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란, 또 무슨 말씀입니까?"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란, 그 어떤 언설(言說)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언설조차 없는 법이 있습니까?"
"언설조차 없는 법이란, 곧 수(數)가 없는 것입니다."
"어진이여, 법이 만약 수가 없다면 어떻게 명수(名數)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선남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허공을 명수로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언설이 없는 법도 그러합니다.
다만 명수를 빌려 허공이라고 말할 뿐이니,
이러한 명수는 곧 명수가 아닌 것입니다."
"어떤 수를 명수가 아닌 문(門)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명수의 문이란
함이 있는[有爲] 법을 말하고,
명수가 아닌 문이란
함이 없는 법을 말하는 것이며,
또 명수이면서 명수가 아닌 법이란
이러한 함이 없는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써 모든 명수의 법을 멀리 여의고,
함이 있는 명수의 법을 이치대로 관찰하되
어떤 법은 끊고 어떤 법은 끊지 않는다든가,
어떤 법은 증득하고 어떤 법은 증득하지 않는다든가,
어떤 법은 수행하고 어떤 법은 수행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그러한 생각을 일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한계와 수량까지도 살피지 않아야,
그 때에 비로소 집착이 없게 되고 바라는 것이 없게 되니,
바라는 것이 없게 되면 곧 인연으로 일어나는 것이 없고,
인연으로 일어나는 것이 없으면 곧 나가 없는 경지에 들고,
나가 없는 경지에 들면 곧 일체의 것에 집착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집착이 없는 것이란,
물질을 덧없다든지 덧없지 않다든지 하여 집착하지 않는가 하면,
느낌·생각·지어감·의식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덧없다든지 덧없지 않다든지 하여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물질을 괴롭다든지 즐거운 것이라고 집착하지 않는가 하면,
느낌·생각·지어감·의식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괴롭다든지 즐거운 것이라고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물질을 나라든지 나가 없다든지 하여 집착하지 않는가 하면 내지 의식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나라든지 나가 없다든지 하여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물질을 청정하다든지 청정하지 않다든지 하여 집착하지 않는가 하면 내지 의식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청정하다든지 청정하지 않다든지 하여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물질을 공(空)하다든지 공하지 않다든지 하여 집착하지 않는가 하면 내지 의식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공하다든지 공하지 않다든지 하여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집착이 없는 삼마지를 얻는 것이니, 이 삼마지를 얻음에 따라 항상 큰 자비심을 일으켜서 유정들을 제도하되 생사의 번뇌에 허덕이는 것을 보지 않게 됩니다.
왜냐 하면 생사와 열반의 성품에 차별이 없음으로써 모든 유정들에게 열반을 나타내 보이고, 또 스스로가 본래 열반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수행하는 반열반(般涅槃)이란 곧 이러한 것입니다.
선남자여, 보살이 수행하는 반열반이 무엇인가 하면, 그 어떠한 행을 따질 것 없이 오직 일체지(一切智)의 지혜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일체지의 지혜란, 물질에 대한 요구를 일으키지 않고 느낌·생각·지어감·의식에 대해서도 아무런 요구를 일으키지 않아
요구함이 없는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에 머물러서 본래의 서원을 만족하는 것입니다.
또 일체의 법에 대해 더하거나 덜하거나 하여 보지 않고
평등함을 얻어 법계에 머물되,
이로써 보살의 행을 행하여 일부러 어떤 법을 행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보살행을 다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이 수행하는 반열반의 행입니다."
보길상보살이 다시 물었다.
"어떤 법을 행하는 것이 없으면서 열반의 행을 행하는 것이란 또 무엇입니까?"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뜻을 일으켜서 저 열반을 관찰한다면,
이는 곧 함이 있는 행이라고 하겠지만,
함이 없는 법을 증득하여 그 함이 없는 행을 행하기 때문에 열반의 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살이
어떤 언설(言說)의 표현에 분별을 내지 않음으로써 이를 열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열반을 피안(彼岸)이라고 하는 것은,
그 피안이 모든 상(相)을 여의는 것이어서
어떠한 상에도 마음이 집착되지 않으므로 이를 열반이라 하는 것입니다.
또 피안을 분별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 피안이 모든 것에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이를 열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피안을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 피안이 모든 것에 아뢰야식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이를 열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것을 보살의 반열반이라고 합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 허공장보살을 칭찬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정사(正士)여,
보살의 반열반과 부합되는 이 법을 쾌히 설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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