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62-05-06_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_001
Mireille Mathieu - Ich Liebe Das Meer (Ay Ay 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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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0fl--Gerard Lenorman - Stanislas - Le Funambule.lrc
♥ 잡담 ♥집단학살과 수행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은 유교경이라고도 하는데 어떻게 보면 부모님이 돌아가실때 자식들에게 이것만은 꼭 지켜서 실천하라고 남기는 유훈과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유훈을 남긴다고 해서 자식들이 그것을 다 잘 지키고 성취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여하튼 중요한 내용을 핵심을 추려 제시하는 것임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첫 부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
강도의 해를 당하는 것은
그 고통이 일생에 그치지만
5근 도적의 화는
그 재앙이 여러 생에 미치어 해가 되므로
매우 중하니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까닭으로 지혜 있는 이는
제어하여 그것을 따르지 말고
그것을 도적을 붙잡듯 잘 붙잡아야 하며
제멋대로 방일하지 않게 해야 한다.
가령 그것을 놓아두더라도
또한 모두 머지않아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 5근은 마음이 주인이 되기 때문에
너희들은 마땅히 마음을 잘 제어하라.
이 마음이 두렵기는
독사나 흉악한 짐승이나
인명을 해치고 재물을 겁탈하는 도적보다 심하니
큰 불길이 치솟는 것으로도
그것을 비유할 수 없느니라.
...
그런데 5 근이란 안이비설신을 말하여 자신의 몸에 부착된 감각기관을 말한다.
그리고 이 5 근의 주인이 되는 마음도 자신의 마음을 말한다. 그런데 왜 이것이 자신을 해치는 도적보다 더 흉한 도적이라고 제시하는가.
그래서 이런 퀴즈를 일단 풀어보아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마음에 저 재산이나 저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하고 싶은 탐욕이 생긴다거나 저 사람을 해치고 싶은 분노와 미움이 생긴다거나 한다고 할 때 이런 탐욕과 분노가 자신의 탐욕과 분노가 아닌가. 그러니 이런 탐욕과 분노를 따라 행하면 자신의 뜻이 성취되어 좋은 것이 아닌가.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이전글에서 현실에 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길가의 벽돌이나 배추밭의 배추나 또는 자신이 입는 옷과 같은 것을 놓고 그것을 자신의 신체로 여기고 매 순간 대하는 상황임을 소개했다.
이는 정말 어떤 이가 거리의 벽돌이나 배추를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니고 평소 자신의 손이나 발 머리 이런 것으로 여기는 그 부분이 알고보면 그 성격이 그처럼 거리의 벽돌이나 배추나 자신이 평소 입는 옷과 같다는 의미다.
그리고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평소 자신의 생각이라고 보는 그런 내용이나 자신이 일으킨 탐욕이나 분노와 같은 내용이 자신이 일으킨 마음 내용이기는 한데 알고보면 자신의 내용이 아니고 자신에게 들어온 손님과 같은 내용이라고 여기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이 일시적으로 걸치고 있는 옷과 같은 것과 자신의 마음에 일시적으로 들어와 차지하고 있는 손님을 거꾸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이를 대하고 임하면
이로 인해 큰 피해를 당한다. 한 생만 그런 피해를 당하지 않고 그 다음 생 그 다음 생 이런 식으로 계속 피해를 당하게 된다고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계속해서 이 피해를 당하는 이가 누구겠는가. 앞에서 본 그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믿거나 말거나 성격의 이야기에는 어떤 여인에게 원한을 사서 7 생에 걸쳐서 그런 피해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7 생에 걸쳐서 매번 자신이 꾀하는 일마다 될 듯 될 듯하다가 결국 안 되고 큰 고통을 매번 당하고 죽었는데 그것이 7 생전에 자신이 행한 어떤 일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일이 그런 연유로 생겼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하겠는가. 그러니 믿거나 말거나 성격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입장에서 위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전 조각글에서 현실에서 어떤 이가 거리의 벽돌을 놓고 그것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 상황을 소개했다.
그럴 리는 없는데 그런 벽돌을 이상한 사정으로 자신으로 여기고 매 순간 살아가고 그리고 그 벽돌이 부서져서 가루가 되거나 다시 비가 와서 그 가루마져도 쓸려가 없어지면 그래서 자신도 이제 완전히 없어졌다고 그가 생각하면서 안타까와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일 아닌가.
그 벽돌이 자신일리가 없는데 그 벽돌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또 그 벽돌이 자신이라고 한다면 그 벽돌이 그렇게 사라져서 없어졌으면 그 상태에 누가 남아 있어서 그 벽돌이 그렇게 없어져서 자신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안타깝게 여기고 슬퍼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상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부분 이렇게 임하고 있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자
지금 자신이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라고 스스로 보는 부분이 정말 자신이라고 하자. 앞에서는 이것을 누구나 자신은 아니라고 보는 벽돌이라고 놓고 그 상황을 비유한 것 뿐이다.
그런데 여하튼 지금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그것이 벽돌이던 아니던 그런 것이 정말 자신이라면 그것이 앞과 같은 상황인 것이다.
왜 그런가.
초등학교시절로 옮겨가 보자.
그 때도 거울을 보지 않았겠는가 . 그리고 그 당시도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긴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거울이 없었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여하튼 그때 자신이 자신이라고 본 부분을 놓고 그것을 앞의 이야기에서 벽돌이라고 생각하고 잘 생각해보자.
그 벽돌이 그 때 그 형태대로 그대로 있고 그리고 그 벽돌의 구성부분인 모래나 자갈 이런 것도 그대로인가.
앞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이미 조금씩 각 부분이 떨어져 나가 이제 티끌이 되어서 없어지거나 비가 내려서 쓸려 흩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을 기준으로 그렇게 자신이라고 보는 벽돌은 그런 상태여서 지금 순간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상태인데 그런데 그것이 없어졌다고 누군가 슬퍼한다면 그것도 또 이상한 일이다.
그 당시 자신이라고 본 그 벽돌이 그렇게 해서 지금 없어졌는데 도대체 무엇이 있어서 그것을 놓고 슬퍼하고 안타까와 한다는 것인가.
그런데 지금 초등학교 시절과 달리 또 지금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지금의 벽돌도 그 사정은 이와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그러니 이 문제를 놓고 잘 생각해보면 과연 매 순간 자신이라고 보는 그런 벽돌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 것이 올바른 입장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정은 그렇지만, 누가 지금 망치를 들고와서 그 벽돌을 깨부수겠다고 나타나면 이는 대단히 큰 일 아닌가.
어떤 이가 공사를 하는데 그로 인해 주변에 사는 이들의 집이 기울어져서 갑자기 살기가 힘들어졌다. 상대에게 손해배상도 청구하고 원상회복도 청구하는데 나타나지도 않고 만나주지도 않고 도망간 것 같기도 하고 답답하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어떤 차가 갑자기 나타나서 부딪혀서 차가 파손되었는데 그 차가 뺑소니를 쳐서 잡지도 못하고 손해배상을 받기도 힘들다.
등등 세상에는 하루도 편하게 만들지 않는 사건 사고가 수없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런 사건 사고의 최고봉을 든다면 결국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각 부분이 고장나고 망가져서 통증이 오고
그리고 이제 병원에 들르니 의사가 삶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길어도 한 50 년 이상은 더 살수 없는 것이 현대 의학으로 명백하다. 삶을 빨리 정리해라.
이런 충고의 말을 듣게 될 때라고 본다.
아니 50 년이면 긴 시간인데 무슨 걱정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의사분이 위 경전에 나오시는 그런 분이시기에 여러 생을 놓고 고통을 받지 않으려면 남은 50 년도 짧다. 빨리 정리해라 이런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50 년이 남은 경우는 그래도 여유가 있고 다행이라고 할 만하고 일반적으로는 10 년 20 년 이 정도인 경우도 많은데 그런데 정작 출발시점은 잘 알아도 삶을 마치는 시점은 누구나 확실하게 알 수 없으므로 위와 같은 평균적인 대강의 기간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늘이라도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키면서 그냥 쓰러지고 이후 마비상태로 남은 기간을 지내게 된다고 해도 할 말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 이유야 남은 가족들이 병원에 가서 알아보거나 하겠지만, 당사자는 이유 불문 그런 상태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고 그 시점을 어떤 이도 미리 확실하게 알 도리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부처님이 남기신 유훈을 여유있게 대할 입장이 누구나 아니다.
그런데 여하튼 각 개인 입장에서는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벽돌 부분에 문제가 생기는 사태가 현실에서 만나는 사건 사고의 최고봉인 것이고
그런 가운데 생각해보면 이런 각 개인이 다 함께 몰살당한다거나 고통을 당하는 사태가 어떤 사회에서의 사건 사고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일들을 놓고 현실이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는 내용만 뚝 제시하고 이것을 그냥 방치하면 된다고 보는가.
그럴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사건 사고 종합 대책반을 꾸려서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해나갈 방안을 찾아 나서야지 현실이 실답지 않다. 일체가 본래 공하고 청정하다. 그러니까 그냥 그런 줄 알고 받아들이자.
이런 형태로는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일단 주제는 제시했으므로 쉬자.
주제 찾아내기가 요즘 쉽지 않다. 생각만 잘 꺼내면 소설가가 되어서 하루 아침에 해이한 포터 이런 유명한 소설을 써내는 소설가가 되어 수조원 버는 것은 일도 아닌데 그 생각이 그렇게 매순간 잘 떠오르지 않기에 누구나 유명한 소설가가 되지 못하듯 연구하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쉬면서 노래를 듣다보니 웃음이 나온다. 위 노래를 인턴연구원이 대학진학문제로 고민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 나서다. 위 노래에서 불교대학을 진학할 것을 권유하는 메세지를 듣고 인턴연구원에게 불교대학으로 진학할 것을 권유했는데 거절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인턴연구원은 한달에 대학등록금 1 학기 정도에 해당하는 비용을 써가면서 재수중이라는 소식이다. 말이 대학 1 학기등록금이지 본인기준으로 하면 본인 1년 총소비금액보다 넘는 금액을 매달 재수학원에 제공하면서 공부중이라는 소식이다.
아직도 불교대학에 진학할 기회는 남아 있다고 보지만, 인턴연구원은 나중에 사찰에서 운영하는 불교대학에 진학하고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9 년을 재수해서라도 한번 해보겠다고 하니 본인이 마음으로 열심히 후원중이다.
그런데 그 당시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으니 조금 웃음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효과가 별로 없지만, 오늘날 사찰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불교를 공부할 수 있는 불교대학을 곳곳에서 운영하고 있으니 병원을 방문해서 앞으로 아무리 길어도 50 년을 사는 것은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충고를 들으면 불교대학에 진학해서 대처방안을 빨리 선행학습해서 취득해 놓는 것도 현명한 일이라고 본다.
현재 컴퓨터 작업환경이 바뀌어서 키보드가 손에 익지 않아 키보드를 하나 새로 구해보려고 연구실에 있는 여러 키보드를 테스트해보는데 연구실에 있는 키보드를 모두 한 번 세어보니 놀랍게도 16 개나 된다. 누가 이 키보드를 다 사용하는가.
그런데 그 가운데 게임에 몰두하는 인턴연구원이 사용하는 키보드가 그래도 가장 좋은 것 같아서 살짝 빼가지고 와서 지금 테스트해보는 중이다.
이 키보드가 입력할 때마다 소리는 경쾌하고 입력하는 촉감은 좋은데 좀 시끄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 좀 덜 익숙해서인지 오타가 좀 많이 발생해서 가능하면 소리는 덜 나면서 오타가 좀 덜한 키보드를 구해볼까 생각 중이다. 일단 이 키보드 테스트가 잘 되어야 한다고 본다.
앞에서 이상한 벽돌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시절 당시 자신으로 본 벽돌과 지금 이 순간 자신으로 보고 있는 벽돌이야기다.
이를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레고 블럭으로 생각하면 초등학교 시절 당시 자신이라고 본 벽돌을 기준으로 하면 지금 자신으로 보는 벽돌을 구성하고 있는 레고블럭은 그 당시 배추밭이나 축사 안이나 산과 강과 들에 흩여져 있던 레고블럭으로 만들어낸 벽돌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 일을 매일 매일 식사하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과정을 거쳐서 꾸준히 조금씩 해온 것이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병원 의사가 앞과 같이 예고한 일정한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렇게 행해 온 업에 의해 아예 세계를 달리해서 그 주체가 다른 형태로 또 임해 나가게 된다는 것을 부처님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형태가 터미네이터 II 나 III 버전 영화에서 보는 형태처럼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그 때 그 때 변화할 수 있는 형태면 큰 불만이 없겠지만
그러나 자신의 뜻과 달리 어느날 일어나 물에 비추어 보니 흉칙한 도마뱀 형태라거나 기타 등등의 형태라면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측면을 고려해서 현실에서 종합적인 사건 사고 대책방안을 마련해서 잘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아파트에서 아주머니가 자신을 체포해가서 자신의 아이에게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처럼 된다고 사례로 제시해주는 형태가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 경전에서도 그런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초등학교 시절에 자신이 자신이라고 본 벽돌에 부착되어 있는 5 감관을 잘 제어하지 못하고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들어오는 손님인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의 번뇌를 잘 제어하지 못하고 그것을 오히려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이를 따라 다니다 보면
그 벽돌도 벽돌이지만, 그 벽돌과는 형태도 달라지고 구성성분도 많이 달라진 벽돌 즉 나중에 시간이 흘러 지금 자신이라고 보는 벽돌이 그 폐해를 다 받아 나가게 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엉뚱한 일이라고 보는가. 스스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고 일반적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여하튼 초등학교 시절에 행한 그런 내용을 일종의 밭에 뿌리는 씨로 본다면 그 씨로 인해 열매가 맺어 나타나는 시점의 내용은 이 씨와는 그 형태나 내용이 대단히 다른 형태의 것이라고 보기에 이것을 이숙[결과가 달리 변해 나타남]이라고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선을 행하면 선이 열매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행한 내용과는 성격이 다른 복이라는 열매가 맺는 경우도 이런 이숙에 해당하고
이번 생은 인간 형태로 생활했는데 계가 구족하지 못해서 다음 생은 게나 개의 형태로 생활하게 된다면 그것도 이숙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계가 구족한 경우는 또 하늘에서 좀 더 멋있고 아름다운 형태로 생활하게 될 수도 있기에 이런 여러 문제를 놓고 사건사고 종합대책을 세워서 현실에 잘 임해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극락이나 지옥이나 다 차별이 없고 공한데 왜 굳이 험악한 지옥 세계에서 쉼없이 고통을 받으면서 이리저리 굴러야 할 것인가.
이것이 수많은 사건사고에 대한 예방대책을 제시하는 부처님의 유훈의 핵심이기도 한 것이다.
키보드를 바꾸어 테스트 중인데 소리는 경쾌한데 오타가 많이 발생한다. 한 글자를 입력하면 두글자씩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이전 키보드가 그나마 나았던 것 같다. 일단 쉬기로 한다.
산행을 다녀온 숙왕화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날씨도 풀려 봄이 되었는데 연구실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청소 좀 하고 지내라고 하고 또 사라진다.
원래 '날씨가 풀려 봄이 되었으니' 다음의 구문으로는 '가까운 둘레길이라도 한 번 나가자' 이런 구문이 어울리지 않는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연구실에서 평안하게 연구에 계속 임하려면 눈치를 잘 살펴서 청소를 하기는 해야 한다고 보는데 현재 작업 상황에서 쉽지 않다. 컴퓨터에 일을 맡기고 글을 쓰는 틈틈히 한번씩 가서 버튼을 눌러 다음 작업을 하게 하는데 그러다보니 너무 작업이 늦다. 그런데 어쩔 도리가 없다.
쉬는 가운데 노래를 듣다보니 공돈 버는 방안에 대한 메세지를 제시하는 노래를 듣게 된다.
불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매번 한국어로 다 잘 들리는 것은 아닌데 이런 경우는 본인이 사용하는 다라니 해독방법이 도움이 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다냐타 이런 구문이 나온다면 다나 타는 자신이 무엇인가 이해가 잘 되는데 냐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런다면 냐는 나 비슷한데 나는 아닌 그 무엇 이렇게 놓고 자신이 맥락상 어울리는 의미를 넣어 해석해보는 것이다.
다라니가 본래 뜻이 없는 가운데 무량한 의미를 담아서 지니는 방편인데 원래 다라니를 제작한 분이 어떤 취지로 그렇게 다라니를 제작해 유포했는지 그 사정은 잘 모르지만, 여하튼 기본적으로 그런 방안으로 의미를 자신이 찾아 대하면 다라니 암송 과정에서도 일정한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리고 자신이 잘 아는 외국어로 영어나 일어 불어가 있다면 그런 외국어로 이해하는 의미도 동원하면 또 쉽다고 본다. 그래서 하나의 구절이 갖는 의미가 풍부해지는데 이런 경우 가능한 여러 의미 가운데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의미를 찾아서 감상하면 더 좋다고 본다.
그러다보면 결국 경전에서 제시한 기본 골격에 맞는 내용으로 시감상을 매번 행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현재 부처님이 남긴 유훈을 대하면서 각 구절마다 정말 소중한 가르침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데 분량은 작지만 이것을 다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기는 힘들고 키워드를 뽑아내 핵심만 추려 간직해보려고 하는데 작업환경도 산만하고 해서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강 살필 때 보시-정계-안인-정진-정려-반야라는 수행자의 기본 수행덕목인 6 바라밀 내용과 비슷해 보이는데 조금 다른 면도 있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핵심을 추려 내기가 쉽지 않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 부끄러움을 중요한 수행자의 수행덕목으로 제시하는 항목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최근 일이 떠오른다.
여행 중 버스에 올라타니 옆 좌석에 할머니가 앉아 있어서 반갑게 인사하고 그 다음에 갖고 있던 과자도 건네고 그런 가운데 친해져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할머니가 본인이 걸고 있는 카메라를 보고 카메라도 물어보고 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는데
갑자기 운전하시는 기사분이 승객 분들 방해되니 이야기 나누시는 분들 자제해주십시오. 이렇게 큰 소리로 경고를 해서 본인이 갑자기 무안해져서 죄송하게 되었다고 하고 침묵을 지켰는데 옆 할머니가 기사분이 너무 예민하신 것 같다고 말한다. 할머니도 알고보면 본인과 공범인데 같이 무안해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본인이 조금 기분이 언쨚아서 그 뒤로 그렇게 방해가 많이 되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꾸 그일이 떠오르게 되는데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아니 버스를 타고 가면서 옆 좌석 승객과 정다운 정담을 나눌 수도 있는 일인데 그것이 무슨 큰 일이라고 그렇게 하는가. 이런 생각도 드는데 그러나 한편 조용히 잠을 자고 가고 싶은데 다른 좌석에서 대화를 나누니 방해가 된다거나 운전하는데 대화 내용이 거슬려서 운전하기 힘들다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무안을 당한 경험이 그 뒤로도 자꾸 떠오르면서 자꾸 되돌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있으면 사실은 다음에는 조금 더 주의하게 되게 마련이다.
오래전 과거에는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고속도로가 밀려서 시간이 늦어졌는데 잠시 휴게소에 들렀을 때 본인을 기다리는 분을 생각하고 전화를 걸려고 공중전화가 있는 곳에 가니 그곳에 이미 긴 줄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기다려서 전화를 걸고 돌아왔는데 버스 안 승객들이 다 무엇이라고 한마디씩 하는 것이다. 그러쟎아도 늦었는데 젊은 사람이 이렇게 혼자만 생각하고 늦게 들어오면 어떡하는가.
전화거는 일만 생각하다가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또 같이 내려간 동행은 또 더 늦어서 아직도 버스에 올라타고 있지 않아서 본인이 그 동행을 잦으러 내려가려고 하니 아니 늦은 사람이 또 밖에 나가면 어떡하냐고 승객들이 불평을 쏟아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하튼 탔는데 승객들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심하다는 불평을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늦게 출발했는데 버스가 얼마나 늦었는지 그전까지는 밀려서 좀처럼 달리지 못하던 그 버스가 젼혀 막히지 않고 계속 달려서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여하튼 그 뒤로는 버스에서 휴게소에 들를 때는 늘 시계를 확인하면서 볼 일을 보고 정확히 시간에 맞춰 귀환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 중에도 휴게소에 내려서 미리 예고한 휴식시간을 정확히 체크해서 1 분 전에 귀환을 마쳤는데 버스에 올라타려고 하자마자 기사분이 버스를 바로 출발시켜서 보니 이번에도 또 본인이 가장 늦게 탔던 것이다.
그래서 또 이번에도 본인이 늦게 타서 기사분이 급해서 빨리 출발하는가보다 생각하고 또 늦어서 죄송하다고 말하니 다시 옆좌석 할머니가 그렇지 않다 조금 늦은 것 같은데 요즘 고속도로가 밀리니 승객이 다 타면 타는대로 곧바로 빨리 출발하는것 같다 등등으로 본인을 안심시키는 발언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주의 경고를 다시 들었던 것이다.
알고보면 본인이 처음에 버스를 탈 때 이런 일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평소 내릴 때 건네는 박카스를 처음 탈 때 기사님에게 건넸는데도 계속 주의를 들으니 미리 박카스라도 건네지 않았으면 큰 사고를 당했을 지도 몰랐을 일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여하튼 조금 무안을 당한 일인데 이런 일이 잘 잊혀지지 않고 그 뒤로 자꾸 반복해서 떠오른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경우 그런 불쾌한 기억때문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불쾌함을 되풀이하며 겪을 수 있는데 이 현상이 부처님이 유훈으로 제시하는 부끄러움과 관련된 항목인 것이다.
현실에서 어떤 일로 부끄러울 만한 경험을 하게 되면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이것은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낄 일을 다시 떠올리면 그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것을 거꾸로 장엄 가운데 제일이라고 유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연유인가.
그 대목이 다음이다.
...
부끄러움의 옷이
모든 장엄 가운데 제일이다.
부끄러움은 쇠갈고리와 같아
능히 사람의 나쁜 잘못을 제어하니
그러므로 비구여,
마땅히 항상 부끄러워하여
잠시도 버리지 말라.
...
여하튼 부처님의 입장은 그런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부끄러운 일을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해지는데 그러나 알고보면 바로 그런 마음이 그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게 만들고 현실에서 계를 구족하게 하고 그리고 복덕을 구족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기에 바로 이 생사현실에서 그런 참과 괴의 항목이 수행자의 중요자산이 된다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알고보면 이 참과 괴에 해당하는 창고에 그 내용이 풍부하게 들어있을수록 그 수행자의 자산이 풍부한 것이고 수준이 높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낚시바늘에 걸려 잡힌 붕어가 다시 풀어주면 한 10 분 지나 또 그 미끼를 물고 잡혀 올려지는 것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니 수행자의 창고에 그런 항목이 들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그 수행자의 자질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휴게소에서 손을 씻으려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앞에서 손을 씻고 뒤에 있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주의를 하지 않고 손을 털어대서 물을 맞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경우도 그런 경험이 있으면 자신은 조심해야겠다고 주의를 하는데 그런 경험이 있지 않으면 또 자신도 비슷하게 그런 실수를 하기도 쉬운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일일히 어떤 교과서에서 실어서 배울 도리는 없고 현실에서 여러 경험을 하는 가운데 그런 내용을 앞과 같은 수행자 자산 항목에 넣어서 잘 보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는 것이다.
결국 수행자가 무량겁에 걸쳐서 자신의 자산 항목으로 삼는 것은 수행자의 7 재나 10 무진장의 항목으로 제시되는데 그 항목을 풍부하게 채워 잘 보관하는 것이 수행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노래에서 반복해서 공돈을 부르짖으면서 공돈을 얻는 방안은 무주상 보시를 행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데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벽돌과 관련해서 생사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건 사고를 잘 처리하고 예방해내는 것을 목표로 할 때 이것을 한마디로 압축해서 복덕자량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그래서 복덕자량이 있으면 수행자가 생사의 묶임에서도 벗어나게 되고 그리고 이후 수행함에 있어서도 큰 사고를 겪지 않고 사는 동안 평안하게 잘 수행하고 다음 생사를 잘 이어 나가게 되고 수행도 잘 해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복덕자량을 얻는 방안이 곧 현실에서 부딪히게 되는 수많은 사건 사고를 예방하고 잘 해결해내는 방안이기도 한데
현실적으로 사건보고 내용에서 보듯 옆에서 건축을 해서 자신이 집이 기울어졌다거나 자동차가 갑자기 뛰어든 차량으로 사고가 나서 큰 손해를 본다거나 각종 질병이나 사건 사고로 부상을 입는다거나 인명사고를 당한다거나 그런 사고가 예상될 때
이것을 법률전문가를 통해 상담해 잘 해결한다거나 또는 의료 전문가를 통해 잘 치료한다거나 하는 방안을 모색하거나 미리 그런 사고를 대비해 보험을 잘 들어둔다거나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고
그것도 아니면 매 구체적인 사건 사고에 뛰어들어 당사자와 잘 대면해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등등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부처님이 살피는 넓고 길고 깊은 관찰을 바탕으로 한다면 한 생에서 강도를 당하는 피해보다도 더 문제가 극심한 사건 사고까지 미리 잘 예방하는 수행방안을 취해 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보게 된다.
그 가운데 모든 수행자가 넘어서야 할 중요 고비라고 할 안인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안인 수행의 핵심은 금강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억울한 상황에서 고통을 받거나 할때 그 상황에 그런 고통이나 억울하게 느낄 만한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음을 잘 관하고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을 일으키지 않고 제거해서 그 상황에서 상을 취해 행하지 않는 가운데 망집을 제거하고 평안히 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부처님이 제시해주는 방안은 현실의 일반적인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소극적인 방안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여기고 대하는 것이 바로 좁고 짧고 얕은 관찰에 바탕한 분별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누구나 그 상황을 쉽게 각 사건 사고에서 보는 것이다 .
조금 양보하고 다른 이를 배려하고 참으면 가장 결과가 좋은데 그러나 각 당사자가 그렇게 하지 않고 매 상황 매 순간에 임하기에 그 결과를 매일매일 사건 사고내용으로 각 매체를 통해서 보고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평소 이러한 사건 사고가 보고될 때마다 자신이 직접 이미지 트레이닝 기법을 사용해서 그 현장에 자신이 들어가 그런 상황에서도 평안하게 잘 참고 상황을 좋게 만들어나갈 방안을 미리미리 훈련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훈련을 해두면 역시 수행자의 자산이 자신의 직접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풍부해지게 되고 더욱 좋게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복덕이라고 보는 내용을 향해 그것을 얻는 스위치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그것을 향해 마구 돌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보는 장뱔잔이나 빠삐용이나 루팡이나 투우장의 황소나 그런 입장에서 취하는 그런 방편을 취해 임하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언뜻 한 순간만 놓고 보면, 그것이 그런 복덕을 잘 성취하는 방편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것은 넓고 길고 깊은 관찰을 통해 살피면 사실은 3 악도를 향해 고속으로 나아가는 기차에 올라타서 3 악도에 도착하기 전까지 일단 별 일이 없다고 여기면서 임하는 상태와 사정이 같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일단 키보드를 이전에 사용하던 키보드로 바꾸니 조금 나은데 알고보니 본인이 원래부터 오타가 심한 사정이었음을 보게 된다. 키보드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까지 새 키보드를 하나 새로 살것인지 그냥 그만둘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하는데 오타의 원인은 무엇인가 하면 처음부터 키보드 연습을 대충 하고 임했던 것이 문제가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쉬자.
경전 내용을 다시 읽으면서 핵심 키워드를 잘 뽑아내야 한다고 보는데 올려진 경전을 좀 더 시간을 두고 다시 잘 읽어보아야 겠다.
매번 메세지를 전해 주어 수행에 도움을 준다고 보는데 그런데 생각해보면 엉뚱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요즘은 더 심해서 옥상기지에 올라가 노래를 들을 때마다 시리즈로 메세지를 전해준다고 생각하게 된다.
본인은 백수의 왕 사자로 지낸지가 오래되는데 백수가 되면 그냥 놀아도 된다는 메세지도 엉뚱하지만, 이번에는 불교를 믿어야 한다는 메세지를 또 듣게 된다. 불어 노래에서 한국어로 메세지를 시감상해 듣는 현상이 망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에 임해 이 안에서 수행을 한다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그런 상황인 것이다. 알고보면 부처님이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금강경 등에서 한 마디라도 설한 것이 있다고 보는가라고 되물으시는 것은 부처님의 설법 자체가 그런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많은 부처님의 설법은 알고보면 그런 망집을 갖고 임하는 생사현실 안에서 그 망집 안에서 그런 망집을 제거하라고 제시하는 뗏목이기도 하고 희론의 성격을 갖는 언설로서 그런 희론과 망집을 제거하라는 취지의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제시할 수도 없는데 그러나 그런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 일반인들이 취하는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그런 내용을 시설해서 가정적인 논의를 하거나 가정적인 항변을 통해서 그러한 망집을 제거해주기 위해 베푸는 가르침이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앞에서 벽돌을 비유로 들어 거리에 나와 있는 벽돌을 마치 자신인 것처럼 여기고 매 순간 대하는 상황임을 제시했는데 사정이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에 자신이라고 본 벽돌은 이미 다 사라진 상태이고 지금은 또 다시 엉뚱한 벽돌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임하고 있다고 해도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해도 그렇게 매순간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그 벽돌이 어떤 망치에 의해 파손당하거나 하면 큰 일이 아닌가.
그런데 알고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까지 잘 이해해야 그런 상황에서 평안히 안인을 성취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또 그런 수행으로 인해 훨씬 수준이 높은 단계의 수행상태로도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알고보면 무량한 방편을 취득하지 못하고 선배 수행자가 그런 수행자에게 온갖 방편지혜를 다 제공해주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는 그 사정은 그런 상태에 있는 수행자는 방편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 자신도 해치고 다른 중생도 해쳐서 생사고통을 더욱 극심하게 받아나가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것은 그 수행자가 결국 안인의 수행덕목을 성취못하기 때문이고 그런 상태에서는 그 수행자가 갖고 있는 모든 방편을 자신을 해치고 다른 중생을 해치는 방향으로 사용해나가게 되기에 그런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앞의 벽돌의 비유를 놓고 자신이 지극히 심한 고통이나 억울한 상황에 처해 분노가 일어날 때 자신이 대하는 현실을 놓고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이라거나 또는 자신이 집착하는 어떤 것이라는 등등의 상을 취하지 않고 안인을 잘 성취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런가가 문제인 것이다.
앞의 벽돌 비유에서도 살폈지만, 지금 자신이 자신이라고 보는 벽돌이 설령 자신이 아니라고 해도 그러나 이 벽돌이 지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그 벽돌이 지금 파손되면 지금 행하는 모든 수행을 어떻게 행해 나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알고보면 그런 자세가 오히려 그 이후 자신이라고 보는 벽돌을 더 심한 고통을 받는 상태로 묶어 가는 원인이 되는 한편
그런 벽돌을 놓고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런 망집을 제거하고 임하면 바로 그런 자세로 인해 그 이후 자신이 자신이라고 대하는 벽돌은 훨씬 수준이 높고 좋은 그런 벽돌로 되고 그 자신도 이전보다 훨씬 수승한 단계의 수행자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초등학교 시절에 자신이라고 본 벽돌과 지금 자신이라고 보는 두 벽돌을 놓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후 무량한 벽돌을 놓고 이 문제를 살펴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1 과 2 에서 그 문제가 해결이 안되는데 이후 3, 4,5, 를 붙잡고 나아가면 그것이 해결이 되겠는가.
그래서 무량겁을 두고 이 벽돌의 사정을 잘 살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선 현실에서 당장 자신이 잘 살피는 벽돌 두개를 놓고서부터도 위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
그리고 위 벽돌의 비유를 놓고 그것을 잘 해결하고 안인을 원만히 성취하면 이후 그 수행자는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불퇴전위에 이르는 대단히 수승한 수행자가 되어 스스로도 무량한 방편을 취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배 수행자로부터도 무상으로 그런 방편을 제공받는 상태가 되어서
말 그대로 영화에서 보는 터미네이터 II 나 III 모델과 같이 매 순간 뜻처럼 자신을 뜻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여환삼매까지도 쉽게 증득해서 매 순간 가장 좋은 벽돌형태로 중생제도를 행해 나갈 수 있다고 경전에서 제시되는데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매 생마다 자신의 뜻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벽돌을 배당받아서 그것을 또 지금처럼 자신이라고 매순간 여기면서 그 세계에서 묶여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원래 어떠한 벽돌이 자신의 뜻과 달라서 많은 불만을 제기하면 이후 그런 사정으로 좀더 좋은 벽돌을 제공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일반 현실이나 수행자가 대하는 수행의 상황이나 그 사정이 그렇지 않고 그 반대인 것이다.
예를 들어 감옥에 있는 어떤 이가 식사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불만을 호소하면 식사 제공없이 독방에 갇히고
그 이후에는 어떤 식사던 가장 맛있게 대하게 되는 상태로 되게 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불만이 있으면 더 좋게 대해서 수행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이나 수행 세계나 그 반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또 그런 사정으로 한번 불만을 갖게 된 이는 이후 불만을 더 갖게 되기 쉬운데 안인 수행의 성취를 모토로 내걸고 있는 이 사바세계 인토의 수행 사정은 그럴수록 더욱 상황이 악화될 뿐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일단 그런 여러 부조리한 수행 내용을 생각하면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되기 쉬운데 일단 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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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éophile Alexandre Steinlen (November 10, 1859 – December 13, 1923)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어 아르누보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 몽마르트르 (Montmartre)와 그 주변 지역은 스타 인 렌 (Steinlen)의 삶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으며, 종종 그 지역에서의 더 가혹한 삶의 일부 장면을 그렸습니다. 회화와 그림 외에도 그는 조각품을 찍었습니다. 제한된 기준 으로 볼 때, 많은 그림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가장 애정을 쏟은 고양이 인물들이었다.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Théophile_Steinlen Title : pierrot-et-le-chat-xx-private-collection.jpg!HD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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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ose_Amber_Queen_20070601.jpg Description English: Amber Queen rose - Bagatelle Rose Garden (Paris, France). Français : Rose Amber Queen - Roseraie de Bagatelle (Paris, France). Date 1 June 2007 Source Own work Author Georges Seguin (Okki) Licensing[edit] I, the copyright holder of this work, hereby publish it under the following licenses: GNU head Permission is granted to copy, distribute and/or modify this document under the terms of the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Version 1.2 or any later version published by the Free Software Foundation; with no Invariant Sections, no Front-Cover Texts, and no Back-Cover Texts. A copy of the license is included in the section entitled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w:en:Creative Commons attribution share alike This file is licensed under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3.0 Unported, 2.5 Generic, 2.0 Generic and 1.0 Generic license. You are free: to share – to copy, distribute and transmit the work to remix – to adapt the work Under the following conditions: attribution ж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4/Rose_Amber_Queen_20070601.jpg ▩ mus3fl--Rose_Amber_Queen_20070601.jpg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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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show]John Henry Twachtman (1853–1902) Blue pencil.svg wikidata:Q1342683 Description English: "Wild Cherry Tree," oil on canvas, by the American painter John Twachtman. Courtesy of the Albright-Knox Art Gallery. Date circa 1901 Source/Photographer http://www.the-athenaeum.org/art/full.php?ID=13359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Buddhist Temple of San Diego,[4] San Diego ,Califo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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