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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1-15_종경록_077 본문

과거조각글/불기2564(2020)

불기2564-01-15_종경록_077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20. 1. 15. 14:27



®

『종경록』
K1499
T2016

제77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종경록_K1499_T2016 핵심요약





♣1499-077♧
『종경록』


종경록


■ 종경록 제77권



○ [pt op tr]










Lab value 불기2564/01/15/수/22:05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Serge Reggiani - Il Faudra Leur Dire.lrc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도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종경록은 송대 연수대사에 의해 저술된 내용이다. 
『종경록』은 교선일치의 입장에서 마음과 관련된 내용을 경전을 인용하면서 자세하게 살핀다. 

그런데 중국에서 송대에 도원스님이 편찬한 저서로 『전등록』(=『경덕전등록』)이란 책도 있다. 

『전등록』은 과거 7불로부터 역대의 선종 조사들로 5가(家) 52세(世)에 이르기까지 전등(傳燈)한 법계(法系)의 차례를 기록한 책이다. 
이들이 중국에서 저술된 내용이고 시대도 엇비슷해서 종경록을 볼 때마다 전등록이 함께 떠오른다. 
때로는 혼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열심히 내용을 보았는데 내용만 살피다보면 
나중에 자신이 정작 무슨 제목으로 된 책을 보았는가는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기본적인 내용을 먼저 잘 살필 필요도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용어풀이란을 참조하면 된다. 

‡종경록

‡연수
‡전등록


● 세상과 자신은 왜 이모양인가에 대한 논의


『종경록』 77 권에서는 세상의 모습이 나타나는 인과문제를 살핀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대단히 많이 나온다. 
이것을 여기서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과거에 살핀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죽 나열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조금 살피기가 어렵다. 
그래서 과거에 적었던 내용은 해당 페이지를 링크를 걸어둔 페이지를 통해 대체하기로 한다. 


■■■

○ 마음현상에 대한 논의 - 전체 내용
http://buddhism007.tistory.com/4053
http://buddhism007.tistory.com/entry/마음-현상의-이해#gsc.tab=0 [불교진리와실천]
dict-list--editing_text.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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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서는 이들 내용과 함께
일반적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다고 보는 내용만 몇가지
간단히 살피고 넘어가기로 한다.

『종경록』 77 권 부분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다고 보는 내용은 다음이다. 
세계가 자신의 마음이다.
그리고 땅이나 바다 이런 것도 알고보면 그런 마음에 의해서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
그리고 일반적 입장에서 이런 부분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몇몇 추려서 간단히 살피기로 한다.



■ 어떻게 부처의 지혜를 이루고 

어떻게 생사를 이루는 것인가.

...


■ 【답】천진(天眞)한 부처의 지혜는 본래부터 존재하고 
망령된 연[妄緣]의 생사는 그 체성이 ≺공≻하다. 

비록 두 가지 이름이 있기는 하나 
이것은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 

...

■ 다만 첫째가는 이치[第一諦]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을 일컬어 무명이라 한다.

분명히 알지 못하는 소경[所盲] 때문에 
혹업(惑業)에 따르는 고통들이 이뤄지고, 

무명의 참 성품을 알면 열반의 묘한 마음을 이루다.

...

■ 만일 어리석어 혹업이 되면 세 가지 길[三道]을 이룬다. 

첫째 무명ㆍ욕망[愛]ㆍ잡음[取]의 이것은 번뇌의 길[煩惱道]이요, 

둘째 지어감[行]ㆍ존재[有]의 이것은 업의 길[業道]이며, 

셋째 의식[識]ㆍ이름과 물질[名色]ㆍ여섯 감관[六入]ㆍ닿임[觸]ㆍ느낌[受]ㆍ태어남[生]ㆍ늙어 죽음[老死]의 이것은 괴로움의 길[苦道]이다.

오히려 하나의 법이라도 
이것은 연이라거나 연이 아니다 라고 보지 않거늘, 

하물며 열 두 가지겠는가.

...


■ 맨 처음에 일어난 곳을 어떻게 가리켜 인도하겠는가.

...

■ 【답】 유정(有情)들의 몸과 국토의 
진실한 단서나 원유를 알고자 하면 
나의 마음보다 더 우선한 것이 없으며 
다시는 다른 법이 없음을 알아라. 

수능엄경(首楞嚴經)에서 이르되, 

“모두가 각의 밝음[覺明]의 밝게 아는 성품이 
앎으로 인하여 모양을 일으키며 
허망한 소견으로부터 생기나니, 

산(山)ㆍ하(河)ㆍ대지(大地)의 모든 유위(有爲)의 모습이 차례로 옮아 흐르며, 

이 허망으로 인하여 마치고 다시 비롯되느니라”고 하셨다.



이것은 결국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이 어떻게 이런 형태로 있게 된 것인가. 
또 우주나 세계 산 강 땅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이렇게 되어 있는가.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되는가. 
특히 생사고통과 관련해 그런 생사에서 벗어나고 부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로 압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잘 이해하려면 
책상에 사과를 하나 놓고 
이 사과의 정체는 무엇이고 사과가 여기에 어떻게 놓이게 되었는가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사과에 적용되는 내용은 결국 자기자신 뿐 아니라, 영희나 철수에게도 적용되고 
그리고 멀리 산과 강 바다 우주 전체에 함께 적용된다고 여기면 쉽다. 

여기서 먼저 자신이 눈을 떠서 사과라고 보는 내용이 
마음내용임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밤에 달이나 별이라고 보는 내용도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 내용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 사과를 자신이 손으로 집어 영희에게 건넬 때 
그것이 마음내용이라면서 왜 그 상황에서 영희도 그것을 사과라고 여기고 
또 그것을 받게 되는가를 놓고 잘 생각해야 한다. 
이들이 마음안 내용임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 부분에서 혼동을 많이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망집을 제거하지 못하면 결국 그 망집이 산과 강에 그대로 옮겨간다. 
또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3 악도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기가 곤란하다. 
즉 다음 생에 축사에서 갇혀 지내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왜 그렇게 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지금 자신이 어떤 과정으로 현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여기에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는 과정을 12 연기를 설명한다. 
그런데 다시 또 한편으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래서 왜 이런 12 연기를 있다고도 했다가 없다고도 하는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이와 관련해 세상의 맨 처음은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된다. 
세상의 맨 처음은 없다[무시무종] 그리고 전제와 후제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부분까지 살피려면 논점이 많아진다. 

그래서 우선 자신이 책상에 사과를 하나 놓고 
기본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마음내용이라는 사정부터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확인하고 관련내용을 살피는 것이 좋다. 
앞에서 제시했듯, 책상의 사과는 달이나 우주 천체 땅이나 바다와도 성격이 같다. 
그래서 어떤 것을 가지고 실험해도 같다. 
편한대로 하면 된다. 

먼저 실험을 할 때는 자신이 문제삼는 것을 잘 붙잡아 확보해둬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평소 외부 세상의 내용이라고 보는 것을 하나 붙잡는다. 
밤에는 달을 붙잡아도 된다. 
낮에는 멀리 건물이나 산을 놓고 살펴도 된다. 
그런데 책상에 있는 사과를 하나 놓고 살펴도 마찬가지다. 

한편 오늘날 돗수가 다른 색안경을 대부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 준비하고 실험하면 된다. 

그런데 그 전에 자신이 평소 외부의 사물로 여기고 대했던 것을 
먼저 잘 붙잡아 두어야 한다. 
그래서 실험할 내용이 사과라면 자신이 눈을 떠 자신 외부의 사물로 보는 그 사과가 
어떤 부분인가를 잘 먼저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이 평소 외부사물로서 여기는 부분을 먼저 명확하게 잘 인식해야 한다.
위에서 붙잡는다는 표현은 그런 의미다. 
왜냐하면 실험을 할 때 자신이 문제삼는 내용부터 명확하게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위 도구를 가지고 실험하면 된다. 
그러면 곧바로 자신이 평소 외부세상이라고 이해했던 내용이 
사실은 자신의 마음안내용임을 알게 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실험에 대해 종전에 대략 5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내용이 간단하지만 길다. 
설령 그런 돗수가 센 색안경이 없는 상태에서도 이 사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본 내용까지 포함해 제시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네번째 내용만 그대로 붙여 놓기로 한다. 

... 

네번째  실험도 앞과 마찬가지 성격을 갖는 실험이다. 

돗수가 다른 색안경을 하나 구해 

눈을 뜬 상태에서 그것을 계속 썻다 벗었다 하면서 

매 순간 얻는 내용이 어떤가를 스스로 확인해본다. 

이 실험은 앞 실험과 성격이 비슷하지만, 

다만 오늘날은 과거와 달리 

여러 돗수가 다른 안경도 쉽게 구하고 

색안경도 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새로 추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험이 무슨 의미인가. 앞과 마찬가지다. 

처음 어떤 한 상태에서 자신이 눈을 떠 얻고 대하는 내용을 

그 자신이 처음에 무엇이라고 보았는가하면

외부 세계이며 외부 대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렇다면 

왜 자신이 안경을 쓰고 벗을 때마다 

그 내용이 그로 인해 그 일체가 그렇게 다 함께 변하는가. 

자신이 외부세계나 외부 대상을 그처럼 

안경 하나를 벗고 쓰고 함에 따라 

다 변화시키는 초능력자라도 되어서 그런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처음 그렇게 생각한 내용이 

무엇이길레 그렇다고 해야 하는가를 놓고 

앞 실험을 통해 검토해보는 것이다. 

...

[나머지 실험내용=>]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http://buddhism007.tistory.com/4035#003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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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자신이 먼저 외부세계의 내용이라고 무언가를 붙잡아 확보했다. 
저 부분은 빌딩이다. 저 부분은 산이다. 저 부분은 달이다. 이런 식이다. 
자신이 처음 생각이 맞다면 그것은 자신 외부에 있는 외부세상의 한 내용이다. 

이 상태에서 자신이 돗수가 다른 색안경을 썼다. 
그러자 그렇게 여기고 대한 그 부분이 일순간 다 그 크기와 색이 변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처음 자신이 외부 세상으로 본 내용이 무엇인가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처음 외부세상이라고 여긴 내용이 어디에 따로 있는가부터 잘 검토해봐야 한다. 
그 상황에 그것은 없어졌다. 
그리고 색과 크기가 변한 내용을 대하게 된다. 

이제 다시 대하게 된 새로운 내용은 무언가를 또 검토해야 한다. 
여전히 이를 외부세상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면 또 실험하면 된다. 

이렇게 실험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매 순간 대하는 내용이 정말 외부세상이라면 
다음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런 외부세상을 자신이 단지 안경 하나를 썼다 벗었다 하면서 
그렇게 색과 크기를 한번에 다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정말 그렇다면 자신은 대단한 초능력자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 외부세상이라고 여기면서 대한 달이나 산 강 바다가 
모두 사실은 자신의 마음안 내용임을 먼저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실험결과가 좀 부족하게 여겨지면 위 링크를 통해 좀 더 살피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다. 
이들 내용도 이전에 반복했다. 
그것은 압축하면 결국 처음 제시한 문제다. 

앞과 같은 상황에서 사과를 들어서 옆에 있는 영희에게 건넨다. 
그러면 영희도 그 사과를 받고 그것이 사과라고 한다. 
이런 내용에 그 문제가 들어 있다. 

여기에는 그런 행위를 하는 자신도 그렇게 파악되고 
또 다른 사람도 그렇게 파악된다. 
그리고 이 둘 간에 주고 받는 사과도 그렇게 파악된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움직이려 하면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만 움직인다. 
그리고 사과나 책상은 그대로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통해 
평소 자신의 몸이라고 여기고 대한 부분은 자신이 분명하지만, 
그 나머지 것은 자신이 아니고 외부 세상 외부사물로 보게 된다. 
이 부분이 문제다. 
처음 실험을 통해 제시한 내용과 어긋난다. 

그리고 이런 현실내용은 다수의 주체에게 비슷한 상황과 조건에서 
비슷한 내용이 무량겁에 걸쳐 반복함을 관찰하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이 일체가 모두 다 자신 마음안에 들어온 마음내용이라고 강조해도 
여전히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 부분은 자신이고 
나머지는 외부 세상이라고 여기면서 나아가게 되기 쉽다. 

그런 가운데 사과가 책상에 놓인 과정을 살피다보면 
결국 과수원의 사과나무까지 이 실험관찰에 끌어들여서 또 살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이 처음 태어난 출생 과정까지 또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사과를 집어서 영희에게 건네니 영희가 받고 
사과라고 판단하는 그 현실 상황은 다음 문제를 제기한다. 
먼저 이들 내용은 하나같이 모두 자신 마음안 내용임을 처음 실험을 통해서 살폈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 현실내용이 나타나는가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즉 여전히 자신이라고 본 부분은 자신이고 
나머지 부분은 외부 세상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느껴진다. 
이것이 곧 처음의 망집이 잔류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런 사정 때문에 여전히 망집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즉, 아무리 평소 외부세상이라고 여기며 대했던 것들이 
하나같이 자신 마음안 내용이라고 해도 
여전히 그 내용은 외부 세상이나 외부대상이라고 여기면서 대하게 된다. 

그런데 처음에 제시한 내용은 그 기본 바탕부터가 엉터리임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이 경우는 그렇게 문제를 제기하면 곤란하다. 
차라리 자신이 지금 외부세상으로 여기고 대하는 그 사과가 마음 내용이라면 
그런 마음 내용은 어떻게 해서 얻게 된 것인가를 놓고 살피는 것이 빠르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다시 마음 밖의 내용을 살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과 관계없이 있다고 할 본 바탕인 실재가 무언가를 살피는 주제가 된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자신이나 영희가 사과를 주고 받는다면 
그에 해당하는 내용이 자신이나 영희 마음 밖에 
무언가 실답게 상응하는 형태로 있기에 그렇다라고 일단 추리하게끔 된다. 
현실 생황이 그런 추리를 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추리가 왜 엉터리인가를 또 잘 파악해야 한다. 

일단 각 주체는 본 바탕의 실재를 직접 얻지 못한다.
각 주체는 마음이 관계하여 화합해 얻는 내용만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관계하지 않고서도 그래도 있는 본 바탕의 실재를 직접 얻어낼 도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앞과 같이 추리를 하는 근거가 되는 현실내 내용부터 붙잡고 다시 관찰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통로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한마디로 각 주체는 눈. 귀, 코. 입. 몸이라는 5 감각기관을 통해 감각현실내용을 종합적으로 얻는다. 
그래서 이들을 일단 분리시켜 그 상호관계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러면 이 문제의 실마리가 어느 정도 풀리게 된다. 

우선 자신의 눈으로 본 내용들은 귀로 얻게 되는 내용 가운데 도대체 무엇에 해당하는가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 
이 두 내용을 살펴보면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눈으로 볼 때는 무언가 여하튼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귀를 관련시킬 때는 아예 그런 내용은 있다고 할 내용이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 
그러니 이 두 내용이 서로 어떤 관계가 있다고 할 것인가부터 살펴야 한다. 

즉, 마음 밖에 있는 실재를 살피기 전에 
마음을 통해 얻는 온갖 감각현실을 놓고 이들 관계부터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a + b => C 라는 인과관계식 하나를 놓고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내용인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무명과 망집에 바탕해서 이 내용을 보면 
그 전제에서는 그런 내용의 생멸이 있다고 여기게 된다. 

또 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그런 망집을 일으키면
바로 그런 전제에서 생사현실에서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을 그처럼 반복해 받아나간다. 

래서 한편으로는 한 주체가 이번 생에 그런 모양으로 그 상황에 놓이게 된 
배경 사정을 12 연기로 설명한다. 
그런데 위 관계식이 한편 확립되면 
이를 통해서 본 바탕에는 그러한 내용은 본래 얻을 수 없음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연기 즉 공 이라는 명제를 이해하게 된다. 

『종경록』에서 생사현실이 전개되는 과정을 12 연기로 설명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가운데 그 어느 하나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그런 연기로 12 개나 벌려 세울 필요는 무엇이겠는가라고 한다. 
그래서 마치 하나의 입으로 서로 다르고 모순되는 내용을 제시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망집에 바탕해서 생사를 받게 되는 인과과정은
위와 같이 무명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12 연기로 설명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망집을 떠나서 올바로 그 내용을 관하면 그 가운데 하나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정도 바로 그런 12 연기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이런 뜻이다. 
그래서 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우선 이처럼 내용을 제시하면 조금 어리둥절하게 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게 되는 현실 사정이 또 있다. 
비유하면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의 꿈과 사정이 비슷하다. 
꿈에서 황금을 얻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도가 나타나서 황금을 뺏고 자신을 묶어 감금했다.
그리고 때리기도 한다. 
그래서 지극하게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나타나서 어떤 방안을 취하면 이 상태에서 벗어난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풀려났다. 그리고 바로 눈을 떠서 잠을 깼다. 
이렇게 놓고 보자. 

꿈은 좀 엉터리다.
그래도 꿈 안에서도 나름대로 고통을 당하게 된 일련 과정이 있고 또 풀려난 과정이 있다. 
그러니 그 꿈을 바탕으로 설명하자면 그렇게 설명할 도리 밖에는 없다. 
왜 그가 두드려 맞았는가. 황금을 안 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금은 어디서 생겼는가. 바다에서 건졌다. 이런 식이다. 

그런데 그 일체는 처음에 어디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하는가. 
침대에 피곤해서 누었더니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제 꿈 밖 침대에서 꿈에서 본 내용과 상응한 것을 하나하나 찾아보자. 

꿈에서 본 황금은 침대에 놓인 베개인가. 
그리고 꿈에서 본 강도는 침대옆에 있던 인형이었는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이런 추리가 모두 엉터리라고 지적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꿈을 깨고 침대 상황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각기 대조해서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오로지 꿈 안에서 이 사정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 경우는 설명이 어려워진다. 
꿈에 갇히면 꿈 밖에서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따라서 실답지 않음을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꿈안에 들어온 한 분이 방편을 써서 
꿈에서 분명하다고 여기게 되는 내용을 통해 그 관계를 설명해주었다. 
왜 강도가 때렸는가하면 황금을 집착해서 아끼고 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황금은 이런 과정으로 바다에서 얻게 된 것이라고 설명해준 것이다. 
이런 내용이 꿈안에서 분명하다고 여기게 되는 인과관계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인과관계를 분명하다고 인정한다면 
그런 사정으로 이들 내용은 무상하고 집착을 갖고 대할 내용이 아님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이 내용은 이 꿈 밖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고 진짜가 아님[무아,무자성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제시한 것이다. 
여하튼 그런 방편으로 꿈안에서 그런 문제를 벗어나게끔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상황에 대한 비유다. 

그리고 현실에서 분명히 확립되는 연기관계가
왜 곧 실상이 공하다는 내용을 제시하는 근거가 되는가는 
이전에 자세히 설명한 부분이라서 생략한다. 







현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 .
그런데 현실은 꿈과 비슷하지만 정작 꿈 자체는 아니다.
그래서 꿈의 상황보다 망집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러 사정이 있다. 

현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 .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현실 내용은 자신 뿐만 아니라 영희 철수를 비롯해서 대단히 많은 주체가 
일정한 조건과 상황 장소에서 대단히 유사한 형태로 
무량겁에 걸쳐 장구하게 그 내용을 반복해 얻는다. 

그래서 아무리 이 내용 하나하나가 실답지 않다고 해도 
위와 같은 사정때문에 오히려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끔 된다. 
사실은 여기에 그 함정이 들어 있다. 
위와 같이 여기게 되는 그 기본 배경 사정은 그 주체가 처음 망집을 일으킨 그 부분에 있다. 
그런데 어느 계기를 통해 그것을 제거하고 벗어나지 못하면 
바로 그런 상태로 무량겁을 생사고통에 묶여 받게 된다. 
그리고 또 그런 사정으로 오히려 그것을 실답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은 그다지 문제가 없더라도 끝내 3 악도에 들어가게 된다. 
당장 축생부터가 문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극심한 문제상황으로 계속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정말 무명 어리석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전제에서는 그런 연기에 따라 무량겁에 걸쳐 나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확립되는 그 연기관계는 또 본 바탕이 그렇지 않다는 사정을 제시해주는 해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잘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한편으로 인과 관계가 무량겁에 걸쳐 적용되고
한번 행한 업은 사라지지 않고 무량겁에 걸쳐 과보를 받게 된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그래서 그것이 실답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사정으로 그 내용 하나하나가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그 사정을 잘 관하고 벗어나면 무량겁에 걸친 생사를 해결하게 된다. 
이 부분이 부처님과 관련된다. 

현실에서 가장 걱정스런 것이 생사고통이고 죽음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것이 끝이 아니고 그 이후 받게 되는 3 악도의 생사고통이다. 
그런데 그것을 해결하는 해탈문과 그 열쇠가 그 안에 들어 있다. 
그래서 잘 파악해야 한다. 인과를 엉터리로 관하므로 여기에서 벗어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그런데 이것을 잘 관하면 이를 응용해 수행으로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고통을 예방하고 
끝내 생사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이 사정을 정확하게 잘 파악해야 한다. 
현실이 본래 실답지 않다. 
그러나 대단히 실답게 여겨지는 한편
그 안에서 생사고통을 겪기에 문제가 된다. 
만일 그런 생사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사실은 실답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 
한편, 꿈처럼 실답지 않고 누구나 실답지 않음을 쉽게 이해하면 또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생사고통은 그렇지 않다.
한편, 그것은 실답지 않은데도 위와 같은 특성때문에 각 주체가 그것을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며 장구하게 반복해 받아나간다.
따라서 이를 방치할 도리가 없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실의 정체를 잘 파악해 해결해야 한다. 

현실은 마음 내용이다. 외부세상의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그 첫부분부터 혼동을 일으킨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현실에는 사과도 있고 또 이 사과를 주어 건네는 자신도 있다. 
또 그런 상황에서 사과를 받고 사과라고 말하는 영희도 있다. 

그래서 일반적 입장에서는
현실 상황이 매번 이러는데 어떻게 이를 실답지 않다며
무시할 수 있는가라고 반박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모든 생명은 자기 자신에 가장 집착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런 망집을 일으킨 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도 자신이다. 
그런 가운데 처음 자신이라고 여긴 그런 부분이 자신이 아니라면 
그러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가를 걱정하게 된다. 
온 우주도 문제고 걱정이지만, 
온갖 번뇌와 고통의 근원의 핵심에는 자신이 있따. 
그리고 그런 번뇌를 일으키고 그런 고통을 실답게 받아가는 것도 자신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본래 얻을 수 없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처음 자신이 현실에서 이런 상황으로 놓이게 된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망집을 제거하면 그 이후 자신은 어떻게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각 주체에게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 이 생사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 경우 문제도 바로 그 자신에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생사과정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자신이 정말
축사에 갇혀 추위와 더위를 견디고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문제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망집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면 
그러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사정을 잘 파악해 이런 망집을 제거해 
자신으로 여긴 부분이 자신이 아님을 이해하게 되면
이후 도대체 어떤 자신이 이후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물론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이 실질적으로 자신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부분이 실질적인 자신이 아니라고 하면 
오히려 이로 인해 걱정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 부분을 자신으로 알고 열심히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부분이 자신이 아니라면 그런 자신이 순간 없어져 버리는 것처렴 여기게 된다. 
부처님이 기껏 생사 묶임에서 해탈을 시키기 위해 
엉터리 망집을 제거해주려고 하면
열반 해탈이 오히려 자신이 죽어 사라지고 없어지고
온갖 것이 허무하게 변하는 것처럼 여기고 걱정하게도 된다. 

다시 위 상황으로 가보자. 
이 상황도 사과를 놓고 한 첫 실험과 똑같이 놓고 실험하면 된다. 
그래서 먼저 평소 눈을 떠서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부터 명확하게 잘 포착해 확보해 둔다. 
그리고 평소 그것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살아 온 것이다. 

걸어다닐 때도 그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걸었고
운전할 때나 운동할 때도 다 마찬가지다. 
그 상황에서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은 자신 뜻대로 동작을 했다. 
그 상황에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사과나 달은 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긴 사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을 먼저 잘 확보해 두어야 한다. 

그 다음 바로 눈을 감자. 
이제 앞 순간에 자신이라고 보았던 그 부분을 찾아보자. 
이 상황에는 그 내용이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상황에 자신이 전혀 없다고 여기는 이도 현실에 없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이제 무엇을 자신이라고 스스로 여기는가를 다시 찾아야 한다. 
보이지 않으니까 그것을 잘 모를 수 있다. 
그러니까 일단 그런 것을 무조건 U 라고 잠정적으로 표시해두자. 
여하튼 그런 U가 여전히 있다. 
그러니까 눈을 감아도 여전히 생각도 하고 다른 감각활동은 또 그대로 할 수 있다. 
다만 이 상황에 처음 현실에서 눈뜨고 생활하는 가운데 자신이라고 여긴 그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U를 잘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이 U 는 사실 눈을 뜨고 생활하던 그 상황에서도 사실은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 상황에서 그렇게 여기지 못한 것뿐이다.
그리고 눈을 뜨고 대하는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며 생활해온 것 뿐이다. 
그것이 생활에 편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된 배경사정이 여럿 있다. 

그래서 이 U 와 그 부분의 관계를 다시 살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설정한 U는 평소 눈을 떠 자신이라고 대한 그 내용은 일단 아니다. 
그렇데 그렇다고 이 둘이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형의 실험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다음 주장도 만나게 된다. 
"자신은 생각한다, 그래서 존재한다"
만일 그렇다면 자신이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자신은 없어지는가를 놓고 또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술을 심하게 마시거나 또는 머리를 심하게 맞아 
의식이 상실된 상태를 놓고 또 검토해야 한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는 일단 분별을 못한다. 
그런데 그 주체를 간호하고 관찰하는 이는 그런 상황이어도 
그 주체가 여전히 무언가를 계속 유지함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주체가 깨난다. 
그렇게 되면 그 주체도 의식을 잃은 전후 상황을 이어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의식을 잃었던 상태는 분별도 못하고 감각도 못했다. 
그런데 그 기간동안 그 주체는 없었고 깨날 때 새로 태어났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의식을 잃어 분별도 못해도 
여전히 그 주체는 계속 있었다고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도 그 내용을 잘 파악하기 힘드므로 일단 그것을 V 라고 표시해본다. 
그런데 그 V는 의식을 잃게 된 상태에서만 갑자기 생겨나는가를 놓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 
평소 눈을 뜨고 생활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의식을 잃어 전혀 생각도 못할 때도 그 V는 계속 있다. 

그래서 그 V 를 놓고 앞에서 본 여러 내용과의 관계를 다시 살펴야 한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런데 이전에 여기서 미리 살펴야 할 부분은 다음이다. 


현실에서 눈을 떠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 라고 표시해보자. 
그리고 눈을 감고도 여전히 자신이 있다고 여길 때 그렇게 여전히 있다고 여기는 자신을 U 라고 표시해보자. 

그래서 현실에서 평소 눈을 뜨고 생활할 때는 
○ 을 자신으로 여기고 생활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도 U 는 있다. 다만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평소 ○ 가 U 가 함께 있다고 한다면 
이 ○ 와 U  가운데 어떤 것이 좀 더 실질적인 자신에 가까운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간단히 보면 이렇다.
○ 은 눈 뜨고 생활할 때는 자신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사라진다. 
U 는 비록 불명확해서 잘 파악이 안 되지만 이 두 상황에 모두 있다. 

경전에서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붙잡고 상을 취하지 말라고 하는 내용은 
이와 관련된다. 
그 부분이 실질적인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 부분이 이 U와 완전 무관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생활할 때 움직이고자 하면 그 ○ 부분이 움직임을 늘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이 ○ 과 U 의 관계부터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여하튼 그런 관계는 있지만, 본질적인 자신은 아니다. 
그래서 이를 실질적인 자신이 그 순간에 걸치는 옷과 같은 것이라고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렇게 실질적인 자신이 아닌 부분을 붙잡고 집착해 임하면 
그 정도에 비례해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당장 눈을 감고 생활하는 상황이 되면 그렇게 집착한 내용은 하나도 그 상황으로 옮겨가져오지 못한다.
그래서 전도망상분별에 바탕해 임하면 길게 보아 문제가 발생하게끔 된다. 


그런데 이 관계는 처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 ○ 과 U 사이에서도 발생하지만, 
다시 의식을 상실한 상황에도 있는 V 와의 관계에서도 발생한다. 
이 관계는 앞에서 본 것과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육체가 다 허물어지고 장례식을 치루고 화장터에 가서 화장을 하는 경우를 
놓고 또 생각해야 한다. 
만일 화장을 마치고 난 후 자신과 관련된 것이 하나도 없다면 
이 시점까지만 고려하면 된다. 
그래서 과연 그런가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화장을 마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자신과 관련된 W 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 W 는 앞과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 W 는 화장을 마치고 난 후에만 비로소 있게 된 것이 아니다. 
○ 와 U , V 가 있는 그 매 상황마다 이 W 도 함께 있다. 
다만 평소 의식을 잘 못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앞에서 살핀 문제를 또 이 W 를 놓고 잘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 W 는 장례를 치루고 화장터에서 화장하는 전후에도 파악되지만,
자신이 처음 생을 출발한 시점을 놓고 그 전후를 살펴도 역시 그 이전에도 존재한다. 

그 사정은 현실에서 활동하는 여러 내용은 이 W 를 바탕으로 생성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정이 변화하지 않는다. 

결국 위에서 ○ 과 U , V , W 이런 형태로 표기한 내용은 
이 가운데 무엇을 실질적인 자신으로 파악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실질적인 자신이 아닌데 자신이라고 이해하고 집착을 갖는 것이 현실의 생사고통과 관련된다. 
엉터리로 파악하고 그에 바탕해 엉터리로 계산하고 삶에 임하게 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사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자신이 화장터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자신은 끝이고 
그 이후는 자신과 관련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이른바 단멸관이다.  
그런 경우 자신이 살아서 설령 업을 잘못 행해도 자신이 나중에 축생으로 몸을 변화해 
고통받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생명이란 죽으면 끝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렇게 간단히 생각하고 
삶에 임하기 쉽다. 
그리고 그런 생각 때문에 엉터리로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것이 위 내용과 관련된다. 
그리고 위 W 를 전제하지 않으면 지금 현재 형태의 삶도 시설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사정은 관련된 부분에서 따로 살피기로 한다. 


그래서 이런 바탕에서 수행자는 수행자대로 
무량겁에 걸쳐 이어나가는 수행과 서원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비록 그가 어떻게 생각하건간에 
매 생마다 단락이 져서 각 세계를 옮겨 다니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문제가 욕계의 3 악도의 생사고통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망집을 해결하지 못하면 
설령 색계 무색계에서 장구하게 이런 고통을 떠나 있어도 
결국은 이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3 계에 묶이게 하는 가장 근본부분이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한편 처음 ○를 자신으로 여기고 임하던 상황과 
U V W 등을 실질적인 자신으로 판단하는 상황은 
그 내용이 극과 극으로 뒤바뀐 상태임을 보게 된다. 

이를 경전에서 바다가 어느 순간 망집을 일으켜 거꾸로 뒤집힌 가운데 
바닷가의 물방울 하나를 자신으로 여기는 상태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이 상황을 종전에 그림으로 표시한 내용을 놓고 살펴보자. 






[im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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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에서 1!는 눈을 통해 얻는 감각현실이다. 
그 가운데 평소 일정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생활하게 된다. 

눈으로 보는 그 일체가 마음안 내용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는 현실 세계 일체 내용은 1! 처럼 마음에 들어온 내용임을 의미한다. 
그것이 밤에 보는 달이던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보는 도로나 산이나
또는 집이나 건물이나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내용을
외부 세상이나 외부대상 외부물질로 잘못 여기고 임한다.
그래서 경전에서 이런 상태를 망집에 의해 뒤집힌 상태라고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개한 온갖 분별이 다 사정이 마찬가지다. 


자신과 관련해서 중요한 부분은 다음이다.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일정부분을 붙잡아 취하고 
그에 바탕해 생활한다. 
이것이 상을 취하고 상에 머물고 그 상에 바탕해 행하는 현상이다. 

수행자가 이런 상태가 되면 수행자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망상분별 상태에서 이렇게 임하기 때문이다. 
평소 자신이 손을 뻗쳐 사과를 집어 영희에게 건넨다면 
어떤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어떤 부분을 사과라고 여기고 
어떤 부분을 영희라고 여기고 그런 활동을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쉽다. 
이것이 아상과 타상을 갖고 임하는 상태다. 
나중에 욕계내 3 악도에 묶여 생사고통을 받을 때도 이런 상태에서 받게 된다. 
그리고 욕계내 기본 특징도 바로 이런 망집을 바탕으로 임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단히 많은 생명이 이런 상태로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이것이 문제다. 

그리고 이 망집상태에서 처음 a! 부분을 제각각 자신으로 여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그렇게 집착할 내용이 아님을 제시하고
앞과 같이 U  V W 같으 내용을 제시하면 이를 놓고 또 오해를 하게 된다. 
이는 그림에서 6,7,8 이런 형태로 그린 부분과 관련된다. 

그래서 처음 망집을 일으켜 임한 경우는 이 내용을 놓고도 
다시 이것이 진짜 자신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처음 가진 망집의 증상을 이 부분으로 옮겨 온다. 

그리고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제시하면 
이제 또 극단으로 나아가 처음 얻었던 a! 나 
있다고 시설헤 제시한 U V W 등이 일체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처럼 또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 문제를 꿈의 비유를 놓고 잘 정리해 이해해야 한다. 


꿈에서 바다에서 황금을 얻는 꿈을 꿀 때 
그 꿈에서도 자신이라고 여긴 어떤 부분이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 부분이 그런 자신이 아니라고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부분이 아주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렇게 여긴다고 해서 그 부분이 바로 없어지게 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그런 부분이 참된 자신이 아님을 제시하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그 부분은 자신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그에 해당하는 내용은 꿈 밖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그래서 그것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집착하면 곤란하다. 
이런 의미다. 

평소 현실에서 눈을 떠서 생활할때 ○ 과 같은 부분을 자신으로 여긴다고 하자. 
이것은 거울을 보면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 그런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 ○ 과 같은 부분은 실질적인 자신이 아니라고 제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질적인 자신이라고 볼 내용이 그 상황에서 
잠시 걸치는 옷과 같은 내용이라고 제시했다. 

그것은 다음 내용을 의미한다. 
○ 과 같은 부분은 나중에 눈을 감을 때 사라진다. 없다. 
그런데 그 상황에도 U 는 있다. 

이제 ○ 과 U 를 비교하면 서로 내용이 같지 않다. 
그런데 이 가운데 무엇을 좀더 실질적인 자신으로 보고 임해야 
넒고 길고 깊게 관찰할 때 좋을 것인가가 문제된다. 

꿈과 상황이 마찬가지다. 
꿈을 꾸는 상황에도 침대와 침대에 누어 있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꿈꾸는 상황에서 엉뚱한 꿈 내용을 놓고 임하게 된 것 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 과 같은 위 사정외에도 
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눈으로 본 ○ 과 같은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우선 당장 청각 후각 미각 촉각영역에서도 얻어지지 않는다. 
관념분별을 행하는 영역에서도 없다. 
더욱이 실재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앞에서 본 여러 마음 제 7 식 제 8 식에서도 그런 내용은 그대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눈과 관계해서 그 상황에서 임시적으로 얻는 내용일 뿐이다. 
다만 살아가는 동안 쉼없이 눈을 뜨고 생활하는 바탕에서 그 내용이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각 내용을 놓고 잘 생각해야 한다. 
현실에서 생생하게 대하는 이 내용을 실답지 않다고 하는 사정도 이것이다. 
그리고 그에 집착해서 업을 행하면 대단히 많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결국 그에 바탕해  무량겁에 걸쳐 그런 상태로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간다. 

따라서 이 사정을 올바로 관하고 잘 해결해야 한다. 


한 주체가 ● 라는 감각현실을 얻고 그 일정부분이 철수 ▽ 라고 여겼다고 하자. 
여기서 지적한 것은 ● 엔 철수 ▽가 없다.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 것이다.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분명 ●은 ● 일뿐 여기엔 철수 ▽가 없다. 
그 말이다. 
그것은 철수▽란 관념내용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또 그것은 ● 라는 감각현실을 못 얻는다는 것도 아니다. 

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현실에서 눈을 떠 ○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지만, 그것은 참된 자신이 아니다. 
그리고 생사를 넘어 이어지는 근본 정신으로서 아뢰야식을 제시하지만.
그 역시 진짜의 나는 아니다라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앞 내용을 놓고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눈을 떠 ○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지만, 그것은 참된 자신이 아니다.  
이 경우 ○ 부분에 자신이 이해하는 자신에 해당하는 내용은 없다 이런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 과 같은 감각현실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또 이 말은 그런 참된 자신이라는 관념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그래서 혼동을 일으키면 안된다. 

무엇이 실답게 있지 않다라고 할 때 
이것을 가지고 일체가 아무 것도 전혀 없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나아가면 
망집을 바탕으로 일으키는 하나의 극단이다. 

그런데 또 실답지는 않지만, 그러그러한 내용은 얻는다라고 하면 
다시 이것을 가지고 그것은 참된 진짜로서 실답게 있다.
그래서 그것을 집착을 갖고 대해야 한다고 나아가면
이것은 또 망집을 바탕으로 일으키는 하나의 극단이 된다. 

그래서 이 양극단으로 있고 없음에 치우치면 그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결국 한 주체가 때로는 축사에서 때로는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장구하게 받아나가는 기본 바탕이 된다. 
그래서 이것을 잘 해결해야 한다. 


○ 인과와 단순선후관계 및 부대상황(附帶狀況)



한편 인과 문제 이해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번개가 칠 때 천둥소리를 듣게 되기에 번개가 천둥소리의 원인이라고 여긴다. 
손을 부딪히면 손뼉소리가 날 때도 사정이 같다. 
그래서 자신이 망집을 일으킨 후에 온갖 인과판단을 잘못 행하게 된다. 

어떤 내용을 얻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다른 내용은 일반적으로 
부대상황(附帶狀況 collateral circumstances)표현한다. 
이 부대상황을 서로 원인과 결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한마디로 천둥소리를 듣거나 손뼉소리를 들을 때 눈을 감아 
그런 번개나 손 모습을 보지 않아도 그 소리는 듣는다. 
그래서 눈으로 본 내용과 귀로 듣는 내용은 서로 부대상황의 관계이지 
인과관계에 놓인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평소 생활할 때는 그렇게 여기게끔 된다. 

이 부대상황((附帶狀況)이란 표현은 표현상 육군부대 해군부대 상황이런 말과 글자가 같다. 
그래서 이런 군부대 상황으로 놓고 이 사정을 이해해보자. 
그런데 군 부대에서 여러 다른 부대가 서로 붙어 있다. 
이 때 전선에서 어떤 폭탄이 터지거나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이로 인해 각 부대마다 일정한 행동을 취하고 대응한다고 하자. 
이 때 어떤 부대원이 전선의 내용은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단지 옆 부대 상황만 동시에 잘 파악한다고 해보자. 

그래서 그가 생각하길 오늘
자신 부대내 상황은 옆 부대상황때문에 발생하게된 것이라고 자꾸 생각하게끔 된다.

이것이 문제다. 

그리고 부대내 일도 부대 안의 여러가지 일을 관련시켜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판단들을 하나하나 시정하지 않으면 
망집에 묶여 임하게끔 된다. 
그리고 그런 망집이 생사고통과 관련되므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앞 부분에 혹(번뇌) - 업 - 고통의 관계로 12 연기를 배열해 제시한 내용이 이와 관련된다. 



다시 앞 그림을 붙여서 설명해보자. 





[im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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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여러 부대가 붙어 있다고 한 것은 위 그림에서 1,2,3,4,5,6,7,8 이런 부분과 사정이 같다. 

그래서 눈으로 본 내용이 왜 그런가를 이해한다거나, 
귀로 듣는 소리가 왜 그런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바로 이처럼 서로 관련시켜 이해하게 된다. 

번개를 볼 때 조금 있으면 천둥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천둥소리가 난 것은 번개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이 부대상황을 관련지어 인과관계로 이해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과연 그런가를 잘 살펴야 한다. 

이것을 잘 이해하려면 연기관계 기본 공식인 차유고피유 차무고피무 이런 관계식부터 
잘 살펴야 한다. 

간단히 보면 천둥소리를 듣는 상황에서 눈을 감아 번개를 보지 못해도 
그 소리는 듣는다. 
즉 번개를 보거나 보지 못하거나 천둥소리 듣는데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자신이 보는 번개는 천둥과 인과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번개를 보는 상황에서 같이 동시에 천둥소리를 반복해 듣는 것 뿐이다. 
이것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관계는 부대상황의 관계라고 구별해야 한다. 

이것은 새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식의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로 이해하는 오류와도 비슷하다. 

그것은 새가 설령 날지 않다도 배는 떨어진다는 사정을 이해해야 
비로소 해결된다. 

그런데 한 주체는 동시에 5 개의 감관으로 각 내용을 동시에 얻는다. 
그리고 또 동시에 분별도 진행한다. 
그래서 이 각 내용을 서로 혼동해서 
서로 관련이 된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각 내용을 얻는 감관이나 내용도 서로 혼동하게끔 된다. 

어떤 소리를 들을 때 경전에서 소리를 듣는 감관은 무견유대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대부분 자신이 눈으로 보고 거울로 보는 그런 귀를 그 감관이라고 이해한다. 
이것도 그런 혼동에 바탕한 잘못이다. 

그런 귀모습을 설령 거울로 보지 못하고 그런 내용이 없어도
그 상황에서 소리를 듣는 감관은 작동한다는 사정을 통해서 
그 오류를 이해해야 한다. 

종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소리를 들을 때 
대부분 그 종소리는 자신이 보는 종 때문에 난다고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보자. 
이 망집이 증폭되면 다음 상황을 놓고도 앞과 같은 방식으로 이 관계를 이해하게된다. 
즉, 자신이 사과를 집어 영희에게 건네니 영희가 받고 
그 사과가 맛있다고 한다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 일련의 관계를 그처럼 이해한다. 

평소 이 내용에 담긴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살펴보자. 

결론만 말하면 이 상황에는 
자신이란 부대가 따로 있고 
영희나 철수에 해당하는 부대가 따로 있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대로 또 눈,귀,코,입,몸 등을 비롯해 그림과 같은 여러부대가 동시에 활동하고 있다. 
영희나 철수도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 앞과 같은 상황에 놓이면 다양한 잘못된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우선 자신이 사과를 건넨다고 할 때 
이 사과는 자신의 마음안 내용임을 보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영희가 자신마음에 들어와 자신마음한 부분을 건네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희가 사과를 본다고 할때도 
자신이 보는 사과내용을 붙들고 사과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영희가 사과를 건넨다고 할 때 
자신의 영희 마음안에 들어가 사과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영희가 보는 사과를 대상으로 자신이 사과를 보는 것도 아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본 사과가 외부세상이라고 이해할 때도 
위처럼 잘못 혼동한다. 

자신이 한번 사과라고 본 모습은 
다른 영역이나 다른 부대안에 그처럼 다 있다고 여기게 된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서 자신도 사과를 보고 
영희나 철수도 사과를 본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각 부대의 각 상황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각 주체의 마음과 독립해 따로 있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는 아니다. 
그런데 자신은 처음 본 사과가 외부에 그대로 실재한다고 착각하게끔 된다.
그것은 자신이 그 상황에서 설령 눈을 감아 그 사과를 보지 못하게 된다해도 

여전히 영희나 철수의 눈은 여전히 그 사과를 본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여러 부대의 부대원이 있을때 그 내용을 놓고 
지위를 혼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혼동을 잘 제거해야 한다. 


한편 눈으로 보는 여러 내용을 놓고 
한 부분이 왜 그런가를 살필 때 
그 안의 내용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것도 비슷한 문제가 된다. 

비유하면 그림이나 모니터 화면에서 
공이 굴러간 것은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방망이로 공을 때려서 그렇다라고 이해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본 사정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다. 

그 사정은 그림을 놓고 이해하면 쉽다. 
그림에 그려진 방망이는 굴러가는 공을 때려 굴러가게 한 방망이가 아니다. 
그러나 그 그림을 보면 마치 그런 것처럼 여겨지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이해 전반이 처음 무명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전개해가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전개되는 바탕을 제거하면
그것은 그 일체가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이 내용을 주의해야 한다. 

그런 무명이 제거되면 그 상황에서 망집이 제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설한 내용은 그 상황에서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그렇다해도 그런 망집을 일으키게 한 감각현실이나 관념 자체와 같은 재료 자체는 관계없다. 
그리고 본 바탕인 실재도 마찬가지다. 

이 사정을 앞에서 이미 꿈의 상황을 놓고 보았다. 
꿈에서 본 황금이 실답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꿈에서 본 황금은 침대가 놓인 현실 영역같은 곳에서는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실답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꿈에서 본 황금까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꿈에서 그 황금은 그렇게 생생하게 꾼 것이다. 
그리고 침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꿈이 전혀 없다고 아니다. 

현실에서 자동차가 어떤 과정으로 생기는가를 살핀다고 하자. 
자동차는 나사나 철판으로 만든다고 제시했다. 

그런데 이들 각 내용이 망집을 바탕으로 한 내용일 뿐 본래는 얻어지지 않는다고 제시한다. 
이 경우 
현실에서 한 주체가 자동차나 나사 철판이라고 본 그 재료 자체가 전혀 없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그런 재료를 놓고 그 주체가 그것을 자동차나 나사 철판이라고 잘못 이해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망집이 제거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재료 자체는 이에 별 관계없다.  
원래 있던 내용은 관게없다. 
감각현실이나 관념분별은 그렇게 얻는다. 
그리고 본 바탕인 실재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 상태 그대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깨닫게 되면 단지 그런 내용을 놓고
엉터리로 이해한 내용만 제거된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본래 얻을 수 없는 생사고통을 놓고 겪는 상태에서 벗어나
니르바나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렇다고 없어지는 것도 새로 얻는 것도 본래 없다. 
다만 망집에 바탕해 받던 생사고통과 망집만 제거되는 것 뿐이다. 
이것을 응용하면 이제 생사현실에서 중생제도를 위해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다시 구족하게 된다. 
물론 이 역시 본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는데 
대단히 필요하다. 
그래서 무량겁에 걸쳐 생사즉 열반임을 관한 가운데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건져내는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vauw1603

◈Lab value 불기256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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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담 ♥밀린글과 세상의 미스테리 


조각글이 밀려 있다. 
요즘 하루에 조각글을 살필 때 같은 날짜로
대략 4 년간 날짜의 조각글을 함께 살피면서 정리를 한다. 
한꺼번에 정리하기 힘들어서 그렇게 조금씩 살펴가려는 취지다. 
그런데 과거에 적은 내용이 없어서 정리할 내용이 별로 없으면 마음이 가볍다. 
그런 가운데 계속해서 대반야바라밀다경이 뽑혀서 비슷한 내용이어서 
건너 뛰다가 요즘 조금 밀렸다. 

가끔 숙왕화님이 운전하는 차를 옆에서 타고 갈 때 
앞에 보이는 거리가 마음안 내용임을 설명하고는 한다. 
분명 거리는 자신 밖에 있는 외부세계처럼 느껴지는데 
그런데 그것이 자신 마음임을 열심히 설명한다. 

그렇게 설명하다보면 운전에 방해될 법 한데 
숙왕화님은 여하튼 운전을 다 마칠 때까지 잘 참고 들어준다. 
그런데 말하는 본인도 그 설명내용이 조금 어리둥절한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부분이 대단히 혼동을 많이 일으키고 
보살 수행자와 망집을 일으킨 일반인과의 경계점에 위치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종경록을 살피면서  
어제 조각글에 뽑힌 대보적경을 함께 살피다보니 
또 그런 문제를 다시 언급하면서 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단히 많이 반복한 내용이다. 

그래서 대장경에 적힌 내용을 붙들고 
다시 설명하는 것보다는 
조금 바로 이 사정을 쉽게 이해할 방안을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 작성중 글이 미완성인 상태로 마치는 경우가 많다. 
한 2,3 년전 글을 보면 무슨 내용을 적으려고 했는지는 알겠는데 
표현을 놓고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적었음을 보게 된다. 
사실은 지금 이런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페이지를 비공개처리해서 모두 제거하고 싶은 생각도 가끔 든다. 
그러나 또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볼 경우도 있어서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앞으론 글을 작성중이고 정리되지 않은 경우는 미리 
다음과 같은 표지를 붙여 놓기로 한다.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이런 표지를 붙여 놓으면 그래도 조금 감안해서 
살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문서정보 ori http://buddhism007.tistory.com/8912#1603 
sfed--종경록_K1499_T2016.txt ☞제77권
sfd8--불교단상_2564_01.txt ☞◆vauw1603
불기2564-01-15
θθ

 

03fl--nirvana\r2020.htm
■ 보조- 과거글 정리

https://buddhism007.tistory.com/archive/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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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uddhism007.tistory.com/archive/20170115
https://buddhism007.tistory.com/archive/201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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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Trenet - Joue-Moi De L'electrophone
Mireille Mathieu - Mel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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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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