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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3-05-09_유식이십론_00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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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3-05-09_유식이십론_001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9. 5. 9. 15:40



®


『유식이십론』
K0608 
T1590

유식이십론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유식이십론_K0608_T1590 핵심요약



♣0608-001♧

유식이십론



○ [pt op tr]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Pierre Bachelet - Partis Avant D'avoir Tout Dit.lrc 








● 현실 내용이 실다운 자신이고 세상인가의 문제 


『유식이십론』에서는 그간 대단히 많이 살핀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눈을 떠서 현실내용을 대할 때 
자신이나 세상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망상분별을 거의 대부분 일으키게 된다. 

그 내용을 수없이 반복했기에 
이것을 또 여기에 적으려면 지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는 
경전에서 그런 내용이 한 주체의 마음 내용이고 
그것이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실답게 느껴지는 사정을 제시하면서 
왜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그렇게 얻게끔 되고 
실답게 잘못 여기게 되는가 
이 부분을 다시 이해하는 것이 조금 어려운 부분이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책상에 놓여 있는 사과를 바라보면서
이것을 두드리면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을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촉감을 얻는다. 

그리고 이 사과를 쥐어서 옆에 있는 영희나 철수에게 건넨다. 
그 다음 사과를 먹고 씨를 땅에 묻어 물을 주고 키운다. 

이런 상황을 놓고 생각해보자. 

경전에서 이 모든 현실 내용이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고 외부 내용이 아니고, 
자신이 대하는 내용은 어떤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 아니라고 제시하는데 

1-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자신의 마음 밖에 있는 외부 세계의 내용인 것처럼 여겨지고
그리고 앞의 실험의 경우처럼
다양한 감각내용을 얻게 한 대상 자체인 것 같다고 여기게 되고 
또 그것은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놓고 보아도 마찬가지여서 
대단히 실다운 외부의 객관적 실재인 것으로 여기게 되기 쉽다. 

2- 그리고 이들 내용이 설령 마음안 내용이라고 해도 
마음에서 이런 내용을 얻을 때는 
마음 밖에 무언가 이런 내용을 얻게 한 실다운 내용이 
그처럼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다시 하게끔 된다. 

이 두 입장은 조금 비슷하지만, 다르다. 

처음 1 입장은 자신이 감각한 내용이 그대로
자신 밖의 외부 세계이고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고
자신의 마음과는 떨어져 있고 별개인 외부 물질이면서
누구나 같이 얻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라고 여기는 것이다. 

2 입장은 그것은 아님을 이해하지만, 
그러나 자신의 마음 밖에 자신이 얻어낸 내용과 일치하거나 유사하고 비례하는 
어떤 내용이 그대로 있다고 여기는 망상분별이다. 


그러나 여하튼 둘다 문제가 있는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 대부분 그런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그 내용을 고집하게 되는 사정들을 
『유식이십론』에서 나열해서 살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잘못된 망상분별인데 현실에서 거의 대부분 
이런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그에 의존해서 삶을 살다가 죽어가는 일을 
무량하게 반복하게 되는 사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를 들어 
현실에서 기사를 작성할 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더니 그로 인해 어떻게 되었다. . 
이런 식으로 작성한다면 

현실 내용을 이런 각 요소를 기준으로 놓고 살펴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평소 스스로 자신이라고 생각한 부분이나 
외부 사물 들이 그처럼 실답게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여기게 되기 쉽다. 

그 내용이 처음 소개되고 있다. 


우선 일정 장소인지 아닌지는 삼각점 요소를 놓고 생각하면 쉽다. 

왼쪽에 산이 있고 오른쪽에 바위가 하나 있는 곳에 가면, 
매번 자신의 집을 보게 된다. 
이것이 자신 마음 내용이라면 매번 이렇게 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또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측정하는 데에도 삼각점 비슷하게 변화량을 측정하는 기준이 있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빛이 들어오고 배가 고프다. 
그런데 이것도 매번 그렇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자신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영희도 철수도 함께 경험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바라보는 손바닥이나 사과가 마음내용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손을 뻗쳐 사과를 만지면 촉감이 그 때 느껴진다. 
소리도 그 때 들린다. 
더 나아가 이 사과를 굴리면 굴러간다거나, 
기타 현실에서 있는 온갖 내용에서 파악되는 인과관계도 파악된다. 
즉 매번 그런 관계를 보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자신의 마음안 내용일 뿐이고
마음 밖에는 이런 내용을 얻을 수 없으므로 
실답지 않다고 할 것인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고 의문을 갖는 입장들이다. 
위 논서에 그 사정을 다양하게 제시하면서 
그것을 검토한다.  [ 상속-시-처-작용] 


그런데 이런 의문을 일으키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본 정체가 아님에 대해서는 여러 번 반복했다.

유식이십론에서 살피는 입장은 
사실은 현실적으로 이해하기가 조금 더 어렵다. 
지옥 상황이 대부분 함께 경험하고 확실한 내용이면 
이를 통해서 그 사정을 밝힐 수 있다고 보지만, 
이렇게 제시하면 이제 그 지옥 상황부터 다시 정말 그런가를 밝혀야 하는 
문제가 또 제기된다. 
그래서 그런 방안으로 이해하는 것과 병행해서 
현실 내용이 마음 내용이고 
그 안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은 없다는 사정 
그리고 본 바탕은 전혀 내용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얻는 내용과는 대단히 엉뚱한 관계이므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실답다고 보면서 집착을 갖고 대할 내용이 아님을 
여러 방식을 통해서 살펴왔다. 

그리고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을 실답다고 여기고 집착을 갖는 바탕에서 
매 순간 업을 행해나가면 
비록 그 주체는 그것이 좁고 짧고 얕은 관찰에 바탕해서 
자신에게 좋음을 많이 가져다 주리라 보고 그렇게 매순간 행하게 되는 것이지만, 
그 판단과는 달리 정반대로 
극심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아나가는 3 악도에 묶여 지내게 된다는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혹(번뇌)- 업- 고의 관계]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이 사정을 올바로 관하고 
그 첫 부분부터 그 문제를 잘 시정해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수행의 기본적 목적이다. 

그런데 그 내용들을 과거에 많이 반복했기에 
여기에서는 링크만 걸고 생략하면서
오히려 과거 글을 좀 더 잘 정리해서 보완하는 한편 
체계적으로 잘 쉽게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게 된다. 

링크를 참조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현실에서 
자신이 스스로 자기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
그리고 외부 세상 외부대상 외부물질이자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여기고 매 순간 대하는 내용이 
모두 자신 마음안 내용임을 쉽게 확인하는 실험방법부터 

이들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다는 내용까지 자세하게 참조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과 같은 사정 때문에 자꾸 자신이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 부분이나 
외부 세상이라고 여기고 대한 부분이 
정말 자신이고 외부 세상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이 부분을 또 잘 이해해야
자신이 망상분별을 일으켜서 
생사고통을 받게 된 과정과 사정까지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이 조금 살피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는데 
물론 가장 간단하고 대강의 설명은 마쳤다고 보지만, 
현재 『유가사지론』을 살피면서 
이들 사정을 좀 자세하게 살펴나가려고 기획 중이다. 

그래서 이들 논의는 일단 그 부분으로 미루기로 한다. 

=> 



■■■

○ 마음현상에 대한 논의 - 전체 내용
http://buddhism007.tistory.com/4053
http://buddhism007.tistory.com/entry/마음-현상의-이해#gsc.tab=0 [불교진리와실천]
dict-list--editing_text.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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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링크를 살펴보려니 너무 또 내용이 많다. 

그래서 간단하게 이 사정을 비유적으로 이해해보기로 하자. 

사과를 손으로 만져 두드릴 때 소리나 촉감을 얻는 경우를 놓고 
잘 생각해보자. 

현실에서 이 상황을 놓고 생각하면 
거의 대부분 
자신이 눈으로 바라보는 사과 모습과 손 모습이 
각기 그런 소리나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이고 감관인 것처럼 여겨진다. 

즉 자신이 촉감을 얻는다면 
그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은 자신이 눈으로 바라본 그 사과 모습이고 
그 촉감을 얻게 된 감관은 손이다. 
이렇게 여기고 이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당연히 엉터리다. 
그러나 일단 그렇다고 하고 
그 다음을 살펴보자. 

그렇게 해서 촉감을 얻었다고 할 때 
그 촉감 내용안에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이 있다고 하면 맞겠는가. 
이렇게 살펴보자. 
그렇지 않다. 

비록 처음 생각한 내용이 엉터리지만, 
그래도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은 촉감 그 내용이 아니고 
자신의 손이 상대한 사과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하튼 이런 입장에서도 
자신이 얻어낸 촉감 내용 안에는 그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은 없다는 사실은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왜 자신이 보는 사과 모습이 그 대상이 아닌가는 
눈을 감고 그 실험을 다시 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도 역시 얻어진 촉감 안에서 
그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을 찾아내려고 하면 곤란하다. 

눈을 감고 손을 더듬어 책상을 만질 때 촉감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그렇게 얻어진 촉감을 대상으로 해서' 그 촉감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렇게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자신이 눈을 감은 가운데 책상을 만지면서 딱딱한 촉감을 얻는다면 
그는 그 딱딱한 촉감을 대상이라고 여긴다는 의미다. 


특히 시각 정보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 




그 다음 두번째 문제를 또 살펴보자. 
자신이 촉감을 얻었다고 할 때 
그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을 무엇이라고 처음에 보았는가하면 
눈으로 본 사과 모습이었다. 

이 내용은 비록 엉터리이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면 
그 사과 모습 안에 자신이 얻는 촉감이 그대로 있다고 보는가. 
이것을 다시 살펴보자. 
그렇지 않다. 

처음 자신이 눈으로 본 사과를 손으로 만질 때 
그렇게 자신이 보는 사과 모습을 촉감을 얻는 대상으로 여긴 것이 엉터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대상을 상대해 '얻어낸 촉감'과 
그 대상 자체를 놓고 이 내용을 비교해보자.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하나는 색깔이고 하나는 촉감이다. 
그리고 여기에 어떤 비례관계나 유사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서로 간에 공통된 부분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자신이 눈으로 본 색깔을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이라고 본 것은  
앞에서 보듯 엉터리다. 

그런데 마음 밖에 어떤 다른 대상을 추정한다고 해도 
그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단 그 내용을 얻어 내지 못한다. 
물론 얻어내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전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각 감관마다 다른 내용을 얻는 상태다. 

이것이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상황의 비유가 나타내는 내용이기도 하다. 

자신은 어떤 내용을 얻으면 그 내용이 다른 영역에도 그대로 있다고 
여기려 하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자신이 얻어낸 내용을 놓고 비교하면 
이들 관계에서부터 그 내용이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실답지 않다는 것은 현실의 사정이 이러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각 내용을 각 영역에서 그처럼 생생하게 얻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영역에는 어떤 내용이 전혀 없음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단지 한 영역에서는 예를 들어 벽돌인데 
다른 영역에서는 이에 대해 사과의 내용을 얻는 상태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마치 침대에 누어 자는데 꿈꾼 내용은 바다나 황금 꿈을 생생하게 꾼다.
이런 상황과 같다는 뜻이다. 
이 경우 그렇게 꾼 꿈 내용은 그 상황에서 대단히 생생하게 얻어도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현실 내용은 마음에 얻어진 내용이다.  <=> [ 일반적으로 한 주체가 감각한 감각현실을 외부 세계 및 자신으로 나눠 대한다.  ]
거기에는 그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 없다.  [ 일반적으로 대상을 그 안에서 찾는다. ]
그 내용은 실답지 않다. <=> [ 그런 내용을 자신이 얻었다면 다른 영역이나 본 바탕의 사정도 그와 같다. => 그러니 대단히 실답다.  ]
실답지 않기에 집착을 갖고 임하지 않아야 생사의 고통에 묶이는 업을 중단할 수 있고
또 반대로 당장 행하기 어렵다고 보는 수행도 원만하게 성취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생사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 대단히 실답기 때문에 매 순간 그렇게 업을 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런 차이를 낳게 된다. 

처음 그렇게 판단하면 
그에 바탕해서 매 순간 행할 도리 밖에 없다고 보는 업을 행하게 된다. 
그러면 그 결과 씨에서 열매가 맺게 되듯 이제 상황이 바뀌어 3 악도에 묶여서 정신없이 보내게 된다. 

이런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관계를 파악한다면 
미리 예방해서
처음 단계에서부터 벗어나야 하고
정 안되면 마지막 단계에서라도 벗어나야 한다.
이 내용이 모두 수행방안과 관련된 내용이 된다.

처음 단계에서는 계를 실천해서 업의 장애를 제거해서
3 악도에 묶이는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원리는 사실은
마지막 단계 즉 정말 끓는 물 속에서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도 적용된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이 둘 다를 다 행하기 힘들다고 보지만,
그래도 처음 단계에서
계에 해당하는 보시, 정계, 안인 정진의 수행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축사에서 축생으로 태어나거나
아귀 지옥세계에 태어난 상태에서
그 상태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그나마 쉽다. 이렇게 보는 것이다. 

물론 이론상 어느 상황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므로 
다 마찬가지라고 쉽게 볼 수 있지만, 
수행자나 일반인이 대하는 현실 사정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그냥 조금 즐겁고 좋은 것을 포기하고 
수행에 임하는 것과 

톱을 들고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는 상황에서 
평안히 참고 임하는 것은 
이론상 같은 내용이다. 

둘다 본 바탕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공하다. 
그 모두는 자신의 마음안에 얻어진 내용이다. 
이런 원리는 이 두 상황이 다 같다. 

그래서 같은 원리를 적용해서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뒤의 단계로 갈수록 훨씬 힘들다.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예방 조치로 천천히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수행해가는 방안이 기본적으로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수행방안으로서 제시되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해나가면 
뒤의 단계가 되면 또 그것은 쉽게 할 수 있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비유하면 
유치원에 막 입학한 아이를 
비행기에 태워서 낙하산으로 뛰어 내리고 
산악을 등반하라고 하면 힘들지만, 

하나하나 훈련하고 배우는 가운데 
나중에 훈련소에 가서 그렇게 훈련하면 
또 그런 훈련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는 것이다. 

그런데 순서를 바꾸어서 임하면
이론상은 어느 경우나 그렇게 원칙이 적용된다고 보지만,
현실적으로 대단히 힘들게 된다.  





그런데 여하튼 그 기본에서 
처음 자신이 현실 내용을 대한 가운데 
분별을 일으키는 내용들이 
하나같이 망상분별이라는 것을 
먼저 잘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핵심에 평소 자신이라고 보고 대하는 내용이 
사정이 그렇지 않다. 

또 그렇게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 부분이 죽음으로 무너지고 사라지면
자신과 관련한 모든 것이 끝이라고 보는 단멸관을 갖기 쉬운데
그 역시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리고 자신과 외부 세상이라고 여긴 내용도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이 좋다고 보며 원하는 내용도
지금 당장 자신의 입장을 놓고 대하면 좋다고 보기 쉽지만,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하면 그 사정이 그렇지 않다.  

또 그런 좋음을 얻어내는 방안이라고 여기는 것도 
또 그 사정이 그렇지 않다. 

이들 각 경우 그 내용 거의 대부분이 정반대다.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머지 수행도 이에 바탕해서 
원만하게 수행될 수 있게 된다. 


이 가운데 처음 비유로 제시한
손바닥과 손뼉소리 또는 촉감과 관련한 내용들은 
처음 무엇을 대상으로 여기고 보는가 하는 그 전제부분도 잘못인데 
설령 그렇다고 해도 
촉감안에 대상이 있다라고 할 수 없고 
그 촉감을 실다운 내용으로 볼 수도 없다.
즉, 이 두 내용이 다 그렇지 않음을 살핀 것이다.

그런데 그 관계는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모두 그렇다는 것을
이 비유를 통해 잘 이해해야 한다.

특히 눈으로 보는 시각 정보가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얻는 정보 거의 대부분을 시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주체가 갖는 망상분별의 거의 대부분도 이 시각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유식이십론』에서 말하는 유식무경과 
현실에서 얻은 내용이 실답지 않다는 내용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떴다. 
그래서 무언가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눈을 떠 본 내용안에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 있겠는가. 
이 처음 문제는 
앞 비유에서 촉감을 얻을 때 그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이 
그 촉감안에 있겠는가. 이 문제와 성격이 같다. 
그런 것이 없다는 의미다. 

두번째 자신이 눈으로 무언가를 본다고 하면 
그 내용이 그런 내용 외부에도 그대로 실재하겠는가의 문제는 
자신이 촉감을 얻을 때 그 촉감이 
눈으로 본 사과 모습에 그대로 있는가. 
그 문제와 성격이 같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비유로 쉽게 이 사정을 이해하면 쉽다. 

자신이 현실에서 눈을 떠서 생활하면 
앞에 든 예처럼 
자꾸 그렇게 망상분별을 일으키게끔 된다.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이려고 하면 
평소 자신이 스스로 여긴 부분만 변화하고 움직이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가운데 손을 뻗쳐 무언가를 만지면 
그 때 촉감이 느껴지고 소리도 듣고 하는 경험을 반복한다. 

그래서 손이 있는 부분은 자신이고 
그 손이 닿는 부분은 외부 대상이려니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자신이 안경을 바꿔 써본다거나, 
자신의 눈을 손으로 눌러 본다거나 하면 
그것이 모두 일시에 변화한다. 

자신의 외부대상이라고 여기고 대한 것들이 
안경 하나 바꿔 쓴다고 모두 바뀐다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인가를 스스로 설명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현실에서 그렇게 자꾸 마음 내용을 얻게 되고 
그에 바탕해서 생활하게 되기에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곧 외부 세계이고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기게 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배경에는 
처음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미 전도된 망상분별을 공중 3 회전에 걸쳐서 
중첩적으로 일으킨 상태에서 
삶을 출발하게 된 사정을 잘 이해해야 
비로소 현실에서 왜 자꾸 그런 형태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살다가 죽게 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알고보면 손바닥인데 다른 영역에서는 소리나 촉감을 얻게 되듯 

알고보면 벽돌이나 라면이라고 해야 할 어떤 것을 놓고 
자신이 눈을 통해 대하면 
현실에서 보는 것과 같은 모습을 얻게 되고 
그 가운데 일부분을 또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면서 
이 부분과 다른 부분이 관계하면 
그 때마다 각 영역에서 여러 내용을 얻는 관계를 반복하기에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곧 
그런 외부 세계이고 외부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기며 
생활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비유적으로 라면-바위-사과-벽돌-사람의 관계로 
제시하게 된다. 

자신은 현실에서 일정부분을 대하면서
그것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고 대하는데 
그러나 다른 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는 내용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비록 그런 망상을 일으키게끔 하는 그 재료들을
각 영역에서 그처럼 매 순간 생생하게 얻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런 사정으로 그런 내용들은 실답지 않다고 제시한다는 의미다. 


이는 생생하게 자면서 바다나 황금 꿈을 꾸지만, 
그러나 그 바다나 황금꿈 내용은 
잠을 자는 침대에는 얻을 수 없기에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과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는 그 꿈을 그렇게 생생하게 꾸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생생하게 그렇게 얻어도 
본 바탕이 되는 다른 영역에서는 얻지 못하는 내용을 
그렇게 얻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라면-바위-사과-벽돌-사람의 비유는 그런 사정을 나타낸다. 

그것은 앞에서 사과를 하나 놓고 
실험할 때 각 감관별로 얻는 각 내용이 
서로 엉뚱한 내용인 것도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다. 

눈으로 본 색깔과 
귀로 듣는 소리는 서로 얼마나 엉뚱한가. 
마치 이와 같이 

본 바탕의 내용이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얻을 수 없고 
이들 관계는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그것을 비유적으로 라면-바위-사과-벽돌-사람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 
명료하게 의식하지 못하지만, 
실재를 본 바탕으로 한 가운데 
근본 정신과 
제 7 식 
그리고 각 감관을 통해 얻는 내용[감각현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일으키는 분별 
이런 관계를 비유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하나의 본 바탕에서 
눈과 관계해서는 색깔을 얻고 
귀와 관계해서는 소리를 얻듯 
각 정신에서 각 내용을 동시에 매 순간 얻는데 
문제는 현실에서 이런 내용을 함께 얻으면서 분별하는 가운데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이 내용들을 대하면서 
업을 행하는 것이 생사고통을 받는 원인이다. 

즉, 자신은 매순간 무언가를 생생하게 얻고 
그 일정부분이 자신이나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고
또 일정부분은 그러그러한 사물들이고 외부 세상이라고 여기면서 
평소 열심히 생활한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런 망상을 일으키는 재료 자체는 생생하게 매순간 얻지만, 
정작 그런 내용 일체를 그 다른 영역들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여기고 매순간 임하면서
무량겁을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극심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겪어나가는 그 부분이 
바로 생사현실 문제다. 
그리고 이 부분을 해결하려면 
평소 조금 상황이 좋아서 희희낙락하고 여유를 느끼는 그 상황에서부터 
이 문제를 먼저 잘 파악하고 미리 예방 조치를 잘 취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에서 수행방안으로 제시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자신이 현실에서 얻고 분별하는 내용을 고집하고 
이것을 기준으로 삼고 대하면 
나머지 영역들이 대단히 엉뚱하다. 

또 반대로 본 바탕이 되는 내용을 기준으로 잡고 
자신이 매 순간 행하는 감각이나 분별을 살피면 
그것이 엉뚱한 내용이다. 

이 사정을 우선 잘 확인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이 생생하게 감각하고 
명료하게 분별을 일으키면 
이들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도 그처럼 있고 
그래서 대단히 실다운 것이라고 여기게 되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행한 온갖 분별은 
이런 사정으로 전도된 망상분별일 뿐 아니라,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하는 
가장 근본된 원인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망상집착 문제를 잘 해결해야
무량겁에 걸쳐 받아나가는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경전 입장과 
일반인이 입장이 서로 극단적으로 상반되고 
서로 엉뚱한 사정도 위와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가운데 어떤 것을 의존해야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서 벗어나고 
평안한 니르바나를 얻게 되는가 이 부분이다. 

자신의 지금 당장 그리고 자신이 초점을 맞추고 대하는 그 입장을 기준으로
잡고 이들 내용을 살피면 나머지가 엉터리인 것처럼 여겨지기 쉽다.

노래를 듣다보니 박쥐가 언급되는데 
박쥐 상황을 놓고 생각하면 이 상황이 이해가 쉽다. 

박쥐가 경험하는 것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그 박쥐 입장이 옳고 
나머지 내용이 엉티리인 것 처럼 여겨진다.  

사실이 그렇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하나를 취해야 한다면 
넓고 길고 깊게 관하는 바탕에서 
장구하게 의존할 수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잘 임해야 한다. 
박쥐일 때는 통하는데 
돌고래가 될 때는 안 된다거나 하는 경우가 되면 곤란한 것이다. 

지금 인간 상태일 때는 그럭저럭 한 100 년 적당하게 임할 수 있다고 
보는 내용이 사정이 다 그렇다는 것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본 바탕 사정부터 먼저 잘 파악하고 
그리고 그런 본 바탕에서 다시 매 생마다
파생된 내용들과 
그렇게 파생되게 된 배경 사정을 하나하나 잘 파악해서 

현재 자신이 그런 기본 배경에서
이 세계에 태어나 지금 삶을 살아가는 중이라는 현실 사정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죽는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끝이라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부터 잘 파악하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자신의 정체라고 잘못 여기고 임하기에 그런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 반대로 그런 죽음으로 자신이 고려할 내용이 모두 끝이 아니고
이번 생을 출발하게 된 그런 관계처럼
매 생마다 생을 받아서 무량하게 생사현실이 이어진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평소 관찰한 축사의 축생 상황이나
그외 극심한 3 악도의 상황들이 
남의 일이 아니고 자신이 겪어나가야 할 현실 내용이기에 
그것이 바로 생사현실 문제인 것이다. 

그 사정을 잘 파악하고 그 문제를 잘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또 수행이다. 

그래서 망상분별에 붙잡혀서 현실 상황을 엉뚱하게 이해하면 안 되고 
그런 기본 사정을 잘 이해한 가운데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각 경전과 논서에셔 제시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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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fz1196

◈Lab value 불기2563/05/09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AMANDINE BOURGEOIS - L'Homme De La Situation.lrc


♥ 잡담 ♥경전공부 체계 정비 

『대반야바라밀다경』을 살피고 난 후 『유십이십론』을 또 살피게 되는데 
현재 경률논 코너에서 대반야경을 살피고 있고 
또 유가사지론을 살펴 나가는 중이다. 

그런데 경전 부분을 살피는 내용이 이들 부분과 중복되게 된다. 
같은 부분을 따로 따로 살피는 것도 불편하고 
현재 매일 한 부분만 살펴도 거의 하루가 다 지나가는 상태라서 
어느 한 부분에 통합시켜서 살피는 것이 낫다고 본다. 

그래서 우선 일정 부분을 살피게 되면 어느 한 페이지에 놓고 
나머지 페이지에는 링크를 처리하는 방안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 생각에서는 조금 완성도가 높으면 체계적인 경률논코너로 옮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 pun 님 등과 테스트 해본 결과 
조금 사정이 어렵다. 
예를 들어 대비바사론이 하나 뽑혀서 
체계적으로 페이지를 순서대로 생성해 만들어 살피려면 
최소한 200 페이지를 생성을 한 다음에 
페이지를 배당해서 그 페이지 안에서 살펴야 하게 된다. 

문제는 매번 그렇게 해서 해결할 경우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숩지 않다.

현재 『대반야바라밀다경』 의 경우는 오래 전에 
그렇게 준비해서 페이지가 마련된 상태지만, 
경전을 하나 살필 때마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한 부분 살피려면 60 페이지 또는 100 페이지 이렇게 만든 다음에 
그 체계 안에서 살피나가시오. 이러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내용을 살피는데 
주제로도 체계가 없고 
경전상으로도 체계가 없고 
매번 뒤 범벅이고 
중복된다. 이러면 또 곤란하다. 

puntarika 님이 최근의 본인 글들을 살피면서 
왜 같은 내용을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가. 
매번 같은 소리만 하는가. 
이렇게 본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죽 글을 이어서 본 경우는 그렇게 여기기 쉽다. 
그런데 인터넷 페이지를 그렇게 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매번 자신이 연 페이지 그 페이지만 보고 지나가게 된다. 
그런데 일정한 내용을 그 전에 적었다고 해서 
그 전에 적었다라고 하고 넘어가면 
사실 글을 적은 본인도 그 내용을 다시 찾아내기 힘들다. 
또 그렇게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금 그 페이지에 적는 내용도 마찬가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떡하는가. 
본인도 과거에 적은 페이지를 바로바로 찾아내서 
링크를 걸고 생략하고 싶은데 
그것이 지금 잘 안 되고 있다. 
정말 찾아내자면 때로는 그 내용을 새로 쓰는 시간보다 
과거에 쓴 부분을 찾아내고 링크거는 시간이 몇 배 더 오래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정이 작용해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 
한편으로는 중복되고 
전체적으로는 두서가 없고 체계가 없이 산만하기만 하다. 
이런 평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장기적으로 
조각글을 체계적으로 작성하고 배열하기 위해 
과거 조각글부터 재정리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 

문제는 과거 조각글을 살피면 그한 부분 살피는데 
처음 그 글을 적은 시간만큼 다시 걸린다. 
하루에 하나 적었는데 정리하는데 또 하루가 걸린다. 
이런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 다각도로 상황이 어렵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5610#1196 
sfed--유식이십론_K0608_T1590.txt ☞유식이십론
sfd8--불교경율논코너sp_2563_05.txt ☞◆vefz1196
불기2563-05-09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rnst-Ludwig-Kirchner-hallesches-tor-berlin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Гостиварско_дворче_(77)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horn_Tree_Sossusvlei_Namib_Desert_Namibia_Luca_Galuzzi_2004


♡Wat Si Khom Kham วัดศรีโคมคำ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상세정보=> http://buddhism007.tistory.com/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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