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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11-11_별역잡아함경-K0651-007 본문
『별역잡아함경』
K0651
T0100
제7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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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별역잡아함경』
♣0651-007♧
제7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 2019_1104_120501_nik_ar45_s12 구례_화엄사_연곡사_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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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_1017_152617_nik_Ab27 삼각산_화계사
○ 2020_1017_155227_can_ar30_s12 삼각산_화계사
○ 2019_1104_133945_nik_ct13_s12 구례_화엄사_연곡사_풍광
○ 2020_0930_134309_nik_CT19 용주사
○ 2020_0930_134143_nik_ori_rs 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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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201_150139_nik_Ab27 원주_구룡사_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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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104_113410_nik_ct19_s12 구례_화엄사_연곡사_풍광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메
別譯雜阿含經卷第七
K0651
별역잡아함경 제7권
역자 미상
2. 이송(二誦) ②
122
어느 때 세존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竹林)정사에 계셨다.
당시 그 성 안에는 재주 부리는 사람의 우두머리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동발(動髮)이었다.
그는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처소에 도달한 후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구담이시여! 저는 일찍이 아주 늙은 재주 부리는 사람으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었습니다.
‘놀이하는 장소에서 놀이 도구를 시설하고,
백천만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구경하는 데에서 거문고를 타고 광대 노릇을 하며,
풍류를 울리고 노래 부르며,
갖가지로 희롱하고 웃기는 일을 하다가
그 일을 다하고 목숨을 마친 후에는 광조천(光照天)에 태어났다.’
그와 같은 말이 진실입니까,
거짓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그대는 이제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
그러나 저 재주 부리는 사람의 우두머리는 두세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부처님께서는 모두 대답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여래께서는 재주 부리는 사람의 우두머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물으리니,
그대의 뜻대로 대답하라.
만일 어떤 재주 부리는 사람이 놀이터에서 놀이 도구를 시설하고,
거문고를 타거나 광대 노릇을 하며,
풍류를 울리고 노래를 부른다면,
이러한 일로 인하여 백천의 사람들이 모두 다 와서 모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본래 애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인데,
또다시 방일한 일을 더 지어 주고 있으니,
어찌 그들에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더해 주는 것이 아니겠느냐?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노끈에 묶였을 때
물로써 그 위를 적시어 주면 그 노끈이 더 조이는 것과 같으니,
이처럼 여러 사람들도 본시 3독(毒)에 얽히고 묶였는데도
또다시 저 놀이터에서 광대 노릇과 풍류를 지어 주면
오직 3독만을 더욱더 치성하게 할 뿐이다.
따라서 재주 부리는 우두머리여!
그대가 그러한 일을 하다가 목숨을 마친 후에 광조천에 태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놀이터에서 온갖 풍류를 울리다가 목숨을 마치면 광조천에 태어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런 사람은 삿된 소견을 짓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ᖰ 삿된 소견의 결과는 두 곳에 태어나게 되니,
지옥에 떨어지거나
축생에 떨어지는 것이다.”ᖱ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저 재주 부리는 우두머리는 슬피 울면서 눈물을 흘렸다.
부처님께서 재주 부리는 우두머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그대가 세 번 말했으나,
나는 그대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재주 부리는 우두머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재주 부리는 사람들이 어리고 어리석고 지혜가 없고 하는 짓이 착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그와 같은 소견을 지니다가
미래 세상에는 반드시 큰 고통을 받으면서 항상 남에게 속고 멸시받는 것을 불쌍히 여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주 부리는 사람이 ‘놀이터에서 광대 노릇과 풍류를 울리다가 목숨을 마치면
저 광조천에 태어난다’고 한 말은 큰 거짓말이라고 하겠으니,
그러한 업으로써 광조천에 태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다시는 그와 같은 나쁜 업을 짓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참으로 미래 세상에는 반드시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그때 재주 부리는 우두머리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12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그 성 안에 싸움을 잘하는 장수가 마을의 주인이 되었는데,
그는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며 문안한 뒤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일찍이 늙은 원로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었습니다.
‘만약 싸우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지니고 있는 무기를 잘 갖추고서 굳게 스스로를 방어하고 용맹스럽게 전진하는데,
두려움 없이 앞에 있는 적들을 쳐부수고 생명을 죽임으로써 딴 군중들로 하여금 모두 물러나게 하면,
이러한 일을 하고 나서 목숨을 마치면 전장엄천(箭莊嚴天)에 태어난다.’”
싸우는 장수가 이렇게 질문하자,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대가 지금 묻는 취지는 매우 좋지 못한 것이다.”
그는 두세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가 은근하게도 나에게 세 번이나 물었으니,
그대가 잘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말하겠노라.
모든 싸우는 이는 스스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투하는 기술을 잘 알아서 가장 진두에 서서 용감하게 전진하는데,
그렇게 싸우는 장수가 어찌 수단껏 적의 군사를 해치려는 뜻을 갖지 않았겠는가?
그는 ‘어떻게 그들을 계박하고 그들을 해쳐서 몽땅 쳐부술까?’를 생각할 텐데,
어찌 그러한 뜻을 갖지 않겠는가?
싸우는 장수여! 그대는 중생에게 세 가지 삿된 나쁜 업을 지었다.
무엇이 세 가지 삿된 나쁜 업인가?
이른바 몸과 입과 뜻이다.
만약 이러한 세 가지 좋지 못한 업을 짓는다면 몸이 망가지고 목숨을 마친 후에 천상에 태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싸우는 장수여! 그대가 지금 이런 소견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곧 삿된 소견이다.
삿된 소견의 업은 반드시 두 곳에 태어나나니,
바로 지옥에 떨어지거나 축생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때 싸우는 장수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슬피 울면서 눈물을 흘리자,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나는 그대가 세 번 물었어도 말하지 않다가 지금에야 그대를 위하여 말한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대는 눈물을 흘리며 우는가?”
싸우는 장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말씀을 듣고서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싸우는 이들이 오랫동안 어리석고 어둡고 어리고 지혜가 없고 하는 짓이 착하지 못해서 항상 그러한 일을 하다가 미래 세상에는 반드시 큰 고통을 받을 것을 불쌍히 여긴 겁니다.
그러한 나쁜 업으로는 실로 하늘에 태어나지 못하니,
만일 그러한 업으로 저 전장엄천에 태어난다는 것은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다시는 그와 같은 삿된 소견을 내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곧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그대가 말한 바는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니라.”
싸우는 장수는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예배하고서 떠나갔다.
12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말을 잘 다루는 마을의 주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말을 잘 다루는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몇 가지 인연으로 말을 다루는가?”
말을 다루는 이가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세 가지 일로 말을 잘 다룰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언제나 부드럽게 하는 것이며,
둘째는 언제나 거칠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부드럽게 하기도 하고 거칠게도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 세 가지 일로 잘 다스리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말을 다루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때려서 죽게 합니다.”
그리고 말 다루는 사람은 이어서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당신께서는 위없는 조어사(調御師)이신데,
사람을 조복(調伏)하실 때 몇 가지 일로 조복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 또한 세 가지 일로 조복하나니,
첫째는 부드러운 말로 하고,
둘째는 거친 말로 하고,
셋째는 부드럽지도 않고 거칠지도 않게 해서 조복한다.
어떤 것을 언제나 부드럽게 한다고 하는가?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그대들이 세 가지 업으로 착한 일을 닦으면 착한 과보를 얻나니,
이것은 하늘이고,
이것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언제나 부드러움으로써 조복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거칠게 말한다고 하는가?
3악도를 설하면서 ‘이것은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나쁜 과보를 지은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부드럽게도 하고 거칠게도 한다고 하는가?
‘몸과 입과 뜻으로 모든 착한 업을 지으면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몸과 입과 뜻의 착한 업으로 얻어진 과보이다’라고 말하거나,
‘몸과 입과 뜻으로 모든 나쁜 업을 지으면 반드시 3악도에 떨어지리니,
이것이 바로 몸과 입과 뜻의 나쁜 짓으로 얻어진 과보이다’라고 하는 것이니,
이를 거칠게도 하고 부드럽게도 해서 중생을 조복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말을 다스리는 사람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이 세 가지로 조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조복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에게 간절한 말을 하는데도 조복하지 않으면 심한 해를 가하노라.”
말을 다스리는 사람이 말하였다.
“지금 당신 사문께서는 항상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해를 가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다스리는 자여! 그렇고 그러하다.
말하자면 여래는 실로 죽이지 않으며,
그런 짓을 해서도 안 된다.
여래 세존께서 이 세 가지 일로 중생을 조복하다가 만약 조복하지 않으면,
마침내 그와 말을 하지도 않고,
가르치거나 명령하지도 않고,
또한 지도하지도 않는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을 다루는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여래가 가르치지도 않고,
함께 말하지도 않으며 지도해 주지도 않는다면 곧 해(害)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니,
이야말로 진정한 해이다.”
말을 다루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실로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여래께서 함께 말씀하지도 않으시고 법으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신다면 진정한 해가 될 터이니,
이는 세상에서 해치는 것보다 더 심합니다.”
말을 다루는 사람이 또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마땅히 해치는 짓을 끊어서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곧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그대의 말과 같다면 참으로 참되고 바른 것이다.”
말을 다스리는 사람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12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악성(惡性)이라고 하는 마을의 주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상의 어떤 사람은 닦은 것이 없어서 남을 괴롭히거나 자극하거나 괴롭히거나 자극하는 말만을 합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몹시 나쁜 놈[極惡]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님께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남을 괴롭히고 자극하거나 괴롭히고 해치는 말을 하였다면,
괴롭히는 말을 했기 때문에 남들로 하여금 성을 나게 하나니,
이 때문에 악성(惡性)이라고 이름 짓는 것이다.
바른 소견과 바른 행위와 바른 말과 바른 생활과 바른 생각과 바른 방편과 바른 의지와 바른 선정을 닦지 않고,
바른 선정을 닦지 않았으므로 남을 괴롭히거나 자극하며,
남을 괴롭히고 자극하기 때문에 몹시 성을 내게 되고,
성을 내기 때문에 성내는 말을 하게 되고,
성내는 말을 하기 때문에 악성이라고 이름 짓는 것이다.”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희유(稀有)하십니다,
구담이시여.
실로 말씀하신 대로 괴롭히고 자극하기 때문에 실제로 악성이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저는 바른 소견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을 괴롭히고 자극하였으며,
괴롭히고 자극했기 때문에 저를 악성이라고 칭하면서 온 세상 사람이 모두 저를 악성(惡性)이라고 부른 것이며,
이때부터 악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마을 주인이 다시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어떻게 하면 괴롭히거나 자극하지 않게 되며,
괴롭히거나 자극하지 않으므로 괴롭히는 말을 하지 않게 되며,
비록 남들에게 괴롭히거나 자극을 당하더라도 그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비록 남들이 괴롭히는 말을 하더라도 괴롭히는 말로 그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비록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괴로워하지 않으며,
괴로워하지 않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잘 참는착한 이라고 일컬으며,
아울러 그들로 하여금 참거나 착한 생각을 내도록 하겠습니까?
만약 이렇게 한다면 바른 소견을 잘 닦을 것이며,
바른 소견을 닦기 때문에 바른 행위와 바른 말과 바른 생활과 바른 의지와 바른 방편과 바른 선정과 바른 생각을 닦을 것입니다.
바른 선정을 닦기 때문에 남들에게 자극을 당하더라도 괴로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기 때문에 잘 참는 착한 이라고 이름할 것입니다.”
마을 주인이 다시 말하였다.
“희유하십니다,
구담이시여! 말씀하신 바가 너무나 훌륭하시니,
실로 그 말씀처럼 저는 바른 소견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며,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괴롭히거나 자극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저를 악성이라고 불렀는데,
모두에게 나쁜 생각을 일으켰기 때문에 악성이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8정도(正道)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자극을 받으면,
괴롭히거나 자극하는 말을 하게 되고,
드디어는 성을 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저를 악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을 주인이 또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저는 이제부터 이런 나쁜 성질[惡性],
즉 급하고 사납고 오만하고 흉악하고 못된 것을 반드시 버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를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그대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참으로 매우 착한 일이다.”
그러자 마을 주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126
당시 여의주정발(如意珠頂髮)이라는 마을 주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난날 왕의 궁전에서 여러 대신들과 한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여러 신하들과 관속들은 ‘이른바 사문이 된 사람들은 돈과 보물을 만질 수 있는가,
만질 수 없는가’를 서로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중 속에서 한 사람이 ‘설사 그것을 만진다 한들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만질 수 있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자,
또 한 사람이 ‘만져서는 안 되니,
사문 석자(釋子)는 금과 보물을 만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두 가지 말이 법에 적합하게 말한 것입니까,
적합하게 말한 것이 아닙니까?
만약 그러한 말을 하면 부처님을 헐뜯는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잘못된 말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이 부처님 말씀이라고 하면 옳지 않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러한 말을 하면,
이는 나를 비방하는 말이고,
맞는 말이 아니고,
잘못된 말이라 할 것이다.
내가 말한 바는 실로 그렇지가 않으니,
왜냐 하면 비구가 된 사문 석자의 법에서는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진다면 그것은 사문 석자의 법이 아니다.
부처님의 교법은 더욱 수승하고 단정하고 엄숙하나니,
부처님은 ‘비구가 된 자는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지지 않아야 하나니,
만일 만진다면 그것은 사문의 법이 아니다’라고 했느니라.”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저도 그때 그 대중들에게 ‘사문 석자는 실로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지지 않아야 하나니,
만약 만진다면 제멋대로 5욕락에 방일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마을 주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는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때 마침 아난 비구가 부처님을 곁에 모시면서 부채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왕사성에 머무르고 있는 비구들을 모두 불러서 이 강당에 모이도록 하라.”
부처님의 분부를 받은 아난은 부처님 명령대로 비구들에게 모두 강당에 모이라고 지시하였다.
비구들이 제각기 와서 모이자,
아난은 부처님께 나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왕사성 가란타 죽림에 있던 비구들이 모두 강당 안에 모여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그 때가 된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세존께서는 곧 강당으로 가셔서 비구들이 모인 앞에 자리를 정하고 앉으셨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의주정발이라는 마을 주인이 나의 처소에 와서 나에게 예배하고 이러한 말을 하였다.
‘제가 지난날 왕의 궁전에서 여러 대신들과 함께 〈사문의 법에는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질 수 있느냐,
만질 수 없느냐〉를 갖고 의논하였는데,
그때 그 대중 안에서 한 사람이 〈설령 사문이 돈과 보물과 금ㆍ은 따위를 만지고 가진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만져도 탈이 없다〉고 말하자,
또 어떤 사람이 〈사문의 법에는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질 수 없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의 말이 같지 않은데,
두 사람의 말 중에서 어느 말이 법에 합당합니까?’
내가 즉시 ‘사문 석자는 마땅히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더니,
그 마을 주인은 ‘제가 옛날에도 저 대중들에게 〈만일 이 사문이 금과 돈과 보물 따위를 만지게 되면 반드시 제멋대로 5욕락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말했는데,
그때 저 마을 주인은 나의 말을 듣고 나서 기뻐하며 떠나갔다.”
부처님께서 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알아야 하나니,
저 여의주정발 마을 주인이 여러 사람 앞에서 사자후로 외치기를,
‘사문의 법에는 마땅히 금ㆍ은과 돈과 보물 따위를 받아 지니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대 비구들도 앞으로 그런 것들이 필요해서 만지고 싶다면,
반드시 초목과 똥덩어리를 만진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차라리 더러운 똥을 만질지언정 보물은 만지지 말아야 한다.”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12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첨파국(瞻波國) 갈성(竭城) 지지(祇地) 언덕에 계실 때였다.
왕정발(王頂髮)이라는 마을 주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많은 중생들은 두 가지 법에 의지하나니,
첫째는 욕락을 탐함이요,
둘째는 이익 없는 짓을 익히고 성스럽지 않은 법을 몸소 받드는 것으로서 한갓 이익이 없고 손해만 있을 뿐이다.
욕락을 좋아하는 것을 하천하고 속박된 법이라고 하는데,
욕락을 받는 것에 무릇 세 가지가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법답지 않은 재물을 모으고 생명을 해치고 자기 몸만을 즐겁게 하면서 자기 몸만을 올바른 즐거움의 원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을 또한 부모에게 공양하지 않는다고 하며,
처자와 그 종들에게 베풀지 않는다고 하며,
친우와 아는 이와 권속과 자기를 돕는 이들에게도 잘못하며,
사문과 바라문과 온갖 복밭에게도 공양하거나 공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최상의 도를 닦지 않고 즐거움의 원인을 짓지 않으므로 즐거움의 과보를 얻지 못하는데,
이것을 첫째의 욕락이라고 말한다.
설령 욕락을 받더라도 어느 때는 법답게 받고 어느 때는 법답지 않으며,
혹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생명을 해치지 않기도 하며,
자기 몸을 안락하게 하고,
부모ㆍ처자ㆍ종들과 친우ㆍ권속ㆍ자기를 돕는 이들에게도 공양하고 공급하고 바른 안락을 주지만,
그러나 사문ㆍ바라문과 온갖 복밭에게는 보시하지 않으며,
또한 바른 도를 닦지 않고 즐거움의 원인을 짓지 않아서 즐거움의 과보를 구하지 않고 하늘에 태어날 인연을 짓지 않으니,
이것을 둘째의 욕락이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다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재물과 보물을 법답게 모으고,
생명을 해침을 법답게 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자기 몸을 잘 닦아서 그 즐거움을 바르게 누리면 또한 바른 이치[正理]라고 하며,
부모와 처자와 종들과 친우와 권속과 자기를 돕는 자들에게 공양하면 바르게 안락을 주고 바르게 섬기고 공급한다고 말하며,
때때로 사문ㆍ바라문에게 공양하고 복밭을 닦아서 수립하고 최상의 도를 닦고 즐거움의 원인을 심어서 즐거움의 과보를 구해서 하늘에 태어날 인연을 지으면,
이것을 셋째의 욕락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온갖 욕락을 받는 자를 위해서 모두 동일하게 말했지만,
어떤 욕락을 받을 때는 나는 ‘하천하다’고 말하며,
어떤 욕락을 받을 때는 ‘중간의 것이다’라고 말하며,
어떤 욕락을 받을 때는 ‘최상이다’라고 말한다.
무엇이 하천한 것인가?
법답지 않게 재물을 모으거나 또는 법답지 않게 재물을 모으지는 않았어도 스스로 자기만 즐기고 자기 몸만을 올바른 즐거움의 원인으로 여기는 것이니,
이는 부모에게 공양하지 않고 또한 처자와 종들과 친우와 권속들에게 주지 않는 것이라 하며,
또한 수시로 사문ㆍ바라문과 온갖 복밭 등에게 공양하지 않고,
최상의 도를 닦지 않으며,
즐거움의 원인을 짓지 않아서 즐거움의 과보를 얻지 못하며,
하늘에 태어날 인연을 짓지 않으면,
이것을 하천하다고 한다.
무엇을 중간이 된다고 하는가?
가령 욕락을 누릴 때 어떤 경우는 법답게 하고,
어떤 경우는 법답지 않게 하는 것이니,
생명을 해치면서 스스로 자신만을 즐겁게 하다가도 다시 부모와 처자와 종들과 친속들을 안락하게 하지만 결국 천상에 태어나는 인연을 짓지 않으니,
이것을 중간이 된다고 말한다.
무엇을 최상이 된다고 하는가?
이른바 법답게 재물을 모으고 생명을 해치지 않으며,
자신이 바르게 즐거움을 누리고 올바른 이치대로 부모와 처자와 종들과 친우에게 공양하며,
나아가 하늘에 태어나는 인연을 능히 지으니,
이것을 최상이 된다고 말한다.
무엇을 이익이 없는 세 가지 괴로움의 몸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괴로움이 성스러운 법이 아니라서 의로움과 이익이 없는 것이다.
만약 괴로움의 몸이 있게 되면 마음이 이미 변하면서 계율을 처음 범하자마자 몸과 마음의 안팎이 모두 뜨거워지며,
그 일이 자꾸만 떠올라서 잠시도 벗어나지 못하므로 현세에서 번뇌를 여의지 못하고 끝내 사람을 뛰어넘는 법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을 첫 번째 이익이 없는 괴로움의 몸인 법이라고 한다.
또는 어떤 사람이 비록 계율을 범하지도 않고 마음도 변하지 않으며,
또는 몸과 마음의 두 업이 안팎이 모두 적합해서 이 법을 닦고 배우지만,
현세의 번뇌를 떠나지 못해서 끝내 사람을 뛰어넘는 법을 얻지 못하니,
그것을 두 번째 이익이 없는 괴로움의 몸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비록 계율을 범하지 않고 마음도 변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두 업이 안팎으로 모두 적합해서 이 법을 닦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세상에서 심한 번뇌는 떠나지는 못하고 사람을 뛰어넘는 법에 약간의 진척이 있어서 혹은 적은 지혜를 얻기도 하고 법을 보기도 하고 적은 선정(禪定)을 얻기도 하니,
이것을 세 번째 이익이 없는 괴로움의 몸이라고 한다.
마을 주인이여! 나 또한 이익이 없는 고행(苦行)을 모두 하나의 종류라고는 말하지 않나니,
어떤 고행은 하품이라 말하고,
또 어떤 고행은 중품이라 말하며,
또 어떤 고행은 상품이라고 말하노라.
무엇을 하품이라고 하는가?
계율을 처음 범할 때의 마음이 이미 변하고 파괴되면서 몸과 마음의 안팎이 모두 뜨거워지고,
그 일이 늘 생각에 떠올라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으니,
현재의 세상에서 번뇌를 떠나지 못하여 끝내 사람을 뛰어넘는 법을 얻지 못하는 그것을 하품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중품이라고 하는가?
또 어떤 사람은 비록 계율을 범하지 않고 마음도 변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두 업이 안팎으로 모두 적합해서 이 법을 닦고 배우지만,
현재의 세상에서 번뇌를 떠나지 못하여 사람을 뛰어넘는 법을 얻지 못하는 그것을 중품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상품이라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비록 계율을 범하지 않고 마음도 변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두 업이 안팎으로 모두 적합해서 이 법을 닦고 배우지만,
현재의 세상에서 온갖 번뇌를 영원히 끊지 못하고 다만 사람을 뛰어넘는 법에 약간의 진척이 있어서 적은 지혜를 얻기도 하고 법을 보기도 하고 선정의 즐거움을 접촉하는 그것을 상품이라고 말한다.
마을 주인이여! 이 두 가지를 제거하면 도에 나아가는데,
이른바 세 가지 욕락과 세 가지 이익이 없는 괴로움의 몸을 없애서 중도(中道)에 나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세 가지 욕락의 일과 세 가지 이익이 없는 괴로움의 몸을 버리고서 중도에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는가?
마을 주인이여! 욕락을 탐내고 집착하면 자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남도 해치게 되어서 나와 남이 모두 해로워서 현재에도 온갖 악을 쌓게 되고 미래 세상에서도 온갖 악을 쌓게 되리니,
이 인연으로 마음이 번거롭고 근심되고 슬퍼져서 온갖 괴로움을 받는다.
그러나 애욕과 결박을 없애면,
자기도 괴로움이 없고 남도 괴로움이 없으며,
또한 나와 남들도 괴로움이 있지 않아서 현재의 세상에서 모든 괴로움을 쌓지 않고,
미래의 세상에서도 온갖 괴로움을 쌓지 않으니,
이 때문에 현재에 법락(法樂)을 얻어서 온갖 고뇌를 떠날 뿐만 아니라 시절에 상관 없이 열반에 다가가므로 현재의 세상에서 능히 도의 과위(果位)를 얻을 것이다.
슬기로운 이는 스스로 알아서 막힘 없이 분명하기 때문에 남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니,
그것을 첫 번째 중도라고 말한다.
마을 주인이여! 또 중도가 있나니 치열한 번뇌를 떠나서 시절에 상관 없이 열반에 다가가는 것이다.
슬기로운 이로서 스스로 알고 남의 지시를 따를 필요가 없게 되리니,
이른바 바른 소견과 바른 말과 바른 행위와 바른 생활과 바른 선정과 바른 방편과 바른 의지와 바른 생각으로서 이를 두 번째 중도라고 말한다.”
이 법을 말씀하시자 마을 주인 왕정발은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어서 법의 눈이 청정하게 되었다.
마을 주인 왕정발은 법을 알고 법을 보고 법을 체득하여 저 언덕에 도달해서 의혹을 여의고,
남의 지시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고,
다른 소견에 빠지지 않고,
불법에서 막힘없는 변재를 얻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돈하고 합장하면서 부처님을 향하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오늘에야 허물에서 벗어나게 되어 부처님께 귀의하고,
또한 법과 승가 두 가지 보배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바새(優婆塞)의 계율을 지니고서 지금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삼보에 귀의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을 주인 왕정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128
그때 세존께서 말뢰(末牢) 촌읍(村邑)을 유행하시다가 차츰 우루빈라(優樓頻螺) 마을까지 가셔서 앵무염무과(鸚鵡閻無果) 숲 속에 계셨다.
마을 주인 여성(驢姓)이 세존께서 말뢰 읍에 유행하시다가 우루빈라 마을 앵무염무과 숲에 오셨다는 말을 멀리서 듣고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나는 〈세존 구담께서 말씀하시는 법은 능히 현재의 온갖 괴로움과 쌓임을 없애신다〉고 들었는데,
나도 현재의 온갖 괴로움과 쌓임을 없애려면 마땅히 그 분께 나아가서 미묘한 법을 들어야겠다.
그분께서 나를 위하여 괴로움과 쌓임을 다 없애는 도를 말씀해 주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여성은 즉시 마을로 나와 세존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법은 능히 중생들의 현재괴로움과 쌓임을 없애신다.’고 들었습니다.
거룩하신 세존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현재의 괴로움과 쌓임을 없애는 법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세존께서 즉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만일 그대를 위하여 과거에 있었던 한량없는 온갖 괴로움과 쌓임을 멸하는 법을 말한다면,
그대는 믿겠는가,
믿지 않겠는가?
혹은 좋아하겠는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하여 미래의 한량없는 온갖 괴로움과 쌓임을 없애는 법을 말하고자 하면,
그대는 믿겠는가,
믿지 않겠는가?
좋아하겠는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그대를 위하여 괴로움과 쌓임을 없애는 법을 말하리니,
그대는 반드시 지극한 마음으로 잘 듣고서 받아 지닐지어다.
온갖 중생들이 작은 괴로움을 일으키는데,
이 괴로움에도 갖가지 차별이 있다.
이 온갖 고통들은 애욕으로 말미암아 생기나니,
모두가 애욕을 익히고 애욕을 근본으로 삼고 애욕이 인연이 된 것이다.”
마을 주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근기가 둔해서 대략적으로 말씀하시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라건대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뜻을 자세히 펼쳐서 제가 깨닫도록 하옵소서.”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지금 내가 그대에게 물을 테니 마음대로 대답하라.
이 우루빈라 마을에 있는 민중들을 가령 어떤 사람이 모두 다 묶어서 온갖 욕설과 매질을 가하고서 베어 죽인다면,
그대는 자못 그것에 대하여 괴로워하지 않겠는가?”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비록 근심하고 슬퍼하기는 하겠지만,
한결같이 크게 괴로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우루빈라 마을이 제가 사랑하는 것이라면 저에게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기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키지만,
제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가 욕심내는 것이 아니고 제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제가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을 주인이여! 따라서 온갖 갖가지 괴로움의 발생은 모두 애욕으로 말미암고,
애욕이 원인이 되고 애욕이 근본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마을 주인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그대의 자식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머니에게 의지하지도 못해서 보거나 듣지도 못할 때이니,
그 자식에 대하여 친근(親近)하려 하거나 사랑스러운 생각이 있겠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대의 자식이 어머니에게 의지하여 생장했다면,
그대가 그 자식을 볼 적에 자못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생각이 있지 않겠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실로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자식이 어머니에게 의지하여 태어나서 차츰 자라났는데,
만약 사고를 만나거나 도적에게 겁탈을 당했다면 그대는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는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만약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 때는 저의 마음이 너무나 걱정되어서 죽거나 죽을 지경에 이르는데,
하물며 근심하거나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따라서 온갖 갖가지 괴로움의 발생은 모두 애욕이 원인이 되고 애욕으로부터 생기며 애욕이 근본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희유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바가 매우 훌륭해서 교묘한 방편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의 아들이 만일 먼 곳에 있으면 심부름꾼을 보내서 살피게 하는데,
그 심부름꾼이 만약 늦게 돌아온다면 저는 그의 어미와 함께 마음이 불안할 것입니다.
그래서 심부름꾼이 늦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서 ‘나의 아들이 혹시 편치 못한가?’라고 걱정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을 주인이여! 따라서 중생의 괴로움과 갖가지 슬픔과 근심은 모두 애욕이 원인이 되고,
애욕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애욕이 근본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가령 네 가지의 애욕에서 무너지거나 바뀌게 되면 네 가지의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이 생기며,
만약 세 가지 애욕이 있으면 또한 세 가지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이 있게 되고,
만약 하나의 애욕이 있으면 곧 하나의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이 있게 되지만,
만약 애욕이 없다면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이 없고 티끌과 때[垢]를 여의게 되어서 마치 못 속에 있는 연꽃에 물이 묻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법을 말씀하시자,
마을 주인 여성은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면서 법안의 청정함을 얻었다.
그리하여 법을 얻고 법을 이해하고 법을 알아서 의혹을 벗어나 남의 마음을 따르지 않고 다른 길에서 헤매지 않았으니,
부처님의 교법에서 변재를 얻었다.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돈하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이러한 말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해탈하였습니다.
삼보에 귀의하여 오늘부터는 우바새가 되어서 저의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청정한 믿음을 내겠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그는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나갔다.
여러 비구들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129
그때 세존께서 1천2백50명의 큰 비구와 천 명의 우바새,
5백 명의 걸인 아이에게 둘러싸여서 마갈제국을 유행하시다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성에서 저 성에 이르셨는데,
한 번은 나라건타성(那羅乾陀城)의 매첩(賣疊) 동산 숲에 이르셔서 그 안에서 쉬고 계셨다.
당시 마을 주인 폐구성(閉口姓)은 바로 니건타(尼乾陀)의 제자였는데,
부처님께서 마갈제국에 유행하시다가 이 동산 숲 속에까지 오셨다는 말을 듣고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나는 마땅히 스승 니건타에게 가서 고한 후에 구담의 처소에 가 보아야겠다.’
그래서 폐구성은 곧 니건타의 처소에 가서 그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있었다.
니건타가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능히 두 가지 논리로 구담에게 따질 수 있다.
두 개의 낚시로 물고기를 낚으면 토해 버리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는 것처럼,
이 두 가지 논리도 마찬가지라서 능히 그로 하여금 토해 버리지도 못하게 하고 삼키지도 못하게 하리라.”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마땅히 가서 따지겠습니다.
무엇이 두 가지 논리이길래,
능히 구담으로 하여금 토해 버리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니건타가 말하였다.
“그대는 그곳에 가서 내가 말한 대로 하라.
‘지금 당신 구담께서는 여러 집안을 이롭게 하려는 것입니까?
만약 이롭게 하지 못한다면 범부나 어리석은 이와 무엇이 다르겠으며,
만약 이롭게 한다면 당신은 지금 어찌하여 1천2백 명의 비구와 천 명의 우바새(優婆塞),
5백 명의 걸인 아이를 데리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성(城)에서 저 성에 이르면서 여러 집안을 망칩니까?
거친 곳마다 당신에게 짓밟히고 꺾이고 망가진 것이 마치 우박이 벼를 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바로 파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이익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침을 받은 폐구성은 매첩숲 속으로 가서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대강 문안을 마치고는 한쪽에 앉아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여! 당신은 지금 어찌하여 여러 집안을 더 이롭게 하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당신은 어찌하여 항상 더 이롭게 하는 것을 찬양하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항상 변함 없이 이익된 법을 더 늘리려고 했느니라.”
그러자 마을 주인은 이러한 말을 하였다.
“당신이 만약 이롭게 하려고 하셨다면,
어찌하여 요즘처럼 흉년이 든 세상에 1천2백 명의 비구와 천 명의 우바새,
5백 명의 걸인 아이들과 함께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성에서 저 성에 이르면서 여러 집안을 망하게 하십니까?
이것은 이로운 법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며,
손해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우박이 벼를 해치는 것처럼,
당신이 백성들을 해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기억으로는 91겁 동안 내려오면서 어느 한 집이라도 밥을 보시하여 손실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대는 지금 온갖 집들을 관찰해 보라.
재물과 권속과 종들과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가 많아서 부자의 터전을 이룬 것은 보시를 따라서 얻어진 것이니,
모두 나에게 보시함으로써 그러한 과보(果報)를 얻었느니라.
여덟 가지 인연이 모든 집을 능히 파괴하나니,
왕과 도적에게 침해를 당하거나,
불에 탄 바가 되거나,
큰 물에 떠내려가거나,
갈무리한 곳을 잃게 되거나,
나쁜 아들을 낳아서 살림할 줄을 모르거나,
위세에 눌려서 재물을 써 버리거나,
나쁜 아들이 무리하게 재물을 낭비하는 것이다.
온갖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 여덟 가지 일이 집의 살림살이를 능히 파괴한다.’고 말한다.
내가 지금 아홉째로 파괴하는 것을 말하겠나니,
아홉째는 이른바 무상함이다.
이 아홉 가지를 제외하고 ‘사문 구담이 능히 여러 집을 파괴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
이 아홉 가지 인연을 떠나서,
‘사문 구담이 능히 여러 집을 파괴하여 이익을 늘리지 않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니,
그러한 말과 그러한 생각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마치 공을 차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마을 주인 폐구성은 이 말을 듣자 몹시 놀라고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싫어하고 몸에 털이 곤두섰다.
그는 즉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귀명(歸命)하면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저는 이제 진실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참회하겠습니다.
저는 매우 어리석었으니,
마치 어린아이처럼 하는 짓이 착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부처님 앞에서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하고 하천한 망령된 말을 하였으니,
부디 불쌍히 여기셔서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지극한 마음을 알겠도다.
그대는 진실로 죄를 알고,
진실로 어리석음을 아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한 짓과 같아서 착하지 못한 걸 알았다.
그대는 여래ㆍ아라하(阿羅訶)에게 허망하고 비천한 업을 크게 지었지만 이제 그 죄를 스스로 알아서 성심으로 참회하니,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악한 일은 소멸하리라.
내가 지금 그대를 불쌍히 여겨 그대의 참회를 받아 줌으로써 그대로 하여금 착한 법이 늘어나서 항상 물러서지 않게 하겠노라.”
마을 주인 폐구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13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라건타성 매첩숲 속에 계셨다.
당시 마을 주인 폐구성은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내가 지금 사문 구담을 보고 싶은데,
우리의 스승 니건타(尼乾陀)를 보지 않고는 그곳에 갈 수 없다.’
그는 즉시 니건타의 처소에 가서 그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있었다.
니건타가 곧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두 가지 어려운 논리를 가르쳐서 저 구담으로 하여금 토해 버리지도 못하게 하고,
또 삼키지도 못하게 하리라.”
폐구성은 곧 그에게 물었다.
“아사리(阿闍梨)여! 어떤 두 가지 어려운 논리로써 능히 고오타마로 하여금 토해 버리거나 삼키지 못하게 합니까?”
니건타가 또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마땅히 저 구담의 처소에 가서 이러한 말을 하라.
‘당신은 온갖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또한 온갖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법을 찬탄하십니까?
만약 온갖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어리석은 범부와 무슨 차별이 있으며,
만약 〈내가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면,
어찌 온갖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설법하지 않고,
설법해 주지 않는 자가 있는 것입니까?’”
마을 주인은 니건타의 지시를 받고 부처님 처소에 와서 대강 문안을 마치고는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당신은 정말 온갖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어찌하여 항상 그와 같은 법을 칭찬하시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늘 변함 없이 온갖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고 싶으며,
또한 항상 그와 같은 법을 찬탄하노라.”
폐구성이 말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중생들을 위하여 평등하게 설법하지 않고,
설법해 주지 않는 자가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묻겠으니 좋을 대로 대답하라.
가령 세상 사람들에게 세 가지 밭이 있는데,
첫째의 밭은 좋고 아름답고 기름져서 가장 좋으며,
둘째의 밭은 중간 정도에 맞게 좋으며,
셋째의 밭은 벌판의 변두리에 멀리 있거나 모래와 갯가에 있다.
만약 농부들이라면 먼저 어떤 밭에다 종자를 뿌리겠는가?”
폐구성이 말하였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밭에 먼저 심을 것이니,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가장 좋은 밭에다 심었다면,
다음에는 어떤 밭에 심겠는가?”
폐구성이 말하였다.
“다음에는 중간 정도 되는 밭에 심습니다.
중간 정도 되는 밭에다 심으면 그 다음에는 최하의 밭에 심을 것이니,
그런 밭에도 역시 종자를 뿌리는 것은 후일에 조금이라도 소득이 있을까 바라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최상의 밭을 알고자 한다면,
바로 나의 제자인 비구ㆍ비구니가 그들이다.
내가 그들에게 설법하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아서 자기 이익을 이루며,
언구의 뜻이 미묘해서 이익이 원만하고,
청정함을 구족해서 범행(梵行)을 발하니,
저 비구ㆍ비구니는 나의 법을 듣고는 나에게 의지하고,
나에게 귀의하며 나를 신빙[依憑]한다.
나는 선장이 되어서 그들을 건너게 하고,
그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함으로써 안락에 머물도록 하는데,
그들은 듣고 나서 제각기 이러한 말을 한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말씀하시니,
우리 모두 마음을 다하여 수행하면 오랫동안 이익을 얻어서 뜻[義]을 알고 안락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간 정도의 밭은 바로 나의 제자인 우바새와 우바이이다.
나는 그들에게 설법하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아서 자기 이익을 성취하며,
언구의 뜻이 미묘해서 이익이 원만하고 청정함을 구족해서 법행을 발하니,
저 우바새와 우바이는 나의 법을 듣고서는 나에게 의지하며 나에게 귀의하고 나를 신빙한다.
나는 선장이 되어서 그들을 건너게 하고 그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함으로써 안락에 머물도록 하는데,
그들은 듣고 나서는 모두 이러한 말을 한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말씀하시니,
우리 모두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하면 오랫동안 이익을 얻어서 뜻을 알고 안락하게 될 것이다.’
모래와 갯벌로 된 최하의 나쁜 밭을 알고자 한다면,
바로 저 외도들이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나아가서는 범행을 발하니,
저 외도들은 제각기 그들이 좋아하는 대로 들으며 나아가 한 구절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를 해득함으로써 오랫동안 구제와 이익을 얻고 뜻을 얻어서 안락하게 된다.”
폐구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이러한 말을 하였다.
“희유하십니다,
구담이시여.
좋은 비유로 잘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이 뜻을 완전히 이루기 위하여 다시 비유로 말하겠다.
세상 사람에게는 세 종류의 동이가 있는데,
첫째의 물동이는 견고하고 완전하고 손상되지 않고 구멍이나 균열이 없어서 물이 새지 않으며,
둘째의 물동이는 완전해서 깨지지 않고 구멍이나 균열도 없으나 물이 조금 새어 나오며,
셋째의 물동이는 깨지기도 해서 새기도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물을 담는 데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어떤 그릇을 먼저 사용하겠는가?”
폐구성이 대답하였다.
“깨지거나 새지 않는 완전한 그릇에다 먼저 물을 담고,
다음 둘째의 그릇을 사용합니다.
둘째의 그릇은 비록 완전하고 깨지지는 않았지만 물이 조금 새는 것이니까요.”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 동이에 다 채운 후에는 다시 어떤 그릇에 채우겠는가?
셋째의 물동이도 비록 새거나 깨졌지만 물을 담아서 잠깐은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물동이는 나의 제자인 비구ㆍ비구니를 비유함이니,
나는 그들에게 설법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뜻을 얻고 안락을 얻게 한다.
둘째의 물동이는 나의 제자인 우바새와 우바이를 비유함이니,
나는 그들에게 설법함으로써 뜻을 얻고 안락을 얻게 한다.
셋째의 물동이는 모든 외도들을 비유함이니,
내가 그들에게 설법할 때 조금이라도 들어서 받아 지니면 그들로 하여금 뜻을 얻고 안락을 얻게 한다.”
마을 주인 폐구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자 몹시 놀랍고 두려워서 몸의 털이 곤두선 채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이러한 말을 하였다.
“저는 이제 진실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참회하겠습니다.
저는 매우 어리석은 것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서 하는 짓이 착하지 못해서 부처님 앞에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한 하천한 거짓말을 했습니다.
부디 불쌍히 여기셔서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지극한 마음을 알겠도다.
그대는 참으로 죄를 알며,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어린아이와 같아서 하는 짓이 착하지 못하였다.
그대는 여래ㆍ아라하에게 허망하고 하천한 거짓말을 하였는데,
지금에야 죄를 알고 성심껏 참회를 하니,
착한 법은 날로 늘어나고 나쁜 일은 줄어지리라.
내 이제 그대를 불쌍히 여겨서 그대의 참회를 받아 주나니,
그대로 하여금 착한 법이 늘어나게 함으로써 항상 물러서지 않게 하겠노라.”
마을 주인 폐구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는 기뻐하고 받들어 행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13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라건타성의 매첩숲 속에 계셨다.
당시 마을 주인 결집론자(結集論者)는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나는 지금 니건(尼乾)을 뵈야 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부처님 처소에 가야겠다.’
부처님께 와서 문안을 마치고 한쪽에 앉아 있었다.
부처님께서 마을 주인 결집론자에게 말씀하셨다.
“저 니건타야제자(尼乾陀若提子)는 여러 제자들에게 어떤 법을 말하던가?”
마을 주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니건타는 항상 이러한 말을 합니다.
‘만약 살해하는 업을 지어서 살생을 많이 저지르면,
반드시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간다.
도둑질을 하거나,
못된 음행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많이 저지르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자 세존께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니건의 말과 같다면,
중생이 도무지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니건의 말처럼 ‘만약 살해하는 업을 지어서 살생을 많이 저지르면,
반드시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며,
도둑질을 했거나 못된 음행을 했거나 거짓말을 한 것도 역시 그와 같다’고 하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은 살해하는 때가 적고 살해를 하지 않는 때가 많다.
그런데도 만약 ‘살생을 많이 저질러야 지옥에 들어간다’고 하면,
살생을 많이 하지 않고 적게 했을 경우는 마땅히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지 않아야 할 것이다.
‘도둑질을 하는 것과 못된 음행을 하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고 한다면,
그 업을 많이 짓지 않고 적게 지었을 경우는 마땅히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지 않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또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다면,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은 전혀 없을 것이다.”
마을 주인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실로 그렇습니다,
구담이여.”
부처님께서 또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어떤 지도자가 사량을 잘하고 분별을 슬기롭게 해도 그 사량분별을 자기의 말과 변재로써 한다면 그는 바로 범부의 경지에 있는 이인데,
이런 사람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은 법을 말한다.
‘만약 살생을 하면 모두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며,
그에 따라 업을 많이 짓게 되면 그 많은 업 때문에 지옥에 끌려 들어간다.
도둑질을 하거나 못된 음행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역시 그와 같아서 업을 많이 짓게 되면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그의 제자들은 전일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며 스승의 말씀을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지니고서 이러한 말을 한다.
‘우리를 지도하시는 스승께서는 저 앞날의 경계를 알았으며,
앞으로 볼 것을 보았다.’
또 이 제자들에게도 다시 제자가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지도하시는 스승께서는 〈만약 살해하는 경우가 있되 그 살생을 많이 저지른다면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이렇게 되면 그의 손제자(孫弟子)는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일찍부터 살생을 했으니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며,
도둑질을 하거나 못된 음행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반드시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소견을 짓는 즉시 그러한 소견을 얻게 되니,
이를 삿된 소견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견을 버리지 못하고,
의혹을 풀지 못하고,
지었던 바 나쁜 업의 원인을 뉘우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항상 그와 같은 나쁜 업만 지으니,
마음으로 고치려 하지도 않고 만족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마음의 해탈도 충분하지 못하고 지혜의 해탈도 충분하지 못하니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현을 비방하고,
성현을 비방하기 때문에 곧 삿된 소견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또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러한 삿된 소견을 두면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들어가며,
일체 중생도 모두 그 인연이 더러운 마음의 때를 반연으로 삼기 때문에 일체 중생이 업과 번뇌를 얻는 것이다.
만일 부처님께서 출세하시면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ㆍ부처님께서는 갖가지 인연으로 살해하는 짓을 꾸짖으시며,
도둑질하고 못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이 꾸짖으시며,
아울러 저 수승한 법에 결정적인 믿음과 이해를 갖는 것을 칭찬하신다.”
마을 주인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 세존께서는 진실한 지견(知見)으로 갖가지 설법하셔서 저희와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법을 말씀하시는데,
갖가지 인연으로 살해하는 짓을 꾸짖으시고 살해하지 않는 것을 칭찬하시며,
갖가지 인연으로 거짓말 않는 것과 못된 음행 않는 것과 도둑질 않는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옛적에 일찍부터 살해하였고 도둑질하였고 못된 음행과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인연 때문에 항상 스스로 뉘우치고 자책하였습니다.
비록 스스로 꾸짖고 자책하였어도 죄업을 짓지 않는다는 칭호를 얻어야 하니,
이 때문에 깊이 스스로 꾸짖고 뉘우치면서 그와 같은 나쁜 업을 참회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우리 모두가 의심과 후회를 없애고 착한 업을 더욱 증가해서 다시는 살해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못된 음행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겠사오며,
나중에도 갖가지의 나쁜 업을 다시는 짓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이 만족을 얻어서 해탈하게 되고,
또한 지혜의 해탈도 만족되는 것이니,
마음과 지혜가 만족되기 때문에 성현을 비방하지 않으며,
성현을 비방하지 않기 때문에 문득 정견(正見)을 얻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정견을 잘 닦는 인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게 되면 좋은 갈래로 가서 천상에 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능히 참회를 통해 정견으로 가기 때문에 능히 일체 중생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능히 중생의 맺힌 업과 번뇌와 죄의 때를 깨끗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성현의 제자라면 이러한 일을 듣고는 즉시 닦고 배울 것이다.
가령 때와 시분(時分)에서 시분이 중간이라면,
그 중간에서 밤낮이 이미 지나가고 있나니,
이처럼 때[時] 속에서 살해한 때가 많은가,
살해하지 않는 때가 많은가?
이치로 미루어 보건대,
살해한 때가 적고 살해를 하지 않은 때가 많다.
내가 그때 살해하는 짓을 했으므로 나는 실로 착하지 못하고 하는 짓도 옳지 못하니,
나는 지금부터 다시는 살해하지 않으며,
나는 온갖 것에 대하여 다시는 싫어하지 않으며,
또한 원망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깊이 기뻐하는 마음을 내겠다.
기뻐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깊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며,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깊은 즐거움을 얻으며,
깊이 즐겁기 때문에 안락을 누리게 되며,
안락을 누리기 때문에 그 마음이 안정을 얻는다.
성현의 제자는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에 자비와 함께하며,
자비와 함께 하기 때문에 원망함과 혐오함과 질투함이 없어서 그 마음과 뜻은 한량없이 크고 광대한 것이다.
자비를 잘 닦았기 때문에 저 동쪽에 있는 일체 중생에게 전혀 원망함과 혐오함이 없으며,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서도 역시 그와 같으니,
온갖 세계에서 두루 자비심을 내어 이러한 뜻과 이해를 지음으로써 반드시 이 착한 마음을 닦아서 세우고 그 착함 속에서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땅에서 흙을 조금 취하여 손톱 위에 두고는 마을 주인 결집론자에게 물으셨다.
“대지의 흙이 많은가,
손톱 위의 흙이 많은가?”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손톱 위의 흙은 아주 적어서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대지의 흙에 비해 백분ㆍ천분ㆍ천억분의 1도 되지 않으니 도저히 서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마을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우리의 죄업도 손톱 위의 흙을 대지의 흙과 비교하는 것 같아서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
마을 주인이 말하였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나쁜 업을 비교하면 알 수 있나니,
그와 같은 작은 업은 능히 사람을 나쁜 갈래에 떨어지도록 이끌지 못하며,
머물게도 하지 못하며,
또한 따질 만한 것도 못 됩니다.
그리고 자비를 행하는 이는 그 얻은 공덕이 대지의 흙과 같고 살해를 하는 죄는 손톱 위의 흙과 같으며,
연민의 공덕은 대지의 흙과 같고 도둑질하는 죄는 손톱 위의 흙과 같으며,
기뻐해 주는 공덕은 대지의 흙과 같고 못된 음행을 하는 죄는 손톱 위의 흙과 같으며,
희사(喜捨)하는 공덕은 대지의 흙과 같고 거짓말을 하는 죄는 손톱 위의 흙과 같습니다.”
여래께서 이렇게 법을 분별하시자,
마을 주인 결집론자는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면서 법안이 청정하게 되고,
법을 얻고 법을 증험하고,
법을 보고 법을 알고 법의 한계[邊際]까지 얻어서 온갖 의혹을 벗어났다.
그리하여 다른 믿음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체득하였다.
즉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돈하고 합장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해탈을 얻었습니다.
저는 이미 해탈을 얻었습니다.
지금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과 스님네에게 귀의하여 우바새가 됨으로써 그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믿는 마음을 청정하게 하겠습니다.”
마을 주인은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이양(利養)을 위하여 나쁜 욕설을 하면,
나날이 더욱 악해져서 오히려 자기의 재물까지 잃게 되는데,
하물며 다시 이익을 얻겠습니까?
저 역시 그처럼 이익을 얻으려 했기 때문에 어리석고 착하지 못한 니건(尼乾)을 가까이하였습니다.
저는 미치고 미혹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가까이하고 공양하고 공경하였으나,
저는 그곳에서 좋은 이익을 얻지 못하고 그에게 빠지게 됨으로써 장차 지옥에 떨어질 것이온데,
세존께서 저를 구제하여 나쁜 갈래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지금 거듭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께 귀의하여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저는 먼저 저 어리석은 니건에게 바쳤던 신심과 애착심과 공경심을 모두 다 버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세 번째로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에게 거듭 귀의하오며,
저의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우바새가 되어서 불신(不信)의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다.”
마을 주인 결집론자는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동요와 싸우는 것
말을 조복함과 악성
정발과 모니
왕발과 여성
기근과 밭에 씨 뿌림
결집론자를 합해서 열이 된다네.
○ [pt op tr]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Les Cowboys Fringants - Heavy Metal.lrc
● 2 중적 측면에서의 생사윤회와 인과의 유무문제
인과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전 페이지에 적고자 했다.
그런데 날이 지났다.
그런데 인과와 관련된 내용은 경전 곳곳에 나온다.
따라서 여기에 적어도 무방하다.
『별역잡아함경』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ᖰ 삿된 소견의 결과는 두 곳에 태어나게 되니,
지옥에 떨어지거나
축생에 떨어지는 것이다.”ᖱ
인과 문제와 관련해서는 경전 전체에서 2 중적인 측면을 갖는다.
이것이 모두 생사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한 측면은 인과를 논의할 내용 자체를 얻지 못한다.
또 그 생멸이나 생사도 얻지 못한다고 제시하는 측면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측면은 망집을 제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인과를 논의할 내용을 얻는다.
그런 가운데 인과에 의해서 생사윤회를 무량겁에 걸쳐서 하게 된다.
이런 내용이다.
이 두 측면은 서로 모순적인 내용인 듯 여겨진다.
그래서 수행자를 혼동시키는 측면이 강하다.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사정은 우선 인과를 잘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과를 관찰하는 기간을 대단히 짧게 관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비유로 들어보자.
어떤 이가 낭떨어지에서 떨어져서 팔과 다리나 허리가 부러졌다고 하자.
대단히 고통을 겪는다.
밤이 어두어지기 까지 구조되지 못하면 추위에 얼어죽을 수도 있다.
상태를 보면 구조되어도 남은 생을 장애 상태로 지낼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놓고 생사고통의 문제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가 낭떨어지를 향해 걸어가지 않았다면 낭떨어지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낭떨어지로 걸어갔는가.
낭떨어지쪽에 보물이 있다거나 귀한 약초가 있어서 그랬을 수 있다.
여하튼 그런 판단 때문에 낭떨어지를 향해 걸어갔다고 하자.
이 관계가 인과관계의 내용이다.
현실에서 종이에 불을 붙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문제가 제기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연기와 재가 나타난다에 걸면 거의 99.9 % 맞추게 된다.
그러나 삶의 문제는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중이다.
이것이 언제 끝날 것인가. 이런 것도 어려운 인과문제다.
앞의 예에서 그가 낭떨어지에 떨어져 다칠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걸어갔을 것인가가 문제된다.
대부분 그렇지 않다.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것을 미리 알면서 그 방향으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은 대부분 이런 사정 때문에 발생한다.
즉 어떤 업을 행하면 그로 인해 어떤 결과를 받는지를 미처 잘 모르기에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는다.
『별역잡아함경』에 처음 나오는 내용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한 광대가 자신이 광대노릇을 하고 풍류를 즐기면
이로 인해 광조천(光照天)이라는 하늘에 태어나게 된다고 잘못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런 업을 행하는 사정이 제시된다.
부처님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제시한다.
수행자 현실에서 계율에 해당하는 내용이 대부분 사정이 이와 비슷하다.
어떤 업을 행하면 생사고통을 겪는다. => 중단하고 끊어야 한다.
그 반대로 어떤 행을 행하면 복덕을 쌓게 된다. => 부지런히 정진해서 행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 계율 전반을 구성한다.
그런데 이것이 일반인의 상식과 차이가 난다.
일반적으로 탐욕을 갖고 집착을 일으켜 추구하면
그로 인해 원하는 것을 쉽게 얻는다고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돈을 벌려면 낭떨어지에서 나무가지를 한 손으로 붙잡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재화를 붙잡고 집착해야 한다고 상식적으로 제시한다.
그런 집착을 가진 이 가운데 현실에서 부자가 나타난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 믿음 때문에 현실에서 그처럼 임하는 이들이 대단히 많다.
그런데 현실 사정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도 약간의 판단 착오의 여지가 있다.
인과를 관찰하는 기간의 문제가 있다.
농부가 어떤 씨를 뿌리고 싹이나 꽃 열매가 맺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싹이나 꽃, 열매가 맺기 전까지는
그런 씨를 뿌려도 그런 열매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견해가 맞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열매를 맺고 난 시점이 되면 그 견해가 옳지 않다고 하게 된다.
어떤 견해가 옳은가에 따라서 봄에 씨를 땅에 뿌리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여부가 달라진다.
즉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관계를 살피는가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진다.
그런데 삶의 문제도 사정이 비슷하다.
어떤 이는 자신이 사망해서 화장터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놓고 고려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신과 관련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런 단멸관을 취하는 경우에 그렇게 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기간만 놓고 판단하면 대단히 잘못된 판단을 많이 행하게 된다.
여기에는 우선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과연 자신이 화장터에 들어간 이후에 자신과 관련된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되는가 하는 문제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만일 자신이 사망후 자신과 관련된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이 확정적으로 옳다고 하자.
그렇다면 정말 그 시점까지만 고려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자신의 정체에 대해 잘 살피는 문제는 이문제와 관련된다.
그런데 일단 그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두 경우를 열어 놓고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이 경우는 마치 도박사의 상황과 비슷하다.
즉, 주사위를 던지고 어떤 숫자가 나올지 모른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신중하게 도박을 하려고 하게 된다.
이런 경우와 사정이 같다.
그래서 두 경우를 열어 놓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만일 여러 선택 방향 가운데
사후에 다른 생이 있어도 좋고
그리고 없고 오로지 이번 생으로 자신의 삶이 끝나는 경우에도 무방하고 좋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있다면 이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또 각 경우마다 사정이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이 각 경우에 취하는 방안을 달리해서
이 어느 경우에도 위처럼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하면 또 좋다.
그리고 그것이 수행과 관련된다.
수행은 사실은 그런 자세로 처음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사망 후에도 이것이 좋다.
이런 내용을 붙잡고 설령 사망 후에 그런 결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역시 좋게 되도록 행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생사와 자신의 정체를 잘 파악하고 대처하면 더 좋다.
그리고 인과 문제가 이와 관련된다.
인과문제를 깊게 살피면
결국은 이 인과를 통해서 실상을 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다음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현실에서 어떤 생멸을 문제삼을 대상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렇기에 어떤 것의 생멸을 얻을 수도 없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그 생멸이 어떤 인과로 그렇게 나타나는가도 제시할 수 없다.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처음 측면과는 정반대되는 내용이 된다.
이 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종이에 불을 붙이면 무엇이 다음에 나타나는가.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위 내용은 이 현실 상황을 그대로 놓고
다음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 문제가 제기되는 그 상황에서
어느 단면을 취한다해도
거기에 문제삼는 종이나 불, 연기 재 등을 하나도 얻을 수 없다.
이런 입장이다.
그래서 그 이후 불이나 연기 재의 생멸이나 그 인과를 문제삼을 수도 없다.
이런 내용이 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경전에서 결국 이와 같은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을 함께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실에서 누구나 종이와 불을 본다.
그런 상황에서 그 현실 단면에 그런 종이나 불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이것은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을 놓고서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누구나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5 온 [색, 수, 상, 행, 식]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실 상황에서 경전은 그 현실 단면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 현실 한 단면에서 대부분 불이나 종이로 알고 대하는 어떤 내용이 있다.
또 현실 한 단면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어떤 내용이 있다.
또는 현실 한 단면에서 영희나 철수로 여기고 대하는 어떤 내용이 있다.
그런 가운데 대부분 현실 생활을 바쁘게 임하고 있다.
그런데 경전에서 제시하듯, 본래 그 현실단면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하자.
만일 그렇다면 이제 다음이 문제된다.
그 현실단면에 대부분 불이나 종이 그리고 자신, 영희, 철수로 여기고 대하는 것은
과연 그 정체가 무언가.
이에 대해 답을 잘 해야 한다.
이것이 깨달음과 관련되는 문제다.
이것을 잘 이해하면 결국 생사현실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해탈문이 된다. [ 공해탈문, 무상해탈문, 무원무작해탈문 ]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바로 그런 사정 때문에 그 생사현실에 그처럼 묶이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런 바탕에서 계속 생사과정을 밟아 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경계선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부분 이 경계선을 곧바로 넘기 힘들다.
즉 곧바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달리 말하면 각 주체가 갖는 망집을 곧바로 제거하기 힘들다.
그런 사정 때문에 차선책으로
우선 당장은 그런 망집에 바탕해서 장차 받게 될 생사고통을 제거하는 수행이 강조된다.
그것은 결국 망집에 바탕해서 생사고통을 받는 인과관계를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바탕에서 그런 생사고통을 받지 않을 방안을 찾아 행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것이 곧 계행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앞에서 본 것처럼 인과와 관련된 문제를 잘 파악해야 한다.
즉, 자신의 정체와 자신이 생사기간에 대한 문제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터리 인과 판단을 행하게 된다.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현실을 관찰해서 판단을 내려 선택하게 된다.
그 경우 넓고 길고 깊게 그리고 실상을 꿰뚫어 올바로 관찰해 내리는 판단과는
대부분 반대 방향의 선택이 된다.
그것이 경전에 처음에 보이는 내용과 사정이 같다.
즉 엉터리로 판단하면
자신이 행하는 행위가 현세에서 인기나 명에와 부와 지위를 얻는 좋은 방편이 된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은 정말 그런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이것은 비유하면 범인이 물건을 훔치고 체포되기 전까지
그것이 자신의 물건이 된 것처럼 여기는 현상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 내용을 넓고 길고 깊게 그리고 실상을 꿰뚫어 올바로 관찰하면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정 반대다.
그래서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선택이 된다.
근본적으로 망집을 제거하지 못한 경우에서는 이 내용이라도 잘 파악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역시도 처음에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생사현실에서 벗어나지도 못할 뿐더러
생사현실에서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나가게 된다.
결국 수행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 부분이다.
자신의 문제도 잘 해결하는 가운데
다른 중생도 잘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경전 전반에서 제시되는 내용들이다.
★%★
◈Lab value 불기2564/11/11 |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aurice Chevalier - Dans Les Squares A Paris, Au Printemps
도보로 걸어다닐 때도 좌회전 우회전을 급하게 하려면 깜박이를 넣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뒤에서 자전거나 오토바이 또는 달리는 사람과 추돌이 발생하기 쉽다.
그리고 유리도 하나 깨뜨렸다. 별로 일이 잘 안 된 날이었다. 그런데 오늘 또 나가봐야 한다. 걸어가고 싶지만, 자전거를 끌고 타고 간 다음 오는 길에 걸어와야겠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11/2564-11-11-k0651-007.html#3043 sfed--별역잡아함경_K0651_T0100.txt ☞제7권 sfd8--불교단상_2564_11.txt ☞◆vqgu3043 불기2564-11-11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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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교(漸敎)
점돈(漸頓)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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