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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수행자의 덕목 본문

연구자료

수행자의 덕목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7. 9. 15. 01:19



®

sfxx--수행자의-덕목.txt.htx

sfxx--수행자의-덕목.txt

http://buddhism007.tistory.com/3547

● 이하 글은 단상_조각글 내용을 주제별로 '편집중'인 상태의 글입니다.



>>>

경전을 많이 보는 입장에서는 

경전 첫부분을 가볍게 대하기 쉬운데 

알고보면 이 첫부분이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게 된다. 


수행을 통해서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고 

또 불국토를 여행할 때 

그리고 다른 국토의 부처님을 만나 뵐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다른 부분은 못 외어도 

이 첫부분은 다 외어야 한다고 보는데 

쉽지는 않다. 


게송을 외우고 

제목을 외운 다음 

제목에 이 내용을 다 붙여 넣는 작업이 

또 이뤄져야 하는데 


주의할 점은 재미없다고 여길 때는 

하면 좋지 않고 

재미있고 잘 될 때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

대반야바라밀다경 첫 부분에 

아라한이나 보살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은 수행자가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상태를 서술어나 형용사를 동원해 

설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것은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도달해야 할 목표상태이기도 하다. 


한글로 살펴도 되는데 

암기과정에서는 한자어가 훨씬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자어로 해도 상당히 길다. 외우기 힘들다. 



復有無量無數菩薩摩訶薩衆

부유무량무수보살마하살중


一切皆得 諸陁羅尼 及三摩地  

일체개득 제다라니 급삼마지


常居空住 行無相境 無分別願

상거공주 행무상경 무분별원


恒現在前 

항현재전 


於諸法性 具平等忍

어제법성 구평등인


得無㝵辯 不退神通

득무애변 불퇴신통


言行淸高 翹勤匪懈

언행청고 교근비해


演暢正法 無所希求 

연창정법 무소희구 


應理稱機 離諸矯誑 於深法忍 到究竟趣 斷諸怖畏

응리칭기 리제교광 어심법인 도구경취 단제포외


降伏衆魔 滅一切惑 摧諸業障 智慧辯才 善巧具足 

항복중마 멸일체혹 최제업장 지혜변재 선교구족 


已無數劫 大誓莊嚴 含笑先言 舒顏和視 讚頌美妙 辯說無窮 

이무수겁 대서장엄 함소선언 서안화시 찬송미묘 변설무궁 


威德尊嚴 處衆無畏 氣調閑雅 進趣合儀 巧演如流 多劫無盡 

위덕존엄 처중무외 기조한아 진취합의 교연여류 다겁무진 


善觀 諸法皆同 幻事 陽焰 夢境 水月 響聲 

선관 제법개동 환사 양염 몽경 수월 향성 


亦如 空花 鏡像 光影 又等 變化及尋香城

역여 공화 경상 광영 우등 변화 급심향성


知皆無實 唯現似有

지개무실 유현사유


心不下劣 無畏泰然 一切法門 皆能悟入 

심불하열 무외태연 일체법문 개능오입 


有情勝解 心行所趣 通達無㝵 而拔濟之

유정승해 심행소취 통달무애 이발제지


成最上忍 善知實性 攝受大願 無邊佛土 普於十方 

성최상인 선지실성 섭수대원 무변불토 보어십방 


無數諸佛 等持正念 常能現前 爲度有情 歷事諸佛 

무수제불 등지정념 상능현전 위도유정 력사제불 


勸請久住 轉正法輪 滅諸隨眠 見趣纏垢 

권청구주 전정법륜 멸제수면 견취전구 


遊戲 無量百千等持 

유희 무량백천등지 


引發 無邊殊勝善法 

인발 무변수승선법 



是諸菩薩摩訶薩衆

시제보살마하살중


具如是等 無量功德

구여시등 무량공덕



출처: http://buddhism007.tistory.com/2078#gsc.tab=0 [불교진리와실천]



이것도 필요하면 

대략 28 글자나 24 글자씩 묶어 방을 만들어 

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형용사는 대단히 중요하다. 


요즘 현실에서는 선거가 있어서 

매번 누가 더 낫다 아니다 이런 문제가 보고가 되는데 

연예인 아이돌 팬클럽 회원들간에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곧바로 패싸움을 벌이기가 쉽다. 

그 만큼 서로 예민한 것이다. 


그런 투표로 얻는 자리가 

그저 오로지 성실하게 봉사만 하는 지위여서 

예를 들어 

제각각 입시가 바쁜 고등학교 3 학년에서 학급반장이 된다거나 

어떤 취미를 위해 모인 동호회에서 총무를 

뽑는 그런 경우라면 별 문제가 없는데 


현실에서는 아파트 동 대표나 

재건축 조합 대표 선발부터는  

그 문제가 조용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지위에서 행할 수 있는 

재량권한의 범위가 상당히 넓고 

그에 따라 이해관계가 대단히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시끄러운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그런 대표에 대해서 

그 대표가 어떠어떠한 성품을 갖고 어떤 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희망만은 

잘 나열해볼 수는 있다. 


국어사전을 다 동원해서 

좋다고 보는 형용사 내용을 다 뽑아내면 

정말 좋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이가 있다면 

좋은데 

과연 그런가가 또 문제다. 


mun 님은 황제로서 

자신에게 부족한 성품을 뽑아서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새로운 다라니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침인용보배라는 다라니를 자주 제시한다. 


침묵하고 인내하고 용서하고 보시하고 배려한다. 


이런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옆에서 보면 이것이 mun 님에게서 

부족함을 대부분 곧바로 아는 것이다. 


무슨 이슈만 있으면 

자신이 공평한 입장에서 그 문제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린다면서 

시끄럽고 

매사 인내하지 않고 곧바로 응징보복형으로 안인수행교관모드로 임하고 

따라서 용서란 단어는 자신의 사전에 없다고 제시하고 

그리고 지극히 인색해서 무엇하나 다른 이에게 베푸는 경우를 보기 힘들고 

또 자신의 입장과 자신이  처한 어려운 사정만 매번 내세우고 

다른 이를 배려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런 내용은 구두삼매나 말뿐인 다라니임을 

쉽게 보는 것이다. 


그래도 그런 내용을 뽑아서 

매일 하루를 시작할 때 사홍서원의 내용과 함께 

점검을 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고전 가운데에서는 

이처럼 각 지위에 필요한 성품을 뽑아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공자선생님은 인의예지신 이런 내용을 나열했다면 

각 도사별로 

그리고 각 위치별로 어떤 품성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런 것을 나열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조직의 왕은 인효학강경총명검 해야 한다고 하고 

그 왕의 재상이나 일급비서참모는 충직관후변명용서 해야 한다고 하고 

그리고 장군이나 조직의 총무나 행동대장은 신지엄명용인염과 해야 한다고 하는 등으로 

각 위치마다 필요하고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각종 좋은 품성을 

뽑아 나열하는 경우도 있다. 



또 좀 더 자세히 살피면 

태공망과 같은 이는 

외관과 실질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으므로 

이것을 잘 살펴야 한다고 제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항목을 자세하게 나열하는데 

어질면서 못난 자  

온화하고 선량하면서 도둑질하는 자 

겉모습으로는 공경하면서도 마음은 교만한 자 

겉은 겸손하고 삼가면서 속마음에는 공경심이 없는 자 

자상하면서 무정한 자 

침착하면서 성실하지는 못한 자 

꾀를 잘 내면서 결정은 하지 못하는 자 

과감한 것 같으면서 능하지 못한 자 

성실하면서 믿음이 없는 자

...

이런 식으로 나열하고 


또 상대가 그럴 때 어떻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다양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상당히 복잡한 것이다. 



자신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보지만, 

어떤 이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어떤 일을 시키려고 할 때 

같은 값이면 어떤 성품을 갖고 있는 이가 좋다고 보는가는 

쉽게 아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하나하나 뽑아 나열하면 

이제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성인이나 신이나 수퍼맨과 같은 사람을 

찾는 것임을 알게 되지만, 

여하튼 그런 품성을 나열해서 

하나하나 갖추는 것이 요구되는 것은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단 다음이라고 본다. 


자신이 다른 이가 어떠어떠했으면 좋겠다고 할 때 

자신의 뜻과 같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그러나 그렇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그 방안이 일단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이게 인자하고 자비롭게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조금 잘못해도 관용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등등으로 생각할 때  


그런데 상대는 보통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 때 상대를 그렇게 변화시키려면 

우선 자신부터 다른 이를 상대할 때 

그처럼 대해야 한다고 제시되는 내용이다. 



공자와 같은 이들이 요구하는 규범 내용은 

그저 다른 입장에서 상대에게 바라는 내용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 상대의 규범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신하의 입장에서 왕에게 바라는 품성이  

인이라고 본다면 

그것을 뽑아 왕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나 불교 경전에서는 

이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신하가 왕에게 인자하게 대해주기를 바란다면 

먼저 신하가 자신의 부하에게부터 인자하게 임하고 

또 왕에게 대해서도 그런 마음으로 대하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경우도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수행자는 다른 이를 바라보면서 

어떠어떠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을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는 것이다. 



아들이 자신에게 효성스러웠으면 한다. 

아랫사람이 자신에게 충성을 다했으면 한다. 

주변인들이 자신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처신했으면 한다. 


다른 이가 자신의 목숨을 해치지 않았으면 바란다. 

다른 이가 자신의 재산을 훔치거나 침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 이가 자신의 아내나 딸 또는 배우자를 함부로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 이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


이런 식으로 다양한 희망을 가질 때 


그 내용을 바로 자신이 취해 

다른 이에게 그렇게 행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로 인해 조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위사람이 자신을 잘 돌보아주기를 바란다면 

그것을 위사람에게 윤리규범으로 떡 내밀어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그 내용을 그에 대해서 행하는 것이 먼저 요구되는 것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랫사람이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고 충직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자신이 그런 아랫사람에게 먼저 충성을 다하고 충직하게 

임할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장뱔쟌이 빵가게 주인이 자신이 배고플 때 

빵을 주기를 바란다면 


빵가게에서 빵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훔칠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장발쟌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를 대할 때 

자신이 가진 좋은 것들 가운데 무엇인가를 

먼저 베풀어야 한다고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행자가 지켜야 하는 

계율이나 덕성 품성의 내용도 

조금 달리 제시되는 사정이 있다. 



수행자 가운데는 아라한이나 보살을 

서술할 때 각 품성을 나열하는 것은 

그런 수행결과를 성취한 아라한이나 보살들이 

그런 품성을 지녔다고 서술하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를 대하는 수행자는 

자신이 수행을 통해 

노력해 얻어내야 할 목표로 그런 품성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mun 님처럼 그런 내용을 나열해 외운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에서 그런 성품을 바로 갖게 된다고 보지 않지만, 

그래도 노력할 방향이나 내용은 알아야 

수행을 시작하게 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런 내용을 잘 정리해 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각 경전마다 그렇게 제시되는 내용을 놓고 

그것만 외우고 갖추면 된다고 볼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여하튼 

일단 제시된 그런 핵심 내용을 놓고 

수행자 자신이 수행을 통해 

그런 품성을 하나하나 갖추어 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

라이터 화두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별 가치가 없어 보일지몰라도 

서로가 서로를 돕지 않으면 

대단히 곤란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본인의 앞글과 이런 내용이 

혹시 모순되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만 생각하면 

현실이 어떻게 되던 다 무방하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의 글 취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맡아 하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것을 단순히 자신의 즐거움이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면 

곤란한 것이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두는 의미를 

온 생명을 제한없이 모두 좋고 좋게 하는 취지에서 

그리고 무량행문의 수행의 차원에서 

즐겁게 잘 해야 하고 


또 그것이 잘 성취된 후에는 

더 높은 차원으로 그 뱡향을 돌려 

회향을 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일부 연구원은 

본인의 조각글이 마치 

세상에서 하는 일이 

하나같이 다 무의미하다고 본인이 비판한 것처럼 

오해하는 것으로 본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유마힐소설경에서 

유마힐거사는 

방편이 없는 지혜 

또는 지혜가 없는 방편은 속박이고  


반대로 방편이 있는 지혜 

지혜가 있는 방편이 

진정한 해탈이라고 제시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생사가 고통이라고 

반드시 생사를 떠나야 한다고 집착하는 것도 

속박이라고 해야 하고 


진정한 해탈과 열반은 

방편을 통해 생사를 받아나가면서 

중생제도와 불국토장엄 성불을 위해 

정진해나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한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본인 글의 본 취지에 대해 

오해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톱니바퀴 부품이 하나 보이지 않게 되자 

어디서 이 톱니바퀴를 구해야 할 지 

다른 물건들을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런 부품을 구할 도리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똑같은 기기를 또 하나 사야하는가 

생각을 했는데 

찾다 찾다 수리를 포기하려는 순간 

그 부품을 찾게 되어 다행이었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 옥상기지에서 

게송 하나를 보았는데 


그 내용을 올리고 글을 마치기로 한다. 




不可言說異類法,  不可言說異類心,

不可言說異類根,  不可言說異類語,

불가언설이류법,  불가언설이류심,   

불가언설이류근,  불가언설이류어,   


  다른 종류 법들을 말할 수 없고                                   

  다른 종류 마음을 말할 수 없고                                   

  다른 종류 근기를 말할 수 없고                                   

  다른 종류 언어를 말할 수 없네 



대방광불화엄경 아승기품 제 30 에서






>>>

경전을 보면서 처음 서품에 나오는 

수행자의 성품이 중요하다고 이전 글에 적었는데 

그것은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성품 가운데 

우선적으로 중요한 성품을 그처럼 

나열한 것이기에 그것부터 

먼저 갖추도록 평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보기에 그런 것이다. 


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 발췌해 옮겼는데 

생각해보면 대반야바라밀다경은 판본이 대단히 많다. 


그런데 여러 판본별로 매번 달리 외우는 것보다는 

대반야바라밀다경 초분에 나오는 내용으로 

통일해서 정리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정리를 해보았다. 





K0001V01P0003a11L; 



復有無量無數菩薩摩訶薩衆

부유무량무수보살마하살중


一切皆得 陁羅尼門三摩地門

일체개득 다라니문삼마지문


住空無相 無分別願 

주공무상 무분별원 


已得諸法 平等性忍

이득제법 평등성인


具足成就 四無礙解

구족성취 사무애해


凡所演說 辯才無盡 

범소연설 변재무진 



또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보살마하살이 있었나니, 

모두가 다 다라니문(陀羅尼門)과 삼마지문(三摩地門)을 얻었으며, 

공(空) 무상(無相) 무원(無願)에 머물렀으며, 

이미 모든 법의 평등한 성품의 지혜[平等性忍]를 얻었으며, 

4무애해(無碍解)을 완전히 성취하였으며 

연설함에 말솜씨가 그지없었다. 




於五神通 自在遊戲 

어오신통 자재유희 


所證智斷 永無退失 

소증지단 영무퇴실 


言行威肅 聞皆敬受 

언행위숙 문개경수 


勇猛精進 離諸懈怠 

용맹정진 리제해태 


能捨親財 不顧身命 

능사친재 불고신명 


離矯離誑 無染無求 

리교리광 무염무구 



等爲有情 而宣正法

등위유정 이선정법


契深法忍 窮最極趣 

계심법인 궁최극취 


得無所畏 其心泰然 

득무소외 기심태연 


超衆魔境 出諸業障 

초중마경 출제업장 




5신통(神通)에 자재하게 유희하고 

증득한 지덕(智德)과 단덕(斷德)을 영원히 잃음이 없었으며, 

말과 행동은 위엄 있고 엄숙하여 

듣는 이가 모두가 공경히 받들었고 

용맹스럽게 정진하여 

모든 게으름을 떠났으며, 

친한 이와 재물을 버렸고 

신명(身命)을 돌보지 않았고 

거짓을 떠났고 

물듦[染]도 없고 

구함도 없었으며, 

평등하게 유정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말했고 

깊은 법인(法認)에 계합되어 

지극한 이치를 궁구하였으며, 

두려움 없음[無所畏]을 얻어 

그 마음이 태연했고 

뭇 악마의 경계를 초월했고 

모든 업장에서 벗어났다. 





摧滅一切 煩惱怨敵 

최멸일체 번뇌원적 


建正法幢 伏諸邪論 

건정법당 복제사론 


聲聞獨覺 不能測量 

성문독각 불능측량 


得心自在 得法自在 

득심자재 득법자재 


業惑見障 皆已解脫 

업혹견장 개이해탈 


擇法辯說 無不善巧 

택법변설 무불선교 


入深緣起 生滅法門 

입심연기 생멸법문 


離見隨眠 捨諸纏結 

리견수면 사제전결 


智慧通達 諸聖諦理 

지혜통달 제성체리 


曾無數劫 發弘誓願 

증무수겁 발홍서원 









온갖 번뇌의 원수를 꺾어 없앴고 

바른 법의 당기[幢]를 세웠고 

삿된 의론들을 조복했으며, 

성문(聲聞)과 독각(獨覺)이라도 측량할 수 없었고 

마음의 자재함을 얻고 법의 자재함을 얻었으며, 

업과 의혹[惑]과 견해의 장애[見障]를 모두 다 해탈했고 

법을 가리는 것[擇法]과 변설(辯說)은 교묘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며, 

깊은 연기(緣起)의 생멸하는 법문에 들어갔고 

분별[見]과 수면(隨眠)을 떠났고 

모든 번뇌[纏結]를 버렸으며, 

지혜는 모든 거룩한 진리를 통달했고  

일찍이 수 없는 겁(劫)으로부터 큰 서원을 세웠다. 




容貌熙怡 先言接引 

용모희이 선언접인 


遠離嚬蹙 辭韻淸和 

원리빈축 사운청화 


讚頌善巧 辯才無滯 

찬송선교 변재무체 


處無邊衆 威德肅然 

처무변중 위덕숙연 


抑揚自在 都無所畏 

억양자재 도무소외 


多俱胝劫 巧說無盡 

다구지겁 교설무진 


於諸法門 勝解觀察 

어제법문 승해관찰 





如幻 如陽焰 如夢 如水月 如響 

여환 여양염 여몽 여수월 여향 


如空花 如像 如光影 如變化事 如尋香城 

여공화 여상 여광영 여변화사 여심향성 


雖皆無實 而現似有

수개무실 이현사유




용모가 화락하면서 

말에 앞서 이끌어 들이고 찌푸리는 일이 없이 

하는 말은 맑고 온화했으며, 

칭송하는 일은 교묘하고 

변재는 걸림이 없었으며,  

그지없는 대중 속에 있을 때도 위엄과 덕이 숙연했고 

누르거나 올림이 자재하여 

도무지 두려워하는 바가 없었으며, 

구지(俱)의 오랜 겁 동안 교묘히 말하면서도 

다함이 없었다. 


모든 법문에서는 

'마치 요술 같고 

아지랑이 같으며 

꿈 같고 

물 속의 달 같으며 

메아리 같고 


허공의 꽃 같으며 

영상[像] 같고 

그림자 같으며 

변화로 된 일 같고 

신기루[尋香城] 같아서, 


비록 모두가 실체가 없기는 하나 

있는 듯이 나타난다'고 

훌륭한 지혜[勝解]로 관찰했으며, 



離下劣心 說法無畏 

리하렬심 설법무외 


能隨證入 無量法門 

능수증입 무량법문 


善知有情 心行所趣 

선지유정 심행소취 


以微妙慧 而度脫之 

이미묘혜 이도탈지 


於諸有情 心無罣礙 

어제유정 심무괘애 



하열한 마음을 떠나 설법하되 

두려워함이 없고 

한량없는 법문에 따라 증득하여 들어갔으며, 

유정들의 마음가는 곳을 잘 알고  

미묘한 지혜로써 제도하여 해탈시켰으며, 

모든 유정들에 대한 마음이 걸림 없었다. 






成就最上 無生法忍 

성취최상 무생법인 


善入諸法 平等性智 

선입제법 평등성지 


甚深法性 能如實知 

심심법성 능여실지 


隨其所應 巧令悟入 

수기소응 교령오입 


能善宣說 緣起法門 

능선선설 연기법문 


攝受無邊 佛國大願 

섭수무변 불국대원 






최상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성취하여 

모든 법의 평등성지(平等性智)에 잘 들어갔고 

심히 깊은 법의 성품을 사실대로 알았으며, 

그 합당한 바에 따라 

교묘히 깨쳐 들어가게 했고 

연기 법문을 잘 말했으며, 

그지없는 부처님 나라의 큰 소원을 섭수했고 




於十方界 無數諸佛 

어시방계 무수제불 


等持正念 常現在前 

등지정념 상현재전 


諸佛出世 皆能歷事 

제불출세 개능력사 


亦能勸請 轉正法輪 

역능권청 전정법륜 


不般涅槃 度無量衆 

불반열반 도무량중 




시방세계에서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의 등지(等持)와 

바른 기억이 항상 앞에 나타났으며, 

모든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면 

모두 두루 섬겼고 

바른 법륜(法輪)을 굴리면서 

열반하시지 말고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실 것을 간청하였으며, 



善能伏滅 一切有情 

선능복멸 일체유정 


種種見纏 諸煩惱焰 

종종견전 제번뇌염 


湏臾遊戲 百千等持 

회유유희 백천등지 


引發無邊 殊勝功德

인발무변 수승공덕




온갖 유정들의 갖가지 견해의 얽힘[纏]과 

모든 번뇌의 불길을 잘 조복하고 껐으며, 

잠깐 동안에 백천의 등지(等持)에 유희하면서 

그지없는 수승한 공덕을 끌어 냈나니, 




此諸菩薩 具如是等 

차제보살 구여시등 


妙功德海 

묘공덕해 


設經無量俱胝大劫歎 不能盡 

설경무량구지대겁탄 불능진 



其名曰 ...

기명왈 ....


이 모든 보살은 

이러한 미묘한 공덕 바다를 갖추었으므로 

설령 한량없는 구지의 대겁(大劫)을 지나면서 

찬탄한다 하여도 다할 수가 없다. 





[...]

생각해보면 

술이나 담배 음식 이런 것이 

생활에 피해를 주는 점이 많은데 

그러나 한번 중독성이 생기면 

잘 끊지 못한다. 


이것이 곧 번뇌의 속성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막상 그것을 끊으면 

살면서 얻을 재미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고 

그래서 또 잘 끊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알고보면 

무량한 기간 중독되어도 

부작용이 없고 

매 순간 평안하고 즐거운 중독이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 수행덕목을 적어 놓고 

외어보기로 하는데 

이것이 한 번 딱 보고 

다 외어진다면 좋겠다고 보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기에 

수행이 더 재미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이 암기의 방안으로 

다양한 방안을 사용하는데 

사실 효과가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암기의 달인으로부터 

암기 방안에 대해 들은 바는 

처음 보고 외어지는 부분까지만 외우고 

그만 둔다는 것이다. 


암기의 달인은 어느 정도의 암기의 달인인가 하면 

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이나 반 친구 이름을 다 외우는데 

그것이 학교를 다닐 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수십년이 지난 후까지 그렇게 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 볼 때 

외어지는 부분까지반 외운다면 

그렇게 해서 어떻게 외어지는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만 놓고 생각해도 

얼마나 많은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는가. 

그런데 외울 것이 그것만 있는가. 


그런데 그 암기의 달인의 이야기는 

앞의 행위를 반복해하면서 

점차 전에 외어진 부분 다음을 다시 외어 

거기에 덧 붙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외우고자 하는 내용에 

관심을 자꾸 갖고 

반복하는데 외우는데 부담을 갖지 않고 

매번 그렇게 반복하면 쉽게 외운다는 것이다. 


이 방법이나 저 방법이나 

다 쉬운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암기의 달인이 알려준 그 방안이 

사실은 우리가 


처음에 태어나 언어를 배운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고 


또 나중에 다른 외국어를 배워 

능숙하게 말할 수 있는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외국어 시간에 한 두번 강의를 듣고 

선생님이 아무리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본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쉽게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언어를 익히려면 

단어를 하나하나 외우고 익히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것은 결국 앞과 같은 방식으로 

외어야 되는 것이다. 


본인처럼 몸 각 부분에 

어떤 방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하나 결합한다고 

외어지는 것이 아니고 , 


첫글자를 떼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외어지는 것이 아니고 


관심을 갖고 쉼없이 

그것을 반복해야 그런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어떤 외국어를 잘 하는 선생님을 놓고 

잘 하는 것만 계속 구경한다고 

그것이 익혀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서커스쇼를 백번 본다고 

서커스를 할 수 있다고 보지 않듯, 

남이 잘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도 

그것이 자신의 능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인도 외국어 학습과정에서 혹시 도움이 될까 하고 

영어 방송 라디오를 틀어 놓고 지내본 적도 있는데 

그것이 매 순간 어떤 의미로 그런 소리가 들려지는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아무 효과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보다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생활하는 동안 필수적인 내용을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반복하다보면 

언어를 더 오히려 쉽게 익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곧 기억의 방안과 밀접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은 

늘 자신이 관심을 갖게 되고 

그래서 그 내용을 의식에서 초점을 맞추고 

되살려내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거쳐야 

어떤 내용이 확실하게 기억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위에 일정한 내용을 나열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 쓸모가 없는 내용들이라면 

누가 들춰보기나 하겠는가. 


그런데 사실은 그 내용들이 

바로 무량한 기간 동안 

수행자가 그것을 가지고 

유희자재할 수 있는 덕목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수행자라면 어떻게 이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술 담배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나는 내용인데 

히틀러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그리고 육식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놓고 

전쟁을 일으킨 이라고 해서 

히틀러가 가진 그런 특성마저도 나쁘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히틀러의 사례처럼 여러 좋은 성품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나쁜 성품을 개선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면 

그것때문에 좋은 성품이 있는 이마저도 

함께 나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니, 


몇몇 좋은 성품이 있다해도 

그에 만족해 머물지 말고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가도록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

수행자에게 계를 지킨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어서 

경전에서는 바다를 건너는데 튜브와 같다고 

비유된다. 


한 두 번 어기면 어떻겠는가 하고 

쉽게 생각하고 계를 어기는 것은 

튜브에 한 두 개의 바늘구멍을 낸들 

어떻겠는가 하고 바늘로 튜브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다고 제시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두 번 취미로 행한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그로 인해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는 세계에 

묶여 끌려 가는 것이다. 


[...]

불교의 본 취지가 무엇인가. 

중생을 제도하고 성불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가. 



아무리 경전을 달달 외우고 

지구를 한 손으로 격파할 정도로 

그 힘이 세고 

아무리 나무불을 념하고 말해도  


생명을 해쳐 고기를 뜯어 먹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쉽게 돈을 벌려고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계율(실라)를 함부로 어기면 


인과관계상 결국 생사과정에서 

지옥이나 축생계 등의 

세계로 건너가게 될 도리 밖에 없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든 번뇌와 전도몽상을 

없애고 비워야 한다. 

[...]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의 바탕에서는 

계로 보호할 것을 얻을 수 없다고 보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함을 목표로 수행을 할 때는 


생사현실 안에서 그렇게 임하는 것이고 


또 그 생사현실에서 수행자는 

중생들에게 이익을 베풀고 

중생들이 집착을 갖는 것을 침해하지 않고 

중생들을 해치지 않고 

수행에 필요한 제 덕목들을 잘 준수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생사현실에 임하면서 

그렇게 행하면서 임하지 않는다면 

결국 수행자도 

고통의 세계에 묶여 끌려갈 도리 밖에는 

없는 것이다. 


[...]


다만 무생법인을 얻은 수행자는 
그런 지옥과 같은 상태에서도 평안하게 임할 수 있으므로 
조금 넓게 방편을 취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는 점이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보 수행자가 그렇게 임하면 
곧이어 아예 수행자체를 행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가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본래 차별없이 
청정한 니르바나이고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는 측면만 취하여 
수행자가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고 청정한 니르바나이기에 
생사현실에 있어서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려도 
아무 일도 없다고 한다면 
그런 입장에서 계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현실 모든 것이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해도 
생사현실에서 자신의 손가락 하나만 부러져도 
그로 인해 평안히 임할 수 없다고 본다면 
역시 원칙적인 수행방안을 
차례대로 취해 수행에 임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3092#1554 
08gfl--불교공부_단상_2561_04.txt ☞◆vkgr1554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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