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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2-01-26_법계도기총수록_001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2(2018)

불기2562-01-26_법계도기총수록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8. 1. 26. 12:14



®

『법계도기총수록』
K1502 
T1887B

법계도기총수록 상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법계도기총수록_K1502_T1887B 핵심요약



♣1502-001♧
『법계도기총수록』

법계도기총수록 상권



一―微―塵―中―含―十 初―發―心―時―便―正―覺―生―死 

|         | |               | 

一 量―無―是―卽 方 成 益―寶―雨―議―思―不―意 涅 

| |     | | | |           | | 

卽 劫 遠―劫 念 一 別 生 佛―普―賢―大―人 如 槃 

| | | | | | | | |       | | | 

多 九 量 卽 一 切 隔 滿 十 海―人―能―境 出 常 

| | | | | | | | | |       | | 

切 世 無 一―念 塵 亂 虛 別 印―三―昧―中―繁 共 

| | |     | | | |           | 

一 十 是―如―亦―中 雜 空 分―無―然―冥―事―理―和 

| |         | |              

卽 世―互―相―卽―仍―不 衆―生―隨―器―得―利―益―是 

|                           | 

一 相―二―無―融―圓―性★法 叵―際―本―還―者―行―故 

| |            ☆ | 

一 諸 智―所―知―非―餘 佛 息 盡―寶―莊―巖―法―界 

| | |       | | | |         | 

中 法 證 甚―性―眞―境 爲 妄 無 隨―家―歸―意 實 

| | | |       | | | |     | | 

多 不 切 深―極―微―妙 名 想 尼 分―得―資 如 寶 

| | |       | | | |     | | | 

切 動 一―絶―相―無 不 動 必 羅―陁―以―糧 捉 殿 

| |       | | | |         | | 

一 本―來―寂―無―名 守 不 不―得―無―緣―善―巧 窮 

|           | |             | 

中―一―成―緣―隨―性―自 來―舊―床―道―中―際―實―坐 



제1구: 법성은 원융하여 두 상(相)이 없네,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2구: 모든 법은 움직임이 없어 본래 고요하네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제3구: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고 일체가 끊어져[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제4구: 증지(證智)로써 아는 것이며, 다른 경계가 아니다[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제5구: 진성은 매우 깊고 극히 미묘하여[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제6구: 자성을 지키지 않고 연(緣)을 따라 이루어진다[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제7구: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많은 것 가운데 하나가 있으며[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제8구: 하나가 곧 일체이며, 많은 것이 곧 하나이다[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제9구: 한 티끌 속에 시방을 포함하고[일미진중함십방一微塵中含十方] 

제10구: 모든 티끌 중에도 이와 같다[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제11구: 한량없이 오랜 겁이 곧 일념이요[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제12구: 일념이 곧 한량없는 겁이다[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제13구: 9세와 10세가 서로 상즉하면서도[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제14구: 흐트러지지 않고 따로 떨어져서 이룬다[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제15구: 처음 발심할 때가 곧 정각이요[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제16구: 생사와 열반은 언제나 함께 어우러져 있다[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제17구: 이치와 현실이 흐릿하여 분별이 없으니[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제18구: 10불과 보현 대인의 경계이다[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제19구: 능인의 해인삼매 속에서[능인해인삼매중能仁海印三昧中] 

제20구: 빈번하게 여의를 냄이 부사의하다[번출여의불사의翻出如意不思議]. 

제21구: 보배를 비처럼 내려 중생을 이익되게 함이 허공을 가득 채우니[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제22구: 중생이 근기를 따라 이익을 얻는다[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제23구: 그러므로 행자는 본제에 돌아가[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제24구: 망상을 쉬어 기필코 얻음이 없고[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必不得] 

제25구: 연이 없는 선교로 여의를 잡아[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제26구: 집으로 돌아감에 분수에 따라 자량을 얻는다[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제27구: 다라니의 다함 없는 보배로써[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제28구: 법계의 진실한 보배 궁전을 장엄하여[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제29구: 궁극적으로 실제의 중도 자리에 앉으니[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제30구: 예로부터 움직이지 않았음을 부처라 이름한다[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법계도기총수록


●법계도기총수록 ◀法界圖記叢髓錄▶
     4권. K-1502, T-1887b. 편자 미상. 고려시대에 편찬되었다. 줄여서 『총수록』이라고 한다. 
의상(義湘: 625-702)의 『화엄일승법계도』에 대한 신라시대의 주기(註記)들을 모아 정리한 책이다.

 그 구성을 보면, 권상과 권하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고 상하권은 다시 1ㆍ2로 나누어져 총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상의 1에서는 먼저 의상의 『일승법계도』 제목 및 도인(圖印)을 언급하고,
 이어서 일승법계도 제목과 법성게 각 구절에 대한 『법융대덕기(法融大德記)』(『법융기』 또는 『법기』)ㆍ『진수대덕기(眞秀大德記)』(『진수기』 또는 『진기』)ㆍ『대기(大記)』 등의 설명이 이어진다.
 권상의 2에서는 의상의 『일승법계도』 석문(釋文)이 그대로 인용된 뒤, 이에 대한 각 주기들의 설명이 언급되어 있다. 
또한 권하의 1과 2에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법기』를 비롯한 각 주기들의 해석과 경문(經文) 및 소(疏)나 석(釋) 등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이처럼 『총수록』에는 중국과 한국의 많은 문헌들이 인용되어 있는데, 
특히 『추혈문답』ㆍ『도신장』ㆍ『자체불관론(自體佛觀論)』ㆍ『관석(觀釋)』 등
 현재 전하지 않는 신라의 화엄관계 문헌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특히 『도신장』에는 지엄과 의상, 의상과 그 직제자들간의 대화가 인용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일승법계도』에는 보이지 않는 의상의 화엄사상을 알 수 있다.

 또한 『고기(古記)』에 언급된 지엄이나 의상, 의상 제자와 그 법손(法孫)에 관한 일화를 통해서도
 의상과 의상 이후의 화엄사상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다.

 이 책의 편자에 대해 1330년 전후로 활동한 체원(體元)으로 보는 학설도 있으나, 
『총수록』은 고종 41년(1254) 전후경에 간각(刊刻)된 고려대장경 보유판(補遺版)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그의 저술로 보기는 어렵다. 

『총수록』의 내용으로 보아 의천(義天) 이전의 인물로 추정되는데, 『총수록』에 균여의 주석이 그대로 인용된 곳도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균여의 제자 혹은 그 계통의 화엄학자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총수록』에 인용된 『도신장』은
 그 내용이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와 거의 비슷하므로
 『총수록』의 편자는 균여 계통의 학승이었을 것이다. 
『총수록』은 현재 고려대장경 권44 보유판(補遺版) 정함(庭函)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 이전의 초간본이나 그 이후의 별행 간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신라는 물론 한국의 화엄학 연구에 필수적인 문헌이라 하겠다.
((운허_동국역경원사전))


From fk-ks-v10
일승법계도

【一乘法界圖】 p60-下≫全一卷. 詳稱華嚴一乘法界圖. 新羅僧義湘(625~702)撰.
 收於大正藏第四十五冊. 係以三十句之七言詩, 列出二一○字․五十四角之圖形,
 附以注釋, 詠述華嚴經與十地經論所論之圓敎要旨. 
此圖成於唐高宗總章元年(668)七月, 爲朝鮮華嚴思想之重要文獻.
 注釋書有法界圖記叢髓錄四卷. 附圖如下: 一 乘 法 界 圖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STEPHAN EICHER - Combien De Temps.lrc 

♥ 잡담 ♥법계 마불 게임 


오늘 법계도기총수록이 뽑혔다. 
이는 의상대사가 중국에 유학을 가서 쓴 일승법계도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 법계도를 보다가 새로운 마 불 게임을 고안해 냈다. 

취지는 수행자나 
연구하는 이도 
쉴 때는 오락을 즐겨야 하는데 

수행자를 위한 오락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고안해본 것이다. 

그리고 설날에 윷놀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마불게임판을 크게 출력해 놓고 
즐기는 것도 좋다고 본다. 

이 수행자용 게임은 
자신이 한 두 서너 역할을 오가면서 
혼자 해도 된다. 

법계도의 구절은 법에서 시작해서 불로 끝나는데 
게임에 참여한 이는 마에서 시작해서 불로 끝나는 그런 자세로 
임하는 것으로 한다. 

그래서 마=> 불 게임이라고 이름을 짓게 된 것인데 
이것은 기존의 마블게임에 연상된 결과다. 



[ 법계도 마불(마=>불) 게임 ] 



본인이 prince 님처럼 컴퓨터를 잘 다룬다면, 
버턴을 누르면 주사위나 윷의 숫자가 나오게 하고 
말도 움직이게 하고 
외운 내용도 적어서 각 구획의 비자 심사를 받아 통과하게 하고 
이렇게 마블 게임 보드를 만들겠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수준이 못된다. 

다만 수행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현실의 우주나 세계 지구 그리고 자신이 돌아다니는 
거리거리 장소가 
사실은 바로 위와 같은 내용을 놓고 
임하는 마~불 게임 보드판과 같다고 본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마적인 모드로 임하면 
어떤 상태로 나아가고 
또 어떤 수행자적인 모드로 임하면 "
또 어떤 상태로 나아가는 하는 
차이가 나오는 것이다. 

어떤 영화에서 
아이들이 보드 게임을 하다가 
한번 주사위를 던지고 움직일 때마다 
실제 현실이 그런 상태가 되어서 
진행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영화만 그런 것이 아니고 
현실이 위와 같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탐욕 => 옆에 있는 경쟁자를 7 칸 뒤로 밀어 넣고 1 번 쉬시오. 
삐짐 =>  칸 3 번으로 뒤로 가시오. 
분노 =>  앞에 가는 다른 선수를 뽑아 내고 경기장을 나가시오. 
어리석음 =>처음부터 다시 하시오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vdkj1728

◈Lab value 불기2562/01/26/금/12:15








mus0fl--A Caus' des Garçons - A Caus' Des Garçons.lrc

♥ 잡담 ♥ 

날씨가 한 3,4 일 계속 영하 20 도 가까이 되다 보니 

옥상기지의 순환펌프가 자주 언다. 
그래서 자꾸 올라가서
소신공양을 올리면서 한편으로 헤어드라이기를 넣어서 
녹이고 내려온다. 
날씨가 추우니까 몸도 상태가 안 좋다. 
그런데 듣는 노래에서 혈압이 걱정인가.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라는 내용을 제시한다. 
그리고 사고란 그렇게 계속 이어져 나오는 것이라는 노래를 듣게 된다. 

마불보드게임을 만들어서 해보려는데
혼자 하려면 상당히 싱겁다. 
그리고 게임을 한다면 이기는 사람이
진 사람의 금품이나 내걸린 상품을 차지한다던지 해야 게임에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다 . 
이기면 자신이 돈을 내서 식사 대접을 한다면 처음부터 게임에 흥미를 잃게 되기 쉽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처음에 마적인 자세로 임해야 게임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마는 좋은 지위가 아니다. 
아무리 욕계에서 가장 높은 상태라고 해도 
결국 생사에 갇혀서 생사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사람이 유산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산다.
그래도 사람은 사람대로 생사를 놓고 근심한다. 
마찬가지로 마 파순의 수명이 길어도 사정이 이와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적인 모드였어도 
게임이 끝나면 부처님 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잘 안 된다. 
부처님처럼 임하면 
곧바로 성취한 것이 모두 와해된다고 보기 쉽다. 
그래서 사실 수행자는 처음부터 
마적인 게임에 진입하면 곤란하다. 

이론상으로 목표를 성취한 후 
그 상태에서 수행을 성취하자고 계획을 세우기 쉽다.
그러나 뜻처럼 그렇게 행하기 힘들다. 

수행자는 경전 제목도 외워야 한다.
또 품명도 있으면 외워야 한다. 
각 부분의 키워드도 뽑아 외워야 한다. 
그리고 게송도 외워야 한다. 
또 다라니가 있으면 다라니도 외어야 한다. 

그리고 삼매수행도 해야 한다. 
조금 지치면 가볍게 걸어다녀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것을 모두 오락으로 여기고 늘 즐겁게 잘 해야 한다. 
그래서 사실 특별히 위와 같은 마불 보드판을 만들어 
게임을 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일반인도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거나
즐거움을 위해서 취미생활을 다양하게 한다. 
이런 경우 다음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건강도 좋고 즐거움도 좋다. 
그러나 건강하고 오래 살기만 하면 무엇하는가.
또 즐겁기만 하면 무엇하는가. 
이렇게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그것은 질병이나 사고를 당하고 고통스럽게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는 아니다. 

건강하고 안락한 가운데 즐겁게 오래 살면 좋다. 
그러나 다만 그것만으로 그친다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건강도 하고 즐거움을 얻으면서 
그와 함께 또 가치 있는 것을 얻는 방안이 없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는 동가홍상이론 내지 '어차피'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그런 활동을 하는 것은 같은데 
같은 활동을 하면서도 
무언가 좋은 것을 더 얻는 방안을 찾아내 그것을 같이 행하면 
위 말 안에 적힌 내용 그대로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즐거움도 얻고 
동시에 보물도 주어서 이익도 얻고 
그리고 친구도 사귀고 
그리고 ... 이런 식으로 좋다고 보는 여러 내용을
그 활동에 덧붙이면 더 좋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런 활동에
가치있는 내용 가운데 가장 가치있다고 할 수 있는 
3 보를 획득하는 수행을 덧붙이면 
훨씬 좋은 것이다. 

이것은 노는 입에 념불 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이래도 이 일을 하고 
저래도 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나 그런 가운데 
념불도 하고 
게송이나 다라니도 외우면서 
그 일을 하면 훨씬 더 좋다고 보는 것이다. 

유머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에게 
화장실에서 성경을 보아도 됩니까 
이렇게 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당연히 
화장실에서 신성한 성경을 보면 곤란하다고 
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또 이렇게 물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성경을 틈이 날 때마다 자주 펼쳐 보는데 
화장실에서까지도 성경을 갖고 가서 보면 
좋습니까. 
그러니까 목사님이 
일반적으로 더럽다고 보는 화장실에서까지 
신성한 성경을 보면 화장실마저도 신성해진다고 하면서
아주 좋다고 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어떤 이가 
다른 때는 성경을 안 보다가 
화장실에 갈 때만 화장실에 성경을 갖고 가서 보려는데
좋습니까. 
만일 이렇게 물었다면 
목사님이 정색을 하면서  
그런 경우 화장실보다는 더 급하게 지옥에 들어가야 하고
악마는 설령 지옥에 성경을 갖고 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렇게 답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수행자의 사정이 이런 유머 내용과 
사정이 다 같다고 보게 된다. 

본인도 나름  쉴 때마다 옥상기지에 올라가는데 
매번 게임이라면 게임을 한다면 하게 된다. 
그 장소에 가면 떠올려야 하는 게송이나 다라니 구절이 
각기 있는데 생각이 안 나면 날 때까지 연습하는 것이다. 

만일 운동할 때 횟수를 정해 운동을 한다면 
숫자대신 다라니를 외우면서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 가운데 게송 암송과 관련해서 
가장 심한 경우는 설산동자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떠올리려는 게송의 한 구절이 생각이 안 나자 
나머지 게송을 얻기 위해 
몸을 벼랑위에서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설산동자의 정신이 
수행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당장 설산동자처럼 
매번 게송이나 다라니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옥상기지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좋겠는가. 

다만 마음은 그런 마음을 갖고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mus0fl--France Gall - Viens Je T'emmène.lrc

쉬는 동안 테니스시합을 보고 왔다. 

이름이 구타를 한다는 의미가 담긴 선수가 시합을 하는데 
구기 종목이라 그런지 잘 하는 것 같다. 

영하 20 도에 육박하는 추위가 3-4 일 계속 되어서 
순환펌프가 자주 반복해 얼어서 
드디어 새로운 연구를 하게 되었다. 

드라이어기에 타이머를 부착해서 60분 간격으로 10 분 정도씩 켰다 
껐다해주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타이머가 원래 있으면 그냥 플러그를 꼽으면 되는데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구글 다음 네이버 위키 관광사를 통한
아름다운 풍경 스크립트도 많은 개선을 했다. 
저작권 사항관련 정보를
아주 간단하게 줄여 표현하는 방안을 도입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오늘 뽑은 법계도기총수록을 살피면서 
새로 만든 마불 게임을 만든 입장에서 
처음 한 번 보드게임을 하다보니 이런 문제점을 보게 된다. 

각 구절을 먼저 살피게 되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첫 부분과 끝부분을 먼저 살피게된다.
그렇지 않으면 끝을 모르기 때문에 
나중에 곤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제1구: 법성은 원융하여 두 상(相)이 없네,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

제30구: 예로부터 움직이지 않았음을 부처라 이름한다[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그리고 그 상황에서
다음 구절로 진입을 하는 동안 
이렇게 만나는 구절을 놓고 어떤 문제가 여기에는 없는가 
이런 입장에서 연구를 해보는 것이다. 


그런 경우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면서 
계속 시비를 일으킬 수도 있는데 
그것은 게임이 기본적으로 희론의 성격을 갖고 전개되는 것이므로 
그렇다고 보지만, 

그런 가운데 마지막 부분에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치명적인 문제가 또 있다고 보게 된다. 

그 구절이 다음이다. 

예로부터 움직이지 않았음을 부처라 이름한다[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과연 그런가. 

이렇게 먼저 자세를 취하고 
게임 보드에서 머물다 보면 
이 구절이 상당히 이상한 내용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왜 이런 내용을 이렇게 제시했을까. 

게임보드에서 이 부분이
마지막 부분이므로 쉽게 진입하지 못하도록 
많은 표시를 해두었는데 
해보면 그렇게 잘 되지도 않는 가운데 

이 구절에서 
수행자나 일반인이나 
심각한 혼동을 일으키게 하는 내용이
표현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참고로 옥상기지에서는 
이와는 다른 게송내용을 또 보게 된다. 

지시불과 별무불이라는 부처님을 소개하는 내용인데 
거기에서는 저런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 위와 관련해서 금강경 구절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경전내용에 비추어 보면 
저 구문은 확실히 
엉터리로 잘못된 내용이라고 보게 된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만일 어떤 이가 
예로부터 움직이지 않았음을 땅이라 이름한다거나

또는 조금 심하게
예로부터 움직이지 않았음을 소라 이름한다. 

그래서 
[구래부동명위우舊來不動名爲牛] 

이렇게 제시하면 어떻다고 보는가. 

엉터리라고 보게 된다. 
그래서 이와 마찬가지로 이 구절은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현실에서의 어떤 차별상을 놓고도  
실재 진여에서는 본래 그런 차별을 얻을 수 없고 
현실에서 문제삼는 생사고통도 얻을 수 없고 
그래서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제시하고 

부처나 중생이나
그런 측면에서는 다름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부처도 그 본 실재는
역시 다른 중생과 차별없이 공하다. 
이렇게 제시한다. 
사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내용을 대할 때 
그 내용을 거꾸로 이해하면 
위와 같은 식으로 혼동을 종종 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앞과 같이
[구래부동명위우舊來不動名爲牛] 이런 식으로
거꾸로된 표현을 걸어 놓고 
앞 내용이 이와 같은 내용을 제시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이제 이 내용이 이상하다면 
뒷 부분의 소 우牛 를 불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로 이상하다. 

그래서 법계도의 마지막 구절이
왜 문제인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자칫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
이런 내용을 놓고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위와 같은 엉터리 결론을 얻고
그렇게 논문을 제출하고
졸업을 하기 쉽다. 

그런 경우에는 다시 물어보아야 한다. 


처음 어떤 소가 있다거나
인간 세상에 어떤 악을 행하는 범죄인이 있다고 여긴다.

그런 상태에서 앞과 같은 구절을 놓고 
수행을 해서 성불을 해야할 사정을 제시하기 곤란하다. 
그냥 그런 내용을 그렇게 선언해 제시하고 
모두 그 상태로 아무렇게나 지내면 된다고 여기기 쉽다. 
그래서 저 내용은 문제가 있다고 보게 된다. 

이처럼 마-불 보드게임을 할 때는 
다음 칸을 넘어가기전까지 
이렇게 여러 내용을 제시해서 
검토를 해보아야 한다. 

그냥 어떤 내용이던 자신 앞에 던져지면 
무조건 외운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계속 계승되어 전해진 문서는 
그것이 무엇이던 무조건 권위를 부여하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정작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를 못하고  
또 정작 그런 내용이 어떤 근거로 그렇게 제시되는가도 모르고 
또 현실에서 그에 해당한 내용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이러면 총체적으로 문제다. 





어리둥절이란 유명한 사찰에서 
만나게 되는 지시불과 별무불이라는 
유명한 두 부처님을 만났다.

내용을 함축해 제시하다보니 
그 내용을 소개하는 것을 잊었다. 





구나함모니여래님의 게송이다. 


拘那含牟尼佛賢劫第二偈曰 

구나함모니불현겁제이게왈 


佛不見身知是佛 若實有知別無佛 

불불견신지시불 약실유지별무불 


智者能知罪性空 坦然不怖於生死

지자능지죄성공 탄연불포어생사


첫번째 부분에 지시불(知是佛)이라는 부처님이 등장하는데
知是佛 부분에 대한 해석이 잘 안된다. 


부처는 몸을 보지 않고  (- 몸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 
+ 知是佛 
가능한 해석 방안 : 
1 이것이 부처인 줄 안다. ( 여기서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몸?  )
2 이를 아는 것이 부처님이다. (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몸을 있다고 보지 않는것을 아는것? ) 

만약 진실로 안다면 부처가 따로 없네. 

지혜로운 이는 죄의 성품이 공한 줄 잘 알네 

걸림이 없이 평안히 임하여 생사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네. 


이런 내용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지시불과 별무불이란 명호를 가진 
두 부처님이 소개되고 있다. 

앞의 두 해석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 내용과 
구래부동 명위불이라는 명호를 가진 부처님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를 놓고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첫번째 해석방식을 따라
다음처럼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실재를 떠나지 않고 공하면 다 부처님이다. 
이런 입장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그러나 현실에서 몸이 있다고 보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금강경에는 또 다음과 같은 관련 구절들이 나온다. 
마지막 부분의 표현과 관련된 구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여래란 것은 모든 법이 진여라는 뜻이니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거니와 

실제로는 부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법이 없느니라. 


...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많은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가 다 아노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


여래라는 이는 

어디로부터 오는 일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니라.” 


... 

이는 내가 설한 바를 잘 이해하지 못한 때문인 것이다. 

수보리야 법을 설한다 함은 설한 법이 없으되 

다만 그 이름을 설한다고 일컬을 뿐이니라.” 


그때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많은 중생들이 다음 세상에 있어서 

여래께서 설하신 이 법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시었다. 


“수보리야 그들은 중생도 아니고 중생이 아님도 아니니라. 

여래가 중생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이며 

다만 그 이름이 중생일 뿐이니라.”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너희들은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생각한다고 여기지 말라. 

수보리야, 그런 생각을 하지 말지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진실로 어떤 중생도 여래가 제도할 것이 없느니라. 


...

“수보리야, 만일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면 전륜성왕(轉輪聖王)도 여래라고 하리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알기로는 32상으로는 여래를 보지 못하겠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겉모양에서 부처를 찾거나 
목소리로써 부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지라 
끝끝내 여래를 보지 못하리. 


곧 아상이 곧 상(相)이 아니요, 
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이며, 
온갖 상을 여읜 이를 부처라 하기 때문입니다.” 

..

세존!시실상자,즉시비상,시고여래설명실상。
世尊!是實相者,則是非相,是故如來說名實相。

세존이시여, 이 실상은 상(相)이 아니므로 

여래께서 실상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관련된 부분을 여럿 뽑아 놓고 살펴보자. 


일단, 이 세상 어떤 것 가운데 
그 실재가 공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그런데 그 사정만으로 
그 모든 일체를 부처라고 본다면, 
왜 지나가는 소나 고양이를 부처로 모시거나 하지 않는가. 

그리고 현재 자신도 그와 다르지 않은데 

왜 굳이 어리둥절이란 사찰에 가서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전을 대하고
그에 따라 굳이 계 정 혜 수행을 닦아서 
부처가 되려 하는가 .


그냥 모든 것이 진여실재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선언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일단 이것이 연구과제다. 

위 마불 보드에서는 
윷을 정확히 던져서 적절한 내용이 얻어지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그냥 일체를 다 똑같은 것으로 본다고 
선언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 [pt op tr]  mus0fl--Christophe Maé - Un Peu De Blues.lrc


구글 관광을 하는 데에도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버튼만 누르면 다 쉭 나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이 관광이기에 시간이 걸린다. 
가이아나가 나오는데 어디인가 했더니 남미에 있는 나라다. 

마 불 보드게임을 하는 중에 
마지막 구절이 이상하다고 했다. 

본래 언설을 떠난 내용을 언설로 나타낼 때 
그것부터 문제로 삼으면 일체 언설이 다 문제다. 
그리고 일체 언어 표현을 시라고 이해하면 
시를 놓고 일일히 따지는 것도 심하다. 

그런데 일단 보드 게임의 취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또 논리 문제나 옳고 그름을 놓고 따지는 문제와 
그에 바탕해서 어떤 상태를 수행목표로 삼고 
어떻게 임해야 되는가를 놓고 따질 때는 
그렇게 적당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또 아니다. 

마지막 구절만 떼어 놓고 봐서 그것을 문제라고 보게 된다.
그런데 만일 앞 뒤 전체를 다 이어 놓고 보면 
또 그 전체적인 취지를 살려 살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래도 수행목표나 수행방안을 혼동시키고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문제가 어느 정도 남는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논리적으로 이런 기초문제를 살필 수 있다. 


사진을 올려 놓고 보면서 
일단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저기 저 사람은 서 있다. 
이렇게 기술하면 적절하다. 

그런데 이것을 바꾸어서 
서 있는 것을 사람이라고 한다라고
하면 곤란하다. 

저 화면을 놓고 대하면 
사람이 서 있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서 있는 것을 사람이라고 칭한다는 것은 
조금 적절하지 않다. 

시적 표현으로 이해하면 
그렇게 말해도 운치가 있다. 
그런데 서있는 것은 왜 사람이라고 칭하는가. 
전봇대나 나무나 표지판이라고 하지는 않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런 논리적인 표현의 문제가 
치명적인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떤 수행자가 
수행목표를 정하고 
수행을 하는 가운데도 그렇다. 

구래부동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런데 그런 상태가 아닌 것이 어디에 따로 있는가. 
그런데 그런 상태를 부처님이라고 칭한다고 선언을 하고 구절을 마쳤다. 
이 부분을 만일 앞 뒤를 바꾼다면 특별히 이상하다고 보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이런 표현이다. 

부처님은 공하다.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공한 것은 부처님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앞과 같은 질문이 또 이어지게 된다. 

공한 것은 꼭 부처님만 공한 것이 아니고 
바탕화면에 있는 벌레도 공하고 
개미도 공하고 소도 공하고 
심지어 나도 공하다. 

그런데 수행자가 
이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서 
그 상태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곤란하다.

그런 경우 지금 이 상태도 그처럼 공한데 
무슨 수행이 필요하다고 하기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선언도 필요없다. 
그렇게 선언을 하면 공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런 문제가 연이어 나오게 된다. 


시적 표현으로 도치를 한다거나 
강조를 하기 위해서 표현할 수 있는 문제다.
따라서 시인의 감성을 놓고 따질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수행과 관련되면 
그런 시인의 감성으로 적당히 임하면 곤란하다. 
그런 경우 3 악도의 생사고통도 적당히 해결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또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문제는 아니다.

자신의 손가락을 붙잡고 전기톱으로 하루에 한번씩 자르면서
위 시가 효과가 있다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따라서 적당히 마음에 드는 시구절을 붙잡고 
그렇다 하고 임하면 안 된다. 





○ [pt op tr]  mus0fl--Indochine - Ladyboy.lrc


오늘 『법계도기총수록』을 살피면서 
다음 느낌을 받는다. 

어떤 내용을 소개할 때 
자신이 참조한 어떤 서적의 어떤 구절을 뽑아내서 
소개하면서 자꾸 넘어가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떤 한 페이지의 내용을 이해하려다 
온갖 서적을 다 펼쳐서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존 트라블터가 출연한 세터데이나잇 피버의 상황과 같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곤란하다. 
이를 이해하려면 그 영화를 한 번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일파만파가 일어난다.
그리고 정작 무슨 내용을 제시하는 지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생각해보면 수행함에 있어서 
실상이 차별없이 공함과 관련해 
대단히 많은 혼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혼란을 겪는다. 

기본적으로 공하다는 표현을 두고 호해가 많다. 

실재란 아무 것도 전혀 없음을 나타낸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또 일체가 차별없이 공함은 
일체가 다 공하다는 성품을 공통적으로 갖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실재나 실상이 공하고 
그 실상은 본래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실재는 청정한 니르바나다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통해 
이 실상은 니르바나에 해당하는 실다운 어떤 진짜 내용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또한 생사를 떠나 청정한 니르바나를 얻으려면 
자신이 공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또 공한 상태가 되는 것을 수행의 목표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또는 공한 상태를 증득해야 그런 상태가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므로 
일체는 그 실재에서 다 같은 성품을 갖는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사정이 그렇기에 
현실에서 a 라고 보는 것은 b 라고 해도 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 
그 이유는 a = 공 = b의 관계이므로 
이것이 공을 통해서 서로 치환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재가 공하다는 이 표현은 
수많은 혼동을 일으킨다. 

또 이와 관련해 수행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부작용도 일으킨다. 

물론 이는 실재가 공하다라는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던 망상분별을 토대로 
이 표현을 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체가 공하다는 것은 다음이다. 
일체에 진짜라고 할 성품이 없다. 무아, 무자성 ]
그런 가운데 그 실재가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주체가 그에 해당하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언설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어떤 구체적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빌려 
공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만일 실재에 어떤 참된 
진짜의 성품이 단일하게 하나로 존재한다면 
실재가 무엇인가 문제될 때 그것을 그냥 제시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서 공하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내용을 앞과 같은 참된 내용이 
바로 '공'이라는 내용이기에 그것을 제시한 것으로 잘못 오해하기도 한다. 

경전에서 표현상 하나라고 표현할 때 
그 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놓고 이런 혼동을 일으키면 곤란하다. 
그런 경우는 실재는 공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실재가 문제되면 그 하나를 제시하면 된다. 
그러면 또 무아 무자성 공이라는 표현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일체가 공하다고 할 때는 
수행자가 어떤 노력을 하거나 
그것을 그렇게 선언을 해야만 
그 실재가 비로소 그로 인해 
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그러거나 그렇지 않거나 
본래의 상태가 그렇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공은 어떤 수행을 통해서 
새삼 얻어낼 내용이 아니다. 

또 수행자가 그 실재에 해당하는 그런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기에 
공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공을 증득한다 이런 표현은 
사실은 대단히 이상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내용이 
수행의 문제가 되는가를 
처음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이가 
살면서 자신은 공을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기에 
수행을 시작하겠다고 하는 이가 있겠는가. 
있다고 한다면 그 공이 무엇이길레 
그래야 한다고 보겠는가.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해도 대단히 희박한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실재가 공하다는 내용과
현실의 본래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관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시되는가. 

그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수행자가 
그런 사정을 깨닫던 깨닫지 않던 
본 상태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본 상태는 그렇지만, 
수행자에게서는 그것이 다른 의미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이 수행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수행자는 처음 생사 고통을 겪는 상태에서 
이 고통의 문제때문에 
수행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그런 생사고통을 일체 받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수행이 무슨 필요가 있을 것인가.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처음 수행의 목표인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문제가 되는 고통과 그 고통의 원인을 
살피고 그 해결방안을 찾다 보니

문제되는 그 생사고통이 
본래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관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본래 상태만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이것은 본래 얻을 수 없는 내용인데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중생은
전도망상을 일으켜서 생사고통을 겪는 것이므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다시 문제가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본 상태가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런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본래의 상태가 차별없이 공하다는 내용만 
딸랑 붙잡고 임하면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마땅한 그림을 붙여 놓고 
이 사정을 설명하면 편하다고 보겠는데 
그림을 그려 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과거 그림을 다시 올려 놓고 
간단히 이 문제를 살피기로 하자. 



[img2-8]
08pfl--image/8식-8.jpg



현실 상황에서 눈을 뜨면 1 과 같은 모습을 보고 
그에 대해 그것이 자신이라거나 

또는 영희나 철수라고 보면서 대하는 상황이라고 하자. 

그리고 한 생명이 생사고통을 겪는 내용은 
바로 이런 현실내용으로부터 얻는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내용들의 정체를 확인하는 가운데
이런 내용을 얻는 본 바탕이 되는 내용이 무언가가 문제되고 

그래서 그런 본 바탕이 되는 # 실재를 살피니
#실재는 공하고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정말 이 # 실재의 측면만 문제삼고 
그 측면만 놓고 본다면 
사정이 그렇기에 
이제 더 이상 문제삼을 것이 전혀 없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실재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처음에 생사고통의 문제를 문제삼은 것은 
그 실재에서 그런 내용이 있어서 그런 문제를 삼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재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데 
그러나 본 바탕의 사정이 그렇다해도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기에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내용을 놓고 서로 혼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현실의 생사고통을 해결하는데 
자꾸 본 바탕에 그런 내용이 없고 공하다는 내용을 제시하는가하면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런 생사고통의 본 정체는 정체대로 파악해야 하고 
또 현실에서 그런 생사고통을 받게 만드는 업의 장애를 해결해야 하고 
또 그 업의 장애를 해결하려면 
그렇게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바탕해서 번뇌를 일으키고 집착하면서
임하는 자세를 해결해서 수행의 자세로 전환해야 하고

또 그 집착을 해결하고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려면 
현실에서 대하는 것이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어서 
그런 내용이 집착을 갖고 대할만큼 실다운 것이 아니라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꿈을 꾸고 집착할 때 
그 꿈이 그렇게 집착할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려면 
현실을 대하고 현실에서는 꿈과 같은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관해서
그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과 그 사정이 같다. 

그래서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려면 
본 바탕이 어떻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그 본 바탕이 그렇기에 
현실에서 겪는 생사문제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본 바탕이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해서 
=> 
그러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고 
=>
수행에 임하면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제거할 수 있다고 
이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일체가 본래 공하다는 사정은 
이런 수행을 하는 밑 바탕이 되는 내용인 것이지 

공하다는 상태 그 자체를 
수행으로 새삼스럽게 얻어내야 할 
어떤 목적 상태로 제시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앞과 같은 수행에 그런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여
그 내용을 강조하다보면 
처음에 제시한 것처럼 
이 내용을 엉뚱하게 이해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 붙잡고 나아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본다. 

본 바탕의 실재는 죄와 복도 얻을 수 없고 
공하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제시하면 
사정이 그러니까 
아무렇게 행해도 된다. 
이렇게 이해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그런데 실상이 그렇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은 
그런 내용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실의 망집상태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제거하려면 

생사고통을 겪는 그 단면 자체에서
그런 본 사정을 잘 관하고 벗어나오던지 

아니면 그런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원인단계에서 
벗어나오던지 해야 하는데 

이 각 부분을 성취하는데 
바로 앞과 같은 내용을 기본적으로 잘 이해하고 
그 각 단면에서 일으키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벗어나야 
그 각 경우에 그렇게 행할 수 있다고 보기에 
그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수행을 하는 전제가 되는 내용을 그렇게 이해하고 나서
일체가 공하기에 그런 사정으로 
정작 그 수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임하면 
곤란하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일체가 공하기에 
일체가 다 부처다 
이런 이해를 하고 임하면 또 곤란한 것이다. 

앞에서도 이 문제를 살폈는데 
부처는 공하다라고 표현하는 것과 
공한 것이 다 부처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는 의미다. 


원래 본 바탕은 차별이 없이 공하고 
생사를 얻을 수 없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것은 부처님만 유독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중생이 다 그렇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수행을 해서만 그렇게 된다는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그렇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측면이 언제 문제였겠는가. 

그리고 현실에서 어떤 이는 부처님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중생이라고 한다면 
앞과 같은 측면의 내용때문에 
그렇게 달리 표현했겠는가.

그것이 아니다. 


이 문제를
앞에 제시한 금강경 구절들을 놓고 잘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 내용이 곁가지를 붙여
너무 길어졌으므로 조금 더 쉬고 
이어 나가기로 한다. 



쉬기 전에 다음 논의할 내용을 
압축해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본 바탕은 사정이 그런데 
그 본 바탕은 그렇게 차별없이 공한데
왜 어떤 이는 생사고통을 겪고 
어떤 이는 겪지 않는가.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차별상을 나열하자면

아예 처음부터 생사나 번뇌를 갖는다고 보기 힘든
바위나 물, 모래와 같은 무정물을 먼저 나열할 수 있고

그리고 생명 가운데
지극히 심한 고통을 지금 겪고 있는 축생도 나열할 수 있고

그리고 인간 가운데 
다양한 차별적인 모습 가운데 

생계를 해결하지 못해 굶주리고 추위에 고통을 받는 상황도 있고 
죄수나 노예의 상태로 당장 고통을 받는 상황도 있고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이가 수행을 한다면 
수행을 통해 생사고통을 벗어나 아라한의 상태에 이른 경우도 있고 

그리고 또 그런 상태에 머물지 않고 
다른 중생을 또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생사현실을 받고 무량한 수행을 행하고 
그런 가운데 불국토를 장엄하고 

그리고 법신을 증득해서 성불하는 경우가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 뒷 부분이 바로 부처님을 가리키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게 나열한 차별상의 내용을 놓고
그 모두가 그 본 바탕은 차별없이 공하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란 내용은  
본래 차별없이 공한 그 측면에서 
그런 차별을 세운 것이 원래 아니고 

본 바탕은 그렇지만, 
생사고통을 겪는 사정을 놓고 
앞과 같은 여러 차별상을 나열하는 가운데
가장 수승한 상태로 부처님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렇게 현실에서 
흔하게 대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수행자가 수행을 오늘 시작한다고 해서 
시적 표현처럼 곧바로 
부처님 행세를 하면서 거리를 다닐 수 있는 입장도 아닌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처럼 
발심을 하여 수행을 막 시작한 수행자에게 찾아가 
자신의 삶의 문제 하나만 놓고 물어보아도 
그 수행자 자신도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매 마찬가지다. 


그래서 경전에서와 같이 
어떤 문제가 제시되면 
그 수행자는 현실에서
다양한 문제상황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이를 상대로 
가르침을 주고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더 나아가 경전에서 제시되는 10 력을 갖추고 있는 상태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그리고 경전에 등장하는 부처님처럼 되기 위해서 
그렇게 수행을 시작하여 무량겁을 걸쳐서 
복덕과 지혜을 구족하는 수행을 성취하고 
그래서 그런 신상을 구족하고 
그런 바탕에서 가르침을 베풀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처님도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의 측면을 놓고 대하면 
역시 다른 중생과 차별없이 공하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하다는 표현을 놓고 또 주의해야 할 바는 
실재의 측면이 차별없이 공하다는 표현은
사정이 그렇기에 실재의 측면에서는  
중생이나 부처나 똑같다라고 제시한 것도 아니다. 

실재의 측면에서 어떤 차별이나 다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다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지,
그 실재가 전혀 하나로 똑같다거나 그래서 하나다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실재가 차별없이 공하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그 실재는 다 똑같은 하나다라고 나아가는 것은 
기존의 이분법적인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그런 오해를 하는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 실재가 공하다는 표현은
그 실재에서는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이런 의미다. 

그러므로 차별없이 공하다는 표현을 
현실에서 대하는 그 모두가 
실재는 다 같은 하나다. 
이렇게 이해하면 곤란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기본으로 이해한 가운데 
이후 문제는
본 바탕은 그러한데 
이런 본 바탕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각 생명이 겪는 생사고통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가 문제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본 바탕이 되는 실재의 측면에서
어떤 내용을 성취할 바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망상분별이 전개되는 그 영역에서 
그런 청정한 본 바탕을 덮어 씌운 것과 같은 
그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는 수행이 필요한 것이고 
그리고 그 노력을 위해 
또 본 바탕은 본래 그러하다는 것을
그렇게 '관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본 바탕이 그렇다 
=> 그래서 문제가 전혀 없다. 
이런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본 바탕이 그렇지만,

그것을 잘 '관해야 하고'
그리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현실에서 일으키는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하고' 

또 그런 바탕에서 집착을 갖지 않고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야' 
현실의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고
또 이후 그런 수행을 무량하게 계속 정진해야 
다른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도 장엄하고 
법신을 증득하는 상태가 되어 
성불할 수 있다. 
 
이런 의미다. 

이는 본 바탕이 그렇기에 
그런 수행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아도  
그처럼 공하다는 그 측면만으로
일체를 부처님이라고 보아야 한다거나, 

또는 단순히 이런 사정을 이해하고 관하는 것만으로 
그런 이를 부처님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런데 설령 이렇게
현실에서는 부처님이 중생과 차별이 있다고 해도 
본 바탕의 측면에서 어떤 차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아니다. 

그런데 본 바탕은 본래부터 그렇게 차별이 없지만, 
다만 그런 본 바탕에서
망상을 일으켜 겪게 된 생사고통의 문제가 제거되려면 

앞과 같이 그런 본 바탕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관하는 가운데 
그런 수행을 통해서 
그 현실의 측면도 그런 본 바탕의 상태에 상응하게 여여한 상태로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고 
또 이후 그런 바탕에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와 수명과 신상을 
모두 구족하여 좋고 좋은 상태로 변화된다는 그런 의미인 것이다. 

일단 쉬기로 한다. 








mus0fl--Alain Souchon - Parachute Doré.lrc


날짜 변경선을 지나 계속 앞의 문제를 살피게 된다. 

그런데 오늘 일어나 샆펴보니 
어제 만들어 장착한 타이머 드라이어 시스템으로 인해 
순환펌프는 현재 정상 작동이 되는데 
정작 화장실 부분만 물이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즉 수도를 사용하는 다른 부분은 다 물이 잘 나오는데 
화장실만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왜 그런가 살펴보니
화장실에 달린 작은 창이 조금 열려져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또 과제가 되었다. 


어제 조각글에서 마불 보드를 만들어서 
시험 작동을 하는 가운데 
마지막 구간에서 
의상대사가 남긴 법계도의 마지막 구절에 
문제가 있다고 다양한 내용을 제시했다.

그래서 앞의 내용만 놓고 보면 
그간 오래 대해 온 법계도에는 그런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서 
더 이상 이것을 놓고 수행에 참조해서는 곤란하고 
전체를 폐기해야 할 내용인 것처럼 여기기 쉽다. 

그런데 마불 보드 상에서 
어떤 한 플레이어가 그렇게 토를 달았다고 해서 
다른 플레이어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주면 
또 곤란하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또 다른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대로 
그런 측면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또 이런 저런 사정으로 
달리 보아야 한다고 제시해서
이 구절이 그대로 유효하고 정당한 내용임을
밝힐 필요가 또 있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이런 노력을 하는데 
이런 내용을 마불 보드상에서 
서로 행하면서 
해당 구절에 대해 깊이 논의도 하고 
또 즐겁게 마불 보드게임을 하면 
좋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게임에 의상대사가 
자신의 상대편에 있다면 
자신이 애써 제시한 구절에 
그런 문제가 있다는 내용을 제시받으면 
의상대사는 이를 놓고 별로 즐겁지 않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런 시시비비 논의가 있게 되면
견해를 달리하는 입장들간에 
갑론을박을 행하는 가운데 
상당히 감정적인 대립관계를 만들기 쉽다. 

수행자는 그렇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은 3 념주를 얻은 부처님의 상태에서는 그렇다고 보아야 하고 
수행이 일천하고 부처님의 상태가 아직 아닌 경우는 
일반의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주제를 놓고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시시비비의 논의를 행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다양한 입장을 검토를 해보아야 
어떤 내용이 갖는 의미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또 그런 바탕에서 수행도 올바른 방향으로 
원만히 성취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입장이면 
그것을 일체 듣지 않고 
외면해 무시하고 
자신의 입장만 고집한다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라이터 하나도 직접 다 부품을 구해 
자신이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는 상태가 되기 쉽다. 

그러면 문제가 된다. 

여하튼 마불 보드는 
한편으로는 어떤 주제를 놓고 
그것이 정말 적절하고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를 살피기 위해서
시시비비를 따지고 갑론을박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또 한편 그런 시시비비의 논의가
자칫 각 당사자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불쾌감을 갖게 하는 
부작용을 가질 수도 있으므로 

마불 보드란 게임의 한 내용으로 대해서 
그런 부작용은 제거하고 
또 해당 내용에 대해 시시비비의 논의는 논의대로 
진행해보자는 의미다. 



그런데 자신과 다른 입장은 무시하고 
자신의 입장만 고집한다는 부분을 적다가 
최근에 숙왕화님으로 부터 당한 일이 떠오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가까이 가서 왜 본인이 이런이런 내용을 제시하는데 무시하는가. 
이런 내용을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숙왕화님의 태도에 
놀란 적이 있다. 

왜 놀랐겠는가. 

숙왕화님이 그렇게 말하는 그 내용 자체를 
무시하고 대응을 하지 않아서였다. 

숙왕화님이
당시 핸드폰으로 어떤 게임을 하는 중이었는데 
본인이 그런 이야기를 옆에서 열심히 하는데도
아무 대응이 없어서 손으로 흔들며 다시 말하니까
그 때서야 본인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으면서, 미안한데 무슨 말을 하는 지 못 들었다면서,
무슨 말을 자기한데 했는가 하고 되묻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철저한 무시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역시 숙왕화님은 수준이 높다는 것을 
또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여하튼 마불 보드게임을 소개하면서 
법계도의 마지막 부분에 일정한 문제가 있다고 보고 
문제점을 제시했다면 

이제 또 마불 보드게임에서 
다른 상대편은 이를 무시하면 곤란하고
그 내용을 놓고 이에 대한 반론을 또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이 마불보드의 게임 취지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 마불 보드는 본인이 혼자 하는 게임이다. 
그리고 이 게임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그 요령을 제시한 바 있다. 
자신이 여러 역할을 맡아서 각 경우마다 
그 역할에 몰입해서 게임에 임하면 되는 것이다. 

마치 장기나 바둑을 혼자 양쪽 입장을 오가면서 
두는 것과 같이 
혼자 이런 마불 보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앞의 입장을 놓고 
그 상대편의 입장에 들어가 생각해 보면 
일단 이런 여러 반론이 가능하다고 본다. 

우선 마지막 구절만 그렇게 떼놓고 
그렇게 보면 그런 문제가 있다고 볼 지 모르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어서 종합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또 7 글자를 배열해서 게송 형태로 
내용을 계속 제시하는 것이므로
제시하고자 하는 내용을 
앞 뒤의 맥락을 통해
함축적으로 제시하게 되고 
각 부분을 끊고 잇는 것도 그런 입장에서 살펴야 하고 
산문체와는 조금 달리 보아야 한다.
이렇게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본다. 


또 다음과 같은 반론도 가능하다고 본다. 


일단 금강경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제시된다. 

... 

여래라는 이는 

어디로부터 오는 일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니라.” 

...

이 내용과 
마지막 구절 

구래부동명위불 
이 표현이 서로 그 취지나 내용이 
같은 표현이다. 

그래서 금강경의 내용은 문제가 아니라고 보면서 
법계도의 마지막 구절은 문제라고 보는 것은 
그것이 문제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본다. 


대강 이처럼 상대가 또 
반론을 제기하면 
마불보드 게임에서는 
또 다시 그에 대한 반론을 또 제기하고 
이런 가운데 
해당 구절에 대한 심화 연구가 
진행될 수 있다고 본다. 


앞과 같은 반론을 제시받으면 
처음 입장은 또 다음과 같이 지적할 것이다. 

사정이 그렇지만, 
이것을 단순한 시로 대하지 않고 
어떤 주제에 대해 핵심을
압축해 제시한 내용으로 본다면 
그렇게 이해하면 안 된다. 


그리고 금강경의 구절은 금강경의 구절로는 
적절한 것이지만, 
법계도의 마지막 구절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그런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금강경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여래라는 이는 "

어디로부터 오는 일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니라.” 


이렇게 제시하고 있고 

단순히 

어디로부터 오는 일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면,
그것을 여래라고 이름한다.

이렇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뒤와 같이 제시한다면 
이것도 역시 법계도의 마지막 구절과 
같은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한다. 

본래 실상의 측면을 놓고 볼 때 
어디로부터 오는 일도 없고 가는 데도 없는 것이 
부처님만 그러겠는가. 

소도 그렇고 
고양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그러면 나를 여래라고 불러야 하고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이렇게 제시하면서 

소나 고양이는 그러나 여래라고 
보고 따라다니면 곤란하다. 
그리고 나와 반대된 입장을 제시하는 
당신은 또 아니다. 
이렇게 제시하게 된다고 해야 한다. 
이렇게 만일 제시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서 금강경에 제시된 위 표현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처음 현실에 차별상에서 
소나 고양이 일반 중생과 
여러 측면에서 차별되고 
또 다른 수행자와도 달리 
부처님이 갖춰야 할 다양한 성품
예를 들어 32상도 구족하고
10 력을 비롯해 4 무외 3 념주 대비 이런 18 불불공법을 다 
갖추어 어떤 분을 부처님이라고 할 때 
그 분을 그런 입장에서 구별하여
주어 부분에 일단 놓고 나서 

사정은 그렇지만, 
그런 여래라는 분은 
어디로부터 오는 일도 없고 가는데도 없다. 
( 본 성품은 역시 차별없이 공하다. )
그리고 바로 그런 바탕에서 그러한 사정으로 
여래라고 칭한다. 
이런 사정을 지금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그 가운데 일부 성품 
본 바탕이 공하다거나 

또는 예를 들어 32 상만 구족한다고 해서 여래라고 한다면 
32 상이란 전륜성왕만 되어도 그것을 갖추는 것이니 
그렇다면 전륜성왕도 여래라고 칭해야겠구나 

이렇게 부처님이 되물으신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앞 부분을 다 생략하고 

차별없이 공한 본 성품의 측면만 딸랑 붙잡고 
일체의 것은 다 사정이 그러므로 
다 여래라고 칭할 수 있다고 
제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다시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또 마불 보드게임의 상대자는 
또 다음 이야기를 가지고 
재 반론을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글이 너무 길어졌다. 

일단 쉬어야 한다고 보는데 
그런데 이렇게 갑론을박을 계속 행하다보면
결론이 어디에서 나야 할까. 

일단 조금 더 이어 써야 한다고 보지만, 
결론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본다. 

취사장의 입장에 그치면 안되고 
사단장 수준에 이르러서 
이런 논의에 임해야 하고 
그리고 좋은 점을 그것대로 모두 다 취합해서 
각 방면으로 잘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여하튼 
마불 보드게임은 또 진행되야 하는데 
일단 글이 길어져서 
재 반론 부분부터는 
쉬고 난 다음에 이어나가기로 한다. 




○ [pt op tr]  mus0fl--INDOCHINE - Canary Bay.lrc

마 불 보드 게임 상에서 

법계도의 마지막 구절을 놓고 
갑론을박을 진행하는 논의는 

원래 예정상 회쟁론등에서 살핀 
가정적 항변의 방식과 관련해서 
가정적 항변으로 얻는 논의나 언어진술이 갖는 성격과 함께 
더 살피려고 했으나 사정상 다음 조각글로 넘기기로 한다. 



현재 추위가 연 4 일 이상 계속되다보니 
순환펌프가 어는 문제가 자주 발생하다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물탱크에 물을 공급하는
직수관 자체가 얼어서 물이 
물탱크에 공급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일단 이들 문제를 처리하고 나서 
시간을 내어 살피기로 한다. 

옥상기지에서 상황을 살펴보는데 
보온조치를 했다고 하지만, 
옥상기지안의 온도계가 영하 5 도 이하의 상태라서 
역부족인 것 같다. 

물 탱크에 물 자체가 공급이 안 되니 
순환펌프와는 또 다른 문제다. 

안에 난로를 피우는 한편  
일단 온도계에 입김을 불어 넣어서 
영상 10 도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

옥상기지에서 들리는 노래에서는 
수리하면 된다는 메세지가 들리는데 
일단 날씨가 풀려야 할 것 같다. 

이어서 풀앰범으로 된 노래가 나오는데 
해당버전을 찾을 수 없어
해당 부분을 찾아 올려 놓는다. 

수행자가 수행의 목표로 하는 부처님이란 
어떤 상태인가가 문제될 때 
간단히 말하면 
그 실재가 공하다는 측면에서는 
무정물을 포함한 일체와 차별이 없다고 할 것이지만, 
그러나 또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생사가 전개되는 생사현실에서는 
법신을 증득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그래서 단순히 자신이 생사를 벗어나 
해탈을 얻은 아라한과도 또 구별이 되고 
중생제도와 불국토장엄과 성불을 목표로 
수행중인 수행자와도 또 구분이 된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을 잘 이해한 가운데 
실재의 측면과 
생사 현실 안의 측면을 
함께 잘 파악해서 
한편으로는 망상분별에 바탕한 집착을 제거하고 
무소유 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에 임해야 하고
또 한편 법신을 증득할 수 있는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조하는 수행을 
또 해나가야 함을 잘 이해하면 
된다고 본다. 

그런 상태를 표현하고 제시하기 위해서 
다양한 언설로 그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본래 언설을 떠난 측면의 상태는 
언설로 그것을 나타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마치 특이한 차를 맛보고 
그것을 언어로 그대로 나타내려고 하는 경우 
부딪히는 문제와도 성격이 같다. 

그럼에도 언설로 그 상태를 나타내게 되는 것은 
그런 언설로 그런 상태를 제시하지 않으면 
그것을 이해할 방안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이런 취지로 사용하는 언어진술에 대해서는 
그 언어진술에 붙잡혀서 그 언어로 나타내고자 한 본 취지를
오해하면 곤란하다고 본다. 

결국 이런 취지로 언어를 통해 제시하는 것은
그 자체가 희론의 성격을 갖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서 본래의 상태가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의 성격을 갖는 것이고 

또 이런 가운데 진행되는 
가정적 항변도 그와 같다고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 이런 내용을 제시하고 
이후 필요한 부분은 다시 관련되는 부분에서 
살펴나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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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법계도기총수록_K1502_T1887B.txt
sfd8--불교단상_2562_01.txt ☞◆vdkj1728
불기2562-01-26

θθ

 





문단 및 표현재정리 Lab value 불기2564/01/29/수/02:08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File:Smew_CincinnatiZoo.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mew_Cincinnati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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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각사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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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사_제주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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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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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Christophe Maé - Un Peu De Blues.lrc


♥Georgetown City Hall 가이아나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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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Indochine - Ladyboy.l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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