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2-14_설무구칭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2-14_설무구칭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2. 14. 15:46



®


설무구칭경
K0121
T0476

설무구칭경 제1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설무구칭경_K0121_T0476 핵심요약



♣0121-001♧“중생들의 국토가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다. 

♧설무구칭경 제1권




“중생들의 국토가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다. 

왜냐하면 

선남자들아, 

모든 보살은 중생들의 발전[증장增長]과 이익에 따라, 

그만큼의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섭수攝受]하기 때문이다. 


>>>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설무구칭경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제1권


대당(大唐) 현장(玄奘) 한역

장순용 번역

 

1.서품(序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박가범(薄伽梵)1)께서 광엄성(廣嚴城:

바이샬리성) 안의 암라위(菴羅衛:

암라팔리) 숲에서 대비구[大苾芻]들 8천 명과 함께 머물고 계셨다.

 

또 한편 보살마하살은 3만 2천 명으로, 

일체 대중이 알아주는 존재였으며 대신통의 업을 이미 이루었고, 

모든 부처님의 위덕이 늘 그들을 가지(加持)하고 있었다. 

그들은 법의 성(城)을 잘 수호해 정법을 섭수할 수 있었으며, 

그들이 내는 큰 사자후의 소리가 울려 퍼지면 그 아름다운 소리가 멀리 시방에 두루 진동하였다. 

모든 중생이 일부러 청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중생에게 좋은 벗[不請善友]이었다.

 

또 그들은 3보의 종성(種姓)을 계승해 끊이지 않도록 했으며, 

악마와 적들을 항복시키고 모든 외도(外道)2)들을 제압했다. 

그리하여 모든 장애와 번뇌[蓋纏]3)를 영원히 벗어났다.

 

그들은 정념[念]과 선정[定]과 총지(總持)4)가 원만하지 않음이 없어서 전혀 걸림이 없는 해탈지(解脫智)의 문(門)을 세웠다. 

즉 단절됨이 없이 뛰어난 일체의 염혜(念慧)ㆍ등지(等持)ㆍ다라니(陀羅尼)ㆍ변재(辯才)를 얻고, 

제일가는 보시(布施)ㆍ조복(調伏)ㆍ적정(寂靜)ㆍ시라(尸羅)5)ㆍ안인(安忍)ㆍ정근(正勤)ㆍ정려(靜慮)ㆍ반야(般若)와 방편선교(方便善巧)와 오묘한 원(願)바라밀ㆍ역(力)바라밀ㆍ지(智)바라밀을 획득해서 얻을 바 없는 불기법인(不起法忍)6)을 성취했다.

 

그들은 구르는 데 따라 결코 물러날 줄 모르는 법륜(法輪)을 능히 굴렸으며, 

모습 없는 오묘한 인[無相妙印]으로 인가를 다 받았다. 

그들은 근기가 뛰어난 중생과 그렇지 못한 중생을 잘 알았으며, 

모든 대중을 다룰 수 있는 무소외(無所畏)를 터득했다. 

그들은 이미 다함없는 복과 지혜의 자량을 쌓았다. 

상호(相好)로 꾸며진 몸은 그 색상(色像)이 비할 바 없이 빼어났지만, 

세간의 온갖 아름다운 장식은 버렸다. 

그들의 명성은 너무나 높아서 제석천(帝釋天)을 능가했으며, 

그들의 의요(意樂)가 견고한 것은 마치 금강과 같았다. 

모든 불법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어서 일체를 비추는 법보(法寶)의 광명을 유출하고 감로의 비를 내렸다.

 

그들의 말씨나 음성은 미묘하기 짝이 없었으며, 

법의 뜻[法義]과 광대한 연기(緣起)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했으며, 

상대적인 관념의 습기[二邊見習]가 상속하는 것을 이미 끊어버렸다. 

법을 펼칠 때는 어떤 두려움도 없는 것이 마치 사자후와 같았으며, 

가르침[講說]은 마치 우레처럼 진동했다. 

그들은 측량할 길 없는 존재였으며 측량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였으며 그들은 법보의 슬기를 모으는 데는 최고의 길잡이[大導師]였다.

 

그들은 정직하고 환히 알며 온화하고 은밀했으며, 

모든 법의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것에도 오묘하게 통달하고 있었으며 깊고 깊은 진실한 뜻[實義]에 깊이 통달해서 중생이 유취(有趣:

6道)의 길을 가든 가지 않든 그들 의지가 지향하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 들어간다. 

그들은 비할 바 없는 부처님의 지혜[無等等佛智]로 관정(灌頂)7)을 받아서 10력(力)ㆍ4무외(無畏)ㆍ18불공법(不共法)에 다가갔다. 

그들은 이미 악취(惡趣)의 공포를 없앴으며, 

다시 험난하고 더럽고 깊은 구덩이를 초월해 영원히 연기(緣起)를 버렸지만, 

금강도장(金剛刀仗)으로 온갖 유취(有趣)에 태어날 것을 늘 생각하였다. 

위대한 약왕(藥王)이 된 그들은 중생의 병에 대한 치료법을 잘 알아서 중생의 병에 따라 법의 약을 주어 병을 치유하고 안식을 베풀었다.

 

또한 한량없는 공덕을 남김없이 성취했으며, 

헤아릴 수 없는 불국토를 엄정(嚴淨)하게 하였다. 

그들을 보고 들은 자 중에 이익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고 그들이 하는 일은 헛된 것이 없었으니, 

설사 헤아릴 수 없는 백천 구지(俱胝) 나유타[那庾多] 겁 동안 그 공덕을 칭송하더라도 그 공덕은 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 보살들의 이름은 등관(等觀)보살ㆍ부등관(不等觀)보살ㆍ등부등관(等不等觀)보살ㆍ정신변왕(定神變王)보살ㆍ법자재(法自在)보살ㆍ법당(法幢:

法相)보살ㆍ광당(光幢:

光相)보살ㆍ광엄(光嚴)보살ㆍ대엄(大嚴)보살ㆍ보봉(寶峰:

寶積)보살ㆍ변봉(辯峰:

辯積)보살ㆍ보수(寶手)보살ㆍ보인수(寶印手)보살ㆍ상거수(常擧手)보살ㆍ상하수(常下手)보살ㆍ

 

상연경(常延頸:

常慘)보살ㆍ상희근(常喜根:

喜根)보살ㆍ상희왕(常喜王:

喜王)보살ㆍ무굴변(無屈辯:

辯音)보살ㆍ허공장(虛空藏)보살ㆍ집보거(執寶炬)보살ㆍ보길상(寶吉祥:

寶勇)보살ㆍ보시(寶施:

寶見)보살ㆍ제망(帝網)보살ㆍ광망(光網:

明綱)보살ㆍ무장정려(無障靜慮:

無緣觀)보살ㆍ혜봉(慧峰:

慧積)보살ㆍ천왕(天王)보살ㆍ괴마(壞魔)보살ㆍ

 

전천(電天:

電德)보살ㆍ현신변왕(現神變王:

自在王)보살ㆍ봉상등엄(峰相等嚴:

功德相嚴)보살ㆍ사자후(獅子吼)보살ㆍ운뢰음(雲雷音:

雷音)보살ㆍ산상격왕(山相擊王:

山相擊音)보살ㆍ향상(香象)보살ㆍ대향상(大香象:

白香象)보살ㆍ상정진(常精進)보살ㆍ불사선액(不捨善軛:

不休息)보살ㆍ묘혜(妙慧)보살ㆍ묘생(妙生)보살ㆍ연화승장(蓮花勝藏)보살ㆍ삼마지왕(三摩地王)보살ㆍ

 

연화엄(蓮花嚴:

花嚴)보살ㆍ관자재(觀自在:

觀世音)보살ㆍ득대세(得大勢)보살ㆍ범망(梵網)보살ㆍ보장(寶杖)보살ㆍ무승(無勝)보살ㆍ승마(勝魔)보살ㆍ엄토(嚴土)보살ㆍ금계(金髻)보살ㆍ주계(珠髻)보살ㆍ자씨(慈氏:

彌勒)보살ㆍ묘길상(妙吉祥:

文殊師利法王子)보살ㆍ주보개(珠寶蓋)보살 등 이와 같은 3만 2천 명의 상수(上首) 보살마하살들이었다.

 

또 한편 지계범왕(持髻梵王:

螺髻梵王)을 상수로 삼은 1만의 범왕8)들이 부처님께 예를 드리고 공양한 뒤 법을 듣기 위해 다른 4대주(大洲:

4天下)가 속한 본무우(本無憂:

Aśoka)의 계(界)로부터 와서 앉았다. 

또 1만 2천의 제석천이 세존에게 예를 드리고 공양한 뒤 법을 듣기 위해 다른 4대주로부터 와서 자리에 앉았으며, 

아울러 나머지 크나큰 위력을 가진 모든 하늘들[諸天]ㆍ용신(龍神)ㆍ야차[藥叉]ㆍ건달바[健達縛]ㆍ아수라[阿素洛]ㆍ가루라[揭路茶]ㆍ긴나라[緊捺洛]ㆍ마후라가[莫呼洛伽]ㆍ석(釋)ㆍ범(梵)ㆍ호세(護世) 등이 모두 와서 앉았으며, 

비구[苾芻]ㆍ비구니[苾芻尼]ㆍ우바새[鄔波索迦]ㆍ우바이[鄔波斯迦]의 4부 대중들도 다 와서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헤아릴 수 없는 수십만 대중들에게 경건히 둘러싸여서 법을 설하셨다. 

비유하자면 산의 왕 대보묘고산(大寶妙高山:

須彌山)이 대해(大海) 위로 높이 솟아 있듯이, 

뛰어난 대사자좌(大師子座)에 앉으셔서 휘황찬란한 위광(威光)을 발하셔서 모든 대중을 뒤덮었다.

 

당시에 광엄성 안에 사는 이첨비(離呫毘:

릿차비) 종족 중에 보성(寶性:

寶積)이라는 보살이 있었다. 

그는 이첨비 동자 500명과 함께 제각기 7보(寶)로 장식된 일산[蓋]을 하나씩 들고 암라(菴羅)숲에 있는 부처님의 처소를 찾아와 저마다 일산을 세존께 바쳤다. 

일산을 바치고 나서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하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돈 뒤 한쪽으로 물러가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위신력(威神力)으로 이 7보 일산들을 한데 합쳐 하나의 7보 일산으로 만들었는데,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었으며 삼천대천세계의 광활한 모습이 7보 일산 속에 모두 나타났다.

 

또 이 삼천대천세계 속에 있는 대보묘고산왕ㆍ일체의 설산(雪山)ㆍ목진린타산(目眞隣陀山)ㆍ마하목진린타산(摩訶目眞隣陀山)ㆍ향산(香山)ㆍ보산(寶山)ㆍ금산(金山)ㆍ흑산(黑山)ㆍ윤위산(輪圍山:

鐵圍山)ㆍ대윤위산(大輪圍山:

大鐵圍山)ㆍ큰 바다ㆍ강ㆍ냇물ㆍ샘물ㆍ연못ㆍ백 구지(俱胝)에 달하는 4대주(大洲)ㆍ해ㆍ달ㆍ별ㆍ천궁(天宮)ㆍ용궁(龍宮)과 모든 천신들의 신궁(神宮), 

모든 나라의 성읍과 왕도와 마을들이 남김없이 7보 일산 속에 드러났다. 

또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정법을 설하시는 것이 마치 메아리처럼 들려왔는데, 

이 역시 7보 일산 속에 다 나타나고 들려왔다.

 

대중들은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보고 기뻐 뛰면서 일찍이 볼 수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며 모두들 합장하고 예배한 뒤에 세존의 존귀한 얼굴을 우러러보면서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그때 보성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손을 들어 합장하고서 경건히 예배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을 찬탄하는 오묘한 게송[伽他]을 읊었다.

 

청정한 눈은 빛나고 묘하며 단정하게 꾸며져

마치 푸른 연꽃잎처럼 깨끗하구나.

이미 제일의(第一義)9)의 청정한 의요(意樂)를 증득했으며

뛰어난 삼매[奢摩陀]로 피안에 이르셨네.

 

가없는 청정한 업(業) 오래 쌓아서

광대하고 뛰어난 영예를 얻으셨네.

오묘한 열반의 길로 인도하시는

대사문(大沙門)께 머리 숙여 절합니다.

 

대성(大聖)께선 이미 신통변화 보이셔서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국토 나타내시니

그 속에서 모든 부처님 하시는 설법

여기에서 모두 다 듣고 봅니다.

 

법왕(法王)의 법력(法力)은 무리 가운데서 뛰어나니

일체 중생에게 늘 법의 재물[法財]10)로써 베푸십니다.

온갖 법의 모습 능히 잘 분별하면서도

제일의(第一義)를 관하여 원수와 적을 꺾습니다.

 

이미 모든 법에 대해 자유자재하시니

이 때문에 법왕(法王)께 큰절합니다.


■ 법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며

모두가 인연으로 건립됐을 뿐

나[我]도 없고 짓는 자[造者]도 없고 받는 자[受者]도 없지만

선악의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네.

처음 불수(佛樹:

보리수) 아래에서 마(魔)의 세력을 꺾으셔서

감로와 열반의 뛰어남과 보리를 성취하셨네.

 

이 경지는 마음과 뜻으로는 지각[受]하거나 행할 수도 없는지라

모든 외도와 사도(邪道)들은 측량할 길 없습니다.

대천세계(大千世界)에 세 번 법륜(法輪)을 굴리셨는데11)

그 법륜은 적멸할 뿐만 아니라 본성도 적멸하네.

 

이 보기 드문 법의 지혜를 천신과 인간이 증득하니

그에 따라 삼보가 세상에 출현하였네.

이 묘한 법으로 제도 받은 뭇 중생들

헛된 상념과 두려움 없어져 항상 고요하고 평화롭구나.

 

생로병사의 고통을 치유한 위대한 의왕(醫王)이시니

그 가없는 공덕의 바다에 큰절합니다.

여덟 가지 법12)에 흔들리지 않음은 마치 수미산 같고

착한 자와 착하지 않은 자 누구에게나 자비와 연민 베푸시네.

 

그 마음의 작용 항상 허공처럼 평등함을 유지하니

누구인들 이 능인(能仁:

人寶)을 공경하지 않으랴.

이제 이 보잘것없는 7보 일산 세존께 바치고 나니

그 속에다 삼천대천세계 전체를 드러내시고

여러 천신과 인간, 

용신 및 궁전들도 나타내시니

그러기에 그 지견공덕신(智見功德身)께 큰절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 다 빛과 그림자 같은 것임을

10력(力)의 신통변화로써 보여 주시니

대중들은 일찍이 없던 일이라 경탄하고 보면서

그 때문에 10력대지견(力大智見)께 큰절합니다.

모인 대중들 위대한 석가모니 우러러보니

마음에 청정한 믿음 생기지 않는 자 없네.

 

저마다 세존께서 눈앞에 있음을 보니

이것이 바로 여래만이 갖고 있는 특성[不共相]이라네.

부처님께서는 한 소리[一音]로 법을 설하시지만

중생은 그 품류에 따라 제각기 이해하네.

 

그러면서도 세존께서는 말씀을 똑같이 한다고 하시니

이것이 바로 여래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라네.

부처님께서는 한 소리로 법을 설하시지만

중생들은 저마다 자기 처지에 따라 이해하여

그 가르침에 따른 실천으로 널리 이로움을 얻으니

이것이 바로 여래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라네.

 

부처님께서는 한 소리로 법을 설하시지만

어떤 이는 두려워하고 어떤 이는 기뻐하며

어떤 이는 싫증을 내며 어떤 이는 의심을 끊으니

이것이 바로 여래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라네.

 

십력제용맹(十力諦勇猛)께 큰절합니다.

어떤 두려움도 없는 경지[無所畏]를 터득하신 분께 큰절합니다.

결정코 불공법(不共法)에 도달하신 분께 큰절합니다.

일체를 이끄시는 스승님께 큰절합니다.

모든 결박을 끊으실 수 있는 분께 큰절합니다.

이미 피안에 도달해 확고히 머물러 계신 분께 큰절합니다.

고통 받는 중생을 널리 구원하시는 분께 큰절합니다.

 

더 이상 생사(生死)의 길에 들지 않는 분께 큰절합니다.

중생들과 6도(道)의 길 함께하지만

마음은 6도에서 훌륭히 해탈하셨네.

석가모니께서 이처럼 공(空)을 잘 닦으신 것은

마치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아라.

 

일체의 모습 버려도 버린 것 없고

일체의 바람[願] 채워도 바란 것 없네.

그 대위신력,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으니

마치 허공처럼 아무 데도 머물지 않는 분께 큰절합니다.

 

이때 보성은 부처님을 찬탄하는 이 게송을 설한 뒤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500명의 젊은 보살들은 이미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그들 모두는 내게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에 관해 물었습니다. 

여래께서 가엾이 여겨 청정한 불국토의 모습을 설해 주시길 진정으로 원합니다. 

보살의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수행이란 어떤 것입니까?”

 

보성이 이렇게 말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성이여,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그대가 이제 보살들을 위해 여래에게 청정한 불국토의 모습에 관해 묻고, 

또 보살의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수행에 관해 묻는구나. 

내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자세히 설명하겠으니, 

그대들은 잘 듣고 명심하여라.”

 

그러자 보성과 모든 보살이 답했다.

“좋습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이제 모두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의 국토가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다. 

왜냐하면 선남자들아, 

모든 보살은 중생들의 발전[增長]과 이익에 따라, 

그만큼의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攝受]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이 갖가지 청정한 공덕을 일으키는 데 따라 그만큼의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이 이 같은 청정불국토에 들어감으로써 얼마나 조복(調伏)되는가에 따라 그만큼의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이 이 같은 청정불국토에 들어감으로써 부처님의 지혜를 얼마나 깨닫는가에 따라 그만큼의 불국토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이 이 같은 청정불국토에 들어감으로써 성스러운 근기의 행을 얼마나 일으키는가에 따라 그만큼의 불국토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선남자들아, 

■ 보살이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하는 것은
모두 중생의 이익과 발전을 위하고 또 갖가지 청정한 공덕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선남자들아, 

예컨대 빈 땅에다 집을 지어 마음껏 걸림 없이 꾸미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땅에서는 그 일을 할 수 있겠지만
허공에서는 끝내 불가능할 것이다. 


보살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일체의 법이 허공 같음을 알지만
오직 중생의 이익과 발전을 위하고 청정한 공덕을 낳게 하기 위해
그만큼의 불국토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하는 것은 허공에서는 불가능하다.

 

또 보성아,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일으키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대승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모든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마음의 지향[意樂]을 순수하게 하는 그 터전이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훌륭히 가행(加行)하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훌륭히 가행을 일으키고 주지(住持)하는 모든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마음을 고결하게 하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착한 법을 구족하고 성취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보시(布施)를 실천하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일체의 재법(財法)을 버릴 수 있는 모든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청정한 계율(戒律)을 닦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열 가지 선행의 길을 원만히 성취한 순수한 마음의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안인(安忍:

忍辱)을 닦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그 몸을 32가지 상으로 아름답게 장엄하고 인욕[堪忍]과 온유함과 적정(寂靜)을 닦은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정진(精進)을 닦는 그 터전이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용맹정진으로 모든 선행을 닦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정려(靜慮)를 닦는 그 터전이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정념(正念)ㆍ정지(正知)ㆍ정정(正定)을 완벽하게 성취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반야(般若)를 닦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이미 정정에 들어간 일체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4무량(無量)의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늘 사랑[慈]ㆍ연민[悲]ㆍ기쁨[喜]ㆍ버림[捨]으로써 살아온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4섭사(攝事)의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모든 해탈에 의해 거둬진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교묘한 방편의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온갖 법을 능숙히 잘 관찰하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37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는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일체의 4념처[念住]ㆍ4정근[正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정도[道支]에 통달하여 원만해진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회향(廻向)을 닦는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그 나라는 뭇 공덕의 장엄을 구족할 것이다.

 

8난처[無暇土]13)를 없애는 것을 잘 설하는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그 나라는 3악취(惡趣)와 8난처에서 영원히 벗어날 것이다. 

스스로 계행을 지키고 남을 비방하지 않는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얻을 때 그 나라는 범죄나 금지라는 이름조차 없을 것이다.

 

열 가지 선행의 길을 닦는 지극히 청정한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수명의 양이 결정되고 크게 부유하며 고결한 행동[梵行]을 하며 그 말이 진실되고 늘 부드럽게 말하며, 

권속들을 이간질하지 않고 은밀한 뜻[密意]을 잘 선양하고 모든 탐욕에서 벗어나 있고 성내는 마음이 없는 정견(正見)을 가진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선남자들아, 

이처럼 보살이 보리심을 일으키면 그에 따라 의요(意樂)가 순수하고 청정해진다. 

의요가 순수하고 청정해지면 그에 따라 오묘하고 선한 가행(加行)이 있게 된다. 

오묘하고 선한 가행이 있으면 그에 따라 의요는 더욱 증장한다. 

의요가 더욱 증장하면 그에 따라 그치고 쉼[止息]이 있게 된다. 

그치고 쉼이 있게 되면 그에 따라 발기(發起)가 있게 된다. 

발기(發起)가 있게 되면 그에 따라 회향(迴向)이 있게 된다. 

회향이 있게 되면 그에 따라 적정(寂靜)이 있게 된다. 

적정이 있게 되면, 

그에 따라 청정한 중생이 있게 된다.

 

청정한 중생이 있게 되면 그에 따라 장엄 청정한[嚴淨] 불국토가 있게 된다. 

장엄 청정한 불국토가 있게 되면 그에 따라 청정한 법의 가르침이 있게 된다. 

청정한 법의 가르침이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하고 오묘한 복이 있게 된다. 

청정하고 오묘한 복이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하고 묘한 슬기[慧]가 있게 된다. 

청정하고 묘한 슬기가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하고 묘한 지혜[智]가 있게 된다. 

청정하고 묘한 지혜가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하고 묘한 행(行)이 있게 된다. 

청정하고 묘한 행이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한 스스로의 마음[自心]이 있게 된다. 

청정한 스스로의 마음이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하고 묘한 온갖 공덕이 있게 된다.

 

선남자들아, 

따라서 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수행을 부지런히 닦고자 한다면 먼저 방편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살들 스스로의 마음이 청정해지는 데 따라서 불국토도 청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때 부처님의 위신력에 영향을 받은 사리불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만약 보살들 마음이 청정해지기 때문에 불국토가 청정해진다면 우리 세존께서 보살 수행을 하실 때 얼마나 마음이 청정하지 못했기에 이 불국토가 이토록 더러움으로 오염됐을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의 생각을 알아차리시고 즉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간의 해와 달이 깨끗하지 않아서 장님이 보지 못하겠느냐?”

사리불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것은 장님의 잘못이지 해와 달의 허물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존의 불국토가 청정하게 장엄되지 못한 것도 여래의 허물이 아니며 중생의 죄 때문이다. 

사리불아, 

내 땅은 청정하지만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때 지계범왕(持髻梵王)이 사리불에게 말했다.

“세존의 불국토가 청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세존의 불국토야말로 가장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대범천왕이여, 

지금 이곳의 불국토가 청정하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지계범왕이 말했다.

“사리자여, 

비유하자면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이 한량없는 보배 공덕으로 장엄되어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세존이신 석가모니불의 땅이 청정하여 한량없는 보배 공덕으로 장엄된 것이 바로 타화자재천궁과 같습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대범천왕이여, 

제가 보기에 이 땅은 높은 곳도 있고 낮은 곳도 있습니다. 

언덕과 구덩이 그리고 모래와 자갈, 

흙과 돌로 이루어진 산들은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지계범왕이 말했다.

“대존자여, 

그대의 마음에 높고 낮음이 있어 청정하지 못한 까닭에 부처님의 지혜와 의요(意樂)에도 높고 낮음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에겐 불국토가 청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 것입니다. 

만약 보살들이 중생에 대해 지니는 마음이 평등하고 공덕이 청정하다면 부처님의 지혜와 의요도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내 불국토가 지극히 청정하다는 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대중들의 마음에 망설임이 있는 걸 아시고서 발가락으로 대지를 누르셨다. 

그러자 즉시 삼천대천세계가 헤아릴 수 없는 수십만의 묘한 보배로 장엄된 세계로 변했는데, 

마치 공덕보장엄불(功德寶莊嚴佛)이 한량없는 공덕의 보배로 장엄한 것 같았다. 

모든 대중들은 경이감에 차서 찬탄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보배 연꽃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세존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온갖 공덕으로 장엄한 이 청정한 불국토를 보느냐?”

사리불이 대답했다.

“예, 

봅니다. 

세존이시여, 

결코 본 적이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청정하게 장엄된 불국토가 지금 모두 드러났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불국토는 항상 이렇게 청정하다. 

다만 여래는 열등한 중생들을 성숙시키기 위해 수많은 잘못과 더러움으로 오염된 땅을 보일 뿐이다. 

사리불아, 


비유하자면 삼십삼천의 천신들은
모두 단일한 보배 그릇으로 음식을 먹지만
저마다 쌓아온 업의 차이에 따라
제각기 취하는 음식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사리불아, 

한량없는 중생이 동일한 불국토에 나지만 그들 자신의 마음이 깨끗한가, 

더러운가에 따라서 불국토를 보는 데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만약 사람의 마음이 청정하다면
그 즉시 이 땅이 한량없는 공덕의 묘한 보배로 장엄되어 있음을 볼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청정한 불국토를 나타내 보이실 때, 

보성이 데리고 온 500명의 청년들은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고, 

8만 4천의 중생들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覺心]의 마음을 일으켰다.

 

그때 부처님 세존께서 신족(神足)을 거두시자 세계는 다시 전과 같아졌다. 

그리하여 3만 2천 명의 성문승을 추구하는 자와 수많은 천신과 인간들은
모두 유위법(有爲法)의 무상함을 알고서
티끌의 더러움을 멀리 여의어 청정한 법안(法眼)을 얻었다. 

8천 비구들도 온갖 번뇌를 영원히 여의어서 마음을 훌륭히 해탈하였다.

 




■ 2. 현부사의방편선교품(顯不思議方便善巧品)

 

당시 광엄성 안에 이첨비 종족의 대보살이 있었는데, 

이름을 무구칭(無垢稱:

維摩詰)이라 하였다. 

그는 일찍이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하여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선근을 깊이 심었으며, 

묘한 변재를 얻었으며 무생법인을 성취했다. 

모든 총지를 체득해서 신통에 유희하였으며,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경지[無所畏]를 터득해 마군과 원수[魔怨]의 세력을 꺾었다.

 

법문(法門)에 깊이 정통하고, 

지혜의 바라밀을 성취하고, 

방편에도 통달했으며, 

크나큰 서원[大願]을 원만히 성취했다. 

그리하여 중생의 의요(意樂)와 행실도 훤히 요달했으며, 

또한 중생 근기의 뛰어남과 하열함도 잘 알았고, 

지혜바라밀을 성취하여 설법을 능숙하게 했다. 

결정코 대승 속에서 닦아 익혔으며, 

지어진 업에 대해서도 사량(思量)을 능히 잘했다. 

그는 부처님의 위의(威儀)에 머물렀으며, 

마음은 슬기의 바다[慧海]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모든 부처님께서 감탄하면서 널리 칭찬하고 말씀을 나타냈으며, 

제석천[釋]ㆍ범천[梵]ㆍ사천왕[護世]이 늘 예를 드리고 공경하였다.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 무구칭은 훌륭한 방편으로 광엄성에서 살았다.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을 구제해 주기 위한 그의 재물은 결코 고갈될 줄 몰랐으며, 

금기를 범하거나 한도를 넘은 자들을 돌보기 위해 청정한 계율을 지켰으며, 

난폭하고 성내고 질투하고 악랄한 이들을 다스리기 위해 인내와 자기 통제를 잘 하였으며, 

모든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을 다스리기 위해 대정진(大精進)을 하였으며, 

일체의 흐트러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선정(禪定)ㆍ정념(正念)ㆍ해탈(解脫)ㆍ등지(等持)ㆍ등지(等至)14)에 편안히 머물렀으며, 

모든 중생의 어지러운 마음을 바른 결택(決擇)으로써 거두었으며 일체의 잘못된 생각[妄見]과 나쁜 지혜를 거두었다.

 


비록 속인이었지만 사문의 위의와 공덕을 갖췄으며, 

비록 집에서 살았지만 삼계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아내와 자식이 있었지만 늘 청정한 행실을 닦았다. 

딸린 권속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늘 멀리 떨어져 있기를 좋아했고, 

보석으로 장식한 옷을 입었지만 늘 상호(相好)로써 그 몸을 장엄했고, 

비록 음식을 먹고 마시긴 했지만 늘 선정과 등지의 맛을 섭취했다. 

비록 바둑, 장기 같은 오락을 중생들과 함께 즐겼지만
실제로는 늘 그들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비록 일체 외도의 궤의(軌義)를 품수 받았어도 불법을 즐기는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일체 세간의 모든 경서와 논(論)에 밝았어도 집안의 정원[內苑]에서는 늘 법의 즐거움을 음미하였다.

 

마을의 모든 집회에 나가서도 늘 최고의 설법자로 존경받았으며, 

존귀함과 비천함에 대한 세상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하는 일에는 늘 빈틈이 없었으며, 

세간의 재물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세속의 이익에 대해 익힌 바가 있었다.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저자와 거리에 나가 노닐었으며, 

중생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정사(政事)를 다스렸으며, 

법을 강론하는 곳에 들어가서는 대승으로 인도했으며, 

어린이를 깨우쳐 주기 위해 학당(學堂)에 들어갔으며, 

욕망의 지나침을 보여 주기 위해 음란한 곳에도 들어갔다. 

술을 마셔도 정념(正念)과 정지(正知)를 잃지 않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유흥가에서 노닐었다.

 

장자들 가운데 있으면 장자들의 어른이 되어서 그들에게 뛰어난 법을 설해 주었고, 

거사들 가운데 있으면 거사들의 어른이 되어서 그들의 탐욕과 집착을 끊었으며, 

찰제리(刹帝利) 가운데 있으면 찰제리의 어른이 되어서 인욕을 가르쳤고, 

바라문 가운데 있으면 바라문의 어른이 되어서 아만(我慢)을 없애 주었고, 

대신(大臣) 가운데 있으면 대신들의 어른이 되어서 정법으로 가르쳤고, 

왕자들 가운데 있으면 그들의 어른이 되어서 충효(忠孝)로써 보여 주었다.

 

내관 가운데 있으면 내관들의 어른이 되어서 궁녀들을 올바르게 교화했고, 

서민들 가운데 있으면 그들의 어른이 되어서 상사(相似)한 복덕의 뛰어난 의요(意樂)를 수행했으며, 

범천 가운데 있으면 그들의 어른이 되어서 모든 대중들에게 정려(靜慮)의 차별을 보여 주었고, 

제석천 가운데 있으면 그들의 어른이 되어서 모든 무상함을 다 자재하게 나타내 보였고, 

호세(護世) 가운데 있으면 호세의 어른이 되어서 일체의 이익과 안락을 수호했다. 

이처럼 무구칭은 불가사의하고 한량없는 능숙한 방편의 지혜문[慧門]으로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었다.

 

무구칭은 이 같은 방편으로 몸에 병을 나타내었다. 

그러자 그 병 때문에
국왕ㆍ대신ㆍ장자ㆍ거사ㆍ바라문과 왕자들 및 나머지 관청 안의 권속들
수천 명이 모두 와서 문병을 하였다.

 


무구칭은 그들이 도착하자 몸의 병을 이유로 널리 법을 설하였다.

“어진 이들이여, 

4대(大)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이 몸은 강하지도 굳세지도 못하고 힘도 없는 무상한 것입니다. 

너무나 빨리 썩기 때문에 믿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고통스럽고 번뇌스러운 온갖 병의 그릇으로서 허물과 근심이 많기 때문에 어차피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어진 이들이여, 

이 같은 몸은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의지할 바가 못 됩니다.

 

이 몸은 붙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거품 덩어리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포말 같은 것이며, 

이 몸은 많은 번뇌와 갈애(渴愛)로부터 생겨난 아지랑이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알맹이 없는 파초와 같은 것이며, 

이 몸은 뒤바뀜[顚倒]으로부터 생겨난 허깨비[幻] 같은 것이며, 

이 몸은 허망하게 나타난 꿈과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업의 인연[業緣]에 따라 나타나는 그림자 같습니다.

 

이 몸은 인연 따라 생기는 메아리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순식간에 변하면서 사라지는 구름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순간순간 변하여 소멸되는 번개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주인이 없는 것이 마치 땅과 같으며, 

이 몸은 나[我]라는 것 없는 것이 마치 물과 같으며, 

이 몸은 정(情)이 없는 것이 마치 불과 같으며, 

이 몸은 목숨이 없는 것이 마치 바람과 같으며, 

이 몸은 보특가라(補特伽羅)15)가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이 몸은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4대(大)로 집을 삼으며, 

이 몸은 텅 비어서 나[我]와 내 것[我所]을 여의었으며, 

이 몸은 지성이 없는 것이 마치 초목과 같으며, 

이 몸은 지음[作]이 없어서 바람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 몸은 청정하지 않아서 더러움과 악으로 가득 찼으며, 

이 몸은 거짓된 것이니 비록 임시로 입고 먹고 마시면서 기르고 있긴 하지만 끝내는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며, 

이 몸은 우환이 많으니 404가지의 병들이 모인 곳이며, 

이 몸은 부서지기 쉬우니 오래된 우물이 말라붙듯이 늘 노쇠함의 핍박을 받으며, 

이 몸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서 반드시 죽게 마련이며, 

이 몸은 원수의 해침과 같으니 독사가 가득 차서 두루하는 곳이며, 

이 몸은 빈 마을과 같으니 온(蘊)ㆍ처(處)ㆍ계(界)가 합성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어진 이들이여, 

이러한 몸에 대해서는 마땅히 싫어하여 벗어나려고 해야 하며, 

여래의 몸에 대해서는 기뻐하는 마음을 내야 한다.

 

왜냐하면 여래의 몸은 한량없는 선법(善法)이 모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뛰어난 복덕과 지혜를 헤아릴 수 없이 닦은 데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며, 


뛰어난 계율[戒]ㆍ선정[定]ㆍ지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을
헤아릴 수 없이 닦은 데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며,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닦은 데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며, 

보시ㆍ조복(調伏)ㆍ적정(寂靜)ㆍ계(戒)ㆍ인(忍)ㆍ정진(精進)ㆍ
정려(靜慮)ㆍ해탈ㆍ등지(等持)ㆍ등지(等至)ㆍ
반야ㆍ방편ㆍ원(願)ㆍ역(力)ㆍ지(智)를 닦은 데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일체의 바라밀[度彼岸]을 닦은 데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며, 

6신통[通]을 닦아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며, 

3명(明)을 닦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37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지관(止觀)을 닦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10력(力)과 4무외(無畏)를 닦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18불공법(不共法)을 닦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일체의 착하지 못한 법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쌓은 데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진리[諦]의 실제를 방일하지 않고 닦은 데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한량없는 청정한 업을 닦은 데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어진 이들이여, 

여래의 몸은 공덕이 이와 같은 것이니, 

그대들 모두는 반드시 마음을 일으켜서 증득을 구해야 한다. 

그대들이 이 같은 여래의 몸을 성취하여 모든 중생의 병을 없애고 싶다면, 

그대들은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무구칭은 문병하러 온 자들에게 알맞은 법을 설해서
그곳에 온 수십만 대중으로 하여금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했다.





------------

1 bhagavat의 음역. 

바가바(婆伽婆)라고도 하며 위대한 자, 

번뇌를 이긴 자라는 뜻. 

세존(世尊)이라고 한역한다.

2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외한 다른 종파의 사상을 총칭한 것이다.

3 덮개[蓋]와 얽힘[纏]은 모두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 5개와 10전이 있다.

4 선은 잘 간직해서 잃지 않고 악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간직해 잊지 않는 것이다.

5 sīla의 음역. 

6바라밀의 하나로서 계(戒)라고 한역한다.

6 일체 만법은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不生不滅]는 사실을 깨달아서 그 경지에 안주하는 것이다.

7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보살의 정수리에 부어서 보살이 부처님 지위에 이를 것임을 증명하는 의식이다.

8 범천왕(梵天王)ㆍ범천(梵天)이라고도 한다. 

인도 전통사상에서는 우주의 창조자였으나 불교에서는 색계 초선천(初禪天)을 다스리는 자를 말한다. 

제석천과 함께 불법(佛法)을 수호한다.

9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원리.

10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속적인 재물과 대비하여 법재(法財)라고 한 것이다.

11 부처님께서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가르침을 세 가지 형식으로 가르치신 것. 

첫 번째는 고ㆍ집ㆍ멸ㆍ도를 제시한 것[示轉]이고, 

두 번째는 그 각각에 대해서 고를 알고 집을 끊고 멸을 얻고 도를 닦으라고 한 것[勸轉]이며, 

세 번째는 부처님 스스로 그것들을 얻었음을 증명한 것[證轉]이다.

12 이익과 손해, 

명예와 비방, 

비난과 칭찬, 

괴로움과 즐거움.

13 부처님을 볼 수도 없고 불법을 들을 수도 없는 여덟 가지 경계. 

지옥ㆍ아귀ㆍ축생(이상 셋은 고통이 너무 심해 불법을 듣지 못함)ㆍ장수천(長壽天:

장수를 즐기느라 구도심을 일으키지 않음)ㆍ변지(邊地:

즐거움이 너무 많아 불법을 듣지 않음)ㆍ농맹음아(聾盲瘖瘂:

감각기관이 망가져서 불법을 듣거나 보지 못함)ㆍ세지변총(世智辨聰:

세간의 지혜에 뛰어난 올바른 이법을 따르지 않음)ㆍ불전불후(佛前佛後: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이다.

14 samapatti의 한역. 

몸과 마음이 평화롭고 안온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15 pudgala의 음역. 

개체ㆍ개체성ㆍ개인을 말하는데,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주체, 

즉 아(我)와 같은 의미이다.


○ [pt op tr]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1. 서품(序品) 

2. 현부사의방편선교품(顯不思議方便善巧品) 

3. 성문품(聲聞品) 

4. 보살품(菩薩品) 

5. 문질품(問疾品) 

6. 부사의품(不思議品) 

7. 관유정품(觀有情品) 

8. 보리분품(菩提分品) 

9. 불이법문품(不二法門品) 

10. 향대불품(香臺佛品) 

11. 보살행품(菩薩行品) 

12. 관여래품(觀如來品) 

13. 법공양품(法供養品) 

14. 촉루품(囑累品) 



『설무구칭경』은 

일반적으로는 유마경으로 알려진 경전의 다른 버전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 

법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며 

모두가 인연으로 건립됐을 뿐 

나[아我]도 없고 

짓는 자[조자造者]도 없고 

받는 자[수자受者]도 없지만 

선악의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네. 

...

이런 알기 힘든 구절이 제시된다. 

일반적으로 있으면 있는 것이다. 

없는 것이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있는 것이 아니면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이 아니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면 무슨 말인가. 

그리고 나도 없고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는데 

선악의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이런 식으로 의문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런 구절이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

◆vcke1892

◈Lab value 불기2562/02/14/수/15:47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Les Chats Sauvages - Venez Les Filles.lrc


앞 조각글에 이어 살핀다. 

앞 조각글에 살핀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논의주제 - 
○  존재에 대한 일반적입장과 전도망상분별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


■■■

○ 논의주제
○ 존재에 대한 일반적입장과 전도망상분별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http://buddhism007.tistory.com/4035#003


■■■






○ 현실이 마음내용이라고 할 때의 의문점 ,



한 주체가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런 내용의 정체에 대해 판단할 때
서로 극과극으로 달리 판단한다. 

일반적으로는 
현실 내용이 곧 외부 세계라고 잘못 여긴다. 
또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정신과는 떨어져 있는 정신과 별개의 외부 물질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내용은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하여 세계 인류가 같이 대하고 얻는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다음처럼 제시한다. 
이들 내용은 결국 각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앞과 같이 이해하는 것은
거꾸로 뒤집힌 전도몽상 분별이 된다. 

한편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실험방안을 소개하였다.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그런데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자신 마음내용이라면 
이후 현실에서 각 주체가 
일반적으로 앞과 같이 뒤바뀐 판단을 하게끔 되는 사정을 
추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즉 자신이 눈을 떠서 대하는 컵을 자신의 손으로 만진다고 하자.
그 부분이 손으로 만지는 외부 대상이 아니라고 하자.
그런데 그렇게 행할 때 그 순간에 촉감을 느끼게 되는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컵을 다른 이가 들고 있는 컵과 부딪힌다고 하자.
그 때 소리를 듣게 되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소리나 촉감은 자신만 얻는 것이 아니고 
그 순간에 상대방도 같이 얻게 된다. 
이런 여러가지 현상을 설명을 해야 한다. 


이런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 
이들 내용을 객관적 실재이자 
외부 대상으로 이해해야 할 듯 하다. 
이들이 외부 대상이 아니고 각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라면 
그렇게 될 사정이 없다고 보아야 할 듯 하다. 
그런데 왜 그런 경험을 현실에서 얻게 되는가가 문제된다. 

물론 이들이 마음안내용이라고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현실 사정이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강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본다. 

즉, 현실 사정이 바로 그렇기에 
각 주체는 그런 전도몽상 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에 대해 그렇게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상분별이 오히려 올바르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그 상태로 머물게 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생사현실에 묶여 지내게 한다.
그런 가운데 무량겁에 걸쳐 그 상태로부터 벗어나오지 못하게 한다고 제시한다.  


그래서 이런 입장과
일반적 입장은 서로 극과극으로 차이가 난다. 

사정이 그렇기에
이들 내용이 모두 마음안 내용이라고 제시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내용이 각 주체의 마음 안 내용임을 제시하는 것으로만 그치면 부족하다. 

다시 이에 덧붙여 
사정이 그러한데도  각 주체가 매 순간 현실내용을 
그처럼 잘못 여기게끔 되는 사정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이해하려면
마음이 현실내용을 얻게 되는 배경사정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 [pt op tr]  mus0fl--Diane Tell - FAIRE A NOUVEAU CONNAISSANCE.lrc






○ 현실 내용을 마음안 내용이라고 할 경우의 문제점의 상세한 고찰,


일반적으로
외부 대상, 외부세계, 외부 물질 내지 객관적 실재
이렇게 이해하고 대하는 내용이 잘못이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하면 
오히려 현실에서 경험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그 사정을 일단 조금 더 자세히 살피자. 

여기에 그림이 또 필요하다.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http://buddhism007.tistory.com/228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http://thegood007.tistory.com/1172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1 이 처음 눈을 감았다가 뜨는 순간
그 때 얻게 되는 내용을 위 그림처럼 표시하기로 하자. 

그리고 이 상황을 검토해보자. 
위 그림의 상황은
1 이 자신과 비슷한 다른 사람 영희나 철수 2나 3 을 위처럼 대하는 가운데
2 의 상황을 놓고 검토하면 이해가 조금 쉽다. 

위 상태에서 2 가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2는 눈을 감으면 보지 못하고 
눈을 뜨면 무언가가 보인다는 보고를 하게 된다. 

그 상황을 1이 옆에서 지켜본다면
1 은 그 상황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 변화는 
오직 2 의 영역에서만 있는 변화일 뿐이라고 보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런 내용은 
위 그림에서 5 ^ 와 같은 2 의 영역안에 있는 변화라고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 추리를 바탕으로
비록 엉터리지만 1은 위 그림처럼 5^ 처럼 그 내용을 얻는다고 추리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제 1이 이 상황을 검토해 본다고 하자. 


이제 2가 현실에서 무언가를 눈을 통해 보고 얻는 것은 
모두 5 ^ 영역에 들어 있는 내용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5 ^ 안에서 
2^ 의 손 부분이 4 ^와 같은 꽃에 닿을 때 
그 순간 2 가 촉감을 느낀다고 보고한다.
2 는 매번 그렇게 2 자신이 손으로 보는 부분이
4^와 같은 부분이나 컵이나 바위 등등을 닿는 모습을 보는 순간
촉감을 얻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그처럼 이해한다. 
그런데 2 가 이해하는 내용을 1이 검토하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이해한다. 

2 가 얻는 시각정보 안의 어떤 내용들이 
그런 촉감을 얻게 하였다고 이해하기 곤란하다. 

그런 상황에서 2 가 촉감을 얻는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촉감은
눈을 통해 2가 얻는 5 ^ 안의 내용들이 서로 대상과 감관으로 관계하여 얻은 것이 아니다. 

이런 촉감은 5 ^ 밖의 어떤 것들이 관계해서 얻는 것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시각과 촉각 등을 서로 부대상황의 관계로 
함께 얻는 것으로 보게 된다. 

한편 1의 입장에서는 
그 순간에 2 에게 촉감을 준 것은 다시 다음처럼 잘못 추리하게 된다. 
즉, 5 ^ 밖에 있는 4 와 2 와 같은 손이나 눈이 
2 에게 있어 외부 대상과 감관의 관계에 있다고 잘못 추리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2  자신이 얻은 5 ^ 안의 내용안에서 
어떤 외부대상과 감관을 찾는 것과 크게 다르다. 



그런데 2 가 무언가를 보고 얻는 상태를
처음에 그림 처럼 그려 추리하는 것은 엉터리다.
이는 다음을 의미한다. 

우선 1 도 2 의 상황과 사실은 상황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1이 대하는 4 라는 꽃도 1 의 마음 밖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이를 다음과 같이 이해해보자. 
2 가 눈을 떠서 5 ^ 와 같은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2 가 거꾸로 1^ 라는 사람을 관찰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고 가정하자. 

이 때 1^ 라는 사람이 눈을 뜨면 무언가가 보이고 
눈을 감으면 무언가를 보지 못하게 된다고 보고한다. 
그런데 그 상황을 2가 계속 지켜보니 별로 변화가 없다.
그런데 1이 그런 보고를 한다.
그러니 1이 보고하는 그런 변화란 오직 1 ^ 안에서 있는 변화일 뿐이다. 
그러니 그것은 1 ^ 영역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 가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2 자신이 보는 4 ^를 대상으로 삼아서
어떤 내용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얻은 내용은 1 ^ 부분에 머물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1 ^ 부분에 표시해야 한다. 
이렇게 추리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이렇게 2 가 생각한다면 어떤가. 

이런 내용을 1 이 살피면 그런 해석이 잘못임을 쉽게 파악한다.

1이 눈을 떠 무언가를 본다.
그런데 그 내용이 2 가 눈을 떠 보게 되는 5 ^ 내용 가운데 들어 있다고 하기 곤란하다. 
우선 1 자신이 5^ 안에 1^ 형태로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2 의 마음에 얻는 4^ 와 같은 내용을, 1 이 대상으로 삼아서 무언가를 얻는다고 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2 가 보는 1 ^ 와 같은 부분에, 1 이 얻은 내용이 머물게 된다고 하기 곤란하다.
이런 해석은 하나같이 이치에 맞지 않다 
이렇게 1은 쉽게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2 의 생각은 
처음 1이 2 에 대해 생각한 내용과 그 성격과 구조가 같다. 

즉 처음 1은 자신이 눈을 떠서 보는 내용 안에서
일 부분인 4 를 대상으로 삼아서 2 가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잘못 추리했다. 

그리고 2 가 얻는 내용은 그림에서 5 ^와 같은 부분에 그렇게 있다고 잘못 추리했다. 

그래서 처음 위 그림처럼 
1 이 2 가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추리해 표시한 것은 엉터리다. 


그리고 1이 촉감을 얻는 과정에 대한 다음 해석도 엉터리다.

처음 1이 눈을 떠서 4 라는 시각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서
자신의 손이 어떤 촉감을 얻는다고 이해하면 역시 엉터리다. 


그런데 현실에서 1 이나 2 나
각기 자신의 손으로 보는 그 부분이 
컵이나 꽃이나 바위 등등으로 보는 부분에 닿는다고 여기는 그 순간에 
그러나 촉감을 반복해 얻는다. 

따라서 이 내용만 놓고 보면 
그런 촉감을 얻게 하는 대상은
결국 1 의 입장에서는 4 라고 자꾸 여기게끔 된다.
그리고 2 의 입장에서는그 대상은  4^ 라고 여기게끔 된다.


처음에 이런 해석을 가장 기초적인 전도망상 분별이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그런 입장이 오히려 적절한 것 같다고 자꾸 여기게 된다. 


즉, 1이나 2 가 눈을 떠서 얻게 되는 그런 내용은 
곧 그 주체 밖의 외부세계의  내용이고 
그 주체의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고 
그리고 그것은 정신과는 별개의 외부 물질이고 
그리고 결국 이것을 서로 같이 그런 상태에서 대하므로 
각기 자신이 얻는 그 내용이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나 세계 인류가 다 함께 얻게 되는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하는 일반인의 입장이 
더 그럴듯하고 자꾸 여기게 된다. 



그런데 앞에서 제시한 실험을 다시 검토하면, 
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또 살피게 된다. 
즉, 그런 내용은
각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리고 앞과 같은 해석은 모두 잘못된 판단이다.


그런데 서로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는 이 두 주장만
계속 반복하면 결국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처음 잘못된 해석에 머물게 되기 쉽다. 

각 주체는 뒷 주장을 대하고 살필 때는 
그런 현실 내용이 자신의 마음안 내용으로서 
그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 없다고 보게 된다. 

그러나 또 다시 현실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예를 들어 컵을 만지면서 차를 마시거나  
차의 향기도 맡고
컵을 손으로 만지면서 촉감도 느끼고 
또 그 컵에 차를 따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네면 
그 상대인 영희나 철수도 또 자신과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사정을 보고하게 되는 현실을 반복해 경험한다.

따라서 다시 처음 입장으로 다시 물러나
처음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망상분별인 입장을 또 다시 취하고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상분별을 고집하면서 머물게 된다. 

그런 경우는 
처음 그런 분별이 망상분별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수행의 방향으로 전환해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해탈문에 들어가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에 머물지 못하게 된다. 

 

처음 일체가 마음안 내용이라고 제시받을 때는 
그것이 그럴 듯하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생활하는 가운데는 
일반적 입장이 그럴 듯하다고 이해하게 된다. 
매 순간 이 두 입장을 그렇게 오락가락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수행은 수행대로 원만히 성취하지 못한다. 
끝내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불완전한 상태로 남게 된다.

따라서 서로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는
위 두 내용만 단지 반복해 제시한다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기는 조금 부족하다. 

그래서 그 일체가 마음내용이라고 한다면
사정이 그런데도  
왜 현실에서는 각 주체가 앞과 같은 경험을 반복하게 되고 
또 일반적 입장에서 일으키는 전도망상분별을
왜 자꾸 일으키게끔 되는가하는 그 사정을
다시 자세히 살펴야 한다. 

일단 이와 같이 
마음에 관한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헤아려 봐야 할 사정을 살폈다.



일단 이 상황을 비유로 이해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 주체가 눈을 통해 얻는 시각감각 내용 (시각정보)를 
오늘날 TV의 모니터 화면과 같다고 생각해보자. 

TV 가 없는 상황이라면 어떤 그림으로 생각해도 된다. 

그런데 그런 그림이나 모니터에서 
어떤 사람이 컵에 손을 대는 화면을 본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 그림안의 손 부분이 컵 모양에 닿는다. 
그 경우 그로 인해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게 된다거나 
또는 그 그림에 그려진 사람이
촉감을 느끼게 된다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 문제와 앞 문제가 비슷하다. 

TV나 그림책을 보게 되면 
그렇게 자꾸 그 내용을 이해하게는 된다.
그러나 본 사정은 그렇지는 않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자. 

앞 그림이나 화면에 
어떤 이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취한다고 하자. 
그래서 공이 날라가 유리를 깬다고 하자. 
이 그림 내용이 유리를 깬다고 할 것인가.
그리고 또 그 순간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었다고 할 것인가. 

그러나 이상하게
tV 등에서 그런 내용을 그 순간에 동시에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화면을 지켜보면 마치 그런 것처럼 이해가 된다. 
그런데 사실은 모니터 각 화소가 그런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작용을 하는 것도 아니다. 



TV 모니터 화면상에서 
어떤 이가 컵을 바닥에 던졌다. 
그렇게 컵이 깨지가 소리가 스피커에 났다. 

그런데 지금 문제로 제기하는 것은 
컵에 해당한 모니터 화소가 
바닥에 해당하는 모니터 화소에 부딪혀서 
그 소리를 낸 것인가이다.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모니터 화소가 그림책에 그려진 그림 각 부분이 
서로 그런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서로 그런 작용이나 영향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화면이나 그림을 대하면 
반복해서 그런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처음에 일반적 입장에서 일으킨 망상분별의 내용을
오히려 더 적절한 판단이라고 이해하게끔 된다. 

그래서
처음 그렇게 이해하는 내용이 망상분별임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고 대하는 내용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으로 전환해서 
그런 생사현실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반복해
앞과 같은 상태로 각 내용을 얻는 경험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런 사정 때문에 
처음에 일으킨 망상분별을 계속 붙들고 임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것을 계속 고집하게끔 된다.
그래서 그런 노력이 원만하게 성취되지 못하게 된다.
이런 현실이 문제다. 

그래서 이 상태에서
그런 현실이 마음안 내용임을 반복해 제시해도 
이것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즉, 앞과 같은 현실 사정 때문에 
그 주체는 결국 그런 내용을 이해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현실에 들어가 생활에 임하면 
결국 원래 가졌던 그런 망상분별에 또 다시 붙잡힌다.
그리고 끝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3 악도로 진입해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현실이 마음내용이고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단지 반복해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각 주체가
대하는 현실 내용은  
하나같이 각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 대상도 아니고
객관적 실재의 내용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주체나 다른 주체가 그런 내용을 그처럼 얻고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그 배경 사정까지 추가로 잘 이해해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처음에 
현실 일체 내용이 
마음안 내용임을 확인하는 기초적 실험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부족하고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다시 만나게 되는 문제점을 
조화롭게 이해하려면 
어떤 해석방안들이 있는가를
그 상태에서 검토해 나가야 한다. 


처음 
자신이 눈을 떠 얻는 현실내용이
마음내용이라고 이해를 한다고 하자.

그러나 현실에서 여전히 
자신이 컵이라고 보는 그 부분에
자신의 손이라고 보게 되는 그 부분을 갖다 대면
그 순간 반복해서 촉감을 느끼게 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들을 다음처럼 살필 수 있다. 


우선 처음에 다음처럼 설명하기 쉽다. 


자신이 현실에서 눈을 떠 얻는 내용은
자신의 마음 안 내용이다. 
그러나 어떤 주체가 그런 내용을 마음에서 얻을 때는
그 마음 밖에 그와 같은 내용이 그대로 똑같이 있다.

따라서 
자신이 마음에서 얻는 그 내용을 마음 밖의 영역에 그대로 밀어 넣으면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고 여기기 쉽다. 

즉 자신이 눈을 떠서 꽃의 모습을 본다면 
그 상황에서는 그 마음 밖에도 
그런 내용이 그대로 똑같이 있다. 
때문에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본다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꽃으로 보는 모습에 
자신이 손으로 보게 되는 부분을 갖다 댄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의 마음 밖에서도 
그와 똑같은 내용이 그렇게 서로 닿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 순간에 촉감을 얻는다. 
이렇게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그런가가 문제다. 

어떤 주체가 그런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상태가 되면 
원래 망상분별과 생사현실 문제가 더 악화된다. 
경전에서는 바로 이런 입장이
처음에 일으킨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그 망상분별이 한층 더 증폭되고 심화된 상태라고 보게 된다. 

즉, 이런 경우 
원래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실답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수행의 방안으로 전환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와야 한다. 

그러나 앞과 같은 입장은
그렇게 되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 내용이 실재에서도 그처럼 그대로 있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일반적 입장보다 훨씬 더 심화된 망상분별과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된 상태가 된다. 







☎잡담☎
♥ 잡담 ♥북마크 하이퍼링크 작업


조각글마다 조금씩 내용을 적어 
주먹구구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종합척 체계적 정리해나기로 했다.

우선 각 조각글에 링크를 걸 책갈피 부분을 표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너무 거슬르지 않도록 한다. 

링크가 조각글의 성격과 특성을 방해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종합적 체계적 정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stealth 기능을 도입하여 해결하기로 했다. 

기존에 사용한 링크 방식과 별 차이는 없다. 

각 부분 시작 부분을 링크처리 하고 

그 각 부분의 끝 부분은 일단
>>> 이런 기호로 표시하기로 한다.

이전 보다 조금 더 복잡해진 듯 하다. 
그러나 매번 과거 조각글 내용을 반복하는 것보다 조금 편해졌다. 
일단 링크가 잘 작동되는가 
실험하면서 조금 쉬기로 한다. 





현재 연구원들이 촬영된 사진을 1 차처리했다. 
여기에서도 정리가 필요하다.

a 연구원이 촬영된 사진을 처리했다. 
b 연구원이 촬영된 사진을 처리할 때는 또 어떻하는가. 
이 경우 수학에서 다루는 순열 조합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a 연구원이 촬영된 사진에는 a 연구원만 촬영된 사진도 있다. 
b ,c 도 함께 촬영된 사진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개별적으로 뽑아 처리하면 
어떤 사진은 매번 중복처리된다. 
그런 중복을 피하려면 
조금 더 분류를 하고 다시 정리해야 한다. 


이런 여러 문제를 잘 정리해야 
연구 업무가 잘 진행될 수 있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4039#1892
sfed--설무구칭경_K0121_T0476.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vcke1892
♣0121-001♧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lbrecht_Dürer_057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Hybrid_Tea_-_Medallion_2_(c)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olimi_Leonardo_campus_main_building



♥Asia United Theological University – Seoul and Yangpyeong County
[장소정보2]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


○ [pt op tr]ivan-aivazovsky-wedding-in-ukraine-189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