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enoir field-and-haystacks-1885
Artist: Pierre-Auguste Renoir from https://en.wikipedia.org/wiki/Pierre-Auguste_Renoir Title : field-and-haystacks-1885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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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hra_Mondop_in_Wat_Phra_Kaew_2015
【범】Suhāmatī ;또는 Sukhāvatī 수하마제(須訶摩提)ㆍ수마제(須摩提)ㆍ수하제(須訶提)ㆍ소하박제(蘇訶嚩帝)라 음역. 안양(安養)ㆍ안락(安樂)ㆍ안온(安穩)ㆍ묘락(妙樂)ㆍ일체락(一切樂)ㆍ낙무량(樂無量)ㆍ낙유(樂有)라 번역. 극락세계ㆍ극락정토ㆍ극락국토라고도 부름. 이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佛土)를 지나간 곳에 있다는 아미타불의 정토.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法藏) 비구의 이상(理想)을 실현한 국토. 아미타불이 지금도 있어 항상 설법하며, 모든 일이 원만 구족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는 자유롭고 안락한 이상향(理想鄕).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Buddhism in Iceland [san-chn]
sādhu-matī 善慧地 [san-eng]
māla $ 범어 a wreath [pali-chn]
akaniṭṭha 有頂天, 色究竟處 [pal-eng]
sappaccaya $ 팔리어 adj.having a cause; conditioned. [Eng-Ch-Eng]
依止 (1) Reliance, dependence. (2) To depend upon something which possesses power and virtue. A basis, a support (a^/sraya, adhista^na). (3) To serve (sam/sraya). (4) To serve as a disciple, learn the practices of discipline and be taught the dharma. (5) According to. (6) To make (something) the theme. To refer to. [Muller-jpn-Eng]
諦聽 タイチョウ listen carefully [Glossary_of_Buddhism-Eng]
SIXTH PATRIARCH SUTRA☞ See: Platform Sutra.
[fra-eng]
l'appropriation $ 불어 the appropriation [chn_eng_soothil]
至沙 帝沙 Tiṣya, an ancient Buddha. The father of Śāriputra. A son of Śuklodana.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ṁ]
▼●[羅什] 所以者何? 我相卽是非相, 人相衆生相壽者相, 卽是非相. 어째서 그런가 하면 아상은 상(相)이 아니며, 인상、중생상、수자상도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玄奘] 所以者何? 世尊, 諸我想即是非想, 諸有情想、命者想、士夫想、補特伽羅想、意生想、摩納婆想、作者想、受者想, 即是非想. [義淨] 所以者何? 世尊, 我想、眾生想、壽者想、更求趣想, 即是非想. 14-06 तत्कस्य हेतोः ? या सा भगवन् आत्मसंज्ञा, सैवासंज्ञा। या सत्त्वसंज्ञा जीवसंज्ञा पुद्गलसंज्ञा, सैवासंज्ञा। tatkasya hetoḥ | yā sā bhagavan ātmasaṁjñā saivāsaṁjñā | yā sattvasaṁjñā jīvasaṁjñā pudgalasaṁjñā saivāsaṁjñā | 그것은 어떤 이유인가 하오면, 복덕갖춘분이시여! 자아에 대한 산냐는 그것이 곧 산냐가 아니며, 중생에 대한 산냐、 영혼에 대한 산냐、 개체아에 대한 산냐는 그것이 곧 산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건 자아에 대한 산냐라는 바로 그것은 곧 산냐가 아니며, 중생에 대한 산냐라거나 영혼에 대한 산냐라거나 개체아에 대한 산냐라는 바로 그것은 곧 산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tatkasya] ① tat(pn.ƿ.nom.) + kasya(pn.ƾ.gen.) → [그것은、 어떤] ▼[hetoḥ] ① hetoḥ(ƾ.gen.) → [이유인가 하오면?] ▼▷[yā] ① yā(pn.Ʒ.nom.) → [(어떠한) 그것은] ▼[sā] ① sā(Ʒ.nom.) → [그것은] ▼[bhagavan] ① bhagavan(ƾ.voc.) → [복덕갖춘분이시여!] ▼[ātmasaṁjñā] ① ātma+saṁjñā(njp.→Ʒ.nom.) → [자아에 대한 산냐이다(→산냐라는…)] ▼[saivāsaṁjñā] ① sā(Ʒ.nom.) + eva(ƺ.) + asaṁjñā(njp.→Ʒ.nom.) → [그것은、 바로(→곧)、 산냐가 아닙니다(→산냐가 아니며),] [형용절] 그것은 자아에 대한 산냐이다. + 그것은 곧 산냐가 아니다. → [형용구] 어떤 것이건 자아에 대한 산냐라는 바로 그것은 곧 산냐가 아니다. ▼▷[yā] ① yā(pn.Ʒ.nom.) → [(어떠한) 그것은] ▼[sattvasaṁjñā] ① sattva+saṁjñā(Ʒ.nom.) → [중생에 대한 산냐는] ▼[jīvasaṁjñā] ① jīva+saṁjñā(Ʒ.nom.) → [영혼에 대한 산냐는] ▼[pudgalasaṁjñā] ① pudgala+saṁjñā(Ʒ.nom.) → [개체아에 대한 산냐는] ▼[saivāsaṁjñā] ① sā(Ʒ.nom.) + eva(ƺ.) + asaṁjñā(Ʒ.nom.) → [그것은、 바로(→곧)、 산냐가 아닙니다.] → 산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처 봉선사_범어연구소_현진스님_금강경_범어강의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密多經) - 범어 텍스트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ṁ
♣K0116-001♧
♣K0117-001♧
47 발 돌출부 [신조어] 엄지발가락 위 돌출부분 ( Ball )
5 목 ●
63 전박 (前膊) ~ 아래팔뚝
■ 오늘의 경전 [이야기, 게송,선시 등] 2568_0919_230619 :
대장경 내 이야기
제목 : 12) 당나라 경사 대장엄사(大莊嚴寺) 석혜전전(釋慧銓傳)
혜전은 속성이 소씨(蕭氏)이며, 지금 특지관(特進官)으로 있는 송공(宋公) 우(瑀)의 형님의 아들이다. 그의 부친은 수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양공(梁公)이 되었으며 그의 조부는 양(梁)나라의 명제(明帝)였다. 그는 성품과 도량이 넓고 간결하였으며 뜻과 생각이 깊고 순수하였다. 그의 고모는 수나라 양제의 황후였으므로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항상 궁궐에 있었다. 그는 세속을 벗어나기를 그리워하고 즐거워하면서도 연건이 안 되어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나이가 20세에 이르자 황제는 곧 장가를 보내어 진효왕(秦孝王)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정이 부득이하여 장가를 들었는데 아내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오래전부터 품은 뜻을 이루게 되어 정씨(鄭氏)가 지배하던 동도(東都)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그는 무덕(武德) 초년에 비로소 서울로 돌아가 장엄사(莊嚴寺)에 머무르면서 많은 경전들을 널리 듣고 익혔는데, 특히 『섭대승론』에 마음을 쏟았다. 그는 제법 많은 책을 읽고 외웠으며 특히 초서(草書)와 예서(隷書)에 능하여 그가 붓을 들어 쓴 글들은 모두 서체의 모범이 되었다. 이 때문에 경전의 제목이나 사원의 현판 등을 쓸 때는 모두가 그를 추대하고 우러러보았다. 그의 형인 소균(蕭鈞)이 동궁(東宮)의 중사인(中舍人)으로 임명되자 혜전을 글재주가 있는 사람으로 천거하여 조정에 소속시켰다. 그들은 매해 봄과 가을에는 서로 의지해서 높은 산으로 올라 노닐면서 흥이 나면 글도 쓰고 같은 운자(韻字)로 시구를 이어가니 당시 이들을 난형난제(難兄難弟)라고 하였다.
■ 지증(智證), 송공(宋公) 또한 그의 아우인 지증도 출가하여 함께 주석하였는데 곧 송공의 형인 태부경(太府卿)의 아들이다. 그는 영예로운 좋은 벼슬자리를 좋아하지 가벼이 생각하고 불도의 수행을 가슴에 품고 부지런히 스스로 노력하면서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았다. 지증은 형 혜전이 세상을 떠난 후 생을 마쳤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불교를 신봉하였고 특히 『법화경』을 널리 퍼트렸는데 가문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모두 이를 외웠다. 이 때문에 소씨 가문의 사람들은 『법화경』에 밝다고 도속들 사이에 칭송이 자자했다. 특진관(特進官) 송공(宋公)은 『법화경』 소(疏)를 편찬하였는데 10여 명의 대가들의 글을 모두 모아 화려한 문장들을 골라내고 여기에 자기의 생각을 붙여 책으로 완성하였다. 그는 항상 스스로 그것을 널리 퍼트렸으며 때로는 서울의 유명한 스님들을 초청하여 잘못된 곳을 지적하게 하였다. 또 친족 가운데 비구와 비구니가 된 사람들을 모이게 하였는데 그 수가 20명에 달하였으나 그들에게 공급하고 배푸는 공양은 일 년 사계절 때에 따라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그런 까닭에 그의 봉록(封祿)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오직 모두를 구제하는 데 마음을 두었다. 또한 태부의 성품은 독송을 좋아하여 이를 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외운 것이 만 번에 달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고용하여 경전을 뽑아 베껴 쓴 것이 총 천 부(千部)나 되었다. 그는 날마다 조참(朝參)을 할 때에는 반드시 인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을 손에 들고 앞에 서도록 하였으며, 일을 보는 시간에도 조금만 틈이 생기면 경을 전독(轉讀)6) 하였다. 이리하여 조정의 동료들이 우러르면서 뛰어나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교화가 동쪽으로 전해진 이래로 그 뜻이 유포된 것은 오래되었으나 그것을 이어받아 독송한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은 드물었으니 소씨의 온 가문사람들은 천하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