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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8-30_대방광불화엄경수자분-K0084-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4(2020)

불기2564-08-30_대방광불화엄경수자분-K0084-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20. 8. 30. 13:37



®


『대방광불화엄경수자분』
K0084
T0306

수자분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대방광불화엄경수자분』 ♣0084-001♧





수자분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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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方廣佛花嚴經修慈分一卷
K0084

대방광불화엄경수자분(大方廣佛花嚴經修慈分)

제운반야(提雲般若) 등 한역
주법장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취봉산(鷲峯山:靈鷲山)에 무량한 대보살(大菩薩)의 무리와 함께 계셨는데 
미륵보살마하살이 상수(上首)가 되었다.

그때 동방(東方)에 10억의 범천이 모두 자비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부처님의 발에 정례(頂禮)하고 많은 미묘한 공양구(供養具)로 부처님께 공양 올렸다. 
공양을 마치고서는 제각기 많은 복이 생기는 연화좌(蓮華坐)에 앉아서 
여래를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우러러보았다. 

그리고 남ㆍ서ㆍ북방ㆍ사유(四維)ㆍ상(上)ㆍ하(下)에서 온 모든 범천들도 
모두 이와 같이 하였다.


그때 모든 범천의 무리들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제각기 자비스러운 눈으로 서로서로 두리번거리다가 
동시에 안색을 펴며 미륵보살을 자세히 보았다.

이때에 미륵보살마하살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긴 무릎을 꿇은 채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 “대덕세존(大德世尊)이시여, 
일체지자(一切智者)는 
모든 법성(法性)에 대해서 능히 바르게 깨닫고 요별하여 
중생들의 선악(善惡)의 업(業)을 두루 알고 
이로 말미암아 생사(生死)에 왕래하는 어리석은 범부들에게 
3승(乘)의 도(道)를 잘 깨닫게 하고, 
3승을 1승(乘)에 돌아가게 합니다. 
또한 모든 중생들의 근성차별(根性差別)과 번뇌로 얽히고 덮인 속에 
여래의 종자가 있음을 널리 다 분명히 보아 
잘못하여 상실하는 일이 없습니다. 

또 모든 법이 
다 공하고 꿈같고 허깨비 같고 아지랑이 등과 같아서 
견실(堅實)함이 있을 수 없음을 알고 
다함없는 대자비(大慈悲)로 선교방편(善巧方便)을 써서 
모든 범부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미묘한 색신(色身)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불신(佛身)이란 반야바라밀로 성취한 바이며 
자연진실(自然眞實)이며 
상주불변(常住不變)하여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
 


만약 어떤 중생이 복과 지혜를 부지런히 닦아 
심식(心識)을 따라서 경계에 치달리지 않는 것이 
마치 목마른 사슴이 넓은 들판에서 
아지랑이를 물로 여기어 추구(追求)하는 것처럼 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곧바로 부처님을 뵙고 
항상 설법을 듣고 
능히 가르침에 의지하여 이치대로 수행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여래(如來)ㆍ응(應)ㆍ정등각(正等覺)께 약간의 여쭐 것이 있사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자비로 불쌍히 여기시어 
저를 위하여 널리 설하여 주시옵소서. 

▸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 해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대해서 
공력(功力)을 적게 쓰고 
안락하고 
게으름이 없이 
광대한 불법을 속히 증득하며, 
보살이 어떻게 해야 
생사(生死) 중에서 
무량한 뭇 고통의 핍박을 받지 않고 
모든 불법(佛法)을 속히 원만하게 얻을 수 있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미륵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구나. 
미륵아, 
네가 나의 처소에서 항상 묻더니 
지금 묻는 이치가 나의 마음에 가장 드는구나. 

네가 이제 모든 하늘과 사람과 모든 세간의 무량한 중생들을 가엾게 여겨서 
이익 된 바가 많고 안락(安樂)한 바가 많게 하려고 
나에게 이러한 이치를 물으니,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해서 분별하여 연설해서 
모든 보살로 하여금 애써서 고행하지 않고 
속히 불보리(佛菩提)를 증득하도록 하리라.


▸ 불자(佛子)야, 
만약 중생으로서 보리를 구하기 위하여 
모든 행을 닦고 항상 안락(安樂)하기를 원하는 이는 
마땅히 자애로운 마음을 닦아서 스스로 조복(調伏)하고, 
이와 같이 수습(修習)하되 
생각생각 중에 항상 육바라밀을 갖추어 수행하면, 
속히 모든 인(忍)의 지위를 체달(逮達)하여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원만하게 빨리 증득할 것이다. ◂
 

또한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18불공법(不共法)ㆍ32상(相)ㆍ80종호(種好)의 최상공덕을 구족(具足)하여 
그 몸을 장엄하고, 
미래제가 다하도록 항상 안락(安樂)한 데 머물러서 
능히 모든 중생들이 무시이래(無始已來)로 지은 무거운 업장(業障)을 없애느니라.

▸ 불자야, 
만약 모든 보살들이 자애로운 마음을 수습(修習)하려면 
마땅히 텅 비고 한적한 곳에서 
청정한 믿음으로 모든 심법(心法)을 거두고 
몸의 상하의 뼈마디와 티끌의 덩어리가 
흙[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으로 화합(和合)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관찰하여야 한다. ◂
 

그리고 다시 생각하되 
‘저 하나하나의 티끌[微塵] 속에 모두 허공이 있고 
이 모든 허공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모양을 삼지 아니함이 없다’고 하고, 

또 마땅히 생각하되 
‘저 모든 티끌이 청정하고 명철(明徹)하여 
밖은 유리(琉璃)와 같고 
안은 자마금(紫磨金)과 같고 
장엄함이 아름답고 부드럽고 향기롭다’고 한다. 

다시 마땅히 모든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하나하나의 중생의 뼈마디와 하나하나의 뼈마디마다 있는 티끌도 
모두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하고, 
혹 모든 보살들도 자신과 타인과 일체 중생에 대하여 
이와 같이 결정해(決定解)를 지어야 한다.

다시 마땅히 생각하기를 
‘자신의 티끌 중에 하나하나의 티끌 속마다 에도 모두 불국토가 있고 
그 가운데 궁전은 유리로 만들어졌고 
백은(白銀)으로 문(門)이 만들어졌고 황금(黃金)으로 기둥이 만들어졌다. 
널리 아름다움을 숭배하고 광명이 훤칠하게 비추고 
보배로 된 집이 사이사이에 나열되었고 
보배의 담장이 빙둘러 싸고 
보각(寶閣)ㆍ보루(寶樓)가 곳곳마다 분포되어 있다. 

그 가운데에 제각기 하늘의 보배로 된 평상이 있고 
겹으로 된 방석과 비단으로 된 담요를 그 위에 펴놓았다. 

다시 무량한 최고 좋은 동산이 있어 주위를 장엄하였고 
그 동산 안에는 모두 욕지(浴池)가 있고 
모두 7보로 욕지의 두둑이 만들어졌고 황금으로 된 난간이 있다. 
사방으로 빙 둘러 맑은 샘물이 길게 흐르는데 

그 가운데 이끌어 흘러 들어가고 
향가루를 진흙에 개어 바르며 
금모래를 섞어 장엄하고 
8공덕수(功德水)를 가득 채워 깨끗하며 
파두마화(波頭摩花)ㆍ우발라화(優鉢羅花)ㆍ구물두화(拘物頭花)ㆍ분타리화(分陀利花)가 아름답게 활짝 피어서 
그 위를 두루 덮었다. 

그 연못의 사방에는 여러 보배나무가 많으며 
진주(眞珠)로 된 꽃은 광색(光色)이 풍성하고 
그 열매는 잘 익어서 향기로운 맛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나무 아래마다 천보좌(天寶座)를 안치하고 
하나하나의 자리 앞마다 보배그릇이 줄지어 나열되고 
감로처럼 맛있는 음식이 가득 담겨있다’고 할지니라.

다시 마땅히 생각하기를 
‘이와 같이 모든 불국토는 청감유리(靑紺琉璃)로 땅이 이루어졌고, 
미묘한 7보를 비단에 섞어 장엄하고 
이 모든 국토 중에 있는 티끌은 청정하고 섬세하며 미묘하여 
천상(天上)의 보배와 같고 
그 광명의 비춤은 작열하는 밝은 태양과 같고 
그 색(색)의 아름다움은 염부단금(염부단금)과 같고 
향기의 훈훈함은 오라가전단(烏羅伽栴檀)과 같고, 
부드러운 성질은 가전연(迦旃延)의 옷과 같아 
몸에 접촉하면 능히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낸다’고 할지니라.

이와 같이 관찰하고 곧바로 생각하기를 
‘이 동방(東方)으로부터 모든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나의 모든 불국토의 궁전에 들어오고, 
남ㆍ서ㆍ북방ㆍ사유(四維)ㆍ상ㆍ하, 
모든 세계에 있는 중생들도 모두 이와 같다’고 해야 할지니라.


또 마땅히 생각하기를 
‘이와 같이 6도(道)의 모든 중생들이 
모두 위의(威儀)가 같고 
색상(色相)이 서로 비슷하며 
그 몸은 부드럽고 항상 향기가 있으며 
장부(丈夫)의 상(相)을 구족하게 장엄하고 
모든 번뇌를 떠나 하늘의 쾌락을 받는다. 

이 모든 중생들이 만약 의복과 장엄하는 도구를 꼭 구한다면 
곧바로 겁파수(劫波樹) 아래에 나아가서 
그 구하는 바에 따라서 생각대로 얻게 하고 
갖가지 뭇 도구로 장엄하여 아름답게 하니, 
비유한다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과 같다. 

다시 향기로운 바람이 팔방(八方)에서 불어오고 
그 바람이 몸에 스치기만 하여도 마음이 쾌적하고 기쁘며, 
모든 악기가 연주하는 사람이 없어도 바람 부는 대로 움직여 미묘한 음성(音聲)을 낸다. 
이 모든 중생들이 혹은 궁전에 있고, 
혹은 동산에 노닐고, 
혹은 모든 하늘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혹은 보배로 만든 그릇으로 감로(甘露)를 마시고, 
혹은 연화대(蓮花臺)에 앉고 몸에 영락(瓔珞)을 차서 
양쪽으로 늘어뜨리고 재물과 보배가 꽉 차 있다. 

또한 뭇 도구가 충분히 갖추어져 좋아하는 대로 갖가지로 즐겁게 놀고 
얼굴이 해맑아 편안하고 신심(身心)이 기쁘고 
몸은 항상 병이 없어 
왕성한 나이와 아름다운 용모로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공덕의 세력이 모두 동일한 류(類)이며, 
남에게 부림을 받는 이가 없고 
모두 능히 음욕[婬]ㆍ성냄[怒]ㆍ어리석음[愚癡]을 꺾어 없애어 
마땅히 보리와 구경 안락을 증득한다’고 할지니라.



▸ 불자야, 
이러한 자비(慈悲)를 닦는 이는 만약 이와 같이 중생들 중에서 
한 중생이라도 자기를 어기는 일이 있어도 
마음에 이것을 반연하여 애념(愛念)을 내지 않고, 
마땅히 지혜로 깊이 자신을 관찰하고 

‘나는 과거세에 결정코 이 사람에게 무거운 업장을 지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도리어 오늘 나의 보리를 장애한다. 
그러나 내가 만일 이 사람에게 환희심을 내지 않는다면, 
그 밖의 다른 모든 중생들의 처소에서 
마땅히 요익(饒益)한 일을 하지 못하리라. 

왜냐 하면 무시이래로 생사(生死) 중에서 
한 중생이라도 과거세에 일찍이 나를 해치지 않은 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이 중생에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그 밖의 모든 중생들에게도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널리 모든 중생들에게 요익한 일을 행하리라’고 한다. 
이 때문에 여기에서 반드시 자비를 생각하는 것이다.◂
 


▸ 다시 마땅히 생각하기를 
‘진에(瞋恚)의 인연은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지옥에 떨어지게 한다. 
그러니 만약 원결(怨結)을 품으면 
뒤에 반드시 독사(毒蛇) 속에 태어난다. ◂
 

만약 내가 내세에 이러한 과보를 받는다면 
마땅히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뜻을 매우 유쾌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가지고 있는 진에와 원결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 


▸ 내가 만일 성냄과 원결이 많은 자라면 
현재 시방(十方)에 계신 불세존(佛世尊)께서 마땅히 나를 보고 생각하시기를 
〈어찌하여 이 사람은 보리를 구하고자 하면서 진에와 원결을 내는가? 
이 어리석은 사람은 진에 때문에 
스스로 모든 고통에서 해탈하지 못하거늘, 
무엇으로 능히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실 것이다. ◂
 


성냄이 많은 중생은 태어나는 곳마다 받는 몸이 악독(惡毒)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마땅히 자비스러운 연민의 마음을 닦아 익혀서 
영원히 진에와 원결을 여의어 
매우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들을 이익 되고 안락케 하리라’고 할지니라.


만약 이와 같이 생각하기를 ‘성냄과 원결을 여의리라’ 하고 나서 
다음에 마땅히 생각하기를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ㆍ성문의 대중들이 함께 와 
나의 모든 불국토의 궁전 속에 들어오되 
이 모든 여래의 몸의 크기는 다른 이보다 한 배(倍)가 더 크고 
모든 상호를 갖추고 단정하며 향내음이 물씬 풍기고 깨끗하다. 

하늘의 의복(衣服)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제각기 천 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으로 장엄된 사자좌(師子座)에 앉고 
하나하나마다 무량한 대중이 빙 둘러싸고 보개(寶蓋)로 덮고 
뭇 보번(寶幡)을 매달고 
갖가지 영락(瓔珞)을 두루두루 늘어뜨려 펴고 있다. 

또한 하늘의 악기(樂器)가 연주하지 않아도 저절로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는 감미롭고 청아하여 
듣는 이가 희열(喜悅)을 느끼고 
향내음의 바람이 살랑살랑 모든 보배나무에 불어 
깃대ㆍ깃발ㆍ가리개ㆍ그물ㆍ영락 등의 물건에서 미묘한 음성을 내어 
노래로 여래의 갖가지 공덕을 찬탄한다. 

또 황금으로 된 그릇이 7보로 장엄되어 
그 그릇의 광명은 마치 해와 달과 같고 향기는 단단한 흑전단(黑栴檀)과 같다. 

감로수를 가득히 담아 모든 불보살님과 성문의 대중에게 공양드리고 
그 모든 보살과 아라한 등은 
모두 여래의 최상법(最上法) 중에서 유희하며 쾌락케 하리라’고 할지니라.

다시 마땅히 생각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모두 모든 부처님의 자리 앞에 앉아 있고, 
부처님께서는 자비를 닦는 행을 연설하시되 
내가 지금 닦아 익히는 바와 같이 말소리가 미묘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하고,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최상의 즐거움을 얻게 하신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감로장(甘露裝)을 얻어서 
씻고 목욕함에 피로한 고통이 없어져서 몸과 정신이 상쾌한 것과 같이 
이것도 마찬가지이니 
법(法)으로 마음을 적시어 모든 번뇌를 없애고 
몸과 마음이 고요하여 영원히 안락을 얻게 하리라’고 할지니라.


다시 마땅히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모든 보당(寶幢)ㆍ번(幡)ㆍ개(蓋)ㆍ의복 등의 물건에 있는 미진(微塵)의 광명이 밝게 비춤이 
태양보다 더 밝고 부드러우며 섬세하고 매끄러워 천신(天身)을 접촉한 것과 같고, 
나오는 향내음은 우두전단향(牛頭栴檀香)과 같고, 
그 색(色)은 청정하여 비유리보(毘琉璃寶)와 같아 
모든 물상(物像)이 그 가운데 나타난다’고 할지니라.


또 마땅히 생각하기를 
‘저 모든 여래의 하나하나 여래신(如來身)마다 미진은 부드럽고 
그 밝은 색(色)은 더욱 수승하여 앞의 미진(微塵)과 비교하면 백천 배가 넘는다’고 할지니라.

다시 마땅히 관찰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자성(自性)이 공하고 무아(無我)이며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눈병과 같으며 
모든 부처님들도 이와 같이 자성이 모두 공(空)하여 
본래 내[我]가 없건만 
범부들은 무지하여 망령되이 집착하며 
나와 자성이 있다고 하기 때문에 
능히 생사(生死)에서 해탈하지 못한다’고 할지니라.


다시 마땅히 관찰하기를 
‘모든 법은 체상(體相)이 미세하고 모두 공적(空寂)하건만 
범부들이 스스로 분별하여 모든 경계를 내고, 
스스로 분별하는 중에서 도리어 자신을 얽어매고, 
더 나아가서는 마음의 자성을 요달하지 못하여 
그러한 때에 꿈속에서와 같이 망령되게 모든 경계에 집착한다’고 할지니라.


다시 마땅히 관찰하기를 
‘모든 3계(界)는 공하며 허공은 허공을 장애하지 않건만, 
지금 내가 가진 자비심은 오히려 협소(狹小)하다’고 할지니라.


또 마땅히 생각하기를 
‘모든 중생들과 모든 부처님의 자성이 공(空)하고 무아(無我)이므로 
내 몸도 이와 같고 
모든 국토도 오직 생각일 뿐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라는 
이러한 견해를 가질지니라.


다시 마땅히 관찰하기를 
‘저 모든 존재하는 모든 미진(微塵)이 
하나하나의 미진 중에 삼세(三世)의 모든 불국토가 있고, 
이 모든 국토는 가장 청정하여 앞서 있던 불국토보다 뛰어나고,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삼세중생(三世衆生)과 
삼세장엄(三世莊嚴)의 일을 모두 다 구족하고, 
삼세겁수(三世劫數)가 일념(一念)에 들어간다. 

하나하나의 생각 중에 삼세제불이 모든 곳에 앉으시어 
널리 모든 중생의 앞에 나타나시어 
선정(禪定)에 들어가시고 묘법을 설하시며, 
맛있는 음식을 잡수시고 감로수(甘露水)를 마신다. 

하나하나의 부처님 앞에 
삼세보살과 아라한이 빙 둘러싼 채 앉아계시고, 
삼세쾌락(三世快樂)이 그 몸에 충만하여 
자신도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와 같이 삼세안락(三世安樂)을 받는다’고 할지니라.


다시 마땅히 생각하되 
‘하나하나의 생각 중에 
나의 삼세신(三世身)이 각각 무량한 최고 좋은 공양구를 가지고 
모든 부처님과 보살ㆍ성문에게 공양올리고, 
중생류(衆生類)에게도 베푼다. 


또한 하나하나의 생각에 
그 몸으로부터 갖가지 향기로운 구름을 내고 
그 향기로운 구름 속에 다시 무량한 보개(寶蓋)가 있고 
장엄한 비단으로 모든 불여래ㆍ보살ㆍ성문과 
여섯 갈래 세계의 중생들[六趣衆生] 위에 펴고 

그 구름은 다시 하늘의 감로수와 단단하고 검은 우두전단향(牛頭栴檀香) 가루를 비 내리듯 내린다. 
만타라화(曼陀羅花)ㆍ마하만타라화ㆍ파두마화(波頭摩花)ㆍ구물두화(拘物頭花)ㆍ분타리화(芬陀利花)ㆍ
묘향화(妙香花)ㆍ묘의화(妙意花)가 
모두 허공으로부터 흩어져 내리고 
번갯불이 번쩍이는 광명은 태양이 활짝 솟아오른 것과 같으며, 
우레 소리가 진동함에 듣는 이가 기뻐하고, 
모든 불보살ㆍ성문과 모든 중생들이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는 4위의(威儀) 중에서
그 몸이 항상 최상의 안락을 누린다’라고 할지니라.


불자야, 
비유하건대 비구가 변처정(遍處定)에 들어가서 
모든 만물에 대하여 
지해(地解)ㆍ수해(水解)ㆍ화해(火解)ㆍ풍해(風解)를 지으며, 
이와 같은 이해로 그 마음을 섭지(攝持)하는 것처럼 
자비를 닦는 사람도 
이와 같이 자승해(慈勝解)로 장엄을 섭지한다.


▸ 다시 마땅히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중생에게 안락을 주는 바는 
단지 생각뿐이어서 허깨비 같고 화작(化作)한 것과 같으니, 
비유하건대 요술쟁이가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나도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에게 갖가지 안락을 준다. ◂
 

또 허깨비와 같아서 사물에는 자성이 없고 
모든 중생들도 이와 같아서 
본래 나라는 것과 내 것이라는 자성이 없다. 

또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보고 
망령되게 물이라는 생각을 내어 애써 달려가는 것처럼 
내가 마음으로 자비를 행하는 것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 또 아지랑이에게 물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나라는 자성(自性)이 없다. ◂
 

또 꿈속에서 갖가지 물건을 보고 꿈꾸는 마음으로 분별하여 사실이라고 여기다가 
꿈에서 깨어나면 있는 것이 아님을 알듯이, 
마땅히 모든 법도 다 그러한 줄 알며, 

눈병이 있는 자가 깨끗한 허공 속에서 갖가지 물건을 보고 
실제로 있다고 여기다가 
그 사람이 나중에 아가타약(阿伽陀藥)1)을 얻어 눈병을 치료하면 
보이던 물건들이 모두 따라서 없어지는 것과 같다. 

▸ 이와 같이 중생들이 신견(身見)과 변견(邊見)이 있으므로 
아상(我想)이 있다가 
만약 지혜의 약을 얻어 이 견해를 없애면 
있던 아상이 따라서 그친다. 

이 때문에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이 자비를 닦아 
꿈에서 깨어나듯이 
나라는 것과 내 것이라는 생각을 떠나리라’고 할지니라.◂
 




불자야, 
마땅히 알라. 
이 자비를 닦는 자가 분별을 떠나지 못하여 
나라는 것과 내 것이라는 견해를 일으키지 아니함이 없더라도 
항상 여섯 가지 범천의 복을 얻는다. 

▸ 그러나 만약 분별을 버리고 
나라는 것과 내 것이라는 생각을 떠나면 
이는 이름이 ‘광대(廣大)의 자(慈)’이며, 
선세(先世)서부터 있어온 죄업장(罪業障)이 모두 없어져 
오래지 않아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하느니라. 


불자야, 
모든 보살들도 마땅히 이와 같이 자비심을 닦아 익히나니, 
네가 자비를 닦기 때문에 ‘자비한 이[慈者]’라고 이름하느니라.◂
 


불자야,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이 『수자경(修慈經)』을 듣는 자가 있으면 
무시이래의 모든 악업장(惡業障)이 소멸되고, 
뭇 병(病)의 액난을 떠나며, 
모든 사람들이 경애(敬愛)하는 바가 되고, 
그 중간이나 혹 임종(臨終)할 때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뵙게 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授記)를 받으며 
혹은 삼매(三昧)를 얻고, 
혹은 법인(法忍)을 얻고, 
혹은 다라니문(陀羅尼門)에 들어가 
그 마음이 안온하여 죽는 두려움이 없으며, 
영원히 모든 악도(惡道)의 고통을 떠나고 
반드시 청정한 극락 불국토에 태어나느니라.


불자야,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3계 중에 
가득한 7보를 날마다 세 때에 여래께 일 겁 동안 받들어 보시한다면 
그 사람의 공덕이 많음을 마땅히 알 수 있으니, 
하물며 닦아 익히는 자이겠는가? 
설사 무량한 모든 불여래께서 일 겁 동안 그 공덕을 말씀하시더라도 
오히려 능히 다 말씀하실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經)을 말씀하시자 
미륵보살마하살과 시방 국토의 모든 이 집회에 온 범중(梵衆)이 
모두 크게 기뻐하며 믿고 받아 지니고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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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온갖 병을 치료하는 영약(靈藥).

○ [pt op tr]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Olivia Ruiz - J'Traine Des Pieds.lrc



● 허깨비 같은데도 자비로 대하는 사정 

어차피 생사현실이 차별없이 공하고 환과 같고 꿈과 같다고 하자. 

이런 내용을 제시받으면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사정이 그렇다면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한 것 아닌가. 

어차피 환영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다고 하자. 

그래서 실답지 않다고 하자. 


그러면 이렇게 한들 어떻고, 저렇게 한들 어떻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처음 제시한 내용에 이론적으로 일관되는 인상도 준다. 

그런데 현실 사정이 그렇지 않다. 


현실은 하나하나 단면의 내용이 꿈과 성격이 같다. 

즉 실답지 않다. 

침대에 누어서 꾼 바다나 황금꿈과 그 성격이 같다. 

즉 아무리 매 순간 생생하고 감각하고 명료하게 분별을 해도 

그것은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렇게 화합해 얻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침대에서 엉뚱하게 바다나 황금의 꿈을 꾸는 상태와 성격이 같다. 


그렇지만, 생사현실은 정작 꿈이 아니다. 

그래서 오로지 현실이 실답지 않은 측면만을 100 % 취해서 

현실에서 아무렇게 임해도 된다고 제시하기 곤란하다. 


생사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지 않지만, 꿈이 아니다. 

그리고 꿈과 다른 측면이 많다. 


그래서 생사현실은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간과 공간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이 되면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정 때문에 생사현실 한 단면 하나하나가 실답지 않음에도 

이 생사현실이 대단히 실답다고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리고 이런 특성 때문에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본래 실답지 않은 생사와 고통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면서 겪어 나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생사현실의 문제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수행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수행을 통해서 이런 현실 사정을 깨닫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야만 비로소 그런 생사묶임에서 벗어나게끔 된다. 


그래서 그냥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꿈만 깨면 

곧바로 악몽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꿈과는 성격이 다르다. 


사정이 이런 가운데 생사현실이 환영과 같고 꿈과 같다고 

생사현실에서 함부로 잘못 임하면 

장구하게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생사현실이 꿈과 같다는 측면만 강조하면 

이런 경우에도 그런 측면만으로 이런 생사고통을 쉽게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일체개공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만으로 이런 생사고통을 하나하나 잘 극복할 수 있는가를 검토해보자. 


그래서 그를 붙잡고 손과 발을 자른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론만 100% 취한다면 

그것이 환영과 같고 허깨비와 같음을 이해해서 

그것만으로 곧바로 그 상황에서 겪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록 현실이 꿈과 성격이 같지만, 

정작 현실은 꿈은 아니다. 

그런 사정으로 일반적으로 그런 상황에서 그런 내용만으로 

그 고통을 극복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정때문에 

수행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 생사현실이 반복되는데도 실답지 않다고 하는 사정 


일단 이론적으로 현실이 실답지 않다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도 잘 파악해야 한다. 


이들 내용은 최근 글에서 간단히 압축해 살폈다. 


불기2564-08-28_불설성법인경-K0750-001

https://buddhism007.tistory.com/17573


그래서 현실 하나하나 단면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래서 생사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렇지만, 생사현실은 또 정작 꿈은 아니다. 


그래서 생사현실은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간과 공간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이 되면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처럼 꿈과 달리 갖는 특성 때문에 

생사현실은 실답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잘못 여기기 쉽다. 

그래서 왜 이렇게 되는가를 추가로 잘 이해해야 한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게임이나 만화의 비유로 이를 이해할 수 있다. 


게임의 화면 하나하나는 실답지 않다. 

그런 내용이 현실영역에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게임 안에서는 일정한 버튼을 누르면 

일정한 아이템이 얻어지거나 화면이 나타나는 관계가 반복된다. 

그것은 또 게임을 하는 다수 주체에게 사정이 같다. 

그렇다고 하여 그 게임을 실답다고 할 수는 없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그 게임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하고 임해야 

게임에 집착해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사정과 생사현실의 성격이 마찬가지다. 


또 종이에 그림으로 만화를 그리는 경우도 사정이 같다. 

종이에 연필로 선을 그려 영희나 철수의 모습을 그린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런 그림은 실다운 영희나 철수가 아닌 것과 사정이 같다. 

그러나 종이에 그렇게 그럴 때마다 반복해 그런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그 사정으로 그런 그림이 실다운 영희나 철수라고 할 수는 없다. 


또 다른 비유로 딱지나 위조지폐를 생각할 수 있다. 

딱지나 위조지폐는 그것이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게임장에서는 일정한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딱지나 위조지폐를 한없이 쌓아 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정으로 생사현실이 다수 주체에게 무량하게 비슷한 형태로 

반복해 나타난다고 하여 이를 실답다고 여기면 곤란한 사정을 

미루어 이해해야 한다. 






○ 생사윤회의 주체와 단멸관 


한편 이런 생사현실에 임해 자신에 대해 가장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도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선 평소 눈으로 본 자신모습을 자신으로 여기기 쉽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눈을 감으면 없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눈을 감거나 눈을 뜨거나 계속 유지되는 내용이 무언가를 먼저 찾아야 한다. 



한편, 예를 들어 기절을 해서 감각과 분별을 다 못하게 되는 상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 주체는 유지된다. 


더 나아가 어떤 이가 육체가 소멸되고 화장터에서 화장이 되는 상황에서도 

그 전후 과정에 계속 이어지는 내용이 있다. 


만일 그런 것이 없다면 각 주체는 오직 자신이 화장터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만 

고려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자신이 화장터에 들어가게 되면 그 이후로 자신과 관련되는 것은 

일체 없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단멸관] 


그래서 그런 문제를 놓고 먼저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한 주체가 망집을 갖고 임하는 경우 

그로 인해 겪는 생사가 무량하게 이어진다는 사정을 먼저 잘 살펴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망집에 바탕해 어떤 업이 어떤 과보를 불러 일으키는가하는 인과를 

넓고 길고 깊게 잘 관찰해야 한다. 


기본적인 수행방안은 이런 바탕에서 제시된다. 

즉 망집을 제거하지 못하고 신견을 갖고 임하는 바탕에서는 

어떤 업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가

또 어떤 수행이 이런 3 악도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는가를 잘 관찰하고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 가장 기초적으로 제시되는 수행방안이기도 하다. 


그래서 좁고 짧고 얕은 관찰로 자신의 정체를 잘못 파악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부터 잘 파악한 가운데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서 올바로 수행해서 

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묶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편, 생사현실이 허깨비와 같은데도 

하필 자비로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생사현실이 꿈과 같고 실답지 않기에 

자신 마음 내키는대로 아무렇게 행해도 될 것처럼 잘못 여겨진다. 


그러면 우선 그 자신부터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힘들게 된다. 

더욱이 그런 사정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다른 중생의 경우는 그 상태가 더 심해진다. 

그리고 이것은 꿈처럼 단순히 일시적으로만 겪고 바로 깨면 곧바로 없어지는 내용도 아니다. 


생사현실은 그 내용 하나하나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렇지만 한번 행한 업은 무량겁을 두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보를 돌려 받게끔 된다. 

그래서 꿈과는 다르다. 

그리고 이런 측면 때문에 생사현실에 임해서 

올바로 수행을 성취해야 한다. 



생사현실이 본래 차별없이 공하고 꿈과 같다. 

그런데 앞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오로지 이 측면만 붙들고 계속 아무렇게 임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그것은 이론상은 일관되 보이고 그럴 듯하게도 여겨진다. 


물론 일체개공의 이론만으로 

생사현실에서 어떤 극한 고통을 받는 상태에서도 극복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대단히 수준 높은 수행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즉 생사현실의 극한 고통도 상을 취하지 않고 평안히 참을 수 있는 안인을 성취한 경우다. 

그래서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어떤 극한 경우에도 더 이상 물러나지 않는 상태에 이른 경우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서나 간신히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상태에 이른 수행자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설령 그런 수행자의 상태가 되었다 해도 

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수행자가 제도할 중생의 상태는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그렇지 못한 중생에 눈높이를 맞춰 

제도할 방편을 찾고 임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그런 상태에 이르렀어도

생사현실에서 취할 방안은 중생에 눈높이를 맞춰 

상대를 제도할 수 있는 방편이어야 한다. 

그것은 중생 눈높이에 맞추어서 계헹을 구족하고 

그로 인해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차별업이 공하다고 하여 함부로 아무렇게 해도 무방하독 잘모 임하면 

복덕자량을 구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부터 생사고통의 상황에 묶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중생을 제도할 수도 없게끔 된다. 


사정이 이와 같다. 

그런 사정 때문에 위와 같은 입장을 내세우고 함부로 임하면 이는 악취공견의 입장이 된다. 

즉 일체개공이란 측면을 망집을 제거해서 수행을 잘 성취하는 측면으로 취해 잘 사용하지 않는 경우다. 

그리고 반대로 생사고통을 더 증폭시키게 하는 입장이 된다. 



『대방광불화엄경수자분』에서도 이렇게 사정을 밝히고 있다. 


...

▸ 내가 만일 성냄과 원결이 많은 자라면 
현재 시방(十方)에 계신 불세존(佛世尊)께서 마땅히 나를 보고 생각하시기를 
〈어찌하여 이 사람은 보리를 구하고자 하면서 진에와 원결을 내는가? 
이 어리석은 사람은 진에 때문에 
스스로 모든 고통에서 해탈하지 못하거늘, 
무엇으로 능히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실 것이다. ◂

 ....



생사현실이 허깨비와 같고 환영과 같고 꿈과 같다.

수행자는 이런 측면을 수행을 성취하는 측면에서 취해 사용하는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망집을 갖고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생사를 벗어나고 복덕을 얻게 하는 수행을 잘못 이해하고 

이를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것으로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자비심을 일으켜서 아낌없이 좋음을 베푼다. 

또 자비심을 일으켜서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것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좋음을 위해서 다른 생명에게 함부로 나쁨을 가하지 않는다. 

또 다른 생명이 자신을 침해할 때도 상을 취하지 않고 평안하게 참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있는 악은 키우지 않고 없는 선은 만들어 내는 일을 열심히 정진한다. 


그리고 이런 수행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고 복덕자량을 쌓게 한다. 

그런데 망집에 바탕한 경우 이 하나하나 내용이 우선 당장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준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수행을 잘 성취하지 못한다. 

그래서 또 생사의 묶임에서 잘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망집에 바탕해 집착하는 내용이 

환영과 같고 꿈과 같음을 이해하면 이로 인해 

이들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런 방향으로 이 내용을 잘 취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 경우 99% 는 실재의 공한 측면을 취해 어려움을 극복한다. 

그런데 그런 바탕에서 다시 생사현실에 남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생사현실에 처한 중생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생사현실의 측면을 1 % 정도를 취해서 임하게 되면 

생사현실에서도 이런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나가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허깨비 같고 실답지 않더라도 

생사현실에서 늘 올바른 수행 방안을 취해 임해야 한다. 









◆vygg1193
◈Lab value 불기256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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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alvador-Dali-ole.jpg!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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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Houjyuuji_01



♥Château de Montgilbert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Debout Sur Le Zinc - S'ils Savaient.lrc


Debout Sur Le Zinc - S'ils Savaient






♥단상♥심리의 사회적거리 

자신이 애써 유머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상대가 반응이 없다. 
그리고 오히려 퉁명스럽고 딱딱하게 반응한다. 

또는 자신이 열심히 말을 한다. 
그러나 상대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일만 한다. 
또는 외면한다. 

이런 경우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답답하게 여긴다. 

조직에서 같이 어울려 생활하더라도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같이 어울려 생활하지 않는 경우에는 더 심할 수 있다. 

때로는 종교가 다르고 남녀 성별도 다르고, 
신분이나 지위나 직업이 다르고, 
학력도 다르고 또는 경제적 빈부 차이도 있다. 
그리고 이런 요인이 이런 격차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아예 언어와 인종까지 다르면 이런 거리감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서로의 생각과 문화나 취향이 너무 달라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비행기 안에는 기장과 부조종사가 함께 타서 함께 운전을 한다. 
그런데 기장이 운전할 때 사고가 더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는 사정을 상호간의 의사 소통에 장애가 있기에 그렇다고 분석한다. 

특히 각 주체간에 상하간 권력관계가 있을 때 
상사는 부하에게 의견을 제시해도 
그 반대로 행하기 어려운 사정때문에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분석한다. 
즉 상대에게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워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한편 각 주체간에는 의견이 같으면 서로 좋아하고 
의견이 서로 다르면 서로 싫어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래서 어떤 불만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그저 말하지 않고 임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가운데 또 그 상대방은 이렇게 침묵하는 경우 
답답하게 여기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각 주체는 구체적으로 각 사정이 다 다르다. 
그래서 이런 기본적 거리감이 발생하는 것 자체는 어쩔 도리가 없다. 
모든 주체를 모든 측면에서 다 동등하고 똑같이 만들 수는 없다. 
또 그렇게 만든다면 그것도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그래서 결국 현실적으로 각기 구체적으로 다른 사정에 처했을 때 
서로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일단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자신과 다른 상대를 대할 때 
이해하지 못하고 공연히 분노만 일으키기 쉽다. 

나는 A 는 B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는 왜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가. 
나는 A 를 좋아한다. 그런데 너는 왜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나는 A 에 관심이 있다. 그런데 너는 왜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서로 감정을 상하게 될 수 있다. 

또 그런 어려운 사정 때문에 아예 서로를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ㅓ. 

수행자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더욱이 수행자가 대하는 경전은 일반적으로 갖는 입장과 차이가 대단히 크다. 
그 차이가 너무 커서 극단적으로 정반대에 해당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래서 수행자가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고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어서 공감하려고 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수없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해서 중생제도를 위해 수행하려면 
중생의 상태에 눈높이를 같이 맞추어 공감하는 입장을 먼저 익혀야 한다. 

비유하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이 아이를 돌보는 유치원 선생님의 관계를 
떠올리면 좋다. 
아이와 선생님의 나이 격차나 지적 수준은 대단히 차이가 크다. 
그런 가운데 선생님이 유치원 생을 대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앞에 나열한 문제를 모두 만나게끔 된다. 
그런데 그것을 잘 극복해내서 유치원생을 잘 이끄는 것이 
유치원 선생님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되면 매 상황마다 적응하기 힘들게 된다. 

예를 들어 유치원 아이가 갑자기 이유없이 소리를 지른다, 
또는 집에 가겠다고 운다. 
또는 앉아서 소대변을 본다. 
이런 식이 된다. 

그런 경우 어른인 자신이 무조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요구만 한다고 가정해보자. 
또 그렇게 하면 화를 내고 억지로 강요한다고 가정해보자. 
단 하루도 유치원생과 지내기 힘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유치원생을 잘 돌보는 선생님에게 배워야 할 내용이 많다. 

조금 더 심한 경우는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축생을 교육시키는 사육사를 
떠올리면 더 이해가 쉽다. 

현실에서 이렇다고도 하지 않고 저렇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서 답답함을 주는 경우가 있다. 

물론 내심에서 어떤 상태가 즐겁고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때문인지 알기도 힘들다. 
그래서 더 답답함을 준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면 여러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심리적으로 다양한 장애가 얽혀 있다. 
예를 들어 명분은 a 를 원하지만, 그러나 실리는 그 반대인 b 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요구가 서로 얽혀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런 매 경우마다 단순하게 방안을 찾아내 해결해내기도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다양한 갈등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수행자는 이런 현실에서 또 한층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경전 내용을 놓고 그 내용을 실천하면서 
다른 이를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노력하는 특수한 입장이다. 
그래서 그 어려움이 한층 더 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 해결은 결국 앞과 같이 
상대의 구체적 사정을 잘 살펴서 
눈높이를 일단 맞추는 가운데 입장을 바꾸어 세심하게 
공감하는 노력부터 일단 시작해야 한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8/2564-08-30-k0084-001.html#1193
sfed--대방광불화엄경수자분_K0084_T0306.txt ☞수자분
sfd8--불교단상_2564_08.txt ☞◆vygg1193
불기2564-08-30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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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08-30_대방광불화엄경수자분_001
불기2564-08-30_대방광불화엄경수자분_001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pt op tr]
● 대방광불화엄경수자분_K0084_T0306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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