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반야심경
- 증일아함경
- 유마힐소설경
- 무량의경
- 종경록
- 장아함경
- 방광반야경
- 마명
- 묘법연화경
- 잡아함경
- 가섭결경
- 정법화경
- 대방광불화엄경
- 금강삼매경론
- Japan
-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 중아함경
- 대지도론
- 백유경
- 수능엄경
- 대방광불화엄경60권본
- 대반열반경
- 대반야바라밀다경
- 유마경
- 대승기신론
- 마하승기율
- 마하반야바라밀경
- 원각경
- 아미타불
- 유가사지론
- Since
- 2551.04.04 00:39
- ™The Realization of The Good & The Right In Wisdom & Nirvāṇa Happiness, 善現智福
- ॐ मणि पद्मे हूँ
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7-21_중아함경-K0648-051 본문
『중아함경』
K0648
T0026
제51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중아함경』
♣0648-051♧
제51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중아함경 제51권
승가제바 한역
16. 대품 제2②
194) 발타화리경(跋陀和利經)1) 제3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서 큰 비구들과 함께 여름 안거를 지내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한 자리에서 먹고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몸에는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도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한 자리에서 먹기[一坐食]를 배워야 한다.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몸에는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도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 존자 발타화리(跋陀和利)2)도 또한 대중 가운데 있었다.
이에 존자 발타화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한 자리에서 먹기를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후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 먹기를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만일 내가 청을 받았을 때에 너도 또한 나를 따라오면
나는 너에게 한 자리에서 먹을 음식을 가져갈 것을 허락하리라.
발타화리여,
그렇게 하면 너는 유쾌하게 생활할 수 있으리라.”
존자 발타화리가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그렇게 하시더라도 저는 또한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은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만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후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만 먹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재삼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몸에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도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한 자리에서 먹기를 배워야 한다.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몸에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도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게 되리라.”
존자 발타화리도 또한 재삼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후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은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세존께서도 다시 재삼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만일 내가 청을 받았을 때에
너도 또한 나를 따라오면
나는 너에게 한 자리에서 먹을 음식을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리라.
발타화리여,
만일 그렇게 하면 너는 유쾌하게 생활할 수 있으리라.”
존자 발타화리도 또한 재삼 아뢰었다.
“세존께서 그렇게 하시더라도 저는 다시 한 자리에서 먹는 것만은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후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위하여 한 자리에서 먹는 계율에 대하여
자세하게 말씀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그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웠다.
그러나 오직 존자 발타화리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왜냐 하면 그는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자 발타화리는
드디어 숨어서 한 여름 동안 세존을 만나지 않았다.
왜냐 하면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무렵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을 위하여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셨고 석 달을 지낸 뒤에 의복을 기우셨다.
그런 뒤에 가사를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장차 세상에 나가 돌아다니려고 하셨다.
존자 발타화리는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을 위해 가사를 만들고
세존께서는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고
석 달을 지낸 뒤에 가사를 기우시고
그 가사를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장차 세상에 나가 행각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존자 발타화리는 그 소식을 듣고 여러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모든 비구들은 멀리서 존자 발타화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이렇게 말하였다.
“현자 발타화리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부처님을 위해 짓는 가사이다.
세존께서는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셨다.
석 달을 지낸 뒤에 가사를 기우시고
그 가사를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장차 세상에 나가 행각하려 하신다.
발타화리여,
너는 마땅히 스스로 거기 가서 몸을 잘 지켜
조심하여 뒷날에 번민과 괴로움을 가져오게 하지 말라.”
존자 발타화리는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참으로 잘못하였습니다.
제가 참으로 잘못하였습니다.
바보 같고 어리석었으며 멍텅구리 같고 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서 먹는 계를 널리 말씀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드는데
오직 저만이 감당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었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많은 비구와 비구니들이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알고 나를 보았다.
그들은 ‘발타화리라고 하는 비구는 세존의 제자로서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너는 그 때 그것을 몰랐다.
발타화리여,
너는 그 때 그런 사실을 몰랐느냐?
또 발타화리여,
많은 우바새와 우바이들이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알고 나를 보았다.
그들은 ‘발타화리라는 비구는 세존의 제자로서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너는 그 때 그것을 몰랐다.
발타화리여,
너는 그 때에 그런 사실을 몰랐느냐?
또 발타화리여,
많은 이교도의 사문 범지들이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알고 나를 보았다.
그들은 ‘발타화리라는 어떤 비구는 사문 구담의 제자로서 이름과 덕망이 있으면서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너는 그 때 그것을 몰랐다.
발타화리여,
너는 그 때 그런 사실을 몰랐느냐?
발타화리여,
내가 만일 구해탈(俱解脫)을 한 어떤 비구에게 말하기를 ‘너는 와서 이 진탕에 들어가라’고 한다면 발타화리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내가 그 비구에게 명령하였는데 그 비구가 과연 가만히 있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피해 가겠느냐?”
“아닙니다.”
“발타화리여,
만일 어떤 비구가 비록 구해탈은 아니더라도 혜해탈(慧解脫)이 있거나
비록 혜해탈은 아니더라도 신증(身證)이 있거나
비록 신증은 아니더라도 견도(見到)가 있거나
비록 견도는 아니더라도 신해탈이 있거나
비록 신해탈(身解脫)은 아니더라도 법행이 있거나
비록 법행(法行)은 아니더라도 신행(信行)이 있는 자인 경우에
내가 그에게 말하기를 ‘
너는 와서 이 진탕에 들어가라’고 한다면 발타화리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내가 그 비구에게 명령하였는데 그 비구가 과연 가만히 있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피해 가겠느냐?”
“아닙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너는 그 때에 신행ㆍ법행ㆍ신해탈ㆍ견도ㆍ신증ㆍ혜해탈ㆍ구해탈을 얻었는가?”
“아닙니다.”
“발타화리여,
너는 그 때 빈집과 같지 않았더냐?”
이에 존자 발타화리는 세존 면전에서 직접 꾸지람을 듣자
마음속에 근심과 슬픔을 품고 머리를 떨어뜨려 잠자코 변명할 말이 없었으나 무엇을 물으려는 듯하였다.
이에 세존께서 존자 발타화리를 면전에서 직접 꾸짖기를 마치시고 다시 그를 기뻐하게 하려고 곧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너는 그 때에는 내게 대해서 법을 믿는 생각이 없었고 법을 사랑하는 생각이 없었으며 법에 대해 논쟁하려는 생각도 없었다.
어째서 그런 줄 아는가?
내가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서 먹는 계를 자세하게 설명하자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우는데
오직 너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었다.
왜냐 하면 구족계와 및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자 발타화리가 아뢰었다.
“실로 그렇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께서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서 먹는 계를 자세히 설명하셨을 때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우는데
오직 저만이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저의 잘못을 용서하옵소서.
저는 이 잘못을 안 뒤에는 스스로 뉘우치고 지금부터는 조심하여 다시는 범하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그와 같이 너는 참으로 바보 같고 어리석었으며,
멍텅구리 같고 착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내가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서 먹는 계를 자세히 설명하자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우는데
오직 너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하였던가?
너는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타화리여,
만일 네가 너에게 있는 허물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지금부터는 조심하여 다시는 범하지 않는다면 발타화리여,
만일 그렇게 하면
이 거룩한 법과 율에 있어서 이익이 있고 손해는 없을 것이다.
만일 네가 너에게 있는 허물을 보거든
스스로 뉘우치고 지
금부터는 조심하여 다시는 범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발타화리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혹 어떤 비구는 계를 배우지 않고 그는 일 없는 곳이나 숲속이나 나무 밑에 살기도 하고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기도 한다.
또 그는 멀리 떠난 곳에서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증상심(增上心)을 얻어 현세에서 즐겁게 산다.
그는 멀리 떠난 곳에서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안온하고 쾌락해진 뒤에는 세존의 계를 모함하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모함하고 비방하며,
또한 스스로의 계도 모함하고 비방한다.
그는 세존의 계를 모함하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모함하고 비방하며 또한 스스로의 계를 모함하고 비방한 뒤에는 곧 즐거움을 내지 않게 된다.
즐거움을 내지 않은 뒤에는 곧 기쁨을 내지 않게 되고 기쁨을 내지 않은 뒤에는 곧 몸을 쉬지 못하고 몸을 쉬지 못한 뒤에는 곧 편안함을 깨닫지 못하며 편안함을 깨닫지 못한 뒤에는 곧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다.
발타화리여,
그 어진 제자는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뒤에는 곧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느니라.
발타화리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혹 어떤 비구는 구족계를 배우고 그는 일 없는 곳이나 숲이나 나무 밑에서 살거나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는다.
또 그는 멀리 떠난 곳에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증상심을 얻어 현세에서 즐겁게 산다.
그는 멀리 떠난 곳에서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안온하고 쾌락해진 뒤에는 세존의 계를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의 계도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는다.
그는 세존의 계를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의 계도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은 뒤에는 곧 즐거움을 내게 된다.
즐거움을 낸 뒤에는 곧 기쁨을 내며 기쁨을 낸 뒤에는 곧 몸을 쉬고 몸을 쉰 뒤에는 곧 편함을 깨닫고 편함을 깨달은 뒤에는 곧 마음이 안정된다.
발타화리여,
그 어진 제자는 마음이 안정된 뒤에는 곧 사실 그대로 보고 사실 그대로 알며,
사실 그대로 보고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곧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떠나 각(覺)과 관(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1의 증상심(增上心)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를 곧 현세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여 열반에 오르게 하느니라.
그는 다시 거기서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하여 한 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2의 증상심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를 곧 현세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여 열반에 오르게 하느니라.
그는 다시 거기서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3의 증상심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것은 그를 곧 현세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락하고 쾌락하게 하여 열반에 오르게 한다.
그는 다시 거기서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4의 증상심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것은 그를 곧 현세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여 열반에 오르게 하느니라.
그는 이와 같이 선정을 얻고 마음이 청정해져 더러움도 없고 번뇌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게 잘 머무르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 과거를 기억하는 숙명지(宿命智)의 신통을 깨달아 스스로 체험한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행을 하고 어떠한 모양이었는지 한량없는 과거에 겪었던 일을 다 기억한다.
곧 1생ㆍ2생ㆍ백생ㆍ천생과 성겁(成劫)ㆍ패겁(敗劫)과 한량없는 성겁ㆍ패겁 동안에 그 중생들의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또 그가 옛날에 겪은 일,
곧 ‘나는 거기에 태어나 어떤 성과 어떤 이름으로서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으며,
얼마큼 오래 살고 얼마큼 오래 머물렀으며,
어떻게 목숨을 마쳤다’는 것과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에 난 것을 다 기억한다.
또 ‘나는 태어나 이 세상에서는 어떤 성과 어떤 이름으로서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으며 얼마큼 오래 살고 얼마큼 오래 머물렀으며 어떻게 목숨을 마쳤다’는 것을 다 기억한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이 제1의 명달(明達)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는 본래 방일함이 없이 멀리 떠난 곳에서 살기 좋아하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어리석음이 멸해 지혜가 생기고 어둠이 무너져 환함이 되고 무명이 멸해 밝음이 생긴 것이다.
이른바 과거를 기억하는 숙명지(宿命智)의 신통을 체험하여 명달한 것이다.
그는 또 이와 같이 선정을 얻고 마음이 청정해져 더러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게 잘 머무르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 생사지(生死智)의 신통을 깨달아 스스로 체험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눈보다 훌륭한 청정한 천안으로써 이 중생들이 죽는 때와 나는 때,
좋은 육체인지 나쁜 육체,
묘하고 묘하지 않은 것과 좋은 곳과 좋지 않은 곳으로 오가는 것을 본다.
이 중생들이 짓는 업을 따라 그것을 사실 그대로 보나니,
만일 이 중생들이 몸의 나쁜 행과 입과 뜻의 나쁜 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소견으로써 삿된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또 만일 중생들이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으로 바른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천상에 나는 것을 본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2의 명달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는 본래 방일함이 없이 멀리 떠난 곳에서 살기를 좋아하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어리석음이 멸해 지혜가 생기고 어둠이 무너져 환함이 생기며 무명이 멸해 밝음이 생긴 것이다.
이른바 생사지(生死智)의 신통을 체험하여 명달한 것이다.
그는 또 이와 같이 선정을 얻고 마음이 청정해져 더러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게 잘 머무르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 누진지(漏盡智)의 신통을 깨달아 스스로 체험한다.
그래서 그는 이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을 알며 이 괴로움의 소멸을 알고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또 이 번뇌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번뇌의 발생을 알며 이 번뇌의 소멸을 알고 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욕심의 번뇌[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번뇌[有漏]와 무명의 번뇌[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3의 명달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는 본래 방일함이 없이 멀리 떠난 곳에서 살기를 좋아하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어리석음이 멸해 지혜가 생기고 어둠이 무너져 밝음이 생기며 무명이 멸해 밝음이 생긴 것이다.
이른바 누진지(漏盡智)의 신통을 체험하여 명달한 것이다.”
이에 존자 발타화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여러 비구들이 똑같이 계를 범했는데도 어떤 사람은 애써 다스리고 어떤 사람은 애써 다스리지 않습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어떤 비구는 자주 계를 범한다.
그는 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산다.
그는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사고서는 곧 논(論)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면서 화내고 미워하며 분노하고 발악하며 대중을 괴롭히고 대중을 업신여기다가 ‘내가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생각한다.
발타화리여,
그 때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주 계를 범하고 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산다.
그는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사고서는 곧 논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면서 화내고 미워하며 분노하고 발악하며 대중을 괴롭히고 대중을 업신여기다가 〈내가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말하는구나.’
그래서 그 비구들은 이것을 보고 ‘여러분,
그 사람은 그대로 보아 언제나 그 허물에 있게 하자’고 이렇게 서로 말한다.
발타화리여,
모든 비구들은 이와 같이 그를 그대로 보아 언제나 그 허물에 있게 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자주자주 계를 범한다.
그는 자주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梵行)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살 뿐이다.
그는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사고도 논(論)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지 않고 화내고 미워하고 질투하거나 분노하고 발악하지도 않으며 대중을 괴롭히지도 않고 대중을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또 ‘나는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이렇게 말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발타화리여,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은 자주자주 계를 범하고 자주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산다.
그러나 그는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사고도 논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지 않고 화내고 미워하고 질투하거나 분노하고 발악하지도 않으며 대중을 괴롭히지도 않고 대중을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또 〈나는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이렇게 말하지도 않는구나.’
그래서 그 비구들은 이것을 보고 ‘여러분,
이 사람은 이대로 보아 빨리 그 허물을 멸하게 하자’고 이렇게 서로 말한다.
발타화리여,
모든 비구들은 그를 이대로 보아 빨리 그 허물을 멸하게 하였다.
그리고 가볍게 금계를 범한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발타화리여,
만일 어떤 비구가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생각이 있으면 ‘이제 이 비구는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생각이 있다.
만일 우리가 이 사람을 애써 고치려고 한다면 이제 이 사람은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끊을 것이다.
우리들은 차라리 함께 이 사람을 잘 이끌어 보호하자’고 하며 모든 비구들은 곧 그를 잘 이끌어 보호한다.
발타화리여,
비유하면 애꾸눈인 사람과 같다.
그 친족들은 그를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그의 이익과 넉넉하기를 바라고 안온과 쾌락을 구해 서로 잘 이끌어 보호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춥거나 덥거나 목마르거나 굶주리게 하지 않고 병이나 근심을 없게 하며 먼지를 씌우거나 연기로 맵게 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 사람이 한쪽 눈을 마저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족들은 그를 잘 이끌어 보호하는 것이다.
발타화리여,
이와 같이 또 어떤 비구가 사소한 믿음이 있고 조그만 사랑이 있으며 조금 생각이 있으면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이제 이 비구는 믿음이 조금 있고 사랑이 조금 있으며 생각이 조금 있다.
만일 우리가 이 사람을 혹독하게 다스리면 이 사람은 조그만 믿음이 있고 조그만 사랑이 있으며 조금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끊을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함께 이 사람을 잘 이끌어 보호하자.’
그래서 모든 비구들은 함께 잘 이끌어 보호하기를 마치 친족들이 애꾸눈인 사람을 보호하는 것과 같이 하느니라.”
이에 존자 발타화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옛날에는 작은 계를 시설하여도 받들어 가지는 비구가 많더니 요즘은 세존께서 많은 계를 시설하여도 받들어 가지는 비구가 적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만일 비구들이 이익을 얻지 못하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喜好法]이 없고,
만일 비구들이 이익을 얻으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낸다.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내면 나 세존은 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끊고자 하기 때문에 곧 제자들을 위해 계를 설한다.
그래서 칭찬과 명예가 넓고 커져서 임금까지 알게 되어 큰 복이 있고 많은 지식을 얻는다.
발타화리여,
만일 대중이 많이 들어 알지 못하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내지 않고,
대중이 많이 알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낸다.
만약 대중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내면 나 세존은 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끊고자 하기 때문에 곧 제자들을 위해 계를 설한다.
발타화리여,
나는 현세의 번뇌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제자들을 위하여 계를 설하는 것이 아니요,
나는 후세의 번뇌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제자들을 위하여 계를 설하는 것이다.
발타화리여,
그러므로 나는 제자들의 번뇌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계를 설하는 것이요,
그들이 내 가르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발타화리여,
나는 옛날에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청정한 말[馬]의 비유를 들어 말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어떤 까닭이 있었는지 너는 기억하느냐?”
존자 발타화리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거기에는 이런 까닭이 있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오면,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 앉아 먹는 계를 자세히 말씀하셨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웠습니다.
그러나 오직 저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으니,
그것은 구족한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그 까닭이었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거기에는 그 까닭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발타화리여,
만일 내가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청정한 말의 비유를 들어 말하였다면 너는 반드시 한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요,
잘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며,
생각하여 듣지 않았을 것이다.
발타화리여,
이것이 이 가운데 있는 다른 까닭이니라.”
이에 존자 발타화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해 청정한 말의 비유를 말씀하시면 모든 비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마땅히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마치 말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 청정한 좋은 말을 얻은 것과 같아서 먼저 그 입짓을 다스리고 그 입짓을 다스린 뒤에는 저야 좋아하건 말건 날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아직 완전히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타화리여,
만일 청정한 좋은 말이 조련사의 훈련에 따라 첫째 훈련을 성취하면 그 말 조련사는 다시 입에 재갈물리기와 다리 옭아매기를 훈련시킨다.
다리를 옭아매고,
입에 재갈을 물려 달리기를 훈련시켜,
궁중에 올려 임금이 타는 위없는 행을 감당하게 한다.
가장 훌륭한 쉼으로 모든 사지와 뼈마디를 훈련시켜 모든 훈련이 성취되면 저야 좋아하건 말건 날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왜냐 하면 자주자주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발타화리여,
만일 청정한 좋은 말을 그 말 조련사가 자주자주 다스려 성취하게 되면 그 때 그 말은 부드러워지고 매우 부드러워져 위없는 부드러움이 되고,
제일 위없는 부드러움이 된다.
그래서 위없는 행을 얻고,
제일의 행을 얻어 곧 왕이 타게 되면 왕의 곡식을 먹고 왕의 말이라고 일컬어진다.
발타화리여,
이와 같이 만일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10무학법(無學法)3),
즉 무학의 바른 소견에서부터 나아가 무학의 바른 지혜에 이르기까지를 다 성취하면
그는 그 때 부드러워지고 매우 부드러워져 위없는 부드러움이 되고 제일의 위없는 부드러움이 된다.
그래서 위없는 그침을 얻고 제일의 그침을 얻어
모든 굽은 것을 버리고 모든 더러움을 버리며 모든 두려움을 버리고
모든 어리석음을 없애며
모든 아첨을 버리고
모든 번뇌를 그치며
모든 때를 깨끗이 하여 집착이 없게 된다.
그래서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받들 만하고 제사지낼 만하여
모든 천상과 인간의 좋은 복밭이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발타화리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발타화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 307자이다.
195) 아습패경(阿濕貝經)4) 제4 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시국(迦尸國)에 노니실 적에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몸에는 병이 없으며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에는 병이 없으며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하루에 한 끼 먹는 계를 시설하셨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웠다.
이에 세존께서는 여기 저기 다니시다가 가라뢰(迦羅賴)에 이르러 가라뢰의 북쪽 마을 시섭화(尸攝和) 숲에 계셨다.
이 때 가라뢰에는 아습패(阿濕貝)와 불나바수(弗那婆修)5)라는 두 비구가 있었는데,
그들은 옛날 그 지방의 지주(地主)요 사주(寺主)요 종주(宗主)였었다.
그들은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고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이 소식을 듣고 아습패와 불나바수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세존께서는 가시국에 노니시다가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시면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소.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하루에 한 끼 먹는 계를 자세히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웠소.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그대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시오.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대들은 세존과 비구들의 뜻을 어기지 마시오.”
아습패와 불나바수는 이 말을 듣고 대답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습니다.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였다.
그 여러 비구들은 아습패와 불나바수의 나쁘고 사특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버리고 떠났다.
비구들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가라뢰에는 아습패와 불나바수라는 두 비구가 있는데 그들은 옛날 이 지방의 지주요 종주요 사주였습니다.
그들은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고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그 말을 듣고 곧 그 아습패와 불나바수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세존께서는 가시국에 노니실 적에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시면서 모든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소.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이 없이 몸은 가볍고 기력은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하루에 한 끼 먹는 계를 시설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웠소.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그대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만 먹으시오.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대들은 세존과 비구들의 뜻을 어기지 마시오.’
아습패와 불나바수는 이 말을 듣고 저희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습니다.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쾌락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였으나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아습패와 불나바수의 나쁘고 삿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였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버리고 떠나왔습니다.”
세존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한 비구에게 분부하셨다.
“너는 저 아습패와 불나바수 비구가 있는 곳에 가서 아습패와 불나바수에게 세존이 부른다고 전하라.”
“예,
세존이시여.”
그 비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바퀴 돌고는 물러갔다.
그는 아습패와 불나바수에게 가서 말했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세존께서 두 분을 부르십니다.”
아습패와 불나바수는 이 말을 듣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여러 비구들은 너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습패와 불나바수 비구여,
세존께서는 가시국을 유행하실 적에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시면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소.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하루에 한 끼를 먹는 계를 자세히 시설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웠소.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그대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만 먹으시오.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대들은 세존과 비구들의 뜻을 어기지 마시오.’
그리고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너희들은 그 말을 듣고 모든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
우리는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습니다.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였으나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그 모든 비구들은 너희들의 그 나쁘고 삿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였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너희들을 버리고 떠나갔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냐?”
아습패와 불나바수는 아뢰었다.
“사실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너희들은 내가 ‘만일 즐거운 감각[樂覺]을 깨달으면 그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며 만일 괴로운 감각[苦覺]을 깨달으면 그는 괴로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난다’고 이렇게 설법한 것으로 아는가?”
“예,
저희들은 세존께서 ‘만일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며 만일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괴로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난다’고 그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아습패와 불나바수 비구를 꾸짖으셨다.
“너희 미련한 사람들아,
어떻게 내가 그렇게 설법했다고 알게 되었느냐?
너희들 미련한 사람들아,
누구에게서 듣고 그렇게 설법했다고 알게 되었느냐?
너희 미련한 사람들아,
나는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완전히 그렇게 받아 가지는구나.
너희들 미련한 사람들아,
많은 비구들을 위하여 물음을 받았을 때는 마땅히 ‘저희는 알지 못합니다’ 하고 이렇게 법답게 대답했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 모든 비구들에게 물어 보리라.”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도 또한 내가 ‘만일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며 만일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괴로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난다’고 이렇게 설법했다고 알고 있느냐?”
여러 비구들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너희들은 내가 어떻게 설법하였다고 알고 있느냐?”
여러 비구들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서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서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혹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는 너희들의 말과 같다.
왜냐 하면 나도 또한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고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얻지 못하며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 즐거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더라도 나는 응당 ‘즐거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얻지 못하며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 즐거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더라도 나는 응당 ‘즐거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얻지 못하며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 괴로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법이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더라도 나는 응당 ‘괴로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얻지 못하며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 괴로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더라도 나는 응당 ‘괴로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나 나는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며 이해하고 얻었으며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 즐거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 때문에 나는 ‘즐거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한다.
나는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며 이해하고 얻었으며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 즐거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면 그 때문에 나는 ‘즐거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한다.
나는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며 이해하고 얻었으며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 괴로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 때문에 나는 ‘괴로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한다.
나는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며 이해하고 얻었으며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 괴로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면 그 때문에 나는 괴로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모든 몸의 즐거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모든 몸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몸의 괴로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모든 몸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마음의 즐거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모든 마음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마음의 괴로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모든 마음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어떠한 몸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몸의 즐거움을 닦아서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러한 몸의 즐거움은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몸의 즐거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몸의 즐거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러한 몸의 즐거움은 닦으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몸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몸의 괴로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러한 몸의 괴로움은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몸의 괴로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몸의 괴로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면 그러한 몸의 괴로움은 닦으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의 즐거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러한 마음의 즐거움은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즐거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의 즐거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면,
그러한 마음의 즐거움은 닦으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의 괴로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러한 마음의 괴로움은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괴로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의 괴로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면 그러한 마음의 괴로움은 닦으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그는 닦아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닦지 않아야 할 법도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닦아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닦지 않아야 할 법도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닦지 않아야 할 법은 곧 닦지 않고,
닦아야 할 법은 곧 닦는다.
닦지 않아야 할 법은 곧 닦지 않고,
닦아야 할 법을 곧 닦은 뒤에는 곧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난다.
나는 모든 비구에게 ‘방일(放逸)하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모든 비구에게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비구에게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하는가?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俱解脫)이 있다.
어떤 비구에게 구해탈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8해탈(解脫)을 몸으로 체험해 성취하여 노닐고 지혜로써 관찰하여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또 이미 그것을 안다.
이런 비구는 구해탈이 있으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함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본래 이미 방일한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 비구가 본래부터 방일함이 있었다면 끝내 그리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이 아닌 혜해탈(慧解脫)만 있다.
어떤 비구에게 혜해탈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8해탈을 몸으로 체험해 성취하여 노닐지는 못하지만 지혜로써 관찰하여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이미 그것을 안다.
이런 비구는 혜해탈이 있으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도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본래 이미 방일한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 사람이 본래부터 방일함이 있었다면 끝내 그리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두 부류 비구에게는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어떤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가?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俱解脫)도 아니요,
또한 혜해탈도 아니지만 신증(身證)이 있다.
어떤 비구에게 신증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8해탈을 몸으로 체험해 성취하여 노닐지만 지혜로써 관찰하여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또 이미 그것을 알지는 못한다.
이런 비구는 몸의 증득[身證]만 있나니 이런 비구에게 나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根)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며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게 된다.
즉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가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또한 신증도 아니지만 견도(見到)가 있다.
어떤 비구에게 견도가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한결같이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을 믿고 들은 법을 따라 곧 지혜로써 관(觀)을 왕성하게 하고 인(忍)을 왕성하게 한다.
이런 비구는 견도가 있나니,
이런 비구에게 나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며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게 된다.
즉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가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신증도 아니요 또한 견도도 아니지만 신해탈(信解脫)이 있다.
어떤 비구에게 신해탈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한결같이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을 믿고 들은 법을 따라 지혜로써 관(觀)하고 인(忍)하지만 견도(見到)만은 못하다.
이런 비구는 신해탈이 있나니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며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게 된다.
즉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가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신증도 아니요 견도도 아니며 또한 신해탈도 아니지만 법행(法行)이 있다.
어떤 비구에게 법행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한결같이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을 믿고 들은 법을 따라 곧 지혜로써 관을 왕성하게 하고 인을 왕성하게 한다.
이런 비구는 행법이 있나니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두 가지 결과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얻을 것이니,
곧 현세에서 구경지(究竟智)를 얻거나 만일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阿那含)을 얻을 것이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가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신증도 아니요 견도도 아니며 신해탈도 아니요 또한 법행도 아니지만 신행(信行)이 있다.
어떤 비구에게 신행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한결같이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을 믿고 들은 법을 따라 지혜로써 관(觀)하고 인(忍)하지만 법행(法行)만은 못하다.
이런 비구는 신행이 있나니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두 가지 결과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얻을 것이니,
곧 현세에서 구경지를 얻거나 만일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여러 비구들에게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나는 ‘일체 모든 비구가 구경지(究竟地)를 얻는다’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일체 모든 비구는 처음부터 구경지(究竟地)를 얻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점점 배우고 익혀 자취로 나아가고 가르침을 받고 꾸지람을 받은 뒤에는 모든 비구가 구경지를 얻나니,
이것이 모든 비구가 얻는 구경지이니라.
어떻게 비구는 점점 배우고 익혀 자취로 나아가고 가르침을 받고 꾸지람을 받은 뒤에 모든 비구가 구경지를 얻게 되는가?
또 어떤 것이 모든 비구가 얻는 구경지인가?
혹 믿음이 있는 자들은 나를 찾아오고 찾아와서는 곧 받들어 익히며 받들어 익힌 뒤에는 곧 일심으로 법을 듣고 일심으로 법을 들은 뒤에는 곧 그 법을 가지며 법을 가진 뒤에는 곧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는 곧 헤아리며 헤아린 뒤에는 곧 관찰한다.
어진 제자들은 관찰한 뒤에는 몸으로 진리를 증득하고 지혜로 더욱 왕성하게 관찰한다.
곧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진리를 나는 아직 몸으로 증득하지 못했고 또한 지혜로 왕성하게 관찰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이 진리를 몸으로 증득하고 지혜로 더욱 왕성하게 관찰하리라.’
이렇게 점점 배우고 익혀 자취로 나아가고 가르침을 받고 꾸지람을 받은 뒤에 모든 비구들은 구경지를 얻나니 이것이 모든 비구가 얻는 구경지이니라.”
이에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사구(四句)라는 법이 있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말하리니 너희들은 알고자 하는가?”
아습패와 불나바수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누구이며 또 무엇으로 말미암아 법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나의 바른 법과 율을 지나쳐 버리는구나.
혹 어떤 법률에서는 스승이 음식에 탐착해서 음식을 떠나지 못하더라도 그 제자들이 금방 방일하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음식에 탐착하지 않고 음식을 멀리 떠난 나에게 있어서이겠는가?
믿음이 있는 제자들이면 응당 이렇게 말하리라.
‘세존께서는 저희들의 스승이요,
저희들은 세존의 제자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해 설법하시고 선서시여,
저희들을 위해 설법하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이 길고 긴 밤에 진리를 얻고 이익과 안온과 기쁨을 얻게 하소서.’
그래서 그 믿음 있는 제자들은 세존의 경계에서 하는 일이 많을 것이며 세존의 경계에서 유익한 것이 많을 것이다.
세존의 경계에서 많은 일을 하며 세존의 경계에 들어와 세존의 경계에 머무르는 자는 혹 동방에서 놀더라도 반드시 안락을 얻어 여러 가지 괴로움이 없을 것이다.
또 혹 남방ㆍ서방ㆍ북방에서 놀더라도 반드시 안락을 얻어 여러 가지 괴로움이 없을 것이다.
만일 믿음이 있는 제자라면 세존의 경계에서 하는 일이 많고 세존의 경계에서 이익이 많을 것이다.
세존의 경계에서 행하는 것이 많고 세존의 경계에 들어와 세존의 경계에 머무른다면 나는 그들에게 ‘모든 착한 법에 머무르게 된다’고도 말하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쇠퇴하리라’고 말하겠는가?
밤낮으로 착한 법을 자라게만 하고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믿음이 있는 제자라면 세존의 경계에서 하는 일이 많고 세존의 경계에서 이익이 많을 것이다.
세존의 경계에서 하는 일이 많고 세존의 경계에 들어와 세존의 경계에 머무르는 자는 두 가지 결과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얻을 것이다.
곧 현세에서 구경지를 얻거나 혹은 다시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아습패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 199자이다.
『중아함경』 제51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8, 506자이다.
---------------------
1)
1) 이 경의 참고 경문으로는 『증일아함경』 제47권 「목우품(牧牛品)」 일곱 번째 경이 있다.
2)
2) 팔리어로는 Bhaddāli이다.
3)
3) 8정도에 정지(正智)와 정해탈(正解脫)을 더한 것이다.
4)
4)송ㆍ원ㆍ명 3본에는 아습구경(阿濕具經)으로 되어 있다.
송ㆍ원ㆍ명 3본에서는 본문에서도 아습구라고 하였다.
5)
5)팔리어 Assaji의 음역이고 마숙(馬宿)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이 비구는 석가족 왕족 출신으로 무리를 지어 계율에 어긋나는 행위들을 자행했던 6군 비구 중 한 사람이다.
위엄 있고 단정하며 걸음걸이가 훌륭하기로 제일이었던 아습구(阿濕具,
Assaji,
馬勝)와는 다른 사람이다.
불나바수(弗那婆修,
Punabasuka)는 만숙(滿宿)이라 의역하고 역시 석가족 출신으로 6군 비구 중 한 사람이다.
○ [pt op tr]
○ 2016_1009_165950_can.jpg
○ 2016_1008_125845_can.jpg
○ 2020_0606_180011_can.jpg
○ 2018_0419_132843_can.jpg
○ 2020_0606_171907_can.jpg
○ 2020_0525_174358_can.jpg
○ 2018_0418_121525_can.jpg
○ 2018_0419_140956_can.jpg
○ 2020_0525_181053_nik.jpg
○ 2020_0606_140743_can.jpg
○ 2018_0419_140726_can.jpg
○ 2016_1009_160550_can.jpg
○ 2018_0419_135106_can.jpg
○ 2018_0419_140446_nik.jpg
○ 2016_1008_150553_can.jpg
○ 2018_0419_141754_can.jpg
○ 2018_0419_140326_can.jpg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 - Jacques Goldman - Parler D'ma Vie.lrc
◈Lab value 불기2564/07/21 |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Observatoire_de_l`université_Bishop_-_panoramio
David Parienti - Ginie Line - Ca Ne Se Commande Pas
♥단상♥ 6조원 재산 대신 승려의 삶 택한 말레이시아 재벌 2세 https://www.yna.co.kr/view/AKR20200721176700074?input=1195z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7/2564-07-21-k0648-051.html#1692 sfed--중아함경_K0648_T0026.txt ☞제51권 sfd8--불교단상_2564_07.txt ☞◆vbrs1692 불기2564-07-21 θθ |
■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
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불기2564-07-21_중아함경_051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pt op tr]
● 중아함경_K0648_T0026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과거조각글 > 불기2564(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기2564-07-23_대지도론-K0549-001 (0) | 2020.07.23 |
---|---|
불기2564-07-22_비화경-k0126-005 (0) | 2020.07.22 |
불기2564-07-17_정원신정석교목록-K1401-025 (0) | 2020.07.17 |
불기2564-07-16_불설사니리경-K0732-001 (0) | 2020.07.16 |
불기2564-07-15_대방광불화엄경-K1262-038 (0) | 2020.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