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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8-03_법원주림-K1406-053 본문
『법원주림』
K1406
T2122
제5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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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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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주림』 ♣1406-053♧
제5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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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법원주림 제53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58. 기변편(機辯篇)[여기에는 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보살부(菩薩部) 나한부(羅漢部)
(1) 술의부(述意部)
생각하면 3장(藏)은 책이 너무 많고 7중(衆)은 어지러이 날뛰니,
가르침을 베풀고 예리한 변설을 갖추어야 비로소 환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고(苦)와 집(集)을 들으면 간절한 슬픔의 감정이 쫓아오고 도(道)와 멸(滅)을 들으면 기꺼이 버리고 깨침을 연다.
맑고 시원한 음운(音韻)은 울창하기가 지란(芝蘭)과 같고 높은 뜻과 아름다운 음률은 귀와 눈을 일깨워 준다.
그러므로 마명(馬鳴)은 그 그윽한 종지(宗旨)로 이끌었고
용수(龍樹)는 그 끊어진 계통을 일으켰으며
제바는 그 명수(名數)를 분석했고
아라한은 그 조리(條理)를 총괄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묘한 경전을 도운 것이요 외도의 학문을 사로잡은 것이며,
헤매는 나루터에서 큰길을 발견하고 오랜 밤에서 새벽을 만난 것이다.
석전(釋典)의 높은 법을 계승하고 사자(師資)의 훈도하는 방법을 나타낸 것이니
이것은 다 여기에 속한 것으로서 가히 무성하다고 할 만하다.
기원(祇園)에 바로 있는 것 같고 녹원(鹿苑)을 바라보는 것 같거니,
비록 과(果)를 증득하지는 못했으나 부처님 가까이 간 것이다.
(2) 보살부(菩薩部)[대략 두세 가지의 다른 산편(散篇)을 붙인다.]
『마명보살전(馬鳴菩薩傳)』에서 말하였다.
“마명은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3백여 년[『마야경(摩耶經)』에는 6백여 년] 뒤에
동천축 상기다국(東天竺 桑岐多國)에서 바라문의 종족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기하다는 평판이 있고 글과 변론으로 칭찬을 받았다.
천축의 속법(俗法)의 논사(論師)와 문사(文士)들은 다 자기가 잘난 체함으로서 그 덕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마명은 그 속법을 따라 자기 지팡이에 예리한 칼로 글을 새기기를 ‘천하의 지사(智士)로서 누구나 이치로써 나를 굴복시키고 글로써 나를 이기면 나는 이 칼로 내 목을 찔러 죽을 것이다’ 하고 항상 칼을 가지고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으나,
어떤 논사나 문사들도 감히 그를 대항하지 못하였다.
이 때에 운타산(韻陀山)에 있던 부루나(富樓那)는 외도의 이름난 도리를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마명은 거기 가서 그를 만나 보았다.
그는 나무 밑에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그 지기(志氣)는 아득히 멀어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았으나 신색(神色)은 겸손하여 굴복시킬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사문(부루나)에게 말하였다.
‘감히 맹세하노니,
나는 반드시 당신을 굴복시킬 것이오.
만일 내가 이기지 못한다면 나는 곧 이 칼로 내 목을 찔러 당신에게 사과할 것이오.’
그러나 그는 잠자코 말이 없었으나,
얼굴에는 진 빛도 없고 그렇다고 이겼다는 표정도 없었다.
그렇게 서너 번 물었으나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명은 물러앉아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졌다.
저 사람이 이겼다.
저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서 말이 없기 때문에 말로써 굴복시킬 수 없다.
비록 알더라도 말을 하면 굴복시킬 수 있지만 나는 결국 말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하여 마명은 굴복시키려 한 것을 사과하고 곧 자살하려 하였다.
사문은 이것을 말리면서 ‘당신은 자살함으로써 내게 사과하려 하지만 그 보다 내 뜻을 따라 당신의 주라(周羅)를 깎고 내 제자가 되시오.’
마명은 곧 머리를 깎고 비녀를 빼어 버리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그리고 마명은 앉으면 불법을 크게 펴고 돌아다니면서 도의 교화를 드날리며,
장엄불법(莊嚴佛法) 등 여러 가지 논(論) 1백여 만 언(言)을 지었다.
이것들은 천축에 크게 유행하고 온 세상이 다 추종(推宗)하여 모든 저작의 본이 되었다.
비록 서하(西河)가 공부(孔父)를 어지럽히고 신자(身子)가 성인을 의심했지만,
그것은 너무 지나친 어리석음이다.
그 뒤에 용수(龍壽)는 붓에 먹물을 찍거나 논(論)을 지을 때에는 반드시 먼저 마명이 지은 자귀(自歸)의 게송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이것은 비방을 삼가 하고 그 은밀한 도움에 의지함으로써 스스로 깨치려 한 것이었다.
지금 천축의 모든 왕과 권세 있는 사람들은 다 그의 사당을 세우고 부처님을 섬기듯 한다.”
『용수보살전병부법장전(龍樹菩薩傳幷付法藏傳)』에서 말하였다.
“한 대사(大士)가 있으니 이름을 용수라 한다.[전하는 말에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 7백 년 안에 세상에 나오셨다’고 했다.
『장법사전(獎法師傳)』에는 ‘서역(西域) 범어(梵語)의 정음(正音)은 용맹(龍猛)인데 구역(舊譯)에 잘못되어 용수라 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3백 년에 세상에 나와 7백 년을 살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잘못 일컬어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7백 년에 세상에 나오셨다고 한다’고 했다.]
천성이 총명하고 슬기로워서 무슨 일이고 두 번 묻지 않았으며 법당(法幢)을 세우고 외도를 꺾어 항복 받았다.
그는 남천축국(南天竺國)의 범지(梵志)의 종족인 큰 부호의 집에 태어났다.
처음 났을 때 나무 밑에 있다가 용으로 말미암아 도를 이루었으므로 용수라고 이름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워 재주와 학문이 세상에 뛰어났다.
본래 아이로서 강보(襁褓)에 있을 때 범지들이 외우는 4베다(吠陀)를 들었다.
그 경전의 뜻은 깊고 넓으며 모두 4만 게송에 각각 32자(字)였는데,
그는 그것을 다 깨닫고 글귀의 뜻을 모두 통달했다.
그러므로 겨우 약관(弱冠) 때에 이름을 날려 모든 나라에서 필적할 자가 없었고,
천문(天文)과 지리(地理)ㆍ성위(星緯)ㆍ도참(圖讖) 및 그 이외의 도술(道術)을 모두 통달했다.
그에게 세 명의 벗이 있었다.
그들도 다 타고난 자질이 기특하고 빼어났다.
그들은 의논했다.
‘우리는 천하의 이치를 다 깨쳐 귀신처럼 밝으며 현묘한 뜻을 깨닫고 지혜가 빼어나는 등 이런 일을 다 통달했다.
이제는 무엇으로 좀 더 즐겨 볼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의논했다.
‘세간에서는 오직 호색(好色)을 추구하여 한껏 놀고 마음껏 즐기는데,
이것이 일생의 최상의 쾌락이다.
우리는 다 함께 몸을 숨기는 약을 구하자.
이것만 얻으면 우리 원은 다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말하였다.
‘그것 참 좋다.
이 말이 가장 시원하다.’
그리고는 곧 술사(術師)에게 가서 은신법(隱身法)을 가르쳐 달라 했다.
술사는 생각하였다.
‘이 네 명의 범지는 다 재주와 지혜가 높고 뛰어나며 매우 교만하여 중생들을 초개(草芥)처럼 본다.
지금은 이 방술(方術) 때문에 내게 굴복해 왔다.
이들은 모든 것을 두루 통달했으나 모르는 것은 오직 이 천한 방술 뿐이다.
만일 내가 이 방술을 다 가르쳐 주면 반드시 나를 아주 버릴 것이다.
우선 이 약을 주고 그 방술은 모르게 하자.
약이 다 떨어지면 반드시 언제든지 내게 와서 물을 것이다.’
그리고 곧 각각 푸른 약 한 알씩을 주면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 약을 물에 풀어 그것을 눈썹에 바르면 몸이 저절로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은 곧 그 약을 받아 와서 물에 풀었다.
용수는 그 냄새를 맡아보고,
곧 그 분수(分數)의 얼마만큼씩인 것을 다 알아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곧 그 술사에게 가서 이 사실을 다 이야기하면서 말하였다.
‘이 약은 모두 70종으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과 분량이 다 그 방술과 같았다.
술사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그 까닭을 물었다.
용수는 말하였다.
‘대사(大師)님,
아십시오.
일체의 약은 다 그 기분(氣分)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넉넉히 알 수 있는데 무엇 괴상할 것이 있습니까?’
술사는 이 말을 듣고 신기한 일이라 감탄하고는 곧 생각했다.
‘이런 사람은 그 이름을 듣기도 어렵거늘 더구나 내가 직접 만났으면서 어찌 그 법을 아껴서 되겠는가?’
곧 그들 네 명에게 다 그 법을 완전히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그 법에 의해 약을 만들어 그 몸을 숨기고는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그들은 공모하고 왕의 후궁으로 들어가 궁중의 미인들을 마구 겁탈하여,
1백 일 뒤에는 임신한 여인들이 많았다.
그녀들은 이 사실을 억울하다 하여 죄를 사해 주기를 왕에게 호소했다.
왕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이 무슨 불상사인가?
이런 괴상한 일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는 곧 지혜로운 신하들을 불러 이 일을 의논했다.
그 때 어떤 신하가 왕에게 아뢰었다.
‘이 일에는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니,
첫째는 귀신이요,
둘째는 방술입니다.
세토(細土)를 문 안에 깔아 두고 수위를 시켜 사람의 출입을 금하게 하십시오.
만일 방술을 부리는 사람이라면 그 발자국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요 만일 귀신이라면 반드시 그 자취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군사를 시켜 잡을 수 있고 귀신이라면 주문(呪文)으로 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그 계획대로 했다.
네 명의 발자국이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수위는 급히 왕에게 알렸다.
왕은 용사 수백 명을 데리고 가서 칼을 공중에 휘둘러 세 사람의 머리를 베었다.
왕 가까이 7척 안의 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용수는 몸을 감추고 왕을 의지해 서 있었다.
이에 용수는 비로소 깨닫고는 말하였다.
‘애욕은 고통의 근본으로서 덕을 무너뜨리고 몸을 위태롭게 하며 범행(梵行)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리고 곧 맹세하였다.
‘내가 여기서 벗어나 이 액난을 면하면 사문에게 가서 출가의 법을 배우리라.’
그리고 출가하여 산의 어느 절에 들어가 애욕을 버리고 도를 위해,
90일 동안에 이 염부제에 있는 경전을 모두 통달하고 다시 다른 경전을 구했으나 얻을 곳이 없었다.
드디어 설산(雪山)에 들어가 어느 비구에게서 마하연(摩訶衍)을 받아,
독송하고 사랑하며 공경하고 공양했다.
그리하여 진실한 뜻을 알고 아직 도는 증득하지 못했으나,
변재가 무진하여 변론을 잘했으므로 외도와 이학(異學)들이 모두 항복하고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했다.
그는 곧 일체지인(一切智人)이라 자칭하며 마음에 교만이 생겨 매우 뽐내면서 저 구담의 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때 문신(門神)이 용수에게 말하였다.
‘지금의 그대 지혜는 모기나 등에와 같다.
여래께 비하면 그대 언론은 변론이 아니어서 마치 반딧불이를 해나 달빛에 견주는 것과 같고,
수미산에 정력자(葶藶子:두루미냉이의 씨)를 비유하는 것과 같다.
내가 보건대 그대는 일체지인이 아닌데 어떻게 이 문에 들어오려 하는가?’
용수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했다.
그 때 제자가 용수에게 말하였다.
‘스승님은 항상 일체지인이라고 자처하셨는데 지금 여기 와서 굴욕(屈辱)하여 부처의 제자가 되려 하십니다.
제자는 원래 스승에게 묻는 법입니다.
스승에게 묻는다면 벌써 일체지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용수는 말이 막히고 이치가 궁하여 가만히 생각했다.
‘세계의 모든 법에는 진도(津塗)가 한이 없는 것이다.
불법이 아무리 미묘하더라도 그 문구의 뜻을 다 나타내지 못한 것이다.
나는 지금 다시 그것을 부연하여 후학(後學)을 깨우치고 중생을 이롭게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혼자 고요한 수정방(水精房) 안에 앉았다.
대룡(大龍)보살은 이것을 보고 가엾이 여겨 신력(神力)으로 용수를 큰 바다로 이끌어 들여,
그 궁전으로 가서 7보의 함(函)을 열고 방등(方等)의 심오한 경전을 보이고 무량한 묘법을 가르쳐 주었다.
90일 동안에 용수는 아는 것이 매우 많아져 그 마음이 깊이 들어가 진실한 이치를 체득했다.
대룡은 용수에게 물었다.
‘그대는 그 경전을 다 두루 보았는가?’
용수는 말하였다.
‘당신 경전은 셀 수 없이 많아서 다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읽은 것은 염부제의 열 배는 충분히 될 것입니다.’
용왕(대룡)은 말하였다.
‘도리천의 석제환인에게 있는 경전은 이 궁전 경전의 백천만 배는 될 것이다.’
이 때 용수는 이 경전을 다 얻고 활연히 통달하여 일상(一相)을 잘 알고 무생(無生)에 깊이 들어가 2인(忍)을 완전히 갖추었다.
대룡은 용수가 도를 깨달은 것을 알고 용수를 용궁에서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그 때 남천축의 왕은 본래부터 사견(邪見)을 가지고 외도를 섬기며 정법을 비방했다.
용수가 일체지인이라는 말을 듣고 여러 논사(論師)와 함께 용수와 변론했으나 당하지 못하였다.
이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으니,
이렇게 용수는 사견을 가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제도하였다.
왕은 항상 열 수레의 옷과 발우를 보냈으나 용수는 하루 동안에 그것을 다 보시하고 이렇게 계속해 무수한 사람들에게 대승의 이치를 널리 분별해 강설했다.
그리고 『우파제사론(優波提舍論)』 10만 게(偈)와 장엄불도(莊嚴佛道)ㆍ대자방편(大慈方便) 등 이와 같은 논(論) 10만 게(偈)를 지어 대승을 먼저 세상에 펴고,
무외론(無畏論) 10만 게와 무외부(無畏部) 안의 중론(中論) 무릇 5백 게를 지으니,
그 부연한 이치는 매우 깊어 일체 외도의 훌륭하다는 깃대를 다 꺾어 항복 받았다.
이 때 어떤 소승의 법사는 그의 고명(高明)함을 보고 항상 질투를 품고 있었다.
용수는 할 일을 다 마치고 장차 이 국토를 떠나려고 그 법사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내가 이 세상에 오래 살기를 좋아하는가?’
그가 말하였다.
‘사실 스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용수는 곧 고요한 방에 들어가 여러 날 나오지 않았다.
제자들이 이상히 여겨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더니 그 스승은 매미 허물 벗듯이 세상을 떠났다.
천축의 여러 나라에서는 모두 그의 사당을 세우고 갖가지로 공양하면서 부처님 섬기듯 공경히 섬겼다.”
(3) 나한부(羅漢部)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사리불은 모든 제자들 중에서 지혜가 제일이니,
이것은 부처님의 다음 게송과 같다.
일체 중생 가운데서 그 아무도
부처만을 제하고는
사리불의 지혜와
그 다문(多聞)에 비하려면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니라.
사리불의 지혜와 다문을 말하면 그의 나이 겨우 8세 때에 18부의 경전을 다 외우고 그 뜻을 다 알았다.
이 때 마가다국에 용왕 형제가 있었다.
형의 이름은 길리(姞利)요 아우의 이름은 아가라(阿伽羅)였다.
이들은 때를 맞추어 비를 내려 그 나라에 흉년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은 모두 감사하여,
봄이면 항상 이 용이 사는 곳에 모여 큰 잔치를 베풀고 음악과 이야기로 그 하루를 마쳤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 행사는 변하지 않았다.
이 날에는 떳떳한 법으로서 네 개의 높은 자리를 만들었으니,
첫째는 국왕을 위한 것이요,
둘째는 태자를 위한 것이며,
셋째는 대신을 위한 것이요,
넷째는 논사(論士)를 위한 것이었다.
그 때 사리불은 8세의 아이 몸으로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 네 개의 높은 자리는 누구를 위해 만드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말하였다.
‘국왕과 태자ㆍ대신ㆍ논사를 위해 만든 것이다.’
사리불은 그 때 거기 모인 사람으로서 자기를 이길 사람이 없음을 관찰하고,
곧 논사의 자리에 올라가 가부좌하고 앉았다.
사람들은 괴상히 여겨 혹은 어린것의 철없는 짓이라 하고 혹은 지혜가 뛰어난 짓이라고도 했다.
비록 그 신이(神異)함을 가상히 여겼으나 그래도 어른 체면에 어린것과 직접 말하기 싫어 젊은 사람을 보내 문답을 시켜 보았다.
그런데 사리불의 답은 그 말이 조리가 정연하여 아주 뛰어났으므로 모든 논사들은 그 신기함에 감탄하고 어리석거나 지혜로운 노소들은 다 거기에 항복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곧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한 마을을 봉(封)해 주어 항상 공급하게 했다.
왕은 다시 코끼리 수레를 타고 방울을 흔들어 이 사실을 선포하자,
일체의 16대국(大國)은 모두 기뻐했다.
[『사분율(四分律)』에서는 말하였다.
“사리불은 4변(辯)을 구족했으니,
첫째는 법변(法辯)이요,
둘째는 의변(義辯)이며,
셋째는 사변(詞辯)이요,
넷째는 요요변(了了辯)이다.
이런 4변을 가졌으므로 외도로서는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승사유론(勝思惟論)』에서는 말하였다.
“보살에게는 7덕(德)이 있으니 다 요설변재(樂說辯才)에 의한 것이다.
그 7종이란,
첫째는 종종요설(種種樂說)변재요,
둘째는 무체(無滯)요설변재이며,
셋째는 견고(堅固)요설변재요,
넷째는 요요(了了)요설변재이며,
다섯째는 불겁약(不怯弱)요설변재요,
여섯째는 상응(相應)요설변재이며,
일곱째는 임방(任放)요설변재이니,
이것은 8지(地) 보살이라야 얻는 것이다.”]
이 때 길고사(吉古師)의 아들 구율타(拘律陀)는 성이 대목건련이고 사리불의 벗이었다.
이 두 사람은 지혜와 재주와 덕행이 서로 같아,
다니면 같이 다니고 있으면 같이 있으면서,
어려서나 커서나 항상 사귀어 반드시 시종(始終)을 같이했다.
뒤에 함께 출가하여 도를 배울 때는,
어떤 범지(梵志)의 제자가 되어 간절히 도를 구했으나 오래도록 아무 증험이 없었다.
그래서 그 스승 산사야(訕★耶)에게 까닭을 물었더니,
산사야가 말하였다.
‘내게서 도를 구해 여러 해를 지나도록 도과(道果)를 얻지 못한 그 사람들이 아닌가?’
다음 날, 그 스승이 병을 앓았다.
사리불은 그 머리맡에 서고 목건련은 그 발치에 서서 그들은 다 근심에 잠기었다.
그 스승은 임종 때 이들을 가엾이 여기면서 웃었다.
이들은 같은 마음으로 그 웃는 뜻을 물었다.
스승이 말하였다.
‘세속 사람은 눈이 없어 은애(恩愛)의 침노를 받는다.
나는 보았다.
금지국(金地國)의 왕이 죽자
그 부인은 불 속에 뛰어들어 죽으면서 한곳에 나기를 구했다.
그러나 그들의 과보가 각기 달라 아주 딴 곳에 가서 났다.’
이들은 스승의 말을 붓으로 받아 써 두고 그 허실을 시험해 보려 했다.
그 뒤에 금지국의 상인이 아가다국에 왔을 때
이들은 그것을 알아보았더니,
과연 스승의 말과 같았다.
이에 이들은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우리가 옛날의 그 사람이 아닌가?
혹은 스승님이 우리에게 숨긴 것인가?’
그리고 이들은 다시 서로 맹세하였다.
‘만이 누구든지 먼저 감로(甘露)를 얻으면 반드시 서로 알리도록 하자.’
[그러므로 『불본행경(佛本行經)』에서 말하였다.
“이 때 사리불은 마숙(馬宿) 비구가 성 안에 들어와 걸식할 때
성 안 사람들은 모두 그를 보고 논평하여 게송 읊는 것을 보았다.
모든 근식(根識)을 잘 단속하여
그 행동이 언제나 고요하며
웃음 머금고 고운 말을 쓰나니
저이는 반드시 석종자(釋種子)이리라.
그 때 사리불은 그 마숙 비구에게 물었다.
‘당신 스승의 덕술(德術)도 당신보다 더 뛰어납니까?’
그러자 마숙은 곧 다음 게송으로 답하였다.
겨자를 수미산에 견주고
소발자국 물을 큰 바다에 견주며
모기와 등에를 금시조에 견주는 것처럼
나를 스승에게 견줌도 또한 그렇다.
가령 성문(聲聞)이 저 언덕에 이르러
모든 지(地)를 성취해도,
제자여서
저 스승에 비하면 그 재주에도 못 드나니
저 세존과는 위덕이 다르다.
이에 사리불은 다시 그의 게송을 들었다.
모든 법은 인연에서 생기고
또한 인연으로 멸한다.
우리 스승 대 사문은
언제나 그렇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은 이 게송을 듣고 곧 진리를 보고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리고 사리불은 수다원의 과를 얻고 다시 목건련에게 이 게송을 말하여 목건련도 수다원의 과를 얻었다.
이에 이들 두 사람은 5백 명씩의 권속을 데리고 부처님께 함께 가서 다 아라한의 과를 얻었다.’”
『사분율』과 다른 경에 의하면,
다 1,250명이 부처님께 가서 아라한의 과를 얻었다고 했다.]
논(論)에서 말하였다.
“【문】 무엇 때문에 이름을 사리불이라 했는가?
【답】 그것은 그 어머니가 지은 이름이다.
마가다국 안에 왕사성(王舍城)이 있고 그 왕의 이름은 빈바사라(頻婆娑羅)이며 마타라(摩陀羅)라는 바라문의 논사가 있었다.
왕은 그가 변론을 잘하기 때문에 그 성에서 멀지 않은 한 읍(邑)을 봉해 주었다.
마타라는 가정을 꾸리고 그 아내가 딸을 낳았는데 그 눈이 꼭 사리조(舍利鳥)의 눈과 같았으므로 딸 이름을 사리(舍利)라 했다.
다음에는 아들을 낳았는데 무릎 뼈가 굵기 때문에 이름을 구치라(拘絺羅:큰 무릎]라 했다.
그는 가정에 살면서 아들과 딸을 기르며,
배우는 경서를 다 묵혔기 때문에 업이 새로워지지 않았다.
이 때 남천축에 제사(提舍)라는 바라문의 큰 논사가 있었다.
그는 18종의 대장경을 다 통달하고
왕사성에 들어와서는 머리에 불을 이고
배에는 구리쇠 조각을 붙이고 다녔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그가 대답했다.
‘내가 배운 경전이 매우 많아 배가 터질까 걱정되어 쇠 조각으로 묶는다.’
사람들이 물었다.
‘왜 또 머리에는 불을 이고 다니느냐?’
그가 대답했다.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또 물었다.
‘해가 떠 있는데 왜 어둡다고 하느냐?’
그가 대답했다.
‘어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빛이 비추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우치의 어둠 때문이니,
지금 해는 떠 있지만 우치는 그대로 어둡다.’
사람들이 말했다.
‘당신은 바라문 마타라 논사를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오.
만일 그 사람을 만나면 당신 배는 쭈그러들 것이고 그 밝음은 어두워질 것입니다.’
이 바라문은 바로 논의고(論議鼓)가 있는 데로 가서 그 북을 두드렸다.
왕이 소리를 듣고 물었다.
‘저이는 어떤 사람이냐?’
신하가 말하였다.
‘남천축에 제사라는 바라문이 있습니다.
그는 큰 논사로서 변론할 상대를 구하려고 저 북을 치는 것입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곧 대중을 불러모으고 말하였다.
‘누가 저 사람과 변론할 수 있겠는가,
있으면 나오너라.’
마타라는 이 말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나는 이미 경을 묵혔기 때문에 업을 새로이 할 수 없다.
과연 저 사람과 변론할 수 있겠는가?’
어름어름 오다가 길에서 두 마리 황소가 서로 뿔로 맞붙어 싸우는 것을 보고
혼자서 생각하였다.
‘저 중에서 이 소는 나요,
저 소는 저 사람이다.
이것으로 누가 이길까 점쳐 보자.’
그러다가 이 소가 지는 것을 보고는
곧 크게 걱정하면서 생각하였다.
‘이 모양은 내가 장차 지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려 할 때
어떤 여자가 물병을 들고 그 앞에 있다가 땅에 미끄러지면서 물병을 깼다.
그는 이것을 보자 생각하였다.
‘이것도 매우 불길한 징조다.’
그리고 매우 불쾌해 하면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 저 제사 논사를 보았다.
그는 제사의 얼굴과 표정에서 훌륭하고 뛰어난 상을 보고
스스로 질 줄을 알면서도 부득이 변론을 시작했다.
변론을 시작하자 이내 지고 말았다.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 멀리서 내 나라에 왔다.’
그리고 다시 한 마을을 봉해 주려고 신하들과 의논했다.
신하들은 말하였다.
‘저 총명한 사람에게 한 읍(邑)을 봉해 주십시오.
공신에게 상을 주지 않고 다만 말로 사랑한다 하면
이것은 나라를 편히 하고 집을 보전하는 도가 아닙니다.
지금 마타라는 변론에 졌으니 그 봉해 주었던 것을 빼앗아
저 이긴 자에게 주고,
만일 또 이기는 자가 있으면 그것을 빼앗아 다시 그 사람에게 주십시오.’
왕이 이 말을 채택하여 곧 그것을 빼앗아 뒤의 사람에게 주었다.
이 때 마타라는 제사에게 말했다.
‘당신은 총명한 사람이오.
나는 내 딸을 당신의 아내로 주어 사내를 많이 낳게 하겠소.
그리고 나는 지금 멀리 다른 나라로 가서
내 본래의 뜻을 이루려고 하오.’
제사는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는데 그 아내가 임신하여 꿈을 꾸었다.
어떤 사람이 갑옷을 입고 손에는 금강을 들고 모든 산을 다 쳐부순 뒤에
어떤 큰 산 곁에 서 있었다.
그녀는 꿈을 깨어 그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제사는 이 꿈 이야기를 듣고 말하였다.
‘당신은 장차 사내를 낳아 그 아이가 일체의 논사들을 항복시키고,
오직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하여 그의 제자가 될 것이오.’
사리(舍利:사리불)를 임신했기 때문에
그 어머니도 또한 총명하여 변론을 잘했으므로
그 아우 구치라는 그 누이와 변론할 때마다 늘 졌다.
그 아버지가 말하였다.
‘네가 밴 아이는 반드시 큰 지혜가 있을 것이다.
아직 나기 전에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나서야 어떠하겠는가?’
그리고는 드디어 집을 버리고 나가 도를 배우고
남천축으로 가서는 손톱을 깎지 않고 18종의 경서를 읽고 다 통달했다.
그래서 그 때 사람들은 모두 그를 장조(長爪)범지라 했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아 7일 뒤에 아이를 흰 천에 싸서 아버지에게 보였다.
그 아버지가 말하였다.
‘내 이름이 제사(提舍)이니 내 이름을 따라
아이 이름을 우파제사(憂波提舍)[우파는 축(逐)이란 뜻이요 제사는 별 이름이다.]라고 하리라.’
이 때문에 부모가 지은 이름이요,
사람들은 사리(舍利:어머니)가 낳았다 하여
모두 사리불[불(弗)은 아들이라는 뜻이다]이라 했다.
또 사리불이란,
세세(世世)의 본원(本願)으로
석가불 처소에서 ≺지혜 제일의 제자≻가 되려 하였으므로
이름을 사리불이라 했으니,
이것은 본원의 인연으로 이름을 사리불이라 한 것이다.’
【문】 만일 그렇다면 왜 우파제사라 하지 않고 다만 사리불이라고만 하는가?
【답】 그 때 사람들이 모두 그 어머니를 존중하여 여러 여자들 중에서 총명이 제일이라 하였으니,
이 인연으로 사리불(사리의 아들)이라 한 것이다.”
또 『불본행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바성(舍婆城)에 계셨다.
그 성 안에 시사파(尸奢波)라는 큰 나무가 있고 그 나무 그늘에는 많은 바라문들이 쉬고 있었다.
그들은 아난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서로 말하였다.
‘너희들은 알라.
저 사문 구담의 제자는 여러 제자들 중에서 총명과 다문(多聞)이 제일이다.’
이 말이 끝났을 때 아난이 거기 왔다.
그들은 물었다.
‘인자(仁者)여,
이 나무를 보시오.
모두 잎이 몇 개나 있소?’
아난은 그 나무를 자세히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동쪽 가지에 모두 약간의 1백 잎사귀와 약간의 천 잎사귀가 있소.
이와 같이 남쪽 가지와 서쪽 가지와 북쪽 가지의 잎을 다 말하면 모두 약간의 1백 잎사귀와 야간의 천 잎사귀가 있소.’
그리고 나서 거기서 떠났다.
바라문들은 아난이 떠난 뒤에
수백 개의 나뭇잎을 따서 한쪽에 숨겨 두고
아난이 돌아오자 저들은 아난에게 다시 물었다.
‘인자 아난이시여,
다시 오십니까?
이 나뭇잎을 또 보십시오.
얼마나 됩니까?’
그 때 아난은 저들이 얼마간 나뭇잎을 감춘 것을 알고 저들에게 답하였다.
‘동쪽 가지에 모두 약간의 1백 잎사귀가 있소.
이와 같이 남쪽 가지와 서쪽 가지 북쪽 가지에도 모두 약간의 1백 잎사귀와 약간의 천 잎사귀가 있소.’
이렇게 말하고 곧 거기서 떠났다.
그 때 저들 바라문은 희한한 일이라 생각하고 각기 말하였다.
‘저 사문은 참으로 총명하고 큰 지혜가 있다.’
저들은 이 인연으로 바른 믿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 뒤에 오래지 않아 모두 출가하여 아라한의 과보를 얻었다.
[대략 한두 가지를 적었다.
자세한 것은 경에 있다.]
게송을 읊는다.
요긴한 이치를 묘하게 답변하여
잘 이끌어 모두 굴복시킨다.
8수(水)는 마르는 싹을 잘 적시고
3명(明)은 장님 눈을 잘 틔워 준다.
모두 와서 하는 질문 각기 다르매
그 답변 모두 다 향기로워라.
4룡(龍)의 놀라움도 버리거니와
2서(鼠)의 쫓아옴도 또한 없앤다.
의수(意樹)는 공(空)의 꽃을 활짝 피우고
심련(心蓮)은 가벼운 향기 토한다.
이 큰 바다의 변함과 같고
저 암라 열매 익음과 같다.
묘한 지혜는 아름다운 비단 같고
깊은 말뜻은 고운 명주와 같다.
좋은 학문은 범조(梵爪)와 어긋나고
진실한 말은 섭복(鍱腹)과도 다르다.”
감응연(感應緣)[대략 네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진(秦)의 태수(太守) 조정(趙正)
진(晋)의 사문 석승예(釋僧叡)
진(晋)의 사문 지효룡(支孝龍)
진(晋)의 사문 강승연(康僧淵)
진(秦)의 태수(太守) 조정(趙正)
진(秦)나라 부견(符堅)의 신하 무위 태수 조정(武尉太守 趙正)은 충성과 정직의 뜻을 세우고 불법을 크게 폈다.
부견이 처음으로 패하자 여러 군사들이 다투어 일어나고 요망한 오랑캐들이 횡포를 부려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대부(大部)의 번역이 전한 것은 대개 조정의 힘에 의한 것이다.
또 혹은 조정의 이름을 문업(文業)이라고 하여 낙양(洛陽)의 장수(長守) 사람이라고도 하고,
혹은 제음(濟陰) 사람이라고도 한다.
나이 18세에 위진(僞秦)의 저작랑(著作郞)이 되었다가 뒤에 황문랑(黃門郞) 무위태수(武威太守)로 옮겼다.
그 사람됨이 수염이 없고 여위며 처첩은 있으나 아이가 없었으므로,
그 때 사람들은 모두 그를 엄인(閹人)이라 했다.
그러나 성질과 도량은 민첩하고 트였으며 학문은 내외를 다 겸했으며 성질은 바른말 하기를 좋아하여 거리낌이 없었다.
부견이 말년에 선비(鮮卑)를 사랑하고 그에 혹해 정치를 게을리 했다.
그래서 문업은 다음 노래로 충고했다.
옛날에 들으니 맹진(孟津)의 강물은
천리에 한 번 굽이친다 하였네.
이 물은 본래 스스로 맑았거늘
그 누가 휘저어 흐리게 하였던가?
부견은 안색을 변하면서 말하였다.
‘그는 바로 짐(朕)이네.’
문업은 또 노래했다.
북쪽 동산에 대추나무 한 그루
잎이 우거져 짙은 그늘 드리웠다.
겉에는 비록 그 가시가 많으나
그 열매 속에는 붉은 마음이 있다.
부견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는 바로 조문업이 아닌가?’
그의 해학과 변재의 예리함이 다 이와 같았다.
뒤에 관중(關中)의 불사(佛事)가 성함으로 이에 출가하기를 원했으나 부견은 그를 아껴 허락하지 않았는데,
부견이 죽은 뒤에 비로소 뜻을 이루고 다시 이름을 도정(道整)이라 했다.
이로 인해 다음 게송을 지었다.
부처님의 나오심은 어이 그리 늦으시며
그 열반에 드심은 어이 그리 빨랐던고.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명하노니
이제 와서 그 큰 도에 몸을 던지네.
뒤에는 상락산(商洛山)에 숨어살면서 오로지 경률(經律)에 정진하였다.
진(晋)나라 옹주 자사(雍州刺史) 희회(郗恢)는 그의 풍도를 흠모하여 억지로 사귀었다.
그는 양양(襄陽)에서 죽으니 나이는 60여 세였다.
진(晋)의 사문 석승예(釋僧叡)
진(晋)나라 장안(長安)의 석승예(釋僧叡)는 위군(魏郡)의 장락(長洛) 사람이다.
경론을 두루 통달하고 재치 있는 변론은 아무도 따르기 어려웠으므로 요흥(姚興)과 요숭(姚嵩)이 특히 우대하였다.
요흥이 요숭에게 물었다.
“승예공이 어떤 인물이오?”
요숭이 말하였다.
“그는 실로 업위(鄴衛)의 송백(松栢)이오.
”
요흥은 사람을 보내 승예를 청해 와서 그 재기(才器)를 보았다.
그 풍모와 운치는 깊고 트였으며 그 거동은 자재하고 빛났다.
요흥은 크게 기뻐하여 곧 봉록(俸祿)을 주고 가마를 타게 했다.
그 뒤에 요흥은 요숭을 보고 말하였다.
“그이는 바로 4천하의 스승이거늘 어찌 업위의 송백이라 하는가?”
이리하여 그의 아름다운 명예는 널리 퍼져 사방 사람이 다 그에게 귀의했다.
구마라집이 경전을 번역할 때 승예도 거기 참여했다.
옛날 축법호(竺法護)가 『정법화경(正法華經)』을 번역할 때 「수결품(受決品)」에 이르러 말하였다.
“하늘은 사람을 보고 사람은 하늘을 본다.”
구마라집은 이 대목에 이르러 말하였다.
“이 말은 서역(西域)에서의 뜻과 같다.
그런데 다만 그 말이 너무 질박하다.”
그 때 승예가 말하였다.
“사람과 하늘이 서로 교접(交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서로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자 라집이 말하였다.
“실로 그렇다.”
그의 슬기롭고 뛰어남이 다 이와 같았다.
라집은 그를 찬탄하여 말하였다.
“내가 경론을 번역하면서 그대와 만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한이 없다.”
그는 『대지론(大智論)』ㆍ『십이문론(十二門論)』ㆍ『중론(中論)』 등의 서문을 짓고 또 『대품경(大品經)』ㆍ『법화경(法華經)』ㆍ『유마경(維摩經)』ㆍ『사익경(思益經)』ㆍ자재왕선경(自在王禪經)』 등의 서문도 지어 다 세상에 전한다.
그는 경론을 크게 찬탄하고 그것을 항상 회향하여 안양국(安養國)에 나기를 발원했다.
이에 임종하는 날에는 방에 들어가 목욕하고 향을 피우고 예배한 뒤에 상을 돌려놓고는 서방을 향해 합장하고 죽었다.
이 날 그 절에서는 모두 향의 연기가 승예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나이는 67세였다.
진(晋)의 사문 지효룡(支孝龍)
진(晋)나라 회양(淮陽)의 지효룡(支孝龍)은 회양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풍모가 정중하고 또 신기한 풍채가 있으며 변론이 탁월하여 그 때에는 아무도 당할 사람이 없었다.
진류(陳留)ㆍ완(阮)ㆍ첨(瞻)ㆍ영천(潁川)ㆍ유개(庾凱) 등과 지음(知音)의 사귐을 맺어 세상 사람들은 다 그들을 8달(達)이라 했다.
혹 어떤 사람은 그를 조롱하여 말하였다.
“대진(大晋)에 용이 일어나 천하가 다 존중하거늘
사문은 어찌하여 머리를 기르지 않고 가사를 버리지 않으며
법복을 벗고 비단옷을 입지 않습니까?”
효룡이 말하였다.
“나는 하나의 이치[一]를 알고 소요(逍遙)하며 오직 고요함으로써 정성을 다한다.
머리를 깎아 얼굴을 헐며 옷을 바꾸어 형상을 그치는 것을,
저들은 이것을 내 수치라 하지만 나는 저들의 영화를 버린다.
그러므로 부귀에 무심하면서 더욱 부귀하고 만족에 무심하면서 더욱 만족하는 것이다.”
그의 임기응변(臨機應變)의 변재가 다 이러하였다.
그러므로 손작(孫綽)은 그를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조그만 꾀는 헤아리기 쉬우나
큰그릇은 상상하기 어렵네.
크고 굳세어라 이 효룡이여,
그 품위는 고상하고 넓구나.
중생이 다투어 귀의하여 높이고
사람은 우러러 본받기 생각하네.
천상의 샘물은 가득히 차고
향기로운 바람은 크게 메아리 치네.
진(晋)의 사문 강승연(康僧淵)
진(晋)나라 강승연(康僧淵)은 근본은 서역(西域) 사람으로
장안(長安)에서 성장했으므로
얼굴은 비록 호인(胡人)이었으나 말은 실로 중국말이었다.
그 거동은 침착하고 바르며 뜻하는 업은 크고도 깊었다.
진성(晋成) 때에 강법창(康法暢)ㆍ지민도(支敏度) 등과 함께 강을 건너갔다.
법창도 재주가 있었으므로 그와 자주 왕래하였다.
저명한 인물과 변론할 때에는 법창은 항상 주미(麈尾)를 가지고 있었고,
길을 가다가도 저명한 나그네를 만나면 청담(淸談)으로 해를 지웠다.
유원규(庾元規)가 법창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 주미를 항상 가지고 있는가?”
법창이 답하였다.
“청렴한 사람은 구하지 않고 탐하는 사람은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승연은 재치 있는 변설이 법창보다 더했다.
때때로 낭야 왕무홍(琅邪 王茂弘)이 승연의 코가 높고 눈이 깊은 것을 보고 늘 그것을 희롱하면 승연이 말하였다.
“코는 얼굴의 산이요 눈은 얼굴의 못이다.
산은 높지 않으면 신령스럽지 않고 못은 깊지 않으면 맑지 않으니라.”
그 때 사람들은 다 이것을 명답이라 했다.`
59.우당편(愚戇篇)[여기에는 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반타부(般陀部) 잡치부(雜痴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어리석음이란 모든 병의 근본이요 도를 방해하는 근원이다.
이것은 사람을 3유(有)에 머물러 있게 하고 4류(流)에 빠져 있게 하며 6정(情)을 항상 닫고 3독(毒)을 항상 연다.
묻는 자는 입은 시원하나 말을 내면 독을 이루어 홍치(洪痴)는 그 날개를 떨치지 못하고 명애(名愛)는 그 발을 놀리지 못하며 선한 마음을 호망(毫芒)에서 캐고 완흉(頑凶)을 호랑이 아가리에서 뺀다.
어로(魚魯)를 분별하지 못하거니 어찌 숙맥(菽麥)을 알겠는가?
우혹(愚惑)의 심한 죄여,
이보다 더 큰 것이 없구나.
(2) 반타부(般陀部)
『선견율(善見律)』에서 말하였다.
“반타(般陀)란,
길가에서 났다는 뜻이다.
무슨 까닭인가?
반타의 어머니는 본래 큰 부자 장자(長者) 집의 딸이었다.
장자는 이 독녀를 극히 사랑하여 7층의 누각을 짓고 여기 이 딸을 있게 하고,
한 사내종을 보내어 모든 것을 시중들게 했다.
사내종이 장대해지자 그녀는 사내종과 정을 통하고 그와 의논하여 말했다.
‘나는 지금 너와 다른 나라로 달아나고 싶다.’
이렇게 세 번 청했으나 사내종은 못 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다시 사내종에게 말했다.
‘네가 만일 떠나지 않고 여기 있으면 우리 부모가 알고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다.’
사내종이 말했다.
‘우리가 다른 나라로 가더라도 돈이 없는데 어떻게 생활하겠느냐?’
그녀는 다시 말했다.
‘만일 네가 나를 따라가기로만 한다면 나는 지금부터 우리 집의 재물을 훔쳐낼 것이니 그것을 가지고 같이 가자.’
사내종이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너와 같이 가리라.’
그리하여 그녀는 날마다 재물을 훔쳐 종에게 주어 밖에 감추어 두고,
두 사람의 무거운 짐이 될 만큼 되었다.
먼저 종을 보내어 밖에 있게 하고,
때를 맞추어 그녀는 여종 옷으로 변장하고자 자물통을 열고 나갔다.
그들은 멀리 다른 나라로 가서 편히 살았다.
1ㆍ2년이 지나 그녀는 아이를 배어 낳을 때가 임박하여 생각했다.
‘만일 내가 여기서 아이를 낳으면 돌보아 줄 사람이 없다.’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녀는 곧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사내와 의논했다.
그러자 사내는 가려 하지 않으며 말했다.
‘만일 돌아가면 나를 반드시 죽일 것이다.’
그러나 사내가 나무하러 산에 간 뒤에 그녀는 문을 닫아 두고 그 집을 떠나 버렸다.
사내는 돌아와 아내가 보이지 않자 이웃 사람에게 물었다.
‘내 집사람을 못 보았습니까?’
이웃 사람이 말했다.
‘당신 부인은 벌써 가버렸습니다.’
그 사내는 곧 쫓아가 길을 반쯤 가서 그 아내를 잡았을 때,
그 아내는 벌써 사내아이를 낳았다.
사내는 아내에게 말했다.
‘너는 애를 낳기 위해 가는 것인데,
이제 아이를 낳았으니 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
아내는 이 말을 듣고 곧 같이 돌아왔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 아내는 또 아이를 배어 그 아이를 낳으려고 다시 친정 집으로 가려고 했다.
사내는 또 쫓아가 아내를 데리고 돌아왔다.
이와 같이 아이를 모두 길가에서 낳았기 때문에 이름을 반타라고 했다.
반타의 형제는 여러 동무들과 같이 놀 때에 이 형제가 힘이 세어 여러 동무들을 때리므로 동무들은 그들을 꾸짖었다.
‘너희들은 6친(親)의 권속들도 없는 고단한 아이들로서 어찌 감히 우리를 때리느냐?’
형제는 이 나무람을 듣고 집에 돌아와 울면서 그 어머니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꾸 울면서 아무 것도 먹으려하지 않았으므로 어머니는 이것을 보고 매우 가엾이 여겨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다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저희들을 외가로 보내 주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것을 들어주지 않자,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으므로 어머니는 남편과 의논하여 아이들을 곧 외가로 보냈다.
그들은 외가의 문 밖에서 사람을 시켜 외조부모에게 알려,
외조부는 이 말을 듣고 하인에게 말했다.
‘그 두 아이를 들여보내고 너는 나가거라.’
장자(長者:외조부)는 두 아이를 맞아들여 향탕(香湯)에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 입히고 영락으로 꾸민 뒤에,
아이들을 안아 무릎에 앉히고 물었다.
‘네 어미는 타국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얼마나 고생하느냐?’
아이들이 답했다.
‘타국에서 가난하여 나무를 팔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가엾이 여겨,
곧 주머니에 금을 넣어 사람을 시켜 딸에게 보내면서 말을 전했다.
‘네가 낳은 아이들은 내가 기르겠다.
너는 이 돈을 가지고 먼저 살던 곳으로 가서 잘 살아라.
그러나 나와 만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자라나 각각 결혼했다.
외조부모가 연로하여 거의 죽게 되었을 때,
그 가산을 모두 두 아이들에게 부탁하고 외조부모는 죽었다.
그 형은 가 집안 일을 모두 아우에게 맡기고 출가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이 되었다.
그 뒤에 아우도 세속을 싫어해 형에게 가서 출가하려 하므로 형은 곧 제도했다.
그리고 형은 한 게송을 가르쳤으나 아우는 4개월 동안에도 그것을 외우지 못하고 모두 잊어버렸다.
형은 꾸짖고 생각하였다.
‘아우는 불법과 인연이 없다.
집으로 돌려보내야겠다.’
곧 그 가사 자락을 붙잡아 문 밖으로 쫓아내 보내었다.
아우는 문 밖에서 울기만 하고 집에는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 때 부처님께서 천안(天眼)으로 이 아이를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저 주라반타(周羅般陀:아우의 이름)는 제도할 인연이 있다.’
곧 거기 가서 우는 까닭을 물으셨다.
주라반타는 형에게 쫓겨난 인연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생각하셨다.
‘성문으로서는 제도할 수 없기 때문에 쫓아낸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을 위안시키시고 곧 조그만 흰 천을 반타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 천을 햇볕에 쪼이면서 ≺때를 없앤다.
때를 없앤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곧 비사가(毘舍佉)의 어머니의 청을 받아 마을로 들어가셔서 거기서 반타가 장차 도과(道果)를 얻으리라 관찰하시고,
다음 게송을 외우셨다.
적멸(寂滅)에 든 사람은 기뻐하며
법을 보고는 안락 얻는다.
먼저 성내지 않음이 최상의 즐거움이니
중생을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세간에 아무 욕락(欲樂)이 없어
애욕을 아주 끊어버리고
아만(我慢)을 잘 억제하면
이것이 제일의 즐거움이다.
그 때 주라반타는 멀리서 이 게송을 듣고 곧 아라한의 과를 얻었다.”
또 『증일아함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주리반특(朱利般特:주라반타)에게 쓸 소(掃)와 비 수(篲)를 가르치시고 이것을 외우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는 소를 외우면 수를 잊어버리고 수를 외우면 소를 잊어 버렸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소와 수를 다 해득하였다.
그리고 다시 제구(除垢:더러움을 제거함)라고도 한다고 가르치셨다.
반특은 생각했다.
‘재나 흙이나 기와 조각이나 돌을 제거하면 곧 청정해진다.
결박이 바로 더러움이니 이것은 지혜로 제거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지혜의 빗자루로 모든 결박을 소제하리라.’”
또 『신바사론』에서 말하였다.
“형은 가타 1게(偈)를 가르쳤으나 아우는 4개월이 지나도록 그것을 외우지 못했다.
형은 꾸짖으며 아우를 쫓아내 버렸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아우가 우는 것을 보고 가엾이 여겨 곧 신통의 힘으로 그가 외우려는 가타를 바꾸어 다시 다른 게송을 가르쳤더니,
4개월 동안 공을 들여 그것을 외웠다.
다시 진구(塵垢)를 제거하는 게송을 가르쳐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오늘 밖에서 오는 비구가 있거든 너는 그 가죽신의 먼지를 다 닦아주어라.’
소로(小路:주라반타)는 공손히 그 분부를 받들었다.
해질 녘에 어떤 비구가 왔는데 그 가죽신에 먼지가 묻어 아주 더러웠다.
소로는 그것을 닦아 한 짝은 극히 깨끗해졌으나 한 짝은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자 가만히 생각했다.
‘바깥 물건이 잠깐 먼지에 더러워진 것도 깨끗이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안의 탐욕과 성냄과 우치 등의 때에 오랫동안 더러워진 마음을 어떻게 깨끗이 할 수 있으랴.’
이렇게 생각했을 때 저 부정관(不淨觀) 및 지식념(持息念)이 곧 앞에 나타나,
차츰 아라한의 과를 얻었다.
【문】 소로는 무슨 인연으로 저렇게 우둔한가?
【답】 옛날 가섭부처님 때에 그 부처님의 3장(藏)을 다 완전히 받아 지녔으면서도,
법의 간탐의 때가 그 마음을 덮음으로 말미암아 일찍이 남을 위해서는 그 글과 뜻을 가르쳐 주지 않았으므로 그만 다 잊어 버렸으니,
그 업 때문에 지금 저렇게 우둔한 과보를 받은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 소로 존자는 전생에 바라니사성(婆羅泥斯城)에서 돼지 파는 사람이 되어,
5백 마리 돼지 입을 묶어 배에 싣고 저쪽 언덕에 건너가,
배에서 내려놓았을 때에는 돼지들은 숨이 막혀 이미 다 죽어 있었다.
그 업력으로 말미암아 저렇게 우둔해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 존자는 전생에 구타(瞿陀)라는 짐승의 굴 문을 막아 그들을 나오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굴 속에서 다 죽었다.
그 업으로 말미암아 저렇게 우둔한 것이다.’”
또 『처처경(處處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주리반특 비구는 배우고 질문하면서 24년을 지냈지만 안 것은 겨우 5언(言)이었다.
그러나 번뇌를 알면서도 걱정하지 않았으니,
왜냐 하면 본래의 숙명 때문이었다.
다시 5백 부처를 만나 여러 경전을 통달하였으나,
다만 장경의 도를 덮어두고 남에게 가르쳐 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뒤에 병이 든 지 24일에 죽음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후회하고 사람을 불러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 하나의 복 때문으로도 5언(言)을 알았거늘 하물며 완전히 남에게 가르쳐 줌이겠는가.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또 『법구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주리반특이라는 비구가 새로 출가하였으나 성질이 우둔하였으므로 부처님께서는 5백 아라한을 시켜 날마다 그를 가르치게 하셨다.
그러나 3년 동안에도 그가 1게(偈)도 해득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나라의 네 부류들도 다 그의 우둔함을 알았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가엾이 여겨 다음의 한 게송을 가르치셨다.
입을 삼가고 뜻을 거두고 몸으로 범하지 말라.
이와 같이 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제도하리.
너는 지금 나이 늙어서야 비로소 한 게송 얻었나니
모든 사람 다 그런 줄 아는 것 이상할 것이 없다.
지금 너를 위해 이 이치를 해설하리니
활연히 마음이 열려 아라한의 도 얻으라.
그 때 바사닉왕은 부처님과 스님들을 정전(正殿)의 모임으로 초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반특의 위신을 나타내기 위해 발우를 그에게 주어 뒤를 따르게 하셨다.
그러나 문지기는 그를 붙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서 말하였다.
‘당신은 사문인데 한 게송도 해득하지 못하면서 초청을 받아 무엇하겠소?
나는 속인인데도 게송을 알거늘 어찌 사문으로서 지혜가 그리 없소.
당신에게는 보시해야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오.
당신은 들어가지 마시오.’
반특은 부득이 문 밖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정전에 앉으시고 물을 다 돌렸다.
반특은 발우를 들고 팔을 펴서 부처님께 발우를 드렸다.
왕과 대신ㆍ부인ㆍ태자 및 4중(衆)들은 팔만 들어오고 사람의 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괴상히 여겨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것은 누구의 팔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현자 반특 비구의 팔이요.’
그래서 반특을 청해 들였는데 그의 위신은 평소에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듣건대 존자 반특은 본성이 매우 우둔하여 이제야 겨우 한 게송을 안다는데 무슨 인연으로 도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학문이란 꼭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요 실행이 최상입니다.
현자 반특은 1게의 뜻만을 알지만 그 이치에 정묘하고 신(神)의 경지에 들어가 몸과 입과 뜻이 고요하여 깨끗하기 천금(天金)과 같습니다.
아무리 많이 배웠다 하더라도 실행하지 않으면 한갓 식상(識想)만 해치는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천 장(千章)의 글을 외운다 하더라도
그 글귀의 뜻이 바르지 못하면
하나의 요의(要義)를 듣고
뜻을 멸제(滅除)함만 못하느니라.
천의 말귀를 외운다 하더라도
뜻답지 않으면 무슨 이익 있으리.
한 말귀의 뜻만을 듣고도
행하여 제도됨만 못하느니라.
아무리 많은 경을 외우더라도
뜻을 모르면 무슨 이익 있으리.
하나의 법구라도 잘 해득하여
그대로 행하면 도를 얻느니라.
이 게송을 같이 들은 250비구들은 다 아라한의 도를 얻고,
왕과 대신ㆍ부인 및 태자는 모두 크게 기뻐했다.”
또 『법구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다마라국(多摩羅國)의 그 성 밖 7백 리에 정사가 있고,
5백 사문이 항상 거기 살면서 경을 읽고 외우며 도를 수행하고 있었다.
거기 마하로(摩訶魯)라는 늙은 비구는 사람됨이 매우 우매하여 5백 도인들이 차례로 가르쳤으나 몇 년 동안에 한 게송도 외우지 못했다.
모두 그를 무시하여 상대하지 않고 항상 정사 지키기와 소제하는 일만을 시켰다.
그 뒤에 국왕은 모든 도인을 초청하여 궁중에 들어가 공양하게 되었다.
마하로는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이 세상에 나서 이처럼 우매하여 한 게송도 외우지 못하므로 남의 천대를 받는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그는 곧 노끈을 가지고 후원의 큰 나무 밑으로 가서 목을 매어 자살하려 했다.
부처님께서는 도안(道眼)으로 멀리서 이것을 보시고 곧 수신(樹神)으로 화해 반신(半身)의 사람으로 나타나 꾸짖으셨다.
‘아아,
비구야,
왜 이런 짓을 하느냐?’
마하로는 그의 괴로운 사정을 자세히 하소연했다.
화신(化神:부처님)은 말하였다.
‘그런 짓을 말고 우선 내 말을 들으라.
너는 가섭부처님 때에 3장(藏) 사문으로서 5백 의 제자를 거느리고 지혜가 많다고 자처하면서 대중을 무시하고 인색하여 경전의 뜻을 조금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세상마다 모든 근(根)이 암둔한 것이니,
다만 자책할 뿐이지 왜 스스로 천대하느냐?’
그리고 세존께서는 신(神)의 광명의 상을 나타내어 다음 게송을 외우셨다.
제 몸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켜야 할 것을 삼가 지키고
해득하기를 희망하면서
바름을 배우면서 자지 않는다.
몸이 세상에 제일이거니
부디 스스로 배우기 힘쓰고
남을 가르침 곧 이익이니
게으르지 않으면 지혜 얻으리.
먼저 스스로 바르기를 배우고
그 다음에 남을 바르게 하라.
몸을 단속해 슬기에 들어가면
반드시 다시 상근(上根)이 되리.
자신을 이롭게 하지 못하고
어떻게 남을 이롭게 하리.
마음이 고르고 몸이 바르면
무슨 서원인들 이루지 못하리.
내가 본래 지은 그대로
뒤에 내가 스스로 받는다.
악을 행하다 스스로 고치면
금강이 구슬을 뚫는 것 같으니.
마하로 비구는 부처님께서 나타내신 광명의 상을 보고는 슬픔과 기쁨과 두려움으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게송의 이치를 생각하다가 곧 선정에 들어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그리하여 무수한 전생 일을 알아 3장의 모든 경전의 뜻을 곧 꿰뚫어 마음에 있음을 알았다.
부처님께서 마하로에게 말씀하셨다.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궁으로 가서 공양하되,
그 5백 도인들의 윗자리에 앉으라.
이 도인들은 바로 전생의 그대 제자들이니,
다시 그들에게 설법하여 도를 얻게 하고,
또 그 왕으로 하여금 죄와 복의 인과를 밝게 믿게 하라.’
그는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바로 왕궁으로 들어가 윗자리에 앉았다.
여러 사람들은 다 괴상히 여겼으나 왕의 뜻을 알 수 없어 감히 꾸짖지는 못하고 그가 우치하여 달친(達嚫)에 참여하지 못해 마음이 피로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왕은 곧 음식을 내려 손수 분별했다.
그는 달친을 위해 설법할 때 그 음성은 벽력같고 시원한 말씨는 비처럼 내리는데,
그 자리에 있던 노인들은 다 송구하여 후회하고 모두 아라한이 되어,
왕을 위한 그 설법을 다 해석하고,
신하와 관리들은 다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3) 잡치부(雜痴部)
① 모기를 때림
『십송률』에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을 위하여 『본생경(本生經)』을 말씀하셨다.
“옛날 어떤 까까머리에 물들인 옷을 입은 사람이 그 아들을 데리고 물가에 나가 옷을 빨아 쥐어짜 말린 뒤에 그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 때 마침 날씨가 몹시 더워 눈이 아파서 길가의 어떤 나무 밑에서 옷 보따리를 베고 누워 잠이 들었다.
모기 한 마리가 날아와 그 머리에 앉아 피를 빨았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극히 피로해 잠자는 것을 보고 곧 발악하여 욕을 하였다.
‘이 나쁜 모기 새끼야,
왜 와서 우리 아버지 피를 빠느냐?’
그리고는 곧 큰 막대기로 모기를 때렸다.
그러나 모기는 날아가고 아버지 머리를 때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 때 그 나무의 신(神)은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지혜로운 이와 원수가 될지언정
무지한 자와는 친하지 말라.
어리석어 아버지 위해 모기를 때리다가
모기는 날아가고 아버지 머리를 부수었네.”
② 파리를 때림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사위국의 어떤 노인이 출가하여 아이를 사미로 삼았다.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였는데 마을은 멀고 해는 저물고 아버지 걸음은 더디었다.
아이는 독한 짐승을 염려하여 급히 그 아버지를 붙들다가 아버지를 땅에 쓰러뜨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 마음을 안다.
너는 아무 악의가 없었으니 살인죄를 줄 수 없다.
이것은 과거에 네 아버지가 자다가 파리 떼가 자주 와서 괴롭힐 때,
너를 시켜 파리를 쫓게 했다.
파리가 네 얼굴에 붙는 것을 보고 네 아버지는 지팡이로 파리를 때린 것이 그만 너를 때려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악의가 아니었는데,
지금 도로 그것을 갚은 것이다.’”
③ 달[月]을 구출(救出)함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바라내성(波羅柰城)이 있었고 그 나라 이름은 가시(伽尸)였다.
그 어떤 텅 비고 한적한 곳에서 5백 마리 원숭이가 숲 속을 돌아다니다가 한 니구율수(尼俱律樹) 밑에 이르렀다.
그 나무 밑에 우물이 있고 우물에 달 그림자가 나타났다.
원숭이왕은 이 달 그림자를 보고 다른 원숭이들에게 말했다.
‘달이 지금 죽어 우물 속에 떨어져 있다.
너희들은 다 함께 저것을 구출하여 이 세상이 오래도록 어둡게 하지 말라.’
저들이 그것을 구출할 의논을 할 때 원숭이왕은 말하였다.
‘나는 구출하는 법을 안다.
내가 저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을 것이니,
너희들은 내 꼬리를 붙들고 차례로 서로 이어 내려가면 저것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저들은 그 왕의 말을 따라 차례로 그 꼬리를 붙들고 내려가다가 물에 조금 못 미쳐,
매달린 원숭이들은 무겁고 나뭇가지는 약해서 그만 가지가 부러져 모두가 물 속에 빠졌다.
그 때 그 나무의 신은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 미련한 덤불 속의 짐승들
이들은 어리석어 서로 따르다가
모두 함께 스스로 고뇌하지만
어떻게 저 달을 구출할 수 있으리.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원숭이왕은 지금의 저 제바달다요,
그 때의 그 원숭이들은 지금 의 저 6군(群) 비구들이다.
그 때에도 서로 따르다가 그런 고통을 받았는데 지금도 또한 그러하니라.’”
④ 그림자를 질투함
『잡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어떤 부부가 포도주 항아리 안의 포도주를 떠내려다가 항아리 안에서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항아리 안에 사람을 숨겨 두었다고 서로 질투하여 죽도록 서로를 때렸다.
그 때 어떤 도인이 그들을 위해 항아리를 때려부수어 술이 다 없어지자 따라서 사람도 없어졌다.
그들은 그 그림자가 자기들의 그림자임을 알고 모두 부끄러워했다.
도인은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그들은 다 아유월치(阿惟越致)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그림자를 보고 싸우는 그들을,
3계(界)의 사람들이 5음(陰)과 4대(大)가 고통이요 공(空)인 것을 알지 못하고,
3독(毒)을 가지고 생사가 끊이지 않음에 비유하신 것이다.”
⑤ 옷을 나눔
『십송률』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교살라국(憍薩羅國)에서 큰 비구들과 함께 안거(安居)하고 계셨다.
어떤 두 늙은 비구는 안거를 마치고 많은 보시를 얻고는 생각했다.
‘사람은 둘인데 물건은 많다.
함부로 나누면 죄가 된다.’
그리하여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때 발난타(跋難陀) 비구는 이것을 알고 저들에게 가서 ‘당신들의 얻은 옷을 다 나누었는가?’
두 비구가 말했다.
‘아직 나누지 못했습니다.’
두 비구는 오히려 물었다.
‘당신이 잘 나누어주겠습니까?’
발난타는 승낙한 뒤에 생각했다.
‘여기서는 갈마(羯磨)를 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하고 곧 그 옷들을 가져다 앞에 놓고,
그것을 세 뭉치로 나누어 한 뭉치는 비구들 사이에 두고 두 뭉치는 제 앞에 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당신들은 내 갈마를 들어 보시오.’
그리고 게송으로 말했다.
당신네 두 사람에게 한 뭉치이니
이리하여 당신네는 셋이 되고
두 뭉치는 내 앞에 있으니
이리하여 이것도 셋이 된다.
그리고 물었다.
‘이 갈마가 좋습니까?’
저들이 대답했다.
‘좋습니다.’
발난타가 이 두 뭉치 옷을 메고 가려 하자 저들이 말했다.
‘대덕(大德) 상좌(上座)시여,
우리 옷은 아직 나누지 못했습니다.’
발난타는 말하였다.
‘당신네 몫은 이미 다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법을 아는 사람은 으레 좋은 옷을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저들이 대답했다.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발난타는 그 중에서 제일 좋고 값진 것을 가려 한 쪽에 두고,
나머지를 둘로 나누어주고는 따로 둔 것을 메고 가버렸다.
여러 비구들은 이 소문을 듣고 부처님께 아뢰었고 부처님께서는 두루 꾸짖으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발난타는 이 생에서만 빼앗은 것이 아니라 전생에서도 빼앗았느니라.
즉 지난 세상에 어떤 강 구비에서 두 마리 수달이 강에서 큰 잉어 한 마리를 잡았으나 나눌 수가 없었다.
수달이 그것을 지키고 있을 때 여우 한 마리가 물을 먹으러 강으로 왔다가 이것을 보고 수달에게 말했다.
≺조카들아,
여기서 무얼 하느냐?≻
≺아저씨,
이 강에서 이 잉어를 잡았는데 나눌 수 없습니다.
아저씨가 나누어주시겠습니까?≻
여우는 말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게송으로써 3분으로 나누리라 생각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중에 누가 얕은 물에 들어가기를 좋아하느냐?≻
저들이 대답했다.
≺그는 아무개입니다.≻
여우가 또 물었다.
≺그러면 누가 깊은 데 들어가기를 좋아하느냐?≻
저들은 또 아무개라고 했다.
여우는 말했다.
≺그러면 너희들은 이제 내 게송을 들으라.≻
그리고 다음 게송을 외웠다.
얕은 데 들어가는 자에게는 꼬리를 주고
깊은 데 들어가는 자에게는 머리를 준다.
그리고 그 중간의 살 토막은
으레 법을 아는 자에게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여우는 잉어 몸통을 물고 돌아왔다.
암컷 여우가 이것을 보고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당신은 그것을 어디서 물고 왔나?
입에 가득히 강에서 잡았는가?
이와 같이 머리와 꼬리가 없는 것을
이 잉어의 맛난 살을 잘 먹겠구나.
그러자 수컷 여우는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사람들은 서로 말로 공격하면서
분별하는 법을 알지 못하네.
분별하는 법을 잘 아는 자는
관청의 창고를 얻는 것 같다.
머리도 꼬리도 없는 잉어를
그 때문에 나는 얻어먹는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두 마리 수달은 저 늙은 두 비구요 저 여우는 이 발난타이다.
이 발난타는 이와 같이 전생에도 빼앗았고 금생에도 빼앗는 것이다.’”
⑥ 누각을 지음
『백유경(百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너무나 무지하여 어떤 부잣집의 3층이 높고 넓고 화려한 것을 보고 생각했다.
‘내 재산도 저 사람보다 못하지 않다.
난들 왜 저런 집을 못 짓겠느냐?’
곧 목수를 불러 물었다.
‘너는 저런 집을 지을 줄 아는가?’
목수가 대답했다.
‘저것은 내가 지은 집입니다.’
그는 말했다.
‘지금 내 집도 그렇게 지으라.’
목수는 곧 땅을 재고 구덩이를 파는 등 누각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목수에게 말했다.
‘나는 밑의 2층은 필요 없다.
최상의 3층부터 먼저 지으라.’
목수가 말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밑의 2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3층을 짓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은 고집하여 말했다.
‘나는 밑의 2층이 필요 없다.
꼭 3층을 지으라.’
그 때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비웃었다.
마치 세존의 네 부류 제자들이 3보에 대한 공경을 부지런히 닦지 않고 도과(道果)를 구하기에 게으른 것처럼,
밑의 3과(果)는 구하지 않고 제4의 아라한의 과를 얻으려 하다가 세상 사람의 비웃음을 받는 것도 저 어리석은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3승(乘)의 차례에 의하지 않고 먼저 대승을 배우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장경에 ‘먼저 소승을 배운 뒤에 대승을 배우지 않으면 그는 부처 제자가 아니다’ 한 것이다.]
⑦ 칼을 감
『백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사람이 매우 곤궁하여 왕을 위해 오랫동안 일하다가 몸이 자꾸 여위어갔다.
왕은 그것을 보고 가엾이 여겨 죽은 낙타 한 마리를 주었다.
이 사람은 이것을 얻어 그 가죽을 벗기려 했으나 칼이 잘 들지 않아 숫돌을 구해 갈려고 했다.
그래서 다락에 올라가 숫돌을 얻어 거기에 칼을 갈아 가지고 내려와 낙타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꾸 오르내리기가 귀찮고 힘들다 하여,
낙타를 다락에 달아놓고 그걸 잡고 올라가 숫돌을 집어 칼을 갈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다.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계를 깨뜨리면서 재물을 많이 모아 그것으로 복을 닦아 하늘에 나기를 바라다가 도리어 그 화를 받는 것처럼,
낙타를 다락에 달아 놓고 그걸 잡고 올라가 칼을 가는 것은 그 공은 많이 들지만 얻는 것은 매우 적으니라.”
⑧ 향을 팜
『백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장자가 바다에 들어가 침수향(沈水香)을 캐다가 여러 해 만에야 겨우 한 수레의 향을 얻었다.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았으나 워낙 값이 비싸기 때문에 갑자기 사는 사람이 없었다.
여러 날 동안 팔리지 않아 심신이 몹시 고달팠는데,
마침 숯장수의 숯이 빨리 잘 팔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곧 침수향을 불에 살라 숯을 만들어 팔았으나 반 수레의 값도 받지 못했다.
세간의 미련한 사람들도 이와 같아서,
무량한 방편으로 부지런히 불과(佛果)를 구해야 할 것인데,
그것이 얻기 어렵다고 하여 곧 물러날 마음을 내어 ‘차라리 성문과(聲聞果)에 발심하여 생사를 빨리 끊는 것만 못하다’ 하고,
그만 아라한이 되고 마느니라.”
⑨ 떡내기
『백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부부가 떡 세 개를 가지고 하나씩 먹고 남은 한 개를 두고 서로 약속하였다.
‘누구든 먼저 말하는 사람은 떡을 먹지 못한다.’
이렇게 약속하였으므로 아무도 감히 말하지 못했다.
조금 있다가 도적이 그 집에 들어와 재물을 다 훔쳐 모두가 도적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먼저 약속 때문에 눈으로 그것을 다 보고도 말하지 않았다.
도적은 그 사내 앞에서 그 아내를 겁탈했으나 사내는 눈으로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곧 ‘도적이야’하고 고함을 치고는 그 사내에게 말했다.
‘이 미련한 사람아,
어쩌면 떡 하나 때문에 도적을 보고도 외치지 않는가?’
사내는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저 떡은 당신은 못 먹는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다 비웃었다.
범부들도 이와 같다.
조그만 명예와 이익을 위해 거짓으로 침묵을 나타내지만,
허망한 번뇌 때문에 갖가지 도적의 침해를 받아,
그 선법을 잃고 3도(塗)에 떨어지면서 이것을 두려워함으로써 세상을 벗어날 도를 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5욕(欲)의 쾌락에 빠져 아무리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걱정하지 않나니,
저 우치한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⑩ 아내를 두려워함
『백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맞이했다.
한 아내를 가까이 하면 한 아내가 성을 내고 하여,
그것을 조절하기 어려워 두 아내 복판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마침 소나기가 쏟아져 그 집에 물이 새어 물과 흙이 함께 그 눈에 떨어졌다.
그러나 먼저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일어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다가 끝내는 두 눈이 모두 멀게 되었다.
세상의 범부들도 이와 같다.
나쁜 벗을 가까이해 비법(非法)을 행함으로써 나쁜 업을 짓고 3악도에 떨어져 길이 생사 속에 있으면서 지혜의 눈을 잃어버린다.
이것은 저 어리석은 사내가 두 아내를 맞이했다가 두 눈을 다 잃는 것과 같으니라.”
⑪ 쌀을 숨김
『백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사람이 처가에 갔다가 쌀 찧는 것을 보고는 곧 그 쌀을 훔쳐 입에 넣었다.
아내가 돌아와 남편을 보고 무슨 말을 했으나 남편은 입에 가득 든 쌀 때문에 대답할 수 없었고,
또 아내 보기가 부끄러워 입의 쌀을 뱉어 버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끝내 아무 말도 못했다.
아내는 괴상히 여겨 손으로 남편의 입을 만져 보고 입의 종기라 생각하고 그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이가 우리 집에 처음 왔는데 갑자기 입에 종기가 생겨 말을 못합니다.’
그 아버지는 곧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는 말하였다.
‘이 병은 매우 중증인데 꼭 석옹(石雍) 같습니다.
칼로 긁어내야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칼로 그 입을 찢자 쌀이 쏟아져 나와 그 사실이 탄로되었다.
세간 사람도 이와 같다.
온갖 악을 행하여 청정한 계를 범하고도 그 허물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으려다가,
끝내는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에 떨어지는데,
이것은 저 우치한 사람이 조그만 부끄럼 때문에 쌀을 뱉으려 하지 않다가 입을 찢어서야 그 허물이 드러나는 것과 같으니라.”
⑫ 눈 깜작거림을 본받음
『백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사람이 왕의 뜻을 얻으려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어떻게 하면 왕의 뜻을 얻을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말했다.
‘왕의 뜻을 얻으려거든 왕의 형상을 본받아라.’
이 사람은 왕이 눈을 깜작거리는 것을 보고 곧 그것을 본받아 자꾸 눈을 깜작거렸다.
왕은 물었다.
‘너는 왜 자꾸 눈을 깜작거리느냐?
너는 눈병이 생겼느냐,
바람을 맞았느냐?’
그는 말했다.
‘나는 눈병도 없고 바람도 맞지 않았습니다.
대왕의 뜻을 얻으려고 대왕이 눈을 깜작거리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받은 것입니다.’
왕은 크게 화를 내어 곧 사람을 시켜 때려 주고 나라 밖으로 내쫓았다.
세상 사람도 이와 같다.
부처 법왕을 가까이 하려고 그 선법을 구해 그것을 자꾸 늘리다가,
이미 친한 뒤에는 여래 법왕(法王)이 중생을 위해 갖가지 방편으로 그 단점을 들어내시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하고는,
그들을 비방하려고 그렇지 않은 것을 본받는다.
그 때문에 불법 안에서 영원히 그 선을 잃고 3악도에 떨어지나니,
이것은 저 우치한 사람이 왕의 눈 깜작임을 본받는 것과 같으니라.”
⑬ 나무를 두려워함
『백유경』에서 말하였다.
“여우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바람에 나무 가지가 부러져 그 등에 떨어졌다.
그는 곧 눈을 감고 그 나무를 보려고도 하지 않고 다른 데로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해가 저물어도 그 나무 밑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다가,
바람이 불어 그 나무 가지가 아래위로 흔들리는 것을 멀리서 보고는,
저를 부른다 생각하고 그 나무 밑으로 돌아왔다.
우치한 제자도 이와 같다.
한번 출가하여 스승을 가까이 하다가 조그만 꾸지람을 듣고 곧 다른 데로 달아난다.
그랬다가 뒤에 나쁜 벗을 만나 쉬지 않고 시달림을 받고는 비로소 옛날의 스승에게로 돌아온다.
이렇게 갔다 왔다 하는 것은 그 어리석음 때문이니라.
게송을 읊는다.
애욕의 그물은 마음의 어둠을 엮고
탐심의 우치는 지혜의 밝음을 등진다.
비록 슬기의 횃불에 비치어도
어리석음에 그대로 눈이 어둡다.
언제나 어리석어 깨닫지 못해
슬기의 종자가 싹을 내지 못하나니
높은 벗을 사모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정신을 깨우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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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acques Dutronc - Quand C'est Use On Le Jette.l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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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도 마찬가지다. 선과 길이가 갖는 의미부터 검토해야 한다. 선의 길이는 입체적으로는 밑변(가로길이) 높이(세로길이)로서 면적(넓이)와 관련되고 밑변 높이 두께(깊이,너비) 등으로 부피와 관련된다. 그리고 다시 시간과 관련되어 운동(위치)변화, 물리적 형상변화, 화학적 성상변화, 생멸, 인과문제와도 관련된다. 한편 각의 크기가 다시 이들 물리적 양과 상호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런 물리적 양이 다시 삶과 관계성을 갖는다. 즉 살면서 한 주체가 희망하는 상태의 성상. 그 상태가 갖는 가치 비교, 그리고 활동 목표 그 실현 방안과 관련을 맺는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조금 안락한 의자를 구하고 싶다. 또는 편한 소파를 구하고 싶다. 또는 조금 우아하고 아름다운 장식물을 구한다. 자신의 체중을 조금 건강하게 관리하고 싶다. 사회에서 자신이 존중받는 상태로 되고 싶다. 등등의 희망을 갖는다. 이 때 자신과 외부세계가 갖는 물리적 양이 이와 관련된다. 예를 들어 의자가 무조건 긴 것이 편안함을 주는가. 그렇다고 무조건 작은 것이 편안함을 주는가 그렇다고 물리적 크기가 전혀 없는 것이 편안함을 주는가. . 그렇지 않다. 적절한 크기가 있다. 그래서 구체적 상황에서 그 구체적 내용을 알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로 각 측면에서 사용되는 측정기준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떤 일정한 측면에서는 그 존재가 파악되고 문제된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선과 넓이(면적)을 살펴보자. 아주 긴 선을 아무리 무한하게 합쳐도 면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관념상 선은 길이만 갖기 때문이다. 선이 가로(밑변)길이 뿐 아니라 세로길이(높이)를 0.00000....1 이라도 갖는다면 그것은 일단 면적을 갖는 문제가 된다. 그런데 선은 그렇지는 않다. 면적과 부피의 관계도 또 마찬가지다. 부피와 운동변화의 관계도 같다. 점, 선, 면적, 부피는 관념상 물리적 양을 측정하는 기준이다. 서로 관련은 된다. 그렇지만 다른 영역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각 영역에 들어가기 위한 한 요소가 0 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들은 정지단면에서 문제된다. 그래서 운동 변화과정과 관련은 된다. 그러나 정작 운동변화의 내용은 여기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오고감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한 정지단면에서도 그런 내용은 얻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관념영역안의 관념 내용이다. 이들은 감각현실과 관련해 '일으킨' 관념내용이다. 그래서 관련은 된다. 그렇지만 정작 감각현실 영역에서 이들 내용은 얻어지지 않는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 관계는 마치 눈으로 본 내용은 그 일체정보가 청각정보에서 얻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Edith Piaf - Serenade Du Pave 쉬는 가운데 본인이 제시한 내용이 순 엉터리라고 비난하는 듯한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일반적인 망집과 관련된다. 얻을 수 없는데도 그렇게 얻어지고 있다고 여기면서 현실에 그처럼 상을 취하면서 임하게 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거나 않거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러면 이로 인해 감각현실 영역에서도 변화가 발생한다. 그 상태가 이후 고통을 겪게 만든다. 그리고 이 상태가 바로 생사고통의 문제다. 이 가운데 극심한 상태가 욕계내 3 악도 [아귀, 축생, 지옥]의 문제다. 누구나 이 상태에 처하면 이제 이것이 삶의 문제임을 파악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결과에 처한 상태에서는 되돌리기 힘들다. 그래서 그 결과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현명하다. 따라서 처음 망집을 일으키게 되는 그 단계에서 그것을 시정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망집에 바탕해 행하게끔 되던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그러한 상황에서 일으키던 생각, 말, 글, 행위, 태도 즉 일체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로 기존에 쌓여진 업의 장애를 해소시킬 수행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고통에 처하지 않게 된다. 다만 망집을 일으켜 임하는 상태에서는 처음 내용부터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망상분별을 고집하고 집착하며 계속 업을 행해 나가게끔 된다. 그리고 이후 축사나 아귀세계등에서 겪어 나가게 된다. 직접 그 사정을 파악하게 될 때는 늦다. 탈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더라도 대단히 힘들다. 현실에서 망집을 제거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무량겁을 두고 살피더라도 그 상테애서 벗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래서 이 문제가 전체적으로 수행과 관련된다. 이를 종합적으로 살피려면 우선 기본적인 도형 그림이 필요하다. 조금 준비하고 다시 이어 나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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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정보 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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쀉
불기2564-08-03_법원주림_053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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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주림_K1406_T2122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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