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세상이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내용이 자신의 마음내용이라고 할 때 그러면 이런 내용을 대하는 자신은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고
또 마음현상과 관련해서는 그것을 일반 생리학자가 이해하듯 외부 물질의 자극 - 반응의 관계가 육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안의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또 평소 자신이라고 보던 것이 허물어져서 장례를 치루고 화장터에 가게 될 때는 무엇이 또 자신과 관련되어 있어서 무량겁에 걸쳐서 수행을 한다고 제시되는가.
이런 의문을 좀 더 살펴야 한다고 본다.
처음 자신이 외부 세상과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 것이 사실은 자신 마음 내용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평소 그런 것을 놓고 실다운 외부 세계의 내용이라거나 외부 대상이라거나 정신과는 별개이고 정신 밖에 따로 있는 외부 물질이라거나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도 다 함께 그런 내용을 얻게 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이해하고 대하던 그런 내용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뿐더러 그것은 또 실재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어서 그래서 실다운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데에 가장 중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묶여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태에서 풀려나는 해탈의 열쇠가 바로 이 부분에 들어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앞 문장에는 벌써 수행에서 중요한 해탈의 문 가운데 공해탈문과 무상해탈문의 내용이 제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해탈문은 앞과 같은 망상에 바탕해서 일으키는 소원과 희망이 그런 사정으로 쓸데없는 희망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런 희망을 모두 제거하는 것으로서 무원무작해탈문이 있는데
세상에서 일으키는 모든 소원은 결국 그 출발점이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자신이 세상이라고 여긴 그런 내용과 관련해서 if 구문을 사용해서 관념분별 영역에서 만들어서 그에 집착을 일으킨 다음 그 자세로 앞에서 문제삼는 감각현실을 취하고 붙잡고 늘어지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본다면 자신이 커피를 지금 마시고 싶다고 한다면 무엇을 커피라고 보고 무엇을 그런 커피를 마시는 자신이라고 보고 그런 희망을 일으켜 갖는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희망을 가질 때는 커피가 보이지 않아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만 일으킨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그런 커피에 대한 생각은 관념분별 영역에 그렇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희망을 성취하고자 노력하고 그런 노력끝에 그 희망이 성취되었다고 여기고 만족하거나 또는 뜻대로 안 되었다고 불만을 갖는 이런 경우는 이 관념분별 내용이 어떻게 되었기에 그렇다고 하는 것인가를 먼저 잘 생각해야 한다.
희망을 가질 때 일으킨 관념분별은 관념분별인 것인데 그에 상응하는 내용을 감각현실에서 얻었는가 얻지 않았는가를 놓고 그것을 문제삼는 것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런 관념분별이 그런 감각현실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아닌데 본래 그렇지 않은데도
그 주체는 어떤 상태는 그렇다고 여기고 그것을 대하고 어떤 상태는 또 그렇지 않다고 여기고 그것을 대하면서 그렇게 만족하거나 만족하지 않거나 하면서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를 처음에 마시고 싶다고 희망을 가진 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커피가 있고 마신다고 여기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이 분명 다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희망이 성취되어서 그렇게 커피를 마시는 상황에는 그 감각현실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분명 거기에 있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처음에 무상해탈문에서 제거되었어야 할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즉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놓고 그 가운데 일정부분은 자신이라고 여기고 그 나머지는 외부 세계라고 여기고 그렇게 여기면서 그 부분을 처음 그렇게 취하고 그에 머물러서 온갖 업을 행해나가는 이 상황이 처음에 문제라고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평소 자신이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고 다른 모든 집착의 근본을 이루는 망상분별 집착의 내용이 바로 자신에 대한 내용들이기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갖고 현실에서 임하는 이는 수행자가 아니라고 금강경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망집이 해소되면 그로 인해서 현실에서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일으키는 온갖 쓸데없는 희망이 남김없이 함께 제거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원무작해탈문이란 현실에서 망상분별과 번뇌 집착에 묶여서 곰이 되어서 번뇌로부터 사역을 당하고 또 다른 생명도 그렇게 사역을 시켜나가는 상태에서 풀려 나오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 어떤 이가 만리장성에 돌을 쌓으려고 그 높은 산을 오르락 내리릭 했겠는가.
그렇게 하게 된 원인을 죽 이어서 살펴보면 그 사정이 바로 그런 것이다.
물론 포로가 되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음을 당해서 그렇게 했을 것인데
또 그런 일을 강제로 시킨 어떤 이는 또 왜 그러했겠는가.
그렇게 찾아나가면 나중에는 진시황과 같은 이가 떡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왜 그렇게 했는가.
그러면 또 답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북쪽에 있는 흉노족들이 침입을 해서 다 없어진다.
그러면 또 어떻게 되는가.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데
그 모든 사역의 첫 출발점은 결국 무엇인가하면 바로 위와 같은 바탕에서 모두 그렇게 다 묶여 있어서 그렇게 임하는 것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또 반대로 말하면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서 풀려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원무작해탈문은 앞과 같은 공 무상 해탈문의 내용과 함께 한 주체를 생사현실에 묶여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태에서 풀려나게 하는 해탈문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 현실도 그렇지만, 한 주체가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만일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묶인 상태를 벗어나면 바로 죽음을 당하게 된다고 보는데 어떻게 그렇게 임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또 아무리 공 무상 무원무작해탈문을 제시해도 그 묶임에서 풀려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더 생사고통에 묶이는 방향으로 임하게 되는 것이 현실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한 단면을 놓고 어떤 입장이 옳은가의 문제는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이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는 논의가 아니고
바로 이런 삶의 단면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해탈문을 통해서 그런 생사의 묶임에서 풀려난 후
다시 그런 생사의 고통을 받는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원래 자신이 생사를 벗어난 해탈문의 반대방향으로 즉 생멸문으로 다시 들어가서 생사현실에 임할 때는
또 원래의 상태와 엇비슷하게 그런 상태에서 수행에 임하게 되는데 그러나 이 경우는 처음의 경우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놓고 그것이 무엇때문에 다른가를 잘 음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요즘 미투 운동으로 인해서 과거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가운데 죽음을 택하는 사례가 자꾸 보고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오늘은 또 누가 죽지 않았나 이런 궁금증을 갖는 경우도 있게 되는데 그 만큼 걱정이 많이 되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일전에도 가해와 피해가 중첩되는 현상을 가피 중첩 현상이라고 표현한 바 있고 그래서 한 단면만 놓고 판단하면 곤란하다고 제시한 바가 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죽음을 택할 때 그렇게 원인을 만든 이들을 놓고 너무 심하다라고 비난하기 쉬운데 이것도 한 단면만 놓고 판단하는 것이어서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또 그 이전의 피해나 가해의 관계도 또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처음 최초에 피해를 당한 것이다. 이런 경우라고 해도 사실은 사정이 마찬가지인데 그러나 무량겁에 걸쳐서 그런 관계가 형성된 것이기에 그렇게 잘라서 한 단면만 놓고 이것을 살피는 것은 마치 지금의 내용만 놓고 그것을 살피는 것처럼 똑같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끔 미투 운동을 놓고 주로 피해자가 여성이기에 남성들은 공감을 못하는 경향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그 남성을 그 여성이 처한 입장으로 밀어 넣어서 삶을 살아보게 한다거나, 또는 유사한 환경을 하나 만들어서 예를 들어 어떤 수용시설에 강제로 수용이 되었는데 그 상태에서 전혀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치명적인 질병까지 갖고 있는 어떤 이에게 그 수용시설을 벗어날 때까지 별 도리가 없이 반복해서 강제로 추행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런 경우에도 과연 그런 입장을 취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여전히 한 단면만 딱 떼어 놓고 그것을 살피면 곤란한 것은 매 마찬가지임을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이다.
사건 사고는 다 성격이 마찬가지인데 그 근본 바탕에 어떤 망상분별과 집착이 작용해서 그렇게 된 것인가를 먼저 파악하지 못하면 위 문제는 결국 무한한 가피 중첩을 쫒아다니면서 그 사정을 매번 살펴야 하는 문제가 된다.
이 단면을 보면 a 가 문제인데 저 단면을 보면 다시 b 가 문제다. 그런데 또 저 단면을 보면 다시 a 가 문제다.
이런 식으로 무한히 나아가도 정작 각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잘 찾아지지 않는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면 이런 내용만 제시하는 고난탐정은 탐정 업계에서 환영을 받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하기 보다는 그 무한한 연결점을 쫒아다니면서
매번 관련된 이를 한대 씩 때려주는 것이 더 환영받는 일일 수 있다.
이 경우 앞의 문제를 놓고 대하면 이렇게 된다.
이 단면을 보면 a 가 문제다. => 그러니까 바로 a 를 때린다. 저 단면을 보면 다시 b 가 문제다. => 그러니까 바로 b 를 때린다. 그런데 또 저 단면을 보면 다시 a 가 문제다. => 그러니까 바로 a 를 다시 때린다.
..
이렇게 나아가면 오히려 각 경우마다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고난탐정에게 어떤 사건을 의뢰하면 각 관련 당사자가 원래의 가피 중첩관계에서 받은 피해에 다시 2 중의 피해를 중첩시키는 결과만 되고 사건 하나 해결을 꾀했다가 오히려 그로 인해 중환자실로 당사자들이 다 실려가게 되는 결과만 초래하게 된다고 본다.
앞의 문제해법이 바로 그런 문제인 것이다.
지금 어떤 이가 갑자기 죽음을 택했다. 결국 사람을 죽게 한 것이다. 그러니 그런 원인을 제공한 이를 찾아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누군가는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책임을 묻게 되면 또 그 상대는 그 상대의 어떤 잘못과 책임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니 또 고난탐정은 다시 그 상대에게 가서 또 그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앞의 내용이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사건해결을 임하는 고난탐정이 과연 처음 문제해결에 어떤 도움을 준 것인가.
아니면 계속 오가면서 원래의 피해를 다시 반복해 중첩해 받게 한 것인가. 나중에는 오락가락하게 되리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그 근본이 무엇으로 인해서 나타난 것인가를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앞 방법이나 뒷 방법이나 별로 신통한 방법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이런 사건 하나만 놓고 보아도 각 구체적 당사자는 가슴에 못이 박히고 피멍이 드는 일이 아닌가.
잘 생기지 못하고 피부도 병이 많은 mun 님에게 강제 추행을 당한 어떤 한 남성을 생각하는 가운데 가피 중첩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이것을 벗어나와 평안함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한편 고통을 당한 당사자들을 생각하며 묵념을 올리는 가운데 일단 쉬기로 하자.
앞에서 무량겁에 걸친 가피 중첩관계를 살폈는데 이런 문제는 이론적으로만 살펴도 골치가 아플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대부분 이런 문제로 인해 골치가 아프게 마련이다.
그런데 가장 간단하게 접근하려면 지금 피해자의 상태에 있는 이가 무량겁에 걸쳐 가장 먼저 피해를 당한 상태라고 가정하고 이 문제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면 앞과 같이 일단 중첩된 가피관계를 쫒아다니는 가운데 그 복잡한 관계를 모두 종합해서 살필 필요가 없다고 보게 되고 그래서 일단 골치가 조금 덜 아프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 가피관계가 중첩될 때 과거 사정을 낱낱이 헤아리기 어렵기에 이를 종합해서 평가하는 문제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한편 이 가운데 어떤 것을 다른 것과 상계한다거나 하면 다시 이 상계문제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경우는 그 하나만 놓고 살피면 되므로 일단 조금은 간단하게 살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놓고 이 하나를 어떻게 처리해야 앞으로 무량겁에 걸쳐서 일어나는 일들의 방향을 좋은 내용으로 바꿀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또 다음 문제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과연 자신이 그렇게 무량겁을 놓고 미리 고민할 그럴 필요가 있는가. 이것부터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연 생사과정을 걸쳐서 무량겁에 걸쳐 자신이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렇게 생사과정을 걸쳐 존재하는 자신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를 부정한다면 이 경우는 이번 생에서 장례식장이나 화장터에 들어가기전까지만 놓고 문제를 살피거나, 아니면 아주 짧게 문제되는 내용 하나만 딱 놓고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마음의 정체를 살피는 문제가 결국 이 문제와 관련이 된다고 제시한 것은 사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간단히만 본다면 결국 처음에 잘못 대응하면 이것이 처음에 골치아프게 여긴 그 가피관계의 중첩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피해를 보았는데 그 상태로 그냥 둔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든 이가 모든 경우 그렇다면 또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경우는 그 가해자는 이런 일로 아무런 교훈도 받지 못하고 계속 그런 행위를 그렇게 해나가게 되기 쉽다고 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또 이를 방치한다는 것도 곤란함을 쉽게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에 살핀 문제와 성격이 같다는 것을 또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검토한 방안들은 다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지금 조각글에서 살피는 금강수광명관정경최승입인성무동존대위노왕염송의궤법품에서는 바로 그런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우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가장 극단적이라고 보게 되는 방안을 그 해결방안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다른 생명을 골치아프게 하고 또 수행자를 방해하는 경우 그대로 방치하는 것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은 아니라고 할 때 상대가 아무리 극악무도한 경우라고 해도 다시 그런 상대를 조복시킬 수 있는 방편까지도 함께 갖추어서 이를 원만히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어느 방안이나 그 모든 방안이 모두 종착점으로 하는 목표점이 무언가 하면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런 관계에 처음 진입해 들어가게끔 만드는 가장 근본되는 원인인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내는데 이르러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이런 경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빠르고 쉬운 방안은 여하튼 각 입장마다 각기 달리 갖는 그런 소원을 성취하고자 할 때 그것을 성취하는 방안을 무조건 U 라고 적어 놓고 그 U 를 통해서 각자의 소원이 다 성취되었다고 전제하고
그 상태에서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한 것인가. 왜 그런 소원을 그렇게 간절하게 원한 것인가를 먼저 파악해서 그 내용을 놓고 구체적 내용을 대하면 모든 당사자가 다 좋고 좋음을 얻어내는 그 방안을 오히려 더 빨리 찾아낼 수 있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문제 상황에 처할 때는 그렇게 그 문제를 대하지 않고 단순히 자신이 처음 집착을 가진 그 내용만 딱 붙잡고 여하튼 그것을 얻어내야 한다고 고집하는 상태로 임하기에 이 문제가 서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게 된다.
이런 문제에서 앞 방안과 뒷 방안의 차이는 앞 방안에서는 그렇게 파악해내는 그런 새로운 내용들을 통해서 이를 성취해내는 수많은 다른 방안을 찾아낼 수 있는데 반해서
그렇게 문제를 대하지 않고 처음에 집착한 그 소원만 마냥 붙잡고 늘어지면 그 문제 자체가 잘 해결이 안 된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면 부산을 가고자 하는 이가 Ktx 표를 구하였는데 어떤 사정으로 도저히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해보자.
이 때 그 표를 구하는 방안이 U 가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U 를 놓고 여기서 그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가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해서 부산에 가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한 것인가를 문제삼은 것이다.
그래서 부산에 가서 관광을 하고자 한다던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자 했다던지 물건을 구입해 사용하고자 했다던지 또는 사업 상담을 하고자 했다던지 등등의 내용이 있다면 이제 이 내용을 붙잡고 다시 처음의 문제를 살피면
이 내용에서는 처음 무조건 Ktx 표를 구하는 문제만 놓고 대하던 상황과 달리 이를 해결할 방안이 수없이 많이 보이게 될 수 있고 그래서 그 문제 해결이 빠르고 쉬어진다는 의미다.
즉, 처음 문제삼은 도저히 구할 수 없는 Ktx 표만 놓고 그것을 구해야 한다고 임할 경우에는 그 문제는 현실에서 대단히 해결하기 힘든 성격의 문제인 것이지만, 그러나 앞처럼 임하면 그 구체적 내용에 따라서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도 되기도 하고 또는 그냥 화상전화를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인터넷 구매를 해도 되는 문제로도 되고 아니면 헬리콥터를 타고 가도 되고 이런 식으로 각 경우마다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안이 많이 보이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문제되는 사건 사고를 조금이라도 더 쉽고 빠르게 해결하려면 늘 처음 그런 문제상황으로 진입해 들어가게 한 근본매듭을 풀거나 아니면 반대로 그렇게 집착하는 소원을 성취해서 끝내 이르고자 하는 어떤 종국적인 목표점을 놓고 이를 다시 접근하면 조금은 쉽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난탐정이 도움이 되는 것은 주로 이런 부분인 것이고
가피 관계가 이미 중첩된 상태에 다시 피해를 중첩시키고 과거의 고통에 또 새로운 고통을 조금 다른 유형으로 중첩시키거나 아니면 무조건 일단 일어난 일은 무조건 무시하고 넘어가게 하는 그런 것도 또한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처음에 구글 맵에서 알지도 못하는 지명이 뽑혀 방문해서 해당 자료를 링크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곳이 자주 뽑혀서 여러번 보다보니 무언가 친근한 장소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살다 보면 저런 곳에서 저처럼 넓은 공터나 길을 옆에 두고 살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런 장소 저런 장소를 자꾸 대하다 보면 자신이 현실에서 집착을 갖고 대하는 문제를 조금 완화시켜서 객관적으로 살필 수도 있다고 본다.
주로 삶의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입장을 중심으로 모든 문제를 고정시켜 놓고 특히 자신이 생을 시작할 때부터 일으킨 망상분별과 집착을 기준으로 놓고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는 문제 때문에 문제가 더 심해진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이 곳 저 곳 방문하다보면 이곳은 이렇고 저곳은 또 저렇고 이 입장에선 이렇게 대하고 저 입장에선 또 저렇게 달리 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는 가운데 그런 집착이 조금은 완화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글 풍광 스크립트를 통해 최종적으로 얻어내야 할 바는 사실은 그런 것을 넘어서 저 사진에 집이라고 보는 부분을 집이라고 여기거나 어떤 그림에서 사람이라고 보는 부분을 사람이라고 여기고 그런 상을 그런 부분에서 취하고 그에 바탕해서 무언가를 행하는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 자체를 제거하는 데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보게 된다.
가끔 자신이 사는 집과 그리고 평소 자신이 오가는 거리와 오가는 학교나 직장 외로는 전혀 다른 곳은 관심이 없으면서도 무엇은 무엇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편견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한편 갖게 된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달리 오히려 그 증상이 더 악화될 수도 물론 있다.
그래서 방편이란 늘 그런 위험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노래를 올려 놓고 글을 쓰는데 한 대목에서 어떤 유명한 가수 이름을 듣게 된다. 이전 조각글에서도 또 다른 유명한 가수 이름을 들어서 혼자 웃음을 지었는데 그런데 이 현상이 이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원인이 있다고 보겠는가. 아니면 그 노래에 그처럼 나오는 가수에게 원인이 있다고 보겠는가. 아니면 그렇게 듣는 이의 마음에 원인이 있다고 보겠는가.
화학식에서 수소와 산소가 물을 만든다고 할 때 그 물이 갖는 모습이나 성품은 도대체 수소에서 온 것일까 . 산소에서 온 것일까를 누가 문제삼으면 누가 그 답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일까.
일단 그렇게 나타나면 사실은 그 내용은 그 안에서 시원적인 출발을 하는 것이고 그 앞에서 아무리 그것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다고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어떤 경우는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눈으로 한쪽에 거울을 놓고 그 앞에 사물을 놓으면 자신의 눈으로는 거울 면에도 그 모습이 보이고 거울 밖에도 그 모습이 보이기에 이 경우는 거울면에 비친 모습은 거울 밖의 내용과 엇비슷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처음에 그런 거울면에 비추인 모습과 거울 밖의 사물을 그렇게 보는 그 마음이 왜 그것들을 대해 그런 모습을 얻고 그 내용들을 그렇게 대하는가를 문제삼은 것이다.
그래서 비유하면 결국 수소에 산소가 관계하면 물이 되고 철분에 산소가 관계하면 녹이 된다고 할 때 이 두 경우만 놓고 보아도 양 경우에 관계하는 산소는 설령 같다고 해도 그로 인해 나타난 물이나 녹이라는 결과를 놓고 그 앞 내용의 성품이나 모습을 찾아내기가 상당히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그렇다해도 그 내용들을 그처럼 얻어 놓은 경우에 해당하지만,
실재가 무언가를 문제삼을 때는 그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미 얻어 놓은 내용들 안에서부터 즉 시각정보를 놓고 청각정보를 살핀다거나 청각정보를 놓고 후각정보를 살핀다거나 후각정보를 놓고 미각정보를 살핀다거나 미각정보를 놓고 촉각정보를 살핀다거나,
또는 이들 모두를 놓고 그를 바탕으로 일으킨 관념분별 내용을 놓고 서로의 관계를 살핀다거나 할 때마다. 이들 상호의 관계가 모두 크게 엉뚱하다고 이를 보게 되는 것이고
이들 관계는 그래서 침대에 누어서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고 할 경우 그 침대와 바다나 황금의 관계처럼 서로 엉뚱하다고 일단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들이 또 아주 무관한 것도 아닌 것도 사실이다. 침대에서 누어 자서 그런 꿈을 꾸는 것이지 눈 쌓인 가시 덤불에서 자면 그런 꿈을 꾸겠는가.
그래서 이들 상황을 그렇게 기본적으로 잘 이해하고
그 다음 생사현실에 임할 때는 그런 기본 사정을 잘 파악하고
망집 증상이 심한 상대에게 그나마 망집 증상이 약한 이가 맞추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단 필요하다고 보게 된다.
그 반대는 더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이 유치원 교실에 들어가서 유치원 생하고 딱지와 구슬을 가지고 다투면 사회적으로 누구를 비난하게 되는가.
그런 가운데 표준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비난하게 되는 어떤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다른 이를 비난하지 말고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다른 이를 상대로 그런 일을 행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유념해야 하고
또 반대로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또 마찬가지로 다른 이에게 그것을 요구하지 말고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다른 이를 상대로 그것을 성취시켜 주려고 임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관계나 다른 생명과의 관계에서 수많은 내용을 나열할 수 있는데
그 핵심원리는 무엇인가하면 요약하면 결국 예수님이 정리해서 제시한 내용과 그 원리가 같은 것이다.
즉, 자신이 다른 이로부터 대우받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그 내용을 먼저 다른 이들에 그런 형태로 행해야 한다는 내용인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할 때 자신의 손 하나가 잘려지면 대단히 고통스럽고 설령 그것이 치료가 되어 낫는다해도 이후 오래 불편하다고 여긴다면 자신이 먼저 다른 생명을 상대로 함부로 손 발을 잘라대는 일부터 중지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가장 집착하는 것을 우선순위를 뽑아 나열해본다면 생사현실에 임하는 이 대부분은
먼저 자신, 자신의 생명,신체, 재산, 그리고 자신이 애착을 갖고 아끼는 가족 이런 식으로 나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알고보면 어떤 주체가 문제삼고 집착하는 그 모든 것은 여하튼 이와 관련이 되기에 그렇게 집착을 갖고 대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기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을 자신이 다른 생명으로부터 ㅎ 함부로 침해받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되는 원리는 간단한 것이다.
자신부터가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그런 것을 함부로 침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이해하고 생사현실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집착하는 그런 내용을 유독 자신만 집착하겠는가. 모든 생명이 생명인 이상 그것은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 원칙을 무시하고 임하면 우선 그런 사정때문에 바로 그런 업의 장애로 인해 자신부터 생사현실에서 묶이게 되는 것이고 또 사정이 그렇기에 다른 이를 생사현실에서 풀려나게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것이다.
그래서 만일 자신도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풀려나고 더 나아가 다른 이도 그렇게 풀려나게 하려면 자신부터 먼저 그런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하고 그 이후로도 계속 그런 노력을 해서 복덕자량을 확보해 구족하지 않으면 자신이나 다른 이를 생사고통에서 풀려나게 하는 것 자체가 곤란하게 된다.
자신은 다른 생명의 손과 발을 함부로 뚝뚝 끊어버리고 자신은 손과 발이 안 잘려지기를 바라면 그것이 이치에 맞는가. 마찬가지다.
자신이 상대에게 행한 내용을 가지고 그 상대가 자신에게 그렇게 임하게 되는 것이어서 이 사정을 넓고 길고 깊게 관하면 다른 생명에게 바라는 무엇이 있다면 자신부터 그것을 다른 생명을 향해 널리 행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 예를 들어 배가 고파 다른 이가 자신에게 빵을 주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이미 빵이 없는데 그 빵가게 주인에게 자신이 먼저 빵을 건넬 수 있겠는가.
그런데 만일 그렇게 배고파 하는 어떤 아이가 자신도 힘든데 자신보다 더 배고파하는 친구에게 자신이 가진 무엇을 나누어 준다면 그것을 보는 누구나 그런 아이에게 빵을 갖다 주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보게 되지만,
그런데 자신이 배가 고프다고 하여 자신보다 더 상태가 안 좋고 더 배고파하는 다른 친구가 먹는 빵을 빼앗아 먹고 그런 사정으로 서로 다툰다면 이것을 보는 빵가게 주인은 빵 가게 앞에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 몽둥이만 휘두르게 되는 것도 현실 사정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하나의 샘플을 놓고 수행자가 어떤 취지로 생사현실에서 임해 어떤 밑그림을 그려 놓고 광대무변한 서원을 일으키고 보시 정계 안인 정진 정려 반야 바라밀다라는 계, 정 혜3 학의 수행에 임하여 그것을 원만하게 성취하려고 하는가 하는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삶 자체가 힘들 뿐 아니라 삶 이후 즉 죽음 이후부터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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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3.bp.blogspot.com/-https://en.wikipedia.org/wiki/File:Claude_Monet_-_The_Artist's_House_at_Argenteuil.jpg Artist [show]Claude Monet (1840–1926) public domain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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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iles_of_Salt_Salar_de_Uyuni_Bolivia_Luca_Galuzzi_2006_a.jpg English: Salt mounds in Salar de Uyuni, Bolivia. Salar de Uyuni, 볼리비아의 소금 제방. Salar de Uyuni는 세계에서 가장 큰 (12,000 km²) 최고 (3 700 m)의 소금 평지, ca. Bonneville Salt Flats의 25 배입니다.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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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erito_Moreno_Glacier_Patagonia_Argentina_Luca_Galuzzi_2005.JPG English: Perito Moreno Glacier, in Los Glaciares National Park, southern Argentina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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