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harles Aznavour - Del Mio Amare Te (De T'avoir A.lrc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_Map_in_the_Sand'_by_Frederic_Remington,_Cincinnati_Art_Museum
Polski: Begonia × tuberhybrida (pl. mieszaniec z grupy `Pendula` begonii bulwiastej) Author Jerzy Opioła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Wat Phra Kaew วัดพระแก้ว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 잡담 ♥왕의번뇌와방편
현재 조각글이 상당히 많이 밀려 있다. 기존에 각 페이지를 등록해 작업시마다 핫키로 열게 했는데 이제 그것이 40 개 대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각 경전이나 페이지가 나오지만, 정작 그것이 몇월 몇일날 조각글인지 파악하기 힘들어서 또 하나를 신설했다.
ff, s, f, i, t, 에 숫자를 덧붙이면 해당 파일이 열리게 되어 작업을 하게 되는데 숙제가 밀려도 너무 밀렸다.
최근 위 경전에서 증혜다라니경을 마쳐서 안 보이지만, 증혜다라니경에서 다라니를 외어서 각 경전의 핵심을 외우는 작업을 병행 중이다. 그래서 조금 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조각글처럼 대단히 짧은 경전이 올려지면 대단히 부담이 적게 된다. 훌라라. 빙고 비바. .. 이런 구호를 외치기 쉽다.
그런데 이 경전은 안세고가 번역한 경전이다. 그만큼 처음 불교를 대하는 외국에서 그 내용을 이해하기 쉽고 또 불교의 기본적인 수행방안을 소개하는데 적절한 경전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경전은 짧지만, 결국 현실에 대단히 밀접한 경전으로 보게 된다.
윤회를 통한 인과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믿거나 말거나로 지어낸 공상 이야기로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현실의 모습은 어느날 갑자기 추첨에 의해서 이렇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에서도 자신이 미래를 그렇게 여기고 대하지 않듯, 앞 뒤의 내용이 계속 생사를 넘어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정을 먼저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은 또 지금 이 순간에서 자신이 자신으로 대하고 있는 것은 생사를 넘어 이어지는 그런 자신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금 쉽게 비유를 해본다면 어떤 이가 줄넘기를 하고 계속 뛰어가는 상태를 놓고 비유를 해볼 수 있다.
조금 비유가 적절하지는 않은데 줄넘기를 한번 할 때 마다 그 위치나 장소나 모습이 달라지는데 그렇게 그 모습을 이어가게 하는 줄을 통해 한 주체가 계속 그처럼 모습을 달리해가며 이어가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생사현실에서 중생제도를 목표로 수행을 이어가는 이나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는 입장이나 사정이 같다.
그런데 다른 것은 그런 줄넘기를 한 번 하면서 생사를 달리 해 다음 세계에서 생을 받을 때 그 상황에서 지금처럼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 내용이 매번 서로 차이나게 달라진다는 데에 수행의 의미가 있다.
수행에서는 이런 계속된 생사과정에서 우선 3 악도에 묶여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 생사에 묶여서 생을 맞이하지 않도록 기본적으로 계를 닦아 업의 장애를 제거하여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는 것이 기본 목표가 되고
그 다음은 다른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할 수 있는 형태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쌓아가며 다음 생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이다.
건타국왕 이야기는 각 주체와 관련된 수많은 인과의 한 단편일 수 있다.
무엇이 각 주체가 매생 맞이하는 생의 모습을 소나 왕의 형태처럼 서로 달리하게 하는가는 결국 이번 생에서 한 주체가 어떻게 업의 장애를 만들어내거나 또는 제거하는가 또 어떤 원력을 갖고 매 순간 대해나가는가. 그리고 또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하거나 수행을 행하는가. 이런 부분에서 그런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업의 장애가 해소되지 않는 중생은 매 생마다 그것이 끊기고 포맷이 된 상태로 생사에 묶인 분단생사의 과정을 겪는다면 수행자는 변역생사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서원에 맞추어 중생제도와 성불을 위한 형태로 수행을 이어나가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사 전후를 이어나가는 그 주체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 결국 마음 현상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주제가 되는 것이다.
이전에는 글이 길어지면 쉬고 다음에 이어 갔는데 조각글이 밀려서 쉬고 적을 글이 있으면 다른 조각글을 열어서 밀린 경전내용도 살피고 그 부분에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자꾸 읽으면 무엇하는가. 매번 경전을 보면 새로 보는 것같다면 그럴 필요도 굳이 없다.
반대로 다음 조각글로 넘어가는 것이 의미있으며면 지금 대하는 경전은 최소한 무엇에 대해 제시한다. 이 정도는 기억하고 넘어가야 의미가 있다.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Giovanni-Battista-Piranesi-pedestal-of-the-same-relief-two-branches
Artist: Giovanni-Battista-Piranesi Giovanni Battista (also Giambattista) Piranesi ( 4 October 1720 – 9 November 1778) https://en.wikipedia.org/wiki/Giovanni_Battista_Piranesi Title : pedestal-of-the-same-relief-two-branches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Bangkok_statue
English: Thotsakhirithon - one of twelve giant demons (Yaksha), Author Andy Wright from Sheffield, UK Reviewer Andre Engels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오랜만에 B.B 양의 노래를 듣는다. B.B 양은 아주 오래된 배우인데 본인이 청소년시기에 B.B 양의 이니셜은 B.B 양의 가슴과 엉덩이를 상징한다는 풍문이 있었다.
과거 한창때의 모습이다.
그리고 요즘의 모습이다. 나이는 들었지만 역시 미모의 윤곽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세월의 힘을 어떻게 할 도리는 없다.
이 사정을 한 주체가 갓난아이때부터 초등시절 청소년 그리노 노인이 되는 과정을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의 형태로 표현하고 그처럼 매 순간 각 순간에서 자신이라고 보는 그 내용이 이 한 생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정을 제시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그런 내용이 이 한 생에서도 자신의 대표내용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것은 100 m 앞에 서 있는 영희가 자신을 향해 달려올 때의 그 짧은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한 주체가 그렇게 이어서 살피는 α,β,γ,δ,ε,ζ,η,θ,ι,κ,λ,μ,ν,ξ 의 형태는 자신이나 영희이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다른 부분은 또 자신이나 영희가 아니라고 여기면서 대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즉 어떻게 보면 초등학교 시절 같은 교실에 있던 옆 친구나 자신이나 지금의 자신을 놓고 보면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 않은데 옆에 있는 친구는 자신이 아니고 그러나 지금의 자신과 상당히 다른 그 당시의 베타β 는 지금 자신이라고 보는 크시 ξ와 마찬가지로 자신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무엇이 그렇게 여기게 하는가를 놓고 그 정체를 찾아나가면 결국 생사 전후로 대단히 다른 형태로 살아가는 각 주체를 또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로 여기게 된다는 의미다.
윤회의 내용은 결국 현실의 이 순간에서 적용되는 것이고 그 관계가 생사 전후를 통해서 달라질 사정이 없다는 것만 덧붙여 이해하면 이제 생사 전후를 통해 무시 무종의 시간대에 걸쳐서 이어지는 윤회를 이론상 이해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 현재 이 순간에 자신을 자신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사정을 마음현상과 관련해서 제 8 식과 제 7 식의 관계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런 이야기다.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떠서 일정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눈을 떠서 일정부분을 자신이라고 의식해서 자신이 활동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눈을 떠서 세상 모습을 보는 데 관여하는 정신을 제 1 식이라고 표현하고 이 내용을 놓고 일정부분은 자신이라고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정신을 제 6 식이라고 표현한다면 현실에서 제 1 식과 제 6 식에 의해서 마치 자신이 그렇게 활동하는 것처럼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이런 제 1 식과 제 6 식의 관계가 없어도 즉 자신이 술을 엄청마셔서 의식을 잃었다거나 사고로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어도 여전히 제 1 식과 제 6 식의 관계처럼 일정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집착하며 대하는 정신이 따로 있어서 그 활동은 여전히 이번 생을 마칠 때까지 이어져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예를 들어 촉감을 느끼거나 한다면 이 촉감을 가지고도 앞의 제 1 식과 제 6 식의 관계처럼 자신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촉감은 제 1 식에서 얻는 시각적 내용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제 8 식과 제 7 식 사이에 형성되는 이 관계는 현실에서 얻는 제 1 식과 제 6 식의 관계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하튼 이런 형태로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먼저 자신에 대한 망집현상을 일으켜서 그에 바탕해서 현실에서 제 1 식과 제 6 식등의 관계가 형성된다고 그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처음 생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하필이면 지금 보는 것과 같은 형태로 살아가게끔 삶을 출발한 것은 그렇게 출발하도록 업을 행해서 그렇다고 이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 관계는 짧게 보면 지금 이 순간에서도 그처럼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증혜다라니경을 통해 다라니를 하나 외었는데 지금 이 순간 그것을 꺼내보려고 한다면 그것이 꺼내진다.
그것은 과거에 그것을 외었기에 그런 것이다. 외었다고 해서 반드시 지금 현재 의식에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놓고 어떤 업을 행했기에 그 이후의 상태가 달라지는가를 잘 생각하고 또 표면에서 파악되지 않는 제 8 식과 제 7 식 등이 어떠한 내용이고 어떤 관계로 나타나는가를 함께 연구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