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ge Gainsbourg - Melody
불기2562-07-24_잡아함경_039
Robert Charlebois - C'est Pas Phys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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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fr sfed--잡아함경_K0650_T0099.txt ☞잡아함경 제39권
몸 상태가 그러쟎아도 부실한데 조각글이 밀려서 바쁘고 더위가 심해서 지친 가운데 마음만 바쁘다.
현실에서 사과를 보면서 사과라는 상을 취하고 머물고 집착을 갖고 그에 바탕해서 망집에 바탕해 행하면 곤란하고 생사에 묶인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내용을 놓고 그것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상을 취하고 머물고 집착을 갖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서 현실에 임하면 대단히 곤란하고 생사에 무한히 묶이게 된다. 이런 내용을 살피는 중이다.
원래는 쓰던 부분에서 마저 다 마치려고 했는데 미리 뽑아 예약해 놓은 경전 부분들이 계속 올려지는 상황이라, 다시 또 조각글을 옮겨 이에 대해 살피기로 한다.
사과나 자동차나 영희나 철수에 대한 상을 갖는 문제나 자신이 자신에 대해 상을 갖는 문제나 그렇게 하면 곤란한 기본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전 조각글부분에서 그렇게 상을 갖고 임하면 곤란한 사정과 그 근거를 일반적으로 나열해 살핀 적이 있다.
지금 세부적으로 자신에 대해 아상을 갖고 임하는 문제를 살피기 전에 영희나 철수에 대해 타상을 갖고 대하는 문제를 살피려고 하는데 이렇게 세부적으로 살피기 전에 먼저 일반적으로 사과나 자동차를 보고 그것이 사과나 자동차라고 여기고 임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그 사정을 다시 한번 검토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그러나 이 내용은 반복되는 부분이므로 관련부분을 찾아서 복사해 놓기로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자신이 영희나 철수를 바로 옆에 앉혀 놓고 영희나 철수를 대한다고 할 때 왜 그 부분을 영희나 철수라고 이해하면 곤란한가. 그리고 영희나 철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평소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면 또 왜 곤란한가를 자세히 살필 것인데
결론은 안 된다이다.
금강경에서는 이 사정을 만일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을 갖고 임하면 수행자가 아니다. 수행자 라이센스를 박탈당한다. 이렇게 부처님이 설하고 계신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먼저 이 결론을 받아들인다면 도대체 그러면 어떻게 현실에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것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논의를 통해서 이런 결론을 얻게 되는데 정작 그 결론을 얻고 나서 현실에서 이 내용을 적용하는데 실패하면 결국은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어시장에 가서 무언가를 산다면 무엇이 꼴뚜기이고 무엇이 조기인가를 구분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거리를 다닐 때 무엇이 도로이고 무엇이 집이고 무엇이 자동차이고 무엇이 지나가는 영희나 철수이고 할아버지고 할머니인가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단 한순간이라도 제대로 생활하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곤란하다.
그런데 왜 경전에서는 현실에서 그런 상을 갖고 임하면 무량겁에 걸쳐서 생사에 묶여 빠져 나오지 못한다고 제시하는가.
사실은 그 사정이 그 사정이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잘 분별하고 요리조리 잘 살아간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런 형태로 그가 번뇌에 묶여 사역을 열심히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근본 현실이 바탕이 그렇지 않고 일반인이 일반적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내용과 같다면 사실은 그런 자세는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바탕이 뒤집혀진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뒤집혀진 상태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그것도 아주 잘 한다는 것은 사실은 그 상태가 대단히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유로 말한다면 초등학생이 딱지나 구슬이 무언가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집착한 가운데 딱지나 구슬을 엄청나게 많이 확보하고 학교를 다니고 있다면 그 딱지나 구슬이 초등학생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실답고 가치있는 것이라면 그 초등학생 생각처럼 오히려 대단히 바람직하다고 권장할 만한데
그런데 그렇게 초등학생이 임하게 된 그 기본 바탕이나 판단 자체가 엉터리이고 뒤집혀진 상태인 것이다.
반야심경에서 수행자가 벗어나야 할 상태를 전도몽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이 현실에서 일반인들이 정상이고 표준이고 상식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일체 내용들인 것이다.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바탕에서 무언가 대부분 좋다고 보고 집착하고 대하는 것을 많이 확보하거나 추구한다면 그것이 바로 앞의 비유상황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사정을 올바로 관해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후로도 무량겁에 걸쳐 매 순간 순간을 그런 자세로 임하기 때문에 벗어날 기약을 하기가 힘들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오늘 사건 사고 보고를 보니 더운 날씨가 돼지나 닭 등 축생이 약 100 만 정도가 죽었다고 보고가 올려져 있다.
그런데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도 안타깝지만, 그러나 그 축생들이 더위를 견디고 죽지 않는다고 해도 그다지 좋다고 볼 일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을 놓고 다시 그 축사에서 살던 돼지나 닭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다고 죽기를 원하겠는가. 돼지나 닭과 같은 축생이 비록 인간만큼 지혜는 없다고 해도 그래도 좋은 것을 원하고 추구하고 고통스럽고 나쁜 것을 피하면서 열심히 활동하는 자체는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축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열심히 활동하면서 먹고 싸고 놀고 무언가를 하고 쉬고 자고 하는 활동 자체는 인간의 활동과 별로 그 성격이 다르지 않는데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그 일체가 별로 가치가 없다고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망집에 바탕해 탐욕과 분노 등의 번뇌에 붙잡혀 그로 인해 매 순간 사역을 당하고 있는 현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거꾸로 뒤집혀서 망집에 묶여 현실에서 임하는 상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안타깝지만, 무한한 기간에 걸쳐서 그런 상태로부터 벗어날 기약을 하기가 힘들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 힘들다고 비유로 표현하는가 하면 바다가 넓고 넓어서 동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아도 한없이 넓은데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 다 합치고 태평양도 가고 인도양도 가고 그렇게 온 바다를 놓고 그 바다위에 구멍난 널판지 하나가 떠다니는데 거북이가 바다에서 생활하다가 고개를 바다로 한번 내밀 때 그 때 바로 그 널판지 구멍에 고개가 들어갈 확률 이렇게 비유로 제시한다.
로또 복권 당첨도 현실에서 힘든데 대단히 힘든 경우를 위와 같은 비유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제시하는 무상해탈문은 그런 생사를 벗어나는 3 해탈문 가운데 하나인데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생활할 때는 가장 직접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이 또 이것이다.
참고로 사과를 사과라고 보고 대하는 것이 일반현실에서 일반인의 입장이라면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관하고 그런 상을 취하지 않고 대하는 것이 무상해탈문이다.
그런데 다시 그렇게 대하는 사과나, 그런 분별이 마치 침대에 누어 꾼 꿈처럼 그런 내용을 얻게 된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그 실상은 공하다라는 것을 관해서 현실에서 대하는 그런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을 꿈처럼 실답지 않다는 사정을 잘 관하고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는 해탈문은
그것이 실상의 공함과 관련되는 해탈문이므로 공해탈문이라고 표현해 제시한다.
이것도 중요한데 그런데 일반현실에서 일반인들은 자신이 평소 대하는 감각현실이 곧 자신이 대하는 외부 세계이자 외부대상이고 정신과는 별개의 정신 밖에 있는 외부 물질이고 누구나 다 그런 내용을 함께 얻는 객관적 실재라고 여기면서 임하는 상황이 대부분이기에
철학적인 사유를 깊이 하지 않는 일반 입장에서는 이런 감각현실을 얻게 하는 본 바탕인 실재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 자체가 드문 것이다. 그래서 본 바탕인 실재가 공한가 공하지 않은가 이런 논의 자체는 일반 입장에서는 아예 문제로 거론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이 내용이 더 바탕이 되는 기본 내용이라고 보지만, 현실에 임하는 일반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무상해탈문이 생활에 더 직접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누구나 거리에 서서 오가는 영희나 자동차나 건물을 보면 그것을 영희나 자동차나 건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대하는 것이고 이 본 바탕은 무엇일까 공한가 아닌가. 자신이 보고 얻는 내용들이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공한 실재를 바탕으로 마치 침대에서 침대와는 엉뚱한 바다나 황금꿈을 꾸는 것처럼 실답지 않고 엉뚱한 내용을 얻는 상황이어서 이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은가 아니면 실다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시라도 생활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대단히 드물다고 보는 것이다.
현실 사정은 앞과 같이 영희면 영희 자동차면 자동차 건물이면 건물 이렇게 딱 보고 그 바탕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활동하는 것이 대부분의 삶의 상황인 것이어서 공 해탈문은 오히려 무상해탈문을 먼저 해결하고 나서 그 다음에 살펴야 할 주제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여하튼 이 두 해탈문은 다음 내용이다.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고 그것이 영희나 사과나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할 때 그런 분별 내용은 그 부분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분별을 바탕으로 그런 부분을 붙잡고 집착하면서 취하고 늘어지지 말라는 내용이 무상해탈문이고
또 그런 감각현실과 분별내용처럼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모두 본 바탕이 되는 실재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또 그런 내용들은 실상이 아니다. 따라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마치 침대에 누어서 꿈을 꾸어 얻은 바다나 황금처럼 아무리 그 매 순간은 대단히 생생하고 진짜처럼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꿈처럼 실답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그런 부분을 붙잡고 집착하면서 취하고 늘어지지 말라는 내용이 공해탈문인 것이다.
이처럼 현실의 본 바탕과 그 사정이 그와 같으니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해서 현실에서 번뇌를 일으켜 추구하는 그 일체는 그런 바탕에서 그렇게 추구하면 오히려 그 자신을 더 극심한 생사고통을 더 무량하게 받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니 그런 바탕에서 일으킨 일체의 소원을 모두 폐기처분하고 그런 희망을 추구하는 업을 모두 중지하라는 것이 무원무작 해탈문인 것이다.
사정이 앞과 같으므로 그런 행위를 중지하고 폐기하지 않으면 그 업이 결국 그 주체를 생사에 묶어서 풀어주지 않는 족쇄가 되고 자신에게 결국 터져서 고통을 받게 하는 시한폭탄이나 지뢰와 같은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면 바탕이 진흙뻘인데 그 바탕에서 땅을 열심히 판다면 나중에 판 만큼 다시 올라오기만 힘들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수행자가 이 3 개의 해탈문을 의존해서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면 상당히 상황이 악화되고 일일히 헤아리지 않아도 그런 경우는 지옥 아귀 축생의 3 악도에 들어가서 빠져 나오기 힘들다고 진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정이 오늘 살피는 잡아함경에서도 기본적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잡아함경은 그 경전을 대하는 수행자 자체가 일단 일반인의 상황에서 갓 수행을 시작한 상태로서 수행자 자신부터 자신의 업의 장애를 제거하고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수행에 전념해야 하는 단계인 것이다.
비록 수행 내용 자체는 엇비슷하지만, 나중에 대승에서 자신의 생사도 생사지만, 다른 중생을 생사의 묶이메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또 생사 현실에 수행자가 들어가 임하는 가운데 수행해 나가는 것과는 조금 측면이 다르다고 또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이 수행들이 모두 생사현실에서 행해나가야 할 내용들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는 원래 본 바탕을 놓고 보면 이런 내용 자체가 필요가 없다고 할만한데 각 중생과 수행자가 처한 생사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측면이다.
그리고 그 수행자도 앞처럼 각 상황에 따라서 조금 달리 대할 사정이 있다는 의미다. 또 그리고 각 수행자가 처한 사정이나 수행방안이 제시되는 취지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내용을 놓고도 양 측면마다 조금 혼동을 일으킬 만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현재 더위가 극심해서 찬대승 요원도 바깥에서 연구실 안으로 들어와서 같이 더위를 피해 수행 중인데 일단 조금 쉬고 살펴나가기로 한다.
노래가 한 번 뽑히면 그 노래를 계속 들으면서 글을 쓰게 되기 때문에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쉬는 동안 상을 현실에서 취하여 갖지 않고 어떻게 과연 살아갈 수 있겠는가 . 이 문제를 놓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들었는데 그 노래 제목에 대강 불교에서 강조하는 무아 'moi' 란 단어가 들어간다. 이것만 외우고 다시 그 곡을 찾아내려고 검색을 해보니 노래가 나와도 너무 많이 나온다.
그래서 노래를 들었던 장소로 다시 가서 한참 뒤졌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또 다시 돌아와서 검색되어 나오는 moi 가 들어가는 노래를 놓고 혐의가 가는 곡을 하나씩 들춰보면서 겨우 찾아서 올리게 된다.
지금 현실에서 상을 갖지 않는 문제는 최종적으로 무아 무자성인 현실 사정을 깨닫고 그리고 아상을 갖지 않고 현실에서 수행하며 임하는 데에 핵심이 있다. 그래서 쉬는 동안 들었던 무아가 들어간 노래는 대단히 중요한다고 보는데 여하튼 찾아서는 다행이지만, 본인이 불어 단어를 못 읽는 상태이기에 노래 제목이나 가수 이름을 기억하는데 일정한 한계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단어를 모르면 기억이 안 되는데 단어를 알면 기억이 되고 그 다음 작업에 도움이 되고 영향을 미친다. 이 부분이 의외로 중요하다고 본다. 불교 전문용어로는 명언종자 라고 이를 표현하는데 이는 한마디로 언어가 다음 현실에서 나타나게 되는 내용들의 씨앗 역할을 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명언종자와 대칭되는 종자로서는 업종자도 있는데 분별을 바탕으로 행한 선악의 신구의 3업이 또 씨앗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다.
현실에서 쉽게 이해하면 어떤 이가 어떤 탁구나 농구 배구 골프 등등의 여러 운동을 한다고 할 때 어떤 이는 곧바로 그 운동에 필요한 행위를 잘 하는 경우를 보는데 어떤 경우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렇게 처음 대하는 듯한 운동을 잘 하는 것은 과거에 그런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는 과거에 익힌 자세 등이 어디엔가 보존이 되어서 그런 차이를 낳는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 안에서도 어떤 순간에 과거의 내용이 보존이 되어서 그런 차이를 낳는다고 보는 내용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구별이 된다면 생사윤회과정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찾을 때는 그런 차이를 낳는다고 보는 것들안에서 찾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생사를 넘어서까지 그것이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또 별도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그런데 현실 안에서도 어떤 내용이 보전이 되지 않는다면 생사과정에서 보존이 된다고 보기는 더더욱 힘든 것이다.
현실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고 또 수행도 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이어 살피기로 한다.
원칙적으로 공해탈문 무상해탈문 무원무작 해탈문이 제시하는 내용은 존재와 관련한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의 각 측면에서 현실에서 집착하고 있는 내용은 하등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니고 따라서 큰 의미가 없다고 제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칩착하는 내용을 기준으로 놓고 현실을 대하면 이들은 하나같이 대단히 중대하고 의미가 큰 일이라고 보게 되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이 두 입장은 서로 입장이 극과 극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이처럼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는 이 두 입장 가운데 어떤 입장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한 입장이 옳다면 그와 극단적으로 정반대가 되는 다른 입장을 바탕으로 매 순간 임하고 행위해가는 입장은 그 내용 자체가 아주 엉터리가 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극심한 고통이나 손해를 겪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 살피는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결론과 그 근거를 과거에도 반복해 살핀 적이 있을 뿐 아니라, 일단 그 결론이 당연하게 옳다고 미리 전제한 가운데 먼저 그런 상태에서 그러면 현실에서는 생활과정이나 수행과정에서 현실에서 어떻게 임할 수 있고 또 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먼저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Théophile Alexandre Steinlen (November 10, 1859 – December 13, 1923)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어 아르누보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 몽마르트르 (Montmartre)와 그 주변 지역은 스타 인 렌 (Steinlen)의 삶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으며, 종종 그 지역에서의 더 가혹한 삶의 일부 장면을 그렸습니다. 회화와 그림 외에도 그는 조각품을 찍었습니다. 제한된 기준 으로 볼 때, 많은 그림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가장 애정을 쏟은 고양이 인물들이었다.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Théophile_Steinlen Title : catalogue-de-l-exposition-d-ouvrages-peints-1903 Info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osa_English_Garden_02
Description English: Rosa 'English Garden' in the Volksgarten in Vienna. Identified by sign. Deutsch: Rosa 'English Garden' im Volksgarten in Wien. (English Garden, Engl. 1986) Date 9 June 2010 Source Own work Author Anna reg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西光寺 (西脇市) - 兵庫県西脇市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1159-4 Kurodashōchō Ishihara, Nishiwaki-shi, Hyōgo-ken 679-0322 일본 ▶▶▶ [위성_참조링크4]www.google.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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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 시대 에는 타키 군 일대는 천태종 에 강하게 교화되어 있으며, 여기西光寺은 천태 밀교 신앙을 모으는 성지였다. 寺勢은 번성하고 12 세기 초반에는 교토 의 귀족 들에 의해 대 반야경 사경 600 권이 봉납되어있다. 겐 페이 시대 의 1184 년 ( 주 에이 3 년)에 三草山의 전투 에서 패한 헤이 케 의 군이西光寺에 도망, 미나모토 노 요시츠네 군과 전쟁을 섞어했다. 여기에서도 패한 헤이 케는西光寺에 불을 지르고討死했다. 그 후, 西光寺는 부흥되는도 다시 오닌의 난 의 전화로 소실 다시 부흥되는도 전국 시대 에는 마쓰 나가 히사 히데 의 공격으로 소실 마침내寺勢은 쇠퇴했다. 몇 차례의 전쟁을 빠져 나갔다 대 반야경 600 권은 내 200 권이 혼조 스 미요시 신사에 배분 된 현존한다.
황금의 닭 전설 [ 편집 ]
西光寺山 정상에 모셔진 사당 옛날西光寺山정상에 국가를 만유하여 수행 을 쌓은 고승 이 암자 를 맺고 살았다. 스님은 백성 의 질병을 치료하거나 연설을하거나 농작물을 만드는 방법 등을지도하고 마을에 대단히 존경 받고 있었다. 승려 사는 허술한 암자에는 한층 훌륭한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무엇이 들어 있는지 흥미 진진에 승려에 물었더니 마을이 기아 와 질병 에 시달리는 때 구해줄 것 이 들어있다. 그러나 속을 보면 나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나오기 때문에 결코두고는 안된다고 말했다. 볼라고 말하는 것으로 싶어지는 것이 인정에서 어느 날, 스님이없는 틈을 타 젊은이 한 사람이 나무 상자의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안에는 순금 닭이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마을에 구전되어 호평을했다. 마을을 지나가던 나그네가이 말을 듣고 한밤중에 스님의 암자에 잠입 나무 상자에 손을 걸었다. 순간에 번개 와 천둥 이 포효 여행자는 계곡 바닥에 굴러 떨어져 버렸다. 스님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 들어 있었다.
2,3 일 후 스님은 하산 마을을 모으면, 고승이 암자를 맺고 살았다는 전설이 남아 西光寺山 정상에서의 조망 (서방 니시와키의 산들을 원하는) 白髪岳 에서 본西光寺山 "내가하지 말아야 할라고 한 데 거역 한 사람이있다. 나는 여기를 떠나 또한 수행의 여행을 떠난다하지만 보물은이 산에 남겨 둔다. 모두가 힘을 합쳐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보물이 도움 때가 올까 " 이러두면 스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행을 떠나 갔다. 이후에 산정에는 훌륭한 사원이 건립 된 황금 닭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 金鶏山西方寺 "라고 명명했다. 지금도 별명을金鶏山라고 사찰의 흔적도 남아있다. 이후 지역에서는 정월이 날 어둠西光寺山어딘가에 황금 닭이 사방에 금색의 빛을 발하는 전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본 사람은 없다.
교통 [ 편집 ] 자동차 : 니시와키시 중심에서 약 12km의 나카 하타 임간 가족 공원에서 도보 약 1 시간.
철도 : JR 후 쿠치 야마 선 사사 야마구치 역 에서 약 15km의 사사 야마시 이마다 쵸 혼조 묘지에서 도보 2 시간.
Théophile Alexandre Steinlen (November 10, 1859 – December 13, 1923)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어 아르누보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 몽마르트르 (Montmartre)와 그 주변 지역은 스타 인 렌 (Steinlen)의 삶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으며, 종종 그 지역에서의 더 가혹한 삶의 일부 장면을 그렸습니다. 회화와 그림 외에도 그는 조각품을 찍었습니다. 제한된 기준 으로 볼 때, 많은 그림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가장 애정을 쏟은 고양이 인물들이었다.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Théophile_Steinlen Title : tu-te-brules-a-la-chandelle-1900-1.jpg!HD Info
Description Roman. Production in Japan. 浪漫。レンガ色が特徴。何ともいえない味わいのある色味の、大好きなバラ。 Date 31 October 2009, 16:12:35 Source Flickr: Rose, Roman Author Yoko Nekonomania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Lioli_Gateway
Artist: Pierre-Auguste Renoir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2.25 – 1919.12.3)는 인상파 스타일의 발전에서 선도적인 화가였던 프랑스 예술가였다. 아름다움과 특히 여성스러운 관능미의 기념자로서 르누아르(Renoir)는 다음과 같이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전통의 최종 대표자입니다. 그는 배우 피에르 르누아르 (1885-1952), 영화 제작자 장 르누아르 (1894-1979), 도예가 클로드 르누아르 (1901-1969)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피에르 (Pierre)의 아들인 클로드 르누아르(Claude Renoir, 1913-1993)의 할아버지였다.[---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Pierre-Auguste_Renoir Title : georgette-charpentier-seated-1876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he_Daughters_of_Edward_Darley_Boit,_John_Singer_Sargent,_1882_(unfree_frame_crop)
Artist [show]John Singer Sargent (1856–1925) Blue pencil.svg wikidata:Q155626 s:en:Author:John Singer Sargent q:en:John Singer Sargent Title English: The Daughters of Edward Darley Boit Deutsch: Die Töchter Boit Türkçe: Edward Darley Boit'in Kızları wikidata:Q644106 Date 1882 Medium oil on canvas Dimensions 221.93 × 222.57 cm (87.4 × 87.6 in) Current location [show]Museum of Fine Arts, Boston Link back to Institution infobox template wikidata:Q49133 Accession number 19.124 Object history 1882, Edward Darley Boit (1840-1915) and his wife, Mary Louisa Cushing Boit (1845-1894), Paris and Boston; 1915, by descent to their daughters, the sitters, Mary Louisa Boit, Florence D. Boit, Jane Hubbard Boit, and Julia Overing Boit; 1919, gift of Mary Louisa Boit, Florence D. Boit, Jane Hubbard Boit, and Julia Overing Boit to the MFA. (Accession Date: March 31, 1919) Credit line Gift of Mary Louisa Boit, Julia Overing Boit, Jane Hubbard Boit, and Florence D. Boit in memory of their father, Edward Darley Boit Inscriptions Lower right: John S. Sargent 1882 Source/Photographer http://www.mfa.org/collections/object/the-daughters-of-edward-darley-boit-31782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Yi_He_Yuan_-_A._Holdrinet
https://en.wikipedia.org/wiki/File:Yi_He_Yuan_-_A._Holdrinet.jpg Description English: Yi He Yuan Date 15 June 2006 (according to Exif data) Source Own work Author André Holdrinet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Politecnico di Mil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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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정보2] Politecnico di Milano Via Giovanni Battista Scalabrini,76, 29100 Piacenza PC,이탈리아 polimi.it +39 0523 356811 ▶▶▶ [참조링크2]www.google.nl
니코 디 밀라노 (영어 : 밀라노의 폴리 테크닉 대학 ) 가장 큰 기술 대학 에서 이탈리아 에 대한 42,000 학생들과 함께. [2] 공학 , 건축 및 디자인 분야의 학부, 대학원 및 고등 교육 과정을 제공합니다 . 1863 년에 설립 된이 학교는 밀라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입니다.
Politecnico는 연구 및 교육 활동의 대부분이 위치한 밀라노 시내에 2 개의 주요 캠퍼스가 있으며 Lombardy및 Emilia Romagna 전역의 5 개 도시에 다른 위성 캠퍼스가 있습니다 . 중앙 사무소와 본부는 밀라노 의 Città Studi 의 역사 캠퍼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 1927 년 이래 가장 크고 활발한 곳이기도합니다.
이 대학은 2014-2015 년 동안 CENSIS- Repubblica 이탈리아 대학 순위 에서 이탈리아 최고의 상위 대학 중 공학 및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 [6] QS World University Rankings 에 따르면 2018 년 현재 세계에서 17 번째로 우수한 기술 대학입니다. [7] 디자인 5 위, 건축 9 위, 토목 및 구조 공학 9 위, 공학 기술 17 위입니다. [7]
그것의 주목할만한 동창 포함 줄리오 나타 , 노벨상 수상자
Its notable alumni include Giulio Natta, Nobel laureate in chemistry in 1963. Francesco Brioschi (1824-1897),founder and first rector of the Politecnico. Città Studi buildings in 1930 List of Rectors of the Politecnico di Milano[5] Rector Tenure Francesco Brioschi (1824—1897) 1863—1897 Giuseppe Colombo (1836—1921) 1897—1921 Cesare Saldini (1848—1922) 1921—1922 Luigi Zunini (1856—1938) 1922—1926 Gaudenzio Fantoli (1867—1940) 1926—1940 Carlo Isnardo Azimonti (1876—1943) 1940—1943 Gino Cassinis (1885—1964) 1944—1960 Gino Bozza (1899—1967) 1960—1967 Bruno Finzi (1899—1974) 1967—1969 Francesco Carassa (1922—2006) 1969—1972 Luigi Dadda (1923—2012) 1972—1984 Arrigo Vallatta (1930—2001) 1984—1987 Emilio Massa (1926—1998) 1987—1994 Adriano De Maio (b.1941) 1994—2002 Giulio Ballio (b.1940) 2002—2010 Giovanni Azzone (b.1962) 2010—2016 Ferruccio Resta (b.1968) 2017—2022 The Politecnico was founded on 29 November 1863 by Francesco Brioschi, secretary of the Ministry of Education and rector of the University of Pavia. It is the oldest university in Milan.
from http://en.wikipedia.org/wiki/Image:Murcia_University.jpg photo taken by en:User:JCRA Licensing[edit] Public domain This work has been released into the public domain by its author, JCRA. This applies worldwide. In some countries this may not be legally possible; if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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