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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2-29_연생초승분법본경_001 본문
『연생초승분법본경』
K0157
T0716
하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연생초승분법본경_K0157_T0716 핵심요약
♣0157-001♧
『연생초승분법본경』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연생초승분법본경
해제보기
연생경병론서(緣生經幷論序)
원래 이 일심(一心)이 쌓여 삼계(三界)가 된 것이지만
어리석음의 강물에 아득히 밀리고 고통의 숲이 울창하고 높아
그 끝을 논하고 싶어도 그 근본을 측량하기 어렵다.
이치로는 실상(實相)의 문(門)을 다하고
틀[筌]로는 임시로 빌린 언어의 영역을 다한
5인(因) 7과(果) 열두 가지 연생(緣生)의 법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져 있다.
범부는 곧 미혹하여 허망을 일으키고 성인은 곧 깨달아 진실에 통하며,
하근기는 토끼처럼 떠다니고,
상근기는 코끼리처럼 건넌다.
크구나, 오묘한 깨달음이여.
깊구나, 모두 받아들이도다.
십지(十地:十地經)와 쌍림(雙林:涅槃經)에서 함께 제창하시고,
문성(聞城:聞城十二因緣經)과 도간경(稻芉:稻芉經)에서 모두 부연하셨다.
이 경에 이르러서는 유독 그곳에서 나열한 것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설하지 않은 것들까지 여기에서 모두 설명하고 있다.
반연을 서두로 하고 대치를 말미로 하여 총합하면 11문(門)이고,
나누면 120문(問)이다.
그 종지는 자세하면서도 치밀하고,
그 표현은 간략하면서도 은미하니,
경의 강목들이 모두 여기에 있다.
아울러 성자 울릉가(鬱楞迦)가
이 경의 종지에 부합하여 논을 지었으니,
그 논을 밝게 드러냄에 있어 3승(乘)의 뜻을 두루 취하고
어느 한 부파의 틀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먼저 게송으로 드러내고,
뒤에 논(論)과 석(釋)을 붙였는데,
게송이 30개이므로 또 삼십론(三十論)이라고도 한다.
대업 2년 10월에 남현두국(南賢豆國)구역(舊譯)에 천축(天竺)이라 한 것은
오류다.의 삼장 법사 달마급다(達磨笈多)와 돌아가신 번경법사(飜經法師) 언종(彦琮) 스님께서
동도(東都) 상림원(上林園)에 계실 때 임읍(林邑)에서 얻은 현두 범본(梵本)에 의지해 수나라 말로 번역하였고,
3년 9월에 그 작업을 마치니,
경은 2권,
논은 1권이었다.
삼장 법사께서는 어학에 해박하고 밝으며,
이치를 해석함에 있어 깊고 치밀했으며,
언종 법사께서는 널리 경론에 통달하고
겸하여 범문에도 능하신 분이었다.
두 분이 패엽본(貝葉本)을 마주하고,
다시 서로를 논박하면서 한마디 말도 빠트리지 않고
세 차례나 세밀히 검토하였으니,
문장은 비록 간소하고 질박하나 그 의미는 진실하고도 바르다.
옛 분들의 번역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으니,
진실로 법의 등불이며,
지혜의 창고라고 칭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아득한 후세까지 전해져 영원히 세간에 이익이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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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생초승분법본경(緣生初勝分法本經) 상권
수(隋) 달마급다(達摩笈多) 한역
김성구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婆伽婆]께서 사라바실제성(舍囉婆悉帝城)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법당에 모여 앉아서 의논을 하였다.
“모든 목숨 있는 것들을 말하자면,
세존께서는 일찍이 무량한 법문으로써 12분연생(分緣生)을 말씀하시되,
그 최초에 무명(無明)을 연설하셔서 연생의 바탕[體]으로 삼으시니,
무슨 인연(因緣)이 있어서
일체의 번뇌와 모든 행(行)의 연(緣)에서
오직 무명만이 연생의 바탕이 된다고 하셨을까?
이 무명에서 어떠한 특별함[勝異]을 보셨을까?”
모든 비구들이 법당에 모여 앉아 의논이 끝나지 않는 동안
세존께서는 종일토록 정행(定行)에 드셔서
사람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 귀[天耳]로 그들의 의논을 들으시고,
날이 저물 무렵 정행에서 나와 그들이 앉아 있는 법당으로 가셨다.
법당에 이르러 비구들의 앞에 항상 시설되어 있는 자리 위에 앉으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슨 까닭에 법당에 모여 앉아 의논이 끊이지 않았는가?
여기에 모여 앉아서 무엇을 의논하고 있었는가?”
비구들이 말하였다.
“대덕(大德)이시여,
이처럼 많은 비구들이 법당에 모여 앉아서 이러한 의논을 하였습니다.
■ ‘모든 목숨이 있는 것들을 말하자면,
세존께서는 일찍이 무량한 법문으로써 12분연생을 말씀하시되,
그 최초에 무명을 연설하셔서 연생의 바탕으로 삼으시니,
무슨 인연이 있어서
일체의 번뇌와 모든 행의 연에서
오직 무명만이 연생의 바탕이 된다고 하셨을까?
이 무명에서 어떠한 특별함을 보셨을까?’
대덕이시여,
저희들 여러 비구는 법당에 모여 앉아서 아직 의논을 마치지 못했으며,
이러한 것을 의논하며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연생초승분(緣生初勝分)이란 법문이 있으니,
잘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희들에게 말하리라.
■ 어떤 것이 연생초승분의 법문인가?
비구들이여,
열한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반연이 특별함[攀緣勝異]과
종상이 특별함[種相勝異]과
유서가 특별함[由緖勝異]과
등기가 특별함[等起勝異]과
전생이 특별함[轉生勝異]과
전도가 특별함[顚倒勝異]과
상이 특별함[相勝異]과
업이 특별함[業勝異]과
장애가 특별함[障礙勝異]과
순박이 특별함[順縛勝異]과
대치가 특별함[對治勝異]이다.”
그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바르게 하고,
한쪽 어깨를 벗어 세존을 향하여 합장하고 몸을 숙이고는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無明)의 반연이 특별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 인(因)과 과(果)가 모두 허물이 되고 악(惡)하여서 일체가 오염된 부분[染分]인 것과,
인과 과가 모두 공덕(功德)이어서 일체가 청정한 부분[淨分]이 있으니,
이것이 무명의 반연이 특별함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여,
어떤 것이 무명의 종상이 특별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진실을 덮고 진실하지 못함을 드러내니,
이것이 무명의 종상이 특별함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의 유서가 특별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 일체의 번뇌염(煩惱染)과 업염(業染)과 생염(生染)에게
유서와 근본적인 주처(住處)가 되기 때문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일체의 번뇌염(煩惱染)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간략히 세 가지 번뇌를 말하리라.
■ 일체의 번뇌염이란,
이른바 지혜가 없는 번뇌[無慧煩惱],
의심하는 지혜의 번뇌[疑慧煩惱],
삿된 지혜의 번뇌[邪慧煩惱]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일체의 업염(業染)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 대략 말하건대
자체의 모양인 세 가지 차별신(身)ㆍ구(口)ㆍ의(意)과
장애와 대치의 세 가지 차별된 모습
[장애는 비복(非福)을 말하고,
대치는 복(福)과 부동(不動)을 말한다.]이
업염(業染)을 모두 포섭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일체 종류의 생염(生染)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 간략히 말하건대 세 가지의 수(受)가
세 가지의 고(苦)에 의지하는 까닭에
생염(生染)을 모두 포섭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일체 종류의 번뇌염과 업염과 생염이
모두 무명으로써 유서(由緖)와 근본적인 머무를 곳을 삼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 실제(實諦) 가운데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이니,
생기지 않은 '번뇌'염은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것은 점점 커져서 더욱 많게 하며,
생기지 않은 '업'염은 생기게 하고,
만약 이미 생긴 것은 다시 쌓고 모이게 하며,
생기지 않은 '생'염은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것은 변하지 못하게 하니,
그러므로 일체 종류의 번뇌염과 업염과 생염은
모두 무명으로써 유서와 근본적인 머물 곳을 삼는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무명의 유서가 특별함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의 등기(等起)가 특별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 이 무명이
내생의 고제(苦諦)에 포섭되어
다시 태어난 몸에 대하여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며,
현재의 고제에 포섭되어
이미 태어난 몸에 대하여서도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니,
이 어리석고 미혹함을 말미암아
섭취'연생'(攝聚緣生)과 전출'연생'(轉出緣生)과
'화합'섭취(和合攝取)와 '화합'전출(和合轉出)이 있다.
이 두 가지 연생과
내세와 현재의 두 몸의 우혹(愚惑)이
모두 무명으로써 등기의 연을 삼는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섭취연생과 화합섭취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 처음의 무명(無明)이 연이 되어 행(行)이 있고,
행이 연이 되어 식(識)이 있고,
이렇게 하여 명색(名色), 6입(入), 촉(觸)이 연이 되어 수(受)가 있으니,
이것이 섭취연생과 화합섭취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전출연생과 화합전출 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 제2의 무명을 연하는 가운데서
수(受)가 연이 되어 애(愛)가 있고,
애가 연이 되어 취(取)가 있고,
취가 연이 되어 유(有)가 있고,
유가 연이 되어 생(生)이 있고,
생이 연이 되어 노사(老死)가 있으니,
이것이 전출연생과 화합연생이★★[화합전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처음의 무명이
섭취연생과 화합섭취에게 일어나는 연이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한 무리가 다시 태어나는 몸[更生身:後有]에 대하여 어리석고 미혹하므로
알지 못하여 다시 태어나기를 구하니,
이와 같은 어리석고 미혹하므로 다시 태어나기를 구하는 까닭에,
다시 태어나는 가운데서 좋은 일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못한 경계에 대하여 집착함을 말미암아
분별하는 까닭에 비복행(非福行)을 짓는다.
이른바 여러 가지의 살림살이[資具]에 대하여는 탐심을 내고,
손해나고 번뇌스러운 것에는 진심을 내고,
상응(相應)하는 까닭에 좋고 나쁜 일을 생각을 하지 않고,
곧 방일하고 미혹한 행을 지으며,
다른 세상의 악한 일도 생각하여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 비복행은 무명이 연을 짓는다.
■ 만약 다시 태어나는 가운데 좋은 일을 보거나 벗어나는 길[出道]을 보면
즉시에 복행(福行)과 부동행(不動行)을 지을 것이니,
혹은 설법을 듣고 깨닫거나 스스로 정려(靜慮)를 닦아
그의 깨달은 생각 가운데 선심(善心)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바른 사유[正思]가 아니다.
그는 이러한 까닭으로 다시 태어나는 미혹에 이끌린다.
이른바 다시 태어나는 몸에 대하여 좋은 일을 보는 것도
겁약하지 않기[不怯弱] 때문이며,
벗어나는 길을 보는 것도 겁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 저들 복(福)ㆍ비복(非福)ㆍ부동행(不動行)의 악대(惡對:障碍)와 대치상(對治相) 따위는
6식신(識身) 안에서 함께 나고 함께 멸하면서
현재에 보식(報識:異熟識)이 생멸하는 가운데에
모든 행의 훈습(熏習)을 안치(安置)하는 것이다.
뒤에 새로 생길 모든 종자를 섭취(攝取)하고 상응(相應)한 까닭에
모든 종자는 이미 모두 섭취되었다.
뒤에 만약 출생하면 차례가 있을 것이니,
이른바 명색ㆍ6입ㆍ촉 등이 점차로 출생할 것이다.
그러나 저들 명색 따위는 현재의 보식 안에서
다만 인상(因相)만을 내고
과상(果相)은 없으므로 섭취연생이라고 한다.
비구여,
이것이 제1의 무명이 섭취연생과 화합섭취에 대하여 일어나는 연이 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무명이 전출연생과 화합전출에 대하여 일어나는 연이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어떤 이들은 현재의 몸에서 미혹(迷惑)을 일으켜
6입(入)과 촉(觸)1)을 연으로 하여
수(受)를 내고는 즉시 그 맛을 안다.
맛을 아는 까닭에 오는 세상[當來]에도 이러한 수를 구하며,
구하는 것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취(取)를 일으킨다.
낙수(樂受)에서 갈애(渴愛)를 연으로 하여 욕취(欲取)가 생기는데,
욕취라는 것은 욕(欲)을 분별하는 까닭에 그것이 우두머리가 되니,
바야흐로 욕계의 모든 번뇌가 있다.
만약 새로운 수[新受]2)를 연하면
무유갈애(無有渴愛)가 생기니,
함께 싫어하여 멀리 여의려는 행을 한다.
이는 염리와 상응하지만 도리는 아니다.
그가 갈애(渴愛)에 의지하여
그릇된 방편으로 구하기를 때가 없이 하면
곧 출리사견(出離邪見)과 결정사견(決定邪見)과
그 두 가지의 의지사견(依支邪見)
[의(依)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합하여 네 가지가 된다.]
이 있다.
이러한 갈애로 하여금 취(取)를 내게 하고,
만약 다시 취로써 의지를 삼으면
욕을 여의지 못한다.
■ 이렇듯 하여 죽을 때에는
이 네 가지 소견과
욕계의 번뇌가 욕계의 갈애를 연으로 삼아 취를 낸다.
■ 만약 욕탐을 여의거나 색탐을 여의면
색계의 갈애와 무색계의 갈애가 생겨서 항상 있게 된다.
만약 색계(色界)나 무색계(無色界)에서 번뇌가 생길 때에는
색계나 무색계의 취(取)를 일으킨다.
저들 색계나 무색계의 번뇌와 이들 모든 소견은
혹 색계의 갈애가 연이 되어 취를 내고,
혹은 무색계의 갈애가 연이 되어 취를 낸다.
■ 이렇듯 갈애는 취의 연이 되는 까닭에
이미 모든 행을 얻고,
보식(報識)을 훈습하여 취와 함께 생긴다.
그 취를 포섭한 뒤에는
먼저부터 모든 행의 소유(所有)인 갈애가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이곳저곳에 곧 나타나서
자기의 몸이 전출(轉出)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출생이 있으니,
그러므로 행(行)은 유(有)가 된다고 한다.
취의 힘으로 행은 이미 유가 되었으나,
여기에서 죽으면 먼저부터 섭취한 것으로서
마땅히 출생할 것에는 연이 되어서 전출하게 하니,
그러므로 유는 생을 연한다고 한다.
■ 전출하는 동안
출생하였을 때와 모양이 부서져서 예전과 달라지고,
다시 저쪽에 이르면 죽음이 있어 수명을 마치니,
그러므로 생은 노사(老死)를 연한다고 한다.
비구여,
이것이 제2의 무명이
전출연생과 화합전출에 대하여 일어나는 연이 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슨 까닭에 전출연생 가운데의 갈애와 취(取) 두 가지를
모든 행의 연이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갈애와 취의 분제(分齊)가 다른 까닭이다.
마치 욕계의 갈애와 취가
색계와 무색계의 부동행(不動行)을 짓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경계가 아닌 까닭이다.
마치 욕계의 갈애가 부동행 가운데에서 이렇듯이,
색계의 갈애는 무색계의 무색 갈애(渴愛)에서,
욕계ㆍ색계의 색의 갈애는 욕계에서도 그러하다.”
비구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슨 까닭에 욕계의 갈애와 취는
복(福)ㆍ비복행(非福行)에게 연이 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 현전에 있는 모든 경계에서
애(愛)와 불애(不愛)로 증상을 삼고,
욕계의 갈애가 있으므로
선하지 못한 근(根)을 일으켜 비복행을 짓는다.
모두 인과를 말미암으며,
비복행 안에서 그 악함을 모르는 까닭이니,
이른바 마음이 악하고 지은 바가 악한 것이다.
알지 못하는 까닭에 비복행을 일으키되
마음과 지은 악 따위는
오직 무명으로써 연을 삼지 않으니,
같은 경계가 아닌 까닭이다.
만약 욕계의 갈애로써 복행을 지으면
믿음을 의지하여야 지어지리라.
이른바 죽으면 반드시 생하고,
생하면 반드시 인연을 따르는 것임을
믿음으로써 포섭하는 까닭에,
갈애와 취는 다만 장부무기(障覆無記)라고 나는 시설한다.
■ 만약 법이 장부무기라면 능히 행을 일으키지 못하리라.
인과와 복행 모두에 대하여 벗어남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사랑스러운 생(生)을 구하여 복행을 지으므로
비록 복행이라 하나 또한 무명으로써 연을 삼는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슨 까닭에 색계의 갈애와 취(取)는
색계의 부동행에게 연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욕심을 여의지 않는 이는 색계의 갈애에 낳지 못하며,
머무를 곳을 얻지 못하여
저것이 있지 않을 때 주처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색계의 부동행에게 연을 지어 그로 하여금 일어나게 할 수 없다.
색계의 갈애와 같이,
색계의 부동행에서나 무색계의 갈애가 무색계의 부동행에서도 그러하다.
색계의 몸과 무색계의 몸에 허물이 있는 곳에
좋은 일을 보고 생각하되,
혹 설법을 인하거나 혹 교수하는 법을 인하여
이렇게 바르지 못한 생각이 있어서 행에게 연이 된다.
그러나 이 바르지 못한 생각은 무명에게 끌리는 것으로
바르지 못한 생각의 결과는
무명과 함께 화합하여 부동행에게 연이 된다.
그러므로 저 부동행은 또한 무명으로써 연을 삼는다.
마땅히 알라.
비구여,
또 어떤 이는 무유갈애(無有渴愛)에 의지하여 복행과 부동행을 짓는다.
무유갈애에 의지하는 까닭에 모든 유의 허물을 보게 되니,
어찌 즐거이 오는 세상[當來]의 유를 다시 구하려 하겠는가.
그러나 또 무유에 대하여 여실히 알지 못하고,
또 대치하는 도를 얻지 못한 까닭에
대치가 아닌 것에 대치라는 생각을 내어 곧 복행과 부동행을 짓는다.
비구여,
이러한 까닭에 다만 무명만이 행을 연할지언정 갈애와 취가 연이 되지 않는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행이 6식신(識身) 안에서 화합하여 함께 낳는 것이라면,
무슨 까닭으로 행이 식을 연한다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 6식신 안에 복ㆍ비복ㆍ부동행이 화합하여
함께 생기고 함께 멸하거니와,
보식 안에서는 모든 행의 훈습(熏習)을 안치하여
뒤에 새롭고 다르게 출생할 보식에 대하여 이끄는 방편이 된다.
그러므로 행은 식을 연한다고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명색ㆍ6입ㆍ촉ㆍ수의 모든 분이 식 가운데서 동시에 종자를 섭취하는데
무슨 까닭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차례를 따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오는 세상에는 차례로 생겨 움직이기 때문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슨 까닭에 명색ㆍ6입ㆍ촉ㆍ수 따위를 선마(禪磨-중생의 몸)3)라 말씀하시되,
‘한 번 받은 과보가 죽기 이전의 총명(總名)이니,
처음으로 생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함께 인(因)하여 수용(受用)하여 의지(依止)하는 것이며,
또 함께 인하여 수용하는 것인 까닭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명(名)만이 생하고
색(色)이 없으면 어떠한 허물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약 명이 색(色) 가운데 머무르지 않으면,
선마가 상속하여 움직이되, 상응하지 못하리라.”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색(色)만이 생하고
명(名)이 없으면 어떤 허물이 있습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색이 만약 명과 합하지 않으면
섭지(攝持)를 입지 못하므로
반드시 부서져서 자라나지 못하리라.”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식(識)이 6입만을 연한다 하면 어떠한 허물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 그가 시작할 때에는 6입이 원만하지 못하고
오직 신근(身根)과 의근(意根)만이 있어서,
그에서 변하여 나온 것은 있을 수 없으니,
이 두 가지 근(根)의 체(體)는 명과 색뿐이다.
차례차례로 6입에게 만족하게 연이 되니,
그러므로 명색이 연이 되어 6입이 있다고 설한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6입만 만족하면
이 선마(禪磨)가 구경(究竟)한데,
무슨 까닭에 다시 촉과 수를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 6입의 선마가 구경하면
수용(受用)하여 의지(依止)하는 것이 구경한 것이지만,
수용이 구경한 것은 아니다.
반드시 수용이 구경하려면
함께 인(因)하여 받아들여야[領受] 하리라.
그러므로 수용하여 의지하는 것이 구경한 것과
수용이 구경하여야 선마가 구경하다고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무명이 연이 되어 갈애가 있다 하시고,
또한 수(受)를 연한다고도 하시니,
만약 무명만이 연이 되어 갈애가 있다고 하고,
수를 연하지 않는다 하면,
어떠한 허물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세 가지의 갈애와
세 가지의 유(有)가 일시에 움직여 생기는[轉生] 까닭이다.
그러나 수가 연이 되어 갈애가 있는 까닭에
서로 의존하는 것[相待]이 힘이 되어
움직여 생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만 무명만이 연이 되어 갈애가 있다고 하지 않는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수가 애만을 연하면 어떠한 허물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모든 갈애는 모두 수로써 연을 삼지만,
다시 갈애의 연이 되지 않는 수가 있으니,
곧 모든 갈애를 멸하게 하는 연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수가 갈애만 연하지 않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갈애가 유에게만 연이 되고
취의 연이 되지 않는다 하면 어떠한 허물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갈애는 구하는 것이니,
저 악취(惡趣)를 구하는 이는 없지만,
지은 비복행(非福行)으로
비록 선취(善趣)를 구하나, 항상 서로 어긋난다.
■ 과보가 움직여 생길[轉生] 때에는
갈애로써 연을 삼지 않고
취로써 연을 삼아 그가 생겨나게 한다.
비구여,
말한 갈애가 없으면 구하는 것이 없다 하고,
이 구하는 것이 없는 것은
비록 어긋난 것이지만
복행과 부동행을 짓고 결과가 또한 움직여 생긴다.
이러한 인연으로 다만 갈애는 유에게 연이 되지 않는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취가 연이 되어 유가 있고,
유가 연이 되어 생이 있다면,
무슨 까닭에 취와 유로써 집제(集諦)를 삼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 갈애가 네 가지의 업을 짓는 까닭이니,
첫째는 자기 몸의 경계인 수(受) 안에서 맛에 탐착하고 얽매이는 업을 짓는 것이며,
둘째는 갈애가 취(取) 안에서 출현하게[等起] 하는 업을 짓는 것이며,
셋째는 행이 유(有) 안에서 끌어당기는[牽引] 업을 짓는 것이며,
넷째는 죽은 뒤에 상속하여 속박하는 업을 짓는 것이니,
그러므로 갈애만을 집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생(生)이 있고 노(老)가 있고 사(死)가 있는데,
무슨 까닭에
명색과 6입과 촉과 수 등
선마의 모습[相]에서
노와 사의 이름을 나타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에게 있는 태어난 것의 모습[出生相]은
세 가지의 괴로움으로써 속박에 따르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생은 어떠한 고통을 나타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행고(行苦)를 나타낸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노(老)는 어떠한 고통을 나타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괴고(壞苦)를 나타낸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사(死)는 어떠한 괴로움을 나타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고고(苦苦)를 나타낸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네 가지의 출생한 모습은
생ㆍ노ㆍ사와 어떠한 차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네 가지의 출생하는 모습은 차례를 따라서 생기며,
또는 비슷한 것을 따라서 생긴다.
그가 출생할 때의 출생하는 모습이 이러한 줄을 알아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출생하는 모습이 차례로 생긴다 하시니,
어떠한 것이 비슷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가 처음에 종자를 내리면 곧 생이 있으니,
그가 차례로 자라나서 생하고,
그가 차례로 태에서 나오고,
그가 차례로 자라나서 생하고,
그가 자라나서는 능히 세속을 수용하여 생하니,
이것이 차례로 생하는 것이다.
또 어디에서 생기는가?
중(衆:蘊)과 계(界)와 입(入)에서 생기지만,
나[我]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5중(衆)들이 자라나고 흘러가는 것이 무상한 까닭이며,
명근(命根)의 힘이 한량 있는 시간에 머무는 것도
무상에서 생기는 까닭이다.
비구여,
저 네 가지의 출생하는 모습은
시분(時分)이 부서지면
곧 다섯 가지의 쇠악(衰惡)을 이루니,
이것을 늙는다[老]고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의 쇠악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첫째는 터럭이 쇠악함이니 머리가 빠지고 빛깔이 줄어드는 까닭이다.
둘째는 의지[依]가 쇠악함이니
의(依)는 몸≺身≻을 이른다.
육체의 색과 힘이 주는 까닭이다.
셋째는 업이 쇠악함이니,
말할 때에는 상기가 되고 숨이 차며,
섰을 때는 소의 잔등과 같이 굽어지는 까닭이며,
앉았을 때에 앞으로 숙여지는 까닭이며,
다닐 때에는 지팡이를 의지하는 까닭이며,
의지는 얽매이고 생각은 약하고 적어지는 까닭이다.
넷째는 수용이 쇠악함이니
현전의 여러 가지 살림살이[資具]를 수용함이 변변치 못한 까닭이며,
모든 기뻐할 만한 유희에 대하여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까닭이며,
색근(色根)이 자기 경계에서 속히 행하지 못하거나 행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다섯째는 명근(命根)이 쇠악함이니
목숨이 다하고 죽음이 가까워서 조그만 죽을 인연을 견디지 못하는 까닭이다.
비구여,
저 네 가지의 출생하는 모습 가운데 또 여섯 가지 죽음의 차별이 있으니,
알아야 한다.
첫째는 진경사(盡竟死)이며,
둘째는 부진경사(不盡竟死)이며,
셋째는 자상사(自相死)이며,
넷째는 부진경사분(不盡竟死分)이며,
다섯째는 진경사분(盡竟死分)이며,
여섯째는 비시시사(非時時死)이다.
비구여,
그 중에 자상사라는 것은
식이 몸 안에서 나와 딴 곳으로 가고
색근(色根)이 멸하여 부서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비구여,
명색 등이 출생하는 모습이 생ㆍ노ㆍ사와 더불어 이러한 차별이 있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세 가지의 갈애가 모두 연이 되어 생에게 원인이 된다 하셨는데
무슨 까닭에 오직 욕계의 생만을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욕계의 생은 거친 까닭이며,
가히 찬탄할 수 없고,
또 알게 할 수 없는 까닭이며,
돌아오기[廻還] 때문에 해탈의 법체가 아닌 까닭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만약 이 섭취연생(攝聚緣生)과 전출(轉出)을 12분(分)으로 말하건대 몇 가지가
능섭취분(能攝聚分:能引)이며,
몇 가지가 소섭취분(所攝聚分:所引)이며,
몇 가지가 능전출분(能轉出分:能生)이며,
몇 가지가 소전출분(所轉出分:所生)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 무명과 행과 그리고 일부분의 식은 능섭취분이며,
일부분의 식과 명색과 6입과 촉과 수는 소섭취분이며,
일부분의 수와 갈애와 취와 유는 능전출분이며,
생ㆍ노ㆍ사는 소전출분이며,
또한 일부분의 명색ㆍ6입ㆍ촉ㆍ수도 소전출분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이들 능섭취분과 능전출분은
일시에 생기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겠습니까,
아니면 차례로 생기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 일시에 일어나는 것을 차례로 말하는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능섭취분과 능전출분이 이미 일시에 생긴다면
무슨 까닭에 처음에 능섭취분을 말씀하시고,
뒤에 능전출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소섭취분을 말미암아 다시 전출이 있으니,
그러므로 소섭취를 말미암지 않음이 없는 까닭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 무명은 바르지 못한 생각을 연하는데,
무슨 까닭에 무명만 연이 된다고 하십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 무명이 바르지 못한 생각을 말미암아
자기를 이끌고,
행에게 연이 되고,
무명에서 생긴 촉이 수와 갈애에게 연이 되기 때문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간략히 말하면 몇 가지의 모양으로 연생을 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략 세 가지의 상을 말하면 연생을 알 수 있으니,
첫째는 부동연생(不動緣生)의 모습
[ 니리하(泥梨賀)를 번역하면 부동이니, 이것은 공(空)의 뜻이다. 공인 까닭에 움직임이 없다.]이며,
둘째는 무상연생(無常緣生)의 모습이며,
셋째는 감능연생(堪能緣生)의 모습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네 가지의 연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인연과
무간연(無間緣)[구역은 차제연(次第緣)이다.]과
반연(攀緣)과
증상연(增上緣)[또 생연(生緣)이라고도 한다.]입니다.
대덕이시여,
그 중의 어떠한 연들로써 무명이 행에게 연이 되며
내지 어떠한 연(緣)들로써 생이 노사에게 연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모든 행은 더욱 같은 상[同相]을 움직여 생기는[轉生] 까닭에
내가 네 가지의 연을 말하니,
이들 뜻에서 오직 증상연(增上緣)만이
무명이 행을 연하고 내지 생이 연이 되어 노사가 있다고 설한다.
그 증상연에 다시 불상착(不相著)과 상착(相著)이 있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이 불상착증상연(不相著增上緣)이며,
어떤 것이 상착증상연(相著增上緣)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바르지 못한 생각이 생기기 전에는
순면(順眠:수면)이 모든 행에 집착[著]하지 않고 연이 된다.
■ 만약 생긴 뒤에는 곧 서로가 집착[著]한다.
비구여,
그 바르지 못한 생각이 행과 합하고
6식신(識身)과 화합하여 함께 나니,
생긴 것이 멸하지 않으면
식과 서로 집착하지 않고 연을 지으며,
만약 생긴 것이 멸하면 곧 서로가 집착한다.
비구여,
죽음에 이르지 않은 식(識)은
명색(名色)에게 집착하여 연을 짓는 것이 아니다.
[범본(梵本)에는 “식(識)은 명색(名色)에게 집착하여 연을 짓는 것”이라는 이 구절≺句≻이 역시 없다. ]
식이 명색에 대한 것이 이와 같은 것처럼
거두어 모인[攝聚:所引] 명색(名色)이 전출(轉出:所生)한 명색에게도 그러하며,
명색이 명색에 그러한 것과 같이
6입(入)이 6입에게,
촉(觸)이 촉에게,
수(受)가 수에게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이 행에 그러한 것과 같이
무명이 갈애에게,
갈애가 취에게,
취가 유에게도 또한 그러하다.
식이 명색에 그러함과 같이
명색들이 명색들에게도 그러하며,
유가 생에게도 그러하다.
또 비구여,
생 가운데 태속에서나 동자일 때나 소년일 때는
노사(老死)와 서로 집착하지 않고 연이 되거니와,
만약 근(根)이 익어지고 수명이 다할 때에는
서로 집착[著]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일찍이 공인(共因)ㆍ공연(共緣)ㆍ공유(共由)의 법문에서
갈애를 인하는 까닭에 법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무슨 비밀한 뜻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유(有)가 포섭하는 업은
갈애를 인하는 까닭이라 하니,
이것이 비밀한 뜻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인(因)은 어떠한 뜻으로써 볼 수 있으며,
연(緣)은 어떠한 뜻으로써 볼 수 있으며,
유(由)는 어떠한 뜻으로써 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 뒤에 날 곳의 종자를 안치(安置)하는 까닭에 인의 뜻을 볼 수 있으며,
반드시 주지(住持)하여 그 생이 전출(轉出)하게 하는 까닭에 연의 뜻을 볼 수 있으며,
죽은 뒤에 태어날 곳으로 나아가고 향하여 태어나게 하는 까닭에 유의 뜻을 볼 수 있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대덕이시여,
■ 연생(緣生)이란 어떠한 뜻입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제각기 인연이 있어 함께 모이고 상속하는 까닭에
이 모든 분(分)이 생기는 것이다.”
-----------------
1 법상의 차례로 보아
“6입(入)과 촉(觸)”은 촉에 해당하는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
실제로 이 경의 이역본인 『분별연기초승법문경(分別緣起初勝法門經)』에는 이 부분이 “6촉처(觸處)”로 되어 있다.
따라서 위의 “6입(入)과 촉(觸)”은 “6촉입” 정도의 단어로 대치되어야 옳다.
2 앞에서 낙수(樂受)가 나왔으므로
새로운 수[新受]라는 것은 고수(苦受)를 말한다.
문장에 괴로움을 느끼면 싫어하여 여읜다고 하였으니,
내용상으로도 신수는 고수를 의미한다.
이역본인 『분별연기초승법문경』에도 이 부분이 “고수(苦受)”로 되어 있다.
3 중생의 몸을 말한다.
○ [pt op tr]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ie Myriam - Vouloir.lrc
Lab value 불기2564/03/01/일/00:48
● 출생의 비밀
『연생초승분법본경』에서 12 연기와 관련한 내용을 제시한다.
이 경에 나오는 연기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복잡하다.
그래서 그림을 사용하기로 한다.
[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http://buddhism007.tistory.com/228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http://thegood007.tistory.com/1172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여기서는 그림에 나타나는 2 가 산부인과 의사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3 은 아이를 밴 여인이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2 가 아이를 밴 여인을 진찰하는 과정을
1이 관찰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1이 2 가 3 을 관찰하는 상황을 눈으로 볼 때
그 내용이 위 그림이다.
이 내용은 1 이 눈을 감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1이 눈을 뜨면 저런 모습을 보게 된다.
2 도 상황이 마찬가지다.
2 가 3 을 진찰할 때 2 에게 눈을 감고 뜨고를 반복하게 해보자.
그러면 2 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다가 보인다고 한다.
이 상황을 1 이 지켜보면 그 상황에서 별 변화가 없다.
그런데 2는 그런 보고를 한다.
따라서 2 가 무언가를 본다면 그 내용이 어디에 있겠는가를 추리해보자.
그것은 2 에게서 일어난 변화일 뿐이다.
그래서 일단 위 그림에서는 5^ 안에 2 가 본 내용이 얻어졌다고 추리해서
그림을 그려 놓았다.
이것은 엉터리 추리다.
이것이 엉터리라는 것은 나중에 자세히 살핀다.
간단히 압축해 사정을 말하면 2 부분은 1이 본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그럴 듯해 보이는 추리다.
그런 가운데 2 가 3 이라는 여인이 아이를 배고
이후 아이가 출생하는 과정을 어떻게 기술해 보고하는가를 생각해보자.
이는 과학이나 의학책에서 기술하는 출생과정에 대한 보고와 거의 성격이 같다.
그런데 『연생초승분법본경』에서는 이와 같은 측면에서 설명하는 듯 하지만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리고 연생경병론서(緣生經幷論序)에서는 또
원래 이 일심(一心)이 쌓여 삼계(三界)가 된 것이라고 사정을 제시한다.
그래서 여인 3 이 아이를 출생하게 되는 과정을
도대체 어떤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여하튼 위 그림으로 가장 기초적으로 살필 수 있는 것은 다음이다.
우선 2 가 본 내용 그 자체는 그런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마치 그런 것처럼 2 가 이해하게끔 된다.
그래서 그 문제를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그 사정은 1 도 사실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단 그런 점을 고려하면서
여하튼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왜 여인의 뱃속에 든 아이는 계속 성장한 다음
출생하게 되는가. 이런 의문을 놓고
일단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2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은
사실은 1 자신에 대해서도 그 내용을 그대로 적용하기 위함이다.
현실에서 자신 바로 옆에 산부인과 의사 철수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철수에 대한 내용은 현실에서 자신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위 그림에서 2 에 대해서 살피는 내용은 1 에 대해서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그림에서 2 의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
2가 눈을 떠서 5^와 같은 내용을 본다고 하자.
이 때 그 안에 보는 1 ^ 나 3 ^는 사실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 영희가 아니다.
단지 2 가 그렇게 여기는 것 뿐이다.
2 는 1 ^을 자신으로 여긴다.
그리고 1 ^ 의 일정부분에 1 ^가 눈을 떠 본 내용이 있다고 여긴다.
그것은 잘못된 추리다.
마찬가지로 1이 2 를 철수라고 보고 3 을 영희라고 여긴 것도 잘못이다.
그리고 2 가 본 내용이 위 그림에서 2 와 같은 부분에 있다고 여긴 것도 잘못이다.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는 저런 상황에서
영희가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아이가 크고 자라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 내용을 설명해야 한다.
여기서는 아이보다는 좀 더 쉽게 사과를 하나 놓고 설명하는 것이 낫다.
사과 씨가 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그것이 사과가 되었다.
이런 내용을 놓고 살펴야 한다.
그런데 사과를 한번 베어 먹은 조각은 사과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정을 놓고 설명해야 한다.
정육점에서 사온 고기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이 고기가 다시 돼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영희 배 속에 있는 부분은 점점 자라나서 아이가 되어 태어난다.
그래서 이 차이도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상당히 복잡하다.
그런데 여하튼 여기서 기본적으로 다음을 확인해야 한다.
위와 같이 1이 상황을 대할 때
2 는 철수 3 은 영희 이런 식으로 여기는 것이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위 설명은 그런 바탕에서 진행된다.
본래는 그렇지 않다.
근본 무명[어리석음]이 이런 인과판단을 전개시키는 최초 요소로 제시되는 사정이 있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의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
꿈을 놓고 설명해보자.
꿈 속에서 황금을 주었다.
그 황금을 배로 던졌다.
그래서 배에 황금이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꿈을 꾼 침대에서는 그런 황금이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거나 하지 않는다.
이 비유를 놓고 현실 상황을 잘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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