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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보초삼매경_K0175_T0627_001 본문
『문수사리보초삼매경』
K0175
T0627
문수사리보초삼매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문수사리보초삼매경_K0175_T0627 핵심요약
♣0175-001♧
『문수사리보초삼매경』
문수사리보초삼매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문수사리보초삼매경
해제보기
문수사리보초삼매경(文殊師利普超三昧經) 상권
서진(西晉) 월지삼장(月氏三藏) 축법호(竺法護) 한역
현성주 번역
■ 1. 정사품(正士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영취산(靈鷲山)을 유행(遊行)하면서 설법하시는 동안,
3만 2천의 비구대중과 함께 계셨다.
또 이 자리에 8만 4천 보살도 참석하였는데,
모두 훌륭하게 통달한 분으로서,
밝히지 못한 법이 없었다.
이 가운데 뛰어난 보살[開士大士:菩薩摩訶薩]은
이미 신통(神通)을 통달했고,
총지법문(摠持法門:陀羅尼)을 얻어 변재(辯才)도 걸림이 없었으며,
집착을 떠난 무생법인[無所著不起法忍]도 얻었다.
또 삼매의 작용[定行]을 훤하게 알고 중생의 마음을 보면서,
근기에 알맞게 설법하고 제도하였다.
사천왕(四天王)과 천제석(天帝釋)과 범인천왕(梵忍天王) 및 그 외 무수한 모든 하늘ㆍ용(龍)ㆍ귀신ㆍ건달바[犍沓和]ㆍ아수라[阿湏倫]ㆍ가루라[加留羅]ㆍ긴나라[眞陀羅]ㆍ마후라가[摩休勒]ㆍ사람 모양이면서 사람이 아닌 신들[人與非人]도 각각 백천의 무리를 이끌고 법회에 모여들었다.
■ 이때 연수동진(軟首童眞:文殊舍利, 妙吉祥)보살이
그 산 다른 한쪽의 다리 위에서
스물다섯 보살[正士]과 함께 불법(佛法)을 강론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용수(龍首)보살ㆍ용시(龍施)보살ㆍ수구(首具)보살ㆍ수장(首藏)보살ㆍ연수(蓮首)보살ㆍ연수장(蓮水藏)보살ㆍ지인(持人)보살ㆍ지지(持地)보살ㆍ보장(寶掌)보살ㆍ보인수(寶印手)보살ㆍ사자의(師子意)보살ㆍ사자보뢰음(師子步雷音)보살ㆍ허공장(虛空藏)보살ㆍ발의전법륜(發意轉法輪)보살ㆍ변제구(辯諸句)보살ㆍ변적(辯積)보살ㆍ해의(海意)보살ㆍ대산(大山)보살ㆍ희견(喜見)보살ㆍ희왕(喜王)보살ㆍ찰무기(察無圻)보살ㆍ유무제법행(遊無際法行)보살ㆍ초마견(超魔見)보살ㆍ무우시(無憂施)보살ㆍ제의고(諸議告)보살이다.
또 여기에 도솔천상의 네 천자가 함께 내려와서
연수동진(軟首童眞)보살에게 나아가 예를 올리고 뒤에 서서 모셨다.
그 들의 이름은 보화천자(普華天子)ㆍ광화(光華)천자ㆍ미향(美香)천자ㆍ상진법행(常進法行)천자이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다른 천자들도 모두 와서 연수동진보살을 모셨다.
이 보살들과 모든 천자는 모두 다 자리에 앉아서 강론하였다.
이들은 번갈아 가며 서로 말했다.
“여러분,
부처님의 지혜를 알려고 하나,
한없이 크고 넓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하여 헤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멸도(滅度)를 끝까지 다할 수도 없으니,
저희들의 좁은 소견으로는
큰 공덕의 갑옷[大德鎧]을 구하여 입을 길이 없습니다.
■ 마땅히 어떠한 방편의 서원(誓願)으로 계행공덕의 갑옷[戒德鎧]을 입어야만,
이 대승(大乘)ㆍ불승(佛乘)ㆍ두루 통달한 지혜의 승[諸通慧乘]ㆍ불가사승(不可思乘)에 도달하여
바로 도(道)와 상응(相應)할 수 있겠습니까?”
용수(龍首)보살이 말했다.
“만족을 모르고 부지런히 공덕을 쌓아 한량없는 큰복을 세워서,
계행공덕의 갑옷을 훼손하거나 잃지 않으며,
■ 어떤 일을 하더라도 대가를 바라는 일이 없어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大乘諸通慧]와 상응하게 됩니다.”
용시(龍施)보살이 말했다.
“평등한 마음을 크게 넓혀서 그 마음[志]을 고르게 화합하고,
그 성품을 따뜻하게 키우며,
그 의지(意志)를 누구려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이어 어질고 후덕한 마음으로 바른 서원[正願]을 굳게 세워서,
■ 두루 통달한 지혜로 계행공덕[戒德]의 갑옷을 입고,
생사(生死)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교화하고 제도한다면,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수구(首具)보살이 말했다.
“헤아릴 수 없는 겁(劫) 동안 이 대승을 향하면서 계행공덕의 갑옷을 입고,
셀 수 없는 겁에 겁수(劫數)를 생각하지 않아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수장(首藏)보살이 말했다.
“만일 홀로 자신만을 편안케 하려는 뜻을 세운다면,
대승의 통달한 지혜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의 편함을 버리고 그 자리에 중생을 세워야 합니다.
■ 그러나 중생의 안정을 위해 그들의 편함을 따르면서도,
요행을 바라게 하거나 그 뜻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群黎]에게 정진하도록 권하면서 도법(道法)을 세워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연수(蓮首)보살이 말했다.
“여러분[族姓子],
여래께서 강설하신 내용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령 자신은 부드럽게 순종하지도 않고
적정(寂靜)한 경지에 들지도 못하고
계율의 가르침을 따르지도 않는 사람이,
남을 조화롭게 굴복시켜 적정한 경지에 들게 하거나,
남에게 계율을 권한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 자신을 먼저 조화롭게 순화하여 적정한 경지에 머물면서 계율을 받들어야만,
비로소 남의 완강한 혼란을 교화하고 계율에 어긋난 행위를 억제하여 막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행해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연수장(蓮首藏)보살이 말했다.
■ “만일 세속법에 파묻혀 번뇌한다면 세속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세속법에 파묻혀 번뇌하지 않아야 비로소 세속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세속의 이익 있는 일ㆍ이익 없는 일ㆍ칭찬 받는 일ㆍ헐뜯는 일ㆍ명예로운 일ㆍ
명예롭지 못한 일ㆍ괴로운 일ㆍ즐거운 일에 일체 동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행해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지인(持人)보살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를 물려 줄 수 없으니,
오직 나 혼자일 뿐 벗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는 굳게 세운 서원과 갖춰 입은 공덕을 일체중생에게 베풀면서 보호해야 합니다.
■ 나 자신이 장차 이들을 포섭하여 구제(救濟)하려면,
잠시도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면서,
모든 사람이 다 배울 수 있도록 교화하고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지지(持地)보살이 말했다.
“비유하면 여러분들이 땅에 실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과일과 온갖 곡식과 약 나무들도 다 땅에서 살아갑니다.
■ 그러나 땅은 실었다는 생각도 없고,
또한 그 대가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일체 만물이 다 땅을 우러러보면서 살아가지만,
땅은 사양하거나 싫어하지 않으며,
괴롭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뛰어난 보살[開士大師:菩薩摩訶薩]은 당연히 이렇게
■ 땅처럼 발심(發心)하여 마음에 집착을 버리고 기뻐하거나 성내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권유하여 부처님의 지혜로 나아가도록 하면서
그 은혜의 보답을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보장(寶掌)보살이 말했다.
“여러분들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훌륭한 공덕의 갑옷을 입고,
나아가 부처님의 지혜에 이를 때까지,
어떠한 저지(沮止)와 장애에도 대승을 놓아버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비록 꿈속일지라도 성문(聲聞)ㆍ연각(緣覺)의 이승경지(二乘境地)를 생각하지 말고,
항상 진실한 뜻으로 두루 통달한 지혜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강하면서 선양해야 합니다.
■ 진귀한 보배가 있을지라도 마음에 탐내거나 아끼거나 애착하거나 욕심을 두지 않고,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면서
그들에게 대승을 권장하여 공덕의 갑옷을 갖춰 입도록 서원(誓願)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들의 배우는 법은 있고 없는 법[無有乘]이 아니며,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므로,
그 마음도 이와 같이 흠모(欽慕)하는 대상이 없어집니다.
이래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보인수(寶印手)보살이 말했다.
“6취(趣)에 떨어진 사람들을 보면,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중생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법의 손길을 내려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믿음의 손길을 내려주고,
지혜가 모자란 이에게는 널리 들어 아는 지식의 손길을 내려주며,
아끼고 탐하는 이에게는 은혜로운 보시의 손길을 내려주고,
계율을 범한 이에게는 계율을 지키는 손길을 내려주며,
성내는 이에게는 인욕의 손길을 내려주며,
게으른 이에게는 정진의 손길을 내려주고,
마음이 어지러운 이에게는 선정(禪定)의 손길을 내려주며,
삿된 지혜를 부리는 이에게는 바른 지혜의 손길을 내려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법[淸白法]에서 이탈한 중생을 따라 살피고,
각각 알맞은 때에 법의 손길을 자상하게 베풀어야 합니다.
■ 보살[開士]은 이 공덕의 종자를 심은 손으로 세 가지 보배를 증명해야 합니다.
세 가지 보배의 법인[三寶印]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일체중생에게 부처님의 지혜를 세우게 하고,
그들이 다시 남을 권하고 도와서 보배 법인(法印)의 손이 되게 하는 보배 법인의 손이요,
둘째는 남을 도우면서 자기의 덕본(德本)을 성취하는 보배 법인의 손이며,
셋째는 모든 법을 허공처럼 평등하게 사유하는 보배 법인의 손입니다.
이 세 가지 보배 법인을 일으켜 세워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사자의(師子意)보살이 말했다.
“여러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 두려움이 없는 갑옷을 갖춰 입으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서원(誓願)의 공덕을 갖춘 갑옷ㆍ어려움이 없는 갑옷ㆍ걸림이 없는 갑옷ㆍ
겁내거나 약함이 없는 갑옷ㆍ게으름이 없는 갑옷은
다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어려움이 없어야 하며,
걸림이 없어야 하고,
겁이 없어야 하며,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위험을 느껴 당황하는 일이 없으므로
머리카락이 서지 않고,
생사[終始]에 물들지 않으며,
또한 열반(涅槃)의 공덕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괴로움과 즐거움에 평등하게 머물면서 두 가지로 행하는 차별[二行]을 벗어나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사자보뇌음(師子步雷音)보살이 말했다.
“여러분,
이 일은 낮은 재주로 행하지 못합니다.
마땅히 보살[正士]이 세우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보살은 어떤 보살이겠습니까.
평등한 경지에 돌아가서 사견(邪見)을 벗어난 보살이요,
그 마음이 순수하고 질박하여 사특하지 않는 보살이며,
수고롭더라도 겸손하고 부드럽게 순종하여 스승을 존경하고 성인(聖人)을 받드는 보살이요,
부지런히 남을 배우도록 권장하면서 자신이 배운 법을 끝까지 탐구하는 보살입니다.
또 존경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닦으면서 바른 업을 세우는 보살이요,
하고 싶은 욕망이 있을지라도 나쁜 법을 점차 줄여 없애는 보살이며,
■ 남의 분노를 당할지라도 원한을 맺지 않는 보살이요,
어두운 어리석음이 아무리 깊게 깔렸을지라도 비춰 없애는 보살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고요하고 담박하여 선정(禪定)의 법장(法藏)에 가까운 보살이요,
자상하게 은혜를 베풀어서 일체의 가난과 위험을 구제하는 보살이며,
몸과 입과 뜻을 맑게 지켜서 마음이 침착하고 고요한 보살이요,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으면서 감정과 성격이 순수하고 곧은 보살입니다.
또 견고하고 강직한 의지로 진실한 법을 숭상하는 보살이요,
바르지 못한 법을 버리고 바른 경전(經典)을 몸소 지니는 보살이며,
법열(法悅)에 잠겨서 바른 법을 지키는 보살이요,
자기의 몸과 목숨을 가볍게 여기면서 중생을 버리지 않는 보살입니다.
또 견고한 목적을 세워서 부러워하지 않고 훌륭하게 베푸는 보살이요,
순수한 뜻과 깨끗한 법으로 음흉한 거짓을 녹여서 바르게 돌리는 보살이며,
보배의 창고를 열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는 보살이요,
좋은 약으로 모든 질병을 치료해 주는 보살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떠는 이들을 보호하여 스스로 돌아갈 곳을 찾아주는 보살이요,
사견(邪見)의 무리들을 인도하여 한없이 영원한 경지에 이르게 하는 보살이며,
더러운 곳에서 괴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구제하여 경전을 권장하는 보살이요,
분노를 조화롭게 참고 상대에 맞춰 따르는 보살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보살[正士]의 법을 세워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허공장(虛空藏)보살이 말했다.
■ “허공처럼 한량없는 사랑[慈]을 기르면서 더욱더 정진을 행하여,
조금도 대비(大悲:大哀)의 행을 놓아버리는 일이 없으면,
모든 감관[根]은 희열에 넘쳐서 뛸 듯이 기쁜 기운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면 온갖 애욕의 즐김을 허공처럼 관찰하고,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
一心)ㆍ지혜(智慧)도 허공처럼 평등하게 닦게 됩니다.
그래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발의전법륜(發意轉法輪)보살이 말했다.
“보살의 마음[菩薩意]을 일으켜 발심한 이는
발심한 뜻을 마군(魔軍)이 엿볼 수 없도록 하여,
여래께서 좋아하지 않도록 하지 않아야 하고,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도록 하지 않아야 하며,
공덕의 종자[本]가 줄어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바른 도(道)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려는 이가 있으면,
그를 따라 권유하여 마군(魔軍)이 그 틈을 엿볼 수 없게 하여,
여래께서 좋아하시는 뜻을 따르게 하고,
하늘과 사람들이 기쁘게 보호하는 마음을 벗어나지 않게 하며,
그가 몸소 심은 공덕의 종자를 잃지 않게 해야 합니다.
■ 이와 같이 마음을 일으켜 일체를 닦는 일이 바로 법륜(法輪)을 굴리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보살이 마음을 일으켜 짓는 온갖 인연은 생기는 일이 없으므로,
모든 법이 영원히 일어나는 일이 없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는 일이 없는 경지는 곧 제불여래(諸佛如來)의 바른 깨달음을 따라 그대로 구르는 법륜(法輪)입니다.
이와 같이 발심하여 계행공덕[戒德]의 갑옷을 갖춰 입어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변제구(辯諸句)보살이 말했다.
“보살[正士]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 바른 도(道)의 마음을 지닌 보살은
번뇌의 경계ㆍ성냄의 경계ㆍ해침의 경계ㆍ
유루(有漏)의 경계ㆍ무루(無漏)의 경계ㆍ
유위(有爲)의 경계ㆍ무위(無爲)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널리 드나듭니다.
또 죄(罪)의 경계ㆍ죄(罪)가 아닌 경계ㆍ재앙(災殃)의 경계ㆍ복(福)의 경계도 가리지 않고 두루 드나들며,
또 선(善)의 경계와 불선(不善)의 경계에도 드나들고,
또 세상의 법ㆍ세상을 벗어난 법에도 드나듭니다.
그리고 생사[終始]의 경계와 해탈의 경계[無爲之爲]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 단견(斷見)의 외도와 상견(常見)의 외도에 드나들기도 하며,
5음(陰)의 경계와 6진(塵:衰)의 경계와 6입(入:根)의 경계에도 드나들고,
흙ㆍ물ㆍ불ㆍ바람의 경계에도 드나듭니다.
■ 왜냐 하면 이 온갖 인연은 다 자연 그대로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성품[志性]이 본래 청정한 곳에는 온갖 언설(言說)과 일체 강론(講論)은 다 공(空)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유하면 허공이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는 것처럼,
도의 마음[道心]도 이와 같이 일체에 널리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이러한 지혜를 좋아하는 보살은 일체 문자(文字)의 변재(辯才)를 버리고도,
온갖 경계를 분별하여 변재(辯才)의 지혜를 체득합니다.
만일 이 하나의 성스럽게 통달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면,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변적(辯積)보살이 말했다.
■ “일체의 설(說)은 다 말[言]이 없고,
일체의 음성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지혜를 좋아하는 보살은
좋은 말이나 나쁜 말에 기뻐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비유하면 태산(太山)에 바람이 반복하여 몰아칠지라도
산은 동요하지 않은 것과 같이,
보살도 온갖 이학(異學)의 일체 언어에 흔들리지 않으며,
일체 외도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비록 여래의 언설이나 외도의 말일지라도,
평등한 법으로 관찰하여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는 일이 없고,
혼란스럽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모든 변재(辯才)와 일체 법은 다 사라진다고 봄으로,
온갖 사라지는 법에서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사유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러한 지혜를 행할 수 있는 보살은,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해의(海意)보살이 말했다.
“보살이 들어간 경지는 넓은 바다에 들어간 것처럼
큰 도를 분명하게 깨달았으므로,
일체 성문(聲聞)이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의 평등한 법[一味法]에 마음을 기울여 기뻐하면서 믿으니,
여러 가지 다른 법에 들어갈지라도 여러 다른 법이 없으며,
깊고 미묘한 법을 관찰할지라도
전혀 미혹하거나 어지러운 일이 없고,
■ 연기법(緣起法)에서도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으며,
모든 경전에서도 여러 다른 뜻이 없습니다.
이것을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는 법이라고 이름합니다.
일체중생이 업(業)을 일으킴은 공덕의 종자를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덕의 복은 다함이 없고 그 가르침도 한량없으니,
마땅히 분별해서 알아야 합니다.
단견[斷滅]과 상견[有常]의 일을 버리고,
모든 법을 받아들이지도 않아야 하며 온갖 법을 끊지도 않아야 합니다.
반드시 무량한 그릇[無量器]이 되겠다는 뜻을 세우고,
평등한 법을 잊거나 버리지 않으면서,
두루 통달한 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이렇게 두루 통달한 지혜의 법을 놓지 않고,
평등한 법을 중생에게 설하면서,
반드시 일체 온갖 공덕의 훌륭한 법을 닦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불법(佛法)을 갖추고,
이러한 마음으로 계행공덕의 갑옷을 입어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대산(大山)보살이 말했다.
“여러분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법[乘]은 널리 모든 세상의 법을 초월하였으므로,
깨달음의 지혜[佛慧]라고 합니다.
그 행이 들어가는 경지가 한량없으므로
일체 세간의 지성(志性)을 뛰어넘습니다.
이미 세간의 소행을 뛰어넘는 능력이니,
그 믿음도 세속보다 뛰어납니다.
믿음이 이미 세속보다 뛰어나니
그 보시[施]도 세속의 베푸는 일보다 뛰어나고,
이와 같이 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
一心)ㆍ지혜(智慧)도 뛰어납니다.
이렇게 일체 세간의 온갖 지혜를 다 초월하여,
그 지은 공덕의 복이 세상에서 일으키는 복보다 뛰어나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희견(喜見)보살이 말했다.
“비록 보살이 눈으로 색(色)을 볼지라도 싫어하지 않음은,
색(色)이 자연 그대로 진실함을 보고,
그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귀로 소리를 들을지라도 싫어하는 일이 없음은,
음성이 자연 그대로 진실함을 듣고,
그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접촉[更]하고
마음으로 법을 분별하는 6정(情)의 경계에서 미워하지 않음은,
■ 그 6정(情)의 경계가 자연 그대로 진실하고 본래 고요함을 알고,
그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경계에 마음이 집착하지 않으므로,
그 마음이 청정한 것입니다.
그 청정한 마음으로 중생을 보기 때문에,
불법(佛法)을 따르는 사람들을 볼지라도 그 그릇[器:근기]에 맞추지 않음이 없고,
또 사견(邪見)에 처한 사람일지라도 불법(佛法)의 그릇으로 봅니다.
비록 자기의 애착에 빠진 자가
왕위에 있을지라도,
그 다스림을 피하지 않고 기쁘게 그 세속을 익힙니다.
재물을 베풀고 나서 후회하는 자일지라도,
이와 같이 평등하게 존경합니다.
이렇게 행하는 뛰어난 보살은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희왕(喜王)보살이 말했다.
■ “비록 어떤 사람이 나쁜 말로 비방하거나 얕잡아 헐뜯고 욕하거나 손발로 치고 몽둥이로 때릴지라도,
보살은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오히려 훌륭한 벗으로 생각하고 더욱 좋아하면서 상대를 대우합니다.
그런 가운데 곤욕을 참고 참는 힘을 나타내어 기쁜 마음으로 그 법을 사유합니다.
‘욕설은 무엇이며,
누가 욕설을 당하는가’라고 추구하여,
안으로 텅 빈 이치를 확실하게 알고,
밖으로 텅 빈 이치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기의 몸을 이렇게 보고,
다른 사람도 이렇게 보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몸과 목숨과 지체(肢體)와 머리와 손과 발뿐 아니라,
처자와 남녀와 나라의 성과 마을이며,
재물과 곡식과 진귀한 보배까지도 다 베풀어주면서 배로 기뻐합니다.
차라리 한 게송을 들을지언정 세상의 영화나 전륜왕위(轉輪王位)를 가볍게 보고,
언제나 사람들에게 경법(經法)으로 강설하기를 좋아할지언정 제석(帝釋)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한 사람을 깨우쳐서 도의 마음이 일어나게 할지언정 범천(梵天)을 바라지 않습니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에 가득 찬 보배일지라도 탐내지 않고 부처님 뵙기를 원한다면,
다음 세상에는 나면서부터 밝게 통달하여 몸의 모든 감관[諸根]이 모자람이 없으며,
도를 돕는 온갖 종류의 법[諸道品法]을 기쁘게 믿으면서 좋아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공덕을 닦는 수행자는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찰무기(察無圻)보살이 말했다.
“만일 모든 법을 보고 저 언덕에 건너가서
■ 몸을 탐내는 경계에 떨어지지 않으면
모든 부처님의 국토가 깨끗해집니다.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보아도 모두 다 청정하여,
모양을 생각하거나[想] 옮겨 변하는 작용[行]이 없어집니다.
일체의 부처님을 보아도 색의 모양[色相]을 일으키지 않고,
일체중생을 보아도 색의 모양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록 육안(肉眼)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죄와 복의 청정한 경지를 보고,
천안(天眼)을 원만하게 갖춰서 무너뜨릴 대상이 없는 경지를 얻습니다.
비록 혜안(慧眼)을 얻을지라도 온갖 번뇌를 벗어나서 불안(佛眼)을 기쁘게 믿고,
열 여덟 가지 모든 부처님의 법[十八不共佛法]을 원만하게 성취한 뒤,
이미 법안(法眼)을 얻고 여래의 10력[力]을 갖추는 것입니다.
만일 보살이 공덕의 갑옷을 갖춰 입고 이와 같이 진실하게 믿고 행한다면,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유무제법행(遊無際法行)보살이 말했다.
“여러분[族姓子:善男子],
■ 보살이 모든 연기(緣起)를 알고 닦으면,
다 두루 통달한 지혜로 돌아갑니다.
왜냐 하면 소유한 온갖 인연은
안에도 머물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말 속[口言]에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살이 인연에 머물지 않고,
번뇌의 장애에 붙들리지도 않으며,
죄와 복의 장애에 끌려가지도 않는다면,
인과응보[報應]의 장애도 없어지고,
모든 기능의 장애[諸根礙]도 없어지며,
모든 법의 장애도 없어지고,
그릇된 지혜의 장애[非慧礙]도 없어집니다.
이렇게 죄와 복과 번뇌와 마군(魔軍)의 경계를 벗어나면,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초마견(超魔見)보살이 말했다.
“여러분들이 오직 우리와 나라는 견해에 집착하고
스스로 자기의 몸만을 본다면,
마군(魔軍)의 일에 빠질 뿐입니다.
■ 그러나 우리와 나라는 견해를 끊어버린다면
허망한 경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나란 소견을 없애버리면 온갖 쌓임[諸陰]이 없어지고,
온갖 쌓임이 없어지면 마군(魔軍)을 만나지 않으며,
마군(魔軍)의 경계를 벗어나면 바로 걸림이 없는 해탈문에 이르게 됩니다.
보살이 이렇게 걸림이 없는 해탈문에 이르면,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무우시(無憂施)보살이 말했다.
“여러분들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은
뒤에 끓는 물이나 뜨거운 불을 품은 듯 괴로움을 당하지만,
좋은 일을 행한 사람은 뒤에 이러한 근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마땅히 좋은 업을 닦아야 합니다.
■ 좋은 업을 닦으면 단점을 말할 수 없게 되고,
일으켜 세우는 일도 뒤에 뉘우침이 없고
앞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가 없어집니다.
만일 어떤 중생이 즐거움을 모른 채 근심하고 괴로워한다면,
근심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을 설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는 뛰어난 보살은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제의고(諸議告)보살이 말했다.
“자 여러분,
■ 만일 어떤 사대부(士大夫)가 금계(禁戒)를 받들어 지킨다면,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됩니다.
이미 소원을 성취하고 성취한 일을 본보기로 세우면,
이를 근거로 방일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방일하지 않는 경계가 굳게 서면,
도를 돕는 여러 종류의 법[道品法:三十七助道品]이 갖춰지고,
이미 도를 돕는 여러 종류의 법을 갖춰서 세울 수 있으면,
두루 통달한 지혜와 계율이 바로 서게 됩니다.
이렇게 이미 방일하지 않는 도법(道法)에 머무른 보살은,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보화천자(普花天子)가 말했다.
“여러분,
나무와 꽃이 무성하면 모든 사람에게 많은 이익을 줍니다.
■ 자신을 공덕의 종자로 장엄한 보살도,
꽃이 무성한 나무처럼 뭇 사람에게 풍부한 이익을 베풉니다.
저 도리천의 주도(晝度) 나무에 많은 꽃들이 무성하게 어우러지면
온 도리천중(忉利天衆)이 우러러 존경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보살도 이와 같이 온갖 법문(法門)으로 장엄하면,
모든 하늘ㆍ용ㆍ신(神)ㆍ건달바(乾闥婆:揵沓和)ㆍ세상 사람ㆍ
아수라(阿修羅:阿湏倫)들이 받들어 모시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마치 하늘의 명월주(明月珠)가 한 점의 흠도 없이 온갖 덕을 충분히 갖춘 것처럼,
보살의 청정한 지성(志性)에 흠이 없는 공덕의 이치를 뚜렷하게 갖추면,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광화(光華)천자가 말했다.
“여러분[族姓子:善男子],
비유하면 해에서 비치는 광명이 온갖 어둠을 없애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빛을 나타내는 것과 같습니다.
■ 보살도 이와 같이 지혜의 광명을 원만하게 갖추고 지혜의 법을 세상에 베풉니다.
어두운 어리석음으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중생[無明衆生]을 위하여
큰 광명을 뚜렷하게 비춰 보이면서
자연 그대로 진실한 법으로 인도합니다.
깊은 어둠이 가려 막을 수 없는 그 광명으로 어둠을 없애면서
사람들을 지름길로 인도하며 지름길에 머뭅니다.
뛰어난 보살은 삿된 길에서도 바른 길을 보이면서 바른 길에 머물러야만,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심화향(心華香)천자가 말했다.
“여러분,
비유하면 심화(心華)나무의 향기가 널리 퍼져
둘레 40리(里)에 풍기면서도 향기를 풍긴다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계의 향과
지식의 향[博聞香]과
선정(禪定)의 향과
지혜의 향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의 향기로운 향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에 풍기면서도
풍긴다는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 이렇게 법의 향기를 곳곳마다 두루 풍기면
일체의 온갖 병은 그 향기를 맡고 곧 나아버립니다.
만일 보살이 이 법의 향을 갖춘다면,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상진법행(常進法行)천자가 말했다.
“여러분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정진은 게으르지 않는 마음입니다.
■ 그러므로 보살은 싫어하거나 게으름이 없이 정진하여
모든 공덕의 종자를 닦으면서,
항상 여덟 가지 법행(法行)을 높이 받들어 준수해야 합니다.
여덟 가지 법행(法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6바라밀(波羅蜜)의 끝없는 행이요,
둘째는 네 가지 평등한 마음[四無量心:慈悲喜捨]의 청정한 행[梵行]이며,
셋째는 5신통(神通)으로 유희(遊戱)하는 행이요,
넷째는 네 가지 은혜를 베풀면서 중생을 구제하여 포섭하는 행[四攝法]이며,
다섯째는 3해탈문(解脫門)에 뜻을 두어 법인(法忍)에 도달하는 행이요,
여섯째는 부처님의 지혜를 부지런히 권장하면서 중생을 깨우쳐 교화하는 행이며,
일곱째는 교묘한 방편[權方便]으로 인도하여 도의 마음이 일어나도록 하는 행이요,
여덟째는 유위(有爲)의 중생이 소유한 온갖 법에 맞춰 제도하는 행입니다.
이것이 여덟 가지이니,
이 여덟 가지 법행(法行)을 높이 받들어 지키면,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게 됩니다.”
■ 이때 연수보살(軟首菩薩:文殊菩薩)이 모든 보살[正士]과 천자(天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보살의 정진(精進)이면서 정진이 아닌 경지를 알고자 한다면,
두루 통달한 지혜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삼계(三界)의 행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과거의 온갖 견해를 닦아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안[內]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밖을 즐겨 익히지 않아야 한다고 하며,
성문의 경지를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연각의 경지를 닦아야 한다고 하며,
온갖 번뇌를 행하여 괴로운 삶[勤勞]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집착한 범부의 법을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름[名]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색(色)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인과응보[報應]를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소견(所見)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집착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소득(所得)을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나의 소유[我所]를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나의 몸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아끼고 탐냄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보시(布施)를 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범계(犯戒)를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지계(持戒)를 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성냄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인욕(忍辱)을 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게으름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정진을 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어지러운 뜻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선정(禪定:一心)을 수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리석음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지혜(智慧)를 쌓으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훌륭한 종자가 없는 일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평등한 선의 종자를 심으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복의 종자가 없는 일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복의 뿌리를 심으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세속의 법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세속의 법을 벗어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허망하게 짓는 법[有爲法]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허망한 작용이 없는 법[無爲法]을 수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죄업을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죄 없는 법을 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하며,
샘의 번뇌[有漏]를 즐겨 익혀 왔다고 한다면 샘이 없는 법을 수행하면서 교만하지 않는 행을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 이것이 즐겨 익혀온 일로부터 닦아야 할 일까지,
모든 소견을 벗어나서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는 보살의 본지(本旨)이며,
대승의 두루 통달한 지혜와 상응하는 경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두루 통달한 지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으로 두루 통달한 지혜에 도달해야겠습니까?
두루 통달한 지혜는 온갖 작용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두루 통달한 지혜는
두루 통달한 지혜로 나아갈 길도 없고,
도달할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두루 통달한 지혜는
색상(色像)도 없고,
수(受:痛痒)와 상(想:思想)과 행(行:生死)과 식(識)의 모양[形貌]도 없습니다.
그 두루 통달한 지혜는 법도 없고 비법(非法)도 없습니다.
그 두루 통달한 지혜에는 보시(布施)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 두루 통달한 지혜 자체가 바로 보시이기 때문입니다.
또 두루 통달한 지혜는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과 선정(禪定:一心)과 지혜(智慧)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두루 통달한 지혜는 자연 그대로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두루 통달한 지혜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 두루 통달한 지혜는 삼세(三世)를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두루 통달한 지혜는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口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心識)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경계[界]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들은 두루 통달한 지혜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까?
만일 어떤 보살이 통달한 지혜를 얻어서 통달한 지혜에 머물고자 한다면,
어떻게 머물러야겠습니까?
모든 법에 머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두루 통달한 지혜에 머무는 것입니다.
일체의 온갖 법은 다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이 두루 통달한 지혜는 모든 법에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 두루 통달한 지혜는 범부의 경지에도 평등하고,
부처님의 경지에도 평등하며,
일체 법에도 평등합니다.
이 두루 통달한 지혜는 보살도(菩薩道)에서 행하니,
마땅히 다른 데에서 구하지 않습니다.
또 두루 통달한 지혜는
마땅히 4대(大)요소에서 구하여 자연 그대로 진실하게 지어갑니다.
왜냐 하면 이 자연은 텅 빈자리[無所有:空]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자연은 형상이 없습니다.
또 선법(善法)에서 나의 몸이라고 이름하지만,
나의 몸이라고 하는 데에는
몸도 없고 선도 없고 악도 없고,
나도 없고 정한 수명(壽命)도 없고 목숨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가령 나의 몸이 텅 빈자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상대도 역시 행도 없고 텅 빈자리입니다.
따라서 상대 소유의 형상도 실체가 없으며,
그 소견도 텅 빈자리로서 역시 실체가 없습니다.
그 지혜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실체가 있거나 실체가 없을지라도 다 평등하게 봅니다.
이 모든 지혜가 바로 두루 통달한 지혜입니다.
연수동진(軟首童眞)보살이 이 법을 설하자,
2천 천자(天子)는 무생법인[不起法忍]을 얻었고,
1만 2천 사람은 다 더 없이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無上正眞道意: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일으켰다.
■ 2. 화불품(化佛品)
■ 이때 변적(辯積)보살이 연수(軟首)보살에게 아뢰었다.
“이제 함께 가서 여래를 직접 대면하여
대성(大聖)께 뛰어난 보살[菩薩大士]은 어떠한 행을 일으켜야 하는지를 물어보도록 합시다.”
■ 그러자 연수(軟首)보살이 신통으로 곧 그 자리에 여래(如來)를 변화시키니,
그 몸의 형상이 석가모니 부처님[能仁佛]과 다르지 않았다.
연수동진(軟首童眞)보살은 변적(辯積)보살에게 말했다.
“선남자[族姓子]여,
여래께서 여기에 계시는데
어째서 뛰어난 보살이 세워야 할 행을 묻지 않습니까?”
이에 변적(辯積)보살이 변화한 여래께 여쭈었다.
“세존(世尊)이시여,
뛰어난 보살은 마땅히 어떠한 행을 세워야 합니까?”
그러자 변화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세운 대로 보살도 마땅히 이러한 행을 닦아야 하느니라.”
변적보살이 또 여쭈었다.
“세존께서 세우신 행은 무엇입니까?”
변화한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보시(布施)도 행하지 않고,
지계(持戒)도 행하지 않으며,
인욕(忍辱)도 행하지 않고,
정진(精進)도 행하지 않으며,
선정(禪定:一心)도 행하지 않고,
지혜(智慧)도 행하지 않으며,
욕계(欲界)도 행하지 않고,
색계(色界)도 행하지 않으며,
무색계(無色界)도 행하지 않고,
몸의 행도 짓지 않으며,
말의 행도 짓지 않고,
마음에 행한다는 생각도 없으니,
일체에 행도 없고,
인연도 없는 것이 보살의 행이니라.
선남자[族姓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변화로 나타난 모양에 어찌 행이 있겠느냐?”
변적보살이 답했다.
“하늘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분이시여,
변화로 나타난 모양에 행이 없습니다.”
변화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선남자여,
뛰어난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행해야 하느니라.”
변적(辯積)보살이 연수(軟首)보살에게 아뢰었다.
“지금 뵌 부처님인들 어찌 변화하지 않겠습니까?”
연수(軟首)보살이 답했다.
“당신은 일체 온갖 법의 변화는
자연 그대로 진실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까?
환영변화(幻影變化)의 모양도 물러남[退轉]이 없습니다.”
변적(辯積)보살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모든 법의 참다운 변화는 자연 그대로이니,
환영의 변화도 물러남이 없겠습니다.”
연수보살이 답했다.
“지금 선남자[族姓子]는 무엇 때문에
‘지금 뵌 여래인들 어찌 변화하지 않느냐’고 묻습니까?
모든 부처님과 일체 법인들 어찌 변화하지 않겠습니까?”
변적보살이 또 물었다.
“누가 변화시킵니까?”
연수보살이 답했다.
“자연 그대로의 업(業)이 청정하여 변화할 뿐입니다.
선남자여,
보살은 나와 남과 정해진 수명(壽命)과 목숨[命]에 머물러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거룩한 도(道)와 범부를 헤아려도 집착입니다.”
변적보살이 변화한 여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배워야만 스스로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변화한 여래께서 답하셨다.
“배움의 집착에서 벗어남이 바로 보살의 배움이니라.
보살이 배움은 형상이 없고 비교할 상대가 없고,
받아들임도 없고 받아들이지 않음도 없고,
생각도 없고 생각을 떠나지도 않고,
행하는 일도 없고,
행하고 행하지 않음이 없는 경지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배움이니라.
또 배움에 집착하거나 집착하지 않음이 없으며,
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음이 없으며,
희론(戱論)을 펴지도 않으며,
지켜 닦지도 않고 지켜 닦음을 떠나지도 않으며,
생각도 없고 취함도 없으며,
다니거나 정한 자리도 없고,
행하는 모양[相]도 없으며,
일으키지도 않고 없애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머물지도 않고 변화하지도 않으며,
형상도 없고 말도 없느니라.
이렇게 널리 온갖 생각에서 벗어난 행이 바로 보살의 배움이니,
이러한 배움을 평등한 배움이라고 하느니라.
이렇게 배우면 향하여 나갈 곳도 없고,
불어나는 일도 없으며 줄어드는 일도 없느니라.
이렇게 배우면 집착하지도 않고 해탈하지도 않으며,
번뇌에 물들지도 않고 번뇌를 떠나지도 않으며,
원한을 맺지도 않고 어리석은 어둠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이와 같이 배워야만 비로소 배움이라고 이름하니,
이렇게 배우는 사람은 온갖 번뇌의 세상[諸趣]에 나아가지 않으리라.
선남자[族姓子]야,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보살이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無上正眞道]에 이르고자 한다면,
나의 배움을 배워야 하느니라.“
변적(辯積)보살이 또 여쭈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배움입니까?”
변화한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비록 계를 지키지 않을지라도 범할 일이 없느니라.
보시(布施)하지 않을지라도 받을 일이 없으며,
지계(持戒)하지 않을지라도 계를 범하지 않으며,
인욕(忍辱)하지 않을지라도 성내지 아니하며,
정진(精進)하지 않을지라도 게으르지 않으며,
선정(禪定)에 들지 않을지라도 어지럽지 않으며,
지혜(智慧)를 쌓지 않을지라도 어리석지 않으니,
배우고 배우지 않음이 없느니라.
나는 행하지 않음이 없을지라도,
얻음도 없고 평등함도 없으며,
부처도 없고 법도 없으며,
나란 생각도 없고 남이란 생각도 없으며,
정해진 수명(壽命)이란 생각도 없고 목숨이란 생각도 없고 법이란 생각도 없고,
또 생각이 있지도 않고 생각이 없지도 않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 온갖 법은 다 지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체의 모든 법은 지을 대상이 없으므로,
자연 그대로 환영(幻影)과 같이 모양도 없고 둘의 차별도 없느니라.
일체의 모든 법은 온갖 즐거움을 벗어났고,
일체의 모든 법은 볼 수 없으며,
일체 온갖 법은 눈의 한계[眼句]를 초월했느니라.
모든 법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고,
모든 법은 어리석고 어두워서 가는 길이 없다.
행위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사람의 말과 가르침도 없고 처소(處所)도 없다.
말과 가르침이 없으니 생기는 일도 없느니라.
비록 이것을 믿을지라도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교만하지도 않고,
도(道)를 생각하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어떤 보살이 이렇게 비교하여 불도(佛道)를 좋은 본보기로 삼아서 배운다면,
겁내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며,
어렵게 여기지도 않고 두렵게 여기지 않으리라.
그래야만 비로소 그대[族姓者]와 같이 보살이라고 하리라.
허공의 위력[畏]은 불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바람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비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안개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먼지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우레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구름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번개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눈[雪]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왜냐 하면 공(空)은 자연 그대로 진실하기 때문이다.
이를 공의 위력이라고 한다.
보살도 이와 같이 일체 법에 두려운 일이 없어야 하며,
일체 법에 괴로움과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만일 보살의 마음이 이와 같이 평등하게 되면,
성불(成佛)하여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켜,
더없이 바르고 진실한 도에서 최고의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고,
일체중생도 바르게 인도하여 이롭게 하리라.”
이때 변화한 여래께서 이 설법을 끝내시고 곧 사라져버리니,
어디로 가셨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변적(辯積)보살이 연수(軟首)보살에게 물었다.
“지금 여래께서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연수보살이 답했다.
“오신 곳입니다.”
변적보살이 또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연수보살이 답했다.
“가신 곳 그대로입니다.”
변적보살이 연수보살에게 또 물었다.
“그 변화하여 나타난 모양[化現]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지 않습니까?”
■ 연수보살이 답했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변화한 모양[化]이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는 것처럼,
일체의 온갖 법도 이와 같습니다.
일체중생도 이와 다름없이 평등하여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습니다.”
변적보살이 연수보살에게 또 물었다.
“일체의 온갖 법은 어디로 향하여 갑니까?”
연수보살이 답했다.
“향하여 가는 곳은 자연 그대로 진실합니다.”
변적보살이 또 물었다.
“일체중생은 어디로 돌아갑니까?”
연수보살이 답했다.
“그 짓는 일을 따라 돌아갑니다.”
변적보살이 또 연수보살에게 물었다.
“일체의 온갖 법은 짓는 일도 없고 받는 일도 없지 않습니까?”
연수보살이 답했다.
“선남자여,
그 법계(法界)란 짓는 일도 없고 받는 일도 없고 가는 일도 없이,
평등하게 모든 법을 이끌기 때문에 법계(法界)라고 합니다.”
변적보살이 또 물었다.
“어째서 짓는 일도 있고 받는 일도 있고 가는 일도 있다고 말하면서,
가는 일이 없다고 말하십니까?”
연수보살이 답했다.
“선남자여,
그 지은 대로 받는 것처럼,
가는 일도 역시 그렇습니다.”
변적(辯積)보살이 연수보살에게 또 물었다.
“짓는 일이란 무엇이며 받는 일이란 무엇이기에,
무엇 때문에 가는 일이라고 하십니까?”
연수보살이 답했다.
“짓는 일과 같이 받는 일도 그와 같으니,
가는 일도 그와 같습니다.”
번적보살이 연수보살에게 또 물었다.
“뿌리도 없이 텅 빈 그대로 진실하다면,
짓는 일도 없고 받는 일도 없고,
향하여 가는 일도 없지 않겠습니까?”
연수보살이 답했다.
“그대가 말한 대로 뿌리도 없이 텅 빈 그대로 진실하다면,
짓는 일도 없고 받는 일도 없고,
향하여 가는 일도 없으니,
짓는 일과 받는 일과 향하여 나아가는 일도 그와 같이 오거나 가는 일이 없습니다.
짓는 일과 받는 일과 향하여 나아가는 곳도,
뿌리도 없이 텅 빈 그대로 진실하여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수보살이 이렇게 강설(講說)하고 있을 때,
마침 석가 세존이 계신 곳에서는
부처님 앞에 있는 현자(賢者) 사리불(舍利弗)과 현자 아난(阿難)과 그 외 뛰어난 제자들도
다 이 강설(講說)을 듣고 있었다.
사리불(舍利弗)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전에 없던 이상한 일입니다.
이 보살들은 대성인(大聖人)으로서,
부처님의 사자후(獅子吼)나 다름없이 여러 가지 음성으로 동일한 법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 설법을 들으니 이곳 법회에서 듣는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누가 이 설법을 듣고도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無上正眞道]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너의 말대로 그 보살의 위대한 배움이 걸림이 없으므로 지금 설한 법도 걸림이 없느니라.
심은 대로 반드시 그 열매를 얻는 것과 같이,
거기서 나온 결과를 받음[報應]도 마찬가지니라.
저 보살의 배움도 이와 같이 걸림이 없음으로,
그 성스러운 지혜로 분별하여 설하고 있느니라.
사리불(舍利弗)은 본래 자신을 가두고 배워 왔기 때문에,
그 지혜와 변재(辯才)가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함도 그런 것이니라.”
광정(光淨)보살이 세존께 여쭈었다.
“성문(聲聞)의 배움은 무엇이며,
보살의 배움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문의 배움은 한계와 걸림이 있고,
보살의 배움은 한계와 걸림이 없다.
성문의 배움은 그 한계에 막혀 걸리므로,
설하는 일도 한계에 막혀 걸리느니라.
보살의 배움은 한계가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설하는 일도 한계가 없고 걸리지 않느니라.”
광정(光淨)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하늘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분이시여,
부디 감응(感應)을 나타내시어 저 모든 보살을 여기에 오도록 하시고,
이 법회의 대중들이 그 설법을 듣고
각각 제자리를 얻어 허황한 경계에 들뜨지 않게 하옵소서.
왜냐 하면 연수동진(軟首童眞)보살은 심오한 경지를 행하여
미묘한 경법(經法)의 요의(要義)를 강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바로 상서로운 감응(感應)을 나타내셨다.
연수보살은 즉시 스물다섯 보살과 모든 천자(天子)와 함께 부처님의 처소로 와서,
부처님의 발 아래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광정(光淨)보살이 연수보살에게 말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여래의 법회를 벗어나 홀로 은밀한 곳[屛處]에서 경(經)을 강론한 것입니까?”
연수보살이 답했다.
“선남자여,
여래께서는 너무도 훌륭한 분이시므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성이신 부처님께서 제가 설한 모든 법을 혹시라도 좋아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에
외진 곳을 잡았던 것입니다.”
광정보살이 연수보살에게 또 물었다.
“어떠게 설법해야 여래께서 좋아하신다고 생각합니까?”
연수보살이 답했다.
“제가 답할 말은 세존께서 알고 계십니다.”
광정보살이 말했다.
“비록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뜻이 무엇이지 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수보살이 답했다.
“선남자여,
제가 알 수 있는 데까지 말해 보겠습니다.
진실한 법계(法界)에 어긋나지 않게 있는 그대로 설해야 하며,
본래 텅 빈자리[本無]와 본래 참된 바탕[本際]도 잃지 않고 설해야만,
여래께서 좋아하실 것입니다.
설하는 법에 다툴 이치가 없어야 하고,
질책을 당할 일도 없어야 하며,
일으켜 하는 일도 없어야 하고,
또한 인연도 없어야 하며,
색상(色像)도 없어야 하고,
비교할 상대도 없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설해야만 여래를 받들어 따르는 것입니다.
또 나와 동일한 모습이 없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모양도 없어야 하며,
평등한 법의 모습도 없어야 하고,
비법(非法)의 모습도 없어야 하며,
생사[終始]의 모습도 없어야 하고,
열반[泥洹]의 모습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설한다면 여래께서 좋아하실 것입니다.”
이때 세존께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매우 훌륭하구나.
시원하게 잘 말했다.
진정 그대가 말한 대로 이와 같이 설한다면,
여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또 연수(軟首)여,
가령 일체의 희론(戱論)을 다 벗어나서 흐트러지고 어지러운 마음이 없어지거나,
또 굳이 온갖 생각을 없애려고 바라지 않는 평등한 마음으로 온갖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그 설하는 사람은 그 향하는 뜻이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으리라.
이렇게 대덕(大德)의 갑옷을 갖춰 입고
삼매와 일치한 뜻[定意]으로 법을 설하면,
그 경전을 헐어 무너뜨릴 자가 없으며,
그 사람 또한 온갖 법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일을 보지 않으리라.
이렇게 설한다면 여래가 좋아하느니라.”
여래께서 이렇게 설하시자 8백 보살이 무생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 3. 거발품(擧鉢品)
이때 법회에는 1천2백 천자가 있었는데,
먼 옛날부터 보살행(菩薩行)을 닦아왔으나,
의지가 견고하지 못하여 도(道)의 뜻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은 생각했다.
“부처님의 지혜는 너무도 높아서 헤아릴 수 없고,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은 얻기가 어렵다.
보살의 배움을 따르지 못하면서
그 어려운 최고의 바른 깨달음을 어떻게 성취하겠는가.
우리들이 보살의 배움을 알지 못할 바엔,
차라리 생각을 바꿔서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을 구하여 열반[滅度]에 드는 편이 나으리라.”
이때 세존께서는 천자들의 생각을 아셨다.
“이들에게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를 행하게 하여
최고의 바른 깨달음을 감당케 하려면,
소승(小乘)을 취하려는 이들의 생각을 중단시켜야 하리라.”
■ 부처님께서는 모든 천자를 도와 교화시키려고 하셨기 때문에,
법회대중이 볼 수 없는 도량(道場) 밖에서 신통으로 한 장자(長者)를 변화시키셨다.
변화한 장자는 손에 온갖 음식공양으로 가득 찬 발우를 들고
부처님의 처소로 와서 세존께 아뢰었다.
“원하오니 부디 대성(大聖)께서는 저를 가엾게 여기시고 이 음식을 받아주옵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 곧 발우를 받으셨다.
■ 연수보살이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서 두 손 모아 아뢰었다.
“이제 이 성찬(盛饌)을 받으셨으니,
마땅히 옛 은혜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 때의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대성(大聖)께서는 그때 저의 음식을 받으셨으나,
저[鄙]에게 법의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이제 마땅히 법으로 맺은 은혜를 베푸시어,
부디 옛 뜻을 돌려주옵소서.”
이에 현자(賢者) 사리불(舍利弗)은 혼자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연수보살이 과거에 세존께 무슨 은덕(恩德)을 베풀었기에
음식을 받으셨으니 이전의 법은(法恩)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연수동진(軟首童眞)이 과거에 대성(大聖)께 무슨 은혜를 베풀었기에
여래를 상대로, 음식을 받으셨으니
이전의 법은(法恩)을 생각하셔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직은 잠깐 기다리도록 하라.
장차 저절로 밝혀지리라.
내가 아는 일이 너에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곧바로 발우를 땅에 버리셨다.
발우는 그대로 빠져 내려가서 모든 부처님의 세상을 지나갔다.
현재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모든 부처님께서는
각각 발 밑으로 빠져 내려간 발우가
아래쪽에 위치한 일흔두 개 강물의 모래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지나서,
광명왕여래(光明王如來)의 국경[國界]에 이르는 모습을 보셨다.
그 나라의 이름은 조요(炤燿)라고 하였다.
그 나라로 간 발우는 붙들지 않아도 저절로 허공에 뜬 채 멈췄다.
그 발우가 지나간 모든 부처님의 세상마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각기 그들의 세존께 발우가 온 곳을 여쭈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각각 그 까닭을 말씀해 주셨다.
“이 위의 세계에 인(忍:裟婆)이란 세상이 있는데,
현재 그곳에는 능인(能仁)이란 여래(如來)께서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이 능인(能仁)여래께서는 보살의 의지가 남달리 타락한 보살들을 교화하시기 위해
일부러 이 발우를 내려보냈느니라.”
세존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그 발우가 어느 곳에 있는지 살펴보고 가져오너라.”
사리불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자,
즉시 자기 지혜의 힘에 부처님의 거룩한 위신력[聖旨]을 받들어서,
모든 법과 경계가 일치한 삼매(三昧)에 들었다.
1만의 정(定)에 들어가서 1만 부처님의 세계를 초월하여
두루 발우를 찾아보았으나 그 소재를 알 길이 없었다.
다시 돌아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아무리 찾아보아도 발우가 있는 곳을 알 길이 없사옵니다.”
세존께서 대목련(大目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가서 그 발우가 어는 곳에 있는지 살펴보고 찾아오너라.”
목련(目連)은 분부를 받자,
자신의 신통력(神通力)에 부처님의 거룩한 위신력을 받들어서,
모든 법과 경계가 일치한 삼매(三昧)에 들었다.
8천의 정(定)으로 잠깐 사이에 8천의 부처님 세계를 뛰어넘어 찾아보았으나,
발우가 있는 곳은 보이지도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
다시 돌아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신통(神通)의 힘을 다 하였으나.
찾을 길이 없사오니,
어찌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수보리(須菩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발우가 어디에 가 있는지 찾아내어 가지고 와서 공양할 수 있도록 하여라.”
수보리(須菩提)는 분부를 받고,
모든 법과 경계가 일치한 삼매(三昧)에 들었다.
1만 2천의 정(定)으로 순식간에 1만 2천의 부처님 세계를 뛰어넘어 찾아보았으나,
그 발우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
이와 같이 뛰어난 5백 성문(聲聞)이 모두 허공에서 각기 신통을 나타내었다.
삼매(三昧)의 힘에 부처님의 거룩한 신통력을 받들고,
천안(天眼)으로 철저히 보면서,
각기 발우의 소재를 찾아보았으나 역시 찾을 수가 없었다.
이때 수보리는 미륵(彌勒)보살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보살께서는 도의 힘이 뛰어난 일생보처(一生補處:
한 번의 생사만 거치고 나면 成佛하는 자리)로서,
여래(如來)로부터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無上正眞道]에서
최고의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리라’는 수기(授記)도 받으셨습니다.
인자(仁慈)하신 넓은 은혜와 두루 통달한 지혜는 이 법회의 대중이 따를 수 없을 뿐 아니라,
삼계(三界)에서는 상대할 자가 없는 독보적 존재이시니,
당연히 발우가 있는 곳을 아실 것입니다.
오직 보살만이 찾아내어 공양을 받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높은 위력을 낮추시고,
발우 있는 곳으로 가셔서,
발우를 가지고 돌아와 주십시오.”
미륵[慈氏]보살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참으로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미래에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리라는 여래의 수기[如來慧]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저 연수보살께서 삼매의 뜻으로 일으킨
나가고 멈추고 앉고 서는 일도 따를 수 없으니,
도저히 그 삼매(三昧)의 경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수보리여,
나는 겨우 내세(來世)에 성불하도록 되어 있으나,
강물의 모래처럼 많은 저 보살들은
다 연수보살이 깨우쳐 인도할 대상입니다.
또 나는 연수보살이 발걸음을 한 번 들면서 일으키는 생각을 알려고 해도,
어디로 향하여 돌아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마땅히 연수에게 청해야 합니다.
오직 이 연수보살만이 발우가 어느 세상에 있는지를 알아내어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수보리는 세존께 아뢰었다.
“부디 연수보살에게 은혜로운 분부를 내려주옵소서.”
■ 부처님께서 곧 연수에게 발우를 가져오도록 분부하셨다.
연수보살은 분부를 받들고 혼자 생각했다.
‘앉은 자리에서 대중을 떠나지 않고 발우를 가지고 오리라.’
연수의 삼매(三昧)는 보초(普超)라고 이름하며,
이 보살의 정의삼매[定意正受]이다.
이때 연수보살(軟首菩薩)은 그 오른 손바닥을 펴서 땅으로 드리웠다.
그러자 그 손은 아래 세상으로 내려갔다.
그 손이 지나는 곳에는 더없이 훌륭한 부처님들이 계셨다.
그 손은 만나는 부처님마다 한 분 한 분에게 차례로 손등을 조아려 예를 올렸다.
그 때마다 손에서는 저절로 소리가 나왔다.
“능인(能仁)여래께서는 지극히 진실하고 평등하고 바르게 깨치신 부처님께
‘기거(起居)는 가볍고 부드러우시며,
기력(氣力)은 여전하시고,
유행설법의 길은 편안하십니까’라고,
한량없이 존경하는 문안인사를 전하셨습니다.”
또 그 손 팔뚝의 낱낱 털구멍에서 곧 저절로 억백천해(億百千★)의 밝은 광명이 나오자,
낱낱 광명에서는 각각 백천의 연꽃이 변하여 나타났고,
낱낱 연꽃에서는 각기 원만하게 상호(相好)를 갖춘 여래께서 화현(化現)하셨으며,
가부(跏趺)의 자세로 연꽃 위에 앉아 계신 낱낱 여래께서는 각각 능인 여래의 이름과 공훈(功勳)을 찬양하셨다.
그리고 그 손이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지나가자,
온갖 국토는 즉시 여섯 가지의 진동을 반복하였다.
또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는 저절로 큰 광명이 두루 비췄고,
일체 부처님의 국토마다 낱낱이 이 손이 나타났다.
또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는 저절로 달린 비단 당기[幢]와 번기[幡]와 여러 일산으로 장엄하지 않음이 없으며,
두루 내리는 온갖 꽃들은 곳곳을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그런 가운데 연수의 손은 일흔두 강물의 모래 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지나면서 모든 부처님께 다 예를 올렸다.
잠깐 사이에 조요(照曜)세계의 광명왕(光明王)부처님 국토에 이르렀다.
그 손이 그 부처님께 예를 올리자,
능인여래께서 광명왕부처님께 전하는 한량없이 존경하는 문안인사의 소리도 저절로 크게 나왔다.
광명왕여래의 곁에는 광영(光英)이란 보살이 모시고 있었다.
광영(光英)보살이 광명왕여래께 아뢰었다.
“이 무슨 손이기에 미묘하고 높디 높은 위신력(威神力)은 따르기 어렵고,
자연히 나온 억백천해(億百千★)의 광명은 눈부시게 빛나며,
낱낱 광명마다 각기 억백천해의 장엄하고 청정한 연꽃을 변화시키고,
낱낱 연꽃마다 각기 앉으신 여래께서 능인 여래의 거룩한 공훈을 찬탄하는 것입니까?”
광명왕부처님께서 광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기에서 위쪽으로
일흔두 강물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의 세계들을 지나면,
인(忍)이라는 세계에 지극히 진실하고 평등하고 바르게 깨치신 능인(能仁)이란 여래(如來)께서
현재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이 법회에 연수라는 보살[大士]이 있는데,
그 보살은 계행공덕[戒德]의 갑옷을 갖춰 입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신통력(神通力)으로 저 언덕에 도달[度無極]하였기 때문에,
자유자재한 신통력으로 앉은 자리를 옮기지 않고,
손을 뻗쳐서 저 발우를 가지고 돌아가려는 것이니라.”
이 말씀을 듣자,
광명왕불국토(光明王佛國土)의 보살들은 모두가,
저 인(忍)세계의 능인여래(能仁如來)와 연수보살이 몹시 보고 싶어서,
한 번 뵙기를 우러러 갈망하였다.
광명왕부처님께서는 보살들의 마음을 아시고,
곧바로 눈썹 사이의 백호상(白毫相)에서 광명을 놓았다.
그 광명이 일흔두 강물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의 국토를 밝히자,
위의 인(忍)세계까지 환하게 두루 비추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광명을 받은 중생은 온갖 근심이 없어지면서
마치 천하[四域]을 다스리는 전륜성왕(轉輪聖王)처럼 편안해졌다.
마음을 오로지 선정(禪定)에 기울여 정진하는 수행자들은
이 광명으로 다 도의 자리[道迹]를 얻었고,
그 선정(禪定)을 얻은 이는 삼계(三界)를 벗어나서
네 가지 깨달음의 경지[四證德]를 성취하였으며,
그 샘의 번뇌[漏]가 다한 이는 8해탈문(解脫門)을 얻었고,
선정(禪定)의 나한(羅漢)은 집착이 없는 근원을 얻었다.
그리고 그 몸에 광명을 받은 보살들은 두루 다 일광삼매(日光三昧)를 얻었다.
이러한 가운데 광명왕부처님 세계의 뛰어난 보살[菩薩大士]들은
이 인(忍)세계의 세존(世尊) 능인(能仁)과 연수동진(軟首童眞)과
일체 성문(聲聞)과 훌륭한 비구(比丘) 대중과 모든 보살을 보았다.
광영(光英)보살은 이 인(忍)세계의 보살들을 보자,
곧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미묘한 수정(水晶)이나 밝은 여의주(如意珠)가 더러운 진흙 속에 떨어져 있으면,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없는 것처럼,
인(忍)의 세계에 태어난 이 보살들도 가련하기 그지없습니다.”
광명왕부처님께서 광영(光英)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
왜냐 하면 이 세계에서 10겁(劫) 동안 정진하여 닦는 선정(禪定)의 공덕이,
인(忍)세계에서 새벽부터 아침 식사 때까지 자애심(慈愛心)을 일으켜
중생을 가엾게 여기는 공덕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어떠한 공덕도 따르기 어려운 이 공덕은
가장 훌륭하여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느니라.
왜냐 하면 이곳의 뛰어난 보살들은 5음의 장애[陰蓋]가 없고,
번뇌[塵勞]가 다 없어졌으니,
인(忍)의 세계에서 바른 법을 지키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인(忍)세계의 모든 보살은 몸에 광명이 비치자,
능인여래[天中天]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무슨 광명입니까?
누가 보냈기에 온갖 번뇌를 멸하여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입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아래쪽으로 일흔두 강물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의 국토를 지나면,
조요(照曜)라는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를 교화하시는 광명왕(光明王)이란 여래께서 현재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그 지극히 진실한 광명왕여래께서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의 광명을 놓으셔서,
일흔두 강물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의 국토를 두루 비추시니,
그 크고 환한 밝음이 이 세상에까지 비춰 온 것이니라.”
이때 모든 보살과 여러 성문(聲聞)은 각기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조요(照曜)세계의 광명왕(光明王)여래와 여러 보살들을 뵙고자 하옵니다.”
능인(能仁)여래께서 발 한복판의 천 폭 법륜상[足心千輻輪]에서 광명을 놓으시고,
아래쪽 일흔두 강물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의 국토를 다 비추시니,
조요(照曜)세계도 두루 비추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래쪽 세계의 모든 보살은 몸에 이 광명을 받고 모두 다 수미광명삼매(須彌光明三昧)를 얻었다.
이 광명이 두 세계에서 마주 비추자,
이쪽 부처님의 세계와 저쪽 부처님의 세계는
이 국토에서 저 국토를 보고 저 국토에서 이 국토를 보았다.
이렇게 번갈아 서로 막힘 없이 보았으니,
아래쪽 세계에서 이쪽의 모든 보살과 능인(能仁)여래와 인(忍)세계를 보는 모습은
마치 이 국토의 염부제(閻浮提) 사람이 지상(地上)에서 해와 달을 보는 것과 같았다.
또 이 쪽 국토의 백성들이 아래쪽 국토를 보는 모습은
마치 모든 하늘이 수미산(須彌山)의 정상에서
하늘 아래 염부제성(閻浮提城)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았다.
이쪽 보살들이 광명왕(光明王)여래와 모든 보살을 보니,
따르기도 어렵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대덕(大德)의 갑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이에 연수(軟首)보살의 오른손은
조요(照曜)세계의 광명왕(光明王)여래가 계신 불국토(佛國土)에 이르러서,
허공 가운데 떠 있는 발우를 잡았다.
그 발우를 잡은 손은 헤아릴 수 없는 억백천해(億百千★)의 보살들과 그 권속들에게 둘러싸여서,
그들과 함께 위쪽으로 솟아올랐다.
발우를 잡은 손이 부처님의 국토를 거슬러 지나올 때마다,
광명과 연꽃들은 차츰 하나씩 사라져갔다.
발우를 잡은 오른 손이 인(忍)세계로 돌아오자,
연수보살은 부처님 앞에 무릎을 끓고 발우를 받들어 올리면서 아뢰었다.
“은덕(恩德)을 내리시어 이 발우를 받으소서.”
부처님께서 곧 발우를 받으셨다.
이때 연수보살의 손을 따라 함께 온 보살들은
부처님 앞에 나아가 머리를 땅까지 조아려 예를 올리고,
각각 자신들이 모시는 부처님의 이름을 밝히면서
그 부처님들이 능인부처님께 드리는 한량없이 존경하는 문안인사를 전했다.
“저의 부처님께서는 능인여래께 ‘성스러운 몸은 이전대로 좋으시고,
유행설법(流行說法)은 한계에 이르지 않으셨으며,
지혜의 힘은 여전히 평안하십니까’라고 문안을 전하셨습니다.”
모든 보살은 다 문안인사를 전한 뒤,
부처님의 분부에 따라 한쪽으로 물러나서 편안하게 앉았다.
■ 이때 부처님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이 말을 잘 듣고 기억해 두어라.
너를 위해 말해주리라.
아주 먼 옛날에 이 몸이 처음으로 보살도(菩薩道)를 닦을 수 있도록
발심시켜 준 사람은 바로 연수보살이니라.
그 일 때문에 지금 연수는
나에게 그때 베푼 은혜에 대하여
‘세존께서는 이 음식을 받으시고 마땅히 옛적에 약속한 법보시(法布施)의 은혜를 기억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이니라.
아주 멀고도 먼 오랜 옛날,
헤아릴 수 없는 억백천겁(億百千劫)보다 먼 지난 세상의 일이다.
이때에 막능승당(莫能勝幢)이라고 이름하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오신 그대로 지극히 진실하고 평등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如來至眞等正覺]이다.
그 부처님께서 교화하시는 세계의 이름은 무별이(無別異)라고 하였다.
막능승당여래께서는 8만 4천의 성문과 12억의 훌륭한 보살[菩薩大士:菩薩摩訶薩]을 거느리시고,
오탁악세(五濁惡世)에서 3승교(乘敎)를 연설하셨다.
이때 혜왕(慧王)이란 한 비구(比丘)가 있었는데 법사(法師)였다.
이 혜왕 비구는 이른 아침 법의(法衣)와 발우[應器]를 갖추고,
홍광국(弘廣國)에 들어가서 차례로 걸식[分衛]을 행하였다.
발우에 여러 가지 온갖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차자,
걸식(乞食:分衛)을 끝내고 거리로 나왔다.
이 거리에 존자(尊者)의 아들 이구비(離垢臂)란 동자가,
유모(乳母)의 품에 안겨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이구비 동자는 마침 멀리서 비구가 걸식을 행하여[遊行] 이 길로 오는 것을 보고,
유모의 품으로부터 내려와 비구를 따라가서 음식을 달라고 하였다.
혜왕 비구는 모특밀단(摸特蜜摶:꿀떡)을 주었다.
어린 동자가 받아먹고 감미로운 맛에 취하여 그대로 비구를 따라갔다.
밀단(蜜摶)이 거의 없어지려고 하자,
동자는 유모(乳母)를 돌아보면서 품에 안기려고 하였다.
비구가 또 밀단(蜜摶)을 주니 어린 동자는 또 따라갔다.
이렇게 차츰차츰 따라가다 보니 막능승당(莫能勝幢)여래의 처소에 이르렀다.
비구는 부처님의 발 아래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그 앞에 섰다.
이때 혜왕(慧王) 비구는 걸식(乞食)으로 얻은 음식을 어린 동자에게 주면서 말했다.
“동자야, 이 발우의 음식을 여래께 공양하여라.”
동자가 그 발우를 받아서 부처님의 발우에 음식을 채웠으나,
발우의 음식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 다음에 8만 4천 성문과 12억 보살에게도 그 발우의 공양을 올렸다.
부처님은 물론,
성문과 보살들은 모두 다 배부르게 공양을 드셨다.
이렇게 7일 동안 공양하였으나 발우의 공양은 이전과 똑같이 줄어들지 않았다.
이를 본 어린 동자는 뛸 듯이 기뻐하는 가운데 훌륭한 마음이 일어났다.
그러자 그대로 세존 앞에 서서 게송(偈頌)을 읊었다.”
부처님과 대중들이 배부르게 드셨으나
발우 음식 줄지 않고 이전대로 남는구나.
부처님을 정성으로 떠받들어 섬겼으니
한량없는 복된 밭이 틀림없이 이뤄지리.
부처님께 그 공양을 충분하게 올렸으나
온갖 진미 변함 없이 예전대로 줄지 않네.
부처님께 받들어서 풍족하게 올렸으니
틀림없이 바른 길도 이와 같이 끝없으리.
감미로운 음식들이 줄어들지 않으면서
발우 속의 공양진미 떠낼수록 많아지네.
부처님의 그 공덕에 진심으로 예 올리니
청정하고 바른 법은 한량없이 자라나리.
부처님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이어 말씀해 주셨다.
“그때에 어린 동자는 한 발우의 음식을 가지고
세존과 성중(聖衆)에게 공양하고,
그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서 마음이 맑고 밝아졌다.
이렇게 공양을 계속하여 7일을 다 채웠으나,
음식은 줄어들지 않았다.
혜왕(慧王) 비구는 어린 동자를 가르쳐서
부처님[佛]과 법(法)과 성중(聖衆)께 몸과 목숨을 들어 돌아가도록 하였다.
또 계(戒)를 받고 마음을 이겨내어 잘못을 참회케 하였으며,
법을 청하여 물을 것을 돕고 권하여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無上正眞道意]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때 동자의 부모는 그 아들을 찾아 헤매다가 바로 막능승당(莫能勝幢)여래의 처소로 왔다.
그 부모는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한쪽으로 물러나서 멈췄다.
어린 동자는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게송(偈頌)을 읊었다.”
제 서원은 부처님의 바른 뜻을 성취하여
중생에게 대비심을 베풀고자 하옵니다.
부처님은 한가롭게 만날 수가 없사오니
부모님도 마음속에 큰 서원을 세우소서.
32이상 80종호 빈틈없이 갖추시고
원만하며 평등하신 부처님을 보옵소서.
큰 지혜로 고해 넘어 저 언덕에 이르시니
어느 누가 도의 마음 일으키지 않으리요.
부모님은 이 아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아
세속 길을 벗어나서 출가토록 하신다면
미묘하고 지혜로운 가르침을 받들어서
고요하고 깊은 뜻을 정성 다해 배우리다.
어린 아들 말을 듣고 부모님이 답하였다.
우리들도 바른 도를 좋아하고 존경하니
너의 뜻을 따르려면 밝은 날을 기다려서
세속 집을 정리하고 너를 따라 출가하리.
부처님께서 계속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해 주셨다.
“이때 어린 동자는 그 부모와 5백 사람을 교화하여,
다 불법(佛法)을 생각하고 배워서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에 뜻을 품도록 하니,
그들은 그 부처님의 세상에 출가하여 도를 닦았다.
그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보살도(菩薩道)의 6바라밀[六度無極]과 4무량심[四等]과 4은(恩)을 행하도록 가르치셨다.
그들은 분별하여 공(空)을 알았으며,
게으르지 않고 정진(精進)하여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느니라.
사리불(舍利弗)이여,
그대는 알고 싶으리라.
그 때의 법사(法師) 혜왕(慧王) 비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다른 사람으로 여기지 말라.
왜냐 하면 바로 연수동진(軟首童眞)이기 때문이며,
존자(尊者)의 아들 이구비(離垢臂)는 바로 나이기 때문이니라.
아득히 멀고 먼 지난 세상에 연수동진은
나에게 발우의 음식을 주어 부처님과 성중(聖衆)께 공양케 하여,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먼 과거에 이 몸[本身]이 처음으로 발심[初發意]하게 된 동기이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지금 이 여래가 성취한 거룩한 깨달음과 끝없는 지혜와
열 가지 힘과 두려움이 없는 네 가지의 법과
부처님 외에 함께할 수 없는 열 여덟 가지의 법과
걸림이 없는 지혜는
다 연수보살이 권장한 은혜이니라.
왜냐 하면 그 발심(發心)시켜준 은혜를 근거로,
두루 통달한 지혜에 이를 때까지
그 부처님께 가르침을 받고 큰 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그 한계를 말할 수도 없고
헤아려 알 수도 없는 시방세계(十方世界)의 모든 불국토(佛國土)를 관찰하여,
현재 곳곳마다 계시는 모든 불세존[諸佛世尊]을 보니,
똑같이 능인(能仁)이라고 이름한 부처님들[仁者]은
다 연수보살의 권장으로 발심하셨느니라.
또 어떤 부처님의 이름은 함성(咸星)이라 하고,
어떤 부처님의 이름은 명성(明星)이라 하며,
어떤 부처님의 이름은 소환(所歡)이라 하고,
어떤 부처님의 이름은 정광(錠光)이라 하며,
어떤 부처님의 이름은 이루(離漏)라 하고,
어떤 부처님의 이름은 묘승(妙勝)이라 하였으니,
역시 연수보살의 권장으로 발심하셨느니라.”
■ 부처님께서 계속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1겁(劫) 또는 1겁이 지나도록 모든 부처님의 이름을 밝혀 설할 수 있는데,
이 부처님들도 모두 연수보살이 깨우쳐 교화했느니라.
또 지금 현재 법륜(法輪)을 굴리시는 부처님도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더욱이 보살승(菩薩乘)을 닦는 이들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느냐.
혹은 도솔천(兜率天)에서 살기도 하고,
혹은 내려와서 어머니의 태[胞胎]에 들었다가 다시 출생하기도 하며,
혹은 집을 나와 도를 닦기도 하고,
혹은 보리수[佛樹] 아래에 앉기도 하며,
혹은 보리도량[道場]에 머물기도 하고,
혹은 최고의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기도 하는 보살들을 어떤 비유로도 나타낼 수 없느니라.
또 누구든지 참다운 법을 설하기 바란다면,
모자람이 없이 자상하고 진실하게 설하여 헛됨이 없었으니,
연수동진(軟首童眞)이야말로 모든 보살의 부모이니라.
일체를 가엾게 여겨 권장하고 교화하면서 대도(大道)를 일으켜 밝혔으므로,
대도를 낳아준 어버이를 말한다면,
마땅히 연수동진이라고 하리라.
아까 연수는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모두에게 널리 알렸다.
그리고 나서 이제 또
‘비록 지금의 그 음식일지라도
제가 전세(前世)에 먼저 베풀어서 먹다 남은
발우 음식을 베푸는 것입니다’라고 한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니라.”
이때 보살도(菩薩道)에서 물러서려 했던 1천2백의 천자(天子)들은 각기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마땅히 의지를 굳게 다져서 법을 공경하리라.
지금 당장 세존 앞에서 발원(發願)하여 모든 인연을 관찰하고 온갖 근원을 제거하리라.
연수보살은 다른 사람들을 알맞게 도와 교화하고 깨우쳐서,
도에 이르게 하고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에서 물러나지 않도록 해주는데,
우리들은 어째서 타락하려 했던가.
또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여래(如來) 앞에서 비열하고 천박한 마음을 내어
소승도[小節]를 숭상하려고 했던가.
이제 마땅히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뜻을 버리고,
온 정성을 다 기울여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를 구하리라.”
연수보살은 손을 펴고 나타낸 신통변화로,
아래쪽 광명왕불(光明王佛)의 국토에서 가져 온 발우를 가지고
일체에 널리 들어가서,
아득히 먼 옛날부터 교화하며 설해 온 경전(經典)을 강설하였다.
그러자 아래쪽 불국토(佛國土)와 이쪽 세상[此世尊界]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은
곧 도(道)의 마음을 일으켰으며,
시방세계의 중생은 다 와서 연수동진을 공양하였다.
또 모든 불세존께서는
다 보배의 일산을 보내어 경전(經典)에 공양을 베푸시니,
보배의 일산은 삼천대천(三千大千)의 불국토(佛國土)를 덮었다.
또 그 보배의 일산으로부터 저절로 소리가 흘러나왔는데,
그 소리는 꼭 능인 세존의 음성을 닮았으며,
마치 여래께서 경전을 찬양하는 것처럼 들렸으니,
다 이 연수가 권장하여 교화한 일이다.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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