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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4-23_현양성교론송_001 본문
『현양성교론송』
K0573
T1603
현양성교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현양성교론송_K0573_T1603 핵심요약
『현양성교론송』
♣0573-001♧
현양성교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현양성교론송
■ 현양성교론송(顯揚聖敎論頌)
무착보살(無着菩薩) 지음
현장(玄奘) 한역
■ 1. 섭사품(攝事品)
잘 가셨고[善逝] 잘 말씀하시는 묘한 3신(身)과
겁냄 없고 4류(流)없이 증득하신 교법(敎法)과
상승(上乘)이며 진실한 모니(牟尼)의 제자에게
나 지금 지성껏 먼저 예배 찬탄하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크게 자비한 어른으로서
장차 종지(種智)인 법왕(法王)지위를 이으시고
의지할 데가 없는 세상의 의지가 되시며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말씀하신 이에게 머리 조아립니다.
■ 옛적에 나 무착(無着) 그에게 들었으므로
지금에 『유가사지론』 중의 요긴한 것을 종합하오니
거룩한 그 교법을 현양하려는 것이요
글은 간략하고 뜻은 풍부하여 알기 쉽게 함이옵니다.
■ 섭사(攝事)ㆍ섭정의(攝淨義)ㆍ성선교품(成善巧品)과
성무상(成無常)ㆍ성고(成苦)ㆍ성공(成空)ㆍ성무성품(成無性品)이며
성현관(成現觀)ㆍ성유가(成瑜伽)ㆍ성부사의품(成不思議品)과
섭승결택품(攝勝決擇品)인 21품(品)입니다.
■ 일체(一切)와 계(界)와 잡염(雜染)과
체(諦)와 의지(依止),
각분(覺分)이며
보특가라(補特伽羅)와 그리고 과(果)와
모든 공덕[諸功德]인 아홉 가지 사실이네.
■ 마음(心)과 마음의 것[心所有]과 물질[色]이며
불상응(不相應)과 무위(無爲) 그것이네.
계(界)란,
욕계(欲界)ㆍ색계(色界) 따위와
그리고 삼천계(三千界)를 말하네.
번뇌 업으로 생기는 성질이
곧 잡염(雜染)의 모양이라고 알아야 한다.
모든 체(諦)에는 여섯 가지가 있고
의지(依止)에는 여덟과 둘이 있으며
각분(覺分)에는 많은 것이 있는데
최초의 것만도 37이 되네.
지(智)와 그리고 해탈문(解脫門)이며
행(行)과 적(迹),
그리고 지(止)와 관(觀)이네.
거처(居處)와 그리고 소의(所依)와
발심(發心)함과 가엾이 여김과
온갖 행(行)과 통달함의 성질이며
지(地)와 바라밀다(波羅密多)이네.
보살행(菩薩行)과 섭사(攝事)와
그리고 저 다라니(多羅尼)와
삼마지(三摩地) 따위의 문과
온갖 한량없는 작의(作意)이네.
진여(眞如)라는 작의(作意)의 모양과
불가사의를 믿고 서는 것과
광대한 아세야(阿世耶)인데
온갖 자수[自數]라고 알아야 하리.
수신행(隨信行) 따위가 일곱이며
다시 여덟 가지임을 알아야 하고
일곱 번을 반복하는 따위 있으며
퇴법(退法) 따위엔 여섯이 있네.
부드러운 근기 따위의 일곱 종류와
세속에 있는 이와 출가한 이며
성문승(聲聞乘) 따위의 셋인데
구출할 수 있음과 구출할 수 없음이네.
방편에 드는 따위가 아홉이요
태어남의 차별 때문에 둘이며
다시 모든 세계의 다름에 의하여
열 세 가지 된다고 알아야 하리.
과단(果斷)에는 다섯 가지가 있고
변지(遍知)와 그리고 청정(淸淨)과
정(定)과 과(果)ㆍ계(界)ㆍ보리(菩提)와
무학(無學)은 자수(自數)로 말미암네.
끊음은 많은 원인으로 끊어지며
소연(所緣)에 따라 끊음을 내세우고
작의(作意)와 의지함ㆍ닦음으로 말미암으며
그리고 끊게 되는 순서로 됨이네.
끊는 차별이 많다고 알아야 하며
끊는 것의 이익도 많다고 알 것이니
그와 같이 말한 바와 같아서
다시 많은 종류라고 알아야 하리.
무량(無量)과 모든 해탈(解脫)과
승처(勝處)와 그리고 변처(遍處)이며
무쟁(無諍)과 미묘한 원지(願智)와
걸림 없는 이해와 신통(神通)이네.
모든 형상 좋음[相好]과 청정(淸淨)이며
모든 힘[力]과 두려움 없음[無畏]과
두호하지 않음[不護]과 념주(念住)이며
모든 습기(習氣)를 영원히 끊음이네.
잃어버리거나 잊음 없는 미묘한 법과
그리고 여래의ㅣ 대비(大悲)이며
부처님의 불공(不共)덕인 법과
온갖 종류의 미묘한 지혜이네.
알아야 할 것은 앞의 아홉 가지 사실에서
처음[一切]은 둘의 소의(所依)가 되고
다음의 둘과 뒤의 여섯 가지로는
잡염(雜染)과 청정함을 포섭하네.
잡염의 소의(所依)와 잡염의 차별이며
청정의 반연하는 바이기 때문이며
마음이 흐르거나 헷갈리지 않음이요
바르게 닦는 방편이기 때문에
저 지위는 차별함이기 때문이며
말 따위의 원인이기 때문이요
저 과(果)와 공덕이기 때문에
그 수의 순서가 그러할 뿐이네.
한량없는 여러 문답의 차별을
생각하거나 헤아리려고 한다면
부처님의 모든 말씀, 그것은
사실[事]과 생각[思]에 포섭되네.
글귀[句]와 미혹(迷惑)과 희론(戱論)이며
머무름[住], 진실(眞實), 깨끗함[淨],
미묘함[妙]과고요함[寂靜], 성품[性], 도리[道理]이며
임시로 시설함[假施設]과 현관(現觀)이네.
방소(方所)와 위(位)와 분별(分別)과
지음[作], 집지(執持)와 증(增), 감(減)이며
어둠, 말, 깨달을 것과 상(上)이며
멀리 떠남과 구름[轉]과 장호(藏護)이네.
간택(簡擇)과 그리고 현행(現行)과
수면(隨眠)과 및 상속[相續]과
모두 서로 포섭함과 상응(相應)이며
언설(言說)과 지탱함과 순서이네.
소작(所作)과 대상과 유가(瑜伽)와
사마타(奢摩他)와 그리고 관(觀)이며
모든 작의(作意)와 교수(敎授)와
덕과 보리(菩提)와 성교(聖敎)이네.
만일 변지(遍知) 따위의 공덕을
바르게 수행하려고 한다면
열 가지의 법행(法行)과
여섯 가지 이취(理趣)로 말미암네.
■ 2. 섭정의품(攝淨義品)
모든 논리 중에서 수승한 논리이고
또한 유가(瑜伽)에 잘 드는 것이니
청정한 법을 응당 알아야 할 것은
넷의 청정한 덕을 갖춤이라고 함이네.
일체의 법을 포섭하기 때문이며
저 외도가 파괴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들어가기가 쉽기 때문이며
들면 행하여 잃지 않기 때문이네.
■ 부처님께서 미묘한 법 말씀하심은
바로 2제(諦)에 의지한 것이니
첫째는 세속제(世俗諦)라 이름하고
둘째는 승의제(勝義諦)라 이름하네.
■ 처음은 ⧼나⧽와 법과 작용 말했으니
그 의를 따르기 위해 말함이며
일곱 가지와 네 가지 진여(眞如)를
승의제(勝義諦)라 이름함이네.
자성(自性)과 의(義)와 건립(建立)과
수(數)와 차제(次第)와 선교(善巧)와
상차별(想差別)에 대해서 쌓임[蘊]과
세속 법을 밝힘이라고 알아야 하네.
5법(法)과 3법(法)인 진실인데
그것에는 또 넷이라고 알아야 하며
그리고 네 가지인 심사(尋思)와
네 가지인 여실지(如實智)이네.
세 가지 자체가 성립하는데
차별과 업과 은밀함이며
방편과 포섭함과 다름이니
이것이 각각 많은 종류이네.
12분교(分敎)를 듣고서
가장 수승한 3보(寶)에서 귀의하며
3학(學)과 3보리(菩提)를
중생에게 청정함을 위해 연설하네.
들음과 귀의함과 배움과 보리에는
여섯, 셋, 열, 둘, 다섯이니
그 명수(名數)의 차례를 따라
적응하게 널리 분별해야 하리.
거룩한 행[聖行]과 위없는 법(無上法)과
위대한 보리(菩提)와 공덕이며
외도 논리와 그리고 논법과
해석을 알아야 함이 각각 많은 종류이네.
특수함과 특수함 아닌 것과
평등한 마음과 이익되게 함이며
은혜 갚음과 기뻐해 찬양함과
헛되지 않는 방편행(方便行)이네.
뒤바뀌지 않은 방편(方便)과
타락함과 수승한 정진이며
비슷함의 공덕과 진실한 공덕과
중생을 잘 조복함이 그것이네.
보살들이 수기(授記)를 받음과
결정수(決定數)에 처짐이며
결정적으로 함과 늘 해야 함과
가장 수승한 법을 알아야 하리.
온갖 시설하고 건립함과
온갖 법에 심사(尋伺)함이며
그리고 여실변지(如實遍智)와
아울러 모든 한량없음이네.
펴 연설하는 과덕이 이익과
대승(大乘)의 성질과 껴잡음이며
보살의 열 가지 알아야 함과
여러 명칭을 내 세움이네.
원인 중에 결과가 있다 고집함과
드러남과 과거 미래가 있다 함이며
⧼나⧽와 항상함과 전에 지은 원인과
자재(自在) 따위와 해치는 법이라 함이며,
그지 있고 없음과, 어지럽게 말함과
원인 없다고 보는 것과, 없음, 공(空)이라 함이며
수승ㆍ청정ㆍ길상(吉祥)이라 여기는 것을
열여섯 가지 외도 논리라 말하네.
공능(功能)이라 함도 체성(體性) 없고
해당됨과 해당 안 됨도 위반되며
수용 있음과 그리고 수용 없음과
원인 된다 함이 허물을 이루네.
논한 체성과 논할 자리와
논할 의지와 논할 장엄이며
논함에 짐과 논함에 벗어남과
논함에 짓는바 법이 않음이네.
체성(體性)ㆍ해석ㆍ글ㆍ뜻의 법과
등기(等起)ㆍ의미ㆍ힐난을 풀이함이며
차제ㆍ스승ㆍ설중(說衆)ㆍ들음과
찬불(讚佛)의 약광(略廣)ㆍ학승리(學勝利)이네.
온갖 지(地)와 모양[相]과 작의(作意)와
의처(依處)와 덕과 덕 아님과
다스릴 바와 능히 다스림에 대한
간략함과 광범한 뜻을 알아야 하리.
■ 3. 성선교품(成善巧品)
온갖 쌓임[蘊]과 계(界)ㆍ처(處)와
그리고 온갖 연기(緣起) 법과
처비처(處非處)와 근(根)과 제(諦)에서의
선교(善巧)한 사실이라고 알아야 하리.
몸이라고 함과 자재(自在) 따위라 함과
원인 없는 몸이라 함과 머무름이라 함이며
유전(流轉)함이라 함과 온갖 업 지음이라 함과
두 가지 증상(增上)하는 몸이라고 함이네.
몸이라는 것에서와 그러한 따위에서 생겼다 함과
참 ⧼나⧽가 주지(住持)한다 함이며
유전(流轉)함이라 함과 짓는 것과
온갖 증상(增上)함이라는 뜻에서이며
■ 염오(染汚)와 그리고 청정(淸淨)에서
일곱 가지 어리석음 일으키기에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 선교(善巧)를 포섭한다 알아야 하리.
내 몸이라고 잘못 여기는 이는
모든 감관에 의지한다고 하여
대상에서 이리저리 회전하면서
사랑과 사랑 아님을 누린다고 하네.
말이 그것에 의지한 것이라고 하고
만든 것과 감각하는 것이 있다고 하며
차별인 쌓임[蘊]으로 말미암아서
하나의 몸이라고 모두 보네.
처음 원인에 미혹하였기 때문에
항상함인 원인,
원인 없음이라고 하며
⧼나⧽ 가 모든 감관을 주지(住持)하여
능히 촉감 내고 능히 느낀다고 하네.
이 죽고 태어나는 곳에서부터
유전(流轉)하는 것 있다고 여기며
법과 법 아님을 짓는 것과
그리고 저 결과가 증상함이라고 하며,
삿된 행(行) 닦고 익히는 그것을
염오(染汚)가 된다고 잘못 계교하며
바른 행(行) 닦고 익히는 그것을
해탈이라고 잘못 계교하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기 전에
그와 같은 어리석음이 일어났었는데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함으로 말미암아서
일곱 가지 선교(善巧)를 말씀하셨네.
세(世=三世) 따위의 분별을 알므로
하나로 합하는 생각 능히 없앤다.
즉(卽)함과 떠남과 해탈함에서도
중생이라는 것 얻을 수 없네.
많은 종류와 그리고 총략(總略)과
차별 있음과 함께 따로 전변하여
증가하여 더함과 줄어든 지혜를
쌓임[蘊]에 대한 선교라고 알아야 하리.
3인(因)이 생기는 것 보기 때문에
계(界)의 선교라고 말하나니
끝없이 제 종류[自種]에서부터
많이 생기며 또 가지가지가 생긴다.
그로 말미암아 그에 이르도록
취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며
제 지혜에 의해 이루기 때문에
하열성(下劣性)을 능히 제거하네.
모든 촉감[觸]과 모든 느낌[受]이
두 가지 생문(生門)으로 말미암아
촉감에 의지하기 때문에
처(處)에 대한 선교라고 알리라
법의 장소ㆍ하늘의 장소와 같아서
다음다음의 것이 의지하는 바이며
세속 진리로 말미암기 때문에
두 가지[觸受] 체성임을 아네.
무상한 원인을 끊지 못해서
모든 결과를 능히 내는 것과
계속함에서와 비슷함에서 임을 알므로
연기(緣起)에 대한 선교라고 말하네.
중생에게 버림과 계속함이
있는 것 얻을 수 없음은
매우 깊은 네 가지 연기를
분명히 잘 알았기 때문이네.
짓지 않음ㆍ가지 못함ㆍ얻지 못함과
두 몸과 딴 몸으로는 전환 못함이며
청정한 견해에는 딴 업이 없나니
두 곳에 ⧼나⧽가 자재(自在)함 아니네.
그와 같은 지혜로 능히 알면
처비처(處非處)에 대한 선교라 하고
제 결과[自果]가 결정된 자리에서
그와 다르면 비처(非處)라 말하네.
능히 취함과 생김과 유지함과
그리고 염오와 및 청정(淸淨)과
무리한 ⧼나⧽라는 관념과 딴 것들이
저 결과에 증상(增上)함이 된다.
그와 같은 것에 대한 방편을
근(根) 선교가 된다 이름하나니
말하자면 취함ㆍ생김ㆍ유지함과
염오ㆍ청정이 증상함이기 때문이네.
둘이서인 자성(自性)의 괴로움과
합하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나니
원인 없음ㆍ원인 있음으로 말미암아서이며
다섯 가지 비유로 말미암아서이다.
그와 같이 따라 깨닫기 때문에
응당 제(諦) 선교라고 알아야 하나니
일찍이 보지 못함과 저 인연과
받지 못함과 저 인연을 따라 깨달음이네.
모든 선교(善巧)의 차별은
스물세 가지라고 알아야 하나니
이섭론(異攝論)이 첫째가 되고
마지막은 최극청정지(最極淸淨智)이네.
■ 4. 성무상품(成無常品)
■ 무상(無常)함이란, 유위(有爲)를 말함이니
세 모양과 서로 응하기 때문이다.
무상함의 뜻을 그의 적응하는 대로
여섯 가지, 여덟 가지라고 알아야 하리.
체성 없음과 무너짐과 변해 달라짐과
떠나 이별함과 얻음과 앞으로 있음이며
찰나(刹那)와 계속함과 병듦 따위와
마음 그릇과 수용함 따위이네.
변해 달라짐에는 열다섯 가지의
차별이 있다고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분위(分位) 따위가 그것인데
여덟 인연에 핍박되기 때문이네.
아래 세계에는 모두들 갖추었고
중간 세계에는 셋 문을 떠나서
세 가지 변해 달라짐을 갖추었고
위 세계에서는 기세계(器世界)가 제외되네.
체성 없음인 내용의 무상(無常)은
변계(遍計)로서 고집하는 바이며
그 밖의 무상에 대한 내용들은
의타기(依他起)라고 알아야 하리.
『온갖 무상이 모두 괴로움이라』함은
모든 괴로움과 섞이었기 때문이니
법의 성품에 미혹한 어리석은 이는
해독을 받으면서 깨닫지 못하네.
저 마음의 결과로 말미암기에
생기고서 저절로 사라지나니
뒤에 변해 달라질 수 있음은
찰나 찰나에 사라짐이라고 알아야 하리.
마음의 훈습(薰習)이 증상(增上)하며
선정에서 전변(轉變)함과 자재(自在)함으로
영상(影像)이 생기게 되는 도리와
세 가지 성교(聖敎)로 인함이네.
생인(生因)과 서로 어기지 때문이며
주인(住因)과 멸인(滅因)이 없으며
자연주(自然住)라면 항상하다는 허물되리니
그러기에 저절로 사라짐이라고 알리라.
물ㆍ불ㆍ바람이 멸인(滅因) 아니니
함께 생기고 사라지니 때문이며
저와 서로 응하여 사라지면
변하여, 그 밖의 다른 생이 되는 인이 되네.
상위(相違)함과 상속(相續)이 끊어짐과
두 모양과 모양 없음[無相]을 이름과
세상에서 현재 봄을 어김과
법 없음과 그 밖의 원인 그것이네.
몸과 젖과 수풀 따위가
처음에 변해 달라짐 없음이 아니며
또한 처음에 무너지지 않다가
최후 시간에야 없어짐이 아니네.
처지[位]와 생각[思]과 번뇌와 시간을
항상하지 않고 변하기 때문이니
그것이 만일 변해 달라짐 없다면
받음ㆍ지음ㆍ해탈은 옳지 못하리.
공능이 있지 않기 때문이고
해당함과 해당함 아님이 상위하며
쓰임이 있음과 쓰임이 없음과
원인 된다는 것 허물을 이루네.
■ 자성(自性)이라면 변해 달라지는 모양이
있음과 없음, 모두 맞지 않으며
차별이 없다면 무상함이 되고
차별이 있다면 다섯 허물이 있나니
모양 없음과 또한 원인 없음과
자성(自性) 아님과 항상 변함과
먼저 변해 달라짐이 있기 전에
⧼나⧽가 응당 늘 해탈함 그것이네.
항상함과 조작이 다 이치에 맞지 않음은
두 원인과 세 원인으로 인해서이다
재물ㆍ중생ㆍ증상(增上)함 그것으로
아주 작은 분자가 항상 머무름 아니네.
무상하게도 제에게 의지하였으며
차례로 일어나고 차별로 일어나며
모든 느낌[受] 따위가 다르므로
감각이 무상함이라고 알아야 하리.
무상(無常)에 대한 무지(無智) 그것이
4전도(顚倒)의 근본이 되나니
세간도(世間道)가 더욱 올라갈수록
어리석음의 힘도 더 증가한다고 알아야 하리.
방일(放逸)과 게으름과 뒤바뀐 소견과
우매함과 돕는 양식[資糧]이 없음과
나쁜 벗과 바르지 못한 법 때문이니
그가 무지(無智)의 원인이라고 알아야 하리.
진리대로 생각을 하지 아니하며
과거 따위를 기억해 생각하므로
비슷하게 계속적으로 헤매면서
무상을 항상함이라고 여기네.
1생(生)의 처음ㆍ마지막ㆍ중간에서
세 유위[三有爲] 모양을 취함이네.
무상을 조복(調伏)하는 지혜는
두 원인으로 말미암음이라고 알아야 하리.
저를 보는 데에 여섯 가지 있고
연기(緣起)에는 네 가지가 있다.
자기 종류이므로 여타 것이 아니고
인연을 기다리므로 자기가 아니며
지음이 없기에 공통됨도 아니요
작용하므로 원인 없음도 아니네.
■ 5. 성고품(成苦品)
생길 적엔 애욕 떠나려는 원인 되고
사라질 적엔 애욕에 어울리는 원인되며
뒤바뀜과 뒤바뀜 없음과 싫어하는
저 원인이 괴로움의 모양이 되네.
■ 3수(受)의 차별에 의하여
3고(苦)의 모양을 건립하나니
그러므로 온갖 느낌[受]들은
그 체성이 다 괴로움이라 말하네.
지어감의 체성은 괴로움이라고 알 것이니
모두가 거칠고 중함에 따르기 때문이다.
낙(樂)과 사(捨)라 함이 맞지 않으니
함께 해탈이 없는 허물이기 때문이네.
날카로움ㆍ깊음ㆍ평등함ㆍ장애이며
의지ㆍ승진(勝進)ㆍ머무름ㆍ공(空)에 집착함이며
집착함에 그 성질이 하열(下劣)하며
뒤바뀜과 그리고 염오(染汚)임이네.
종기ㆍ옴ㆍ대풍창 따위와 같아서
3수(受)가 그것에 의지한다.
그것이 능히 3촉(觸)을 발기하며
즐거움 따위를 취함에 따라 일어나네.
자기 모양[自相]과 자기 분별[自分別]과
불안함으로 괴로움의 성질이라 함이니
쉰다섯이 있다고 알아야 하는데
모두 3고(苦)에 해당된 것이네.
계(界)ㆍ인연ㆍ몸 등과 갈래[趣]와
종류ㆍ진리[諦]ㆍ3세(世)ㆍ시절과
목숨 보호함과 품(品)이 다르기에
뭇 괴로움의 차별을 이끌어 내네.
욕심[欲]과 형상[色] 따위를 떠나지 못하여
세 가지 경지라고 알아야 하나니
욕심세계에는 온갖 종류 갖추었고
형상과 무형 세계에는 둘을 제거했네.
세속(世俗)에 두 가지가 있으며
승의(勝義)에는 변행(遍行)만 있다 이른다.
두 연(緣)이 위 경지에 통하는데
현재의 염오는 없다고 알아야 하네.
무형 세계에는 무거운 부담이 없고
변행(遍行)인 하늘, 거칠고 중함과
진리의 최후 쪽에 온갖 취온(取蘊)이 있으며
그 외는 일곱이고 위에는 속박 따르네.
태어나는 따위의 괴로움에는
각기 다섯 가지 차별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괴로움과 거칠고 중함과 상응하며
3고(苦)가 의지함이 그것이네.
8고(苦)의 최후와 3고(苦)의 최후가
각각 4고(苦)의 의지가 되나니
생고(生苦)와 생근본고(生根本苦)와
고자성고(苦自性苦)와 변괴고(遍壞苦)가 그것이네.
3세(世)에 해당되는 것 중의
두 연고(緣苦)는 위 경지가 아니고
말한 바 그 밖의 모든 괴로움들은
모두 욕심 세계에 있다고 알아야 하리.
기억을 망실함과 공력들임이 없음과
어지러움과 바르지 못한 생각과
어리석음을 바르게 알지 못함과
또는 방일(放逸) 따위로 말미암아서이네.
어둡기 때문과 못 낫기 때문이며
그리고 방일(放逸)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상속(相續)이 끊어짐이기 때문으로
허망한 생각이 일어난다고 알아야 하리.
비슷한 상속(相續)이 일어남과
허망한 분별을 다스림과
관습과 총체적인 집착함 때문으로
네 가지 뒤바뀜을 일으키네.
계(界) 차별(差別)과 연기(緣起) 차별과
위(位) 차별과 차제(次第) 차별과
그리고 상속(相續) 차별이 그것이니
각각 많은 종류가 있다고 아라야 하네.
믿고 앎[信解]과 생각하여 간택[思擇]함과
산란하지 않음[不散亂]과 마음에 싫어함과
견도(見道)ㆍ수도(修道) 그리고 구경도(究竟道)와
또 앞에서와 같은 열 한 가지이네.
얽힘과 의심과 떠나기를 좋아 않음과
혼침과 나쁜 갈래와 그 외의 갈래와
하열(下劣)한 행(行)에서 일어남과
혼자서 두루 모든 괴로움을 없애네.
■ 6. 성공품(成空品)
만일 여기에는 있음이 없으며
또 그 밖에는 있는 바이니
두 가지의 도리를 따라서
공(空) 모양은 둘이 없다 말하네.
매우 깊은 모양 알기를
취하거나 버림에 증감 없다고 하리
차별에는 많은 종류가 있나니
여기저기서 말씀하신 것과 같네.
오직 거짓인 허물이 있음과
쌓임[蘊]에는 ⧼나⧽가 없는 허물과
⧼나⧽에 몸이 없는 허물 때문에
세 가지 ⧼나⧽가 이치에 맞지 않네.
주인ㆍ불ㆍ밝음ㆍ허공과 같다면
형체가 다름과 타에 의한 허물과
무상함과 업용(業用)이 없음과
원인 아니어서 ⧼나⧽있음 아니네.
⧼나⧽란,
응당 거짓뿐이어서
비유도 얻을 수가 없나니
일곱 비유로 허망하게 분별함이요
보는 것 따위의 셋이 없다네.
만일 종자와 같으면 무상함이며
짓는 것이라면 응당 거짓이 되며
신통(神通)을 성취함과 같다면
세속에서 자재(自在)라 함과 같으리.
⧼나⧽가 땅 같고 허공 같다면
응당 무상하여 체성이 없을 것이요,
응당 들과 같이 작용함이 없다면
분명한 업(業)을 얻을 것이다.
능히 불태움과 능히 끊는 것은
오직 불 따위가 하는 작용이요
⧼나⧽는 보는 따위의 기구에 대해서
칼이나 불 따위와 같지 않네.
광명이 능히 비추는 작용이 있고
광명을 떠나면 다른 실체 없음과 같나니
그러므로 안과 밖의 모든 법이
공하여 ⧼나⧽없는 뜻 성립하네.
세상의 바깥 물건들이
⧼나⧽를 떠났으나 손익(損益)이 있듯이
안에 비록 참 ⧼나⧽가 없으나
더러움ㆍ깨끗함의 내용 성립 되네.
위치와 생각과 번뇌와 시분(時分)에
항상 변하거나 달라짐이 없기 때문에
⧼나⧽는 항상 유전하거나 바뀜 없나니
받음ㆍ지음ㆍ해탈함ㆍ응당 없으리.
법의 성품이 인연 따라 생기어
이리 저리 나타나 계속하는데
원인 있으면서 머무르지 않고
변해 달라지므로 유전(流轉)이라 말하네.
몸과 어금니와 강물과 등불처럼
가지가지 작용이 있으므로
⧼나⧽가 항상 변해 달라짐 없이
유전한다 함이 이치에 맞지 않네.
⧼나⧽에 의해 이름과 생각 일으키면
두 가지 허물 보게 되리니
그러므로 두루 어디에서라도
참 ⧼나⧽의 성품은 전혀 없다.
말로 설명하기가 쉽기 때문이며
세상을 따라 순응하기 때문이며
두려움을 끊어 제거하기 때문이며
공덕과 허물의 둘을 나타내기 때문이네.
갑자기 감각이 어지럽게 일어남을
세상에서 현재 볼 수 있는데
감각이 앞선 작업(作業)이 되면
열 가지 허물이 있기 마련이네.
감각과 ⧼나⧽와 원인과 공용(功用)과
자재(自在) 따위에 각각 둘이요
원인 있음과 원인 없음 까지
열 가지 허물이라고 알아야 하리.
살피지 않고 결정함과 두루 행[遍行]함과
증익(增益)함과 그리고 사실 없음과
사실에 두려워하여 허망하게 보는
비유는 다섯 가지라고 알아야 하리.
실제 없음과 멀리 떠남과
제해 버림의 세 가지에 의하여
모든 속박과 생각을 다스리는
열여섯 가지 차별이 있네.
■ 자성(自性)과 집착함[執着]과
알지 못함과 기억을 망실함과
모두에 두루함과 1부분인
어리석음의 차별로 유전(流轉)하네.
법에 머무름과 제 마음 찾음과
제 마음에 머무름과 속박을 없앰과
두려움과 둘 없음과 염오와 청정으로
진공(眞空)의 진리를 증득하네.
닦음의 차별이 열여덟 가지이며
혹 유독수(有毒修)와 무독수(無毒修)이며
다섯 가지 집착을 다스리는데
대략 두 가지라고 알아야 하리.
과덕(果德)을 닦음에 있어서
삼보리(三菩提) 공덕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전의(轉依)의 성질에 의하여
지을 바 일을 성취하네.
■ 7. 성무성품(成無性品)
■ 3자성(自性)을 알아야 하나니
처음은 변계소집(遍計所執)이요
다음은 의타기성(依他起性)이요
최후는 원성실성(圓成實性)이네.
■ 3무성(無性)이 3자성(自性)을
떠나지 아니했다고 알아야 하나니
상무성(相無性)과 생무성(生無性)과
승의무성(勝義無性)으로 말미암네.
5사(事)에 해당한바 아님이니
이 밖에 또 있는 것 없네.
이름[名]이 뜻[義]에서 일어나며
둘이 번갈아 서로 객체가 되네.
이름 전에는 감각이 없으며
많은 이름과 고정함 아니며
뜻 있음ㆍ뜻 없음에서 일어남이
옳지 않은 뜻이 성립되네.
취하고 이름[名]을 세우기 때문이며
그 외는 곧 능히 취하지 못한다.
중생의 삿된 집착은
불어남과 같기에 뒤바뀜이 되네.
훈습으로 말미암아 의타(依他)가 생기고
그에 의하여 뒤바뀜이 생기고
그와 같이 서로 인연이 되어
이리저리 몸이 생기게 되네.
자성(自性)과 차별(差別)과
각오(覺悟) 있음과 수면(隨眠)과
가행(加行)과 명변계(名遍計)인데
또 다섯 가지 있다고 알아야 하리.
분별(分別)에는 여덟 가지가 있어서
능히 3사(事)를 내나니
분별의 자체가 3계(界)의
마음과 마음 법이라고 알아야 하리.
두 속박에 묶인 것을 말미암아
둘의 자성(自性)을 굳게 집착하나니
그러므로 두 속박을 해탈한다면
바로 얻음 없고 소견 없으리라.
가유(假有)는 의지한바 원인이 있네.
만일 다르면 두 가지가 무너지리니
잡염(雜染)은 얻을 수가 있으므로
의타기(依他起)가 있다고 알아야 하리.
모양과 거칠고 무거움으로 자체가 되어
그것이 번갈아 서로 인연이 되어 생기고
저절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김의 체성 없다고 말하네.
결정적으로 있음과 없음 아니며
온갖 종류를 모두 긍정함이
가(假)와 실(實),
두 성질에 통하는데
세속에 의하여 있다고 말함이네.
아(我)와 법(法)의 작용 말함을
모두 세속이 된다고 이름하며
승의(勝義) 진리는 일곱 가지
진여(眞如)를 말함이라고 알아야 하리
원성실(圓成實)의 자성(自性)은
둘의 가장 수승한 지(智)의 내용으로
온갖 실없는 이론 없으며
하나와 다른 성질 멀리 떠났네.
청정함 그를 반연하는 바이며
항상함과 변함과 다름없으며
착함의 성질과 즐거움의 성질인
온갖 것을 모두 성취하였네.
■ 원성실(圓成實)인 승의가 무성(無性)임은
실없는 이론과 아(我)가 없기 때문이다.
의타기(依他起)는 저 모양 없거니와
이 승의(勝義)야말로 무성(無性)이네.
3상(相)에 의해 5상(相)을
내세움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저것은 그 적응하는 대로
따로 따로 5업(業)이 있네.
법집(法執) 때문에 어리석은 이가
저 중생집(衆生執)을 일으키나니
저것을 제거하고 법성(法性)을 깨달으면
법성을 깨달으므로 아집(我執)이 끊어지네.
■ 의타기는 처음 자성(自性)에 집착하므로
훈습 일으키면 잡염을 이루고
집착 없는 원성실(圓成實)에서
훈습 일으키면 청정을 이루네.
■ 잡염(雜染)은 유루(有漏)인 성질이요
청정(淸淨)은 곧 무루(無漏)이니
그는 곧 전의(轉依)의 불가사의(不可思議)의
두 가지라고 알아야 하네.
진실(眞實)과 자체이며
고요함[寂靜]과 공덕(功德)이니
온갖 불가사의(不可思議)는
네 가지 도리로 말미암는다고 알아야 하리.
성문(聲聞)에 두 가지가 있으니
열반에 나아감과 보리에 나아감인데
그는 변화(變化)하는 몸에 의하여
위없는 정각(正覺)에 나아가네.
모든 성문의 전의(轉依)는
싫어하고 등져 닦음으로 얻음이요
보살의 전의는 방편수(方便修)와
둘 없는 지혜에 의지함이네.
생김과 사라짐에 머무르지 않기에
부처님 지혜만이 위가 없나니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며
불가사의이고 둘이 없으시네.
■ 8. 성현관품(成現觀品)
하품(下品)ㆍ중품(中品)ㆍ상품(上品)의 일을
현관(現觀)할 바라고 알아야 하나니
유루(有漏)와 그리고 무루(無漏)와
보지 못함ㆍ받지 못함ㆍ두루함이네.
출세간(出世間)의 수승한 지혜로
능히 제거하고 견(見)으로 끊음이니
분별없음으로 그를 증득하며
오직 정려(靜慮)에 의지하네.
아주 괴로운 악취(惡趣)가 아니며
아주 즐거운 위의 두 세계도 아니요
욕심 세계의 인간과 천상에 있어서
부처님이 출세하여 현관(現觀)하시네.
욕심 못 떠난 이와 갑절을 떠난 이와
그리고 욕심을 이미 떠난 이와
혼자 깨달은 이와 정각(正覺)을 증득하려는 이니
가장 수승한 ⧼나⧽에서 생기는 바이네.
⧼나⧽가 지혜의 원인 되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 취하는 대상 아니요
⧼나⧽는 스스로 현관(現觀) 아니니
자아(自我)에 고집하고 애착하기 때문이다.
무상함(無常)이라면 경계(境界)가 있어서
인연을 기다려 지(智)가 생길 것이며
거칠고 중한 따위 셋을 끊으리니
그러므로 마음에 의해 현관(現觀)함이다.
이미 상속(相續)을 성숙하고서
혹 바른 법을 듣기도 하며
저절로 진리에 아주 합하여
작의(作意)하므로 현관(現觀)하네.
생각을 소연(所緣)에 얽매어 두며
정근(精勤)과 고요한 정(定) 닦으며
증상(增上)한 선근(善根)과 선근의 힘으로
성각분(聖覺分)과 성도분(聖道分) 증득하리.
이로부터 견도(見道)에 들어가면
무루(無漏)인 바른 소견 생기고
3결(結)을 영원히 끊어서
현관(現觀)을 증득한다고 알리라.
비록 악취(惡趣)ㆍ잡염(雜染)의 계교와
일으키는 바와 번뇌를 끊으나
대상(境)과 소견(見)과 길잡이 따위에서
따라 나므로 3결(結) 끊음에 해당하네.
전에 들음과 세간지(世間智)로 말미암아
진리를 간택하여 끝장을 내며
진리에 가행(加行)을 거치지 않고서
결정(決定)이 생기는 모양이네.
그 지(智)가 대상과 화합한 모양으로서
소지(所知)에 끝장을 이루었나니
진리[諦]에 대해 현관(現觀)함인
열 가지 결정(決定)이라고 알아야 하리.
아성(我性)이 없음과 셋이 있음과
없어지지 않음과 둘이 없음이며
분별없음과 두려움이 없음과
자재(自在)에서 끊는 것인 결정이네.
발기(發起)와 증득(證得)과 등류(等流)와
성만(成滿)의 그 순서가 넷이며
또,
법주지(法住智) 따위의 순서가
여덟이라고 응당 알아야 하리.
뉘우침 없음과 소연(所緣)에 머무름과
경계(境界)를 실답게 보는 것과
도(道)의 의지할 바에서 의혹 없음과
순정(純淨)과 차별행(差別行)과 단멸(斷滅) 그것이네.
3정(淨)에 해당함이란, 계정(戒淨)과
심정(心情)과 혜정(慧淨)이라고 알아야 ★★ 하나니
경계(境界)와 의지(依止)와 도체(道軆)를
혜정(慧淨), 즉 지혜의 청정이라 말하네.
몸 따위 인연을 알고서
3세(世)를 잘 통달하며
다음 4고(苦)와 8고(苦)를
통달해야 한다고 알아야 하리.
그로부터 바로 진리를 관찰하여
열여섯의 행지(行智)를 일으키나니
4전도(顚倒)를 다스리기 위함인데
다음다음으로 의지하는 바이네.
그로부터 더욱 닦고 익히어
마음에 통틀어 싫어하고 떠나며
진리를 간택하며 그리고 결정하며
구경(究竟) 깨달음이 생겨나네.
그로부터 가행(加行)이 없고서
해탈지(解脫智)인 3심(心)에 생겨
백 열 둘의 번뇌를 끊는데
그러한 번뇌는 열 가지에 해당하네.
그 보리분(菩提分)을 증득함은
여섯 가지 청정한 지(智)의 모양이니
행(行)이 분별없기 때문에
짓는 바를 따라 건립하네.
보살이 이 지위에 있어서
수승한 원인을 먼저 닦은 힘으로
자신(自身)과 타신(他身)의 괴로움에서
평등한 심성(心性)을 일으키네.
그 대아(大我)인 의락(意樂)이니
자성(自性)을 얻음 없음이며
광대한 의락(意樂)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2성(性)에 분별함이 없음이네.
다음 위에서의 16행(行)에서
청정한 세간(世間)의 지혜로
3계(界)와 지(地)를 다스리기 때문에
구경(究竟)의 일을 성취하네.
이 현관(現觀)의 차별이
혹 여섯이고,
혹 열 여덟인데
모양과 수승한 이익 많음은
경과 논에서 말한바 그대로이네.
■ 9. 성유가품(成瑜伽品)
반야바라밀(般若波羅密)과 유가(瑜伽)이며
등지(等至)이어서 분별이 없나니
일체(一切)와 일체 종류에서
분별이 있지 않기 때문이네.
일체와 일체 종류라 함은
3상(相)과 3륜(輪)을 의미함이니
명상(名相)과 그리고 염정(染淨)과
둘이 다 아닌(俱非) 두 종류를 말하네.
법과 그리고 법공(法空)에
두 가지 실없는 이론 없다.
분별없다면 무궁(無窮)함이니
그 위에서는 이치에 맞지 않으리.
만일 전혀 취하는 바가 없다면
슬기도 없고 또한 도(度)도 없다.
함께 성립됨은 말 떠남을 취함이니
순응함과 쓸데없음이 아니네.
■ 10. 성부사의품(成不思義品)
아홉 가지 사실이 부사의(不思義)이니
다섯 처소에 의지함으로 말미암으며
다섯 가지 원인이 있기 때문인데
얻음ㆍ잃음ㆍ함께함의 세 가지이네.
응당 사의(思議) 못함과 말할 수 없음은
네 가지 원인 때문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일정하지 않음과 매우 깊음과
옳음 아님을 이끌어 냄과 모양이 머무름이네.
⧼나⧽가 있다,
없다고 생각 아니 할 것이니
두 가지 허물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중생에도 역시 두 가지 허물 있으므로
응당 하나라,
다름이라고 생각 안 하리.
둘은 비록 봄[見]에 의하지 않으나
이루어짐이기에 생각 안 해야 한다.
그와 같이 난 것임을 생각 안 함은
세 허물이 따르는 바이기 때문이네.
좋은 갈래와 나쁜 갈래인
두 가지 지음도 일정함 아니며
과거의 선과 악의 업(業)인
처소와 사실 따위도 생각하기 어려우리.
고요히 생각하는 이와 여래의
진여(眞如)와 무루(無漏)의 성질과
성소작(成所作)의 내용과 이익은
비할 데 없고 자재로우네.
외도(外道)들의 말한 바는
좋은 이익 없음을 끌어들이며
옳지 못하고 4처(處)를 멀리 했으니
말할 것 없고 생각 안 해야 하리.
그른 것을 애써 공력 들이며
대의(大義)를 헐뜯고 비방하며
청정한 선(善)을 닦지 않으므로
세 가지 허물을 이루게 되네.
불가사의를 멀리 떠나고
사의(思議)할 만한 것에서 생각하면
여덟 가지 공덕 갖추게 되리니
그러므로 이치대로 응당 생각하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이며
변지(遍知) 따위와 어김없으며
다섯 가지 원인과 두 원인 때문에
거기에서는 응당 생각하지 않으리.
■ 11. 섭승결택분(攝勝決擇分)
수(數)ㆍ상(相)ㆍ차별(差別)ㆍ유성(有性)과
처소(處所)와 변제(邊際)와 생기(生起)와
상(想)과 선교(善巧)와 섭등(攝等)이니
그것으로 모든 사실을 잘 결택하리.
■ 심성(心性)에 두 종류가 있나니.
이숙(理熟)과 그리고 전심(轉心)이다.
그 처음을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며
종자라고 하는데 두 가지임을 알아야 하리.
■ 집수(執受)와 최초와 명료(明了)와
종자와 업(業)과 신수(身受)와
무심정(無心定)과 목숨 마칠 적이
없다면 모두 이치에 맞지 아니하네.
반연함의 대상과 상응(相應)함과
번갈아 서로 두 원인이 됨과
식(識) 따위가 함께 유전(流轉)함과
잡된 염오(染汚)가 도로 없어짐이네.
의지할 경계의 힘에 의하여
마음의 차별을 내세운 것인데
다시 일곱 가지 행(行) 때문에
알기 어려운 모양이라고 알아야 하리.
반연할 대상에 자재롭지 못하며
악이 의지하는 데에 머무르며
뭇 인연의 힘을 따라 변하기에
마음이 계박 당한다고 알아야 하리.
산란과, 그리고 편히 머무름이
여섯 가지, 열다섯 가지이고
경계를 반연함이 여섯 따위이며
다스릴 마음도 한 종류가 아니네.
그 의지가 뭇 경계를 알아야 분별하며
각각 제 업을 지어서 생긴다.
그 심소유법(心所有法)을 생각 않을 것이니
비슷한 경계에서 일어남이었네.
마음을 이끌고 셋으로써 분별함과
받아들이는 자리와 살핌의 모양과
고덕과 과실 따위를 짓는 그것을
작의(作意) 따위의 업이라고 하네.
윗 세계에는 냄새와 맛이 없으며
4대(大)와 만들어진 물질은 존재할 수 있다.
아주 작은 분자는 그 자체가 엇으며
일곱 가지 사실이 실로 있는 것 아니네.
아주 작은 분자가 화합해 떠나지 않고
선과 악에도 자연(自然)이란 것 없고
셋의 모양과 생각 외에는 물질 없으며
법처(法處)에 해당하는 물질 열둘이네.
불상응행(不相應行)은 모두 가유(假有)인
시설로 있다고 알아야 한다.
가유의 성질에 여섯 가지가 있는데
그는 모두 둘의 허물 때문이네.
셋의 허물로 원인이 다섯 아니고
원인의 모양에는 대략 계박과 화합이며
모양과 의지하는 곳과 차별에서
건립함에 많은 종류가 있네.
심소(心所)가 반연하는 따위와
청정(淸淨)이 반연하는 따위와
네 가지 이계(離繫) 때문에
여덟의 함이 없음[八無爲]을 세우네.
3계(界)에 열두 가지 모양의
차별이 있다고 알아야 하며
수동적인 다스림과 능동적인 다스림인데
그 종자를 덜고 굴복함 뿐이네.
법왕(法王)과 바다의 짠 맛과
욕계(欲界)의 나쁜 갈래에 장수함과
많은 세계를 함께 하나라 함에는
각각 두 가지 인연이 있네.
뜻[意]과 서로 응하는 4혹(惑)은
어디에나 두루 행하여 함께 일어나고
그는 무기(無記)로서 최후에야 없어지며
따르는 바가 생(生)이니 저 성품이네.
온갖 번뇌가 생기고 계속하는데
현행(現行)하여 일어남과 연(緣)과
수면(隨眠)과 소연경(所緣境)과 추중(麤重)이
제각기 모두가 차별이 20이네.
자기를 따라 순응하여 나기 때문이며
종자 때문이며 그의 일 때문이며
네 가지 과실(過失)이 나기 때문이며
깨끗지 못한 세 가지 원인 때문이네.
업은 사업(思業)과 사이업(思已業)으로서
그의 차별이 열세 가지 있으며
그것은 6과(果)와 3위(位)이며
또 업의 결정은 다섯 가지이네.
자업(自業) 따위도 네 가지이고
선후의 과보 성숙함도 넷이며
다시 또 아홉 가지가 있는데
곧 두 가지 차별이라고 알아야 하리.
목숨 마치는 것의 결정과 결정 아님 있고
중간에 요사함이 여섯 원인이며
분명한 위치에는 세 가지 마음이며
중음(中陰)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네.
그 외에 중음이 반연하는 것에 의하여
물들어 더럽힌 마음이 생기며
사생(四生)가운데서, 그리고
3계(界), 5취(趣)에서 생사(生死)하네.
뜻으로 이해한 내용과 언설은
모두 세속 진리라고 알아야 하며
청정의 반연함과 그 청정한 성품과
저 방편은 모두 승의(勝義)의 진리이네.
그 네 가지 진리[四諦]은
더러움과 깨끗함에 해당되는데
그를 보거나 거치지 못한 것으로서
병듦ㆍ병의 원인ㆍ사라짐ㆍ원인과 같네.
그 네 가지 진리에는
각각 넷의 모양ㆍ넷의 행(行)과
변지(遍知) 따위 네 가지의
인과(因果)와 체성에 차별이 있네.
저 깨달음은 어김과 다툼이 없으며
으례 그를 증득함도 역시 그러하며
진리에서도 두 가지는 선(善) 뿐이고
다시 두 가지라고 알아야 하리.
일곱 가지 의지(依止)는
세 가지 소의성(所依性)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그것에는 또 두 가지 선교(善巧)와
네 구절 따위의 많은 설명이 있네.
정려(靜慮)의 여러 가지 장애와 갈래와
그리고 저 광범한 건립이 있는데
거기엔 괴로움과 요동을 멀리 떠나서
뒤의 것이 차차 더 수승하네.
근분(近分)은 기쁨에서 움직임 있고
그 처음만이 샘[漏]을 없앨 수 있으며
또한 두 가지로 소리를 반연하며
여덟 등지(等至)에서 여덟 일 버리네.
현법안락주(現法安樂住)이며
현관(現觀)에 들 수 있고
해탈이라 칭찬하고 생각하며
네 가지 원인임을 알아야 하리.
애미(愛味) 따위에는 열 가지와
여섯 가지와 세 가지라고 알 것이며
물러남이 계속됨과 그를 다스림에는
각각 많은 종류의 차별이 있네.
날카로운 근기와 바뀌어 태어난 이에겐
물러나는 일이 없다고 알아야 하나니
아래 경지에 의해 정(定)이 생기며
애욕을 떠난 후에야 나기 때문이네.
2승(乘)과 대승(大乘)에 의하며
스물일곱 가지 모양인
바른 방편으로 말미암아서
각분(覺分)을 세웠다고 알아야 하리.
몸 따위의 세 가지 차별인
저 영상(影像)을 따라 관찰함에는
듣는 따위의 세 가지 지혜로 말미암아
법을 생각함에 미혹함이 없네.
저 다스릴 바에 아홉 가지이며
작의(作意)에는 둘이라고 알 것이며
닦음의 차별에는 세 가지가 있고
두 가지 잃어버림이 없네.
가라앉음과 들뜸을 끊기 위하여
상응도(相應道)의 두 가지를 닦으며
관찰하여 번뇌를 버리게 되고
세 가지 애착[三愛]을 없애네.
증상만(增上慢)을 끊기 위해서이며
애미(愛味)에 의한 뒤바뀜과
3심(心)에서 나아감을 위하여
념주(念住)를 닦아 익히네.
감관[根] 따위의 차별로 말미암아
다섯 가지가 오직 둘이라 세웠고
가설(假設)은 다섯 원인 때문이며
세 가지 사실로 원만함을 이루네.
전의(轉依)를 증득하므로 일어나지 않고
두 원인으로 결과에 물러남 없으며
셋의 인연 때문에 없음[斷]이 항상함이며
3과(果)가 3인(因)이기에 기별(記別)하셨네.
열일곱 가지 증상(增上)하는 힘 때문에
모든 공덕을 세우게 된 것이며
저의 차별이 그지없나니
다스림과 다스릴 바의 장애 때문이네.
내용과 즐거움과 괴로움을 생각해야 하고
작의(作意)와 그리고 편히 머무름과
어려움과 또는 모양과 특수함과
특수함 아님을 생각해야 하리.
종성(種性)의 차별과 여래의 말씀과
많은 부처님과 그리고 1승(乘)이
다섯 가지 도리와 열 가지 도리이며
여섯 가지 도리와 여섯 가지 도리이네.
여러 부처님의 미묘한 공능과
저 결과로 국토가 청정함과
해탈의 몸과 법의 몸 모두가
평등하고 부사의이고 최상이네.
비록 가행(加行)하심을 쓰지 않으나
과거의 원력(願力)에 의하기 때문에
무위(無爲)에 의해 발기하시는데
그 하시는 바가 두 모양이 없네.
온갖 사실의 법을 말씀하신 것과
별해탈(別解脫)을 널리 분별하심과
모든 법의 모양 열한 가지가
바로 경ㆍ율ㆍ논의 본장(本藏)이네.
모든 모양과 그리고 단멸(斷滅)과
잃거나 무너짐 없는 방편(方便)과
저 두 과법[二果]과 차별 그것이
바로 모든 경의 간추린 내용이네.
유가(瑜伽)의 도리를 간추려 말한다면
들은 바 바른 법에 의한 것이며
사마타(奢摩他)와 그리고 관(觀)과
영상(影像)과 성취에 의지함이네.
○ [pt op tr]
◈Lab value 불기2564/04/23 |
댓글내용 |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16772#1447
sfed--현양성교론송_K0573_T1603.txt ☞현양성교 sfd8--불교단상_2564_04.txt ☞◆vjac1447 불기2541-47-23 θθ |
■ 선물 퀴즈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보살이 6도(度)의 행을 성취하기 위하여 닦는 6사(事). (1) 공양(供養). 보시를 성취하려는 것. (2) 학계(學戒). 지계를 성취하려는 것. (3) 수비(修悲). 인욕을 성취하려는 것. (4) 근선(勤善). 정진을 성취하려는 것. (5) 이훤(離諠). 선정을 성취하려는 것. (6) 요법(樂法). 지혜를 성취하려는 것.
답 후보
육사성취(六事成就)
육인(六因)
육자명호(六字名號)
육파외도(六派外道)
윤왕칠보(輪王七寶)
율의(律儀)
음광부(飮光部)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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