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mbini. 석존이 태어난 곳으로 중인도 카탈라성의 동쪽에 있던 꽃동상. 지금의 연합주 지방 코라쓰크풀주의 북쪽에 해당합니다.
숫도다나의 대를 이을 첫 아이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친정인 데바다라로 향하던 마하 마야부인이 갑자기 닥친 산기를 느끼고 사라수 곁에 자리를 편 때는 꽃피는 계절이었다.
이곳 룸비니의 연못에서 목욕을 즐긴 후였다는데, 그 깊이를 알기 어려운 향기를 지닌 연(連)을 피워낸 샤카족의 왕자 싯달타 고타마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후대의 예술가들에 의하여 그의 탄생은 목욕을 마치고 나선 마야 부인이 사라수 나뭇가지를 잡고 서 있을 때, 그녀의 옆구리를 통하 여 세상에 나온 것으로 상징화되어 묘사되고 있는데, 이 탄생지가 그를 기리는 후인들의 순례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어서 깨달음의 장소인 보드가야, 처음으로 법을 나누었던 장소인 사르나트와 더불어 이곳은 불교의 4대 성지 중의 한곳이다.
그러나 룸비니는 부처님이 탄생했던 장소라는 것 이외엔 그 어느 때도 번성하였던 일이 없었던 듯, 이곳에 미치는 불교의 영향력이 줄어들 때마다 밀림으로 덮여버리곤 하여, 1896년의 발굴단에게 이곳을 룸비니로 확인시켜 줄 수 있었던 유일한 흔적은 아쇼카 왕이 세운 기둥뿐이였다.
부처님 자신도 이곳에 들른 일은 한 번밖에 없었던 듯 하다.
미얀마 출신의 우 탄트가 U.N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던 1967년에 이곳을 순례한 후, 그 보존상태에 충격을 받고 각국에 호소하여 기금을 모으며 유적지를 중심으로 한 인근 일대의 정비작업과 개발계획을 만들었다.
이 계획에 따라 네팔측에 전달된 기부금의 상당액이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린 개발계획은 지리멸렬한 상태지만, 현재만큼이나마 정리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우 탄트의 공이 크다.
부처님의 생년월일에 대하여 해가 갈수록 그 규모가 커져가며 보드가야에서 치르어지고 있는 부처님의 생일잔치는 그러나 한 번만이 아니다.
부처님이 탄생한 해마저 100여 년의 차이가 나는 바에야, 태어난 날이 중구난방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인도를 포함한 남방 불교도들에게 있어서 부처님의 생일은 4/5월(와이사캬 Vesakha)의 15일이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도들은 남방 불교도들이 잡은 날과는 2~3일의 차이를 두고 있고, 한국은 음력 4월 8일을 생일로 잡고 있다. 날짜는 틀리지만, 한국과 인도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부처님의 생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참고로 부처님과 관계되어 기념되고 있는 날들을 남방 불교권과 한국의 것(음력)을 비교하여자면 출가한 날은 남방 불교권이 6/7월(아사흘리 Asalhi)의 15일인데 반해 한국은 2월 8일이고,
위 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날인 성도일은 남방 불교권은 12월 15일인데 한국은 12월 8일이다.
그리고 열반일은 한국과 남방 불교권 모두 같은 날인 2월 15일이다 . 남방불교에서 잡는 부처님의 탄생년도는 BC 624년이다. 전승된 기록에 의하여 확실한 것으로 믿어지는 부처님의 80세 입적을 근거로 하여 역으로 추적해나가 산출한 것인데, 중국에서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잡은 것과는 100여 년에 가까운 차이가 나고 있다.
[mean]쿠쉬나가라의 음역. 고대 중인도에 있던 지역 및 그 나라와 성 이름. 16대국의 하나로서 말라족의 영지였으며, 말라국(末羅國)이라고도 한다.
그 성의 북쪽에 있는 니련선하 강변에 있는 사라림(沙羅林)에서 석가모니가 입멸했다. 현재 카시아(kasia) 부근으로 추정한다 .[syn]동}구이나갈(拘夷那竭) * 각성(角城) * 상모성(上茅城).[abr]약}구시(拘尸) * 구시나(拘尸那) * 구시나라(拘尸那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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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나계라
●구시나계라◀拘尸那揭羅▶
【범】Kuśinagara 【팔】Kusināra 또는 구시나갈(拘尸那竭)ㆍ구시나라(拘尸那羅)ㆍ구시나ㆍ구이나갈(拘夷那竭)ㆍ구시(拘尸ㆍ究施). 번역하여 각성(角城)ㆍ모성(茅城). 중인도 옛 왕국의 이름. 비야리(毘耶利)의 동북쪽에 있다. 한 때는 구사발제(拘舍拔提)라 부르고, 말라족(末羅族)이 이곳에서 살다.
석존은 이 나라의 시뢰나벌저(尸賴拏伐底) 하반(河畔)의 사라림(沙羅林)에서 입멸했다 한다. ((운허_동국역경원사전))
然於迦斯阿之西南方發現一堂宇,稱為涅槃堂,堂中供奉巨大之佛陀涅槃像,其上之銘文刻於五世紀時。 又於涅槃堂附近發現古泥印、銅板等,泥印上刻有「大涅槃寺」等字。故一般多主張迦斯阿為拘尸那揭羅故地。 〔雜阿含經卷二十三、長阿含卷二遊行經、佛所行讚卷五、北本涅槃經卷二十九、 八大靈塔名號經、大智度論卷二、島史第五章、南海寄歸內法傳卷一、釋迦方志卷下、玄應音義卷二十一、印度佛蹟實寫解說、A. Cunningham: The Ancient Geography of India; V.A. Smith: Early Historyof India〕 p3267
팔상도는 ①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兜率來儀相), ② 룸비니 동산에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毘藍降生相), ③ 사문에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상(四門遊觀相), ④ 성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상(踰城出家相), ⑤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雪山修道相), ⑥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상(樹下降魔相), ⑦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상(鹿苑轉法相), ⑧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雙林涅槃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8폭을 각각 그려서 봉안하거나 2개씩 한 폭에 묶어 4폭으로 구성하기도 한다.
도솔내의상에서는 네 장면이 전개된다. 즉 탱화의 왼쪽에는 마야궁(摩耶宮)에서 마야 부인이 의자에 앉아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護明菩薩)이 내려오는 꿈을 꾸는 장면이 묘사된다.
바로 그 위에 입태전(入胎殿)이 있어서 입태되는 장면이 묘사되고, 그 위에는 소구담이 도적으로 몰리어 죽는 장면이 묘사된다. 오른쪽에는 정반왕궁(淨飯王宮)이 있고 여기에는 왕과 왕비가 꿈꾼 내용을 바라문에게 물어보는 장면이 묘사된다.
비람강생상에서는 여섯 장면이 묘사된다. 첫째 마야 부인이 궁전을 떠나서 친정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잡고 서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아기를 낳는 장면, 둘째 태어난 아기가 한 쪽 손은 하늘을, 한 쪽 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외치는 장면, 셋째 제천(諸天)이 기뻐하면서 갖가지 보물을 공양하는 장면, 넷째 용왕(龍王)이 탄생불을 씻겨 주는 장면, 다섯째 왕궁으로 돌아오는 장면, 여섯째 아지타선인의 예언 장면 등으로 묘사된다.
사문유관상에서는 네 장면이 묘사된다. 태자가 동문으로 나가 노인의 늙은 모습을 보고 명상하는 장면, 남문으로 나가 병자를 보고 노고(老苦)를 느끼는 장면, 서문으로 나가 장례 행렬을 보고 죽음의 무상을 절감하는 모습, 북문으로 나가 수행하는 사문(沙門 : 출가한 중)의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는 장 등이다.
유성출가상에서는 보통 세 장면이 묘사된다. 첫째 태자궁에서 시녀들이 취하여 잠자고 있는 모습, 둘째 태자가 말을 타고 성문을 뛰어넘는 모습, 셋째 마부 찬다카가 돌아와서 왕비와 태자비에게 태자의 옷을 바치면서 태자가 떠났음을 보고하자 왕비와 태자비가 태자의 소재를 묻는 장면 등이다.
설산수도상에서는 보통 여섯 장면이 묘사된다. 첫째 태자가 삭발하고 사문의 옷으로 갈아입는 장면, 둘째 찬다카가 돌아가는 장면, 셋째 정반왕이 교진여 등을 보내어 태자에게 왕궁으로 돌아갈 것을 설득하는 장면, 넷째 환궁을 거절하자 양식을 실어 보내는 장면, 다섯째 목녀(牧女)가 우유를 석가에게 바치는 장면, 여섯째 모든 스승을 찾는 모습 등이다.
수하항마상에서는 네 장면이 묘사된다. 첫째 마왕 파순이 마녀로 하여금 유혹하게 하는 장면, 둘째 마왕의 무리가 코끼리를 타고 위협하는 장면, 셋째 마왕이 80억의 무리를 모아 부처님을 몰아내려고 하는 장면, 넷째 마왕의 항복을 받아 성도하는 장면이다.
녹야전법상에는 네 장면이 묘사된다. 대개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상단에는 석가삼존불이 설법하는 모습이다.
하단에는 교진여 등의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 기원정사(祇園精舍 : 中印度 舍衛城 남쪽에 있던, 석가와 그 제자를 위해 세운 절)를 건립하는 장면, 흙장난을 하던 아이들이 흙을 쌀로 생각하고 부처님께 보시하자 탑으로 바뀌는 장면 등이다.
쌍림열반상은 보통 세 장면으로 묘사된다. 첫째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모습, 둘째 금관에 입관된 부처님이 가섭의 문안을 받고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보이는 모습, 셋째 다비하여 사리가 나오자 8대왕이 차지하기 위하여 다투는 장면과 바라문이 이를 중재하는 모습 등이다.
팔상도에는 화폭의 각 장면마다 내용의 제목을 적어 놓아 그림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또한 일본에서 열반을 묘사한 탱화를 많이 봉안하는 데 비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부처님의 전 생애를 모두 묘사하고 있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현전하는 탱화 중 중요한 것으로는 통도사·쌍계사·운흥사(雲興寺)·개심사(開心寺)·선암사·송광사·해인사의 팔상도를 꼽을 수 있다.
수다타(給孤獨長者)에 의해 헌납된 기원정사(祇園精舍)는 코살라국의 수도에 있었다. 코살라국은 기원전 5세기 전반에 마가다국에 병합되어 멸망했다.
[Kor]기수급고독원[Chn]祇樹給孤獨園 [San]jetavanānāthapiṇḍada-ārāma [Tib]rgyal bu rgyal byed kyi tshal mgon med zas sbyin gyi kun dga’ ra ba [Eng]the jeta and sudatta temple
[mean]고대 중인도의 교살라국 사위성의 남쪽에 자리했던 승원(僧園)의 이름.
기수(祇樹)란 기타 태자가 소유했던 수림(樹林)을 뜻하고, 급고독원(給孤獨園)이란 급고독 장자 즉 수달 장자가 헌납한 승원이라는 뜻이다.
기원정사[Kor]기원정사[Chn]祇園精舍[San]jetavana-vihāra[Eng]the buddhist temple of jeta’s forest
[mean]고대 중인도의 교살라국 사위성의 남쪽에 자리했던 승원(僧園)의 이름. 석가모니 당시의 2대 정사 중 하나. 본래 이름은 기수급고독원.[ref][k]기수급고독원[c]祇樹給孤獨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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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정사
●기원정사◀祇園精舍▶
또는 기원정사(祇洹精舍). 중인도 사위성에서 남쪽으로 1마일, 기수급고독원에 지은 절.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설법하고 수도하기 위하여 기타태자와 수달장자(須達長者)가 함께 기증하였다. 7층의 가람으로 자못 장려하였는데, 당나라 현장(玄奘)이 그곳을 순례하던 때는 벌써 황폐하였다고 전함.((운허_동국역경원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