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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금강경대강좌-청담스님_01 본문

연구자료

금강경대강좌-청담스님_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6. 7. 25. 21:26



®

금강경대강좌-청담






金剛經大講座


靑潭  說法



간행사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는 법이 다 이 경으로부터 나왔다”하셨고, 


또 이르시기를 


“이 경 가운데 

네 글귀(四句偈)만이라도 

지송(持頌)한 공덕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서 

보시한 복보다 


몇 만배나 수승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이 

중국에서 번역된 뒤에 

그 주해를 낸 것이 

팔백여종이나 되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운 승속남녀의 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이 경이 전해 온 뒤에도 



원효대사 . 

태현법사의 주석이 있고 


고려 보조국사는 도속에게 

금강경 지송을 

적극 권장하였으며 


그 뒤로 한국불교도의 

필수교과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는 바 

그 판본(板本)도 

수십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만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본 이어서 


그 경문을 맹인 독경식으로 

읽고 외는 이는 많지만 

그 깊은 뜻을 

참으로 이해하는 이는 


극히 드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은사 청담 큰 스님께서는 

평소에 

금강경에 대한 

특수한 조예가 깊으셨고 

선 과 교를 함께 체득하시어 

항상 말씀하시기를 



『이 경은 

최상승의 심지법문(心地法門)으로 

삼공(三空)의 진리를 확철(廓徹)하여 

금강불괴의 구경지(究竟智증)를 증오(證悟)케 하는 

성불작조(成佛作祖)의 비전(秘典)이며, 

무상보리의 보장(寶藏)』이라고 

찬탄하셨고 


또 대중을 위해서 

여러번 강설하셨습니다.



정화불사의 원만성취를 기원하는 

사부대중의 청으로 

금강경 대법회를 열어 


삼칠여일 동안 

사자후를 친설(親說)하셨고 , 


거금(去今) 칠.팔년 전에 

조계사 대법당에서 

약 일년여 

오십여회의 금강경 강설을 하셨는데 



그때마다 스님은 

현하준령(懸河峻嶺) 같은 무진변(無盡邊)과 

자재무애하신 요설방편(樂說方便)으로 

현현묘묘(玄玄妙妙)한 심지법문을 


가장 평이하고 자미있게 

호호진진(浩浩津津)하게 풀어 내셨으며, 


소납(小納)등은 

그 법문을 길이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이를 빠짐없이 녹음하였던 것입니다.




그 뒤에 

수년을 지나 



큰 스님께서는 

제행무상의 법칙을 따라 

타계로 옮기셨지만 



『육신은 가도 

법신(法身)은 상주한다』는 법문과 같이 


스님의 법신은 

그대로 녹음반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광음이 흘러 갈수록 

스님의 법음이자 

육성인 음반에 

귀를 기우리는 불자가 늘어나게 되어 

그것을 다시 만인 앞에 

널리 공개하기를

갈망하는 이가 많으므로 


그 법음을 

다시 문자로 옮겨 엮는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편찬위원으로서 

趙明基박사 

李鐘益 박사 

金觀護 선생 

沈載烈 선생을 비롯한 인사로 구성하고 



그 법음을 푸는데 

주역은 

性眞 심재열거사가 전담하고 


그 고증역은 

法雲 이종익박사와 

소납이 담당하여 오면서 


춘풍추우 오년의 성상을 쌓아 

육천여장의 원고가 정리 되었으며, 


다시 보성문화사에서 

그 활자화의 작업을 맡아 온 지 

약 일년의 광음이 흐른 뒤에 


비로소 이 『금강경대강좌』가 

햇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교경에 

이르시기를 


『나의육신은 사라져도 

나의 법신은 불멸하리라』하셨고 


열반경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나의 몸이 인연따라 

허물어진다 이르지 말라. 


여래는 금강 불괴신을 증득하였나니, 


그것은 

곧 무상(無常).괴로움(苦).무아(無我).더러움(不淨)의 

네가지 뒤집힌 관념(四顚倒)을 여의고 

참다웁고 영원한 것(眞常), 

참다운 즐거움(眞樂), 

참 나(眞我), 

참다운 거룩함(眞淨), 

이 네가지 인연을 성취한 상주법신 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래의 설법이 큰 법신이며 

또한 범부의 덧 없음(無常). 

괴로움(苦). 

나 없음(無我). 

더러움(不淨)의 육신을 여읜 것이 

금강불괴의 법신입니다. 




청담스님께서도 

세속 인연따라 출현하셨던 

육신은 

인연따라 숨으셨지만 


그 법음의 법신은 

이 금강경강좌의 한 권과 함께 

그대로 금강불괴신이며 

그대로 금강불괴지혜도피안의 

영원한 이상계입니다. 



소납 다행히 

큰 스님을 모실 인연이 있어 


이 세상에서 

그 육성의 법음을 

친승훈목(親承薰沐)하였고, 


또 타계하신 뒤에 

그 법신의 음반을 활자화 하게* 되니 

한편으로는 

무한히 슬프기도 하고 

또한 기뻐하면서 


그 전후전말과 

이 경의 무진공덕을 서술하여 


간행사에 갈음*하는 동시에 

이 법음의 편찬에 심혈을 다하신 편찬위원 제위와 

법음의 녹음보존에 공이 큰 

송만덕화보살님 유재호거사님 

그리고 활자화에 적극 협조해 주신 

출판사측에 

감사하여 마지 않습니다.



이 인연공덕으로 

이 한 권 법문을 수지독송하고 


신행수증(信行修證)하는 불자는 물론이요, 

경의 말씀과 같이 


『이 경이 있는 곳이면 

곧 부처님 탑묘가 있는 곳처럼 

팔부선신이 수호』 하므로 

백가지 재앙이 다 소멸되고 

만가지 복이 일어날 것이며, 

모든 마귀떼가 물러나서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중훙의 성업이 성취될 것을 믿고 

기원하면서 

스스로 경찬하는 바입니다



불멸기원 

제 이천오백이십일년 

불탄기원 제 이천일년


삼각산 도선사 주지











金剛般若波羅密經



解 題 - 경제목 해설



불법 전체의 핵심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은 

생략하여 

[금강경(金剛經)]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께서 

40년 동안 소승경을 비롯한 많은 경을 

설법하신 뒤에 

말씀하신 중요한 최고의 경입니다. 



그러니 

당시 부처님 제자들은 

금강경을 말씀히기 전에 


부처님을 사십년 동안 모시고 

다니며 

아함경 . 방등경전 등 금강경을 제외한 

다른 대반야경을 다 들은 이 들이었으므로 

금강경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기초 법력(法力 : 지식과 수도력)을 갖춘 이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마음을 깨달아 큰 지혜를 밝힌 

십대 제자와 

천이백 대중을 비롯한 많은 대중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본래 설법을 하실 적에 

초등*학교로부터 대학원 과정까지의 순서를 따라 

불법의 깊은 진리를 체계 있게 설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마음의 법문을 

49년간의 교육 기간을 통해 다 설파하시는 가운데 

아함경은 국민(초등*)학교 과정으로 12년간 걸렸고, 

방등부는 중학교 과정으로 8년 걸렸으며 

반야육백부눈 고등학교 전문학교 과정으로 21년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8년 동안에는 

법화열반부라고 하여 

대학의 최고학부에 해당합니다. 


그 가운데 

금강경은 

육백부의 반야사상뿐만 아니라 

불교의 전체 사상의 골수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님들도 

이 금강경을 특히 존중해 왔던 것입니다. 


말과 문자를 버리고 

교 밖에서 

직접 마음을 깨치려는 선종에서까지 

존중하는 경전이 금강경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49년동안 설법하시는 가운데 

그 반이나 되는 시간을 기울여 

반야경을 말씀 하신 것은 


이 반야사상이 

불교 정신의 핵심이며 중심이 되기 때문인데, 


특히 그 가운데 

금강경은 

반야경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대문으로서 


반야육백부를 거의 다 말씀하신 

577부째에 해당 합니다. 




그래서 

금강경은 

반야사상의 핵심을 

결론적으로 천명하신 경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마음을 깨치는 요체로서 

중생이 이것을 의지하여 

마침내 불타의 지혜인 반야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보다 강한 것은 없다 -- 金剛


금강이란 

요새 말로는 다이어먼드입니다. 


다이어먼드는 

모든 자연 물질 가운데서 

가장 강한 물질입니다. 


쇠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옛날에는 

돌로 연장과 무기를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그것은 

돌이 

흙이나 나무보다 더 강했던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쇠가 발견되면서 부터는 

쇠가 돌을 대신하게 됐으니 

쇠가 돌보다 훨씬 강했던 때문입니다. 


또 쇠를 자르는 강철이 나오면서부터는 

강철이 더 강한 것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쇠나 강철보다 

더 강한 물질이 있는데 

그것이 금강석입니다. 



금강석에 의해서 깨지지 않는 물질은 없고 

다이어먼드를 당할 물질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에 와서는 

금강석보다도 

더 강한 물질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러나 

자연물질 가운데서는 

그 이상 굳센 물질은 없으므로 


금강은 

강한 것 중에 

가장 강한 것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진리는 

인류의 모든 가르침 가운데서 

제일 완전하고 가장 강하여 

다른 어떤 지혜에 의해서도 

견줄 수 없는 진리이므로 

여하한 물질에 의해서도 부서지지 않는 금강석을 

부처님 법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자리가 

물질도 허공도 아니므로 

불로 태울 수도 없고, 


원자탄이 터져서 

온 지구가 녹아 없어진다 해도 

우리 마음자리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는 때문입니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 

물질. 허공. 

에너지 등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우리의 생각. 감정까지도 

다 변하지만 


오직 우리의 마음자리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임을 

강조하는 뜻에서 


금강이라 하고 

금강경(金剛經)이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금강은 물질 가운데 

경도가 가장 강한 최고의 강철로 된 

철퇴(鐵槌)를 뜻합니다. 


어떤 물건이든지 

이것에 맞으면 

다 부서지지 않는 것이 없으며 



어떤 물건으로도 

이 금강은 

부술 수가 없는 것이므로 


금강을 

우리 마음자리에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자리는 

온 우주 모든 현상계를 창조한 근본 바탕이고 


동시에 

우주를 다 거두어 들여서 

없앨 수도 있습니다. 



금강 철퇴와 같은 이 마음자리는 

내가 지금 말하는 이 마음자리이고 

여러분이 듣고 있는 그 마음자리인데, 


자기 스스로나 

남이 부술 수도 없는 

영원 불멸의 존재이면서 


우주 만유에 자유자재하는 

그런 거룩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육체 그 자체를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금강처럼 이렇게 위대한 실재인 

자아를 망각해 버려서, 


웬만큼 설명을 들어 봐도 

이런 마음자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자신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부처님의 금강경 법문을 통해 

이런 마음자리가 확실히 있다는 것을 말하고 

듣게 되었으니 

다시 없는 공덕이라 할 것입니다.





● 마음 밝으면 반야--般若 1



금강경을 자세히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하는데, 

반야는 지혜란 뜻입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세상에서 생각하는 지혜와는 

크게 다른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간의 지혜와 구별하기 위해 

번역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간의 지혜는 

객관세계에 대한 지식, 

논리와 개념에 의한 지식, 

이런 것들을 분별하는 지혜를 말하지만, 



반야의 지혜는 

마음을 깨쳐서 


육체가 <내>가 아니고 

시간 공간이 벌어지기 이전, 

주관 객관이 나누어지기 이전, 

곧 마음의 근원에 돌아간 

지혜를 말합니다.



<마음>은 

곧 <나>입니다. 


허공도 물질도 

배설하는 기계인 이 육체도 

내가 아니고 



<나>는 

오직 순수한 <나>라는 생각까지도 아니며, 


글자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며 

내가 아니라는 것도 아니면서 

살아 있어서 얘기할 줄 알고 

얘기를 시켜 놓고 

그것을 다시 비판도 하는 , 


이 만사의 주체, 

생각의 주체, 

우주의 핵심이 곧 <나>입니다. 



이것이 생각을 내서 


과학. 철학. 종교를 만들고 

그것을 마음대로 뒤집어 엎기도 합니다. 


이것보다 앞서는 사건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각도 아니고 

허공도 아니고 

물질도 몸뚱이도 아닌 <나>, 

일체가 다 아닌 <나>, 


이것이 우주의 핵심이고 실재이며 

곧 우주와 인생의 근본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반야지혜입니다. 


그런데 또 아무것도 아닌 이 <내>가 

자유자재로 온갖 생각을 내서 


과학도 만들고 

철학도 만들고 

현상 세계, 

즉 꿈속 세계의 모든 것을 

만들고 다 압니다. 


그런 걸 <반야>라 합니다.



가령 “신심명을 들었다” 

“금강경을 듣는다” 

또 “경을 듣는 이걸로 해서 부처님 말씀을 배운다” 하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을 설명 듣는 것이 되고 


내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듣는 것이 되는 데, 


그래서 

그 법문을 듣고 

<나>를 확실히 깨쳐 

<마음>이 열리면 


이때는 전체가 <반야>의 지혜입니다. 



내 마음을 어떻게 깨칠는지 

정신 바짝 차리고 

금강경 법문의 핵심을 

그대로 들어서 따라가 보면 


결국 마음을 깨치게 되고 

반야를 얻게 됩니다.



부처님의 많은 제자 가운데 

마음 깨친 법을 

가장 정통으로 이어받은 분이 

우두머리 제자이신 

마하가섭존자입니다. 



또 이 어른의 마음 법을 

정통으로 전해 받은 분이 

이조(二祖) 아란존자이고, 


이렇게 내려가서 

二八대의 조사가 되는 분이 

바로 유명한 달마대사입니다.  


이 달마대사는 

중국에 오셔서 

선종의 초조(初祖)가 되셨고 

마음 깨치는 법을 

혜가(慧可)스님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국에 

부처님의 마음 깨치는 법을 크게 일으키신 분이 

육조 혜능대사(六祖 慧能大師) 이신데, 


이 어른이 본래 글도 모르는 

무명의 나무장수였습니다. 


육조 스님이 

마음을 처음 깨치게 된 동기가 

바로 이 “금강반야바라밀경”에 있습니다. 


시장에 나무를 팔고 돌아가는 길에 

어느 스님에게 

금강경 가운데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란 경문을 듣고 

마음을 활짝 깨쳐서 

반야지혜를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뜻은 

본문을 해설할 때 

자세하게 소개되겠지만, 


그 대의를 우선 알기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 싫다 . 좋다 . 

내 것이다 . 

주관이다 . 객관이다 . 

나쁘다 . 착하다 하는 분별심을 버리고 


본연의 마음 자세 그대로의 마음을 지니고 

오직 중생제도를 위해 살라. ]는 

뜻입니다. 



하나 더하기 둘은 셋이 된다는 

수학의 기본원리를 

두살 세살된 어린애들은 

해결 못하지만 


어른들은 

듣자 마자 알게 됩니다. 


그것은 

어렸을 때는 

하나 둘을 들어도 

곧 잊어버릴 정도로 

지혜가 아직 밝아지지 못했기 때문이고, 


나이가 들어서 

곧 알게 되는 것은 

지적 능력이 열리고 

지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을 많이 넓히려면 

설법을 듣고 

경전을 많이 익혀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널리 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참 지혜는 

말과 글을 따라 

뜻을 파악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말과 글 밖에 

나에게 있는 마음을 바로 깨쳐야만 

반야지혜를 성취하게 됩니다. 



그동안 

신심명 . 

반야심경을 들었으니 


여러분들은 

짐작으로나마 


[ 아 , 

어떤 것이 마음이로구나. 


마음의 불생불멸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 하고 

판단 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야지혜>가 지식이며 판단이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며 

이것은 인식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인식합니까.



>>>


싫다 좋다 없어야-- 般若 2





○ [pt op tr] 문서정보









○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Etienne Daho - Le Grand Sommeil.lrc 


▼ 2016_0315_154119_canon.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Dürer_-_Das_Männerb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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