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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2-19_대반야바라밀다경_538 본문
『대반야바라밀다경』
K0001
T0220
제538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 핵심요약
♣0001-538♧
『대반야바라밀다경』
제538권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대반야바라밀다경
대반야바라밀다경 제538권
삼장법사 현장 한역
김월운 번역
[제4회]
1. 묘행품(妙行品)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부처님[薄伽梵]께서 왕사성(王舍城)의 취봉산(鷲峰山) 안에 계실 적에 큰 필추들 1,250인과 함께 계셨다.
모두가 아라한이어서 모든 허물이 이미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었으며,
참다운 자유를 얻어서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가 잘 해탈하여
마치 길든 슬기로운 말과 같고 큰 용과도 같았으며,
지을 일을 이미 지었고 할 일을 다 마쳐서 온갖 무거운 짐을 버리어 자기의 이익을 얻었으며,
모든 결박을 다하여 바른 지혜로 해탈하였고
마음이 자유로워서 제일 마지막까지도 이르렀으나
오직 아난타(阿難陀)만이 유독 배우는 경계에 있었는데,
그 중에서 구수 선현이 우두머리였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구수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변재(辯才)로써 보살마하살들을 위하여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고 보이면서
모든 보살마하살을 가르치고 경계하여 반야바라밀다에서 속히 마지막[究竟]을 얻게 해야 하느니라.”
이 때에 사리자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제 선현은 자신의 힘으로써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하여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여 보일 것인가,
아니면 여래의 위신력을 받아서 연설하여 보일 것인가’고 하였다.
구수 선현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사리자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곧 구수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세존의 제자가 감히 연설하고 드러내고 보임이 있는 것은 모두가 여래의 위신력을 받아서 합니다.
왜냐 하면 사리자여,
부처님께서는 먼저 남을 위하여 법요를 연설하고 드러내고 보이시면,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부지런히 닦고 배워서 내지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을 증득하게 되며,
그런 뒤에는 점차로 남을 위하여 연설하고 드러내고 보이는 바가 있기 때문이니,
만일 법 성품과 서로 어긋나지 않으면 모두가 이는 여래의 위신력의 가피(加被)이며,
또한 이는 증득하는 법 성품과 같은 종류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하여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고 보이면서 가르치고 경계하여 그들로 하여금
반야바라밀다에서 속히 마지막을 얻게 하되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할 것이요
스스로의 변재로써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때에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로 하여금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하여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여 보이면서
모든 보살마하살을 가르치고 경계하여 그들을 반야바라밀다에서 속히 마지막을 얻게 하라 하셨는데,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이라 함은 어느 법의 더한 말[增語]이기에 보살이라 합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어떤 법으로도 보살마하살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또한 어떤 법으로도 반야바라밀다라 할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살과 보살의 법을 보지 못하고 얻지도 못했으며
반야바라밀다도 보지 못하고 얻지도 못했거늘,
어찌하여 저로 하여금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하여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여 보이게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어떠한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로써 어떠한 보살마하살들을 가르치고 경계하여
반야바라밀다에서 속히 마지막을 얻게 합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마음이 잠기거나 빠지지도 않고 물러나거나 꺾인 일도 없으면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깊은 반야바라밀다에서 말씀한 것과 같게 머물러서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여 마지막을 얻게 되리니,
그것이 곧 모든 보살마하살을 가르치고 경계하여 반야바라밀다에서 속히 마지막을 얻게 하는 것임을 알겠으며,
또한 그들을 위하여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고 보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리니,
큰 깨달음의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마음은 마음의 성품이 아니어서
본 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마음이 마음의 성품이 아닌 것이 있습니까?”
선현이 도리어 사리자에게 물었다.
“마음이 마음의 성품이 아닌 데서 있다 없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리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선현이여.”
선현이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마음이 마음의 성품이 아닌 데서 있다 없다 함을 얻을 수 없을진대,
어떻게 ‘마음의 성품이 아닌 것이 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까?”
이 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마음은 마음의 성품이 아니라고 합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만일 변하거나 무너짐이 없고 분별도 없으면,
이를 마음은 마음의 성품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때에 사리자가 선현을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십니다.
진실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을 ‘다툼이 없는 정려[無諍定]에 머무른 이로서는 맨 첫째이다’고 하셨는데,
진실로 성인의 말씀과 같으십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마음이 잠기거나 빠지지 않고 물러나거나 꺾인 일도 없으면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이미 구한 바의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음[不退轉]을 얻었는데 줄 알겠으며,
만일 보살마하살이
마음은 마음의 성품이 아니라고 이와 같이 관찰하면
매우 싶은 반야바라밀다를 여의지 않은 줄 알겠습니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모든 성문의 지위와 독각의 지위와 보살의 지위를 부지런히 닦아 배우고자 하면,
모두가 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고 부지런히 닦고 배우며
방편 선교로써 수행한 바를 속히 마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이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깊은 경전에는 온갖 배워야 할 법을 널리 해설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부지런히 구하면서
모든 보살의 행을 바르게 수행하고자 하고 방편 선교와 모든 부처님 법을 갖추어 성취하고자 하면,
모두가 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며
막힘 없이 잘 통하여 말씀한 대로 수행해야 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이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깊은 경전에는 온갖 보살마하살이 배워야 할 법을 널리 해설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가운데서 부지런히 닦고 배우면
기필코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며 온갖 구한 바를 만족시키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그 때에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살피건대 보살이란 다만 붙인 이름이 있을 뿐이어서 실제의 일을 알지도 못하고 얻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으며,
저는 살피건대 반야바라밀다 역시 다만 붙인 이름이 있을 뿐이어서 실제의 일을 알지도 못하고 얻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는데,
어떠한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어떠한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여 보이면서
어떠한 보살마하살을 가르치고 경계하여 어떠한 반야바라밀다에서 속히 마지막을 얻게 하여야 합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살피건대 보살과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다만 붙인 이름이 있을 뿐이어서
실제의 일을 알지도 못하고 얻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는데
그 가운데에 보살과 깊은 반야바라밀다가 있다 하시니,
문득 의심이 납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와 보살의 이름은 모두가 결정된 것도 없고 머무른 곳도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이와 같은 두 가지 이름은 모두가 있지 않기 때문이니,
있지 않은 법에서는 결정된 것도 없고 머무른 곳도 없습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의 설법을 듣고
마음이 잠기거나 빠지지 않고 물러나거나 꺾인 일도 없으면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깊은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에 머물러서 항상 멀리 여의지 않고
머무를 바 없음을 방편으로 삼아 보살의 물러나니 않는 지위에 머물러 있는 줄 알겠습니다.
또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면서 물질[色]에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만일 물질에 머무르면 곧 물질의 행(行)을 짓는 것이요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며,
만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머무르면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행을 짓는 것이요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행을 짓는 것은 반야바라밀다를 포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반야바라밀다를 포섭하지 않으면 반야바라밀다를 닦아 익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반야바라밀다를 닦아 익히지 못하면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할 수 없으며,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하지 못하면 일체지지를 얻을 수 없으며,
일체지지를 얻지 못하면 거두어 줄 유정을 거두어 줄 수 없나니,
그러하므로 모든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섭수(攝受)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물질은 반야바라밀다를 섭수할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반야바라밀다를 섭수할 수 없기 때문이니,
물질이 섭수할 수 없기 때문에 물질이 아니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섭수할 수 없기 때문에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아니며,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도 섭수할 수 없기 때문에 곧 반야바라밀다가 아닙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야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면
이것이 보살의 온갖 법에 대하여 섭수함이 없는 정려[定]라 하나니,
광대하여 대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서
결단코 온갖 성문이나 독각과는 공통하지 않는 것이요 또한 일체지지를 섭수하지도 않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이 일체지지는 모양을 취하면서 닦아 얻는 것이 아니며 모든 모양을 취하는 것은 모두가 번뇌이기 때문이니,
만일 모양을 취하여 일체지지를 닦아 얻는다면 승군 범지(勝軍梵志)는 일체지지에 대하여 믿고 이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승군 범지가 비록 믿고 이해하는 힘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법에 귀의한지라,
믿음에 따라 수행하는 이[隨信行]라 하더라도,
조그마한 부분의 지혜로써 온갖 법의 성품이 공함을 관찰하여 일체지지에 깨쳐 들어갔습니다.
이미 깨쳐 들어간 뒤에는 물질의 모양을 취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모양도 취하지 않았으며,
기쁨과 즐거움으로써 이 지혜를 살펴본 것이 아니므로 안[內]의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으로써 이 지혜를 살펴보지 않고,
밖[外]의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으로써 이 지혜를 살펴보지 않고,
안팎의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으로써도 이 지혜를 살펴보지 않았으며,
또한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떠나서 이 지혜를 살펴보지도 않았습니다.
승군 범지는 이와 같은 등의 모든 모양을 여읜 문으로써
일체지지에 대하여 깊이 믿고 이해한지라 온갖 법을 모두 취하거나 집착함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범지는 모양을 여읜 문으로써 일체지지를 믿고 이해한 뒤에는
온갖 법에 대하여 모두 모양을 취하지 않았고 모양이 없는 모든 법을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범지는 뛰어난 견해의 힘으로 말미암아
온갖 법에 대하여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고 얻음도 없고 깨달음도 없었습니다.
이 때에 그 범지는 자신을 믿고 이해함과 내지 열반에 대해서도 취하거나 집착함이 없었으니,
진실한 법 성품을 일정한 분량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의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섭수하지 않는 줄 알겠으며,
비록 모든 법을 섭수함이 없다 하더라도 만일 여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해(無礙解)와 18불불공법(佛不共法) 등이 원만하지 못하면 끝내 중도(中道)로서 열반하지 못하나니,
이와 같은 모든 보살마하살의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는 비록 취하거나 집착함이 없다 하더라도 모든 훌륭한 사업이 이룩될 수 있음을 알겠습니다.
또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마땅히 ‘어떤 것이 반야바라밀다인가,
무엇 때문에 반야바라밀다라 하는가,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는 하는 일이 무엇인가’라고 관찰하여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는 마땅히 ‘만일 법이 있지 않아서 얻을 수 없는 것이 반야바라밀다라면,
있지 않는 것 가운데서 어느 곳을 묻고 따지겠는가’라고 관찰하여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일에 대하여 자세히 관찰할 때에 마음이 잠시거나 빠지지 않고 물러나거나 꺾인 일도 없으면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여의지 않은 줄 알겠습니다.”
이 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말하였다.
“만일 물질이 물질의 제 성품을 여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제 성품을 여의고 반야바라밀다는 반야바라밀다의 제 성품을 여의고 일체지지는 일체지지의 제 성품을 여의었다면,
어떻게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여의지 않은 줄 알겠습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사리자여.
모든 물질은 물질의 제 성품을 여의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제 성품을 여의며,
반야바라밀다는 반야바라밀다의 제 성품을 여의고,
일체지지는 일체지지의 제 성품을 여읩니다.
반야바라밀다의 제 모양은 역시 제 모양을 여의고,
반야바라밀다의 제 성품 또한 제 성품을 여의며,
모양 또한 제 성품을 여의고 제 성품 또한 모양을 여의며,
모양 또한 모양을 여의고 제 성품 또한 제 성품을 여의며,
능상(能相) 또한 소상(所相)을 여의고 소상 또한 능상을 여의며,
능상 또한 능상을 여의고 소상 또한 소상을 여읩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이치를 사실대로 알면 항상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멀리 여의지 않습니다.”
이 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가운데서 배우면 일체지지가 속히 이룩될 수 있습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가운데서 배우면 일체지지가 속히 이룩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사리자여,
이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의 나고 없어짐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리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이와 같이 행하면 일체지지에 아주 가까워져 있습니다.
또 사리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만일 물질을 행하면 모양을 행하는 것이요,
물질의 모양[相]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물질의 모양이 없는 모양[無相相]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물질의 생김[生]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물질의 멸함[滅]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물질의 무너짐[壞]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물질의 공(空)함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내가 행하는 이’라고 여기어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나는 보살이라 행할 바가 있다’고 여기어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나는 보살이라 얻는 바가 있다’고 여기어도 모양을 행하는 것입니다.
만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행하면 모양을 행하는 것이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모양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모양이 없는 모양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생김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멸함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무너짐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공함을 행하여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내가 행하는 이’라고 여기어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나는 보살이라 행할 바가 있다’고 여기어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며,
‘나는 보살이라 얻는 바가 있다’고 여기어도 모양을 행하는 것이니,
만일 생각하기를 ‘이와 같이 행하면 이것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며,
또한 모양을 행하는 것이다’ 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방편 선교가 없는 줄 알지니,
비록 행하는 바가 있다 하더라도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행하여야 반야바라밀다를 행한다고 합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만일 물질을 행하지 않고,
물질의 모양을 행하지 않고,
물질의 모양이 없는 모양을 행하지 않고,
물질의 생김을 행하지 않고,
물질의 멸함을 행하지 않고,
물질의 무너짐을 행하지 않고 물질의 공함을 행하지 않으면,
바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만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행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모양을 행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모양이 없는 모양을 행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생김을 행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멸함을 행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무너짐을 행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공함을 행하지 않으면,
바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행을 취하지 않고,
행하지 않음도 취하지 않고,
행하기도 하고 행하지 않음도 취하지 않고,
행하는 것도 아니고 행하지 않는 것도 아님을 취하지도 않으면,
바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사리자여,
온갖 법은 모두가 취할 수도 없고 따라 행할 수도 없고 받아 느낄 수도 없어서 성품과 모양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의 온갖 법에 대하여 취하거나 집착함이 없는 선정이라 하나니,
광대하여 대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서 결단코 온갖 성문이나 독각과는 공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정려에 머무르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속히 증득합니다.”
구수 선현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다시 대덕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선정에 머무르면 이미 그에게 과거의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서 수기(授記)하셨는 줄 아셔야 합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비록 이 선정에 머물렀다 하더라도 이 선정을 보지도 않고 이 선정의 이름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나는 이 선정에 이미 들었고 지금 들고 장차 들 것이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또한 ‘나만이 이 선정에 들 수 있고 다른 이는 안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나니,
그들의 이와 같은 생각과 분별은 이 선정의 힘으로 말미암아 모두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 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선정에 머물러서 이미 과거의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 앞에 나타나시어 수기하셨다면,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선정을 드러내 보일 수 있습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사리자여.
왜냐 하면 이 선남자는 이와 같은 선정에 대하여 앎[解]도 없고 생각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자가 말하였다.
“구수(具壽)께서는 그 모든 선남자들이 이와 같은 선정에서 앎도 생각도 없다고 하십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저는 결단코 그 선남자들은 이와 같은 선정에서 앎도 없고 생각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이와 같은 선정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선남자는 이와 같은 선정에서 앎도 없고 생각도 없으며,
이와 같은 모든 선정도 온갖 법에 대하여 앎도 없고 생각도 없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온갖 법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박가범께서 선현을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너의 말과 같으니라.
이 때문에 나는 너를 다툼 없는 정려에 머무른 이로서 맨 첫째라고 말하느니라.
너는 여래의 신력의 가피를 입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선현아,
모든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배우고자 하면 마땅히 배워야 하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비로소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참으로 배우는 것이라 하기 때문이니라.”
이 때에 사리자가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참으로 배우는 것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참으로 배우는 것이라 하나니,
얻을 바 없음을 방편으로 삼기 때문이니라.”
이 때에 사리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얻을 바 없음을 방편으로 삼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울 때에는 온갖 법에 대하여 얻을 바 없음을 방편으로 삼기 때문이니라.”
이 때에 사리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울 때에는 어떤 법을 배웁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울 때에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사리자야,
마치 어리석은 범부들의 집착과 같이 온갖 법은 이와 같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이 때에 사리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그렇다 하면,
모든 법은 어떻게 하면서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마치 있지 않는 것과 같이 이렇게 하면서 있는 것이니라.
만일 이와 같이 있지 않는 법을 분명히 통달하지 못하면 무명(無明)이라 하나니,
어리석은 범부들은 온갖 법의 있지 않는 성품에 대하여 무명과 탐애의 뛰어난 세력으로 아주 없다[斷],
항상하다[常]고 하는 두 가지 치우친 소견을 분별하고 집착하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모든 법의 있지 않는 성품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면서 모든 법을 분별하나니,
분별하기 때문에 집착하는 것이요 집착하기 때문에 모든 법의 있지 않은 성품을 분별하는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법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모든 법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과거ㆍ미래ㆍ현재를 분별하나니,
분별하기 때문에 이름과 물질을 탐착하게 되며,
이름과 물질을 탐착하기 때문에 있지 않은 법을 분별하고 집착하며,
있지 않은 법을 집착하고 분별하기 때문에 여실한 도[如實道]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여 삼계(三界)의 나고 죽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진리의 법을 믿지도 않고 실제(實際)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니라.
이러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범부 안에 떨어져 있거니와 이로 말미암아 보살마하살들은 법의 성품과 모양에 대하여 도무지 집착함이 없느니라.”
이 때에 사리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울 때에,
어찌 또한 일체지지를 배우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울 때에도 역시 일체지지를 구하고 배우지 않느니라.
그러나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배울 때에 비록 배우는 바는 없다 하더라도 일체지지를 참으로 배우는 것이라 하며,
일체지지에 아주 가까워져 있어서 일체지지가 속히 이룩될 수 있느니라.”
그 때에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와서 묻기를 ‘모든 허깨비들이 만일 일체지지를 닦고 배우면,
그들도 일체지지에 아주 가까워져 있고 일체지지가 속히 이룩될 수 있느냐’고 할 때에,
저는 이러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도리어 묻겠으니,
너의 뜻대로 대답하여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허깨비와 물질이 차이가 있겠느냐?
허깨비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차이가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허깨비는 물질과 다르지 않고 물질도 허깨비와 다르지 않아서 허깨비가 곧 물질이요 물질이 곧 허깨비이며,
허깨비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과 다르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허깨비와 다르지 않아서 허깨비가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곧 허깨비입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5취온(取薀) 가운데서 생각과 같다는 생각을 일으켜 말을 만들어서 보살마하살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나아가서 반야바라밀다를 닦고 배움은 모두가 다 마치 허깨비가 배우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 하면 허깨비가 곧 5취온이기 때문이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나는 ‘5온(薀)의 눈 등의 여섯 감관은 모두가 허깨비와 같아서 도무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고 했기 때문이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새로 대승(大乘)을 배우는 이가 이와 같은 설명을 들으면,
그 마음이 놀라고 두려워져서 물러나지는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새로 대승을 배운 이가 나쁜 벗을 가까이하다가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놀라고 두려워져서 물러나게 될 것이요,
만일 착한 벗을 가까이 했으면 비록 이런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놀라거나 두려워함도 없고 물러남도 없으리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보살의 나쁜 벗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나쁜 벗이란,
보살마하살들을 가르치고 경계하여서 보시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여의게 하고 구한 바의 일체지지를 여의게 하고 모양을 취하는 세속의 글을 배우게 하고 성문이나 독각의 경법을 배우게 하는 이며,
또 그들을 위하여 마가 끼는 일[魔事]과 악마의 허물을 말해 주지 않아서 닦고 배우는 일이 이룩될 수 없게 하는 이이니,
이와 같은 것을 보살의 나쁜 벗이라 하느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보살의 착한 벗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착한 벗이란,
보살마하살들을 가르치고 경계하여서 보시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배우게 하고,
구한 바의 일체지지를 배우게 하고,
모양을 취하는 세속의 글을 여의게 하고,
성문과 독각의 경법을 여의게 하며,
그를 위하여 갖가지의 마가 끼는 일과 악마의 허물을 말해 줌으로써 그가 깨닫고 알아서 방편을 써 버리게 하고 닦고 배운 일을 빨리 이룩되게 하는 이로 장엄한 보살의 착한 벗이라 하느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마하살이라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이 보살이라 하는 구절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법을 배워서 집착함도 없고 거리낌도 없으며 온갖 법을 깨달아서 집착함도 없고 거리낌도 없으면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여 증득하고 유정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 바로 보살이란 뜻이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을 무슨 까닭에 마하살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 큰 유정들 가운데서도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다시 마하살이라 하느니라.”
이 때에 사리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변재로서 보살을 이런 이치 때문에 마하살이라 한다 함을 말씀하려 하오니,
원하옵건대 허락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이니라.
너의 뜻대로 말하여라.”
사리자가 아뢰었다.
“모든 보살은 방편 선교로써 모든 유정들에게 법요를 연설하여서 나라는 소견과 유정이라는 소견과 목숨이라는 소견과 보특가라라는 소견과 있다는 소견과 없다는 소견과 아주 없다는 소견과 항상하다는 소견과 몸에 대한 소견[薩迦耶見]과 그 밖의 갖가지로 집착함이 있는 소견들을 끊게 하나니,
이러한 이치에 의하여 마하살이라 합니다.”
그 때에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변재로써 보살을 이런 이치 때문에 마하살이라 한다 함을 말씀하려 하오니,
원하옵건대 허락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이니라.
너의 뜻대로 말하여라.”
선현이 아뢰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일체지지를 증득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마음과 무루심과 견줄 이 없으면서 같은 마음과 성문이나 독각들과 공통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키되 이와 같은 마음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나니,
이와 같은 이치에 의하여 마하살이라 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일체지지는 바로 참된 무루(無漏)이어서 삼계에 떨어지지 않고 일체지지를 구하는 마음도 이는 참된 무루이어서 삼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인데 이와 같은 마음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보살을 마하살이라 합니다.”
이 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 때문에 이와 같은 마음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이와 같은 모든 마음은 마음의 성품[心性]이 없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이런 마음에 마음의 성품이 아닌 것이 있습니까?”
선현이 도리어 사리자에게 물었다.
“이런 마음의 성품이 아닌 데서 있다 없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리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선현이여.”
선현이 말하였다.
“이 마음의 성품이 아닌 데서 있다 없다 함을 얻을 수 없다면,
어떻게 ‘이런 마음에 마음의 성품이 아닌 것이 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까?”
이 때에 사리자가 선현을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을 ‘다툼 없는 정려에 머무른 이로서 맨 첫째이니라’고 하셨는데,
진실로 성인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이 때에 만자자(滿慈子)가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변재로써 보살을 이런 이치 때문에 마하살이라 한다 함을 말씀하려 하오니,
원하옵건대 허락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자자야,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이니라.
너의 뜻대로 말하여라.”
만자자가 아뢰었다.
“모든 보살은 온갖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큰 공덕의 갑옷을 입었기 때문에 대승에 나아가 대승의 수레를 타기 때문에 마하살이라 합니다.”
그 때에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심과 같이 모든 보살마하살이 큰 공덕의 갑옷을 입는다 하셨는데,
어느 정도이어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큰 공덕의 갑옷을 입었다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한량없고 수없고 끝없는 유정들을 제도하여 남음 없는 열반[無餘依涅槃]의 경계에 들게 하리라’고 하여서,
비록 이와 같이 한량없고 수없고 끝없는 유정들을 제도하여 남음이 없는 열반의 경계에 들었다 하더라도 법이나 모든 유정에 열반을 얻은 이는 없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모든 법의 법 성품은 마땅히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니라.
비유컨대 요술쟁이나 혹은 그의 제자가 네거리 길에서 요술로 대중을 만들어 놓고 서로서로 해치게 한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가운데서는 진실로 서로가 해를 끼쳐서 죽거나 다친 일이 있겠느냐?”
선현이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비록 이와 같이 한량없고 수없고 끝없는 유정을 제도하여 남음 없는 열반의 경계에 들게 한다 하더라도 법이나 모든 유정에는 열반을 얻는 이가 없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일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면,
이 보살마하살은 큰 공덕의 갑옷을 입은 줄 알지니라.”
그 때에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모든 보살마하살이 공덕의 갑옷을 입지 않은 것이 바로 큰 공덕의 갑옷을 입은 것인 줄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모든 보살마하살은 공덕의 갑옷을 입지 않았나니,
그것이 바로 큰 공덕의 갑옷을 입은 줄 알지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일체지지는 만듦도 없고 지음도 없기 때문이니,
온갖 유정 역시 만듦도 없고 지음도 없건만 모든 보살마하살은 그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공덕의 갑옷을 입는 것이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슨 까닭에 일체지지는 만듦도 없고 지음도 없으며 온갖 유정 역시 만듦도 없고 지음도 없는데,
모든 보살마하살은 그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공덕의 갑옷을 입습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조작하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물질은 만든 것도 아니고 만들지 않는 것도 아니요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만든 것도 아니요 만들지 않는 것도 아니요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왜냐 하면 물질 내지 의식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구수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물질 내지 의식은 물들음도 없고 깨끗함도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물질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물질의 진여(眞如)는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진여는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만자자가 선현에게 물었다.
“존자께서는 물질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씀하시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역시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씀하시며,
물질의 진여는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씀하시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진여 역시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만자자가 말하였다.
“어떠한 물질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씀하시고,
어떠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씀하시며,
어떠한 물질의 진여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씀하시고,
어떠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진여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저는 요술쟁이 같은 물질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요,
요술쟁이 같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며,
요술쟁이 같은 물질의 진여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요,
요술쟁이 같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진여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물질 내지 의식과 그의 진여는 있지 않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멀리 여의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고요하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모양이 없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조작이 없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나거나 없어짐이 없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물들거나 깨끗함이 없기 때문에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나아가 공덕의 갑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그 때에 선현이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나아가 공덕의 갑옷을 입고 대승의 수레를 탈진대,
어떤 것이 대승이면 어느 정도이어야 대승에 나아간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대승은 어느 곳으로부터 나와서 어느 곳에 이르러 머무르며,
이와 같은 대승은 머무를 데가 어디며,
누가 또 이 대승의 수레를 타고 벗어납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대승이란 곧 한량없고 수없는 것의 더한 말[增語]이니,
끝없는 공덕이 함께 이룩되기 때문이니라.
너는 다음에 묻기를 ‘어느 정도이어야 대승에 나아간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하였는데,
선현아,
만일 보살마하살이 보시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부지런히 행하면서 한 보살의 지위로부터 한 보살의 지위로 나아가면,
이 정도이어야 대승에 나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줄 알지니라.
너는 다음에 묻기를 ‘이와 같은 대승은 어느 곳으로부터 나와서 어느 곳에 이르러 머무르느냐’고 하였는데,
선현아,
이와 같은 대승은 삼계 안에서 나와서 일체지지 안에 이르러 머무른 줄 알지니라.
그러나 둘이 없음을 방편으로 삼기 때문에 나옴도 없고 머무름도 없느니라.
너는 다음에 묻기를 ‘이와 같은 대승은 머무른 데가 어디냐’고 하였는데,
선현아,
이와 같은 대승은 도무지 머무르는 데가 없거니와 그러나 이 대승은 머무르는 데가 없는 데에 머무느니라.
너는 마지막에 묻기를 ‘누가 또 이 대승의 수레를 타고 벗어나느냐’고 하였는데,
선현아,
도무지 이 대승의 수레를 타고 벗어나는 이가 없는 줄 알지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탈 수레와 타는 이와 이로 말미암고 이를 위하는 처소와 시간도 모두 있지 않아서 도무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온갖 법은 모두가 있지 않아서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거늘 그 가운데서 어떤 법으로 타고 어떤 법으로 나오고 어느 곳에 이르러 머무르기에 타는 이라 하겠느냐.”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승이라 함은 온갖 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 등을 두루 초월하여 가장 거룩하고 가장 훌륭합니다.
이와 같은 대승은 허공과도 같나니,
마치 허공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끝없는 유정을 널리 수용할 수 있는 것처럼,
대승도 그러하여서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끝없는 유정을 널리 수용합니다.
또 마치 허공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머물러서 볼 수 있는 것도 없는 것처럼,
대승도 그러하여서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머물러서 볼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또 마치 허공이 앞과 뒤와 중간의 시간을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대승도 그러하여서 앞과 뒤와 중간의 시간을 모두 얻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대승은 가장 거룩하고 가장 훌륭하며 허공과도 같아서 수용함이 많되 움직이는 것도 없고 머무르는 것도 없으며,
삼세(三世)가 평등하고 삼세를 뛰어나기 때문에 대승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너의 말과 같아서 보살의 대승은 이와 같은 등의 끝없는 공덕을 갖추었느니라.”
이 때에 만자자가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먼저 대덕 선현에게 모든 보살마하살들을 위하여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연설하여 보이라고 하시더니,
이제 무엇 때문에 대승을 말씀하십니까?”
그 때에 선현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앞에서 말한 갖가지의 대승의 이치가 혹시 말할 바의 반야바라밀다에 어긋나지나 않았습니까?”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앞에서 말한 갖가지의 대승의 이치는 모두가 반야바라밀다에 수순한 것이요 어긋남이 없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온갖 착한 법은 모두가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에 포섭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앞끝도 얻을 수 없고 뒤끝도 얻을 수 없고 중간끝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물질이 끝없기 때문에 보살마하살도 끝없는 줄 알겠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끝없기 때문에 보살마하살도 끝없는 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물질에 의해서도 보살마하살은 있지 않아서 얻을 수 없으며,
물질을 떠나서도 보살마하살은 있지 않아서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떠나서도 보살마하살은 있지 않아서 얻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아서 세존이시여,
저는 이들의 온갖 법에서는 온갖 종류와 온갖 처소와 온갖 시간으로써 보살마하살을 구하여도 도무지 보이는 것이 없고 끝내 얻을 수 없으며,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구하여도 도무지 보이는 것이 없고 끝내 얻을 수 없으며,
일체지지를 구하여도 도무지 보이는 것이 없고 끝내 얻을 수 없는데,
어떻게 저로 하여금 모든 보살마하살을 가르치고 경계하여 반야바라밀다에서 마지막인 일체지지를 빨리 증득하게 하라 하십니까?
또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다만 붙인 이름이 있을 뿐입니다.
나 등이 마침내 나지 않아서 다만 붙인 이름이 있을 뿐이요 도무지 제 성품이 없다고 하시는 것처럼,
모든 법도 역시 그러하여 마침내 나지 않아서 다만 붙인 이름이 있을 뿐이요 도무지 제 성품이 없습니다.
이 가운데서 어떠한 것이 물질이기에 마침내 나지 않습니까?
만일 마침내 나지 않는다면 물질이라 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기에 마침내 나지 않습니까?
만일 마침내 나지 않는다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라 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물질 이것으로 보살마하살을 얻을 수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 이것으로 보살마하살을 얻을 수 없으며,
이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온갖 법에서 온갖 종류와 온갖 처소와 온갖 시간으로써 보살 등을 구하여도 모두 얻을 수 없는데,
장차 어떠한 법을 가르치고 어떠한 법을 수행하여 어떠한 곳과 때에서 어떠한 법을 증득해야 합니까?
또 세존이시여,
부처님ㆍ박가범이란 다만 붙인 이름이 있을 뿐이요,
온갖 보살이란 다만 붙인 이름이 있을 뿐이며,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도 다만 붙인 이름이 있을 뿐입니다.
마치 나 등이 마침내 나지 않아서 다만 붙인 이름이 있을 뿐이요 도무지 제 성품이 없다고 하시는 것처럼,
모든 법도 그러하여서 다만 붙인 이름이 있을 뿐이요 도무지 제 성품이 없는데,
어떠한 것이 물질이기에 이미 취할 수도 없고 날 수도 없으며,
어떠한 것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기에 이미 취할 수도 없고 날 수도 없으며,
모든 법의 제 성품이기에 이미 취할 수도 없고 날 수도 없습니까?
만일 법에 성품이 없으면 역시 날 수도 없고 이 남이 없는 법[無生法]도 날 수가 없거늘,
제가 어찌 마침내 나지 않는 반야바라밀다로써 마침내 나지 않는 모든 보살마하살을 가르치고 경계하여 마지막을 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나지 않는 법을 떠나면 얻을 수 있는 법도 없고 보살마하살로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행할 수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설법을 듣고 마음이 잠기거나 빠지지 않고 물러나거나 꺾인 일도 없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닦는 이인 줄 알겠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만일 이 때에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면서 모든 법을 관찰하면,
이 때의 보살마하살은 온갖 물질에서 도무지 얻는 바가 없고 받음도 없고 취함도 없고 머무름도 없고 집착함도 없고 또한 물질을 위하여 시설하지도 않으며,
온갖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서 도무지 얻는 바가 없고 받음도 없고 취함도 없고 머무름도 없고 집착함도 없고 또한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위하여 시설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 보살마하살은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물질을 보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보지 않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물질의 성품은 공하여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성품은 공하여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에 남이 없고 없어짐도 없으면 곧 물질이 아니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남이 없고 없어짐이 없으면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아닙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물질 내지 의식과 남이 없고 없어짐도 없는 것은 둘이 없고 둘로 구분됨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남이 없고 없어짐이 없는 법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요 여럿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질 내지 의식에 남이 없고 없어짐도 없으면 곧 물질 내지 의식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에 둘이 없으면 곧 물질이 아니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둘이 없으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물질은 둘이 없는 법의 수(數)에 들어가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도 둘이 없는 법의 수에 들어가므로,
만일 물질을 말하면 곧 둘이 없는 법을 말하는 것이요,
만일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말하면 곧 둘이 없는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사리자가 선현에게 말하였다.
“제가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이해하건대,
나와 유정 등은 마침내 나지 않으며,
물질 내지 의식도 마침내 나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과 보살도 마침내 나지 않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무슨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유정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백천 가지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苦行)을 닦으면서 한량없고 참기 어려운 큰 고통을 갖추어 받는 것입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사리자여,
저는 저 남이 없는 법 가운데서 어떤 보살마하살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유정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백천 가지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닦으면서 한량없고 참기 어려운 큰 고통을 갖추어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얻을 바 없음을 방편으로 삼아 모든 괴로운 행에서는 즐거운 행이라는 생각을 짓고,
행하기 어려운 행에서는 행하기 쉽다는 생각을 지으며,
모든 유정에 대하서는 부모와 같고 형제ㆍ처자와 같고 자기 몸 같다는 생각을 지으면서 그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야 비로소 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끝없는 유정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지을 수 있습니다.
또 사리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온갖 유정에 대하여 부모ㆍ형제ㆍ처자와 그리고 자기의 몸과 같다는 생각을 일으킨 뒤에는 생각하기를 ‘나는 온갖 유정을 제도하여 온갖 나고 죽는 뭇 고통을 여의게 해야 하며,
여러 백천 가지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일으켜서 차라리 나의 몸을 버릴지언정 그들은 버리지 않으리라’고 하나니,
그러나 유정의 괴로움과 고행에 대하여 유정의 괴로움과 고행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또 생각하기를,
나는 온갖 유정을 제도하여 온갖 나고 죽는 뭇 고통을 여의게 해야 하며,
여러 백천 가지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일으켜서 차라리 나의 몸을 버릴지언정 그들은 버리지 않으리라’고 하나니,
그러나 유정의 괴로움과 고행에 대하여 유정의 괴로움과 고행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또 사리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생각하기를 ‘나의 제 성품을 온갖 법에서 온갖 종류와 온갖 곳과 때로서 구하여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안팎의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도무지 있지 않으며 모두 얻을 수 없다’고 해야 하나니,
만일 이 생각에 머무르면 행하기 어려운 고행이 있다고 보지 않을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끝없는 유정을 위하여 여러 백천 가지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닦으면서 큰 이익을 지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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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성(自性) : 모든 법을 갖추고 있는 변하지 않는 본성으로,
본디부터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의미한다.
2 무성(無性) : 실체로서의 자성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3 무작(無作) : 인연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생멸의 변화를 초월한 경지이다.
4 무득(無得) : 번뇌가 소멸되어 분별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경지를 말한다.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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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경 제4회 서문
서명사西明寺 사문沙門 현측玄則 지음
무릇 식(識)은 인식하는 것이니,
어찌 식(識)이 아닌 적이 있겠으며,
여(如)는 있는 그대로의 본성이니,
처음부터 여(如)가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행하는 주체[能行]와 대상[所行]이 함께 공(空)하면,
섭수(攝受) 의 이치가 다 없어지는 것이요,
자성(自性)1)과 무성(無性)2)이 다르지 않으면,
집착하는 생각[執取]도 잊게 되는 것이다.
만약 집착은 잊었으나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혹 대략적인 것만 보존하여 업(業)에 떨어지는 것이고,
성대히 수행함을 알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이에 자기를 비워도 상대방을 제압하고 이기려 하니,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마음을 아직 거두지 못했음을 염려하여,
영취산의 말씀을 다시 높이 일으킨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분별의 세계[名]에서는 매번 간절히 행이 있음을 가르치고,
실재의 세계에서는 반드시 행이 없음의 게으름을 경계하니,
임시로 꾸며서 맞추면 혹 시원한 듯하나,
그런 적당한 절충으로 어찌 해탈의 경지로 돌아가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가만히 응답하기를 “모든 중생[凡夫]은 부절을 쪼개서 보관하듯 구별하고 분별하는 마음[名相]을 간직하고,
집을 아끼고 보호하듯 열중하고 아끼는 생각[癡愛]을 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쓰거나 생각을 품는 데 집착이 생기고,
시비를 가리고 문제를 의논하는 데 반드시 어그러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극한 깨달음을 얻은 자[至眞]는 이와 반대이니,
분별의 세계에서 행동할 때나 실재의 세계에서 고요히 있을 때,
바로 깨달음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에 근거하여 말하면,
행하는 것[行]은 또한 행하지 않는 것[不行]이고,
행하지 않는 것은 또한 행하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뚜렷하게 행하는 것이요,
또한 뚜렷하게 행하지 않는 것이다.
임시로 이름붙인 지혜[假名般若]를 임시로 이름붙인 보살[假名菩薩]에게 주는 것은,
바로 허깨비의 가르침[幻法]을 잡아서 요술쟁이[幻人]에게 주는 것이니,
그러므로 무작(無作)3)은 또한 무득(無得)4)인 것이다.
이는 또한 새벽의 하루살이가 일 년에 대해 말하는 것이요,
나비 꿈을 꾸면서 깨어남을 의논하는 것이다.
아직도 이런 집착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개탄스럽고,
이 가르침이 점차 퍼져가는 것이 기쁘도다.
모두 29품 18권으로,
곧 옛 『소품(小品)』 과 『도행(道行)』 이고,
새로운 『도행(道行)』과 『명도(明度)』경이다.
이것을 품(品)으로 말하면,
분(分)이 된다.
분(分)에는 긴 것이 있고 짧은 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품(大品)이 있고,
소품(小品)이 있는 것이다.
『도행(道行)』경은 곧 분(分) 중에 초품(初品)에 해당하고,
번역자가 이것을 취하여 별도의 경(別經)으로 만든 것이며,『명도경(明度經)』은『지도론(智度論)』의 다른 이름이니,
바로 총목(摠目)을 가지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것들은 완전하지 못하고 빠진 것이 있어 아직 온전히 갖추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제목을 붙이는 것에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큰 가르침[大教]은 극히 원만해지고,
원대한 법[鴻規]도 진실로 펼쳐졌으니,
마음공부의 요점을 다시 말할 만하게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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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바라밀다경 제538권
[제4회]
- - 제4 분 (제538권~
1. 묘행품(妙行品) ①
2. 제석품(帝釋品)
3. 공양솔도파품(供養率堵波品) ①
4. 칭양공덕품(稱揚功德品)
5. 복문품(福門品) ①
6. 수희회향품(隨喜廻向品) ①
7. 지옥품(地獄品)
8. 청정품(淸淨品)
9. 찬탄품(讚歎品)
10. 총지품(總持品) ①
11. 마사품(魔事品) ①
12. 현세간품(現世間品)
13. 부사의등품(不思議等品)
14. 비유품(譬喩品)
15. 천찬품(天讚品)
16. 진여품(眞如品) ①
17. 불퇴상품(不退相品)
18. 공상품(空相品) ①
19. 심공덕품(深功德品)
20. 긍가천품(殑伽天品)
21. 각마사품(覺魔事品) ①
22. 선우품(善友品) ①
23. 천주품(天主品)
24. 무잡무이품(無雜無異品)
25. 신속품(迅速品) ①
26. 환유품(幻喩品)
27. 견고품(堅固品) ①
28. 산화품(散花品)
29. 수순품(隨順品)
◈Lab value 불기2564/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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