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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ॐ मणि पद्मे हूँ
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12-02_정법화경_003 본문
『정법화경』
K0117
T0263
제3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정법화경_K0117_T0263 핵심요약
♣0117-003♧
『정법화경』
제3권
mus0fl--Nino Ferrer - Je Veux Etre Noir.lrc
법화경은 묘법연화경 첨품묘법연화경, 정법화경이 있다.
그래서 결국 내용은 엇비슷하다.
관련 경전을 하나 놓고
9 개의 핫키를 통해 관련 페이지를 열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나
현실적으로 늘 들르는 페이지와 사이트만 들르기 쉽다.
그런데 각 사이트마다 업데이트를 꾸준히 행하기 때문에
관련 전문 연구원이라고 해도
각 사이트의 매 순간 변하는 상황을 일일히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인터넷상에서 한문본이 필요한데 마땅히 참조할 곳이 마땅하지 않으면
cbeta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이번 조각글에서 살피는 정법화경의 한문본을 참조하려면
다음 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http://cbetaonline.dila.edu.tw/zh/T0263_003
cbeta 본에서는 과거 영인본을 참조해야 했던 주석부분도 인터넷 상에 제공하고 있다.
번역본마다 조금씩 달리 표현되는 것은 이해해야 한다.
영어로 blue 를 한국어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이런 문제가 번역문제다.
가장 쉽게 생각하면 'blue' 는 '푸르다'로 이렇게 번역하면 된다.
이렇게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언어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blue 에 해당하는 한국어는 없다.
이렇게 파악해야 한다.
사정은 그렇지만, blue 로 나타내는 의미에 비슷한 단어로
경우에 따라서는 푸르다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이 사정은 오늘날 어느 사전을 참조해도 쉽게 알 수 있다.
수학적으로 이 사정을 이해해보자.
blue 란 영어단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보통 그 단어로 표현하는 의미가 a ,b, c, ,d, e 가 있다고 하자.
그래서 사전에서 그 가운데 비교적 대부분 그런 의미로 사용한다고 보는 의미를 추려서
a ,b, c, 정도를 나열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에 a ,b, c, 란 의미를 그런 정도로 함께 표현해주는 단어를
일단 찾아내기 곤란하다는 의미다.
그러면 '푸르다'는 무엇인가
그 표현이 나타내는 의미를 위와 같이 기호로 표현하면
푸르다란 표현은 a, f, g, h 이런 의미를 나타내는 한국어 표현인 것이다.
그런데 영어의 blue 와 한국어의 푸르다란 표현은
이렇게 보면 a 란 의미를 같이 나타내서 엇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blue 를 이 경우는 푸르다로 번역해주면 적절할 것 같다.
이런 의미다.
그런데 대강 위와 같이 그 사정을 제시했지만,
그러나 어떤 단어 blue 란 단어가 오늘날 a ,b, c, ,d, e 란 의미를 나타낸다면,
그러나 그 말이 곧 blue 란 단어는
시대적으로 공간적으로 그리고 개별 주체의 심중에서, 그리고 전후 맥락상
언제나 a ,b, c, ,d, e 를 나타낸다. 그렇게 고정되어 있다.
이런 의미는 또 아니다.
위에서 blue 란 단어가 오늘날 a ,b, c, ,d, e 를 나타낸다는 것은
대충 대강 그렇다 이런 의미다.
그래서 blue 란 단어를 대강 푸르다로 번역하면
대부분 별 문제가 없다고 보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곤란한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보게 되는 것이다.
I feel blue
이 표현을 놓고
나는 푸름을 감각한다.
푸릇푸릇함을 느낀다.
나는 마음이 파란 희망에 차서 부풀어 있다.
이런 의미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이것은 무슨 의미로 주로 쓰이겠는가.
일종의 암호다.
b 는 여기서 beautiful 을 의미한다.
l 은 lonely 를 나타낸다.
u 는 you 를 나타낸다.
e 는 exist 를 나타낸다.
그래서 결국 아름답고 외로아 보이는 당신이 여기에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런 의미다.
무슨 엉터리 해설인가 하겠는데
그래서 그가 여하튼 울쩍하다 이런 상태의 심경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푸르다로 번역해버리면
나중에 그렇게 말한 이도 자신이 그런 뜻으로 말했던가를
잘 알아내지 못한다.
지금 살피는 신락품(信樂品)은
구마라집 법사님의 묘법연화경에서는 신해품으로 나오는 부분으로 보인다.
정확히 판본대조까지 하지 않아도 아마 그러리라 본다.
연구분야에 따라서는 문헌학자의 입장에서
경전을 대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한문본만으로 연구가 부족하기에
결국 범어본 팔리본 티벳본 이런 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문헌역사까지 연구하면 좀 더 문제를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진다.
이는 한국말이 중국말과 사맛디 아니할 새 어린 백성이
뜻을 통하지 못해서 안습 상태이기에 왕짜증이므로 ..
이렇게 표현한 말을 한국사람이 들을 때도
무슨 의미인가 갸우뚱하는 현상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1400 년대 한국어와 1960 년대 한국어와 2010 년대 한국어 사이에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다.
외국어를 보면 수많은 관용구 숙어 이런 것도 있는데
이것도 단어처럼 같은 현상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래서 구글번역기에만 의존하면
따로 코미디언 활동을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경전 판본에 붙이는 제목만 놓고 보아도
앞에 제시한 번역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유명한 경전에 해심밀경이란 경전이 있는데
판본은 이름이 다 다르다. 해심밀경, 심밀해탈경, 상속해탈경, 해절경
이런 식이다.
그런데 그렇게 권위있는 번역자들이 경전명 자체를 서로 달리 제시한 사정은
앞과 같은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범어로 표현할 때 단어는 하나였다고 해도
Saṃdhinirmocana-sūtra 란 범어를
중국어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이 단어가 갖는 여러 의미 가운데
위와 같은 여러 형태의 한문자로 나타낼 가능성을 다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번역결과를 놓고 또 대조해본다면,
그 느낌이 또 조금씩 다른 것이다.
여하튼 원래 하나의 경전인 것 같은데
번역과정에서 각 품의 순서도 조금씩 바뀌고 내용도
늘고 줄고 하는 현상이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영어 소설을 하나 5 인에게 번역을 맡기고
결과를 비교해도 비슷한 사정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영어 소설은 찾아보기 힘든 상태에서
번역본만 가지고 원문을 다시 원 영어 상태로 복구해본다거나
또 다른 외국어로 번역하면 또 이런 사정으로 이상해진다.
그래서 본래 언어에는 그런 문제가 어느 정도 있다라는 것을
미리 전제하고 경전을 대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다행히 불교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그렇게 해서 발생하기 쉬운 망집현상을
제거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이므로
또 이 부분에 대한 문제를 너무 지나치게 대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이전 조각글 금강반야바라밀경론에서도 나오는
'뗏목'의 비유가 나타내는 의미다.
뗏목은 강을 건너가게 하는 하나의 방편이고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이 뗏목이 도저히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할 정도로
문제가 많으면 문제라고 보기는 하지만,
그러나 또 강을 건너게 하는데 큰 지장이 없으면
이 뗏목 하나를 놓고 정확히 어떤 뗏목이
강을 건너도록 처음 제시한 그 뗏목의 원형인가 등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
왜냐하면 수보리야,
마땅히 법을 취해서도 안 되고
법 아닌 것을 취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뗏목에 비유하는 법문을 말씀하셨느니라.
옳은 법도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법이 아닌 것을 버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
♣0558-001♧ 금강반야바라밀경론, 001,
mus0fl--Charles Trenet - Le Soleil Et La Lune.lrc
♣0117-003♧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얻게 되어서 불전(佛典)의 국토에 이르게 되었으니
>>>
이미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얻게 되어서 불전(佛典)의 국토에 이르게 되었으니,
일체법에서 아무런 조작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보살들은 오락을 즐기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그들을 권유하고 발해서 교화로 이끌었으나,
저희는 삼계를 벗어나려고 하면서
항상 스스로 멸도를 얻었다고 헤아렸습니다.
4. 신락품(信樂品)
>>>
앞에서 불교신자는
대부분 구마라집 법사님의 묘법연화경을 대하게 된다고 보는데
이 묘법연화경을 조금 다른 판본으로 살피는 가운데
각기 다른 번역판본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점을 놓고
당혹감을 느끼기 쉬운 현상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살폈다.
이것은 다음 심리와 관련된다.
내가 살피고 있는 이 경전이 과연 부처님이 정말 설하신 그 내용일까.
만일 아니라면 나는 지금 어떤 엉뚱한 내용을 붙들고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믿어도 될까.
이런 심리와 관련이 깊다.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갖는 입장에게는
다음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당신이 이해하는 부처님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문제는
지금 당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무엇이고
늘 자신이 대한다고 여기는 영희나 철수
또는 자신이 늘 대한다고 여기는 자신의 남편, 부인, 자식의
본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문제와도 관련된다.
그것은 예를 들어 100 m 앞에서 영희가 자신을 향해서
한 30 초간에 걸쳐서 달려온다고 할 때
자신의 눈으로 계속해서 영희를 바라보는 매 순간 대하는
수많은 형태의 영희 가운데 진짜 영희는 어떤 것일까 .
이런 문제와도 관련된다.
이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위 문제도 함께 해결할 도리가 없다.
잘 생각해보자.
100 m 앞에 서 있는 영희를 자신이 바라볼 때는
비록 영희라고 자신이 여기지만,
그것은 사실은 콩알보다도 작은 크기다.
그런데 그 영희가 자신의 앞에 서면
킹콩처럼 크게 느껴진다.
이 부분을 읽고 prince 님이 킹콩보다는 퀸콩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가 하는데 지금 크키를 말하는 것이니,
적절히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달려 올 때 그 동작을 놓고 보면 또 매순간 다르다.
외관상 볼 때도 그렇지만, 그 내심도 다르다.
100 m 앞에 있을때는 영희는
돈을 갚지 않고 도망간 자신을 보고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영희였는데
자신의 앞에 서 있을 때는 또 다르다.
좋게 달라져야 하는데 그 반대일 경우도 있기에 뭐라고 말할 수 없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신 부분도 같다고 하기 힘들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과거에 기호로
α,β,γ,δ,ε,ζ,η
이런 형태로 제시했다.
자신이 늘 영희는 어떤 존재라고 여기는 것은 자유인데
위 내용 가운데 어떤 것이 과연 진짜 영희고
수많은 영희의 대표인가. 이런 문제만 제출되어도
해결이 곤란하다.
부처님은
이 사정을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제시한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그런데 본인이 경전의 4 구게송을 외우면
복덕이 무량하다는 내용을 보고
이 경전 게송을 외우다가 봉변을 당할 뻔 했다.
가까운 분이 옆에서 부처님을 보여주라라고
한문 문자로 짧게 말해서
본인이 위와 같이 답했다가
봉변을 당할 뻔 했던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인가.
부처님이 있다면 부처님을 보이라.
이렇게 요구해서
부처님을 색으로나 음성으로 찾고 다닌다면
이는 시인이나 사또처럼 행하는 것과 같다.
능력없는 이만 여래를 그렇게 본다.
이런 식으로 설명해주었다가
봉변을 당할 뻔 했다는 의미다.
이것이 한글로 글자를 적고 읽어서 생기는
한국어의 문제인가 놓고 보면
중국어나 한자도 사정이 같다.
한문사전을 놓고 펼쳐도
단어 하나하나마다 뜻이 여러가지가 제시되는데
자신이 경전을 하나 대할 때
매 단어마다 이 가운데 어떤 뜻을 취해 이해해야 마땅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만 제시하고 끝나면
결국 어떤 경전이 진짜 부처님이 가르쳐준 가르침을 담은
진짜 역사적 석가모니 부처님이 남긴 가르침인가의 문제는
끝내 알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
이렇게 이해하기 쉬운데 그렇지는 않다.
여하튼 그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면
하나하나 자신이 갖고 있는 망집의 사정부터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고 지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보면 경전 내용을 포함해서
일체 언어 표현이나 분별이
희론이다라는 사정부터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희론(戯論)이란 표현은 무엇을 나타내는 말인가.
희는 희롱한다. 논은 논의한다 이런 의미인데
한마디로 쓸데없고 무익하고 의미없는 논의의 성격을 갖는다.
이런 뜻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언어로 활동하는 일체 활동이나
관념분별을 바탕으로 행하는 일체의 현실활동이
사실은 그런 성격이다.
이것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이렇게 제시하면 평소 언어로 대단히 진지하게
무언가를 연구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던 입장에서
또 분노를 일으킬만 하다.
그런데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내용도 역시 금강경에서나 경전에서
제시되는 내용이다.
부처님이 수많은 설법을 하시면서
그 설법 자체에서
한 마디라도 설한 것이 있다고 보는가.
이렇게 제시하는 사정은
그 기본 사정이 이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면
왜 그런 수많은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그 사정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 하나의 방편이자 시설로서 그런 내용을
제시한다는 의미다.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사전이 잘 되었다거나
이 사전은 엉터리라거나를 가지고
하루 종일 시시비비를 다투고 있으면
깨안습이다. 이런 식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깨안습'이란 표현을 사용했는데
본인도 최근 이런 이상한 표현을 종종 듣지만,
정작 이 의미를 잘은 모른다.
인터넷상에서는 안구에 습기찬다는 표현을 줄여 안습이라고
암호처럼 만들어 사용한다는데
방송에서도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기에
요즘 한국어를 새로 배우느라고 본인도 힘들다.
그런데 여하튼
본인은 깨안습이란 표현을 이러한 의미로 쓴 것이다.
깨달음을 얻는데 지장이 많아서
안타깝고 이렇게 방치하면
무량겁에 걸쳐 축적한 습기를 제거하기 힘들다.
* 습기 - 업(業)을 지은 결과로써 습관이 된 버릇이나 어떤 성벽 / 또는 종자(씨) /
그래서 일단
현재 제공되는 경전은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수많은 불교 관련 연구자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각 경전을 대하고 검토하고
문제가 심하다고 보는 것은 또 배제하고
교열 검증 이런 작업을 많이 거쳐서
제공되는 형태라고 여기는 한편
사실상 문제는 경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경전을 대해도 여전히 자신의 망집을 바탕으로
각 표현이나 문장을 대하는 그 자세가 오히려 더 문제임을
이해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 사정을 지금 신락품에서
처음 사리자가 제시하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지혜 제일인 사리자 존자가
무언가 부처님의 설법 내용에 대해서
그 근본 취지를 잘못 파악했다.
이렇게 제시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이겠는가.
이것이 사실은 법화경에서 파악해야 할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그 내용이 다음에 제시되고 있다.
이미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얻게 되어서 불전(佛典)의 국토에 이르게 되었으니,
일체법에서 아무런 조작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보살들은 오락을 즐기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그들을 권유하고 발해서 교화로 이끌었으나,
저희는 삼계를 벗어나려고 하면서
항상 스스로 멸도를 얻었다고 헤아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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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7-003♧ 평등한 하나를 즐기면서 무상정진도에 대한 큰 뜻을 일으키게 하였사오니
4. 신락품(信樂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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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7-003♧ 단지 멸도만 구했을 뿐, 도량에 뜻을 두어
>>>
저희들은 보살대사를 이해하지 못해서 비록 법으로부터 태어난 여래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단지 멸도만 구했을 뿐, 도량에 뜻을 두어
보리수 아래에서 좌선하여 마군과 권속의 항복을 받고
일체 중생을 구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은 스스로 해탈을 얻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지금에야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보고 듣게 되었으니,
이는 출가한 것도 아니고 사문이 된 것도 아닙니다.
4. 신락품(信樂品)
♣0117-003♧ ‘여래는 방편으로 삼승을 설했으니,
>>>
여래는 방편으로 삼승을 설했으니, 오히려 이승도 없거늘 어찌 삼승이 있겠느냐?
이 모든 성문들은 마땅히 미래에 성불하리라
mus0fl--Buridane - La Caillasse.lrc
따로따로 구절을 놓고 살피기보다
간결하게 정법화경 신락품에서 제시되는 내용을 살피기로 하자.
지혜제일인 사리자 존자가 어떤 문제점을 지금 제시하고 있는가하면
부처님의 설법의 취지를 처음에 이러이러하게 이해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것이 아니다.
이제 본 취지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그래서 대단히 기쁘다.
대강 이런 의미다. 신락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도 이와 비슷하다.
그것이 무슨 사정인가.
여기에 키워드가 있다.
3 계의 생사에 묶인 상태
공해탈문 무상해탈문 무원해탈문
무상정진도
3승과 1승
이런 내용들이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하나 설명하려면 조금 설명이 복잡해진다.
망집에 바탕해 3 계에 묶인 상태에서는
일단은 사리자 존자와 엇비슷한 상태까지는 이르러야 한다.
그래서 이 부분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그 방안이 무엇인가.
위 부분에 제시되고 있다.
여러 수행방안이 있을 수 있는데
결국 그 핵심을 공해탈문 무상해탈문 무원해탈문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서 멸도를 목표로 한다.
이런 의미다.
그런데 알고보니 보살 수행자들은 그렇지 않고
평등한 하나를 즐기면서
무상정진도에 대한 큰 뜻을 일으키고
3계에서 오락을 즐기면서
마군과 권속의 항복을 받고
일체 중생을 구하고자 한다.
이런 의미다.
그리고 알고보니
부처님이 방편상 3 유형의 수행방안을 제시해서
이들이 차별이 있는 줄 알았는데
3 가지 유형도 아니고 2 가지 유형도 아니다.
모두를 성불시키는 것이 본 취지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정을 하나하나 살펴야 한다.
이것이 처음에 제시한 문제와 다 서로 관련이 된다.
처음 blue란 단어 하나를 놓고 이 의미가 무언가
이렇게 제시할 때 부터
이에 대해 망집에 바탕해 3 계에 묶인 상황에서 이해하는 내용이 있고
해탈문에 들어선 입장이 있고
다시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 3 계에 들어와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하고
유희 자재 신통력을 바탕으로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을 향해 나아가는 입장이 있다.
그런데 부처님의 본 취지가 알고보니 뒷 부분에 있었다.
그리고 첫 부분에 머물러서 만족하던 자신도
이제 뒷 부분까지 나아가게 되어서
대단히 기쁘고 즐겁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첫 부분부터 살펴야 한다.
사실 이들 내용은 과거에 많이 반복했다고 보는데
그래도 또 다시 살펴야 한다.
먼저 3 계가 무언가.
현실에서 아무리 보아도 세계는 하나이고
달은 둥글고 태양도 둥글고 우주는 하나인 것 같은데
이것이 무슨 엉뚱한 이야기인가.
이런 과학자도 있는데
이에 대해 설명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달이 둥글다고 고집하는 입장에 대해
달이 둥글지 않다고 하기도 곤란한데
그렇게 세계를 이해하기에
첫 부분부터 이해를 하지 못하고
헤매도는 상태가 되기 쉽다.
그런 분에게는 하나의 실험방안이 있다.
그 분의 눈을 딱 1 주일간만 눈가리개로 가리고
달의 정체를 파악해보자고 제의하는 것이 한 방안이다.
이 경우 달은 실험이 곤란하므로
다시 조금 보충해서 사과 하나를 놓고
위 실험을 바꿔 해보는 것도 한 방편이다.
여기서 기본적으로 3 계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
자신이 사과를 무엇이라고 파악하는가.
그리고 이렇게 무언가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는 과정 안에
위에서 제시한 3 해탈문이 들어 있는 반면
또 반대로 그 정반대로
3 계의 생사에 묶이게 하는 속박문도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진지하게 대단히 열심히 생활하는 거의 대부분이
바로 이 3 속박문에 그대로 묶여서
생사고통을 진지하게 때로는 끔직하게 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는 이 사실을 잘 파악하지 못한 가운데
자신이 평소 행하는 모든 정신적 육체적 활동이
자신에게 좋음을 준다고 여기면서
대단히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현실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어떤 한 상태를
붙잡고 그것이 정말 좋은 내용이서
모든 생명이 그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면
경전 전반을 걸쳐서 그 상태에 도달하는 방안을
열심히 제시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넓고 길고 깊게 이 사정을 관하면
그것은 그 징검다리를 밟고 그 다음에 묶여 끌려 가는 상태가
거의 대부분 끔직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아나가는 3 악도다.
이렇게 제시하게 되는 내용이다.
왜 그런가.
그래서 처음에 이 사정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사실 현실에서 임하는 대부분은
이 부분부터가 잘 안 되는 상태다.
그래서 이미 아라한의 상태에 이르고
지혜 제일인 사리자가 위와 같이 제시하는 내용을
살필 그런 상태 자체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질적으로 법화경에서 제시되는 내용은
기본 경전 내용이나 수행방안을 이미 잘 성취한
사리자 존자와 같은 최고 수행자들이
대학원 과정 정도에서 살펴야 할 부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인터넷 상황에서는
그런 사정을 무시하고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놓고 살펴야 한다.
그런데 첫 문제부터가 쉽지 않다.
오늘 조각글을 살피면서
이전에 살핀 중아함경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처음에 현실에서 생활할 때
무엇을 자신이라고 보고 여기는가
그리고 자신이 활동할 때
자신이 지금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가 자체라도
잘 파악하고 있는가 이 부분부터
잘 살펴야 한다고 보게 되는 사정이 있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투자와 감가상각 문제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자동차 문제를 놓고 이해해보자.
이렇게 시작했었다.
자동차를 구입해 사업용으로 5 년간 사용하면
폐차를 해야 한다.
컴퓨터도 그렇고 대부분 기기 사정이 그렇다.
그런데 사업하는 이가 이런 사정을 미리 념두에 두지 않고
수익을 얻는다고 활동하면
수익을 얻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면 처음 사업을 위해 구입했던
자동차 비용도 충당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문제가 아닌가.
즉 그냥 현금이나 자산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보다
그런 사업활동을 한 것이 더 어리석은 결과가 아닌가.
그러니 5 년 지나면 폐차가 된다고 전제하고
자동차를 1 억원에 구매했으면
1 년당 2000 만원씩은 없어진다고 전제하고
이것을 비용으로 미리 념두에 두어야 한다.
또 반대로 말하면 이 자동차로 사업을 해서
수익을 거둘 때 2000 만원 수입을 얻는 것은
겨우 비용에 해당하는 금액만큼만 얻은 것이다.
그 금액 이상을 벌어야 비로소 수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자세히 보면
다른 비용도 많이 이런 형태로 념두에 두어야 하기에
더 복잡하지만, 여하튼 이 문제만 놓고 살펴보자
이런 의미다.
그리고 현실에서 평소
자신이라고 보는 것을 붙들고
이를 자신이 매순간 걸치는 하나의 옷이나 자동차라고 관하는 가운데
이것이 생사과정을 통해 없어진 상태에서
새로 구하려면 도대체 현금으로 얼마가 있어야 가능한가.
그리고 한편 이 몸은
몇년 더 사용하면 폐차가 될 가능성이 높은가.
이것을 먼저 잘 관하면서
수익과 비용 관념을 잘 판단해보자. 이런 의미다.
무언가 현실에서 진지하게 열심히 활동하는데
위 감가상각비도 충당이 안 되는 활동을 하면 되겠는가.
물론 이 논의의 결론은
그런 사정으로 이번 생만 놓고 생각해도
당연히 수행의 방향으로 임해야 한다는 내용을 제시하기 위한 것인데
그 기본 사정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들은 하나같이
어느 시기가 되면
화장을 하거나 매장을 해서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고 누구나 보는데
그 이후는 자신과 관련된 부분은 고려할 필요가 없는가.
이 문제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고
그 이후에도 또 다른 옷이나 자동차를 구해야 한다고 한다면
이것을 또 추가해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지금까지는 최고급 자동차로 사업을 했는데
사업과정에서 무언가 잘못해서
그 자동차가 폐차 처분된 다음
새 차를 구해야 할 시점에서는
도저히 그 이전의 자동차와 같은 수준은 곤란하고
바퀴벌레형 자동차만 가능하다.
만일 이렇다면 그 이전에 최고급 자동차로 사업활동했다는 것은
종합적으로 엉망이다. 이런 의미다.
처음 현실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는 이 부분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자신이 그런 차에 해당하는 내용
즉 지금 이 순간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그 부분에 해당하는
그런 내용을 매 세계마다 새로 구해 활동해야 한다고 할 때
그런 세계의 구조나 특성부터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3 종류의 세계는 지금 이 순간도
그렇게 있는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쉽게 이 사정을 이해하려면
현실 공간은 하나라고 해도
그 상황을 놓고 파리가 대하는 감각현실 전체로서 세계와
인간이 대하는 감각현실 전체로서의 세계가
우선 같은가 아닌가부터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앞에서 처음
영희가 달려오는 그 순간을 놓고
자신이 영희라고 보는 그 내용은 무언가.
그리고 그 순간에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은 무언가.
자신이 거리나 달이나 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런 각 내용이 무언가.
그리고 영희나 자신이 이렇게 지내다가
나중에는 도저히 과거의 형체를 다시 찾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이제 지금 순간의 영희나 자신과 관련된 내용은
아무 것도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가 가장 기초적인 문제가 된다.
이미 많이 반복했지만,
이 문제가 먼저 해결이 안 되면
이후에 제시되는 내용은 도무지
논의할 길이 없다.
도대체 100 년 살기도 힘든 상황에
무슨 무량겁에 걸친 수행 이런 내용이 제시되는가
이런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 곤란하다.
어떻게 보면 사정이 이렇다.
나중에 법화경을 살필 때는
소승 독각 보살승
이렇게 제시하고 1 불승을 제시한다면
이들 3 승과 1 승은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비유로 표현해서
양수레 사슴수레 소수레 큰흰소수레[대백우거]
이렇게 관계를 제시하는데
큰 흰소수레라고 표현하는 수행자가 행하는 수행방안이란
기존의 3 가지 수행방안과 어떤 관계인가.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큰 흰 소수레 안에 양수레 사슴수레 소수레가 담겨 있는 형태의
대 항공모함형 수레인가.
아니면 큰 흰 소수레는 이들 양수레 사슴수레 소수레와 별개인가.
아니면 큰 흰 소수레는 처음 말한 소수레와 같은 성격인가.
이런 식으로도 문제를 제기하고 살펴야 하는데
이것이 결국 어떤 상태를 목표로
어떤 수행방안을 어떻게 취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와 관련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뒷 두 입장은 오래전부터 이에 대해
4 거설 3 거설 이런 형태로 논의되어온 내용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살피려면 그 전제로
수행자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또 이런 내용을 실천해갈
이 생사현실의 기본 상태와 구조가
도대체 어떻기에 그런 내용이 제시되는가부터
함께 같이 살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영희나 철수 자신의 본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영희나 철수가 매 순간 대하는 외부 세계는
과연 그 정체가 무언가 이 문제를 기초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잘 이해하려면
처음 책상 앞에 사과를 하나 놓고
이 사과를 누가 도대체 어떤 상태에서 무엇이라고 보게 되고
또 그런 상황에서 이를 무엇이라고 여기는가.
이 문제부터 잘 살펴서 해결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일단 글이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기에
상당히 부담이 되는데
일단 문제의 성격을 이처럼 살피면서
조금 쉬기로 한다.
mus0fl--Gerard Lenorman - Ouverture.lrc
매번 뽑힌 경전을 살피면서 조각글을 적다 보면
문제되는 주제만 나열하고
그 내용을 살필 때쯤
이를 살피지 않고 글을 끝마치게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일단 그 내용을 논의하려면 분량이 상당히 많이 들고
내용을 줄이기 힘들다는 생각을 한편으로 하게 되는 한편.
해당 내용은 이미 과거 조각글에서 대단히 많이 반복해서 살폈다.
이런 생각을 함께 하게 된다.
그래서 또 같은 내용을 반복해야 하는가.
차라리 과거 조각글을 다시 잘 정리한 다음
이 부분을 따로 링크형태로 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확히 그 부분이 어디에 있었던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락가락하다가
그만 두게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 정법화경을 살피는 가운데 뽑아 살피는 주제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지만 그 사정이 비슷하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과거 조각글들을 다시 정리하는 가운데
관련 부분의 링크를 찾아내 나중에 연결시키는 것으로 만족하고 마치기로 한다.
그렇지 않고 간단하게나마 핵심을 추려 설명하려고 하면
또 상태가 마찬가지가 되기 쉽다고 본다.
대신 여기서는 현실에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만
조금 더 보충하고 마치기로 한다.
이미 5 년 정도 타고 다니면
폐차하게 되는 자동차를 예를 들어서 감가상각의 문제를 제시했는데
수행자가 대하는 현실 상황도 이와 사정이 같다는 부분을
조금 더 보충하기로 한다.
생각해보면 이 내용의 일부도 이전에 중아함경을 살피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살폈기에 마찬가지로 중복되는 사정이 있다.
그래서 중복부분을 가능한 줄이고
현실에서 가장 많고 길고 높은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왜 수행방안으로 현실에 임해야 하는가하는
기본 사정만 보충해 살피고 마치기로 한다.
우선 자동차의 감가상각비 문제에 준해서
삶에서 도대체 자신이 얼마마한 가치를
매기간 소모해 없애가며 삶에 임하는가
즉 삶에서 매기간 고려해야 할 자신의 감가상각비는
도대체 얼마인가를 살피려면
먼저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의 가격을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
이 문제부터 처음에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한 주체가 자신이 갖는 가치는
도대체 얼마인가를 생각한다고 할 때
우선 화폐액으로 얼마를 주어야
자신의 손과 발이나 콩팥이나 간이나 두 눈이니 심장을 구하거나,
그것이 없어질 때 다시 회복해 낼 수 있다고 보겠는가.
이 문제가 처음 제기된다.
비록 이 각 부분들이 시장에서 거래가 되지 않지만,
그러나 어떤 수익을 얻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런 신체 각 부분이 희생이 된다고 하면,
이 각 부분이 원래 갖던 가치만큼을 비용 부분에 넣어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신체를 놓고 가치저울에서 평가를 해보면
우주 전부를 그 대신 준다고 해도 희생시키지 않으려하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가치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학적 계산을 위해서 대강이라도 숫자로 표시하자면
한 나라의 국가 예산에 준하는 400 조원 정도를 준다고 해도
최소한 그것보다는 더 비쌀 것 같다고 여기는 것이
대부분의 스스로 자신에 대해 행하는 주관적 가치평가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옳던 그르던
그런 주관적인 평가를 받아들여서
자동차를 놓고 제기된
감가상각 문제로 들어가면
이를 다음과 같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는
먼저 자신이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고
그 이후는 어차피 더 이상 자신과 관련해 생각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단멸관을 취해서 이 문제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단멸관은 앞에서 처음 제시한
세계의 구조나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망집에 바탕해 현실 사정을 잘못 파악하기에 취하는 단견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처음 일반인이 수행에 진입해 들어갈 수 있으려면
먼저 이런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입장도 함께 고려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정적 항변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런 입장은 그 자체가 엉터리지만
설령 그런 주장이 옳다고 받아들여도 그런 결론은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옳지 않다.
이렇게 이끄는 방편적인 논의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임하지 않고
그런 입장을 취하는 상대를 놓고
상대의 단멸관부터 제거하고자
세계의 구조와 자신의 정체 파악문제부터 논의에 들어가면
그 논의가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쉽게 파악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초등시절 때 그 당시 자신이라고 본
육체나 정신적 내용은 지금 모두 형체가 희미한 상태로 사라져서
어떻게 보면 그 초등학생은
이미 화장터에 들어가 사라진 것과 실질적으로 같다.
그런데도 현재 그 주체는 여전히
그 초등학생을 바탕으로 자신이 그렇게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 주체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도
또 사정이 앞의 내용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현실을 놓고 도대체 한 주체가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들은 무엇을 근거로
갓난아이때부터 초등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매순간
각기 다른 내용들을 하나의 주체라고 여기고 대하는가
이 문제부터 잘 헤아려 살펴야 한다.
우선 지금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 측면에서 공통성이 많다고 해서
어떤 시기의 어떤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자 한다면,
초등시절의 자신이라고 보는 어떤 내용들은 사실상
그 형태나 내용으로 보아 대단히 차이점이 많은데도
왜 그것을 자신이라고 여전히 여기는가.
그런 한편 그 당시 초등시절에 있었던 다른 아이나
지금 현실에 있는 다른 사람을 놓고
현재의 자신과 비슷한 점을 찾자면
오히려 이들이 대단히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또 왜 이들은 자신이 아니라고 여기는가.
그리고 인과관계상,
지금 자신이라고 보는 일정한 내용과 인과관련이 있는 내용들을
그런 자신의 연속이라고 여기고자 한다면,
지금 자신의 몸과 가장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고
자신이 매일 식사로 취하는 배추밭의 배추나 축사에 있는 소돼지,
또는 자신이 매일 배설과정을 통해 내보내는
그런 배설물을 또 왜 자신이라고 여기지는 않는가.
또 정신적으로는 자신의 지금 정신안 내용과 관련이 깊은 내용들
예를 들어 최근에 자신이 읽어서 감명을 받는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그런 내용을 써낸 소설가의 마음은
또 왜 자신이라고 여기지 않는가.
그리고 반대로 자신이 써낸 어떤 이야기에 영향받아
그 내용을 다 채우고 있는 다른 이는
또 왜 자신이라고 여기지 않는가.
이런 문제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이런 기본 작업을 거쳐야 현실에서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들이 갖는 정체와 함께
엄밀히 보면 갓난아이 시절이나 초등시절부터 지금까지
매순간 다른 내용이라고 여겨야 할 각 내용들을 놓고
이들이 모두 하나의 자신의 연속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근본 요소가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런 내용이 곧
초등시절의 어떤 내용과 20 년 30 년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매순간 각기 다르다고 보는 내용들을
한 주체가 매순간 걸치는 옷이나
매순간 타고 다니는 자동차처럼 관련이 깊다고 보게 하는
근본 요소가 과연 무언가를 찾아내는 작업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이 현생 안에서도 그렇지만,
그 주체가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이 어느 시점 이후
장례식을 거쳐 화장터에서 완전히 사라진다고 보는 상태에서도
그 사정은 다르지 않다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서 보게 되는
생노병사 현상 뿐만 아니라
무량겁에 걸쳐서 진행되는 생사윤회 과정까지도
이해하게 하는 내용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적인 입장을 놓고
이렇게 살피려면
대단히 긴 내용을 제시하면서 살펴나가야 한다.
그리고 위 내용은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자신이나 자신의 것이라고 보는 내용들이
비록 자신이 걸치는 옷처럼 관련이 깊다고 하지만,
하나같이 실답지 않아서 집착을 갖고 대할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에 집착을 갖고 대하면
그로 인해서 그 이후 내용이 엉망이 되고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는 3 악도라는 수용소에
묶여 수용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끔 하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윤회고를 겪게 하는 업의 장애 현상임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내용도 위와 같은 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면
이해하기 쉽지만,
그러나 일반적으로 단멸관을 취하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당장 자신에게 좋다고 보는 내용을 취해
당장 희희낙락하는 가운데
생사고통을 받아나갈 업을 열심히 행한 가운데
그러나 자신은 그런 업으로 인해 어떤 과보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경전에서 제시하는 생사고통은 자신과는 무관하다.
이렇게 끊어 단멸관을 취하고 떡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입장은
정작 그 열매가 직접 눈 앞에 나타나기 직전까지는
자신의 주장이 대단히 옳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어떤 농사짓는 이가 봄에 씨를 뿌리고 경작할 때
어떤 이가 그런 씨로 인해 아무 열매를 수확할 수 없다고 주장을 한다면
그 주장자의 주장은 열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맞다고 보아야 하는 것과 사정이 같다.
현실에서 취하는 단멸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편 그런 업으로 그 과보가 나타나고
그것을 그 주체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점에서는 또 반대가 된다.
이제는 그 주체는 그런 과보가 무엇때문에 나타났는지를
또 파악하지 못한 가운데 정신없이 그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3 악도에 처해서
그 상황에 직접 대면한 이후는
또 설령 그 사정을 알아도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앞에 낭떨어지가 있는데 일단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런 것은 없다고 여기고 차를 몰고 나가는 이가 있을 때
그 상태에서는 앞의 낭떨어지가 보이지 않는 상태이기에
그 주장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또 그렇게 해서 낭떨어지에 떨어진 이후에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일단 의식을 잃은 그 주체는 의식을 깨기 까지 그 상황을 모르는 한편
그 이후 심한 장애를 겪고 병실에서 평생 지내게 된 상태에서
설령 그렇게 떨어지게 된 그 전후과정이나 사정을 설령 들어 알게 되어도
또 막상 그 상태에서는 그 상태를 벗어나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현재 축사에 갇혀 지내는 축생의 상황을 놓고 이해하면 쉽다.
그 상태에서는 그 사정을 아무리 이해시키려도 해도
결국 소귀에 경읽기 즉 우이독경의 상황으로 된다.
그래서 이런 난점이 있기에
앞에 제시한 가정적 항변을 또 보충적으로 취하게 된다.
이는 상대의 주장이나 전제가 옳지 않다고 보지만,
그러나 가정적으로 상대의 그런 주장이 설령 옳다고 받아들인다 해도.
그래도 그런 입장을 취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그런 입장을 취해
설령 그런 내용이 하나같이 실답고 진짜의 자신이나 사물이나 세계라 해도,
그 경우에서도 수행의 방안을 취하고 임하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고 좋다.
이렇게 제시하는 방편이 된다는 의미다.
즉 원칙적으로 경전은
현실의 내용이 무상, 고, 무아,무자성, 열반적정, 공
이런 상태여서 그것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고
그 모든 것이 환이나 꿈과 같은 것이어서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할 내용이다.
그런데 그런 내용에 망집을 일으킨 바탕에서 업을 행하면
그런 망집을 전제로 3 악도의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이렇게 제시하지만,
반대로 현실의 내용이
일반적 입장에서 생각하듯
대단히 실답고 좋은 내용이라고 여긴다해도
또 앞과 같이 한 주체의 삶은 무량겁에 걸쳐 윤회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생만 잘 살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단멸관을 취하는 경우에도
그런 방식으로 임하면
당장 이번 생 안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고
사실은 이후 무량겁에 걸쳐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아나갈 도리 밖에 없다.
이렇게 방편적으로 보충해 제시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이것을 가정적 항변의 방편이라고 하는가하면
처음 전제가 엉터리인데 일단 그것을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그 사정을 살피기 때문이다.
가정적인 항변, 방편시설을 제시하게 되는 그 사정을 제시하다보니
글이 길어졌는데
여하튼 이런 입장에서 이것을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그 경우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 어차피 다 죽게 되고
그것으로 그 주체들은 끝이라고 하자.
그렇다 해도 각 주체가 주관적으로 스스로 평가하는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사정이 오히려 그렇다면 사정이 그렇기에
오히려 주관적 가치는 더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번에 맞이하는 자신의 삶은
그만큼 희소하고 그래서 더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해서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이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정으로 더 가치가 높아진다.
그런 가운데 언젠가는 0 이 될 상태를 념두에 두고
미리 그 가치를 앞에서 본 자동차의 경우처럼 감가상각을 행한다면
매 년 매 기간별 비용으로 산정해야 하는 감가상각비를
적당히 계산해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에 자신의 몸이 갖는 가치를 400 조 이상이라고 대강 숫자로 적었다면
단멸관을 취하고 단지 100 년 정도 생존기간만 놓고 평가하면
1 년당 감가상각해서 비용으로 올려 놓아야 할 감가상각비가 대략 3 조원 정도로
계산이 된다는 의미다.
이 경우 어차피 다 죽으면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나 행위로
일단 살아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손과 발이 사고로 다 떨어져 나가고
그런 상태에서 남은 기간을 살아가야 하는 경우라거나,
또는 어차피 다 죽는다고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대략 80 세를 산다면,
이를 초과해 90 년을 사는 경우와 달리,
자신만 혼자 20 년 밖에 살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경우도
역시 비용으로 계산에 넣어야 한다.
또 현실에서 교도소에 갇혀 지내는 경우 등도 고려에 넣어야 한다.
현실에서 교도소에 들어가는 상황을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살피면 다음과 사정이 같다.
어느날 하루 자신의 분노를 해결하고 통괘함을 맛보기 위해서
어느 곳에 들어가 그곳 시설을 부수고
어떤 상대를 마음대로 해쳤다고 하자.
그리고 그렇게 하루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행한 일로 인해
이후 그가 체포를 당해
한 30 년 정도를 교도소에 갇혀 지내게 된다고 이 관계를 놓고 보자.
1 일 하루 마음대로 하고 그로 인해 365 * 30 = 10950 일의 고통
이런 관계를 일단 이번 생에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현재의 생이 그런 관계라고 경전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인간 100 년은 도리천과 같은 하늘의 하루의 기간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기간을 엉망으로 업을 행하면 그로 인해
간단히 제시하면
그렇게 업을 행한 기간 인간 100 년의 기간 (1일) * 365 * 1000 에 해당하는 기간은
그런 하늘에서 지낼 도리가 없고
그와는 반대인 3 악도에 들어가 묶여 지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업을 행하는 주체가 그런 상태에 묶이지 않고
그 뜻대로 마음대로 행해 나가게 방치하면
거꾸로 그런 하늘은 하늘의 상태로 유지할 도리가 없다.
이런 내용이다.
현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매순간 앞과 같이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부수고 다른 이를 해치는 행위를 하는 이를
국가가 체포해서 감옥에 30 년 또는 그 이상을 가두어 두지 못한다면
그 국가는 국민들을 행복하게 보호하고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국가라고 보기 힘들다.
이렇게 보는 사정과 마찬가지다.
여하튼 개인 입장에서 단멸관을 놓고
이번 생 기간만 고려에 놓고 임한다고 해도
대략 현실 교도소에 갇혀 지내는 기간 이 정도는
미리 고려를 잘 해야 한다.
또 하나 문제가 남아 있다.
사정이 그래서 여하튼
매년 자신이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자신의 막대한 가치
예를 들어 400 조원 이상의 가치가
100 년 정도를 기간으로 해서 매 기간마다 나누어
매년 소실되어 가는 상태인데
그러나 반대로 그런 상황에서
자신은 도대체 어떤 활동을 해서
대신 무엇을 얻어내려고 그렇게 현실에 임하고 있는 것인가.
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측면을 또 살펴야 한다.
이런 경우 역시 가치와 관련해
수입- 비용의 관계를 잘 살펴서
어떻하던지 들어가는 비용보다는
높은 가치를 갖는 내용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앞과 같은 단멸관을 취하지 않으면
단순히 이번 생만 놓고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하여
그런 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고,
무량겁을 놓고 무량한 중생 세계를 놓고
자신이 매 기간 생사를 반복할 때마다
한 주체가 행한 업이나 그와 반대되는 수행으로 인해
이후 각 주체가 각 세계에 어떤 거처를 마련하고
또 각 세계에서 어떤 옷이나 차를 마련해 임해 나가게 되는가 하는 문제로
이를 이어 대하는 차이가 있게 된다.
그래서 이번 생에 어떤 주체가 어떤 활동을 하게 되면 그로 인해
다음 생에는 하늘 자동차 하늘 옷을 구해서 다닐 수 있는 상태라도 된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못해서 축사에서 겨우 사용가능한
돼지나 소의 옷을 강제로 걸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인가.
아니면 평균 정도는 되어서
중고형 인간 자동차 인간 옷을 걸치고
다시 한번 인간 세계에서 이어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이런 측면을 또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설령 이번 생까지만 고려하는 단멸관을 취하더라도
일단 400 조 / 100 년 이런 형태로
매 순간 들이는 감가상각비를 념두에 두고
어떤 입장에서 어떤 일을 해야
이런 감가상각비를 넘는 가치와 효용을
이번 생 안에 얻어내 누릴 수 있을 것인가부터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런 경우
극단적으로 잘못된 선택과 업을 행해서
당장 하루 자신에게 좋고
다음날부터는 죽을 때까지 감옥과 병원을 오가는 상태가 되었다거나
아니면 심각한 고통을 매순간 겪는 장애를 겪는 상태로
죽을 때까지 임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죽으면 그것으로 모두 끝이라는 단멸관을 취한다해도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 된다.
그런데 알고보면 사정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경전에서는 수행을 행하지 않고
그렇게 망집에 바탕해 임하면
이번 생에서는 이번 생대로 살아 있을 동안 다양한 생사고통을 받고
그리고 나서 다음 생부터는 상태가
더 극심한 3 악도로 옮겨 가게 된다.
그리고 사실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 더 문제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먼저 잘 념두에 두고
다음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즉, 현실에서 어떤 이가 어떤 활동으로 현금 수입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주관적 가치 평가액으로 산정한다고 할 때
1 년에 4 조원 이상을 감가상각비로 비용으로 소모해 가는 상태에서
도대체 무슨 수익을 대단히 많이 거두었다고
이를 놓고 우쭐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어리석음의 문제부터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만일 그런 수입도 아니라면,
반대로 어떻게 해야 그런 막대한 감가상각비를 넘는
높은 가치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방안은 도대체 무언가.
이런 문제를 놓고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
가치가 문제되는 여러 항목을 나열해 놓고
각 가치를 가치저울로 비교해가면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판단해야 한다.
물론 그 결론은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얻어내게 하는 수행방안이기는 한데
여하튼 일반적으로 단멸관을 취하는 입장에서도
그 범위에서 이 문제를 놓고 그처럼 임해야 한다.
여기서 감각상각비에 대한 의식이 중요한 것은
사실은 매 순간 막대한 손해를 자신이 보고 있는 상태인데도
어리석음과 어리석은 회계 계산을 바탕으로 임하면
거꾸로 자신이 수익을 얻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그 사정을 예를 들어 살폈다.
예를 들어 1 억원 짜리 자동차를 구해서 사업을 하면서
그 자동차로 1 년에 1000 만원을 벌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생각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 100 만원도 벌지 못하는데
자신은 1000 만원 수입을 얻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이렇게 여기고 우쭐대며 임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임하게 되는 사정이 무엇인가.
그 입장에서 여전히 자동차는 잘 굴러가고 있다고 보는데
사실은 그런 활동으로 자동차에서
2000 만원의 비용이 사실상 없어진 상태이고
따라서 여전히 큰 손실을 보고 있는 상태인데도
그 주체가 그 사정을 미리 고려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깨안습' 상태로 계속 임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 보충하고 쉬기로 한다.
- 빅뱅 - 그짓말
목록에서 뽑혀 나오는 노래를 늘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2 만 여곡의 목록이 어떻게 수집되었는지 그 경로를 알기 힘든데
불교 경전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불어노래가 그나마 관련성이 좀 더 깊다고 보고
불어 노래 1 만 여곡 목록 가운데 랜덤으로 추출해 쉴 때 마다 곡을 올리는데
이번에 뽑힌 노래도 유튜브에서는 검색이 안 된다.
French Anthology Chanson And Breathe Of Jazz - 007
이런 곡인데 다른 경로로 노래는 듣지만,
유튜브 사이트에서 링크를 제공해주지 않으면 방법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노래를 듣다 보니, 한국 노래에서 전반부가 조금 비슷한 노래가 연상이 된다.
그래서 일단 올려 놓는다.
요즘은 한국인이 한국노래를 들어도 무슨 가사를 노래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언어와 관련된 현상을 이해할 때는 이런 부분도 참고할 의미가 있다.
이는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자신이 알아듣는 내용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차이가 많은 현상을 의미한다.
그래서 요즘 K-POP 이 더 음악감상하기에는 낫다고도 보지만,
이런 문제때문에 어차피 본인부터 잘 알아듣지 못하는 불어 노래를 올리는 사정도 있다.
글 맥락과 어차피 관련도 없는데 공연히 오해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으로 불어 노래를 올려 놓고 들었는데
불어는 한자어를 잘 보면 부처님 말씀이라는 의미도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듣다 보면 한국어로 수행과 관련된 메세지도 엉뚱하게 듣게 되는 경우도 많기에
올리게 되는데 위에 뽑힌 노래도 수행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온다.
성불과 관련된 내용, 아미타부처님, 공수래 공수거인 바탕에서 무량한 복덕을 얻는 방안
이런 등등의 내용을 개인적으로 감상하게 되지만,
유감스럽게 유튜브에서 링크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전반부가 비슷한 거짓말이란 노래를 대신 올리는데
망집에 바탕한 가운데 현실에 임하는 경우는
자신이 바탕한 그 내용이 모두 사실은 거짓이고 환과 같았다는 사정을
잘 살펴야 한다고도 본다.
일단 앞에 내용을 제시한 것을 놓고
그 다음을 보충해보자.
자신이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자신을 최소 400 조 이상이라고 평가할 때
1 년당 감가상각 비용으로 미리 계산해야 하는 비용이
4 조 원 정도는 된다고 하자.
그런데 선택을 엉뚱하게 잘못하면
최소 400 조 이상을 가치를 100 년간 정도 갖게 되는 자신이
그 이후 곧바로 마이너스 가치를 갖거나
0 가치를 갖는 폐차 상태로 들어가기 때문에
어차피 다 100 년후에는 공평하게 0 상태가 된다해도
그 100 년을 놓고도 다시 대단히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는 사정을 앞에서 살폈다.
그런데 앞과 같은 문제도 있지만,
반대로 어떻게 임해야 대단히 높은 가치를 얻어내서
설령 1년당 4 조원의 감각상각 비용이 소모되는 상황에서도
큰 문제없게 될 것인가.
이 문제를 또 잘 살펴야 한다.
즉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자신이 가장 가치있는 보물과 같은 가치를 갖고
또 그런 보물을 자신의 소유물로 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가.
그래서 단멸관을 취하여,
100 년 후는 어차피 다 끝이라고 해도
그 100 년 안에서만이라도
자신이 누리는 효용과 얻는 가치를 최대로 올릴 수 있는가.
이렇게 살펴야 한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이런 단멸관 자체가 엉터리이므로
생사현실에서 무량겁에 걸쳐 수행에 임하는 수행자는 수행자대로
마치 지금 순간에 자신이라고 여기고 자신이라고 보게 되는 그런 내용을 놓고
각 세계에 임하게 될 때마다 이런 내용을 어떻게 해야
좋고 좋은 형태가 되고 중생을 제도할 수 있게 되는가하는 측면에서
계속 이 문제를 이어 살펴야 한다.
경전에서 원칙적으로 3 계는 꿈이나 환과 같다고 한다.
그러나 이 환과 같은 3 계에서 노닐면서
수행하고 중생제도에 임하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 내용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결국 매 생마다 자신의 뜻과 달리
현실에서 마치 범인이 자신의 뜻과 달리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는 상태처럼
강제로 3 악도에 묶이는 분단생사과정을 통해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아나가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한편
변역생사 과정을 거쳐
자신의 서원에 맞추어
중생제도와 수행에 잘 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실천하는 문제로 그 성격이 바뀌게 된다.
그래서 어느 입장에서도
현실에서 가장 가치있는 상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그 목표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살피려면
먼저 무엇이 현실에서 진정 가치있는 보물이고 보석인가
이런 문제부터 잘 확인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엄청난 가치가 있는 조각돌만한 조각돌 다이아몬드를
훔쳐낸 범인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장기간 수사를 통해 결국 체포되었다.
수사관이 그 조각돌 다이아몬드의 행방을 물었는데
이미 장물로 처분한 다음 다 사용했다거나
잃어버렸거나 유흥비로 다 사용했다.
이렇게 답해서 끝내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런 피해를 당한 이도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다지 협조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현실의 범죄관계의 대부분 성격이 이렇다.
어떤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서
피해자는 이미 복구하기 힘든 피해를 본 상태이고
그런 피해를 가한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차후에 체포되거나 그에 상응한 피해를 돌려 받는다.
그리고 이 관계가 계속 증폭되어 나간다.
부처님을 믿고 수행에 정진하여
부처님과 보살님의 도움과 보호를 받아
업의 장애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그런 관계를
가피(加被)를 받는 관계라고 표현하는데
생사현실 안에서도 앞과 같은 형태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주고 받는 가피(加被) 관계가
중첩되어 쌓여지는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여하튼 일반현실에서
대단히 가치가 높다고 보는
조각돌형 다이아몬드 절도 사건의 성격은 위와 같다.
여기에 후일담이 있다.
사실은 그 범인은 그 다이아몬드를 어딘가에 숨겨 놓고
그렇게 교도소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30 년 정도 형을 받고 나오면
그것을 찾아서 말년을 잘 보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생각끝에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나온 다음
자신이 그 보물을 묻어 놓은 곳을 다시 방문해보니
그 곳 일대 자체가 전체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른바 택지 재 개발 사업이 진행되어서
자신이 보물을 묻어 놓은 야산도 없어지고
그곳에 젼혀 다른 모습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 범인이 새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잃어버린 그 보물이 여하튼 어딘가에 있으리라 보고
그 일대 주변을 샅샅이 찾는 보물탐사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왜 사정이 그런가 하니 그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자신이 보관한 물건이
시세가 올라 1 조원대가 넘기에
이것을 반드시 다시 찾아내야 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상황이 상당히 어렵다.
현실 사정이 이렇다.
토지 재개발하는 입장에서 건축페기물 처리과정에서
혹시나 하고 보물 선별 작업까지 같이 하면 좋은데
건축 재개발 사업을 하는 입장도
미리 그런 사태를 고려하지 못해서 결국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그런 사정으로 태백산에서 바늘찾기 상황이 되어서
사실상 보물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그런 꿈을 갖고 다시 현실에 임하는 그 희망을 어떡하겠는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가치가 대단히 높은 보석이나 보물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부분부터 잘 살펴야 한다.
물론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단순히 보석이란
시장에서 대단히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그런 물건이다.
이렇게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그 끝을 이어 살펴가며 자세한 사정을 살펴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일반적으로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바탕에서 나타나
공수래 공수거하는 가운데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을 찾아내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수학자는 어차피 0 에서 시작해서 0 으로 끝나는 바탕에서
그래도 가장 높은 숫자를 찾아내는 문제라고 바꾸어 대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가장 높은 숫자를 찾을 때
수학에서는 이를 무한이라고 표현하고 0을 2 개 이어 붙인 형태[∞]로 요즘 표시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 상황이 처음에 낸 가치문제와 성격이 비슷하다.
즉, 화폐액을 아무리 많이 적고 적어도
어떤 이가 자기 자신의 신체나 생명의 가치를
숫자로 적으라고 하면 여하튼 그것보다는 많고 큰 가격이다.
이렇게 임하기에 성격이 비슷하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 가치를 단순히 ∞ 이라고만 표현하고
값을 헤아릴 수 없이 크다고 할 뿐
그 숫자를 전혀 표시하지 않고 임하면
나중에는 숫자로 표시되어 초점을 기울이게 하는 부분들만 의식에 남고
정작 가치가 대단히 높은 그 내용은 의식에서 제거되고 없어지게 된다.
이런 현상이 현실에서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손과 발을 떼어져서 불편함을 느끼는 상태에서는
손과 발이 갖는 가치를 대단히 높다고 자각하게 되는데
정작 평소에 손과 발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는
그 상태를 놓고 환희를 느끼거나 그 가치를 느끼지도 못하고
별로라고 여기거나 오히려 불만에 가득한 상태로 대하는 현상이 이것이다.
그런데 손과 발만 그런가.
간도 그렇고 콩팥도 그렇고 눈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화폐로 평가하기 힘든 다른 부분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가족간의 화목함이나 친구간의 우정 등등이 다 사정이 비슷하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일단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 숫자에만 초점을 맞추면
이것들이 쉽게 숫자로 변환되어 화폐액으로 표시되지 않고
막연하게 헤아릴 수 없이 높다는 등 추상적인 표현으로만 제시되기에
결국 아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도 무한이나 무량을 제시할 때는
그 사정을 한편으로 갠지스강 모래알 수 등등으로 표현하다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할 때는 그 가운데 대략 7 가지 정도를 뽑아
나열해 제시하게 된다.
무량을 이해할 때 전혀 사례를 제시하지 않으면 문제지만,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이런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의 무수한 부처님 가운데에서도
과거 7 불을 나열해 제시하고
동방의 무수한 부처님을 제시할 경우에도 동방의 7 불
이런 식으로 제시한다고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갑자기 7 이란 숫자를 생각하니
이렇게 견강부회하는 느낌도 있고
또 이와 관련해 김해에 처음 아유다국의 공주가 와서
아들을 낳고 그 외삼촌과 함께 수행에 정진해서 나중에 7 부처님이 되었다.
그래서 7불사가 세워 졌다는 그런 이야기도 들었는데
여하튼 그런 여러 내용이 연상이 된다.
이야기가 엉뚱하게 흐르는데
현실에서 화폐액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고
무한에 가깝게 가치가 있다고 하는 품목들 가운데에서도
그 가치의 우열을 살피려면
결국 가치저울에 이들 문제되는 내용을 올려 놓고
일일히 비교 평가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충 많은 가치, 아주 많은 가치,
그리고 또 상당히 많은 가치 이 정도로만 여기는 가운데,
예를 들어
지금 100 만원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나중에 아주 많은 가치를 받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출되면
적당히 생각해서
나중에 아주 많은 가치를 얻는 것은
그것이 당장이 아니어서 어차피 불확실한데
당장 확실한 100 만원이 낫겠다 이렇게 판단하고
100 만원을 당장 받고 아주 많은 가치는 희생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대략 모호하게 아주 많은 가치라고 한 그 부분이 무엇들인가.
우선 자신의 손, 발, 콩팥, 간, 두 눈, 심장 이런 것을 시작으로 해서
그 이후 경전에서 제시하듯,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상태,
그리고 무량겁에 걸쳐 무량한 복덕과 수명 지혜를 구족하는 상태
등등이 모두 다 빠져 나가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적당히 높은 숫자 정도로
1 년당 4 조원 이정도라도 적어 놓고
이 문제를 늘 가치 비교를 행하는 상황에서
고려할 내용으로 의식에 남겨 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이 진정한 보석인가 이 문제도
잘 살펴야 한다.
물론 경전에서는 수행자가 얻어야 할 7 가지 재물[7재]나
10 가지의 다함이 없는 보물창고[10 무진장] 이런 내용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일단 일반적 입장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시장에서 대단히 높은 가격 평가를 받고 거래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일단 그런 것이 보물이다.
그런데 막상 그것을 취하니
자신은 그것을 가지고 그냥 기분만 느낄 뿐
평소 하나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 이후부터
도둑강도들이 자꾸 방문하고
그래서 자신은 심한 불안을 느끼고
그래서 자신이 한 순간도 어디를 가더라도
그런 경호시설과 경호원의 보호없이는 생활할 수 없게 되고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런 것을 갖지 못한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자신을 대하는 가운데
삶에서 불만과 불쾌함을 느끼는 한편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속으로 불편하고 죄의식에 갇혀 지낸다.
이런 상태가 되면
여하튼 시장에서 가격이 높다는 그 점은 평가할 만한데
그것을 통해 얻는 내용도
과연 가치가 있는 좋은 상태인가가 의문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수단이
결과적으로 최종적으로 종합적으로
어떤 상태를 주는 것을
진정한 보물이라고 해야 하는 것부터 다시 잘 검토해야 한다.
여하튼 위와 같은 상태를 제거하고
그 반대 내용을 모두 채워 넣어야
그것이 사실은 진정한 가치가 있고
그 가치가 최종적으로 장구하게 자신에게 평안함과 복락을 가져다 준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이런 내용의 이해부터가
기초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시장 거래가격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신없이 진지하게 임하면
나중에 자신의 손과 발이 다 떨어져 나가도
숫자만 적힌 장부를 들고 좋다고 하는 상태가 된다.
앞의 조각돌형 다이아몬드가 그런 상태다.
사실 평소 착용하고 다니기에도 불편해서
어떤 금고에만 보관하고 가금 감상하는 그런 보석은
어떤 이가 그냥
마음 속에 온 국토의 국립공원과 도서관 체육시설 들이 갖는 가치를
400 조원 정도로 평가하고 그래서 자신이 그것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서
그래서 자신이 대단히 많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혼자 흐뭇해 하는 것과 주관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외 부분이 앞처럼 대단히 차이가 많은 것이다.
그러니 이 가운데 무엇이 진정 가치를 갖는
보물이라고 보겠는가 이런 생활퀴즈다.
유치하지만 이런 문제를 먼저 잘 점검해야 한다.
무엇이 좋은가의 문제에서
무엇이 황금이고 무엇이 대변인가
이런 분별도 못하는 상태에서는
자칫하면 대변을 우주나 자신의 황궁으로 여기면서
임하는 대장이 되기 쉽다. 이름하여 대장균이다.
그리고 알고보면 이런 뒤집힌 가치평가부터가 문제다.
그래서 어떤 나쁜 결과를 오래 받게 되는 일이 있는데
어떤 이가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에도 그렇게 행하고
그리고 오늘도 그렇게 행하고
쉼없이 반복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큰 문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떤 내용이
어떤 주체에 보관되면
그런 무량한 피해나 손해 고통이 그 이후
다 제거되는가.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을 그 주체의 진정한 보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의미다.
한편, 경전에서 다양한 내용과 수행덕목 사이에서
가치평가를 할 때도
각 내용을 놓고 가치를 비교평가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처음부터 비교하는 품목자체가 다르다.
일반적인 입장을 놓고 생각하면
처음에 이렇게 시작했어야 할 것 같다.
우주 가득하게 대단히 높은 가격을 갖는
조각돌형 다이아몬드를 가득 채우고
그것을 자신이 갖고 있는 상태는
얼마나 가치있고 좋은가.
이렇게 처음에 제시하고
그 이후 이것보다 높은 가치를 갖는 항목을
나열하고 비교해 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위와 같은 보물을 놓고
그것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 때 갖는 가치가
얼마나 높겠는가.
이렇게 제시하고 그 이후 가치를 비교 평가하는 내용을
경전에서 자주 대하게 된다.
그런데 처음 부분에 제시되는 내용의 사정이 왜 그런가.
그런 보물을 자신이 갖고 있으면 가치가 대단히 높다고 할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을 다른 이들에게 베푼 것을 왜 가치가 있다고 하겠는가.
그렇게 되면 자신은 당장 파산이고 거지 상태인데
이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상식적으로 갖기 쉬운 이 의문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이해하려면
앞의 사정도 함께 고려하는 한편
그런 행위가 그 이후 어떤 상태를 과보로 가져오기에
이 경우와 저 경우가 서로 다른가
이런 문제부터
좁고 짧고 얕게 대충 관찰하는 협단천 관찰 방식을 떠나서
생사현실의 사정을 넓고 길고 깊게 광장심 관찰방식을 통해 잘 헤아려 살펴서
그 양 경우가 갖는 가치의 차이액부터 일일히 잘 파악하고 살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수행의 기초다.
이 기초문제부터 해결되지 않으면
그 이후 내용은 아무리 살펴도 이해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단멸관을 취하는 입장에서도
짧게 현재의 생의 기간만 고려하는 가운데
그 기간 내에서라도 자신을 가치있게 만들려면
위 문제부터 잘 살펴야 한다.
그 다음 문제는
현실에서 자신의 가치를 아무리 주관적입장에서
400 조원 이상 무한까지 가치를 갖는다라고 평가한다해도
예를 들어 자동차 사고를 자신이 어느날 당해서
두 눈이 실명하고 손다리가 끊어졌다고 해서
1 조원을 지불하는 가해자나 보험회사는 없다는 사정부터 다시 잘 살펴야 한다.
그렇게 가치가 높은데
정작 그런 사고를 당하면
그런 가치를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 되는 사정이 있다.
이 사정을 이해하려면 다음 문제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
우선, 자신이 생각할 때
자신의 생명은 400 조원보다 훨씬 가치가 높은데
다른 이웃이 갖는 가치는 스스로 얼마라고 보고 평소 현실에 임하는가.
더 나아가 다른 닭이나 돼지나 소의 생명의 가치는 얼마로 보는가.
이런 문제에서 생명의 가치 판단문제가 어렵다고 한다면
단지 눈이나 손과 발은 어떤가부터 잘 살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자신이 볼 때
자신은 400 조원 이상의 가치를 갖고 우주보다 가치가 높다고 여기지만,
그러나 한편,
시장에서 요즘 닭 한마리가 만원이고
생선 값이 한 마리당 오천원인 것은
너무 가격이 비싸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이렇게 임하면 문제가 있다.
이것이 가치전도현상이다.
그리고 알고보면 자신이
어느 상황에서 오천원 이하로 취급받고
드럼통에 묻혀 바다에 버려지거나 하거나
또는 마이너스로 취급받고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극심하게 장구하게 겪게 되는 기본 사정은
자신이 현실에 위와 같이 임해서
그런 망집에 바탕해서 꾸준히 업을 계속 행해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그렇게 업을 행한 이들은 따로 그렇게 취급받는 것이고
그와 반대로 부처님처럼 임한 경우는 또 다르다.
그래서 예를 들어
모든 존재가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높은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중생이 끝내 성불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관하고 현실에 임하는 경우는
또 앞과는 그 반대가 된다는 그 사정부터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떤 수사관이 사회에 마이너스 가치를
자꾸 만들어 낸다고 보고 체포하고 감옥에 가두게 되는 이는
평소 앞처럼 자신의 이익만 앞세우는 가운데
다른 이를 무시하고 다른 이에게 피해를 극심하게 주는 이를 가려 체포하고자 하는 것이지
거리에 다니는 아무나 추첨해서 체포해 가는 것이 아니듯
3 계에서 3 악도에 처하는 중생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사정이 같은 것이다.
축사에서 갇혀 지내는 축생이 있다면
그 축생마다 생사과정에서 매번 추첨기를 잘못 돌려서
그렇게 축사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다.
mus0fl--Rejane - Bernard's Song.lrc
쉴 때마다 각 부처님 기지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그 때마다 듣는 불어노래에서
작성하는 조각글과 관련된 내용이나
수행과 관련된 내용을 메세지로 듣는다고 시감상하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보게 된다.
지금 올리는 곡도 그런 곡의 하나다.
그런데 사정이 있다.
이것이 현실의 망집현상과도 관련이 깊다.
원래 알고보면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도
그러나 그런 분별을 행하는 가운데 대하면
그런 각 부분이 그렇게 보여지는 현상이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각 장님마다 각기 달리 코끼리를 파악하게 되는 현상으로
이런 현실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하나의 벽돌을 놓고
한 사람은 사과라고 여기고 대하고
한 사람은 자신의 자식이라고 여기고 대하고
한 사람은 자신의 빚쟁이라고 여기고 대하고
한 사람은 자신의 선생님이라고 여기고 대하고
한 사람은 자신의 친구라고 여기고 대하고
이런 현상이 일반 현실 사정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에서 그가운데 한 주체가 앞과 같은 망집에 바탕해서
그 벽돌을 놓고 무언가를 행하게 되면
그 벽돌을 제각각 다 달리 여기며 대하던 각 주체가
이를 놓고 서로 다 함께 달리 얽혀가게 되는 상태가
바로 업을 행해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업의 장애현상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혹업고의 관계라고 보통 제시한다.
여기서 혹이란 표현은, 근본 무명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일으킨 망집 번뇌를 가리키는 표현이고
업은, 그에 바탕해 행하는 마음안의 뜻과 말과 행위 자세 태도를 가리키는 표현이고
고는, 그로 인해서 과보로 받는 3 악도의 장구한 생사고통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본래 바탕이나 재료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
그런데 왜 현실에서 각 주체는
어떤 경우는 축사에서 갇혀 지내고
어떤 경우는 재벌가의 아들로 지내고 이런 심한 차별을 보고
그 사연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여긴다면
우선 기초적으로 위 문제부터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정과 사연을 그렇게 만드는
그와 관련된 '4 연'이 과연 무엇인가.
이렇게 바꾸어서 경전과 논서를 먼저 잘 살펴나가야 한다.
앞에서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자신이 이번 생에 걸치고 임하는 옷이나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관하는 가운데
그와 관련된 감각상각비부터 잘 계산하고 임해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 이후 하나하나 행하는 업도
대단히 많은 수고와 노력을 거쳐서 행하는 것이다.
밤새 고민하고 계산을 하고 인과를 살피고
그런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수고가 얼마나 대단한가.
앞과 같이 대략 계산하면 하루에 감가상각해야 할 금액 자체를
100 억 이상 정도로만 대충 계산한다고 할 때
종합적으로 400 조를 넘고 우주보다도 높은 그런 막대한 가치를 갖는 한편,
우주 전체를 그 마음에 품고 임할 수 있는 어떤 주체가
그 마음에 오직 쓰레기 같고 쓸데없는 무언가를 망집에 바탕해서
초점을 맞춘 다음
그 100 억 정도의 감가상각비가 소모되는 하루나 이틀 이런 기간을
소모해가면서 밤새 고민해서 어떤 선택을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 자체가 이미 큰 희생이고 비용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비용부터 먼저 제거하라고 제시한 수행방안이
바로 무원무작 해탈문이다.
그가 처한 현실에서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 자체를 본래 얻을 수 없기에
그처럼 쓸모없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마이너스 손해만 받게 되는
희망을 붙잡고 추구하는 자체를 일체 삶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수행자가 임할 때는
대신 자비심을 바탕으로
그런 성격을 갖는 희망과는 정반대로
무량한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쌓고 또 쌓도록 이끌게 하고자 하는 무량한 서원을 갖추고
현실에 임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런 각 경우,
현실에 임하는 외관은 별 차이가 없을 수 있지만,
수행자의 자세와 망집에 바탕해 생사현실에 임하는 입장은
그 차이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처음 하루에 최소 100 억원 정도의 비용이 감가상각비 형태로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어떤 뜻과 어떤 말과 어떤 행위를 해나가야
최소한 그 비용을 넘는 가치를 얻어내는가 .
이런 생활퀴즈를 제출할 때
가장 쉽게 그 방안을 제출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신이 우선 그 우주 이상의 가치가 있는 상태가 되고
그리고 현실에서도 그런 가치를 갖는 존재로 평가받고 싶은가.
그리고 예를 들어 자신이 어떤 생사고통을 당하지도 않고
설령 그런 사고를 당하는 경우에도
가해자나 보험회사측으로부터 단돈 몇 백만원의 가치를 갖는 존재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자신부터 먼저 다른 생명을
자신 이상 대단히 높은 가치를 갖는 존재로 평소 관하고
대하는 것이 그 방안이라고 제시하게 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자신은 400 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데
자신 이외 다른 이웃은 많아야 300 만원
그리고 더욱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은
기껏해야 만원 이 정도 밖에는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자꾸 그런 바탕에서 자신만 내세우고 자신이 집착하는 좋음만 취하기 위해 임하면
이것이 바로 '나' 병 환자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쉽게 말해 대부분 사람이 그런 주체를 상대하게 되면
그 이후 교훈을 얻기를
그 주체를 피하는 것이 낫다.
또 그 주체가 사회에서 활동해서 다른 주체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되도록 일정 시설에 가두어 놓아야 한다
이렇게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설령 그런 상태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희희낙락하게 지내는 상태에서는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자신을 만나려 오는 것을 껴려 하는 한편
자신이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만한 상황에서는 귀찮다고 피하고
어딘가에 숨어서 혼자 즐겁게 지내려고 자꾸 임하면
자신은 좋다고 보겠지만,
이미 '나' 병에 걸린 상태로서
사회적으로는 암이나 기생충 세균 이런 형태로 평가받는 상태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자세로 꾸준히 업을 행하고 임하면
자신의 소원이 성취된 상태가
곧 '나' 병에 걸린 상태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 그렇게 자신만 생각하고
나, 나, 이렇게 임하면
그것이 바로 경전에서 극심한 독을 갖고
임하는 '나' 병 환자가 처하는 상태가 되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것을 기초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큰 문제다.
그리고 '나' 병도 문제지만,
그 범위를 아무리 넓힌다 해도
어떤 주체가 고려에 넣는 범위가 닫혀 있고
온 생명을 제한없이 모두 최상의 상태로 이끌겠다는 서원의 형태가
되지 않으면
위 '나' 병 증세는 점점 증폭된다.
어떻게 보면 처음 '나'만 좋으면 된다고 여기면서
'나'에 집착하고 임하는 상태에서
조금 더 나아가 '나'의 자식
'나'의 가족 '나'의 단체...
이런 형태로 나아가면 이전보다 상태가 좋아진 것 처럼 여길 수도 있는데
그 바탕이 처음 문제라고 보는 그런 망집에 바탕한 이상
그 증상과 부작용은 더욱 극심해지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쉽게 그 사정을 이해하면
그냥 나 혼자 잘 살면 된다는 증상도 그 부작용과 독이 심하지만,
이런 환자가 나중에 '나의 민족' '나의 인종' 이러면서
히틀러처럼 변신해서 현실에 떡 임하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그 피해가 천문학적으로 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가 발생하는 성격은
처음 '나' 병이 발생하는 그 성격과 같다.
그래서 이런 바탕에서 일으키는 온갖 희망을
제거하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다.
그것이 무원무작 해탈문의 내용이다.
이렇게 수행에 임하면
일단 그런 업으로 겪게 될 무한한 기간의 생사고통이 일단 제거되게 된다.
그래서 막대한 가치를 기본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다시 부가가치를 얻어내려면
앞과는 반대로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 병에 걸린 환자는
이 증상을 다시 '남' 병 형태로 옮기기 쉽다.
'나' 병이나 '남' 병이나 '우리' 병이나
그 부작용과 독이 사실 마찬가지다.
사정이 그렇기에
이 증상이 처음 어떤 과정으로 발생하는 것인가 부터
잘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처방전을 잘 취해서 수행에 임해야 한다.
금강경에서 무량한 중생을 본래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무량한 중생을 그 형태나 종류에 관계없고 차별없이
모두 제도하겠다. 이렇게 서원을 갖고
얻을 바없음(무소득)을 방편으로
현실에서 상에 머물지 않고
무량하게 좋음을 베풀면서
수행에 임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사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무엇때문인가?
앞에 살핀 것과 같이 '나' 병의 독을 없애는 것은
'남' 병에 새로 걸리는 것이 아니고
아상과 타상을 모두 제거해서
앞과 같이 임하는 것이 그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하고
얻을 수 없는 가운데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가장 좋고 좋은 상태를
이끌어 내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량한 중생에게 무량한 좋음 베풀고
생사의 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 수행자는
그런 제도를 하고 보시를 하는 자신이나,
그런 제도를 받고 보시를 받는 상대나,
그런 보시를 하는 물건이나
그런 제도나 보시 행위 자체를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잘 관하고
그런 바탕에서 집착을 제거하고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위와 같은 수행을 정진해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즉, 본래 얻을 수 없고 공한 바탕에서
그래서 공수래 공수거인 바탕인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좋고 좋음을 얻어내려면
자신의 자세부터가 그렇게 변화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한 단계 한 단면만 놓고 보면
현실에서 그렇게 문제삼는 내용과 각 주체를
본래 얻을 수도 없다는데
다른 중생을 자신이 일일히 고려할 필요가 무엇인가.
그리고 또 자신이 자신만 집착하며 임하면 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렇게 잘못 생각하면서
'나'만 고집하며 임하면,
당장 자신이 추구하는 좋음을 많이 얻어낼 수 있다고 여기기 쉽지만,
광장심 관찰을 통해 이를 살피면,
그것은 현실에서 교도소나 병원 중환자실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치피 공한 바탕에서 동가홍상의 원칙에 따라
자신이 높은 가치를 갖는 상태로 나아가려면
자신부터 먼저 다른 생명을
높은 가치를 갖는 상태로 관하는 한편
생사현실 안에서도
이들 다른 중생들을 하나같이 더 높은 가치를 갖는 상태로
늘 이끌려고 임해야 햔다.
그러면 부수적으로 자신이 얻는
복덕과 수명과 지혜가 무량하게 쌓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수행자는 이렇게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쌓는 것이
생사현실에 임하는 본 목표도 아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제시하듯,
수행자는 이런 복덕에도 역시 집착을 갖지 않고 취하지 않는다.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취하는 그 모든 방편은
끝내 각 주체가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근본 무명과 망집을 제거해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런 바탕에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해서
성불에 이르게 하는 상태를 향하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부처님도
그런 깨달음의 내용을 열어서, 보이고,
중생들이 깨닫게 해서
그런 상태로 들어오게 하고자 하는 취지인 것이다.
글을 더 적고 싶은데 이미 많이 길어졌다.
모든 생명에게 아름답다고 평가받고 싶다면
자신이 먼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평소 대하듯,
다른 생명을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여기는 한편
현실에서 아름답다고 보는 그 무엇을 다른 생명에게
계속 공급하고 공양을 먼저 해야 한다.
하다 못해 꽃이라도 무량하게 공양해야 된다.
이렇게 제시한다.
그러면 왜 그런가.
자신을 그렇게 대해준 이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세상에 자신의 어머니 외에 그런 헌신적인 노력을 해준 이는 별로 없다.
그런 사정으로 자신이 아름다움의 심사관이 되어서 현실에 임하면
자신의 어머니가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늙고 병들어서 추해 보여도
자신의 눈에만은 지극히 아름답다고 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이상하지 않은데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사실 부족하다.
세상에 고슴도치 어머니도 자신의 자식은 아름답다고 평가하는데
그것을 가지고 수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이치는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그래서 모든 생명을 놓고 그런 자세로 수행자는
임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예를 들어
자신이 무한한 보배를 집에 쌓아 놓고 있고
자신을 경호하는 이를 하나도 두지 않고 금고가 없다고 해도
세상에서 아무도 자신의 보물을 훔치려고도 하지 않는 가운데
그러나 늘 평안하면서도 풍요롭고 존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신이 상당히 풍요로운 상태인 것 같기는 한데
상태가 그렇지 않아서
자신만 혼자 좋다고 여길 뿐
사정을 보면 늘 불안하고 걱정과 번뇌는 무량하고
마음은 불쾌와 고통에 가득한 상태라고 한다면
남들이 볼 때는 큰 감옥에 갇혀서 지내는 것과 상황이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자세로 평소
생사현실에서 임하기에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A 라는 좋은 상태를 자신이 다른 이들로부터 얻고
그런 평가를 받으려면
자신부터 온 생명을 상대로 그런 좋음을 베풀고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끔 하도록 하기 위해
먼저 노력하고 임해야 한다.
이런 의미다.
그리고 그것이 수행의 핵심이 된다는 의미다.
조금 더 적고 싶지만,
일단 마치기로 한다.
오타가 많아 보이는데 시간이 나면
다시 정리하면서 보충도 하고
수정하기로 한다.
◈Lab value 불기2562/12/02/일/13:31 |
>>> 서진 286 컴퓨터를 당시 이용한 것으로 나온다. 이렇게 잠시 전에 새로 생긴 소원을 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앞에 학교 윤리선생님이 윤리시간에 강의할만한 내용을 |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269#6721 불기2562-12-02 θθ |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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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Giovanni-Battista-Piranesi-view-of-main-facade-of-the-trajan-column-six-boards-together-1.jpg!HD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sa_fax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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