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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5-19_묘법연화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5-19_묘법연화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5. 19. 01:08



®

『묘법연화경』
K0116
T0262

묘법연화경 제3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묘법연화경_K0116_T0262 핵심요약



♣0116-001♧

묘법연화경 제3권





◆vzpu1534

◈Lab value 불기2562/05/19/토/01:09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Yves Montand - Elle A.lrc

♥ 잡담 ♥부도난채굴사업

그간 10일간 계속해서 채굴작업을 했는데 
오늘 확인해본 결과 엉터리가 되어서 
다시 또 새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 

불편한 다리는 많이 나았는데 
아직 부기나 통증이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은 목발을 사용하지 않고도 걸어다닐 정도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몸이 불편해서 자주 쉬면서 tv 를 보게 되는데 
짧게 볼 수 있는 단편사극류를 보고 있다. 

과거 역사는 어떤 면에서는 
안타까운 측면도 많지만, 
또 한편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일정한 교훈도 주게 된다. 

그 가운데 세조때 단종복위 운동을 펼치다가 
죽음을 당한 사6신 가운데 박팽년의 일화가 기억에 남게 된다. 
당시 3 족을 멸하는 상황에서 
박팽년의 부인이 아이를 밴 상태에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사정을 보아주기로 하고 
태어난 아이가 남아면 태어난 즉시 죽이고 
여아면 그 부인과 함께 노비가 되어 살아갈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부인은 아들을 낳고
또 여종도 그 무렵 딸을 낳았는데 이것을 바꿔치기해서 
여종이 낳은 여아는 그 부인과 함께 노비가 되어 살아가고 
부인이 낳은 아들은 종과 함께 노비가 되어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상당히 묘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고 성종때가 되어 그렇게 자라난 아이 박비라는 이가 
자수를 해서 사면을 받고 대를 잇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한 인간의 삶의 경로가 이렇게 
기묘함을 보게 된다. 

이를 보는 이는 그저 기묘하다거나 기구하다고 말할 뿐이지만, 
그 현장에서 그런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겠는가. 



요즘 몸이 아파서 조각글을 잘 적지 못하고 
경전도 잘 살피지 못하는데 
이전 조각글에서 
유명한 사찰인 어리둥절이란 사찰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일반인 입장과는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서
대단히 어리둥절하게 대하게 된다고 했는데 
위 사례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역사에 기구하고 기가 막힌 사건들이 한 둘이겠는가만 
자신이 그 사건의 당사자가 될 때는 
단순히 기구하고 기가 막힌 일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그런데 위와 같이 극심한 고통과
심한 억울함과 수치 등을 당하는 그런 상황에서 
안인을 잘 성취해야
이후 불국토를 방문할 수 있는 여행허가나 비자도 얻고  
불퇴전위에 올라 무량한 방편을 닦아 나갈 수 있게 된다고
과거 조각글에서도 제시한 바 있는데 

이런 일을 현실에서 행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다고 보지만,
그러나 수행자는 그런 방향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저 현실에서 이런 일은 기가 막힌 사건이고
고통스럽고 억울한 일이니
그렇게 그저 기가 막히고 고통스러워하고 억울해하면 그 뿐일텐데
이것을 놓고 안인을 성취해야 한다고 하니 
또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수행자의 입장은 원칙적으로 그런 것이다. 

그런 내용이 결국 금강경에서 가리왕의 사례를 들어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 전반이 
일반인의 일반적인 입장과 다르다는 점 
즉, 이것이 무엇인가에 관련한 사실판단
이것은 어떤 과정으로 나타난 것인가에 관련한 인과에 관련된 사실판단 
무엇이 무엇보다 더 가치있는가의 가치판단 
그리고 삶에서 무엇을 목표로 하고 그것을 어떻게 성취해야 하는가의 내용 전반이
서로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난다는 점과 그 사정과 연유를 잘 이해하고
생사현실에서 올바로 수행으로 전환해 임하지 못하고 삶을 대하면 
결국 그로 인해서 3 악도의 생사고통을 벗어나기가 힘이 들게 된다고 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정상이고 옳다고 보는 것을 
전도된 망상분별이라고 하니 
우선 이것부터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또 왜 그런 내용들을 바탕으로 
그런 수행방안들이 제시되는가도 이해되지 않기에 
그렇게 제시된 수행방안도
현실에서 잘 실천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앞으로는 
일반적인 입장을 취하면 어떤 문제가 있게 되는가를 
반대로 놓고 살펴나가기로 한다. 

시간이 너무 늦어졌으므로 쉬고 살피기로 한다. 



mus0fl--Florent Pagny - Si Tu Veux M'essayer.lrc

일반적인 입장과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는 

경전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하는 한편 
그러나 
현실이 또 꿈과는 달라서 실답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이 두 사정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먼저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는 측면은 
현실에 실다운 것이 '없다'는 측면으로서 
본바탕인 실재의 측면을 잘 관하여 
현실에서 갖는 집착을 제거하는 측면이고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지만, 꿈은 아니라는 측면은 
실다운 것은 없지만 그러나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측면으로서 
그런 생사현실의 묶임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는 무량한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선법을 닦고 
무량한 수명과 무량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서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수행을 해나가는 측면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 두 측면을 함께 취해 
모든 측면에서 원만한 성취를 하도록 노력을 해나가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입장과 이 입장이 차이가 난다는 것은 
생사현실의 사정을 이해함에 있어서 
모든 내용을 거꾸로 뒤집힌 상태로 대하기에 
각 부분에서 모든 내용이 전체적으로 거꾸로 뒤집히게 되고 
본 바탕에 생사나 생멸의 고통을 얻을 수 없는 바탕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됨을 의미한다. 

비유하면 도르레에 매달려 있어서 
줄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방향과 물건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과
서로 방향이 반대가 되는 것처럼 
기본 바탕에 대한 이해가 극과 극으로 정반대 방향이어서 
경전에서 제시되는 내용과 일반의 입장이 서로 
반대 방향이 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현실에서 대하는 각 내용의 정체와 
인과관계 그리고 가치와 그 성취 방안에 관련된 
전반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잘 파악해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살필 내용은 
현실에서 어떤 이가 거리에 서서 건물이나 오가는 자동차나 
오가는 사람으로서 영희나 철수를 보고 
또 자신의 모습을 본다고 할 때 

여기에 그런 건물이나 차, 영희나 철수,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있고 그런 오고감이나 생사 생멸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부분부터 
무엇이 문제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이 첫 부분이 잘못이 되면 
나중에 그 내용을 놓고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고 사라지는가에 대한 이해도 엉터리가 되고 
다시 그런 내용을 놓고 어떤 것이 어떤 것보다 더 낫고 좋은가를 판단함에서도 
엉터리 판단이 나타나고 
그리고 그런 내용이 어떻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인가에 대해서 그 이해가 엉터리이므로 
가장 좋고 좋은 내용을 설령 초점을 맞춘다해도 
다시 그것을 성취해내는 방안도 또 엉터리 방안을 취해서 임하게 된다고 
그 사정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하나가 엉터리가 되는 것은 
그 바탕이 되는 내용이 엉터리이기에  
그 잘못을 바탕으로 이후 그런 망상분별이 또
계속 증폭되고 확장되는 것임을 살필 수 있다. 

수학을 놓고 생각하면 
처음 계산값이 잘못이어서 그 이후 이것을 바탕으로 
다시 계산을 할 때마다 계속 엉터리 값을 얻어내는 것과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조각글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기본적으로 일으키는 
전도된 망상분별의 내용을 살폈는데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 내용이 왜 엉터리인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핫키로 정리한 이들 내용을 다시 출력해 놓고 
살피기로 하자. 

-

---


현실에서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이 눈을 뜸으로써 얻는 감각현실로써

자신의 마음에 얻어 자신의 마음 안에 머무는 마음 내용이고

따라서 그런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은 없고

또 이는 마음을 떠나 마음 밖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그런 감각기관을 통해 그런 조건에서만 얻는 내용이고

따라서 그 내용은 본 바탕인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고,

또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다른 감관 귀나 코 등으로 얻는 내용이나

분별을 통해 일으키는 분별 내용도 그 안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마치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의 꿈 내용처럼

비록 대단히 생생하게 매순간 얻는 내용이지만,

실답지 않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이런 감각현실은

외부 세계의 내용이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기도 하고

정신 밖에 있는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고

이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게 되는 내용이어서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또 이런 감각현실에 대해 자신이 각 부분을

묶고 나누어 각 부분이 무엇무엇이라고 분별을 할 때

그런 분별내용을 놓고도

또 앞과 마찬가지 형태로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즉 자신이 그렇게 일으킨 그런 분별내용은

그 감각현실에 그렇게 들어 있고

그래서 그 감각현실은 곧 그런 분별내용인 것이고

또 자신이 생각하는 분별내용은 그런 감각현실을 그 구성요소로 갖고 있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그런 사정으로 그 관념분별은 감각현실과 관련해 얻는 실다운 내용으로 여기는 한편,

본 바탕인 실재와 관련해서도

앞과 마찬가지 사정으로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한 단면의 내용을 놓고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킬 뿐 아니라.

변화나 생멸을 놓고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이해한다.


---

-

---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되고

또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는 부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이런 내용을 얻는 자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판단한다.

즉 일정 부분은 매번 자신이 눈을 뜨면 그 때마다 달라지는 주변모습과는 달리 늘 일정하게 보게 되는 부분이고 [상]

또 그 부분은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여 가겠다고 뜻을 가지면 그런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여

즐거움과 좋음을 가져다 주는 부분이고[락]

또 그 부분이 다른 부분에 닿을 때는 다른 부분과 달리 그로 인해 촉감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고

또 그 부분에 손을 대면 다른 부분과 달리 양 쪽에서 촉감을 느끼게도 된다.

그래서 그 부분은 곧 외부의 내용을 대상으로 하여 감각을 얻는 자신의 주관이 위치하는 부분이고[아]

그런 사정들로 이 부분은 다른 존재와 달리 깨끗하고 소중한 바로 자신이다. [정]

이런 식으로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대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컵에 커피를 담아 마시면서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고

컵을 가볍게 두드린다고 할 때

그런 모습을 그렇게 대하는 가운데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귀로는 컵 소리를 듣고

코로는 커피 향을 맡고

입으로는 커피 맛을 보고

손으로는 촉감을 느낀다고 여긴다.



또 이 커피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네니

역시 영희나 철수도 같은 내용을 보고함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종이에 불을 붙이면 분명 반복해 연기와 재가 나타나는 모습과

그 관계를 보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자신이 눈을 떠서 대하는 이런 내용은

곧 자신의 외부에 있는 외부세계의 내용이고

그리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고

따라서 정신 밖에 있는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고



또 이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게 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은

이런 내용을 얻는 주체로 여기고

이런 부분을 실다운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대표적으로

일반인이 일반적으로 갖는

전도망상분별증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


---



눈을 떠서 어떤 내용을 얻는 경우처럼



어떤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다른 내용을 일으켜 얻는 관계를

a + b => C 의 관계로 표시한다고 할 때



a + b => C 의 관계식 자체가

그런 내용을 얻는 바탕이 되는 a 는 그런  C가 아니고

a 에는 그런 C가 없는 상태임을 이미 제시하고

더 나아가 이런 관계로 각 내용을 얻는 현실 일체가

무상, 고, 무아무자성, 열반, 공 임도 다 제시하고 있다.



즉 그렇게 그런 관계로 그 내용을 얻는다고 보는

그런 C 는 그런 조건에서 얻고 그런 조건을 떠나 얻지 못하는 것이므로 무상이고

그런 성격의 무상한 내용인 C 에 집착을 갖고 대하면 그에 따라 고통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런 C 는 그런 조건을 떠나 불변하고 고정된 내용이 아니고

그런 불변하고 고정한 진짜의 내용이 있다면 얻을 수 없는 관계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관계를 통해 얻는 그런 C 는 그런 관계를 떠난 영역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는 내용임도 제시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이들은 본래 현실에서 문제삼는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고 그런 것은 적어도 아닌 그 무엇으로서

청정한 니르바나인 것이고

따라서 그런 관계를 떠나 실재하는 본 바탕은

그런 관계로만 내용을 얻는 주체로서는 그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어서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같다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의 온갖 2 분법상의 분별을 떠나고 [불이不二]

공한 것임을 함께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관계를

스스로 a + b => C 라고 이렇게 표시해 놓고


오히려 그  c 를 매번 이런 관계에서 그것을 반복해 얻게 되기에

이런 사정으로 그런 c 를 얻게 하는 바탕이 되는 a 에는 본래 그런  C가 있다거나

또는 그  a 가 곧 그런 C 라고 보는 형태가

바로 망상증의 공통적인 형식이다.



즉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해서

그런 사정으로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이 그 침대에도 그렇게 있다거나

그 침대가 곧 그 바다나 황금이라고 여기면서

자신이 꾼 바다나 황금이 실답다고 여기면

그것이 곧 꿈을 통해 일으킨 망상증상이라고 하게 되는 것처럼

현실에서 얻는 이들 내용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망상분별인 것이다.


---



핵심 내용을 간단히 압축해 정리해 핫키로 묶어놓는다고 놓았는데 
이 내용도 상당히 길다. 

복사해 붙이기는 쉬운데 그 내용을 하나하나 살피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먼저 길 거리에 서서 눈을 떠서
건물도 보고 자동차도 보고 
여기저기 오가는 영희나 철수도 보고 
자신의 모습도 본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그가 그런 내용을 놓고 
처음에 건물이나 자동차나 영희, 철수, 자신이라는 생각을 
그렇게 한다면 
여기서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이것이 각 주체가 대하는 기본적인 현실 상황이다. 

그런데 평소 이렇게 현실을 대하고 살아가는 데 
별 이상이 없고 
이런 상태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별 이상이 없다고 보고 
살아가는 것인데 
이 현실에서 자신이 도대체 무엇이 거꾸로 뒤집힌 상태로 
전도망상분별을 일으켜 대하는 것이고
그래서 받지 않아도 될 생사고통을 무량겁에 걸쳐서 
받아나가게 된다고 하는가를 
처음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이 첫 부분이 엉터리면 
이후 계속 이어지는 판단이 모두 이에 바탕해서 
계속 엉터리 판단이 누적되고 축적되어 
나중에는 이 문제를 올바로 시정해내기가 쉽지 않게 된다. 


그래서 과거 조각글에서 
100 M 앞에 서 있는 영희가 자신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인지 아니면 원한을 갚으려는 취지인지 모르지만, 
수밀도 같은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상황을 놓고 처음 설명을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자신이 계속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그 모습을 모두 영희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이 현실에서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은 그 주체가 이후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 그 모든 사정은 
또 이런 전도된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모두 얻게 된다고 
지금 제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판단 위에 나머지 문제를 모두 올려 놓고 
판단해 나기 때문이다. 

영희가 아름다운가 
영희가 좋은가 
영희에게 좋음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내용이 모두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첫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에 관련해 행하는 일반적인 판단이 
엉터리이고 거꾸로 뒤집힌 잘못된 판단이라는 측면을 
처음에 잘 이해해야 하고 

그런 바탕에서 정작 생사현실에 임해 생사고통을 받아 나가는 것이므로 
또 그런 생사현실안에서 그 문제를 또 그런 바탕에서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그런 생사현실 안에서 수행을 또 잘 해나가야 한다는 
이 부분도 함께 놓치면 안 된다. 


첫 내용만 강조하고 살피다보면 
생사현실은 또 그런 사정으로 다 무시하고 
생사현실 안에서 아무렇게 행하거나 하지 않거나 
아무 관계가 없다고 잘못 이해하기도 쉬운 것이다. 

그래서 현재 대하는 이 현실 내용을 놓고 
경전에서 위와 같은 두 측면을 어떤 형태로 제시하고 
각 측면을 놓고 어떤 취지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하고 
행하라고 한 것인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오랜만에 조각글을 쓰니 
좋기는 한데 몸 상태는 아직 완전히 상쾌하지 않고 
열흘간 행한 채굴작업이 실패가 되어서 
다시 해야 하기에 조금 복잡하다. 
그런데 완전한 실패는 아니다. 
과거에 행한 작업이 그래도 쌓여 있는 상태라 
그 상태에서 조금 더 작업을 다시 추가하면 된다고 본다,. 
일단 조금 쉬면서 이어나가기로 한다. 





mus0fl--L'Affaire Louis Trio - Tout Mais Pas Ca.lrc

요즘 쉬는 동안 계속해서 단편 사극을 보는데 

사극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과거 역사속의 왕이나 왕후 등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한 세대를 풍미한 한 부분의 대표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한 인간이 가장 최극의 상태에 도달한 다음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을 때 그런 상태에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고
또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추구하다가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가를
함께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본다.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어서 
이런 저런 내용을 많이 대하다보면
오히려 세상이란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그렇게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그저 삶인가보다하고 
생사고통을 오히려 정상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운데 
이는 같은 내용을 놓고 엉뚱한 교훈을 잘못 받아들여 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 소설 할 것 같이
세인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소재가 수없이 많고 많은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이는 개미와 베짱이 이런 이솝우화를 대하거나 
흥보와 놀보 이런 동화를 대한다면 
그로부터 엉뚱한 교훈을 엉뚱한 방향으로 받아들여 
현실에 임하는 사례도 대단히 많다. 

즉, 그것이 사실이던 아니던
같은 내용을 놓고 엉뚱한 내용을 배울 점으로 취해
그렇게 평생을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것이 바로 문제다. 


그러나 또 세상의 어느 내용을 놓고도
그 주체가 올바른 내용을 올바로 취해 삶에 임한다면 
이로 인해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무량겁에 걸쳐서 복덕과 지헤를 구족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니 
이런 점에서 세상은 다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현실내용이 
각 주체를 성불의 상태로 이끌어갈 수 있고 
모든 내용이 다 그런 진리를 담고 
생사를 벗어나는 해탈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오늘 살피는 묘법연화경은
일체 중생이 다 끝내 성불할 수 있고 
또 부처님은 그렇게 될 수 있는 깨달음을 열어서 
중생들에게 보여주시고
그래서 중생들이 깨닫고
그 깨달음에 들어와 생사를 벗어나고 성불할 수 있도록  
무량한 가르침과 방편을 펴셨다는 사정을 제시하는 경전이다. 


경전 자체 내용은 지극히 소박하고 이해하기 쉽고 단편적인 이야기들인데
이들 이야기가 갖는 의미는 
바로 이런 내용을 이해시키고자 
무량한 사례가운데 비교적 최극단의 사례들을 뽑아서 나열함으로써 
그 이하의 것은 굳이 살필 필요가 없음을 제시하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경전에서 그런 희귀한 사례도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그런 경우도 다 포함해 모두 그렇게 성불하는 것이므로  
메르쓰 바이러스나 메르켈 수상 등등을 하나하나 나열할 필요가 없이 
일체 중생이 다 그렇게 성불할 수 있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해도
그렇게 되기까지 한 주체가 거쳐가는 그 경로가 문제라면 문제다. 

즉, 언젠가는성불한다는 그 측면은 
마치 모든 존재가 그 본 바탕은 생사를 벗어나 청정한 니르바나라는 측면처럼 
다 평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그것이 무량겁 동안 지옥의 생사고통을 다 겪고 난 다음에 
그렇게 된다는 경우와
그렇지 않고 불필요한 생사고통을 겪지 않고 단축시킨 가운데
성불하게 된다는 경우는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런 점을 잘 취해야 
본 바탕이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데 
굳이 지옥의 공 수행자 형태로
무량겁에 걸쳐 생사현실에 묶여 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하고 청정한 니르바나라는 것은 
극심한 고통을 받는 현실 상태도 차별없이 그렇다는 내용이다. 

한편 일체 중생이 다 끝내는 성불할 수 있다는 내용은
생사현실에서 그처럼 무량겁에 걸쳐 고통을 생생하게 받더라도 
끝내는 성불할 수 있다는 점은 일체 중생이 차별이 없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측면은 그렇지만,
이들 내용을 생사현실을 붙들고 살피면
다시 무량한 차별이 나열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청정한 니르바나를 원본으로 놓고 
다시 동가홍상의 원리에 의해 
생사현실에서도 무량겁에 걸쳐 
무량한 수명과 복덕과 지헤를 구족해서 
본 바탕의 청정한 니르바나와 상응하게 
현실에서도 여여하게 
중생제도와 불국토장엄과 성불의 서원을 
성취해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측면을 잘 이해해야 한다. 



약초유품에서도 그 사정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숲의 나무나 풀이 있다고 할 때 
나무는 나무고 풀은 풀인 것이다. 
지금 그 순간의 그런 측면을 놓고 대하면 그것은 차별이다. 

그런데 비가 숲에 내릴 때 
이 수많은 초목이 다 함께 골고루 비를 맞고 
또 제각각 취한 가운데 
다 함께 끝내는 성불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은 공통된다.

그리고 그 본 바탕은 또 그런 저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생사나 생멸이나 오고감이나 전후를 모두 얻을 수 없는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임도
역시 차별을 떠난 측면이다. 

그래서 그처럼 어차피 차별을 얻을 수 없는 본 바탕에서 
 공연히 쓸데없이 받지 않아도 될 
생사고통을 무익하게
무량겁에 걸쳐 받아나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차별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앞에서 반복해서 실답지 않다고 제시한 
생사현실 영역에 있는 것이다. 

즉 이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아서 꿈과 같다고 제시하는데 
그러나 정작 또 꿈은 아닌 것이어서 
실답지 않다고 그대로 무시하고 방치할 수는 없는 부분인 것이다. 



그것이 앞에서 사례를 든 내용 
즉 현실에서 거리에 서서 눈을 떠 살피면 
건물도 서 있고 자동차는 오가고 
영희와 철수도 오가고 
그리고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도 보게 되는 
바로 그 현실 영역에서의 문제다. 



처음부터 이런 현실에서 자신이 얻고 일으키는 망상분별만 
기준으로 잡고 이것만을 고집하고 임하면 
사실은 생사를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엉뚱하고 황당한 내용이라고 여기기 쉽다. 

온 생명이 다 이처럼 태어나서
어딘가에서 어떤 고통을 겪다가 다 남김없이 죽어가는 것인데

도대체 여기에
그처럼 생사를 벗어나고 무량겁에 걸쳐서
무량한 수명과 복덕과 자량을 구족해나가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을 하고 성불해 성취한다는  
황당한 내용을 제시하는가
이렇게 이를 대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차이가
앞과 같은 현실 하나를 놓고 
처음 이 내용을 어떻게 대하고 이해하는가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러니 위 내용을 잘 살펴야 한다. 

거리에서 영희가 100m 앞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데 
여기에 왜 그런 영희나 오고감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가 
이 부분을 잘 이해하는 것이 그래서 대단히 중요하다. 


거리에서서 수밀도 같은 가숨에 이슬이 맺도록 
영희가 자신을 향해 달려 오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앙케이트 조사를 한다면 
이 상황에 그런 영희가 있고 오고감이 있다고 보는 이가 많겠는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이가 많겠는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현실에서 생사를 벗어나는 것이 역시 극히 드물고 
더 나아가 그런 바탕에서 무량겁에 걸쳐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자도 
극히 드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적어도 현실에서 행하는 앙케이트 조사는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앙케이트라고 쓰면서
앙케이트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하고 찾아보니
설문조사를 의미하는 불어라고 한다.  

그래서 현실 사정이 이와 같은데 
위 묘법연화경 약초유품에서는
그런 사정을 바탕으로 놓고 
부처님이 차별없이 깨달음의 법비를 내려서 
모든 초목이 다 자신의 상태에 맞게 잘 사용하고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영희가 100m 앞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데 
그런 영희와 영희의 오고감이 그렇게 있다고 보는 이부터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보는 상태까지 
모두 골고루 생사고통을 벗어나올 수 있는
해탈문을 그렇게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정을 함께 잘 살펴야 한다. 


아무리 위와 같은 내용을 제시해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천천히 내용을 살펴야 한다. 

이미 이 내용은 이전 조각글들에서 많이 살폈다. 
그래서 여기서는 조금 달리 접근해보려고 한다. 

이전 조각글에서는 이렇게 제시했다. 

100m 앞에 떨어진 영희를 자신이 보면 
자신의 손가락보다도 더 작게 보인다.
자신 눈 앞에 손가락을 놓고 비교를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계속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영희의 모습은 
매 순간 달라지고 점점 커진다. 


그래서 이를 다음 문자 형태로 나타낸바 있다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위 문자가 나타내는 내용은 눈으로는 
그렇게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각 모습을 다 영희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정은 그렇지만 그러나 또 주변의 바위나 돌과는 차별되면서 
또 이들 내용을 다 같은 영희라고 보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어서라고 일단 생각하게 된다. 

사실 이 문제에서는 
그것이 과연 무언가가 문제다. 

자신이 이 모두를 다 영희라고 생각하고 대하는 것이니 
그런 것이 분명 있을 것인데 
그러나 위 내용만 가지고는 쉽게 찾아내지 못한다. 

나중에는 자신을 놓고
갓 태어난 시점의 자신 
초등학교에 입학한 시점의 자신
이런 식으로 매 순간마다 자신을 나열해 놓고 
이 안에서 또 
그렇게 다른 갓난아이나 다른 초등학생과는 차별이 되고 
그러나 수없이 다른 각 모습을 또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여기서 찾아보려고 하겠지만, 
역시 쉽게 찾아내지 못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위와 같은 상황에서 
영희는 영희라고 매 순간 대하고 
자신은 또 자신이라고 매순간 그렇게 대하고 
매순간 순간을 임하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니 지금 이 순간 그 답을 잘 찾지 못하지만, 
위와 같은 구별과 분별을 하면서 임하게 만든 
그 무언가를 기존에 U 라고 일단 표시해놓고 
그 U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제시하고서 

그런 상태에서 그 U 를 놓고 
어떻게 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이 문제를 살피면서
이제는 이 문제를 거꾸로 살피자는 의미다. 

현실에서는 앙케이트 조사를 하면 
위 내용을 놓고 U 를 자신이라고 여기고 답을 하는 것이 아니고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를 놓고 
영희나 자신이라고 답을 찾아 제시하는 경우가 
또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연 그런가
이 문제부터 살펴나가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이전에 소개한 
현실에서 기본적으로 일으키는 전도몽상분별의 사정을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들었던 
비닐마술의 비유와도 함께 관련되어서
비닐 핫키에 보관되어 있는 내용이다.

다음이다.

각 비닐에 왼쪽에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또 다른 비닐에는 오른쪽에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둘을 다 생생하게 얻고 일으킨 다음에는 
이것을 접착시켜 결합시켜 놓고 
현실에 얻어지지도 않는 엉뚱한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면서 임하는 상황이 현실인 것이다. 
그러니 아래 그림을 잘 먼저 살펴야 한다. 

△   ○   ㋰

二   ( )   ㈡

化   □   囮

∫∬  U  ♨ 



△   ○   ㋰ 
부분에서 맨 오른쪽에 있는 ㋰ 모양의 
안이 세모인 도너츠는 없다고 제시하면 
이 모양을 이렇게 대한 이는 
아니 저기에 저렇게 분명한 △가 있고 
지금 그것을 놓고 자신이 명료하게 ○ 라고 생각하고 대하고 있는데 
이처럼 명약관화한 내용을 놓고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인가 
이렇게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사현실에 임하는 생명들이 
일으킨 기본적 전도몽상분별 증상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앙케트 조사를 하면 
거의 대부분 위와 같이 답을 한다. 

그리고 또 그런 사정으로 
이후 인과관계나 가치판단문제나 
목표나 성취 방안 전반에 걸쳐서 
엉뚱한 내용을 붙잡고 엉뚱한 행위를 해나가면서 
욕계의 3 악도에 들어가 
무량하게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근본사정도 
위와 같다. 

생사현실에서 대표적으로 문제되는 상태가 
지옥 아귀 축생의 3 악도인데 
그것이 왜 욕계에서만 있는가는 
저런 상태에서 쓸데없고 엉뚱한 희망을 붙들고 
접착되어 늘어지는 상태가 
욕계의 기본 특징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니 저 그림을 잘 먼저 살피고 

그리고 거리에서 
100m 앞에서 수밀도 같은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이런 형태로 매 순간 그 모습과 크기를 달리하면서 
자신을 향해 영희가 달려오는 상황을 놓고 
위 문제가 무슨 문제인가를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왜 이 현실에 
그런 생멸과 생사나 오고감 일체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 것인지 부터 
잘 살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쉬자. 

그런데 그런 내용이 실답게 있다면 어떻다는 이야기인가. 


본래 얻을 수도 없는 것이 그렇게 
있게 되었으니
경사났네?  

그것이 아니고 
다양한 문제가 그로 인해 발생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생사고통을 벗어나기 힘들고 
지금 그러면 
그런 상태로 무량겁을 걸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문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ne Moreau - Où Vas-Tu Mathilde.lrc

이미 작업을 마쳤는데 파일이 다 사라졌다거나 

일을 잘못 처리해서 했던 일을 또 다시 반복하거나
이런 경우 스트레스가 증가하기 쉽다.
3 층까지 집을 다 지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래 하수관을 묻지 않고 집을 지었다거나 
그런 경우가 생기면 상당히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무엇이 가장 좋다 
이렇게 보고 열심히 추구하고 살아왔는데 
그런데 그 현실에 그런 것이 본래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런데 현실에서 자신이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고 싶어서 먹었다거나 
어떤 곳을 가보고 싶었는데 가보았다거나 
또는 어떤 지위에 올라 어떤 일을 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해 보았다는 경우에 
그런 것을 얻지 못했다고 여기면서 문제라고 평소에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가. 

또 100m 앞에서 그렇게 달려오면서 매 순간 모습과 크기가
달라졌다고 보는 영희도
100m 앞에서 손가락보다 작게 보였던 

바로 앞에 서서 킹콩보다 더 크게 보였던 
그 각각을 놓고 영희라고 생각하면서 대하는데 
별 이상이 없는데 
왜 이것을 망상분별이라고 하는가. 

그러면 그 순간에 자신이 대한 영희는 과연 무엇인가. 

이런 여러 문제가 앞 내용과 관련된다. 

그래서 도무지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문장 하나만 적고 나면 자꾸 옆 컴퓨터에서 
작업 버튼을 눌러 달라고 보채서 
집중이 안 된다. 

일단 조금 쉬고 저장하고 다시 이어가기로 한다. 





mus0fl--Chanteurs sans frontières - - Ethiopie.lrc

이제 현실에서 행하는 망상분별을 살피기로 한다. 


영희가 100m 앞에서 자신을 향해 뛰어 올 때 

그 크기나 모습이 매 순간 달라져 매순간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이런 형태가 된다고 할 때 
이를 대하는 이는 이 모두를 
영희라고 생각하며 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런 순간의 각 내용에 
어떤 공통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가를 살피면 
결국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등의 각 모습은 
매번 그로부터 영희라는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는 점을 
공통점이라고 보게 된다. 

그래서 각 모습이 이런 내용을 공통적으로 가지려면 
각 모습이 그 내용을 공통적으로 갖기 이전에 
α나 β 단 하나에서라도 그 내용을 가져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앞에 설명한 비닐마술의 비유이기도 하다. 

감각현실 - 관념분별  -     두 내용이 접착된 상태

△            ○              ㋰   = 비닐마술에서 나타나게 된 안이 세모인 도너츠

二            ( )              ㈡   = 담배

化            □              囮   = 라이터에 불을 붙임

∫∬          U              ♨   = 연기



그런데 이제 그렇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각 경우의 그 부분에 다 공통적으로 들어 있다고 하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자신이 그런 감각현실에 대해 일으킨 
그 관념분별이 실답다라고 제시하는 것이 된다. 


이는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꿈의 경우를 놓고  
비유할 수 있다.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이 실답다면 
그 내용이 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침대에서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감각현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감각현실이 실답다고 하려면 
그런 내용이 그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 영역에서도 
그처럼 있고 얻어짐을 의미한다. 

그런데 감각현실이나 관념이 실답지 않다고 하는 것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제시한 것인데 
그러나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이런 것이 실답다고 이해한다면 
이들 내용이 각기 다른 영역에서도 
그대로 있다고 여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다른 영역에 얻어지지 않는 내용을 있다고 여긴다면 
그로 인해 그런 내용이 실답다고 망상을 일으킨 상태가 되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본래 실답지 않은 것들을 실답다고 여긴다면 무슨 문제가 있는가. 


우선 무언가를 실답다고 여긴다면 
그는 그것을 꿈처럼 가볍게 대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그에 집착을 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실답기 때문이다. 

만화책이 실답지 않다면 그냥 보다가 찢거나 버려도 될 것 같은데 
만일 그 만화를 찢어 버리면 
만화에 그려진 인물들도 현실에서 없어진다면 
그렇게 하기 힘들게 된다. 

또 그렇게 실답지 않은 것을 실답다고 여기면 
집착을 가질 때 행하기 마련인 행위를 해나가게 되는데 
그로 인해서 그렇게 실답게 여기는 형태로 
대단히 극심한 고통을 받는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문제다. 


이를 통해 고통을 받게 될 때 
첫 부분의 내용을 실답게 여기던 입장에서는 
이 역시 대단히 실답다고 받아들일 도리 밖에는 없게 된다. 


생사현실을 놓고 
그것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는 입장에서도 
그러나 그것이 정작 꿈은 아니기에 
그런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단순히 무시하고 방치할 수 없다고 제시했는데 

그러나 생사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생사현실은 대단히 실답고 
그것이 절대적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런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은 
앞의 경우보다 더 큰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이 현실을 실답다고 보는 가운데  
자신이 집착하는 것이 침해되고 훼손되고 
원하는 바가 성취되지 않은 상황에서 겪는 생사고통은 
대단히 실답게 받아야 하는 내용이 된다는 의미다. 


처음 본 바탕의 영역에서는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고 
생사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는 입장에서도
그러나 생사현실은 정작 꿈이 아니고
이런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을 실답다고 여기며 고통을 받는 것이 문제이므로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고통을 받지 않도록 수행을 할 필요성을 제시했는데 

이 경우는 처음부터 생사현실은 실다운 것이라고 전제한 것이므로 
그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은 더더욱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런 생사고통을 실답다고 하니, 
이 경우에는 그것이 실답지 않음을 관하고 이를 벗어나기 곤란하다고
처음부터 그 문을 막아버린 차이가 있다. 

물론 실답다고 관하던 관하지 않던 
생사현실에 임하는 한 
그런 감각현실도 얻고 
그런 통증이나 즐거운 느낌도 받고 
그런 생각도 하는 것은 차이가 없는데 

그 주체가 이들 내용을 놓고 
각 내용이 실답다고 여기게 되면 

첫번째 생사현실에서 만나는 생사고통을 벗어나기가 힘이 들고 

두번째 그런 생사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각 경우에 행해야 마땅한 수행도 
그 주체가 이미 생사현실에서 각 내용이 실답다고 여기며 집착을 갖고
그에 바탕해 행하는 상태로 묶여 있게 되므로 
역시 같은 사정으로 행해나가기가 힘이 들게 되어서 
그런 생사고통을 미리 예방하고 피할 도리도 없게 된다. 

그래서 결국 실답지 않은 내용을 실답다고 여김으로써 
생사고통을 대단히 많이 길게 받아나가게 되는 것이 문제다. 

실답지 않은 내용을 실답다고 여기면서 대하는 입장은 
그것을 실답다고 여겨서 그것이 실답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실답지 않은 것을 실답다고 여김으로서
생사현실에서 받게 되는 고통을
더 극심하고 더 장구하게 받아나가는 상태로
묶이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자신이 생사현실에서 받아나갈 
생사고통이 대단히 실답다고 여긴다면 
오히려 그런 입장에서는 
그런 생사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그것이 실답지 않다고 자꾸 생각하면서 
그에 대한 집착을 덜어내고 그것을 대하는 한편 

그런 생사고통을 받을 행위를 끊고 
반대로 그런 생사고통을 받지 않고
복덕과 지혜를 구족할 방안을 찾아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현실에서 행할 수행방안들의 내용인 것이다. 


다만 본래 실다운데
단지 생사고통을 피하기 위해
그것을 실답지 않다고 자꾸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고 

본래 그것이 실답지 않은 것이므로  
그것이 그처럼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하고 관하여
집착을 제거하고
또 그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하여 
생사고통을 벗어나오라는 것이 
불교와 일반 입장의 차이라면 차이인 것이다. 


쉬엄 쉬엄 작업을 하면서 
거의 작업을 마쳤는데 
모니터를 정면과 좌우로 놓고 작업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본다.  
쉴 틈이 없다. 
쉴 틈이 없기에 정신적으로도 피로하다. 
그래서 자꾸 쉬어주어야 한다고 본다. 


좀 덧붙인다면 
현실에서 100M 앞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영희의 모습이 
매 순간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이런 형태로 달라진다면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도 
일 평생을 통해 
그런 형태로 매 순간 달라져 온 것이다. 
갓 태어난 때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간 시점 
그리고 노인이 되는 시점까지 
꾸준히 그렇게 달라져온 것이다. 

이 두 경우가 사정이 같다. 

그래서 이 가운데 어떤 모습도 다른 모습을 
대표하는 내용이 될 수 없는데 
그러나 각 주체는 이런 내용을 놓고 
자신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 순간 자신이라고 대하는 내용이 갖는 
그 성격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매순간 그런 형태로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그에 집착하고 이것을 대하므로 
정작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형태로 죽 늘어 세울 수 있는 자신이 
이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는 관계에 놓이는 것이다.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 라는 각 내용에서 
처음 α를 집착해서 행하는 내용은 
α 에게는 그 측면 그 시점에서는 좋음을 주는 내용이라고 
보고 그런 집착을 갖고 그 순간에 행할 도리 밖에는 
없다고 보고 행하는 내용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β,γ,δ,ε,ζ,η,θ,ι,κ,λ,μ,ν,ξ ...에게는 
극심한 고통을 주게 되는 내용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렇게 행하게 되는 것이 
바로 α 라는 내용을 얻는 그 순간에
바로 그 α 가 자신이라고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그에 집착을 하기에 그렇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행하는 행위는 
비유를 하면 
본래 자신이 잠시 이생에 걸치고 있는 옷과 같은 성격을 
갖는 것 뿐인데 
이것을 집착하여 행위를 함으로써 
모래알 하나에 비유되는 어떤 좋음을 얻어 
그로 인해 갠지스강 모래알에 비유할 만한 
무량겁에 걸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되므로 
이것을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재 대하는 α를 놓고
자신이라고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그것이 실답다고 여기면서 임하는 자세가
일으키는 생사고통의 문제다.

조금만 넓고 길고 깊게 이 관계를 관찰하면 
현실에서 좋음을 얻기 위해 취하는 방편이 
모두 그 방향이 반대의 결과를 일으키고 

또 한 순간만 놓고 보면 
자신에게 큰 손해나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수행방안이 
사실은 무량겁에 걸친 생사고통을 제거하고 
자신에게 복덕과 지혜를 가져다주는 
방안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단 글이 길어졌으므로 
마치기로 한다. 

노래를 듣다보니 
불교를 잘 믿지 않는 연구원이 
장차 성불한다는 메세지를 전하는데 
이런 내용이 묘법연화경에서 제시하는 내용과도
관련이 된다고 본다. 

묘법연화경 묘장엄왕본사품에는 
외도가 성불하는 사례가 제시되고 있는데 
묘법연화경이 제시하는 바는 
일체 중생이 경로는 다르지만, 
결국 끝내는 성불하게 된다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처럼 차별없이 일체 중생이 다 끝내 성불하게 된다는
그 측면은 다행이지만,
그러나 문제는 무언가하면 
상불경보살품에 제시되는 형태처럼 
그 중간의 경로가 문제되기에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한 바람직하다고 보는 측면이다. 

그래서 늘
본 바탕은 일체 존재가 다 차별없이 공하고 청정한 상태이고
일체 중생이 다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이고 

또 생사현실에서도 일체 중생이 모두 끝내 차별없이 
성불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 차별없는 원본을 바탕으로 
이왕이면 더 좋은 것을 생사현실에서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 
또 수행의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어차피 차별이 없는데 
왜 굳이 생사현실 안에서 지옥이나 아귀 축생세계에서 
고통을 받아가며 임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것이 다른 중생과 자신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얻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또 사정이 다르지만,
그렇지도 않은 가운데  
단지 엉뚱하게 세상을 잘못 분별하고 
집착을 일으켜 
집착하는 모래 한 알을 취한 다음 
나머지 무량겁에 걸쳐 셍사고통을 받는 형태라면 
단지 안타까운 일이 될 뿐이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무언가를 성취했다고 하는 단면을 
놓고 살피면
앞의 비닐마술과 같은 상태처럼 
그 단면 안에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는 것인데도 
그 주체는 그런 것이 거기에 있다고 여기면서 
엉뚱한 것을 붙잡고 매순간 그런 형태로 집착해 임하기에 

그런 바탕에서 무량겁에 걸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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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묘법연화경_K0116_T0262.txt ☞◆vzpu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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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2-05-19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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