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아픈 가운데 소염진통제를 먹으면 조금 통증을 가라 앉힐 수 있는데 그러나 밤이 되면 통증이 더 심해진다.
통증이 밀려 올 때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것이 실답지 않고 본 바탕은 공하고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관하고 그에 집착을 갖지 않고 임하면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되는가.
실험해 보면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자신이 어디로 움직이고자 하면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이 함께 따라 움직이는 것은 평소 자신이 그 부분을 자신이라고 관념분별을 행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신이 어디로 움직이고자 하면 그렇게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 부분을 자신이 평소 자신이라고 보고 그렇게 망상분별을 갖게 된 것이다.
감각이나 통증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자신의 손이 부러지거나 칼에 베어 피가 흐르는데 자신이 그것을 자신의 손이라고 여기기에 그런 모습을 본다거나 통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 상황에서 그런 부분이 실다운 자신이 아님을 관하고 상을 취하지 않고 안인을 수행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하루 정도 고통을 참고 견디면 통증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오늘 하루 통증이 심해 주로 누어서 쉬면서 잠을 자게 되는데 너무 자니 골치까지 아파온다.
그런데 또 밤이 가까워오니 발이 욱신거린다.
조각글에서 살피는 일체지 광명선인 자심인연 불식육경 이라는 대단히 제목이 긴 경전을 살피니, 다른 생명의 살을 음식으로 취하지 않는 수행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내용은 일반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한 주체가 다른 생명을 죽여 살을 먹는 것은 다른 생명이 느끼는 고통이나 공포를 바로 바로 직접 느끼지 못하기에 그렇다고 그 사정을 헤아리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 본인이 발이 아프다고 할 때 본인이 느끼는 이 통증을 다른 이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겠는가.
오늘 숙왕화님이 산행을 다녀왔는데 증상개선에 별로 안 좋다고 병원에서 말해준 시금치를 잔뜩 가지고 왔다. 그리고 본인의 통증에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숙왕화님이 본인이 느끼는 통증의 정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런 현상을 숙왕화님만 탓할 수는 없다.
어떻게 다른 이가 느끼는 통증이나 감각이나 생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다른 생명이 축사에서 갇혀 지내다 나중에는 생명을 빼앗기고 손과 발이 잘리워지고 그런 결과 그런 죽은 사체의 살을 자신이 먹게 되어도 자신은 단지 맛이 있나 없나만을 문제삼게 되지 그 생명이 그 과정에서 어떤 고통을 얼마만큼 느꼈는가 등은 별로 고려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그 사정이 서로 마찬가지다.
그래서 늘 자신 입장에서만 모든 현상을 관하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살피는 아전인수적인 경향을 갖고 살아가게 되기 쉽다.
자신이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에 대해 대단히 집착하고 그것을 침해당했을 때 대단한 고통을 느끼듯 다른 생명도 그 사정이 같음을 이해하고 다른 생명이 느끼는 고통을 생각하고 그런 사정으로 자비의 마음을 갖고 다른 생명이 그런 고통을 받지 않도록 배려하고
모든 생명이 그런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는 상태에서 벗어나오게 하는 것이 수행인데 수행자가 다른 생명의 살을 아무 의식없이 맛을 탐하여 자꾸 먹는다면 문제다.
자신의 입장에서 좋은 맛이 상대의 입장에서 지극한 고통과 두려움이 농축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과거 유대인이 학살당한 사건을 놓고 어떤 이는 명령만 내리고 한번도 직접 죽인 일이 없고 어떤 이는 단지 기차에 실어 수용소로 날랐을 뿐 직접 죽인 일이 없고 어떤 이는 단지 보초만 섰을 뿐 직접 죽인 일이 없고 어떤 이는 시체에서 금보석을 수집했을 뿐 직접 죽인 일이 없고 이런 식으로 전부 자신은 이런 범죄와 관계없다고 변명을 했다는데 그러나 이상하게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죽어간 것이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생명을 죽인 일이 없고 단지 마트에서 이미 죽은 고기를 사서 먹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알고 보면 바로 그런 분들 때문에 그 생명이 그렇게 붙잡히고 죽음을 당하는 인과관계가 이어져 있다.
그래서 한 생명이 당하는 고통은 결국 자신이 먹는 음식의 맛과 직접 관계가 되는 반대면인 것이다.
이 원리가 결국 각 생명이 3계 6 도에서 그런 형태로 묶여 살아가면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기본 원리다.
내가 좋음을 얻으면 다른 생명이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는데 내 좋음을 얻기 위해서 그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런 고통을 받는 세계가 나타나는 원인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는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고 현실을 살아가는 생명이 대부분 사정이 그와 같기에 결국 그런 관계에 묶인 자신도 그런 고통을 받아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업의 장애현상인 것이다. 즉, 자신이 살아오면서 먹어 치운 다른 생명의 그 수와 양만큼 자신이 앞으로 그런 고통을 받아나가야 할 양이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자신은 앞으로도 계속 맛있는 맛만 보고 그런 고통은 결코 받지 않기를 대부분 희망하겠지만, 그 관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경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한 때 그런 생각으로 육식을 금했는데 그러다보니 너무 음식을 가리고 유난을 부리는 것 같아서 문수보살님이 소개해준 다라니를 통해서 육식을 섭취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자신으로 인해 죽은 생명의 고기가 아니고 불가피한 경우 자비의 마음을 바탕으로 그런 다라니를 외우고 섭취할 수 있게 한 내용이다.
문제는 그런 가운데 자꾸 육식에 동참하고 어떤 경우는 그렇게 동참해야 식사하는 이들이 겪을 업의 장애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다고 여기고 다라니를 외우고 자꾸 동참하다보니
요즘은 식사때마다 그 다라니를 매번 반복해서 다른 다라니는 잘 기억이 안 나도 이 다라니만은 잘 기억하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부득이하고 불가피한 경우 구급약으로 어쩌다 한 두번 사용하는 것은 모르는데 이렇게 매번 상시적으로 사용하면 그 약효가 없게 되리라고도 본다.
그런다고 만일 법으로 육식을 일체 금지하면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하튼 그러한 업으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장애는 단순하지 않고 또 무량겁에 걸쳐 사라지지 않는다고 제시되고 있다.
알고보면 석가족이 멸족을 당한 일도 그런 과거 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경전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다리를 보면서 아무리 여기에 실다운 자신이 없고 실상은 공하다고 관하고 이에 집착을 갖지 않는다해도 여전히 통증을 느끼게 된다고 제시했는데 그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통증을 느끼거나 감각을 하는 것은 자신이 일정 부분을 자신이라고 분별해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일정 부분에서 그런 감각을 하고 통증도 느끼고 그러기에 그 부분을 자신이라고 평소 망상분별을 일으켜 대해나가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그런 부분을 실다운 자신이 아니라고 관해도 여전히 통증을 느끼는데 그렇게 통증이 느껴지는 상태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런 관을 바탕으로 고통을 참아내는 안인 수행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그리고 반대로 그런 통증이 느껴질 때 그런 부분을 실다운 자신이라고 여기면 또 무엇때문에 곤란하다고 하는가.
이 주제를 잘 살펴야 한다고 본다.
마우스를 그림에 대면 통증이 전달됩니다. 이런 식으로 본인이 지금 느끼는 통증이 전달된다면 이를 통해 본인이 살피고자 하는 통증의 문제가 어떤 것인가를 전해주고 싶지만, 곤란하다.
고통이나 억울함을 느낄 때 무상삼매해탈을 닦아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갖지 않고 안인을 성취해야 한다고 제시하는데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그 상황에서 느끼는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참아야 할 내용 자체가 없기에 좋다고 할 수는 있지만, 고통을 참는 '안인' 수행을 행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사람이 몸을 통해 통증을 느끼는 것은 육체적 고통이라고 하고 여러가지 번뇌로 인해 불쾌함과 억울함을 느끼는 것 등은 정신적 고통이라고 하는데 이런 고통이 있을 때 이것을 평안히 참는 수행이 안인 수행인 것이고
소염진통제를 사용하거나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서 그런 것을 제거하거나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지낸다거나, 또는 정려 수행의 사마타 수행을 통해 그런 고통이나 번뇌를 제거하는 것을 여기서 안인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한편, 하나의 상태가 입장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내용이 다르고 수동 능동의 의미가 다르고 각 주체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각 내용을 받아들이고 또 각 주체는 다른 입장을 잘 파악하지 못한 가운데 서로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을 앞에서 제시했다.
투수가 공을 던지면 공이 날라가는데 그 상황은 하나다. 그런데 투수 입장에서는 자신이 공을 '던진다'고 여기는 것이고 공 입장에서는 '던져진다'고 하고 포수는 그 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토종 닭이 있어서 잡아먹으면 맛이 있겠다고 하는 것은 잡아 먹으려는 입장에서의 생각이고 닭의 입장에서는 잘못하면 오늘 잡혀 죽겠다 이런 생각으로 열심히 이리 저리 도망다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닭을 잡는 행위가 재미가 있다는 것은 사람 입장이고 공포를 느끼면서 간신히 도망치느라 진땀이 난다는 것은 닭의 입장이다.
고기를 먹으면서 맛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사람 입장이고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해 원통하다고 여기는 것은 축생의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 각 주체는 또 자신이 받아들이는 내용만 명료하게 파악할 뿐 자신과 관계하는 다른 입장에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
또 설령 대강 그것을 파악하더라도 그 내용을 자신이 직접 받고 느끼는 것은 아니므로 설령 다른 생명이 극심한 고통과 억울함과 공포를 받더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좋음을 준다면 그것을 집착해서 추구해나가기 쉽게 된다.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받아나가게 되는 업의 장애의 성격은 바로 이런 사정으로 만들어진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신은 최선을 다해 추구할 뿐인데 왜 자신이 3 악도에 가게 되는가.
그런 문제에 대한 답이 위 내용이고 그렇게 되는 사정도 위 내용인 것이다.
알고 보면 모든 생명이 다 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 가족에 대해 지극히 애착을 갖고 집착을 갖고 대한다.
오죽하면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고 했겠는가. 여기서 함함하다란 표현은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표현이라고 보는데 털이 보드랍다 탐스럽다란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본인 경험에는 고슴도치 이 경우에만 쓰는 말로 생각된다. 이 담요는 참 함함합니다. 이런 말을 평소 전혀 못 들어 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고슴도치 어미가 함함하다고 여기는 고슴도치새끼가 만일 관절통에 특효라고 소문이 나면 고슴도치새끼가 갑자기 세상에서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관절이 아픈 사람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체포해서 섭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고슴도치 새끼를 잡아 먹으면 관절에도 별로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나중에 그로 인해 삼악도에 들어가는 티겟이 발부되고 왠만해서는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을 벗어나기 힘들고 성불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경전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왜 그러겠는가.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면 긴 설명이 필요없다.
자신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한 아이를 어떤 생명이 갑자기 나타나 마구 체포하고 살해한 다음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입장을 바꾸어 놓고 왜 그가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고 집착하는 그런 자신이나 아이를 잡아 먹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또 평소 자신이 무언가를 열심히 행하는 그 취지와 전혀 다를바가 없다.
결국 탐욕 아니면 분노와 어리석음에 바탕해 그렇게 한 것이다.
즉, 자신이 집착하는 생존, 그리고 좋음과 맛에 대한 탐욕심 아니면 자신의 고통을 제거하고 좋음을 얻기 위해서라거나 그것도 아니면 좋은 것을 놓고 서로 다투거나 견해 차이로 비롯된 분노로 인한 것이고 또 이 모든 내용은 어리석음에 바탕해 망상분별을 일으켜 그것이 실답지 않음과 그로 인한 인과를 넓고 길고 깊게 관하지 못하는 바탕에서 그렇게 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각 주체는 결국 현실에서 가장 집착을 갖는 자신에 대한 망상분별을 근원으로 하여 그런 모든 번뇌 망상을 일으켜 그런 험한 악행을 서슴없이 반복해 행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일으켜 갖는 그 모든 집착의 근원은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데 그 부분 역시 망상분별인 것이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망상분별을 제거하고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갖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제거하고 그 부분과 관련해서 통증이나 억울함이나 불쾌를 느껴도 평안히 참는 수행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런 망상분별을 제거하고 상을 갖지 않는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통증은 느껴지는 것이다.
만일 통증의 제거가 문제라면 마취제나 진통제를 투약하거나 정려 삼매수행을 하는 것이 좋다고 보겠지만, 여기서 문제는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주제이지 그런 통증 해결이 문제가 아니다.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이 실답지 않은데 그런데 왜 평소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는가는 자신이 이번 생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공중 3 회전에 걸쳐 망집을 일으키고 이 망집을 단단히 매듭지은 상태로 현실에 임하게 된 배경을 잘 살피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자신을 기준으로 무언가 좋다고 보는 것을 집착하고 추구하면 3 악도에 들어가서 극심한 고통을 무량하게 받아나가게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공중 3 회전에 걸친 망집을 일으키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지만,
또 그런 상태에서 생사현실에 임해 살아가는 상태에서는 또 앞과 같이 그런 망상분별을 제거하고 수행에 임해 업의 장애를 제거하고 생사를 벗어나는 노력이 또 필요한 것이다.
이전 조각글에서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의 관계에 대해서 살폈다.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는 부분은 상(相)이라고 표현한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눈으로 보는 내용을 다시 각 부분을 이리저리 묶고 나누고 하면서 이것은 영희고 저것은 꽃이고 또 저것은 철수고 이 부분은 나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런 생각은 상(想)이라고 구분해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상(想)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 일부분을 그렇게 나누고 묶은 다음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그 부분을 취하고 그 부분을 붙잡고 늘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감각현실을 놓고 행하는 전도된 망상환자의 일반적인 자세다.
여기서 감각현실 부분을 상(相)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감각현실은 비록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소재는 되지만, 그러나 정작 그런 감각현실을 소재로 망상을 일으키고 그렇게 그 부분을 붙들고 늘어지는 일을 행하는 부분은 역시 그 부분에 대해 일정한 상(想)을 일으키는 관념 영역에서 행하는 일이다.
그래서 상(相)을 취하거나 행하거나 머물지 말라고 할 때 그 상(相)은 감각현실 부분이지만, 그렇게 상(相)을 취하거나 행하거나 머물고 그에 바탕해서 무언가를 행해 나가는 것은 상(相)을 얻는 감각현실 영역에서의 문제가 아니고 관념영역에서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그 부분에서 감각현실 영역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그렇게 그 부분에 있다고 여기는 망상을 제거하고 그 부분을 붙잡고 늘어지는 자세를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해서 눈을 떠 얻는 모습을 눈을 감아서 보지 말라거나 그런 감각현실을 얻지 못한다거나, 그에 대해 그런 생각 자체를 전혀 일으키지 못한다거나, 일으키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내용을 꿈의 비유를 놓고 잘 이해해야 한다.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 꿈을 꾸는데 침대에 바다나 황금이 있다고 침대 각 부분을 붙잡고 취하고 늘어지지 말라는 내용인 것이다. 그러나 침대는 침대로 현실에서 얻는 것이고 바다나 황금은 또 꿈에서 생생하게 얻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침대 각 부분을 바다나 황금으로 여기고 대한다면 곤란하고 그런 상태라면 다시 그런 것에 그런 내용이 없다는 것을 잘 관하고 그 상황에 임해야 한다는 의미다. 더욱이 그런 상태에서 계속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것이므로 그런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그런 상태에서 그런 망상과 집착을 제거하고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야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어렵게 설명하게 되는데 쉽게 설명해 지금 눈을 떠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본다고 해보자.
눈을 뜨면 자신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만 누가 가위로 오려서 떡 제시해주는 상황이 아니다.
물론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도 보이지만, 그외 여러 내용이 다 함께 전체적으로 얻어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감각현실을 전체적으로 얻는 상태에서 이런 감각현실을 배경으로 놓고 자신이 관념분별영역안에서 그 내용을 이렇게 저렇게 묶고 나누어서 그 가운데 일부분은 자신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 감각현실 가운데 그런 내용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 특정부분을 계속 취하고 붙잡아 대하는 상태인 것이다.
즉, 축구 경기장에서 축구를 본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공이라고 여기고 그런 생각을 갖고 처음 공이라고 보는 일정한 부분을 포착한 다음
그 공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계속 초점을 맞추면서 이리저리 살피면서 그 내용에 따라서 환호도 하고 아쉬움도 표하고 그런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것이 망상분별 증상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는 조금 쉬었다가 살피자.
너무 통증이 심해서 진통소염제를 먹었더니 조금 낫다. 그렇다고 그 부분이 나은 것은 아닌데 나은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백혈구가 공연히 열심히 활동해서 이런 증상이 생겨난다고 하는데 백혈구가 공연히 그렇게 활동하는 것은 또 아니다. 백혈구가 그렇게 활동할만 하니까 또 그렇게 임하는 것이다.
몸의 주인이라고 할 본인이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지시했는데도 말을 잘 안듣고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올려진 노래에서 삭스핀 맛이 좋다. 손오공 옛말이다. 그러나 손오공이 자신과 입장과 견해가 다르면 분노를 일으키고 여의봉을 들고 부처님 손바닥을 날라다니게 되고 결국 오백년간 돌에 갇히는 고통을 당하게 되니 함구령을 내린다. 이런 이상한 시감상을 하게 되는데
현실에서 3 악도에 들어가는 사정이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좋아하는 바에 집착한 가운데 좋아하는 내용과 견해가 다르면 서로 다투고 분노를 일으키고 그런 가운데 자신의 좋음에 집착하여 추구해나가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자신을 기준으로 놓고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하면 왜 그렇게 되는지를 정작 그 상태에 들어가서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왜 위와 같이 행하면 그렇게 되는가를 이해하려면 거울면을 하나 놓고 위와 같이 행하는 자신을 남이라고 놓고 입장을 바꾸어 놓고 하나하나 살피면 그 사정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고 본다.
삭스핀이 맛있다고 여기는 것은 자신인데 자신의 손과 발에 해당하는 지느러미가 맛있다고 자신을 잡아 죽이면 상어가 그것을 좋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상어도 알고보면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생명들이 서로 얽히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는 그렇게 어려운 퀴즈는 아니다. 다만 그렇게 행하는 각 주체가 그 관계를 그렇게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하면서 이해하지 못하고 각 상황에 임하는 것 뿐이다.
현실에서 자신이 병이 나서 어딘가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면 우선 이 통증을 제거하고 그런 통증을 일으키는 병을 치유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그런데 그 통증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것이라고 보지만, 그 이면에는 모두 앞과 같은 관계가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사고는 사고대로 질병은 질병대로 그렇다. 오늘날 질병은 바이러스나 세균 암세포 기생충이나 해충 등에 의해 일어난다고 이해하는데 이것이 하나같이 앞에 제시한 원리로 생활하는 생명인 것이다.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런 원리로 임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고는 다양한데 이 내용도 알고보면 그런 관계로 얽혀서 일어난다는 것을 또 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떤 위험한 일을 하는데 그 일을 늘 대하고 행하는 이가 그 사정을 잘 아는데 그러나 정작 가장 위험하다고 보는 부분은 그 일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넘겨 버리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요즘 사건 사고 보도를 보다보면 대부분 비정규직이 관련되 있음을 보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과거 메르스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 사정을 보게 된다. 큰 병원에서 메르스 사태가 일어났는데 나중에 그것이 차단이 안되어서 알아보니 정작 그 병원에서 청소를 한다거나 환자를 이송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이 비정규직 인원이어서 대상에서 제외시켜 그런 상태가 되었다는 것도 그 사정을 알고보면 마찬가지다.
여하튼 각 주체가 그렇게 임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을 많이 취하고 나쁨을 가장 적게 받기 위해서 매 경우마다 그렇게 임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그 반대가 된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여하튼 당장 느끼는 통증을 제거하고 그런 통증을 일으키는 질병을 제거하려면 현실에서는 의학 지식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 순간 느끼는 통증이나 질병은 제거할 지 모르지만, 무량겁에 걸쳐서 받게 되는 3 악도의 생사고통을 제거하지는 못하기에 그 부분이 문제가 된다.
마치 강도가 재물을 훔치면 그 순간은 재물을 얻는다고 여기지만, 그러나 남은 기간 재물을 차지하지 못하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고 보는 것처럼
당장 질병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노력하면 그 고통은 제거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런 자세로 인해 오히려 매순간 그런 고통을 받아나가면서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을 받고 생사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모래로 가득한 운동장에서 모래 한 알을 잘못 대하면 그로 인해 대신 나머지 운동장의 모래에 해당한 내용을 다 고통으로 받아야 하고 그 모래 한 알을 잘 대하면 그로 인해 나머지 운동장 모래에 해당한 생사고통을 다 받지 않게 된다면 어떻겠는가.
그런데 이 경우에 그 모래 하나만 놓고 대하는 입장과 운동장 모래 뿐만 아니라, 무량한 세상의 모래를 다 놓고 대하는 입장은 서로 입장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좁고 짧고 얕은 관찰과 넓고 길고 깊은 관찰에 바탕한 처방전 내용이 달라지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손오공 입장에서는 자신이 구름을 타고 날아갈 수 있는데까지 날아가고 또 날아가서 글씨를 적고 왔는데 왜 그것이 부처님 손바닥이 되었는가 물론 이야기 속의 내용이므로 진지하게 이 문제를 살필 것은 아닌데 그 사정을 이해하자면 현실에서 한 주체가 외부세계나 외부대상 외부물질이라고 여기는 것이 알고 보면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기에 그런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산 위에 올라간 이가 눈을 떠서 바라보면 아래에 도시 모습이 펼쳐 보인다고 하면 그 모습이 외부세계라고 이해하고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산에서 내려와 차를 타고 가고 또 가서 그 외부세계에서 자신이 갈 수 있는 극한 만큼 나아갔다고 여길 때도 마찬가지다.
그 매순간 자신이 대하는 그 내용이 자신의 마음 내용인데 그 주체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 순간 그렇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손오공이 그렇게 재주를 피워봤자, 생사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재주를 피운 만큼 그에 비례해 생사고통을 받고 묶이게 된다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쉬고 또 이어 살피자.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Arthur H - Ma Derniere Nuit A New-York City.lrc
몸이 아파 옥상기지에서 올라가 쉬지 못하고 희덕여래님이 계신 가까운 기지에서 쉬면서 다음 게송 구절을 받아 왔다.
상행인욕 애민일체 常行忍辱 哀愍一切
여기서 인욕이란 결국 앞에 제시한 안인수행을 의미하는데 안인수행을 해도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놓고 여기서 살피고 있다.
고통이 있는데 그 상황에서 상을 제거하고 이를 평안히 참고 대하는 수행을 하지만, 고통은 계속 몰려온다.
왜 그런가도 살피고 이것이 생사를 벗어나는 데 왜 중요한가도 살피려고 하는 것이다.
질병으로 어떤 통증을 느낄 때도 처방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환자의 예후가 달라진다고 본다.
우선 통증이 심하므로 통증을 느끼지 않게 하는 진통제나 마취 마약을 섭취하게 하면 그 환자는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될 수 있다. 그런데 통증을 느끼지 않을 뿐 그 병이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병을 치료한다고 할 때 병적인 증상이라고 보는 그 부분만 딱 붙잡고 그것이 나타나지 않게 하는 방안을 취할 수도 있다.
당뇨 수치가 높으면 당뇨 수치가 떨어지게 하는 약 혈압 수치가 높으면 혈압 수치가 떨어지게 하는 약 체온이 높으면 체온을 낮추는 약 혈액내 일정 성분의 수치가 높거나 낮으면 이를 조절하는 약 ...등등을 처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 문제로 보는 그런 수치가 떨어지므로 그런 측면에서는 그 질병이 치유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처음에 왜 그런 수치가 높게 되었는가 하는 원인을 놓고 살피면 이것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님을 또 보게 된다.
혈압 수치가 왜 높아졌는가를 놓고 살펴보자. 몸 각 부분에서 산소나 영양분의 공급을 원하는데 혈압이 낮으면 각 모세 혈관을 통해 공급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혈압이 높아질 수 있다.
또는 폐에서 산소를 흡수해야 하는데 폐 상태가 안 좋아서 압력을 놓게 해야 하므로 높아진 상태일 수도 있다.
또는 혈관에 노폐물이 많이 있어 관이 좁아져서 혈압이 높아질 수도 있고
또는 피를 거르는 신장에 문제가 생겨서 혈압이 높아질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너무 긴장해서 높아질 수도 있고 기타 등등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나름 문제를 해결하려고 혈압이 높아진 것인데 혈압이 높아지면 또 그로 인해 심장이 부담을 받고 또 약한 혈관이 터진다거나 해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혈압을 낮춰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처음 혈압을 높이게 한 원인을 잘 살피지 않고 혈압만 약으로 낮추어 놓으면 그 원인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문제가 잘 해결된 상태가 아닌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보면 일단 통증을 제거하는 약도 먹고 일단은 그런 위험한 증상을 없애는 약도 먹고 그런 가운데 원인이 되는 그 부분의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일단 통증이 없어지면 환자는 문제가 같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또 증상이 안 나타나면 또 마찬가지로 문제가 근본적으로 없어진 것으로 이해하고 현실에 임하게 되기 쉬운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병이 있다가 치유되면 그로 인해 자신이 앞으로 무량겁에 걸쳐 받아나갈 생사고통도 함께 없어진 것으로 오해하고 임하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이 상황을 앞에서 운동장에 있는 모래와 모래 한 알의 문제로 비유를 했는데 모래 한 알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래 한 알 보다는 나머지 운동장의 모래나 우주에 가득한 모래에 더 비중을 두고 이 문제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시간이나 양이나 질 그 모든 면에서 그 사정이 다르고 따라서 그에 대한 처방전이 달라지는 사정이 그런 것이다.
왜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서 그 고통을 참고 견디는 안인 수행을 제시하는가는 이런 사정에서 그런 것이다.
본인이 요즘 몸에 각종 이상증후를 겪는 것은 생각해보면 최근 몇개월간 거의 의자에 붙어 생활하고 운동도 거의 하지 못하고 밖에도 거의 나가 활동하지 않아서 이런 다양한 증상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신체 각 부분의 순환이 잘 이뤄지지 않고 그런 가운데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는데 이것이 서로 얽혀 있기에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각 말초 부위까지 순환이 원할하게 되도록 각 신체 말초 부분에 7 부처님을 배치해서 관할권을 넘겼다.
어차피 본인 몸도 아니라고 보는 마당에 이로 인한 고통만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라고 보고 이렇게 한 것이다.
과거에 본인이 연구자금을 놓고 관리하다가 골치만 아프고 손해만 받게 되어서 그 자금을 모두 부처님 계좌로 옮겨 놓고 그 이후 평안하게 지내는 방안과 사정이 같다.
그래서 현재 아픈 부분을 놓고 보면 이 부분은 비사부 여래님이 관할할 부분인데 비사부 여래님은 다음 게송을 남겨 주신 부처님이다.
...
4대(四大-지,수,화,풍)를 거짓으로 빌려 몸으로 삼았고
마음은 본래 생겨남이 없으나
경(境-대상)을 따라서 있게 되었네.
앞에 경(境-대상)이 없다면
마음 또한 없으니
죄와 복도 환(幻)과 같아
생겼다가 사라지네.
●毘舍浮佛同前劫偈曰
비사부불동전겁게왈
假借四大以爲身 心本無生因境有
가차사대이위신 심본무생인경유
前境若無心亦無 罪福如幻起亦滅
전경약무심역무 죄복여환기역멸
파일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 복사해 붙이지만,
각 부처님의 게송을 외우는 것이 알고보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 조각글 처음에 붙인 노래에서 자꾸 외우라고 해서 무엇을 외우라고 하는지 생각했었는데 각 부처님의 게송이 간단해 보이는데 내용이 엇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나중에 서로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서 쉽지 않다.
여하튼 시간날 때마다 이런 게송을 생각하면서 신체 각 부분이 잘 순환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발가락 가운데 엄지 발가락은 움직이는데 나머지 발가락은 본인 의지대로 따로따로 움직이지 못한다. 손가락은 열손가락을 자유롭게 따로 따로 움직이는데 발가락은 그렇지 못하는 상태다.
그래서 따로 따로 발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훈련 중이다.
만화에 나오는 머털도사가 머리카락 하나를 뜻대로 올릴 수 있게 됨으로써 여환삼매를 취득해 활약하게 되었듯 본인도 각 발가락을 뜻대로 움직이는 훈련을 통해서 신체 각 부분에서 순환을 잘 이뤄지도록 하려는 취지인 것이다.
발가락까지 피나 신경이 활성화되면 그 부분까지 이어진 관련 부분이 모두 다 좋아진다고 보는 가운데 이 노력을 부처님 게송을 외우면서 하면 더 좋다고 보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어느 한 부분은 지나치게 많고 어는 한 부분은 지나치게 부족하면 이 각 부분이 다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각 부분에 골고루 순환이 되려면 결국 가장 적은 말초부분과 가장 많은 중심부분 사이에 순환이 잘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결국 말초 부분이나 모세 혈관이 살아나야 심장이나 뇌도 그 상태가 좋아진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참고로 발가락을 움직여서 그런 활동을 해도 좋지만, 발가락을 움직이지 않은 가운데 마음만 기울여도 또 좋다고 본다.
그럼으로써 마음활동이 갖는 의미도 잘 파악할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신체도 순환이 잘 이뤄질 수 있기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글 첫부분에 생사현실에 임해 수행하는 수행자가 안인을 수행해도 그 상황에서 받는 통증을 없애지 못하는데 그러나 왜 안인을 수행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하는가하는 문제를 주제로 삼고 살핀다고 했는데 정작 핵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 문제를 첫부분에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 통증을 느끼거나 감각을 하는 것은 자신이 일정 부분을 자신이라고 분별해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일정 부분에서 그런 감각을 하고 통증도 느끼고 그러기에 그 부분을 자신이라고 평소 망상분별을 일으켜 대해나가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그런 부분을 실다운 자신이 아니라고 관해도 여전히 통증을 느끼는데 그렇게 통증이 느껴지는 상태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런 관을 바탕으로 고통을 참아내는 안인 수행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그리고 반대로 그런 통증이 느껴질 때 그런 부분을 실다운 자신이라고 여기면 또 무엇때문에 곤란하다고 하는가.
이 주제를 잘 살펴야 한다고 본다. ...
이를 이해하려면 현실에서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잘 붙잡고 그 정체가 무언가를 먼저 잘 관해야 한다.
이미 이에 대해 과거 조각글에서 여러번 살폈는데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거울을 보고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잘 붙잡아 놓고 이것이 무언가를 살핀다면 그것은 알고보면 자신이 이 생 이 순간 잠시 걸치고 있는 옷이나 또는 거리에 있는 벽돌과 같은 것이라고 제시하게 된다.
그 사정을 과거 조각글에서 자세히 제시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내용을 자신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데에는 또 일정 사정이 있다고 제시했다. 그것이 알고보면 현실에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그것을 벗어나고 제거하기 힘들게 만드는 사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이전에 망2 . 핫키에 축약시킨 내용을 다시 붙여보기로 한다.
---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되고
또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는 부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이런 내용을 얻는 자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판단한다.
즉 일정 부분은 매번 자신이 눈을 뜨면 그 때마다 달라지는 주변모습과는 달리 늘 일정하게 보게 되는 부분이고 [상]
또 그 부분은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여 가겠다고 뜻을 가지면 그런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여
즐거움과 좋음을 가져다 주는 부분이고[락]
또 그 부분이 다른 부분에 닿을 때는 다른 부분과 달리 그로 인해 촉감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고
또 그 부분에 손을 대면 다른 부분과 달리 양 쪽에서 촉감을 느끼게도 된다.
그래서 그 부분은 곧 외부의 내용을 대상으로 하여 감각을 얻는 자신의 주관이 위치하는 부분이고[아]
그런 사정들로 이 부분은 다른 존재와 달리 깨끗하고 소중한 바로 자신이다. [정]
이런 식으로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대한다. [....이하 줄임...] 그리고 이것이 대표적으로
일반인이 일반적으로 갖는
전도망상분별증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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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과 같은 사정에서 일반적으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놓고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데 왜 이것을 망상분별이라고 하는가.
이에 관해서도 과거 조각글에서 자세히 설명했다고 보는데 간단히 보면 현재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붙잡고 30 년전 정도 초등학교시절로 가서 살피면 과연 그런 부분이 자신이라고 하겠는가 이런 문제를 살피면 쉽게 알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위와 같은 여러 사정은 사실은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하는 사정이기는 하지만, 그런 내용으로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임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 제시한 그런 사정에 놓이게 된 것은 사실은 자신의 관념분별 영역에서 그런 분별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번 생에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공중 3 회전에 걸쳐 망집을 일으켜 그 망집이 단단히 매듭이 된 상태이기에 그렇게 된다는 사정을 제시한 것이다.
올려진 노래를 듣다보니 자꾸 너무 길다고 하는데 되도록 관련부분을 링크로 처리해 넘기기로 하고 간단히 줄이기로 한다.
간단히 이 사정을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에서 상처가 나면 피가 흐르고 통증을 느끼는 것은 평소 자신이 분별을 행할 때 그 부분을 자신이라고 망상분별을 일으켜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부분의 사정이 그렇기에 자신이 그런 망상분별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자신이 술을 많이 마시거나 어딘가에 부딛혀 의식을 완전히 잃어서 전혀 분별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해도 여전히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에서 일정하게 호흡도 하고 혈액도 순환시키고 심장도 뛰게 하고 그런 일련의 관리작업을 잘 행하는 정신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념분별 영역에서 어떤 분별을 통해 이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이번 생을 시작할 때 공중 3 회전에 걸쳐 일으킨 일련의 망집 현상에서는 가장 말초적으로 표면에 나타나는 망집 현상이라고 보게 되는 내용인 것이다.
즉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제 7 말나식이라고 하는 부분이 일정한 부분을 붙잡고 그 부분이 나라고 망집을 일으킨 것이 바탕이 되어서 이후 제 1,2,,3,4,5,6,식이 분화 생성된 과정이 있었기에 그런 상태에서 이후 분별을 행하는 제 6 식이 이 내용을 그처럼 관하게 되었다는 사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상태에서 그렇게 제 6 식에서 망상분별을 멈춘다고 해서 나머지 부분이 다 함께 그에 따라 반응을 멈추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이 자신이 아님을 잘 관한다고 해서 자신의 부분에서 이뤄지는 일체 반응이나 활동이 중지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통증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통증도 느끼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그 연유는 처음 생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일으킨 공중 3 회전에 걸쳐 진행된 망집 현상과 그로 인해 단단히 매듭이 지어져서 현실에 임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이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 나열한 것과 같은 사정을 보게 되고 그런 사정으로 또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고 옳은 것처럼 여기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알고보면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은 무량겁을 걸쳐서 그런 형태로 이어져 가는 자신과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단지 이번 생에 잠시 걸치는 옷이나 자신이 잠시 앉아 있는 거리의 벽돌과 같은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앞과 같은 상황에서 아무리 그런 부분이 자신이라고 여기지 않고 상을 취하지 않고 안인을 닦으려고 해도 쉼없이 고통이나 통증이 느껴지는데
왜 이런 상태에서 그에 반응해 임하지 않고 평안히 참고 견디는 안인을 수행하라고 하는가를 또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일전에 제시한 가피 중첩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3 계 6 도에서 앞과 같은 망집을 바탕으로 각 생명이 임하는 생사현실은 알고보면 각 생명이 서로 자신의 입장에서 좋음을 집착하고 추구하는 가운데 수많은 가해와 피해를 주고 받는 가피 중첩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세상의 어떤 미미한 곤충이나 벌레를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개미나 이나 바퀴벌레를 놓고 보아도 이들은 좋은 것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구하고 또 자신에게 나쁘다고 보는 것은 피하면서 활동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각 생명이 자신의 입장에서 그렇게 좋음을 추구하는 활동이 다른 생명에게는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고 또 대부분 그 반대로 대단히 고통을 주는 내용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자신의 몸 안에서 어떤 바이러스나 세균이나 기생충이 터를 잡고 좋음을 추구하고 번창하면 그 입장에서는 대단히 좋은 것인데 그러나 다른 기관이나 자신에게는 대단히 고통을 주는 내용이 된다는 의미다.
이것은 단지 바이러스 세균 기생충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온 우주안의 생명이 서로 그런 관계가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각 생명간에는 이런 가피 관계가 중첩되어 이를 바탕으로 생사현실에 묶여 생을 순환해가는 상태에 놓인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을 과거에 이런 비유로 제시한 바 있다.
거리에서 누군가가 다른 이를 심하게 폭행을 하고 있어서 길가는 사람들이 그런 폭행을 하는 이가 나쁘다고 보고 그를 둘러싸서 그만 하라고 말을 하니,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지금 자신이 때리는 이는 1 주일전에 자신의 집을 불지르고 처자식을 살해한 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주변 사람들이 조금 사정을 이해하고 그런 폭행을 하는 이가 그럴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려고 하는데
그렇게 맞고만 있던 이가 다시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인데 자신이 왜 그런 일을 했는가하면 지금 자신을 때리는 이가 그 일이 있기 1 달전에 자신의 부모 집을 불지르고 가족을 모두 살해했기에 자신이 1 주일전에 그집을 찾아가 그렇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또 이 이야기를 들으니 주변사람들은 또 그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1-2-3 여기까지만 이야기했지만, 계속 그 사정을 듣다 보면 그것이 과거로도 무한히 그렇게 같은 형태로 나열되고 그것은 한 단면에서도 다양한 측면으로 좋고 나쁨이 엇갈려 중첩되고 또 각 주체마다 좋고 나쁨의 판단이 다 엇갈리고 그런 형태인 가운데 이대로 방치하면 또 무량겁에 걸쳐서 그런 형태로 계속 반복되어 나가게 마련이다라고 이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피 중첩 현상이라는 표현이 나타내는 바다.
이미 자신이 음식으로 보고 식탁에 올려 놓고 맛보는 죽은 고기의 맛있는 맛이 그 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온갖 고통과 억울한 사연이 농축된 결과라고 앞에서 제시하였는데 이 사정이 현실에서 살아가는 각 주체마다 다 그렇게 중첩되어 전개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또 어떤 회사에서 어떤 한 부장은 사장으로부터는 고통을 당하는 상태인데 또 한편 과장에 대해서는 자신이 고통을 가하는 입장인 경우도 있고
그래서 한 현실 내용을 놓고 살피면 한 단면에서도 이런 가피 관계가 서로 엇갈려 다양하게 중첩되어 있다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무량겁에 걸쳐서 나아가기에 그 과정을 통해 받아나가는 생사고통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각 주체가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가피 관계로 반응해나가는 그 사정은
결국 현실에서 앞에 제시한 것처럼 생을 출발한 단계에서 일으킨 망상분별과 그에 바탕해 일으킨 집착을 바탕으로 그렇게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집착을 일으키는 가장 근본은 바로 현실에서 자신이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자신과 관련한 부분이 근본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이처럼 가장 자신이 집착을 갖고 대하는 자신에 대한 망집을 해소하지 않으면 이 문제상황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처럼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붙잡고 망집을 일으킨 상황에서 가장 문제되는 행위는
바로 그런 자신에게 좋음을 준다고 보는 내용을 집착하고 추구하면서 다른 생명에게 좋음을 아끼고 베풀지 않는 자세 또 반대로 자신의 좋음을 얻기 위해 다른 생명이 가장 집착하는 생명과 신체 가족 등을 함부로 침해하고 나쁨을 가하는 자세
그리고 또 반대로 자신이 그런 침해를 받으면 그것을 평안히 참고 견디지 못하고 분노를 일으키면서 그 상대를 보복하고 가해하는 자세 이런 부분들이 바로 치명적인 문제점인 것이다.
생사현실에서 대부분 자신이 가장 집착하는 자신을 위해서는 매 순간 그렇게 도저히 할 수 밖에 없다고 여기면서 그런 업을 행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렇게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내용부터가 망상분별에 바탕한 내용인 것이다. 또 자신이 그렇게 미움을 갖고 대하는 상대가 알고보면 그런 대상도 아니고 자신이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상대도 또 알고보면 그런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온통 망집에 바탕해 이런 행위를 해나가면서 매 주체가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아나가기에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 가운데 어떤 고통을 받을 때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평안히 참고 견디는 안인 수행은 왠만큼 수행을 한 수행자도 잘 성취해내지 못하기에 특히 문제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이 성취되지 않으면 고통을 받게 되면 이를 참지 못하고 그런 상태에서 행하게 마련인 행위를 해나가게 되어 업의 장애를 증폭시키는 가운데 다른 중생에게도 고통을 주고 그로 인해 자신도 고통을 받으며 결국 다시 생사고통에 묶이게 되고 수행자로도 취급받지 못하게 되는 한편,
이 부분을 성취해야 비로소 수준이 높은 불퇴전위에 오른 수행자로 취급받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가피 관계가 중첩될 때 어떤 피해를 심하게 받고 고통을 받는 상황이 있다면 사실은 그 상태의 주체는 그런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를 그 손에 쥐고 있는 상태라고 일반적으로 보게 된다.
왜냐하면 가피관계가 중첩된 상태에서 그런 피해를 가한 가해자는 그 상태에서는 이제 자신은 자신의 뜻대로 다 가해를 해서 충분하다고 여기면서 그만 이 가피 중첩관계를 이어나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뜻처럼 되지 않는 것은 피해자가 그런 상태에서 그 가피관계를 중지하려고 하지 않기에 또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다.
즉, 이런 가피관계가 계속 이어져 중첩되는 상황에서 가해를 마친 입장은 그 상태에서 그 관계를 멈추고 떠나려고 하는데 정작 피해를 당한 입장에서는 이를 그렇게 두지 않고 다시 보복을 가하려 하기에 가해자 입장에서 비록 무량겁에 걸친 가피관계를 그만 벗어나려고 해도 그 희망이 뜻대로 성취되지 않고 그 가피 중첩관계에 그대로 다시 묶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반대로 살피면 그 피해자가 그것을 원치 않고 상황이 바뀌면 그 가해자에게 받은 피해를 보복하여 다시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뒤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당한 피해에 상응한 가해를 마친 피해자는 이제 그런 가해를 한 상태에서 자신이 이제 할 만큼 충분히 했으니 되었다고 여기고 그 관계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이 경우도 그 관계를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런 보복을 당한 입장에서 그런 상태로 이 관계를 마치려고 하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반대로 살피면 그런 관계를 떠날 수 있는 권한이나 열쇠는 지금 이 순간의 가해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 피해를 당한 입장에게 주어져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상태에서 피해자가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고 되었다고 여기는 한편, 이 상황에 그런 피해를 받는 주체도 알고보면 엉터리고 이 상황을 자신이 억울하게 여기지만, 그러나 알고보면 억울하게 여기는 그 상황에 본래 그런 일 자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관하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면 앞으로 무량하게 같은 형태로 반복해 가피 관계를 중첩시켜나가면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피해를 받은 입장에서 그렇게 임하면 그로 인한 업의 장애는 더 증폭되지 않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병이 날 때 상처 부위를 자꾸 긁어대면 더 상태가 악화되고 커진다고 하듯 앞과 같이 임하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임하면 그 자신을 생사고통에 묶어 두는 업의 장애가 해소되지도 않고 점차 더 증폭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물방울 하나에 불과한 가피 관계는 그 관계를 반복해 나감에 따라서 무량겁에 걸쳐 고통을 주고 받아나가는 상태로 증폭되어 나간다고 보는 것이고
반대방향으로 임하게 되면 처음 물방울 하나에 불과한 가피 관계는 그 관계를 달리 반복해 나감에 따라서 무량겁에 걸쳐 행복을 주고 받아나가는 상태로 증폭되어 나간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아나가는 중생을 구출해서 제도하는 지장 보살님이 밝히시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은혜와 행복을 주고 받는 가피관계도 가피관계라고 하는가하면 여기에 부처님과 보살님의 가피와 같은 가피가 그렇게 중첩되기에 이 역시 가피관계라고 표현하게 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보고 집착을 갖고 대하는 그 부분은 사실은 실다운 자신이 아니고
자신이 이번 생에 잠시 그 순간에 걸치는 옷과 같은 관계에 있는 것 뿐인데
이 옷을 놓고 자신이라고 여기고 집착을 갖고 대하면서
자신의 옷이 조금 찢기거나 떨어지거나 하면
마치 현실에서 부목을 대고 움직이는 상태에서 그 부목에 충격이 가해지면 그것이 자신은 아니라고 해도 그에 따라 감각도 하고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것인데
이런 상태에서 그에 따라 하기 마련인 반응을 해나가면 앞과 같은 가피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해소되지 않고 나쁜 방향으로 증폭되어지게 되고 그 주체는 그로 인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비유를 들면 단지 옷이 어떤 기계에 물려 끌려가거나 옷만 수렁에 빠진 상태인데 그 옷에 집착한 이가 그 옷에 집착하여 그것을 계속 붙잡고 늘어지면서 그에 따라 반응하면 그로 인해 그 옷과 함께 기계나 수렁에 빨려 들어가고 그 옷도 훼손될 뿐 아니라 그로 인해 그 자신도 마찬가지 상태로 묶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임하지 않으면 또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세로 업의 장애가 해소되고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운동장에 가득한 모래와 모래알 하나의 비유를 들었는데 모래알 하나가 이번 생에서 겪는 생사고통이라면 이 생사현실에서 고통의 문제를 잘 대하고 수행으로 전환해 임하면
나머지 운동장에 깔린 모래알 수에 해당하는 생사고통을 받지 않고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풀려나게 되는데
그러나 그 모래알 하나에 불과한 이번 생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안인 수행으로 잘 임하지 못하고 반응해나가면 매 순간 그런 형태로 임하는 가운데 그로 인해 나머지 운동장에 깔린 모래알 수에 해당하는 생사고통을 받고 끝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풀려나지도 못하게 된다는 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떤 상처가 있을 때 그 순간만 놓고 생각하면 그 상처를 긁고 만져야 시원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상처는 아물지 않고 더 커져 나간다는 내용과 비슷한데 그 규모나 기간이 무량겁에 걸친 생사고통이어서 대단히 극심한 차이를 낳는 것이다.
이번 조각글을 처음 시작할 때 처음부터 외우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노래를 듣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경 제목을 다 외우지 못하고 있다. 알고 보면 쉽지 않다.
그런데 경 내용을 보면 동화책 이야기와 같은 토끼가 나오고 도저히 잘 믿기지 않는 내용을 그것도 잘 헤아리기 힘든 과거 겁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제시하면서 이런 사정으로 다른 생명을 살생하여 그 고기를 음식으로 먹는 행위가 갖는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수행자에게 주의를 주는 한편 과거의 그런 일이 현재와 그렇게 다 관련이 되어 있다고 또 제시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내용을 대하면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수준으로 여기고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토끼가 수행자의 음식이 되고자 자신의 몸을 불에 던져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과연 현실에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늘 있다면 부처님이 또 이런 일을 굳이 무량겁전을 놓고 찾아 그렇게 제시하겠는가.
그날 비가 내렸다던지 그날 토끼가 숲에서 홍당무를 찾아 돌아다녔다던지 그날 숲에서 벌이 꽃가루를 찾아 돌아다녔다던지 늘 보는 그런 일을 또 그렇게 무량겁전에서 찾아 제시할 일이 있겠는가.
그런데 또 각 생명이 그 크기가 작던 크던 다 그런 원리로 살아가는데 그러나 몇몇 생명은 또 그렇게 행하지 않는 사례도 현실에서는 보는 것이다 .
그런 경우 뉴스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뉴스만 모아 놓고 대하면 현실에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을 그렇게 자꾸 제시하니 한마디로 구라 이야기 모음집 정도로 이를 여기고 대하기도 쉽다.
본인이 최근 들은 한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어떤 한 사자가 평생 고기를 먹지 않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우유에 피만 있어도 마시지 않고 다른 짐승과도 사이좋게 잘 어울리면서 지냈다는 것이다.
또 어떤 개는 불이 났는데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 자신의 주인을 끌고 나왔다. 그런 이야기도 듣게 된다.
축생도 좋고 나쁨에 따라 반응하는 것은 인간과 마찬가지인데 그러나 축생이라도 또 그 좋고 나쁨을 얻는 관계를 넓고 길고 깊게 관하다 보면 또 일반과는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임하는 경우도 보는 것이다.
본인도 현실에서 그런 이상한 경우를 본 적도 있는데 개미가 나타나서 본인 앞에 딱 멈추고 움직이지 않아서 설탕을 한 수저 떠서 앞에 준 적이 있는데 설탕을 보지도 않고 계속 쳐다보아서 무슨 사정인가 헤아리면서 살펴 본 적이 기억나는데 여하튼 그런 경우의 하나가 이런 예인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가 별로 없기에 그런 내용을 제시하면 구라라고 일반적으로 보게 되는 사정도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각 생명이 그런 형태로 각기 반응하면서 서로 업을 행하면 그것이 가피 중첩관계로 위에 제시한 형태로 업의 장애를 만들고 그것이 쌓여 3 악도에 묶여 생사고통을 받게 되므로 그런 문제점를 제시하고 그런 망집을 제거하고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야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됨을 제시하는데
앞의 가피관계를 잘못 제시하면 현재 어떤 상황에서 피해나 가해로 서로 얽힌 당사자를 더욱 억울하게 또는 더욱 분노가 일어나게 악화시킬 여지도 있다.
그것은 지금 가해와 피해의 사태는 자신이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상황이고 그 상황 때문에 자신이 대단히 억울함을 느끼는 상태인데 그런데 앞의 가피 중첩관계의 내용은 이 피해를 받은 이가 과거에 비슷한 형태로 무수히 피해를 받았다고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면서 또 반대로 보면 그 반대 형태로 무수히 비슷하게 가해를 했던 입장이기도 하고 또 앞으로도 그런 형태로 가해와 피해를 무량하게 받아나가게 된다는 내용인 것이어서 지금 하나의 내용을 놓고도 억울함을 느끼는 상태인데 이 억울함을 진정시켜주지는 못랄 망정 더 증폭시키는 내용으로 잘못 오해할 수도 있다.
그 반대 가해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이번에 처음 뜻하지 않게 그런 가해를 한 것 뿐인데 가피 중첩관계의 내용을 대하다보면 그 자신은 과거에 그와 비슷한 형태로 무수히 피해를 받았다고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면서 또 반대로 보면 그처럼 또 무수히 비슷한 형태로 가해를 반복해 온 입장이기도 하고 또 앞으로도 그런 형태로 가해와 피해를 무량하게 받아나가게 된다는 내용인 것이어서 또 이를 놓고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불쾌감을 증폭시킬 뿐인 내용으로 이를 오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입장에서는 과연 이런 내용이 확실한 근거가 있기라도 한 것인가.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며 시시비비를 따지려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업의 장애를 해소하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라는 취지에서 제시한 가피 중첩관계의 본 취지는 없어지고 오히려 불 난 곳에 부채질 하고 물난리 난 곳에 물 붓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모르고 그 일이 세상 최초로 당사자간에 그렇게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역시 그 관계를 앞에 제시한 내용처럼 잘 대하고 벗어나오지 못하면 앞으로도 그 관계는 앞에 제시한 내용처럼 이어지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다.
현실에서 누구나 대부분 이런 경험을 갖고 있다.
자신이 부당하고 억울하게 다른 이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손해를 받았다거나 억울한 대우를 받았다거나 하는 경우다.
그런데 어떤 특별한 이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런 억울한 경험을 당한 입장에서는 이후 몇달이 지나던 또는 몇 십년이 지나던 그런 피해를 준 상대나 그 일을 잊지 못하는 한편
그런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에 놓이면 그 일을 아주 생생하게 떠올리면서 또 그 당시 받았던 불쾌감을 다시 되풀이해서 받는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대에 대한 이후 반응은 또 그에 바탕해서 행해나가는 경향을 갖는 것이다.
반대로 앞에서 처음 예를 든 것처럼 자신이 별 생각없이 맛있게 식사를 하면서 다른 생명의 고기를 먹었다는 경우 자신이 과거에 언제 어느 상황에서 어떤 고기를 그렇게 먹었는가 등은 또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떤 좋음에 집착해서 추구하는 가운데 자신이 다른 생명에게 피해를 준 측면은 정작 잘 기억하지 못하고
반대로 자신이 그런 가운데 다른 상대로부터 어떤 피해를 받은 경우만은 몇 십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때만 되면 반복해 그로 인한 불쾌감을 되풀이 해 받아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주변에 그런 사례가 대단히 많은데 그것은 그 주체만 특별히 그런 성격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경향이 그런 것이다.
50 년전에 초등학교 시절에 자신이 산 새딱지를 억울하게 다른 이나 선생님에게 발각되어 빼았겼다. 그래서 하루 종일 억울하고 슬펐다.
오늘날 보면 그 딱지 값이 10 원 정도 밖에 안되는데 문제는 그 당사자가 그 기억을 평생 불쾌하게 가지고 있고 그 내용도 자신 입장만 기준으로 놓고 그것을 반복해 대하면서 임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정작 그 상황에 있던 다른 당사자는 그 사실을 별로 기억하지 못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도 또 공통적으로 보게 된다.
어떠한 이가 매일 매일 닭고기도 먹고 돼지고기도 먹고 소고기도 먹고 물고기도 먹고 매일매일 그렇게 다른 생명이 죽은 사체를 식사로 삼아 쉼없이 먹는데 정작 그 자신은 그런 생명이 당한 고통에 대해 별 관심도 갖지 않고 그것을 오래 기억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평범한 일로 여기며 지나치는 것과 그 사정이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사정이 각 생명마다 일반적인 경우와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업의 장애가 쉽게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여하튼 자신이 어떤 억울한 고통을 당하는 순간 그것이 세계 최초의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앞으로 무량겁에 이어지는 생사고통의 첫 출발점이 되지 않으려면
역시 앞의 가피 중첩관계의 해결원리에 따라 잘 대처해야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 해결방안도 알고보면 간단하다.
그 상황을 거울 하나를 놓고 입장을 바꾸어 놓고 어떻게 하면 그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는가를 찾으면 그 답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거울을 보고 거울에 보이는 이가 자신에게 무언가 좋음을 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가 어려우면 다음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보자. 거울에 보이는 이가 왼손을 위로 들어 올리게 하려면
자신이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답-오른 손을 올린다.
이제 이 문제를 쉽게 해결했으면 앞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상대가 먼저 그렇게 행하면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고 임하면 결코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대단히 원한을 깊게 일으킬만한 가해를 한 이다. 알고보니 그것은 거울속의 상대다. 그런데 그 거울속의 상대가 만일 어떻게 자신에게 행하면 지금 그것을 모두 없었던 일로 보고 문제삼지 않게 될 것인가.
그 내용을 죽 나열해보는 것이다.
또 반대 경우도 먼저 풀어보자.
거울 속의 상대가 이미 자신이게 엄청난 피해를 당한 상태다. 그리고 눈치를 보니 그 상대가 앞으로 무량하게 그에 상응한 피해를 자신에게 돌려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도 이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중이라고 하자.
이런 일이 자신을 피곤하게 하는데 그런 상태에서 상대가 자신에게 어떻게 해주면 좋겠다고 보고 어떻게 하면 이제 이런 일을 더 반복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는가. 이렇게 문제를 놓고 그 답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거울 속의 상대는 현실 속의 당사자이고 그 상대이기도 한데 문제는 그런 자세를 결코 먼저 취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떻게 거울 속의 상대가 먼저 손을 올리겠는가. 이런 문제와 같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사정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역시 쉽지 않기에 현실 속의 상대도 대부분 이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위 답을 먼저 잘 찾고 거울 속의 상대를 그런 상태로 만드려면 먼저 자신이 이를 상대에게 행해야 그렇게 된다는 사정까지 잘 이해하고 그것을 잘 실천해야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각 경우의 답을 잘 찾아보자.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원하는 내용을 압축하면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 반성하고 자신의 피해를 잘 보상하고 앞으로 그런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그것을 성실히 실천해나갈 것을 바라는 것이다.
더 욕심을 가지면 이런 바탕에서 온 생명을 제한없이 모두 좋고 좋은 상태로 만들어 나갈 서원을 갖고 잘 실천해간다면 더 좋다고 보게 될 것이다.
반대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원하는 내용을 압축하면 그런 불행한 사태가 있었지만, 어쩔 도리없이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된 것임을 잘 이해해주고 자신에 대해 갖는 기대를 자신이 충족시키지 못하고 그런 피해를 준 데에 대해 자신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갖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문제삼지 않고 용서해주고 자신을 포용해주면서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역시 이 경우에도 더 욕심을 가지면 이런 바탕에서 그 상대가 온 생명을 제한없이 모두 좋고 좋은 상태로 만들어 나갈 서원을 갖고 잘 실천해간다면 더 좋다고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과거에 제시했던 참-서-현 참-미-원-용-사라는 축약어가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참회- 서원- 실현 참음 - 미움 -원망의 제거 - 용서 - 사랑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내용보다는 지옥이나 아귀 축생 세계에 끌려 들어가는 상태에서 이를 벗어나려면 이 방면에 전문이신 지장보살님께 의존하게 되는데 지장보살님이 전해주는 다라니 가운데 이들 내용이 역시 잘 제시되고 있다고 본인은 보게 된다.
처음 참포라는 구절이 반복되는데 참이 의미하는 바는 진리- 참회 - 참음 이런 말이라고 여기는 한편 포가 의미하는 바는 포용 - 포시(보시) - 이런 말이라고 시감상하면서 해독에 임하게 되는데 결국 같은 원리로 각 생명이 3 악도를 벗어나게 되기에 이런 시감상에 별 근거는 없지만, 또 적절한 해석이라고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가피 중첩관계에서는 어떤 주체도 이 상반되는 지위를 무량겁에 걸쳐서 또 무량한 측면에서 또 무량한 주체와의 관계에서 이런 가피 중접관계를 중첩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내용을 중첩해서 전방위로 다 적용해서 생사현실에 수행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가해자나 피해자 입장에서 행할 바를 참-서-현 참-미-원-용-사 이런 내용을 제시했는데
자신이 지금 이 순간은 피해를 받은 입장이라고 해서 이 가운데 참-미-원-용-사 이런 내용 한 부분만 취해 상대를 대하면 된다고 간단히 여기면 곤란하다. 넓고 길고 깊게 이 관계를 잘 관찰한다면 그런 입장에서 이런 내용을 다 함께 취해서 동시에 다 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앞에 제시한 방안을 취할 때 자칫 잘못하면 상대가 먼저 앞과 같이 해야 마땅하다고 보는 일정한 행위 예를 들어 상대가 먼저 사과를 해야 그런 조건에서 자신이 용서를 하겠다거나 또 예를 들어 상대가 먼저 자신에 대한 미움을 갖지 않고 용서하고 그것을 문제삼지 않아야 자신이 사과를 하겠다. 이런 식으로 서로 상대가 먼저 일정한 행위를 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는 문제 해결이 잘 안 된다고 그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 입장도 자신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고 상대가 비록 거울 속의 상대는 아니라고 해도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이기에 사실상 거울 속의 상대가 먼저 팔을 올리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성취되지 않는 내용이 된다고 본다.
거울 속의 상대는 바로 자신과 마찬가지인데 자신이 먼저 손을 올려야 거울 속의 상대도 자신이 볼 때 자신의 반대 쪽 손을 올리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원리가 다른 종교의 경전에서는
자신이 다른 이로부터 대우받고 싶은 대로 먼저 자신이 다른 이들을 대하라. 이런 내용으로 제시되는 내용인 것이다.
자신이 고통받고 힘들게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도축장에 끌려가 살해당해서 다른 이의 잔칫날에 식사하는 접시에 올려지고 싶은가.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매 끼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부터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고
또 반대로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존중받고 공경받고 공양도 받으려면 자신부터 다른 이에게 먼저 그렇게 대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이가 먼저 그렇게 하면 그 때 하겠다고 한다면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현실에서 자신을 기준으로 놓고 자신은 늘 다른 생명을 죽여 그 고기도 먹어가면서 맛을 즐기는 역할만 하고
그렇게 죽음을 당하는 생명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런 역할만 맡아서 그렇게 해주기를 자신은 바라겠지만, 그런 내용에 공감하고 동의하는 경우가 과연 있겠는가.
그 내용을 자신이 입장을 바꾸어 놓고 자신이 먼저 그런 내용에 동의한다면 그 상대가 혹시 그럴지 모르지만, 그런 경우는 현실에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퀴즈를 잘 풀고 실천해서 무량겁에 걸쳐 받아나갈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잘 벗어나와야 하는 것이다.
일단 너무 글이 길어져서 쉬기로 한다.
그전에 외어야 할 경 제목을 잘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가끔 기지에서 음악을 듣고 그 제목을 외어서 올리는데 제목을 중간에 잊거나 잘못 적당히 외우면 도저히 찾지 못하게 된다. 곡만 그런 것이 아니고 경전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매번 검색창을 이용해 찾으면 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검색창도 키워드만은 자신이 알아야 찾을 수 있지 않은가 . 토끼 하나만 생각난다. 이러면 과연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제목만이라도 잘 외어야 하는데 제목자체가 15 글자나 되는 것이다.
일단 기회가 아직 남아 있으니 좀 더 노력해 보기로 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laudia Phillips - QUEL SOUCI LA BOETIE.lrc
15글자에 달하는 긴 경전 제목을 외우보려고 하는데
잘 될듯하면서 잘 안 된다.
현재 과거 7 불 게송을 몸 말초부위에 붙여 놓고 이것도 외어보려고 하는데 이 역시 잘 안 된다. 말초 부위를 정하는 이유는 중심부위에서 말초부분까지 그런 부처님의 게송을 통해 지혜광명으로 바꿔 잘 순환이 되면 몸도 좋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발이 일정한 사유로 염증이 생기고 썩어간다면 사실 그런 사정으로 자신도 곧 함께 그런 상태가 된다고 보게 된다.
말초 부위나 모세 혈관이 기능이 문제되면 그로 인해 자신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말초나 모세혈관이 건강하면 또 자신이 자신 신체에서 중심으로 두는 심장이나 뇌나 각 감관의 기능도 또 정상적으로 된다고 보는 것이다.
자신이 심장과 뇌는 좋은데 그러나 말초부위는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은 곧 자신의 심장과 뇌도 그런 상태가 된다는 것을 예고하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늘 잘 걸어다니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 좋은데 그러나 수행자는 또 몇 십년을 결가부좌 상태로 정려 수행에 임해도 그와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도 하므로 이 방안도 같이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 것이다.
부처님이 수행할 때 부처님 머리위에 어떤 새가 집을 짓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부처님이 어느 정도로 부동자세로 있었으면 새가 그렇게 했겠는가.
현실에서 어떤 이가 그렇게 하면 곧바로 각 부분이 마비가 생기거나 염증이 생기고 썩어가게 될 것이라고 보는데 그런데 또 그렇게 되지 않는 방안이 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도 작업을 앉아서 오래 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편으로 듣지만, 그 사정이 결국 그런 자세에서는 몸 안의 각 부분에서 순환이 잘 안되고 문제가 생기기 쉽기에 그렇다고 보는 한편 그런 상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체 각 말초 부분에 부처님 게송을 보관하는 기지를 설치해서 늘 자주 오가면서 살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머리를 비롯해서 5 부위의 말초부분을 찾는데는 쉬었는데 나머지 2 곳이 잘 안 찾아져서 조금 고민을 하게 된다.
가섭 여래님의 게송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게송을 잘 보관해야 하는데 위치가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가섭여래님이 남긴 게송은 다음이다.
...
모든 중생의 성품은 청정하여
본래부터 생겨남이 없고 없어질 수 없네. *
이 몸과 마음은 환술[환幻]으로 생겨난 것이니
환술로 만들어진 것에는 죄와 복이 없다네.
●迦葉佛賢劫第三偈曰
가섭불현겁제삼게왈
一切衆生性淸淨 從本無生無可滅
일체중생성청정 종본무생무가멸
卽此身心是幻生 幻化之中無罪福
즉차신심시환생 환화지중무죄복
석가모니 부처님이 남긴 게송은 경전에 대단히 많다고 보지만, 그 첫 게송에 해당하는 내용은 다음이라고 한다.
별을 보고 깨닫게 되었지만
깨달은 뒤에는 별이 아니네.
사물을 뒤쫓지 않지만
무정(無情)은 아니네.
●
釋迦牟尼佛賢劫第四偈曰
석가모니불현겁제사게왈
因星見悟 悟罷非星
인성견오 오파비성
不逐於物 不是無情
불축어물 불시무정
이들 내용이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라고 보는데 지금 살핀 주제도 이들 내용과 모두 관련이 된다.
본 바탕이 그렇고 본 사정이 그런데 그러나 이런 본 바탕에서 망집을 일으키고 임하면 그러그러한 관게로 얽혀서 생사고통을 무량겁에 걸쳐서 받아나가므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또 그런 상황에서 이를 벗어나려면 이런 게송을 평소 잘 외우고 수행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금처럼 발이 아픈 상태가 되면 곤란하므로 평소에도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말초부위가 엉망이 되면 결국 자신의 수행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갑을 관계를 자주 말하고 갑의 횡포등을 자주 거론하는데 알고보면 모두가 다 장차 성불할 귀중한 존재인 것은 메르스 바이러스부터 메르켈 수상까지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를 잘못 대하면 다 엉망이 되는 것이다.
바이러스 하나를 잘못 대하면 수상도 하루 아침에 잘못 되는 것이다. 갑을 관계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데 을이 고통을 당하면 그로 인해 갑도 고통을 당하는 것이고 알고보면 갑은 갑대로 많은 부담을 안고 그런 일을 해서 을이 잘 살도록 해야 하고 을도 마찬가지로 그런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잘 대해야 하는데
이것이 잘못되면 결국 가피관계의 중첩과 증폭형태로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가장 약한 말초부위나 뇌 혈관이 잘못되면 결국 그 주체는 다 함께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무량겁에 걸쳐서 그러한 형태로 분단생사를 받아가면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 그래서 심각한 문제다.
결국 이런 생사고통에서 벗어날 핵심을 제시하는 게송을 자신의 신체 곳곳에 잘 적어 놓고 시간 날 때마다 잘 관리하고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말초 부분 2 곳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가 문제되는데 의자에 앉아서 작업하면 엉덩이가 일단 아파오는데 오래 몸 무게에 눌려서 그런 것으로 보게 된다.
이 부분도 그래서 중요하다.
그리고 또 한 부분 단전 부위도 중요하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이 단전을 통해서 몸 안까지 모두 골고루 부처님이 지혜광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평소 훈련을 잘 해야 한다고 본다.
조각글이 길게 되었다. 보통은 글이 길어지면 페이지에서 입력자체가 잘 안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자료를 붙여도 별 이상이 없다. 그래서 여러 내용을 가지쳐서 많이 붙여 길게 작성해보았다. 일단 마치기로 한다.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braham_Darby_Eng_1985_IMG_3258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braham_Darby_Eng_1985_IMG_3258.jpg English: Rosa 'Abraham Darby' Author Anna reg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Louvre-peinture-francaise-p1020324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ouvre-peinture-francaise-p1020324.jpg Hubert Robert (1733–1808)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기봉사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Daum 지도
>>> 2015_0924_123322_canon.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lbrecht_Dürer_035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lbrecht_Dürer_035.jpg Albrecht Dürer (1471–1528)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se,_English_Garden,_バラ,_イングリッシュ_ガーデン,_(13169588064)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Bahía_Onelli_Parque_Nacional_Los_Glaciares_Patagonia_Argentina_Luca_Galuzzi_2005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ahía_Onelli_Parque_Nacional_Los_Glaciares_Patagonia_Argentina_Luca_Galuzzi_2005.JPG English: Onelli bay, Los Glaciares national park, Patagonia, Argentina. ● [pt op tr] fr
♡해남 대흥사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
mus0fl--Camille - Le Banquet.lrc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ivan-aivazovsky-the-sunrize-in-feodosiya-1855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Hybrid_Tea_-_Medallion_2_(c)
Rosa 'Medallion' English: Hybrid Tea Rose 'Medallion in the Bush Pasture Park Rose Garden, Salem, Oregon. Author HomeinSalem 출처관련링크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薬師寺回廊
https://en.wikipedia.org/wiki/File:薬師寺回廊.jpg Cloister of Yakushiji, Japan. 薬師寺回廊(奈良市) Author Wikiwikiyarou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청주불교문화대학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
2016_1111_165711_nikon_ab34.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Katsushika-Hokusai-flowers-and-water-lilies-in-the-mangwe-tome
Artist: Katsushika-Hokusai https://en.wikipedia.org/wiki/Hokusai Title : flowers-and-water-lilies-in-the-mangwe-tome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Begonia_'On_Top_Sunset_Shades'_01
English: Begonia 'On Top Sunset Shades' on sale at a garden centre in the English midlands. Author Andy Mabbett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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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Arthur H - Ma Derniere Nuit A New-York City.l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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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laude_Monet,_1870,_Le_port_de_Trouville_(Breakwater_at_Trouville,_Low_Tide),_oil_on_canvas,_54_x_65.7_cm,_Museum_of_Fine_Arts,_Budapest
https://en.wikipedia.org/wiki/File:Claude_Monet,_1870,_Le_port_de_Trouville_(Breakwater_at_Trouville,_Low_Tide),_oil_on_canvas,_54_x_65.7_cm,_Museum_of_Fine_Arts,_Budapest.jpg Claude Monet (1840–1926)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sa_'Abraham_Darby'_Mainau_-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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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ohn Singer Sargent-glacier-streams
Artist: John Singer Sargent https://en.wikipedia.org/wiki/John_Singer_Sargent Title : glacier-streams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Begonia_cardiocarpa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yspiański_Mulch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Wyspiański_Mulchs.jpg Artist Stanisław Wyspiański (1869–1907)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Hoek van Holland Rotterdam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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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an_jose_MRG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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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昌都县强巴林寺 ,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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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Utagawa-Kuniyoshi-suhara.jpg!HD
Artist: Utagawa-Kuniyoshi https://en.wikipedia.org/wiki/Utagawa_Kuniyoshi Title : suhara.jpg!HD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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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erito_Moreno_Glacier_Patagonia_Argentina_Luca_Galuzzi_2005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erito_Moreno_Glacier_Patagonia_Argentina_Luca_Galuzzi_2005.JPG English: Perito Moreno Glacier, in Los Glaciares National Park, southern Argentina ● [pt op tr] fr
♥Tauragės 리투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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