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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9-08_대승백복상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9-08_대승백복상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9. 8. 13:12



®

대승백복상경
K0244
T0661

대승백복상경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대승백복상경_K0244_T0661 핵심요약



♣0244-001♧

♧대승백복상경


>>>

문수사리야, 

이와 같이 말한 것을 ‘여래의 32상(相)’이라 이름하고, 

이 모든 복덕의 수가 한량없고 끝없는 아승기(阿僧祗)의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 없으며 말할 수도 없을 만큼의 배(倍)를 다 채워 쌓은 것을 합하면, 

♣0244-001♧여래의 대법언음(大法言音)을 이룬다. 


... 


문수사리야,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복덕의 크기가 한량이 없으므로, 

성문이나 벽지불은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0244-001♧이와 같은 복덕은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대비(大悲)와 대혜(大慧)와 방편력(方便力) 등의 모든 공덕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




◆vtmz5469

◈Lab value 불기2562/09/08/토/13:13




mus0fl--L'affaire Louis Trio - Chic Planèt.lrc


♥ 잡담 ♥유소년및노년소일거리방안 

요즘은 과거와 달리 오래 앉아서 작업하면 엉덩이가 아파
오래 작업하기 힘들다. 
나이가 들면서 피 순환이 잘 안 되어서 그런 것으로 본다. 

조각글은 예약이 되어서 계속 올려지는데 
그런 사정으로 올려지는 경전을 그날 그날 
읽고 정리하는 것만 해도 힘이 든다. 

대략 성유식론 열반경 살필 때부터
써야 할 내용이 밀려진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수행의 최종 목표점인 열반과 관련해서는  
일체가 무상하다고 그간 제시해왔던 부처님이 
왜 갑자기 열반경에서는 상락아정이란 내용을 제시하게 되었는가. 
이런 내용을 살피려다가 조각글을 작성하지 못하였다. 

한편, 니르바나 행복론 목차파일도 경전이나 음악이나 사진파일 등 올릴 때마다 
하나씩 살펴보게 되는데 이것도 손을 못 대고 있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어떤 이가 행복이나 행복을 성취하는 수단을
일일히 하나하나 나열해서 이것을 하나씩 성취하면서 행복을 얻는 이가 있겠는가만 
여하튼 니르바나 행복론을 살피려다 보면 
결국 체계적으로 이것을 나열해서 살펴야 한다고도 보게 된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또 살펴나갈 경전 내용도 또 그 양이 방대해서 
조금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주제를 좀 간단하게 핵심 부분부터 살펴나가기로 한다. 

현실에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지금 당장은 별 큰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매일 매일 늘 무언가가 조금씩 부서지고 조금씩 무너지고 
또 자신의 몸도 조금씩 이상이 발생하고 
그리고 또 한편 오래 동안 성취하지 못한 희망들은 또 희망들대로 
뜻대로 성취되지 않는 가운데 
무언가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 쫒기게 하는 면이 조금씩 있다고 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자신의 뜻이 다 뜻대로 다 성취되는 이가 어디 있고 
또 성취되었더라도 한 번 성취된 것들이 무한히 유지되는 경우는 어디 있는가. 

그런 사정으로 삶에서는 심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조금씩 생사고통을 생각하게 하는 요소가 있는데 
이것이 어느 상황이 되면 대단히 극심한 상태가 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그렇지는 않더라도 이런 내용이 현실에서 피할 수 없음을 아는 이상
이런 내용이 결국 삶에서 일정한 걱정과 불안을 가져다 주는 내용들이 된다고 본다. 

결국은 지금 대하는 세상의 모든 이가 100 년이 지나지 않아서 
모두 지상에서 사라질 것은 
특별한 예언 능력이 없어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데 
그 안에 그런 수많은 생사현실의 고통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삶에 그런 것이 전혀 없으면 
생각해보면 부처님도 전혀 필요없는 것이다. 
이것은 본인 이야기가 아니고 
부처님이 경전에서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부처님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가르침을 베푸신 것이기도 하다. 

오늘 살핀 대승백복상경은 수행으로 얻는 복덕을 나열하고 
그 정점에 부처님의 복덕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삶에서 향해 나아가야 할 목표점이란 이런 것이기도 한 것이다. 


열반경에서 열반과 상락아정의 의미나
성유식론에서 인과의 문제를 살필 때 
이를 함께 자세히 살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후 사정상 계속 늦어졌는데 
이것을 이번 조각글에서 함께 살피기로 한다. 


진여고와 능제일체고라는 이상한 고등학교를 
과거 조각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진여고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인가 하면 

본 바탕의 진여 실재는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그런 진여 실재를 본 바탕으로 한 
생사현실에서는 수많은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들이 있다. 
이 문제를 진여고라는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본 바탕에서는 얻을 수 없는데도 
왜 생사현실에서는 그런 생사고통이 나타나는가 그 사정을 잘 이해하고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면 되는가하는 내용도 함께 잘 이해해서
이를 생사현실에서 정진해 나가는 것이 
바로 생사현실에서 수행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 수행을 통해 끝내 얻어내는 수행목표점에 
해탈과 열반이 있는 것이다. 

해탈이란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각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 본래 얻을 수 없는 생사고통에 묶여 있는 상태인데 
이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풀려나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망집 번뇌와 고통이 모두 제거된 상태를 
열반이라고 표현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상태가 수행이 목표점으로 하는 것이다. 

니르바나 행복론도 결국 세속에서 망집을 일으킨 각 주체가 
얻고자 하는 좋음 그리고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각 수단을 나열한 다음 
끝내는 이런 상태를 얻게 하기 위해서 
서술하고자 하는 내용인데 
그래서 이 수행의 목표점이 되는 해탈과 열반을 
결국 먼저 살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쉬는 가운데 TV 등을 보니 
요즘 부동산 시세가 잡히지 않아서 문제가 많다는 내용을 보게 된다. 
몇달전에 36 억원하던 아파트가 지금 44 억원을 한다는 그런 이야기다. 
처음에 계약을 하고 계약금으로 3 억원을 걸었는데
집주인이 이후 시세가 계속 오르자 계약금의 2 배를 주고 그 계약을 취소했는데
그렇게 계약금을 물어주고도 이익을 보았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집에 살아가는 이가 값이 올라 그로 인해서 
지극한 행복을 누리고 있겠다고 대부분 생각하게 되지만,
자세히 보면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알고보면 집은 집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값이 올라 집을 팔고 다시 만일
그 금액으로 또 다른 좋은 집을 사고자 하면 알고보면 그 사정이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집값이 올라서 좋다고 하는 경우도 그 사정이 그런데 
그렇게 시세가 올라가는 곳의 집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는
이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도 대단히 크게 된다. 
더욱이 몇 달 사이에 어떤 이는 집을 보유하는 것만으로 8 억원의 이익을 보았다는데 
아예 그런 부동산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는 
자신은 몇 달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도 생계 자체가 여전히 힘든 상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수도권의 일부지역이 그렇다는 것이고 
또 나머지 지역은 오히려 그 반대 현상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정책을 집행하는 입장에서의 심각한 고민거리라고 한다. 

노래에서 자꾸 아귀를 때린다는 이상한 메세지가 들리는데 
이 문제 해결방안은 mun 님이 이미 7 단계까지 해결했는데도 
그 이후 계속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나서 
처음 문제는 해결되는데 그 이후 이후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쁘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알고보면 집값 상승 문제만 놓고 보면 이 문제해결은
지극히 간단하다. 그런데 그것을 해결하면 그 이후에 나타나는 
다른 문제가 그렇게 mun 님을 무량한 무량행문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의 생사문제와 그 성격이 같다고 보게 되는 측면이다. 
무언가 하나 좋은 것을 취하면 그로 인해서 그것이 징검다리가 되어 
또 다른 번뇌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또 다른 생사고통에 묶이게 만든다는 
측면이다. 

어떻게 보면 처음 제기한 문제는 이렇게 하면서 한 7 단계 정도
나아가다 보면 그 첫문제는 해결이 된 것 같고 보이지 않게 되는데 
이 경우 결국 성격과 모습이 다른 문제가 또 생겨나서 
이제 그것을 붙잡고 해결하느라 바쁘게 된다는 점이다. 

현실을 놓고 보면 그 사정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늘날 천연두나 출산과정의 질병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는데 
그래서 문제가 완전히 없어진 것인가. 
그 첫문제만 보면 깨끗하게 없어진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질병문제로 고민하지 않는가. 
요즘은 제주도 인구만한 65 만명의 치매환자가 있는데 
몇분마다 1 명씩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들이 결국 삶의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처음 대단한 문제로 보았던 그런 문제는 
이제는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해결해야 할 문제는 끊임없이 나온다는 것이 
바로 생사현실문제다.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도리는 없지만, 
이것이 문제의 완전한 해결방안이 되는 것은 아님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손과 발을 놓고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것이 없는 상태는 손과 발만 있으면 원이 없겠다고 
이 문제를 대하지만, 
정작 손과 발이 다 정상적으로 달려 있는 이들이 
갖는 문제가 사실은 현실 문제의 대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니르바나행복론에서 다루는 각 항목이나
현재 정책당국이나 온 국민이 대단히 문제로 보는 
부동산 문제도 사정은 사실은 그 성격이 같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mun 님의 방안이란 간단히 보면 이런 것이다. 
부동산 등의 거래에서 시세차를 완전히 환수하는 방안이다. 
부동산 거래는 당사자 쌍방이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거래가 이뤄지면 그 시세를 가만히 있어도 당국이 손쉽게 파악하게 되는 방안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일일히 전국 부동산시세를 감정인이 감정하고 평가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의미다. 
그것은 시세를 신고하는데 있어 양 거래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그 시세가 높고 낮음에 따라 입장을 서로 극명하게 다르게되도록 만들면 
당사자들은 정확하게 거래된 그 시세대로 신고하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보유자가 최종적으로 거두는 시세차는
정확히 거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환수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1 차적으로 단순히 부동한을 보유만 해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는 
경우가 거의 없어지는 것이다. 
이로써 처음 문제가 아주 간단하게 풀린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무슨 문제가 바로 보이는가. 
그렇게 대부분 부동산 보유로 더이상 시세차를 거둘 수 없게 하면 
이제는 더 이상 시세차를 얻고자 하는 취지로 부동산을 수요하는 이들은
부동산 시장에서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부동산 시장에 수요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또 당연히 시세도 떨어진다. 

이 경우 시세가 떨어지면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런 경우 빌딩에서 뛰어내릴 사람도 그만큼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은행에 융자를 받아서 부동산을 구입한 이도 그렇고 
좀 더 살만한 집들을 재개발해서면까지
건설업으로 소득을 올리던 기업들도 당장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또 이 부분의 근로자의 생계나 실업도 또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렇게 거래 자체가 위축된 시장에서는
실수요자마저도 원하는 부동산을 그 때 그 때 구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또 매번 선거를 통해 당선되고
그에 바탕해 정책을 집행하는 입장에게는 당면 문제가 된다. 
그러니 첫 문제 풀고나서 그로 인해 이어져 나오는
이런 문제들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 문제라고 본 내용을 해결한 상태에서
다시 이어 나타나게 되는 그 다음 문제를 다시 하나하나 잘 해결하지 못하면 
아예처음부터 첫 문제를 풀지도 말라는 요구가 당연히 나타나는 것이다. 

mun 님은 2 번째 문제도 역시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수요자의 입장에서 거래는 거래대로 필요할 때마다
할 수 있게 제도가 보완이 되는 한편,
한편 가격 문제도 시세가 비싼 곳은
그곳을 사용해야 하는 실수요자가 여전히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으로 사거나 임대해서 사용하게 되고 
싼 곳은 싼 곳대로 그렇게 거래가 되어서 
결국 현실경제에서 가격이 맡아 하던 순기능은 기능대로 행하지만, 
그러나 시세차를 통해 얻던 불로소득 부분만은 국가가 모두 환수시키는 한편, 
더 나아가 종전에 건설업을 하던 기업도
이제는 자원을 낭비하며 건설하던 형태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가치를 증가시키는 활동을 통해 종전처럼 경영을 잘 해나가고 
그래서 관련 분야 실업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하나하나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첫 문제를 해결해서 2 번째 문제들이 여러개 나타나게 되었다고 보듯, 
2 번째 단계에서 나타난 문제의 해결도
결국 또 마찬가지로 새로운 문제들을 나타나게 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처음에 문제로 본 문제
즉 불로소득으로 인해 계층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생산활동에 대한 의욕을 감퇴시키는 등의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가 문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이런 여러 단계를 통한 문제해결로 
최종적으로 부동산 시장에서는 더이상
시세차를 통한 불로소득현상을 거두는 일이 없어지면 
이전까지 부동산 시장에서 그 금액을 가지고 불로소득을 꾀하던 이들은
비록 부동산을 가지고는 그것이 안 된다고 보지만, 
그러면 그 경우 그 금액으로 다른 생산적인 활동에 기여하게 될 것인가.
이 부분이 문제다. 
전국의 부동산이 가격이 올라서 보유자는 무언가 가치가 증가된 것처럼 
여기지만 알고보면 건설부분을 제외하고는 원래 부동산이 부동산인 것 뿐이다. 
그래서 이것은 실질적인 생산활동을 한 것이 아닌데 
부의 전체적인 분배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희소한 재화의 보유자가 
노력없이 시세차를 거두게 되는 것이 문제라고 처음에 본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바다를 간척하거나 빌딩을 세운 활동도 없이 
시세가 올라서 불로소득을 거두고 
이 문제 때문에 생산활동을 하기 보다는 부동산만 보유하고 
마냥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 문제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전 방위로 그런 부분을 막아나가면 
결국 자금을 보유한 이들이 어떤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과연 그럴 것인가. 그런데 물론 이 부분에도 
mun 님의 해결 방안이 있다고 하는데
점점 이렇게 나아가다보면 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니르바나 행복론이라고 해서 
세속에서 문제삼는 각 주제를 하나씩 붙잡고 
이렇게 1 단계 1 단계 문제를 해결하고 
그리고 나서 최종적으로 
그 일체가 본 바탕이 공한 바탕에서 
그래서 공수래 공수거인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켜 임한 이들이 낙타와 같이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할 짐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그리고 이 시간대에서 저 시간대로 
이 주체에서 저 주체에게로 힘겹게 옮겨 건네 주는 활동만 하면서 
그로 인해 생사고통에 서로 얽히고 묶이게 된다는 사정을 관하게 하고 
그로 인해서 
최종적으로 모든 자산은 그 개인 입장에서는 
결국 생존과 즐거운 맛일 뿐이고
그렇게 낙타와 같이 임한 것은 알고보면 
어리석은 것임을 이해시키는데 최종 목표가 있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당장 몇 십억원의 소득을 거둔 입장과 
그렇지 못한 입장이 느끼는 심정은 제각각 다른 것이기는 한데 
근본적으로 그 최종 문제점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임하면 
이 두 입장은 다 함께 아귀세계에 갇혀서 살아가는 형태가 될 뿐이다. 
몇 십억이라고 해도 그것은 집일 뿐이고 
집에서 하는 일이란 결국 편하게 생존을 해결하고 
그 안에서 즐거운 맛을 얻는 것 뿐인데 
정작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의미다. 

왜 그런가. 
그런 집을 실수요자의 입장에서 살아가는 이는 
다른 곳은 올랐는데 자신의 집은 오르지 않았다거나,
반대로 올라서 팔아야 한다거나 하면서
시세차를 현실로 확보하기 위해 이사를 쉼없이 다녀야 한다거나 하면서 
마음이 평안해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시세차를 위해 투자나 투기 목적으로 구입한 입장은 
더더욱 마찬가지다. 
결국은 주식시장에서 차트맨이 되어서 
자신의 집을 차트위에 올려 놓고 
매일 시세를 확인하면서 신경을 기울이면서 
생활을 해가는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결국 이 과정을 되도록 생략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으로 진입시키는 부분이 
중요한데 
현실에서 필요한 내용이란 
결국 각 주체가 
현실에서 대부분 이처럼 초점을 맞추고 
집착을 갖고 대하는 내용들에서 
그 최정점에 서서 환멸을 빨리 느끼는 활동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이란 인물과
관련된 내용이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알고보면 결론적 내용은 그것인데 
그런 것을 놓고 대부분 평생 생사고통을 겪고 
실질적인 낙타 형태로서 현실에 임한다. 

그래서 삶을 마칠 때는
자신이 평생 축생인 낙타처럼 또는 아귀처럼
또는 지옥중생처럼 지냈다고 회고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생사를 겪는 병목지점에서는 
누구나 그것이 자신의 생사문제 해결에 하등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대단한 장애를 겪게 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사정으로 다음 주제로 빨리 넘어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mus0fl--Johnny Hallyday - Quand Revient La Nuit.lrc


앞에서 니르바나 행복론에서 다루는
수많은 세속적인 희망과 관련된 문제의 해결방안이 갖는 문제점을 사례를 들어 살폈는데
생사현실에 임하는 수행자도
생사현실에 임하는 것은 다른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수행자는 이것을 부처님의 자산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자산은 팔고 사는 것이 아니라고 또 보는 것이다.
이 내용이 이전에 살폈던 경전
불설목련문계율중5백경중사라는 곳에서도 살핀 적이 있는데
그런데 중생제도와 성불을 위해 무량겁에 걸쳐
생사현실에 임해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세상에 부처님 자산이 따로 있고 
중생 자산이 따로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고 
일체가 다 그렇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수행자 입장에서는 
현실에서 보는 자신과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 일체가 
모두 망집에 바탕해서 일으킨 망상분별인 것이고 
본래는 그에 해당하는 참된 진짜의 내용이 없고[무소유]
그 본 바탕의 실재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불가득]라고 
기본적으로 관하고 현실에 임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관하고 임하는 수행자는 
그가 수행하는 불국토로서 10 억 세계에서만 자유자재하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의 불국토를 또 그렇게 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참고 불설목련문계율중5백경중사K0929 T1483 2. 문불사품(問佛事品)


사정이 그런데 어떤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서 
어떤 부동산을 하나 소유하고 그것이 자신의 자산이라고 여기고 집착하면
우주적으로 점도 되지 않는 것을 놓고 
온갖 번뇌를 일으키면서 그 세계에 그가 갇혀 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어떤 이가 그런 점을 놓고 집착을 하니
그 부분만이라도 따로 떼어 놓고 수행자가 나머지만 차지해도
굉장히 상대적으로 많이 차지하는 것이 될 것인데 

알고보면 그 주체는 그렇게 그런 점에 묶여
평생 낙타가 되어서
그가 가진 자산이라는 짐을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이 시간대에서 저 시간대로 
그리고 이 주체에서 그 자산을 이어 받을 또 다른 주체로 
힘겹게 옮겨 놓고 삶을 마치게 될 뿐이라는 의미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 안에서
만일 어떤 주체가 그 짐을 대단히 많이 지고 
그렇게 임해서 그가 대단히 만족을 얻게 되고
나아가 생사현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면 
아마 칭키츠칸 만은 그 문제를 그렇게 해결했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가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심지어 천연두나 온갖 질병 치료도 잘 하지 못하고 열악하게 생활하던 과거에  
정작 그런 점마저도 소유하지 않는 수행자들은 그런 문제때문에 
전혀 수행도 못하고 생사의 묶임도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정작 수행자가 수행함에 있어서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고 
그런 상황에서도 수행자는 생사에서 벗어나고 
또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 조금이라도 과거보다 나아진 상태가 있다면
그것을 정말 그 효용대로 잘 사용하고 나아가는 입장은 
정작 이런 수행자라는 의미다. 


그 사정이 왜 그런가하면 
벌이 열심히1 년간 숲을 자신의 뜻에 의해 '열심히 날아다니면서 
꿀을 따 모으면 그런 노력 때문에 벌들이 계속 대를 이어 
점점 풍요롭게 잘 살 것 같은데 
알고보면 그 벌이 딴 꿀은 벌보다 수명이 길고 
복덕이 많은 인간이 그것을 차지한다고
이것을 보게 되는 것처럼 
욕계의 현실이 사정이 그렇다는 의미다. 

그 내용이 오늘 살피는 대승백복상경의 첫부분에 제시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나하나 그 복덕과 지혜와 수명이 긴 단계가 제시될 때마다 
계산을 해야 하는 세계와 그 안의 중생수가 점점 많아지는데 
그렇게 그 복덕과 지혜를 다 모으고 모아야
비로소 위 단계에서 누리는 복덕과 지혜와 같아진다고 제시된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상대적으로 이런 각 세계들 간의 상태가 
알고보면 꿀을 만드는 벌과 인간의 관계와 사정이 같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한참 나아가다 보면 
이제 수행자의 각 단계에서 누리는 복덕의 양이 또 제시된다. 

그러니 이 사정을 관하고 
현실에서 지혜가 있으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투자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고 빨리 간파를 해야 하는 것이다. 

대단한 예언가가 아니더라도 
아무리 많은 자산을 산처럼 쌓아도 
지금 당장 수명을 2배로 늘릴 도리가 없다. 
그래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빨리 간파해야 한다. 

그렇게 해볼 일 안 해볼 일을 일일히 다 해보고 나서 
죽게 되는 그 시점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 사정을 그렇게 알게 되면 
대단히 곤란하다. 

자신의 한 분야의 희망을 놓고 
그것이 지위이던 부의 액수가 되었던 
그 분야에서 무량하게 나아가서 그 최극단점에 자신이 위치했다고 가정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한 것인가를 보고
다시 그렇게 얻어진 답 내용을 또 이를 붙잡고
앞의 질문을 또 한번 되풀이하고
그런 가운데 최종적인 내용으로 나아가면
결국은 사는 동안 평안하게 생존하면서
즐거운 맛을 보고자 한 것뿐이다. 

물론 그것을 얻는데 대단히 좋은 자동차 
대단히 좋은 음식, 대단히 좋은 주택 
기타 등등 각종 문명시설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것을 추구했겠지만,
과연 그것을 통해 얻었겠는가. 이것이 의문이다. 

과거에 이와 관련해 대단히 큰 자락도구의 문제를 제시한 적이 있는데 
이론상 스스로 즐거운 맛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나 수단의 양이나 크기가 크면
그로 인해 얻는 즐거운 맛도 비례해서 
대단히 다양하고 클 것처럼 여겨지지만, 
알고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어떤 모자를 어떤 이가 거저 얻는데 
그와 같은 모자를 어떤 숍에서 몇백만원을 얻고 구한 이처럼 
사실은 어리석은 행위인 것이다. 



현실에서 보면 
등기된 소유자와 전혀 차이가 나지 않게
그 물건을 다 마음껏 사용하고 효용을 얻는데
그러나 정작 등기된 소유자가 행하는 매매를 못하는 형태가 있다. 
매매를 못하므로 그것을 다른 현금으로 바꾸지 못해 
다른 형태의 자산을 또 구하지도 못하고 
사정이 그러므로 그 자산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지도 못하기에 
어떻게 보면 이름뿐인 소유자다. 

그런데 이런 형태가 현실에 대단히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 
당장 어느 국립공원을 방문해도 그 사정이 그와 같다. 
어떤 대단한 정원을 갖고 있는 재벌보다 더 좋은 숲을 
자신이 거닐고 향유를 다 하는데 
다만 재벌은 그 정원을 다시 팔아서 현금으로 만들 수 있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못한 것 뿐이다. 

그외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도서관이나 공원이나 체육시설도 마찬가지다. 
이 하나하나를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해서 소유하려면 
그 하나하나가 대부분 몇 백억원이 필요한 큰 자산이 되는 것인데 
그러나 이런 시설을 이용하는 입장은 
그 시설을 사용은 하지만,
그러나 정작 팔지 못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에서 팔지 않거나 못하는 소유자의 사용 형태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그런 자산을 통해 
무엇을 얻고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한 것인가를 놓고 보면  
이 부분에서 그것을 향유하지만,
정작 그 자산을 팔지 않거나 팔지 못하는 소유자가
훨씬 그 상태가 나은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현실에서 잘 파악하고 
이 이치가 수행 부분에서도 사정이 마찬가지임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자산이 평안한 생존과 즐거운 맛을 얻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측면에서 가치를 갖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두 수행자가 추구하는 수행목표와 다 관련이 된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은 그런 자산을 굳이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부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자세히 보면 그렇다. 
어떤 종교단체가 어마어마한 대학교를 세우고
복지시설을 만들고 운영한다고 할 때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리고 정작 자신의 명의로 된 그런 자산이 많은 이가 
정말 현실에서 앞과 같은 평안한 생존과 즐거운 맛을 얻는가를 살펴보면 
그 반대임을 보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의 자산은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수많은 번뇌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으로 그 정점에 있다고 보는 현실의 부자들이 
이로 인해 쉼없이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온갖 스트레스와 짜증을 부리고 
다른 이에게 거칠게 대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많은 부를 가지고 평안함을 얻지 못하는가. 
그것은 쉼없이 차트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자신의 뜻처럼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주체 자신이 처음부터 
자기 자신의 본 정체와 
또 그런 자신이 대하는 것들의 정체와 
이런 것들로  자신이 얻고자 하는 최종 내용의 정체를 
먼저 잘 파악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주식시장과 같은 곳에서
어떤 종목이 크게 오르고 
다른 종목은 반대로 내리고 쉼없이 오락가락 상횡이 변해가는 사정 때문에 
이 시장에서 거래하는 각 당사자들이 평안함을 누리지 못하고 
그 거래 차트를 놓고 수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현상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현실에서 각종 거래에 임하는 차트맨의 현실 상황이기도 한 것이다. 

시세 변동을 통해서 시세차를 거두고 그로 인해 
수익을 크게 올리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 상태가 기본적으로 
평안하지 못한 사정이 이처럼 있다. 
한번 시세차를 얻고 수익을 얻으려면 무언가를 팔아야 하고 
그렇게 팔았으면 다시 그것으로 다른 것을 또 구해야 하는데 
그것도 역시 또 다른 시세차를 얻을 자산이어야 하고 
과거의 것보다 더 높은 시세차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희망하면서 계속 그렇게 반복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늘 뜻과 같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만 
그렇지 않기에 사실은 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장에서도 팔지 않는 입장이 가끔 있다. 
예를 들어 창업주나 소수주주가 경영을 위해서 보유한 주식 
이런 등등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예외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수행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수행자는 예를 들어 자신이 사바세계에 임해서 
수행한다면 이번 생만 놓고 어디로 도망가서 잘 살거나 
한번 원없이 소원을 다 성취해가면서 잘 살고 
이후에는 게속 지옥에서 지내겠다는 등의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에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은 계속 무량하게 수행을 이어나가서 성취한다 
이런 것이 수행자의 기본 자세인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온갖 번뇌 망상을 다 제거하고
이런 망집에서 풀려난 상태가 먼저 되지 않으면 
수행 자체가 곤란하. 

조금 쉬고
다음은 손에 사과를 쥐고 
두드려 소리를 듣고 촉감을 얻게 될 때 
이 상황을 잘 관해서 
이 상황에서 자신이라고 보는 것이 
어떤 상태가 되는 것이 생사에 묶인 상태이고 
또 어떤 상태가 되는 것이 해탈과 열반을 얻는 상태인가. 

그리고 왜 생사현실 일체는 무상하고 고통이라고 하면서
열반의 상태는 상락아정의 상태라고 제시하는가를 이어서 살피기로 한다. 

이미 글이 길어서 매번 이런 식으로 제시하고 쉬다가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일단 이렇게 다음 주제를 적어 놓고 
쉬기로 한다. 







mus0fl--Johnny Hallyday - Laura.lrc


풍광 사진에 국립대학교 사진이 올려져 있다. 

국립 대학교이므로 국민 전체와 국가가 주인인 학교인데 
실질적으로 이런 학교는 누가 주인이라고 보는가를 놓고 

하나의 아파트나 주택을 놓고 여기서 어떤 활동을 하는 이가 
참된 주인인가 
이런 것을 함께 잘 대비해서 살펴보면 
앞에서 제시한 내용 큰 자락도구가 갖는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누군가 대학교 정문을 지키는 경비아저씨부터
그곳에서 공부하는 학생, 강사, 교수, 대학총장, 
사립대라면 이사장 이렇게 다양한 인적 구성원들을 나열해 놓고 
주인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물론 이들의 활동을 다 나열해 핵심을 이어 붙이면 
그것이 이런 하나의 거대한 대학 공간의 주인을 
찾는 내용이 될 것이다 
여하튼 그 가운데 어떤 내용인가가 그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선 여기서 구분할 부분이 있다. 
무언가 실질적인 활동을 하는데 
그것이 마치 노예처럼 묶여서 무언가를 행하는 상태라면 
그런 경우는 일단 주인은 아니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외관상 그런 활동을 그처럼 하는 것이 
사실상 한 주택을 놓고 주인이 행하게 되는 그런 활동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그러나 정작 그 활동을
그 주체가 묶여서 억지로 하는 상태라면
여기서 먼저 제외하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 

시설을 보호하고 지키는 일은 대부분 주인이 하는 일인데 
이런 시설을 놓고 그렇게 행하는 이가 그렇게 행하는 그 실질을 살피니 
그런 활동을 하기는 하는데 
그 자신이 그런 활동을 함에 있어서 
주인이란 의식도 없고 
그저 묶여서 하라고 하니 하고 
보수를 주기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 뿐이라고 한다면 
그 경우는 제외해야 한다고 누구나 보게 된다. 

또 공부를 하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알고보면 이런 학교의 주인은 학생같은데 
어떤 수업이 어떤 사유로 없어지면 
마치 죄수가 감옥에서 풀려난 것처럼 환호를 내지른다면 
이 경우도 그 실질이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나머지 부분도 다 사정이 이와 같다. 

그리고 이런 국립 대학교의 실질적 이사장에 해당한다고 할 
국민 개개인의 의식도 알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국민이 주인이라고 헌법에 명문으로 표현했어도 
개개인의 국민이 살아가는 동안 한번도 그런 의식을 갖지 못하고 
이런 시설을 대했다면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그런데 거대한 자락도구란,
그런 일은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이런 거대한 시설이 필요한 부분도 물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보는 부분도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에 노스핀 국가에서
예를 들어 노르웨이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
스웨덴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 
핀판드에서 국회의장인 사람이 
누군가를 알고 
과연 알 필요가 있다고 보는가 
이런 문제를 낸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그 나라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 
가장 지위가 높고 힘이 강한 이를 뽑으면 
그 사람이 그 현실에서 가장 부러움을 많이 받고 
복덕을 누린다고 보는 상태임은 분명하고
그렇지 못한 상태보다는 훨씬 나은 것만은 분명한데 
그런데 그 가치의 상태를 알고보면 위와 같다는 의미다. 

그것이 대승백복경에서 기본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그 사정을 살필 수 있다. 
지금은 대단히 그런 이들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세월이 흐르면 그렇지 않고 몇천년을 두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활동을 하는 경우는 따로 있다고 
누구나 보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알고보면 그런 경우는 공연히
쓸데없이 크기만 한 자락도구를 붙들고
여기에서 저기로 그것을 옮겨 놓은 것 뿐이라고
이 사정을 설명하게 된다는 의미다. 

왜 그 본 바탕이 차별이 없는데 
이렇게 되는가는 
처음부터 그 사정을 살폈다. 

그가 초점을 맞추고 붙들고 늘어지는 
그 부분이 그렇게 된 그 사정인 것이다. 


처음에 낸 위 문제는 본인도 답을 모르고 낸 문제인데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내다 시사상식 TV프로를 보다 보면
해당 인물들을 들어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 노르웨이 황태자가 어떤 결혼을 했는데 
그 상대가 너무 특이한 이력이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국민들 대부분이 반대했는데
그런데 일순간에 그 반대가 사라지기도 했는데
그러나 결혼 뒤에도 이런 저런 사건도 있었다고 하고 
그런 보고를 보고 얼마간 관심을 가진 적도 있다. 
그런데 여하튼 그런 일이 세상에 있기도 하지만,
그렇게 오래 기억할 내용은 또 아니라고도 보게 된다. 

그래서 알고보면 사정이 그렇다라고 보게 된다. 

현실세상에 돈도 많고 의술도 좋은 의사가 많은데 
적어도 쉬바이쩌 박사를 능가하는 의사로 기억될 만한 의사가
별로 없는 것도 알고보면 그런 사정인 것이다. 
알고보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이 결국 대승백복상경에서 
점차 윗 단계로 나아갈 때 가치의 평가가 
차이가 나게 되는 기본 사정들인 것이다. 


앞에서도 이런 문제를 살피기 위해서는 
처음 사과를 자신의 손에 쥐고 
두드리면서 소리를 듣고 
그리고 촉감을 얻는다고 하는 상황에서 

그 상황에서 어떤 상태로 그 자신의 정체를 이해하고 
어떤 상태로 임하면 
현실에서 아무 쓸데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 빨려들어 갇히고 
생사에 묶이게 되는가 

또 반대로 어떻게 관하고 
어떻게 그 상황에 임하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열반경에서 상락아정의 상태라고 표현하게 되는 
상태를 얻게 되는가. 
이 문제를 먼저 잘 살펴야 한다고 했는데 

앞과 같은 여러 가치의 차이가 나타나는 사정이 
바로 이 부분에서 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한 주체가 
자신과 세계에 대해서 
망집을 일으켜서 임하는가 아닌가의 
구분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잘 살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처음 사과를 자신의 손에 쥐고 
그것을 손으로 두드리면서 소리를 듣고 
그리고 만지면서 촉감을 얻는다고 하는 상황에서 
대부분 자신이 눈으로 보는 사과를 무엇이라고 보게 되는가. 
이 부분부터 잘 살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일반인들이 보게 되는 내용을 
그대로 하나하나 받아 적어 놓으면 
그것이 바로 생사현실에서 
대부분 일으키는 망상분별의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 대해서 
부처님이 무엇이라고 제시하게 되는가 하면 
그것이 바로 그런 생사현실 일체가 무상하고 
또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그 모두는 고통으로 귀결된다고 제시하는 내용이 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대충 조각글들을 건너 뛰면서 
여러 경전을 살폈는데 
대부분 그와 같은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가는 위 내용을 놓고 
조용히 천천히 잘 생각을 하면서 
넓고 길고 깊게 잘 관찰해서 
그 각각의 정체를 살펴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지금 갑자기 살핀 것이 아니고 
오래 전부터 반복한 내용인데 
그렇게 그처럼 평소 자신이나 세계라고 이해하고 대하던 
내용들을 하나하나 살피면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런 생사현실의 본 정체
거기에 생멸이나 생사나 오고감을 본래 얻을 수 없는 그런 것이다라고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상태는 어떻게 보면 
그것을 영원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앞에서 무상하다든지 
유무의 논의에서 그런 것이 없음을 반복해 강조하다보면 
이런 내용이 본 정체를 이해하게 만들기 위해서 
부처님이 동원하는 언어 시설이고 방편임에도 
그 사정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내용에 오히려 집착하고 묶이는 상태가 
거꾸로 나타나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 
즉 처음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로 
무란 표현을 사용하면 
무란 내용을 놓고 다시 집착을 일으켜서 
묶이게 되므로 
이제는 거꾸로 그 반대되는 표현으로서 
그런 망집을 다시 제거해주게된다는 그런 의미인 것이다. 

이 사정이 열반경에서도 자세히 제시되는데 
여하튼 이런 유무, 상, 무상, 이런 각 표현은 
결국은 언어를 떠난 그런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서 
동원하는 방편이고 시설인 것이다. 

그래서 그 본 정체의 상태는 
어떻게 보면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하기에 
없다고 하는 표현에 가깝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또 아니기에 
오히려 늘 항상 그렇게 있다라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 그런 내용이 된다는 의미다. 

이렇게 제시하면 
자꾸 서로 모순되는 표현을 오락가락하면서 
제시하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아무렇게 갖다 붙이는 것처럼 이해하게 되지만, 
그 사정이 그렇다는 의미다. 

그것을 처음에 이해하려면 
처음에 제시한 것처럼 
사과 하나를 놓고 그것을 손으로 두드리고 만지면서 
소리도 듣고 촉감도 얻을 때 
그 소리나 촉감을 무엇을 대상으로 어떻게 얻은 것 같은가. 
그래서 세계나 그런 내용을 얻는 자신의 정체는 
무엇인것 같은가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쉬었다가 이어 살피기로 한다. 





mus0fl--David Hallyday - Laura Smet - On Se Fait Peur.lrc


풍광사진을 계속 붙이다 보면 
마치 국립공원이 사용은 하고 관람은 하되
팔지는 못하는 자산이어서 별 의미가 없다고 대하게 되는 경우처럼 

열심히 이곳 저곳을 살펴보기는 하는데 
정작 그곳이 무엇하는 곳인지
별 관심을 갖지 못하게 되는 그저 그런 모습일 뿐이라고 

여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사진을 찍어서
어느 사이트에서 이것을 자유롭게 보게 해주니 
정작 보는 이가 이렇게 이 사진을 이렇게 대하고 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집도 없고 그저 손발만 달려 있어 건강하고
별 문제가 없어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이도 상태가 비슷하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면 바로 그 상태가 
어떤 수십조원의 자산을 가진 재벌회장이 단지 그렇게 
자신의 힘으로 걸어다닐 수만 있으면 원이 없겠다고 
병원침실에서나 또는 감옥에서 희망하는 그런 상태라는 것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뽑여진 노래를 자꾸 듣다 보면 
불교 경전을 놓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가 
왜 쓸데없이 세속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는가 이런 문제제기도 하고 
그런 문제는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이들간에 그런 방식으로는 끝내 
적절한 해결방안을 찾을 도리가 없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한다고 듣게 된다. 

그런데 여하튼 그런 세속 문제를 놓고 
어느 한 분야의 최정점에 이르렀다거나
또는 그런 분야를 놓고 최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상태에 있아면
미리 그런 내용을 놓고 최종적으로 
turn 을 할 방향
즉 불교 경전에서 말하는 회향지점을 함께 놓고 이것을 살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최근 화엄경에서 10 회향의 9 번째 항목 무착무박해탈회향의 항목도 살피고 
또 다른 판본의 화엄경에서는 10 지의 6번째 항목인 현전지 등에 대한 내용도 살폈는데 
결국 이들 내용이 모두 이런 문제와 함께 관련이 되는 것이다. 

세속에서 점과 같은 부분을 놓고 집착을 갖고 임하는 이는 
그것만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여기면서 
자만심을 일으켜 임하기 쉬운데 
알고보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경우가 없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자신이 어떤 한 부분을 놓고 
그 최정점을 향해 노력하고 
그래서 그 극한을 무량하게 나아가고 또 나아가서 
그래서 한없이 그 상태를 누리게 되었고
그래서 더 이상은 여기서 더 할 것이 없다고 할 때
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한 것인가 하면
그 내용이 바로 회향의 내용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세속에서 손오공이 온갖 재주를 부려서 
공간의 끝까지 날아간 다음에는 더 갈 곳이 없다고 볼 때 
다시 방향을 돌려 되돌아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수행자가 행하는 회향은 이와는 의미가 다른 것이다. 

자신이 쌓은 온갖 공덕을 한편으로는 
중생들에게 돌려서 이 중생들이 이로 인해 자신과 함께 
수행에 진입하고 그래서 불국토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이 첫번째 turn 의 의미이고 

또 지금까지 어떤 한 부분의 수행을 성취했다면 
그 상태에서 또 다른 더 높은 상태로 수행의 방향을 향해 나간다는 의미가 
또 turn 의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그 최정점에 곧 부처님이 얻는 깨달음과 
열반의 증득 이런 것들이 나열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수행자에게 어떤 수행분야를 놓고 그 수행을 잘 성취하면 
그렇게 수행을 성취한 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한 것인가라고 물을 때 
답하게 되는 내용들이 바로 이런 회향의 내용들인 것이다. 

열반경 종요에서 열반의 의미를 살필 때 
모든 중생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본 바탕의 청정한 니르바나와 함께 
수행을 통해 아라한이 얻는 열반의 상태를 살폈었는데 

부처님이 증득하는 열반이 본래 이런 상태와 차이가 없고
따라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 해탈을 이뤘다는 점에서는
아라한과 공통한다고 제시되지만, 

그러나 부처님은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법신을 증득해서 
성불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제시했는데 
결국 수행자가 처음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 
점차 수행을 해나가면서 방향을 돌려 나아가야 할 목표점들이 
바로 이런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이 오늘 살피는 대승백복상경에서도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 사정으로 
원력과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대비(大悲)와 대혜(大慧)와 방편력(方便力)

등을 나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어떤 한 부분을 성취하고 
그 공덕을 통해 중생들에게 돌려서 
중생들을 수행으로 진입시키는 과정에서 
보통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세계로 이끌게 되는데 
그 사정은 아미타 부처님이 자비방편력을 가지고 
극락세계를 만들어 운영하시기 때문이다. 

올려진 노래를 듣다보니 아촉불이 언급되는 듯한데 
아미타부처님과 아촉부처님의 국토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유마힐경과 유마힐거사가 유명한데 
유마힐거사의 출신지가 바로 아촉부처님의 국토인 것이다. 

수행자가 수행에 임하는 정도를 군대에 비교한다면 
아촉부처님의 국토는 해병대나 공수부대 이런 상황에 비교할 수 있고 
아미타부처님의 국토는 이와는 상황이 반대인 것이다. 

그래서 회향을 하고자할 때도 미리 이런 점을
각 수행자의 특성에 맞추어 잘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각 부처님들이 법신을 증득한 점은 공통하지만, 
각 부저님마다 조금씩 특성이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사바세계의 석가모니 부처님 
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 
약사여래님 을 놓고 본다면 
부처님이란 점에서 공통하지만, 
또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어떤 수행을 성취하고 공덕을 쌓은 다음 
turn 을 할 때 어떤 불국토로 갈 것인가도 
여기에서 고려할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국토에 가서 일정한 수행을 하는 것은 
또 그런 수행을 완성한 다음 다시 어느 곳으로 돌아와
어떻게 중생을 제도해 나갈 것인가 등등을 놓고
미리 turn 즉 회향을 할 내용을 
잘 생각하고 그렇게 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보통 사바세계에서 수행하는 이가
사바세계에서 어느 정도 수행을 하고
극락세계를 놓고 회향할 때 
왕생회향과 환향회향 이렇게 구분해 제시하게 되는 내용이다. 

결국 중생제도를 위해서 그리고 수행자 자신의 서원에 맞추어 
수행을 성취해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방향을 돌려서 나갈 것인가 
이런 문제가 이와 관련된다는 의미다. 

그것이 알고보면 
세속에서 각 부분을 성취한 가운데 
점차 수행으로 진입하고 
그 수행에서도 한 분야 한 분야를 단계적으로 성취해나가면서 
점차 더 높은 수행단계로 나아가는 회향의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앞에서 사과를 놓고 손으로 두드리고 만지면서 소리를 듣게 되고 촉감을 느낄 때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망상분별의 내용은 
과거에 반복해 제시한 바 있다. 
이는 너무 많이 반복해서 아예 축약키에 넣어 제시했던 사정이 있다. 

그러다가 아예 독립적인 페이지를 만들어 정리했는데 
그것이 다음이다. 

●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망상분별
http://buddhism007.tistory.com/4615 


이는 현실에서 위 상황을 놓고 대하면 
꼭 자신이 눈으로 보는 사과가 대상이고 
그 대상을 자신의 손이 대해서 그런 촉감을 얻게 된다. 
이렇게 여기게 되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그 상황에서 대하면 그 소리를 얻게 한 대상이 
꼭 자신이 보는 사과인 것처럼 여겨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자신이 거울로 보거나 눈으로 보는 귀나 손 그런 것이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부분처럼 여겨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런 기관이 있는 부분이 바로 자신의 몸이고 
자신이라고 여기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과거에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의 관계로 
대단히 많이 반복해 살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사정이 그렇지 않은데도 
현실에서 그렇게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대하게 되게끔 되는 그 사정도 
처음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일으키는 공중 3 회전에 걸친 망집현상과 함께 
1,2,3,4,5,6,7,8 이런 정신들을 통해서 
그 사정을 살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망집을 바탕으로 그런 현실에 본래 얻을 수 없는 
생사나 생멸이 있다고 보는 측면에서는 
그것을 일체가 무상하고 고라고 제시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그런 망집을 떠나서 
앞과 같이 제시한 방편 시설을 통해서 
이들 내용의 정체를 살피면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처음 일체가 무상하다는 것은 
앞에서 기본적인 망상분별이라고 보는 내용을 놓고 
일반인들이 이것을 대단히 집착하고 
이를 외부세계나 외부대상 외부물질 또는 객관적 실재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대하므로 
그 일체가 다 그런 집착을 가질만한 것이 없고 
무상하다는 것을 제시해서 
그런 망집을 벗어나게 하는 취지라면 

그런 가르침을 통해서 
그런 것이 실답게 있다는 망집은 제거하게 되는데 
이 경우 다시 그런 가르침을 통해
전혀 아무것도 없다는 망집을 다시 일으켜 갖게 되므로 
열반경에서 이것을 다시 상락아정과 같은 가르침을 통해서 
또 다시 제거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에 관한 사정이 우유약의 비유 등을 통해 
제시되고 있는데 
처음에 사용한 약이 과거의 질병은 치유하는데 
그 약이 또 다른 부작용을 일으키므로 
이제 다시 그것을 제거하는데 임하게 된다는 그런 의미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언어 방편 시설을 통해 나타내자면 
오히려 이처럼 얻게 되는 열반의 상태는
상락아정의 상태라고 제시하게 된다는 의미다. 

더욱이 이런 기본적인 열반도 열반이지만
부처님이 되기까지 한 수행자가 쌓은 공덕을 놓고 살피면 
부처님이 그런 수행으로 얻게 된 
복덕이나 지혜나 수명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놓고 보면 
티끌과 우주를 비교하는 것처럼 차이가 커서 
또 이 역시 그처럼 수명이 무량하다고 제시하게 된다는 의미다. 

참고 묘법연화경 여래수량품 

그리고 이 사정이 지금 대승백복상경에서도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수행자가
세속에서 점에 갖던 집착을 제거하고
수행에 임하려니 할 일이 없다거나
소일거리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걱정하면서 
임할 도리가 있겠는가. 

사정이 그 반대라는 의미다. 

여하튼 지금까지 밀렸던 내용을 함께 다 같이 
묶어서 요점만 살피고 이만 마치기로 한다. 


글을 마치면서 오늘 경전을 살피는 가운데 
요즘 세속에서 많이 문제되는 
부동산 문제나 주택 그리고 경제적 문제를 잠깐 살폈는데 
오늘 살핀 경전에서 
이와 관련된 문구를 보게 된다. 

실리바차상(室利婆瑳像) 이런 표현이다. 
물론 이것은 범어를 표기한 글자라고 보는데 
공교롭게 그런 소리를 적은 한자어가 
오늘 살핀 내용과 일부 관련이 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마치 불어 노래에서 전혀 엉뚱한 한국어를 듣게 되는 현상과 
비슷한 것이다. 

집 실
이로울 이 
할머니 파(바) 
고울 차 
모양 상 
이런 한자어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그런 의미를 나타내겠는가. 
그런데 여하튼 이런 글자를 놓고 
경전에서 제시하는 깨달음과 열반의 의미와 함께 
넓고 길고 깊게 잘 살펴야 할 주제가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가장 초점을 집중시키는 부분이 이 부분인데 
처음 그렇게 초점을 맞추어서 
끝내는 환멸을 느끼고 쓸데없는 내용을 다 제거한 다음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해서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해서 
열반을 얻어 머무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리바차상이란 만(卍) 자의 모양을 가리킨다. 
만자를 잘못보면 과거 나치가 사용한 표시로도 오해받기 쉽다. 

물론 기원을 보면 원래는 둘다 다 사용하기도 하는데 
여하튼 오늘날 만자는 왼쪽 윗 부분이 ㄱ 자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것은 잘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길상 만덕을 상징하는 것이다. 

수행에 정진해서 
좋고 좋은 공덕이 수없이 중첩해 쌓인 상태가 되어서
얻는 상징인 것이다. 

일단 마치기로 한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128#5469
sfed--대승백복상경_K0244_T0661.txt ☞◆vtmz5469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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