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마음으로는 하루에 경전 50 권씩 읽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하루가 다 갈 즈음 확인해보면 10 권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정작 하루를 마칠 때 확인해보면 그날 읽었던 내용들도 잘 안 떠오르고 경 제목조차 안 떠오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노력은 하지만 힘들다.
경전 내용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 수행의 전부가 아니지만, 일단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현실에서 그 내용들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어떻게 보면 약국에서 수많은 약을 진열하여 환자를 상대로 약을 조제하는 약사의 입장을 수행자로 놓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면 자신에게 필요한 어떤 한 경전을 붙잡고 계속 깊게 연구 수행 실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지만, 다른 이를 제도해서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목표일 때는 수많은 경전에 각기 어떤 내용이 있는가를 그 제목과 함께 간단하게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최근 SNS 에서 활동하다가 SNS 활동은 중지했다. 그것은 결국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어 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만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내용을 올리면 외면받거나 때로는 심한 항의를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다라니 중에서 가장 간단한 다라니라고 할 문수보살님 5 자 진언 아라바자나의 내용을 소개했다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아니 다라니 가운데 가장 간단한 5 자 다라니가 복잡하고 어렵다면 어떻해야 하는가. 그런데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 결국 부처님도 경전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3 해탈문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도 하고 깊은 요의경은 함부로 펼치지 말라고 당부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사정은 일반적으로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모르게 되면 쉽게 비방을 하게 되기 쉬운데 이러면 상대를 도우려는 뜻에서 내용을 소개하다가 거꾸로 상대를 3 악도에 떨어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기 쉽다.
그런데 상대에 눈높이를 맞추어 임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인터넷 상황에서는 불특정한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또 한편, 수행자 입장에서는 자신도 수행해서 성취해야 할 부분이 대단히 많다. 비록 일반 입장에 비해서는 조금 경전 내용을 많이 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 내용을 속속들이 잘 이해하고 또 그 내용을 원만히 잘 성취한 상태는 아니다. 결국 그래서 수행자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해야 할 부분이 수행자 나름대로 또 쌓여 있다.
이런 가운데 경전 연구에 임하는데 하루에 경전을 살피고 나서 일단 어떤 경전에 어떤 내용이 있다. 이 정도만이라도 기억에 남으면 대단히 좋을텐데 그것부터가 쉽지 않다. 경전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것이 수행자의 오락거리로 되지 않으면 수행 과정 자체가 대단히 고통스럽게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수행자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그렇게 되야 한다. 그런데 수행자만의 외로운 나홀로 놀이 방안으로만 그치면 안 되므로 이 내용을 다시 일반적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인가를 놓고 방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알고보면 수행자가 무량겁에 걸쳐서 생사현실에서 행하게 되는 수행 내용의 대부분이 된다.
그런데 여하튼 조각글에 이런 수다성 글을 올리는 시간이 사실 수행자의 쉬는 시간이기도 하다.
연구실에서 비닐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이것을 다시 큰 비닐봉지에 담아서 재활용쓰레기로 내 놓게 되는데 봉지 윗 부분을 테이프로 붙여서 버리는 경우와 그냥 봉지 윗 부분을 묶어서 버리면 부피가 2/3 정도가 되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테이프가 많이 있기에 붙여서 버리는 방식을 사용하자고 하는데 매번 다른 연구원들은 쉽게 묶어서 버리려고 한다. 이것이 수년째 반복된다. 사실 각 입장이 장단점이 있다. 그런데 이 두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50 원의 1/3 정도의 의미 밖에는 없다. 잘 계산이 안 되지만, 각 방법의 차이는 대략 17 원 정도의 차이 밖에는 없다. 그런데 사실 비닐 쓰레기를 처리할 때 프락스틱 재질로 된 빈 물병처리도 문제된다. 이것을 발로 눌러 납작하게 만들어 처리하면 한번에 많이 담을 수 있다. 그런데 그냥 통통하게 처리하면 부피를 많이 차지한다. 이것도 계산을 안해봤지만, 결국 비닐봉지 비용 정도를 놓고 방법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비닐봉지를 조금이라도 아껴 사용하고 부피를 줄이려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빈 플라스틱 병마다 마개를 열고 밟아서 납작하게 만드는 것도 일이고 하나의 큰 비닐봉지에 눌러서 다 채우고 테이프로 붙이는 것도 일이다. 17 원을 아끼기가 쉽지 않은데 거기에 들어가는 노력이 만만치 않다.
결국 누가 현명한가를 놓고 생각하면 그런 17 원 짜리 문제는 무시해 외면하고 빨리 처리하고 성취해야 할 연구에 더 전념하는 것이 낫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본인은 조금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 성장해서 그런지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데 쉴 때 이런 것을 붙잡고 끙끙거리곤 한다. 목표는 되도록 하나의 비닐봉지에 최대로 재활용 비닐을 많이 넣어서 처리하자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대략 30분 노력해 17 원 정도를 절약하게 된다.
알고보면 별것 아닌데 매번 대충해서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으려는 다른 연구원들이 신경이 쓰인다. 생각해보면 17 원짜리 문제여서 어이없어 웃음도 나오지만, 매번 거기에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현실에 이런 성격의 문제가 많다.
경전에서 강조하는 것은 현실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그래서 죽고 사는 것처럼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대하는 모든 현실 문제에 대해서 그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고 집착을 가질만한 것이 아님을 제시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황제나 왕이 초점을 맞추고 대하는 문제를 놓고 생각해보자. 전쟁을 해서 옆 나라 영토를 빼앗아 차지할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뺏기면 어떡하나 이런 문제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의 입장은 이런 왕에게 그것이 그런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것이 아님을 일깨워서 생사에 묶이지 않고 우선 3 악도에 들어가지 않게 하고 그리고 장차 완전히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방안을 실천하도록 하는데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부처님이 왕을 상대로 하는 법문은 대부분 삼해탈이나 공에 대한 어려운 법문이 아니고 현실에서 대하는 것이 영원하지 않고 무상하다. 실답지 않다. 이 정도에서 법문을 하시는 것을 반복해 살필 수 있다.
그것은 왕이 세간에서 대단히 현명하고 최상의 위치에 있다고 보지만, 그러나 수행부분에서는 일반인 수준인 한편, 대단히 설득하기 힘든 성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왕을 잘못 설득하면 세간에서 대단히 위험에 처하는 것이 또 생사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대단히 바쁘고 번뇌가 많은 상태인 왕을 상대로 왕이 이해하기 힘든 법문을 가지고 왕을 설득하지 않고 대단히 이해하기 쉬운 상식적인 내용을 통해서 왕이 갖는 집착을 제거하고 수행에 진입할 수 있도록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은 현실 대부분에 적용된다.
최근에 현실에서 대하는 그 일체가 실답지 않다는 것을 비유로 제시하는 경전을 살폈다. 경전을 보다보면 이런 비유가 많이 반복되는데 한번 정리하지 않으면 조금씩 혼동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혼자 정리한 다음에 다른 연구원을 상대로 전수하려다가 봉변을 당했다. 대단히 싫어한다. 한마디로 골치 아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내용은 이것이다. 현실 일체를 구성하는 것을 분류하면 크게 색수상행식으로 분류해 여기에 모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런데 색은 물거품덩이[취말]와 같다.
수는 물방울[수포]과 같다. 상은 아지랭이[야마]와 같다. 행은 파초와 같다. 식은 환사의 환술과 같다.
이렇게 해서 현실에서 자신과 외부 세상으로 여기고 대하는 그 일체가 집착을 가질만큼 실다운 것이 아님을 이해시키는 것이 이 경전의 핵심 내용이다.
물론 자세히 보면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깨닫고 집착을 버리게 하는 데에는 두가지 측면에서 내용과 방향이 다르다.
현실에서 대부분 99% 집착을 갖고 대하는 것은 위처럼 관하고 그에 대해 행하기 마련인 반응을 끊고 중지해야 한다. 이 내용이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99% 현실에서 1차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위 내용은 다시 다음 내용도 의미한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생사현실 안에서 자신을 생사고통에 묶어 두게 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하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계, 정, 혜 수행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비록 현실에서 그것을 행하기 힘들게 여기게 되지만, 그러나 그 상황과 그 수행에 대해서 역시 위와 같이 실답지 않음을 잘 관하여서 그것을 대단히 즐겁게 잘 성취해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는 것은 일체가 마찬가지인데 그런 상태에서 생사고통을 증폭시키게 하는 측면[ 일반 현실의 99% ] 에서는 이를 통해 집착을 제거하고 => 그런 반응을 중지하고 행하지 않게 하는 방향으로 사용하고
그런 상태에서 그 이전에는 [ 일반 현실의 99% ] 에서는 거의 행하지 않는 수행부분에서는 이를 통해 집착을 제거하고 => 그런 수행을 대단히 즐겁게 잘 성취하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
한쪽만 잘못 이해하면 뒷 부분에서 혼동할 수가 있다.
즉 실답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자신은 수행을 행하지 않겠다. 이렇게 임하기 쉽다. 그러면 실답지 않은 가운데 대단히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3 악도에 매번 처해서 위 내용을 적용해야 하는 상태가 된다. 즉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데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예를 들어 남자 입장에서 아름다운 여자에 대한 유혹이 있다면 이런 경우 앞의 내용을 적용해서 그 상대가 닿기만 하면 곧바로 전염되어 심각한 불치병에 걸리는 중증 전염병 환자처럼 여기고 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경우 색은 더러운 하천에 일어난 물거품 취말처럼 냄새나고 혐오스런 물거품으로 관하고 끊고 벗어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상황 자체는 본래 차별이 없지만, 자신이 도움을 줘야 하는 누추하고 더러운 옷을 입고 가난하고 병든 어떤 할머니가 있다면 이와는 반대로 임해서 이 현실 상황은 알고보면 취말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고 반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는 앞과는 반대로 아름답고 깨끗한 강가에 일어나 영롱하고 향기로운 취말처럼 관하면서 도움을 줘야 하는 할머니를 상대로 잘 베풀고 계, 정, 혜 수행을 이런 자세로 원만하게 잘 성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이 두 내용을 함께 제시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앞 부분이 가장 먼저 급하다. 그래서 기본 경전에서는 앞 부분만 강조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사정이 위와 같다는 것을 미리 잘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현실에서 대단히 실답게 여겨지고 단단하게 여겨지는 자신의 몸이나 세상 일체의 내용을 놓고 왜 그것이 물거품과 같다고 제시하는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아무리 가까운 연구원이라고 해도 짜증을 내게 마련이다. 일단 실험을 해보면 대부분 상태가 비슷하다.
그래서 굳이 필요하다면 일체가 다 무상하다 이정도만 제시해서 집착에 바탕해 행하던 반응을 중단하게 하는 정도로 만족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에 한 개인의 고정자산이 469 조원을 초과한다는 내용을 반복했다. 이것은 한 개인이 제각각 자신의 생명과 신체는 우주보다 가치있다고 여기고 현실에 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주의 가치가 현금액으로 얼마 정도라고 할 것인가를 놓고 여하튼 최소한 한 국가의 1년 예산액보다는 높지 않겠는가하고 469 조원을 초과한다고 일단 숫자로 바꿔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내년 예산액을 500 조원을 초과하는 530 조원 정도로 예상한다는 보고를 받고 이 금액도 일단 500 조원 정도로 올려 표현하기로 했다. [참고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9/08/625952/ ]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비록 살아 있을 동안은 제각각 자신의 가치가 그렇게 높다가 주관적으로 평가하지만, 생사과정에서 그것이 모두 허무화된다는 점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행사를 치뤄야만 하는 행사 중에 대부분 꺼리면서도 끝내 피하지 못하는 행사가 결국 자신의 장례식이고 장례식을 마치고 화장터나 매장지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그 이전에 가졌던 자신의 신체나 자신의 재산을 다시 다음 순간에까지 이어 사용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이 평가한 고정자산은 감가상각처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자신이 어린 시절 살던 집이나 학교가 있다고 할 때 자신이 십년이 지나 그 곳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면 모르는데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곳이 그대로 남아 있지도 않지만, 남아 있더라도 대부분 사용하지 못한다.
생사현실이 이와 같다. 그런데 대부분 자신이 직접 그 행사를 치루기 전까지는 그런 사정을 고려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구나 이 행사를 피할 수 없고 그리고 그 대부분 같은 상태에 처한다. 따라서 마치 1 억원에 구입한 자동차로 영업을 하는 이가 5 년 영업하고 폐차를 시킬 때 그간 번 수익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렇게 폐차시키는 자동차 가격을 미리 감가상각처리해서 고려를 해야 마땅하다. 일단 폐차가 되기 전까지는 외형상 자동차가 계속 유지되고 보인다고 해서 이 감각상각비를 미리 고려하지 않고 임하면서 5 년간 그 자동차로 4 천만원을 수익으로 거두었다고 해도 5 년지나 1 억원에 구입한 자동차를 폐차처리하고 다시 새차를 구입해 영업을 계속해보려고 하면 4 천만원을 번 것이 아니라 6 천만원 정도 손해를 본 것임을 그 때가서 이해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생사현실도 잘 회계계산을 하고 임해야 한다.
자신이 결국 언제가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장례식을 치루고 그간 소중하게 여겼던 자신의 신체나 재산 가족을 모두 놓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면 결국 마찬가지 상황에 처한다.
이런 가운데 아무리 길어도 100 년을 살지 못하기에 500 조원을 기준으로 감가상각처리하면 평균잡아 1 년당 5 조원 초과하는 비용씩 감가상각비용이 없어지는 상태다. [하루당 136 억 초과 / 시간당 5.7 억 초과]
일단 지금은 손과 발이 자신 뜻대로 움직이고 상황이 별로 문제가 없기에 희희낙락하면서 태연하게 임할 수 있지만, 100 년안에 자신이 장례식의 주인공이 되어 행사를 치뤄야 한다. 그래서 외관상은 표시가 안 나지만, 1 년당 5 조원을 초과하는 비용이 사라져가는 상태임을 뚜렷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신체 사용년한이 50 년을 넘은 상태는 좀 더 진지하게 이 문제를 대해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하루 중에 비닐봉투 50 원짜리를 놓고 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한 시간을 노력한다면 그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가가 문제된다.
그런데 앞에도 적었지만, 평소 습관상 자꾸 그렇게 임하게 되는 경향이다.
연구실에서 사다 놓는 비닐봉투가 자꾸 없어져가기에 연구원들에게 매번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이 주의를 매번 무시하는 연구원이 있다. 숙왕화님이다.
오늘도 보란듯이 비닐쓰레기를 대충 묶어서 3 봉투나 앞에 내놓았다. 밖에까지 갔다 놓으면 신경을 쓰지 않을텐데 마치 보란듯이 연구실 앞에 그렇게 처리해 놓고 사라졌다. 이것이 대략 몇 년동안 반복되는 일이다. 그래서 조금 짜증이 나지만, 생각해보면 누가 더 어리석은가.
그런데 현실에서 시간당 몇백억원을 초과하는 감가상각비용을 없애가면서 그 시간에 이런 50 원짜리에 초점을 맞추고 신경을 쓰게 되는 사정이 있다. 우선 자신의 상황에서 매 시간 자신이 소모해 없애는 가치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점도 있지만, 또 한편 그런 가치를 소모해가면서 향해 나아아갸 할 커다란 가치를 자신이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주를 가득채울 수 있는 마음에 결국 50 원짜리 가치만 가득 채우고 하루를 보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에서 50 원 짜리에 초점을 안 맞추고 대신 초점을 맞출 문제로 무엇들이 있는가.
다음 문제를 놓고 생각해야 한다. 우선 자신이 화장터에 들어가고 난 후 자신과 관련해 생각할 문제가 전혀 없는가. 없다면 위 내용만을 잘 적용하고 그쳐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다음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잘 생각해야 한다.
경전에 제시하는 것처럼 자신이 화장터에 들어간 후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아니고 다음에 맞이 하는 다음 생이 있다.
그래서 이를 놓고 다시 분단생사과정과 변역생사과정의 차이를 또 고려해야 한다.
수행자가 무량겁에 걸쳐 생사를 받고 수행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 가운데 다만 중생제도를 위해 필요상 생사현실에 들어간다는 경우로서 이는 변역생사과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분단생사과정이란 결국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업의 장애에 묶여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생사를 받아가는 형태로서 결국 생사과정에서 포맷 조치를 당하고 매생마다 생을 새로 시작하는 형태의 생사윤회를 말한다. 그래서 분단생사과정은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생사과정마다 0 처리가 된다고 보아야 하고 앞에 제시한 감각상각이론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다시 다음 생에서 받는 생명의 형태에 따라 또 평가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선 자신이 다음 생에 개나 닭 소로 태어나 한 생을 축사에서 지내야 하는 경우와 그 반대로 자신이 다음 생에 어떤 하늘에서 태어나 평안하게 길게 복락을 누리고 지내는 경우를 놓고 그 차이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선 앞에서 제시한 500 조원 초과하는 고정자산이란 평균적으로 대충 참을만하게 인간으로 살아갈 때 평가한 자신의 신체에 대한 고정자산 평가액이 그렇다는 의미다.
그러나 개나 닭 소로 한 생을 지내는 것과 인간으로 지내는 것 하늘에서 지내는 것을 놓고 비교하면 이 각 상태는 다시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지옥과 같은 어떤 경우는 무량한 마이너스의 상태로 평가하고 또 반대로 하늘과 같은 경우는 무량한 플러스의 상태로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이 각각의 차이가 현격하다.
그런 가운데 수행자가 자신을 놓고 수행을 통해 업의 장애를 제거 해소하여 생사의 묶임에서 기본적으로 벗어나고 기본적으로 변역생사과정을 받는 상태로 전환시켜서 일단 처음에 살핀 감가상각비용문제에서 벗어난다고 해보자. 이는 우선 감가상각비용액으로 책정한 숫자 만큼 일단 가치가 있는 일이다.
즉 일반적으로 500 조원 초과한다고 평가한 자신의 고정자산이 자신이 화장터에 들어가면서 기본적으로 0 이 되는데 자신은 그런 상태가 되지 않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 다음 이어지는 생의 상태가 갖는 차이를 더해서 무량한 복덕과 무량한 수명과 무량한 지혜를 구족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한편으로 자신의 상태를 위처럼 높은 가치를 갖는 상태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시 그런 수행 활동을 통해서 다른 중생을 그런 상태로 이끌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고 다시 무량한 복덕과 수명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하면 그 가치는 다시 더욱 증대한다.
어떤 활동을 통해서 없어질 17 원을 없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17 원 만큼의 가치가 있지만, 어떤 활동을 통해서 어느 시점에 없어질 500 조원 초과하는 자산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보전유지하고 다시 어떤 활동을 통해서 그렇게 없어질 500 조원 초과하는 자산을 역시 계속 이어가게 이끌고 더 나아가 무량한 마이너스 상태로 들어갈 다른 생명을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반대로 무량한 플러스 무량한 복덕 수명 지혜를 구족하는 상태로 이끌 수 있다면 그것이 갖는 가치는 무량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향의 서원과 희망이 자신의 평소 마음에 가득차 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상식적으로 17 원짜리 문제가 자연스럽게 외면되고 무시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에 그런 내용이 차 있지 않으면 17 원 짜리가 자극하면 거기에 끌려가고 또는 1 원 짜리가 자극해도 거기에 끌려가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