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62-05-04_율이십이명료론_001
Nino Ferrer - La Maison Près De La Fontaine
http://buddhism007.tistory.com/4462
● [pt op tr] fr sfed--율이십이명료론_K0942_T1461.txt ☞율이십이명료론
디스크마다 파일 및 폴더 형태가 달라서 일일히 대조를 하면서 정리를 해나가는데 언제 작업이 마쳐질 지 기약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치매증상도 자꾸 일어나는 듯 하다. 방금전에 한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전 조각글에서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살피고 집착을 제거하고 수행으로 전환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그런 바탕에서 무량겁에 걸쳐 중생제도와 불국토장엄 그리고 성불을 목표점으로 하여 수행에 임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자신이 대하는 현실은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는 한편 무량겁에 걸쳐 수행을 한다는 등의 내용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 허구적인 내용으로 보는 것이 일반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대하는 이 현실 안에서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을 이 생안에서 자신이 좋다고 보는 것을 많이 획득해서 누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보게 된다.
물론 일반적인 입장에서도 사후의 다른 삶이 또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또 이런 경우에는 사후에 어떤 세계가 어떤 형태로 있는가에 대해서 각 개인의 종교적 입장에 따라서 입장이 다르게 나뉜다.
그래서 현실에서 매 순간 선택하고 향해 나아가는 목표나 그 성취 방안도 달라지게 되는데 이런 여러 입장을 함께 놓고 생각하다보면 역시 마음이 산만하고 혼란스럽게 되기 마련이다.
물론 본인은 불교 경전을 바탕으로 이런 내용을 놓고 살피게 되는데 그러나 왜 그런 내용을 무슨 근거로 제시하는가가 명료하지 않으면 일반 입장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게 되고, 서로 입장이 극과 극으로 다르게 되어서 서로가 서로를 어이없다거나 어처구니 없다고 여기면서 대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살피기 위해서는 사실이나 가치 그리고 목표의 선택과 그 목표의 성취방안에 대해서 살펴나갈 내용이 대단히 많아진다.
그래서 상당히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것을 간단하게 접근하려면 어떤 주체가 무언가를 목표로 삼아서 성취하려고 한다면 도대체 그것을 성취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그것을 왜 성취하려고 하는가 이런 부분부터 접근해 나아가는 것이 쉽다.
그것은 앞과 같은 질문을 통해서 각 주제마다 제기될 수 있는 무량한 가정적 논의 가운데 논의할 필요가 없는 부분을 대폭 제거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성취하는데 그러나 정작 그것을 성취한 다음 그것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얻을 것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 무언가를 살피거나 그것을 어떻게 해야 성취하는가 등의 문제도 더 살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부처님이 제시하는 그런 수많은 목표점이 사정이 바로 그렇다.
즉 알고보면 그런 것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본래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는데 그런데 왜 그런 것을 성취하기 위해 무량한 겁에 걸쳐서 수행을 한다고 하는가.
그 사정이 경전에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그런 것을 본래 얻을 수 없기에 그렇게 수행하면 그런 까닭에 그것을 성취하게 된다.
이렇게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또 이것이 무슨 내용인가하고 어리둥절하게 된다.
그러나 알고보면 내용이 쉽다.
만일 그런 것을 본래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주체가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일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한편으로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일단 제시한 것이다.
그런 바탕에서 현실과 같은 내용이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중생제도와 불국토장엄과 성불을 서원으로 하는 수행자는 이 가운데 생사현실에 들어가서 임하여 그런 바탕에서 그런 서원을 성취해나간다는 측면을 또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는가. 이 부분은 이전 조각글에서 동가홍상의 원리로 이것을 설명한 바 있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거꾸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즉,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데 왜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서 그런 좋고 좋은 상태를 성취하지 않으려고 할 것인가. 알고보면 이것이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해서 수행을 하는 취지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제시하면 일반적인 입장에서 선택하는 경우와 그 차이가 명료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회계 원리를 이용해서라도 손익계산서나 대차대조표 형태로 각 선택의 경우마다 극과 극으로 차이나는 결과를 비교해보는 활동이 또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손익계산서가 지금 당장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고 이런 측면에서 연구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어떤 선택을 하는데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손해를 덜어주거나 큰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면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겠는가. 일반적으로 그러지 않는다.
그런 사정 때문에 일반적인 입장에서 수행으로 전환해 나아가게 하려면 수행을 하면 수행을 하지 않는 경우와는 달리 이런 손해가 없게 되고 반대로 이런 이익이 있게 된다는 내용을 명료하게 잘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이 실답지 않고 환과 같고 꿈과 같은데 이처럼 실답지 않은 현실에서 도대체 어떤 환과 같은 이가 어떤 수행을 어떻게 한다고 하는 것인가.
이런 문제를 살피려니 어디서부터 살펴나가야 할 것인가 조금 막막해진다.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이에 관해 살펴왔는데 그것을 다시 처음부터 다시 살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 행하는 파일 정리작업도 상당히 번거롭고 성가신 일인데 이 두 작업을 같이 하려니 마음이 복잡해져서 일단 다 그만두고 좀 쉬고 싶어진다.
그런데 쉬는 동안, 아직 귀환할 시점이 아니고 써야할 내용을 다 쓰고 귀환하는 것이 좋다는 그런 메세지를 전하는 노래를 듣게 된다.
노래나 사진 이런 것들이 따지고 보면 별 것이 아닌데 그러나 또 노래를 듣거나 사진을 보거나 하다 보면 조금 마음이 달라진다.
그간 수많은 작전명을 붙여가며 연구를 진행해 왔는데
가치회계와 추구미(쭈구미)작전 끝장득도작전 이런 부분에서 살폈던 내용이 오늘 주제로 잡은 내용과 관련이 된다.
불기2562 년에 잡은 연구제목은 마음에 대한 심화 연구인데 이 주제는 과연 한 주체가 고려할 자신의 존속기간을 어느 정도로 잡고 이런 주제를 살펴야 하는가하는 부분과 관련이 깊다.
현실에서 이런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doctr 님의 사례를 놓고 생각해보면 doctr 님이 현실에서 매번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하는 주제는 주로 이런 것이다.
자산이 어떤 형태로 있을 때 이 자산을 팔고 다른 자산을 구입하는 것이 과연 이익이 많은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것이 나은가. 이런 문제가 주된 내용이 된다.
그리고 세상을 둘러 보면 그런 고민을 일으키는 재화의 품목이 대단히 많다.
쉽게 생각해보면 이렇다.
요즘 주식이나 코인의 시세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대부분 잘 아는데 자신이 일정액을 현금으로 보유한 경우와 어떤 특정 종목에 투자한 경우를 놓고 생각하면 이 문제가 왜 문제가 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 3 달이 지났는데 각 경우 그 가격이 변동하여서 자신이 투자한 종목의 가격이 폭락했다던지 아니면 상승했다던지 아니면 그대로라고 할 때 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그러니 지금 순간의 고민은 어떤 종목에 투자를 해야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주된 초점이 된다.
투자종목이 그렇듯 자신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가장 수익을 많이 얻고 좋은 지위나 명예를 얻고 한마디로 좋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이 현실에서 초점을 맞추게 되는 고민이다.
그런데 이런 고민에서 늘 그런 문제의 초점을 이루는 부분은 명료하게 의식을 하던 하지 않던 그런 고민을 하는 주체가 매 경우 관련이 된다.
무슨 말인가하면, 앞과 같은 수익의 증대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 그 고민이 자신이 아닌 다른 갑이나 을의 수익의 증대를 놓고 문제를 삼는 것이 아니다.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자신이 자신도 모르는 로버트나 바바라양이나 톰의 수익이 어떻게 하면 늘어날까 이런 것을 놓고 고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여러 희망도 사정이 같다.
그래서 그런 여러 희망을 고려하는 범위도 그런 희망을 갖는 자신이 존속하는 기간을 미리 고려에 넣고 그런 여러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앞으로 아무리 길어도 50 년 이상은 더 살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1000 년후에 자신이 살 주택을 어디에 마련해야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겠는가.
또 자신이 50 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여기는 이가 1000 년후에는 자신의 보유자산을 어떤 형태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수익이 좋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겠는가.
그래서 알고보면 그런 고민을 하지 않게 되는데에는 무의식중에 자신이 삶에서 고려해야 할 자신은 대략 아무리 길얻도 100 년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거나 현실적으로 대략 한 10 년 만 잘 살면 되는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미리 그 범위를 한정하고 이런 문제에 임한다.
그런데 자신이 대략 30 년을 살아왔던 50 년 정도를 살아왔던 간에 여기에 이상한 퀴즈가 갑자기 퀴즈로 제출된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누구나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을 붙잡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모습으로 이런 형태의 몸을 갖고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모습을 잘 붙잡아 놓고 이것을 자신이 막 태어난 시점이나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시점으로 밀어 넣으면 거기에 그런 형태의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 순간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이는 또 대단히 드물다.
그래서 그런 순간에 그가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한 내용을 다시 붙잡아 놓고 지금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내용과 어떤 부분이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른가를 곰곰히 잘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왜 문제되는가하면 모든 희망의 중심에 자신이 있는데 그 자신이 과연 무엇인가가 명확하지 않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도 아닌 로버트나 바바라양 또는 영희나 철수의 삶을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그러나 처음부터 자신이 무엇인가가 명료하지 않으면 공연히 자신과 관계없는 다른 일을 놓고 그런 고민을 하며 엉뚱한 일을 행하기 쉽다.
지금의 자신을 위해서라면 초등학교 때나 중고등학교 때 어떤 아이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노력을 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나 그 당시 그 아이를 기준으로 하면 그런 공부는 나중에 그것이 필요한 그 어른이 그렇게 하면 하는 것이고 자신은 정신없이 노는 것이 제일 좋다. 이런 두 입장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을 다 자신이라고 지금의 자신이 생각하지만, 알고보면 그 두 내용에 공통점이 거의 찾아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하튼 자신은 그런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자신을 찾아내고자 할 때 어떤 초등학교 교실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 가운데 다른 아이들은 자신이 아니라고 하는 한편 아주 특정한 어떤 아이만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한다. 그래서 이 미스테리부터 사실은 잘 해결해야 한다.
이전 조각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 문제를 접근했다.
이 두 내용을 살피면 육체나 정신안 내용이나 공통점이 잘 발견되지 않는다.
초등학생은 지금 자신이 하는 생각이나 지식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 이후 겪었던 여러 경험도 갖고 있지 않고 육체를 구성하는 요소는 그 외형도 다르고 내부 구성 물질도 알고보면 하나도 같지 않다.
이것은 요즘 의학계에서 보고하는 내용으로 7 년 정도가 경과하면 한 주체의 육체내 구성물질은 순환과정을 통해서 완전히 다 달라진다는 보고를 기초로 한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구성하는 물질의 대부분은 7 년전의 자신을 놓고 생각하면 그 당시 배추밭에 있었던 물질 그리고 돼지나 닭을 기르는 축사에 있었던 물질 그리고 강이나 바다나 산에 있었던 물질 이런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자신이라고 보았던 그 부분에 있던 물질이 지금도 있다고 여긴다면 그런 부분을 찾아내자. 그리고 그런 것이 있다면 아마 그것이 자신을 이루는 핵심요소일 것이라고 여기고 마음안 내용이나 육체를 구성하는 내용들에서 그것을 찾아내보자라고 임하면 대단히 곤란하게 된다.
요즘 본인이 코스모스란 우주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는데 그런 책을 하나 읽는다면 그로 인해 자신의 마음에 그런 내용이 새로 들어온다. 그런 경우도 엄격하게 보면 문제가 된다.
이는 레고블럭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경우를 놓고 생각하면 쉽다. 한번 레고블럭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이것을 본드로 붙여서 영구보전하면 좋겠는데 그런데 현실에서 먹고 싸고 놀고 하고 쉬고 자고 하는 활동을 생명이 한다는 것은 매 순간 그런 레고블럭을 다른 곳에서 섭취해서 자신을 구성하는 부분에 있던 레고블럭을 내보내고 새로운 레고블럭으로 붙이고 그런 작업을 계속 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 과거에 만든 작품과 대충 외관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런데 알고보면 지금 작품을 구성하는 레고블럭은 과거 7 년전에 대충 비슷하다고 보는 그 작품을 구성한 레고블럭과는 다 다른 레고블럭으로 그 작품이 된 상태다. 그러니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7 년전에 자신이 7 년 후의 자신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것은
마치 어떤 레고블럭으로 만들어진 로봇이 자신 주변 예를 들어 배추밭이나 소 돼지 축사에 들어 있는 수많은 레고블럭을 놓고 고민하는 것과 상황이 비슷하다.
이는 육체를 구성하는 요소도 그렇지만, 정신안에 들어온 내용물도 이와 상황이 엇비슷하다. 그래서 어떤 글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면 조금씩 사람 성격도 바뀌고 말내용도 달라지고 그러는데 그것이 알고보면 현재 자신을 특징짓는 요소들이다.
자신이 현재 한국말은 잘 하고 일본어는 잘 못하고 지금 올려 놓는 불어 노래는 한국어로 잘 알아듣고 이런 이상한 형태가 된 것이 바로 지금의 자신이다.
그런데 그런 요소가 달라지면 자신인가 아닌가. 이런 어려운 퀴즈가 제출된다.
그런데 왜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어떤 존재가 자신과 무관하다면 그것을 놓고 왜 자신이 고민하겠는가.
그런데 만일 초등학교 시절이나 지금이나 이처럼 매순간 다르고 또 시간이 지나 전혀 엉뚱하게 달라진 여러 내용을 놓고 그것을 모두 다 자신이라고 보면서 함께 고려를 해야 한다면 그렇게 서로 다른 각 순간의 내용을 자신이라고 보는 한편 또 한편으로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다니는 다른 아이는 자신이 아니라고 보게 하는 그런 요소를 일단 잘 모르지만, U 라고 표시하고
바로 이 U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내용이 대단히 많이 다른 각 내용을 다 함께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일단 제시한다.
그래서 자신이 10 년후의 자신을 또 고려에 넣고 어떤 고민을 한다면 그것도 바로 그 10 년후의 어떤 존재가 지금의 자신이 모두 그런 U 로 인해서 다 함께 자신이라고 보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U 가 과연 50 년이 되면 이제 더 고려할 필요가 없게 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고 100 년 정도는 고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불교 경전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무량한 겁을 두고 고려해야 하는 그런 내용인가 이것이 처음에 문제가 된다.
일단 내용이 길어졌으므로 여기까지 쓰고 쉬기로 한다.
○ [pt op tr]
▼mus0fl--Francois Feldman - Le Mal De Toi.lrc
왜 실답지 않은 현실에서
자신이나 세계라고 보는 내용도 본래 얻을 수 없고 생멸이나 생사고통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하면서도 그런 가운데 실답지 않은 수행자가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을 받아가면서 무량겁에 걸쳐 수행을 해서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해야 한다고 하는가.
이런 주제를 놓고 지금 살피는 중이다.
사실 현실에서 살아가는 일반적입장에서 무언가 선택할 품목이 많이 앞에 나열되어 있을 때 이것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할 이유나 사정이 있어야 그렇게 하게 된다고 보고
각 선택마다 차이가 나는 결과에 대해 손익계산서나 대차대조표를 미리 제시해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좀더 선택이 쉽게 이뤄지리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선택이 앞에 제시한 수행의 방향으로의 선택이 되야 한다는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런 논의를 하려면 기초적으로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무엇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주제로 기존에 추구미작전의 일환으로 논의했던 가치회계의 이론을 또 다시 나열해 설명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앞에서 그런 선택을 하는 각 주체는 자신이 무엇이고 그런 자신과 관련해 고려해야 할 기간이 도대체 어느 정도의 범위인가 하는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이 문제를 살폈다. 그런데 이 문제도 자세히 살피자면 상당히 분량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 논의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서 조금 논리의 비약이 있을지라도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과거 조각글로 넘기거나 추후 논의 주제로 남겨두고 내용을 압축하고 건너뛰어서 결론으로 나아갈 필요도 있다.
앞에서 어떤 이가 갓 태어난 시점이나 초등학교 시절 그리고 성인이 되어 활동하는 지금 시점을 놓고 각 순간에 자신이라고 보고 대한 내용이 매 경우마다 크게 차이가 나서 서로 같다고 보기 힘든데 그러나 그 주체는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내용을 매 순간 자신이라고 보고 대한다는 기이한 현상을 소개했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렇게 기이한 일도 아니다. 현실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매순간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이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알고보면 각 주체가 명료하게 이 문제를 의식하던 하지 않던 한 주체가 매 순간 자신이라고 대하는 내용과 관련해서는 그런 기이한 사정이 있다.
그런데 여하튼 그렇게 매 순간 다른 내용을 한 주체가 다 자신이라고 여기는 한편 그러나 매 순간 엇비슷하게 존재하는 다른 이들은 또 자신이 아니라고 여기게 하는 요소를 U 라고 일단 표시한다면 그런 U는 불교의 경전에서는 무량겁에 걸쳐서 존속하는 것이라고 일단 제시한다.
그래서 그런 입장에서는 어떤 주체가 자신의 삶과 관련해 고려해야 할 기간이 단순히 50 년 100 년이 아니고 천년 만년도 아니고 억년 조년도 아니고 1 겁 2 겁도 아니고 무량한 겁에 걸쳐서 자신의 삶의 문제를 놓고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된다.
노래를 뽑아 올려 놓고 듣다보니 노래에서 형제가 많아야 좋다. 설령 형제가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렇다 이런 메세지를 전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현실이 그렇다.
지금 컴퓨터로 쉽게 쉽게 다른 외국의 풍광도 보고 다른 이가 부른 노래도 듣고 다른 이가 촬영한 아름다운 사진도 그 때 그 때 뽑아서 올려 놓고 감상하는 것 등등을 포함해 현실에서 한 주체가 행하는 것은 사실 무인도에서 자신 혼자 고립되어 생활한다고 가정하는 경우에는 하나도 성취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라이터 화두가 제시하는 내용처럼 현실에서 라이터 하나를 가지고 불을 켜는 것이 대단히 쉽게 이뤄지는 일이지만, 그것을 자신이 혼자 무인도에서 살아가면서 맨 땅에 해딩하는 심정으로 하나나하 자신이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면 인류가 한 300 만년전에 생활한 흔적이 보이는 가운데 불을 사용한 흔적이 3 만년전이라고 추정이 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런 라이터 하나를 사용하는 데에도 대략 300 만년의 시행착오와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도 인간의 경우가 그런 것이지 오랑우탄이나 곰과 같은 경우를 놓고 보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부싯돌도 아니고 라이터를 가지고 쉽게 불을 사용한다는 사정은 수많은 형제가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그런 것이 쉽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놓고 잘 음미해야 한다.
그리고 라이터 하나가 그렇다는 것을 통해 현실에서 대하는 수많은 내용들이 다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잘 파악하고 음미해야 한다.
또한 라이터화두에서 라이터가 의미하는 바가 빛을 만들어 내는 도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서 얻는 지혜 광명과도 관련이 된다.
그리고 이런 내용도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다.
현재 불기2562년이므로 2562 년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가운데 오늘날 대하는 경전을 남겨주지 않았다면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경전이 지금까지 해인사에 보관된 목판 형태로 보관이 되어 있다면 또 그것도 지금 상황과 대단히 다르다.
지금 그 경전 내용이 불교계의 노력을 통해서 다 컴퓨터파일 형태로 무상 제공되고 있는 상태이어서 누구나 원하는 경전을 쉽게 참조해 볼 수 있고 또 그런 가운데 낱글자 검색을 원하면 글자 검색도 전 경전을 놓고 쉽게 행하여 찾을 수 있는 상태인 것이어서
과거처럼 경전 하나를 참조하기 위해 논 밭을 팔아가면서 경판으로 책을 찍어 살펴보아야 했던 상황과는 대단히 다르다.
그래서 감사를 느끼고 대할 내용이 현실에는 대단히 많다.
그런 가운데 경전을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과 과거에 형제 관계로 있던 이들이 하나같이 다 부처님이 되어서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렇게 그 부처님들이 다 같이 형제로 지내던 시점이 도대체 언제라고 제시하는가 하면 겁이라는 시간 단위를 통해서도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운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삼천진점겁 또는 오백진점겁 이런 표현으로 그 기간을 경전에서 제시하는데 위 내용은 묘법연화경 화성유품에 16왕자와 관련된 내용으로 삼천진점겁 전의 일로 그 내용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것은 알고보면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모래알 수를 세는 문제도 아니고 갠지스 강가에 있는 모래알을 세는 문제도 아니고 우리가 오늘날 한 은하 정도로 생각하는 우주를 놓고 그 우주안에 있는 먼지나 티끌 수를 일단 세는 문제부터 착수해서 그런 숫자를 기본적으로 헤아려야 이것을 가지고 이 삼천진접겁이나 오백진점겁이라는 표현에서 겁이라는 시간 단위에 붙인 숫자를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여하튼 1억 겁 1 조 겁보다는 상당히 많은 숫자를 나타내는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삼천진점겁과 오백진점겁 가운데 어떤 것이 더 긴 시간을 말하는가 하면 삼천진점겁이라고 답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10억 세계의 티끌수를 세어가면서 숫자를 세어 겁이란 기간을 세어서 제시하는 내용이 단순한 상상적 이야기인가.
이것이 불교 수행자가 처음에 대하게 되는 문제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수행자가 수행에 임하게 되면 최소한 이런 기간을 미리 념두에 두고 수행을 해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번 생 100 년 내지 남은 기간 10 년 이 정도를 놓고 어떤 문제를 대하고 그 안에서 가치의 경중을 살피고 선택을 하는 문제와는 극과 극으로 입장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미 앞에서도 초등학교 시절에 자신이라고 여기는 입장에서의 생각과 어른이 된 시점에서 자신이라고 여기는 입장이 취하는 생각이 서로 달라지는 사정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좁고 짧고 얕은 관찰을 통한 협단천 관찰과 넓고 길고 깊은 관찰을 통한 광장심관찰의 차이이기도 하다.
무슨 이야기인가. 어떤 이, 예를 들어 초등하교 시절의 어떤 아이가 자신이 대하는 단 하루만 놓고 문제를 살피면 그날 하루 놀 수 있는 만큼 다 놀고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고 그렇게 마음껏 하며 지내는 것이 그 하루만 놓고 보면 가장 좋다.
문제는 그 아이가 그로 인해서 평생 직업도 갖지 못하고 살게 되었다면 이제 그것은 또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고 보게 되는 측면이 있다 .
그런데 왜 같은 내용을 놓고 이렇게 서로 다른 평가를 하게 되는가는 바로 앞에 제시한 협단천 관찰과 광장심 관찰이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협단천 관찰을 통해서 지금 자신의 이런 기준에서 가장 좋다고 보는 내용이 광장심 관찰을 통해서 대하면 최악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을 때 그 선택을 대단히 어렵게 만드는 한 요소가 된다.
앞에 그 사례를 하나 든 것인데 그것은 단지 그런 사례가 그런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 매 순간 만나는 문제가 다 그런 성격을 갖는다.
그러니 수행자는 처음 자신이 고려할 기간이 도대체 백년인가 천년인가 아니면 억년인가 아니면 겁인가. 겁도 아승기겁인가. 진점겁인가 이런 문제를 놓고 한번은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을 생략하고 문제를 대하면 판단 자체가 처음부터 극과 극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 자신이 대하는 오늘 하루만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 입장과 진점겁을 놓고 고려애 한다는 입장은 당연히 극과 극으로 그 선택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서 수행자가 취하는 내용과 일반인이 취하는 입장이 극과 극으로 달라지게 되는 기본 바탕이기도 하다.
그러니 수행자가 그런 극과 극으로 다른 입장에서 그런 광장심 관찰을 통해 무언가를 선택한다고 한다면 그런 선택의 바탕으로서 그런 선택을 하는 주체가 그 주체와 관련된 기간을 그렇게 잡고 살펴야 할 근거를 처음에 제시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왜 그런가. 아무리 길어도 백년이 지나면 다 매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거나해서 사라지게 되는데 왜 그렇게 엉뚱하게 긴 기간을 놓고 이 문제 저 문제를 살펴야 한다고 하는가 이것부터 잘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 초등학교 시절과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놓고 자신이라고 하는가 하는 문제를 살폈다.
지금 인턴연구원이 나타나서 본인이 작업을 하는 컴퓨터를 차지하고 게임을 하느라 현재 작업이 또 어려워졌다. 그런데 과거 이 인텬연구원을 놓고 이런 문제를 많이 살폈다
본인만 50 년 기간을 놓고 그렇게 전후가 달라진 것이 아니고 동네의 영희나 철수도 그렇고 대부분 사정이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 과거에 대했던 친근한 인턴연구원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아서 행방불명이 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는데 요즘은 엉뚱한 한 소년이 자꾸 본인이 찾는 행방불명된 인턴연구원이 바로 자신이라고 자꾸 주장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알고보면 그렇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또 잘 살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떻게 100 년이 아니고 무량겁으로 나아가는가 하는 문제는 그 결론만 간단히 제시하면 수학의 무한의 이론을 이해하면 대단히 쉽다.
수학에서 어떻게 무한수를 증명한다고 하는가. 알고보면 그것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다.
어떤 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수를 제시해보자. 그리고 그 수에 다시 1 을 더할 수 있는가를 놓고 생각해보자. 가능한가. 그렇다면 무한이다. 이렇게 제시한다.
지금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이 무언가를 자세히 살피기 전에 현재 자신이 분명 초등학교 시절에도 지금과 대단히 다른 형태로 있었는데 그 때도 자신이 그렇게 있었다고 하면서 그렇게 보는 요소를 U 라고 표시한다면 그 U 가 바로 그런 성격을 갖고 무한 겁에 걸쳐서 이어진다는 내용을 불교 경전에서 기본적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번 생 안에서는 그런 것이 설령 있다고 해도 생사 전후를 걸쳐서 어떻게 그것을 밝힐 수 있겠는가. 라는 문제가 다시 제기된다.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접근하면 쉽다.
앞에 제시한 U 를 확인할 수 있는 이번 생의 첫 출발점으로 가서 그 U 가 그 이전 시점에는 전혀 없었다가 그 시점에 돌연히 생겨난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 문제를 살피면 간단하다.
그래서 U 의 정체를 살피는 가운데 이 문제를 살피면 수학에서 무한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이 U가 생사전후를 통해서 그런 형태로 이어지고 그것이 무한겁을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나아가도 그 사정이 달라지지 않기에 그렇다라고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밝히려면 무한 겁을 앞 뒤로 나아가서 그 문제를 살피는 것이 아니고 지금 찰나를 놓고 그 문제를 살핀 다음 그것이 무한겁 앞과 뒤로 나아간다고 해서 그 사정이 달라질 이유가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면 쉽게 해결이 된다.
여하튼 논의를 많이 건너 뛴 측면이 있지만 불교의 입장에서는 바로 이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대하는 자신은 초등학교 시절 부터 지금까지 살핀다고 할 때 매 순간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어서 앞에서 제시한 U 를 기준으로 한다면 자신이 현재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은 비유하면 그 U 가 매일 매순간 바꿔 입고 활동하게 되는 옷과 같은 성격을 갖는 것에 불과하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지금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이 그런 옷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을 다 제거한다면 지금 이 순간 자신이라고 할 내용을 현실에서 찾아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물론 그 내용이 초등학교시절로 돌아가면 하나도 찾아낼 수 없는 내용이고 또 반대로 초등학교 시절에 그 당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본 내용들은 지금 순간 찾아낼 수 없는 것이어서 비유하면 초등학교 시절 당시 자신이라고 본 내용은 이미 사망해서 장례를 치루고 화장을 해서 강에 재를 뿌려 버린 그런 상태와 엇비슷하다고 보게 되지만,
여하튼 그 시절에도 자신이 있었고 지금도 자신이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보게 하는 것을 U 라고 일단 표시한다면 그 U 의 입장에서는 이처럼 매 순간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그 내용들은 그 U 가 그 순간 잠시 걸치고 있는 옷과 같다고 비유로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각 순간에 그런 옷이 또 전혀 필요없는가하면 또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을 이 순간에 다 제거하면 도대체 무엇을 자신이라고 하고 무엇이 이 현실에서 어떤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제시할 사정이 전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옷의 비유다.
현실의 옷도 마찬가지다. 비록 자신이 지금 걸치고 있는 옷이 자신의 본질적인 내용은 아니라고 해도 지금 자신이 현실에서 활동하려면 그런 옷을 걸치고 활동해야 하는 것이 사실아닌가.
그리고 그 옷이 자신의 본질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어떤 모임에 잘 차려입고 나갔는데 어떤 이가 그 옷에 커피를 쏟거나 또는 오물을 끼얹거나 하면 그 활동이 방해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자신이 좋은 옷을 차려 입고 있었는데 갑자기 옷을 빼앗기고 어떤 걸인이 입는 더러운 옷을 입게 되었다면 또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 참석하려는데 입구에서 제지를 당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것이 자신이 걸치는 옷에 불과하다고 비유할 때 이 옷이 과연 인간의 차림인가 아니면 도룡뇽의 차림인가 아니면 나비의 차림인가 이런 문제가 중요하다.
그것은 지금 자신이라고 보는 형태가 초등학교 아이의 모습인가 아니면 청년의 모습인가 아니면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노인의 모습인가가 현실에서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무량겁에 걸쳐서 이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고 한 주체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이후에 축생이나 아귀 지옥세계의 중생이 걸치는 옷을 입고 그렇게 지내게 되면 대단히 곤란하다고 보고 그렇게 되지 않을 선택을 지금 그나마 좋은 인간의 옷을 입고 있을 당시 이런 내용을 잘 고려해서 선택을 해야 한다.
오늘 올려 놓은 『율이십이명료론』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계율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불교를 연구해도 계율부분에 대해 오래 공부한 입장이 아니면 잘 파악하기 힘든 내용들이라고 개인적으로 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많은 계율 내용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이 소개 되고 있고 이것으로도 일반적으로는 충분하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이 내용이 왜 현실이 실답지 않다고 하면서도 수행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내용으로 반복해 제시되는가 하는 사정은 알고보면 바로 위 내용과 관련이 되기에 그런 것이다.
본 바탕이 되는 청정한 실상만 놓고 보면 이런 계율은 본래 문제될 바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우선 당장 자신이 3 악도에서 받을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더 나아가 다른 중생도 그렇게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려면 이런 내용을 잘 준수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런 계를 지키지 않으면 본 바탕의 측면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도 생사현실 안에서는 자신이 쌓은 업의 장애도 해소가 되지 않고 따라서 자신이 3 악도의 고통을 벗어날 도리도 없고
또 설령 자신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해도 다시 다른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복덕 자량도 구족할 도리가 없고
또 계를 성취하여 복덕자량을 구족하지 못하면 이후 중생제도와 불국토장엄과 성불에 필요한 지혜자량도 역시 구족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하나같이 그런 생사자체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고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제시하는 본 바탕 실상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전혀 아니고
실답지 않지만 그러나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며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생사현실 안에서 그것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문제된다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그런 내용을 고려할 주체가 도대체 어떤 세계에서 어떤 기간에 걸쳐서 어떤 형태로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되는가가 먼저 잘 이해되지 않으면 이 내용 전반이 잘 이해가 되지 않게 된다.
글을 너무 길게 적어서 오타가 심해지고 입력이 잘 안되니 일단 쉬기로 한다.
올려 놓은 노래를 반복해 듣는 가운데 형제가 많아야 좋다고 보는데 그러나 그 형제가 다 부처님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한 형제는 지옥에 가있고 한 형제는 아귀세계에 가 있고 한 형제는 축생계에 있고 그렇다면 좋겠는가.
그런데 반대로 형제들은 다 부처님이거나 하늘 세계에서 잘 지내는데 자신만 거꾸로 지옥이나 아귀 축생세계에서 고통을 받고 지낸다면 좋겠는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래도 자신만은 좋은 상태로 있어야겠다고 하고 자신을 우선하겠지만
그러나 가능하면 자신의 형제가 모두 다 부처님이 되어 지내면 가장 좋다. 그리고 무량겁에 걸쳐 형제관계로 지낸 이들이 모두 다 그렇다면 더욱 좋은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지금 자신이 거울을 보고 자신이라고 여기는 내용을 대하는데 왜 하필이면 그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고 도룡뇽의 모습이 아니게 되었다고 보는가.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그저 자신이 이렇게 사람으로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여기고 이는 처음 삶을 출발할 때의 단순한 우연과 확률문제라고 대한다면
오늘날 유통되는 생물도감과 같은 책을 하나 펴놓고 확률상 인간의 형태로 태어나 생활할 확률과 그외 생물도감에 보이는 다양한 형태의 생명으로 태어나 살아갈 확률 사이에 어떤 것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인지를 먼저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하튼 자신은 지금 그런 생명이 아니고 인간의 형태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왜 하필이면 이런 형태로 사는가의 문제를 잘 해결해야 앞으로도 왜 하필이면 그런 형태로 삶을 살아가게 되었는가의 문제가 다시 제기될 때 오늘의 내용을 놓고 그 사정을 잘 이해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doctr님처럼 매번 차트를 보고 거래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거래하는 품목이 왜 가격이 올랐는지 또 내렸으면 왜 내렸는지 사정을 모르면서 그저 행여 자신이 선택한 품목이 최고가로 상승하기를 바라는 도박사의 심정으로 매번 알지도 못하는 선택을 반복하게끔 된다.
현실에서 제기되는 이런 무량한 if 문제를 하나하나 답을 잘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지만,
정말 이 문제를 잘 안다면 사실은 그런 부분에 대해 고려를 기울이는 시간 자체를 아끼고 그에 대한 관심을 대부분 제거하게 된다는 것을 이전 조각글에서 제시했는데 현실에서 대부분 그렇게 임하지 못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매 순간 제출되는 이런 무량한 if 문제에 대한 답을 잘 알지도 못하는 한편 그러나 또 한편 그런 if 문제에 대한 선택을 가장 잘 해서 얻게 되는 좋은 결과만은 대단히 원하고 집착한다는 사정 때문에 매 순간 그렇게 임한다는 안타깝고 한심한 사정을 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왜 그러겠는가. 그리고 진작 그렇지 않았다면 또 왜 지금은 그 모양 그 상태이겠는가.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관찰자 입장에서는 본다.
그래서 일반적인 입장과 극과 극으로 달리 현실을 대하는 수행자가 어떤 사정에서 그런 내용을 외면하게 되는가 하는 사정부터 자세하게 제시하고 살펴나가야 한다.
노래를 뽑아 듣다보니 파순이란 존재가 제시되는데 이 파순은 알고보면 욕계에서 가장 수승한 상태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문제는 욕계에서 그렇다는 것이 그 한계점을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파순에게 누군가 무언가로 기소를 당하고 또 구조를 요청한다는 안타까운 메세지를 듣게 되는데 이 사정이 바로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서 제거하고자 하는 3 악도의 생사고통과 관련이 된다.
오늘날 일반인이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아귀나 지옥계를 제외하고 생각하더라도 현실 안에서도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현실에서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가치 회계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쉽게 이 문제를 보자. 오늘날 어떤 이상한 나라에서 갑자기 이상한 권력자가 나타나서 그 나라의 재벌을 모두 일시에 체포해서 철봉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몇 분간 고문을 하면 그가 가진 전 재산을 그 권력자에게 다 기부하게된다고 보는가.
길어도 30 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재벌이 현명하다면 3 분도 채 안 걸리고 또 심지어 그렇게 철봉에 매달리는 일도 없게 된다.
그런데 왜 그런가.
이것이 바로 수많은 항목의 가치를 놓고 그 경중을 따지는 문제다.
여기서 이런 결론을 잠시 도출할 수 있다. 재벌이 가진 재산은 30 분 거꾸로 매달려서 당하는 고통을 면하는 것보다 가치가 덜하다.
그런데 만일 사정이 그렇지 않다면 그런 상황에서 다시 30 분 이상 더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치 회계에서는 가치를 재는 접시 저울을 놓고 한 쪽에 자신의 두 눈을 올려 놓고 다른 저울에 현실에서 거래되는 모든 재화와 현금을 어느 정도 올려 놓으면 그것이 균형을 이루는가 이런 문제도 가치회계의 기본문제로 제출된다.
이런 경우 얼마쯤 현금을 올려 놓아야 그 가치가 서로 엇비슷하게된다고 보게 되는가.
만일 이런 문제에 적당히 임하고 답을 적어 넣으면 그 이후 이후 문제도 마찬가지로 그처럼 적당하게 대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그 내용을 그대로 자신의 삶에서 그처럼 겪게 된다고 이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렇게 보고 매번 그런 기준으로 선택을 해나가기 때문이다.
앞에서 두 눈을 올려 놓고 문제를 내니 적당히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써 넣었다면
이제 콩팥이나 간도 그렇게 문제가 제출되면 또 그렇게 임하고 나중에는 심장을 올려 놓아도 또 그렇게 임하기 쉽다.
이것이 가치회계에서 가치를 측정하는 기본 기준추가 될 가치 내용을 일단 측정하는 방안이다.
이런 가운데 선택이 문제되는 항목들 가운데 오직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할 때 양쪽에 올려진 것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것이 현실 매순간에 그렇게 출제되는 퀴즈다.
그래서 앞 문제를 자신이 일정하게 임했다면 바로 그런 자세로 매 순간 그런 내용을 추구하면서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임해나가면 그 삶이 그런 형태로 규정되고 그런 가운데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 자신의 모습 자체가 그런 매 선택의 내용에 상응한 일정한 세계에서 일정한 모습으로 변해서 임해 나가게 된다는 사정을 지금 불교 경전에서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가치회계에서 문제로 보게 되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정도에 따라 탐욕이 치성하면 아귀 분노가 치성하면 지옥 어리석음이 치성하면 축생 이렇게 3 악도에 가게 되는 기본 사정을 제시하는데
알고보면 근본 어리석음 무명이 이런 욕계의 생사고통을 초래하는 것이므로 어리석음이 이런 생사고통을 받는 가장 근본된 원인이라고 제시한다.
무량한 if 문제가 제출되어 어떤 항목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나은가 이런 문제가 처음 제출될 때 3 악도로 묶여 끌려 가게 되는 엉뚱한 항목을 처음에 붙잡고 늘어진 그 사정이 무언가 하면 결국 그런 문제에 대한 답 차체를 잘 찾아내지 못하게 한 어리석음이 그 근본 원인이다.
그래서 알고보면 생사고통을 받게 된 가장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죄목이 무언가 하면 근본 무명 어리석음이 그 죄목이다.
그런데 이 근본무명이 제거된 상태에서는 이 상황을 무엇이라고 보게 되는가하면
본래 그런 생사고통은 얻을 수 없고 일체가 모두 그 본 바탕이 청정한데 그러나 그런 근본 무명에 덮여서 망집을 일으키고 현실에 임하면
그처럼 실답지 않은 생사고통을 그런 형태로 받아나가게 된다는 사정을 관하게 된다.
그러니 이 문제를 지금 잘 해결하지 못하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머지 않아 그런 상태가 된다는 사정도 잘 이해해야 한다.
처음 가치 회계 문제에서 기본적으로 제출되는 문제를 살폈는데
자신의 두 눈의 가격이 얼마인가 하는 문제가 제출되면 대부분 그 가격을 적기를 망설이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그 값이 적어서가 아니라 대단히 높다고 보지만, 그러나 정확히 얼마로 적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잘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문제를 조금 달리해서 축사에 있는 돼지의 생명이나 돼지의 두 눈의 값은 얼마인가. 또는 어시장에 있는 생선의 생명이나 두 눈의 값은 얼마인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출되면 그 답을 적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고 그 답을 적는데에도 별로 주저하지 않는 것이 또 대부분이다.
그래서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생선이나 돼지의 두 눈 값으로 만원을 치뤘는데 이것이 비쌉니까 쌉니까 비싸면 얼마 정도를 지불하는 것이 적절합니까. 이렇게 물으면 아주머니가 시세를 파악해서 답을 해주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그 아주머니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사정이 비슷하다.
그런데 또 알고보면 그렇게 적어내는 그 가격이 곧 그 아주머니의 두 눈의 가격이 되기도 한다.
왜 그렇게 되는가. 그것을 잘 이해하는 것이 바로 광장심 관찰의 내용이기도 하고 또 생사현실에서 전개되는 인과관계를 잘 이해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또 현실에서 매 순간 제기되는 무량한 if 문제에 대한 답을 잘 찾아내는 방안이기도 하고 그리고 지금 노래에서 듣는 것처럼 왜 욕계의 최고라는 파순이 자신을 기소하고 자신을 고통을 받는 상태로 묶어 강제로 끌고 가게 하는가 하는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깐 돼지나 생선의 두 눈의 가격을 만원이라고 제시한 아주머니의 두 눈의 가격이 왜 만원으로 되는가 하는 사정을 잠깐 살펴보자.
아주머니가 그렇게 가격을 제시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두 눈이 아니고 다른 생명의 두 눈이라는 사정 외에는 별 다른 사정이 없다.
그 눈이 돼지나 생선에게서 빠지던 말던 그 아주머니는 별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정으로 오늘날도 어떤 이에게 돈 천만원을 주면 그런 아주머니를 단숨에 제거해주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수도 없다. 그것은 또 왜 그러겠는가.
그 아주머니만 그렇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서로 그렇게 임하기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다른 생명을 자신만큼 존중하고 임한 경우는 또 그 다른 생명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임하게 된다는 사정이 또 달리 작용한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치다.
세상에서 다른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어떤 악인도 자신의 어머니만은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왜 그러겠는가.
생각해보면 그 어머니만 그 악인을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 되는 순간까지 그렇게 헌신적으로 보살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각 경우마다 각 주체가 그런 다른 차별적인 상태에 처하는 사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3 악도에 왜 그렇게 많은 생명들이 묶여서 고통을 받고 뜻과 같이 쉽게 벗어나오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도 그 사정은 간단하다.
이제 이 문제를 자신을 놓고 생각하면 더욱 이해하기 쉽다.
자신이 욕계에서 무엇이던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상태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 상태에서 어항의 붕어처럼 한 순간전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아니고 50 년전이던 100 년전이던 자신과 관련된 일을 낱낱이 잘 기억하고 더 나아가 부처님처럼 오백진점겁 일까지는 아니어도 수천년전 일까지 잘 기억하는 상태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과거에 자신이 조금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었는데 그런 자신을 별 이유도 없이 괴롭혔다거나 아니면 대단히 억울하게 어느날 칼을 들고 자신을 살해해서 자신의 재산을 다 차지하고 자신의 두 눈과 간과 심장을 다 먹어 해치웠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상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초등학교 교실이나 어떤 곳에서 어떤 상태로 있는지 척하고 파악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라면 그 상대를 그냥 두겠는가. 이런 퀴즈부터 잘 풀어보자.
본래 그 상황이 자신이 아니라면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 지난 일이고 그런 일을 행한 이도 그 당시 그 사정을 잘 모르고 그렇게 했을 것이고 그리고 지금은 그런 상태가 아니고 욕계의 최고 지위에 있는 상태인데 무엇하러 그런 일을 하려고 하는가. 그저 다 잊고 용서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제시하기 쉽다.
그런데 또 대부분 그것이 자신의 문제인 경우는 또 그렇게 임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이 욕계의 사정이다.
그것은 다른 이의 경우를 놓고 보지 말고 자신을 놓고 생각하면 그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모두 쉽다. 예를 들어 어제까지 자신을 이유없이 괴롭힌 어떤 이가 하루만에 파산해 입장이 달라져서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자신이 그를 도와주려고 할 것인가. 이런 퀴즈 문제와도 같다.
그래도 도와주어야 한다고 보고 또 자신이 거꾸로 억울한 고통을 당할 때는 그에 상을 취하지 않고 평안하게 참고 견뎌야 함을 경전에서 제시하지만, 그러나 욕계의 현실에서 그렇게 각 상황에 임하는 례는 극히 드물다,
또 그런 사정 때문에 욕계에 그런 3 악도의 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이 각 주체가 한 번 행하면 무량겁에 걸쳐 사라지지 않게 된다고 제시하는 업의 과보다.
그런 관계로 지금 자신이 대하고 있는 상태처럼 현실을 대하게 되었다고 그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불교의 업감연기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뜨면 왜 도롱뇽이 눈을 떠 대하는 그런 형태로 세상을 대하지 못하고 또 집에 있는 진돗개가 눈을 떠 대하는 그런 형태로 세상을 대하지 못하고 지금 형태처럼 총천연색으로 보게 된 것인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자신이 그런 업을 그렇게 행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제시한다.
그러니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가. 안타까운 일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런데 여하튼 장래 자신이 또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앞과 같이 왜 자신이 그런 상태에 처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면
그 대답으로 지금 현실에서 자신이 행하는 생각과 말과 행위 등을 앞 내용에 다시 추가해서 덧붙여 제시하면 된다.
그러니 수행자는 이것을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해서 가장 좋고 좋은 상태를 얻어내기 위해서 지금 수행을 임하게 된다고 간단하게 제시한다.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다는 의미는 앞에서 문제삼은 자신이나 자신의 삶 수명 그런 것이 본래 얻을 수 없는 내용이라는 의미다.
이것을 꿈의 비유를 놓고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꿈이 실답지 않다고 하는 것은 꿈에서 바다나 황금꿈을 생생하게 꾸지만,
그 내용은 그런 조건에서만 임시적으로 얻는 것이고 그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 그처럼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또 그렇게 얻는 꿈 내용은 그에 기대하는 다른 성품도 갖추지 못하고 결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실도 이와 사정이 같다.
그런데 꿈이 그런 사정으로 실답지 않다고 본다면 반대로 그런 꿈처럼 실답지 않은 상태가 아닌 어떤 실다운 것은 앞과 같은 내용과는 반대되는 성품을 갖어야 한다. 그래서 그처럼 참되고 진짜라고 할 어떤 내용이 있는가가 또 문제된다.
그런데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가 다음 문제다.
어떤 것이 어떤 조건에서만 나타나는 내용이 아니고 그런 조건과 관계없이 늘 고정되고 불변한 어떤 성품을 갖는다면 어떤가 이런 문제다. 그렇다면 현실과 같은 내용은 얻지 못한다. 그 전제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것이 처음 제시한 내용이다. 본 바탕의 사정이 그렇지 않기에 즉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수행을 행하면 그것을 뜻과 같이 성취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제시되게 된다.
이제 이것을 꿈을 놓고 생각해보자.
어떤 꿈이 좋은 내용도 있지만 어떤 부분이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때 그 꿈 자체를 꾸지 않으면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
물론 꿈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것은 대단히 큰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꿈은 없어진다해도 그 본 바탕이 되는 침대는 별 문제가 없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현실에서 무언가 감각현실을 얻고 그에 대해 열심히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이고 이것은 이익이고 좋음이지만, 저것은 손해고 나쁨이라고 열심히 분별을 행하지만,
설령 그런 분별을 하지 않는다해도 그래서 멍한 상태로 감각을 하고 있다고 해도 별 관계가 없다.
물론 운전을 한다거나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멍하게 있으면 문제는 문제라고 보지만, 여기서 살피는 문제는 원래 어떤 바탕에서 나타난 실답지 않는 내용이 사라진다 해도 그 본 바탕은 별 관계가 없다.
잠을 깨어 꿈 내용이 사라진다고 해도 현실의 침대는 별 문제가 없다. 이 사정을 제시힌다.
그래서 앞에서 여러 가치 회계의 문제를 나열했지만, 이것은 모두 본 바탕의 측면에서 본다면 물거품에서 일어난 물거품을 바탕으로 다시 일으킨 물거품처럼 실답지 않은 내용이기도 하다.
처음 본 바탕에서 감각현실을 어떤 주체가 얻고 그리고 그 감각현실을 의존해서(연하여) 어떤 좋고 나쁜 느낌을 얻고 또 그런 감각현실을 의존해서(연하여) 어떤 관념분별을 일으키고 그리고 무엇이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 등등의 판단을 일으키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처음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본 바탕에서 일으킨 물거품처럼 실답지 않은 내용이라고 비유한다면 현실에서 좋고 나쁨의 분별은 물거품위에 일으킨 물거품 처럼 실답지 않은 내용들이다.
실제로 현실에서 짜장면 하나를 놓고 3 일 굶어 먹게 되는 상태에서는 짜장면 이상 좋은 내용은 없다고 보겠지만,
그러나 어떤 고문을 받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짜장면을 3 그릇 먹고 다시 5 분내에 짜장면을 다시 3 그릇을 더 먹지 않으면 몽둥이로 하루 종일 맞는다고 하는 상황이라면 그 짜장면은 마치 물고문을 당하는 상황에서 대하는 물처럼 지극한 고통을 주는 내용이 된다.
그래서 좋고 나쁨이 어떤 대상에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각 주체가 대하는 관계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고 그런 상태로 각 주체가 그런 내용을 화합해 얻는 것이 된다.
그러니 이것이 앞에 제시한 것처럼 꿈이 실답지 않다고 보게 되는 측면과 그 성격이 같다.
그런데 욕계에서는 바로 이 내용이 한 주체가 집착하면서 추구하는 희망을 만들어 내는 핵심요소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욕계 안에서의 일이다.
그런 사정으로 3 계 안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는 3 악도는 이런 망집을 일으킨 욕계 안에서만 나타나는 세계다.
처음 자신이 어떤 감각현실을 대하고 그 일부분이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이나 어떤 외부 세계의 어떤 내용이라고 분별을 하지 않고 그리고 그런 부분을 붙잡고 그것이 좋다 나쁘다라는 분별을 행하지 않는다면
if 구문을 사용해서 만일 그런 좋은 것이 있다면 좋을텐데라는 희망을 일으켜 갖지도 않고 또 반대로 만일 그런 나쁜 것이 있다면 대단히 고통스럽고 괴로울텐데, 이런 두려움도 갖지 않고 그리고 좋고 나쁨에 대해 망집을 바탕으로 집착하며 행하는 반응도 일으키지 않게 된다.
그러나 욕계 안에서는 그런 망집을 기본으로 임하기 때문에 앞의 if 구문과 관련해서 각 주체가 원하는 상태와 희망을 기준으로 그것이 충족되거나 그 반대로 그가 원하지 않는 상태가 나타나는 것에 따라서 극심한 고통을 받는 지옥과 아귀와 같은 세계가 나타난다.
정려 수행을 통해서 그런 망집만 기본적으로 제거해도 욕계를 벗어나서 색계 무색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 색계와 무색계에는 그런 3 악도와 같은 세계가 없는 하늘세계가 되는 것은 앞과 같은 전제 자체가 여기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멸과 생사에 대한 망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는 한 결국 3 계6 도를 벗어나 생사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앞에 제시한 3 악도의 생사고통은 피할 수 없다.
앞에서 가치회계 문제를 다루면서 아무리 재산이 많다고 해도 거꾸로 30 분 매달려서 몽둥이로 맞는 상황에 처하면 과연 그 재산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을 참고 견딜 것인가 이런 가치선택 문제를 제출했는데
생사고통을 당하는 상황에서 그런 생사고통을 면하고 받지 않는 상태가 갖는 가치는 의외로 훨씬 가치가 높다.
누구나 자신의 현실에서 간단히 실험을 해보아도 사정이 같다.
소변이 마려운데 그 소변을 참고 한 3 일을 더 참아내면 가치회계법인에서 3000 억원을 지불해주겠다고 하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면한다는 것이 갖는 가치는 물론 그것이 모든 가치를 대표하는 것은 설령 아니어도 일단 현실에서 집착하고 추구하는 일반적인 내용으로서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그런 품목들이 갖는 가치보다는 훨씬 가치가 높다.
그런 품목들이 아무리 많아도 하루에 3 끼 이상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자는 면적을 넒힐 수도 없고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옷을 100 벌씩 입고 살아갈 도리도 없기에 이런 품목은 그 주체의 생존에 기여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존문제를 해결하는 범위를 넘는 부분부터는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뜻을 성취해 얻는 즐거운 맛을 얻어내는데 기여한다.
그런 사정으로 그런 내용을 아무리 모아놓는다 해도 그 전체를 저울 한쪽에 놓고 앞과 같은 생리적 고통을 면하는 문제를 가치저울의 한쪽에 올려놓아서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누구도 고통을 면하는 쪽을 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수행은 이런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하튼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생사현실에 임하는 이상 비록 그 생사현실에 일정한 좋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과 같은 생사고통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런 쓸데없고 실답지 않는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기본 조건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일단 목표점으로 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이 경우를 꿈을 놓고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꿈에서 얻는 황금이나 바다를 기준으로 하면 그 꿈을 제거하면 그런 황금이나 바다도 함께 사라진다고 보기에 대단히 큰 문제라고 이를 대할 수 있지만, 그러나 꿈을 제거한다고 해서 현실의 침대는 별 문제가 없다.
다만 꿈에서 얻는 쓸데없는 내용을 이로 인해서 일체 받지 않게 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를 이런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제시하고 이를 회신멸지의 상태에 이른 아라한의 상태라고 한다.
현실이 실답다고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생사현실을 완전히 제거하고 벗어나는 것을 대단히 큰 문제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잘 관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완전히 벗어난 상태로 이를 제시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주체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가장 좋다고 보지만, 그러나 그 주체처럼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입장에 대해서는 그 주체가 더 이상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약간 아쉬운 측면이 있다.
그리고 다른 중생을 제도해서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렇게 회신멸지의 상태가 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생사현실을 그대로 받으면서 그 생사현실이 본래 실답지 않고 그 생사현실이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임하지 않는다면, 그 생사현실이 그대로 청정한 니르바나라는 사정을 관하여 그런 생사현실에 들어가 그런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다른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 측면이다.
이 부분이 수행자가 무량겁에 걸쳐서 생사현실을 받아가면서 중생제도를 하고 불국토장엄을 하고 성불하는 측면의 수행이다.
따라서 수행자가 이런 기본 사정을 잘 관하고 생사현실에서 무엇이 무엇보다 더 가치가 있고 무엇을 더 우선해서 선택해야 하는가를 매 순간 잘 선택해 임해야 한다.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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