 부분과 나머지 부분은 일반적으로 생명이 아닌 물체(무정물)로 여기게 되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 철수나 영희가 2! 와 3 과 같은 상태로 있다고 하자.
이들은 자신과 조건이 엇비슷한 상태다.


○ 2!가 얻는 내용이 2! 안의 내부내용 (마음내용)임을 추정함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는 2! 와 같은 부분을 자신과 같은 사람 철수로 여기게 된다.
그런 2!는 자신과 거의 같은 상태다.
그리고 그런 철수 2!는 자신과 가까이 있다.
또 자신과 언어를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런 2! 에게 눈을 감고 뜨고하는 실험을 반복시킨다.
그리고 보고를 하게 한다고 하자.

그러면 2! 가 다음처럼 보고하게 된다.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눈을 뜰 때마다 무엇이 보이지 않다가 보이게 된다"
이렇게 보고한다고 하자.

그런데 1 이 그 상황을 함께 계속해 지켜보았다고 하자.
이 경우 1 의 입장에서는 다음처럼 이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우선 1 입장에서는 철수 2! 가 눈을 뜨거나 감거나 별 변화가 없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철수 2! 는 위와 같은 보고를 반복해 한다.
그래서 2! 가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경험하는 변화는 2! 안의 일이라고 추정하게 된다.

다만 이 경우 관찰자 1 입장에서 2! 가 매 경우 얻는 내용을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다.
단지 2! 가 보고하는 내용만 들을 뿐이다.

여하튼 2! 가 눈을 뜰 때 얻는 어떤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내용은 2! 안 안에서의 일로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관찰자 1 입장에서 2! 가 매 경우 얻는 내용을 직접 확인해 파악할 수는 없다.
그래서 2! 가 위 상황에서 눈을 뜰 때 무엇을 얻었는가를 추정해보기로 하자.

그래서 이제 1 이 앞과 같은 실험을 다시 행한다고 하자.
1 은 현실에서 1! 부분을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런 가운데 관찰하면 2! 와 1! 의 감관이나 육체 상황이 거의 비슷하다.
그런 가운데 그 상황에서 1이 경험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처음 2! 가 눈을 뜰 때 경험한 내용과 엇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뜨는 상황에서 보이는 내용을 확보해보려고 해보자.
그것은 결국 그림에서 나타난 내용 전체다.
그런데 이들 내용이 곧 2! 의 경우 2!가 눈을 뜰 때 얻게 된 내용과 지위가 같다.
그리고 처음 1은 이런 내용을 2! 내부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를 1 자신의 경우에 적용해본다고 하자.
결국 1 이 눈을 떠서 얻게 되는 내용 전체는 사실은 위 내용 전체다.
그런데 이처럼 1 이 눈을 떠 얻는 내용은 결국 1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리고 그가 얻어낸 이들 현실 내용은 1 자신 밖에 있는 내용들이 아니다.

따라서 자신이 얻어낸 내용 가운데 일부분을 곧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기면 안 된다.
또한 이외 나머지 부분을 자신이 대하는 외부 세상이라고 잘못 여기면 안 된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주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
그리고 이렇게 얻어낸 내용은 1 자신에게만 있는 변화다.
따라서 그렇게 여기고 대한 내용은 모든 이가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가 아니다.
따라서 자신이 현실에서 얻어낸 내용은 자신이 이해한 내용이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가 외부세상으로 이해할 내용은 적어도 자신이 얻어낸 이들 내용 밖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관이 대한 외부 대상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이해할 내용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얻어낸 내용 밖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생사를 해탈하게 하는 3 해탈 출입문이 있다.
공해탈삼매, 무상해탈삼매, 무원무작해탈삼매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 해탈문은 생사를 벗어나 해탈하고 니르바나를 얻게 하는 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방안으로 현실을 잘 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해탈문을 현실 단면에서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사용할 수 있다.


현실 내용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이해하게 된다고 하자.
이 경우 자신이 얻어낸 내용 '밖'에 있다고 할 본 바탕 실재는 어떤 것인가가 문제된다.
그런데 한 주체는 자신이 관계해 얻어내는 내용만 얻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얻어낸 내용 밖의 상태는 그 주체가 직접 얻어낼 도리가 없다.
그래서 이를 있다거나 없다거나, 분별할 도리가 없다.
또 언설로 표현할 길도 없다.
그래서 자신이 얻어낸 내용 밖에 있다고 할 본 바탕 실재는 불가득 공하다고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여하튼 이들 본 바탕은 자신이 얻어낸 현실 내용과는 다르다.
그리고 자신이 얻어낸 현실 내용은 이런 본 바탕 실재는 아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의 이해를 통해 우선 현실 내용은 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하게 된다.
즉 침대에 누어 꾸는 엉뚱한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이런 이해를 통해 생사현실에 대해 집착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행하던 업을 중지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 쌓은 업장을 제거하는 수행도 집착없이 잘 행할 수 있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생사현실에서 당장 겪는 생사고통도 잘 극복해나갈 수 있게 된다.
이들이 모두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공해탈삼매]


한편,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이나 외부세상이라고 평소 이해하고 대하고 취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자신의 몸은 어디 있는지 손으로 가리켜 본다고 하자.
또 외부의 바위나 산은 어디 있는지 손으로 가리켜 본다고 하자.
이 경우 자신이 자신의 몸이나 바위 산으로 여기고 가리키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는 곧 그런 부분을 그런 자신이나 바위 산으로 여기고 상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또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한다.
그리고 또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아 나가게 된다.
그런데 앞과 같은 실험과 관찰로 그런 부분이 그가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 아님을 이해한다고 하자 .
그래서 현실에서 그런 각 부분을 취해 그런 내용으로 여기며 임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먼저 무상해탈삼매를 통해 생사고통의 근본을 제거하는 것이 된다. [무상해탈삼매]

또 그런 바탕에서 일으킨 소원과 이를 추구하며 행하던 업을 중지한다고 하자.
그러면 무원무작해탈삼매를 통해 생사고통의 근본을 제거하고 예방하는 것이 된다. [무원무작해탈삼매]

그래서 앞과 같은 방안으로 실험하며 현실의 정체를 잘 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처럼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해탈문을 현실 단면에서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사용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 현실 내용이 자신이 얻어낸 '마음' 내용임을 확인하기

현실에서 어떤 이가 얻는 내용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떠 감각현실을 얻는 과정을 놓고 살펴보자.
현실에서 어떤 이가 눈을 뜬다고 하자.
그러면 일정한 내용이 그 주체의 내부에서 얻게 된다.
그래서 이들 현실 내용은 그가 얻어낸 내용이다.
예를 들어 위에 그림으로 그려진 전체 내용은 1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런데 이를 비유적으로 각 주체의 어떤 그릇에 담기는 과정으로 놓고 이해해보자.
그런데 먼저 그처럼 얻는 현실 내용은 그런 그릇 없이 단지 내부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내용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다.
그래서 먼저 각 주체 내부에는 그런 그릇에 해당하는 것이 있는가가 문제된다.

한편 이제 그런 그릇이 그 주체의 내부에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 과정을 다음처럼 이해하게 된다.
각 주체가 눈을 뜨면 그 주체 내부의 어떤 그릇에 내용물이 담긴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그런 내부의 그릇에서 내용이 사라진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 그 그릇은 각 주체의 육체에 해당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그릇은 그런 육체와는 구분되는 별도의 것으로서 정신적인 것인가.
이런 문제가 있게 된다.

그래서 현실 내용을 단순히 1 내부의 육체에서 일어나는 변화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이와 달리 1 내부안에 정신에서 얻게 되는 내용이라 할 것인가가 다시 문제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물질(육체)와 정신의 의미구분부터 잘 할 필요가 있다.
일단 현실에서 자신이 물질이나 자신의 육체로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
현실에서 그처럼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먼저 손으로 가리켜 보자.

그런데 현실에서는 또 그런 부분과는 성격이 다른 내용도 얻는다.
예를 들어 느낌이나 분별 등을 생각해보자.
이는 평소 자신이 물질이나 육체로 이해하는 내용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이는 적어도 그런 물질이나 육체에 해당하는 부분이 아니라고 서로 구분해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물질과 비물질을 구분하는 기준이 이와 같다.

그런 가운데 우선 그가 평소 자신의 몸으로 이해하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현실 내용을 그가 평소 몸으로 이해하는 부분에서 얻는가부터 살펴야 한다.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미 앞에서 살폈다.

즉 현실에서 평소 자신의 몸으로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부분은 그가 오히려 얻어낸 내용 가운데 일부분이다.
그래서 그가 얻어낸 내용 일부분은 적어도 ' 그런 내용을 얻게 하는 부분[주관이 위치한 부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즉,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최소한 '그가 얻는 현실 내용 일부분'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최소한 이처럼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즉 평소 자신이 평소 자신의 몸이나 육체로 이해하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부분은 곧 자신의 주관내용이 위치한 부분이 아니다.
또 의사나 생리학자가 해부를 통해 관찰하는 그런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런 부분도 그런 주관이 위치한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현실내용은 어느 부분에서 얻는가를 살펴나가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현실에서 얻어낸 내용 밖에서 이를 시설해 찾는다고 하자.
즉 본 바탕에 대해 추리한다고 하자.
이 경우 앞에서 행한 분별이 그대로 연장되어 적용될 수 있다.
즉 평소 자신이 물질(육체)로 이해한 내용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런데 본 바탕 실재에 대해 추리할 때에도 이런 분별을 그대로 바탕해 추리하기 쉽다.
그래서 그 실재는 자신이 평소 육체로 이해한 내용에 대한 것인가, 아닌가를 여전히 문제삼게 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제 3 자인 철수나 영희를 놓고서도 살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철수가 현실에서 무언가를 얻는 과정이 있다고 하자.
이 때 이들 내용은 자신이 평소 철수의 육체로 이해하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아닌가를 살펴야 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자신이 관찰한 내용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의 일 부분에서 제 3 자가 어떤 내용을 얻을 리는 없다.
다만 관찰자인 자신 입장에서 그처럼 잘못 이해하고 대하게 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이 경우에도 자신이 관찰한 내용 밖 본 바탕 실재를 다시 추리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자신이 행한 관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추리해 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들 논의를 다시 추가로 살펴나가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들 현실 내용은 각 주체의 '마음'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리고 이는 이들 현실 내용을 육체 부분에서 얻어낸다고 이해하는 것과는 입장이 크게 다르다.
그리고 이는 수행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낳게 된다.

만일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을 육체부분에서 얻는 것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그는 이로 인해 잘못된 단멸관을 취하게 되기 쉽다.
즉 평소 육체로 보는 부분이 죽음으로 소멸되어 사라진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이후로는 그런 주체와 관련된 내용은 이후 당연히 없다고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래서 잘못된 단멸관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전과 사후사이에 그 주체와 관련된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생사윤회과정도 역시 없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또한 한 주체가 생사 전후에 걸쳐 이어지는 관계도 있을 수 없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한 생에 걸쳐서만 좁고 짧고 얕게 인과를 관찰하여 삶의 방안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넓고 길고 깊게 인과를 관찰하여 찾는 방안과는 대부분 정반대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매생 반복해 받아나가게 되는 주된 원인이 된다.

따라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먼저 생사현실의 본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단멸관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생사현실을 얻는데 관여하는 마음에 대해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마음의 이해를 위해서는 좀 더 추가적인 실험과 설명이 필요하다.

마음은 우선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그처럼 꼭 있다고 해야 하는가가 처음부터 문제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있다고 시설하게 되는 사정을 함께 살펴야 한다.

다만 이는 다음 부분에서 별도로 살피기로 한다. [ 참고 『수능엄경』 ]
참고 ■■■

●마음의 존재 확인 실험
https://buddhism007.tistory.com/4224#005
sfed--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txt
sfd8--불교단상_2562_03.txt ☞ ☞●마음의 존재 확인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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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논의를 통해 이들 내용은 마음에서 얻는 마음 내용임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현실을 살아가는 입장을 놓고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각 주체가 눈으로 사물을 생생하게 잘 본다.
생각도 명료하게 잘 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고 생각하는 데 마음이 개입한다.
그런데 정작 그 마음을 직접 잘 이해하거나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눈으로 세상 모습을 본다고 하자.
그러나 눈은 눈을 잘 보지 못한다.
그리고 스스로 눈의 구조나 기능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지 못한다.

한편 자신은 마음으로 세상의 모습을 보고 얻는다.
그러나 그 자신이 정작 그 마음 자체를 잘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자신의 마음이나 타인의 마음이나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
또 만질 수도 없다.
그리고 그 내용을 파악하는 실험도구가 어디에 따로 있지 않다.
영희의 몸을 해부해서 머리 속을 들여 본다고 하자.
그렇다고 마음을 직접 관찰할 도리는 없다.

한편 불교 경전이나 논서에서는 마음현상에 대해 다음처럼 제시한다.
우선 근본적인 정신으로 제 8 '아뢰야식'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아뢰야식이 한 생의 출발 단계에서 제 7 '말나식'을 분화 생성시킨다.
이는 아견, 아애, 아취, 아집을 일으킨다.
그런 바탕에서 이후 감각을 담당하는 제1,2,3,4,5식과 분별을 담당하는 제 6 식이 분화 생성된다.
이처럼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공한 바탕에서 3 회전을 통해 전도망상분별이 고착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태어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는 3 능변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이처럼 공한 실상을 바탕으로 3 능변이 전개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상태를 배경으로 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러면 현실 내용을 이처럼 대하게 된다.
그래서 그 결과로 지금과 같은 현실 내용을 대하게 됨을 설명하게 된다.

그런데 아뢰야식이나 말나식 등은 일반적으로 낯선 표현이다.
경전에서는 그런 낯선 명칭으로 여러 정신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게 여기게 되기 쉽다.
그리고 이에 대해 다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들 내용은 누가 어떤 실험실에서 어떤 도구로 그런 사정을 파악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을 먼저 갖게 된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마음을 직접 관찰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자신이 대하는 현실 단면에 모두 들어 있다.
따라서 현실 내용을 우선 잘 관찰해 그 정체를 잘 파악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 가운데 현실 내용은 일단 그 주체가 얻어낸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실험방안을 앞에 제시했다.
그런데 다시 각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 그 주체의 '마음'이 얻어낸 내용임을 살피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에도 이들 실험은 기본적이고 중요한 실험방안이 된다.

그외 마음과 관련된 온갖 복잡한 논의가 있다.
예를 들어 아뢰야식은 생사를 넘어 무량겁에 걸쳐 이어진다고 제시된다.
그리고 그런 정신이 한 주체의 생사과정에 관계한다고 제시된다.
그런데 생사를 전후해서 발생하는 이들 내용은 또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근본정신이 무량겁에 걸쳐서 이어진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내용은 지금 대하는 이 현실 단면에도 그렇게 있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현실단면을 붙들고 거꾸로 이 과정을 잘 파악해 나가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해보기 위한 수행이 필요할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 정려 수행부터 잘 성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스스로 자리를 잘 잡고 앉아서 숨쉬고 숫자를 세며 마음을 집중한다.
그리고 마음 안에 객진번뇌 쓰레기를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미세먼지에 해당하는 객진번뇌를 가라앉힌다.
그리고 제거한다.
이런 마음 훈련부터 잘 행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경우 마음의 렌즈가 깨끗해진다.

그리고 이 마음이 관찰을 행하는 관찰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문제되는 그 마음을 잘 붙들고 살펴나가야 한다.
이것이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하는 방안이고 실험도구가 된다고 할 것이다.

◧◧◧ para-end-return ◧◧◧














अरपचन नचपरअ
● 마음의 구조와 기제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


<차례>
● 마음의 구조와 기제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

- 망집을 일으키게 되는 배경사정 이해를 위한 마음 이해
- 생사윤회 과정과 인과 이해를 위한 마음 이해
-- 잘못된 단멸관을 제거하고 생사윤회의 주체를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이해
-- 무아 무자성과 생사윤회의 주체를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이해
- 생사를 이어 수행하는 수행자와 수행기간을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이해
- 생사현실에서 중생제도 서원을 성취하기 위한 전제로서 마음의 구조의 이해
- 마음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을 위한 마음의 구조의 이해



- 망집을 일으키게 되는 배경사정 이해를 위한 마음 이해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남에 있어 망집의 제거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평소 갖는 자신과 세상에 대해 갖는 이해가 있다.
현실에서 일정부분을 취해 그것을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나머지 부분을 외부세상이나 외부대상, 외부물질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들을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도 잘못 여긴다.
그런데 이들 현실내용은 모두 '자신'이 얻어내는 내용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자신의 '마음'이 얻어내는 마음 내용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평소 이해하는 내용은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잘못된 망상분별과 집착의 제거가 잘 안 되는 사정이 있다.

우선 망집을 일으키게끔 하는 배경사정이 깊이 잠재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망집이 잘못임을 이해하게 된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망집을 일으케끔 하는 배경사정 자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즉 현실 상황 자체는 그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에 임하는 이상 계속해서 같은 바탕에서 망집을 일으키게끔 된다.
그리고 현실 내용을 놓고 대하면 오히려 평소 이해하던 내용이 옳은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그 사정을 다시 이해할 필요가 있게 된다.

만일 이런 추가 설명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과 같이 잘못된 생각을 거꾸로 행하게 되기 쉽다.
1 우선 현실의 일반적 이해가 망상분별이어서 잘못이라고 하자.
2 그런데 현실 내용을 놓고 대해 보자.
3 그러면 처음 주장이 오히려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즉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이 여전히 자신으로 생각된다.
또 평소 외부 세상이며 외부 대상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여전히 외부세상이며 대상인 것처럼 생각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여 가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평소 자신으로 여긴 그 부분만 그렇게 움직여 이동한다.
또 자신이 무언가를 손을 대 만지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의 손이 그것을 대할 때 촉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고 외부 세상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과 영희 철수가 모두 엇비슷한 내용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런 현실 경험은 평소 이해한 내용이 오히려 옳은 판단이라고 여기게끔 만든다. [잘못된 귀류논증]

=> 그렇다면 처음 주장이 오히려 잘못이라고 해야 한다.
즉 현실의 일반적 이해가 잘못된 망상분별이라는 주장이 오히려 잘못이라고 해야 한다.
=> 그래서 평소 자신이 갖던 이해가 옳다.
이런 식으로 잘못된 입장을 취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그 반대 입장도 물론 가능하다.
1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이해가 옳다고 하자.
2 그런데 경전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현실 내용을 놓고 하나하나 검토해보자.
3 그러면 처음 주장이 오히려 들어맞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 귀류 ]

예를 들어 현실 내용은 일체가 그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자신이 얻어낸 내용 안에 그 자신이 들어가 있을 수는 없다.
또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 자신 외부에 있는 외부세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 곧 이를 얻게 한 외부 대상이며 외부물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신이 관계하지 않고도 있다고 할 내용을 본 바탕 실재라고 표현하자.
그런데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할 수는 없다.

=> 그래서 현실의 일반적 이해는 잘못이다.
=> 그래서 경전 입장이 옳다.
이런 식으로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위와 같이 대립되는 두 내용을 제시받는다고 하자.
그런데 위 두 입장이 언뜻 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이런 경우 서로 모순되는 두 입장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오직 이런 상태로만 논의를 그친다고 하자.
그러면 앞에 제시했듯, 그 이해가 불충분한 상태로 남게 된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를 놓고 다음처럼 이해하게 되기 쉽다.
경전에서 제시되는 처음 주장도 그럴 듯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현실을 놓고 보면 오히려 평소 가졌던 이해가 더 옳은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두 주장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둘을 적당히 절충하고 오락가락하는 자세를 취하기 쉽다.
예를 들어 수행할 때는 경전 내용을 존중한다.
그러나 그가 시장에 들어가 물건을 살 때는 다시 일반적인 상태 그대로 임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 임할 때는 주로 기존에 가졌던 입장대로 임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다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본래 일반적인 이해가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세간의 일반적인 이해가 오히려 더 옳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에 대해 다시 추가적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렇게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끔 되는 그 배경사정까지 추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그 배경이 되는 자신의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하나하나 살펴나가야 한다.
즉 어떤 구조와 기제에서 그렇게 잘못된 망상분별을 반복해 일으키게 되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불교내 유식학은 먼저 이런 현실 내용 일체가 마음안 내용임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다시 현실에서 각 주체가 이렇게 임해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 배경사정을 제시한다.
즉 각 주체는 일정한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이런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여기서 일단 그런 일정한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기호로 ♨로 표시하기로 하자.
그런 경우 각 주체는 생을 출발하는 과정에서부터 공한 가운데 전도망상을 일으키게 된다. [3능변]
그리고 이후 일정한 마음의 구조와 기제 ♨를 바탕으로 생사현실에 임해 현실 내용을 대하게 된다.
따라서 그러한 일정한 마음의 구조와 기제♨가 곧 현실에서 망상분별을 일으켜 임하게 된 배경사정이다.
즉,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 임하면 그처럼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게끔 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이런 상태로 임하는 경우, 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행하게 되기 쉽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평소 잘못 이해한 내용을 오히려 옳은 판단이라고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리고 경전 내용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게 되기 쉽다. [잘못된 귀류논증]
그래서 이 경우 자신이 평소 판단이 오히려 잘못된 판단임을 잘 이해해야 한다.


앞에서 생사현실에서 각 주체가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 사정을 일부 살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여 가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평소 자신으로 여긴 그 부분만 그렇게 움직여 이동한다.
그래서 그런 부분이 오히려 자신이라고 잘못 판단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이는 마음에서 얻어진 부분이 그처럼 움직인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마음에서 보게 된 것 뿐이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눈을 감아 보지 못해도 그런 동작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그런 동작을 할 때 부대상황으로 함께 마음에서 얻게 된 내용일 뿐이다.

또 자신이 무언가를 손을 대 만지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의 손이 그것을 대할 때 촉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고 외부 세상처럼 잘못 여겨진다.

그러나 이 경우도 앞과 마찬가지다.
이들은 촉감을 느낄 시점에 눈을 통해 얻게 된 내용일 뿐이다.
그래서 눈을 통해 본 내용을 대상으로 촉감을 얻는 것이 아니다.
또 촉감을 얻는 기관도 눈을 통해 본 그런 부분이 아니다
단지 그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함께 보게 된 것 뿐이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눈을 감아 이들 내용을 보지 못해도 그런 촉감은 그처럼 얻는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본 내용이 촉감을 얻는 과정에 작용하는 외부대상이나 감관이라고 혼동하면 곤란하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자신과 영희 철수가 모두 엇비슷한 내용을 경험한다.
그래서 자신이 얻은 내용이 곧 외부의 객관적 실재인 것처럼 잘못 여기기 쉽다.
그런데 이 경우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다른 이가 얻는 감각현실의 경우에는 제 3자가 직접 꺼내 확인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자신과 영희와 철수 등은 서로 비슷한 감관을 갖는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에서는 서로 엇비슷한 내용을 얻으리라고 추리된다.
그리고 서로 언어 소통을 통하여 서로 얻은 내용을 보고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어떤 관찰자가 보고한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다른 이가 그 관찰자의 입장에 들어가 다시 관찰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처음 관찰자가 보고한 것과 비슷한 내용을 또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사정에서 한 관찰자가 관찰한 내용은 곧 외부의 객관적 실재인 것처럼 잘못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예를 들어 하나의 조각상을 놓고 영희와 철수와 함께 앞 뒤로 둘러 앉아 이를 본다고 하자.
그것이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조각상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서로 같은 조각상 내용을 얻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영희가 조각상 뒷 모습을 본다면 철수는 앞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영희가 조각상 오른쪽 모습을 본다면 철수는 왼 쪽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대화를 통해 보고를 들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각 주체가 각 순간에 보게 되는 모습은 일단 내용면에서도 서로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한편, 한 사람이 보는 경우조차도 왼쪽 눈과 오른 쪽눈을 통해 본 내용이 서로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은 그 주체가 얻은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모든 이가 대하는 객관적 외부대상도 아니다.

예를 들어 영희가 무언가를 보는 상황이라고 하자.
이 경우 영희는 자신이 눈을 통해 얻어낸 내용을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또 철수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각 주체는 다른 주체가 얻은 내용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상황에서 이들이 함께 대하는 외부대상은 각 주체가 얻은 내용들 '밖에' 있다고 일단 추리해야 한다.
따라서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이 곧 모든 이가 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또한 마찬가지 사정으로 한 주체가 얻은 내용을 곧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

각 주체가 얻은 내용은 각 주체가 관여하여 얻은 내용이다.
그런데 그처럼 얻은 내용 '밖'에 그 주체와 관여하지 않고도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의 내용이 무언가가 문제된다.

한 주체가 어떤 내용을 얻을 때, 그와 일치하는 내용이 곧 외부에 그대로 실재한다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무언가가 관여하고 화합하면 그 이전상태와 달라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염소와 나트륨이 화합하면 이후 이 둘과는 모습과 성품이 전혀 다른 소금이 나타난다.
그래서 한 주체가 내용을 얻는 과정이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도리는 없다.
오히려 일반적인 경우를 놓고 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 본 바탕 내용은 최소한 그런 주체가 관여해 얻은 내용과는 다르다고 추리해야 한다.

한편, 각 주체가 얻은 내용을 언어를 통해 검토해본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 내용이 제각각 각 상황마다 조금씩 다름을 보게 된다.
또 한 주체가 각 눈이나 각 감관을 통해 얻는 내용을 놓고 이들 각 내용을 스스로 검토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각 내용이 서로 다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한 주체는 오직 그가 관여해 얻어낸 내용만 얻을 뿐이다.
그런 사정으로 여기서 문제삼는 마음 밖 본 바탕 실재는 각 주체가 끝내 얻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본 바탕 실재는 불가득 공하다고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을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현실에서 각 주체는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내용이 갖는 성격이나 의미에 대해 다양하게 잘못된 분별을 행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처럼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배경 사정이 있다.
즉 일정한 마음의 구조와 기제 ♨를 바탕으로 각 주체는 그런 망상분별을 행하게끔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배경사정을 이해하려면 마음의 구조와 기제에 대해 자세히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



- 생사윤회 과정과 인과 이해를 위한 마음 이해


마음의 이해는 수행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수행은 생사윤회 과정에서 겪어 나가는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생사윤회의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 생사과정을 걸쳐서 넓고 길고 깊게 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인과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짧게 한 생의 인과로 한정되지 않는 사정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윤회과정에서 무엇이 생사윤회의 주체가 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또 생사고통을 올바로 제거할 방안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 잘못된 단멸관을 제거하고 생사윤회의 주체를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이해

단멸관이란 자신이 한 생에서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는 입장이다.

먼저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이는 잘못된 이해다.

그런데 보통 그런 부분을 잘못 여겨 자신으로 취한다.

그런 경우 그런 부분이 죽음으로 소멸되어 사라진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이후로는 그런 자신과 관련된 내용은 당연히 없다고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래서 잘못된 단멸관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사후에 자신과 관련된 것이 없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생사윤회도 역시 없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한 주체와 관련해 생사 전후에 걸친 관계도 없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한 생에 걸쳐서만 좁고 짧고 얕게 인과를 관찰하여 삶의 방안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넓고 길고 깊게 인과를 관찰하여 찾는 방안과는 대부분 정반대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매생 반복해 받아나가게 되는 주된 원인이 된다.

따라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먼저 생사현실의 본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단멸관을 잘 제거해야 한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생사현실 과정에서 생사 전후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생사전후과정에 걸쳐 이어지는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무아 무자성과 생사윤회의 주체를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이해

한편 생사과정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생사현실에서 무엇이 주체가 되어 생사윤회과정을 밟아 나가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생사과정에 관여하는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이를 위해서는 무아, 공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우선 현실에서 자신으로 잘못 여겨 취하는 일정 부분이 있다.
이는 잘못된 이해다.
그런 부분은 모두 그가 얻어낸 내용이다. [색,수,상,행,식]
그리고 그런 부분은 참된 진짜라고 할 자신이 아니다.
그리고 참된 진짜라고 할 자신은 이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무아 무자성이라고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무아 무자성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다시 무엇이 주체가 되어 생사 윤회과정을 밟아 나가는가가 문제된다.

이를 위해서는 생사 과정을 먼저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각 주체는 우선 일정한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생사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망집을 일으켜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취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주체가 망집을 바탕으로 이처럼 일정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겨 취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 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그로 인해 업의 장애를 쌓아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집과 업의 장애가 제거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상태로 계속 생사현실에 임하게 된다.
따라서 생사윤회 과정은 그처럼 망집을 일으키게 하는 마음의 구조와 기제♨가 그 바탕이 된다.

그런 바탕에서 매순간 각 주체가 자신으로 잘못 여기는 부분들을 나열해 잇는다고 하자.
그래서 이번 생에서 어린아이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를 이처럼 나열해 잇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한 주체가 자신의 일생동안의 변화과정으로 이해하는 내용이 된다.

한편, 생사 전후를 잇는 생사윤회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정한 정신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매 생 매순간마다 자신으로 잘못 여기게 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망집에 바탕해 매 순간 자신으로 잘못 여겨 취하는 부분을 잇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곧 한 주체가 생사 윤회과정을 겪어 나가는 변천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생사과정에서 무엇이 주체가 되어 생사윤회과정을 밟아 나가는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생사과정에 관여하는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어떤 변치않는 A 가 변치 않는 아와 자성으로 공통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어린아이때 어떤 A 가 있고, 그 A 가 노인이 된 상태로 이동해 옮겨 온 것이 아니다.

단지 일정한 정신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매 순간 망집을 일으켜 얻는 내용이 그처럼 있게 되는 것뿐이다.
이런 경우 각 주체는 스스로 일정부분을 자신이나 외부세상으로 여기며 가리키게 된다.
그런데 그 매 현실 단면마다 그가 이해하는 내용을 그런 부분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가 가리킨 부분의 정체는 그가 얻어낸 내용이다.
즉 그의 마음이 얻어낸 마음내용이다.
그래서 그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다.
감각현실 안에는 관념분별을 얻을 수 없다. [ 무상해탈삼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관념분별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관념분별 안에서는 감각현실을 얻을 수 없다. [ 변계소집상의 상무자성]

또한 본 바탕 실재 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생사현실은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해야 한다. [공해탈삼매 ]
무아 무자성 공은 바로 이런 측면을 제시한 것이다.
또 그가 일으킨 분별에 상응한 부분은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 찾아내야 한다.
본 사정은 이와 같다.

그렇지만, 생사현실에서는 매 순간 각 주체는 일정한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얻게 되는 각 내용을 취해 자신과 세상으로 잘못 여기고 임한다.

그래서 이런 현실 내용을 통해 무아 무자성과 생사윤회의 관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현실에서 망집을 바탕으로 현실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우선 현실에 자신이 분별하는 일정한 내용 a, b, C 등이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 그런 가운데 이들 각 내용의 생멸함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즉 무언가 C 가 없다가 있게 되고, 또 반대로 있다가 없게 되는 현상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생멸현상에 일정한 요소가 연기관계로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들 각 현실 내용을 일정한 연기관계를 통해 그처럼 얻는다고 하자.
그래서 예를 들어 현실에서 C 라는 내용을 a + b => C 와 같은 인과관계를 통해 얻는다고 하자.

그런데 바로 이런 관계 자체가 이들 내용이 무상, 고, 무아, 무자성, 열반적정 불가득 공임을 알게 해준다.
즉 C 는 앞의 a + b 가 주어진 조건에서만 일시적으로 화합해 얻게 되는 내용이다. [무상]
또 이 관계는 그런 조건으로 이를 얻고 또 그런 조건이 무너지면 소멸되고 얻지 못해 고통을 줌을 말한다.[고]
또 이 관계는 C 가 그런 관계에서만 얻는 것이므로 꿈과 성격이 같고, 참된 진짜가 아님을 나타낸다. [무아, 무자성]
또 이 관계는 현실에서 문제삼는 생사고통은 본래 그런 관계에서만 얻는 것임을 나타낸다.
그래서 그런 관계를 떠난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본래 얻지 못함도 나타낸다. [열반적정]
그리고 이런 관계를 떠난 본 바탕은 이들 내용을 얻지 못하여 공함도 나타낸다. [공]

따라서 망집에 바탕해 취하는 생사현실의 각 내용은 곧 무아, 무자성을 알게 해주는 근거가 된다.

한편, 생사현실 내용은 곧 무아 무자성을 바탕으로 마음에서 화합해서 얻게 된다.
만일 꿈과 달리 참된 진짜로서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앞과 같이 화합해 무언가 현실 내용을 얻는 현상이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생사현실은 곧 무아 무자성을 바탕으로 얻게 되는 내용이 된다.
그런 사정으로 무아 무자성은 망집에 바탕한 주체가 생사윤회를 겪는 바탕이 된다.
결국 무아 무자성은 생사윤회가 성립하는 근거와 바탕이 된다.
또 반대로 생사현실과 생사윤회는 그런 생사현실이 곧 무아 무자성임을 파악하게 해주는 근거가 되어준다.
그래서 무아 무자성과 생사윤회의 주체는 이런 바탕에서 그 관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편, 생사윤회과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래서 생사 전후 과정에서 구체적 내용 사이의 인과를 살피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생사과정에 관여하는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경우 그런 마음의 구조와 기제는 생사과정에서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다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생사 과정을 걸쳐서 넓고 길고 깊게 인과를 관찰할 바탕이 마련된다.

또한 생사과정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인과관계를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즉, 생사과정을 통한 혹[무명번뇌]-업-고의 인과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과정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예방하고 극복할 방안도 찾아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이처럼 생사 과정에 관여하는 마음에 대해 먼저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취지로 마음의 내용을 잘 살펴나가야 한다.



- 생사를 이어 수행하는 수행자와 수행기간을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이해

생사현실은 한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그리고 그 주체의 마음이 얻어낸 마음 내용이다.
따라서 이를 자신이나 외부 세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자신이나 외부 세상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안에 들어 있다고 이해한다고 하자.
이는 이치에 맞지 않다.

이를 그릇을 비유로 들어 생각해보자.
그릇에 물건이 담겨져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담는 그릇(자신)이 그런 물건에 들어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이는 잘못된 이해다.
이와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얻어낸 내용 가운데 일부를 자신이라고 여기면 잘못이다.
또 자신이 얻어낸 내용 가운데 나머지를 외부 세상이라고 여기는 것도 잘못이다.
또 자신이 얻어낸 내용을 외부대상, 외부물질,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여기는 것도 잘못이다.

또한 생사현실에서 생멸이나 생사를 본래 얻을 수 없다.
또한 행위자와 행위 대상, 그리고 행위를 얻을 수 없음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우선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다.
다만 한 주체가 일정한 내용을 얻고 망집을 바탕으로 그렇게 잘못 여기는 것 뿐이다.
따라서 평소 그에 대해 갖는 집착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이 모두 잘못이라고 하자.
그래서 생멸 생사나, 행위나 행위자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사정이 그렇다면 생사현실에서 그런 수행을 행하는 주체와 수행은 무엇인가를 다시 이해해야 한다.

언뜻 생각하면 다음처럼 여기기 쉽다.
행위와 행위자를 얻을 수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수행하는 이도 없고 수행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누가 어떻게 수행한다고 하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갖기 쉽다.

이는 본래 무아 무자성 공과 생사현실에서 수행자의 수행 관련성을 이해하는 문제다.
그러나 이는 한편 무아 무자성 공과 생사윤회과정의 관계를 이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부분은 이미 앞에서 살폈다.

본래 현실에서 각 주체나 행위를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이해해서 생사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일정한 정신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망집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게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이 얻어낸 내용의 일부분을 각기 자신과 외부세상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본래의 자신이 아니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그런 망상분별은 일정한 정신 구조와 기제♨가 그 바탕이 되어 있다.
즉, 그런 배경사정을 바탕으로 그처럼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이해하게끔 된다.
그리고 이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나간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
그리고 일반적인 생사현실의 상황은 바로 이와 같다.
따라서 생사현실안의 생사고통의 해결이 문제된 것이다.
즉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지만, 이 안의 생사고통의 해결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고통을 얻게 되는 원인의 제거가 필요하다.
그래서 망집에 바탕한 업을 중단해야 한다.
또 쌓아 놓은 업장을 제거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근본원인이 되는 망집 자체를 잘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망집은 곧바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다.
그 배경사정이 뿌리가 깊다.
즉, 생사출발시부터 망집을 일으키게끔 되는 배경사정이 깊게 잠재되어 있다.
각 주체가 일정한 정신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그런 망집을 일으키게끔 된다.
따라서 현실에서 삶에 임하는 상태에서는 그 배경이 된 망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생사현실의 사정부터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자도 처음 이런 상태에서부터 수행을 대부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수행은 또 그렇게 잘못 이해하는 그런 부분을 바탕으로 행해 나가게 된다.

따라서 그런 상태에서 일단 생사고통을 벗어나려고 한다고 하자.
물론 생사현실에 대한 일반의 이해는 옳지 않다.
그렇더라도 일단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는 이를 그대로 바탕으로 하게 된다.
이런 망집의 바탕에서는 현실에서 각 주체가 그처럼 잘못 여기고 대하는 이들 내용이 중요하다.
즉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의 상태를 각 주체가 집착하며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가운데 일단 당장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마찬가지로 매순간 자신으로 잘못 여겨 취하는 부분의 상태를 좋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일단 10 선법을 성취해야 한다. [인천교적인 기본가르침]

그런 가운데 점차 생사현실의 묶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해 먼저 계의 수행덕목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쌓여진 업의 장애를 잘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일단 중단해야 한다.
그래서 이로 인해 받게 될 장래의 생사고통을 예방해야 한다.
그런데 수행자는 이런 수행을 처음 생사현실에 처한 가운데 행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후 생사고통의 근본원인이 되는 망집을 점차 잘 제거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점차 이해해 나가야 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자신이 분별하는 내용은 본 바탕 실재에서는 얻을 수 없음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 내용은 마치 침대에서 꾸는 바다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해야 한다.
현실내용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따라서 이런 깨달음을 통해 현실에서 일으키는 망집과 업을 잘 제거해야 한다.

또 이런 망집을 제거하기 위해 그런 망집을 갖게끔 되는 그 배경사정까지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마음의 구조와 기제에 대한 자세한 이해까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런 노력을 통해 근본적인 망집까지 잘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행하는 분별이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깨닫고 잘 이해하게 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것만으로 그런 망집을 일으킨 정신구조와 기제가 곧바로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즉 그런 이해만으로 근본 배경사정 자체가 곧바로 바뀌거나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즉 망집을 일으케끔 하는 현실 상황 자체는 그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그런 바탕에서 역시 생사현실을 계속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해만으로 곧바로 그 생사 현실을 곧바로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서도 바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예방하고 제거하는 노력도 바로 그런 바탕에서 계속 행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곧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을 일단 받아들여 수행에 임해야 한다.
따라서 그런 바탕에서는 생사현실에서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망집의 제거만으로 정신구조와 기제가 곧바로 해체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망집을 방치하면 그 바탕에서 다시 2차적으로 생사고통을 증폭해 받게끔 된다.
따라서 일단 생사현실 안에서 갖는 망집부터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행하던 업도 중단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근본적인 망집을 제거해 나가는 방향으로 임해야 한다.

한편, 망집에 바탕해 생사현실에서 자신이나 외부세상, 대상 등으로 잘못 여기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본 바탕에 비추어 보면 이런 이해는 잘못이다.
그렇지만, 수행자도 역시 현실에서 이들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수행에 임해야 할 사유가 있다.

생사현실은 본래 꿈처럼 실답지 않고 공하다
그렇다고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생사현실은 꿈과 같다.
그러나 정작 꿈은 아니다.
꿈과 달리,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한 결과를 반복해 받아나간다.
이는 마치 전자게임이나 그림이나 연극과 같다.
이들 내용은 하나하나 현실의 다른 영역에 실답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일정한 관계에서 일정한 내용을 반복해 얻어나가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생사현실은 꿈과 달리 이를 실답게 잘못 여기게 되는 특성이 강하다.
그래서 그 정도에 비례해서 이를 극복할 수행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생사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고 공하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하여 생사현실 일체를 완전히 무시하고 부정할 수는 없다.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 문제는 비유하면 몸에 생긴 종기와 같다.
이 종기를 제거하기 위해 이들의 정체와 그것이 발생하게 된 근본원인을 살핀 것이다.
또 이들 원인을 미리 제거하여 예방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기를 제거한다고 몸 일체를 제거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생사현실에서 많은 무량한 선법까지 없애면 곤란하다.
또 중생제도를 위해서도 생사현실에서 적극적으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경우 생사현실 과정에서 과연 누가 어떻게 이런 수행들을 행하는가를 다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그런 수행으로 어떤 주체가 어떤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되는가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어떤 주체가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게 되는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즉 본래는 그런 내용을 일체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각 주체가 일정한 정신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망집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 임하게 된다.
따라서 이후 생사고통을 제거하는 수행도 바로 그런 바탕에서 행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는 일도 그런 바탕에서 행해 나가게 된다.
결국 이런 수행을 하는 주체와 수행행위는 바로 이와 같은 정신구조와 기제♨ 바탕에서의 일이다.

즉 일정한 정신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처음 망집을 일으킨다.
따라서 이런 정신구조와 기제♨는 결국 망집을 일으키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자신과 세상을 잘못 이해하고 대하게 된다.

그런데 중생의 입장에서는 이들 내용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사윤회와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그래서 이런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수행이 바로 그런 바탕에서 필요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수행도 바로 그런 바탕에서 행해 나가게끔 된다.
그리고 그것은 또 그런 정신구조와 기제♨가 유지되는 무량겁의 기간동안 계속 수행자가 행해야 할 일이 된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이해함에 있어서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 생사현실에서 중생제도 서원을 성취하기 위한 전제로서 마음의 구조의 이해

한편, 수행자만은 이제 생사현실에 대한 일반의 이해가 옳지 않음을 파악한 상태라고 하자.
그리고 수행노력을 통해 자신이 일단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일단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망집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생사현실에 임해야 할 사유가 있다.

우선 수행자만은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났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다른 주체들은 여전히 망집에 바탕해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그래서 수행자는 자비심을 바탕으로 다른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끔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중생들이 망집을 일으킨 경우 스스로 그 망집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수행자는 다른 중생이 임하는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중생과 눈높이를 같이 하여 임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수행자부터 생사현실이 곧 니르바나 (생사 즉 열반)임을 먼저 이치상으로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본 바탕이 공함을 이해한 가운데 임한다고 하자.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한 가운데 임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는 마치 꿈 안에서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꿈을 꾸는 상황과 같다.
그런 경우 꿈안에서 겪는 내용 일체가 모두 문제되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는 생사현실 안에서도 생사의 묶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런 가운데 중생 제도에 필요한 일정한 내용을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수행자는 복덕자량도 기본적으로 구족해야 한다.
또 이를 통해 신상도 구족해야 한다.

본래 중생들이 생각하는 그런 상이나, 복덕, 지혜는 본래는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중생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수행자는 역시 이런 중생들의 입장을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가운데 중생들이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다양한 방편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계의 수행덕목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수행자자신부터 업장을 제거하고 복덕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할 자량과 다양한 수단과 방편지혜를 구족해나가야 한다.

한편, 수행자가 중생제도를 위해 생사현실에 임할 시 이로 인해 극심한 생사고통에 처할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수행자는 이를 피하지 않고 극복하며 중생 제도를 잘 성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이 곧 니르바나 (생사 즉 열반)임을 생사현실 안에서 직접 증득해야 한다.
즉 이론상 현실이 꿈과 같은 사정을 이해함에 그치지 않고, 직접 이에 바탕해 안인을 성취할 필요가 있다.
즉 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상을 취하지 않고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내 어떤 극심한 생사고통도 평안히 잘 극복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안인성취, 무생법인]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 안에서 무량행문을 닦아 나가야 한다. [무량행문]

그래서 수행자의 입장은 결국 2 중적인 상태가 된다.
본래 생사현실은 실답지 않다.
그리고 수행자는 이런 측면을 통해 생사고통이나 수행과정의 어려움, 번뇌를 기본적으로 잘 제거해야 한다.

한편 생사현실은 실답지 않다.
그렇지만, 생사현실에서 중생은 매 순간 생생하고 명료하게 현실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본래 얻을 수 없는 생멸이나 생사고통이 그처럼 있다고 여기며 임하게 된다.

그런데 또 한편 수행자는 일단 이런 생사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임해야 한다.
수행자는 중생이 처한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을 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을 제도할 방편을 구족해야 한다.
따라서 생사현실 안에서 수행자는 이를 위한 수행을 해야 한다.
또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선법을 닦아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수행자는 중생제도를 위해 무량겁에 걸쳐 생사현실에서 변역생사과정을 밟게 된다.
그래서 매 생사과정에서 중생제도에 필요한 상태를 잘 성취시켜 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수행자가 무량겁에 걸친 변역생사 과정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생사과정에서 수행과 그 과보의 인과관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무량한 중생을 잘 제도할 수 있다.
그리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이 과정에 작용하는 마음의 구조와 기제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마음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을 위한 마음의 구조의 이해

현실에서 마음 현상은 복잡한 측면이 있다.
마음은 일단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 경우 일반적으로 그런 마음은 없다고 해야 할 듯 하다.
따라서 그런 마음을 과연 있다고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부터 잘 살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마음을 있다고 시설하게 되는 사정을 하나하나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각 마음의 관계와 구조를 살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하는 측면과 이를 관련시켜 내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차례대로 살펴나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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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정/ 불기2566-01-18
재보충 수정/ 불기2566-03-17
불기2566-04-12
불기256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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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중복내용정리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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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이 마음내용이라고 할 때의 의문점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2/01/2562-02-14-k0121-001.html#001
sfed--설무구칭경_K0121_T0476.txt ☞제1권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 현실이 마음내용이라고 할 때의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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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cf1751

◈Lab value 불기256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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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é de Lille, Campus Pont de B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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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노래에서 쇠파이프로 된 담배는 피우지 말라고 하는 듯하다.
진도를 너무 빨리 많이 나가지 말라고 하는 듯하다.

이처럼 잔소리가 심하다.
그러면서 컴퓨터에 자신이 약하다고 호소하는 듯하다.
그리고 죽을 때가 다가오니 매를 맞고 싶다.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런 이상한 노래를 듣게 된다.

옥상기지에 전자 담배도 구입해 비치해 두었다.
혹시나 소신공양에 도움이 될까해서다.
이론상 니코틴만 따로 흡입하면 담배를 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가끔 피워보면 담배와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오히려 목도 많이 거북해짐을 느끼게 된다.

커피 마시는 다양한 방안이 있다.
재료가 배 속에 들어가면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커피 알 부터 먼저 털어 넣고 나중에 물을 마시면 조금 이상하다.
그리고나서 몸을 흔들어 이들 재료를 몸에서 섞으면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과학 실험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상 생활이 다 마찬가지다.

논의에 음악이나 그림은 소용이 없다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다 빼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하면 또 달라진다.

요즘 한약이 별로 인기가 없다.
그런데 한약을 다릴 때 정성을 빼고 끓여도 마찬가지라고 보기 쉽다.
또는 적당히 엣센스만 뽑아내 섭취해도 마찬가지라고 보기 쉽다.

약초에 붙어 있는 껍질은 무슨 소용인가. 이런 식으로도 접근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말 그런가 아닌가가 문제되면 과학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것을 하나 넣고 빼고 하며 그 상황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일일히 관찰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과연 그런가를 살펴야 한다.

어떻게 하다보니 날짜 경계선을 넘었다.
그리고 조각글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었다.
노래에서도 너무 한꺼번에 진도를 많이 나아가지 말라고 주의를 받는다.

그러나 오늘 처음 제시한 주제는 마음 현상을 이해하는 문제다.
이를 살피는 사정은 마치고 끝내야 한다.
일단 천연담배로 소신공양을 하며 쉬기로 한다.






☎잡담☎조각글 주먹구구 연구방안

이전 조각글에서
주먹구구 연구를 통한 체계적 종합 정리 방안에 대해 제시했다.

여기서 주먹구구 연구란,
불완전한 연구를 졸속처리해 올려 놓고 이를 이후 조금씩 보완하는 방안이다.

그러다보니
글 내용을 다시 살필 때 잘못 입력된 부분도 빈번히 교정하게 된다.
그리고 표현도 수정하고 내용도 자꾸 바꾸게 된다.

글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글이 수정이 마쳐진 글인지 작업 중간의 글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생각해보면 모든 조각글은 다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조금 정도 차이가 있다.

조각글에 경전을 올릴 때 먼저 한 번 읽으면서 문단을 정리해 올린다.
그런데 이 작업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래서 일단 올려 놓고 천천히 정리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그런데 한 번 올려 놓으면 이후 게을러진다.
그래서 그대로 방치하고 넘어가기 쉽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숙제가 많이 밀려 있다.

문단이 정리가 안 되었다고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
그러나 정리가 안 된 상태는 상쾌하지 않다.

여하튼 오늘은 논의할 주제만 올려 놓고 오랫동안 쉰다.
그런 가운데 이 문제를 어떻게 논의해가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이미 과거에 올렸던 많은 내용이 다 이와 관련된다.
그런데 그것을 모두 불러오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그것을 생략하고 넘어가면 논의 전개가 쉽지 않다.
그래서 고민이다.

이는 주먹구구 연구와 체계적 종합정리의 문제가 된다.

다음 조각글을 쓸 때는 오늘 쓴 부분에 이어서 내용을 제시해가야 한다.
결국 각 페이지 각 부분 내용을 앞 뒤로 계속 이어 가야 한다.
그리고 해당 부분을 찾아 살필 수 있게 편집해 제공해야 한다.

조각글은 조각글대로 산만하게 졸속처리해 올린다.
그러나 각 부분의 내용을 잘 편집해서 이어 붙인다고 하자.
그러면 전체적으로 충실한 내용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편집체계를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이 방안이 장점을 합하는 방안인지,
아니면 단점을 함께 합하는 방안인지 알 수 없다.
여하튼 그렇게 해야 각 조각글마다 만나게 되는 문제를 해소시킬 수 있다.

일단 쉬기로 한다.

♥ 잡담 ♥

이전 조각글에 안과의사에 대해서 썼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안경이 보이지 않아 찾느라 힘들었다.

오늘 아침에 열심히 경전을 뽑아서 읽고 정리했다.
그런데 갑자기 컴퓨터가 또 꺼져 버렸다.
그리고 나서는 이번에는 아예 부팅도 안 된다.
그리고 시스템이 고장난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원래 작업한 파일을 열어보았다.
작업한 내용이 다 저장이 안 되어 있다.
제목도 마요란이란 인물이 나오는 경전이어서 그런지, 작업에 장애가 많다.

작성한 글이 중간에 사라져 억울함을 심하게 느낄 상황이다.
그리고 노래처럼 컴퓨터에 대해 조금 모른다고 매를 맞는 느낌이 된다.
조금 기운이 빠진다.
그래서 그냥 일단 올려 놓고 살펴나가기로 한다.



♥잡담♥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mus0fl--Tete - Eleanor Rigby.lrc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2562-02-13-k0694-001.html#1751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마요란
sfd8--불교단상_2562_02.txt ☞◆vacf1751
불기2562-02-13
θθ



■ 퀴즈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


3무성(無性)의 하나. 상무자성(相無自性)이라고도 함.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은 주관인 정(情)으로 볼 때는 실(實)이라고 하나, 객관인 이(理)로는 그 상(相)이 실재로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함.

답 후보
● 상무성(相無性)

상품상생(上品上生)
색계(色界)
색심불이문(色心不二門)
색처(色處)
생득정(生得定)
생사(生死)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2020_0909_132802_can_BW27 무주 백련사



Lab value 재정리 불기2566/01/28/금/20:45
Lab value 불기2564/02/13/목/13:03
[오래된조각글재정리]
☎잡담☎ = 순전한 잡담부분
● = 논의부분
사이트가없어진개인촬영사진 = 사진파일명만 기재




○ [pt op tr]
● 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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