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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4-08_대승장진론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4-08_대승장진론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4. 8. 21:45



®


『대승장진론』
K0620
T1578

대승장진론 상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대승장진론_K0620_T1578 핵심요약



♣0620-001♧

대승장진론 상권



>>>

진성(眞性)에서 

유위(有爲)는 공(空)하네. 


마치 환(幻)과 같으니, 

인연하여 발생하기 때문이네. 


무위(無爲)에서는 

실체가 있지 않아 

일어나는 것이 없으니, 

마치 공화(空華)와 같네. 


>>>



◆vopj9890

◈Lab value 불기2562/04/08/일/21:46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Pierre Bachelet - On Y Va Quand Meme (Midnight Remix).lrc


♥ 잡담 ♥총체적실패의 turning point


살아가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가졌던 뜻은 거의 다 뜻대로 성취했다고 
여기면서 오늘을 보내는 이가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반대로 자신이 가졌던 뜻은 성취된 것이 제대로 없고 
건강도 안 좋고 연애나 결혼도 실패했고 
사업은 망했고 처자식도 자신을 떠나고 
이런 식으로 안타까움을 표하게 되는 경우도 
또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이 두 경우 모두 남은 기간 
이미 뜻을 성취한 경우는 그에 안주하지 말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또 성취하지 못한 경우는 그럴수록 
남은 기간 이를 만회하고 훨씬 더 좋은 상태가 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본다. 


오늘도 사진 앨범 dvd 제작을 위해서 
많은 테스트를 해보게 되는데 
종전에 올린 스크립트가 오류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일단 내려 놓았다. 
수리를 한 다음 다시 올려야 한다고 보는데 
주요 원인은
종전에 사용하던 프로그램을
조금 버전이 업데이트된 프로그램으로 교체하는 가운데
이 프로그램이 다양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정을 보게 된다. 

어떤 버그를 해결하고 이전보다 성능을 좋게 하는 것이 업데이트인데 
여하튼 한번 무언가가 바뀌면 
사용자는 이후 이와 관련된 내용을 모두 찾아서 같이 바꿔줘야 하는 
다양한 불편을 겪게 된다. 
원래는 기존 사용자는 불편이 없고 기능만 향상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지만, 
업데이트가 반드시 그런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능이 좋아지기는 하는데 
이전에 잘 되던 기능들이 하나 둘 씩 안 되는 현상이 
여기저기서 발견되면 총체적 난국 상황에 빠지게 된다고 본다. 

일단 본인 시스템에서 작동이 되어야 하는데 
본인 시스템에서도 안 되고 
수많은 버전의 윈도우 시스템에서는 아직 테스트 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다. 
상황이 어렵다. 

그러면 종전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면 어떤가. 
그것은 종전 프로그램은 종전 프로그램대로 일정한 문제가 있었는데 
새 프로그램에서는 그 부분은 개선되었기에 
그것을 사용하게 된 것이기에 또 곤란하다. 

그래도 여하튼 오늘 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많은 버그를 찾아내어서 
방생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작업을 마치고 나서 
오늘 뽑힌 대승장진론을 살펴 보는데 
불교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입장에서 이 문헌을 보면 
무슨 암호 문서인 것처럼 여겨지기 쉽다고 본다. 

경전도 어렵지만, 
논서의 경우 오히려 표현이나 내용면에서 그런 성격이 많은데 
이는 논서가 입장이 다른 경우와 시시비비를 따지면서 
논의에 들어가기에 그런 성격이 나타난다고 본다. 

또 시시비비를 따지려면
다른 입장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제시된 것인가를 이해하고 
논의에 들어가야하므로 
살펴야 할 내용이 더 복잡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고 본다. 

위 논서를 읽고 이해하려면 
일단 망집상태에서 일반인들이 
어떻게 추론을 전개하는가. 
이 사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난다. 

이런 하나의 주장을 어떤 이가 제시한다면 
이는 사실은 그가 
망상분별 상태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기도 한데 

여하튼 그가 어떤 사정으로 
이런 내용을 제시하게 되었는가를 
그 상대의 입장에서 일단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그가 무엇을 보고 종이라고 한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불이라고 하고 
무엇을 연기라고 한 것인가부터 이해하고 

그가 처음 본 종이와 
그 다음 불을 붙이는 내용과 
그 다음 연기가 난다는 내용을 
어떤 사정으로 관련시킨 것인가. 
이런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주장을 그 상대가 제시하게 된 사정에 대한 이해가
곧 그가 전도된 망상분별상태임을 이해하는 것도 되지만, 
여하튼 그 상대와 어떤 논의를 하려면 
그 상대가 도대체 어떤 입장에서 
이런 주장을 제시하는가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 논서에서 제시하는 추론식은 
인도에서 제시하는 추론식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서양에서 제시하는 추론식과는 성격이 다르다. 

언뜻보면 이들은 같은 추론식처럼 보이지만, 
서로 크게 성격이 다른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추론을 행하는 것이어서
이 각각의 추론의 문제점이 무언가를
먼저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선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이런 추론들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는가. 
이렇게 의아하게 여기기 쉽다. 

예를 들어 
철수는 사람이다. 
사람은 다 죽는다. 

∴ 그래서 철수는 죽는다. 

이렇게 서양 논리학자가 추론을 한다면 
이처럼 명확하고 정확한 추론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철수 부분에
자신을 떡 대입해 놓고
그런 사정으로 자신도 죽는다.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이 전도망상분별을 
해결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면 상당히 복잡한데 
이미 그 기본적 내용은 이전 조각글에서 
다 제시하였다고 본다. 


그런데
다시 이런 서양논리학의 문제는 문제대로 살피는 가운데 
다시 인도에서 제시하는 논리와 추론의 문제를 살피려면 
다시 앞과 같이 행하는 추론 즉 
종이를 불에 태우면 연기가 난다는 
추론은 먼저 앞에 제시한 추론과 그 성격이 과연 같은 것인가를 
또 생각해야 한다. 



종이란 본래 연기를 만들어 내게 되어 있는가. 
그런 의미인가.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잘 생각해야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 문제를 이런 부분에서 잘 이해하면 
사실은 일반적인 입장에서 일으키는 
전도망상분별의 성격도
이를 통해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기회가 되면 이 부분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야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내용은 이미 
이전 조각귿들에서 자세히 살핀 것이고 

이후는
일반적으로 확고부동한 진리라고 이해하는
각 추론식이 왜 엉터리이고
희론에 불과한 것인가를 
잘 음미해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를 가장 간단히 제시한다면 
그 추론식을 세우고 논의하는 입장이 
기본적으로 전도망상분별에 바탕해서 
이런 추론이나 분별에 임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쉽게 이 사정을 설명하면 
이미 비닐마술의 비유로 설명한 것처럼 
세모가 그려진 비닐과 큰 동그라미가 그려진 비닐을 겹쳐 놓으면 
안이 세모인 도너츠 모양이 나타나 보인다고 할 때 
이런 추론은 처음부터 
이처럼 엉터리로 일으켜 갖게 되는 도너츠
그래서 어떤 영역에도 얻어지지 않는 도너츠를 놓고
현실에서 이런 추론을 해나가는 사정이 있기에 
그렇다는 의미다. 


그런데 어떤 이가 만일 여기에서 그런 도너츠를 논의하지 않고 
동그라미가 그려진 비닐에 있다고 보는
동그라미만 놓고 논의를 해나가고자 한다면 또 어떻겠는가. 

그런 경우는 또 그런 내용은
다른 비닐에는 해당할 바가 전혀 없는 내용을 놓고
논의를 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런 바탕에서 논의하고 추론을 행하는 그 일체가
엉뚱한 희론이 되는 사정인 것이다. 

그래서 이 사정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하면 
이로 인해 
이런 희론의 늪에 빠져 들어가서 고생하지 않게 되는데 

그러나 만일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희론의 논의에 들어가면
이후 희론의 늪에 빠져서 헤메게 되고
그렇게 헤매인 만큼 삶의 고통을 받게 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소득은 별로 없게 된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자신이 속아서
그렇게 긴 기간을 고통을 받고 살아온 것을 
이해한 후에는 이로 인해 속이 상할 수 있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turning point 가 또 필요한 것이다. 

일단 쉬자.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Bonnie Tyler - Kareen Antonn - Si Demain (Turn Around).lrc

오늘 조각글 주제를 turning point 로 잡았는데 

옥상기지에서 쉬는 동안 이 turn 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를 들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여기에 올리고 듣게 된다. 

세상에서 거리에 서서 눈을 뜨고 보면 
사람도 여기저기 다니고 
자동차도 다니고 
길가에 건물도 보이는데 

이 삶의 현실에서 turn 을 제대로 해야할 때 하지 못하면 
사고를 만나게 마련이다. 

세상사람들이 여러 진리나 가치의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가치있는 상태를 성취할 방안이나
그 인과관계를 놓고 
시시비비에 임하는데 

이미 이전 조각글에서 간단히 제시했지만, 
어떤 이가 망집에 바탕해서 
우유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자신의 자산을 모두 우유로 바꿔 놓으면 
그 우유가 썩을 때까지는 그럴 듯해 보이게 된다. 

우유가 거래되는 곳에서는 
지금 우유를 사고 
다시 우유를 팔아도 되기에 
그 짧은 시간만 놓고 보면 
이것이나 저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유에서 
그런 사정으로 우유를 가득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그가 적절히 방향을 돌려서 나아갈 지점을 찾지 못하고 
그 우유를 계속 고집하고 지니면 
그는 결국 우유가 썩는 사태와 함께 
사고를 당하게 마련이라고 쉽게 볼 수 있다. 

비유이므로 적절히 이해해야 하는데 
만일 정말 우유를 고집한다면 
이 우유로 야구르트도 만들고 
치즈도 만들고 이런 형태의 노력이라도 해야 되는 것이지, 
그 우유만 계속 붙들고 있으면 곤란하다. 

그런데 아무리 이 비유상황에서 
그런 문제가 있다고 제시해도 
그 우유가 썩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는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아니 우유가 지금 아무 이상이 없는데 
왜 이것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가. 
이런 식으로 임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정작 우유가 썩고 나면 
왜 이것이 이렇게 되어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또 그런 사고에 그대로 침몰해 버리고
고통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금 축사에 가서 
축사에서 생활하는 축생을 놓고 
그 축생에게 왜 그렇게 되어 있는가를 물으면 
그 축생이 그 사정을 파악해서 
자신에게 제시해주는가를 또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그 축사를 경영하는 목장 주인에게 
가벼운 허락을 받아야 한다. 
목장 주인이 그 축생에게 가장 
신경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그 축생이 살아서 죽을 때까지 
그리고 심지어 죽고나서까지 
그 축생이 그 목장주인에게 주는 이익이 
막대하다고 목장주인이 이를 대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그런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축생에게 행한 질문을 
그 목장 주인에게 똑같이 한번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목장 주인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와 함께 축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하튼 해결이 잘 되지 않고 
곤란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 해결이 된다는 것은 
목장 주인이나 그 축생이 
함께 turning point를 찾아내서 
이전보다 훨씬 좋은 상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상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대승장진론이란 논서를 대강 살폈는데 
일반적으로 불교에 대해 많이 공부한 입장에서는 
그대로 죽 읽으면 이해가 된다고 볼 수 있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한 문장 한 문장마다 만나게 되는 생소한 표현을 
놓고 일일히 
이 내용을 설명해야만 그 문장을 이해하고 
그리고 전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서도 
왜 각 문장이 그런 관계로 연결되고 
그래서 그 결론이 무언가를 이해하려면 
대단히 많은 내용을 설명해야 이것이 
비로소 가능하다고 그 사정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가 조각글 하나로 
쉽게 이뤄질 수 없다고 보는데 
그러나 여기서 이런
논리나 추론의 문제점을 간단히 살피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미 이에 관한 내용들은  
본래 그런 내용이 망상분별이고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사정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행에 임해서 
생사현실을 벗어나와야 함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이 논의의 본 취지라면 취지인데 

이런 사정을
경전이나 논서에서 제시하고 살피는 방식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이해할 부분이 
시설(안립, 가명)의 문제임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그런 시설로 앞과 같은 사정을 잘 이해하고 나면 
이를 통해 생사를 벗어나와야 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런 취지로 시설한 내용들에 대해
다시 그 이전 바탕에서 행하던 것과 같은 망집을 일으키지 않고 
그 시설은 시설대로 잘 철거해야 하는 한편 
또 한편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 임해 중생을 제도하고자 할 때는 
유익하고 굳이 제거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철거하려고 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런 내용을 간단히 시나 비유로 이해한다면 
이런 내용들은 
강을 건너는 데 사용하는 뗏목과 같이 
이해하고 대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뗏목은 뗏목의 기능을 잘 해서 
생사고통의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뗏목에 대한 집착은 또 그 집착대로 
잘 제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설 가운데 
추론에 이용하는 체계가 여기서 처음 문제된다. 

앞에서 이미 간단하게 
서양에서 사용하는 추론식도 제시하고 
인도에서 사용하는 추론식도 제시했는데 

현실에서 명확하고 확고한 진리의 내용으로 
제시하는 내용은 
대부분 이런 체계를 의존해서 
제시되게 마련이다. 

그 가운데에는 아예 그런 근거도 없이 
그저 자신의 희망이나 상상과 공상을 섞어서 
무조건 어떤 내용을 제시하고 
그것은 그냥 그렇다. 
이렇게 제시하는 입장도 상당히 많다고 보지만, 
여하튼 그래도 그 내용을 상대에게 인정받고자 할 때는 
또 위와 같은 추론체계를 의존하는 것이 
일반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추론체계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런 추론체계에 의존해 제시한 일체 내용이 
다 함께 그런 문제를 그 바탕에 갖고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 바탕이 처음 망상분별에 의해서 진행되면 
이후 과정은 이 망상분별을 더욱 증폭시키는 
기능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부분에서부터 
이 추론이나 분별이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고 
그 기본적인 내용을 
이미 앞 조각글들에서 반복해 제시했던 것이다. 


여기서는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앞에서 제시한 서양 추론식을 놓고 
간단히 문제를 살펴보자. 

그런데 먼저 여기서 이 추론은 
동품이나 이품을 나열하면서 추론을 행하는 
인도추론식과는 또 성격이 다르다는 것부터 
먼저 잘 이해하고 이를 살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인도 추론식도 자세히 보면 
나중에 전개된 인명론체계와 같이 
또 조금 성격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지만, 
여하튼 가장 기본적으로 
왜 이런 추론체계가 기본적으로 
전도몽상에 바탕한 희론의 체계인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또 자신이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하나의 해탈문의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서는 
처음 제시한 추론식을 보자. 

일명 바바리 코드를 입고 다니는 바바라 여사의 
엉터리 희론 추론식이라고 하는 내용이기도 한데 
그 내용이 다음인 것이다. 


철수는 사람이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 그래서 철수는 죽는다. 

이런 추론인 것이다. 

대부분 이것처럼 명확한 추론이 어디있는가 
하고 생각하는데 

사실 쓸데없는 문장 가운데 
더 확실하다고 여기는 문장을 하나 제시하면 
이런 문장도 제시할 수 있다. 

철수는 철수다. 
사람은 사람이다. 
죽는 것은 죽는 것이다. 

이 문장을 보면 얼마나 확실한 문장처럼 여겨지는가. 

그래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면 
이로 인해 망상분별의 첫 최면에 
끌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왜 이런 쓸모없는 
희론을 제시하는가 
도대체 여기서 철수는 무엇을 철수라고 한 것인가. 

그리고 그런 결론이 옳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로 그렇다는 것인가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더 망상분별을 증폭시켜 나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 추론체계의 문제 상황을 조금 쉽게 이해하려면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살펴보면 나을 수 있다. 


철수는 사람이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 그래서 철수는 죽는다. 


이런 식으로 바바리 코트를 입은 바바라 여사가 
그럴 듯하면 최면을 걸기 시작하면 
먼저 이렇게 물어보아야 한다. 

이런 추론을 통해서 
그런 결론을 얻고자 하는 것은 
철수가 죽는 것인지 
죽지 않는 것인지가 불확실해서 
그런 추론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물어보아야 한다. 


요즘 컴퓨터 코드를 작성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a 나 b 가 있다. 
그러면 그 각 경우는 또 무엇이 있다. 
그러면 그 경우마다 어떻게 한다 
이런 일련의 내용을 
컴퓨터 언어로 표현해서
동작을 할 수 있게 하는 체계라는 것이다. 
스크립트가 그런 것이다. 

앞의 질문에 대한 바바라 여사의 
답은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아니다. 나는 철수가 죽는 것을 이미 잘 안다. 
=> 그런 경우라면 왜 저런 추론식이 필요한가. 

그렇다. 나는 철수가 죽는 것을 잘 모른다. 
그래서 저런 추론식을 통해 그런 내용을 알아내려고 한 것이고 
그래서 알아낸 것이다. 
=> 그런 경우라면 어떻게 저런 추론을 전개할 수 있는가. 

이렇게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어떤가. 

앞의 질문에 대한 답에는 
다시 또 다른 if 문장이나 경우가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아니다. 나는 철수가 죽는 것을 이미 잘 안다. 
=> 그런 경우라면 왜 저런 추론식이 필요한가. 

=> 나 바바라여사는 그 내용을 알지만, 당신이 이것을 모르기에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 그러면 다시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 상대는 철수가 죽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인가. 
모르는 상태인가. 
=> 만일 모르는 상태라면 어떻게 그런 추론을 통해 
그 내용을 알 수 있겠는가. 
이는 바바라 여사가 처음 이 내용을 몰랐던 경우와 
그가 사정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각 경우에서 
어떤 이던지 철수가 죽는 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라면 
왜 이것이 그 추론의 진행을 방해하는가부터 
먼저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가 설령 철수만 빼고 
나머지 사람은 다 죽는 것을 안다해도 
그 내용을 가지고는 
철수가 죽는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가. 

이 문제를 다시 쉽게 이해하려면 
지금 로또 복권을 파는 곳에 가서 
대략 800 만장의 복권용지를 일일히 검사했다고 하자. 
그래서 단 1 장만 빼고 나머지가 다 1 등이 당첨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나머지 남은 1 장도 1 등이 당첨되지 않았다고 
추론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제시한다면 
이것은 앞의 추론과는 전혀 기반이 다른 
별개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귀납추론이라고 하는 영역으로서 
대강 그럴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는 정도의 결론을 
얻어내는데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대부분 희대의 사기꾼이나 
어떤 소설에 나오는 악마에게 전 재산과 함께 
자신의 생명까지 도박에 의해 빼앗긴다고 하는 내용에서 
주로 다루는 소재가 바로 이 부분이다. 

그것은 그 악마나 희대의 사기꾼이 그 전까지는  
도박이나 거래를 하면서 
9999999999999999999999 번을 다 잃거나
철저히 약속에 대한 신용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악마나 사기꾼이 그런 상태에서 
단 한번의 제의를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 
이제 한 번만 더 거래나 내기를 해보자. 
당신의 생명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걸고 
내기를 하자.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을 놓고 
이에 임할 때 
바로 그 한번에 모두 다 날라가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귀납추론이 갖는 문제점이 
바로 이 문제인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귀납추론에 의존하지 않고선 
매번 불확실한 모험을 해야 한다고 보기에 
로또 복권 한 장을 사더라도 
과거에 당첨된 번호와 통계를 의존하고 임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은 문제인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제 이렇게 간단히 이 사정을 이해하고 
앞의 문제가 과연 그런 형태로 
개연성이 높은 귀납추론을 하기 위해서
이런 내용을 제시한 것인가를
또 살펴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이 추론은 
불확실한 그러나 개연성이 높은 추론을 하고자 한 
추론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추론을 행하는 입장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 제시한 의문을 
또 살펴야 하는 것이다. 

사정이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상태에서 
그런 추론을 행할 수 있었는가. 

철수가 죽는 것을 모르는 이가 
어떻게 사람 전부가 다 죽는 것은 알았다고 
떡 제시한 것인가. 

그리고 사람 전부가 다 죽는 것을 안다고 제사하는 이가 
왜 철수가 죽는 것은 또 모른다고 할 것인가. 

그리고 철수가 그렇게 죽는 것을 이미 안다면 
왜 또 이런 추론이 필요하다고 한 것인가.

이런 문제가 처음에 제기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내용을 살펴도 
골치가 아프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논의가 
경전에도 제시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생멸이나 생사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고 
사람이 죽는 것처럼 보여지고
그래서 죽은 이후에는 그와 관련된 것이
그 이후에 아무 것도 없다고 단멸관을 취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 
이렇게 내용을 제시할 때 

대단히 나이가 많이 든 인도의 왕 한 분이 
부처님을 찾아와서 
이와 같은 내용을 제시하면서 
죽음과 관련된 인생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부처님도 
위와 같은 질문을 제기한 것이다. 

당신이 지금 죽지 않았는데 
어떻게 당신이 죽는 것은 그렇게 또 잘 아는가. 

그렇게 물을 때 
왕이 답한 추론의 방식도 
사실은 일반인과 같이 위와 같은 형태로 
그 내용을 파악하고 제시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망상분별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잘 이해하면 
이를 통해 
자신부터 그런 생사를 벗어나는 
해탈문을 하나 확보하게 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앞에 제시한 내용을 놓고 잘 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 확고부동하게 옳다고 본 
위 추론은 엉터리임을 이해해야지 

위 추론이 맞는데 
왜 저런 의문을 제기하는가 
이렇게 의문을 다시 가지면 곤란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문제를 살펴야 한다. 

앞과 같은 방식으로 위 추론을 살피면 
분명히 엉터리 추론을 한 것이거나 
아니면 이미 결론을 알고 있어서
굳이 추론을 할 필요가 없는데 
쓸데없이 공연히 추론을 한 것이라고 할 것인데 

그러나 서양에서 제시한 위 추론체계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본다면,
'희론적' 추론으로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부분이 또 있다는 점까지
함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희론이지만, 
희론으로서 수많은 희론들을 다시 증폭시켜 만들어 내는데 
크게 기여하는 추론방식이 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위 내용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다. 

'a, b, c 라는 성품을 갖는 어떤 것'은 'a, b 라는 성품을 갖는 것'이다. ,
그리고 'a, b 라는 성품을 갖는 것'은 'a 라는 성품을 갖는 것'이다. 

 ∴ 따라서 'a, b, c 라는 성품을 갖는 어떤 것'은 'a 라는 성품을 갖는 것'이다. ,

만일 이렇게 제시한다면 어떤가. 

알고보면 이 추론도 희론의 추론체계로서
앞에 처음 제시한 것처럼
언어적 문장형식의 정의나 약속을 통해서 
'a 라는 성품을 갖는 어떤 것'은 'a 라는 성품을 갖는 것'이다. ,  
이런 식으로 제시하는 내용처럼 
쓸모없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다만 이런 희론적 추론 체계가 그나마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 것은 
결론부분에서 제시한 내용은 
앞 두 문장에서 제시한 내용은 아니고 새로운 내용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a, b, c 라는 성품을 갖는 어떤 것'은 갑이라고 표현하고
 'a, b 라는 성품을 갖는 것'은 을이라고 표현하고 

 'a 라는 성품을 갖는 것'은 병이라고 표현하기로 한다고
언어로 정의하고 약속을 하고 임하면

위 내용은 다음과 같이 변하는 것이다.

갑은 모두 을이다.
을은 모두 병이다.  

∴ 따라서 갑은 모두 병이다. 

이렇게 제시하니까. 
그럴 듯해진다고 
바바라 여사가 비로소 흐뭇해 하는 것이다. 

이를 다시 잘 살피면 이렇다. 
앞 두 문장을 놓고 볼 때 
갑은 모두 병이다. 
이런 내용은 전제에서 제시하지 않았는데 

그런 전제들을 바탕으로 해서 
바로 앞과 같은 추론체계를 통해서 
이제 결론과 같이 신선한 내용을 
새로 끌어낸 것으로 보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서 이 주장은 
그런 관념영역에서는 이 이상 확고부동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가 그런 관념영역 밖으로 이 내용을 가지고 끌고 나오면
이로 인해 곧바로 망상증 환자로 같이 취급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추론이 갖는 문제는 
현실이나 실재를 놓고 
그것이 과연 실다운 것인가 
그 정체가 과연 무엇인가를 살피고자 할 때는 
바로 이런 성격때문에 
이런 추론을 가지고 임하면 
대단히 곤란한데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임하면 

바로 그런 사정 때문에 
극심한 생사고통의 늪에 빠지고 묶이는 
근본 원인이 된다고 반복해 제시하는 것이다. 

위 내용이 갖는 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내용을 그대로 
다른 영역 
즉 감각현실이나 실재에 위 내용을 밀어 넣고
이를 적용하려고 임할 때부터 
바로 그런 문제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가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일단 골치가 아픈 내용이라면 내용이지만, 
논리나 추론의 문제를 살필때 
가장 기본적이고 간단한 내용을 먼저 살핀 것이다. 

여기까지가 엉티리 망상적 희론 추론의 하나인 
서양 추론 체계를 살핀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인도에서 제시하는 추론은 
그러면 어떤가를 또 살펴야 한다. 

이것은 앞보다 조금 더 복잡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사정이 망상분별에 바탕한 것은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일단 쉬기로 한다. 







mus0fl--Disiz La Peste - Yannick Noah - Métis(Se).lrc

목록에서 랜덤으로 공양품목을 뽑아 올리는데 

같은 꽃으로 보이는 사진이 6 장이 붙어 나오고 
풍광사진은 앞에 올려진 스코틀랜드에 있는 티벳 사찰이 또 나와서 
해당 부분을 제거하고 올리기로 한다. 

현재 대승장진론에서 다양한 사견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논리 추론의 문제가 제기되어서 
이 문제를 살피는데 
이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수학문제를 하나 놓고 생각하면 
2 곱하기 3 은 얼마인가 라고 물으면 
답이 하나 제시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놓고 초등학교에 제시하면 
학생마다 다 제각각 엉터리 답을 제시해서 
이론상 그 답이 무량하게 제시될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위 문제에 대한 답은 누가 보아도 그 답이 '5' 라고 한다면 
틀린 답은 1 부터 99999999999999999.... 이런 형태로 
무량하게 나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런 틀린답을 제출하는 학생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각 틀린 답을 제출한 경우를 다 붙잡고 
그런 답을 제출한 학생이 어떤 경로를 통해 
그런 엉뚱한 답을 제출하게 되었는가를 일일히 살피고 
그 하나하나의 문제를 바로 잡는다는 것은 
사실은 대단히 번거롭고 힘든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왜 산수문제가 나올 때마다 답은 모두 5 로 처리하는가는 
5 가 상징하는 바가
그런 산수문제는 희론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감각현실이나 본 바탕이 되는 실재에서는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고 
그래서 이런 산수문제를 통해 얻어야 할 내용은 
어느 경우나 그런 깨달음을 의미하는 오(悟)인 것이고
그 오(悟)에 가장 가깝다고 보는 숫자는 5 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오해(悟解) 내지 해오(解悟)를 통해서 
평소 망상분별을 통해 행한 판단이나 오해(誤解)와 
그에 대한 고집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면 앞에서 망상분별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제시한 서양 추론식이 
가장 기능을 많이 발휘하는 것이 수학분야이기도 한 것이다. 

무량한 숫자를 나열해서 덧셈을 한다고 할 때 
그 덧셈을 통한 값이 그 문제에 처음에 제시되었는가. 
그런데 어떻게 그 무량한 문제마다 계산을 통해
그렇게 문제에서는 바로 보이지 않는 답을 제시하게 되는가는
처음 그렇게 각 내용을 정의한 바탕에서 
연역추론을 행하면 그렇게 답을 끌어내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이 앞의 추론체계에 바탕한 것인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쓸모없고 실답지 않은 희론인 것이다. 


앞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보자. 

철수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 그래서 철수는 죽는다. 

이런 식으로 추론을 행한다고 할 때 
이 내용이 앞과 같은 수학과 같은 의미라면 
희론은 희론이지만,
그나마 그 희론 영역에서는 전제의 각 문장에서는
아직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은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어서
이 부분에서 그 추론이
수학의 문제풀이와 같은 의미와 효용을 갖는다고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내용을 
어떤 이가 거리에 서서 
눈을 뜨고 대하는 감각현실을 놓고 
위 내용을 적용하려고 하면 
어떤가가 문제된다. 


여기에 이전에 제시한 문제를 다시 검토해보자. 

철수가 수밀도같은 가슴에 땀을 흘리면서 
100 m 앞에서 자신이 서 있는 곳까지 
계속 뛰어 온다고 가정해보자. 

이 상황에서 
앞 내용에서 제시한 철수라는 그 표현은 
과연 어떤 부분을 가리키는가. 
이것이 처음 문제된다. 

나중에 앞과 같은 추론으로 
철수는 죽는다라는 결론을 얻어내고 
그 내용을 적용할 때도 
이 문제가 똑같이 적용된다. 

뛰어오는 저 철수가 죽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철수가 죽는다고 한 것인가. 
이런 문제가 관련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살피기 곤란하다고 보고 
이 영역에서 그런 문제를 살피는 것을 건너 뛰어가면 
그것이 바로 수학과 같이 관념영역에서만 
그럴 듯하게 여겨지는 희론
마치 게임과 같은 유희를 위한 희론적 논의가 된다고 보게 되는 사정이다. 

그런데 만일 위 논의가 그렇지 않고 
그런 감각현실에 직접 적용하기 위한 내용이라고 여긴다면 
그 부분부터가 망상증상의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생사고통을 겪는 그 상황에서 그 내용을 놓고 고통을 받는 일과 함께 
그런 극심한 고통을 받는 상태로 끌려 들어가는 행위를 하는 그 사정도 
바로 이런 망상증상에 바탕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반대로 
그런 상황에서 그런 고통을 받지 않고 
생사고통을 벗어나온다는 것과 

그리고 그런 전제에서 생사고통을 받게 되는 상태로 
묶여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미리 수행으로 전환해 그런 상태에 묶여 끌려들어가지 않고 
생사를 벗어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 묶임에서 풀려나는 해탈을 얻는 것이어서 

앞과 같은 문제를 놓고 그렇게 
망집을 일으키지 않고 벗어나면 
이를 통해 그런 생사고통에서 해탈하게 된다고 보기에 
이를 생사해탈문으로 제시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먼저 앞의 문제를 그냥 건너뛰지 말고 
천천히 잘 음미하면서 살펴야 한다. 

그래서 앞 문제를 놓고 
그냥 쉭 건너뛰어 나가지 말고 
이를 진지하게 실험을 해야 한다. 

자신이 철수라고 여기는 어떤 이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철수가 수밀도같은 가슴에 땀을 흘리면서 
100 m 앞에서 자신이 서 있는 곳까지 
계속 뛰어 온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 그 철수를 줄자를 가지고 
100 m 떨어진 곳에 세워 놓고 
바라보자는 의미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눈앞에 세워 놓고 
손가락이 더 큰가 
그 철수라고 보는 이가 더 큰가 판단해보자. 

손가락 위치가 또 중요한데 
여하튼 손가락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자신이 평소 철수와 사이가 별로 안 좋아서 
확성기를 가지고 크게 소리 지른 것이다. 

야 거기 서 있는 손가락보다 작은 철수 이리 와봐라.

이렇게 크게 소리친 것이다.  

그래서 분노를 일으킨 철수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데
달려오는 철수를 관찰해보니 
매 순간 그 모습이 달라진다고 자신이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1 초당 1000 장씩 찍어대는
고속촬영 카메라를 동원해서라도 
이것을 낱낱이 촬영해 놓고 
그 화면마다 자신이 철수라고 보는 부분을 놓고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대략 1m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10 장씩
1000  장의 단면이나 그 사진을 나열해 놓고 
그 각 단면만다 자신이 철수라고 보는 부분이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 
그런데 이들이 서로 다 다른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다른 각 내용을 왜 하나의 철수라고 
자신이 여기는가가 문제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 상황에서 
앞과 같은 추론을 현실에 적용한다는 입장은 
그 철수라는 표현을 가지고 
이 내용들에 그 내용을 적용하려고 감히 시도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니 과연 그런가를 검토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어떤 철수가 앞과 같은 내용이
적용되는가 
그런 문제를 놓고 살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이 문제가 골치가 아프다고 해서 
이 문제를 검토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분별 영역 속으로 들어가면 
또 자신의 공상과 희론의 영역으로 숨어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의 관념영역에서는 그렇다면 그렇다고 
시를 자유롭게 쓸 수는 있는데 
문제는 그 내용이 감각현실에서도 그런가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추론을 진행하는 내용이
감각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취지라면
그것은 일단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도의 논리학의 경우는  
과연 어떤가가 문제된다. 

물론 인도 추론식에서 나열된 문장의 표현만 놓고 살핀다면 
각 표현이 정확히 
감각현실 가운데 어떤 내용을 가리킨 것인가. 
아니면 관념분별 내용만을 가리킨 것인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도 논리학의 추론이 감각현실 영역의 내용을 
초점으로 진행한다고 보게 되는 것은 
인도 논리학에서는 
자신이 결론으로서 내세우는 내용과 
유사한 사례로서 동품을 들어 추론을 진행한다는 측면에서
살필 수 있다고 본다. 
 
즉 앞에서 철수는 죽는다라는 결론을 끌어낼 때
그 철수가 단순히 관념상에서 제시하는 어떤 내용이 아니고
앞과 같이 감각 현실의 각 단면에서 찾게 되는 그런
철수라고 보게 되는 것은 
인도 논리학에서는 이 논증 과정에 
동품을 제시하면서 논의를 하는 사정때문에
그렇게 보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 경우 동품이나 이품도 
결국 언어형태로 제시되는 것이기에 
처음 전제나 결론이 문장으로 제시된 것과 
그 사정은 비슷하다. 
그러나 동품과 이품은 
단지 추상적으로만 진행되기 쉬운 추론에서 
그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례를 찾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는 관념분별 영역의 내용이라기 보다는
감각현실의 내용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혼동의 발생여지가 있는데 
동품과 이품의 의미부터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철수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 철수는 죽는다. 
이런 식으로 논증을 한다고 할 때 
무엇을 동품이라고 하고 이품이라고 하는가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보면 동품은 여기서 
그렇게 주장하는 내용과 관련된 
사례를 찾아 든다는 의미다. 

동품은 현실에서 사람으로서 죽은 것이 확실하다고 여기는 
다른 사례 
예를 들어 이미 고인이 된 
바바라 양을 찾아서 그 사례로 드는 경우와 같다. 

이는 다음 의미다. 
바바라 양도 사람인데 죽는다. 

이품은 위 주장에서 제시하는 내용과 관련없다고 보는 
내용으로서 죽지 않는 것
예를 들어 바위와 같은 것을 하나 찾아 
드는 것이다. 

이는 다음 의미다. 
죽지 않는 바위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례로 제시하는 내용들이 
만일 관념영역에서 그냥 꺼낸 내용이라면 
서양 논리학에서 처음에 살핀 문제와
그 성격이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고 
그런 표현이 의미하는 것이 
감각현실에서 얻는 내용 가운데 한 부분이라면 
이것은 이런 추론이 앞에서 살핀 희론과는
조금 다른 문제점을 또 갖는 것이 되므로
이 부분을 또 살펴야 하는 것이다. 

사례로 든 동품이나 이품이 
감각현실 영역안의 어떤 내용을 가리킨다면
그렇게 동품과 이품을 들어
추론을 행한 내용 또한
감각현실 영역안의 내용을 가리키는 취지라고 
보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바바라양이나 
바위의 사례를 들어서 
철수가 죽는다라고 결론을 제시한다면, 
이제 이 추론에서 제시한 
철수가 죽는다는 내용은
과연 감각현실 영역의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가를 놓고 
잘 살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 최종적으로 
그런 결론이 과연 참인가 거짓인가의 판단도 
이와 관련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서양논리학과 비교하면 
이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서양 논리학을 관념영역만의 형식적 논리라고 
이해한다면 
이 추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a 는 b 이다. 
b 은 c 이다. 

∴ a 는 c 이다. 

이런 추론에서 정확히 a나 b나 c 란 단어가 
가리키는 내용이 무언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결론으로서 a 는 c이다라고 제시한 내용이 
참이라는 의미도  
이 내용을 감각현실에서 그에 해당한 사실을 그렇게 확보해서 
참이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다만 전제를 참이라고 무조건 정의하거나 제시하면 
그에 따라서 결론이 참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여기서 'a 는 b 이다' 라고 전제 부분에 처음에 제시한 내용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왜 그 전제가 참이라고 할 것인가가 문제되면
이 추론에서는 일단 그런 전제 내용이 참이라고
일단 그냥 그렇게 제시한다면 결론은 어떻게 되는가를
살핀다는 의미다. 
즉 이런 추론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내용을 감각현실에서 얻기에 
그런 전제나 결론내용을 참이라고 제시한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런 추론은
그 내용을 감각현실등과 관련시키지 않고도 
진행되는 내용이 되기에 
희론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논리학은 어떤가.

인도논리에서 진행하는 추론도
이런 성격을 갖는다고 볼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인도논리에서
추론과정에서 동품과 이품을 제시한다는 것은 
이 추론에서 제시한 전제나 결론을
위와 같은 성격을 갖는 내용이라고
보기 힘들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전제나 결론도 단지 
처음 형식적으로
주장자가 무조건 그렇게 제시해서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그런 내용에 해당한 내용이 
감각현실 영역에서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기에 
그것을 참이라고 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만일 그런 취지라면, 
이들 각 부분의 내용이 과연 그런가가 
문제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각 관념분별 내용과 감각현실내용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어야 
그런 내용이 옳은 내용이라고 볼 것인가가
문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기본적으로 먼저 
앞에서 제시된 것처럼
감각현실 각 단면이나 이를 촬영한 수많은 사진을 놓고서 
어떤 한 단면의 내용이 다른 단면의 내용과는 제각각 다 다르다고 보면서도
왜 이들을 다 같이 철수라고 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건너뛰지 말고 살펴야 한다. 
왜 그런가. 

또 이와 함께 이 문제해결을 위해서 
현실의 한 단면을 붙잡아 정지시켜 놓고 
왜 그런 감각현실에서 일정 부분을 놓고 
그것을 철수라고 하는가부터 또 살펴야 한다. 


이 내용들은 이미 과거 조각글에서 자세히 살폈는데 
만일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기에 그런가. 

그것은 결국 감각현실에서
그런 관념분별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도  
그런 관념영역안의 관념분별 내용을 
엉뚱하게 감각현실 부분에 밀어 넣어서 

그런 감각현실에 그런
관념분별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주장하려는 

망상증상의 증폭확대를 꾀하는 시도이기에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의미다. 



또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과 같은 망상증상을 일으킨 입장에서는 
대부분 이런 시도를 
이런 감각현실을 얻는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 대해서도 
똑같은 형태로 망상증상을 일으키고 
주장을 행해 나가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입장을 취할 경우는 
결국 자신이 일으킨 관념분별 내용이 
이들 각 영역에 그렇게 실답게 있다고 여기는 가운데 
이들 각 내용을 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바로 그런 문제때문에 
자신이 일으킨 망집을 바탕으로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번뇌를 일으키고 
이에 집착한 가운데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와 태도를 취하면서 
그 기본 바탕이 되는 내용을 뒤섞어 나가게 되기에 

그런 전제에서는 그는 그로 인해 
극심한 생사고통으로 받아들일 도리 밖에는 없는 상태로
묶여 나가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도살장에 끌려가기 직전에 놓여 있는
축생들이 모여 있는 축사 상황을 다시 보면 
바로 그 사정이 그렇다라고 이 사정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그런 망집을 갖고 임하는 주체는
비록 지금 자신이 의지하는 우유통이
다 썩지 않고 있다고 해도
이와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잘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넓고 길고 깊은 광장심관찰을 통해 
미리 이해하여 파악하지 못하고 
좁고 짧고 얕은 협단천 관찰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 이 측면의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면서 
고집하고 임하면 

결국 썩어가는 우유통을 붙들고 
직접 썩는 모습을 보게 되기 전까지 
계속 임해보자는 자세에 다름아닌 것이다. 

여하튼 오늘 기본적으로 살피는 문제를 잘 살피면 
그 이후는 사실은 더 살필 필요성도 없다고 보게 되는데 

그래도 또 이 문제를 앞으로 계속 살펴야 하는 것은 
이런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스스로 쉽게 벗어나오지 못하는 중생을 제도하려면 
또 이런 방편을 통한 논의가
대단히 필요하다고 보는 사정이 또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과 같은 기본적 내용을 이해하고 
이후 또 구체적인 부분을 살펴나가면
대승장진론에서 각 부분에서 살피는 내용들도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오늘은 이만 그치고 
쉬기로 한다. 

노래를 듣다보니 
어떡할거나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평소 확실하다고 여기는 추론체계가 
이런 문제가 있다면 
이를 의존하여 현실에서 
수많은 생활을 하는데 
도대체 어떡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을 당연히 갖게 된다고 본다. 

어떡하기는 어떡하는가.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고 
생사를 벗어나오고
그런 바탕에서
그런 망집에 바탕해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제도를 위해 
무량한 겁에 걸쳐서 
복덕과 지혜를 얻는 수행으로 
전환을 해야 하는 것이 답이다. 


일반적인 입장에서 
경전과 논서에서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차도 오가는 상황을 놓고 
이 현실에 그런 오고감을 얻을 수 없고 
그렇게 오고가는 주체를 얻을 수 없고 
일체 생멸이나 생사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면 

도대체 이것이 무슨 괘변인가 하고 
의아하게 여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철수가 뛰어올 때 
저것이 철수가 아니고
저것이 뛰어 오는 행위가 아니면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거꾸로 의문을 일으키기 쉽다. 

굳이 답하면 
그런 감각현실 영역안의 내용은 
비록 그처럼 생생하게 얻어진다해도 
그것들은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철수가 아니고
그런 뛰어옴이 아닌 
그런 어떤 것인 것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감각현실은
자신이 그에 대해 생각을 일으킨 그런 것이 아닌
그런 어떤 생생한 내용인데

자신은 그런 감각현실을 놓고 
그 가운데 일부부분을 철수라고 여기고 

또 철수가 뛰어 오는 것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대하는 것 뿐이라는 의미다. 

그것은 이 현실 상황에서
철수라고 보는 그 부분만 그런 것이 아니고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도 역시 마찬가지고 

또 그런 증상은 또한
유독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이 상황에서 철수를 포함해서 
생사현실에 묶여 생활하는 생명 대부분이 
그런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이 현실을 놓고 앞과 같이 
하나하나 천천히 잘 음미해서 
그렇게 그 문제점을 제시하는 경전과 논서의 구절의 의미를 
잘 이해하면 
바로 여기에 생사를 벗어나는 해탈문을 
척 하고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해탈문을 들어가서 
생사를 벗어난 다음 

다시 이 해탈문 밖에
여전히 생사현실에 묶여 고통을 받아 나가는 생명을
구해 내기 위해서 다시 그런 현실을 놓고 
그 안에 그런 생멸이나 생사고통이 있다고 여기면서 
생사고통을 받는 생멸문으로 다시 들어가서
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노래에서
어떡할거나 하는 데에 대한 답은 
바로 그렇게 잘 관하고 임해야 한다는 그런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렇지 임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평소의 망집을 기준으로 
오히려 노래 첫 부분 가사처럼
이에 거꾸로 분노를 일으키고
평소 가진 자신의 견해에 고집을 피우고 임하면 
이로 인해 불행한 생사고통과
그로 인한 사고를 면하기 힘들게 된다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어느 부분에서 
turn 을 해야 하는가는  
지금 이 순간에
이 사정을 잘 파악하고
곧바로 수행방안을 통해
생사를 벗어나는 해탈문으로 
일단 turn 을 해야 하는 것이다. 




비유나 사례를 들 때에도 
적절한 비유나 사례를 들어야 하는데 
철수가 수밀도 같은 가슴에 땀을 흘리면서
뛰어온다는 구문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원래 수밀도 같은 가숨에 땀을 흘리면서 뛰어 온다는 내용은
어떤 시인이 그런 시를 쓴 것인데
이런 상황에 가장 적절한 경우는
경전 내용을 참조하면 바수밀다라는 분이 따로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이름을 살피면 '수밀'이란 부분이 글자의 가슴부분에 공통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자면서 일어나는데 이 분이 갑자기 떠올랐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는데 그 말이 떠올라서 
또 자세히 관련 내용을 살핀 것이기도 한데
바수밀다란, 세우라는 분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화엄경 입법계품에 26 번째 대목에서 나오는 분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밀도와 같은 가슴이란 내용으로 시를 쓴 분은
요즘은 이 시에 영감을 받고
스피드 스케이팅 분야에 진출해서 금메달을 따냈다고도 전하는데 

여하튼 바수밀다가
수밀도 같은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온다고 할 때 
이를 통해서 얻는 것은 경전 버전에 의하면 
청정하게 번뇌를 제거하는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수행자가 방편수행을 닦는 것은 
이를 통해 중생에게 이익과 안락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상대가 보리를 깨치고 얻게 한다는 것이어서 
이들 내용을 마치 거래하듯 잘 행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인데 

다만 이 경우는 거래는 거래지만,
정작 수행자는 이를 통해 아무런 얻을 것이 없는 가운데
다만 이렇게 행하는 것이어서
결국 세상의 봉이 되어 임하는 형태가 되는데
여하튼 이런 것을 거래라고 행하는 것은 
그것이 방편이 되어서 중생을 제도할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수행을 통해 얻는 복덕자량이나 지헤자량 일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멀리서 손가락보다 작다고 본 바수밀다여인이 
수밀도 같은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뛰어와 침실에 들어올 때는
대단히 바수밀다여인이 크게 보이는 것이 현실인데

이런 현실 각 단면에서 과연 어느 순간의 어느 부분이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바수밀다인가는 
앞에 제시한 내용들을 놓고 잘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 번뇌를 제거하고 
바수밀다를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도 잘 생사를 벗어나면 turn 을 잘 한 것이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바수밀다 여인을 통해서 
자신이 번뇌를 벗어나고
바수밀다여인으로부터 바수밀다여인이
다른 중생을 그처럼 제도하는
무량한 방편 수행의 한 사례를 통해
수행자 인턴 수습과정을 잘 마치면
또 경전에 나오는 선재동자 형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경우는 
어느 쪽이던지 결론이 좋은데 
다만 이름만 바수밀다이고 
실질이 아닌 경우도 종종 많기에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모 코미디 프로에 나오는 내용처럼 
바수밀다가 운영하는 바와 유사해 보이는 바를 방문하여 
갑자기 감금을 당하고 고통을 받으면 
일반 번뇌 망상으로 인해 생사현실에 묶여
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태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각 경우마다
앞에서 제시한 문제를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바수밀다가 100m 를 수밀도같은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면 
매 순간 그 크기나 모습이 달라지는 가운데 
자신 앞에 다가와 서면
그는 이제 손가락만한 크기가 아니고 
대단히 크게 보이는데 
여기서 단순히 이런 내용만 문제는 아니다. 

그 모든 순간에서 자신은 그런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 
그 매 순간 매 단면에 바수밀다가 거기에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데 
그런 관념분별 내용이 과연 그 현실 단면 어디에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이 경우 
자신이 행하는 관념분별은 눈을 감아서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행할 수 있다. 

그래서 관념분별 영역에서는 이와 관계없이 
그런 바수밀다의 모습과 성품을 여전히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관념분별 영역에서 떠올리는 그런 모습과 성품이 
자신이 눈을 떠 대하는 그런 감각현실 각 단면에서도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현실에 임한다는 것이 바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바로 그런 상을 취하고 
집착하여 생사현실을 받아나가게 되는 망상분별 증상인 것이다. 

그리고 금강경에서는 만일 수행자가
이런 상태라면 바로 그런 사정으로 
수행자 라이센스를 박탈당하게 된다고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논리학에서는 오히려 이런 현상을
논리학에서 다루는 
한 개념이 갖는 그 개념의 성품들[내포]과 
그 개념이 가리키는 대상들의 집합[외연]의
문제로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우선 이런 문제에서는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도깨비란 생각을 하면서
그 도깨비의 성품과 종류를 나열하는 문제와
일단 구별할 필요가 있다. 

즉, 이 경우 어떤 이가 
도깨비를 현실에서 보지 못하지만,
그런 입장에서도 
도깨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막연히 정의할 수 있다. 

즉, 도깨비란 사람이 아니고
귀신의 한 종류로서 혹이 달리고 방망이를 가지고 다니는 귀신이라고 
대충 그 성품을 나열하여 개념을 정의할 수 있고
그런 다음 
그런 도깨비는 일정한 모습을 갖는다고 여기는 한편 
이 도깨비에 해당하는 도깨비들은 
파란 도깨비, 하얀 도깨비, 혹이 둘 달린 도깨비, 이런 식으로 

도깨비에 해당하는 내용을 나열할 수 있다.

이는 현실에서 도깨비에 해당한 내용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런 상태에서도 관념영역에서 
그 개념의 내포(성품들)와 그 모습과
그 개념의 외연(그 개념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위와 같이 나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연수에 해당하는 수는 1,2,3,4,5,6, 등이다
이런 식으로 나열할 때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앞에서 100m 앞에서 달려오는 바수밀다를 대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수밀다의 성품과 그 모습이나
그 대상을 나열할 때는 이와는 사정이 다른 것이다. 

즉, 관념영역에서 각 내용을 나열한 것과 
그 내용을 감각현실 영역에서 붙잡아 나열하려고 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망상증상이 문제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인 것이다. 


감각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 
그런 감각현실을 놓고 그 일정 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념내용이 거기에 있다고 여기면서 
자꾸 그것을 취하고 
그에 머물러서 
뭔가를 행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내용이 
곧 문수보살님이 
제시한 아라바자나라는 다라니에서 
이 다라니를 처음 제시하게 된 과정 
나-자-바-라-아 라는 내용의
첫 부분인 '나'가 의미하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아라바자나 나자바라아. 

이것만으로도 한국어로 말이 되는 듯 하는데 
여하튼 여기서 
'나'라는 부분은 

이런 현실에서 
그런 언설이나 모습과 성품을 얻을 수 없다는 
내용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이 모든 경전의 핵심이라고 
문수보살님이 그 핵심을 그렇게 제시하는 부분인 것이다. 





아라바자나 나자바라아 
바수밀다여...

그래서 바수밀다가 이 말을 듣고 
수밀도같은 가슴에 이슬이 젖도록 뛰어오고 
그렇게 자신 바로 앞에 도착한 바수밀다를 보게 되니

 
~~
자신이 바로 번뇌를 끊고 
생사의 묶임을 풀고 도망을 가야할 사유가 
이 상황에서 바로 보이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적어도 아라바자나 나자바라아 
바수밀다 이런 부분은 
그런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반드시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앞에서 바수밀다 여인이 운영하는 바와 유사한 업소에서 
망상분별과 집착을 바탕으로
그리고 논리 추론이라는 지적인 최면을 통해
망상분별을 증폭시켜 나가는 활동을 행하는 
바바리 코트를 입은 바바라라는 여인도 소개했는데 
알고보면 이 분도 바수밀다와 같은 바씨다. 

그런데 이런 바바바 여인이 행하는 지적 최면에 걸려 들게 되면
이 경우는 코미디 프로에서 보듯 
그는 이제 이후 그런 바바라 여인이 운영하는 바안에
감금이 되어 고통을 받아가며
생활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바바라 여인은 서양에서도 유명한 여인인데 
이는 3 단 논법에서 
전칭 긍정명제 a 식이
전체적으로 a-a-a 형태로 구성된 3 단논법임을 
의미하는 약칭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이 3 단논법의 구조가 a-a-a 형태인데
이 a-a-a 라는 철자앞에 적절하게 철자를 추가해 

이를 바바라식이라고 약칭한다는 의미다. 

일일히 이런 설명을 하는 것은 
설명을 생략하면
무슨 의미인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수밀다님이 운영하는 바에서는 
이런 바바라 여인이 거는 지적 사기나
지적 최면 내지 망상분별을 깨뜨리고 
번뇌를 제거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취지로 
바를 운영하는데 반해서 


바바라님이 운영하는 바는 
사정이 그렇지 않고 
이 바를 방문하게 되는 경우는 
그 바를 운영하는 분에 의해서 감금되게 된다는 내용도
설명을 생략하면 앞 내용과 마찬가지로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고 본다.

요즘 쉴 때마다 지나간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 쉬는데 
본인 혼자만 보는 코미디 프로의 내용을 놓고 
이야기하면 다른 경우는 내용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또 있다고 본다. 

자신이 보는 프로를 다른 이가 꼭 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특히 요즘같이 채널도 수백개에 
보고 들을 매체가 수만개가 되는 세상에 
그럴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또 내용 이해를 위해서 
관련 자료 화면을 붙여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에 제시한 것처럼
번뇌망상에 시달리는 이를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그런 번뇌망상을 체포해 제거하려고 
수밀도와 같은 가슴에 이슬을 맺히도록 달려온 바수밀다님과는 대조적으로  

바바라양의 사례처럼 
바를 방문한 손님마다 감금조치를 하는 형태로 
바를 운영하는 사례로 제시한 바의 사례로
코미디프로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다음이다. 


- 마성의 나래바와 황제성의 감금송 - 


이제 쉬어야 한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4345#9890
sfed--대승장진론_K0620_T1578.txt
sfd8--불교단상_2562_04.txt ☞◆vopj9890 
불기2562-04-08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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