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e-Paule Belle - Ca Restera Quand On Sera Vieux French Anthology Naive Beauties - Je Veux Qu'il Revienne ● [pt op tr] fr sfed--무능승대명다라니경_K1136_T1234.txt ☞무능승대명다라니경
평소 팔 다리가 그대로 있으면 무덤덤하게 여기기 쉽다. 그러나 팔 다리가 한 번 잘려진 다음 수술을 통해 다시 붙여주면 1억원의 수술비가 들어도 대단히 좋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팔다리가 잘려진 후 붙여지는 것보다는 원래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 훨씬 더 좋다. 그런데 정작 그 경우에는 가치를 평가하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대한다.
그래서 처음 경우와 두번째 경우의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팔다리를 잘라내고 붙이는 과정은 생략하고 평소 상태가 그런 수술을 생략하고서도 얻게 된 좋은 상태임을 깨닫고 대단히 감사하고 가치를 평가하고 환희에 젖어 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여행에 경미한 사건 사고는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경미한 사건 사고가 대형사고가 될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 하나하나가 대형사고가 일어날 뻔 했지만, 그 정도로 끝난 다행한 일이라고 하면 대부분 이를 무시하고 덤덤하게 지나치기 쉽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정말 대형사고를 발생시키고 그 다음 이를 회복시켜서 그 가치를 인식하게 한다면 그 피해나 고통이 너무 심하다. 따라서 평소 평범한 내용을 놓고 그에 대해 감사하고 가치를 느끼는 한편 주어진 시간을 좀 더 가치있는 형태로 채워가며 보람있게 보내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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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주제는 생존의 해결과 니르바나를 주제로 해서 최종적으로 중론송에서 살피던 불생불멸 불래불거(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피려 한다. 그러나 간단히 핵심내용만 추려서 서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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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 Ferrat - C'est Beau La Vie.lrc
생존과 니르바나와 관련해 현실에서 어떻게 생존 위협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세속적인 입장과 수행 입장은 크게 다르다. 물론 두 입장은 고통을 피하고 좋은 상태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그런 활동을 하는 자신의 정체를 무엇으로 보는가. 그리고 그 자신과 관련해 고려할 범위와 기간을 어떻게 보는가와 관련해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해 임하는 협단천 관찰방식과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해 임하는 광장심 관찰방식인가에서 큰 차이가 있다.
수행의 측면에서는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두루두루 깊게 살핌과 함께
그 실상을 꿰뚫어 관하는 점에서 그 차이가 더욱 커진다. 그렇지만, 결국 고통을 피하고 좋음을 추구하고자 하는 기본 바탕은 다르지 않다.
자신의 입장에서 지금 당장 이 측면에서 단순히 좋다고 보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는 자신도 좋고, 남도 좋고, 온 생명이 제한없고 차별없이 다 함께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오래오래 무량하게 좋고 이 측면도 좋고 저 측면도 좋고 두루두루 모든 측면이 좋은 내용과는 정반대 내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음을 추구할 때 어느 부분에서는 좋음을 얻더라도 위에 나열한 부분 가운데 어느 부분에서 좋음을 얻어내지 못하거나 나쁨을 얻게 되면 그 부분이 삶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수행의 문제다.
이를 살피려면 일반적으로 행복을 얻는 방안을 놓고 그 문제를 검토하면서 검토해야 한다.
우선 생존문제란, 현실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일반적으로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육체와 정신을 놓고 생존을 위한 의식주가 충족되야 하고 또 건강한 생활이 가능한 기본환경, 음식, 운동, 태도, 마음자세, 적절한 휴식과 생존을 위한 방위활동, 의학적 치료 방안까지 이와 관련된다.
그래서 이런 논의는 생존이 위협받는 상태 예를 들어 육체에 심한 질병이나 사건 사고로 인한 훼손이 가해지는 상황 또는 정신적인 문제로 생존이 힘들어지는 상황 등을 놓고 문제를 해결하여 최소한 생존이 해결되고 더 나아가 생존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상태까지를 목표로 하게 된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 추구하는 여타의 내용은 모두 이를 바탕으로 추구할 후순위 문제가 된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침해받는 상태에서는 다른 주제를 문제삼고 추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서 행복론 분야에서도 살피지만, 불교의 수행론에서는 이뿐만 아니라, 무량겁에 걸쳐서 좋고 좋은 상태가 되기 위한 방안까지 함께 고려하게 된다.
그래서 같은 주제를 다루지만, 결론으로 제시하는 방안이 대부분 극과 극이 된다. 그래서 이를 놓고 혼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래서 세속에서는 a 라는 방안을 취하다가 산속에서 수행할 때가 되면 경전에서 제시하는 방안을 취하면 되는가라고 여기기 쉽다.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 사정은 이미 앞에서 보았다. 즉, 좁고 짧고 얕게 보면 그 범위에서는 a 란 내용이 자신에게 지금 당장 그 측면에서 좋음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넓고 길고 깊게 보면 그 a 는 우선 남에게 좋음를 주지 못하거나 나쁨을 주고 그 결과 또 자신에게도 그런 나쁨을 되돌려 주고 또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온 생명에게 좋음을 주지 못하거나 나쁨을 주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그리고 오래오래 좋음을 주지 못하고 나쁨을 주고 또한 자신이 초점을 맞추는 측면 이외로 다른 측면에서 두루두루 나쁨을 주게 된다. 따라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b 라는 방안이 제시된다.
결국 좋음을 얻고자 방안을 찾는 것은 같지만, 현실에서는 각 주체가 당장 자신이 초점을 맞추는 측면만 놓고 대하기에 그 방안이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 따라서 삶에서는 이들 사정을 고려하여 단순한 좋음을 추구할 것인지
두루두루 좋고 좋음을 추구할 것인지를 놓고 깊게 판단해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서로 뒤섞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 행복론에서
각 상황별로 [장점보기-단점제거-무시-실현] 이런 형태로 제시하는 방안을 놓고 이 각 경우마다 최종적으로 . 수행방안이 필요한 사정을 살펴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본 논의는 기존의 행복론과 차이가 발생하기에 이를 니르바나 행복론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처음 생존문제를 살필 때부터 대단히 복잡하다.
가장 첫 문제는 그런 문제를 대하는 '자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고려가 필요한 기간은 어느정도로 잡아야 하는가가 문제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신체가 무너지고 장례를 치루는 시점까지인가. 아니면 그 이후에도 그 주체와 관련되는 것이 있으므로 그 이후까지 고려해야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판단이 달라지면
그 이후 내용도 달라지게 된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방편과 수행방안은 결국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 그래서 일반적인 입장을 기준으로 할 때는 이런 입장이 때로는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진다. 따라서 이를 단계적으로 하나하나 살피지 않으면 결국 수행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이를 실천해 나갈 수도 없다. 그 결과 현실에서 각 주체는 망집에 바탕해 무량한 기간 3 악도에 묶여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현실에서 각 주체가 추구하는 내용과 관련해서 상식적인 입장과 수행방안이 제시하는 방안은 대부분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떤 주체나 각 주체가 놓인 기본 바탕은 차별이 없다. 더욱이 한 주체의 정체나 기간에 대해 일반의 입장과 극단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생사현실에서 생사과정을 겪는부분은 다르지 않다. 수행자 입장에서는 그처럼 달리 판단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은 바로 그런 생사현실 안에서 수행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적 차이와 함께 구체적으로 문제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생존에 위협을 느껴 안정적인 생존을 원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방안은 크게 4 형태로 나뉜다. 각 개인마다 갖는 뜻은 무량하다. 그래서 항목이 같아도 모든 경우 같은 방안을 취할 도리는 없다.
자동차가 4 거리가 있을 때 그냥 서 있을지, 아니면 멈출지, 방향을 돌려 나갈지 직진해서 나아갈지는 각 상황에 따라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거리에 수많은 상점과 길이 있고 각 주체의 뜻도 무량하게 제각각 다르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하나의 방안만 제시할 도리는 없다. 그런 가운데 기본 방향이 각 경우마다 선택되면 또 그 구체적 내용도 달리 제시되어야 한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각 수행자 서원이 제각각 다르기에 무엇을 우선시하고 어떤 방안으로 성취해갈 것인가도 각 경우마다 다르게 된다.
그래서 갑의 입장에서 a 를 우선시한다면 을은 b 를 우선시할 수 있다. 따라서 a 를 최선으로 잘 성취할 방안이란 갑에게 의미가 있다. 다른 경우는 우선할 내용이 다르다. 따라서 a 는 충분하지 않아도 주어진 상태에서 그대로 머무르고 단지 이를 원만히 성취하는 다른 상태를 따라 기뻐함에 그칠 경우도 있다. [ 장점 보기 ]
또 어떤 경우는 오히려 그런 a가 두루두루 나쁨을 주게 되기에 오히려 그 단점을 살피며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할 경우도 있다. [ 단점을 보고 끊기 - 무원무작삼매 ]
또 어떤 경우는 a 가 비록 좋더라도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얻는 것이 낫기에 방향을 돌려 다른 것을 추구할 경우도 있다. 갑을병정...각 주체에 따라 사정이 달라서 각 개인의 서원을 기준으로 볼 때 이는 무시하여 외면하고 방향을 달리해 다른 목표점을 찾아 추구해 나가는 경우다. [ 무시 - 회향 ]
그래서 이들 경우는 모두 a 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대하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끊거나 무시하고 외면할 내용이 된다.
그런데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이 a 가 어떤 이가 이번 생에 최선을 다해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할 내용이 되기도 한다. [ 실현 - 무량방편행의 실천 ]
그래서 예를 들어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선재동자가 방문하는 각 수행자마다 제각각 다른 형태로 중생제도와 성불을 위해 수행해야 할 내용이 제시된다. 그것은 결국 중생이 집착하는 내용과 또 한편 각 수행자가 갖는 서원이나 적성 및 개별사정에 따라서 달리 제시된다.
한편 방편적 내용은 그 내용이 방대하다. 또 한편 일체 방편은 선악무기의 성격을 함께 갖는다. 이런 점에서 방편을 닦는 과정부터 다라니와 삼매를 통해 진입하고 또 이를 마치고 나올 때도 다라니와 삼매로 이를 묶고 나오게 된다.
그 사정은 앞에서 본 것과 같다.
이런 사정 때문에 방편과 관련해서는 일반적으로 상식적 내용 외에는 추가하기 곤란하다.
여기서 살피는 생존문제 해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이 생존문제를 가장 절실하고 우선시할 문제로 대한다. 그러나 수행에서는 각 주체의 본 정체와 기간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역시 방편 문제로 취급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갖고 자신의 생존이나 목숨을 집착해 임하면 수행자가 수행자 자격을 상실하는 중대사유가 된다.
그런 내용을 『금강경』에서 제시한다.
현실에서 각 주체가 절실하게 생각하는 생존 문제가 그처럼 취급받는 사정은 앞에서 제시했다.
각 주체는 신체나 정신 내용을 바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단히 집착한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 사정이 그렇지 않다. 이들은 자신과 아무 관계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 생에 임시적으로 매순간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이나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다. 또는 그 차에 실어 놓은 외부 손님이나 짐과 같다. 따라서 그렇게 집착을 갖고 대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비록 생사현실에서 그런 몸과 마음내용을 평소 잘 대하고 처리해야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생을 제도하고 성불하는 수행을 위한 수단과 방편으로서 요구된다. 그래서 차이가 있다.
어떤 모임에 참석하려고 옷을 입고 거리를 가는데 중간에 갑자기 옷이 찢겨진다면 그 상태로 그 모임에 참석해 일을 보기 힘들다. 그래서 그 옷을 그처럼 차려입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옷이 자신 자체는 아니다.
그래서 옷이 어떤 기계나 차에 걸려서 찢겨지거나 오물이 묻으면 그 옷을 벗어던지고라도 자신은 빠져 나와 또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옷이 중요하다고 자신까지 그 옷과 함께 기계나 차에 끌려가면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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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어떤 주체가 그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각 주체는 앞 비유에서 옷에 불과한 내용 즉 현실에서 각 주체가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을 붙잡고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는 가운데 매 순간 잘못된 반응을 해가는 가운데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3 악도에 묶이게 되므로 이 부분에서 일반의 입장과 수행의 입장이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이해하려면 처음 일반적으로 상식적인 입장에서 취하는 내용과 수행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놓고 면밀하게 하나하나 잘 검토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일반인이 가장 집착을 갖는 자신의 생존과 관련해 취하는 반응은 크게 보아 그것이 대단히 소중하고 좋다고 보기에
그것을 대단히 아끼고 집착하고 또 다른 생명에게 그것을 아낌없이 베풀지 않으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 사정은 그것이 대단히 소중하고 좋다고 잘못 망집을 일으키고 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생존에 바로 밀접한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도 마찬가지지만, 또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는 자신의 재산 가족 전반에 대해서 그런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하게 마련이다.
또 마찬가지 사정으로 그렇게 망집을 일으켜 자신이 대단히 소중하다고 보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함부로 다른 생명을 해치고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것을 침해하는 활동을 서슴지 않고 행하게 마련이다.
계율에서 금하고 있는 살도음망 행위를 각 개인이 별 생각없이 함부로 행하는 사정을 알고보면 바로 위와 같은 사정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떤 병에 결렸는데 그 병을 낫기 위해서는 거북이 뇌와 토끼간을 각기 100 마리 분량씩 섭취해야 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렇게 행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대부분 입장인 것이다. 나머지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한편 망집을 일으켜 평소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그것이 대단히 소중하다고 집착을 갖는 상태에서 그런 부분에 위협이 가해지고 침해가 행해지면 거의 예외없이 극심한 고통을 받고 분노를 일으키고 그런 침해를 행한 상대에 대해 미움과 원망을 갖고 그 상대에게 그런 고통을 되돌려 주고 그에 대한 보복을 가하려고 하는 것이 또 거의 대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집착하는 좋음과 나쁨을 놓고 각 주체가 이렇게 반응하게 마련인데 그 가운데 각 주체가 가장 집착을 갖는 자신의 생존 생명 목숨 이런 내용을 놓고는 한층 더 극단적으로 그런 태도를 취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구체적 상황에서 그런 반응 자세를 취하게 되는 그 주체의 입장을 놓고 보면 대부분 쉽게 그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주체는 그런 사정으로 자신이 그 상황에서 취하는 각 내용이 지극히 정당하고 합리적이고 적절하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내용으로 직접 그 상황에서 고통을 당하거나 그 외 다른 이들 입장에서 이것을 대하는 경우는 그 사정이 그 반대가 된다는 것이 문제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바다에 빠지게 된 상황에서 자신이 안전하게 살기 위해 자신이 타고 있는 보트에 다른 이들이 올라타지 못하도록 갖고 있는 노로 상대를 때리면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방해하고 자신만 살아남았다거나,
또는 자신이 3 일 굶은 상태여서 살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가족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상대의 생명을 해치고 돈을 빼았었다거나,
또는 반대로 자신의 생존에 대단히 소중한 물건이 들어 있는 자신의 가방을 어떤 이가 훔쳐가려고 해서 방어차원에서 곧바로 발로 그 상대의 얼굴을 걷어차서 상대가 사망하게 되었다거나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그 입장에서는 그 행위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하고 절실한 행위로서 일종의 정당방위차원으로 적절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일반인이나 이런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일반 법관 입장에서는 그 사정을 구체적으로 잘 살펴야 한다고 보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보게 된다.
오히려 이런 내용을 그대로 방치하면 사회가 대단히 극심하게 혼란스럽고 위험하게 되므로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반응을 취한 이를 체포해 처벌해야 한다고 보게 마련이다.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제시하게 되는 데에는 다양한 이론적 설명이 있다.
우선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 그렇게 반응을 취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위험하므로 그것을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그런 행위를 하는 이는 따로 가두고 그에 상응한 벌과 고통을 가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또 다른 입장은 그런 경우 그렇게 반응을 취하는 이는 특별히 그렇게 매번 행하게 되는 경향이나 습관을 갖고 있는 특별히 위험한 인격을 가진 이므로 사회를 그런 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역시 그 주체에 맞추어 그런 행위를 그가 반복하지 못하도록 따로 가두고 그에 상응한 벌과 고통을 가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또 한편 그로부터 직접 피해와 고통을 겪고 손해를 받은 입장에서 심리적으로 갖기 쉬운 내용으로서 상대가 그런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한 상대에게도 눈하나에는 눈 하나 이 하나에는 이 둘 이런 식으로 그에 상응하거나 그것을 넘는 고통을 되돌려주어야 자신의 마음이 풀리고 상쾌해지므로 그 상대를 가두고 그가 한 행위에 상응한 벌과 고통을 가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그런데 또 일반적인 중립의 입장에서는 이런 내용을 놓고 일단 그런 주체가 그런 행위를 하게 되는 데에는 그렇게 하게 되는 배경이 있어서 그런 것이므로 그것을 시정하기 위해서 일정한 교육과 훈련을 통한 인격 수정이 필요하기에 일정한 시설에 가두어 두고 일정한 교육을 하고 또 사회를 이런 경항을 갖는 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그 행위자를 격리하거나 보호 관찰해나가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여하튼 다양한 이론적 배경하에 위와 같이 행하는 이는 사회적으로 극심한 해악을 끼치게 된다고 보고 체포해서 일정한 시설에 가두어 두는 조치를 취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반응에는 또 그에 상응한 반응을 취하면서 이런 관계가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이 생사현실에서 각 주체가 다른 무량한 주체와의 관계에서 무량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측면에서 서로 얽혀 행하는 가해와 피해- (가피) 중첩관계의 내용이기도 하고 또 개별 주체의 입장에서는 그 주체가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3 악도에 묶이게 되는 업의 장애현상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사정은 기본적으로 각 주체가 망상 분별을 일으켜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그 부분에 상을 일으켜 집착을 갖고 대하는 가운데 그에 바탕해 매 순간 그런 행위를 해나가기에 그런 것이다. 그것이 곧 혹[번뇌,망집]- 업 - 고의 관계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 근본 바탕이 되는 부분에서 각 주체가 그렇게 집착을 갖는 그런 내용이 그 자신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다.
그리고 그런 반응태도로 인해 이후 3 악도에 들어가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것은 앞에서 자신이라고 본 그런 내용은 아닌데 그가 자신이라고 그 당시 보지 못한 그 자신이 또 그로 인해 그렇게 3 악도에 들어가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된다.
이 내용은 비유로 이해해야 한다.
초등학생때 초등학생이 자신으로 여긴 그런 몸과 마음내용은 여기서 처음 그렇게 망집을 갖고 임하게 되지만, 사실은 그 자신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잘못 여기고 초등학교 때 이렇게도 행하고 저렇게도 행하여 예를 들어 어느 순간 어떤 공을 주으러 달리는 자동차에 그가 뛰어들어 이후 신체에 장애를 겪게 되었다면 그 이후 내내 그런 장애를 겪고 불편하게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경우 이후 그런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현실에서는 중학교때는 중학생이 된 어떤 모습 고등학교나 성년이나 노인시절에는 또 그때의 어떤 모습이 그런 고통을 겪는 것이어서 정작 초등학생때 그가 자신이라고 본 그 초등학생의 몸과 마음은 또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각 경우에서 우선 초등학교 때 초등학생이 자신이라고 본 내용이 자신이 아니듯 중고등학교나 성년이 되거나 노인이 된 각 경우도 그 각 내용은 그런 자신이 역시 아닌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생이 초등학교 시절에 행한 일로 이후 각 고통을 겪어나가는 것은 초등학생이나 매 순간 자신이라고 보지 못했던 자신의 본 내용이 그렇게 매 순간 다른 옷을 걸쳐가면서 받아 나가게 된다는 의미다.
즉 앞 비유에서 초등학교 때 어떤 이가 망집에 바탕해 어떤 행위를 잘못 행하면 그 이후 그가 자신이라고 여기지 못했던 자신의 본 정체가 그로 인해 이후 매 순간 중고생 옷이나 성인과 노인의형태로 옷을 걸치고 매 상황에 임하면서 그처럼 고통을 겪어나가게 되기에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알고보면 3 악도에 생사고통을 겪는 사정이 이 비유와 그 사정이 같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바탕이 현실의 한 순간 한 단면에서 한 주체가 엉뚱한 내용을 가장 자신이 집착을 갖고 대해야 할 자신이라고 보고 이와 관련해 그런 자신의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운데 앞과 같이 잘못된 반응을 매순간 취하여 그런 상태에 묶이게 된다는 사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그래서 자신이라고 보아야 할 내용이 그렇지 않기에 그런 사정을 잘 관하고 그 각 경우마다 그렇게 반응하고 임하지 않으면 또 그런 사정으로 그 이후 내용들은 달라지게 된다는 의미다. 즉 생사의 묶임에서는 풀려나고 그 주체는 또 그 이후 생사현실에서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좋고 좋은 옷을 뜻대로 취해 입으면서 중생제도와 성불을 위한 수행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이것은 앞의 경우 그 주체가 비록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붙잡혀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3 악도에 묶여 갇히고 그리고 각 생사과정에서도 포맷처리가 되어서 이번 생과 다음 생이 끊기게 되는 것과는 극과 극으로 차이가 있다.
마치 현실에서 어떤 이가 원하지 않지만 붙잡혀 감옥이나 수용소에 끌려가 묶이게 되면 이전 생활하던 장소에서 편하게 잘 사용하던 기기도 계속 사용할 수 없고 이전에 행하던 사업도 계속 이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새로 그 감옥이나 수용소에 적응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처리해나가야 하듯 망집에 바탕해 현실에서 행하는 입장과 수행의 입장은 생사현실에 임하는 상황에서도 그 내용이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게 된다.
이것이 수행자가 변역생사를 통해 생사현실에 임하는 것과 일반 중생이 망집에 바탕해 분단생사를 통해 생사현실에 묶이는 것의 차이다.
사정이 이러니 일반인이 자신의 정체를 올바로 관하지 못한 가운데 앞과 같이 엉뚱하게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을 놓고 그런 반응을 해나가는 것은 일반 상식입장에서는 정상적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수행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바로 그 주체를 이후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3 악도에 끌려가 묶이게 되는 근본 원인이라고 이를 제시한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이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평소 자신의 몸이라고 보는 부분이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찢겨지고 곧 죽겠다고 생각되는 순간 상식적인 반응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 방안이 앞에 있는 토끼나 아이를 창 밖으로 내던지는 것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하게 된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그런 그 상황에서 자신이라고 보는 것은 알고보면 자신의 본질이 그 상황에서 잠시 걸치는 옷이다. 그래서 그 옷이 찢기고 벗겨지는 상태에서 그로 인해 잠시 고통을 겪지만, 그렇다해도 자신의 본 내용은 아무 훼손이 없다.
그 사정을 잘 관하지 못하고 그 옷에 집착해 반응하면 오히려 그로 인해 결국 3 악도에 들어가 묶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고 수행방안을 따라 행하면 그 옷이 찢겨지던 말던 본 자신은 그와 무관하고 그 이후 그 본 자신이 새로 걸치는 옷도 자신의 뜻과 같이 좋은 형태가 된다.
그러나 이 경우 그렇게 새로 좋게 취하는 옷도 역시 옷인 것은 마찬가지다.
일단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려면 평소 자신이 자신이나 남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을 놓고 그 본 정체를 잘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나 남의 본 정체라고 볼 내용이 무언가를 놓고 잘 검토해야 한다.
이 내용이 생존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기본 바탕이 된다.
따라서 잘 살펴야 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Arnold Turboust - Emilie Jolie - Etienne Daho - Chanson Du Coq Et De L'âne.lrc
노래가 뽑혔는데 들어보니
사바세계에서 타 불국토 여행을 떠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여행허가증과 타 불국토 입국허가증을 받는 과정인 안인 수행과 관련된 노래로 생각된다.
간단히 말해 그 사유는 지극히 불합리적이고 억울한 가운데 눈과 코를 손과 발을 잘리우는 극심한 고문을 당하여 생존을 지극히 위협하여 끝내 생명을 잃게 되는 내용과 관련된 메세지가 들린다. 이는 한국인에게는 대단히 익숙한 내용이기도 한데 지체와 명망이 드 높았던 성삼문이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한편 그 일족은 모두 처형되거나 노비로 신분이 전락하게 된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이번 조각글에서 다루는 생존의 해결과 니르바나 행복론과 대단히 밀접한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감상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원래는 불국토 여행과 관련한 다른 노래를 부른 것으로 각기 기억하는 Arnold Turboust 와 Emilie Jolie Etienne Daho가 함께 부른 노래로 나오는데 유튜브에서는 가사는 같아 보이는데 ALAIN 과 LAURENZ가 부른 버전으로 올려져 있다.
여하튼 수행과 관련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는 한편 평소 그런 상황을 그려 놓고 수행도 잘 임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자신의 생존이나 그와 밀접한 내용을 놓고는 그 이전의 기본적 수행인 보시나 정계도 제대로 행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하물며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신체를 놓고 그것을 끊어가며 고문을 당하는 상황에서
금강경에서 제시되는 내용처럼 그에 대해 상을 취하지 않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제거한 가운데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일으키지 않고 평안히 참고 임하여 안인을 성취하는 수행은 더더구나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경전에서 생존문제와 관련해 수행자에게 요구하는 원칙적인 수행방안의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제시하는 사정은 이미 앞에서 살핀 내용과 같다.
간단히 말해 그가 억울하다고 여기고 고통스럽다고 여기는 그 상황에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는 것이 그 사정인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이와 같기에 일반인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 내용을 황당한 내용으로 생각하고 이를 이해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기는 한편 사정이 그렇기에 또 현실에서 이런 수행을 실천하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매 순간 그렇게 임하는 가운데 망집에 바탕해 행하게끔 되는 행위를 해나가는 가운데 그 결과 생사에 묶여 3 악도에서 무량하게 고통을 받아나가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려면 현실에서 한 단면을 붙잡고 거기에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있고 또 그 현실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의 생멸이나 생사를 얻을 수 있는가 이 문제를 놓고 잘 검토를 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게 마련인 자신을 놓고 그 내용을 잘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생존문제와 관련되어 이들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야 하는데 일단 글이 상당히 길어졌고 날짜가 바뀌어서 예약된 경전들이 올려져 또 살피고 문단 정리를 해야 할 경전들이 많이 밀려 있는 상태다.
그래서 조금 더 쉬고 여기에 다음 부분을 이어 살필 것인지 아니면 조각글을 옮겨 이어나갈 것인지 살펴보고 이어나가기로 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ie-Paule Belle - Ca Restera Quand On Sera Vieux.lrc
☎잡담☎
♥ 잡담 ♥대형사고와생존과니르바나
계곡을 다녀왔다. 그런데 물 속의 바위나 돌 부분이 상당히 미끄러워서 카메라를 들고 주변 모습을 촬영하다가 아차하는 순간에 미끄러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려는 순간 또 미끄러졌다. 그리고 일어나는 순간 머리는 또 바위에 살짝 부딪혔다. 그런 가운데 본인이 촬영하는 데 사용해온 카메라 2 개 핸드폰 1 개가 물에 완전히 들어가서 현재 파손된 상태다.
어제 밤 늦게 돌아 오는데 번번히 트럭 두 대가 나란히 차선을 모두 막고 주행한다. 한참 있다 간신히 벗어나 또 한참 가니 또 트럭 두 대가 차선을 막고 천천히 주행중이다. 그러다가 왼쪽 차가 오른 쪽 차선으로 들어가 차선을 열어주는 듯 하더니 곧바로 오른쪽 차가 다시 왼쪽 차선으로 들어와 차선을 막고 계속 그 상태로 간다. 왜 그러는지 그 사정은 잘 모르는 가운데 중간에 휴게소에서 들어와 휴식시간을 갖고 쉬었다.
다시 차로 다시 돌아와보니 낮에 여기저기 계속 돌아다닌 관계로 피곤한지 운전을 맡은 연구원이 깊게 잠을 자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공연히 잠을 깰 것 같아 밖에서 깰 때까지 그냥 시간을 보냈는데 상당히 길게 잠을 잔다.
그리고 돌아와 종합적으로 생각할 때 카메라와 핸드폰이 파손되었지만, 대신 생명을 건지고 온 것이라고 여기고 다행이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시간이 더 걸려 늦게 귀환했지만, 이 역시 대신 대형 교통사고를 피하고 무사하게 돌아오게 된 것을 생각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비록 카메라들은 파손되고 또 귀환길은 상당히 늦게 돌아오게는 되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잘 파악하고 주어진 것에 대단히 감사하고 환희를 느끼고 삶의 가치를 만끽하면서 주어진 시간을 좀 더 보람있고 더 가치있게 만들어가고자 한다.
여하튼 계곡을 다녀오느라 돌아와 많이 쉬었는데 여전히 피곤하고 또 조각글도 많이 밀린 상태다.
이제 조금 더 쉰 다음에 어떤 연유로 생멸이나 오고감이 없다고 제시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나가는 한편 그런 바탕에서는 어떻게 현실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주제로 살펴나가기로 한다.
그런데 원래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생각하게 된 차후 연구 방안 구상은 현실에서 갖는 무량한 뜻과 이들 내용을 관련시켜 현실에서 다양하게 좋음을 추구하는 방안을 살피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무원무작삼매와를 통해 생사를 해탈하는 수행에 진입해가야 하는가를 일관적으로 살펴나가는 방안을 생각했다.
이는 기존의 참 예쁘지 삼삼하지 아라바자나 나자바라의 수행공식을 골격으로 해서 니르바나 행복론을 완성함으로써 현실에서 초점을 맞추는 문제와 수행을 이어 살피는 방안이다.
그런 가운데 너무 피곤해서 쉬는 동안 꿈을 꿨다. 어떤 병원인데 그 병원을 운영하는 병원장님이 어떤 진단촬영기에서
환자에 대한 진단을 마친 다음 이 환자가 다행히 암이 수술을 통해 치료할 수 있는 범위 14 cm 범위로 줄어들었다고 좋아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상한 진단촬영기가 병원 앞에 옆으로 세워져 있는데 이는 환자가 들어오면 환자의 손과 발을 주머니에 넣고 눕혀 촬영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또 다른 환자가 이송되어 그 주머니에 4 지를 넣고 촬영을 시작한다. 그런데 쉴 틈이 없이 환자가 그렇게 계속 진단을 해 바쁘다. 그 병원 옆에는 또 유사한 병원이 있는데 그 병원 원장님 말씀이 자신 병원 시설이 굉장히 좋기 때문에 어떻게 그 병원이 자신 병원과 경쟁이 되겠는가라고 하신다. 그런 말을 듣고 나와 한 네 명 정도가 주변 길을 걷는데 뜰에 조그만 물렁물렁한 골프공만한 공들이 가득하다. 뺑뺑하지는 않는 공들이 그렇게 수없이 뜰에 깔려 있다. 그런 가운데 어떤 아이가 그 가운데 조금 좋은 공을 몇개 주어 가지고 와 공을 가지고 놀자고 하는데 꿈에서도 생각하기를 참 이곳은 놀기가 좋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깨어났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현실에서 초점을 맞추고 관심을 갖게 되는 각 내용을 하나씩 나열해가면서 최종적으로 생사해탈문에 연결시켜 생사를 벗어나게 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해나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구상을 해보게 된다.
많이 쉬었는데도 상당히 피곤하다.
여행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자면 여하튼 계곡에서 여러번 물속 바위나 돌들이 미끄러워 넘어지는 사고를 경험했는데 또 한편 스노클 장비를 통해서 물 속 안을 들여다 보며 물고기들의 모습도 살펴보면서 대단히 이색적인 체험을 했다. 본인이 물과는 그렇게 친한 입장이 아니라서 물 속안을 들여다보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그간 별로 없다. 그런데 스노클 장비를 통해 본인과 같은 초보자도 상당히 물에 친근하게 되었다. 계곡물과 바다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는 않지만, 본인이 마치 해녀가 되어서 물속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게 되어서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생사과정에서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와 많이 관련이 된다. 한번도 물 속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입장에서 처음 물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은 생사과정에서 그간 익숙한 환경을 떠나 다른 3계 6 도의 세계에 진입해 생을 시작해 가는 과정과 상당히 엇비슷하다. .
또 하나 계곡에서 본인이 발이 미끄러워서 물은 얕은데 물에 빠지고 머리도 다치고 카메라도 물에 젖어 파손되었다. 그런데 넘어질 때 다른 바위면에 부딪혔다면 오늘 이 조각글을 계속 쓰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다행이다. 그런데 본인도 그럴 가능성이 있어서 미리 신경을 기울이며 조심했는데 정작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은 아차 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즉, 눈 깜작할 사이에 아차하며 곧바로 넘어지고 순간 카메라에 물 들어가겠다고 생각하며 바로 일어나려는데 또 바로 미끄러져 넘어져 완전히 잠기는 사고를 당했다. 여하튼 미리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을 해도 아차 하는 순간 빙판에 미끄러지는 경우처럼 사고가 발생할 때는 순간 그렇게 된다. 따라서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더 철저한 준비와 대비가 필요하다.
사고를 겪고 또 하나 에피소드를 오버랩시켜 떠올리게 된다. 여행을 떠나기전 연구실에서 너무 더워 연구실 벽에 호스로 물을 뿌려 벽을 조금 식히려 했었다. 그리고 호스 물을 잠근다고 생각하고 수도꼭지를 돌리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수도꼭지를 잠근 것이 아니고 개방시켜 놓고 잠근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한참 뒤에 연락이 와 나가보니 베란다가 물이 상당히 찬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물을 내보내면서 다음에 또 벽을 식힐 물을 어느 정도 담아 두었다. 그런데 여행 떠나기전 그 수대를 보니 바퀴벌레는 아닌데 바퀴벌레만한 이상한 벌레가 물위에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른쪽 앞다리와 왼쪽 뒷다리만 좀 굵어보이는 약간 이상한 형태의 벌레였다. 본인 생각에 이 이상한 곤충이 물이 좋아서 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물을 찾아 들어갔다 나오지 못하고 구조를 기다리면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여하튼 어느 경우나 수대 물을 좀 흘려 보내 밖으로 꺼내주면 되지 않겠나 해서 수대 물을 흘려 내보내준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과 본인의 계곡에서의 사고를 연관짓기는 힘들다. 그러나 여하튼 그 상황이나 본인이 계곡에서 미끄러지면서 카메라도 물에 젖고 이마도 살짝 바위에 부딪힌 일이 이것과 상황이 비슷하다고 연상이 되고 오버랩이 되었다.
계곡 물은 깊지는 않은데 여기저기 바위 돌에 발을 딛는 가운데 표면이 미끄러서 넘어지기 쉬운데 물이 그리 깊지 않아서 물 사고가 난다기 보다는 오히려 물이 깊지 않아 넘어지는 가운데 돌이나 바위 등에 머리나 몸을 부딪히면 사고가 크게 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상당히 위험하다.
지금 잘 말리면 카메라나 핸드폰이나 혹시 다시 되살려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일단 계속 말려 보고 있는 중이다.
카메라는 물에서 나온 후 바로 밧대리와 메모리카드 등을 뺐는데 그 과정에서 혼자서 플래쉬가 열리면서 여러번 플래쉬가 작동한 것을 보아서 회로에 물이 들어간 것 같다. 핸드폰은 처음에 의식을 못하다가 나중에 옷 안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보니 불이 켜진 가운데 정상 작동중이어서 보호케이스 때문에 물이 안 들어갔나보다 하고 별 일 없는 줄 알고 그냥 호주머니에서 빼서 두었다. 그런데 한참 후 다시 보니 저절로 꺼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버튼을 눌러 켜보려니까 안 켜져서 다시 보호 케이스를 벗겨 안을 보니 약간의 물이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또 케이스를 열어 밧대리와 카드들을 빼 놓고 닦고 일단 말리면서 인터넷에서 이런 경우 대처방안을 검색해보니 일단 디지털 카메라는 물에 취약하고 특히 렌즈 부분이나 ccd 부분이 물에 취약한 관계로 비관적이라는 내용을 보게 된다.
핸드폰은 여하튼 잘 말리고 충분히 잘 말렸다고 해도 밧대리를 다시 넣지 않은 상태로 센터를 방문해 달라고 안내되어 있다 서비스센터 방문하기가 상당히 귀찮기는 한데 일단 혼자 잘 말려서 밧대리를 넣어볼까 이렇게도 생각해보다가 그래도 전문가에 맡기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이 되는데 시간내서 나가기가 힘들어서 일단은 계속 싸 놓고 습기가 나가도록 한 가운데 좀 시간을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보류 중이다.
여행을 다니면 카메라로 사진을 많이 찍고 돌아와서 한번 다시 보는 것이 그간 즐거움이었는데 카메라가 회복이 안 되면 앞으로는 새 카메라를 구매할 여력이 안 되므로 힘들다.
낚시에 미끼를 달지 않고 낚시대만 드리운 채 세월을 낚고 지냈다는 강태공마냥 찍히지 않는 카메라를 들고 이미지를 찍는 예술가로서 여행을 다닐까 이런 구상도 해보게 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카메라 구입후 세월이 많이 지나고 그간 충분히 많이 사용했기에 또 그다지 별 안타까움은 없다. 그런데 카메라가 안 찍히면 몸만 다니지 왜 찍히지 않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가하면 일단 못 쓰는 카메라 재활용 의미가 있다. 카메라가 화각을 일정한 범위로 잡아 사물을 대하는 과정에서 초점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고 조금 달리 대하게 되는 의미가 있다. 일행이 사진을 찍어주길 원하는 경우는 더 이상 아름다운 사진을 찍지 않는다. 이런 핑계도 미리 구상해 보아야 한다. 메모리카드는 혹시나 하고 컴퓨터에 끼워 살펴보니 사고 나기 직전까지 찍었던 계곡 주변 모습이 다행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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