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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주림 제64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73. 어렵편(漁獵篇)①[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여래가 펴신 가르침은 인자(仁慈)를 깊이 숭상하므로 금하는 계율 조항에서 살해(殺害)하는 것을 가장 중하다 하셨다.
중생은 탐욕으로 자기 몸을 사랑함으로써 남의 목숨을 해쳐 제 몸을 보양한다.
그 맛에 집착하여 온갖 물고기를 잡고 그 살찐 맛을 탐하여 온갖 짐승을 잡는다.
혹은 매와 개를 놓아 산을 마구 뒤지고 칼과 창으로 숲덤불 속을 마구 헤치며,
혹은 바다에 낚시를 드리우고 강에 그물을 치며 맛난 미끼로 물고기를 낚고 무쇠 탄알로 새를 쏜다.
드디어는 어린 물고기의 목숨을 버리게 하고 약한 날짐승의 나이를 재촉하게 하니,
굴 속에서 새로운 태(胎)를 없애고 동우리에는 묵은 알이 없다.
풀 속과 늪을 다 뒤지고 나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온다.
이에 그 비계는 큰 솥에서 녹고 그 살코기는 여윈 몸에 소화된다.
그 의식(意識)은 국 속에 달라붙고 영혼은 회 속을 의지하나니,
어찌 제 몸의 소중함만 기약하여 저 목숨을 가벼이 여기겠는가?
드디어 저 몸을 죽여 제 목숨을 기르며 제 구복(口腹)의 보존에만 그치고 비참한 살상은 돌아보지 않는다.
다만 주방만을 위해 함부로 죽이고 살림으로써 틈을 엿보는 원수들이 어두움 속에 두루 깔리게 하고,
따라다니는 빚쟁이가 허공에 가득 차게 한다.
선하지 않은 업의 상(相)으로 스스로 장엄하고 악한 행위를 잠깐도 버릴 때가 없다.
보살은 이를 위해 눈썹을 바루고,
대사(大士)는 이 때문에 눈물을 훔치면서 다만 4생(生)을 번갈아 받고 6도(道)에 돌아다니는 것만을 생각한다.
혹 이 몸의 원수가 옛날의 지친(至親)이며,
전생의 친밀한 벗이 지금의 멀어진 친구가 되지 않았는가?
몸을 바꾸고 얼굴을 고쳤으니 다시 서로 알 수 없으며,
저기서 죽어 여기서 났으니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자비의 도는 구제를 제일로 삼고,
보살의 마음은 가엾이 여김을 의무로 삼아 항상 지옥에 두루 다니면서 그 고통을 대신 받고 중생을 널리 구제하여 안락을 주는 것이다.
(2) 인증부(引證部)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열여섯 종류의 악률의(惡律儀)가 있다.
그 열여섯 종류란,
첫째는 이익을 위해 염소를 길러 그것이 살이 찌면 다시 다른 데 파는 것이고,
둘째는 이익을 위해 그것을 사서 잡아 죽이는 것이며,
셋째는 이익을 위해 돼지를 길러 그것이 살이 찌면 다시 다른 데 파는 것이고,
넷째는 이익을 위해 그것을 사서 잡아 죽이는 것이며,
다섯째는 이익을 위해 소를 길러 그것이 살이 찌면 다시 다른 데 파는 것이고,
여섯째는 이익을 위해 그것을 사서 잡아 죽이는 것이며,
일곱째는 닭을 길러 살을 찌워서는 다시 다른 데 파는 것이고,
여덟째는 이익을 위해 그것을 사서 잡아 죽이는 것이며,
아홉째는 물고기를 낚는 것이고,
열째는 사냥하는 것이며,
열한째는 겁탈하는 것이고,
열두째는 괴회(魁膾)요,
열셋째는 그물로 새를 잡는 것이고,
열넷째는 이간질하는 말이며,
열다섯째는 옥졸(獄卒)이요,
열여섯째는 용에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중생을 위해 이런 열여섯 종류의 악업을 아주 끊으면 이것을 계를 닦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에서 말하였다.
“열두 종류의 불률의(不律儀)의 삶이 있다.
첫째는 염소를 잡아 죽이는 것이고,
둘째는 닭을 기르는 것이며,
셋째는 돼지를 기르는 것이고,
넷째는 새를 잡는 것이며,
다섯째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고,
여섯째는 사냥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도적질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괴회(魁膾)이며,
아홉째는 옥지기요,
열째는 용에게 주술을 부리는 것이며,
열한째는 개를 잡아 죽이는 것이고,
열두째는 엿보아 사냥하는 것이다.
염소를 잡음이란 염소를 죽이는 것이니,
살생할 마음으로 기르거나 팔거나 죽이면 그것을 다 염소를 잡는 것이라 한다.
닭을 기르고 돼지를 기르는 것도 다 이와 같다.
새를 잡음이란,
새를 죽임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니,
물고기를 잡고 사냥하는 것도 다 이와 같다.
도적질이란 항상 겁탈하고 해치는 것이다.
괴회란 주로 사람을 죽임으로써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다.
옥지기란,
옥을 지킴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용에 주술을 부림이란,
주술을 익혀 용ㆍ뱀 등을 희롱하고 즐김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개를 잡음이란 전다라(旃陀羅:백정)요,
엿보아 사냥함이란 왕가(王家)의 사냥꾼이다.”
또 『대법론(對法論)』에서 말하였다.
“불률의(不律儀)의 업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염소를 잡고 닭을 기르며 돼지를 기르고 새를 잡으며,
물고기를 잡고 사슴을 사냥하며,
토끼를 그물질하고,
겁탈하며 살인하고,
소를 잡으며,
코끼리를 묶고 단을 만들어 용에게 주술을 부리며,
옥을 지키고 거짓으로 모함하며,
남에게 손해 보이는 것 등이다.
염소를 잡음이란,
생활하기 위하여 염소를 잡거나 기르거나 매매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닭ㆍ돼지 등을 길러 그 필요에 따르는 것이다.
코끼리를 묶음이란 항상 산에 살면서 코끼리를 잡아 훈련시키는 것이다.
단을 세우고 용에게 주술을 부림이란,
주술을 익혀 용ㆍ뱀 등을 놀리고 즐김으로써 생활하는 것이다.
거짓으로 모함함이란,
이간질하는 말로 남의 친화(親和)를 파괴함으로써 생활하는 것이다.
혹은 저 종족에 나거나 혹은 저 사업을 지님이란,
이른바 저 집에 나거나 혹은 다른 집에 나거나 그 차례대로 기약한 바 현재 그 업을 행하는 것이다.
결정함이란,
이른바 몸과 말 등 모든 방편을 먼저하여 기한을 정해 그 업을 현재 행하는 것이니,
이런 것을 불률의의 업이라 하느니라.”
또 『출요경(出曜經)』에서 말하였다.
“남해(南海)에 갑자기 풍랑이 일어 해일(海溢)했다.
어떤 큰 고기 세 마리가 옅은 물에 흘러 들어와 저희끼리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런 재액을 만나 들어찬 물이 빠지지 않으니 차라리 물을 거슬러 바다로 돌아가자.’
그러나 배가 앞을 막아 지나갈 수 없었다.
첫째 고기는 힘을 다해 배를 뛰어넘어 살게 되었고,
둘째 고기는 풀을 의지해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셋째 고기는 기운이 다 빠져 드디어 어부에게 잡혔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보고 다음 게송을 말씀하셨다.
이날이 지나가면
목숨도 그 따라 줄어든다.
마치 적은 물의 고기 같거니
거기 무슨 즐거움 있으리.”
또 『보살본행경』에서 말하였다.
“바사닉왕에게 사질(師質)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그는 재물이 무량하고 때맞추어 구제되었다.
어느 때 사리불은 그를 위해 설법하였다.
사질은 이 설법을 듣고는 부귀영화는 생각하지 않고 출가하기 위해 그 가산을 모두 아우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곧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깊은 산에 들어가 참선하며 도를 수행했다.
그 부인은 슬퍼하면서 먼저 남편만 생각하고 뒤의 남편을 따르지 않았다.
그 아우는 형수가 형을 잊지 못하는 것을 보고 혹 형이 도를 버리고 돌아와 그 재산을 도로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어떤 도적 괴수에게 말하였다.
‘네가 만일 우리 형의 목을 베어 오면 돈 5백 금을 주리라.’
도적은 돈을 받고 산중으로 가서 그 사문(沙門:형)을 만났다.
사문은 물었다.
‘내게는 오직 헤어진 옷뿐이요 아무 재산도 없는데 너는 어째서 왔느냐?’
도적은 곧 답하였다.
‘당신 아우가 나를 부려 당신을 죽이라 했습니다.’
사문은 도적에게 말하였다.
‘나는 갓 도인이 되어 아무 법도 모른다.
아직 나를 죽이지 말라.
내가 부처님을 만나보고 법을 조금이라도 안 뒤에 나를 죽여도 늦지 않지 않느냐?’
도적은 말하였다.
‘지금 꼭 죽여야 합니다.
그만둘 수 없습니다.’
사문은 한 팔을 내밀며 말하였다.
‘우선 이 팔을 베어 가고 내 목숨만은 이대로 두어 부처님을 뵙게 하라.’
그래서 도적은 그 팔을 베어 가지고 가서 그 아우에게 주었다.
이에 사문은 곧 가서 부처님을 뵈었고,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설법하셨다.
‘네가 무수한 겁 이래로 그 머리와 팔ㆍ다리 등을 베여 흘린 피는 4대해(四大海)의 물보다 많고,
쌓인 몸의 뼈는 수미산보다 높으며,
흘린 눈물은 네 강의 물보다 많고,
네가 마신 어버이의 젖은 강과 바닷물보다 더 많다.
일체 몸이 있으면 다 온갖 고통을 받는 것이니,
그것은 다 오랜 습기(習氣)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8정도(正道)만을 생각하여라.’
그는 이 설법을 듣고 확연히 뜻이 풀려 부처님 앞에서 곧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고 신명을 버리고 열반에 들었다.
그 때 도적은 그 팔을 아우에게 주었고,
아우는 그것을 형수 앞에 놓으면서 말했다.
‘이것이 당신이 항상 생각하는 그 남편 팔이오.’
그 부인은 슬피 울면서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왕은 곧 조사하여 그것이 거짓이 아닌 사실임을 알고 그 아우를 죽였다.
그 때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사문은 전생에 무슨 악행을 지어 지금 팔을 베였으며 어떤 덕을 닦아 지금 세존을 만나 아라한이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바라내국(波羅柰國)의 바라달왕(婆羅達王)은 사냥을 나가 짐승을 쫓아가다가 길을 잃고 나올 곳을 몰랐다.
숲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나올 계책이 없었으므로 두려워하면서 그대로 더 나아가 보았다.
마침 어떤 벽지불을 만나 왕은 그에게 물었다.
≺지금 나는 길을 잃었는데 어디로 나가면 좋겠는가?
군사와 말과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 때 이 벽지불은 마침 팔에 나쁜 종기가 생겨 팔은 들지 못하고 다리로 그 길을 가리켰다.
왕은 이것을 보고 화를 내어 말하였다.
≺너는 내 백성이다.
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고 다리로 내게 길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곧 칼을 빼어 그 팔을 끊었다.
그 때 벽지불은 생각했다.
≺만일 지금 왕이 참회하지 않으면 반드시 중죄를 받아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벽지불은 왕 앞에서 허공을 날아오르는 신통을 나타내 보였다.
왕은 이것을 보고 땅에 엎드려 소리를 높여 크게 울면서 참회하고 사죄했다.
≺부디 내려와서 내 참회를 받으십시오.≻
그리하여 벽지불은 내려와 그 참회를 받고 이내 열반에 들었다.
왕은 그 뼈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항상 탑 앞에서 참회하고 발원하여 해탈을 얻었느니라.
그 때의 그 왕이 바로 이 사문이니,
그 벽지불의 팔로 말미암아 5백 생 동안 한 팔을 잘려 죽어 오늘에 이르렀고,
그 참회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일체의 재앙과 복은 끝내 없어지지 않느니라.’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다 놀라고 두려워했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방일을 즐김으로 말미암아
몸에 근심과 고통 있나니
영화스런 자리와 사랑과 치욕
그것은 덧없어 뜬구름 같다.
고기잡고 사냥해 죽이기 좋아하면
자비에 어긋나고 정신 해치며
원한의 괴로운 갚음 있나니
그 고초 어찌 이루 다 말하리.”
감응연(感應緣)[대략 열네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초(楚)의 양유기(養由基)가 활을 잘 쏨
제갈각(諸葛恪)이 사냥을 나가 어린애 같은 괴물을 만남
노(魚)의 환공(桓公)이 제(齊)의 양공(襄公)에게 살해되어 괴물이 됨
진(晋)의 초군(譙郡)의 주자문(周子文) 등은 사냥함으로써 현재의 과 보를 받음
송(宋)의 완치종(阮稚宗)이 사냥을 좋아하다가 현재의 고통의 과보를 받음
양(梁)의 추문립(鄒文立)은 백정질을 업으로 삼음으로써 현재의 대환 (大患)의 과보를 받음
수왕(隋王)의 표기장군(熛騎將軍)은 사냥을 좋아함으로써 그 딸이 미 쳐 토끼와 같이 됨
수(隨)의 응양랑장(鷹楊郞將) 강략(姜略)은 사냥을 좋아하여 목숨을 살려 달라는 새들을 봄
수(隨)의 기주(冀州)의 외읍(外邑)에 어린애가 계란을 삶아 먹다가 현재의 과보를 받음
당(唐)의 수안공(遂安公) 이수(李壽)는 사냥을 좋아하다가 개의 소송 을 만나 생살을 베임
당(唐)의 조주(曹州) 사람 방산개(方山開)는 사냥을 좋아함으로써 현 재의 과보를 받음
당(唐)의 분주(汾州) 사람 유마아(劉摩兒)는 사냥을 좋아하다가 현재 의 괴로운 과보를 받음
당(唐)의 농서(隴西) 이지례(李知禮)는 사냥을 좋아하다가 현재의 고 통을 받음
당(唐)의 진주(晋州)의 백정은 돼지를 죽이고 증험이 있음
초(楚)의 양유기(養由基)가 활을 잘 쏨
초왕(楚王)이 동산에 놀 때 흰 원숭이가 있어,
왕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시켜 그것을 쏘아 잡으라 했다.
몇 발 쏘자 원숭이는 그 화살을 받아 쥐고 기뻐했다.
왕이 양유기(養由基)에게 명령하고 유기가 활을 쥐자 원숭이는 나무를 안고 울었다.
6국(國) 때 경리(更羸)는 위왕(魏王)에게 아뢰었다.
“신(臣)은 아무렇게나 활을 쏘아도 새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위왕은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잘 쏠 수 있겠는가?”
경리가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기러기 한 마리가 동쪽에서 날아왔다.
경리가 아무렇게나 쏘아 그것을 떨어뜨렸다.
제갈각(諸葛恪)이 사냥을 나가 어린애 같은 괴물을 만남
제갈각(諸葛恪)은 단양(丹陽) 태수가 되어 두 산 사이로 사냥을 나갔는데,
어린애 같은 어떤 물건이 손을 내어 사람을 끌어들이려 했다.
제갈각이 그 손을 본래 자리에 떨어뜨렸더니,
땅에 떨어지자 그것은 죽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 까닭을 물으면서 신명(神明)이라 했다.
그러나 제갈각은 말하였다.
“이 사실은 백택도(白澤圖)에 있으니,
거기에서 말하기를 ‘두 산 사이에 어떤 정령(精靈)이 있어서 사람을 보면 손을 내밀어 끌어들이려 한다.
그 이름을 사인(俟引)이라 하는데 땅에 떨어뜨리면 죽는다’고 했다.
이것은 신명과는 다른 것이다.
제군들은 아직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노(魚)의 환공(桓公)이 제(齊)의 양공(襄公)에게 살해되어 괴물이 됨
노(魚)나라 환공(桓公)의 부인 문강(文姜)은 제(齊)나라 양공(襄公)의 여동생이다.
환공이 문강과 함께 제나라로 갔을 때 양공은 그 여동생과 간통했다.
환공이 문강을 꾸짖자 문강은 양공에게 고했다.
양공은 화를 내어 환공과 술을 마시고 환공이 떠나자 양공은 그 아들 팽생(彭生)을 시켜 환공을 수레까지 전송하게 했다.
팽생은 힘이 센지라 환공의 옆구리를 때리자 환공은 수레 위에서 죽었다.
노나라 사람이 제의 양공에게 말하였다.
“우리 임금님은 대왕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편히 있지 못하고 여기 와서 수호(修好)하려 합니다.”
화해의 예(禮)를 마치고도 돌아가지 않았으나 허물을 돌릴 데가 없어서였다.
무엇을 사양하랴 생각하고,
이에 제후(諸侯)들에게 말하였다.
“팽생을 제거하여 치욕을 씻자.”
제나라 사람들은 그 죄를 팽생에게 돌려 그를 죽였다.
뒤에 양공이 패구(貝丘)에서 사냥할 때 어떤 큰 집이 있었다.
시종이 말하였다.
“신(臣)은 어떤 돼지를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팽생이었습니다.”
양공은 화를 내어 말하였다.
“팽생을 어찌 감히 보았겠느냐?
곧 활을 쏘아 죽여라.”
돼지는 바로 사람으로서 그대로 서서 울었다.
양공은 겁이 나서 수레에서 떨어져 발을 다치고 돌아왔다.
그 신하 연칭(連稱)과 관지보(管至甫) 두 사람이 난리를 일으켜 양공을 죽였다.[이것은 『원혼지(寃魂志)』에 나온다.]
진(晋)의 초군(譙郡)의 주자문(周子文) 등은 사냥함으로써 현재의 과보를
받음
『속수신기(續授神記)』에서 말하였다.
당(唐)의 진주(晋州)의 백정은 돼지를 죽이고 증험이 있다.
“진(晋)나라 중흥(中興) 뒤에 초군(譙郡)의 주자문(周子文)의 집은 진릉(晋陵)에 있었다.
그는 젊어서 사냥을 좋아하였는데,
한번은 산에 들어가 사냥하다가 갑자기 산중에서 어떤 사람을 보았다.
키는 5길쯤이요,
그가 가진 화살촉 끝은 너비가 2자쯤이며 희기는 눈과 같았다.
그는 갑자기 성을 나와 불렀다.
‘아서(阿鼠)야.’[아서는 자문의 자(字)이다.]
자문은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예.”
이 사람은 자문을 향해 활을 당겼다.
자문은 그만 넋을 잃고 엎드렸다.”
『속수신기』에서 말하였다.
“오(吳)나라 임해(臨海)의 어떤 사람은 산에 들어가 사냥하다가 집이 있어서 거기 잤다.
밤중에 어떤 사람이 키는 1길인데 누른 옷에 흰 띠를 띠고 와서 이 사냥꾼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일 어떤 원수와 싸움할 것인데 만일 당신이 나를 도와주면 나는 거기 보답할 것입니다.’
사냥꾼은 말하였다.
‘나는 당신을 도와줄 뿐인데 무슨 따로 보답할 것이 있습니까?’
그는 말하였다.
‘당신은 내일 아침에 시냇가로 나오십시오.
적은 북쪽에서 오고 나는 남쪽에 있을 것이며,
나는 흰 띠를 띠고 적은 누른 띠를 띨 것입니다.’
사냥꾼은 약속하고 이튿날 나갔다.
과연 언덕 북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서 마치 바람과 비에 초목이 다 쓰러지듯 쓰러지고 남쪽도 또한 그러했다.
오직 큰 뱀 두 마리가 길이는 10여 길인데 시내 가운데서 서로 만나 곧 서로 감았다.
흰 띠의 형세가 약하므로 사냥꾼이 곧 누른 띠를 쏘니,
그것은 이내 죽었다.
날이 저물자 어제 본 그 사람이 와서 사례하면서 말하였다.
‘여기서 1년 동안만 사냥하시고 부디 명년에는 오지 마십시오.
오시면 반드시 화를 입을 것입니다.’
사냥꾼은 좋다 하고 거기서 1년 동안 사냥하여 짐승을 많이 잡아 큰 부자가 되었다.
몇 해 뒤에 사냥꾼은 먼저 산에 짐승이 많던 것만 기억하고 먼저 약속은 잊은 채 다시 사냥하러 거기 갔다.
흰 띠를 띤 사람은 이 사냥꾼이 다시 온 것을 보고 말하였다.
‘나는 당신에게 다시 오지 말라고 말했는데 당신은 그 말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적은 지금 많이 커졌으니 반드시 당신에게 앙갚음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알 바 아닙니다.’
사냥꾼이 이 말을 듣고 당황하여 달아나려 하다가 키가 8자나 되는 까마귀 옷을 입은 세 사람이 입을 벌리고 그를 향해 오는 것을 보았다.
사냥꾼은 거기서 곧 죽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말하였다.
“탕왕(湯王)은 보았다.
어떤 그물 치는 사람이 사방에 그물을 치고 빌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나 땅에서 나오는 것이나 사방에서 오는 것이나 다 내 그물에 걸려라.’
탕왕은 말하였다.
‘아아,
지독하구나.
걸(桀)이 아니고야 그 누가 이렇게 하겠느냐?’”
송(宋)의 완치종(阮稚宗)이 사냥을 좋아하다가 현재의 고통의 과보를 받음
송(宋)나라 완치종(阮稚宗)은 하동(河東) 사람이다.
원가(元嘉) 6년(429)에 수(隋)의 종리(鍾離) 태수 완음(阮愔)은 군(郡)에 있으면서 치종을 먼 마을로 심부름을 보냈는데 그 때,
군의 관리 개구(蓋苟)와 변정(邊定)을 딸려 보냈다.
어떤 민가(民家)에 이르러 치종은 갑자기 잠이 드는 듯 정신이 몽롱해져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그 집에서는 그가 죽었다 생각하고 집 밖에 메어 내어 장사를 지내려 했다.
한 밤을 지낸 뒤에 그는 깨어나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처음 약 1백 명쯤 되는 사람이 나를 결박하고 수십 리를 가서 어떤 절에 도착했다.
스님들이 공양하고 있는데 세상과 다름이 없었으며,
어떤 스님이 나를 보고 말하였다.
‘너는 사냥을 좋아했으니 지금 그 과보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다음 나의 가죽을 벗기고 살을 저미는 것이 마치 짐승을 다루는 것 같았다.
다시 깊은 물에 넣었다가 입을 꿰어서 들어내어 자르고 써는 것이 마치 생선회를 치는 것 같았다.
또 솥에 삶고 화로에 구울 때는 처음에는 몸이 다 문드러졌다가 다시 회복되었는데,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세 번 되풀이하고는 물었다.
‘너는 살고 싶으냐?’
내가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 달라고 간절히 청할 때,
그 도인은 나를 땅에 꿇어앉히고 머리에 물을 쏟으면서 말하였다.
‘한 번 쏟으면 5백의 죄가 없어진다.’
내가 많이 쏟기를 간절히 청하자,
도인은 말하였다.
‘세 번이면 족하다.’
그리고 도인은 개미 몇 마리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비록 미물이나 죽일 수 없거늘 더구나 이보다 더 큰 것이겠는가?
저절로 죽은 어육(魚肉)이면 먹어도 좋다.’
재(齋)를 올리는 날에는 다 새 옷을 입었으므로 새로 빨 것이 없었다.
그 때 나는 물었다.
‘우리 일행이 세 사람인데 왜 저 혼자만 이런 고통을 받습니까?’
도인은 말하였다.
‘저 두 사람은 죄와 복을 스스로 알면서 범했다.
그러나 너만은 우매하여 인연의 과보를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경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깨어나 며칠 만에 일어날 수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드디어 고기잡고 사냥하기를 아주 끊었다 한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양(梁)의 추문립(鄒文立)은 백정질을 업으로 삼음으로써 현재의 대환(大患)
의 과보를 받음
양(梁)나라 소장엄사(小莊嚴寺)는 건강(建康)의 정음리(定陰里)에 있는 절로서 본래 진(晋)의 영릉왕(零陵王)의 사당 자리이니,
천감(天監) 6년(507)에 도(度) 선사가 지은 것이다.
그 때 추문립(鄒文立)이라는 자는 대대로 백정질을 업으로 삼았다.
한번은 사슴을 잡으려 하자 사슴이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
문립이 이것을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곧 칼로 사슴의 배를 가르니,
사슴의 새끼들이 여느 때처럼 나왔다.
문립은 그것을 부엌으로 가지고 가면서 몹시 측은하게 생각하고 이로 인해 병이 생겨 눈썹과 수염이 다 빠지고 몸에 종기가 생겨 몸이 다 허물어졌다.
그리하여 부끄러움이 생겨 깊이 회개하고,
곧 도를 구하여 도선사에게 죄를 모두 털어놓고 거듭 참회했다.
큰 서원을 세운 뒤에 집의 재산을 다 기울여 이 땅을 사서 가람을 지었다.[『양경사기(梁京寺記)』에 나온다.]
수왕(隋王)의 표기장군(熛騎將軍)은 사냥을 좋아함으로써 그 딸이 미쳐 토
끼와 같이 됨
수(隋)나라 개황(開皇) 말년(600)에 대주(代州) 사람 왕(王)씨는 표기 장군(驃騎將軍)이 되어 포주(蒲州) 진수(鎭守)로 있을 때 사냥을 좋아하여 무수한 짐승을 죽였다.
아들 다섯에 딸이 없다가 뒤에 딸을 낳으니 얼굴이 아름다워 보는 사람이 다 사랑하였고,
부모의 애정이 보통 사람과 같지 않았다.
고향에 돌아오자 마을 사람과 친척들은 그녀를 위해 옷을 지어 주면서 모두 함께 길렀다.
그녀의 나이 7세 때 하루아침에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혹 이웃 사람이 장난삼아 숨겼나 하고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보지 못했다 했다.
여러 오빠들은 말을 타고 찾아 나서 30여 리 밖에서 발견했으나 말이 따라가지 못했다.
오빠들은 수십 기(騎)를 불러 사방을 포위하여 비로소 붙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으로 중얼거리는 것은 마치 토끼가 우는 소리와 같았고,
발은 가시에 찔려 손바닥만한 상처가 생겼고,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죽었다.
부모는 슬퍼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으니,
이것은 실로 그 아버지가 사냥한 재앙을 딸이 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온 집이 다 재계하고 수행하기를 끊이지 않았다.
이 사실은 대리사(大理寺)의 스님 채선명(蔡宣明)이 일찍이 대부법조(代付法曹)로 있을 때 임(臨)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수(隋)의 응양랑장(鷹楊郞將) 강략(姜略)은 사냥을 좋아하여 목숨을 살려
달라는 새들을 봄
수(隋)나라 응양랑장(鷹揚郞將) 천수 강략(天水姜略)은 젊어서 사냥을 좋아하여 매와 개를 잘 부렸다.
뒤에 병에 걸렸는데 머리 없는 천여 마리의 새들이 강략의 책상을 돌면서 부르짖었다.
“빨리 우리 머리를 돌려 달라.”
강략이 두통이 생겨 기절했다가 오랜 뒤에 깨어나서는 스님들을 청해 새들의 명복을 빌어 주었더니,
조금 있다가 두통이 나았다.
그 뒤로 강략은 죽을 때까지 술과 고기를 끊고 살생하지 않았다.
임(臨)이 농우(隴右)에 있을 때 강략을 만났는데 그 때 나이 60쯤이었다.
이것은 강략 자신의 이야기다.
수(隋)의 기주(冀州)의 외읍(外邑)에 어린애가 계란을 삶아 먹다가 현재의
과보를 받음
수(隋)나라 개황(開皇) 초년(581)에 기주(冀州) 밖의 읍내(邑內)의 어떤 아이는 나이 13세로서 항상 이웃집의 계란을 훔쳐 구워 먹었다.
어느 날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인데 어떤 사람이 그의 문을 두드리면서 아이를 불렀다.
아버지는 아이를 시켜 나가 보라 했다.
아이가 나가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관청에서 너를 부른다.”
아이는 말하였다.
“나를 역사(役事)에 부른다면 집에 들어가서 옷과 양식을 가지고 나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럴 필요 없다 하고 아이를 끌고 갔다.
마을 남쪽은 옛날의 뽕밭인데 밭을 갈아 놓고 아직 종자는 뿌리지 않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에 이 아이는 길 오른쪽에 조그만 성(城)이 있고 사면의 문루(門樓)는 단청이 매우 화려한 것을 보았다.
아이는 괴상히 여겨 사자에게 물었다.
“이 성이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사자는 꾸짖으면서 아무 말도 말라고 했다.
성 북문에 이르러 아이를 먼저 들어가라 하므로 아이가 문지방 안에 들어서자 문은 갑자기 닫히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성은 텅 비었고 땅은 다 뜨거운 잿가루로서 복사뼈까지 묻혔다.
아이가 울부짖으며 남문으로 달려가자 남문이 또 닫히고,
또 달려갔으나 동문 서문도 다 그러했다.
가기 전에는 문이 열렸다가 가면 곧 닫혔다.
이 때 마을의 남녀들은 뽕을 따러 나왔다가 이 아이가 갈아 놓은 밭을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우는 것을 보고 모두 이야기했다.
“저 아이는 미쳤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저렇게 돌아다닌다.”
점심 때가 되어 그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 아버지는 물었다.
“우리 아이를 못 보았습니까?”
사람들은 말하였다.
“아이는 지금 마을 남쪽에서 놀고 있으면서 불러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마을 밖으로 나가 멀리서 아이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아이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 소리에 아이는 곧 멈춰 서고 뜨거운 재는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아버지를 보자 땅에 쓰러져 울었다.
그 정강이 위의 살은 다 타고 무릎 이하는 지진 듯 문드러졌다.
아버지는 아이를 안고 돌아와 치료하여 넓적다리의 윗부분의 살은 다 회복되었으나 무릎 이하는 드디어 다 마른 뼈가 되었다.
이웃 사람들이 다 몰려와 그 까닭을 묻자 아이는 아까 본 대로 다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나가 아까 아이가 달리던 곳을 보았을 때 발자국만 분명하고 재는 조금도 없었으니,
이것은 실로 죄업으로 인해 닿는 곳이 다 지옥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읍 사람들은 남녀 노소 불문하고 모두 계를 가져 죽을 때까지 범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대덕 스님 도혜(道慧) 법사가 본래 기주 사람이므로 임(臨)에게 이야기한 것으로서 그들은 이웃 고을에 살았다.
당(唐)의 수안공(遂安公) 이수(李壽)는 사냥을 좋아하다가 개의 소송을 만
나 생살을 베임
당(唐)나라 교주(交州) 도독(都督) 수안공(遂安公) 이수(李壽)는 처음에 종실(宗室)이라 하여 왕(王)으로 봉해졌다가 정관(貞觀) 초년(627)에 벼슬을 그만두고 서울 집으로 돌아와 살았다.
그 성질이 사냥을 좋아하여 항상 여러 집에 매를 기르면서 개를 잡아 매를 먹였다.
이공이 병이 들자 다섯 마리 개가 와서 목숨을 달라 했다.
이공이 말하였다.
“너희들을 죽인 사람은 저 종 통달(通達)이요 내 허물이 아니다.”
개는 말하였다.
“통달이 어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당신의 밥을 훔쳐 먹지 않고 당신 문 앞을 지나가는데 억울하게 우리를 죽였으니,
우리는 반드시 쉬지 않고 그 원수를 갚을 것이다.”
이공이 사죄하고 저들을 위해 명복을 빌어 주겠다고 하자 네 마리는 허락하였는데,
흰 개 한 마리가 허락하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죄가 없는데 나를 죽였고,
또 죽기 전에 너는 나를 산 채로 내 살을 저몄다.
저미는 그 고통을 생각하면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는가?”
조금 있다가 어떤 사람이 그 흰 개에게 말했다.
“저이를 죽여 보아야 네게는 아무 이익이 없다.
저이를 놓아주어 네 명복을 빌게 하는 것도 좋지 않느냐?”
그제야 흰 개는 이공을 용서해 주었다.
조금 있다가 이공은 깨어났으나 편풍(偏風)을 앓게 되어 몸이 불구가 되었다.
이리하여 이공이 개를 위해 그 명복을 빌어 주었으나 끝내 병은 낫지 않았다.
이상은 연안공(延安公) 두운운(竇惲云)의 처제가 임(臨)에게 이야기한 것이다.[이상 네 가지 증험은 『명보기(冥報記)』에 나온다.]
당(唐)의 조주(曹州) 사람 방산개(方山開)는 사냥을 좋아함으로써 현재의
과보를 받음
당(唐)나라 조수성(曺州城)의 무인(武人) 방산개(方山開)는 활을 잘 쏘고 사냥을 좋아하여 그것을 업으로 삼아 무수히 살생했다.
정관(貞觀) 11년(637)에 죽었다가 하룻밤을 지낸 뒤에 깨어나 이야기했다.
“처음 죽었을 때 어떤 두 사람에게 끌려 10여 리쯤 가서 어떤 산에 올라갔다.
귀신 셋이 나를 함께 끌고 사다리로 올라가 꼭대기에 이르려 하자,
흰 매 한 마리가 갑자기 날아와 쇠발톱으로 나의 왼쪽 볼을 차고 가더니,
또 검은 매 한 마리가 날아와 쇠발톱으로 나의 오른쪽 어깨를 차고 갔다.
산꼭대기에 이르러서는 어떤 청사(廳舍)로 끌고 갔다.
어떤 관리가 노란 비단옷을 입고 검은 두건을 쓰고 나에게 물었다.
‘너는 평생에 무슨 공덕을 지었느냐?
자세히 말해 보라.’
나는 말하였다.
‘세상에 나온 뒤로 지은 공덕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관리는 사람을 시켜 말하였다.
‘이 사람을 끌고 가서 우선 남원(南院)을 구경 시켜라.’
두 사람은 나를 끌고 남으로 가서 어느 성에 이르렀는데 그곳은 매우 험준했다.
두 사람이 그 성의 북문을 몇 번 두드리니 성문은 곧 열렸다.
그 성안은 모두 사나운 불뿐이요,
문 곁에는 몇 마리 독사가 있는데 다 길이는 10여길이요,
머리는 닷 되의 흙덩이 같으며,
입에서 불을 토하면서 사람을 물 것 같았다.
나는 두려우나 나올 길은 모르고 오직 머리를 조아려 염불만 했다.
그 때 문이 저절로 열리고 아까 본 그 관리가 나를 보내 죄를 받게 하려 하자,
그 시자(侍者)는 간하였다.
‘산개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이 성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우선 놓아 보내 주어 공덕을 닦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관리는 나를 놓아주고 아까 그 두 사람을 시켜 보내 전송하라 했다.
옛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또 매가 날아와 나를 차려 했으나 이 두 사람의 힘을 입어 거기서 벗어났다.
산에서 내려와 마침내 하나의 구덩이를 보았는데 매우 더러웠다.
그래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두 사람이 밀고 들어와 잠깐 만에 깨어났다.”
그 때 그 매에게 차인 발톱 자국은 매우 깊어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산개는 그 뒤에 처자를 버리고 그 집을 절로 만들어 항상 경 읽기를 업으로 삼았다.
당(唐)의 분주(汾州) 사람 유마아(劉摩兒)는 사냥을 좋아하다가 현재의 괴
로운 과보를 받음
당(唐)나라 분주(汾州) 효의현(孝義縣) 천촌(泉村) 사람 유마아(劉摩兒)는 현경(顯慶) 4년(659) 8월 27일에 병으로 죽고,
그 아들 사보(師保)는 그 이튿날 또 죽었다.
이 부자는 평생에 그 행동이 매우 험하고 교활했었다.
그 북쪽 이웃에 사는 기농위(祁隴威)는 나무하러 갔다가 수레에 치어 죽었다가 며칠 뒤에 깨어나 말하였다.
마아의 아들 사보가 물이 끓는 가마솥 안에서 잠깐 사이에 껍질과 살이 다 없어져 사람의 꼴이 아니요 오직 백골뿐이었다.
이렇게 한참 동안 있다가 다시 본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나는 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사보는 말하였다.
‘나를 위해 사냥했기 때문에 이런 죄의 과보를 받습니다.’
또 물었다.
‘그대 아버지는 지금 어디 있는가?’
사보는 말하였다.
‘아버지 죄는 더욱 중해 갑자기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시거든 우리 집에 알려 주십시오.
우리를 위해 재를 올려 복을 닦아 달라고.’
이렇게 말을 마치자,
나는 다시 사자에게 붙들려 부사(府舍)로 갔다.
집들은 다 높은데 무기를 든 자가 20여 인이 있었다.
한 관리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요즈음 무슨 복을 닦는가?’
나는 말하였다.
‘나는 작년 정월에 마을에 혼자 있으면서 모든 경전을 읽고 적삼을 벗어 보시했으며,
또 5계를 받고 지금까지 범하지 않았습니다.’
관리는 물었다.
‘만일 네 말과 같다면 무량한 공덕인데 왜 여기 왔느냐?’
이에 장부를 가져오라 하여 조사해 보니 거기에 이렇게 씌여 있었다.
‘이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그는 그 곁에 주석을 달았다.
‘계를 받고 보시한 복의 도움으로 더 오래 살아야 한다.’
그는 사람을 시켜 전송하라 하면서 말하였다.
‘지금 곧 깨어날 것이다.’”
당(唐)의 농서(隴西) 이지례(李知禮)는 사냥을 좋아하다가 현재의 고통을
받음
당(唐)나라 농서(隴西)의 이지례(李知禮)는 젊어서 걸음이 빠르고 활을 잘 쏘았다.
능히 말을 타고도 활을 쏘아 살생이 매우 많았으며 때로는 통발로 물고기를 수없이 잡았다.
정관(貞觀) 19년(645)에 조금 앓다가 3,
4일 만에 죽었다.
그는 보았다.
어떤 귀신이 말 한 마리를 몰고 왔는데 세상의 말보다 컸다.
그는 지례에게 말하였다.
“염라왕이 당신을 찾습니다.”
지례에게 말에 타라 하더니 잠깐 사이에 염라왕 앞에 왔다.
왕은 약속하면서 말하였다.
“적을 치러 너를 보낼 터인데 절대 져서는 안 된다.
만일 지면 바로 너를 죽이리라.”
동행 20여 인과 함께 동북으로 나가 바라볼 때 적은 수없이 많아 천지가 어두워지며 먼지는 비처럼 내렸다.
지례는 패하여 돌아가다가 그 동행에게 말했다.
“대왕님의 분부가 엄중하시니 차라리 나가 죽을지언정 패하여 돌아갈 수는 없다.”
지례가 말을 돌려 앞으로 나가 활을 세 발 쏘자 적은 조금 움츠러드는 것 같았고 다시 다섯 발을 더 쏘자 적은 드디어 흩어져 달아났다.
그래서 지례는 왕을 뵈었다.
왕은 꾸짖으면서 말하였다.
“그 적은 비록 물러갔으나 왜 처음에는 패했느냐?”
그는 곧 삼으로 머리털을 묶고 또 손과 발을 묶어 돌 위에 눕히고 큰 돌로 눌러 갈았다.
앞뒤의 네 사람의 몸이 다 부서지고 다음에는 지례 차례가 되었다.
지례는 소리를 가다듬고 외쳤다.
“적이 패한 것은 다 이 저의 힘인데 저는 도리어 왕에게 죽게 되었으니 무엇으로 뒷일을 힘쓰겠는가?”
왕은 드디어 놓아주어 아무 간섭이 없었으므로 지례는 마음대로 놀며 다녔다.
사흘을 지낸 뒤에 서북쪽으로 나가 한 담 안으로 들어갔다.
3묘(畝) 남짓한 땅에 가득한 금수들이 모두 와서 목숨을 돌려 달라면서 차츰 다가왔다.
일찍이 죽였던 암캐 한 마리는 바로 달려들어 먼저 얼굴을 물고,
다음에는 온 몸을 물으니 상처가 났다.
또 키가 1길 5자나 되는 큰 귀신 셋이 지례를 포위하고 다 함께 지례의 가죽과 살을 잠깐 사이에 다 벗겨 오직 얼굴과 눈과 백골 및 오장(五藏)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살은 다 금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살이 다 떨어지고 나면 예전대로 다시 생기고 생기면 또 벗기고,
이렇게 3일 동안 계속하는 그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지례가 돌아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드디어 담을 넘어 남쪽으로 달아났지만 갈 곳을 알지 못했다.
생각에 한 번 뛰어 천리쯤 간 듯한데 또 지례를 쫓아오는 한 귀신을 보았다.
그는 지례를 쇠로 된 고기 잡는 가리에 가두었는데,
무수한 고기들이 와서 지례를 쪼아먹었다.
한참 있다가 귀신도 돌아가고 고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지례의 집에서는 옛날 어떤 스님에게 공양한 일이 있었는데 그 스님이 먼저 죽어 지례에게 와서 가리를 벗기면서 말하였다.
“단월님은 매우 시장하시겠습니다.”
스님은 대추만한 하얀 알약 세 개를 지례에게 주면서 먹으라고 했다.
지례는 그것을 먹고 배가 매우 불렀다.
그는 또 말하였다.
“단월님은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소승도 가겠습니다.”
지례는 살던 집에 돌아와 북쪽의 한 큰 구덩이를 보았다.
거기에는 온갖 창들이 총총 박혀 있어 지나갈 수 없었다.
지례는 또 보았다.
그 형의 딸과 여종이 상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돈과 비단 및 한 그릇의 음식이 있었고 그들은 구덩이 동북쪽에 있었다.
지례는 생각했다.
‘저 여종과 질녀와 함께 놀면 얼마나 좋을까?’
지례는 머리를 돌려 북쪽을 바라보았다.
한 귀신이 칼을 들고 바로 달려오므로 지례는 황급히 몸을 던져 구덩이에 떨어지는 바람에 깨어났다.
처음 죽어서부터 다시 깨어나기까지 6일이 지났다.
뒤에 집사람들에게 물어 그것은 바로 질녀가 돈과 비단을 지례에게 보낸 것임을 알았으니,
그 때에 본 것이 바로 그 동전과 비단을 본 것이었다.[이상 세 가지 증험은 『명보기(冥報記)』에 나온다.]
당(唐)의 진주(晋州)의 백정은 돼지를 죽이고 증험이 있음.
당(唐)나라 현경(顯慶) 3년(658)에 서옥(徐玉)이 진주(晋州) 자사로 있을 때 어떤 백정이 동쪽 거리에서 돼지 한 마리를 죽여 끓는 물에 넣어 가죽과 털이 다 벗겨졌다.
그렇게 한 지 반나절이 지나 다시 다른 돼지를 죽여 아직 배를 가르기 전이었다.
새벽이 되어 칼로 배를 가르려고 길게 내리 찔렀다.
아직 한 번의 칼이 배에 들어가기 전에 그 돼지는 갑자기 일어나 문 밖으로 달아나더니 시장으로 바로 들어가 어떤 사람 가게 평상 밑에 누워 있었다.
시장 사람들은 모두 모여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칼을 들고 쫓아오는 백정에게 사람들은 그 까닭을 물었다.
백정은 말하였다.
“나는 일생 동안 돼지를 잡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 보았습니다.”
백정은 그것을 끌고 가려 했다.
수백 명 구경꾼들은 다 백정을 나무라면서 각각 돈을 내어 그 돼지를 샀다.
그리고 돼지를 위해 집을 짓고 그것을 길렀다.
몸의 털이 다 새로 나고 목과 배 밑의 상처는 나으면서 팔뚝만한 큰 혹이 되었다.
그 돼지는 드나들거나 오갈 때에도 그 우리를 더럽히지 않고 깨끗한 성질이 다른 돼지와 다르더니,
4,
5년 뒤에야 비로소 죽었다.[병주(幷州) 진양현(晋陽縣) 사람 왕동인(王同仁)과 서왕부(徐王府) 연정(椽正) 등이 다 이것을 보고 이야기했다.]
74.
자비편(慈悲篇)[여기 5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보살부(菩薩部) 국왕부(國王部)
축생부(畜生部) 관고부(觀苦部)
(1) 술의부(述意部)
중생이 기운을 받으면 신령한 지혜가 있어서 날짐승과 길벌레들이 다 죽음을 두려워할 줄 안다.
그래서 보살로 하여금 행을 일으킬 때 구제를 우선으로 하고,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실 때 대비(大悲)를 근본으로 하시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강에 나가 고기를 부러워하는 것은 그물을 뜨는 것만 못하고,
남의 복 받음을 보는 것은 인(因)을 행함만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 그 과보를 얻으려면 먼저 그 선을 행함만 못하느니라.
귀하거나 천하거나 평등하게 보시하고 검거나 희거나 마음이 평등하여 3보의 복밭과 4생(生)을 다 같이 공경하되 다 때에 다다라 구제하여 의식(衣食)을 주어야 하느니라.
한 줌과 한 움큼의 보배를 다 주고,
눈과 귀가 사랑하는 것을 거두어 남에게 보시하면 그에 따라 기뻐하는 것이다.
실로 저 상자의 옷으로 그 마음을 격려하고 옥과 비단으로 그 정성을 표하는 것이다.
몸의 살과 뼈에도 애착할 것이 아니거늘 하물며 바깥 재물에 어찌 애착하겠는가?
보살은 행을 행해도 무엇을 구하지 않나니 마음은 비록 물질을 기다리지 않으나 물질은 마음을 잡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과 물질이 모두 구비해야 복과 지혜가 다 행해지는 것이다.
(2)보살부(菩薩部)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 일체 중생을 위하여 보살행을 닦고 이 법안(法眼)을 위하여 모든 중생에 대해 큰 자비심을 일으켰다.
이 몸의 피를 버린 것은 큰 바다와 같고,
모든 거지를 위해 버린 머리ㆍ귀 등은 비복라산(毘福羅山)과 같으며,
코ㆍ혀 등을 버린 것은 10돌로나(突盧那)와 같고,
손ㆍ발 등을 버린 것은 비복라산과 같으며,
가죽 등을 보시한 것은 한 염부제를 덮을 것이다.
또 무량한 코끼리ㆍ말ㆍ노비ㆍ처자 및 왕위ㆍ국토ㆍ성읍ㆍ궁전ㆍ촌락 등을 저 거지들에게 주었느니라.
그리하여 모든 부처님에게서 받은 계율은 범하지 않았고 낱낱 부처님께 한없이 보시했으며,
낱낱 부처님에게서 받은 무량 나유타 백천 법문을 다 수지 독송하고 또 삼매를 잘 닦았다.
나도 한없는 3승(乘) 4과(果)의 성인과 부모ㆍ사장(師長) 및 병자 등을 공경하였다.
구호받을 이 없는 이를 위해서는 구호인이 되었고,
귀의할 데 없는 이를 위해서는 귀의처가 되어 주었으며,
갈 곳이 없는 이를 위해서는 그 갈 곳이 되어 주어 그들로 하여금 다 안주하게 하였다.
나는 이렇게 하고도 저 3대(大) 아승기겁 동안 고뇌하는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큰 견고하고 용맹한 마음을 내어 오랫동안 위없는 보리심을 닦았다.
지금 이 어두운 세상의 큰 도사가 없고 법이 없는 때에 이런 중생에 대해 발심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기를 원하며,
3승(乘)의 보리에서 퇴전하지 않으며,
다시 3악도의 중생을 구제하여 선도(善道) 및 열반의 즐거움에 안치(安置)하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그 때 여래께서는 가타라(加陀羅)의 가시에 발을 찔려 피가 그치지 않았으므로 갖가지 약을 다 바르셨으나 낫지 않았다.
또 여러 아라한들이 향산(香山)에 가서 약을 가져와 치료했으나 그래도 낫지 않았다.
10력(力) 가섭이 부처님께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들에게 평등한 마음이 있어 라후라와 제바달다 등에 대해 다른 마음이 없으면 발의 피가 그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곧 피가 그치고 상처도 나았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의 큰 자비는 모든 중생에 대해 평등하여 다름이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사분율』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 세상에 혜등(慧燈)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염부제의 남녀로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다 10선(善)을 행하게 했다.
왕이 처음 날 때에는 8만 5천의 창고가 저절로 생겨 그것으로 네거리에서 구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시하였다.
그 때 제석천은 생각했다.
≺이 혜등왕은 누구나 구걸하면 일체를 다 보시한다.
오는 세상에서 내 자리를 빼앗을까 염려스럽다.
나는 지금 가서 시험해 보리라.
참으로 위없는 도를 위해 보시하는가?
아니면 장차 퇴전(退轉)할 것인가?≻
제석천은 곧 남자로 화하여 왕의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혜등왕은 우리에게 10악을 행하라고 가르쳤으니,
즉 살생과 내지 사견(邪見)이다.≻
대신들이 왕에게 가서 아뢰자,
왕은 답하였다.
≺아니다.
나는 먼저 염부제 사람으로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다 10선을 행하라고 말했으니,
이른바 불살생과 내지 불사견이다.
나는 장차 왕이 될 것이므로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지금 코끼리를 준비하라.
나는 가서 저 나라 사람들을 교화하리라.≻
천상의 코끼리가 앞에 왔다.
왕은 그것을 타고 가서 말했다.
≺저 사람은 내가 10악을 행하라고 가르쳤다는데,
내게 그 증거를 보여라.≻
그는 곧 증인을 대었다.
왕은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10악을 행하라고 가르치던가?≻
저들은 말하였다.
≺사실입니다.≻
왕은 다시 물었다.
≺10선을 행할 방편이 있는가?≻
≺있습니다.≻
저들이 대답하자,
왕은 다시 물었다.
≺그것은 무엇이냐?≻
저들은 대답했다.
≺만일 보살을 얻어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면 10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때 왕은 생각했다.
≺나는 영원한 이전부터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5도(道)를 떠돌아다녔다.
또 손ㆍ발ㆍ귀ㆍ코 등을 끊기고 눈을 빼이고 머리를 잘렸지만 끝내 무슨 이익이 있었던가?≻
곧 예리한 칼로 그 다리 살을 베고 그릇에 피를 담아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선남자야,
너는 이 살과 피를 먹고 10선을 행하여라.≻
그 때 저 남자는 왕의 위덕을 감당할 수 없어 이내 사라지고 갑자기 제석천이 그 앞에 나타나 왕에게 물었다.
≺대왕의 지금의 그 보시는 1천하,
혹은 2,
3천하를 위한 것입니까?
혹은 해ㆍ달ㆍ제석천ㆍ마왕ㆍ범왕 등을 위한 것입니까?≻
왕은 답하였다.
≺내 보시는 천하,
내지는 마왕ㆍ범왕 등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최상의 바르고 진실한 일체지(一切智)를 구하여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시키고 열반을 얻지 못한 이를 열반을 얻게 하여 생로병사와 우비고뇌(憂悲苦惱)하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때 제석천은 생각했다.
≺내가 지금 이 왕으로 하여금 이 상처로 인해 죽게 하는 것은 아주 잘못이다.
그러므로 천상의 감로수(甘露水)를 저 몸에 쏟으리라.≻
그리하여 그것을 쏟자 상처는 깨끗이 나아 본래와 같아졌다.’
부처님께서는 병사왕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그는 바로 지금의 내 부왕(父王)이신 백정왕(白淨王)이요,
그 때 그 왕의 첫째 부인은 지금의 우리 어머니 마야부인이시며,
그 때의 그 혜등왕은 바로 지금의 이 나입니다.
나는 전생에 염부제의 사람을 교화하여 다 10선을 행하게 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내 발바닥에 천복(千輻)의 바퀴 무늬를 성취하여 그 광명이 삼천대천세계를 밝게 비추는 것입니다.’”
또 『대비분타리경』에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과거 무량 아승기 대겁(大劫) 이전에 이 국토의 이름은 무진미루염(無盡彌樓厭)이었고,
그 부처님의 이름은 연화향(蓮華香)여래였다.
나는 그 때 염부제의 윤왕(輪王)으로서 이름을 무승(無勝)이라 하였다.
나와 내 아들 천 명은 다 보리심을 내어 모두 출가하여 그 연화향부처님 법 안에서 범행을 다 같이 닦았다.
그러나 다만 여섯 아들만은 보리심을 내지 않고 출가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자주 물었다.
≺너희들은 왜 출가하지 않느냐?≻
아들들은 대답했다.
≺우리는 출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또 물었다.
≺너희들은 왜 보리심을 내지 않느냐?≻
저들은 대답했다.
≺만일 이 염부제를 저희들에게 주시면 저희들은 보리심을 내겠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일체 염부제 사람들로 하여금 3귀(歸) 8재(齋)에 머무르게 하고 또 3승(乘)을 권하고 이 염부제를 6분으로 나누어 여섯 아들에게 주고는 보리심을 내라고 권했다.
그리고 나는 출가하여 범행을 갖추어 닦았다.
그런데 저 여섯 왕자는 서로 화순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싸우느라 늘 편하지 못했다.
염부제에 큰 흉년이 들어 비가 내리지 않고 오곡이 익지 않고 초목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내가 내 몸을 보시하여 피와 살로 이 땅을 채우기 위해 이 숲을 버리고 떠나자.≻
그리하여 중국으로 가서 장수산(障水山) 위에서 큰 서원을 세웠다.
그 때 아수라들의 궁전은 다 크게 흔들리고 수미산은 기울어지며 바다는 물결이 일어나 하늘과 신(神)들이 다 슬피 울었다.
나는 그 때 산 위에서 몸을 던졌다.
본원(本願)의 힘 때문에 곧 육산(肉山)이 되어 높이는 1유순이요 가로의 길이도 그와 같았다.
사람과 금수들이 모두 와서 내 살과 피를 먹었다.
또 본원의 힘으로 육산은 자꾸 커져 높이는 천 유순이요 정등(正等)도 그러했다.
사방은 모두 사람의 머리가 있어 머리털과 눈썹ㆍ눈ㆍ귀ㆍ코ㆍ혀ㆍ입ㆍ이빨 등을 다 갖추었다.
그 모든 사람의 머리들은 큰소리로 외쳤다.
≺아아,
너희 중생들은 각각 욕심에 따라 마음대로 먹거나 가져라.
피와 살과 6근(根)이 충만하다.
마음대로 구하라.≻
3승(乘)의 마음과 내지 인간ㆍ천상의 복을 구하는 사람은 피와 살을 먹고 혹은 눈ㆍ귀ㆍ코ㆍ입술ㆍ혀ㆍ이빨 등을 각각 가지는 자도 있었다.
또 본원의 힘으로 몸은 본래대로 회복되어 다하지도 않고 줄지도 않아 만 년 동안 몸의 피와 살로 일체 염부제의 사람과 야차와 조수(鳥獸) 등을 충족시켰다.
만 년 동안에 보시한 눈은 항하(恒河)의 모래와 같았고,
보시한 피는 사대 강물과 같았으며,
보시한 살은 천 개의 수미산과 같았고,
보시한 혀는 철위산과 같았으며,
보시한 귀는 미루산과 같았고,
보시한 코는 큰 미루산과 같았으며,
보시한 이빨은 사굴산과 같았고,
보시한 가죽은 사바세계에 두루하였느니라.
선남자들아,
관찰하라.
나는 만 년 동안 한 신명(身命)을 이렇게 무량 아승기겁 동안에 무량 아승기 중생들에게 보시했으나 잠깐 동안에도 후회하는 생각이 없었느니라.
곧 콘 서원을 세웠다.
≺만일 내가 아뇩보리를 성취할 수 있으면 시방의 항하의 모래 수 같은 5탁(濁) 불토(佛土)의 중생들을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대겁(大劫) 동안 충족시키고,
만일 내 원을 성취하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시방의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고 보리를 이루지 못하며,
또한 나로 하여금 3보와 3승(乘)이라는 소리도 듣지 못하게 하고 항상 아비지옥에 있게 하소서.≻’”
또 『대비분타리경』에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무량 겁의 때를 기억한다.
그 불토의 이름은 일월명(日月明)이었다.
5탁(濁) 때에 나는 염부제의 전륜왕이 되어 이름을 등명(燈明)이라 했으며,
선(善)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였다.
나는 그 때 동산에 놀러 나갔다가 두 팔이 뒤로 묶여 매우 급박한 어떤 사람을 보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무슨 죄이냐?≻
신하들은 답하였다.
≺이 사람은 왕을 속였습니다.
감히 천왕의 백성으로서 항상 세금을 6분의 1밖에 내지 않아 왕명을 어긴 것입니다.≻
나는 말하였다.
≺이 사람을 빨리 놓아주고 양식과 소유(蘇油)를 너무 가혹하게 거두지 말라.≻
그러나 신하들은 말하였다.
≺그렇게 되면 끝내는 아무도 좋은 마음으로 대왕님께 물건을 가져올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대왕님의 부인과 권속들에게 날마다 공급할 물건과 또 부엌에 필요한 것은 다 백성들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대왕님의 힘이 아니면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그 때 시름에 잠겨 생각했다.
≺이 왕위를 누구에게 맡길까?
내게는 5백 아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에게 보리를 권했었다.
이 염부제를 5백 분으로 나누어 저들에게 잘라 주자.≻
나는 곧 왕위를 버리고 숲 속으로 들어가 신선의 범행을 구하였다.
남쪽으로 큰 바다가 가까운 우담바라숲에서 참선하면서 과일과 풀뿌리를 먹고 살아가다가 오래지 않아 5통(通)을 얻었다.
그 때 염부제의 5백 상인은 보물을 캐러 바다에 들어가 많은 보물을 얻었다.
그 중에서 숙왕(宿王)이라는 상주(商主)는 여의주(如意珠)를 얻고 또 그 보물섬에서 온갖 보물과 진주를 얻었으나 복력이 적었기 때문에 거기서 출발할 때에 바닷물이 솟아오르고 모든 용들이 어지럽혀 바다신이 울었다.
거기 있는 마장(馬藏)이라는 용선(龍仙)은 참으로 보살인데 본원의 힘으로 그 중에 태어났다.
이 보살은 상인들을 옹호하여 무사히 바다를 건네주고 제 집으로 돌아갔다.
저 상인을 따라다니는 어떤 사나운 나찰은 항상 상인들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그 틈을 엿보고 있었다.
그는 낮에 폭풍우를 일으켜 저 상인들을 길을 잃게 하였으므로 상인들은 갈 곳을 알지 못하고,
매우 두려워하여 큰 소리로 슬피 울었다.
모든 하늘과 바람과 비의 신 등을 찾으면서 부모라 부르는 것이 마치 사랑하는 아들의 소리와 같았다.
나는 그 때 하늘귀로 저들의 소리를 듣고 저들을 위안시켰다.
≺너희 상인들은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그대들을 인도하여 염부제까지 무사히 가게 하리라.≻
그리하여 나는 비단으로 손을 싸고 그 안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고는 지성으로 발원했다.
≺나는 36년 동안 4범처(梵處)에 놀 때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온갖 과일을 먹으면서 이미 8만 4천의 용들과 야차를 교화하여 다 퇴전(退轉)하지 않는 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이 선근으로 내 손을 타게 하고 이 상인들은 다 염부제까지 가게 하소서.≻
이렇게 손을 태우며 7일을 지낸 뒤에 저 상인들은 다 무사히 염부제에 도착했다.
그들도 또 서원을 세웠다.
≺만일 이 보배로 우리가 아뇩보리를 성취할 수 있으면,
우리가 다 상주(商主)가 되어 여의주를 가지고,
이 불토의 일체 시방 항하의 모래 수 같은 텅 빈 5탁의 불토에 온갖 보배를 내리게 하되 낱낱 국토에 일곱 번 온갖 보배를 내려 마음대로 충족시키고 무량 아승기 중생들로 하여금 다 3승(乘)에 머무르게 하소서.≻’”
또 『대장부론(大丈夫論)』에서 말하였다.
“제바보살이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복덕을 갖춘 좋은 장부의
자비로 보시하는 은혜로운 손이여
빈궁의 흙탕을 모두 치우면서
스스로는 거기서 나오지 못하네.
보살의 보시와 같이 모든 빈궁한 사람이 다 와서 귀의하고,
광야의 나무와 같이 나그네가 더울 때에 다 머무르다가 간다.
보살은 이름의 훌륭함을 좋아해 해탈을 얻는다.
만일 누가 와서 보살에게 말하기를 ‘구걸하는 사람이 왔다’고 하면,
보살은 기뻐하면서 재물로 사자(使者)에게 상주고,
보살은 곧 다른 물건을 구걸하는 사람에게 주면서 기뻐하고 그를 공경한다.
구하는 사람이 무엇을 청한다고 말할 때 보살은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가진다.
만일 구걸하는 사람이,
보살의 성질이 보시를 즐기는 줄을 모르면,
보살은 그의 손을 잡고 기뻐하며 말하는 것이 마치 친우와 같아서 그가 모르는 것을 알게 하고,
곁의 사람도 그것을 보고 기뻐하게 한다.
만일 구걸하러 오는 사람을 보면 말한다.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싶어하십니까?
마음대로 가지십시오.’
또 걸인을 위안하며 말한다.
‘잘 오십시오.
현자(賢者)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의 의지처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이렇게 보시하면 그를 산 사람이라 하고,
이렇게 하지 못하면 그를 죽은 사람이라 하며,
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서 주어야 한다.
구하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 신명도 주겠거늘 하물며 재물이겠느냐?
만일 자비스런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보시라 할 수 없고 자비스런 마음의 보시는 바로 해탈이다.
아무리 큰 부자라도 빈궁한 사람이 있다.
부자가 주더라도 자비심이 없으면,
비록 준다고는 말하지만 그를 시주(施主)라 할 수 없고,
자비심의 보시라야 그를 시주라 할 수 있다.
과보를 구하는 보시면 그를 시자(施者)라 하나니 상인도 또한 시자라 할 수 있다.
과보를 구하는 보시도 그 과보가 무량하겠거늘 하물며 자비스런 마음으로 과보를 구하지 않는 보시이겠는가?
그 과보는 헤아릴 수 없느니라.
만일 과보를 구하는 보시만으로 혼자서 즐기기만 하면 구제하지 못하고 한갓 스스로 피로할 뿐이지만 자비심으로 보시하면 구제할 수도 있고 뒤에 과보를 얻을 때도 큰 이익이 있느니라.
보시를 닦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선정을 닦는 사람은 해탈을 얻으며 자비를 닦는 사람은 위없는 보리를 얻나니,
이 보리는 과보 중에서 최상이니라.
보살은 생각한다.
‘저 걸인으로 인해 보리를 증득하였다.
나는 지금 보시로 인해 최상의 즐거움을 얻었다.
인(因) 가운데서 보시하는 즐거움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위없는 보리이겠는가?
이런 걸인은 그 은혜가 매우 중해 무엇으로 갚을 수가 없다.
만일 재물로 은혜를 갚을 수 없다면 위없는 보리를 보시해야 하나니,
이것은 내 복을 위해서이다.
즉 원컨대 저 걸인으로 하여금 오는 세상에서,
내가 지금 큰 시주가 되어 위없는 보리를 얻은 것처럼 되게 하소서.’
은혜를 생각하지 않는 자는 자비심이 없고.
자비심이 없으면 보시를 행하지 못하며,
만일 보시를 행하지 않으면 중생의 생사를 구제하지 못한다.
만일 보시를 행하지 않고 자비심을 덮어 버리면,
그것은 마치 돌에 글을 써야 참과 거짓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으며,
설사 원수라도 친우와 같게 대해야 하느니라.”
(3) 국왕부(國王部)
일명 『보살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 염부제에 지력(智力)이라는 국왕이 있어 항상 불사를 행하고 3보를 깊이 믿었다.
그 때 지성(至誠)이라는 비구가 있어 항상 삼매를 지니고 중생들을 가엾이 여겼다.
왕은 언제나 이 비구를 못내 보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 비구는 넓적다리 위에 큰 악창(惡瘡)이 생겨 그 나라의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었으므로 왕은 크게 슬퍼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2만의 부인들도 동시에 크게 슬퍼했다.
이에 왕이 누워 있을 때 꿈속에 하늘 사람이 와서 왕에게 말하였다.
≺이 비구의 병을 고치려면 사람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합니다.≻
왕은 깨어나 놀라고 불쾌했으나 이 비구의 중병을 생각하고 그 약을 구하려 했다.
그러나 그 약은 얻기 어려운 것이라 신하들에게 물었다.
왕의 첫째 태자 지지(知止)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님은 슬퍼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피나 살이란 가장 미천한 것입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넓적다리를 칼로 베어 그 살과 피를 비구에게 보냈다.
비구는 그것을 먹고 악창이 곧 나아 몸이 편안했다.
왕은 비구의 병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그의 뜻은 비구에게만 있고 아들의 아픈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기쁨과 지극한 마음이 각각 있었으므로 태자의 상처도 곧 회복되었느니라.’” [실로 그 행이 부처님 마음과 같았으므로 그 악창이 나은 것이다.]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왕자 형제 두 사람은 나라에서 쫓겨나 광야에 이르러 양식이 다 떨어졌다.
아우는 그 아내를 죽여 그 살을 나누어 형수에게 주었다.
형수는 곧 그것을 다 먹어 버렸으나 형은 그것을 감추어 두고 버린 체하면서 먹지 않고 자기의 다리 살을 베어 부부가 함께 먹었다.
아우는 그 아내의 살을 다 먹고 다시 형수를 죽이려 했다.
형은 죽이지 말라 하고 먼저 감추어 두었던 살을 도로 아우에게 주어 먹였다.
광야를 지나 신선이 사는 곳에 이르러 꽃과 열매를 따먹고 살았다.
그 뒤에 아우는 죽고 형만이 혼자 남았다.
이 때 왕자(형)는 월형(刖刑)을 받아 손발이 없어진 어떤 사람을 보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생겨 꽃과 열매를 따서 그에게 주어 먹여 살렸다.
왕자는 사람됨이 욕심이 적어 꽃과 열매를 따러 밖에 나갔다.
그 아내는 뒤에 남아 있다가 그 월형을 받은 사람과 통하고 그만 정이 깊어져 그 남편을 미워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남편을 따라 꽃을 따러 나가 어떤 강가에 이르러 그 남편에게 말했다.
‘저 나무 끝의 과일을 따 오십시오.’
남편은 말하였다.
‘저 밑에 깊은 강이 있는데 어쩌다 떨어지면 어쩌겠소?’
아내는 말하였다.
‘새끼를 당신 허리에 매시오.
내가 당겨 드리리다.’
남편이 강가에 가까이 갔을 때 아내가 그 남편을 밀어 남편은 강물 속에 떨어졌다.
그러나 자비의 힘으로 물을 따라 떠돌면서 물에 빠져 죽지는 않았다.
그 강 하류에 있는 어떤 국왕이 죽어 그 나라의 상사(相師)는 누가 장차 왕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찾아다녔다.
멀리서 물 위에 누른 구름 일산을 보고 상사는 점을 쳐 말하였다.
‘저 구름 일산 밑에는 반드시 신인(神人)이 있을 것이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이 왕자를 맞이해 왕으로 세웠다.
왕의 옛 부인은 그 월형을 받은 사람을 업고 이리저리 구걸하며 다니다가 이 나라로 왔다.
백성들은 어떤 아름다운 여자가 한 월형을 받은 사람을 업었는데,
공경하며 극진히 모신다고 칭찬했다.
왕은 이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이 여자를 불러왔다.
왕은 이 여자에게 물었다.
‘이 월인이 참으로 너의 남편이냐?’
여자가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자 왕은 다시 물었다.
‘너는 나를 아느냐?’
여자는 답하였다.
‘모르겠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너는 아무를 아느냐?’
여자는 자세히 왕을 바라보다가 매우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왕은 옛날의 자비심으로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살아가게 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왕은 바로 지금의 나요,
그 때의 그 여자는 허리에 나무 주전자를 차고 나를 비방한 저 전차 바라문의 말이며 그 때의 그 월인은 바로 저 제바달다이니라.’” [이것은 선악이 있다는 증험이다.]
또 『보살본행경』에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먼 옛날에 이 염부제에 불류사(不流沙)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국왕의 이름은 바단녕(婆檀寧)이었으며,
부인의 이름은 발마갈제(跋摩竭提)였습니다.
때는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굶주리는데 더구나 유행병이 다녀 왕도 앓았으므로 부인이 몸소 나가 하늘에 제사했습니다.
그 뜰 곁에 어떤 집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집에 없었는데 마침 그 아내가 아이를 낳고 또 종도 없었습니다.
여자는 산후에 배가 고팠으나 먹을 것이 없어 혼자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거의 죽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다.≻
그녀는 아이라도 먹고 싶어 막 칼을 들고 아이를 죽이려 하다가 그만 슬픔이 북받쳐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 때 왕의 부인이 궁중으로 돌아오다가 이 여자의 슬피 우는 소리를 듣고 가엾은 생각으로 그 집에 가 보았습니다.
그 때 이 여자는 칼을 들고 막 아이를 죽이려 하다가 또 생각했습니다.
≺어찌 차마 자식의 살을 먹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또 울었습니다.
왕후는 그 집으로 들어가 그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왜 우느냐?
무슨 까닭이냐?≻
여자는 그 사정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왕후는 이 말을 듣고 가엾이 여겨 말하였습니다.
≺그 아이를 죽이지 말라.
내가 궁중에 가서 음식을 보내 주리라.≻
여자는 말했습니다.
≺존귀하신 몸이라,
혹 일이 늦어지든가 혹은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지금 내 목숨은 호흡 사이에 있어 때를 늦출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내 자식이라도 먹고 목숨을 건질까 합니다.≻
왕후는 물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고기라도 먹을 수 있겠는가?≻
여자는 대답했다.
≺목숨만 건질 수 있다면 좋고 나쁜 것은 가리지 않겠습니다.≻
이에 왕후는 곧 칼을 잡아 자기 유방을 베고 발원하였다.
≺나는 지금 이 유방을 보시하여 이 위액(危厄)을 구제합니다.
이것은 전륜왕이나 제석ㆍ마왕ㆍ범왕 등이 되려는 것이 아니요,
이 공덕으로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를 이루려는 것입니다.≻
왕후는 곧 유방을 베어 그 여자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칼을 들고 다른 유방을 베려 할 때에 삼천대천세계가 크게 진동했습니다.
제석천은 왕후가 그 유방을 베어 그 위액을 구제하는 것을 보고 무수한 하늘들과 함께 허공에서 내려와 다 슬피 울고 그 왕후 앞에 서서 왕후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그 보시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무슨 소원이 있습니까?≻
왕후는 답하였습니다.
≺이 공덕으로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를 얻어 일체 중생의 고액을 구제하려는 것입니다.≻
제석천은 물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그 소원을 무엇으로 증명하겠습니까?≻
이에 왕후는 서원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보시한 공덕으로 참으로 정각을 이를 수 있으면 내 유방이 곧 전처럼 회복되소서.≻
그 때 그 유방은 당장 옛날대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자 제석천은 말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부처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찬탄하고,
여러 하늘들은 다 기뻐했습니다.
제석천은 곧 본래 형상을 나타내어 왕후를 찬탄하면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렇게 보시하고도 회한(悔恨)이 없으며 아프지도 않습니까?≻
왕후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나는 지금의 내 보시로 불도를 구하므로 아무 회한이 없습니다.
다만 내 여자의 몸이 남자의 몸으로 변하게 하소서.≻
그러자 당장 남자로 변하였습니다.
모든 하늘은 찬탄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부처가 될 것입니다.≻
이 때 나라 안의 병은 다 사라지고 농사는 풍년이 들어 백성들은 안락했습니다.
그 뒤에 왕이 죽고 이 왕(왕후)이 왕위를 이어 백성이 번성하고 나라가 훌륭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왕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왕후는 바로 지금의 이 나이니,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아 지금 부처가 된 것입니다.’
대중은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났다.”
(4) 축생부(畜生部)
『일체지광명선인자심불식육경(一切智光明仙人慈心不食肉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마가제국(摩伽提國) 적멸도량(寂滅道場) 미가녀촌(彌迦女村) 자재천사(自在天寺)에 계실 때 가바리(迦波利) 바라문의 아들 미륵은 금빛 몸에 상호를 구족하고 무량한 위광(威光)을 갖추고 부처님께 왔다.
그 때 결발범지(結髮梵志) 5백 명은 미륵의 청정함을 바라보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
이 동자는 광명이 무량하여 세존과 다름이 없습니다.
어느 부처님 앞에서 처음 발심하였으며,
누구의 경전을 수지합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식건(式乾)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너를 위해 말하리라.
과거 무량 아승기겁 이전에 승화부(勝華敷)라는 세계가 있었고,
그 때 부처님의 이름은 미륵이었다.
그 부처님께서는 항상 인자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셨다.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 이름은 『자삼매광대비해운(慈三昧光大悲海雲)』으로서 누구나 이것을 들으면 백억만 겁의 생사의 죄를 뛰어넘어 반드시 성불했다.
그 때 그 나라에 있는 일체지광명(一切智光明)이라는 바라문은 총명하고 지혜가 많아 온갖 경전에 두루 통달했다.
그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자비삼매경』을 말씀하신다는 말을 듣고는 곧 이것을 믿고 그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보리심을 내어 말하였다.
≺나는 지금 『대자삼매경』을 수지한다.
오는 세상에서는 반드시 성불하여 이름을 미륵이라 하리라.≻
그리하여 집을 버리고 깊은 산에 들어가 8천 년 동안 욕심이 적고 일이 없이 걸식해 살아가면서 모든 어지러움을 없애고 일심으로 이 경을 수지하여 외웠다.
그 때 비가 그치지 않고 홍수가 범람했다.
선인(仙人:바라문)은 걸식할 수 없어 단정히 앉은 채 7일을 지냈다.
그 숲 속에 5백 마리의 흰토끼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토끼 왕의 아내와 아들 세 마리는 선인이 7일 동안 먹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선인은 불도를 위해 여러 날 동안 먹지 않아 목숨이 멀지 않다.
법당(法幢)이 장차 꺾기고 법해(法海)가 장차 마르겠구나.
나는 지금 위없는 큰 법이 세상에 오래 있게 하기 위해 신명을 아끼지 않으리라.≻
그리고 곧 여러 토끼들에게 고했다.
≺모든 행은 다 무상한데 중생들은 몸을 사랑하여 헛되이 살다 헛되이 죽으면서 법을 위하는 일이 없다.
나는 지금 일체 중생을 위하여 큰 다리가 되며,
법을 오래 있게 하기 위해 법사(法師)에게 공양하리라.≻
그리고 토끼 왕은 또 여러 토끼들에게 고하였다.
≺나는 지금 내 몸을 법사님께 공양하리니,
너희들은 모두 기뻐하라.≻
이 때 모든 산의 나무신[樹神] 들은 곧 향기로운 섶을 쌓고 거기 불을 붙였다.
토끼 왕의 아내와 아들은 선인을 일곱 번 돌고 아뢰었다.
≺대사님,
우리는 지금 법을 위해 존자님께 공양하겠습니다.≻
선인은 말하였다.
≺너희들은 축생인데 아무리 자비심이 있다 한들 어떻게 그것을 마련하겠는가?≻
토끼 왕의 아내는 선인에게 아뢰었다.
≺우리가 지금 이 몸으로 존자님께 공양하는 것은 법을 오래 있게 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곧 그 아들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부터 네 마음대로 물과 풀을 찾아 먹으면서 마음을 오로지 하여 3보를 생각하라.≻
토끼 아들은 어머니 말을 듣고 꿇어앉아 어머니께 아뢰었다.
≺어머님 말씀대로 어머님이 위없는 큰 법을 위해 공양하시면 나도 그에 따라 하겠습니다.≻
토끼 아들은 곧 불 속에 몸을 던지고,
어머니도 뒤를 따라 불 속에 들어갔다.
보살(토끼 모자)이 몸을 버릴 때 천지는 크게 진동하고 색계(色界) 및 모든 하늘은 다 하늘 꽃을 내려 그것으로 공양했다.
토끼 고기가 익었을 때 수신은 선인에게 말하였다.
≺토끼 왕과 그 아내와 아들이 공양을 위해 불 속에 몸을 던져 이제 그 고기가 익었습니다.
선인은 드십시오.≻
선인은 이 말을 듣고 너무 슬퍼 말은 못 하고,
외우던 경전을 나뭇잎 위에 두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차라리 내 몸을 태우고 내 눈을 뺄지언정
중생을 죽여 그 고기는 차마 먹지 못하겠네.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자비의 경전
그 경전 속에서는 자비를 행하라 말씀하셨네.
차라리 내 골수를 부수고 머릿골을 낼지언정
중생을 죽여 그 고기는 차마 먹지 못하겠네.
모든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고기를 먹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그 행하는 자비가 원만하지 못하여
아득히 나고 죽음에 빠져 성불하지 못하리.
선인은 이 게송을 외우고 이로 인하여 발원하였다.
≺나는 세세생생에 살생할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언제나 고기를 먹지 않으며 백광명자삼매(白光明慈三昧)에 들고 성불하여 육계(肉戒)를 제정하리라.≻
이렇게 말하고는 불 속에 몸을 던져 토끼들과 함께 죽었다.
이 때에 천지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천신(天神)의 힘으로 나무들이 광명을 놓아 그 찬란한 금색은 천 국토를 비추었다.
이 나라 사람으로서 이 광명을 보는 사람들은 다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심(道心)을 내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식건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알아라.
그 때의 그 흰토끼 왕은 바로 지금의 나요,
그 때의 경전을 외우던 선인은 바로 지금 이 대중 속의 바라문의 아들 미륵보살이요,
그 때의 그 5백 토끼들은 바로 지금의 마하가섭 등 5백 비구들이며,
그 때의 그 250산의 나무신들은 바로 지금의 저 사리불ㆍ목건련 등 250비구들이요,
그 때의 1천 국토의 왕 발타바라 등은 바로 지금의 천 보살들로서,
내가 세상에 나옴으로부터 누지(樓至)부처님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법을 받아 도를 얻은 제자들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보살은 법을 구해 여러 겁 동안 부지런히 고생하면서 신명을 아끼지 않고 불구덩이에 몸을 던져 공양함으로써 9백 만 억겁의 생사의 죄를 뛰어넘었느니라.’
그 때 식건 등 5백 범지는 부처님께 출가를 청하여 아라한이 되었고,
그 선인은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고 범세천(梵世天)에 나서 성불하였다.
그 고기를 먹는 자는 중한 계를 범함으로써 저승에 가서는 항상 뜨거운 구리쇠 물을 마시느니라.”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지난 세상에 어떤 사자 왕이 깊은 산의 굴에 살면서 항상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일체 짐승의 왕으로서 내 힘은 모든 짐승을 보호할 수 있다.≻
그 때 그 산중에 두 마리 원숭이가 두 아들을 낳고,
사자 왕에게 말했다.
≺왕이 일체 짐승을 보호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아들을 왕에게 맡기고 다른 곳으로 가서 먹이를 찾겠습니다.≻
그래서 사자 왕은 허락했다.
두 원숭이는 두 아이를 사자 왕에게 맡겨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 때 그 산에 있던 이견(利見)이라는 독수리는 사자 왕이 잠든 틈을 엿보아 두 원숭이의 두 아들을 차고 가서 험준한 곳에 두었다.
사자 왕은 잠에서 깨어나 독수리 왕에게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지금 위대한 독수리 왕에게 청하나니
원컨대 지극한 마음으로 내 말을 들으라.
다행히 옛 정을 위해 그것들을 놓아주어
나로 하여금 신용을 잃음으로써 수치 당하지 않게 하라.
독수리 왕은 다음 게송으로 사자 왕에게 답하였다.
나는 능히 저 허공을 잘 날아다닐 수 있어
이미 너의 경계를 지나 두려운 마음 없네.
만일 원숭이의 두 아들을 보호하고 싶거든
나를 위해 너의 그 몸을 내게 보시하여라.
그러자 사자 왕은 또 게송을 외웠다.
나는 지금 그 두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 몸도 아끼지 않고 마른 풀잎처럼 버리리라.
만일 내가 내 몸을 보호하려 거짓말을 한다면
어떻게 말대로 실행한다고 말할 수가 있으리.
사자 왕은 이 게송을 외우고는 곧 높은 곳으로 가서 그 몸을 버리려 했다.
그러자 독수리 왕은 다시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일 누가 남을 위해 몸과 목숨을 버린다면
그런 사람은 곧 다시없는 즐거움을 받으리.
나는 지금 당신에게 이 두 아이를 돌려주리니
부디 대법왕(大法王)님은 스스로를 해치지 마시라.
선남자야,
그 때의 그 사자 왕은 바로 지금의 이 나요,
그 때의 그 수원숭이는 바로 지금의 저 가섭이며,
그 때의 그 암원숭이는 바로 지금의 저 선호(善護) 비구요,
그 때의 그 두 원숭이 아들은 바로 지금의 이 아난과 라후라이며,
그 때의 그 독수리는 바로 지금의 이 사리불이니라.
그러므로 의지하는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신명을 아끼지 않아야 하느니라.’”
(5) 관고부(觀苦部)
『정법념처경』에서 말하였다.
“공작(孔雀)보살은 저 하늘을 위해 설법했다.
‘만일 누가 자비심을 가지면 그는 머지않아서 열반에 도달할 것이므로 그것을 큰 장엄[大莊嚴] 이라 한다.
5도(道) 중생에 대해 자비심을 일으키면 번뇌를 부술 수 있다.
그러면 지옥 중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자비심을 일으키는가?
≺이 중생들은 제가 지은 업에 속은 것이니,
이 원수의 조작으로 말미암아 비유할 수 없는 갖가지 고통을 받는다.
대지옥 등 136처(處)에 떨어질 때는 땅이 갈라지고 몸은 끊어지며 불에 타고 볶이지만 구원할 이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어 동서로 돌아다니면서 면하기를 구하나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자비심을 일으키면 그는 무량한 하늘의 복[梵福] 이 늘어날 것이다.
만일 중생을 이롭게 하려면 이렇게 관(觀)하라.
≺저 아귀들은 갖가지 주림과 갈증에 그 몸을 태우되 숲을 태우는 것 같아 사방으로 내달려 서로 부딪치고 짓밟으며 온몸은 불꽃이 타면서 구호해 줄 이를 찾으나 구제해 줄 사람이 없다.
이 중생들은 언제나 이런 갖가지 고통에서 떠날 수 있을까?≻
이렇게 아귀를 관찰하고 자비심을 일으키면 그는 범천에 나느니라.
또 축생을 관찰하고 자비심을 일으킬 때는 이렇게 하라.
≺저들은 고뇌가 무량하여 서로 죽인다.
허공이나 육지나 물에 가도 죽는 법은 무량하여 서로 해치고 서로 잡아먹는다.
이 중생들은 언제나 거기서 벗어날까?≻
이것이 축생을 관하고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생각을 내면 그는 범천에 나느니라.
또 욕계(欲界) 6천(天)을 관찰하고 자비심을 일으킬 때는 이렇게 하라.
≺욕계 6천이 받는 천상의 쾌락은 비유할 수 없다.
갖가지 산과 골짜기ㆍ봉우리ㆍ동산ㆍ숲 등에서 쾌락을 받는다.
그리고 업이 다하면 다시 괴로운 곳에 나서 큰 고통을 받는다.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떨어져서는 동서로 돌아다니면서 난잡하고 앎이 없어 큰 고뇌를 받는다.≻
이것이 천상을 관찰하고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이니,
그는 범천에 나느니라.
또 인간을 관찰하고 자비심을 일으킬 때는 이렇게 하라.
≺갖가지 업으로 인간에 나서 고락(苦樂)의 과보를 받아 심성이 갖가지요 신해(信解)가 갖가지이다.
혹 어떤 이는 빈궁하여 남에게 의지하여 스스로 살아간다.≻
이상과 같이 5도(道)의 중생을 관찰하고 다섯 종류의 고통을 느껴 자비심을 일으키나니,
이런 사람은 뛰어난 안락을 얻어 곧 열반을 얻느니라.’”
또 『잡아함경』에서 말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손톱 위의 흙을 가리키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많으냐?
이 대지의 흙이 많으냐?’
비구들은 답하였다.
‘세존,
손톱의 흙은 아주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은 무량 무수하여 비유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중생들로서 심지어 한순간이나마 일체 중생에 대해 자비심을 자주 일으키는 자는 손톱의 흙만큼 적고,
또 중생으로서 심지어 한순간이나마 일체 중생에 대해 자비심을 자주 일으키지 않는 자는 대지의 흙만큼 많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부디 일체 중생에 대해 항상 자비심을 닦아야 하느니라.’”
또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부디 자비심을 내고 행하여
원수를 좋은 벗처럼 생각하라.
돌아다니며 생사에 있을 때
그 모두 일찍이 친족이었네.
비유하면 나무에 그 꽃이 피어
열매 맺음 다름이 없는 것처럼
부모와 처자와 또 벗과
종친들도 또한 그와 같나니
그 자비심을 행하는 사람의
평등한 마음에는 밉고 고움이 없네.
멀고 가까움 묻지 않아야
비로소 큰 자비라 할 수 있나니
평등한 마음으로 큰 자비 행하여
삼계(三界) 중생에게 미쳐야 하네.
이렇게 자비를 행하는 사람
그 덕은 범천보다 훌륭하여라.
흉기도 그를 해치지 못하고
관리와 화재와 또 원수와
나쁜 생각 가진 나찰과 뱀과
뇌성 벽력도 어쩌지 못하네.
사자와 코끼리,
또 호랑이
그 이외의 온갖 이익과 해로움도
감히 그를 가까이 못하고
또한 그를 중상(中傷)하지 못하네.
또 『선견율(善見律)』에서 말하였다.
“만일 그 사는 곳에 호랑이나 사자가 있거나 심지어 개미 새끼가 있더라도 거기 살아서는 안 된다.
또 개미굴이 있거나 개미가 먹이를 찾아다니면 다른 곳에 가서 살아야 한다.”
또 『잡아함경』에서 말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하늘과 아수라가 싸워 아수라가 이기고 하늘이 패했다.
그래서 제석천의 군사는 매우 두려워하며 수레를 북쪽으로 몰아 천궁(天宮)으로 돌아갔다.
수미산 밑에 우거진 숲이 있었고,
그 숲 속에서 금시조(金翅鳥)가 많은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제석천은 그 수레와 말이 저 새끼를 밟아 죽일까 염려하여 어자(御者)에게 말하였다.
≺수레를 되돌려라.
저 금시조 새끼를 죽이겠다.≻
어자는 제석천왕에게 아뢰었다.
≺아수라의 군사가 뒤에서 쫓아옵니다.
만일 이 수레를 돌리면 저들에게 잡힐 것입니다.≻
제석천왕은 말하였다.
≺차라리 수레를 돌려 저 아수라에게 죽을지언정 우리 군사로 저 중생을 밟아 죽일 수 없다.≻
그래서 어자는 수레를 돌려 남쪽으로 향해 나아갔다.
아수라의 군사는 멀리서 제석이 수레를 돌려 오는 것을 보고는,
그것을 하나의 전술(戰術)이라 생각하고,
황급히 진영을 허물고 흩어져 아수라의 궁전으로 돌아갔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저 제석천왕은 삼십삼천에서 자재한 왕으로서 자비의 힘 때문에 그 위력으로 아수라의 군사들을 무찔러 항복받았으니,
또한 자비심의 공덕을 찬탄해야 할 것이니라.’”
또 『대비경(大悲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의 마음이 자비심에 머무르면 그는 열한 종류의 공덕의 이익을 얻느니라.
즉 첫째는 잘 때는 안온하고 깨어서는 기쁘며,
둘째는 나쁜 꿈을 꾸지 않으며,
셋째는 사람과 귀신이 다 그를 사랑하고,
넷째는 모든 하늘의 보호를 받으며,
다섯째는 독(毒)도 해치지 못하고,
여섯째는 칼도 활도 그를 해치지 못하며,
일곱째는 불도 그를 태우지 못하고,
여덟째는 물에도 빠지지 않으며,
아홉째는 항상 좋은 의복과 맛난 음식과 평상ㆍ침구ㆍ약품 등을 얻고,
열째는 상인(上人)의 법을 얻으며,
열한째는 죽어서 범천에 나느니라.’”
또 『증일아함경』에서 말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섯 종류의 범상(凡常)한 힘이 있다.
여섯 종류란,
첫째는 어린애는 울음으로 힘을 삼고,
둘째는 여자는 성냄으로 힘을 삼으며,
셋째는 비구는 인욕으로 힘을 삼고,
넷째는 국왕은 오만으로 힘을 삼으며,
다섯째는 아라한은 정진으로 힘을 삼고,
여섯째는 모든 부처님은 대자대비로 힘을 삼는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부디 대자비의 힘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게송으로 말하였다.
능인(能仁)은 요술의 괴로움을 가엾이 여기고
성인의 뜻은 겹겹의 어두움을 불쌍히 여기며
어리석음을 슬퍼하여 깨우쳐 거두어 주고
훈계하여 방편의 문으로 이끌어 껴잡는다.
법신(法身)은 온 법계(法界)에 두루 있지만
교화하기 위하여 기원을 가리킨다.
5도(道)의 결박을 모두 끊어 버리고
4마(魔)의 원수를 모두 풀어 버린다.
3수(修)로 애욕의 말[馬] 을 떨어 버리고
6념(念)으로 마음의 원숭이를 고요히 한다.
선정의 못에 선정의 물을 맑히고
각의(覺意)는 소리의 시끄러움 움직인다.
슬기의 바람은 법의 북을 울려
내 무명(無明)의 뿌리를 뽑나니
모름지기 항상 좋은 벗을 친하라.
내 일찍이 못한 말을 들려주리.”
감응연(感應緣)[대략 다섯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수(隋)의 사문 석혜월(釋慧越)
당(唐)의 사문 석도적(釋道積)
당(唐)의 사문 석자장(釋慈藏)
당(唐)의 현위(縣尉) 노원례(盧元禮)
당(唐)의 현장(玄奘) 법사의 『서국행전(西國行傳)』
수(隋)의 사문 석혜월(釋慧越)
수(隋)나라 혜일(慧日) 도량의 석혜월(釋慧越)은 영남(嶺南) 사람으로서 나부산(羅浮山)에 살았다.
그 성질은 모든 것을 사랑하여 자비로 중생을 구제했다.
깊은 산에 살았지만 호랑이나 표범에게 흔들림이 없었다.
한번은 여러 짐승들이 그 앞에 왔을 때 그들을 위해 설법했더니,
호랑이가 드디어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웠었다.
혜월이 곧 그의 수염을 만지면서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으니,
모두가 다 이것을 구경했다.
그 교화는 오령(五嶺)에 퍼졌고,
그 명성은 삼초(三楚)에 흘렀었다.
개황(開皇) 말년(600)에 혜일(慧日) 도량으로 불리어 들어갔다가 양주(楊洲)로 돌아오는 도중에 병을 만나 죽었다.
시체를 관 위에 놓아두었더니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밤이 되자 불꽃이 발에서 나와 정수리로 들어가고 다시 정수리에서 나와 발로 들어갔다.
이렇게 저녁 내내 끊이지 않았으므로 도인이나 속인들은 모두 처음 보는 일이라 하며 감탄했다.
당(唐)의 사문 석도적(釋道積)
당(唐)나라 익주(益州) 복감사(福感寺)의 석도적(釋道積)은 파촉(巴蜀) 사람으로서 『열반경』 1부 외우는 것을 일상의 업으로 삼았다.
무릇 설법하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목욕하고 새 옷을 입고서 법좌에 올랐다.
그 성질이 침착하고 매사에 인자하여 문둥병으로 고름이 흐르고 더러운 냄새나는 자들을 모두 모아 그 옷을 빨아 주고 병을 치료하며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도 더럽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괴상히 여기는 사람들이 물으면 그는 대답했다.
“경계에는 더럽고 깨끗함이 없고,
더럽고 깨끗함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데 사랑과 미움이 어찌 생기겠는가?”
정관(貞觀) 초년(627) 5월에 본사에서 죽으니,
나이는 70세였다.
때는 한창 더운 여름이었지만 시체는 썩지 않고 1백 일 동안 평시처럼 가부(跏趺)하고 앉아 있었다.
도인과 속인들은 다 그 신기함에 감탄하고 그 몸에 옻칠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다 파촉(巴蜀:그의 출생지)까지 공경했다.
당(唐)의 사문 석자장(釋慈藏)
당(唐) 신라국(新羅國) 대승통(大僧統) 석자장(釋慈藏)은 속성은 김(金)씨요 신라국 사람이다.
나이 소학(小學)을 지나자 신령스런 지혜가 맑고 간결하여 세상의 높은 영화를 싫어하고 세속 밖을 좋아했다.
혼자 고요히 선정을 닦으면서 호랑이 등 사나운 짐승을 피하지 않았으며,
계율을 지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비로 구제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다.
깊은 산에 살면서 양식이 떨어졌을 때 이상한 새들이 각각 온갖 과일을 물고 와서 그 손에 놓고 함께 먹었으며,
때가 되면 반드시 와서 조금도 때를 어기지 않았다.
수행하여 이상한 조짐을 느꼈으나 물려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항상 슬픈 생각으로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겼다.
‘무슨 방편으로 저들로 하여금 생사를 면하게 해 줄까?’
드디어 꿈속에 사내 두 사람이 나타나 말하였다.
“그대는 이 깊은 산 속에서 무슨 이익을 얻고자 하는가?”
자장이 말하였다.
“오직 중생을 이롭게 할 생각뿐입니다.”
그들은 자장에게 5계(戒)를 일러 주고는 말하였다.
“이 5계를 가지고 중생을 이롭게 하라.”
또 말하였다.
“우리는 그대에게 5계를 주기 위해 도리천에서 일부러 왔노라.”
그리고는 하늘로 올라가 이내 사라졌다.
이리하여 자장이 산에서 나오자 나라 안에 계를 받는 남녀들이 무수했다.
정관(貞觀) 12년(638)에 당나라 서울에 와서 자비로 중생을 교화할 때는 계를 받는 사람이 날마다 천여 명이었으며,
혹은 장님이 빛을 보고 병자가 낫기도 했다.
또 자장은 고요히 안거(安居)하기를 좋아하여 운제사(雲際寺)에 가서 3하(夏)를 안거했다.
그 때 자장은 보았다.
무수한 귀신들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와서 자장에게 말했다.
“이 금가마로 자장 스님을 맞이하러 왔습니다.”
이 때,
또 어떤 귀신이 나타나 먼저 귀신과 싸우면서 모셔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장은 곧 더러운 냄새가 온 골짜기에 풍기는 것을 느끼고 곧 승상(繩床)에 나아가 이별을 고했다.
그의 제자가 또 귀신에게 맞아 거의 죽다 살아났다.
자장은 곧 가사와 발우를 버리고 걸승(乞僧)으로 보시를 얻었다.
또 향기가 온몸을 싸면서 귀신이 자장에게 말했다.
“지금 죽지 않으면 80여 세를 살 것입니다.”
정관 17년(643)에 자장은 본국으로 돌아가 대국(大國)에서와 같이 불교를 두루 실행했다.
신라의 국왕이 청해 황룡사(皇龍寺)에서 보살계본을 강할 때는 7일 7야 동안 하늘은 감로(甘露)를 내렸고,
구름과 안개ㆍ번개 등이 그 강당을 덮었다.
사부 대중은 다 놀라 감탄하였고,
그 명성이 멀리까지 떨쳤다.
그 후 조그만 병을 만나 영휘(永徽) 때에 죽었다.[이상 세 가지 증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온다.]
당(唐)의 현위(縣尉) 노원례(盧元禮)
당(唐)나라 범양(范陽)의 노원례(盧元禮)는 정관(貞觀) 말년(649)에 사주(泗洲) 연수현위(漣水縣尉)가 되었다.
그는 일찍이 중병에 걸려 기절했다가 하루를 지나 깨어나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나를 데리고 부사(府舍)로 갔는데 한 관리 곁을 지나는데 시위(侍衛)가 없음을 보았다.
나는 이윽고 관리의 자리로 가서 책상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관리는 시자(侍者)를 시켜 한 손으로는 나의 머리를 들고 한 손으로 다리를 잡고 뜰 아래에 던져 버렸다.
나는 한참 만에 깨어나 한 별원(別院)으로 가서 다시 남으로 어떤 큰 집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천 개의 부엌이 있었고,
부엌 위로는 구름이나 안개 같은 김이 올라왔으며,
물 끓는 소리가 시끄러워 수천 만 사람이 떠드는 것 같았다.
나는 쳐다보았다.
새장 같은 데에 사람을 넣어 오르는 김 위에 달아 놓고 말하였다.
‘여기는 죄인을 찌는 곳이다.’
나는 큰 소리로 발원하였다.
‘일체 중생을 대신해서 내가 죄를 받으리라.’
나는 드디어 옷을 벗고 맨몸을 가마솥 안에 던졌다.
그리하여 까무라쳐 아픈 줄도 몰랐다.
한참 있다가 어떤 사문이 나를 붙들고 나와 말하였다.
‘그대의 지극한 마음을 알았다.’
그리고 전송해 주었는데,
그 때 갑자기 잠이 깬 것 같았다.”
그 뒤로 그는 술과 고기를 끊고 4,
5년을 지내다가 낙양(洛陽)에서 죽었다.[이것은 『명보습유(冥報拾遺)』에 나온다.]
당(唐)의 현장(玄奘) 법사의 『서국행전(西國行傳)』
당나라 현장(玄奘) 법사의 『서국행전(西國行傳)』에서 말하였다.
“바라닐사국(婆羅★斯國) 안에 열사지(列士池)가 있고,
이 못 서쪽에 삼수탑(三獸塔)이 있으니,
여기는 여래께서 보살행을 닦으실 때 몸을 불태운 곳이다.
옛날 겁초(劫初)에 이 임야에 여우와 토끼와 원숭이가 매우 사이 좋게 살았다.
그 때 제석천은 이 보살행 닦는 사람을 시험하기 위하여 여기 내려와 한 노인으로 화하여 이 세 짐승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아,
편안한가?
무슨 두려움은 없느냐?’
저들은 말하였다.
‘물과 풀이 풍족하고 우거진 숲에서 유희하면서 이류(異類)들이 같이 기쁘게 지내므로 편하고 또 즐겁습니다.’
노인은 말하였다.
‘내 들으니,
그대들은 정이 깊고 뜻이 친밀해 노인을 잊어버리고 있다 한다.
그러므로 지금 멀리 찾아와서 나는 몹시 시장하다.
무슨 먹을 것이 없느냐?’
저들은 말하였다.
‘여기에 잠깐만 계십시오.
우리가 가서 구해 오겠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같은 마음으로 먹을 것을 찾아 나갔다.
여우는 물가에 나가 생선 한 마리를 물고 왔고,
원숭이는 숲 속으로 가서 과일을 구해 가지고 함께 왔다.
그러나 오직 토끼만은 빈손으로 돌아왔으므로 노인은 저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보건대 너희들은 화목하지 못하구나.
원숭이와 여우는 한마음으로 각각 애를 썼는데 토끼만은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다.
이것으로 나는 너희들의 사이를 알 수 있다.’
토끼는 이 말을 듣고 이의(異議)를 하면서 원숭이와 여우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여기에 섶나무를 많이 쌓아라.
나는 할 일이 있다.’
원숭이와 여우는 달려가서 풀을 물고 나무를 끌고 왔다.
거기에 불을 붙이자 사나운 불꽃이 맹렬히 일어났다.
토끼는 말하였다.
‘노인님,
나는 무력하여 아무것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감히 내 몸으로 당신의 공양에 이바지할까 합니다.’
토끼는 곧 불 속에 뛰어 들어가 죽었다.
이 때 노인은 다시 제석천의 몸으로 돌아와 남은 재 속에서 토끼의 해골을 거두어 한참 동안 슬퍼한 뒤에 여우와 원숭이에게 말하였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나는 그 마음에 감복하고 이 자취를 없앨 수 없어 저 달에 붙여 후세에 전하려 한다.’
그러므로 달 속의 토끼라는 말이 이 세상에 있게 된 것이다.
뒤의 사람이 그 자리에 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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