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迦蘭陀竹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좋은 말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이른바 어떤 말은 민첩하고 빠르기는 완전하게 갖추었으나 빛깔을 완전하게 갖추지 못했고 형체도 완전하게 갖추지 못했다. 어떤 말은 민첩함과 빠르기도 완전하게 갖추었고 빛깔도 완전하게 갖추었으나 형체는 완전하게 갖추지 못하였다. 어떤 말은 민첩함과 빠르기도 완전하게 갖추었고 빛깔도 완전하게 갖추었으며 형체도 완전하게 갖추었다. 이와 같이 이 법과 율에도 세 가지 선남자(善男子)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어떤 선남자는 민첩함은 완전하게 갖추었으나 빛깔은 완전하게 갖추지 못하였고 형체도 완전하게 갖추지 못하였다. 어떤 선남자는 민첩함을 완전하게 갖추었고 빛깔도 완전하게 갖추었으나 형체는 완전하게 갖추지 못하였다. 어떤 선남자는 민첩함도 완전하게 갖추었고 빛깔도 완전하게 갖추었으며 형체도 완전하게 갖추었다. 어떤 것이 선남자로서 민첩함은 완전히 갖추었으나 빛깔은 완전히 갖추지 못하였고 형체도 완전히 갖추지 못한 것인가? 선남자가 이것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사실 그대로 알며,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나서는 욕유루(欲有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유루(有有漏)에서 마음이 해탈하며, 무명유루(無明有漏)에서 마음이 해탈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안다. 이것을 민첩함과 빠르기를 완전히 갖춘 것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빛깔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것인가? 만일 누가 아비담과 율을 물을 때,……(내지)……결정하여 해설해주지 못하면, 이것을 빛깔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형체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것인가? 이른바 이름과 덕망이 널리 알려진 사람으로서……(내지)……탕약과 여러 가지 생활 도구의 공양을 받지 못하면, 이것을 형체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을 선남자로서, 민첩함과 빠르기는 완전히 갖추었으나 빛깔은 완전히 갖추지 못하고 형체도 완전히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선남자로서, 민첩함과 빠르기도 완전히 갖추었고 빛깔도 완전히 갖추었으나 형체는 완전히 갖추지 못한 것인가? 선남자로서 이것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내지)……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이것을 민첩함과 빠르기를 완전히 갖춘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빛깔을 완전히 갖춘 것인가? 만일 누가 아비담과 비니를 물을 때,……(내지)……능히 결정하여 해설해주면 이것을 빛깔을 완전히 갖춘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형체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것인가? 이름과 덕망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람으로서……(내지)……탕약과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받지 못하면 이것을 선남자로서 형체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선남자로서 민첩함과 빠르기를 완전하게 갖추고 빛깔도 완전하게 갖추었으며 형체도 완전하게 갖춘 것인가? 선남자가 이것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내지)……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면, 이것을 민첩함과 빠르기를 완전하게 갖춘 것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빛깔을 완전하게 갖춘 것인가? 선남자로서 만일 누가 아비담과 비니를 물을 때,……(내지)…… 능히 결정하여 해설해주면 이것을 빛깔을 완전하게 갖춘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형체를 완전하게 갖춘 것인가? 선남자가 이름과 덕망이 널리 알려진 사람으로서……(내지)……탕약과 여러 가지 생활 도구의 공양을 받는다면 이것을 형체를 완전하게 갖춘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을 선남자로서, 민첩함과 빠르기도 완전하게 갖추고 빛깔도 완전하게 갖추었으며 형체도 완전하게 갖춘 것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20. 삼경(三經)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좋은 말이 있는데 임금이 타고 다닐 만한 것이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저 좋은 말은 빛깔도 완전하게 갖추었고 힘도 완전하게 갖추었으며 민첩함과 빠르기도 완전하게 갖춘 것을 말한다. 바른 법과 율에서도 그와 같은 세 종류의 선남자가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고 공경하는 대상으로서 위없는 복전(福田)이 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선남자가 빛깔도 완전하게 갖추고 힘도 완전하게 갖추었으며 민첩함도 완전하게 갖춘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 빛깔을 완전하게 갖춘 것인가? 선남자가 깨끗한 계와 바라제목차율의(波羅提木叉律儀)에 머물러서 위의(威儀)를 행하는 곳마다 원만하여 미세한 죄를 보아도 두려워할 줄 알며 배워야 할 계를 받아 잘 지키면, 이것을 빛깔을 완전하게 갖춘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힘을 완전하게 갖춘 것인가? 이미 생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끊어지게 하려고 의욕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노력해서 그것을 섭수(攝受)하고 더욱 자라나게 한다. 또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일어나지 못하도록 의욕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노력해서 그것을 섭수하고 더욱 자라나게 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일어나도록 의욕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노력해서 그것을 섭수하고 더욱 자라나게 한다. 이미 생긴 착한 법은 그것이 지속되도록 의욕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노력해서 그것을 섭수하고 더욱 자라나게 한다. 이것을 힘을 완전하게 갖춘 것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민첩함을 완전하게 갖춘 것인가? 이것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내지)……아라한이 되어 후세에 몸을 받지 않으면 이것을 민첩함을 완전하게 갖춘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을 선남자가 빛깔도 완전하게 갖추고 힘도 완전하게 갖추었으며 민첩함도 원만하게 갖춘 것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21. 사경(四經)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좋은 말이 있는데 네 가지 능력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 말은 임금이 타는 말이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어질고 착함ㆍ민첩하고 빠름ㆍ참음ㆍ부드러움이다. 선남자도 이와 같이 네 가지 덕을 성취하여, 세상 사람들이 받들어 존중하며 섬기고 공양하는 대상으로써 위없는 복전이 된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선남자가 성취한 배울 것이 없는 이의 계율의 몸[戒身],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선정의 몸[定身],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지혜의 몸[慧身], 배울 것이 없는 이의 해탈의 몸[解脫身]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22. 편영경(鞭影經)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네 가지 좋은 말이 있다. 어떤 좋은 말은 편안한 안장에다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곧 빠르게 달린다. 그리하여 말을 모는 사람의 형세를 잘 관찰하여 느리게 가고 빠르게 가며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되 말을 모는 사람의 의도대로 따라 행한다. 비구들아, 이것을 세간에 좋은 말의 첫 번째 덕목이라고 하느니라.
또 비구야, 세상의 어떤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를 보면 스스로 놀라 살필 줄 아는 능력은 없지만, 그러나 채찍이 그 털끝을 스치기만 하면 곧 놀라서 말 모는 이의 마음을 어느새 살피고는 느리게 가고 빠르게 가며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간다. 이것을 세간에 좋은 말의 두 번째 덕목이라고 하느니라.
또 비구들아, 세상의 어떤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를 돌아보거나 털끝에 스쳐도 사람의 마음을 따르는 능력은 없으나, 그러나 채찍으로 살갗을 조금 때리면 곧 놀라서 말을 모는 이의 마음을 살피고는 느리게 가고 빠르게 가며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간다. 비구들아, 이것을 세 번째 좋은 말이라고 한다.
또 비구들아, 세상의 어떤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를 돌아보거나 털을 스치고 지나가거나 살갗을 조금 맞는 정도로는 움직일 줄 모르고, 송곳에 몸을 찔려 뼈를 다친 뒤에야 비로소 놀라 수레를 끌고 길에 나서서, 말을 모는 이의 마음을 따라 느리게 가고 빠르게 가며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간다. 이것을 세간의 네 번째 좋은 말이라 하느니라. 바른 법과 율에도 이와 같은 네 종류의 선남자(善男子)가 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어떤 선남자는 다른 마을의 어떤 남자나 여자가 질병이 들어 고통을 받거나 심지어는 죽기까지 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곧 무섭고 두려워서 바른 사유[正思惟]에 의지한다. 마치 저 좋은 말이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곧 길들여진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스스로 잘 길든 첫 번째 선남자라고 하느니라. 또 어떤 선남자는 다른 마을의 어떤 남자나 여자가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받는다는 말을 듣는 것으로는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여 바른 사유에 의지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마을의 어떤 남자나 여자가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는 곧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여 바른 사유에 의지한다. 비유하면 마치 저 좋은 말이 털끝을 스치기만 해도 어느새 길들여져서 말을 모는 이의 마음을 따르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스스로 잘 길든 두 번째 선남자라고 하느니라. 또 어떤 선남자는 다른 마을에서 어떤 남자나 여자가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보거나 듣는 것으로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어 바른 사유에 의지하지는 못하지만, 마을이나 성읍(城邑)에서 어떤 선지식(善知識)이나 친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곧 두려워하여 바른 사유에 의지한다. 비유하면 마치 저 좋은 말이 살갗을 조금 맞고 나서 비로소 길들여져서 말을 모는 이의 마음을 따르는 것과 같다. 이것을 거룩한 바른 법과 율에서 스스로 잘 길든 세 번째 선남자라고 하느니라. 또 어떤 선남자는 다른 마을에서 어떤 남자나 여자나 친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받는 것을 듣거나 보는 것으로는,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어 바른 사유에 의지하지는 못하지만, 제 자신이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당하는 일에 대해서는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어 바른 사유에 의지한다. 비유하면 마치 저 좋은 말이 살을 찔리고 뼈까지 다치고 나서야 비로소 길들여져서 말을 모는 이의 마음을 따르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스스로 잘 길든 네 번째 선남자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23. 지시경(只尸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지시(只尸)라는 말 조련사가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간을 관찰해 보았더니 매우 경솔하고 천하기가 마치 양떼와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저만이 미쳐 날뛰는 나쁜 말을 다룰 수 있습니다. 저는 방편을 쓰면 잠깐 동안에 그 병의 증상을 다 나타나게 하고, 그 증상에 따라 방편을 써서 길들입니다.” 부처님께서 말 조련사인 촌장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몇 가지 방편으로 말을 길들이는가?”
말 조련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 가지 법으로 나쁜 말을 길들입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부드러움[柔軟]이요, 둘째는 거침[麤澁]이며, 셋째는 부드러우면서 거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촌장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그 세 가지 방편으로 말을 길들이다가 그래도 그 말이 길들여지지 않으면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말 조련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끝내 길들여지지 않으면 곧 죽여버리겠습니다. 왜냐 하면 제 자신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말 조련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위없는 조어장부(調御丈夫)이시니, 몇 가지 방편을 가지고 장부들을 다루십니까?”
부처님께서 촌장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세 가지 방편으로 장부들을 다룬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한결같이 부드럽게 다루는 것이요, 둘째는 한결같이 거칠게 다루는 것이며, 셋째는 부드러우면서도 거칠게 다루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촌장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한결같이 부드러운 것이라고 한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은 몸으로 짓는 착한 행(行)이요, 이것은 몸으로 지은 착한 행의 과보(果報)이다. 이것은 입과 뜻으로 짓는 착한 행이요, 이것은 입과 뜻으로 지은 착한 행의 과보이다. 이것은 하늘이라 이름하고, 이것은 사람이라 이름한다. 이것은 좋은 곳[善趣]에 화생(化生)하는 것이라고 이름하고, 이것은 열반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이것을 부드러운 것[柔軟]이라고 말한다.
거칠다고 한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은 몸으로 짓는 나쁜 행이요, 이것은 몸으로 지은 나쁜 행의 과보이다. 이것은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행이요, 이것은 입과 뜻으로 지은 나쁜 행의 과보이다. 이것을 지옥이라고 이름하고, 이것을 축생이라고 이름하며, 이것을 아귀라고 이름한다. 이것을 나쁜 세계[惡趣]라고 이름하고, 이것을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것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이것을 여래의 거친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 저 부드러우면서도 거칠게 다룬다고 한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여래는 어떤 때는 몸으로 짓는 착한 행과 몸으로 지은 착한 행의 과보와 입과 뜻으로 짓는 착한 행과 입과 뜻으로 지은 착한 행의 과보를 말해주고, 어떤 때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과 몸으로 지은 나쁜 행의 과보와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행과 입과 뜻으로 지은 나쁜 행의 과보에 대하여 말해준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을 하늘이라고 이름하고, 이와 같은 것을 사람의 세계라고 이름하며, 이와 같은 것을 좋은 세계라고 이름하고, 이와 같은 것을 열반이라고 이름하며, 이와 같은 것을 지옥이라 이름하고, 이와 같은 것을 축생이라 이름하며, 이와 같은 것을 아귀라고 이름하고, 이와 같은 것을 나쁜 세계라고 이름하며, 이와 같은 것을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것이라고 이름한다. 이것을 여래의 부드러우면서도 거친 가르침이라고 하느니라.”◂
말 조련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그 세 가지 방편으로 중생들을 다루어도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촌장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또 죽여버린다. 왜냐 하면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니라.”
말 조련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살생을 하면 세존의 법에서는 청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세존의 법에서도 또한 살생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죽인다고 말씀하시니 그 이치가 어떤 것입니까?”
▸ 부처님께서 촌장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여래의 법에서는 살생하는 것을 청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고, 여래의 법에서도 또한 살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래의 법에서는 세 가지를 가르친다. 즉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은 더불어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으며 훈계하지도 않는다. 촌장이여, 그대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만일 여래의 법에서 더불어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으며 훈계하지도 않으면, 그것이 어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 조련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과연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더불어 말하지 않고 영원히 가르치거나 훈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실로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한 까닭에 저는 오늘부터 모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촌장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한 말을 하였구나.” 그때 말 조련사인 촌장 지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물러갔다.
924. 유과경(有過經)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말[馬]에는 여덟 가지 태도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여덟 가지인가? 어떤 사나운 말은 수레에 멍에를 메우려고 할 때에 뒷발로 사람을 차고 앞다리는 땅에 꿇고 머리를 흔들면서 사람을 문다. 이것을 세간 말의 첫 번째 태도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나운 말은 수레에 멍에를 메우려고 할 때에 머리를 숙이며 멍에를 떨쳐버린다. 이것을 세간 사나운 말의 두 번째 태도라고 말한다. 또 세간의 어떤 사나운 말은 수레에 멍에를 메우려고 할 때에 길가로 내려가거나 혹은 수레를 뒹굴려 뒤집어엎는다. 이것을 세 번째 태도라고 말한다. 또 세간의 어떤 사나운 말은 수레에 멍에를 메우려고 할 때에 머리를 치켜들고 뒷걸음친다. 이것을 세간 사나운 말의 네 번째 태도라고 말한다. 또 세간의 어떤 사나운 말은 수레에 멍에를 메우려고 할 때에 채찍으로 조금만 맞아도 고삐를 끊거나 굴레를 부수고 이리저리 치달린다. 이것을 다섯 번째 태도라고 말한다. 또 세간의 어떤 사나운 말은 수레에 멍에를 메우려고 할 때에 두 앞다리를 치켜들고 사람처럼 일어선다. 이것을 여섯 번째 태도라고 말한다. 또 세간의 어떤 사나운 말은 수레에 멍에를 메우려고 할 때에 채찍으로 때려도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이것을 일곱 번째 태도라고 말한다. 또 세간의 어떤 사나운 말은 수레에 멍에를 메우려고 할 때에 네 다리를 한데 모으고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여덟 번째 태도라고 말하느니라.
세간의 악한 장부도 바른 법과 율 안에서 이와 같은 여덟 가지 허물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여덟 가지인가? 비구로서, 만일 범행(梵行)을 닦는 사람들이 자기를 의심하고 죄를 들추어낼 때에 그는 곧 성을 내어 상대방을 도로 꾸짖으면서 말한다.‘너는 어리석고 분별이 없으며 착하지 못하다. 다른 사람이 네 죄를 드러내는데 너는 왜 내 죄를 들추어내느냐?’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뒷발로 사람을 차고 앞발을 땅에 꿇거나 배에 매는 띠를 끊고 멍에를 부수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첫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내면 도로 남의 죄를 들추어낸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성을 내어 목으로 멍에를 부수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두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내면 바르게 대답하지 않고 다른 일을 횡설수설 지껄이면서 성을 내고 거만하게 굴거나 숨기고 덮으며 앙심을 품고 차마 못하는 짓이 없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바른 길을 가지 않고 수레를 뒤엎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세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내어 그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건만, 그는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버티고 항복하지 않는다. 이것을 비유하면 마치 저 사나운 말이 뒷걸음치면서 물러가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네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낼 때, 그 사람을 업신여겨 두려워하지 않고, 또 대중들을 돌아보지도 않으며 옷과 발우를 가지고 마음 내키는 곳으로 떠나가 버린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채찍으로 때리면 이리저리 치달리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다섯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낼 때, 높은 자리로 가서 윗자리 스님들과 옳고 그름을 따진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두 발로 사람처럼 일어서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여섯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낼 때, 잠자코 대답하지 않아 대중들을 괴롭힌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채찍으로 때려도 꼿꼿이 있으면서 꼼짝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일곱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또 비구로서, 범행을 닦는 사람들이 보고 들은 의심스러운 자기 죄를 들추어낼 때, 곧 계를 버리고 스스로 환속하려는 마음을 내고는, 절 문에 이르러 이렇게 말한다.‘너희들은 그저 묵묵히 유쾌하고 기쁘게 안주해라. 나는 계를 버리고 환속하련다.’ 이것은 마치 저 사나운 말이 네 다리를 한데 모으고 땅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여덟 번째 허물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것을 비구로서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가 짓는 여덟 가지 허물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25. 팔종덕경(八種德經)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로서 여덟 가지 덕을 성취한 놈은 사람의 욕구를 따라 어느 정도의 도를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이 그 여덟 가지인가? 좋은 말이 생산되는 고장에 태어난 것이니, 이것을 좋은 말의 첫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성질이 부드럽고 어질어 사람을 두렵게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좋은 말의 두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음식을 가리지 않나니, 이것을 좋은 말의 세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깨끗하지 못한 것을 싫어해서 자리를 가려 눕나니, 이것을 좋은 말의 네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말 길들이는 사람에게 그 나쁜 버릇을 빨리 나타내어 말을 다루는 사람이 그를 길들여 빨리 그 버릇을 버리게 하나니, 이것을 좋은 말의 다섯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그 말을 타는 사람에게 편안하게 하여 다른 말을 돌아보지 않게 하고 그 무겁고 가벼움을 따라 힘을 다하는 것이니, 이것을 좋은 말의 여섯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항상 바른 길을 따라 달리고 나쁜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좋은 말의 일곱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좋은 말은 병들었거나 늙었어도 힘을 다해 가마를 태우고 싫어하는 내색을 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좋은 말의 여덟 번째 덕이라고 하느니라. 장부도 바른 법과 율에 있으면서 이와 같이 여덟 가지 덕을 성취하면 그를 어진 선비라고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그 여덟 가지인가? 이른바 어진 선비는 바른 계와 바라제목차율의(波羅提木叉律儀)에 머물러서 위의(威儀)를 행하는 곳에서, 조그만 죄를 보고도 두려워할 줄 알고, 배워야 할 계를 받아 지니면, 이것을 바른 법과 율에서 장부의 첫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성질이 어질고 착하며 잘 길들고 잘 머물러서, 범행(梵行)을 닦는 자들을 괴롭히지도 않고 두렵게 하지도 않으면, 이것을 장부의 두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차례로 걸식하여, 그 얻는 대로 따라서 거칠거나 맛있거나 마음을 평등하게 가져서, 싫어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 이것을 장부의 세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몸으로 짓는 나쁜 업과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업과,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과 모든 번뇌와, 거듭 받게 되는 모든 유정(有情)들의 치성한 고통의 과보를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을 내고, 미래 세상의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에 대해 더욱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을 내게 되면, 이것을 장부의 네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만일 어떤 사문이 허물이 있고 아첨하고 왜곡되며 진실하지 않으면, 속히 큰 스승이나 선지식(善知識)에게 알리고 큰 스승이 설법하여 곧 끊게 하면, 이것을 장부의 다섯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배우려는 마음을 완전하게 갖추어 ‘남들이 배우건 배우지 않건 나는 다 배우고 말리라’라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것을 장부의 여섯 번째 덕이라고 한다. 또 장부로서 여덟 가지 바른 길을 가고 그른 길을 가지 않는다면, 이것을 장부의 일곱 번째 덕이라고 말한다. 또 장부로서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방편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싫증을 내거나 게을리 하지 않으면, 이것을 장부의 여덟 번째 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장부가 이 여덟 가지 덕을 성취하면 그 행하는 지위를 따라 빨리 향상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26. 선타가전연경(詵陀迦旃延經)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리(那梨)라는 마을에 있는 심곡정사(深谷精舍)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선타가전연(詵陀迦旃延)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진실한 선정을 닦고 거친 선정을 닦지 말라. 비유하면 마치 거친 말을 마구간에 매어 두었을 때에는 그 말은 자기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곡식이나 풀만 생각하는 것처럼, 장부도 이와 같아서 탐욕의 번뇌를 많이 닦고 익혔기 때문에 그는 탐욕의 마음으로만 사유하면서 벗어나는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마음이 항상 내달려 탐욕의 번뇌를 따르면서 정수(正受)를 구한다. 진에(瞋恚)ㆍ수면(睡眠)ㆍ도회(掉悔)ㆍ의(疑)를 많이 닦아 익혔기 때문에 벗어나는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의개(疑蓋)의 마음으로만 사유하면서 정수를 구한다. 선타(詵陀)여, 만일 진실한 종자의 말이라면 마구간에 매어 두더라도 물이나 풀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다만 사람을 태우고 다닐 일만 생각할 것이다. 어떤 장부도 이와 같아서 탐욕(貪欲)의 번뇌[纏]를 생각하지 않고 생사를 벗어나는 일에 머물러야 함을 사실 그대로 알아, 탐욕의 번뇌로써 정수를 구하지 않는다. 또한 진에(瞋恚)ㆍ수면(睡眠)ㆍ도회(掉悔)ㆍ의(疑)의 번뇌를 생각하지 않고 생사를 벗어나는 일[出離]에 많이 머물러, 진에ㆍ수면ㆍ도회ㆍ의의 번뇌를 사실 그대로 알아 의(疑) 등의 번뇌로써 정수를 구하지 않는다. 이와 같아서 선타여, 비구가 이렇게 선정을 닦는 사람은 흙[地]을 의지해 선정을 닦지 않고, 물ㆍ불ㆍ바람ㆍ허공ㆍ의식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을 의지해서 선정을 닦지도 않는다. 이 세상을 의지하지도 않고 다른 세상을 의지하지도 않으며, 해나 달도 의지하지 않고, 보고[見]ㆍ듣고[聞]ㆍ깨닫고[覺]ㆍ인식하는 것[識]에도 의지하지 않고 얻음[得]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구함[求]에도 의지하지 않고 거친 생각[覺]을 따르지도 않고 미세한 생각[觀]을 따르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선정을 닦는다. 선타여, 비구로서 이와 같이 선정을 닦는 사람이라면, 천주(天主)ㆍ이습바라(伊濕波羅)8)ㆍ파사파제(波闍波提)9)도 그를 공경하여 합장하고 머리 조아려 예를 올리면서 게송으로 말할 것이다.”
위대한 대장부께 귀의합니다. 가장 높은 선비께 귀의합니다. 저는 도저히 모르겠나이다. 무엇을 의지해 선정을 닦습니까?
그때 존자 발가리(跋迦利)는 부처님의 뒤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채를 잡고 부처님께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발가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비구는 어떻게 선정에 들어야 흙ㆍ물ㆍ불ㆍ바람과……(내지)……이 세상을 의지하지도 않고 다른 세상을 의지하지도 않으며, 해나 달도 의지하지 않고, 보고[見]ㆍ듣고[聞]ㆍ깨닫고[覺]ㆍ인식하는 것[識]에도 의지하지 않고 얻음[得]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구함[求]에도 의지하지 않고 거친 생각[覺]을 따르지도 않고 미세한 생각[觀]을 따르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선정을 닦는다. 선타여, 비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을 의지하지 않고 선정을 닦을 수 있습니까? 또 비구가 어떻게 선정을 닦아야 저 천주ㆍ이습바라ㆍ파사파제가 합장하고 공경히 머리 조아려 예를 올리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말하겠습니까?”
위대한 대장부께 귀의합니다. 가장 높은 선비께 귀의합니다.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의지해 선정을 닦습니까?
부처님께서 발가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가 흙이라는 생각에 대해 흙이라는 생각을 항복 받고, 물ㆍ불ㆍ바람이라는 생각과, 무량공입처(無量空入處)라는 생각ㆍ식입처(識入處)라는 생각ㆍ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라는 생각ㆍ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라는 생각을 항복 받고,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라는 생각과, 해ㆍ달ㆍ보고ㆍ듣고ㆍ깨닫고ㆍ아는 생각과, 얻거나 구한다는 생각과 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에 대해, 그것들은 다 항복 받으면 발가리여, 그렇게 선정을 닦는 비구는 흙ㆍ물ㆍ불ㆍ바람을 의지하지 않고,……(내지)……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을 의지하지 않고 선정을 닦을 수 있다. 발가리여, 또 그렇게 선정을 닦는 비구는 저 천주ㆍ이습바라ㆍ파사파제도 그를 공경하여 합장하고 머리 조아려 예를 올리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말하리라.”
위대한 대장부께 귀의합니다. 가장 높은 선비께 귀의합니다.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의지해 선정을 닦습니까?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자, 선타 가전연 비구는 번뇌를 멀리 여의고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었으며, 발가리 비구는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발가리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27. 우바새경(優婆塞經)1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비라위국(迦毘羅衛國) 니구율원(尼拘律園)에 계셨다. 그때 석가 종족인 마하남(摩訶男)11)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우바새(優婆塞)라고 말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속가에 살고 있으면서 청정하게 닦아 익히고 깨끗하게 머물러, 사내 모양을 원만하게 이루고서 ‘나는 지금부터 목숨을 마칠 때까지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며 비구스님들께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사오니, 저를 증명하여 알아주소서’ 라고 이렇게 말하는 이를 우바새라고 하느니라.”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우바새가 믿음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말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우바새는 여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근본으로 삼아 견고하여 움직이기 어려워서, 어떤 사문ㆍ바라문ㆍ하늘ㆍ악마ㆍ범(梵)과 그 밖의 다른 세간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으면 마하남아, 이것을 우바새가 믿음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느니라.”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우바새가 계(戒)를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우바새는 살생ㆍ도둑질ㆍ삿된 음행ㆍ거짓말ㆍ음주(飮酒)를 여의고 그것을 즐겨 행하지 않나니, 마하남아, 이것을 우바새가 계를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느니라.”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우바새가 들음[聞]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우바새가 들음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는 것은, 들으면 곧 지니고 들은 것을 잘 기억해서 쌓아두는 것이다. 즉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의미도 좋으며 순일(純一)하게 원만청정하며 범행(梵行)이 청정한 부처님의 말씀을 다 받아 가지는 것이니, 마하남아, 이것을 우바새가 들음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느니라.”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우바새가 평등[捨]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우바새가 평등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는 것은, 인색하고 더러운 번뇌[垢]에 얽매였으면 마음에서 인색함의 번뇌를 여의고 집 아닌 데에 머물며, 해탈시(解脫施)ㆍ근시(勤施)ㆍ상시(常施)를 닦아, 즐거이 재물을 버려 평등하게 보시하는 것이니, 마하남아, 이것을 우바새가 평등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느니라.”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우바새가 지혜를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우바새가 지혜를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는 것은, 이른바 이것은 괴로움[苦]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이것은 괴로움이 발생하는 원인[苦集]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며,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苦滅]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跡]이라고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니, 마하남아, 이것을 우바새가 지혜를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느니라.” 그때 석씨 마하남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떠나갔다.
928. 심묘공덕경(深妙功德經)1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비라위국 니구율원에 계셨다. 그때 석씨 마하남은 500명의 우바새와 함께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우바새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우바새란, 속가에서 청정하게 살면서……(내지)…… ‘목숨을 마칠 때까지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나이다. 저를 증명하여 알아주소서’라고 하는 이들이니라.”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것을 우바새 수다원(須陀洹)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우바새 수다원이라고 하는 것은, 세 가지 결박[三結]을 끊고, 이른바 신견(身見)ㆍ계취(戒取)ㆍ의(疑) 등의 그 결박이 끊어진 줄 아는 것이다. 마하남아, 이것을 우바새 수다원이라고 하느니라.”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우바새 사다함(斯陀含)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우바새가 세 가지 결박을 끊고, 그 결박이 끊어진 줄을 알아,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엷어진 것이니 마하남아, 이것을 우바새 사다함이라고 하느니라.”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우바새 아나함(阿那含)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우바새 아나함이라고 하는 것은, 5하분결(下分結)을 끊고, 이른바 신견(身見)ㆍ계취(戒取)ㆍ의(疑)ㆍ탐욕(貪欲)ㆍ진에(瞋恚) 등을 끊은 줄 아는 것이다. 마하남아, 이것을 우바새 아나함이라고 하느니라.” 그때 석씨 마하남은 500명의 우바새를 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신기하구나. 우바새들이여, 속가에 있으면서 청정하게 살아가면 이와 같은 깊고 묘한 공덕을 얻는구나.” 그때 마하남 우바새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떠나갔다.
929. 일체사경(一切事經)1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비라위국 니구율원에 계셨다. 그때 석씨 마하남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우바새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우바새라고 하는 것은 속가에서 깨끗하게 살면서,……(내지)…… ‘목숨을 마칠 때까지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저를 증명하여 알아주소서’라고 말하는 이들이다.”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모든 우바새의 일을 원만히 갖춘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우바새로서 믿음이 있고 계가 없으면 그것은 원만하게 갖추지 못한 것이니, 마땅히 열심히 방편을 써서 깨끗한 계를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믿음과 계를 원만하게 갖추었을지라도 보시하지 않으면 그것도 또한 원만하게 갖추지 못한 것이니, 원만하게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열심히 방편을 써서 보시를 닦아 익혀 그러한 것들을 원만하게 갖추어야 하느니라. 믿음과 계와 보시를 원만하게 갖추었을지라도 수시로 사문에게 나아가 바른 법을 듣지 않으면 그것도 또한 원만하게 갖추지 못한 것이다. 원만하게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열심히 방편을 써서 수시로 절[塔寺]에 나아가 여러 사문을 뵙더라도, 일심으로 바른 법을 듣고 받지 않으면, 그것도 원만하게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ㆍ계ㆍ보시ㆍ들음을 닦아 익혀 원만하게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듣고도 지니지 않으면 그것도 원만하게 갖추지 못한 것이다. 원만하게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열심히 방편을 써서 수시로 사문에게 나아가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듣고 나서는 잘 지녀야 한다. 그러나 그 법의 깊은 뜻을 관찰하지 못하면 그것도 또한 원만하게 갖추지 못한 것이다. 원만하게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열심히 방편을 써서 믿음ㆍ계ㆍ보시ㆍ들음을 닦아야 한다. 듣고 나서는 지녀야 하고 지니고 나서는 매우 깊고 묘한 뜻을 관찰해야 한다. 그러나 법을 따르고 법으로 향해 수순(隨順)할 줄을 알지 못하면 그것도 또한 원만하게 갖추지 못한 것이다. 원만하게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열심히 방편을 써서 믿음ㆍ계ㆍ보시ㆍ들음을 닦고 받아 지녀 관찰하여 깊은 이치를 분명하게 깨달아 알아 법을 따르고 법으로 향해 수순하여 행해야 한다. 마하남아, 이것을 모든 우바새의 일을 원만히 갖춘 것이라고 하느니라.”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우바새가 제 자신은 편안하게 하나, 다른 사람은 편안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우바새는 제 자신은 계를 확고히 하지만, 다른 사람은 바른 계를 확고하게 하지 못한다. 제 자신은 청정한 계를 지니지만 다른 사람은 계를 원만하게 지니게 하지 못한다. 제 자신은 보시를 행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보시하게 하지는 못한다. 제 자신은 절에 나아가 여러 사문을 뵙지만, 다른 사람을 권하여 절에 나아가 사문을 뵙도록 하지는 못한다. 제 자신은 전일(專一)하게 법을 듣지만 다른 사람을 권해서 바른 법을 즐겨 듣게 하지는 못한다. 제 자신은 법을 듣고 지니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바른 법을 받아 지니게 하지는 못한다. 제 자신은 매우 깊고 묘한 이치를 관찰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권해서 심오한 이치를 관찰하게 하지는 못한다. 제 자신은 깊은 법을 알아, 법을 따르고 법을 향해 수순하여 행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권하여 법을 따르고 법을 향해 수순하여 행하게 하지는 못한다. 마하남아, 이러한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것을 우바새가 제 자신은 편안하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우바새가 몇 가지 법을 성취해야 제 자신도 편안하고 다른 사람도 편안하게 합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우바새가 열 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것을 우바새가 제 자신도 편안하고 다른 사람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그 열 여섯 가지인가? 마하남아, 어떤 우바새는 바른 믿음을 원만하게 갖추고 그것을 다른 사람도 건립하게 한다. 제 자신도 깨끗한 계를 가지고 또 깨끗한 계를 다른 사람에게도 건립하게 한다. 제 자신도 보시를 행하고 다른 사람도 보시를 행하게 한다. 제 자신도 절에 나아가 모든 사문을 뵙고 다른 사람도 절에 가서 사문을 뵙게 한다. 제 자신도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다른 사람도 또한 듣게 한다. 제 자신도 법을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도 받아 지니게 한다. 제 자신도 이치를 관찰하고 다른 사람도 관찰하게 한다. 제 자신도 깊은 뜻을 깨달아 법을 따르고 법을 향해 수순하여 닦아 행하고, 다른 사람도 깊은 뜻을 깨달아 법을 따르고 법을 향해 수순하여 닦아 행하게 한다. 마하남아, 이와 같은 열 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것을 우바새가 제 자신도 편안하고 다른 사람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마하남아, 만일 우바새가 이와 같은 열 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저 대중들, 즉 바라문 대중ㆍ찰리(刹利) 대중ㆍ장자(長者) 대중ㆍ사문 대중들이 다 그에게 모일 것이요, 그 대중 가운데서 위엄과 덕망이 환하게 빛날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태양은 처음 떠오를 때나 중간이나 마지막에 질 때도 그 광명이 밝게 빛나는 것처럼, 우바새가 열 여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 사람도 처음이나 중간이나 마지막까지 위엄과 덕망이 밝게 빛날 것이다. 마하남아, 이와 같이 우바새가 열 여섯 가지 법을 다 성취한 사람은 세간에 그리 흔하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석씨 마하남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떠나갔다.
930. 자공경(自恐經)1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비라위국 니구율원에 계셨다. 그때 석씨 마하남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서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가비라위국은 안온하고 풍요롭고 살기가 좋아서 백성들이 많습니다. 제가 매번 출입할 때마다 많은 대중들이 좌우에 죽 늘어서서 뒤를 따르고 미친 코끼리ㆍ미친 사람ㆍ미친 수레도 항상 우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미친 것들과 살고 죽음을 함께 하다보면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비구스님들을 생각하는 것을 잊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 저는 ‘내가 죽은 뒤에는 장차 어디에 가서 태어날 것인가?’ 하고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무서워하지도 말라. 너는 목숨을 마친 뒤에 나쁜 곳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끝끝내 나쁜 일이 없을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큰 나무가 밑으로 가지를 내려뜨리고 있으며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곳과 기우는 곳이 있다고 하자, 만일 그 뿌리 부분을 베면 어디로 넘어지겠느냐?”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 나무는 본래 향하고 있던 곳이든지, 아니면 쏠리는 곳이나 기울고 있던 곳으로 넘어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너도 그와 같아서, 목숨을 마친 뒤에도 나쁜 곳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끝끝내 나쁜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너는 오랫동안 부처를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비구스님들을 생각하기를 닦고 익혀왔기 때문이다. 가령 목숨을 마치고 나서 그 몸이 불에 태워지거나 묘지에 버려져서 오랫동안 바람에 불리고 햇볕에 쪼여 마침내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심(心)ㆍ의(意)ㆍ식(識)이 오랜 세월 동안 바른 믿음에 훈습(薰習)되었고, 계ㆍ보시ㆍ들음ㆍ지혜에 훈습되었기 때문에, 그 신식(神識)은 위로 올라가 안락한 곳으로 향해 갈 것이요, 미래에는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때 마하남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931. 수습주경(修習住經)1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비라위국 니구율원에 계셨다. 그때 석씨 마하남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서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배우는 자리[學地]에 있으면서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있어서 위로 향해 올라가도록 도를 향해 매진해 안온한 열반을 구하려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닦아 익히고 더욱 많이 닦아 익혀 머물러야 이 법과 율에서 모든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이 마음이 해탈[心解脫]하고 지혜로 해탈[慧解脫]하여 현재 세상에서 스스로 증득한 줄을 알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게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로서 배우는 자리에 있으면서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있어서 위로 향해 올라가도록 도를 향해 매진해 안온한 열반을 구하려고 한다면, 그는 그때에 마땅히 여섯 가지 생각[六念]을 닦아야……(내지)……더욱 매진하여 열반을 얻게 될 것이다. 비유하면 굶주린 사람이 몸이 여위었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의 몸이 살찌고 윤택해지는 것처럼, 비구가 배우는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있어서 위로 향해 올라가도록 도를 향해 매진해 안온한 열반을 구하려고 한다면, 여섯 가지 생각을 닦아야 안온한 열반을 빨리 얻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그 여섯 가지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여래에 대한 일, 즉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시다’ 라고 생각해야 한다. 거룩한 제자가 이와 같이 생각할 때 탐욕의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마음이 정직해지므로 여래의 뜻을 알고 여래의 바른 법을 얻게 되며, 여래의 바른 법과 여래께서 증득하신 것에 대하여 기뻐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기뻐하는 마음이 생긴 뒤에는 흐뭇해지고, 흐뭇해지고 나면 몸이 의지하여 쉬게 된다. 몸이 의지하여 쉬고 나면 감각이 즐거워지고, 감각이 즐거워지고 나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나면 그 거룩한 제자는 흉하고 험악한 중생들 속에서 모든 장애가 없이 법의 흐름에 들어가 마침내는 열반에 들게 되느니라. 또 거룩한 제자는 법에 대한 일, 즉 ‘세존의 법과 율은 현재 세상에서 나고 죽는 치열한 번뇌를 여의며, 시절을 기다리지 않고 현재 세상을 통달하게 하며, 그러한 연(緣)으로 스스로 깨달아 안다’고 생각해야 한다. 거룩한 제자로서 이와 같이 법을 생각하는 이는 탐욕이 일어나지 않고 성냄과 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으며,……(내지)……법을 생각하는 것에 훈습되어 열반으로 나아가게 되느니라. 또 거룩한 제자는 비구에 대한 일, 즉 ‘세존의 제자는 착한 데로 향하고 바른 데로 향하며, 곧은 데로 향하고 정성스러운 데로 향하며, 수순하는 법을 실천한다. 그리하여 수다원으로 향하여[向須陀洹] 수다원이 되고, 사다함으로 향하여[向斯陀含] 사다함이 되며, 아나함으로 향하여[向阿那含] 아나함이 되고, 아라한으로 향하여[向阿羅漢] 아라한이 된다. 이것을 사쌍팔배(四雙八輩)의 성현이라고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세존의 제자인 승가는 깨끗한 계율을 원만하게 갖추고, 삼매(三昧)를 원만하게 갖추며, 지혜(智慧)를 원만하게 갖추고, 해탈(解脫)을 원만하게 갖추며,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원만하게 갖추어, 응하는 곳마다 받들어 섬기고 공양을 받는 훌륭한 복전(福田)이 된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거룩한 제자가 이와 같이 비구에 대한 일을 생각할 때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고……(내지)……승가를 생각하는 것에 훈습되어 열반으로 나아가게 되느니라. 또 거룩한 제자는 스스로 깨끗한 계(戒), 즉 ‘무너지지 않은 계ㆍ결함이 없는 계ㆍ더럽혀지지 않은 계ㆍ다른 계와 뒤섞이지 않은 계ㆍ남의 것을 취하지 않은 계ㆍ착한 것을 보호하는 계ㆍ현명한 사람이 칭찬하는 계ㆍ지혜로운 사람이 싫어하지 않는 계를 생각한다. 거룩한 제자가 이와 같이 계를 생각할 때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고……(내지)……계를 생각하는 것에 훈습되어 열반으로 나아가게 되느니라. 또 거룩한 제자는 보시에 대한 일, 즉 ‘나는 좋은 이익을 얻었다. 인색함의 번뇌[慳垢]가 있는 중생들 가운데에서 인색함의 번뇌를 여의게 되었다. 집 아닌 데[非家]에서 해탈의 보시를 행하고 항상 자신이 직접 보시하며, 평등한 법[捨法]을 즐겁게 행하여 평등한 보시를 원만하게 갖추리라’라고 생각해야 한다. 거룩한 제자가 이와 같이 보시를 생각할 때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고……(내지)……보시를 생각하는 것에 훈습되어 열반으로 나아가게 되느니라. 또 거룩한 제자는 모든 하늘에 대한 일, 즉 ‘사대천왕(四大天王)ㆍ삼십삼천(三十三天)ㆍ염마천(焰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있다. 만일 바르게 믿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저 여러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니, 나도 그런 바른 믿음을 닦아야 하겠다. 그리고 청정한 계(戒)ㆍ보시[施]ㆍ들음[聞]ㆍ평등[捨]ㆍ지혜[慧]를 닦은 사람은 여기에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저 여러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니, 나도 지금부터 계ㆍ보시ㆍ들음ㆍ지혜를 닦으리라’라고 생각해야 한다. 거룩한 제자가 이와 같이 하늘에 대한 일을 생각하면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고, 그 마음이 정직해진다. 그것이 저 하늘의 연(緣)이 된다. 저 거룩한 제자가 이와 같이 정직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심오한 법의 이익과 깊은 이치의 이익을 얻게 되고 저 모든 하늘의 이익에 대한 기쁨을 얻게 된다. 그렇게 기뻐하고 나면 흐뭇해지고, 흐뭇해지고 나면 몸이 기대어 쉬며, 몸이 기대어 쉬고 나서는 감각이 즐거워지고, 감각이 즐거워지고 나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나면 그 거룩한 제자는 흉하고 험악한 중생들 속에서도 모든 장애가 없어지고 법 물의 흐름[法水流]에 들어가, 하늘을 생각하는 것에 훈습되어 열반으로 나아가게 되느니라. 마하남아, 만일 비구가 배우는 자리에 있으면서 위로 올라가 안락한 열반을 구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많이 닦아 익혀서 빨리 열반을 얻은 사람은, 바른 법과 율 안에서 모든 번뇌를 빨리 다 끊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여 현재 세상에서 스스로 증득한 줄을 알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그때 석씨 마하남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떠나갔다.
932. 십일경(十一經)1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비라위국 니구율원에 계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서 세존을 위해 가사를 짓고 있었다. 그때 석씨 마하남은 많은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서 세존을 위해 가사를 짓고 있는데, 세존께서는 머지않아 석 달 동안의 안거(安居)를 마치고 가사가 다 지어지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인간 세상을 유행하실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그 소문을 듣고 나서 부처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온 몸을 거둘 수 없고 사방이 아득하여 들었던 법도 다 잊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 세존을 위해 가사를 짓고 있는데, 세존께서는 머지않아 석 달 동안의 안거를 마치고 가사가 다 완성되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인간 세상을 유행하실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지금 ‘언제나 세존과 여러 친한 비구들을 뵈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설령 세존을 보거나 세존을 보지 않거나, 친한 비구들을 보거나 보지 않거나 간에 오직 다섯 가지 법을 생각하고 부지런히 노력하고 닦아 익혀야 한다. 마하남아, 마땅히 바른 믿음을 주(主)로 삼고, 바르지 못한 믿음은 닦지 말라. 계(戒)를 완전하게 갖춤ㆍ들음[聞]을 완전하게 갖춤ㆍ보시[施]를 완전하게 갖춤ㆍ지혜[慧]를 완전하게 갖춤을 위주(爲主)로 하고, 옳지 못한 들음ㆍ옳지 못한 보시ㆍ옳지 못한 지혜를 닦지 말라. 그리하여 마하남아, 이 다섯 가지 법을 의지하여 여섯 가지 생각하는 법[念處]을 닦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그 여섯 가지인가? 마하남아, 여래를 생각할 때에는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하라.‘여래ㆍ응공ㆍ등정각……(내지)……불세존(佛世尊)이시다.’ 또 법(法)ㆍ승가[僧]ㆍ계(戒)ㆍ보시[施]ㆍ하늘[天]의 일을 마땅히 생각하고,……(내지)……스스로 행하여 지혜를 얻어야 한다. 이와 같이 마하남아, 거룩한 제자로서 이 열한 가지 법을 성취하면 곧 배운 자취[學跡]가 남아 끝내 부패(腐敗)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잘 알고 볼 수 있고 잘 결정할 수 있으며, 감로문(甘露門)에 머무르고 감로를 가까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빠르게 감로열반(甘露涅槃)을 얻지는 못하느니라. 비유하면 어미 닭이 알을 품는 것과 같다. 혹은 닷새, 혹은 열흘 동안 수시로 소식을 기다리면서 애호(愛護)하고 기를 때, 설령 또 중간에 방일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그래도 발톱이나 주둥이로 알을 쪼면 병아리는 거기에서 나오게 된다. 왜냐 하면, 그 어미 닭이 처음부터 수시로 소식을 기다리면서 애호하고 길렀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거룩한 제자로서 이 열한 가지 법을 성취하면, 곧 배운 자취가 남아 끝내 부패하지 않을 것이나……(내지)……모두 빠르게 감로열반을 원만하게 얻지는 못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석씨 마하남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933. 십이경(十二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비라위국 니구율원에 계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서 세존을 위해 가사를 짓고 있었다. 그때 석씨 마하남은 많은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서 세존을 위해 가사를 짓고 있는데, 세존께서는 머지않아 안거를 마치고 가사가 다 지어지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인간 세상을 유행하실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그 소문을 듣고 나서 부처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온 몸을 거둘 수 없고 사방이 아득하여 전에 들었던 법도 다 잊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 세존을 위해 가사를 짓고 있는데,……(내지)……인간 세상을 유행하실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언제나 세존과 여러 친한 비구들을 뵈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여래를 보거나 여래를 보지 못하거나, 비구들을 보거나 비구들을 보지 못하거나 간에 너는 항상 여섯 가지 법[六法]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어떤 것이 그 여섯 가지인가? 바른 믿음을 주(主)로 삼고, 계ㆍ보시ㆍ들음ㆍ공(空)ㆍ지혜[慧]를 근본으로 삼으며, 옳지 못한 지혜를 닦지 않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마하남아, 이 여섯 가지 법을 의지하고 나서 다시 여섯 가지 생각하는 법[六隨念]을 더욱 왕성하게 닦아야 하느니라. 곧 여래에 대한 일을 생각하고……(내지)……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열 두 가지의 생각을 성취하면 저 거룩한 제자는 모든 악이 줄어들어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소멸되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 번뇌[塵垢]를 여의어서 번뇌가 더 늘어나지 않고, 버리고 여의어서 취하지 않는다. 취하지 않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고, 취하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연(緣)하여 스스로 열반에 든다. 그리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석씨 마하남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떠나갔다.
934. 해탈경(解脫經)1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비라위국 니구율원에 계셨다. 그때 석씨 마하남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와서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해하고서 정수(正受: 禪定)에 들었었기 때문에 해탈하였으니, 정수에 들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먼저 정수에 든 다음 나중에 해탈하는 것입니까? 먼저 해탈한 다음 나중에 정수에 드는 것입니까? 정수와 해탈은 먼저도 없고 나중도 없어서 한꺼번에 생기는 것입니까?” 그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그러자 마하남이 이와 같이 두 번 세 번 여쭈었으나 부처님께서도 두 번 세 번 잠자코 계셨다. 그때 존자 아난이 부처님의 뒤에서 부채를 들고 부처님께 부채질을 해 드리고 있었다. 존자 아난은 이렇게 생각하였다.‘석씨 마하남은 저러한 깊은 이치를 세존께 여쭙는구나. 세존께서는 병이 쾌차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는 지금 마땅히 다른 일을 말해 저 말을 끌어오리라.’그렇게 생각하고 말하였다. “마하남이여, 배울 것이 있는 이에게도 계가 있고 배울 것이 없는 이에게도 계가 있으며, 배울 것이 있는 이에게도 삼매가 있고 배울 것이 없는 이에게도 삼매가 있습니다. 배울 것이 있는 이에게도 지혜가 있고 배울 것이 없는 이에게도 지혜가 있으며, 배울 것이 있는 이에게도 해탈이 있고 배울 것이 없는 이에게도 해탈이 있습니다.” 마하남이 존자 아난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배울 것이 있는 이의 계이고, 어떤 것이 배울 것이 없는 이의 계입니까? 어떤 것이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삼매이고, 어떤 것이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삼매입니까? 어떤 것이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지혜이고, 어떤 것이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지혜입니까? 어떤 것이 배울 것이 있는 이의 해탈이고, 어떤 것이 배울 것이 없는 이의 해탈입니까?” 존자 아난이 마하남에게 말하였다. “이 거룩한 제자는 계와 바라제목차율의(波羅提木叉律儀)에 머물러 위의를 행하는 곳에서 계를 받아 지닙니다. 계를 받아 지녀서 원만하게 갖추고 나면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내지)……제4선정을 원만하게 갖추어 머뭅니다. 이와 같이 삼매를 원만하게 갖추고 나면, 이것은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苦聖諦]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이것은 괴로움이 발생하는 원인[苦集]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며,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苦滅]이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이것은 괴로움이 소멸하는 길[苦滅道跡]이라고 사실 그대로 압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나면 5하분결(下分結)을 이미 끊고 또 끊은 줄을 이미 압니다. 신견(身見)ㆍ계취(戒取)ㆍ의(疑)ㆍ탐욕(貪欲)ㆍ진에(瞋恚) 등의 이 5하분결을 끊고 나면 그는 거기에서 태어나 반열반(般涅槃)의 아나함이 되어 다시는 이 세상에 도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그때에 이르면 배울 것이 있는 이의 계ㆍ배울 것이 있는 이의 삼매ㆍ배울 것이 있는 이의 지혜ㆍ배울 것이 있는 이의 해탈을 성취합니다. 그는 또 다른 날에 모든 번뇌[有漏]가 다하여 번뇌 없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여 스스로 증득한 줄을 알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압니다. 그는 그때에 이르면 배울 것이 없는 이의 계ㆍ배울 것이 없는 이의 삼매ㆍ배울 것이 있는 이의 지혜ㆍ배울 것이 없는 이의 해탈을 성취합니다. 이와 같아서 마하남이여, 이것을 세존께서 말씀하신 배울 것이 있는 이의 계ㆍ배울 것이 있는 이의 삼매ㆍ배울 것이 있는 이의 지혜ㆍ배울 것이 있는 이의 해탈이라 하고, 또 배울 것이 없는 이의 계ㆍ배울 것이 없는 이의 삼매ㆍ배울 것이 없는 이의 지혜ㆍ배울 것이 없는 이의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때 석씨 마하남은 존자 아난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때 세존께서 마하남이 떠난 것을 아시고 그리 오래되지 않아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가비라위국의 석씨는 모든 비구들과 함께 깊은 이치를 논(論)할 만하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가비라위국의 석씨야말로 모든 비구들과 함께 깊은 이치를 논할 만한 사람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가비라위국의 모든 석씨는 통쾌하게도 좋은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매우 깊은 불법과 성현의 지혜의 눈에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35. 사타경(沙陀經)1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비라위국 니구율원에 계셨다. 그때 석씨 사타(沙陀)라고 하는 사람이 석씨 마하남에게 말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수다원은 몇 가지 법으로 성취하는가?” 마하남이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수다원은 네 가지 법으로 성취한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부처님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佛不壞淨]과 법과 승가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과 거룩한 계를 성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법으로 수다원을 성취한다.”
석씨 사타가 석씨 마하남에게 말하였다. “부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세존께서는 네 가지 법으로 수다원을 성취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지 말라. 그러나 저 세 가지 법으로 수다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부처님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佛不壞淨]과 법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法不壞淨]과 승가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僧不壞淨]을 말한다. 이 세 가지 법으로 수다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를 말하였지만 석씨 마하남은 사타로 하여금 네 가지 법을 받아들이게 하지는 못하였고, 석씨 사타도 마하남으로 하여금 세 가지 법을 받아들이게 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함께 찾아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았다. 석씨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석씨 사타가 제가 있는 곳으로 와서 저에게 ‘세존께서는 몇 가지 법으로 수다원을 성취한다고 말씀하셨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존께서는 네 가지 법으로 수다원을 성취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부처님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과 법과 승가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과 거룩한 계를 성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법으로 수다원을 성취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석씨 사타는 저에게 ‘석씨 마하남이여,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세존께서는 네 가지 법으로 수다원을 성취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지 말라. 다만 저 세 가지 법으로 수다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부처님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과 법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과 승가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말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세 가지 법으로 수다원을 성취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두 번 세 번 말하였으나 저도 또한 저 석씨 사타로 하여금 네 가지 법을 받아들이게 하지는 못하였고, 석씨 사타도 저로 하여금 세 가지 법을 받아들이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함께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서 세존께 여쭙는 것입니다. 수다원은 몇 가지 법으로 성취하나이까?”
그때 석씨 사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와 같은 종류를 가지고 다툼이 일어나, 한편은 세존의 말씀이 옳다고 하고 한편은 비구 승가의 말이 옳다고 한다면, 저는 세존을 따르지 비구 승가를 따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혹은 이런 종류를 가지고 다툼이 일어나서 한편은 세존의 말씀이 옳다고 하고 한편은 비구 승가나 우바새ㆍ우바이, 혹은 하늘ㆍ악마ㆍ범ㆍ사문ㆍ바라문이나 모든 하늘 사람의 말이 옳다고 한다면, 저는 세존을 따르지 다른 부류들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석씨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마하남아, 석씨 사타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과 같을 적에는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마하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석씨 사타는 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 지를 안다. 나는 다만 옳은 것만을 말하고, 다만 진실만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 가지 법으로 수다원을 성취한다. 그 네 가지란 부처님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과 법과 비구 승가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과 거룩한 계를 성취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받아 지녀야 하느니라.”
그때 석씨 마하남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떠나갔다.
936. 백수경(百手經)1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비라위국 니구율원에 계셨다. 그때 가비라위국 석씨들이 식당에 모여 서로 논란을 벌이다가 이렇게 물었다. “마하남이여, 어떤 것이 최후의 수기[記]인가? 저 백수(百手) 석씨가 목숨을 마쳤다. 세존께서는 수기하시기를 ‘그는 수다원을 얻어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삼보리(三菩提)로 바로 향하여, 일곱 번 천상과 인간 세상을 오가며 태어났다가 맨 마지막[究竟]에는 괴로움을 완전하게 벗어날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저 백수 석씨는 계를 범하여 술을 마셨다. 그런데도 세존께서 다시 ‘그는 수다원을 얻어……(내지)……맨 마지막에는 괴로움을 완전하게 벗어날 것이다’라고 수기하셨다.
그대 마하남이여, 마땅히 부처님께 가서 여쭈어 보라. 부처님 말씀대로 우리들은 받들어 가지리라.” 그때 마하남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 가비라위국의 모든 석씨들은 식당에 모여 그들이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마하남이여, 어떤 것이 부처님 최후의 수기인가? 요즘 백수 석씨가 목숨을 마쳤다. 세존께서는 〈그는 수다원과를 얻었고……(내지)……맨 마지막에는 괴로움을 완전하게 벗어날 것이다〉라고 수기하셨다. 그대는 지금 마땅히 세존께 가서 세존께 다시 여쭈어 보아라. 부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받들어 가질 것이다.’
저는 지금 부처님께 여쭙나이다. 원컨대 해설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선서대사(善逝大師)라고들 말하는데 선서대사란 거룩한 제자들이 하는 말이다. 입으로는 선서대사라고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바르게 기억[正念]하고 곧게 보아[直見] 모두들 선서의 바른 법과 율로 들어간다. 바른 법과 율이란 거룩한 제자들이 하는 말로서 입으로는 바른 법을 말하면서, 마음을 내어 바르게 기억하고 곧게 보아 바른 법으로 들어가, 승가로 잘 향한다. 승가로 잘 향한다고 하는 것은 거룩한 제자들이 하는 말이다. 입으로는 잘 향함을 말하면서, 마음을 내어 바르게 생각하고 곧게 보아 모두들 좋은 향함으로 들어가느니라. 이와 같이 마하남이여, 어떤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에 대하여 한결같은 깨끗한 믿음이 있고, 법과 승가에 대하여 한결같은 깨끗한 믿음이 있으며, 법의 날카로운 지혜ㆍ벗어나는 지혜ㆍ결정하는 지혜가 있어 8해탈(解脫)을 원만하게 갖추어 몸으로 증득하고, 지혜의 견해를 가지고 번뇌를 끊을 줄 안다. 이와 같은 거룩한 제자는 지옥ㆍ축생ㆍ아귀의 세계에 나아가지 않고, 다른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아라한의 구해탈(俱解脫)이라고 하느니라.
또 마하남이여, 어떤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에 대하여 한결같은 깨끗한 믿음이 있고……(내지)……결정하는 지혜가 있으나, 8해탈을 몸으로 증득하여 원만하게 갖추어 머물지는 못한다. 그러나 번뇌가 끊어진 것을 보거나 아는데,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내지)……지혜로 해탈[慧解脫]하였다고 하느니라. 또 마하남이여, 어떤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에 대하여 한결같은 깨끗한 믿음이 있고……(내지)……결정하는 지혜가 있으며, 8해탈을 몸으로 증득하여 원만하게 갖추어 머문다. 그러나 번뇌가 끊어진 것을 보지는 못한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내지)……몸으로 증득하였다고 하느니라. 또 마하남이여, 어떤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에 대하여 한결같은 깨끗한 믿음이 있고……(내지)……결정하는 지혜가 있으나, 8해탈을 몸으로 증득하여 원만하게 갖추어 머물지는 못한다. 그러나 바른 법과 율에 대해서는 사실 그대로 알고 본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내지)……견해에 이르렀다[見到]고 하느니라. 또 마하남이여, 어떤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에 대하여 한결같은 깨끗한 믿음이 있고……(내지)……결정하는 지혜가 있어 바른 법과 율에 대해서는 사실 그대로 알고 보지만, 견해에는 이르지 못한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내지)……믿음으로 해탈[信解脫]하였다고 하느니라.
또 마하남이여, 어떤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을 믿어 말이 청정하고 법을 믿고 승가를 믿어 말이 청정하며 다섯 가지 법인, 믿음[信]ㆍ정진(精進)ㆍ기억[念]ㆍ선정[定]ㆍ지혜[慧]에 대하여 왕성한 지혜로써 자세히 살피고 견디어 나간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내지)……법을 따르는 행[隨法行]이라고 하느니라.
또 마하남이여, 어떤 거룩한 제자는 부처님을 믿어 말이 청정하고 법을 믿고 승가를 믿어 말이 청정하며……(내지)……다섯 가지 법인, 믿음ㆍ정진ㆍ기억ㆍ선정ㆍ지혜에 대하여 적은 지혜로써 자세히 살피고 견디어 나간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내지)……믿음을 따르는 행[隨信行]이라고 하느니라.
또 마하남이여, 이 견고수(堅固樹)가 내 말에 대하여 그 뜻을 안다는 것은 그럴 이치가 없다. 그러나 만일 그것을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곧 수기할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백수 석씨가 수다원 얻을 것을 수기하지 않겠느냐?
마하남이여, 백수 석씨는 임종할 때에 깨끗한 계를 받들어 지니고 술을 끊어 여읜 뒤에 목숨을 마쳤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수다원을 얻고……(내지)……결국에는 괴로움을 완전하게 벗어날 것이라고 수기하였던 것이니라.” 마하남 석씨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떠나갔다.
937. 혈경(血經)2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국(毘舍離國) 미후지(獼猴池) 곁에 있는 2층 강당에 계셨다. 그때 40명의 비구들이 파리야(波梨耶)라는 마을에 있었는데, 그들은 다 아련야행(阿練若行)을 닦으면서 누더기 옷을 입고 걸식하는 수행자들로 아직 탐욕을 여의지 못한 배울 것이 남아 있는 이[學人]들이었다. 그들은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 부처님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이 40명 비구들은 파리야가 마을에 살고 있는 이들인데, 모두들 아련야행을 닦으면서, 누더기 옷을 입고 걸식하는 수행자들로 아직 탐욕을 여의지 못한 배울 것이 남아 있는 이들이다. 나는 이제 이들을 위해 설법해주어서, 이들로 하여금 이 생(生)에서 온갖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을 얻게[心解脫] 하리라.’
그때 세존께서 파리야 마을의 40명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 속에서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욕에 목이 얽매여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괴로움의 본제(本際)를 알지 못하고 있다.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항하(恒河) 큰 강물이 넓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그동안 흐른 항하 물이 많겠느냐? 너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몸이 부서져 흘린 피가 많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해 본다면, 저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몸이 부서져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것은 항하 강물보다 백 천 만 배나 더 많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항하강의 물은 그만 두고라도……(내지)……사방 넓은 바닷물이 많겠느냐? 너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몸이 부서져 흘린 피가 많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해 본다면, 저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몸이 부서져 흘린 피가 훨씬 많아, 사방 넓은 바닷물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너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몸에서 흘린 피는 매우 많아서, 저 항하 강물이나 사방 넓은 바닷물보다 휠씬 더 많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너희들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일찍이 코끼리로 태어났을 적에 혹은 귀ㆍ코ㆍ머리ㆍ꼬리ㆍ네 발을 잘렸었나니, 그 피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혹은 말의 몸ㆍ낙타ㆍ나귀ㆍ소ㆍ개와 그밖에 여러 짐승들의 몸을 받아 귀ㆍ코ㆍ머리ㆍ발과 온 몸을 베였었나니, 그 피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 너희들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혹은 도적에게 혹은 남에게 해침을 당해 머리ㆍ발ㆍ귀ㆍ코를 베이고 온 몸이 잘렸었나니, 그 피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너희들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나 묘지에 버려졌으니 그때 흘린 고름과 피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혹은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져 몸이 허물어지고 목숨이 끝나면서 흘린 피도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은 항상한 것인가, 무상한 것인가?”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상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무상한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 거룩한 제자로서 어찌 또 거기에서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이 함께 있다’고 보겠느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모든 색(色)의 과거ㆍ미래ㆍ현재나, 혹은 안이건 밖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좋건 나쁘건 멀건 가깝건 저러한 일체는 다 나도 아니고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둘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사실 그대로 알아야 하나니,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거룩한 제자로서 이와 같이 관찰하는 사람은 색을 싫어하여 여의고, 수ㆍ상ㆍ행ㆍ식도 싫어한다. 싫어하여 여의면 좋아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면 해탈하고 또 해탈한 줄을 알고 본다.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시자, 파리야 마을에서 살고 있던 40명 비구들은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함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38. 누경(淚經)2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 속에서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항하강 흐르는 물과……(내지)……사방 넓은 바닷물이 많겠느냐? 너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흘린 눈물이 많겠느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해 본다면, 저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흘린 눈물이 항하 강물과 사방 넓은 바닷물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너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흘린 눈물이 훨씬 더 많아서 저 항하 강물과 사방 넓은 바닷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너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부모ㆍ형제ㆍ자매ㆍ친척ㆍ친구들을 잃고, 또 재물을 잃음으로 인해서 흘린 눈물이 너무도 많아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너희들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묘지에 버려졌을 때와, 지옥ㆍ축생ㆍ아귀 세계에 태어났을 때 고름과 피를 흘려왔기 때문이다. 비구들아, 너희들이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으로부터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그 몸에서 흘린 피눈물은 너무도 많아 헤아릴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은 항상한 것이냐, 무상한 것이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상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무상한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이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일 게다. 그런데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어찌 그 가운데에서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이 함께 있다’라고 보겠느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러합니다.” “모든 비구들아, 거룩한 제자로서 그와 같이 알고 그와 같이 본다면……(내지)……색에서 해탈하고, 수ㆍ상ㆍ행ㆍ식에서 해탈하고,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번민에서 해탈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39. 모유경(母乳經)2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 속에서 무명에 덮이고 애욕에 목이 얽매여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항하 강물과 사방 넓은 바닷물이 많겠느냐? 너희들이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마신 어머님의 젖이 많겠느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해 본다면, 저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마신 어머님 젖이 항하 강물과 사방 넓은 바닷물보다 휠씬 더 많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너희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마신 어머님의 젖이 저 항하 강물과 사방 넓은 바닷물보다 훨씬 더 많으니라. 무슨 까닭인가? 너희들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혹은 코끼리로 태어나 거기에서 마신 어미의 젖이 한량없이 많고 수없이 많으니라. 혹은 낙타ㆍ말ㆍ소ㆍ나귀 등 여러 짐승들로 태어나서 마신 어미의 젖은 수없이 많고 한량없이 많으니라. 또 너희들이 오랜 세월 동안 무덤에 버려져서 거기에서 흘린 고름과 피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혹은 지옥ㆍ축생ㆍ아귀 세계에 떨어져서 거기에서 흘린 골수와 피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너희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 속에서 윤회한 이래로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느니라. 어떠냐? 비구들아, 색은 항상한 것이냐, 무상한 것이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상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내지)……거룩한 제자로서 5수음(受陰)에 대해서 그것은 나[我]도 아니고 내 것[我所]도 아니라고 관찰하면, 모든 세상에 대해서 취할 것이 없어지고, 취할 것이 없어지게 되면,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알게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1) 1)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14번째 소경과 같은 내용이다. 2) 2)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15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또 이역본으로는 지요(支曜)가 한역한 『불설마유삼상경(佛說馬有三相經)』이 있다. 3) 3)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16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4) 4)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17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5) 5)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18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6) 6)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19번째 소경과 같은 내용이다. 또 이역본으로는 지요(支曜)가 한역한 『불설마유인태비인경(佛說馬有人態譬人經)』이 있다. 7) 7)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20번째 소경의 내용과 같다. 8) 8)또 다른 이름으로는 자재(自在)라고 하며, 인도에서 숭배하는 신(神)이다. 9) 9)또 다른 이름으로는 생주(生主)라고 하며, 인도에서 숭배하는 신(神)이다. 10) 10)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21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1) 팔리어로는 mahānāma라고 하며, 중인도 가비라위국(迦毘羅衛國)의 국왕으로 곡반왕(斛飯王)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감로왕(甘露王)의 아들이라고도 함. 아우인 아나율이 부처님께 출가한 뒤로는 크게 불법을 존중하였다. 때문에 부처님께서 칭찬하여 말씀하시기를 “늘 모두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바새 가운데 제일이다”라고 하셨다. 12) 12)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22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3) 13)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23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4) 14)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24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5) 15)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25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6) 16)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26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7) 17)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27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8) 18)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28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9) 19)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8권 29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20) 20)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1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제49권 제51 비상품(非常品) 2번째 소경과도 내용이 같다. 21) 21)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2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또 『증일아함경』제49권 제51 비상품(非常品) 1번째 소경과도 그 내용이 비슷하다. 22) 22)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3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