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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소품반야바라밀경_K0007_T0227_007 본문
『소품반야바라밀경』
K0007
T0227
제7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소품반야바라밀경』 ♣0007-007♧
용어풀이
ꊱ아비발치
‡아비발치
ω아비발치
제7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소품반야바라밀경 제7권
후진 구자국 삼장 구마라집 한역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아비발치(아유월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큰 공덕을 성취합니다.
세존께서는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이 가지고 있는 항하의 모래알만큼 수많은 모양을
훌륭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말씀하신 모양은 곧 깊은 반야바라밀의 모양입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옳고도 옳은 말이다.
수보리여,
그대는 모든 보살이 가진 깊고 깊은 모양을 잘 드러내 보여 주었다.
깊고 깊은 모양이라는 것은 곧 공(空)을 가리키니,
이것은 모양도 없고 지어냄도 없고,
일어남도 없고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고 실체도 없고 물듦도 없으며,
모든 것이 스러져 고요한 것이며
모든 것을 멀리 여읜 것이며
열반이라는 의미이다.”◂
“세존이시여,
오직 공과 더 나아가 열반만이 깊고 깊습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대상이 다 그렇습니까?”
모든 대상도 역시 깊고 깊다.
왜냐 하면 수보리여,
색도 깊고 수ㆍ상ㆍ행ㆍ식도 깊기 때문이다.
색은 왜냐 하면 진실 된 모양이기 때문이다.
수ㆍ상ㆍ행ㆍ식 역시 진실 된 모양이기 때문에 깊고 깊다.
수보리여,
색을 여읜 색은 깊고 깊으며,
수ㆍ상ㆍ행ㆍ식을 여읜 정신 작용 역시 깊고 깊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미묘한 방편에 의해
색을 가로막고 열반을 드러내 보여 주시며,
수ㆍ상ㆍ행ㆍ식을 가로막고 열반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보살은 이 깊은 반야바라밀에 대하여 사유하고 관찰하기를
‘반야바라밀이 가르치는 대로 나는 반드시 배울 것이며,
반야바라밀이 말하는 대로 나는 반드시 행할 것이다’라고 한다.
이 보살은 이와 같이 사유(思惟)하고 정진하면서
나아가 하루에 지은 공덕이 한량없다.
수보리여,
비유하자면 이것은 음욕이 강한 사람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기로 약속한 것과 같으니,
이 여인이 사정(事情)이 있어서 제때에 가지 못한다면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이 사람의 조급함이 어떻겠느냐?”
“세존이시여,
음욕이 강한 이 사람은
오로지 그 여인이 빨리 와서
자신과 더불어 앉고 눕고 즐기며 웃는 것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이 사람은 밤낮으로 얼마만큼 음욕이 일어나겠느냐?”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밤낮으로 음욕이 일어남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만약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이 가르치는 대로 사유하고 익힌다면
포기하고 물러나는 잘못을 여의며,
겁(劫)을 헤아리는 삶과 죽음의 고난을 벗어난다.
어떤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고
항하의 모래알만큼 수많은 세월 동안 보시하여 지은 공덕보다 더 훌륭하다.◂
또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여의고
항하의 모래알만큼 아득히 많은 세월 동안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 벽지불과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다면
그대 생각에 그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주 많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한량없고 가없으며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것은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에서 말한 대로 수행하면서
더 나아가 하루 동안 지은 공덕보다도 못하다.
왜냐 하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뛰어넘어
보살의 지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때문이다.
또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항하의 모래알만큼
아득히 많은 세월 동안
반야바라밀을 여의고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를 닦는다면
그대 생각에 그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주 많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것은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에서 말한 대로 수행하면서
더 나아가 하루 동안 보시와 지혜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를 닦아 얻은 공덕보다도
못하다.
또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항하의 모래알만큼 아득히 많은 세월 동안
반야바라밀을 여의고 중생들에게 법으로 보시를 베푼다면
네 생각에 그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주 많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것은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에서 말한 대로 수행하면서
더 나아가 하루 동안
중생들에게 법으로 보시를 베푼 공덕보다도 못하다.
왜냐 하면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살바야를 여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항하의 모래알만큼 아득히 많은 세월 동안
반야바라밀을 여의고
열반으로 나아가는 37품(品)1)을 닦는다면
그대 생각에 그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주 많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것은 보살이 반야바라밀에서 가르친 대로 머무르면서
더 나아가 하루 동안 열반으로 나아가는 37품을 닦는 공덕보다도 못하다.
왜냐 하면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는다면
살바야에서 물러나는 일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항하의 모래알만큼 아득히 많은 세월 동안
반야바라밀을 여읜 채
재물과 법을 베풀고 선정을 닦아 지은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면 그대 생각에 그 복이 많겠느냐,
적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주 많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지만 이것은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에서 말한 대로 수행하면서
더 나아가 하루 동안
재물과 법을 베풀고 선정을 닦아 지은 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보다도
못하다.
왜냐 하면 최고의 회향이란
곧 깊은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대로 일으켜 만들어낸 대상은
어떤 것도 망상과 분별에 지나지 않는다면
보살이 많은 복을 얻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또 자신이 지은 공덕조차도 역시 공하고 실체가 없으며,
허망하며 견고하지 않고,
감옥과 같다는 것을 잘 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잘 관찰하면
깊은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으며
깊은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으면
곧 한량없는 아승기 수의 공덕을 얻는다.”
“세존이시여,
한량없음과 아승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수보리여,
아승기란 수가 끝나서 셀 수 없는 것이고
한량없음은 모두 수(數)와 양(量)을 뛰어넘는 것을 말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색도 역시 한량없고
수ㆍ상ㆍ행ㆍ식도 역시 한량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색도 공하기 때문에 한량없고,
수ㆍ상ㆍ행ㆍ식도 공하기 때문에 한량없다.”
“세존이시여,
한량없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수보리여,
한량없다는 것은 곧 공을 가리키니,
이는 모양도 없고 지어냄도 없다는 의미이다.”
“세존이시여,
한량없는 것만이 공하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습니까?”
“수보리여,
그대는 내가 모든 것이 공하다고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모든 것이 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공하다는 것은 곧 다함이 없다는 뜻이며,
공하다는 것은 곧 한량없다는 뜻이니
이러한 까닭에 이 법의 뜻에는 차별이 없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은
다함이 없으며
한량이 없으며
공하며
모양이 없으며
지어냄이 없으며
일어남이 없으며
생겨남이 없으며 소멸함이 없으며
실체가 없으며
물듦이 없는 열반이니,
다만 문자 그대로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것의 진실 된 모양은 말로 다할 수 없지만
이제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로는
어떤 것도 말로 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옳고도 옳은 말이다.
수보리여,
어떤 것도 말로 다할 수는 없다.
수보리여,
모든 것의 공한 모양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세존이시여,
이 말로 다할 수 없는 뜻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니,
만약 그렇다면 단바라밀(보시바라밀)도 마땅히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고,
시라바라밀(지계바라밀)ㆍ찬제바라밀(인욕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정진바라밀)ㆍ선바라밀(선정바라밀)도
이 모든 바라밀이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면
보살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바라밀로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가까이할 수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모든 바라밀을 늘지도 줄지도 않게 한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가까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옳고도 옳은 말이다.
수보리여,
말로 다할 수 없는 뜻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니,
보살이 훌륭한 방편으로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는
예를 들어 단바라밀이 늘어난다거나 줄어든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단바라밀은 단지 단바라밀이라는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 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에도 이와 같이 생각하고
그 마음과 모든 선근(善根)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모양처럼 회향해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이 훌륭한 방편으로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는
예를 들어 시라바라밀이 늘어난다거나 줄어든다거나,
찬제바라밀이나 비리야바라밀이나 선바라밀이 늘어난다거나 줄어든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보살이 훌륭한 방편으로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는
반야바라밀이 늘어난다거나 줄어든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반야바라밀은 단지 반야바라밀이라는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하며,
지혜를 닦을 때에는 그 생각과 그 마음과 그 선근(善根)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모양처럼 회향해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가리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합니까?”
“수보리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곧 이 진실 된 모양으로서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만약 보살이 언제나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행한다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와 같이 말로 다할 수 없는 뜻은 비록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지만
어떤 생각도 물러나지 않고 어떤 바라밀도 쇠퇴하지 않는다.◂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지며 또 보살의 행이 쇠퇴하지 않으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이 다가가서 이를 얻는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처음의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까,
나중의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까?
세존이시여,
처음의 마음에는 나중의 마음이 각각 갖추어져 있지 않고,
또 나중의 마음에는 처음의 마음이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처음의 마음과 나중의 마음이 모두 온전하지 않다면
보살의 모든 선근이 어떻게 늘어날 수 있습니까?”
“수보리여,
비유하자면 이것은 등불이 타오르는 것과 같으니,
그대 생각에 이때 처음의 불꽃이 심지를 타오르게 한다고 보느냐,
뒤의 불꽃이 심지를 타오르게 한다고 보느냐?”
“세존이시여,
처음의 불꽃이 심지를 타오르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또 처음의 불꽃이 아니면 심지는 타오를 수 없으며,
뒤의 불꽃이 심지를 타오르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또 뒤의 불꽃이 아니면 심지는 타오를 수 없습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이 심지가 타오른다고 보느냐?”
“세존이시여,
이 심지는 실제로 타오릅니다.”
보살도 이와 마찬가지이니
처음의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처음의 마음을 여의고 그러할 수도 없으며,
나중의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나중의 마음을 여의고 그러할 수도 없다.”◂
“세존이시여,
이 인연법은 참으로 깊어서
보살은 처음의 마음으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지만
또 처음의 마음을 여의고도 이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나중의 마음으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지만
또 나중의 마음을 여의고도 이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수보리여,
만약 마음이 이미 소멸하였다면
그대 생각에 이 마음이 다시 생겨나겠느냐,
생겨나지 않겠느냐?”
“생겨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만약 마음이 생겨난다면
그대 생각에 이것은 모양이 소멸한 것이겠느냐,
소멸한 것이 아니겠느냐?”
“세존이시여,
이것은 모양이 소멸한 것입니다.”
그대 생각에 이렇게 모양이 소멸하는 법은
마땅히 멸하겠느냐,
소멸하지 않겠느냐?”
“소멸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마음은 또 이와 같이 머무르되,
진실 된 모양대로 머무르겠느냐,
머무르지 않겠느냐?”
“세존이시여,
마음은 또 이와 같이 머무르되
진실된★★ 모양대로 머뭅니다.”
“수보리여,
만약 마음이 또 이와 같이 머무르되
진실된 모양대로 머무른다면
곧 항상됨에 집착한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이 진실된★★ 모양은 깊겠느냐,
깊지 않겠느냐?”
“세존이시여,
이 진실 된 모양은 아주 깊습니다.”
그대 생각에 이 진실된★★ 모양은 곧 이 마음이겠느냐,
아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이 진실된★★ 모양은 이 마음을 여의겠느냐,
여의지 않겠느냐?”
“여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그대는 이 진실된★★ 모양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
“보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행한다면
그대 생각에 이것은 아주 깊이 행하는 것이겠느냐,
아니겠느냐?”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행한다면
이것은 행함이 없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어떤 행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어느 곳에서 행하는 것이겠느냐?”
“세존이시여,
실상의 진리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실상의 진리 가운데에서 행한다면
그대 생각에 이 사람은 모양을 행하는 것이겠느냐,
아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이 보살은 모든 모양을 파괴하겠느냐,
파괴하지 않겠느냐?”
“파괴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그대 생각에
이 보살은 어떻게 해서 모든 모양을 파괴하겠느냐?”
“세존이시여,
이 보살은 ‘나는 이 몸에서 모든 모양을 끊어내고
보살도(菩薩道)를 행하겠다’고 배우지 않았습니다.
만약 모든 모양을 끊어낸다면 불도(佛道)를 구족하지 못하고
반드시 성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은 큰 방편의 힘으로 모든 모양을 그대로 지나쳐서
어떤 모양도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때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만약 보살이
꿈속에서 3해탈문(解脫門)인 공해탈(空解脫)과 무상해탈(無相解脫)과 무작해탈(無作解脫)을 닦는다면
반야바라밀에 이익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만약 낮에도 그렇게 해서 이익이 있다면
꿈속에서도 반드시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는 낮과
밤중의 꿈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는다면 바로 반야바라밀의 이익이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꿈속에서도 반야바라밀에 이익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업(業)을 짓는다면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이 꿈과 같다고 말씀하셨으니
여기에는 과보가 따르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깨어나 분별할 때는 반드시 과보가 따를 것입니다.
사리불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사람을 죽인 다음
깨어나서 ‘잘 죽였다’고 분별한다면
그 업(業)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수보리시여,
반연(攀緣)이 없으면 업도 없고
반연이 없으면 마음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반연이 없으면 업도 없고 반연이 없으면 마음도 없습니다.
반연이 있으면 업도 있고 반연이 있으면 마음도 있습니다.
만약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가운데에서 마음을 행할 때
비로소 더러움에 물든 마음이라느니 청정한 마음이라느니 하는 것도 있겠지요.
사리불이시여,
이러한 까닭에 인연의 업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그렇지 않으며,
인연이 있으면 마음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사리불이 수보리에게 물었다.
“만약 보살이 꿈속에서 보시를 베풀고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해 회향한다면
이 보시를 가리켜 진정으로 회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리불이시여,
부처님으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예언을 받은 미륵보살님이
지금 바로 앞에 계시니,
이를 여쭙는다면 곧 답을 주실 것입니다.”
사리불이 곧 미륵보살에게 물었다.
“수보리님이 말하기를
‘이 일은 미륵보살님께서 반드시 답을 주실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미륵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했다.
“사리불이시여,
말한 바대로 만약 미륵보살이 답을 한다면
지금 미륵이라는 그 이름이 답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색이 답을 하겠습니까,
수ㆍ상ㆍ행ㆍ식이 답을 하겠습니까,
색의 공함이 답을 하겠습니까,
수ㆍ상ㆍ행ㆍ식의 공함이 답을 하겠습니까?
이것은 색의 공함도 답을 할 수 없고,
수ㆍ상ㆍ행ㆍ식의 공함도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시여,
나는 이에 답할 수 있는 어떤 대상도 알지 못하며,
이에 답하는 사람과 이 답을 필요로 하는 대상과
이에 답할 수 있는 대상을 알지 못합니다.
또 나는 어떤 대상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예언을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사리불이 미륵보살에게 말했다.
“보살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법의 깨달음에서 오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미륵보살이 말했다.
“내가 말한 것은 법의 깨달음이 아닙니다.”
사리불은 마음속으로 ‘미륵보살의 지혜는 아주 깊구나.
오랜 동안 반야바라밀을 행해 온 덕분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법을 보고 이 법을 가지고 아라한과를 얻겠느냐,
얻지 않겠느냐?”
“얻지 않겠습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방편의 힘이 생겨나기 때문에
‘이 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예언을 받으므로
이미 받았거나 지금 받거나 앞으로 받을 것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한다면 곧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언제라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니,
설령 사나운 짐승들 가운데에 있어도 마땅히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보살은 으레 마음속으로
‘만약 지금 내가 사나운 짐승들에게 잡아먹히더라도
나는 단바라밀을 성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육신을 보시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면
세상 가운데
축생의 고통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설령 원수나 도적들 가운데에 있어도
마땅히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보살의 길을 닦을 때에는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법이니,
보살은 마음속으로 ‘설령 나의 목숨을 빼앗고자 해도
나는 찬제바라밀을 성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에 대해 성을 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반드시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면 세상 가운데 원수와 도적과 해를 입히려는 악한 자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곳에 있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보살은 으레 마음속으로 ‘
나는 반드시 모든 중생을 위해 법을 말해 주어서 갈증을 씻어 줄 것이다.
만약 내가 갈증으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나는 이 중생들이 복덕이 없는 까닭에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곳에 있음을 알고
반드시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다음
세상 가운데 물 한 방울 없는 곳의 중생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정진하고 모든 복덕을 닦도록 해서
세상 가운데에 저절로 8공덕수(功德水)2)가 있도록 할 것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사리불이여,
보살은 설령 굶주림에 있어서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보살은 으레 마음속으로
‘내가 반드시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면
세상 가운데 이와 같은 굶주림의 고통은 사라지고 즐거움이 넘치며,
마치 도리천에서 그러한 것처럼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이 즉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이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라.
또 사리불이여,
보살은 설령 병이 들끓는 곳에 있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보살은 으레 마음속으로
‘이 가운데에 법이 없어서 병이 있는 것이니,
내가 반드시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면
세상에 사는 모든 중생의 3병(病)3)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나는 반드시 부지런히 정진하여
모든 부처님의 행을 따르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사리불이여,
보살은 설령 까마득히 오랜 세월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보살은 으레 세상은 태초이래
한 생각 정도의 짧은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고,
결코 아득히 멀다고 여기지 않으며,
설령 과거의 세월이 아무리 아득하다고 해도
정작 한 생각과 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보살은 설령 까마득히 오랜 세월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해도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물러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이때 무리 가운데에 있던 항가제바(恒伽提婆)라는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다음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을 올리면서 부처님을 향해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일에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음 생에도 중생들을 위해 이 일의 요점을 널리 말해 주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곧 금빛 꽃을 부처님께 흩뿌리니
부처님 머리 위의 허공 가운데에 꽃잎이 머무는 것이었다.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셨다.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다음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을 올리면서 부처님을 향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까닭으로 미소를 지으십니까?
모든 부처님의 상법(常法)에는 인연이 없이는 미소를 짓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 항가제바 여인은 미래의 성수겁(星宿劫)에 이르러
반드시 금화(金花)라는 부처가 될 것이다.◂
이제 여자의 몸을 남자의 몸으로 바꾸어
아촉불(阿閦佛)의 국토에 태어나 항상 범행을 닦을 것이니,
그곳에서 목숨이 다하면 한 부처님의 국토에서
다시 다른 부처님의 국토에 이르러
또 항상 범행을 닦아서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전륜성왕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니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발에 흙을 묻히지 않는 것과 같다.
아난이여,
이 여인도 역시 그러해서
한 부처님의 국토에서 다른 부처님의 국토에 이를 때마다
항상 범행을 닦아서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아난은 마음속으로
‘장차 이 보살을 따르는 무리는 마치 부처님을 따르는 무리와 같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아난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정말로 그렇다.
장차 이 보살을 따르는 무리는
마치 부처님을 따르는 무리와 같을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아난이여,
이 금화불(金花佛) 덕분에
성문으로서 열반에 들어가는 이는 한량없고 가없어서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세상에는 사나운 짐승과 원수와 도적을 만나는 재난이 없으며,
또 굶주림과 질병에 의한 고통도 없을 것이다.
아난이여,
이 금화불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이와 같이 두려움을 주는 재난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여인은 처음에 어디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선근(善根)을 심었습니까?”
이 여인은 처음에 연등불(燃燈佛)이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선근을 심고 이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했다.◂
그리고 연등불께 금빛 꽃을 흩뿌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였다.
아난이여,
당시 나는 다섯 송이의 꽃을 연등불께 공양하고
연등불께서는 나의 선근을 알아보시고
바로 내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授記)를 주셨다.
이 여인은 마침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미래에 반드시 그러한 수기를 받을 수 있기를 발원하여
바야흐로 지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은 것이다.
아난이여,
이 여인은 처음에 연등불께서 계신 곳에서
선근을 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여인은 오랜 세월 동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행을 닦았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말로 그렇다.
아난이여,
이 여인은 오랜 세월 동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행을 닦았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 한다면
어떻게 공을 닦아서 어떻게 공삼매(空三昧)에 들어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고자 한다면
반드시 색은 공하다고 알고,
수ㆍ상ㆍ행ㆍ식이 공하다고 알며,
반드시 산란하지 않은 마음으로 그렇게 알아야 할 것이니,
정작 이러한 법을 보지 않으면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대로라면 보살은 공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보살은 어떤 이유에서 공삼매에 들어가도
정작 깨달음을 얻지 않는 것입니까?”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공에 대한 관찰을 온전히 성취하고자 한다면
오직 공을 관찰할 뿐 깨달음을 얻지는 말고,
‘나는 마땅히 공을 배우되 지금은 공을 배워야 할 때이지
공을 깨달을 때가 아니다’라고 마음을 내야 하며,
마음을 주변의 대상에 깊이 묶어두지 말아야 한다.
그때 보살은 깨달음에 도움을 주는 수행법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짐짓 번뇌를 떨쳐내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 보살은 큰 지혜가 있고
선근이 깊기에 마음속으로 능히
‘지금은 배울 때이지 깨달을 때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은 반야바라밀을 얻기 위함이기 때문이다’고 생각한다.
수보리여,
비유하자면 이것은 마치 용감하고 힘세고 흔들림이 없고
용모가 단정하여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공경을 받으며,
병법에 능하고 무기를 잘 다루고 64서(書)4)에 능통하고 다 갖추었으며,
다른 기술도 잘 닦아서 모자람이 없고 남을 위해 사랑하고 생각해 주며,
하는 일마다 모두 훌륭하게 이루어내고
이로부터 이익이 많아 풍요로워져서 사람들로부터 더욱 존경받고
환영받는 어떤 사람이 사정이 생겨 부모와 처자들을 이끌고
험악하고 힘든 길을 지날 때 부모와 처자들이 무서워하지 않도록 안심시키기 위해
‘이 길은 비록 험해서 도적이 나오기는 하지만
별탈 없이 반드시 무사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길을 헤쳐 나아가니,
마침내 아무런 적도 만나지 않고
부모와 처자들을 어려움에서 구해내어
성읍(城邑)의 마을에 무사히 도착한 다음
다친 곳도 없고 마음이 흐트러지지도 않은 것을 보고
도중에 도적들이 일행에게 나쁜 마음을 내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한 것과 같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모든 기술을 갈고 닦았기에
오는 도중에 요술을 부려 도적들 앞에 무기를 든 사람들을 많이 풀어놓았더니
모든 도적들이 스스로 물러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그 일행은
반드시 평안하고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보살은 모든 중생을 인연으로 삼아
마음을 자비의 삼매에 묶어두고
모든 번뇌와 번뇌를 부추기는 대상을 벗어나며,
모든 악마와 악마를 도와주는 대상을 벗어나며,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벗어나서
공삼매에 머물되 정작 번뇌를 다하지는 않는다.◂
이때 보살은
무상(無相)을 깨달으려고 하지 않으며
유상(有相)에 떨어지지도 않는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새가 허공을 날아가되 떨어지는 일이 없고,
허공을 지나가되 허공에 머무르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수보리여,
보살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설령 공을 행하고 공을 배우더라도
무상(無相)을 행하고 무상을 배우며,
무작(無作)을 행하고 무작을 배우며,
불법(佛法)을 모두 성취하지 않고
공과 무상과 무작에 떨어지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활 만드는 사람이 활 쏘는 재주가 뛰어나서
허공에 화살을 쏘아 올리면 앞의 화살과 뒤의 화살이 서로 맞닿아
앞의 화살을 자유자재로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방편의 힘에 의해 보호를 받는 까닭에
굳이 최상의 진리를 깨달으려 하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선근을 성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게 되면
동시에 최고의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러한 까닭에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모든 법의 본래 모양을 굳이 깨달으려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하는 일은 정말 어려우며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이와 같이 빈틈없이 배우고도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니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어떤 중생도 떨쳐 버리지 않는 까닭에
이와 같이 위대한 서원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보살이
‘나는 어떤 중생도 떨쳐 버리지 않고
반드시 이들을 제도하여
공삼매의 해탈문과 무상삼매와 무작삼매의 해탈문에 들게 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이 보살은 도중에 굳이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 보살은 방편의 힘에 의해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또 수보리여,
만약에 보살이
이른바 공삼매의 해탈문과 무상삼매와 무작삼매의 해탈문과 같은
깊은 선정에 들고자 한다면,
이 보살은 먼저
‘중생들은 오랫동안 중생이라는 모양에 집착해 왔으며
얻을 것이 있다고 집착해 왔으니,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마땅히 이러한 견해를 끊고
다른 중생들에게 이를 말하여
바로 공삼매의 해탈문에 들게 하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보살은 이러한 마음가짐에 의해 방편의 힘을 성취하는 까닭에
중도에 굳이 최고의 진리를 깨달으려 하지 않으며,
또 남을 위하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실천하는
4무량심삼매(無量心三昧)를 잃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 보살은 방편의 힘을 성취하였기에
훌륭한 법이 더욱 불어나고 모든 선근이 이익으로 통하며,
또 보살의 모든 능력과 모든 깨달음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수보리여,
보살은 ‘중생들은 오랫동안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실재한다고 믿어 왔으나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이러한 견해를 끊고
다른 중생들에게 이를 말하여
바로 무상삼매의 해탈문에 들게 하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보살은 이러한 마음가짐에 의해 방편의 힘을 성취하는 까닭에
중도에 굳이 최고의 진리를 깨달으려 하지 않으며,
또 남을 위하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실천하는 4무량심삼매를 잃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 보살은 방편의 힘을 성취하였기에
훌륭한 법이 더욱 불어나고
모든 선근이 이익으로 통하며,
또 보살의 모든 능력과 모든 깨달음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수보리여,
보살은
‘중생들은 오랫동안 변함이 없다는 생각과
즐거움뿐이라는 생각과
깨끗하다는 생각과
나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으로 온갖 것을 만들어냈으나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변함이 없다는 생각과 즐거움뿐이라는 생각과
깨끗하다는 생각과
나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끊고
다른 중생들에게 이를 말하되,
이 법은 무상하여 항상 되지 않으며
이것은 고통스러워 즐겁지 않으며
이것은 더러워 깨끗하지 않으며
이것은 나라는 것이 없어 나가 아니라고 말하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보살은 이러한 마음가짐에 의해 방편의 힘을 성취하는 까닭에
짐짓 부처님의 삼매를 얻지 않고
불법을 성취하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족하지 않고
무작삼매의 해탈문에 들어가되
중도에 최고의 진리를 깨닫지는 않는다.
보살은
‘중생들은 오랫동안 얻을 수 있는 실체가 있다고 믿어왔고
지금도 그것을 얻고자 하며
이전에도 유상(有相)을 행하더니 지금도 유상(有相)을 행하며,
이전에도 뒤바뀐 생각이더니 지금도 뒤바뀐 생각이며,
이전에도 대상이 서로 얽혀 있는 모양을 행하더니
지금도 대상이 서로 얽혀 있는 모양을 행하며,
이전에도 실없는 모양을 행하더니 지금도 실없는 모양을 행하며,
이전에도 그릇된 견해를 행하고 지금도 그릇된 견해를 행하니,
내가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다음
중생들로 하여금 이러한 모양을 모두 끊게 하고
다른 중생들에게도 모든 허물을 떨쳐 버리라고 말하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생각해야 하고
이러한 마음가짐에 의해 방편의 힘을 성취하는 까닭에
비로소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ㆍ
무기(無起)ㆍ무생(無生)ㆍ무소유(無所有) 등의 법상(法相)을 깊이 관찰할 수 있다.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하면
설령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 머물더라도
대상을 일으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또 수보리여,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한다면
그 보살은 반드시 다른 보살에게
‘이 모든 대상을 어떻게 배워야 공(空)에 들어가되 공을 깨닫지 않고,
무상(無相)ㆍ무작(無作)ㆍ
무기(無起)ㆍ무생(無生)ㆍ무소유(無所有)에 들어가되
무소유를 깨닫지 않고
능히 반야바라밀을 닦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해 다른 보살은 가령 단지 모든 것은
공ㆍ무상ㆍ무작ㆍ무기ㆍ무생ㆍ무소유라고 생각할 뿐
먼저 이러한 마음을 성취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가르치지는 말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 보살은 과거세의 부처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지 못하고
아직 아비발치의 지위에 머무르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이 보살은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고유한 모양을 설명할 수가 없어서
바른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 보살은 아직 아비발치의 지위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들은 적이 있든 없든 이와 같이 바른 답을 제시하면
이야말로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라.”
“세존이시여,
이러한 까닭에 많은 중생들이 깨달음을 구해도
이와 같이 바른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이는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비발치의 지위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얻는 보살은 소수이며,
게다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아야만
이와 같이 바른 답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땅히 이러한 보살의 선근은 밝고 깨끗해서
어떤 세상의 천인이나 아수라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 어떤 보살마하살이
꿈속에서도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와 성문의 지위와 벽지불의 지위를 탐내지 않으며
모든 법은 꿈과 같다고 관찰하여 짐짓 깨달음을 얻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물러남이 없는 지위에 있는 보살의 모양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 수보리여,
만약 어떤 보살이 꿈속에서도
부처님께서 대중들 및 수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백천만이나 되는 무수한 비구승들과 백천만억이나 되는 무수한 대중들이
부처님을 공경하여 주위를 맴돌 적에
이들을 위해 법을 말씀하시는 모양을 본다면,
이야말로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모양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 수보리여,
만약 어떤 보살이 꿈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몸이 허공에 있으면서
대중들을 위해 법을 말하거나 몸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고
잠에서 깨어나
‘나는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가 모두 꿈인 줄을 알았으니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중생들을 위해 이와 같은 법을 말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이야말로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모양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 수보리여,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그 세상에는 지옥과 아귀와 축생이라는 이름조차도 모두 없어지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수보리여,
보살은 비록 꿈속에서라도 축생을 보게 되면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부지런히 정진하여 얻을 때
그 세상에는 지옥과 아귀와 축생이라는 이름조차도 모두 사라지이다’하고
기원하기 때문이니,
이야말로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모양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 수보리여,
보살은 만약 성곽에 불이 나는 것을 보면
곧 마음속으로 ‘내가 꿈속에서 보았던 모양도 이와 같았다’고 생각하니,
보살이 이와 같이 꿈에서 본 대로 모양을 성취하면
이야말로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모양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나아가 만약 ‘나의 이러한 모양이 진실로 아비발치의 경지라면
이로써 나의 말에 능력이 있을 터이므로
이제 성곽의 불길이 바로 꺼지리다’라고 말할 때 정말로 불길이 꺼진다면
이 보살은 앞의 부처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았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만약 불길이 집에서 집으로 계속 번지고 마을에서 마을로 옮겨간다면
이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아직 받지 않았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이것은 중생들에게 바른 법을 파괴한 무거운 죄가 있어서
그로 인한 재앙을 현세에 받는 것이니,
이러한 까닭에 이야말로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모양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 수보리여,
이제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모양을 다시 말할 것이니,
만약 남자나 여자가 귀신에게 붙잡히게 되면
이에 대해 보살은 마음속으로
‘만약 내가 일찍이 앞의 부처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고
마음 깊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해 청정한 행을 닦고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을 여의었다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얻지 못할 리는 없을 것이다.
지금 시방의 헤아릴 수 없이 아득히 많은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고 보지 못하시는 것이 없으며,
얻지 못하시는 것이 없고 깨닫지 못하시는 것이 없으니,
만약 모든 부처님께서 나의 깊은 마음을 아신다면
나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이로써 나의 말에 능력이 있을 것이므로
이제 이 남자나 이 여인은 사람 아닌 것에 붙잡혀 있지만
사람 아닌 것은 마땅히 속히 사라지기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보살이 그러한 말을 할 때 사람 아닌 것이 도망치지 않는다면
이 보살은 앞의 부처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아직 받지 못하였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만약 이 보살이 이런 말을 할 때 사람 아닌 것이 도망친다면
이 보살은 앞의 부처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았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 수보리여,
아직 수기를 받지 못한 어떤 보살이
‘만약 내가 이미 앞의 부처님에게서 수기를 받았다면
이제 사람 아닌 것은 반드시 이 사람들을 놓아주고 사라질 것이다’라고 서원 한다.
이때 악마가 바로 그곳으로 와서 사람 아닌 것을 사라지도록 한다.
왜냐 하면 악마의 능력이 사람 아닌 것보다 뛰어나서
사람 아닌 것이 바로 떠나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살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의 능력에 의해 사람 아닌 것이 멀리 사라졌다’고 하여
정작 악마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보살들까지 경멸하고 천시하면서
‘나는 앞의 부처님에게서 이미 수기를 받았지만
그대들은 앞의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아직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에 교만심이 한껏 늘어나고
이로써 살바야인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를 멀리하게 된다.
이 보살은 사소한 인연에 의해 교만심이 생겼으니,
이렇게 되면 방편의 힘이 없어져서
성문의 지위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게 됨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이와 같은 서원이 악마의 장난을 끌어들이는 원인이 되었으며,
여기에서 보살이 만약 선지식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악마에게 더욱 단단히 묶이게 되니,
수보리여,
이것이 악마의 장난인 줄 반드시 알라.
또 수보리여,
악마는 이름을 인연으로 삼아 보살을 파괴하고 어지럽히고자
온갖 모양으로 변화하여 보살에게 와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그대는 일찍이 모든 부처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은 적이 있다.
그대의 이름은 이것이었고,
부모의 이름은 이것이었고,
형제자매의 이름은 이것이었고,
나아가 일곱 생의 부모 이름은 이것이었으며,
그대는 이러한 나라,
이러한 성(城),
이러한 마을,
이러한 집안에 태어났다’고 하되,
만약 듣는 이의 성품이 온화하다 싶으면
문득 ‘전생에도 성품이 그러했다’고 말하고,
그 성질이 급하다 싶으면 문득 ‘전생에도 그러했다’고 말한다.
만약 이 사람이 아련야(阿練若)에서 수행하거나
걸식을 하거나 누더기 옷을 입거나
밥을 먹은 후에 음료를 마시지 않거나
한자리에서만 먹거나 양에 맞게 먹거나
공동묘지에 머물거나 한데에 머물거나
나무 밑에 앉거나 눕지 않고 항상 앉아 있거나 좌구 위에 앉아 있거나
욕심을 줄이고 만족할 줄 알아
멀리 벗어나 있거나
다리에 바르는 기름을 받지 않거나
말을 적게 하고
논의를 적게 함을 즐기면,
‘그대는 전생에도 아련야에서 수행을 하였고,
더 나아가 말을 적게 하고 논의를 적게 함을 즐겼으며,
금생에도 두타(頭陀)의 공덕이 있지만
전생에도 역시 두타의 공덕이 있었다’고 악마는 말한다.
이 보살은 자신의 이름 및 두타 공덕에 대한 악마의 이야기를 듣고
이러한 인연으로 교만심을 내니,
악마는 다시 말하기를
‘그대는 이미 과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았다.
왜냐 하면 그대는 지금 아비발치 공덕의 모양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고 한다.
수보리여,
하지만 이 사람에게
내가 말한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원래 모양이
전혀 없음이겠느냐?
수보리여,
이 보살은 악마에게 붙잡혀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이 사람에게는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모양은 전혀 없고
단지 악마가 말하는 이름만을 듣고
문득 다른 보살들을 경멸하고 천시하였기 때문이니,
이 보살은 이름으로 인하여 악마의 장난에 빠졌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 수보리여,
다른 보살도 이름으로 인하여 악마의 장난에 빠지게 되니,
악마가 그에게 와서 말하기를
‘그대는 일찍이 앞의 부처님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았으니
그대가 부처가 되면 이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이 보살은 자신이 원래 생각하고 있던 이름이
악마의 말과 같음을 알고
지혜와 방편이 없는 까닭에
마음속으로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면
그에 어울리는 이름을 생각했었는데
이 비구가 말하는 것이 내가 원래 생각했던 것과 일치하는구나’하고 생각하여
문득 악마에게 집착하고
비구를 믿어 그 말을 받아들이며
단지 이름이 원인이 되어 다른 비구들을 경멸하고 천시한다.
수보리여,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내가 말한 아비발치의 지위에 있는 보살의 원래 모양이 전혀 없어서
다른 보살들을 경멸하고 천시하는 까닭에
살바야인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를 멀리한다.
이 사람이 만약 방편과 선지식을 멀리한다면
반드시 악지식을 만나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 이 보살이 금생의 몸으로
앞의 모든 마음을 참회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멀리한다면
오랫동안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고 나서
비로소 반야바라밀에 의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모든 마음의 죄가 무겁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이것은 비구가 4중금(重禁)5) 가운데 하나나 둘을 범하면
더 이상 사문이 아니고
부처님의 자손이 아닌 것과 같아서
이 보살도 이름에 의해 다른 보살들을 경멸한 까닭에
이로 인한 죄가 앞의 4중금보다 더 무거우며,
아니 4중금은 그냥 두고 오히려 5역죄(逆罪)보다도 더 무거운 것이다.
이름이 인연이 되어
악마의 교묘한 장난이 일어난 줄을
보살은 반드시 알아서 이를 멀리해야 한다.◂
또 수보리여,
악마는 보살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행하는 것을 보고
문득 다가와서 말하기를
‘선남자시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행하는 것을
여래께서는 항상 칭찬하셨습니다’라고 한다.
수보리여,
하지만 나는 보살이 외진 곳에 있는 아련야나 조용한 곳이나
산 속이나 나무 밑이나 들판에 있는 것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세존이시여,
만약 외진 곳에 있는 아련야나 조용한 곳이나
산 속이나 나무 밑이나 들판에 있는 것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떤 것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합니까?”
만약 보살이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버리고
이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설령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해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또 외진 곳에 있는 아련야나 조용한 곳이나
산 속이나 나무 밑이나
들판에 있는 것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나도 허락하는 바이다.
만약 보살이 밤낮으로 수행하면서
이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설령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해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또 외진 곳에 있는 아련야나 조용한 곳이나
산 속이나 나무 밑이나 들판에 있는 것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보리여,
악마가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칭찬하는 외진 곳에 있는 아련야나 조용한 곳이나
산 속이나 나무 밑이나 들판은
설령 이 보살이 이와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해도
정작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멀리하지 않고
반야바라밀을 닦지 않는다면
어떤 지혜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 잡스럽고 뒤섞인 행이라고 한다.
이 보살은 이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청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마을 가까이에 살면서도
마음이 청정한 보살들과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을 멀리하는 보살들과
선하지 않은 행동에 물듦이 없이
모든 선정 및 해탈로 이끄는 삼매와 신통력을 얻고
반야바라밀에 통달한 보살들을 경멸한다.
이 방편이 없는 보살은
설령 새와 짐승들과 도적들과 악귀만이 들끓는
100유순이나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백천만억의 세월을 보내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의 원래 모양을 알지 못하며
마음 깊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할 줄도 모른다.
이러한 보살은 달리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을
닦는 이라고 부르기도 하니,
만약에 이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음에 탐착하고 의지한다면
이 사람은 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내가 허락한 멀리 떨어져 수행하는 법을 이 사람은 알지 못하며,
이 사람에게는 이와 같이 멀리 떨어져 수행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수보리여,
어떤 악마는 보살에게 와서
허공에 머무른 채로 말하기를
‘훌륭하고도 훌륭합니다.
그대가 행하는 것은 원래의 멀리 떨어져 수행하는 법이며
부처님께서도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
그대는 신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다’라고 한다.
불도를 닦는 다른 비구들의 심성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을 보고는
문득 경멸하는 마음을 내어
‘그대들은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을 닦는 이들이다’라고 말한다.◂
수보리여,
이 보살은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을
원래의 멀리 떨어져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고,
원래의 멀리 떨어져 수행하는 것을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이라고 하여
이와 같이 말하는 과오에 의해 공경심을 갖지 않으니,
마땅히 공경할 것을 경멸하고
마땅히 경멸할 것을 오히려 공경하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사람 아닌 것이 나를 생각하고 찾아와서
나를 도와주는 것을 보았다.
부처님께서 허락하신 원래의 멀리 떨어져 수행하는 법을 나는 행하고 있다.
그대들은 마을 가까이에 있으니
누가 그대들을 생각하고 누가 그대들을 도와주겠는가?’라고 하고는
다른 보살들과 청정한 수행자들을 경멸한다.
이러한 사람과 이러한 보살은 전타라(旃陀羅)임을 반드시 알아야 하며,
이러한 사람은 다른 보살들을 냄새와 오물로 더럽힌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며,
이러한 사람은 겉모양만이 보살과 비슷함을 반드시 알아야 하며,
이러한 사람은 모든 세상의 천신과 인간 가운데에 있는 큰 도적이고,
스님의 모습을 흉내낸 도적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불도를 구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러한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 하면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증상만인(增上慢人)6)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살바야를 소중히 여기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소중히 여겨서
깊은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하며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하고자 한다면
결코 이러한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 것이니,
언제나 자신의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을 구하고
언제나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를 멀리하고 두려워해야 하며,
그곳의 사람들에 대해 반드시 자ㆍ비ㆍ희ㆍ사의 4무량심(無量心)을 내어서
‘내가 반드시 이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이러한 악★★은 없을 것이며,
설령 그러한 악★★이 일어나더라도 속히 없어질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수보리여,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은 곧 보살이 가진 지혜의 힘에 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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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7조도품(助道品)을 말한다.
즉 도품(道品)은 범어 bodhi-pākṣika의 의역(意譯).
보리분(菩提分)ㆍ각지(覺支) 등으로도 한역(漢譯)한다.
깨달음의 지혜를 얻기 위한 37종류의 실천 수행 방법을 말한다.
즉 4념처(念處) ‧ 4정근(正勤) ‧ 4신족(神足) ‧ 5근(根) ‧ 5력(力) ‧ 7각지(覺支) ‧ 8정도(正道) 등이다.
2)
여덟 종류의 수승한 공덕을 갖추고 있는 물.
또 8지덕수(支德水)ㆍ8미수(味水)ㆍ8정수(定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정토에는 8공덕의 연못이 있고,
8공덕수가 그곳에 가득 차 있다.
즉 징정(澄淨)ㆍ청랭(淸冷)ㆍ감미(甘美)ㆍ경유(輕輭)ㆍ윤택(潤澤)ㆍ안화(安和)ㆍ제기갈(除饑渴)ㆍ장양제근(長養諸根) 등 여덟 종류의 수승한 공덕을 말한다.
또 수미산을 에워싸고 있는 7내해(內海)에 8공덕수가 가득 차 있고,
감(甘)ㆍ냉(冷)ㆍ연(軟)ㆍ경(輕)ㆍ청정(淸淨)ㆍ무취(無臭)ㆍ음불상후(飮不傷喉)ㆍ음불상복(飮不傷腹) 등의 수승한 공덕이 있다고 한다.
3)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즉 첫째는,
①탐병(貪病):
부정관(不淨觀)을 닦아서 다스림,
②진병(瞋病):
자비관(慈悲觀)을 닦아서 다스림,
③치병(癡病):
인연관(因緣觀)을 닦아서 다스림이다 (『涅槃經』39卷).
둘째,
①방대승(謗大乘):
대승(大乘)을 비방하는 것,
②5역죄(逆罪):
살부(殺父)ㆍ살모(殺母)ㆍ살아라한(殺阿羅漢)ㆍ출혈불신(出血佛身)ㆍ파화합승(破和合僧) ③일천제(一闡提):
이는 부처의 성품이 없는 것으로 치료하기 힘든 세 가지 병이 된다고 한다(『涅槃經』11卷).
4)
인도에 있는 모든 외전(外典)을 말한다.
5)
4중금계(重禁戒)라고도 한다.
4바라이죄(波羅夷罪)를 말한다.
수행승(修行僧)이 지켜야 할 계율(戒律) 가운데 가장 중대한 네 가지 죄이다.
이 계율을 범하면 승려의 자격을 잃게 된다.
즉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음행(婬行)ㆍ망어(妄語)를 말한다.
6)
불도(佛道)를 깨닫지 못하고서도 깨달았다고 생각하여 잘난 체하는 교만심(憍慢心)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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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ichel Delpech - Belle-Ile-En-Mer.lrc
● 아비발치와 아비지옥의 공통점
참고 용어풀이
아비지옥은 극심한 고통을 받는 무간지옥을 가리킨다.
반면 아비발치는 더이상 범부나 이전 수행 상태로 떨어지지 않는 불퇴전의 높은 수행자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일단 둘다 한글로 아비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범어로는 아비지옥의 아비는 avīci 다.
불퇴전을 뜻하는 아비발치는 avivartika 또는 avinivartanīya 라고 적는다.
avi 까지는 철자가 비슷하다.
생사현실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 무엇을 얻을 수 없다.
생사현실에 본래 생사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이런 사정을 본불생이라고 칭한다.
이를 이론상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을 현실에 적용해 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들 이론적 내용이 현실에서 효용을 발휘해야 할 경우는
생사현실이 그 뜻에 맞지 않고 불쾌와 고통을 주는 상황에서다.
예를 들어 생사현실이 자신의 뜻에 비교적 들어 맞을 경우라고 하자.
그런데 이 생사현실에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하자.
또 자신이나 생멸과 생사를 얻을 수 없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생사현실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그 이론을 여기에 적용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사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해도
생사현실이 생생하게 얻어진다.
그런 가운데 견디기 힘든 억울함이나 불쾌감, 공포와 고통을 가져다 준다고 하자.
이 경우 앞의 이론을 적용하면 그 상황도 하등 문제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 따로 되기 쉽다.
그래서 만일 그 상황에 일반적으로 행하게 되는 반응을 행하면
결국 이론적 이해와 달리 원래의 범부 상태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를 『금강경』에서는 가리왕이 인욕선인을 별 이유없이 체포해
고문을 가하는 상황으로 제시한다.
『대반야바라밀다경』이나 『소품반야바라밀경』 『금강경』등에서
제시하는 내용이 옳다면 이 상황도 문제가 될 리 없다.
그런데 그 내용을 아무리 이해해도
현실에서 그런 상황에 처하면 곧바로 물러나기 쉽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런 상황에서 경전에서 제시된 내용을
적용해서 직접 그것을 평안히 참고 견딜 것을 요구받는다.
그것이 성공하면 이론과 현실이 일치된 상태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극단적으로 고통과 공포를 겪는 상황을
아비지옥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비지옥의 상태와 아비발치의 상태는 관련성이 있다.
수행자가 아비지옥과 같은 상황에서 겪는 고통을 대면해서
그 상태에서 일체가 공함을 관하고 평안히 임할 수 있다면
불퇴전위에 이르렀다고 할만하다.
그런데 수행자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쉽지 않다.
본인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론상은 그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런데 손가락 하나만 상처가 나도 쉽게 물러나게 된다.
조금만 다른 이가 불쾌하게 하면 또 쉽게 물러나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이가 불쾌하게 침해하면 또 마찬가지가 된다.
이런 여러 상황이 다 문제가 된다.
이런 여러 경우 다른 이에게 그런 상황도
본래 그런 것을 얻을 수 없으니
평안하게 참으라고 말하기는 쉽다.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임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이것이 수행의 문제다.
높은 수행자가 되기 위해 수행자가 넘어야 할 고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아비지옥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
이 아비지옥의 상태를 발꿈치나 발치 넘어로 보내야 아비발치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
◈Lab value 불기2564/06/05 |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La Mordue - Maman.lrc La Mordue - Maman ○ 2018_0418_094541_nikon_ar45.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ohn Singer Sargent-mrs-henry-marquand-1887 ○ 2016_1008_150508_cano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1280px-Lake_Towada_from_Ohanabe_2008 ♥Svalbard and Jan Mayen (Norway) ,Barentsburg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잡담♥시리즈로 이어지는 망상 생사현실은 실답지 않다. 그런데 인과를 따른다. 마치 게임과 같다. 만화나 연극 영화와도 같다. 하나하나 실답지 않다. 그래도 시리즈로 이야기가 된다. 만일 생사현실 측면에서 누구와 내기를 한다고 하자. 라이터를 놓고 이것을 3 번 만져서 불이 켜지는가. 아니면 물이 나오는가, 이것을 놓고 내기를 한다고 하자. 불이 켜지는 쪽에 돈을 걸면 거의 대부분 돈을 벌게 된다. 이것이 인과다. 생사현실에 생멸이 없다는 것은 이 하나하나의 단면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느 부분을 가리키면서 그 부분이 자신이라거나 라이터라고 상을 취한 이후는 다른 측면이 적용된다. 그 하나하나는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상을 취하고 임하면 이후 각 내용을 그런 관계로 자꾸 얻게 된다. 게임과도 같다. 게임 화면을 하나 놓고 본다면 그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화면 내용은 전혀 실답지 않다. 그러나 그 바탕에서 어느 부분에 커서를 놓고 클릭하면 어김없이 아이템이 얻어진다. 만화와도 같다. 종이에 선을 그린다고 거기에 영희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영희가 아니다. 그래도 선을 그려나가면 나중에 영희모습이 그려진다. 요즘 듣는 노래도 마찬가지다. 자꾸 성자매들이 등장한다. 개인 경험상 성자매들과 관계가 별로 좋지 않다. 상당히 불편하다. 그런 사정들로 본인은 SNS 활동을 거의 다 중단했다. 그런데 시리즈로 계속 내용이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법화경』 안락행품을 중시한다. 평안하게 안락하게 수행을 잘 성취하려면 부처님의 가피가 필요하다.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ichel Delpech - Belle-Ile-En-Mer.lrc 많이 다르다. 원수같다. 분해서 본다. 원래 네 잘못이다. 빨리 고쳐야 한다. 네 잘못이다. 보살이 되려면 물어봐야한다. 오해 오해 네 잘못이다. 가볍게 수행을 말하더니 ... 잘 하지 못한다... 대략 이런 내용으로 들린다. 이런 감상으로 인해 분노가 더 일어난다. 그래서 가사를 붙여 놓고 연구중이다. 그런데 원 가사 자체가 지명들로 별로 말이 되지 않는 가사들이다. 일단, 쉬면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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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k0007t0227.html#3150 sfed--소품반야바라밀경_K0007_T0227.txt ☞제7권 sfd8--불교단상_2564_06.txt ☞◆veif3150 불기2564-06-05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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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0007
【범】sādhu 사도(娑度)라 음역. 제 뜻에 맞음을 칭찬하는 말. 좋다ㆍ그렇다ㆍ옳다의 뜻.
답 후보
● 선재(善哉)
설장법무소외(說障法無所畏)
성(性)
성교(聖敎)
성문승(聲聞乘)
성유식(性唯識)
세간(世間)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pt op tr]
● 소품반야바라밀경_K0007_T0227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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