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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10-01_불설사미증유법경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10-01_불설사미증유법경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10. 1. 13:51



®


불설사미증유법경
K0748
T0136

불설사미증유법경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불설사미증유법경_K0748_T0136 핵심요약



♣0748-001♧

♧불설사미증유법경



>>>

“전륜성왕에게는 

4 가지의 미증유법(未曾有法)이 있으니, 


>>>

전륜성왕은 

백성을 모두 사랑하고 생각하여 한 번도 상해한 적이 없으니, 

마치 부자간과 같다. 


>>>

전륜성왕이 백성 사이에 순행하면 

보는 자가 모두 기뻐하여 

자식이 아비를 보는 것같이 한다. 


>>>

전륜성왕이 백성에게 설법을 하면 

듣는 자가 모두 기뻐한다. 


>>>

전륜성왕의 교칙을 듣고 기뻐하며 

싫증을 내지 않는다. 


>>>

이와 마찬가지로 아난 비구에게도 

4 가지 미증유법이 있다. 


>>>

아난 비구가 

비구의 무리 속에 이르면 

여러 비구는 그를 보고 모두 기뻐한다.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

>>>



◆vrzc5380

◈Lab value 불기2562/10/01/월/01:52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Dick Rivers - Baby John.lrc

♥ 잡담 ♥난제의해결방안-알~지브라방식


앞 조각글에서 마음과 관련해 살펴야 할 여러 주제를 나열했는데 
대부분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마음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기에 
복잡하게 여기는 한편 대단히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기 쉽다. 

경전에서 기본적으로 
한 주체는 '근본마음'을 바탕으로
근본무명으로 인해 무량겁을 두고 
각 세계에서 각기 다른 생명형태로 태어나 살다가 죽는 일을 
무한히 반복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해결해야 할 생사고통의 문제이므로 
그렇게 임하게 만드는 망집을 제거하고 
수행에 임해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고 
이후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다시 생사현실에 임해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런데 그런 '근본마음'을 바탕으로 
무량겁에 걸쳐 수행해간다는 내용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제시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앞과 같은 사정때문에 난감하게 여기기 쉽다. 

세상에 누가 무량겁에 걸쳐서 
도대체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데 
그 누구의 마음을 계속 쉼없이 관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관찰하고 나서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고 다른 이를 상대로 말해준다고 한다면 
그 상대는 또 그것을 어떻게 확인하겠는가. 

이런 사정때문에 이런 주제가 제시되면 
생각해보면 근거를 밝히기도 어렵고 
밝힌다고 해도 이해해 받아들이기도 힘들어서 
이는 혹시 주장만 있는 공허한 내용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 내용은 지금 바로 이 현실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 문제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그에 관한 자료나 근거를 모두 
지금 이 현실에서 다 찾아낼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량겁이라는 것은 
생전과 생후가 무시 무종의 상태로 
그렇게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미 그렇게 자신이 현재 놓여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문제를 직접 붙잡고 
해결해보려고 하면 
정말 무량겁을 한번 지내보고 
그리고 나서 살펴보자고 임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설령 그런 과정을 거쳐서 알게 된다해도 
정작 처음 시점으로 다시 돌아와 현실에 임하기 힘드므로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마치 어떤 투자를 할 때
차트를 다 보고 나서 투자방안을 정하자고 하는 입장과 같은데 
그러나 정작 다 보고 나서는 
처음 시점으로 돌아가 종목을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오히려 
다음 방안 들을 통해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가장 간편한 방법을 살피기로 한다. 

배경 그림에 얼룩말이 보이는데 
얼룩말은 영어로 지브라 zebra라고도 하는데 
이것과 발음이 비슷한 알-지브라 algebra이런 방식을 사용하여 
각 경우수를 벌여 놓고
이 문제를 살피는 방식으로 임하면 
굳이 위와 같이 어렵게 살피지 않아도 
곧바로 결론을 얻어내고 수행으로 진입해 들어갈 수 있다. 




알고보면 마음에 대해 그것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렇게 알고 지적 호기심을 해결하고 끝내자. 
이런 취지의 논의가 아니고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당장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 경우는
이에 바탕해 바로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
또 앞으로도 그런 상태로 들어가지 말자. 
이런 취지다. 

그래서 그렇게 생사고통을 벗어나 있는 상태에서는 
또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여여하게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하고 
생사고통을 받는 다른 중생을 구출해내기 위해 
수행을 잘 해나가자. 
이런 취지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취지에서 그런 내용이 제시되는 그 기본 바탕을 잘 이해하자는 것이지 
현실에서 마음과 관련된 현상이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되는지 자체에 대해
지적 호기심이 생겨났으니 
문제되는 모든 주체의 전생도 살피고 후생도 살피고 그러면서
각 주체가 그런 상태로 놓이게 된 사정에 대해 
어떻하던지 궁금증을 해결해보자는 이런 취지가 아니다. 


그래서 마음현상에 대해서 이런 노력을 통해 아무리 내용을 잘 알게 되어도 
정작 탐욕이 끓어 오를때라거나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그에 대해 상을 제거하지 못하고 평안하게 임하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는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런 경우는 차라리 마음에 대한 세세한 내용은 설령 몰라도 
그런 각 경우마다 수행의 방안을 잘 취해서 
잘 임하는 경우가 훨씬 낫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또 그런 수행에 임하면 나중에 
그 내용을 모두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 


눈의 구조에 대해서 의학백과사전 지식을 다 외우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지식으로 어떤 사물을 또렷하게 잘 볼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과 사정이 같다. 
또 수영에 대한 지식을 아무리 잘 알아도 물에 빠진 상태에서 
수영을 하지 않으면 결국 가라앉는다고 보듯 
현실의 사정을 아무리 잘 관한다해도 
그에 따라 현실에서 수행을 하지 않으면 
또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묶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결론적 내용은 
경전에서 제시된 내용을 잘 믿고
그 바탕에서 수행에 정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상태에서 왜 그런 수행방안이 그렇게 제시되는가.
그 사정을 잘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선 쉽게 앞과 같은 방식으로 그 결론을 얻어내는 
방안으로 결론을 얻어내면 되고 

그리고 나서 직접 그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려고 하면 
그 때는 하나 하나 주제를 놓고 세세하게 
살펴보면 된다고 할 수 있다. 

비유를 한다면 
병이 걸려 있을 때 
우선 의사나 약사의 처방을 믿고 그에 따라 
치료를 잘 받는 것이 중요하고, 

왜 그런 치료방안이나 약이 제시되는가가 궁금하면 
그에 관한 간단한 내용을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나중에 그 각 약이 그렇게 제시되는 자세한 사정을 
낱낱이 살피고 이해하려면 이제 의과대학이나 약학대학에서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제시하는 각 내용을 세세하게 
살피고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세세한 지식을 아는 의사나 약사라고 해도 
정작 그런 지식을 얻고 나서 
운동이나 건강한 생활을 하지 않고 
또 병이 들었을 때 취해야 하는 약을 복용하지 않고 
치료를 받지 않으면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 현상에 대한 여러 주제도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해결하는 목표와 관련해서는 
그 사정이 위와 같음을 이해하는 바탕에서 
위와 같이 단계적으로 살펴나가기로 한다. 


일단 쉬고 또 살피기로 한다. 
10 월로 달이 바뀌었는데 
밀려 있는 조각글 때문에 자꾸 9 월달을 바라보게 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Arthur H - Cool Jazz.lrc

이전 조각글에서 마음현상과 관련해 살펴야 할 주제들을 

여럿 나열했다. 



● 마음 현상과 관련된 주제를 살피는 간편한 방식 


마음현상과 관련해 살펴야 할 주제들을
대략적으로 간단히 요약해보면 다음을 나열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왜 있다고 하는가. 
마음이 '있는' 것은 마음이 '없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왜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그런 부분이 주체가 되지 않고 
이처럼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오히려 주체로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마음이 찰나전후나 생사 전후를 걸쳐 같은 마음이라고 보는 근거가 무엇인가. 
그리고 근본마음이 왜 생사과정에서 각 세계에 다른 생명형태로 활동하게 하는가. 
무량겁에 걸쳐 그런 마음이 없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제시하는가. 
그런데 또 왜 이렇게 제시하면서 이런 마음이 자신의 진짜 정체라고는 또 보지 않는가. 
그런 가운데 이런 마음을 무량겁에 걸쳐 한 주체의 핵심요소가 된다고 보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왜 일정한 수행을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면 그런 마음이 어떻게 되어서 어떤 상태가 된다는 것인가. 
이런 등등의 문제가 모두 마음과 관련해서 살펴야 할 문제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살피고자 하는 마음이란 표현과 관련해 일으키는 
기본적인 오해나 혼동이 있음도 살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마음이란 표현에 대해
각 입장에서 제각각 조금씩 달리 이해하는 내용을
이에 덧붙여서 이 표현을 대하기에 발생하는 혼동문제이다. 


이들 문제는 결국 관련 부분에서 하나하나 살펴나가야 하는데 
그런데 이들 문제를 살피게 되는 취지가
현실에서 수행을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그 바탕에서 무량겁에 걸쳐 수행해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해나가야 하는 
그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제시했다. 

그런 입장에서는 위 내용과 관련해서
그런 결론을 간단하게 얻어내는 방안부터 
잘 살필 필요가 있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이것부터 살피기로 한다. 


참고로 이런 방식은
어떤 것의 정체를 놓고 
문제삼는 내용이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내용인가 아닌가하는 
무아 무자성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문제를 살피는 가운데
무한겁에 걸친 생사과정을 이어주는 근본 마음까지 살피는 경우
나중에는 사정이 그렇기에 이런 근본마음을 
과연 참된 나라고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무아 무자성의 논의가 또 이 부분에 관련되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또 살펴야 하는데 
미리 이런 각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간단한 방식부터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는 다음 내용이다. 

하나의 문제를 살필 때 
원칙적으로 해당 문제를 놓고 
그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살펴서 결론을 얻어내는 방안이 하나 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살피지 않아도 
이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결론적으로 취할 내용을 
빨리 취해 이를 실천하는 방안이 또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 살피는 마음의 문제도 성격이 같다. 
하나하나 살피자면 대단히 복잡한데 
그 내용을 살피고 그 결론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취할 내용을 빨리 취해 실천하는 방안이 또 달리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는 뒷 부분부터 먼저 살피기로 한다. 


이와 관련해 먼저 알지브라 [algebra] 라고 표현하는
방안부터 이해해보자. 

어떤 논의과정에서 사용하는 언어표현이 
각 입장마다 혼동을 일으키면
논의과정에서 이로 인해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이미 앞에서 대강 살폈지만, 

자성이나 나[아]란 표현이나 
마음이란 표현이나 
다 다의적인 의미를 함께 나타내는 언어표현이어서 
기본적으로 각 입장따라 맥락따라 
혼동을 불러 일으키기 쉽다. 

경전을 보면 예를 들어 이렇게 나온다. 
여시아문 무아 무자성 

나는 이렇게 들었다. 나는 없고 자성은 없다. 

이 문장을 놓고 표현만 대해서 
각 부분이 무슨 의미를 가리키는가를 
기계적으로 파악해 낼 방안이 있는가. 
외관상 각 부분 표현이 같은데 어떻게 기계적으로 파악하겠는가. 

그런데 경전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비록 나라는 표현이 함께 이어져 나오지만 
처음 부분의 나와 뒷 부분의 나는 그 가리키는 의미가 
다름을 맥락을 통해 쉽게 파악한다. 

그런데 논의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자꾸 제기되면 
논의에 장애가 발생한다. 

그래서 논의 시작부분에서 
처음 논의를 행하고자 하는 초점과 
문제에서 찾고자하는 내용을 먼저 잘 판단해 정하고 
그 답에 해당할 내용을 별도로 
간단히 알파벳 기호로 나타내서 새로 정의한 다음 
논의에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 된다고 일단 본다. 

원래는 위와 같은 각 언어표현도 사실 그런 취지에서 
방편으로 제시하는 것인데 
그러나 정작 그로 인해 일으키는 혼동이 많기에 
위와 같은 방안을 사용해보자는 의미다. 


현실에서 문제되는 답을 수학에서 찾을 때 
찾는 수가 어떤 수인데
그 수를 제곱하고 거기에 9 를 더하면 25가 된다.
그런데 그 수가 무엇인가 
이렇게 문제가 되면 
문제는 같이 풀지만 조금 쉽게 이를 접근하려면 
그 문제에서 구하는 답 부분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조건 그 부분을 x 라고 표시하고 
이 문제를 접근하면 문제 접근이 훨씬 편해진다는 방안과 비슷하다. 

그래서 위 문제는 x*x + 9 =  25 

이런 형태로 나타내서 문제되는 x 를 구해 나가면 
좀 쉽다. 

그런데 여기서는 x라고 그 부분을 적으면 
비록 계산을 통해서 그 x 에 해당하는 수가 
+4 거나 -4 임을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냥 x 로 놓고 문제를 대한다는 방식이 여기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문제의 답을 일단 그렇게 x 라고 놓고 대하게 되면 
그로 인해 이미 문제를 반절 풀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그런 x는
구체적 내용이 명확하지 않기에 완전한 답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방안을 제시하는가를 살펴보자. 


사실 x 를 구하려면 앞에서 처음 제시한 원칙적인 방안을 통해
상당히 복잡하게 살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언어표현이 일으키는 혼동이 많은데 
이 과정에서도 이런 표현이 조금 도움을 준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게 구하는 답을 구체적으로 몰라도 
일단 그 답을 x 라고 표현하고 
그래서 그 답이 얻어졌다고 전제하고 
다음 문제를 대하면 오히려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이는 다음 경우다. 

처음 그  x 의 구체적인 값을 얻어내려고 한 것은 
그 x 가 그렇게 구해지면 
그 바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
그 x 를 구한 것이라고 해보자.

문제가 앞과 달리 x*x + 9 =  28 이런 문제라면
이 경우는 x 값을 정확히 찾아내기가 힘들어진다. 
제곱해서 19 되는 수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근사값으로 대충 만족하지 않고
끝내 정확히 수를 찾아내려면 시간이 무한히 많이 걸릴 수 있다. 
  

그런데 위 문제를 대하게 된 것은 
그 x  값에 따라서 어떤 상품을 구하는 데 
현금이 얼마가 필요한가 
이런 등을 알기 위해 
그 전제로 그 값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하자. 

만일 그런 입장에서 그 문제가 제기되었다면 
위 문제를 놓고 
그 x 를 구체적으로 몰라도 
어떤 방안을 선택해 취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간단하게 결론을 얻을 수 있다고 보게 된다.

문제가 그런 바탕이면 
소숫점 이하는 어차피 필요없다는 것이 
그 내용에 의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제를 대하는 취지에 따라서 
굳이 x 값을 놓고 원칙적으로 복잡하게 
살피지 않더라도 큰 관계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오히려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먼저 중요하고 우선되는 내용을 판단해 실천하고 
처음 제시한 그 문제는 필요할 때
원칙적으로 접근해 살피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첫 문제의 답을  x 로만 표현한 상태에서 
다음 문제로 넘어가도 되는 경우가 어떤 경우들인가가 문제된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앞과 같은 간단한 해결방안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는 경전에서 제시하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독화살의 비유가 제시하는 상황이다. 

어떤 이가 독화살을 맞은 상태인데
그 상태에서 독화살을 누가 쏘았고 
그 독화살은 어떤 재료로 만들었고 
이런 것들이 궁금하다고 해보자. 
그리고 그런 내용을 알기전까지는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임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부처님은 이를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이다. 
독화살에 맞은 상태에서는 
그것이 어떤 재료이던 누가 쏘았던간에 
우선 독화살을 뽑고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가
세간은 영원한가 그렇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없는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 
명과 신체는 하나인가 아닌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답을 알아야 
그에 따라 
그 바탕에서 어떤 수행을 할 것인지 아닐 것인지를 
판단하고 임하겠다고 한다면 
이 문제를 대하는 성격이 그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 

그 답이 어떤 경우던 
그가 당장 해야 할 내용은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위 문제의 답이 무엇이던 
그 주체가 당장 겪는 생사고통 해결이 문제되고 
그래서 수행을 하는 것이 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화살 비유를 들어 
그 상대에게 답을 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위 문제가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는 
문제는 또 아니다. 
그런데 각 상황따라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달리 접근해야 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제기될때 
당장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힘든 경우 
이 문제를 먼저 다음과 같이 접근하면 된다. 

우선 문제되는 내용을 잘 살피고 
그 답을 알지 못해도 그 답을 x 라고 표시하고 
얻어 낸 것으로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x 가 그렇게 주어진 바탕에서는
다시 어떤 내용이 문제되는가를 또 살피면 된다. 

그리고 그 문제에 x 값이 어떤 관계로 요구되는가를 
살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x 의 값을 구체적으로 모를 때는 
정확히 그 값을 얻어내려면
원칙적으로 이를 접근해서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값을 얻은 바탕에서 문제되는 다음  문제를 놓고 대하면 
그것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원칙적으로 보면 x 의 구체적 내용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대단히 다양하고 때로는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바탕으로 다음에 문제되는 내용을 놓고
첫 문제를 다시 대하게 되면 
문제되는 x 의 범위가 좁혀지게 된다. 

그래서 처음 문제삼는 그 x 는
처음 가설적으로 제시하는 어떤 내용일 수도 있지만
또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경우 하나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극단적으로 반대되거나 
특히 문제되는 몇몇 경우를 뽑아서 
가지수를 딜레마 (양도논법) 형식이나
트리레마, 테트라레마, 폴리레마( 3지, 4지, 5지 이상 다지 논법...) 이런 형태로  놓고 
각 경우를 살피고
이런 각 경우마다 결과적으로
같은 입장으로 귀결시킬 수 있는 경우가 되면, 
굳이 그 x 값을 구체적으로 얻어내려고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게 된다. 

위 산수 문제도 원칙적으로 보면 
x 에 들어갈 숫자는 
양수 0 음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 허수 이러면서 

무한히 나열할 수 있다고 보겠지만, 
그런데 이 가운데 어떤 기준에서 
극단적으로 문제되는 경우만 뽑아 살핀다면 
간단하게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큰 수 아니면 0 가장 적은수 
이렇게만 놓고 살필때 
각 경우마다 같은 입장을 취할 수 있다면 
위 문제를 굳이 살필 필요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경우들은 모두 
그렇게 살핀 사례에 준해서 대하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렇게 살필 때 
각 경우마다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되면 
또 그 경우는 위 방안으로 접근해 살피기 곤란하다. 
그런데 사정이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방안이 더 간편한 것이다. 

독화살의 비유에서도 이 사정을 살폈는데 
만일 문제를 이와 거꾸로 제시하면 어떻게 보겠는가. 
그 경우는 또 다르다. 
그런 경우의 문제는 이와 달리
이를 직접 놓고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진짜의 나나 진짜의 자성이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될 때도  
그것을 원칙적으로 살피는 것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진짜가 있거나 없거나 
그 문제를 그렇게 문제삼고 논의하는 그 자신과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놓고 살필 때 
답이 어느 경우가 되거나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면 
이 문제는 뒤로 돌려도 된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무아 무자성의 문제는 성격이 그렇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는가 
사정이 간단하다. 

만일 문제삼는 그런 진짜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다면, 
현실에서 자신이 현실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신경을 기울이는 자신은 
그것을 고려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므로 이 문제는
사실 그런 입장에서 그렇게 따지고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마음의 문제도 이와 비슷하게 접근할 성격의 문제라면 
그렇게 먼저 접근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마음과 관련해 
각 입장과 주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다양하게 제시되지만, 
이 문제되는 각 경우 가운데 
극단적인 경우들을 놓고 판단하면 
또 간편하게 살필 수도 있다. 

일단 이런 방식을 놓고 
또 쉬면서 그런 방안이 
마음과 관련한 주제에서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YLENE FARMER - Maman a tort (nouvelle version).lrc

♥ 잡담 ♥용어의 통일 


현재 논의과정에서 문제되는 내용을 
일반적인 입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도록 풀어서 살피는데 
그러다보니 전문적인 입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서로 교류하지 못하는 문제가 일부 발생한다.


앞에서 마음의 문제를 살피는 가운데 
최종적으로 근본마음이 생사과정에서
무량겁에 걸쳐 유지되고 이어진다고 제시하게 되는데
이런 내용이 제시되면 결국 이런 마음이
곧 진짜의 자신이 아닌가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무아 무자성의 문제를 이와 관련시켜 
살필 필요가 있다고 보게 되는데 
처음 아(我)와 자성(自性)이 무슨 의미인가부터 
약간 혼동을 불러 일으킬 여지가 있다. 



● 일반적인 나에 대한 관념 

가장 쉽게 보면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나에 대한 관념이 있다. 

또 그런 부분을 나라고 하는 것은 
그 부분이 다른 부분과는 무언가 다른 특성이 있어서 
그 부분을 다른 부분과는 구별해서 
그 부분을 그런 내용이라고 이해하게끔 하는 성품이 있기에 
그렇다고 보게 된다. 
원래 일반적인 나나 그 자성의 의미는 이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어떤 이가 어떤 부분을 놓고 이것은 사과라고 이해하는 것은 
그 부분은 배나 감이나 의자나 책상과는 달리 
그 부분에 그것을 사과라고 이해하게 만드는
그런 사과만의 특성이 있어서 그렇다. 이런 의미다. 
그래서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다른 것과 구별해 파악하게 하는
그 자체의 성품을 자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사과가 또 여러 사물과 함께 공통적으로 갖는 품성은 
이와 상대적으로 일단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과나 감은 다 과일로서 공통적인 성품이 있다고 보게 되는 것과 같다. 

또 한편 다른 사물들이 또 각 사물들대로
사과와 달리 갖는 품성들은 또 이런 성품과 상대적으로 파악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감은 감대로 독특한 성품이 있어서 감이라고 하고 
사과와 구분한다면 그런 성품은 또 감이 갖는 성품이라고 보게 된다. 


그리고 어떤 부분을 나라고 여기는 것은 
현실에서 여하튼 그 부분은 다른 부분과 다른 그 자신만의
성품을 갖기에 그렇게 나라고 보고 다른 사물과 구분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달라서 그 부분을 나라고 보는가. 
그것을 이해하면 일단 현실에서 나에 대한 이해가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여러 특성을 나열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부분은 
자신이 눈을 뜨고 대하면 통상적으로 다른 내용은 들고 나고 하면서 
달라지는데 그러나 어느 부분은 늘 한 구석에 고정적으로 파악된다고 보게 된다. 
또 그 그 부분은 자신이 무언가 뜻을 가지면 
그 뜻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부분이기도 하다고 보게 된다.
또 한편 그런 부분은 결국 그 부분을 다른 부분에 접촉시킬 때마다 
촉감 등을 얻거나 하게 되기에 또 그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거리에서 자신이 어디론가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다른 부분은 다 들고 나고 변화하더라도 
매 상황마다 늘 함께 파악된다고 여기는 부분이 있다. 
또 그런 부분은 자신의 뜻처럼 움직이고 변화한다고 파악되는 한편 
그 상황에서  나머지 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그 상황에서 자신의 몸은 그렇게 움직이는데
다른 건물이나 도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 이 부분들을 서로 구분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또 거리의 나무와 돌이 부딪히는 경우와는 달리
자신의 몸이 나무에 부딪히면 그 경우 자신은 촉감을 느낀다.

그래서 이런 사정으로 일반적으로 
어떤 부분은 나라고 보고 다른 부분은 내가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한 주체가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한편 
또 그가 이후 일으키는 모든 망상분별과 집착의 근원이 되는 부분은 
현실에서 그가 스스로 자신이라고 그렇게 여기는 그런 부분이다. 
그러니 처음 이것을 문제삼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그렇게 나라고 여기는 부분을 놓고 자세히 살피니
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먼저 제시하게 된다. 

즉 일반적으로 망집을 일으켜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런 부분을 놓고
그것이 자신이라고 그렇게 여기고 대하는데 
알고보니 사정이 하나같이 그렇지 않다.

우선 그 부분이 늘 파악되는 내용으로 보는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 내용들은 하나같이 무상하다.
또 그렇게 집착을 갖고 대하는 것은 그처럼 무상해서 허물어지게 되니
결국 고통을 받게 된다. 
사정이 그러니 앞에서처럼 자신의 뜻처럼 그렇게 되는 부분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자신이 늙고 병들고 싶어서 늙고 병든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처음대로 자신이어서
자신 뜻대로 되는 부분이라고 본다면, 
왜 정작 그런 상황에서 자신 뜻대로 되지 않는가. 
사정이 그런데 그것을 처음 생각한 처럼
나라고 여길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지만,
여전히 현실에서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며
현실에 임하는 것은 
그 부분이 다른 부분과 달리 위에 나열한 여러 특성이 있고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자신 뜻대로 된다고 보기에 그런 것이기는 한데 

그런데 알고보면 그것은 그런 부분이 자신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걸치는 옷과 비슷한 관계에 있기에 그런 사정을 갖는 것 뿐이고
앞에 나열한 그런 특성을 갖는 무언가를 <나>라고 보려고 한다면
그런 부분은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게 된다.

결국 현실에서 평소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매순간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기도 하고 
또 뜻대로 되는 것도 일정한 한계가 있고 
대상과 상대해 감각을 얻는 부분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이 자신과 관련된 사정은 파악되지만, 
이는 굳이 비유하면 어떤 이와 그가 걸치고 있는 옷의 관계 정도일 뿐이어서  

처음에 파악한 그런 성품을 통해 무언가를 자신이라고 여기려면, 
오히려 그런 것은 이와는 따로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즉 예를 들어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그처럼 늘 대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보면 
어떤 이가 임시적으로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 상황에서
그런 옷을 대하는 것과 비슷하고 
자신이 움직이려고 하면 그 뜻에 따라 옷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도 그렇고 
그 옷에 무언가 닿으면 그로 인해 영향받고 감각을 한다는 현상도 이와 비슷할 뿐이라는 의미다. 

또 다른 비유를 하면 평소 자신이라고 보는 그 부분은 
자동차를 모는 이와 자동차의 관계 정도에 유사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사정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이가 자신이 입고 다니는 옷이나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 집착하여서 
자신의 옷이 어떤 기계에 걸려서 끌려가게 되면
옷과 함께 기계에 끌려 들어가 손발이 잘리게 된다거나,
또는 자신의 자동차가 절벽을 구르면
자신도 그와 함께 굴러 떨어지거나 하게 된다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인데 
그러나 그렇게 잘못된 망집을 일으켜
그런 내용에 집착하고 임하면 비유처럼 그렇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비유처럼 특이한 경우만 그런 상태가 아니고 
현실에서 각 주체가 현실에서 임하는 상황이 대부분 그렇다는 의미다. 

그래서 비유하면 자신의 몸에 철사하나를 묶어서 끌고가면 
거의 예외없이 다 묶여 그런 수용소에 끌려가듯
평소 자신이 그렇게 일으킨 망집을 바탕으로
업을 행해 나가면 그로 인해 3 악도에 끌려가는 상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고통의 문제현상이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비유의 상황에서는 그 옷이나 차를 대하는 그 주체가 
평소 그 옷이나 차를 대하고 그렇게 이용은 하지만, 
그러나 그 옷이나 차가 자신의 본 주체나 본 정체는 아님을 잘 이해하고 
적절히 잘 임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것이 곧 생사현실에서 각 주체가
평소 자신이라고 보는 그런 몸이나 정신적 요소를 놓고
이를 앞의 비유에서 옷이나 차와 같은 것이라고 잘 파악한 가운데
생사현실에 임해 수행을 잘 해나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야 그 사람은 
설령 그 옷이나 차가 못쓰게 되어 폐기되는 상태가 되어도 
이후 그에 집착하지 않고 수행방안으로 그 상황에 임해서 
이후 그에 묶인 상태에서 풀려나고
이후 그 뜻에 따라 새로운 좋은 옷이나 차를 갈아 타고 
또 이후 잘 활동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한번 망집을 일으켜 잘못 임하여 업을 행하면 
앞과 같은 상태로 묶이고 
경전에서 언어표현으로만 제시받은 그런 아귀나 지옥세계에 묶여서 
생생하게 실답게 여기게 되는 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계속 악순환을 거듭해 가서 
그 관계가 무량하게 이런 관계로 이어져 나가게 된다. 
이렇게 이해하면 간단하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그런가 아닌가를 보고 나서 
방향을 정하겠다고 임하면 대단히 곤란하다. 
그런 상태에 처하면 왠만해서는 
다시 상태를 되돌려서 벗어나기가 대단히 힘들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교도소에 한번 들어가면 일정기간 
탈옥하거나 사면을 받고 풀려나는 것이 뜻처럼  쉽지 않다고 보듯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러니 미리 사정을 잘 파악하고 
현실에서 수행을 잘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렇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게 되는 내용이 
한편으로 마음안 내용일 뿐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앞과 같은 일반적인 이해가 잘못된 판단이고
그런 성품으로 무언가를 자신이라고 보려고 한다면
오히려 그처럼 매순간 들고 나는 내용을 얻어내는 
마음을 오히려 그런 자신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마음도 좀더 자세히 살피면 
좀 더 근본적인 마음을 제시하게 되고 
이런 마음을 생사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오히려 자신의 본 정체로 파악해야 한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한편 또 그런 내용이 비록 무량겁에 걸쳐 
이어지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역시 진짜 자신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또 이어 살피기로 한다. 


● 참된 진짜의 나에 대한 관념 

일반적인 입장에서 이해하는 
나나 그 성품은 앞에서 살핀 것과 같지만, 
각 문제되는 내용의 본 정체를 파악할 때는 
조금 다른 의미로서 '나'나 성품을 문제삼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또 약간의 혼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무슨 사정때문에 그런가하면 
문제되는 것이 과연 참된 진짜의 내용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 사정은 꿈을 놓고 이해하면 쉽다. 

꿈을 꾸면 생생하게 어떤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황금도 보고 또는 영희도 보고 자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황금은 황금으로 보고 
영희는 영희로 보게 하는 성품이 있어서 그렇다고 할수 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각 내용을 그렇게 구분해 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꿈이 참된 내용인가하면 그렇지 않다고 보게 된다. 
사정이 그러니 꿈이 그처럼 꿈꾸는 동안 생생하다고 해도 
그런 꿈을 무슨 이유로 실답지 않다고 보는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반대로 어떤 내용을 꿈과 성격이 다른 실답고 참된 내용이라고 하려면 
꿈이 갖는 그런 실답지 않은 특성은 갖지 않아야 하는 한편 
반대로 무슨 특성을 가져야 그렇게 보게 되는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내용이 참된 내용인가 아닌가가 문제되는 경우는
위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되는 내용이 그런 내용인가 아닌가를 살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나라고 보게 되는 
앞과 같은 내용들
즉 일반적 입장에서 처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나 
나중에 그 일체가 마음임을 제시하면서 그런 현실 내용을 모두 얻어내는 마음을 놓고 
자신이라고 여긴다면 
그런 내용들은 위와 같이 실답지 않은 꿈과는 달리
참된 진짜라고 볼만한 그런 것이고 
그런 참된 나에 요구되는 그런 참된 성품[자성]을 그렇게 갖는 것인가를 
또 문제삼게 되는 것이다. 

이를 문제삼는 것은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
알고보니 꿈처럼 실답지 않고 엉터리라면 좋겠는가. 
그리고 그런 실답지 않은 내용을 붙잡고 우왕좌왕 헤메면 되겠는가. 
그런 취지에서 살피게 되는 문제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논의되는 문제가 
곧 무아, 무자성의 논의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문제되는 앞의 각 내용을 살피면 
결국 이들은 그런 내용은 아님을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사정이 그렇기에 
그런 내용에 집착을 갖고 임하면 임할수록 
그 만큼 그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니 그런 증상을 잘 제거하고 임해야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사정이 그런가 아닌가가 문제되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런 각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있어서 
원칙적인 방안과 
조금 편한 방안이 있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마음의 문제도 이와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놓고 
그런 부분은 그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다. 
그런 <나>는 없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면 
지금 본래부터 그런 상태로
무량겁에 걸쳐 그렇게 살아 왔고
또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데도
마치 무아 무자성 그런 내용으로 인해
평소 자신이 대하던 내용이 갑자기 다 파괴되고
무엇이 없어지는 것처럼 여기고 
그렇다면 이제 평소 소중하게 여기던 그런 내가 없어졌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식으로 불안감을 갖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이 바로 평소 망집에 바탕해서
각기 다른 영역의 내용을 함께 접착시켜 이해한 바탕에서 
그런 내용을 대하기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대하는 현실이나 본 바탕인 실재 등에 그런 <나>가 없다는 것은
지금 대하는 현실이나 본 바탕인 실재가 전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아니고 
그런 현실내용이나 본 바탕에 그렇게 문제삼는 그런 <나>가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그처럼 무아 무자성이고 공한 본 바탕에서 
그러그러한 현실 내용이 그렇게 나타난 것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놓고
일단 기본적으로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본다. 

그래서 마음의 문제를 살필 때는
이런 문제도 함께 미리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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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Barbara Beghin - Etre Libre.lrc

마음과 관련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취할 방안을 살필때 
쉽게 그 내용을 얻을 방안을 살피는데 
먼저 무아 무자성 문제를 살피다 보니 
글이 조금 길어지고 있다. 


● 무아 무자성을 살피는 방안의 골격  

무아 무자성 문제는 앞에서 적은 것처럼 
어떤 것이 꿈과 달리 실답게 보기 위해서는 
꿈을 생생하게 꾼다해도 그 꿈은 무엇때문에 실답지 않다고 보게 되는가
이것을 잘 파악하고 
반대로 무언가를 꿈과 달리 실답다고 하려면 
어떤 요소를 요구하는가를 살펴서
찾는 진짜가 갖춰야 할 특성을 먼저 잘 규정하고
문제되는 내용을 살피면 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참된 진짜의 내용이 있는가가 문제되면 

전체의 시간과 공간대에 과연 그런 내용이 
찾아지는가를 놓고 원칙적으로 살펴야 할 문제라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이 문제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어떤 이가 과연 전체의 시공간 영역을 다 살펴서 
그런 것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다해도 다시 다른 이에게 그것을 제시하면 
그는 또 그것을 어떻게 확인하겠는가. 

그런데 여기에 두가지 방안이 있다. 
원칙적으로 문제되는그 내용을 규정해서 
그런 내용은 왜 실재와 현실의 전 영역에서 전혀 있을 수 없는가를
살피는 원칙적 방안이 하나가 있다. 

또 하나 간단한 방안은
그렇게 살피는 그런 참된 자성이 있는 것을 X 라고 하여
그렇게 있다고 전제하고
그 다음을 살피는 방안이다. 

그 경우 그 바탕에서
현실의 자신은 어떤 상태가 되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간단하게 살핀다는 것은 
이 경우 그런 X 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현실의 자신과 관계가 될 수 없음을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 사정이 그런가하면, 
만일 자신이 무언가를 어떻게 하거나 하지 않아서 
그 X 가 영향받고 변화된다거나 
자신이 그런 X 로 될 수 있다거나 한다면, 
그것은 그 X 가 자신이 처음에 찾는 그런 X 가 아니고
처음에 살핀 꿈처럼 실답지 않은 성격을 갖는 것임을 
이해하면 쉽게 해결된다. 

그래서 설령 그런 X가 있다고 해도
이는 현실의 자신과 관련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자신이 현실에서 대하고 문제삼는 것 일체는
그런 X가 아님을 또 쉽게 이해하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기에
현실의 자신은 그런 X 를 놓고 원칙적인 방안으로 굳이
살피거나 헤아릴 필요가 없는 한편 

현실에서 자신이나 자신이 관계하는 내용들은 

그 일체가 그런 진짜의 내용이 아니고 

또 그렇기에 자신이나 자신이 대하는 그 일체에 대해 
그런 사정으로 집착을 갖고 대할 것이 아님도 함께 파악하게 된다. 


이 문제는 과거에도 살핀 적이 있으므로
이렇게만 간단히 그 골격을 제시하기로 한다. 
다음의 마음의 문제와 관련해 살피기로 한다. 


○마음의 문제를 살피는 방안의 골격





● 마음의 문제를 살피는 방안의 골격

먼저 마음의 문제는  다음과 관련된다. 

현실에서 갓난아이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매 순간 그 모습이나 내용이 달라진다고 보는 내용을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임한다. 

그렇게 이처럼 각기 다른 내용을 
모두 한 주체와 관련된 내용으로 대하게 하는 핵심적 요소가 
무엇인가를 일단 문제삼는 것이다. 

이 논의에서는 일단 그것이 
근본마음이라고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마음의 문제를 살피려면
문제삼는 마음을 놓고 
관련되는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가는 것을 
원칙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은 현실의 어떤 주체가 

직접 그 내용을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는 것이기에 
우선 이 논의에 상당히 많은 어려움이 있게 된다. 

특히 생사전후에 걸쳐 각기 형태가 다른 생명 사이에서 
무량겁에 걸쳐 이어진다는 근본마음에 대해서 
살필 때는 이 문제가 한층 더 어렵게 된다. 



그래서 이를 간단하게 살피는 방안으로 
이런 마음의 논의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얻게 되는 결론적 내용에 좀 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간단한 방안을 함께 살피게 된다. 

그 방식의 골격은 다음이다. 

여기서 일단 앞과 같이
각기 매 순간 다른 내용들을 한 주체로 모두 대하게 되는
핵심 요소를 일단 X 라고 표시하기로 한다. 

그런데 그 X 에 해당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보는 어떤 육체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입장도 있고 
아니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가운데 
마음이라고 표현해 살피게 되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또 그 X 는 현실에서 보듯 

자신이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시점까지만, 자신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 정도만 유지되는 그 무엇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생사 이전 이후로도 계속 유지되고 
심지어 무량한 시간에 걸쳐서 그렇게 유지되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이런 형태로 다양한 내용을 놓고 살피게 될 때 
X 는 일단 이런 여러 내용을 그 가능성에 넣어 둔다.

그리고 그 가운데 경전에서 제시되는 내용은 
일단 그것을 U 라고 표시하기로 하자. 

그런데 X 의 구체적 내용으로 가능한 내용들 가운데 
여러가지를 위처럼 나열해 제시할 수 있지만, 
일단 이들 가운데 위 U 와 극단적으로 다르고 
오히려 일반적인 입장과 가까운 내용들을 나열하는 가운데 
그런 내용을 모아 대표하는 것을 L 이라고 표시하기로 하자.

이제 처음 자신의 주체와 관련되는 X 가 무언가를 살핀다면 
U 나 L 정도를 놓고 살피면 된다고 그 범위를 좁힐 수 있다. 

그런데 이 방식은 문제삼는 X 가 
정말 U 인가 L 인가를 직접 살피려는 취지가 아니고 
이처럼 문제되는 극단적인 경우를 놓고 
그 각 경우마다 현실에서 이를 바탕으로 취해야 할 내용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부터 먼저 검토해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위 X 를 직접 살피는 논의는
그냥 그 자체가 궁금해서 논의하는 것이 아니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구체적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파악하고 실천해나가기 위해 논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논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부분을
먼저 살피면 몇 몇 경우는 굳이 X 를 놓고 원칙적으로 살피며
소모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다.

먼저 문제되는 X 가 무량겁에 이어지는 그런 근본 마음으로서 U 라면, 
이를 바탕으로 무량겁에 걸쳐서 각 내용을 좋은 상태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일정한 수행방안이 결론으로 제시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또 다른 입장과 예를 들어 L 을 취하는 입장과는 구분된다. 
예를 들어 일반현실에서 그런 수행 방안을 취하지 않는 입장의 사정을
살피면 다음과 같이 이 문제를 이해하기에 그런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자신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이후에는 자신과 관련해 생각할 바가 전혀 없다. 
또는 설령 사후에 어떤 존재가 있더라도 
현실에서 자신이 하는 행위와 그 내용은 별 관계가 없다. 
사후의 자신의 상태는 우연이나 아니면 추첨이나
아니면 다른 요소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견해를 갖는 경우들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처음 제시한 U 와는 극단적으로
차이나는 입장을 L 로 표시하고 이 경우를 검토한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각 입장을 살피니, 
그 경우마다 결론이 극단적으로 달라진다면 
사실은 이렇게 간단하게 살필 수는 없다. 
이런 경우는 다시 원칙적인 방안으로 돌아가서 
이 가운데 어떤 경우가 과연 진실인가 이런 방식으로 살펴야 한다. 

그런데 만일 그렇지 않고 
이 어느 경우나 결국 같은 결론으로 귀결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그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다음과 같이 살필 수 있다. 

비록 U 와는 극단적으로 다른 L 의 입장을 취해도 
그 바탕에서 문제삼는 범위에서 무언가 가장 좋음을 얻어내려면 
역시 U 를 전제로 할 때 제시하는 방안을 취해야 한다는 내용을 
그 L 을 전제로 해서도 동일하게 끌어내 제시할 수 있으면 
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L 의 입장을 취해도 비록 결론이 이끌어지는 경로는 달라도 
결국 최종적으로 그 바탕에서 행해야 할 내용이 U 의 경우와 같다면 
결국 X 가 정확히 U 인가 L 인가의 문제를 놓고 너무 소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와 비슷한 경우를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다.

우선 각 경우마다 취할 방안이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그래서 이런 문제 때문에 과연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참된 내용인가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만일 이를 끝내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 한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도박을 하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 경우는 마치 여러 상자 가운데
어느 상자가 참된 내용이 모르고 
일단 자신이 한 상자를 택해서 그 위에 올라서서 
그 상태에서 이후 무언가를 행해 나가는 상태가 된다. 

그러니 이 경우는 그런 입장에서 
각 경우를 놓고 미리 잘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하려면 
역시 원칙적인 방안으로 돌아가서 살피는 것이 낫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불확실한 상태에서 도박을 하는 것처럼 임하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이 희생될 수 있기에 상당히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이 경우수가 
각기 다음처럼 구성이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즉 L 을 선택했는데 그 경우 
문제삼은 X 가 정말 L 이 맞는다면,  그 때는 판단을 잘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찾는 X 가 L 이 답이 아니고 U 가 맞다면
그 때는 이와 정반대가 되어서
무량겁에 걸쳐서 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가 되어 큰 문제다. 

결국 내용이 불확실한 가운데 L 을 선택하는 것은 
위 두 내용을 놓고 불확실한 도박을 한 것이 된다. 

그런데 한편 U 를 선택한 경우가 다음형태처럼 된다면 
그 경우는 문제가 없다고 보게 된다. 

즉 U를 선택해 임하는데
만일 문제삼는 X 가 U 가 정말 맞다면 
그 경우는 역시 당연히 선택한 내용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편 X 가 U 가 아니고 L 인 경우라고 해도 
U 를 선택해 임한 그 내용은 
그 범위에서도 그다지 별 문제되지 않고 무방한 상태라면
이 경우는 앞과 다르다. 

그래서 이 경우는
각 경우마다 발생할 가능한 상태의 범위를 묶어 놓고 
이 둘을 서로 대조해서 쉽게 결론을 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역시 X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가를 살피는 논의에 
너무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지금 살피는 X 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그런 형태에 해당되는가부터 
먼저 검토하여 살피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경전에서 제시하는 수행이란 
사실은 이런 성격을 갖기에 
위 문제를 놓고 굳이 복잡하게 살피는 것을 
먼저 앞세울 필요는 없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런 방식이 갖는 골격만 먼저 살핀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각 경우마다 어떻게
그런 형태가 되는가는 이후 살펴야 한다. 

여하튼 이는 극단적으로 입장이 다른 경우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이 하나같이 실답고 
그것이 곧 외부의 객관적 실재이고 
또 자신이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 오히려 참된 자신의 주체[아]다. 
이런 식으로 현실을 이해해도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받아들여  
현실에 임하는 것이 좋고, 
적어도 별 문제가 없음을 제시하는
일종의 가정적 논의가 된다. 

즉,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입장에서는 
본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보지만, 
설령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여도 
그래도 수행의 방안을 택하는 것이
역시 낫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내용을 먼저 제시하는가 하면 
현실에서는 오히려 이런 방안이 
더 효용이 많기 때문이다. 

즉 이해가 안 되는 복잡한 내용을 제시하고
이를 이해한 바탕에서 수행을 해야 한다고 제시하면 
대부분 그런 내용을 대하는 과정에서 포기하게 된다. 

예를 들어 환자가 있는데 
병을 낫게 할 약을 하나 투약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그 이전에 
약학대학에서 교육하는 그 모든 내용을 하나하나 살피고 
또 그 약에 관련된 실험 내용을 모두 검토하여 
한번씩 다시 실험 검토해보고 
그리고 약의 효능을 점검한 다음
그 약을 취해야 한다고 제시하면
환자가 미리 포기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약사가 약의 효과를 분명히 이해하고 
환자가 병을 낫는데 그 약이 중요하다고 본다면
그런 측면에서는 위 방안이 굳이 필요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약사가 제공하는 약이 환자가 생각하듯 
약도 아니고 효과가 전혀 없다고 해도 
그것은 맛이 좋고 달콤하다거나

또는 
약사가 권하는 약은 적어도 해는 없고, 그러나 잘하면 병이 낫게 되는 한편, 
상대가 취하는 것은 잘 하면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그러나 때로는 전 재산이 없어지고 극심한 후유증을 겪게 되는 사정을 이해시켜 제시하면 
오히려 빨리 환자가 사정을 이해하고 그 약을 취하고 병을 낫게 된다.


그러니 이 방안은  
중생제도에도 도움이 되고 
수행자도 가볍게 대할 도리는 없다. 
오히려 그런 방안을 많이 찾아 
제시하면 더 효용이 좋다. 

또 이를 통해 이후 상대가 수행을 하면 
또 그 이후 단계에서 상태가 바뀌어
처음에 잘 이해하지 못하던 내용을 

그 자신이 직접 하나하나 확인하며 살필 수 있게 된다. 


일단 글이 너무 길어져 
각 경우의 골격만 간단히 제시하고 
이후 논의는 다음으로 넘긴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156#5380
sfed--불설사미증유법경_K0748_T0136.txt 
sfd8--불교단상_2562_10.txt  ☞◆vrzc5380
불기2562-10-01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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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mus0fl--Dick Rivers - Baby John.lrc
mus0fl--MYLENE FARMER - Maman a tort (nouvelle version).lrc
mus0fl--Arthur H - Cool Jazz.lrc
mus0fl--Barbara Beghin - Etre Libre.lrc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harles_Leroux_2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stilbe_'Sarma'_03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029_Doorways_in_the_Vihara_(32849645854)



♡안양사_철원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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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ohn Singer Sargent-fiield-marshall-h-r-h-the-duke-of-connaught-and-strathearn-1908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Yellow_colored_rose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aneapa_and_airport_in_Funafuti_atoll,_Tuvalu



♡백련암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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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rnst-Ludwig-Kirchner-mountains-in-winter-1919.jpg!HD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strophytum_flower_329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antima_birds_in_Wat_Phra_Kaew



♥Rhytmic Music Conservatory ,Denmark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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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hristina-Robertson-portrait-of-grand-duchesses-olga-nikolaevna-and-alexandra-nikolaevna-1840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sa_'Portland_Rose'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at_Phra_Kaew_by_Ninara_TSP_edit_crop


♥Uganda ,Gulu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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