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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광오온론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안혜(安慧) 지음
지바하라(地婆訶羅) 한역
조환기 번역
부처님께서 5온(蘊)을 말씀하셨으니,
색온(色蘊)ㆍ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薀)이다.
무엇을 색온이라고 하는가?
4대종(大種) 및 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색을 말한다.
무엇을 4대종이라고 하는가?
지계ㆍ수계ㆍ화계ㆍ풍계를 말한다.
이것은 또한 무엇을 말하는가?
지는 단단한 성질,
수는 습한 성질,
화는 따뜻한 성질,
풍은 가벼운 성질을 말한다.
계(界)란 능히 자성을 지니고 만들어진 색이기 때문이다.
4대로 만들어진 색이란 무엇인가?
안근(眼根)ㆍ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ㆍ 색ㆍ소리ㆍ향기ㆍ맛 및 접촉의 일부분,
무표색(無表色) 등이다.
만든다는 것은 원인이란 뜻이다.
근(根)이란 가장 수승하고 자재롭다는 뜻이고,
주인이란 뜻이고,
더욱 증대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근의 뜻이다.
여기서 말한 주인이란 뜻은 무엇에 대하여 주인이 된다는 것인가?
즉 안근이 안식(眼識)에 대하여 주인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데,
안식을 낳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나머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니,
신근(身根)은 신식에 대하여 주인이 된다.
신식을 낳기 때문이다.
무엇을 안근이라고 하는가?
색으로써 대상을 삼고,
청정한 색을 성질로 한다.
눈 가운데 일부분의 청정한 색을 말한다.
마치 맑은 제호(醍醐)1)와 같다.
이 성질이 있으므로 안식이 생겨나고,
이 성질이 없다고 한다면 생기지 않는다.
무엇을 이근이라고 하는가?
소리로써 대상을 삼고,
청정한 색을 성질로 한다.
귀 가운데 일부분의 청정한 색을 말한다.
이 성질이 있으므로 이식이 생겨나고,
없다고 한다면 생기지 않는다.
무엇을 비근이라고 하는가?
향기로써 대상을 삼고,
청정한 색을 성질로 한다.
코 가운데 일부분의 청정한 색을 말한다.
이 성질이 있으므로 비식이 생겨나고,
없다고 한다면 생기지 않는다.
무엇을 설근이라고 하는가?
맛으로써 대상을 삼고,
청정한 색을 성질로 한다.
혀 위에 두루 퍼져 있는 청정한 색을 말한다.
어떤 설명에는 혀 위에 두루 퍼져있지 않고 마치 하나의 털끝처럼 조금만 있다고 한다.
이 성질이 있으므로 설식이 생겨나고,
없다고 한다면 생기지 않는다.
무엇을 신근이라고 하는가?
접촉으로써 대상을 삼고,
청정한 색을 성질로 한다.
몸 가운데 두루 퍼져 있는 청정한 색을 말한다.
이 성질이 있으므로 신식이 생겨나고,
없다고 한다면 생기지 않는다.
무엇을 색이라고 하는가?
눈의 대상으로,
현색(顯色)ㆍ형색(形色)ㆍ표색(表色) 등이다.
현색이란 네 종류가 있으니,
푸른 색ㆍ누런 색ㆍ붉은 색ㆍ흰 색이다.
형색이란 길고 짧은 것 등을 말한다.
무엇을 소리라고 하는가?
귀의 대상으로,
대종을 집수(執受)한 것으로 인한 소리와 대종을 집수하지 않은 것으로 인한 소리와 대종을 집수하는 것과 집수하지 않은 것이 함께 하여서 된 소리가 있다.
모든 심(心)과 심법(心法)은 능히 집수하는 것이고,
꿈틀거리는 등의 종류는 집수된 것이다.
대종을 집수한 것으로 인한 소리는 박수치고,
말하는 것 등의 소리이다.
대종을 집수하지 않은 것으로 인한 소리는 숲에서 부는 바람이나 물이 빨리 흐르는 등의 소리이다.
대종을 집수하는 것과 집수하지 않은 것이 함께 하여서 된 소리는 손으로 북을 두드리는 등의 소리이다.
무엇을 향기라고 하는가?
코의 대상으로,
좋은 향기ㆍ나쁜 향기ㆍ평등한 향기가 있다.
좋은 향기란 코와 마주쳤을 때 온(薀)에 상속(相續)하여 따르고 이익을 주는 향기를 말한다.
나쁜 향기란 코와 마주쳤을 때 온에 상속하여 거슬리고 손해를 끼치는 향기를 말한다.
평등한 향기란 코와 마주쳤을 때 손해를 끼치지도 이익을 주지도 않는 향기를 말한다.
무엇을 맛이라고 하는가?
혀의 대상으로,
달고,
시고,
짜고,
맵고,
쓰고,
싱거운 맛 등이다.
무엇을 접촉의 일부분이라고 하는가?
몸의 대상으로, 대종을 제외한 것이다.
이른바 매끄러운 성질ㆍ꺼끌꺼끌한 성질ㆍ무거운 성질ㆍ가벼운 성질ㆍ차가움ㆍ배고픔ㆍ목마름 등이다.
매끄러움은 미세하고 부드러운 것을 말한다.
꺼끌꺼끌함은 거칠고 강한 것을 말한다.
무거움은 무게 등으로 달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가벼움은 이와 반대이다.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것이 차가움이다.
접촉은 차가움의 원인이다.
이는 곧 원인에 대하여 그 결과의 분별을 세울 수 있다.
마치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는 즐거움,
바른 가르침을 연설하시는 즐거움,
모든 승가가 화합하는 즐거움,
함께 수행에 정진하는 즐거움의 경우,
이러한 애를 써가며 부지런히 정진함이 비록 즐거움의 원인이지만 곧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이 차가움도 이와 같다.
음식을 먹고자 함이 배고픔이다.
마실 것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 목마름이다.
역시 이와 같이 말한다.
이미 일곱 종류의 접촉을 만드는 것과 앞의 4대를 합해서 열한 종류를 말하였다.
무엇을 무표색 등이라고 하는가?
유표업(有表業)과 삼마지(三摩地)2)에서 생겨난 눈에 보이지 않고 마주 대할 수 없는[無見無對] 색 등이다.
유표업이란 몸과 말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의 성질에 다 통한다.
생겨난 색[所生色] 이란 저 선과 불선의 나타나는 것으로부터 생겨난 색을 말한다.
이는 드러내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무표(無表)라고 이름한다.
삼마지에서 생겨난 색이란 4정려(靜慮) 등에서 생겨난 색 등을 말한다.
이 무표색은 만들어진 것의 성질을 갖는다.
선율의(善律儀)ㆍ불선율의(不善律儀) 등이라고 이름하고,
혹은 업(業)이라고도 이름하고,
종자(種子)라고도 이름한다.
이와 같이 모든 색은 간략하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볼 수도 있고 마주 대할 수도 있는 것[可見有對] 이고,
둘째는 볼 수는 없으나 마주 대할 수는 있는 것[不可見有對] 이고,
셋째는 볼 수도 없고 마주 대할 수도 없는 것[不可見無對] 이다.
이 가운데 볼 수도 있고 마주 대할 수도 있는 것은 나타나는 색[顯色] 등을 말하고,
볼 수는 없고 마주 대할 수 있는 것은 안근(眼根) 등을 말하고,
볼 수도 없고 마주 대할 수도 없는 것은 무표색 등을 말한다.
무엇을 수온(受薀)이라고 하는가?
느낌[受] 에는 세 종류가 있다.
즐거운 느낌[樂受] ㆍ괴로운 느낌[苦受] ㆍ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 을 말한다.
즐거운 느낌이란 이것(느낌)이 없어질 때 계속 어울리고 싶어함이 있는 것을 말한다.
괴로운 느낌이란 이것이 생겨날 때 벗어나고 싶어함이 있는 것을 말한다.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란 이 두 가지 바람이 없음을 말한다.
두 가지 바람이 없다는 것은 계속 어울리고 싶어함이나 벗어나고 싶어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
느낌이란 식(識)의 받아들임[領納] 을 말한다.
무엇을 상온(想薀)이라고 하는가?
모든 대상의 모습을 더욱 뛰어나게 취할 수 있음을 말한다.
더욱 뛰어나게 취할 수 있다는 것은 뛰어난 힘으로 취할 수 있음을 말한다.
마치 힘이 센 것을 힘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무엇을 행온(行薀)이라고 하는가?
수온과 상온을 제외한 나머지 심범(心法) 및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행 [心不相應行] 을 말한다.
나머지 심법이란 무엇인가?
마음과 상응하는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접촉ㆍ작의(作意)ㆍ사유[思] ㆍ 바람[欲] ㆍ뛰어난 이해[勝解] ㆍ정신집중[念] ㆍ삼마지(三摩地)ㆍ지혜ㆍ 믿음ㆍ부끄러워함[慚] ㆍ뉘우침[愧] ㆍ탐욕 없음[無貪] ㆍ성내지 않음[無瞋] ㆍ어리석지 않음[無癡] ㆍ정진(精進)ㆍ 경안(輕安)ㆍ불방일(不放逸)ㆍ사(捨)ㆍ해치지 않음[不害] ㆍ 탐욕ㆍ성냄ㆍ오만함[慢] ㆍ무명(無明)ㆍ견해[見] ㆍ의심[疑] ㆍ 부끄러워하지 않음[無慚] ㆍ뉘우치지 않음[無愧] ㆍ 혼침(昏沈)ㆍ도거(掉擧)ㆍ믿지 않음[不信] ㆍ해태(懈怠)ㆍ방일(放逸)ㆍ실념(失念)ㆍ살나(散亂)ㆍ부정지(不正知)ㆍ 악작(惡作)ㆍ수면(睡眠)ㆍ심(尋)ㆍ사(伺)의 모든 심법이다.
다섯 가지는 변행(遍行)이다.
이것은 모든 선ㆍ불선ㆍ무기심에 두루 미치므로 변행이라고 이름한다.
다섯 가지는 별경(別境)이다.
이 다섯 가지의 하나하나는 차별된 대상에 전전하여서 대상을 결정하고,
성질을 서로 떠나지 않는다.
이 가운데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다른 것들도 다 있다.
열한 가지는 선(善)이고.
여섯 가지는 번뇌(煩惱)이고,
나머지는 번뇌를 뒤따르는 것[隨煩惱] 이고,
네 가지는 정해지지 않은 것[不定] 이다.
이 정해지지 않은 것의 네 가지는 바로 번뇌를 뒤따르는 것이 아니다.
선 및 무기의 성질에 통하기 때문이다.
접촉 등의 본체의 성질 및 행동양식 등을 응당 해석하겠다.
무엇을 접촉이라고 하는가?
세 가지가 화합하여 분별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세 가지가 화합한다는 것은 안근ㆍ색ㆍ식의 이러한 것 등을 말한다.
이 모든 화합으로 마음과 심법(心法)이 생기기 때문에 접촉이라고 한다.
느낌이 접촉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작의(作意)라고 하는가?
마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마음과 심법으로 하여금 앞에 드러나 놀라 움직이게 한다.
이는 기억[憶念] 의 뜻이다.
임지(任持)하여 마음을 반연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사유[思] 라고 하는가?
공덕과 과실 및 둘 다 아닌 것에 대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작의의 업을 짓게 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이 성질이 만약 있다면 식이 용을 반연하여 지금 바로 앞에 드러나게 한다.
마치 자석이 쇠를 끌어서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다.
능히 선ㆍ불선ㆍ무기심으로 옮기게 하는 것이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바람[欲] 이라고 하는가?
좋아하고 즐길 만한 일에 있어서 희망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좋아하고 즐길 만한 일이란 좋아할 만한 것을 보고 듣는 일 등을 말한다.
이것은 원하여 즐기고 희구한다는 뜻이다.
정진(精進)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뛰어난 이해[勝解] 라고 하는가?
결정된 대상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인가(印可)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결정된 대상이란 5온 등을 말한다.
세친(世親)3)이,
“색온은 마치 물방울과 같고,
수온은 물거품과 같고,
상온은 아지랑이와 같고,
행온은 파초(芭蕉)와 같고,
식온은 마치 환영으로 나타나는 대상과 같다”고 한 것을 이와 같이 결정한다고 한다.
또는 모든 법이 머무는 바의 자상(自相)은 이와 같이 결정하는 것을 생기게 함을 말한다.
결정이란 말은 곧 마음에 새기고 지닌다는 뜻이다.
나머지 끌어서 전변함이 없는 것이 행동양식이다.
이것이 더욱 뛰어나기 때문에 나머지의 다른 것은 마음의 대상으로 끌어올 수가 없다.
무엇을 정신집중[念] 이라고 하는가?
버릇 들고 교육된 일을 마음에 잊지 않고 분명히 기억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버릇 들고 교육된 일이란 이미 익힌 행동을 말한다.
산란하지 않음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삼마지(三摩地)라고 하는가?
관(觀)하는 일에서 마음이 한 대상에 머무는 것[心一境性] 을 말한다.
관하는 일이란 5온 등과 무상함ㆍ괴로움ㆍ공ㆍ무아 등에 마음을 집중하여 관하는 것이다.
마음이 한 대상에 머문다는 것은 여기에 오로지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지혜가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마음이 정(定)에 있기 때문에 여실하게 요별하여 안다.
무엇을 지혜[慧] 라고 하는가?
그것에 대하여 법을 선택[擇法] 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혹은 이치에 맞게 끌어온 것이고,
또는 이치에 맞지 않게 끌어온 것이고,
또는 둘 다 아닌 경우로 끌어 온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관하는 것을 말한다.
법을 선택함이란 모든 법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에서 지혜로 골라내어 결정을 얻기 때문이다.
이치에 맞게 끌어온 것이란 부처님의 제자들을 말한다.
이치에 맞지 않게 끌어온 것이란 모든 외도들을 말한다.
둘 다 아닌 경우로 끌어온 것이란 나머지 중생이다.
의혹을 끊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지혜는 능히 모든 법들 가운데서 능히 결정을 얻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음[信] 이라고 하는가?
업ㆍ과보ㆍ모든 진리[諦] ㆍ보배 등에 대하여 깊고 바르게 따르는 마음의 청정함을 성질로 삼는다.
업에 대하여 복(福)ㆍ복이 아님(非福)ㆍ부동업(不動業)을 말한다.
과보에 대하여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의 과보를 말한다.
진리에 대하여 괴로움의 진리[苦諦] ㆍ집착의 진리[集諦] ㆍ집착을 없애는 진리[滅諦] ㆍ깨달음에 이르는 진리[道諦] 이다.
보배에 대하여 불보(佛寶)ㆍ법보(法寶)ㆍ승보(僧寶)의 삼보이다.
이와 같은 업ㆍ과보 등에 대하여 지극히 맞게 따르는 것을 청정(淸淨)이라고 한다.
간절히 바라는 뜻에 이르러서는 바람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부끄러워함[慚] 이라고 하는가?
스스로의 뛰어남과 진리의 가르침인 법(法)의 뛰어남에 의해 지은 죄에 대해서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성질로 한다.
죄는 잘못을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이 싫어하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수치(羞恥)란 갖가지 죄를 짓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악행을 못하게 함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뉘우침[愧] 이라고 하는가?
타인의 뛰어남에 의해 지은 죄에 대해서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성질로 한다.
타인의 뛰어남에 의함이란 꾸지람과 벌 및 그에 대한 논리 등을 두려워함을 말한다.
지은 죄와 잘못이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수치스럽다.
행동양식은 부끄러워함[慚] 에서 말한 것과 같다.
무엇을 탐욕 없음[無貪] 이라고 하는가?
탐욕을 다스려서 깊이 싫어하고 근심 걱정하게 하여 집착이 없음을 성질로 삼는다.
모든 유(有) 및 유자구(有資具)4) 대해서 오염된 집착을 탐욕이라고 한다.
그것을 다스리는 것을 탐욕 없음이라고 한다.
모든 유(有) 및 유자구에 대해서 오염되고 집착됨이 없다는 뜻이다.
생과 사의 모든 잘못을 두루 알기 때문에 싫어하고 근심 걱정하는 것이라고 이름한다.
악행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성내지 않음[無瞋] 이라고 하는가?
성냄을 다스리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慈] 을 성질로 한다.
중생에 대해서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업은 무탐에서 말한 것과 같다.
무엇을 어리석지 않음[無癡] 이라고 하는가?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여실(如實)하고 바르게 행동함[正行] 을 성질로 한다.
여실하게란 간략하게 말하면 4성제(聖諦)이고,
넓게 말하면 12연기(緣起)이다.
이들에 대해서 행위를 더하는 것이 바로 앎[正知] 의 뜻이다.
행동양식은 또한 탐욕 없음[無貪] 에서 말한 것과 같다.
무엇을 정진(精進)이라고 하는가?
게으름[懈怠] 을 다스리고 선한 종류가 드러나 더욱 정근함을 성질로 한다.
불ㆍ보살의 가호를 받고,
더욱 행동에 채찍질을 하고 겁내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만족하지 않는다면,
이는 정진의 뜻을 원만하게 성취한 것이다.
선법(善法)으로 행동양식을 삼는다.
무엇을 경안(輕安)이라고 하는가?
추중(麤重)을 다스리고,
몸과 마음을 다스려서 누그러트려 능히 견디어냄을 성질로 한다.
능히 열 가지 선하지 않은 행[不善行] 을 버리고 장애를 제거함을 행동양식으로 삼는다.
이 힘으로 말미암아 모든 장애를 제거하고,
추중을 전변시키고 버린다.
무엇을 불방일(不放逸)이라고 하는가?
방일(放逸)을 다스린다.
탐욕 없음에서 정진까지의 법애 의지하여 모든 선하지 않음[不善] 을 버린다.
그것들을 다스리고 모든 선법을 닦기 때문이다.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에서 게으름까지를 방일이라고 한다.
그것들을 다스리기 때문에 이를 불방일이라고 한다.
탐욕 없음ㆍ성내지 않음ㆍ어리석지 않음ㆍ정진의 네 가지 법에 의지하여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 을 다스리고 선법을 닦기 때문이다.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바른 행동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사(捨)라고 하는가?
이와 같은 탐욕 없음,
성내지 않음에서 정진까지의 법에 의지하여 마음의 평등성ㆍ마음의 정직성ㆍ마음의 애씀이 없음을 얻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로 말미암아 모든 조잡하게 오염된 법을 떠나 청정한 법에 안주함을 말한다.
탐욕 없음ㆍ성내지 않음ㆍ어리석지 않음ㆍ정진하는 성품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혼침(昏沈)과 도거(掉擧)의 모든 잘못을 떠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음의 평등성을 얻는다.
어떤 때는 마음대로 움직여서 억지로 애씀이 없기 때문에 다음으로 마음의 정직성을 얻는다.
어떤 때는 모든 조잡하게 오염된 것을 떠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마음의 애씀이 없음을 얻는다.
행동양식은 불방일에서 말한 것과 같다.
무엇을 해치지 않음[不害] 이라고 하는가?
해침을 다스리고,
중생을 슬퍼함[悲] 을 성질로 한다.
중생을 슬퍼하기 때문에 여러 중생들을 해치지 않으니,
이것은 성내지 않음에 속하는 부분이다.
괴롭히지 않음을 업으로 삼는다.
무엇을 탐욕[貪] 이라고 하는가?
5취온(取薀)에 대하여 사랑의 오염으로 탐착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이것은 결박하고,
삼계에 윤회하게 하여 괴로움을 낳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삼는다.
애착의 힘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5취온을 낳는다.
무엇을 성냄[瞋] 이라고 하는가?
뭇 중생들에 대해서 해를 끼치는 것을 성질로 한다.
평온하지 않음에 머물거나 악행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평온하지 않다는 것은 다른 이에게 손해를 끼치고,
스스로 괴로움에 머물기 때문이다.
무엇을 오만함[慢] 이라고 하는가?
오만함에는 일곱 종류가 있다.
오만함[慢] ㆍ과만(過慢)ㆍ과과만(過過慢)ㆍ아만(我慢)ㆍ증상만(增上慢)ㆍ비만(卑慢)ㆍ사만(邪慢)을 말한다.
무엇을 오만함이라고 하는가?
열등한 것에 대해서 계교를 부려서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고,
혹은 동등한 것에 대해서 계교를 부려서 자기와 같다고 하여 이와 같이 마음이 들뜨게 만드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과만이라고 하는가?
동등한 것에 대해서 계교를 부려서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고,
혹은 뛰어난 것에 대해서 계교를 부려서 자기와 같다고 하여 이와 같이 마음이 들뜨게 만드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과과만이라고 하는가?
뛰어난 것에 대해서 계교를 부려서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여 이와 같이 마음이 들뜨게 만드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아만이라고 하는가?
5취온에 대해서 계교를 부림에 따라 나[我]
또는 나의 것[我所] 이라고 하여 이와 같이 마음이 들뜨게 만드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증상만이라고 하는가?
아직 얻지 못한 더더욱 수승한 증득할 바의 법을 ‘나는 이미 얻었다’고 하여 이와 같이 마음이 들뜨게 만드는 것을 성질로 한다.
더더욱 수승한 증득할 바의 법이란 모든 성인의 과보(果報) 및 삼마지ㆍ삼마발저(三摩鉢底)5) 등이다.
이들을 아직 얻지 못했으나 ‘나는 이미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을 불쌍하게 만드는 거만이다.
무엇을 비만이라고 하는가?
많은 부분이 수승한 것에 대해서 계교를 부려서 자기는 조금 못할 뿐이라고 라여 이와 같이 마음이 들뜨게 만드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사만이라고 하는가?
실제로 덕이 없음에도 계교를 부려서 자기가 덕이 있다고 하여 이와 같이 마음이 들뜨게 만드는 것을 성질로 한다.
존경하고 존중함이 생기지 않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존자(尊者) 및 유덕자(有德者)에 대해 거만과 오만한 마음을 일으켜 받들어 존중함이 생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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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무명(無明)이라고 하는가?
업ㆍ과보ㆍ진리ㆍ보배6)에 대해서 지혜가 없는 것을 성질로 한다.
이것은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함께 생기는 것[俱生] 이고,
둘째는 분별(分別)이다.
또한 욕계의 탐욕,
성냄 및 무명으로 세 가지 불선근(不善根)으로 삼으니,
탐욕의 불선근,
성냄의 불선근,
어리석음의 불선근을 말한다.
이는 다시 함께 생기는 것,
함께 생기지 않는 것,
분별이 일으킨 것이다.
함께 생기는 것이란 새ㆍ짐승 등을 말하고,
함께 생기지 않는 것이란 탐욕과 상응하는 것 등을 말한다.
분별이란 모든 견해[見] 7)와 상응하고 허망한 결정을 말한다.
의심과 번뇌가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견해[見] 라고 하는가?
견해에 다섯 가지가 있다.
살가야견(薩迦耶見)8)ㆍ변집견(邊執見)ㆍ사견(邪見)ㆍ견취(見取)ㆍ계금취(戒禁取)를 말한다.
무엇을 살가야견이라고 하는가?
5취온에 대해서 집착함에 따라 나 혹은 나의 것이라는 오염된 지혜를 성질로 한다.
살(薩,
sat)이란 깨어지고 부서진다는 뜻이다.
가야(迦耶,
kaya)란 화합하여 쌓임의 뜻을 말한다.
즉 이 가운데서 하나[一] 라는 견해,
영원[常] 하다는 견해,
다른 온이 나라는 온으로 있고,
나의 것 등이라고 한다.
어떤 까닭으로 다시 이와 같이 말하는가?
살이란 영원하다는 생각을 깨트리고,
가야란 하나라는 생각을 깨트린다.
영원히 쌓여 있는 것이 없어 이 가운데서 나와 나의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염된 지혜란 번뇌와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견해의 종류들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변집견이라고 하는가?
살가야견이 더욱 힘이 강하기 때문에 집착한 것에 대해서 혹은 영원[常] 하다고 집착하고,
혹은 단절[斷] 된다고 집착하는 오염된 지혜를 성질로 삼는다.
영원하다는 극단[常邊] 은 나와 자재천(自在天)이 항상 영원하다고 집착함을 말한다.
단절된다는 극단[斷邊] 은 작자(作者)ㆍ장부(丈夫) 등이 있어 그들은 마치 깨어진 병에 다시는 물을 담아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죽어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장애 가운데 8정도와 같은 도(道)로 벗어남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무엇을 사견이라고 하는가?
인과를 비방하고,
혹은 작용(作用)을 비방하고,
흑은 선한 일을 파괴하는 오염된 지혜를 성질로 한다.
인(因)을 비방한다란 무슨 뜻인가?
인온 업의 번뇌성을 말한다.
합해서 다섯 가지가 있다.
번뇌에는 무명ㆍ애(愛)ㆍ취(取)의 세 가지가 있다.
업에는 행(行) 및 유(有)의 두 가지가 있다.
유란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의지하는 모든 업의 종자를 말한다.
이는 또한 업이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아난아,
만약 업이 능히 미래의 과보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또한 유라고도 말한다.……”
이를 비방하는 것을 인을 비방한다고 안다.
과보를 비방한다란 무슨 뜻인가?
과보는 식(識)ㆍ명색(名色)ㆍ6처(處)ㆍ촉(觸)ㆍ수(受)ㆍ생(生)ㆍ노사(老死)의 일곱 가지가 있다.
이를 비방함이 과보를 비방하는 것이다.
또한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인을 비방함이고,
선행과 악행의 과보가 없다고 비방하는 것은 과보를 비방함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화생(化生)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없다고 비방한다.
이러한 비방은 작용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으로 왕생하는 작용,
종자를 지니고 있는 작용,
생을 맺어 상속하는 작용 등을 말한다.
세간과 아라한 등이 없다고 비방하는 것은 선한 일을 파괴함이다.
선근을 끊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하고,
불선근(不善根)이 견고해지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또한 불선을 낳고,
선을 낳지 않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무엇을 견취라고 하는가?
위에서 말한 세 가지 견해 및 의지하는 바의 온(薀)에 대해서 계교를 부림에 따라서 최고이다.
뛰어나다,
수승하다,
지극하다고 하는 오염된 지혜를 성질로 한다.
세 가지 견해란 살가야견ㆍ변집견ㆍ사견을 말한다.
의지하는 바의 온이란 곧 저 모든 견해가 의지하는 바의 온이다.
행동양식은 사견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무엇을 계금취견이라고 하는가?
계율과 금지하는 것 및 의지하는 바의 온에 대하여 계교를 부림에 따라서 청정하다.
해탈하였다.
벗어났다고 하는 오염된 지혜를 성질로 삼는다.
계(戒)란 악한 견해[惡見] 를 으뜸으로 삼고,
일곱 가지 악을 떠남을 말한다.
금(禁)이란 소ㆍ개 등의 살생을 금지하고,
스스로 머리카락을 뽑는 것을 금함을 말한다.
소와 개 등의 살생을 위해 세 갈래로 생긴 몽둥이를 들거나,
승거(僧佉) 학파9)의 선정과 지혜 등은 해탈의 원인이 아니다.
또한 대자재천 흑은 세계의 주(主)라고 계교를 부리거나 고행으로 물이나 불에 들어가는 등은 하늘에 태어나는 원인이 아니다.
이와 같은 것 등은 저 계교를 부림을 원인으로 삼는다.
의지하는 바의 온이란 계금이 의지하는 바의 온을 말한다.
청정이란 이 무간방편(無間方便)으로 청정함을 설함을 말한다.
해탈이란 곧 이로써 번뇌를 벗어버림을 말한다.
벗어남이란 곧 이로써 삶과 죽음을 벗어남을 말한다.
이와 같은 뜻은 능히 과보ㆍ황당함ㆍ피로ㆍ괴로움이 없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과보ㆍ황당함ㆍ피로가 없다는 것은 이는 능히 괴로움을 벗어남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을 말한다.
무엇을 의심[疑] 이라고 하는가?
진리와 보배 등에 대하여 있다거나 없다거나 판단을 유예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선법을 탕지 않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모든 번뇌 가운데 뒤의 세 가지 견해10) 및 의심은 오로지 분별이 일으키고,
나머지는 함께 생기는 것 및 분별이 공통되게 일으킨다.
무엇을 분함[忿] 이라고 하는가?
눈앞의 이익되지 않는 일에 의지하여 마음이 흥분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포악하고,
채찍이나 몽둥이 등을 들고 휘두르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원한[恨] 이라고 하는가?
분함을 바탕으로 하여 원수를 맺고는 풀지 않는 것을 성질로 한다.
참지 못하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으로 한다.
무엇을 숨김[覆] 이라고 하는가?
잘못에 대하여 가리고 숨기는 것을 성질로 한다.
죄를 숨기고 가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바른 가르침으로 꾸짖을 때 드러내지 못한다.
이는 어리석음의 한 부분이다.
후회함에 쫓겨서 편안하게 머물지 못함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괴로워함[惱] 이라고 하는가?
포악한 말을 하고 남을 능멸하고 죄를 저지르는 것을 성질로 한다.
분노와 원한이 이전에 있어 해치는 마음이 일어난다.
포악한 말이란 거칠고 사나워서 끊고 해를 끼침을 말한다.
근심과 괴로움으로 편안하게 머물지 못함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또한 복이 아닌 것을 일으킴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나쁜 이름과 말을 일으킴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무엇을 질투[嫉] 라고 하는가?
다른 사람이 잘되는 일에 대해서 시샘하는 마음을 성질로 한다.
자신의 명리(名利)를 바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잘되는 일에 대해서 참고 견딜 수가 없어 투기(妬忌)하는 마음이 생긴다.
스스로 근심과 괴로움에 머무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아낌[慳] 이라고 하는가?
베풂과 어긋나는 마음의 인색함을 성질로 한다.
재물 등에 대해서 아까워하고 인색하기 때문에 베풀 수가 없다.
이와 같은 것을 아낌이라고 한다.
마음이 생활에 도움을 주는 갖가지 도구 등에 늘 집착한다.
이는 탐욕의 일부분이다.
싫어하고 만족함이 없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싫어하고 만족함이 없는 것이란 아끼고 인색하기 때문에 소음이 없는 물건을 미리 항상 쌓아둠을 말한다.
무엇을 속임[誑] 이라고 하는가?
교만하고 망령됨을 말한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속여서 참된 공덕이 없는 것을 드러냄을 성질로 한다.
이는 탐욕의 일부분이다.
삿된 명령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아첨[諂] 이라고 하는가?
자신의 과오를 감추고 방편을 교묘하게 세워 마음을 왜곡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명리에 대하여 계교를 부리고 집착하는 바가 있음을 말한다.
이는 탐욕과 어리석음의 일부분이다.
바른 가르침과 꾸짖음을 막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또한 죄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여실하게 드러내어 참회하지 않고,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엇을 교만함[憍] 이라고 하는가?
잘되는 일에 대하여 오염되게 집착하여 거만하고 오만함이 다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잘되는 일이란 유루(有漏)의 잘되는 일을 말한다.
오염되게 집착하여 오만함이란 오염된 애착에 대하여 기뻐하고 즐기며 긍지를 가짐을 말한다.
이는 탐욕의 일부분이다.
다하는 것이란 능히 모든 선근을 다 없앰을 말한다.
무엇을 해침[害] 이라고 하는가?
중생에 대하여 괴롭게 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이는 성냄의 일부분이다.
괴롭게 한다는 것은 채찍과 몽둥이로 때리는 것 등을 말한다.
즉 이러한 것 등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부끄러워하지 않음[無慚] 이라고 하는가?
지은 죄에 대하여 스스로 수치스러워하지 않음을 성질로 한다.
모든 번뇌와 번뇌를 뒤따르는 것[隨煩惱] 의 도움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무엇을 뉘우치지 않음[無愧] 이라 하는가?
지은 죄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수치스러워하지 않음을 성질로 한다.
업은 부끄러워하지 않음[無愧] 에서 말한 것과 같다.
무엇을 혼침(昏沈)이라고 하는가?
마음을 조절하여 누그러지지 않아 감당할 수 없는 몽매(夢昧)한 것을 성질로 한다.
이는 어리석음의 일부분이다.
모든 번뇌와 번뇌를 뒤따르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도거(掉擧)라고 하는가?
기억과 생각의 기쁘고 즐거운 등의 일에 따라서 마음이 고요하지 않은 것을 성질로 한다.
과거의 유희와 기쁨,
웃음 등의 일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마음이 고요하지 않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는 어리석음의 일부분이다.
사마타(奢摩他)를 막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삼는다.
무엇을 믿지 않음[不信] 이라고 하는가?
믿음에 대피하는 것으로 업과 과보 등에 대해서 바르게 믿거나 따르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지 않은 것을 성질로 한다.
게으름[懈怠] 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해태(懈怠)라고 하는가?
정진에 대치하는 것으로 모든 선한 종류의 것들에 대해서 마음이 용감하게 정진하지 않는 것을 성질로 한다.
갖가지 선을 근면하게 닦는 것을 막아버림을 행동 양식으로 한다.
무엇을 방일(放逸)이라고 하는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에 의거하여 게으르기 때문에 모든 번뇌에 대해서 마음을 막지 않고,
모든 선한 종류의 다음 씀씀이에 대해서 닦아 익히지 않음을 성질로 한다.
선하지 않은 것이 늘어나고,
선한 법은 잃어버리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실념(失念)이라고 하는가?
오염된 생각으로 모든 선한 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오염된 생각이란 번뇌와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선한 법에 대마여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바른 가르침을 받고서 기억하여 지니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이 산란함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산란(散亂)이라고 하는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일부분씩 있고,
심(心)과 심법(心法)으로 하여금 산란하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을 성질로 삼는다.
욕심을 떠남[離欲] 을 막아 버림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무엇을 부정지(不正知)라고 하는가?
번뇌와 상응하는 지혜로 바르지 못한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행위를 일으키는 것을 성질로 한다.
계율을 어기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가고 오는 것 등에 대해서 바르게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하여 계율을 어기게 된다.
무엇을 악작(惡作)이라고 하는가?
마음이 변하여 후회하게 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지은 바를 싫어하기 때문에 악작이라고 이름한다.
이 악작의 본체는 즉각 변하여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지은 바를 싫어하고 나중에 후회함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는 곧 과보를 원인에 의해 이름짓기 때문에 악작이라고 이름한다.
마치 6촉처(觸處)를 말하여 선업(先業)으로 삼는 것과 같다.
이것에 2위(位)가 있으니 선(善)과 불선(不善)을 말한다.
2위 가운데 다시 각각에 2위가 있다.
만약 선위(善位)의 경우 먼저 선을 짓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 원인도 선이고,
후회도 역시 선이다.
만약 먼저 악을 짓고 뒤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 원인은 불선이고,
후회는 선이다.
만약 불선위(不善位)에서 먼저 악을 짓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 원인도 불선이고,
후회도 역시 불선이다.
만약 먼저 선을 짓고 뒤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 원인도 불선이고,
후회도 역시 불선이다.
무엇을 수면(睡眠)이라고 하는가?
자유자재로 전변하지 못하고 몽매하고 흐리멍텅하게 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자유자재로 전변하지 못하는 것이란 마음 등으로 하여금 자유자재로 전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어리석음의 일부분이다.
또한 이것의 자성(自性)은 자유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과 심법으로 하여금 극히 몽매하고 흐리멍텅하게 만든다.
이것은 선ㆍ불선ㆍ무기(無記)의 성품을 갖는다.
잘못을 저지름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심(尋)이라고 하는가?
사유[思] 와 지혜[慧] 의 차별로서 의언(意言)이 거칠게 관찰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거친 모습[麤相] 을 분별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의언이란 의식(意識)을 말한다.
이 가운데 혹은 사유에 의지하고 또는 지혜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거친 모습을 분별함이란 물병ㆍ옷ㆍ수레 등의 거친 모습을 찾아보게 함을 말한다.
즐거운 촉감,
괴로운 촉감 등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무엇을 사(伺)라고 하는가?
사유와 지혜의 차별로서 의언이 세밀하게 관찰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자세한 모습[細相] 을 분별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자세한 모습이란 물병ㆍ옷 등에 대해서 분별하여 자세한 모습이 이루어지는가,
이루어지지 않는가 등을 차별하는 뜻을 말한다.
무엇을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心不相應行] 이라고 하는가?
색과 마음 등에 의거하여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의 분류를 가정하여 세운다.
이것은 그것들과 다르거나 다르지 않은 성질을 설정할 수 없다.
이것은 또한 무엇이 있는가?
득(得)ㆍ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ㆍ무상천(無想天)ㆍ명근(命根)ㆍ중동분(衆同分)ㆍ생(生)ㆍ노(老)ㆍ주(住)ㆍ무상(無常)ㆍ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ㆍ이생성(異生性) 등이다.
무엇을 득(得)이라고 하는가?
획득하거나 성취함을 말한다.
이는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종자의 성취[種子成就] ㆍ자재함의 성취[自在成就] ㆍ현재 발생함의 성취[現起成就] 이다.
그 상응하는 바와 같다
무엇을 무상정(無想定)이라고 하는가?
두루 청정함과 오염됨을 떠났으나 아직 그 위의 오염을 떠나지 못함을 말한다.
상(想)과 작의(作意)를 벗어남을 으뜸으로 삼고 지닌 바 불항행(不恒行)11)의 심과 심법이 멸함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멸진정(滅盡定)이라고 하는가?
이미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의 오염을 떠난 것을 말한다.
첫 번째12)로부터 다시 더욱 나아가 잠시 상과 작의를 멈춤을 으뜸으로 삼고,
지닌 바 불항행과 항행(恒行) 일부분의 심과 심법이 멸함을 성질로 한다.
불항행이란 6전식(轉識)13)을 말한다.
항행이란 장식(藏識)14)과 염오의(染汚意)15)를 말한다.
이 가운데 6전식의 종류 및 염오의가 멸한다.
모두 멸진정이다.
무엇을 무상천(無想天)이라고 하는가?
무상정으로 얻어지는 과보로 그 전상에 태어남을 말한다.
지닌 바 불항행의 심과 심법이 멸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명근(命根)이라고 하는가?
중동분에 대해서 이전의 업이 이끄는 대로 머물 때 기간이 한정되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중동분(衆同分)이라고 하는가?
모든 무리의 중생들이 각각 자기 종류끼리16) 비슷한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생(生)이라고 하는가?
중동분에 있어서 지닌 바의 모든 행위가 본래 없으나 현재는 있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노(老)라고 하는가?
저 모든 행위가 상속하여 변하고 깨어지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주(住)라고 하는가?
저 모든 행위가 상속하여 따라서 전변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무상(無常)이라고 하는가?
저 모든 행위가 상속하여 없어지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명신(名身)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의 자성에 대하여 말이 더욱 늘어남을 성질로 한다.
마치 안(眼) 등을 말하는 것과 같다.
무엇을 구신(句身)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의 차별에 대하여 말이 더욱 늘어남을 성질로 한다.
마치 제행무상(諸行無常) 등을 말하는 것과 같다.
무엇을 문신(文身)이라고 하는가?
즉 모든 문자를 말한다.
이는 능히 앞의 두 가지 성질17)을 나타내 주기 때문에 또한 나타냄[顯] 이라고도 한다.
명신과 구신이 의지하는 바를 말한다.
뜻을 나타내기 때문에 또만 문자[字] 라고도 한다.
다르게 바뀜이 없기 때문이다.
앞의 두 가지 성질이란 자성 및 차별을 설명함을 말한다.
나타내 준다는 것은 나타냄을 말한다.
무엇을 이생성(異生性)이라고 하는가?
성스러운 법[聖法] 에 대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을 성질로 한다.
무엇을 식온(識薀)이라고 하는가?
연이 되는 것[所緣] 에 대하여 분별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또한 마음[心] 이라고도 한다.
능히 모으기 때문이다.
또만 뜻[意] 이라고도 한다.
의식에 포섭되는 바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장 수승한 마음[最勝心] 이라면 바로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이는 능히 모든 행위의 종자들을 채집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식의 행상(行相)은 분별할 수 없어 앞에서나 뒤에서나 한 종류로 상속하여 전변되기 때문이다.
또한 멸진정ㆍ무상정ㆍ무상천으로부터 일어나는 경우,
이 식으로 말미암아 대상을 분별하는 전변하는 식이 다시 생긴다.
소연연(所緣緣)을 기다려 차별이 전변하기 때문이다.
자주자주 끊어져 돌아와 다시 태어남이 일어난다.
또한 이 식으로 말미암아 생과 사의 흐름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뢰야식이란 능히 모든 종자를 거두어 저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능히 아만(我慢)이란 모습을 거두어 저장하기 때문이다.
또다시 몸을 연하여서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아다나식(阿陀那識)이라고도 한다.
몸을 유지하고 지탱하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난 뜻[最勝意] 이란 장식(藏識)을 연하여서 대상으로 삼는 식을 말한다.
항상 아치(我癡)ㆍ아견(我見)ㆍ아만(我慢)ㆍ아애(我愛)의 네 가지 번뇌와 상응하고,
앞에서나 뒤에서나 한 종류로 상속하여 전변한다.
아라한과 성도(聖道),
멸진정이 현재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제외한다.
이와 같은 6전식 및 염오의,
아뢰야식의 여덟 가지를 이름하여 식온이라고 한다.
【문】온(薀)이란 말의 뜻은 무엇인가?
【답】쌓임과 모임[積聚] 이 온의 뜻이다.
세간의 상속하는 종류들의 차별과 색(色) 등의 전체와 생략한 형태를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이여,
있는바 색은 과거의 것이거나 미래의 것이거나 현재의 것이거나,
내부의 것이거나 외부의 것이거나,
거친 것이거나 미세한 것이거나,
수승한 것이거나 하열한 것이거나,
가까운 것이거나 먼 것이거나,
모두 하나의 색온으로 거두어들일 수 있다”고 하신 것과 같다.
또한 12처(處)가 있다.
안처(眼處)ㆍ눈의 대상인 색처(色處)ㆍ이처(耳處)ㆍ귀의 대상인 성처(聲處)ㆍ비처(鼻處)ㆍ코의 대상인 향처(香處)ㆍ설처(舌處)ㆍ혀의 대상인 미처(味處)ㆍ신처(身處)ㆍ몸의 대상인 촉처(觸處)ㆍ의처(意處)ㆍ뜻의 대상인 법처(法處)를 말한다.
안처 등의 5처 및 색처ㆍ성처ㆍ향처ㆍ미처는 앞에서 이미 해석한 것과 같다.
촉처란 모든 대종(大種) 및 일부분의 접촉을 말한다.
의처는 식온이다.
법처는 수온ㆍ상온ㆍ행온ㆍ무표색(無表色) 등과 모든 무위를 말한다.
무엇을 무위(無爲)라고 하는가?
허공무위(虛空無爲)ㆍ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ㆍ택멸무위(擇滅無爲) 및 진여 등을 말한다.
허공이란 모든 색을 수용함을 말한다.
비택멸이란 혹 멸하는 경우 이계가 아닌 것[非離繫] 을 말한다.
무엇을 이계가 아닌 것이라고 하는가?
번뇌를 다스리는 것을 떠나서 모든 온이 마침내 생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택멸(擇滅)이라고 하는가?
혹 멸하는 경우 이계(離繫)를 말한다.
무엇을 이계라고 하는가?
번뇌를 다스리는 것에 의해 모든 온이 마침내 생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진여(眞如)라고 하는가?
모든 법과 법성(法性)의 법무아(法無我)18)인 성질을 말한다.
【문】12처에서 처(處)란 무슨 뜻인가?
【답】모든 식(識)이 자라나는 문이 처의 뜻이다.
또한 18계(界)가 있으니 안계ㆍ색계ㆍ안식계ㆍ이계ㆍ성계ㆍ이식계ㆍ비계ㆍ향계ㆍ비식계ㆍ설계ㆍ미계ㆍ설식계ㆍ신계ㆍ촉계ㆍ신식계ㆍ의계ㆍ법계ㆍ의식계를 말한다.
안(眼) 등의 모든 계 및 색 등의 모든 계는 12처를 설명한 곳에서 말한 것과 같다.
6식계란 눈 등의 감각기관에 의지하여 색 등이 대상을 연하여서 분별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의계란 저 쉼없이[無間]
소멸하는 것 등으로 제6식이 의지함을 드러내고자 함이고,
넓게 18계를 건립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색온은 10처ㆍ10계 및 법처ㆍ법계의 일부분이다.
식온은 의처 및 7심계(心界)이다.
나머지 3온과 색온의 일부분,
아울러 모든 무위는 법처ㆍ법계이다.
【문】계(界)란 무슨 뜻인가?
【답】작용이 없는 자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계의 뜻이다.
【문】무슨 뜻으로 온ㆍ계ㆍ처 등을 말하는가?
【답】세 종류의 아집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이른바 일성아집(一性我執)ㆍ수자아집(受者我執)ㆍ작자아집(作者我執)으로 그 순서대로 대비하여 다스리는 것이다.
또한 이 18계의 몇 가지가 유색(有色)인가?
10계와 1계의 일부분이다.
즉 색온은 자성이다.
몇 가지가 무색(無色)인가?
나머지 계이다.
몇 가지가 유견(有見)인가?
1계의 색계이다.
몇 가지가 무견(無見)인가?
나머지 계이다.
몇 가지가 유대(有對)인가?
10색계이다.
저것이 이것에 대해서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몇 가지가 무대(無對)인가?
나머지 계이다.
몇 가지가 유루(有漏)인가?
15계 및 삼계의 일부분이다.
이 처들에 대해서 번뇌를 일으키기 때문이고,
행하는 바의 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몇 가지가 무루(無漏)인가?
뒤 삼계의 일부분이다.
몇 가지가 욕계(欲界)에 묶여 있는가?
모두이다.
몇 가지가 색계(色界)에 묶여 있는가?
향계ㆍ미계 및 비식계ㆍ설식계를 제외한 14계이다.
몇 가지가 무색계(無色界)에 묶여 있는가?
뒤의 삼계이다.
몇 가지가 묶여 있지 않는가?
저 무루이다.
몇 가지가 온에 거두어진 것인가?
무위를 제외한 것이다.
몇 가지가 취온(取薀)에 거두어진 것인가?
유루이다.
몇 가지가 선(善)이고,
몇 가지가 불선(不善)이고,
몇 가지가 무기(無記)인가?
10계는 세 가지 성질에 다 통하는데,
7심계ㆍ색계ㆍ성계 및 법계의 일부분이다.
8계는 무기성이다.
몇 가지가 안[內] 인가?
12계이다.
색계ㆍ성계ㆍ향계ㆍ미계ㆍ촉ㆍ법계를 제외한다.
몇 가지가 밖[外] 19)인가?
나머지 6계이다.
몇 가지가 유연(有緣)인가?
7심계 및 법계의 일부분인 심소법(心所法)의 성질이다.
몇 가지가 무연(無緣)인가?
나머지 10계 및 법계의 일부분이다.
몇 가지가 분별이 있는가?
의식계ㆍ의계 및 법계의 일부분이다.
몇 가지가 집수(執受)가 있는가?
다섯 가지 내계(內界) 및 색ㆍ향ㆍ미ㆍ촉 4계의 일부분이다.
몇 가지가 집수가 없는가?
나머지 9계 및 4계의 일부분이다.
몇 가지가 동분(同分)인가?
다섯 가지 내계의 유색계이다.
저들을 자신의 식 등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몇 가지가 피동분(彼同分)인가?
저들과 자신의 식이 공(空)할 때를 말한다.
자신과 같은 종류이기 때문이다.
---------------- 1 정제된 버터를 말한다.
2 산스크리트어 samādhi의 음사어로 마음의 산란을 제거한 정(定)의 상태이다.
3 Vasbandhu, 인도의 유식논사.
4 유(有)는 3유(有),
즉 삼계를 말하고,
유자구(有資具)는 삼계에서 생(生)을 받는 원인(因)을 말한다.
5 산스크리트어 samāpatti의 음사로 등지(等至)라고 번역한다.
6 앞에서 나온 믿음의 부분을 보라.
7 다음의 견해 항을 보라.
8 산스크리트어 satkāya를 음사한 말로 유신견(有身見)이라고 번역한다.
9 Saṃkhya학파를 말한다.
10 사견ㆍ견취ㆍ계금취견을 말한다.
11 다음의 멸진정 항목을 보라.
12 9차제정(次第定)의 첫 번째를 말한다.
초선을 말한다.
13 안식에서 의식에 이르는 여섯 가지 식을 말한다.
14 아뢰야식(ālayavijñāna)을 말한다.
15 자아라는 개념을 갖게끔 하는 오염됨 의식을 말한다.
제7식이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로는 kliṣṭamanas이다.
16 철학의 유개념(類槪念)에 해당한다.
17 명신과 구신의 성질을 말한다.
18 자아로 보특가라(補特伽羅,
pudgala)를 주장하는 인무아(人無我) 사상과 함께 모든 법에 자성이 있다는 것을 깨트리는 사상을 말한다.
19 대상을 말하여 밖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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