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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문수사리보초삼매경_K0175_T0627_002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9. 8. 5. 23:07



®

『문수사리보초삼매경』
K0175
T0627

중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문수사리보초삼매경_K0175_T0627 핵심요약




♣0175-002♧
『문수사리보초삼매경』


중권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문수사리보초삼매경




해제보기

 

문수사리보초삼매경 중권

 

서진 월지삼장 축법호 한역

현성주 번역

 



■ 4. 유동품(幼童品)

 

■ 이때 세존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族姓子]나 선여인[族姓女]이 빨리 열반[滅度]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지금 나는
생사해탈의 어려움[終始難]을 두렵게 여겨서, 

기꺼이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게 되자, 

성문(聲聞)의 경계에서 빨리 멸도(滅度)하려는 소원을 품고, 

계속 생사(生死)에 머물면서 성문(聲聞)의 멸도(滅度)만을 그리워하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보살은
막힘 없이 확 트인 지혜로 정진(精進)하여
평등하게 법에 머물면서, 

두루 통달한 지혜로 일체를 다 아는 지혜[一切智)에 이르느니라.


그 까닭을 말하리라.


아득히 멀고 먼 지난 세상의 일이다. 

헤아릴 수도 없고 생각이나 말로도 나타낼 수 없는 오랜 겁에,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
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위불중우(爲佛衆祐)의 십호(十號)를 갖추신
일체달(一切達)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그 일체달(一切達) 여래 정각께서는 백천 세의 수명을 누리면서 백억(百億)의 성문(聲聞)을 거느리셨는데, 

이들 가운데 두 훌륭한 성문을 상수제자(上首弟子)로 두셨느니라. 

한 제자의 이름은 초수(超殊)로서 지혜(智慧)가 매우 뛰어났으며, 

또 한 제자의 이름은 대달(大達)로서 신통(神通)이 날래고 민첩하였다.


이때 여래께서는 오탁악세(五濁惡世)에 교화를 일으키셨다. 

이른 아침 법의(法衣)와 발우를 갖추시고 모든 성중(聖衆)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문물(聞物)이라는 큰 나라의 성(城)으로 들어가서 걸식을 행하셨느니라. 

지혜가 가장 훌륭한 대성문(大聲聞)은 부처님의 오른쪽을 모셨고, 

신통(神通)이 가장 훌륭한 대성문은 부처님의 왼쪽을 모셨으며, 

지혜와 박문(博聞)이 매우 뛰어난 제자들은 부처님의 뒤를 따랐고, 

8천 보살은 앞에서 인도하였다. 


그들은 몸을 변화시켜 제석천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범천(梵天)의 모양을 보이기도 하며, 

사천왕(四天王)의 모형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천자(天子)의 형상을 보이기도 하면서, 

도로(道路)를 닦아 장엄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계속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여래께서 성안을 향하여 들어가시다가, 

온갖 보배걸이로 그 몸을 장식한 세 어린 동자를 보셨다. 

마침 그때 한 동자가 멀리서 환하게 빛나는 여래의 행렬을 보았다. 

위신(威神)은 한없이 드높고, 

단정한 모습은 따를 자 없으며, 

모든 자태[諸相]는 안정되어 고요하고 지성(志性)은 담박하니, 

가장 순조롭고 더없이 적정(寂靜)하였다. 

또 온갖 번뇌를 항복시킨 감관[諸根]은 어질고 현명한 용과 코끼리를 닮았고, 

또 크고 고요한 연못을 닮아서 티끌 한 점 없이 밝고 맑았다. 

그리고 32대인상(大人相)과 80종호(種好)는 마치 떠오르는 햇살처럼 붉게 빛났으며, 

대중과 더불어 함께 계신 모습은 마치 별 가운데 달처럼 환하게 빛났다.



이를 보고 감동한 그 동자는 두 동자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저 여래를 보는가? 

이 여래는 일체가 다 존경하는 분으로서, 

더없이 훌륭한 모두의 벗이며, 

온 세상의 복전(福田)이시니, 

저 찬란하게 빛나는 광명을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다. 


그러니 우리들은 다 함께 이 여래께 마땅히 공양을 올려야 한다. 

공양을 올리면, 

이로운 경사가 아주 많으리라.’

그 동자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게송을 읊었다.

 

존경하는 이 여래는 중생들의 어버이니

끝이 없는 복의 밭을 어느 누가 당하리요.

우리 모두 이 분에게 진심으로 공양하면

공양 올린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으리라.

 


두 번째 동자가 게송(偈頌)을 읊었다.

 

우린 지금 좋은 꽃도 준비하지 못하였고

향기로운 좋은 향도 마련하지 못했으니

온 천하에 둘도 없이 거룩하신 대 성인을

맞이하여 섬기려면 무엇으로 공양하랴.

 

그러자 그 동자는 값이 백천 금에 달하는 구슬 목걸이를 풀면서 게송을 읊었다.

 

아껴왔던 이 구슬을 저 여래께 공양 올려

가장 높은 복 밭에서 그 은덕을 입으리라.

밝게 깨친 지혜 성인 어디에서 만나리요.

이 자리에 만났으니 아낄 것이 무엇이랴.

 

이때 두 동자도 그 동자를 본받아서 각각 구슬 목걸이를 풀어 손에 쥐고, 

게송을 읊었다.

 

정각 여래 부처님께 우리 모두 공양 올려

번뇌강물 벗어나서 생사바다 뛰어넘고

한량없는 마음으로 해탈경지 성취하여

너도 없고 나도 없는 평등법에 머무르자.

 



이때 한 동자가 두 동자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이 공덕으로 무엇을 바라는가?’

한 동자가 게송으로 답했다.

 

저길 보라. 

한쪽에서 정각 세존 모신 이를

오른 쪽의 대 성문이 내가 바란 그 분인데

많고 많은 성문 중에 바른 지혜 제일이니

내 서원은 저와 같이 지혜제일 바라노라.

 


또 한 동자도 게송으로 답했다.

 

나도 역시 한 쪽에서 정각 세존 모신 이다.

왼쪽의 대 성문이 내가 원한 그 분인데

많고 많은 성문 중에 신통자재 최고이니

내 서원은 저와 같이 신통제일 바라노라.

 

그러자 두 동자는 처음 동자에게 물었다.

‘동자[族姓子]여, 

이 공덕으로 무엇을 원하는가?’



그 동자는 게송으로 답했다.

 

내가 이제 부처님을 자세하게 살펴보니

진리대로 평등하고 올바르게 깨치셨고

온갖 법을 통달하여 두루 널리 보시면서

한가하고 자유롭게 사자처럼 걸으신다.

 

많고 많은 저 성중을 환히 비춰 다 아시니

나의 몸도 저와 같이 여래 되길 서원하여

삼계에서 제일가는 바른 법을 성취하고

시방세계 모든 중생 남김없이 제도하리.

 



그 동자의 게송이 끝나자, 

곧 허공 가운데서 8천 천자(天子)들이 다 함께 찬탄하였다.

‘장하고 훌륭하구나. 

시원하게 잘 말했다. 

이제 그대가 발심[發意]하였으니, 

천상(天上)세계와 인간세상은 다 그 구호(救護)를 받으리라.’”

 



부처님께서 계속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일체달정각여래(一切達正覺如來)의 곁에는
지식[博聞]이 가장 뛰어난 해의(海意)라는 시자(侍者)가 있었다. 

일체달(一切達)여래께서 해의(海意) 시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세 동자가 각기 구슬 목걸이를 가지고 여기로 오는 모습이 보이느냐?’



해의(海意) 시자가 답했다.

‘예, 보았습니다. 

하늘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분이시여.’



그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저 한복판의 동자에 대해 알고 싶은가? 

그가 세운 지성(志性)은 매우 높아서 헤아리기 어렵다. 

낱낱 걸음마다 1백 겁(劫) 동안 생사[終始]의 괴로움을 벗어나게 되며, 

또 한 번 발을 들 때마다 그 공덕의 종자는 1백 차례에 걸쳐 전륜성왕(轉輪聖王)에 오르리라. 

제석왕(帝釋王)의 자리에 오름도 이와 같고, 

범천(梵天)에 태어나서 범천왕(梵天王)에 오름도 이와 같다. 

또 낱낱 발을 들 때마다 그 공덕의 종자는 다시 1백 부처님을 만나게 되리라.’



이때 세 어린 동자는 일체달여래의 처소로 와서
머리를 발 아래까지 조아려 예를 올린 뒤에, 

다 함께 보배 구슬 목걸이를 그 세존을 향하여 뿌렸다. 



그러자 작은 뜻을 일으켜 성문(聲聞)이 되려는 두 동자의 구슬은, 

세존의 두 어깨에 멈춰 움직이지 않았고, 

두루 통달한 지혜의 마음을 일으킨 동자의 구슬은, 

부처님 바로 위의 허공 가운데서 이슬처럼 어우러져, 

여러 층을 겹쳐 이룬 누각 모양의 교로장(交露帳)으로 변하였다. 

그 교로장은 사방이 우뚝 솟아 두루 거닐 수 있도록 장엄하고 평등하였으며, 

그 교로장 가운데는 저절로 변화한 의자[床座]가 놓여 있었다. 

여래께서 그 자리에 앉으셨다.

 



이때 일체달여래께서는 곧 빙그레 웃으셨다.


해의(海意) 시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웃으셨습니까? 

웃으신 뜻을 알고자 하옵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해의여, 

너는 성문의 마음을 일으킨 두 동자가, 

손에 든 보배구슬을 이 여래에게 뿌린 것을 보았으리라.’



해의시자가 대답했다.

‘예 보았습니다. 

대성이시여.’



여래께서 또 해의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이 두 동자가 어떠한 뜻을 가졌는지 알고 싶으리라. 


■ 이들은 생사해탈의 어려움을 두렵게 여긴 나머지 겁약(怯弱)한 마음을 품고, 

마음 속으로 구호(救護)해 주기를 바랐느니라. 

이 때문에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고, 

성문(聲聞)의 자리에서 훌륭한 제자가 되려고 하였느니라. 

이들은 다음 세상에 둘 다 깨달음을 얻어서, 

한 동자는 지혜제일(智慧第一)의 존자(尊者)가 되고, 

한 동자는 신통제일(神通第一)의 존자가 되리라.’”

 



부처님께서 이어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의심스럽지 않은가? 

그때 한 복판의 두루 통달한 지혜를 일으킨 동자는 바로 나의 몸이며, 

오른 쪽 큰 성문을 소원한 동자는 바로 사리불(舍利弗)이고, 

왼쪽 큰 성문을 소원한 동자는 바로 대목건련(大目揵連)이니라. 


사리불이여, 

그대들이 과거 세상[本生時]에 생사해탈의 어려움을 두려워한 일을 살펴본다면, 

비록 공덕의 종자[德本]를 심었을지라도,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킬 수는 없었느니라. 


그래서 마음의 의지[心志]가 겁약(怯弱)한 나머지 빨리 멸도(滅度)하려고 하였으나, 

보다 빨리 뛰어넘을 수 없었느니라. 


이제 겨우 나의 법으로 인해서 무위법(無爲法)을 얻었다고 하나, 

지금 과연 나의 두루 통달한 지혜를 보았다고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들의 벗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해탈(解脫)을 얻지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다음과 같이 관찰해야 하느니라. 



■ 만일 어떤 사람이 빠른 멸도를 이루고자 한다면, 

마땅히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 왜냐 하면 말한 바 빨리 뛰어넘는 법이란, 

그 무엇도 능가할 수 없는 두루 통달한 지혜를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니라.

속임이 없고 진실한 그 법[乘]은 가장 훌륭하여, 

일체중생을 널리 안정시키므로, 

두루 통달한 지혜라고 하느니라.


또 가장 미묘하고 더없이 높은 경지이고, 

동등한 무리도 없으며, 

대적할 짝도 없고, 

마주 비교할 상대가 없으며, 

뛰어넘을 자도 없고, 

걸림이 없는 법으로서, 

일체의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이 따를 수 없기 때문에, 

두루 통달한 지혜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대승법전(大乘法典)을 설하시자, 

1만 사람이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無上正眞道意]을 일으켰다.

 



바로 이때 현자(賢者) 사리불(舍利弗)과
대목건련(大目揵連)과 대가섭(大迦葉)과 이월(離越)과 아난(阿難)과 율화리(律惒利)와
분누문타니자(分耨文陀尼子)와 수보리(須菩提) 존자(尊者) 등
대성문(大聲聞)들은 스스로 몸을 땅에 던져서
부처님의 발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렸다.


그들은 다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대승의 뜻을 일으킨다면, 

저희들은 마땅히 미묘한 해탈과 진실한 수행처를 받들어 공양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비록 백천의 모든 불세존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두루 통달한 지혜의 행을 설해 주실지라도, 

저희들은 감당할 능력도 없고 닦을 힘도 없으나, 

통달한 지혜의 마음으로 일체의 지혜를 일으킨 사람은, 

그 지혜가 걸림이 없고 훌륭하여 따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저희들에게 5역죄(逆罪)를 범하여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게 하옵소서. 

그러면 저희들은 성문만을 집착하지 않고,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중지하거나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비록 5역죄를 범하여 지옥에 떨어져서 온갖 지독한 고통을 받을지라도, 

그 고통을 다 받고 나면, 

오래지 않아 지옥으로부터 벗어나서, 

걸림 없이 두루 통달한 마음을 닦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무엇을 베풀어주신다고 할지라도, 

감당하여 알 길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종자[正眞]를 태워버리고 그 근원을 무너뜨렸으므로, 

부처님의 걸림 없는 지혜를 받아드릴 그릇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죽은 사람이 그 친족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처럼, 

저희들도 이와 같이 일체를 버리고 성문법(聲聞法)으로 해탈하기만을 원해 왔으니, 

중생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과는 달리 세존께서는 마치
두 발, 네 발, 많은 발이 달린 온갖 중생이
이 땅의 풍요로운 은덕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천상천하(天上天下)의 중생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시고 해탈을 얻게 하셨습니다.”

 





■ 5. 무오아품(無吾我品)

 

이때 세존께서 그 본(本)과 말(末)을 설하여 마치려고 하실 무렵, 

네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탄 아사세왕(阿闍世王)이
상병(象兵)ㆍ거병(車兵)ㆍ보병(步兵)ㆍ기병(騎兵) 등 4부(部) 병사를 거느리고 부처님 처소로 와서, 

부처님께 나아가 발 아래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서, 

한쪽으로 물러 나와 앉았다.



아사세왕(阿闍世王)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하늘에서도 가장 훌륭한 분이시여, 

중생의 집착은 무엇을 원인으로, 

또 어떤 연(緣)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은 우리와 나와 남과 수명에 집착하기 때문에 죄를 지으며. 

또 이를 의지하여 몸을 탐하는 데서 뒤바뀐 연(緣)이 일어난다. 

중생[群萌]은 이로 인해 재앙(災殃)의 근심을 일으키느니라.”

 

왕이 또 여쭈었다.

“몸을 탐하는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몸을 탐하는 근원은 무지[無慧]에 있느니라?”

 

왕이 또 여쭈었다.

“그 무지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삿된 벗을 생각하는 것이 그 근본이니라.”

 

왕이 또 여쭈었다.

“삿된 벗을 생각하는 근본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허위(虛僞)가 그 근본이니라.”

 

왕이 또 여쭈었다.

“허위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참답지 못한 온갖 생각이 그 근본이니라.”

 

왕이 또 여쭈었다.

“참답지 못한 온갖 생각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존재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는 것이 그 근본이니라.”

 

왕이 또 여쭈었다.

“존재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생기지도 않고 있지도 않으니, 

깨달음이 없다는 것이니라.”

 

왕이 또 여쭈었다.

“생기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면, 

마땅히 이를 어떻게 헤아리며, 

수량은 얼마나 됩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생기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으니, 

그것은 헤아릴 대상이 아니니라.”

 

왕이 또 여쭈었다.

“의심[狐疑]하는 일은 어떤 인연으로 생깁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그 의심이란 결정하지 못하는[猶豫] 데서 생기느니라.”

 

왕이 또 여쭈었다.

“결정하지 못함이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성현(聖賢)이 설한 진실한 법을 듣고 의심을 품으면, 

이를 결정하지 못함이라고 하느니라.”

 

왕이 또 여쭈었다.

“성현(聖賢)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진실한 법이라고 합니까?”

 

■ 세존께서 답하셨다.

“성현이란 일체 애욕의 온갖 견해를 다 없앤 분이며, 

진실한 법이란 일체의 법이 다 존재의 대상이 아님을 아는 경지니라.”

 



■ 아사세왕(阿闍世王)이 세존께 아뢰었다.


“저는 이전에 소유함이 없다는 성현(聖賢)의 경지를, 

실로 허망한 거짓으로 여겨왔으며, 

편안하게 머물렀다는 세존의 경지도, 

자기의 번뇌에서 건립하여 세간에 집착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모든 성현이 풀어서 밝히는 법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헤아릴 수 없는 재앙의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아버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습니다. 

나를 잡아 가두거나 생명을 위협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국토를 탐냈으므로 재물과 보배에 미쳐서 부귀와 영화에 홀리고, 

산업(産業)의 자산에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 이렇게 이로움을 즐기고 백성을 장악할 뜻으로, 

반역을 꾀하여 아버지를 해쳤습니다.

그 뒤로 마음 속에 의심과 걱정과 두려움을 품었으니, 

스스로 편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즐거운 연회일지라도 즐겁지 않습니다. 


중궁(中宮)의 채녀(采女)들이 교태를 부리며 즐겁게 할지라도, 

앉거나 누워서 바르게 결정할 일이 있더라도, 

홀로 조용한 곳에 있을지라도, 

뭇 관료의 최고자리에서 국사를 듣고 처리할지라도, 

밤낮 없이 두려운 근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침통한 신음과 답답한 맺힘으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으니, 

비록 좋은 요리가 있을지라도 달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두 눈은 침침하여 앞이 몽롱하며, 

심장은 항상 두근거리고 얼굴모습은 초췌하니, 

어느 곳을 가도 편치 않습니다. 

또 죽은 뒤에 떨어질 지옥도 두렵습니다.


우러러 부디 여래께 원합니다. 

여래께서는 두려워하는 이를 두렵지 않게 해주시고, 

눈 먼 이를 볼 수 있도록 해주시며, 

물에 빠진 이를 건져주시고, 

괴로움으로 허덕이는 이를 편안케 해주십니다.

또 돌아갈 곳이 없는 이를 받아주시고, 

아무도 구호(救護)하지 않는 이를 구제해 주시며, 

헐벗고 가난한 이에게 재물을 베풀어주시고, 

병든 이를 치료하여 주십니다.


또 삿된 길에 떨어진 이에게 바른 길을 보여 주시고, 

바른 길에 계시면서 크게 가엾게 여기는 마음[大哀]을 일으키시니, 

수고로움을 참으시고 괴로워하지 않으십니다. 

그 자애(慈愛)가 견고하시어 중생들[群黎]을 골고루 불쌍하게 여기시니, 

그 본(本)과 말(末)이 다할 때까지 괴로움과 즐거움으로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여래께서는 중생을 남김없이 다 구제하시겠다고 서원(誓願)하셨으니, 

한 사람도 버리지 않습니다.

저는 세존께 의지하오니, 

은혜를 내리시어 위로하시고 이 두려움을 없애주시고, 

아무도 구제해 주지 않는 이 외로운 사람을 부디 구제해 주시며,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허기와 갈증을 채워주시고, 

지금 힘이 모자라고 탈진하여 땅에 쓰러질 지경이오니 부디 부축하여 주옵소서.

이제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이 돌아가 의지하오니 받아주옵소서.


이제 물에 빠져서 허덕이오니, 

가호(加護)를 내리시어 건져주옵소서.

부디 인연을 가리지 않는 자비를 베푸시어 이 몸이 큰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대성(大聖)이시여, 

부디 알맞은 설법으로 저의 의심을 결단하시어 근심덩어리를 풀어주시고, 

결정하지 못함이 없게 하시어 저의 무거운 죄가 가벼워지도록 하옵소서.”

 



그러자 세존께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셨다.

“아사세왕(阿闍世王)의 말을 들어보니, 

통달한 경지가 매우 총명하고 미묘할 뿐 아니라
그 들어간 법도 뛰어나고 심오하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저 의심덩어리를 감당하여 남김없이 결단할 수 없으리라. 


오직 난수(濡首:軟首)보살만이 그 막힌 덩어리를 녹여버릴 수 있으리라.”

 


이때 사리불(舍利弗)이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서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의혹(疑惑)을 가려 풀고 싶다면, 

음식을 마련하여 난수동진(濡首童眞)보살을 청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왕의 허망한 번뇌[虛僞塵勞]와 의심덩어리는 해결되고, 

국토도 진정되어 편안해질 것입니다. 

또 중궁(中宮)과 함께 왕의 식탁[床榻]에서 온갖 진수성찬을 공양한다면, 

중궁의 채녀(采女)와 모든 시종(侍從)만이 한량없는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왕사성[羅閱祗城]과 마갈대국(摩竭大國)의 무수한 중생도 이로운 법[利誼]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자 아사세왕은 난수동진보살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부디 저에게 대비(大悲)의 가호[加被]를 내리시어 권속[營從]과 함께 오셔서, 

변변치 않은 공양이오나 받아 주십시오.”

 

■ 난수보살이 답하였다.

“대왕이여, 그만두십시오. 

그 말씀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공양을 받았습니다. 

율법(律法)에는 의복이나 음식으로
그 대가를 바라고 대비(大悲)를 베풀도록 밝힌 기록이 없습니다.”

 


대왕이 또 아뢰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 간절한 정성[丹赤]을 보여야 하겠습니까?”

 

난수보살이 답하였다.

“비록 대왕이 특별히 깊고 묘한 업(業)의 훌륭하고 진실한 이치[議]를 들을지라도, 

두렵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겁내어 당황하지 않으며, 

놀래어 떨지도 않고 어렵게 여기거나 위태롭게 느끼지도 않아야만, 

대비(大悲)를 베풀 수 있습니다.



■ 비록 대왕이 법을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생각하지 않음이 없어야 하고,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음도 없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행해야만 대비(大悲)를 베풀 수 있습니다.


비록 과거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과거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음이 없어야 하고, 

미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미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음이 없어야 하며, 

현재의 마음에도 받아들이는 일이 없어야만 비로소 대비(大悲)를 베풀 수 있습니다.

비록 대왕이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을지라도 사견을 없애지도 않아야 하고, 

보는 일도 없어야 하며, 

보는 일이 없지도 않아야만 비로소 대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아사세왕이 또 난수(濡首)보살에게 말했다.

“지금 설한 내용은 다 법에 실려 있습니다. 

부디 가엾게 여겨서 이 청을 받아 주십시오.”

 

■ 난수보살이 답했다.

“대왕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법률(法律)에는
‘은혜를 베풀어준 대가로
의복이나 음식의 공양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실려 있습니다.


만일 대왕 자신이 나의 존재를 헤아리지 않고, 

사람의 존재도 헤아리지 않으며, 

수명의 길이도 헤아리지 않고, 

목숨도 헤아리지 않는다면, 

대비를 베풀어 공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대왕이 스스로 몸을 애착하지 않고, 

남을 애착하지도 않고, 

취하는 일도 없다면, 

비로소 대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비록 마음을 거둬들이지 않을지라도 인연을 헤아리지 않고, 

5음(陰)과 12처(處:入)를 두지도 않으며, 

내법(內法)을 두지도 않고, 

외법(外法)을 두지도 않아야 합니다. 


삼계(三界)를 수용(受用)하지 않을지라도 삼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선(善)과 불선(不善)도 없어야 하며, 

덕(德)과 덕 아님도 없어야 합니다. 

세상을 벗어났을지라도 세상을 벗어나지도 않아야 하고, 

죄도 없어야 하고 복도 없어야 하며, 

샘의 번뇌도 없어야 하고, 

샘의 번뇌가 없지도 않아야 하며, 

행하는 일이 있지도 않아야 하고 행하는 일이 없지도 않아야 하며, 

생사를 버리지도 않아야 하고, 

열반[滅道]에 들지도 않아야만, 

비로소 대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왕이 답했다.

“난수보살이시여, 

저는 반드시 이러한 법의 이치[法議]를
진심으로 받들어 모시겠으니, 

나의 청을 허락하여 이 못난 무리에게 대비(大悲)를 내려 주소서.”

 

난수보살이 답했다.

“대왕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만일 모든 법에 의지할 대상을 둔다거나, 

받을 대상을 둔다거나, 

얻는 대상을 둔다거나, 

구호(救護) 받을 대상을 둔다면, 

대비의 혜택을 받지도 못하고, 

편안한 경지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만일 법에 집착하여 생각한다면, 

세운 자리를 두고 방일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 의지한 집착으로서, 

생각에 처소를 두고 방일을 지킬 뿐입니다. 


비록 대왕이 최종까지 다 마치기를 바라고
길이 편안한 경지에 이르러서, 

마침내 근심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만일 대왕에게 지을 일이 있게 된다면, 

대비(大悲)를 감당할 능력도 없고, 

안온한 경지에 이르지도 못하게 됩니다.”

 



아사세왕이 또 난수보살에게 물었다.

“어떠한 법을 받들어야만 근심이 없어져서
무소유(無所有)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까?”

 


■ 난수보살이 답하였다.

“만일 공(空)을 분명하게 안다면, 

지을 일도 없고 짓지 않을 일도 없으며, 

생각도 없고, 

바람도 없으며, 

지음도 없고 짓지 않음도 없습니다. 


만일 대왕이 만들어 세운 일을 두고
행을 삼아
몸과 입과 마음으로 행하도록 한다면, 

이것을 짓는 일이라고 합니다. 


가령 만든 일이 없고 행할 일도 없어서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을 일이 없다면, 

곧 짓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왕이여, 

일체 모든 법은 다 모양이 없습니다. 

행도 없고 있지도 않는 것이 바로 그 모양입니다.”

 

왕이 또 난수보살에게 물었다.

“무엇을 행하는 일이면서 행하는 일이 없고, 

만드는 일이 없으면서 만들지 않음이 없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고 합니까?”

 

■ 난수보살이 답하였다.

“만일 과거는 이미 다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현재를 일어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영원함[有常]과 영원하지 않음[無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를 행하지 않으면서 행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 만일 색(色)이 모든 인연에서 평등하여 온갖 연(緣)이 될 수 있다면, 

이를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이라고 합니다.”

 


왕이 또 난수보살에게 물었다.

“번뇌[塵勞]의 욕망이 도(道)라고 한다면, 

어떻게 서로 합합니까?”

 

난수보살이 답하였다.

“대왕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밝음이 어둠과 합하겠습니까?”

 

왕이 답하였다.

“합하지 않습니다. 

밝은 해가 나오면 온갖 어두움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난수보살이 물었다.

“왕은 그 어두움이 간 곳을 알겠습니까? 

어디로 가서 어느 곳에 모여 있습니까?”

 

왕이 답하였다.

“모릅니다.”

 

난수보살이 말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도의 지혜가 일어나면, 

번뇌는 바로 사라져버리니, 

그 번뇌가 모여 있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장소도 없고, 

방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 도와 번뇌는 함께 합하지 않습니다. 

또 번뇌와 평등하면 바로 도(道)라고 이름합니다. 

도에서는 번뇌도 평등하니, 

번뇌와 도는 평등하여 차별이 없고, 

일체의 모든 법도 평등합니다. 

만일 이러한 이치로 분별한다면 번뇌는 바로 도입니다. 


왜냐 하면 번뇌를 근거로 도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번뇌는 형상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번뇌를 찾는 것이 바로 도가 됩니다.

 


왕이 또 물었다.

“어째서 번뇌를 찾는 것이 도가 된다고 하십니까?”

 

난수가 말했다.

“비록 찾는 일이 있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또 이것은 번뇌요 이것은 도라고 생각하거나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번뇌는 도이기 때문에, 

그 번뇌는 도에 들어갑니다.”

 

왕이 또 물었다.

“어째서 번뇌가 도에 들어가며,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난수보살이 말했다.

“일체 법에 행하지 않은 것도 도를 행한 것이요, 

일체 법에 행하지 않음이 없는 것도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왕이 또 물었다.

“이와 같이 도를 행한다면 어디로 돌아갑니까?”

 

난수보살이 말했다.

“이와 같이 도를 행한다면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왕이 또 물었다.

“도가 어찌 열반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난수보살이 되물었다.

“과연 모든 법이 멸도(滅度)에 이르겠습니까?”

 

왕이 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연수보살이 말했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이르면서 이른 자리가 없는 것이 성현(聖賢)의 도입니다.”

 

왕이 또 물었다.

“그러면 성현(聖賢)은 어느 곳에 머뭅니까?”

 

연수보살이 말했다.

“그 성현의 도는 머무는 데가 없습니다.”

 

왕이 또 물었다.

“그 성현의 도는 금계(禁戒)와 넓은 지식[博聞]과 선정[定]과 지혜[慧]에 머물지 않습니까?”

 

■ 난수보살이 말했다.

“현성(賢聖)의 계(戒)는 행하는 모양이 없는 것과 방일한 모양이 없는 것을 거룩한 선정의 뜻으로 삼고, 

집착한 모양이 없는 것을 거룩한 선정의 뜻으로 삼으며, 

사유하는 모양이 없는 것을 거룩한 지혜로 삼습니다. 



왕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행함도 없고 방일도 없다면 머무는 곳이 있겠습니까?”

 

왕이 답했다.

“머무는 곳이 없겠습니다.”

 

난수보살이 말했다.

“그러므로 왕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머무를 데가 없는 것이 현성(賢聖)의 도입니다.”

 

왕이 또 물었다.

“선남자 선여인은 어떻게 해야 도(道)를 향하여 나갈 수 있습니까?”

 

난수보살이 말했다.

■ “만일 도를 구한다면, 

모든 법이 ‘영원하다’ ‘영원하지 않다’는 견해가 없어야 하고, 

얻을 대상도 없어야 합니다. 


■ 또 모든 법이 ‘청정하다’ ‘청정하지 않다’라든지, 

‘공(空)하다’ 공(空)하지 않다‘라든지, 

’나가 있다‘ 나가 없다’라든지, 

‘괴롭다’ ‘즐겁다’ 하는 따위를 헤아리지 않아야 합니다. 


■ 그리고 모든 법에는 얻을 대상이 없으니, 

온갖 법이 생사(生死)에 있다거나, 

혹은 열반[滅度]에 있다고 보지 않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행한다면 도(道)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사세왕이 난수보살에게 아뢰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마땅히 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로써 나를 온갖 뒤바뀜에서 벗어나게 하고
해탈을 얻어 청정한 행을 분별할 수 있도록, 

여러 권속과 함께 궁중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 난수보살이 말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다 존재하는 일도 없고 생기는 일도 없으니, 

훌륭하거나 훌륭하지 않음도 없습니다. 

그 무소유(無所有)에는 해탈이 없으니, 

그 해탈이란 바로 무소유(無所有)로서, 

해탈도 없고 해탈하는 자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일체의 온갖 법은 다 자연 그대로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세존께서 난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아사세왕의 청을 받아들여서, 

이 인연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로운 이치를 알고 안온한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하여라.”

 



세존께서 권하시자, 

난수동진보살이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마땅히 그 청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여래의 분부를 감히 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사세왕은 난수보살이 청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흐뭇해져서 뛸 듯이 기뻐하였다. 

왕은 부처님의 발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또 난수동진과 일체 성중(聖衆)에게도 예를 올렸다.

곧바로 그 자리를 나오다가 사리불(舍利弗)에게 물었다.

“난수동진보살의 권속은 몇 분입니까?”

 

사리불이 답했다.

“5백 명의 사람이 연수보살과 함께 참석할 것입니다.”

 

왕은 성으로 들어가서 궁전으로 돌아오자 바로 모든 것을 갖추도록 영을 내렸다. 

그 날 밤 신하들은 맛있는 온갖 음식을 준비하는 한편, 

5백 개의 의자를 마련하여 한량없는 방석으로 그 위를 깔았고, 

궁전을 장엄하여 비단 번기(幡旗)와 일산을 달았다. 

또 이름난 잡향(雜香)을 태우고, 

온갖 꽃을 흩었으며, 

네 거리의 성 안팎을 넓게 모두 다 청소하여 향즙(香汁)을 뿌렸다. 

또 왕은 나라 백성에게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몸과 의복을 단장하고 향과 꽃을 준비하여 다 함께 난수동진보살을 맞이하도록 영을 내렸다.

 






■ 6. 총지품(總持品)

 

이때 난수(濡首)보살은 초저녁[初夜]에 그 방에서 나와 홀로 생각했다.

“나는 이 적은 권속만을 거느리고 왕의 청에 나아가지 않아야 한다. 


■ 이제 마땅히 다른 부처님의 국토로 가서 모든 보살을 초청하고, 

그들에게 널리 경법(經法)을 강설하여 온갖 의심을 끊은 뒤에, 

다 함께 아사세왕(阿闍世王)의 궁전으로 가서 공양을 받으리라.”

 


난수동진(濡首童眞)보살은 용맹한 장사가 팔을 꾸부렸다가 펴는 것과 같은 잠깐 사이에, 

홀연히 사라져서 나타나지 않았다. 


■ 난수보살은 삽시간에 8만 불국토(佛國土)를 뛰어넘어
동쪽의 상명문(常名聞)이라는 세계에 이르렀다. 

그 부처님의 이름은 이문수(離聞首)로서, 

진리대로 지극히 진실하고 평등하고 바르게 깨치신 분이며, 

지금 현재 설법하시면서 모든 보살에게 청정법[淸淨典]을 설해 주셨다. 


그 여래께서는
일시에 6바라밀[六度無極]을 평등하게 굴리는 자연 그대로 통달한 지혜를
원만하게 갖추시고
물러나지 않는 법을 선양하셨다.


그 불국토에는 여러 가지 꽃이 피고 풍성한 과실이 열리는 나무들이 많았으며, 

그 온갖 나무에서는 언제나 저절로 부처님의 소리와 법의 소리와 물러남이 없는 법륜(法輪)보살들의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이름을 상명문(常名聞)이라고 하였고 이 보배로운 도의 소리가 항상 끊이지 않았으므로, 

언제나 법의 이름이 들려온다고 하였다.

 

난수동진보살은 이문수(離聞首)부처님의 처소로 나아가
부처님의 발까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여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을 저와 함께 인계(忍界)로 보내시어, 

아사세왕궁의 청을 받도록 하옵소서.”

 

이문수(離聞首)여래께서 모든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난수보살과 함께 인계(忍界)에 가기를 바란다면, 

마음대로 하여라.”



그러자 이 법회(法會)의 뛰어난 2만 2천 보살들은 동시에 소리를 내어 말했다.

“예.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난수보살과 함께 인계(忍界)에 가기를 원합니다.”

 

이때 난수보살은 이만 이천 보살과 함께
상명문(常名聞)국토에서 홀연히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난수보살은 보살들과 함께 인계(忍界)로 돌아와서 자기 방에 머물렀다.



난수보살은 초저녁[初夜]에 뛰어난 보살들을 위하여 법회를 열고 총지법(總持法)을 설하였다.

 

■ “총지법(總持法)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는 모든 법을 다 바르게 끌어들여 마음대로 다스리는 법이고, 

두 번째는 마음에 잊어본 적이 없는 법이며, 

세 번째는 어디에 가든지 어지럽지 않는 법이고, 


네 번째는 그 마음에 한번도 버리거나 폐한 적이 없는 법이며, 

다섯 번째는 지혜의 업(業)을 배워서 통달하는 법입니다.

여섯 번째는 모든 법의 진실한 도리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법이고, 

일곱 번째는 바른 지혜를 분별하는 법이며, 

여덟 번째는 과증(果證)을 얻음이란 단지 문자(文字)뿐임을 아는 법이고, 

아홉 번째는 생사를 벗어나서 고요한 경지에 이르는 법이며, 

열 번째는 일체 온갖 법의 장구(章句)를 조리 있게 열거하는 법입니다.

열한 번째는 현성(賢聖)의 요제(要諦)를 취하는 법이고, 

열두 번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끊지 않는 법이며, 

열세 번째는 법의 내용을 어기지 않는 법이고, 

열네 번째는 일체 현성중(賢聖衆)을 포섭하여 취하는 법이며, 

열다섯 번째는 모든 경법(經法)의 부분전적(部分典籍)에 해당하는 법입니다.

열여섯 번째는 일체에서 가장 훌륭한 지혜에 들어가는 법이고, 

열일곱 번째는 온갖 모임에 집착하지도 않고 겁내거나 약하지도 않는 법이며, 

열여덟째는 온갖 모임을 두루 유행(遊行)하며 경전(經典)을 선양하면서 두려워하거나 꺼릴 대상이 없는 법이고, 

열아홉 번째는 모든 하늘의 소리를 뛰어넘어 밝은 지혜로 헤아려서 가려내는 법이며, 

스무 번째는 하늘ㆍ용ㆍ신(神)ㆍ아수라[阿湏倫]ㆍ가루라[迦留羅]ㆍ긴나라[眞陀羅]ㆍ마후라가[摩休勒]에 대해, 

그 음성을 샅샅이 밝혀내고 그에 알맞도록 설법(說法)하는 법입니다.

스물한 번째는 제석(帝釋)과 범천(梵天)의 음성보다 뛰어난 법이고, 

스물두 번째는 바르고 평등한 경지를 분명하게 깨달아서 모든 근원을 아는 법이며, 

스물세 번째는 사견(邪見)으로 세운 모든 경계를 판단하여 가려내는 법이고, 

스물네 번째는 일체중생이 향하여 나가는 근원을 다 거둬들여 관찰하는 법이며, 

스물다섯 번째는 머문 경지가 평등한 마음의 법입니다.

스물여섯 번째는 세상의 8법(法)에 휩쓸리거나 흔들리지 않는 법이고, 

스물일곱 번째는 일체의 진실하고 바른 법을 충분히 갖추는 법이며, 

스물여덟 번째는 그 죄(罪)나 복(福)으로 받은 결과를 따라 설하는 법이고, 

스물아홉 번째는 중생이 지어야 할 바른 의지의 업[志業]을 일으키는 법이며, 

서른 번째는 온갖 중생에게 금계(禁戒)를 세워 지키게 하는 법입니다.

서른한 번째는 그 지혜가 널리 들어가는 법이고, 

서른두 번째는 모든 중생을 대신하여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법이며, 

서른세 번째는 힘들고 괴로운 일을 싫어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법이고, 

서른네 번째는 모든 법을 해탈하여 본성(本性)이 청정한 법이며, 

서른다섯 번째는 본래 청정한 법을 사람들에게 연설하는 법입니다.

서른여섯 번째는 본래 청정한 지혜로 도의 뜻을 해설하는 법이고, 

서른일곱 번째는 지혜가 걸림이 없는 법이며, 

서른여덟 번째는 법의 보시를 닦고 베푸는 법이고, 

서른아홉 번째는 마음이 견고하여 게으름이 없는 법이며, 

마흔 번째는 설하는 사람에게 의심의 맺힘이 없는 법입니다.

마흔한 번째는 일체 공양과 이익을 탐내지 않는 법이고, 

마흔두 번째는 두루 통달한 지혜의 마음을 잊거나 버리지 않는 법이며, 

마흔세 번째는 부지런히 노력하여 여러 행을 모으고 쌓아서 고요한 경지를 원하는 법이고, 

마흔네 번째는 싫증 없이 보시(布施)를 닦으면서 언제나 두루 통달한 지혜를 권하여 돕는 법이며, 

마흔다섯 번째는 싫증 없이 지계[禁戒]를 닦고, 

이 지계(持戒)로 일체중생을 도와 교화하는 법입니다.

마흔여섯 번째는 싫증 없이 인욕(忍辱)을 닦아서 부처님의 색상[佛色像]을 구하는 법이고, 

마흔일곱 번째는 싫증 없이 정진(精進)을 닦아서 온갖 덕의 근본을 쌓는 법이며, 

마흔여덟 번째는 싫증 없이 선정[一心]을 닦아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온갖 어둠을 없애는 법이고, 

마흔아홉 번째는 싫증 없이 지혜를 닦아서 모든 행에 들어가는 법이며, 


■ 쉰 번째는 도법(道法)의 업으로 이 일체에서 생기는 일이 없는 법입니다.

 

여러분, 

■ 이른바 총지(總持)는
일체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온갖 법의 요의(要義:要誼)를 거둬들입니다. 

모든 법을 지녀서 행하고 행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총지(總持)라고 합니다.

 

또 여러분, 

그 총지는 모든 법을 거둬들여 지닙니다. 


■ 어떻게 모든 법을 거둬들여 지니겠습니까. 


모든 법이 다 공(空)한 이치를 붙들어 지닙니다. 

모든 법이 다 모양이 없는 도리를 붙들어 지닙니다. 

모든 법이 다 소원이 없는 도리를 붙들어 지닙니다.

온갖 행을 떠나서 고요하여 형상이 없고, 

있는 일도 없고 느낄 일도 없으며, 

행할 일도 없고 처소도 없습니다. 

또 생기는 일도 없고 일어나는 일도 없으며, 

나아가는 일도 없고 사라지는 일도 없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습니다. 

또한 무너지는 일도 없고, 

벗어날 일도 없으며, 

시들어 썩는 일도 없고, 

청정할 일도 없고 청정하지 아니한 일도 없으며, 

장엄할 일도 없고 장엄하지 않을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집착할 일도 없고 소유할 일도 없으며, 

보는 일도 없고 듣는 일도 없으며, 

잊을 일도 없고 가르칠 일도 없으며, 

샘의 번뇌도 없습니다.

또 생각도 없고 생각을 떠나지도 않으며, 

응하거나 응하지 않음도 없고, 

뒤바뀜도 없으며, 

만족도 없습니다. 

또한 나도 없고 남도 없으며, 

수명의 길이도 없고 목숨도 없으며, 

방일도 없고 받아들일 일도 없으며, 

취할 일도 없고, 

특별히 뛰어난 일도 없습니다. 

마치 허공처럼 이름이 알려지는 일도 없고, 

얻을 일도 없으며, 

파괴할 일도 없고, 

둘의 차별도 없습니다.

진실 그대로 본래의 자리[本際]에 머물면서, 


■ 일체 법계와 일체 모든 법이 뿌리도 없이 텅 빈 도리[無本:空]에 머무는 것을 총지(總持)라고 합니다.

 

또 여러분, 


■ 일체의 모든 법은 환영(幻影)처럼 다 자연 그대로입니다. 


모든 법을 거둬들여 지님은 자연 그대로 꿈과 같고, 

자연 그대로 아지랑이와 같으며, 

자연 그대로 그림자와 같고, 

자연 그대로 메아리와 같으며, 

자연 그대로 변화하여 나타남[化現]과 같고, 

자연 그대로 물방울과 같으며, 

자연 그대로 물거품 같고, 

자연 그대로 공(空)과 같습니다. 


■ 모든 법을 이와 같이 분별하는 것을 총지(總持)라고 합니다.“

 

난수보살이 말했다.

“여러분, 

비유하면 땅은 온갖 것을 다 실어 거느리지 않음이 없으나,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실었다는 생각도 없고, 

싫어하지도 않는 것과 같습니다. 


■ 만일 보살이 총지(總持)를 얻는다면,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겁에 은혜를 베풀면서 구제할 수 있습니다. 

온갖 덕의 종자로부터 두루 통달한 지혜에 이르기까지, 

마음으로 다 거둬들여 다스리면서도 다스린다는 생각도 없고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비유하면 이 땅은 일체중생이 땅 위에서 땅을 우러러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두 발, 네 발을 가리지 않고 다 따라주는 것과 같습니다. 

총지를 얻은 뛰어난 보살도 이와 같이 모든 중생에게 많은 이익을 넉넉하게 베풀어줍니다.

 

여러분, 

비유하면 약초(藥草)와 나무와 온갖 곡식과 여러 과일이 다 땅에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총지에 도달한 보살도 이와 같이 곧바로 일체 공덕의 종자와 모든 부처님의 법을 일으켜 선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비유하면 땅은 그 위에 실려 있는 온갖 것을 실었다는 생각도 없고 걱정하지도 않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며, 

더하거나 덜하지도 않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도 이와 같이 중생을 제도하지만, 

제도한다는 생각도 없고 근심하지도 않으며,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으며, 

동요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비유하면 이 땅이 다 하늘의 비를 받을지라도 싫어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총지법(總持法)에 도달한 보살도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과 모든 보살도(菩薩道)와
일체 연각(緣覺)ㆍ성문(聲聞)의 법과
그 외 다른 보살[正見士]의 평등한 행과
사문(沙門)과 범지(梵志)와 일체중생과 천상(天上)과 세간(世間)을 다 받아들여서, 

이들에게 싫증내지 않고 법을 설하며 게으르지 않고 경전을 들려줍니다.

 



여러분, 

땅에 씨앗을 심었을 때, 

시기를 잃지 않고 싹이 나서 계절을 잃거나 어기지 않고 때를 맞춰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총지법(總持法)에 도달한 보살도 이와 같이 일체의 온갖 공덕법(功德法)을 다 거둬들이고, 

사람을 해치거나 속임이 없이 시기를 잃지 않는 가운데, 

닦을 행을 원만하게 갖추고 보리수(菩提樹:佛樹)에 앉았다가
도량(道場)에 머물러서 두루 통달한 지혜에 이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유하면 용맹이 뛰어난 장수가 나라의 성을 지키고 있다가 전투가 일어나면, 

원수의 적을 항복시켜 귀의시키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총지법에 도달한 보살도 이와 같이 도량(道場)에 머문 가운데 보리수에 앉아서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킵니다.

 

여러분, 

비유하면 일체 법의 영원함과 영원하지 않음을 검증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미묘하여 안온할지라도 나가 아니니, 

영원하지 않음과 모든 더러움과 괴로움도 나가 아니라고 헤아려 압니다. 

왜냐 하면 여러분은 이미 두 가지의 차별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총지(總持)라고 합니다.

 

여러분, 

비유하면 허공이 다 받아들여 지니지 않음이 없으나
다 거둬 지니지 않으면서
지니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총지법을 얻은 보살도 이와 같이 일체 모든 법의 요의[要]를 취하여 거둬들입니다.

 

여러분, 

■ 비유하면 일체의 모든 법과 모든 사견(邪見)은 다 공(空)하므로, 

모두 거두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총지법을 얻은 보살도 이와 같이 붙들어 가지지 않음이 없습니다. 

총지도 이와 같이 일체 모든 법의 이치를 찾아 거둬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을 위하여 총지를 헤아린다면 끝날 때가 없습니다. 

이미 끝남이 없으니 방일이 없습니다. 

이미 방일이 없으니 치우침이 없는 자리에 처합니다. 

이미 평등한 경지에 처했으니 몸이 없습니다. 

이미 몸이 없으니 바로 허공계(虛空界)입니다. 

이미 허공과 같으니 허공과 땅은 둘이 아닙니다.“

 

난수동진(濡首童眞)보살이 이렇게 설법하자, 

5백 보살이 이 총지(總持)를 얻었다.

 





■ 7. 삼장품(三藏品)

 

이때 난수동진(濡首童眞)보살은
한밤중[中夜]에 이 뛰어난 보살들을 위하여
세 법장[三篋藏]으로 이뤄진 보살의 비밀한 법[菩薩秘典]을 강설하였다.


“무엇이 보살장[菩薩篋藏]의 비밀요지[秘要]이겠습니까. 

모든 경전의 법은 이 법장(法藏)으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세속법(世俗法)과 출세간법[度世法],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 

선법(善法)과 불선법(不善法), 

유죄법(有罪法)과 무죄법(無罪法),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은 다 이 보살장(菩薩藏)으로 돌아갑니다. 


왜냐 하면 이 경전요지[經典要]의 보살장(菩薩藏:菩薩篋藏)은
일체 모든 법의 이치를 환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비유하면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백억 사천하(四天下)의 큰 땅과 백억의 해와 달과
백억의 수미산왕(須彌山王)과 백억의 큰 바다를, 

다 그 안에 싸안아서 1불국토(佛國土)를 삼은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범부법(凡夫法)과 그 외 다른 배움의 법, 

성문법(聲聞法)과 연각법(緣覺法), 

보살법(菩薩法)과 불법(佛法)은 다 보살장[菩薩篋藏]으로 돌아갑니다. 


왜냐 하면 보살장은 일체를 끌어안아 보호하면서, 

성문과 연각을 장차 대승(大乘)으로 키워나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비유하면 나무의 뿌리와 둥치가 단단하고 충실해야, 

가지와 잎사귀와 꽃과 열매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또 이와 같이 보살장을 거두어 가진 훌륭한 보살은, 

일체의 모든 법[乘]을 끌어안아서 일체의 온갖 공덕의 법을 기르는 것입니다.

보살장(菩薩藏)을 한량없는 그릇이라고 이름합니다. 


한량없는 그릇이라고 이름한 까닭은, 

마치 큰 바다가 크고 작은 냇물을 한량없이 받아들이므로, 

헤아릴 수 없는 보배를 담는 그릇과 같기 때문입니다. 


보살장도 이와 같이 모든 용ㆍ귀신ㆍ건달바[揵沓★]ㆍ
아수라[阿湏倫]ㆍ가루라[迦留羅]ㆍ긴나라[眞陀羅]ㆍ마후라가[摩休勒]와
날아다니는 새들과 기어다니는 짐승에 이르기까지 많은 중생을 한없이 다 받아들이는 그릇입니다.


보살장이 경전(經典)의 비밀한 요지를 거두어들임도 이와 같이, 

한없는 보시(布施)ㆍ박문(博聞)ㆍ지계(持戒)ㆍ선정(禪定)ㆍ지혜와 해탈지견[度知見]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므로
보살장[菩薩篋藏]이라고 이름합니다.


또 비유하면 피의 양분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무리가 큰 바다에 태어나서 다른 물을 마시지 않고, 

오직 바닷물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도 이와 같이 보살장(菩薩藏)을 행하면서 다른 법을 닦지 않고, 

오직 항상 두루 통달한 지혜의 이치만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장이라고 이름합니다.

 

또 여러분
■ 보살에게는 세 가지 중요한 법장[三篋要藏]이 있습니다.

세 가지 중요한 법장(法藏)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성문장(聲聞藏)이요, 

둘째는 연각장(緣覺藏)이며, 

셋째는 보살장(菩薩藏)입니다. 

성문장이란 다른 사람의 음성[音響]을 듣고 해탈을 얻는 법입니다. 

연각장이란 12연기(緣起)의 원인을 환하게 알고, 

과보(果報)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사라지는 대상을 분별하는 법입니다. 

보살장이란 한량없는 모든 법의 바른 이치를 한데 모아 다스려서 스스로 분별하여 깨치는 법입니다.

 

또 여러분, 

■ 그 성문승(聲聞乘)에는 이 삼장(三藏)이 없으며, 

그 연각(緣覺)에도 이 삼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살은 모든 설법에서
삼장의 비밀한 요지[三藏秘要]를 샅샅이 연구하고 단련합니다. 


보살법(菩薩法)을 근거로
삼장의 성문과 연각과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한 도[無上正眞道]가 나오므로, 

삼장이라고 합니다. 


보살은 설법으로 중생을 권장하고 교화하여, 

삼승(三乘)의 성문과 연각과 더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에서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을 삼장이라고 이름합니다.


또 이 삼장에는 다른 법장의 배움[藏學]이 없습니다.

무엇을 삼장학(三藏學)이라고 하겠습니까. 

성문의 배움[聲聞學]과 연각의 배움[緣覺學]과 보살의 배움[菩薩學]을 말합니다. 


성문의 배움이란 무엇입니까. 

성문의 배움은 단지 자신이 행하는 모양[相]만을 비춰 볼 뿐입니다. 

연각의 배움은 중간의 배움입니다. 

보살의 배움은 대비(大悲)를 행하는 일이므로, 

한량없는 지혜에 이르러서 대비[大哀]를 거두어 지닙니다.


그 성문은 연각의 배우는 경계를 배우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 연각은 보살의 배우는 경지를 배우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보살은 성문의 배움을 다 배우고 분명하게 다 알면서도, 

그 경지를 원하거나 좋아하지 않으며, 

또한 그 법을 닦도록 권하거나 돕지도 않습니다. 


또 연각의 배움을 다 배우고 분명하게 다 알면서도, 

그 법을 원하거나 좋아하지 않으며, 

또한 그 법[乘]을 닦도록 권장하지도 않습니다.


또 보살이 마땅히 배워야 할 법을 배워서 다 환하게 알고, 

그 법을 원하고 좋아하면서, 

그 법을 닦도록 권장합니다. 


보살이 행해야 할 법을 권하고 나서, 

성문소행의 해탈을 설명해주고 또 연각소행의 해탈을 강설하여, 

보살이 반드시 지켜야 할 해탈을 가려줍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배워야할 대상을 확실하게 아는 경지를 보살장[菩薩篋藏]이라고 합니다.

마치 유리그릇이 유리의 원료로 만든 것처럼
그릇의 일체는 자연성(自然性) 그대로 유리의 색깔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만일 보살이 보살장(菩薩藏)에 들어간다면, 

모든 법에서 마음대로 유행하고 머물지라도 일체 법을 다 불법(佛法)으로 봅니다. 


보살이 만일 보살장에 들어간다면, 

모든 법에 처소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만일 모든 부처님의 법[乘]을 깨달아 안다면, 

모든 법에 형상의 종류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 보살의 배움을 배우지 않는 사람이
모든 법에 처소가 있다고 보다가, 

만일 보살의 배움을 배운다면, 

모든 법에 처소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만일 보살의 배움을 배워서
모든 법에 머무를 곳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면, 

비록 수행하지 않을지라도, 

이 일체는 다 자연 그대로 진실한 것으로 헤아립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보살이 만일 보살장(菩薩藏)에 들어간다면, 

어느 곳을 유행하든지 있는 곳마다 일체의 온갖 법을 다 모든 부처님의 법으로 봅니다. 


만일 보살이 보살장에 들어간다면, 

모든 법에 형상의 종류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만일 모든 부처님의 법을 환하게 안다면, 

역시 모든 법의 처소를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살의 배움을 배울지라도
모든 법이 돌아간 곳을 보지 못하여 닦고 관찰하지 못한다면, 

저들은 일체 법에서 거역과 순종[逆順]의 대립을 봅니다. 


■ 일체중생은 바른 도리에 따르는 경지를 보지 못할지라도, 

보살은 다 모든 법이 바른 도리에 따르는 경지를 보므로, 

한 법도 불법(佛法)을 떠나서 보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장[菩薩篋藏]이라고 이름합니다.

 

또 여러분, 

보살장(菩薩藏)은 한없는 문자(文字)로 연설합니다. 

따라 맞추는 시기도 헤아릴 수 없고, 

세워야 할 곳도 생각이나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드리워 밝히는 광명은
통하여 미치지 않음이 없고 한계가 없으니, 

밝게 비추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중생에게 이렇게 많은 이익을 베풀면서, 

다 두루 통달한 지혜로 돌아가게 하고, 

뿌리도 없이 텅 빈 도리[無本:空]를 좋아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비록 성문[有學]으로서 보살의 배움을 배우거나
이제 막 배우려는 사람일지라도
모두 다 이 보살장[菩薩篋藏]에 들어가기만 하면, 

반드시 대승(大乘)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미 배우려고 했던 사람이 이 경지를 얻고 나면, 

아직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다 이를 수 있도록 하여 널리 들어가게 합니다.

 

난수(濡首)보살은
이와 같이 법회의 모든 보살을 위하여, 

한밤중[中夜]에 보살장 경전의 비밀요지[菩薩藏經典秘要]를 연설하고 분별하여
돌아가야 할 바른 이치로 돌아가게 하였다.

 





■ 8. 불퇴전륜품(不退轉輪品)

 

난수동진(濡首童眞)보살은 새벽녘[後夜]에 뛰어난 모든 보살을 위하여
널리 ‘물러나지 않는 법륜(法輪)의 금강경지[不退轉輪金剛句跡]’를 강설하였다.


“여러분, 

물러나지 않는 법륜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물러나지 않는 법륜이라고 이름한 까닭은, 

마치 지금 보살들이 경법(經法)을 설했을 때, 

와서 듣는 이들이 다 바른 뜻을 얻고 돌아가서
다시 되돌아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러나지 않는 법륜을 강설하여, 

믿고 좋아하도록 이끄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물러나지 않는 법륜을 닦는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여러 가지 행을 짓지 않으며, 

모든 법을 위하여 여러 가지 행을 닦지도 않고, 

모든 국토에서 여러 가지 행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모든 부처님을 위하여 여러 가지 행을 일으키지도 않고, 

모든 불법[諸乘]을 위하여 여러 가지 행을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일체에 다 들어가서 널리 보면서 법륜을 굴리어
법계(法界)를 무너뜨리지 않으므로, 

이를 법륜의 구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물러나지 않는 법륜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그 구르는 바퀴는 끊임이 없습니다. 


그 바퀴가 닦아 나가는 이치에는 두 바퀴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그 바퀴는 중생을 가엾게 여기는 바퀴입니다. 

그 바퀴가 향하는 곳은 자연 그대로 진실한 이치이며, 

자신이 가야 할 곳이므로, 

그 바퀴는 법계의 도량[法界場]으로 향하여 가는 바퀴입니다.

 

여러분, 

만일 보살이 이 물러나지 않는 법륜을 믿고 좋아한다면, 

바로 자신의 괴로움을 해탈합니다. 


그러면 일체 믿어야 할 일과 일체 생각해야 할 일도 믿고 기뻐하면서
여래께서 일으킨 일도 다 믿게 되니, 

믿음으로 해탈을 얻는 것입니다.


여래에게는 두 해탈이 없으며, 

두 해탈을 설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일 여래의 상호(相好)처럼
모든 법의 모양과 일체 법의 생각을 벗어나서 여래의 해탈을 믿는다면, 

바로 생각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생각을 떠나서 해탈했다는 생각마저 벗어난다면, 

자연의 진실한 경지에 이르러서 자신을 제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수행보다 더 훌륭한 수행이 있을 수 없으며, 

이 지혜보다 더 뛰어난 지혜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러나지 않는 법륜이라고 이름합니다.

 

또 여러분, 


■ 물러나지 않는 법륜이 색(色)에서 물러나지 않음은, 

색(色)이 자연 그대로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수(受: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식(識)이 물러나지 않음은, 

식이 자연 그대로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일체의 온갖 법에서 물러나지 않음은, 

마치 뿌리도 없이 텅 빈 도리[無本]와 같이 법을 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러나지 않는 법륜이라고 이름합니다.



그 법륜이란 한계가 없고, 

사방(四方)이나 사우(四隅)도 없으며, 

단절되는 일도 없습니다. 

영원한 바퀴[無常輪]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법륜은 문이 없습니다. 

둘이 없기 때문에 법륜의 문입니다. 


그 법륜은 굴릴 수 없습니다. 

굴릴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법륜은 설할 곳이 없습니다. 

법륜은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법륜은 명칭이 없으니 뚜렷하게 밝힐 수 없습니다. 

법륜은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또 다시 이 물러나지 않는 법륜을 헤아려 생각해보면, 

공(空)에 들어갑니다. 

유행하는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담박한 문[澹泊門]입니다. 

오는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널리 갈 곳이 있습니다. 

공상(空相)이기 때문입니다. 

일체를 평등하게 이끌어들입니다. 

본래 청정하여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러나지 않은 법륜이라고 이름합니다.

 

또 여러분, 

물러나지 않는 법륜에는 유행할 데가 있고 이르는 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러나지 않는 법륜이라고 이름합니다.

또 베풀고 버리는 데가 있고 빠르게 도달하는 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러나지 않는 법륜이라고 이름합니다.”

 

■ 이와 같이 난수보살은 모든 보살에게 말했다.

“또 여러분, 

금강의 경지[金剛句跡]라고 이름한 까닭은, 

일체의 온갖 법이 모두 다 고요히 사라진 경지[滅寂]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일체 법이 고요히 사라진 경지라고 하겠습니까.

여러분, 

이미 공(空)을 환하게 안 자리가 금강의 경지이니, 

예순두 가지의 삿된 의심을 소멸시켰기 때문입니다. 


온갖 모양에서 벗어난 법이 금강의 경지이니, 

일체의 온갖 생각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소원이 없는 법이 금강의 경지이니, 

다 일체 5취(趣)의 유위(有爲)를 해탈하여 고요히 사라지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법계(法界)가 금강의 경지이니, 

여러 가지 온갖 경계를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도 없이 텅 빈 도리가 금강의 경지이니, 

나의 존재가 없는 적멸법[無我寂滅]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색(色)의 욕망에서 벗어난 법이 금강의 경지이니, 

온갖 소유의 탐욕을 없앴기 때문입니다. 

연기(緣起)를 닦는 법이 금강이 경지이니, 

본성(本性)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위(無爲)를 관찰하는 법이 금강의 경지이니, 

모든 법을 자연 그대로 진실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난수동진(濡首童眞)보살이 모든 보살을 위하여
초저녁으로부터 새벽[三夜:初夜, 中夜, 後夜]이 될 때까지 널리 법을 분별하였다. 

그러자 보살들은 다 친근광명화삼매(親近光明華三昧)를 얻었다.


이 정(定)에 든 보살들은 낱낱 털구멍에서 백천의 광명을 놓았다. 

낱낱 광명에서는 변화하여 백천 제불(諸佛)의 위의(威儀)와 용모가 나타났다. 

하늘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하신 이 모든 부처님께서는 그 불국토(佛國土)에 계시면서, 

현재 불사(佛事)를 일으켜 중생을 깨우쳐 인도하셨다. 

중생의 온갖 무리는 부처님을 영접하여 법의 가르침을 받들어 들었다.

 



■ 9. 변동품(變動品)

 

이때 아사세왕(阿闍世王)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난수보살의 처소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며 말했다.

“공양음식을 이미 마련하여 갖춰 놓았으니, 

이제 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 현자(賢者) 대가섭(大迦葉)이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 법복(法服)과 발우를 갖추고, 

5백 비구와 함께 사위대성(舍衛大城)에 들어가서 걸식[分衛]하려고 하였다.


중도에서 대가섭은 생각하였다.

“걸식하러 나온 시간이 너무 이르니, 

차라리 난수보살을 만나 보는 것이 좋겠구나.”


이렇게 생각되자 곧장 난수보살의 처소로 가서, 

난수보살과 함께 속을 털어놓아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난수보살은 흔들림이 없는 요법[堅要]을 연설하였다.

 

난수보살이 말했다.

“대가섭이여, 

이른 아침부터 무슨 할말이 있습니까?”

 

대가섭이 답했다.

“걸식하려다가 일부러 설법을 듣기 위해 왔습니다.”

 

난수보살이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나를 위해 베푸는 음식 공양에 권속들과 함께 가도록 합시다. 

제가 마땅히 여러분들을 위하여 공양을 마련하겠습니다.”

 

대가섭이 답했다.

“공양은 이미 수에 맞춰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저는 법 때문에 여기 왔을 뿐, 

공양을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난수보살이 또 말했다.

“가섭이여, 

부디 청을 받아들여
대법공양(大法供養)과 음식공양의 두 일을 다 받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법도 놓치지 않고 음식도 잃지 않게 됩니다.”

 

대가섭이 답했다.

“비천한 저희들은 법을 듣기 위하여 여기에 왔습니다. 

그러니 음식은 굶고 먹지 않아도 됩니다. 

이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뜻이 법에 있을 뿐입니다. 

왜냐 하면 다른 사람에게서 들을 수 없는 이러한 법문(法門)은
당신이 설하는 바른 이치에서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가섭은 또 물었다.

“지금 난수보살과 모든 보살께서는 어떤 음식을 드실 생각입니까?”

 

■ 난수보살이 답했다.

“우리들이 먹는 음식과 베푸는 것은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며, 

생사에 흔들리지도 않고, 

열반에 가깝지도 않습니다. 


또한 범부의 경지를 뛰어넘지도 않고, 

현성(賢聖)의 법을 증명하지도 않으며, 

성문(聲聞)을 벗어나지도 않고, 

연각을 버리지도 않습니다.


■ 우리들은 잠시 뒤[當]에
아사세왕[彼]의 청한 법을 설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그 보시(布施)는 지혜와 지식을 씻어내지 않으며, 

줄어들지도 않고 불어나지도 않으며, 

해탈에 이르지도 않습니다. 

모든 경법(經法)을 일으키는 일도 없고, 

법을 얻지도 않으며 법을 놓지도 않습니다.”

 

대가섭이 답했다.

“이야말로 큰 보시(布施)로서 더없이 넓게 베푸는 일이니, 

이미 뿌리도 없이 텅 빈자리에 들어간 경지입니다.”

 


이때 난수보살은 홀로 생각하였다.

“오늘 성(城)에 들어가서 차라리 부처님과 같은 감동의 변화(變化)를 보이는 편이 나으리라.”


바로 그때 난수보살은 온갖 신통[神足]의 변동삼매(變動三昧)로 선정(禪定)에 들었다. 

이 삼매(三昧)로 선정에 들자, 

곧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의 모든 것은
두루 다 평등하게 머물러 손바닥처럼 평평해지면서, 

크고 넓은 광명은 이 넓은 부처님의 국토를 두루 비추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광명으로 고통 받는 지옥중생은 바로 고통에서 벗어나 휴식을 얻었으며, 

축생(畜生)과 아귀(餓鬼)와 온갖 불안한 중생은 이내 근심이 없어지고 편안해졌다. 


또 이 광명으로
온갖 중생의 무리는 다 마음이 활짝 열리면서
탐[婬]ㆍ진[怒]ㆍ치(癡)가 없어지고, 

아끼는 욕심과 시기와 질투도 없어지고, 

사악한 아첨도 없어지고, 

분노와 교만한 번뇌도 사라져 일어나지 않고, 

심한 고뇌도 없어졌다.


그러자 중생들은 번갈아 서로 상대를 보면서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존경하였다. 

중생들은 또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 진동을 반복하는 가운데, 

욕계천자[欲行天子]들과 색계천자[色行天子]들이 다 모여들어
박수(薄首: 濡首 또는 文殊 등)보살을 받들어 공양하는 모습과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백천의 악사(樂師)들과 하늘 꽃이 비 오듯 내려
도로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모습을 보았다.

 


난수동진(濡首童眞)보살은 이 선정을 일으킨 채, 

그 방으로부터 나와서 성문(城門)에 이르자, 

저절로 장엄된 도로는 평평하게 정리되어 길고 넓었으며, 

헤아릴 수 없는 7보(寶)의 구슬들이 어울려 여러 가지로 장식되어 있었다. 


또 여기에 헤아릴 수 없는 보배들이 저절로 나타나서 보배의 연못[寶塹]으로 변하더니, 

그 가운데 부용(芙蓉:연꽃)이 생겨나서 무성한 줄기와 만발한 꽃들이 찬란하게 빛났다. 

또 연못 위에는 변화하여 구슬 교로장(交露帳)이 생기고, 

당기(幢旗)와 번기(幡旗)와 비단 꽃 일산들이 세워졌다. 

연못 주위에는 두루 난간이 둘러져 있고, 

난간의 좌우(左右)에는 다 매우 높고 큰 보배나무들이 늘어서 있으며, 

보배나무들은 보배 끈에 매여 연달아 이어져 있었다. 

또 낱낱 보배나무의 주변에는 보배 시렁이 있고, 

그 시렁마다 놓인 향로(香爐)에서는 온갖 이름난 향이 타고 있으며, 

낱낱 향로마다 타는 향냄새는 40리까지 퍼졌다. 

또 모든 보배나무의 사이마다 변화하여 보배의 목욕 못[寶浴池]이 생겼는데, 

못 가운데는 여덟 가지 맛을 내는 물이 가득 차 있고, 

못의 밑바닥에는 다 황금모래가 깔려 있으며, 

못의 주위는 보배의 난간이 둘러져 있고, 

온통 유리로 된 못 둘레의 벽은 벼랑을 이루었다. 

또 그 못에는 푸른 부용(芙蓉)이 생겨서 줄기를 뻗어 꽃이 피었고, 

온갖 보배나무의 아래는 보배로 땅을 이뤘으며, 

일체 보배의 땅에 늘어선 보배의 향로 병에서는 귀하고 이름난 향[名香]이 타고 있었고, 

또 낱낱 보배나무에는 5백 미녀가 엄숙하게 줄을 서서 각각 보시의 공덕을 세우고 있었다.

 

난수보살은 이 정(定)으로 삼매정수(三昧正受)에 들어서, 

즉시 저 다른 학파와 외도들을 위하여 변화를 시현(示現)하니, 

한량없이 드높은 위력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난수동진(濡首童眞)이 자리에서 일어나, 

법복과 발우를 갖추고 나가려 하다가, 

가섭에게 말했다.

“대가섭(大迦葉)께서는 제 앞에 가시지요. 

나는 이제 곧 뒤를 따라가겠습니다. 

왜냐 하면 연세가 많으신 대가섭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본래 범행(梵行)을 닦아 사문(沙門)이 되었으며, 

부처님을 뵙기 전부터 출가하여 배워왔습니다. 

세상의 여러 나한(羅漢)들을 생각해 보면, 

다 당신 뒤에 법을 깨쳤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제 앞에 가셔야 하고 저는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 대가섭이 답했다.

“율법(律法)을 보면 나이 많은 사람을 어른[尊長]으로 받들지 않습니다. 

율법에는 ‘지혜 있는 이를 존경해야 하고, 

신비한 지혜로 거룩하게 통달한 이를 존경해야 하며, 

지식이 많고 변재(辯才)가 뛰어난 이를 존경해야 하고, 

모든 감각기능이 밝게 사무친 이를 존경해야 한다’고 실려 있습니다. 


율법의 기록에 이런 분들을 어른으로 받들도록 하였으니, 

이를 근거로 생각해 보면, 

난수동진께서는 지혜가 매우 높고, 

많은 지식을 두루 통달하였으며, 

변재(辯才)가 걸림이 없고, 

일체중생의 근본을 다 환하게 아십니다. 


그러므로 뜻이 넓고 깊은 최고의 어른이라면, 

당신을 능가할 사람이 없으니, 

마땅히 제 앞에 가야 하고, 

나는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이제 잠깐 이 이치를 가리기 위해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가섭은 이어 또 말했다.

“비유하면 사자 새끼와 같습니다. 

태어남이 오래지 않아서 비록 어리고 작고 또 기력도 갖추지 못했으나
그 사자 새끼가 걸어다니면, 

들사슴 등 온갖 짐승들은 그 기(氣)에서 흐르는 사나운 냄새를 맡고 모두 다 급히 달아나 버립니다.


또 여섯 개의 어금니로 60년을 살아온 큰 코끼리에 이 사자 새끼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이 몸집이 큰 코끼리가 비록 세 겹의 가죽끈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을지라도, 

사자 새끼의 위엄스럽고 사나운 기운을 맡으면,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펄펄 뛰며 세 겹의 끈을 끊고 온 힘을 다해 허겁지겁 달아나서, 

산 계곡의 시냇물이나 바위굴 속으로 들어가든지, 

혹은 스스로 큰 물 속으로 뛰어들어 빠져버립니다. 

따라서 나무의 새들은 둥지에 몸을 움츠려 떨고, 

기어다니는 짐승들은 몸을 숨겨버리고, 

물고기와 자라들은 재빨리 달아나서 물 속에 잠겨버리고, 

허공의 온갖 새들은 더 높이 날아가 버립니다.


발심[發意]한 보살도 이와 같습니다. 

비록 발심한 보살이 아직 지혜와 도력(道力)을 성취하지 못했을지라도, 

마음은 오히려 자랑스럽게 우러러
사자의 걸음을 익히면서 성문과 연각의 길을 뛰어넘으면, 

자재궁전(自在宮殿)의 일체 마군(魔軍)은 두려움을 품고
스스로 편안하게 지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사자새끼가 다른 큰 사자들의 위엄찬 기력과 사나운 자세를 보거나, 

또 그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겁내지도 않고 떨지도 않으며, 

무섭다는 생각도 없고, 

두려워하거나 어렵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서 벌떡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 몸의 털은 기쁨의 윤기로 가득 찹니다. 

이렇게 사자새끼들은 그 세력을 타고 자라서, 

장차 큰 사자들과 똑같이 울부짖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난수보살은 부처님의 사자후(獅子吼)를 들을지라도, 

겁내지도 않고 떨지도 않으며, 

무섭다는 생각도 없고, 

두려워하거나 곤란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뛸 듯이 기뻐하면서 편안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저도 또한 앞으로 닦아서 지금 부처님의 사자후(獅子吼)와 같이 되려고 합니다.

만일 누가 평등하고 바른 진리를 성문과 연각에게 설한다면, 

여래께서는 이를 어른[尊長]으로 여기시고, 

발심한 보살들은 이를 본보기로 삼을 것입니다. 

이 말은 지극히 진실하고 평등하여 거짓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를 근거로 일체의 온갖 법이 출생하여 뚜렷하게 널리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난수보살은 법의 어른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비록 나이는 적을지라도 성스러운 법의 어른이니, 

마땅히 앞에 가야하고 저는 그 뒤를 따라야 합니다.”

 


■ 그러자 난수동진보살은 바로 앞장섰고, 

보살들이 그 뒤를 따랐으며 성문(聲聞)들은 또 그 다음 차례를 이어 따라갔다.



난수보살이 장엄한 보배 길을 향하여 나가자, 

하늘 꽃은 비오듯 흩어져 내렸고,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음악은 악기들을 타지 않아도 저절로 소리를 내었으며, 

그 땅은 즉시 여섯 가지로 진동을 반복하였고, 

그 광명은 사무쳐 비추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때 난수보살이 위신력(威神力)의 변화로 감동을 나타내어 큰 광명을 놓으니, 

꽃은 비오듯 내리면서 향기를 풍겼으며, 

온갖 음악 소리는 조화롭게 울려 퍼졌다. 

이러한 가운데 난수보살은 왕사성(王舍城)으로 들어갔다.

아사세왕(阿闍世王)은 난수보살께서 2만 3천 보살들과 모든 성문과 그 권속에게 둘러싸여 온다는 말을 들었다.



왕은 곧 두려움을 품었다.

‘나는 지금 5백 분의 공양만 차렸을 뿐인데, 

오는 이들이 이렇게 놀랍도록 많으니, 

어찌 두루 다 받아들일 수 있으랴. 

앉을 자리는 어떻게 감당하며, 

공양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이어 또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난수보살이 과연 잘못 알고 이런 마음을 낸 것일까?’

 

난수보살은 즉시 위신력(威神力)의 거룩한 공덕(功德)으로 식의천왕(息意天王)을 변화시켰다. 


식의천왕은 스스로 금비귀신(金仳鬼神)의 미묘한 몸으로 변화하여
아사세왕에게 말했다.

“이제 되었으니, 대왕께서는 걱정하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난수동진보살께서는 훌륭한 방편[善權方便]의 끝없는 지혜로
신령한 위력과 혁혁한 큰 공덕을 나타내고, 

신비한 힘과 크나큰 복을 널리 드날리면서 당당한 자세로 길을 따라 올라 오고 계십니다.


또 한 사람 분의 음식만으로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의 중생을 두루 다 충분하게 공양할 수 있으니, 

더욱이 어찌 지금 오시는 이 2만 3천의 권속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수고롭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또 대왕은 안심하십시오. 

더 이상 공양을 준비하지 않아도 오시는 분들은 모두 풍족하게 공양하게 됩니다. 

왜냐 하면 난수보살의 큰 공양에는
한량없는 공양을 구해 주실 부처님들[衆祐]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사세왕은 이 말을 듣자
스스로 뛸 듯이 기쁜 마음을 이길 수 없었고, 

난수보살을 더욱 더 부처님과 다름없이 훌륭하게 여겼다.

 

아사세왕은 모든 신하와 중궁(中宮)의 관리들과 함께, 

공양할 꽃과 잡향(雜香)ㆍ도향(搗香)ㆍ택향(澤香)ㆍ의복ㆍ당기(幢旗)ㆍ번기(幡旗)ㆍ비단ㆍ일산 등 선물을 갖춰들고, 

거문고ㆍ비파ㆍ공후(箜篌) 등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난수보살을 공손히 맞아들여, 

모두들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나서, 

난수보살을 모시고 성(城)에 들어 왕궁(王宮)으로 돌아왔다.


난수보살이 모든 권속과 함께 막 성에 들어서자, 

성안의 백성들은 각기 가지고 온 선물을 공양하였다.

 

이때 이 모임에는 보관(普觀)이란 보살이 있었다. 

난수보살은 보관보살에게 말했다.

“선남자여, 

당신은 이 궁전 안에 대중을 다 수용할 만한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보관보살은 분부를 받들고 곧 좌우(左右)를 살피면서 아사세(阿闍世)의 궁전을 두루 보았다. 

그러자 궁전은 저절로 크고 부드러워지면서 비단과 꽃과 일산이 달리고, 

당기(幢旗)와 번기(幡旗)가 우뚝 세워졌다. 

그 땅도 저절로 평평하게 넓어지면서 온갖 꽃과 향이 흩어져 향기를 풍겼다.

 

또 난수보살은 법초(法超)라는 보살에게 말했다.

“선남자여, 

당신은 여러 좌석을 마련하여 장엄하십시오.”

법초(法超)보살은 교시를 받들고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튀기자, 

궁전의 관사(館舍)에 2만 3천의 좌석이 저절로 갖춰지더니, 

여러 가지 장식으로 미묘하게 장엄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방석들이 그 위에 깔려졌다.

난수동진보살과 모든 보살은 다 좌석으로 가서 앉았고, 

성문들도 뒤를 이어 앉았다.

 

아사세왕은 난수보살과 모든 보살과 성문들이 다 자리에 앉자, 

난수보살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공양거리를 더 마련하겠습니다.”

 

난수보살이 답했다.

“대왕은 안심하십시오. 

수고롭게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곧 저절로 충분히 다 갖춰집니다.”

 

바로 그때 사천왕(四天王)과 그 권속들이 함께 와서 연수동진보살을 받들어 모셨고, 


또 제석천(帝釋天)의 선량한 부인들과 그 외 헤아릴 수 없는 수천의 미녀[玉女]들은
천상에서 가지고 온 전단향(栴檀香)과 잡향(雜香)과 꿀 향[蜜香]과 가루 향[搗香]을 뿌려서
일체 보살과 모든 성문에게 공양하였다.



이때 모든 보살은 온갖 꽃과 향과 미녀들을 보면서도, 

미녀라는 생각도 없었고, 

꽃과 향이라는 생각도 없었다.



범인적천(梵忍跡天)은 바라문 청년[梵志摩納]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불자(拂子: 총채)와 부채를 들고, 

난수보살의 왼쪽을 모시고 서서 부채질하였으며, 

범천자(梵天子)들도 모두 각기 불자와 부채를 잡고, 

모든 보살을 모시고 서서 부채질하였다.



여기에 무열용왕(無熱龍王)은 그 몸을 나타내지 않고 허공에서 꿴 진주[貫眞珠]를 드리웠다. 

그 꿴 진주에는 알맞게 흘러나와 공급되는 시원하고 감미로운 여덟 가지 맛난 물[八味水]이 들어 있었다. 

그 보살들과 일체 성문의 앞에는 각각 꿴 진주가 드리워져 있으므로, 

거기서 나와 공급되는 감미로운 물을 알맞게 마실 수 있었다.

 

아사세왕은 혼자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보살들은 공양할 발우가 없으니, 

무엇으로 공양을 드시려는가?’


난수보살은 왕의 생각을 알고 말했다.

“이 보살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발우를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가고 싶은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마음대로 다니다가, 

앉아서 공양하려고 하면, 

발우는 저절로 나옵니다. 

이 모든 보살 본래 세운 서원이자, 

또 그들의 여래께서 옛날에 세우신 서원(誓願)이므로, 

발우는 허공으로부터 내려와서 그들의 손에 놓이게 됩니다.”

 

아사세왕이 난수보살에게 물었다.

“이 모든 보살은 어느 부처님의 국토에서 왔으며, 

그 국토의 이름은 무엇이며, 

바르게 깨치신 여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난수보살이 답했다.

“세계의 이름은 상명문(常名聞)이며, 

여래의 이름은 이문수(離聞首)로서 지금 현재 설법하고 계십니다. 

이 모든 보살은 그 세계로부터 와서 왕의 공양에 참석하였습니다. 

여기에 온 뜻은 왕의 의심을 듣고 나서 속에 품은 허망한 생각을 덜어주려는 것입니다.”

 

이때 모든 보살의 뜻으로 본래 세웠고, 

그 여래께서 본래 서원(誓願)한 발우가, 

허공 가운데서 저절로 날아오더니, 

무열(無熱)의 여덟 가지 맛난 못에 떨어져서 깨끗하게 씻겨졌다. 

모든 선남자와 2만 3천의 용왕과 채녀(采女)들은 각기 공양할 발우와 향(香)을 가지고 와서, 

모든 보살의 손안에 넣어 드렸다.

 

이때 왕은 이 모습을 보고 더욱 뛸 듯이 기뻐하면서, 

난수동진(濡首童眞)보살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렸다.

난수동진보살이 왕에게 말했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공양을 베푸십시오.”

왕은 분부를 받고 곧바로 여러 가지 진귀하고 미묘한 음식을 베풀었다. 

준비한 공양을 다 두루 충분하게 올렸으나, 

준비한 음식은 없어지지 않았다. 

아사세왕이 본래 5백 사람 분에 맞춰 준비한 음식을, 

2만 3천 대중이 다 만족하게 공양하였으나, 

음식은 이전대로 줄지 않았던 것이다.

 

아사세왕은 난수보살에게 아뢰었다.

“지금도 음식이 이전대로 줄지 않았습니다.”

 

난수보살이 답했다.

“그와 같이 당신의 의심도 아직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의심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음식을 다 공양해도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때 보살들은 공양이 끝나자, 

각기 그 발우를 공중에 던졌다. 

발우들은 의지할 데가 없었으나 공중에 뜬 채 떨어지지 않았다.

 

아사세왕이 난수보살에게 물었다.

“지금 이 발우들은 무엇을 의지하여 공중에 떠 있습니까?”

 

난수보살이 답했다.

“대왕이 의심을 둔 곳과 마찬가지로 이 발우들도 공중에 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답했다.

“발우들은 멈춰 선 곳이 없습니다.”

 

난수보살이 답했다.

“대왕이 품고 있는 의심도 멈춰 선 곳이 없는 것처럼, 

이제 이 발우들도 의지할 곳이 없으면서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법도 이와 같이 다 있지도 않고 머무는 일도 없으니, 

모든 법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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