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t op tr]
▼mus0fl--Jacques Dutronc - L'hotesse De L'air.lrc
♥ 잡담 ♥증상의요
일전에 대반야바라밀다경 수치지품에서 초지에서 닦아야 할 내용이 나와서 일단 그것만이라도 외어보자고
첫글자를 떼어 외어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말이 잘 안 만들어진다.
증평보친법출수유만어 이런 문장이 나타나게되는데 이런 현상은 본인 책임이 아니다.
위 문장을 아무리 외어보아도 문상가는 영구처럼 될 뿐 나중에 큰 도움이 안 된다.
여기서 문상가는 영구란, 문상가서 할 말을 누가 적어줘서 열심히 외우고 가는데 중간에 누가 말을 걸면 그에 답하다가 잊어버리고 나서 그 내용을 꺼낼 방안이 없어서 이후 꺼내서 사용하지 못한다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첫글자를 떼어 외울 때 4-3 조 3-3-7 조 이런 식으로 리듬에 맞춰 떼네기도 하는데 10 단위로 끊어 외우는 것이 좋다고 본다. 왜냐하면 사람은 손가락이 10 개이고 10 진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자신이 곤충으로 살아갈 것이 예상된다면 6 진법 사용을 예상해서 6 개로 끊어도 되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 진법으로 15 은 얼마인가. 6*1 +5 = 11
7 진법으로 15 은 얼마인가. 7*1 +5 = 12
10 진법으로 11 은 3 진법으로 얼마인가. = 102 1*9 + 0*3 + 2
이렇게 된다고 보는데 자리수가 갖는 의미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현실은 손가락이 10 개인 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10 진법을 현실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보기에 나중에 19 번째는 무엇인가라고 문제가 제기될 때 일일히 손가락을 동원해서 세어가면서 찾아내지 않고 위와 같은 7 진법 체계를 10 진법으로 변환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으려면 평소부터 10 진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같이 증평보친법출수유만어라고 외우다가 만심은 몇번째 항목인가가 문제되면 9 번째라는 것이 바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한번에 10개를 외우도 평소 증평보-친법-출수유-만어의 위치를 잘 잡고 위치만으로 바로 몇번째인가가 바로 나올 수 있게 연습해야 한다. 평소 연습을 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영구 문상가기 위해 내용 외우는 것처럼 되지 않으려면 위 내용이 무엇에 대한 내용인가를 붙여서 외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10 단위로 내용을 묶되 그 내용을 꺼낼 내용 즉 그 내용의 제목을 같이 붙여서 외우지 않으면 위 내용을 외어도 막상 도움이 안 된다고 보게 된다.
다 붙이려면 대반야 2분 - 18수치지품- 초지- 증평보~친법~출수유~만어 이렇게 붙여서 외워야 한다고 보는데
이 자체가 서로 각 부분이 자연스런 말이 안 되고 자연스런 말이 안 되면 연상이 되지 않기에 결국 위 내용을 꺼내 사용해야 할 때 꺼내지지 않는 내용이 되기 쉽다.
첫글자를 떼었는데 자체로 자연스럽게 말이 되면 다행이지만, 안된다면 자연스러운 말이 되게 하려고 비슷한 말을 찾아보지만, 그러나 위 내용을 임의로 고칠 도리도 없다.
이런 경우는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하면 일단 무조건 외우기 방식이 필요하다.
천자문을 처음 만나 외운다거나 영어 알파벳이나 단어를 처음 대해 외운다거나 이런 경우와 상황이 비슷하다.
플라워가 꽃이라고 영국사람들이 말한단다. 이해한다를 언더스탠드라고 미국사람들이 말한단다. 그런데 왜 그럴까. 이런 것을 단어외울 때 생각하면 말을 잘 배우지 못하고 사용하지 못한다고 보게 되듯 일정한 기본단어는 무조건 외워질 때까지 반복해서 외우는 도리 밖에는 없다.
그런데 위 문장도 상황이 비슷하다. 그런데 자꾸 반복하다보면
어떤 지명의 보가 있는 것 같고 그 보와 관련된 무슨 법이 있다고도 하고 산모가 수유하는데 수유량이 많다. 이런 말처럼도 생각되는데 큰 도움이 안 되지만, 이런 단어를 가지고 자신 나름대로 엉뚱한 이야기라도 만들어내면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중에 떠듬떠듬 기억해 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아예 이 내용들이 왜 이런 순서로 나열되었는가 그 연유까지 이해하면 또 도움이 될 수 있다.
9 곱하기 7 을 구구단으로 외우지 못해도 이것이 9 를 7 번 더한 값이라는 사정을 이해하면 그렇게 해보면 답이 63 이라고 알아내는 것과 같다. 다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위 내용도 잘 살펴보면 그런 식으로 배열한 사정도 자신이 이해하면 또 도움이 된다.
초지의 첫 부분에 해당하는 증은 여기서 무엇인가.
증상의요란 말을 나타낸다. 이것도 생각하면 어려운 표현이다.
증상은 병증상이 아니고 위로 증가한다. => 뛰어나다. 뚜렷하다. 수승하다. 이런 의미다.
의요는 오늘날 말로 하면 의욕 이런 표현과 같다고 본다.
그래서 증상의요는 뛰어나고 수승한 뜻에 대한 의욕 이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각 주체가 갖게 되는 희망이 하나같이 쓸데없고 그 자신을 번뇌에 묶여 사역을 받게 하고 또 다른 생명도 그처럼 묶어 사역을 받게 하면서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의 고통을 받아나가게 하는 희망인 것이어서 무원 무작 삼매 해탈 수행을 통해 하나같이 남김없이 제거해야 할 내용이라고 한다면
그런 바탕에서 집착을 갖지 않고 상을 취하지 않고 얻을 것이 없음(무소득)을 방편으로 생사고통을 받는 무량한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끔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고자 하는 골격으로 일으킨 서원을 중심으로 처음 그와 관련된 수행에 대해 의욕을 갖고 아침에 일어나면 의욕이 충만하고 저녁에 잠에 들 때면 보람이 충만하고 그런 상태로 계속 임해나가야 한다 그런 의미로 보게 된다 .
그 다음은 무엇인가.
평?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ichel Fugain - Dans 100 ans peut-être.lrc
현재 발이 아파서 동작이 불편해 부목을 집고 소신공양도 옥상기지가 아닌 가까운 기지에 가서 행하는 상태인데 오늘 꿈에서 이상한 꿈을 꾸었다.
등산을 하는데 어떤 할머니가 왼쪽 발이 아프다고 하면서 왼쪽 발이 아프지 않은가 한다. 그런데 본인은 오른쪽 발이 아파서 오른쪽 발이 아프다고 답했는데 자꾸 왼쪽 발이 아프다고 한다. 그런데 또 꿈 속에서 어떤 할머니가 병실에 누어서 방광에서 고무줄을 빼내야 한다고 한다. 그런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오늘 다리가 아파서 누어서 조금 쉬다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꿈 내용대로 안 아픈 쪽 다리에 갑자기 경련이 일어나서 또 한참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꿈에서 본 할머니가 떠오른다.
경련은 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데 그런데 이런 경련이 심장에서 일어나면 그것이 심장마비가 아닐까 생각하게도 된다.
여하튼 상당히 불편하다.
위에서 초지에서 수행자가 닦아야 할 내용을 제시했는데 요즘 계속해서 반야부 경전이 반복해 뽑히고 있다.
음악을 뽑아낼 때도 비록 올리지는 않지만, 참고할 경전이 계속 뽑혀 나오게 하고 있는데 이런 경전들도 반야부경전이 유독 많이 뽑히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랜덤추출이 본래 공평한 것은 아니라고 보게 된다. 반야부 경전은 경전 하나가 차지하는 분량은 상대적으로 대단히 많은데도 평소 잘 뽑히지 않고 대신 경전 분량이 적은 경전들이 오히려 자주 뽑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야부경전이 내용은 엇비슷하면서 여러 이본들이 있다고 해도 랜덤추출과정에서 뽑혀 나올 확률을 놓고 생각하면 또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공평한 것은 아니라고 보게 된다.
600 권 대반야경전이 딱 한 항목으로 들어가서 10 페이지로 된 수많은 경전들과 같은 비중으로 뽑혀 나오는 것이니 알고보면 불공평하다고 할만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조금씩 살펴나가는 것은 이나마라도 하루에 살피면 그래도 전혀 살피지 않는 것보다는 좀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핵심을 추려 외어 보려고 하는 것은 일단 읽었으면 페이지를 닫고 나서라도 무엇을 읽었는가는 어느 정도 생각이 나야 읽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이다.
물론 일반인 입장에서는 경전을 대해 읽는 것 자체가 드물고 또 읽었다해도 그 당시 내용을 이해하면 그 뿐이라고 보지만,
수행전문가를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그러면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안 읽는다면 또 모르지만, 읽었다면 그 내용이 한 단어로 하면 무언가
또 한 문장으로 줄이면 무엇인가. 이런 입장에서 이 내용을 다시 정리해 잘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읽었는데 자신이 위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상태면 알고보면 처음부터 안 읽은 것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방광반야경 문출연품을 대해서 한 번 읽는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도 또 영구 문상가는 형태가 되지 않으려면 그 내용을 그렇게 압축해서 외운다해도 그것이 어느 경전 어느 부분에서 자신이 대했던 내용인가가 전혀 이후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비슷한 상태가 된다.
내용을 펼쳐 대하면 그 상황에서는 이해되는데 그러나 덮으면 그 뒤로는 그 내용을 꺼내 줄 방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위 내용을 한 단어로 줄이면 무언가?
문출연품이다. 이렇게 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제목이 갖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출연품은 어떤 경전에 몇번째 들어 있는 내용인가.
그리고 문출연품의 내용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무엇인가.
이 부분은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또 살펴보아야 한다.
이 부분은 사실은 수행전문가를 지향하는 입장에서만 주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대할 내용이지만, 그런데 일반인이 어떤 책을 보던 그 상황은 마찬가지다.
열심히 읽었는데 그 내용이 무언지 모른다. 또는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닌데 이것 저것 하도 많이 대해서 정작 핵심이 무언지 모르겠다.
지금 곡을 뽑는 가운데서도 또 금강반야바라밀경론이 뽑혀 나오는데 그간 조각글을 써온 입장에서는 이처럼 계속해서 반야부 경전과 논서가 뽑혀 나오는 것이 상당히 특이하다.
쉬면서 오늘 올려진 부분에서 핵심부분을 뽑았는데 사실 대부분 내용이 중요하다고 보는 가운데 뽑아내다보면 거의 대부분을 뽑아내게 되기 쉽다.
그런데 핵심을 추리다 보면 또 어쩔 도리가 없다.
오늘 살핀 부분을 한 문장으로 줄여서 제시하라면 대법원에서 판결문을 작성시 사용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고 보게 된다.
내용이 7 페이지던 9 페이지가 되던 여하튼 한 문장으로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뽑아 위에 붙였는데 그런데 뽑힌 노래를 부르는 BARBARA 형은 서양 논리학 학계에서는 나름대로 상당히 유명한 여인이다. 그런데 이 BARBARA 양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전체 문장의 골격을 구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전 조각글에서 대반야바라밀경 2 분 수치지품을 살필 때도 그런 내용을 제시했는데 그 때는 너무 몸 상태가 피로하고 그런 내용을 이전에도 많이 반복해 살폈기에 생략하고 넘어 왔는데
반야부경전을 잘 이해하려면 그런 형태로 내용이 반복해 제시되는 그 사정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오늘 살피는 부분도 알고보면 그런 골격과 사정이 마찬가지임을 보게 된다.
처음 이렇게 문제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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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衍: 수레, 乘)은 어느 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마땅히 어느 곳에 머무는 것인가
>>>
여기서 연이라고 표시되는 것은 결국 수행자가 자신이 번뇌를 제거하고 생사를 벗어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온 생명을 제한없이 생사를 벗어나게 해서 제도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 생사현실 안에서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것을 목표로 수행한다고 할 때 이를 대승[큰 수레]라고 표현하게 되는데 그와 관련된 표현이다.
자신만 생사 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면 된다고 하고 그것을 수행목표로 하여 수행하는 경우는 혼자만 타고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수레를 타고 가는 것이라고 하여 소승이라고 표현하는데 반해
앞과 같은 입장에서 수행하는 것은 이에 대비해서 대승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 표현안에 수레를 의미하는 범어 야나[yāna]을 음역한 연(衍)이란 표현이 들어 있는 것이고 여기서는 그런 수레가 어디에서 나오고 그 수레를 타고 수행하면 그 수레는 최종적으로 어디에 도착해 어떻게 머물게 되는가. 이런 내용을 놓고 문제를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적 답을 부처님께서 아래에 요약해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사정을 보면 이런 여러 문장을 도저히 한 문장을 줄이기 힘들다고 보는데 그래도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위에서 머무는 것인가. 이렇게 마침표 붙인 부분에서 마침표를 떼어 내고 머무는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바꾸고 쉼표를 붙이면서 계속 문장을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하 아래 부분도 마찬가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알고 보면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법관들이 판결문을 작성할 때 이렇게 긴 문장을 하나로 표현하는 것은 왜 일까. 본인이 혼자 그 연유를 생각해본다면 문장이 길다 보면 여러 종이에 그 판결문을 나눠 작성할 수 있는데 그것이 이해관계자 각 입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중간에 한 페이지 분량의 문장이나 중간 부분에 유리한 구절을 자신에 유리하게 넣어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하면
법관이 그 사정을 모르겠는가만, 그러나 법관도 사람인지라, 세월이 오래되고 소송 사건이 일주일만 놓고 몇 백건 씩 쌓이다 보면 오락가락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매번 다시 또 재판하고 그럴 수는 없다고 보기에 한번 재판을 마치면 더 이상 다시 문제삼을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래서 아무리 길어도 한 문장으로만 판결문을 작성하고 그리고 그 사이에 이상한 구절을 넣지 못하도록 계속 이어지게 표현해 나간 것은 혹시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놓고 살필 때 헌법 전문은 몇 문장으로 되어 있는가. 이런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어는 -- 동사는 -- 이렇게 놓고 찾다보면 문장 골격 자체는 간단한데 그 골격 주변에 살이 대단히 많이 붙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1 문장으로 제시하라는 취지는 그런 입장이 아니다. 온갖 내용을 다 나열해서 길게 나열해 기억하기 힘드니, 핵심이 되는 부분을 추려 평소 잘 외우고 또 평소 잘 꺼내서 생활에 실천하자. 이런 입장인 것이다.
그러니 재판관이 행하는 그런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여하튼 앞에 일단 추려 놓은 내용을 놓고 또 핵심 골격이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위 질문에 대한 부처님 답이 다음인 것이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3계를 나와서
살운야(薩云若: 일체지)를 따라서 머무니
의지함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하연(摩訶衍: 대승)과 살운야(薩云若:일체지)라는 이 법은
함께 평등하기 때문이다.
또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고,
또한 형상도 없고 견해도 없고,
또한 한 가지 모양[1상一相]에도
걸림이 없는 것이다.
한 가지 모양이란
이른바 모양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모양이 없는 법[무상법無相法]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한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수보리여,
만약 무상법(無相法)을 출현하게 한다면
법성도 또한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
내외공의 일에서부터 유무공에 이르기까지는
스스로 공하며
또한 3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살운야(薩云若:일체지)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이다.
>>>
수보리여,
이름은 공한 것이고,
나아가
시설된 가르침과
법과 행도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름의 공함도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수보리여,
마하연은 3계로부터 나와서
움직임이 없는 곳인 살운야(薩云若:일체지)에 머무는 것이다.
>>>
마하연은 머무는 곳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법도 또한 머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하연이 머무는 것은 머묾이 없음과 같다.
>>>
법성의 모습 자체가 스스로 공하며
나아가 무소유(無所有)이고,
무소유 또한 스스로 공하기 때문이다.
>>>
수보리는
누가 마하연을 출생시키는가를 물었다.
마하연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나오는 것과
마하연이 마땅히 나오는 것은
또한 없는 것이며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법 또한 볼 수 없는 것인데
어느 곳으로부터 법이 나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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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떤 것이 생하지 않는 것이며,
볼 수 없는 것인가?
법성은 생하지 않으며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성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볼 수 없다는 그 소견도
볼 수 없는 것이다.
>>>
여기까지 내용을 살피면 결국 문제삼는 일체의 내용 그리고 수행자가 수행하고 수행목표로 세우는 내용 일체가 다 함께 무소유이고 불가득이고 무상임을 제시하고 있다.
참고로 여기서 무소유란 표현은 문제삼는 무언가를 놓고 이는 실답지 않다고 보는 꿈과는 달리, 무언가 진짜라고 할 실다운 무언가가 있는가. 이런 입장에서 살필 때 진짜라고 할 영원하고 불변하고 고정된 그런 내용은 없음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진짜가 있는가 여부를 놓고 살필 때 왜 진짜를 그런 성품을 갖는 어떤 것으로 몽타쥬를 그려 놓고 찾아나서는가는
꿈이 바로 그런 성품을 갖지 못하는 내용이기에 실답지 않다고 보는 것이므로 현실에서 실답고 진짜라고 할 내용이 있는가가 문제될 때는 꿈과는 반대로 꿈과는 다른 그런 성품을 갖는 것이 있는가를 놓고 그런 내용을 일단 몽타쥬로 그려 놓고 찾아나서게 되는 사정이 있다.
그런데 몽타쥬는 그렇게 관념영역에서 그려 놓고 찾지만, 그런 몽타쥬에 해당하는 것은 '있지 않다'는 것이 무소유란 표현이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저는 소유한 물건이 없고 재산이 없습니다. 이런 표현도 무소유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경전에서는 앞과 같은 측면에서 무언가 진짜라고 할 내용을 찾을 때 그에 해당하는 그런 것은 '있는 바가 없다'란 의미로 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은 없다고 해야 하는데 그러나 그런 진짜는 없더라도 다시 본 바탕인 영역이나 각 영역의 상태는 또 무엇인가가 다시 문제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본 바탕은 무언가가 문제되면 현실에서 각 내용을 일정한 관계에서 화합해 얻고 문제삼게 되는 주체의 입장에서는 문제삼는 그 내용을 직접 얻을 수 없기에 그것을 불가득이고 또 그런 사정으로 그런 내용을 공하다라고 또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정을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가지고 설명하면 다음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누군가 아주 특이한 맛의 커피나 차를 마시고 난 다음 다른 이에게 그 커피의 맛을 설명하고자 한다고 가정해보자.
아주 특이하고 이상한 맛의 커피다.
이렇게 설명한다고 할 때 이 표현이 과연 그 커피맛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거나 표현한 것이겠는가.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물론 일반 커피 기계에서 뽑아 마시는 커피 맛을 대부분 알고 있는 상태라면 위 표현이 적어도 그런 커피 맛은 아님을 나타낸 것임은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데 정작 위 표현으로 어떤 맛을 놓고 그렇게 표현한 것인가는 직접 그 커피맛을 보기 전까지는 잘 모른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커피를 마실 때 어떤 이가 어떤 맛을 전혀 못 느끼는 것은 또 아닌 것이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보자.
옆에 사물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있고 또 그 옆에는 소리를 못 듣는 이가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소리를 잘 듣는 장님이 소리를 못 듣는 이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곡을 글로 그 내용을 설명한다고 해보자.
그러니 사물을 잘 보지만, 소리를 못 듣는 분이 궁금한 것이다. 이 분이 지금 무엇을 놓고 무엇이라고 설명하는가.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받는 분이 장님에게 그 그림의 아름다운 색채와 형태를 놓고 말로 설명을 하는 것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그림의 색을 장님에게 설명하려고 하거나 어떤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을 소리를 못 듣는 분에게 설명하려고 할 때 아무리 언어로 표현해도 그 당사자가 전해주고자 하는 내용은 끝내 얻지 못하면서 그것이 무언가 대충 그런 것이라는 내용만 전하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장님의 입장에서는 어떤 이가 그 설명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그 색을 그 상태에서는 끝내 못 얻는다고 보지만,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그런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 한편, 장님이 그 상태에서 평소 얻게 되는 그 일체의 내용이나, 앞과 같은 설명은 일단 적어도 앞에서 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그 그림이 갖는 색이나 형태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또 알고보면 그런 그림의 색깔이나 형태도 앞에서 처음 문제삼은 내용으로서 진짜라고 할 내용은 또 아닌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처럼 비유로 든 상황에서는 그래도 어떤 주체는 문제삼는 커피 맛도 보고 그림 색깔도 보고 어떤 음악의 소리도 듣는다고 보게 되지만,
그러나 지금 문제삼는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은 또 사정이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실재가 무언가의 문제는 어떤 주체가 현실에서 내용을 얻을 때 그런 내용을 자신이 그런 조건 상황에서 예를 들어 눈을 떠서 그렇게 얻지만, 그 내용은 그런 조건에서 얻는 내용인 것 뿐이어서 꿈과 그 성격이 같은 것인데 자신과의 그런 관계를 떠난다면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 영역은 과연 아무 것도 없는가. 그렇지 않고 무언가가 있다면 무엇이겠는가. 이런 문제를 놓고 따지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처럼 본 바탕이 되는 실재가 무언가를 살피는 문제는
현실에서 얻는 내용들이 과연 실다운가 아닌가를 살피고 다시 그런 현실 내용을 놓고 집착을 갖고 대할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살필 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는 침대에 누어 자면서 꾼 꿈을 놓고 그 내용이 아무리 생생하다해도 그 내용이 실다운가 아닌가를 놓고 살필 때와 성격이 같다.
그 꿈은 그렇게 잘 때만 그런 내용을 얻고 께어서 침대를 살펴보면 그 내용이나 그에 해당한 내용이 그렇게 얻어지지 않고 찾아지지도 않기 때문에
설령 그렇게 생생하게 꿈을 꾸었더라도 바로 그런 사정을 바탕으로 그 꿈은 실답지 않고 집착을 갖고 대할 내용이 아님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눈을 뜨면 이런 모습을 보고 귀로는 이런 소리를 듣고 다양한 내용을 얻는데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것임을 관함으로써 그 내용들이 현실에서는 대단히 생생하고 진짜처럼 여겨지지만, 그러나 알고보면 꿈과 같이 실답지 않다는 성격을 갖는 것이고,
따라서 이런 사정을 이해함으로써 그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게 되고 또 그처럼 집착을 제거한 바탕해서 수행으로 전환해 임할 때 그로 인해 생사현실에서 3 악도에서 생사고통을 묶여 받아나가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됨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골격에서 본 바탕인 실재가 무언가를 잘 이해하는 것이 수행자에게 요구되고 또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입장에서 본 바탕인 실재가 무언가를 살피면
결국 참되고 진짜라고 할 내용은 있지 않고[무아, 무자성, 승의무자성, 무소유] 그런 가운데 그런 본 바탕은 전혀 아무것도 없다고 할 바는 아닌데
그러나 앞과 같은 조건과 상황에서만 어떤 내용을 얻게 되고 문제삼는 주체로서는 끝내 그 내용을 얻을 수 없고 [ 불가득 ]
그리고 또 관념영역에서 일으켜 행하는 온갖 2 분법상의 관념분별 예를 들어 그것은 a가 있다,. 없다 .-이다 -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좋다 나쁘다. 등등의 2 분법상의 언설 분별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불2법]이라고 하게 되고
그런 사정을 나타내기 위해 본래 현실에서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보는 공이란 표현을 시설해서 그 사정을 그렇게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실상이 공하다는 표현은 이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은 그런 본 바탕인 실재나 실상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고
또 본 바탕은 아무 내용도 '없다'는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얻는 그 어떤 분별로 분별하게 되는 내용은 적어도 아닌 그런 어떤 무엇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생사고통에 묶여 생사고통을 받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그런 각 내용을 생생하게 얻고 문제삼지만, 그러나 그것은 침대에 누어 꾸는 꿈과 성격이 같아서 그 주체가 그런 조건과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일 뿐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내용이 알고보면 침대에서 꾼 바다나 황금꿈과 그 성격이 같아서 실답지 않고 따라서 집착을 갖고 대할 성격의 내용이 아님을 제시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본 바탕인 실재는 비록 실답고 참된 어떤 것이 있는 그 무엇은 아니고 [무아, 무자성, 무소유] 실다운 것이 아닌 것은 다른 영역의 내용과 마찬가지이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문제삼는 내용을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기에 바로 그런 측면에서 현실에서 문제삼는 온갖 생사고통이나 더러움을 떠난 그 무엇이고 그런 측면에서 본 바탕인 실재는 현실의 그런 문제와 상대적으로 놓고 볼 때 극히 청정하고 그런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 니르바나의 상태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 일체는 모두 이런 본 바탕을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이므로 또 현실에서 얻는 그 일체는 그 본 바탕의 측면이 그와 같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마치 꿈에서 바다나 황금을 비롯해서 온갖 내용의 꿈을 꾸었다고 할 때 그것은 침대가 있는 현실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인 것이어서 아무리 그 꿈이 생생해도 그것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고 하는 한편
그러나 한편 그 모든 꿈의 내용은 그 일체가 모두 침대가 놓인 그런 방에서 누어 자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얻은 것이라는 점을 또 제시한다.
그래서 그런 본 바탕의 사정을 지금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본 바탕이 무언가가 문제될 때
처음 살핀 문제 즉 참되고 진짜라고 할 것이 있는가의 문제에서 어떤 내용이 꿈처럼 어떤 조건과 관계에서만 얻게 되는 내용이 아니고 어느 경우에도 영원하고 고정되고 불변한 어떤 것이 있다고 한다면
앞과 같이 본 바탕이 무언가가 문제될 때 그런 진짜에 해당하는 내용을 찾아 떡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기에 무아 무자성이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본 바탕인 실재가 무언가라는 문제에서는 앞과 같은 사정으로 그런 진짜에 해당하는 내용은 비록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전혀 없다고 할 바는 아니고 또 그 사정이 앞과 같기에 그것을 공하다라는 표현으로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하다라는 표현에는 비록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무아 무자성이란 내용이 전제가 되어 있고 포함이 되어 있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아나 자성에 해당하는 진짜의 내용을 제시하면 되고 또 공하다라고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정이 그런데 그런 본 바탕의 사정을 놓고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또 한편으로 제시하게 된다는 부분이다.
BARBARA 양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보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앞 내용을 바탕으로 놓고 생각하면 본 바탕의 사정이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 현실은 그런 바탕이고 또 사정이 그렇기에 그렇다라고만 제시하고 그쳐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즉 본 바탕이 그렇게 오고감도 없고 생멸도 없고 그렇다고 하니 그런 본 바탕에서 얻는 현실 내용도 그렇다거나 그런 줄 알고 지내면 된다 이렇게 끝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나 본 바탕의 내용과는 표현상 모순되고 어긋난다고 보는 그런 내용을 다시 또 이어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각 내용이 표현상 서로 모순된다고 여기는 가운데 이 부분을 혼동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쉽다.
그런데 그 사정을 꿈을 놓고 다시 이해하면 쉽다. 꿈을 침대에 누어 꿀 때 침대에서는 바다나 황금이 없는데 그러나 사정이 그런 가운데에서 꿈에서는 그런 바다나 황금 꿈을 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는 본 바탕에서 다양한 내용을 얻는 현실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전 조각글에서도 제시했지만, 이런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기에, 현실내용에 집착을 갖고 업을 행해 나가면 곤란하다고 제시하지만,
그러나 현실은 꿈과 그런 성격이 같을 뿐 정작 꿈은 아니기에
그런 본 바탕에서 얻게 되는 실답지 않는 현실 내용을 놓고 그것이 실답지 않다는 내용만 제시하고 방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 문제삼는 일체의 생사고통은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고 실답지 않지만, 각 주체가 이런 내용으로 무량겁에 걸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아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다.
그래서 반대로 이런 영역에서 그런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편으론 그런 내용이 하나같이 그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는 실답지 않은 것임을 잘 관하고 집착을 제거하는 한편,
다시 그런 바탕에서 그런 생사현실 영역 안에서도 그런 생사고통에 묶이지 않고 벗어나오고 그런 생사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수행으로 전환해 잘 임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처음 살핀 대승이 어떤 바탕에서 그것이 나오고 그런 가운데 어디에 머물게 되는가 그 종착점과 수행목표점이 어떤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다.
선명칭길상왕여래님이 계신 가까운 기지에서 쉬게 되는데 원래 담배로 소신공양을 올리는 것을 주변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평소 잘 이용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쉬면서 질병 치유와 업의 장애 제거 그리고 수행자가 수행함에 있어서 절실한 물자 해결 등등이 전문이신 선명칭길상왕여래님께
본인의 사정을 제시하고 부탁을 드릴까 잠시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러나 수행전문가의 입장에서는 이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선명칭길상왕여래님은 그 명칭만 진심으로 념하면 중생들이 만나는 질병이나 감각의 장애, 업의 장애, 물적 빈곤문제, 형벌이나 소송으로 인한 문제, 맹수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문제 해결을 통해 중생을 보리를 얻게 해주시는 부처님인데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그런 사정으로 선명칭길상왕여래님의 명호를 념하고 수행에 들어가면 되지만
수행전문가를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이와는 달리 선명칭길상왕여래님이 어떻게 그런 중생의 문제를 잘 해결해주시고 또 그런 방편을 통해서 다시 그런 중생을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해주시게 되는가 이런 측면에서 이를 관하면서 수행에 잘 임해야 한다.
그런데 그 중간 입장에서는 수행자 자신부터 그런 문제에 부딪혀 S. O. S를 외쳐야 할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나 이런 경우 수행전문가를 지향하는 수행자 입장에서는 반야심경 첫째 두째 줄에 제시되는 그런 내용처럼 원칙적인 수행방안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고 임해야 하고 일반 중생과 같은 입장에서 이를 극복하려고 임하는 것은 조금 곤란하다.
비유하면 어떤 의사가 큰 병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에서 치료받기 싫어하는 어린 아이에게 어린 아이가 집착하는 장난감이나 딱지 구슬 등을 제공하면서 치료를 잘 해줄 때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어른이 자신도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렇게 임하면 곤란한 것과 같다.
그래서 수행전문가 입장에서는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하더라도 자신은 이와는 달리 그 반대입장에서 늘 그 문제를 대하고 수행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자신도 그런 여러 문제에 부딪히고 빠지는 것은 현실 아닌가.
그런 가운데 노래를 듣다 보니 죽을 때까지 잘 놀고 바꾸지는 말고 잘 고치면서 임하라는 그런 메세지를 듣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번 조각글에서
온 생명을 제한없이 생사를 다함께 벗어나게 하는 대승의 수행과 그런 수행으로 수행자가 어떤 상태에 이르러 어떻게 머물게 되는가 이런 부분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무소유 공 무상 이런 내용과 함께 일체지를 관련시켜 제시하는 내용을 대하는데 그 내용을 잘 이해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표현을 잘 보면, 무소유란 표현에는 무라는 표현이 명확하게 들어가 있다. 그런데 공이란 표현은 유와 무를 다 함께 떠난다는 의미이기에 이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
법성의 모습 자체가 스스로 공하며
나아가 무소유(無所有)이고,
무소유 또한 스스로 공하기 때문이다.
...
위 부분에서 무소유 또한 스스로 공하다 이런 표현은 무슨 의미인가를 먼저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보았듯 본래 모든 존재의 본 바탕의 성품이 무언가를 관하는 입장에서는 실답지 않은 꿈과는 그 성격이 달라서 진짜라고 할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어떤 것이 '없음'을 관하고 또 본 바탕이 실재는 그 내용이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그 실재 내용을 어떤 주체가 끝내 얻을 수 없고 유무 생멸을 모두 떠나 공하다라고 관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 참된 진짜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문제를 판단할 때 그런 것은 없다라고 무아, 무자성, 이런 형태로 무라고 단정지어 표현을 일단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사정은 원래 그런 내용을 시설해서 몽타쥬로 그려 놓고 그런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 현실안이나 그런 현실을 얻는 본 바탕이나 그 어디에서건 그런 내용이 있나 없나를 찾는 작업이 바로 그 관념 영역에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영역을 대상으로 놓고 그런 판단을 하지만, 그 판단자체는 바로 관념영역에서 하기에 무라고 표현해 제시하는 사정이 있다.
그런데 그런 표현이 가리키는 본 바탕의 영역을 놓고 이해하면 그런 분별 역시 그런 언설 분별을 떠난다는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무소유 또한 스스로 공하다라는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알고보면 뒤에서 다시 제시하듯
이런 본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부처님이 제시하는 온갖 시설이나 언설이 또 그 사정이 그렇다고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또 무상이란 무언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를 과거에 그림을 통해 설명을 행한 바가 있는데 비슷한 그림이 찾아지는가 일단 올려 놓고 살피기로 한다.
[img2-9]
08pfl--image/8식-9.jpg
대강 위 그림을 놓고 살피자. 그림 보다는 설명을 잘 해야 할 부분으로 본다.
현실에서 상이라고 하는 표현에는 A 상, B 상(相) 이런 식으로 명칭을 붙여서 나타내게 된다.
평소 생활에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아상(相)이고 영희나 철수라고 보는 모습이 있다면 그것이 영희상(相) 철수상(相)인 것이다.
현실에서 일반인이나 수행자나 대부분 비슷하게 현실의 어떤 부분이 무엇이라고 여기면서[상想] 그것을 대해 나가는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상 앞에는 온갖 명칭을 붙여서 나열할 수 있고 이것이 생사고통을 받는 근본 바탕이 되기에 문제라고 보는데
문제는 그 가운데 한 주체가 일으키는 모든 집착의 근본이 되는 부분이 또 따로 있다.
어떤 이가 삶에서 온갖 문제를 놓고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고 할 때 알고보면 그 모든 번뇌와 생사고통은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그런 부분을 놓고 그와 관련해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설령 그런 부분이 무엇이라고 여긴다해도 별로 문제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연필을 놓고 연필상(相)을 일으켜 취하고 머물고 무엇을 행한다해도
그 연필이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거나 자신이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는 경우는 별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연필이 이상한 사정으로 자신의 생사와 바로 관련이 된다거나 그 연필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자신의 재산 수천억원이 오가는 사정이 있으면 이제 그것이 자신이 집착하는 그런 부분과 관련되기에 그것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온갖 상 가운데 수행자가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제거해야 할 부분이 바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相)인 것인데
쉬운 말로 표현하면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놓고 그것이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 그런 자세
그리고 자신은 다른 생명과 달리 인간이라고 여기는 자세
그리고 생명에 대한 상 그리고 자신의 생명이 유지되는 기간을 놓고 목숨에 대한 생각을 갖고 그런 내용을 대하는 자세 등이
이후 그 주체가 온갖 세상이 것을 놓고 망상분별과 집착을 일으켜 대하면서 생사고통을 증폭해 받아나가는 상태로 묶이는 근본원인이기에 문제가 된다.
[img2-9] 08pfl--image/8식-9.jpg
그래서 다시 위 그림을 본다면
눈으로 떠서 얻는 내용 일체를 1! 라고 표현하고 나머지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은 그것대로 2!,3!,4!,5! 라고 표시해 놓은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내용을 각 주체가 얻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지만, 현실에서 각 주체가 이런 내용을 얻는 것이고
무상이라는 것은 어떤 주체가 이것을 얻지 못하고 이런 내용이 현실에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제는 다음이다. 시각을 기준으로 놓고 생각해보자.
자신이 눈(목目)을 뜨고 나무(목木)를 본다면 자신이 어떤 부분을 묶고 나누어서 그 부분이 나무라고 생각하고 여기면서(상想)
그 부분을 그런 나무라고 붙잡고 나무상(相)을 일으켜 그 부분을 그렇게 취하고 머물고 그렇게 대하는 현상이 있다.
나머지 것도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상황이 문제가 되면 이것은 목상(相)이라고 할 만하다.
그 상황이 위 그림에서 1!과 그런 부분을 놓고 각 부분이 무엇이라고 관념분별을 행하는 6@ 부분의 관계로 표시되고 있다.
위 그림에서 a! 라고 표시한 부분을 놓고 그 부분이 바로 영희라거나 철수라거나 또는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면
바로 그런 주체는 그런 a! 란 부분을 그처럼 나누고 묶어 놓고 그런 부분에 대해 a@ 라는 관념분별(영희나 철수, 또는 자기자신)로서 상(想)을 일으킨 가운데
대하는 것이어서
결국 이는 그런 부분을 묶고 나누어 그처럼 대하는 자세로서 그런 상(相)을 일으키고
그런 상(相)을 취하고
그런 상(相)에 머물고
그런 상(相)에 바탕해 행해 나가는 문제 상태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 사정은 또 본 바탕이라고 할 실상 또는 실재 진여를 바탕으로 해서 그렇게 얻고 그렇게 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 사정을 현실에서 눈(목目)을 뜨고 나무(목木)부분을 보고 또 마음(심心) 한편에서 그 부분이 나무라고 생각하는 상태이기에
이 관계를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 의 관계로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한자어를 잘 취해서 보면 이 상황을 잘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자어에서도 자신이 눈을 떠서 보게 되는 그런 부분에는 마음(심心)을 붙이지 않고 상(相)이라고만 표시하고
한편 그런 부분에 대해 다시 일으키는 관념분별에만 마음(심心)을 붙여 상(想)이라고 표현한 것은 결국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자신이 눈을 떠 대하는 그런 나무와 같은 것들이 자신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 자신의 눈 등 각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고 자신 마음 밖에 있는 마음과는 별개의 물질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면서 그렇게 표시해 나타내게 된 것이라고 보게 된다.
이 망상분별은 기존에 핫키에 축약해 묶어 놓은 다음 망상분별과 관련된다.
---
현실에서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이 눈을 뜸으로써 얻는 감각현실로써
자신의 마음에 얻어 자신의 마음 안에 머무는 마음 내용이고
따라서 그런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은 없고
또 이는 마음을 떠나 마음 밖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그런 감각기관을 통해 그런 조건에서만 얻는 내용이고 [....이하 줄임...]
실답지 않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이런 감각현실은
외부 세계의 내용이고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기도 하고
정신 밖에 있는 정신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고
이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해
모든 이가 함께 대하게 되는 내용이어서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이것이 대표적으로
일반인이 일반적으로 갖는
전도망상분별증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
그리고 일반적으로 망집에 바탕해 생활하는 대부분이 이런 상태이기에 이런 상황에서 그런 상은 거기에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그런 망집상태에서 벗어나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반대로 생사현실에 임해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수행에 임하는 수행자 자신마저도 생사현실에서
그처럼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갖고 임한다면 바로 그런 사정으로 그는 수행자가 아니고 수행자 라이센스를 박탇당하게 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왜 생사현실에서 일반인이 대부분 그런 부분을 놓고 그것은 나무다 꽃이다. 영희다 철수다 자신이다 이런 식으로 망상을 일으키고 임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왜 이것이 잘못인가하는 것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부분을 붙잡고 그것이 나무다 꽃이다 영희다 철수라고 여기고 대하지만, 정작 그 부분은 그런 감각현실 내용이 생생하게 얻어지는 것일 뿐 그 주체가 일으키는 그런 관념분별이 그 부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그에 대해 그런 관념분별을 일으키고 그것을 대하는 이는 그런 생생한 감각현실 그 부분이 자신이 명료하게 분별하는 그런 내용이라고 두 내용을 붙잡고 이를 붙잡아 취하고 임하는 것이지만, 본 사정은 그렇지 않다.
더욱이 자신이 나무나 꽃 영희 철수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 그 부분은 또 본 바탕인 실재 영역과 함께 생각하면 그것은 본 바탕인 실상의 지위에 있는 내용도 아니고 그런 내용은 또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을 놓고 이런 사정을 잘 관하는 것은 공 해탈 삼매라고 표현해 제시하는데
이런 본 바탕과 현실의 사정은 처음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사이에서 살핀 관계와도 마찬가지고 침대에 누어서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할 때 그런 꿈을 꾼 침대나 꿈속의 바다나 황금의 관계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자신이 무엇무엇이라고 보고 대하는 그런 부분을 그렇게 취하고 머물고 임하면 그 부분부터가 생사고통에 그런 상태로 묶여 들어가는 근본 출발점이고 원인이 된다는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욕계에서 지옥 아귀 축생의 3 악도의 세계는 앞과 같은 망집을 바탕으로 다시 자신이 좋다고 보는 어떤 상태를 추구하면서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가 되므로
기본적으로 무상을 잘 관하는 한편 망집에 바탕해서 일으켜 집착하는 증상을 무원무작해탈 삼매의 수행을 통해 스스로 잘 제거해야 한다.
일단 무상이란 내용을 이런 관점에서 잘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나 무상이란 내용은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그런 부분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사정을 잘 관하는 문제이고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그런 감각현실 자체를 얻지 못한다거나 어떤 관념분별 자체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꿀 때 침대를 대하면서 아무리 그것이 바다나 황금이라고 여긴다고 해도 그 침대에는 그런 바다나 황금의 모습은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그 침대가 그런 형태로 현실 영역에 없다거나 또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이 그 꿈안에서 그렇게 얻지 못한다고 제시한 것이 아닌 것과 사정이 같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다시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이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 있는 내용이 아니고 실재 영역에선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공하기에 그런 감각현실 역시 실답지 않다고 제시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이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평소 여기고 대하는 그 부분은 그런 여러 입장에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해탈문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 부분은 그런 부분은 실상이 아니고 본 바탕은 공한 것이고
또 자신이 생각해 일으키는 그런 관념분별은 비록 그 부분을 대하고 일으킨 것일지라도 정작 그런 부분에서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정은 관념분별도 반대로 마찬가지이고 그런 사정으로 그런 상태에서 관념분별로 구성해 이런 각 내용을 접착시킨 가운데 망집에 바탕해 가진 쓸데없는 희망은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해야 그런 상태로부터 묶이게 되는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너무 길어졌으므로 일단 쉬기로 하자.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Brigitte Bardot & Serge Gainsbourg - Je T'aime.lrc
쉬는 가운데 오니 죽됨 이런 말을 반복하는 노래를 듣게 된다. 불어를 잘 모르는 본인 입장에서는 죽됨 이런 표현이 무슨 메세지를 전하는 표현인가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결국 죽됨이란, 죽됨과 비슷하지만 정작 죽됨은 아닌 그런 어떤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보고 찾아 나서게 된다.
그 전에 올려진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란 말도 들리고 오공대비란 말도 들리는데 본인은 이런 말도 그런 방식으로 음미하고 시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탈리아란, 나에 대한 아상을 그렇게 떠나 이탈해 나오는 것이고 오공대비란, 실상이 공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가운데에서 다시 그런 사정을 깨닫지 못하고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생명에 대해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면서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생사현실에 들어가 수행에 임하는 수행자의 자세라고 시감상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 생사현실에 들어와 보면 그렇게 죽 잘 된다는 건강한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이어서 시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BB 양에게 물어보면 그 사정을 BB 양이 알겠는가. 그러나 본인은 그렇게 시감상한다.
과거에 BB 양의 이니셜은 각기 가슴을 상징한다거나 엄청난 엉덩이를 상징한다거나 하는 낭설이 있었는데 BB 양이 가수로 활동했다는 사정은 잘 몰랐다. 잘못하면 그런 의견을 처음 제시한 mun 님의 친한 친구분인 성희룡 거사님과 함께 BB 양 모독죄로 수사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주의할 점은 주의할 점이고
지금 앞에서 제시한 무소유 불가득 무상과 그리고 생사현실에 임하는 수행자가 그런 바탕에서 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하면 또 그런 본 바탕의 사정과는 딴판으로 바로 그런 사정으로 무량한 서원을 다 잘 성취하게 된다. 이런 관계를 앞으로 잘 살펴야 한다.
그러나 같은 노래를 듣고도 이 노래가 조각글에 너무 많은 내용을 집어 넣어 결국 밥이 죽처럼 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면 또 노래처럼 너무 밉다는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데 여하튼 논점을 잘 추리고 초점을 잘 맞추어 임해야 한다.
실상이 공함을 잘 관하고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나 영희 철수라고 생각하면서 취해 대하게 되는 그런 부분에 정작 그런 상은 없어서 무상이고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에도 그런 감각현실은 들어 있지 않은데
이를 접착시켜 놓고 그런 감각현실 영역의 내용을 대상으로 망집에 바탕해 일정한 소원을 일으키고 업을 행해가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무량겁에 걸쳐 극심하게 받으며 이로부터 벗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욕계의 3 악도의 상황이다.
그리고 비록 하늘로만 구성되었다고 하지만, 색계 무색계를 포함한 3 계가 모두 결국 이런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과정 안에 함께 포함되어 있다.
아리고 쓰린 고통은 아라리요를 외치고 즐거워하던 그 순간의 그런 업이 씨가 되어 그 열매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내용이 구전 민요 아리랑에서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낳네라는 부분에 들어 있는데
알고보면 그 내용안에 그런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해탈문도 같이 들어 있어서 그것을 잘 붙잡고 잘 관하고 나오면 또 생사고통을 벗어나 임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이전 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 제시한 구절을 놓고 다시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제시하면서 각 구절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 구절들이 왜 이런 관계로 서로 제시되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지금 살피는 문제와 그 사정이 같은 문제다.
일단 얻을 수 없다[불가득]과 무소유를 구분해보자. 가끔 얻을 수 없으면 곧 없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잘못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쉽게 이해해보자. 태어날 때부터 장님인 이가 그 상태에서 색을 볼 수 있겠는가. 그 상태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색을 얻을 수 없다고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색은 '없다'라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불가득이란 표현은 실재영역이 유무를 떠나 공한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그런데 무소유는 무라고 표현을 넣어서 제시하는 사정이 있다. 관념영역에서 진짜라고 볼 내용을 몽타쥬로 그려 찾아나서고 관념영역에서 그런 것은 없다고 판단하게 되는 사정과 관련된다.
병이 처음에 작을 때 잘 치료하면 별 문제가 없는데 어영부영 적당히 임하고 적당히 넘어가려다 보면 나중에 그 병이 대단히 커져서 회복하기 힘들게 된다.
본인도 처음 증상이 나타날 때 조금 신경써서 운동도 하니 다시 곧바로 회복되고 원래 정상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적이 있는데
그후 귀찮고 게을러서 방치하고 임하다보니 이제는 그렇게 해도 원래 정상상태로 되지 않고 점점 상태가 나빠진다.
그 치료를 위해 약을 투약해도 앞의 근본원인을 시정하지 않고 임하다 보니 점점 약만 더 세게 투약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해도 정작 그 효과는 그리 좋아지지 않는다.
지금도 이런 상태에서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노력하면 또 죽는 순간까지는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임할 수 있는데 계속 적당히 임하면서 방치하면 이제 죽는 순간까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죽는 시기도 빨라지리라 충분히 예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주제를 놓고 살필 때도 이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는 데 까지는 지금 자신이 일으킨 망집을 바탕으로 적당히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고 임하기 쉬운데 그러면 죽기 직전까지 또는 죽은 이후까지도 그 증상은 치유되지 않고 결국 그런 상태로 매 순간 임하면서 무량겁에 걸쳐 3 악도의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 생사현실이 비록 꿈처럼 실답지 않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것은 꿈은 아니고 각 주체가 현실에서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대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상태로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므로 이를 잘 시정하고 벗어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런 현실이 실답지 않음만 강조하고 방관하고 그치면 그 문제는 시정이 안 된다.
그래서 비록 본 바탕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현실 내용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지만, 그 생사현실에서 받게 되는 생사고통을 그 생사현실 안에서 해결하고 제거하는 것이 다시 요구된다.
이를 위해 앞에 제시한 것처럼 본 바탕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잘 관하는 것이 기본으로 요구되지만, 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사정을 본다면 다음과 같다.
본 바탕은 무소유 불가득 공하지만, 그런 바탕을 놓고
현실에서 각 주체가 그러그러한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을 일으켜 얻을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얻고 다시 그에 대해 좋다고 대할 수도 있고 또는 나쁘다고 대할 수도 있고 또는 둘다 아닐 수도 있고 또는 아예 그런 좋고 나쁨을 모두 떠날 수도 있다.
실험을 해보면 이 사정은 간단하다.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볼 수도 있고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그리고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더라도
다시 그 가운데 일정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그 부분이 무엇이라고 분별할 수도 있고 분별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는가. 이것만 놓고 보면 별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일정부분을 나누고 묶어서 그 부분이 영희라고 여겼다고 해도 다시 달리 그 부분을 묶고 나누어서 어떤 부분은 코나 입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고 전체를 놓고 시인의 입장이 되어 그것은 사람이 아니고 꽃이다. 이렇게 분별을 행해도 관계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대함으로 인해 생각나지 않던 다른 내용들은 마치 본래 그 안에 실답게 있었지만, 잠시 숨어 있던 내용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즉 앞에서 영희를 꽃으로 여기고 대하며 꽃만 생각하면 그 상황에서 영희의 각 부분 코나 입 ... 등등이 의식이 안 된다.
그런데 나중에 그 부분을 코나 입이라고 관념을 일으키고 대하면 그 대상에 그런 내용이 본래 있었던 것으로 여기고 대하기 쉽다.
그런데 꽃이라고 생각한 순간에는 그런 생각이 잘 안났던 것이므로 그 순간에 그런 내용들은 잠시 숨어 있었던 것일 뿐이고 자신이 다시 잘 생각하면 그렇게 본래 있던 그런 내용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라고 망집을 바탕으로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배고플 때 대하는 짜장면은 맛이 있고 좋다고 느낀다. 그런데 4 그릇을 먹은 상태에서 대하는 짜장면은 구토증을 일으키는 혐오스런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런 좋음이나 싫음이 그런 짜장면에 본래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과의 관계에서 각 상황 조건에 따라 자신이 얻게 된다고 이해해야 한다.
어떤 이가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키는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어던 이가 감각현실을 대해 이렇게 저렇게 헤아리게 되면 그 때마다 각 관념이 나타났다가 없어졌다가 하게 된다. 그런 경우 그는 그런 감각현실에 그런 관념들이 본래 그렇게 들어 있다고 여기고 대하기 쉽다. 즉, 그런 관념이 그런 감각현실에 본래 그렇게 있지만, 자신과의 관계에서 매 순간 그처럼 숨고 나타나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관념은 관념영역에서 일으키는 것이고 감각현실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여하튼 실재를 바탕으로 한 가운데 그런 감각현실이나 관념들을 얻을 수도 있고 얻지 않을 수도 있는데
감각현실 내용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느낌도 얻고 그에 바탕해 여러 관념분별을 일으켜 얻고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을 대하면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므로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런 생사고통을 해결함은 본 바탕에 그런 문제가 있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본 바탕은 그런 문제를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이상하게 위와 같은 상태에서 망집을 일으킨 주체가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이후 무량겁에 걸쳐 그런 형태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므로 그 부분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전후 사정을 잘 이해한 입장에서는 자신만 생각한다면 그런 실답지 않은 내용을 바탕으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황 자체를 회신멸지의 상태가 되어 벗어나 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이 앞에서 제시한 아라한이나 연각(벽지불)이 취하는 입장이고 자신만 그렇게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것이기에 작은 수레를 타고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하여 소승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전후 사정을 잘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 그런 생사현실도 그런 내용이 실답다고 망집을 일으켜 대하지 않는다면 그런 생사현실 그 자체도 그대로 그런 생사고통을 떠난 니르바나와 마찬가지라고 관하면서
생사고통을 받는 다른 주체를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생사현실에 들어가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중생을 다 함께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수행해가므로 이는 무량한 중생을 다 수레에 싣고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에서 대승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문제는 위와 같은 소승이나 대승의 수행은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실재 본 바탕에서 그렇게 행할 것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고 본 바탕의 사정은 그런데도 이와 달리 망집을 일으켜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 생사현실에서 그런 내용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본 바탕은 그런 생사나 생멸을 본래 얻을 수 없지만, 그런 가운데 망집을 일으켜 임하면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고
그와 달리 본 실상의 사정을 잘 관하고 수행으로 임하면 그런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된다는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
아무리 보아도 본 바탕에서는 보시를 행하는 이나 받는 이나 보시할 물건이나 내용이나 보시하는 행위를 다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그런 본 바탕에서 처음부터 그런 감각현실이나 관념내용들이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일어날 수도 있는데
그런 가운데 망집을 일으킨 입장을 기준으로 생사현실을 대하면 그런 내용들이 그런 영역에 실답게 있다고 여기는 가운데 집착을 바탕으로 행하면 극심한 고통을 받는 상태로 묶여 들어가고
그 반대로 행하면 그렇지 않게 되고 오히려 좋은 상태로 됨을 기본적으로 제시한다.
이것이 선인선과 선인락과 악인악과 악인고과 이런 내용으로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이다.
누구라도 조금만 넓고 길고 깊게 각 주체가 행하는 마음속 생각과 말과 행위의 내용과 그로 인해 얻는 결과 과보를 놓고 살피면 그것이 밭에 뿌리는 씨와 열매의 관계처럼 그런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선'인'선'과 이 부분은 불교에서는 동류인-등류과 이런 관계로 제시하는 내용이어서 선한 마음은 선한 말을 하게 만들고 선한 행위나 태도를 하게 한다는 그런 내용과 관련이 된다.
그런데 선인'락'과 이 부분은 그런 행이 씨가 되어서 다시 이어 나타나는 결과를 보면 그런 원인과는 그 성격이나 모습이 달라진 복이나 즐거움(락)이라는 내용이 되는 경우다. 그래서 그 형태나 성격이 달라졌다고 보기에 이를 이숙인 이숙과로 취급한다.
또 마찬가지로 이번 생에 행한 업으로 후생에는 이번 생의 인간형태와는 다른 형태로 생명형태를 받고 살아가게 되는 것도 역시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이숙인- 이숙과로 보게 된다.
이런 사정을 잘 관한 가운데 고통을 제거하고 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3 악도에서 벗어나려면
그저 그런 고통을 받는 그 주체나 세계가 실답지 않음만 관하고 임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 고통을 받는 상태로 나아가는 행위는 행위대로 중지하고 이미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하고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서 수행을 잘 해야 함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왜 앞에 제시한 3 부분과 이 2 부분이 그런 까닭이다라거나, ~하기 때문이다라는 구문형태로 이어지는가는 다음처럼 이해하면 쉽다.
먼저 위 내용은 만일 본 바탕의 사정이 그처럼 무소유 불가득이 아니고 본 바탕에 무언가 진짜라고 할 내용이 실답게 있고 그래서 공하지 않다면 앞에 제시한 내용 자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관계성을 제시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기에 현실에서 그런 현실 내용을 얻을 수도 있고 얻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그에 마땅한 수행을 행해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본 사정이 그렇지 않다면 애당초 처음부터 무엇을 행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해서 피하고 벗어나야 할 생사고통 자체를 세울 수 없다. 그런데 본 바탕이 그렇지 않기에 일단 그런 문제상황이 나타날 수 있고 그런 가운데 문제되는 생사고통을 제거하고 벗어날 수행방안도 그런 바탕에서만 제시될 수 있다.
즉, 그런 바탕에서만 앞과 같은 생사현실도 나타나고 그런 생사고통이 문제인 경우 그런 본 바탕의 사정을 잘 관하고 그런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수행방안이 그처럼 제시되고 그런 가운데 이를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3 부분은 한편 본 바탕의 측면에서는 생사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그렇게 행하던 행하지 않던 본 바탕은 이와 관계없이 본래 그런 생사 고통의 문제자체를 얻을 수 없고 본래 청정함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본 바탕은 생사현실에서 어떤 이가 보시를 행하던 않던 그런 것 자체를 얻을 수 없고 그런 문제자체를 얻을 수 없음도 나타낸다.
한편 본 바탕이 그렇기에 현실내용이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지만, 그러나 현실이 실답지 않으므로 현실이 그런 줄 알고 현실을 그대로 방치해도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생사현실이 그처럼 실답지 않다고 하지만, 그런 실답지 않은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함을 제시하게 되는 것은 다음 사정 때문이다.
즉, 그런 본 바탕에서 나타나고 대하게 되는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은 그 본 바탕이 공하고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것이어서
마치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하지만,
그러나 생사현실은 또 정작 꿈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현실에서 각 주체는 이들 내용을 대단히 생생하게 매 순간 받고 그런 형태로 한번 묶이면 그런 상태로 매순간 임하며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받아나가게 되고 또 어떤 주체만 그런 것이 아니고 같은 부류의 무량한 주체가 그런 형태로 받아나가고 하나하나 실답지 않지만, 그러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느낌 관념 등등으로 다양한 형태로 중첩시켜가며 매순간 이들 내용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며 대하는 것이어서 이 생사현실을 실답지 않다고 단순히 방치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현실에서 다 어차피 같은 성격으로 실답지 않다고 하지만, 현실을 꿈과는 다르다고 여기는 그 사정도 위와 같다.
그러니 그런 사정을 그렇게 관하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을 해도 해야 한다.
그런데 1처럼 본 바탕이 본래 그렇게 얻을 것이 없는데 왜 얻을 것이 없음[무소득]을 방편으로 해서 그런 수행을 해야 한다고 제시하는가.
그렇게 무소득을 방편으로 한다고 해서 본 바탕이 공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본 바탕의 측면에서는 무소득을 방편으로 하던 유소득을 방편으로 그런 수행을 하던 그리고 심지어 수행을 하던, 하지 않던 더 나아가 그런 생사현실의 내용 자체가 있던 없던 본 바탕의 측면은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함은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하려면 그 생사현실에서 본 바탕과 상응한 상태로 인위적으로 그렇게 마음을 갖추고 그런 수행을 해도 해야 한다는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 제시한 것처럼 본 바탕에서 어떤 사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바로 생사현실 안에서 그런 자세의 차이가 극심한 차이를 낳기에 그런 것이다.
일단 글이 상당히 길어졌으므로 일단 이 부분까지만 제시하고 그 자세한 사정은 또 쉬고 이어 살피기로 한다.
앞에서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서는 현실에서 문제삼는 생멸이나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그런 바탕에서 감각현실 등을 얻는 가운데 그것이 곧 실다운 세계나 자신이라고 망집을 일으켜 대하는 가운데 업을 행하면
그런 바탕에서는 이로 인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생생하고 실답게 받게 되는 3 악도에 들어가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고 제시했다.
이 내용이 실답지 않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대부분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대하게 되는 그런 현실 내용이다.
지금 본인이 이런 글을 적는 이 상황에 발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는데 그런 통증이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 얻을 수 없고 실답지 않다고 해도 지금 생생하게 통증을 느끼고 이런 통증을 느끼게 되는 부분도 보고 그런 통증을 느끼는 부분을 자신이라고 대하면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것이 실다운 자신도 아니고 그런 내용을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해도 그런 이론적 이해만으로 그런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이 고통을 벗어나는 원칙적인 방안은 그런 상태에서 앞에서 제시한 무상삼매 해탈에 들어 그 상황에 자신이라고 보는 그런 부분이 그런 부분이 아님을 잘 관하고 안인을 성취해 벗어나는 것이 원칙적인 방안이다.
그리고 도저히 안 된다면 심일경성에 들어서 지관 정려 삼매 수행으로 마치 관우라는 장수가 화살을 뽑는 수술을 받을 때 바둑에 집중해서 고통을 참아 냈다고 하는 것처럼 임해야 한다.
이는 바둑에 집중하면 그런 통증을 마음에서 지워내고 또 그런 상태에서 바둑의 행마에 계속 집중해 나가는 것인데 결국 마음을 한 대상에 집중하면 마음에서 그 내용만 남고 나머지는 사라진다는 사마타의 측면을 의미하고 그리고 그렇게 집중된 마음으로는 일정한 주제나 서원을 놓고 살펴나가는 비발사나나 삼매의 수행과 관련된다.
그런데 이 경우는 그 상황에서 참아야 할 내용도 함께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이어서 고통을 면한다는 측면에서는 효과를 갖지만,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원칙적으로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을 일으키지 않고 고통이 있는 상태에서 그 고통을 참아내는 안인을 성취하는 측면은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사정에 따라 잘 선택해 임하면 된다고 보는데
현실적 입장에서는 이런 상태에서는 마취제나 소염진통제를 사용한다는 등의 방안을 사용하는데 이는 결국 고통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거나 경감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그 이하 원인 치료는 결국 의학부분에 맡기게 되는데 그러나 이는 그 증상의 해결방안은 되지만, 근본적으로 한 주체가 생사를 벗어나고 그런 생사현실에 들어서 무량겁에 걸쳐 생사를 받으면서 수행하는 원칙적인 방안은 못 된다.
발에 통증이 있는 것이 금강경에 제시하는 것처럼 고문을 받고 사지를 절단당하는 그런 상황에 비교할 수는 없는데 수행에서 제시하는 원칙적인 방안은 그런 것이다.
[img2-03] [그림] 선인락과 08pfl--image/선인락과2.png
그런데 그렇게 고통이나 억울함에 직면한 상황에서 무상삼매에 들어서 그것을 평안히 참고 임하는 수행도 필요하지만,
생사현실에서 불필요한 생사고통을 받게끔 만드는 업을 행하지 않고 또 한편으로 무량겁에 걸쳐 쌓은 그런 업의 장애를 해소시키는 수행도 한편으로 필요하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악인고과 선인락과 이런 관계로 제시하는 생사현실 안에서의 인과관계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선인락과에 해당하는 내용을 수행의 기본적 내용으로 제시한다.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을 베풀고 나쁨을 제거해주고 [보시]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을 침해하지 않고 나쁨을 가하지 않고 [정계] 자신이 상대로부터 그런 침해를 받을 때는 또 그에 대해 상을 일으키지 않고 평안하게 참는 수행에 [안인] 정진해 나가는 것이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그런데 이런 수행을 생사현실에 행하여 원만히 성취하면 그로 인해 업의 장애가 해소되고 생사를 벗어나는 한편 그 과보로서 복과 낙을 얻게 됨을 제시하는데
그 사정은 사실은 각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서 일정한 내용에 좋음이 있다거나 나쁨이 있다고 집착하면서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해서 자신이 집착하는 좋음을 얻기 위해
다른 중생이 집착하는 좋음을 아끼고 베풀지 않거나 또는 다른 중생이 집착하는 좋음으로서 생명이나 신체 가족 등을 함부로 침해하는 한편 다른 상대가 자신이 집착하는 바를 함부로 침해하면 그런 상황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관하지 못하고 상을 일으켜 취하고 그에 바탕해 분노를 일으키고 보복을하면서 다시 자신이 상대를 가해하는 행위를 해나가기에 그렇게 임하는 각 주체가 생사현실 안에서 서로 얽혀서 그렇게 된다고 제시한다.
그것이 혹[망집 번뇌]- 업 - 고의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망집을 전제로 하는 바탕에서는 그렇게 행한 업은 무량겁에 걸쳐 사라지지 않고 그 과보를 받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각 세계에서 각 하늘이 누리는 복과 수명에 대응해 그런 고통을 받는 지옥이나 아귀 축생의 세계가 시설된다.
현실에서 다른 이들이 집착하는 생명이나 신체 재산 가족 등등을 함부로 침해하면서 좋음을 추구하는 이들이 만일 거리에 활보하면 그로 인해 일정한 이들이 대단히 고통을 받게 되는 한편
그런 이들을 체포해서 일정한 시설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감금하면 그로 인해 다른 이들이 평안함을 누리게 된다는 상호관계와 그 사정이 같다.
인간 세계에서의 감옥이 결국 인간의 수명 범위에서 유지되고 관리되는 것처럼 점차 복락의 양과 복락을 누리는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서 그에 상응해 지옥의 고통과 기간도 함께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이런 관계를 통해서 그런 생사고통을 받게 만드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고 올바른 수행을 해야 한다고 제시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비록 아무리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잘 관해도, 그 생사현실이 자신의 손과 발을 자르며 고통을 주는 상태가 되어 결국 지옥에서 지옥이 실답지 않음을 관하고 그 고통을 견디며 임해야 하는 지옥의 공 수행자가 된다.
현실에서 아무리 색즉시공을 잘 이해해도 자신의 손과 발이 톱으로 잘리우고 피를 흘리는 상황에서 그런 고통을 그런 이론적 이해만으로 상을 취하지 않는 가운데 잘 견디고 임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인 것이다.
여하튼 그런 상태에 이른 수행자도 있겠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대단히 행하기 힘들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 생사고통 가운데 중생제도와도 별로 관계되지 않고 단순히 자신의 망상분별과 집착에 의해 행한 업으로 받게 되는 생사고통은 미리 앞에 제시한 수행을 잘 해서 제거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렇게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수행방안이 일반적으로 제시되지만,
다시 그런 수행을 얻을 것이 있음[유소득]을 방편으로 행하게 되면 결국 처음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해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생사고통을 받는 것과 그 상황이 결국은 마찬가지가 된다.
그래서 그런 수행을 통해서 복락을 얻는다거나 그런 복락을 얻는 주체나 행위가 실답게 있다거나 그로 인해 성취하는 상태가 실답게 있다거나 등으로 그런 수행 자체에 망상분별과 집착을 갖고 임해서는 안 된다.
수행은 단지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황에서 그런 망집을 제거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풀려나게 하는 것일뿐
무언가 얻을 것이 실답게 있다고 여기면서 수행하는 것은 그 자체가 망집에 바탕한 내용이 된다.
그런 경우 본 바탕이 그런 생사나 생멸이 없는데도 망집을 바탕으로 생사고통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망집으로 인한 생사고통을 받게 되므로 이를 다시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에 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수행자가 본 바탕과 상응한 상태로 생사현실에서도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를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본 바탕인 실재는 그런 노력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본래 그런 내용을 모두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는 그렇게 집착을 제거하고 수행에 임해야만 본래의 청정한 니르바나와 여여한 상태가 되게 되므로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부분에 수행자들이 특히 주의해야 하므로 대반야바라밀다경전에서 반복해 제시되는 것이다.
일단 너무 통증이 심하기도 하고 시간도 늦고 글도 길어졌으므로 이만 이 조각글은 마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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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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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alvador-Dali-bed-and-bedside-table-ferociously-attacking-a-cello
Artist: Salvador-Dali https://en.wikipedia.org/wiki/Salvador_Dalí Title : bed-and-bedside-table-ferociously-attacking-a-cello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strophytum_flower_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