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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64-01-13_대명도경_004 본문
『대명도경』
K0009
T0225
제4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대명도경_K0009_T0225 핵심요약
♣0009-004♧
『대명도경』
제4권
대명도경
대명도경 제4권
남오 월지국 지겸 한역
유옥영 번역
11. 불가계품(不可計品)
12. 비유품(譬喩品)
13. 분별품(分別品)
14. 본무품(本無品)
15. 불퇴전품(不退轉品)
16. 항갈청신녀품(恒竭淸信女品)
17. 수공품(守空品)
용어풀이
선업 => ‡수보리
명도무극 => ‡반야바라밀다
응의 => ‡아라한
연일각(緣一覺) =>‡ 연각 , 독각
폐사(弊邪) => 악마, 파순
■ 11. 불가계품(不可計品)
■ 선업(善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명도무극은 지극히 큰 구경(究竟)의 것이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여래에게는 스승이 없으며 일체지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명도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고 안온하며 구경의 것이고 비교할 만한 것이 없느니라.”
선업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왜 여래께는 스승이 없으며 일체지이시며 헤아릴 수 없으며 끝이 없으십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법도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5음은 끝이 없는 것이며,
모든 법에 있어서도 끝과 한계가 없으니 그 끝을 얻을 수가 없느니라.
어찌 5음과 모든 법에 다하는 곳이 있겠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
선업이여,
허공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도 마찬가지이니라.
그러므로 여래의 법과 모든 법은 끝이 없는 것이고 셀 수 없는 것이니,
법이란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마음을 일으켜서 헤아릴 수 없는 명도(明度)를 배우되,
이러한 것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으로 생각해야 하느니라.
비유하면 허공(虛空)에 마음이 없으면 생각함도 없고,
마음이 있으면생각함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니라.
이것으로써 명도의 헤아릴 수 없음을 설할 때에는
5백이나 되는 비구와 20명의 비구니가 응의(應儀)의 도를 얻게 되고,
60이나 되는 청신사(淸信士)ㆍ청신녀(淸信女)가 모두 구항(溝港)의 도를 얻게 되며,
20이나 되는 개사(闓士)들이 태어남이 없는 법락(法樂)을 성취하게 되어 모두들 현겁(賢劫) 가운데 수기[受決]를 받게 될 것이니라.”
선업이 대답하였다.
“깊고도 깊습니다,
천중천이시여.
명도는 지극히 크고 안온한 구경(究竟)입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말이 옳다.
일체지를 벗어난 모든 개사와 연일각(緣一覺)의 도는 모두 명도에서 나오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전륜성왕의 모든 국토에 있는 신하와 종과 왕에게는 근심할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의 법과 연일각의 법과 응의의 법은 모두 명도에서 나와 5음을 세우되 받아들이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으며,
구항ㆍ빈래ㆍ불환ㆍ응의ㆍ연일각은 일체지의 도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이에 들어가지도 않느니라.”
선업이 여쭈었다.
“왜 일체지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이에 들어가지도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응의(應儀) 등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볼 수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도다.
나도 역시 여래께서 들어가시는 곳을 보지 않느니라.
만약 내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일체지도 역시 들어감이 없느니라.”
애욕천(愛欲天)의 천자와 범천(梵天)의 천자가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깊고도 깊습니다,
천중천이시여.
명도는 알기 어렵습니다.
3천이나 되는 국토에 있는 백성들로 하여금 과거불 시절에 지은 공덕을 모두 믿게 하고 나서
1겁(劫)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깊은 명도(明度) 가운데의 즐거움을
하루 동안만 헤아릴 수 없이 깊은 명도를 생각할 수 있게 할지라도
그 공덕은 남음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떤 현인(賢人)이 이러한 깊은 법을 듣고 증득하고는
속히 그러한 부류들로 하여금 믿고 좋아하게 하길 1겁이 넘게 한다 해도
그 공덕은 이에 미치지 못하게 되느니라.”
모든 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머리와 얼굴을 부처님의 발에 대고 돌고 나서는,
천천히멀어지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고 각각 돌아가 버렸다.
선업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어떤 개사 대사든 이러한 명도를 믿는다면 어느 곳에 태어나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어머니를 떠날 수 없듯이,
이와 같이 개사 대사가 명도에 대해 듣는다면,
마침내는 경사(經師)를 떠날 수 없게 되며,
사람의 도[人道]를 따라 그 가운데 태어나게 되느니라.”
선업이 아뢰었다.
“만약 이러한 공덕을 성취하고서 다른 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다른 부처님의 국토에 공양하는 자가 있다면 그곳에서 태어나게 되느니라.
만약 도솔천에서 자씨 개사(慈氏闓士:미륵보살)에게 지혜를 묻고,
지금 이러한 법을 구하려고 하되 게으르지 않으면,
이러한 공덕을 지니게 되며
또 이 경까지 얻게 되느니라.
만약 전세(前世)에 있을 때 명도의 지혜에 대해 물었든 묻지 않았든
금생(今生)에 와서 이 경에 대해 듣고 그것에 대해 의혹을 일으키거나 싫증내는 마음을 갖게 되어
믿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사람은 전세에 스승을 따르며 명도에 대해 물은 적이 없는 사람이니라.
또한 개사 대사가 전세(前世)에 이 명도에 대해 듣고는
그 가운데 있는 지혜에 대해 하루, 이틀, 사흘에서 닷새에 이르기까지 물은 적이 있어서
이러한 공덕을 지녔는데,
금생에 또다시 이 경을 얻고 곧바로 믿고 좋아하였으나,
만약 욕락(欲樂)에 대해 들었을 때 이와 같은 혼란으로 마음이 수그러들었다가는 곧 치켜들고 하기를
자주 바꾸어 하여
새로 배울 때부터 이와 같이 믿고 좋아하지 않으면,
마땅히 응의(應儀)와 연일각(緣一覺)의 두 가지 도 가운데로 떨어지게 되느니라.”
■ 12. 비유품(譬喩品)
부처님께서 선업에게 이르셨다.
“비유하면 큰 바다 가운데 부수어진 배가 있는데,
그 배 안에 있던 사람이 널빤지나 돛대기둥을 구하지 못한다면
목숨을 구할 수 없어 마침내는 물에 빠져 죽게 될 것이며,
만약 널빤지나 돛대기둥을 구한다면 그것을 타고 바닷물을 빠져 나와 죽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으니라.
개사 대사로서 믿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정(定)을 행하고 정진(精進)하여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를 얻으려고 하나
명도(明度)를 얻지 못하고 변모명혜(變謀明慧)를 배우지 못하면,
그 중간에 응의와 연일각의 도를 얻게 될 것이니라.
믿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정(定)을 행하고 정진하여 무상정진도를 성취하려 하되,
명도의 방편 지혜[權慧]를 얻어 배우고 시종일관 끝내 게으르지 않으면,
응의와 연일각을 넘어서서 벗어나게 되며,
바로 무상정진도 가운데에 서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남자나 여인이 깨진 병에 물을 담으려고 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부서진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그 이유는 물을 담으려는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배우되 이러한 깊은 법을 성취하지 못하면 끝내 일체지(一切智)에 이를 수 없게 되고,
곧 중도(中道)에 대해 싫증을 내게 되면 두 가지의 도(應儀와 緣一覺의 도)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사기로 된 병에 물을 담아 들고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물을 담으려는 목적을 이미 성취하였기 때문이니라.
깊은 법을 배우고 얻어서 끝끝내 중도에 대해 그치거나 함부로 하지 않는다면,
마음에 무상정진도를 얻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큰 바다 가운데에 있는 배에서 그 속에 실은 재물을 잘 보호하지 못하거나
가던 것을 중단하게 되면,
그로 인해 재물이 흩어지고 귀중한 보물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개사 대사가 배울 마음이 있되
깊은 법을 얻지 못하거나
중도에 대해 싫증을 내게 된다면 곧 보물을 잃게 되며,
중도에 대해 게으른 마음을 낸다면 두 가지 도 가운데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비유하면 큰 바다를 통해 가려고 배를 보수하고 재물을 싣고 가는데
가는 것을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다면,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 이와 같이 개사 대사가 믿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정(定)을 행하고 정진(精進)하고,
또 깊은 법을 얻되 끝끝내 게으르지 않으면,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 가운데 서게 되며,
마침내 두 가지의 도에 떨어지지 않고 곧바로 불문(佛門)을 향해 가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나이가 많고 몸에 심한 병이 든 노인이 있다고 하자.
그 노인이 자리에서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겠느냐?”
선업이 말하였다.
“없습니다,
천중천이시여,
혹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힘이 없어 스스로 갈 수는 없습니다.
병이 다 나은 다음에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되더라도 걸을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개사 대사가 위의 비유에서와 같은 행으로 배운다면
깊은 법을 얻을 수 없으며,
무상정진도를 성취하려고 해도 끝내 부처가 될 수는 없으며,
중도에 대해 게으른 마음을 낸다면 두 가지 도 가운데로 떨어지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늙고 병든 사람이 병이 낫기 전에 일어나서 걸으려고 하는데
건강한 사람이 와서 부축해 주면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가도록 해 드리지요,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면 약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는 것과 같으니라.
■ 이렇게 위와 같이 행하는 개사 대사는
이러한 깊은 명도무극과 변모명혜(變謀明慧)를 배우되
끝끝내 중도에 대해 게으르지 않으면
반드시 구경에 이를 수 있게 되며,
그 가운데에서 무상정진도를 얻게 되느니라.”
■ 13. 분별품(分別品)
■ 선업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염부제[阿閻浮]의 개사는 명도무극을 어떻게 배웁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善友]과 함께 일을 따라 행하되,
착한 마음[善意]으로 명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느니라.
■ 어떤 것이 가르침을 따르는 것인가?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棄定]ㆍ지혜(智慧)를 베풀어
무상정진도를 지어야 하며,
5음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명도의 일체지는 집착하지 않으며,
응의와 연일각의 도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선업이여,
이와 같이 하여 염부제의 개사가 명도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라.”
선업이 말하였다.
“개사는 괴로움[苦]을 싫어하여 무상정진도를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괴로움을 싫어하면서 어떻게 해야 세간에서 적정함[靜]을 얻을 수 있겠느냐?
시방을 수호하는 것[護]이고,
스스로 돌아가는 것[自歸]이며,
버리는 것[舍]이고,
제도하는 것[度]이며,
그치게 하는 것[臺]이고,
인도하는 것[導]이니라.
어떤 것이 수호하는 것인가?
태어나고 죽는 수고로움과 괴로움을 모두 수호하고 가르쳐서
제도하고 벗어나게 하는 것을 수호한다고 하느니라.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다 제도하는 것을
스스로 돌아간다[自歸]고 하느니라.
무상정진도와 최정각을 얻고 여래께서 경에 대해 설하시는 것을 듣고 집착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것[舍]이라고 하느니라.”
선업이 또 여쭈었다.
“어떤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에 집착하지 않고 결박되지 않고,
5음에 의해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니라.
개사가 부처를 이룰 때에 세간을 버린다면 어떻게 무상정진도와 최정각을 얻어 세간을 제도하겠느냐?
5음과 5음이 아닌 것을 제도하고,
5음을 제도하고 모든 법을 제도하는 것이니라.”
선업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모든 법과 모든 경을 제도하면 최정각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집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이와 같이 집착함이 없는 개사가
괴로움을 싫어하지 않고,
법을 생각하되 게으르지 않으면,
무상정진도와 최정각을 얻게 되느니라.
경을 설함으로 인해 이와 같이 세간을 제도하게 되는 것이니라.
■ 어떤 것이 세간의 대(臺)인가?
예를 들어 물속에 대(臺)가 있다면 물이 양쪽으로 피해서 가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5음은 과거ㆍ미래ㆍ현재에 있어 단절됨이 있는 것이고,
5음이 단절되면 모든 법을 배우는 것도 단절되며,
모든 법이 단절되면 이것을 정(定)이라고 하느니라.
이러한 정은 감로(甘露)이자 니원(泥洹)이니라.
개사는 법을 생각하되,
이와 같이 법을 말하느니라.
무상정진도를 얻을 때를 세간의 대라고 하느니라.
■ 어떤 것을 도(道)라고 하는가?
위에서 말한 것을 모두 얻으면,
5음과 제법이 공하여 오는 근원이 없고 가는 자취도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아 다른 것도 없고 생각함도 없으며,
있는 곳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며,
그것에 의해 생기는 것도 없으며,
마치 꿈이나 마술[幻]과 같아서 끝이 없고 다름도 없느니라.”
선업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깊고도 깊습니다,
천중천이시여.
누가 이것을 알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도를 구한 지 오래되어 그것을 믿는 사람이니라.
과거불이 계실 때에 그러한 공덕을 지은 사람은 그것을 밝힐 수 있느니라.”
선업이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도를 구한 지 오래된 것입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5음을 없애 버리고 나서 다시 갖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깊은 법을 밝히는 것이며,
이와 같은 개사는 셀 수 없이 많은 도를 행하는 사람이니라.”
선업이 말하였다.
“이 개사는사람들의 인도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 개사가 이와 같이 행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인도하겠다는 크나큰 서원을 세우면,
이것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굳은 서원을 세우게 되어,
5음에 결박되지 않고 응의와 연일각의 도에 결박되지 않으며,
일체지를 버리지 않고 모든 법에 결박되지 않게 되느니라.
그래서 굳은 서원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선업이 말하였다.
“개사는 깊은 명도를 구하되 응의와 연일각 그리고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이 세 가지에 대해 갈애하지 않습니다.
매우 깊습니다,
천중천이시여.
개사에게는 수호함이 있지 않기도 하고,
수호함이 없지도 않습니다.
수호함이 없지 않다는 것은 명도에서 나오되
나온 법이 없다는 것으로 정(定)을 수호한다는 것이며,
제법을 수호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수호한다는 것이며,
무극(無極)을 수호한다는 것이고,
집착하지 않음을 수호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명도 가운데에 있되,
반드시 이와 같이 물러서지 않아야 하느니라.
개사가 명도에 대하여 집착함이 없고,
끝끝내 범부의 말을 따르지 않으며,
다른 도를 믿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게으르지 않으면,
그러한 사람은 과거불 시대에 이미 이러한 명도를 받았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선업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개사가 무서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게으르지 않는데
어찌 명도에 대해 관찰하는 것이라 보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이 일체지를 향하는 것이 관찰하는 것이니라.
■ 마음이 일체지로 향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이 공을 향하는 것 이것이 관찰하고 보는 것이며,
보지 않으면 헤아릴 수 없으니,
일체지는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것은 5음이 아닌 것이고 들어가지 않는 것이며,
얻는 것이 아니고,
아는 것이 아니며,
아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니며,
태어남이 없고,
패함이 없으며,
짓는 이가 없고,
오는 곳이 없으며,
가는 곳이 없고,
보는 것이 없으며,
있는 곳이 없느니라.
이것은 허공이 한량없는 것과 같으니,
헤아릴 수 없는 일체지도 이와 마찬가지이니라.
부처를 지음도 없고 부처를 얻음도 없으며,
5음으로부터 부처를 얻는 것도 없으니,
6도(度)로부터 부처를 얻는 것도 아니니라.”
애욕천의 천자와 범천의 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깊고도 깊습니다,
천중천이시여.
이해하고 알기는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여래를 보되 이렇게 안온하고 깊은 줄을 알게 된다면
물러나지 않고 최정각을 짓지 않으며
또 최정각이라고 할 것도 역시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느니라.”
모든 천자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십니다.
세간을 가엾이 생각하셔서
이러한 경을 믿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데,
세간 사람들은 욕망에 집착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 14. 본무품(本無品)
선업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법은 차례에 따라 집착함이 없고 생각이 없음이 허공과 같으며,
이 경은 본래 생겨남이 없으니,
모든 법은 그것을 찾되 얻는 것이 없습니다.”
애욕천의 천자와 범천의 천자가 말하였다.
“선업 현자께서 말씀하신 것은 여래의 가르침과 같으며,
단지 허공의 지혜를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 선업이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가르침을 따르는 것일까요?
여법(如法)하여 생겨남이 없는 것이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래 없는 것[本無]이어서 온 근원도 없고 가는 자취도 없습니다.
제법(諸法)은 본래 없는 것이고 여래도 역시 본래 없는 것이며 다른 것도 아닙니다.
본래 없음에 따른다는 것은 여래의 본래 없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래의 본래 없음은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세운 것이니,
이는 제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지 않음[無異]과 본래 없음[本無]을 짓지 않으니
모든 법이 다 본래 없는 것이며,
또 본래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것도 없으며 다른 것도 없습니다.
■ 진여법엔 본래 없으니,
제법도 본래 없으며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있지 않습니다.
여래께서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진실로 본래 없는 것입니다.
개사(闓士)가 본래 없음을 증득하였으므로
여래께서는 지위육진(地爲六震)이라고 이름하셨습니다.
이것이 여래께서 설하신 본래 없음이며,
제자인 선업이 따르는 여래의 가르침이십니다.
또한 5음ㆍ구항ㆍ빈래ㆍ불환ㆍ응의ㆍ연일각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여래의 가르침입니다.”
추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본래 없음[本無]은 깊고도 깊습니다,
천중천이시여.
부처님께서 본래 없음에 대해 설하실 때에
2백이나 되는 비구가 응의도를 증득했고,
5백이나 되는 비구니가 구항도를 증득했으며,
5백이나 되는 천인이 모두 태어남이 없는 법락(法樂)을 누리게 되었으며,
60이나 되는 처음 배운 개사가 응의도를 증득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추로자에게 말씀하셨다.
“60이나 되는 사람이 과거에 5백이나 되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
모두들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棄定]ㆍ부지공(不知空)을 행하여 비록 공(空)하긴 하였으나,
명도(明度)를 얻지 못하고 변모명혜(變謀明慧)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모두 응의도에 떨어졌느니라.
개사가 도에 의해 공을 얻어서 색(色)이 없고 서원이 없는 경지를 증득했더라도
명도와 변모명혜를 얻지 못하면,
곧 그 두 가지의 도 가운데로 떨어지게 되느니라.
예를 들어 몸이 2만 리나 되는 큰 새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날개가 없이 스스로 하늘에 몸을 던졌다가
날아올라 돌아가고자 한다면 할 수 있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몸에 고통이 없게 하고자 한다고 정녕 고통스럽지 않게 할 수 있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고통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앓거나 죽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새는 몸은 크지만 날개가 없기 때문이니라.
개사로 하여금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겁 동안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을 행하게 하고,
색(色:물질)과 정(定)을 구하게 하되,
공(空)에 들어가지 못하고 명도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변모명혜를 증득하지 못했으면,
마음속으로는 간절하게 부처님의 도를 구하여 부처가 되려고 하더라도
응의와 연일각을 증득하게 되느니라.
만약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서 위와 같은 행을 모두 행하고
또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에 대해 듣고는,
색(色)과 같은 것을 구하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여래의 계(戒)와 정(定)과 혜(慧)를 지니지 못하게 되어
여래의 일체지에 대해 알지 못하게 되느니라.
단지 소리만 듣고는 마음속으로 들은 것과 같은
위없고 평등한 최정각(最正覺)을 지었다고 생각하나,
그것을 얻지는 못하게 되어 곧 중도에 그것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왜냐하면 깊은 법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추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개사가 마음속으로 지혜를 생각하더라도
깊은 법을 여의게 되면곧 응의와 연일각을 증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약 진실로 무상정진도와 최정각을 얻으려고 한다면
마땅히 명도와 변모명혜를 배워야 합니다.”
애욕천의 천자와 범천의 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명도의 무상정진도는 알기 어렵습니다.”
선업이 말하였다.
“알기 어렵습니다,
천중천이시여.
저와 같이 지혜를 생각하면 무상정진도를 얻기가 쉬워집니다.
왜냐하면 부처를 증득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제법(諸法)은 모두 공(空)한 것이므로
찾으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법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법을 지으려고 법을 찾되
얻는 것이 없어야 하며,
이와 같이 부처님의 도를 구해야 증득하기 쉬워집니다.”
추로자가 말하였다.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은 증득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공(空)하여 생각할 수 없어야
부처님의 법을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법은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증득하기 쉽다고 한다면
어떻게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개사가 모두 성취하였겠습니까?”
선업이 대답하였다.
“어떠합니까?
5음은 성취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5음을 여의는 것은 성취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추로자가 말하였다.
“5음은 본래 없는 것인데 어떻게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5음을 떠나 존재하는 법은 성취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래 없다는 것[本無]은 성취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것을 떠나 존재하는 법은 성취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러한 법을 증득할 수 없는데 어떤 법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추로자가 말하였다.
“현자[子]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대사(大士)ㆍ선서(善逝)에게는 어떤 성취함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덕을 지닌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응의ㆍ연일각의 도와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기를 구한다면,
세 가지에 계탁하지 말고 한 가지 도를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선업 현자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만축자(滿祝子:富樓那)가 추로자에게 말하였다.
“선업 현자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도는 무엇입니까?”
추로자가 말하였다.
“선업 현자께서 설하신 한 가지 도에 대해 저도 묻고 싶습니다.”
선업이 대답하였다.
“어떻습니까?
본래 없는 것[本無] 가운데에서 세 가지의 도를 볼 수 있습니까?”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없는 것에서는 세 가지[三事]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업이말하였다.
“본래 없는 것에서는 한 가지[一事]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본래 없는 것에서는 한 가지 도[一道]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 선업이 말하였다.
“만약 얻을 수 없다면 왜 또다시 응의와 연일각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도(道)는 본래 없음과 다르지 않으며,
본래 없음에 대해 듣고 마음이 게으르지 않으면
반드시 최정각을 증득하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으며 다르지 않느니라[無異].
부처님의 위신력을 지니고 말한다면 그것은 본래 없음과 다르지 않느니라.”
추로자가 여쭈었다.
“어떤 것을 깨닫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상정진도이니라.”
선업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개사는 어떻게 해야 성취하게 됩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을 다 평등하게 보되 자비심을 갖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더하여야 하며
화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마땅히 이와 같이 뜻을 두고 이와 같이 행해야 하느니라.”
■ 15. 불퇴전품(不退轉品)
선업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물러서지 않는 개사 대사는 어떻게 관하기에 그 행(行)과 상(相)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압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정[禪]을 성취하면 움직이지도 않고 동요하지 않으니,
이는 마치 응의지(應儀地)와 같고,
연일각지(緣一覺地)와 같고,
불지(佛地)와 같으니,
본래 없는 것[本無]이 끝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본래 없는 것에 대해 듣는다고 해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느니라.
허공(虛空)은 본래 없는 것이고,
본래 없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본래 없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도 역시 아니라고 말하지 않느니라.
이는 마치 다 듣고 나서 혹 다른 것에 대해 들어도 끝내 의심하여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이는 마치 본래 없다는 것을 세우면 그 말도 진실되어 다시는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범부(凡夫)로서 도에 거스르는 일을 관찰하여
보지 않는 이와 같은 상(相)과 행(行)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 대사(大士)라는 것을 아느니라.
또는 그 모양[形相]이 사문(沙門)이나 범지(梵志)의 면모를 갖추지 않았더라도
이것을 자세히 알고 자세히 보고는
끝끝내 꽃과 향(香)으로 하늘[天]에 베풀어서 예경하지 않으며,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여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 대사라는 것을 아느니라.
또 나쁜 곳에 태어나지 않고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지 않는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 대사라는 것을 아느니라.
또 물러나지 않는 대사는 계를 지키되
그 자신이 살생을 하지 않으며 남으로 하여금 살생하지 않게 하고,
그 자신이 도둑질하지 않으며 남으로 하여금 도둑질하게 하지 않으며,
그 자신이 사음(邪淫)을 하지 않으며 남에게도 사음을 하지 않게 하고,
그 자신이 이간질[兩舌]ㆍ나쁜 말[惡口]ㆍ거짓말[妄言]ㆍ속이는 말[綺語]ㆍ질투(嫉妬)ㆍ분노[恚]ㆍ어리석음[癡]을 저지르지 않아
10계를 모두 스스로 지키며,
또 남에게도 지키고 행하도록 하되 꿈속에서라도 저절로 10계를 지키도록 하여 각각 이와 같음을 보니,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 대사라는 것을 아느니라.
또 모든 법을 배우되
이러한 마음으로 법을 배워서 중생[群生]으로 하여금 안온하게 하고,
경을 설하여 이 경을 지니도록 하고,
분덕(分德)을 받도록 하여 중생들이 삼매[淨定]를 얻어 명도로써
스스로 서도록 서원하는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 대사라는 것을 아느니라.
또 대사(大士)는 깊은 법을 설할 때에
끝끝내 의심하거나 믿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고,
또 두려워하지 않고 부드럽고 아름답다고 말하며,
적게 자거나 누우며,
다니거나 걷거나 나가 있거나 들어와서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니며,
땅을 잘 살피면서 다니며,
이불과 의복을 항상 깨끗하게 하여
이ㆍ서캐ㆍ먼지ㆍ더러움이 없으며,
또 근심도 없고, 몸에 여든 가지의 벌레가 없느니라.
그 이유는 개사 대사가 갖추고 있는 6도(度)의 공덕은
현자나 성인보다 많아서 원만함을 성취하려고 하거나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하려고 높은 뜻을 받았기 때문이니라.”
선업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천중천이시여,
개사 대사의 마음은 어째서 청결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덕을 지을 때마다 전전(展轉)하여 조금씩 많아지기 때문에
마음에 장애가 없어져서 공덕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마음의 청결함은 응의와 연일각보다 더 많으니라.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 대사라는 것을 아느니라.
또 공양을 할 때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모든 것에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깊은 경에 대해 설하되 싫증내거나 알음알이 가운데로 깊이 들어가지 않느니라.
만약 다른 곳에서 다른 경에 대해 듣더라도 명도(明度)를 지니고그것에 대해 설하고,
다른 도(道)는 바른 법이 아니고 명도를 지니는 것이야말로 바른 법이라고 생각하며,
경에서 나오는 모든 법을 다 지녀서 변하지 않는 법이란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세간에 있는 경서(經書)들에 있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이러한 명도를 지님으로써 그것을 풀이해 주는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 대사라는 것을 아느니라.
폐사(弊邪)가 몰래 그곳에 와서 조화를 부려 여덟 가지 큰 지옥을 만들고는
그 속에 있는 모든 개사(闓士)에게 그것을 가리키며,
‘이 사람들은 모두 전생의 부처님 시대에 수기[受決]를 받고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었는데,
지금은 왜 지옥에 떨어졌는가? 부처님이 지옥을 수기로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을 때,
만약 그때 재빨리 후회하여, ‘나는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다시는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 마땅히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혹은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것이 물러나지 않는 지위라는 것을 알게 되니,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 대사라는 것을 아느니라.
폐사가 또 조화를 부려 스승을 만들어 이불과 의복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전에 내가 말한 것을 들었다면 받았던 것은 모두 버려라.
모두 쓸데없는 것들이다.
또한 속히 뉘우쳐서 내 말대로 했는지 낮에 와서 알아볼 것이다.
내 말대로 하지 않겠다면 다시는 오지 말고 이 일에 대해서도 말하지 말라.
듣지 않을 테니까.
전에 말한 것들은 모두 외도가 한 짓[外事]이니, 다시 내 말을 받들라.
내가 한 말은 부처님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듣고 동요하거나 바꾸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과거불 시대에 부처님의 수기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대사(大士)에 올랐어도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있지 못하게 되느니라.
설령 동요하거나 바꾸지 않았을지라도
이 경을 생각하거나 허공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폐사의 말을 믿지 않게 되느니라.
예를 들면 비구가 응의도를 얻으면 폐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눈으로 보고 경으로 증명하는 것은
공(空) 때문에 끝끝내 동요하지 않게 되는데,
이는 마치 응의와 연일각과 같이 법을 생각한다면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 대사가 부처님을 향할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곧바로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있게 되는데,
이것이 지극한 도무극[極度]이니,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 대사라는 것을 아느니라.
폐사가 또 그곳에 와서 다시 조화를 부려 다른 사람을 만들고는,
‘만약 구하려거든 괴로움[苦]을 구하지 부처님의 법을 구하지 말라.
만약 믿고 의지하되 쓰기 어려운 것을 구하거나
혹은 악도(惡道)에서 세간으로 간 지 오래되었는데,
마침 사람이 되는 길을 얻게 되어도 생각하지 말고
이 환난이 싫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어떤 곳에서 다시 이 몸을 찾으려고 하며,
왜 일찌감치 응의도를 취하지 않고
부처님을 구하려고 하느냐?’라고 말했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령 물러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폐사가 그것을 버리게 하고는 다시 방편을 부려
조화로 약간의 개사가 그 끝에 서 있도록 만든 뒤에 앞을 가리키며,
‘만약 이러한 개사를 보고
모두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부처님의 옷과 음식ㆍ와구ㆍ의약을 갖추고 공양하여
법을 받고 지혜를 묻되
행하고 구하는 것을 모두 배우며,
법에 맞게 머물고 법에 맞게 구하여
모두 그 가운데 들어가 이렇게 배운 것을 행하여도
항상 부처를 얻지 못하게 된다면,
그대는 어떻게 그것을 얻으려고 하는가?’라고 말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혹 동요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폐사가 머지않아 조화를 부려 비구의 부류를 만들어서,
‘이 응의는 과거세에 모두 개사의 도를 구하였지만 응의도를 취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부처를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개사 대사는 이와 같은 행을 하였으나,
다른 곳에서 다른 말을 듣더라도
마음이 바뀌지 않고 달라지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그러한 말 가운데에는
삿된 것[邪]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다름이 없어
대명(大明)을 심으려는 의지를 구하는 것이니라.
만약 이런 사람은 설령 부처를 증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말씀에는 잘못이 없고
부처님의 말씀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하며,
이와 같이 구해야 하느니라.
이러한 가르침을 잘 지키되 마음에 동요됨이 없고,
그 마음 가운데 삿됨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니,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느니라.
또 폐사가
‘부처님은 허공과 같아 이 경의 행은 끝이 없으니 도무극[極]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경의 뜻으로 알고 관찰하고 나아가는 것은
모두 비고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느니라.
그 가운데의 수고로움과 괴로움이 있으나 삿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지 못하고
폐사가 이 경을 지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부처를 증득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니라.”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현명한 남자와 여자는 명도를 보면
그 자세한 뜻을 더욱 생각하고 스스로 의론하여,
요사스러운 폐사가 여러 가지 기교로 거슬러 가는 것을 바로 가는 것으로 속여 괴이하게 전하더라도
마치 수미산같이 견고하여 뇌옥(牢獄)으로 떨어지지 않으니,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느니라.
■ 1선(禪)ㆍ2선ㆍ3선ㆍ4선을 짓되
이러한 정(定)은 4선정에 따라 선(禪)을 취하지 않고 짓는 선으로,
이러한 정으로 그 가운데로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물러나지 않는 개사 대사는
정(定)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으며
청정함이 정을 넘어서니,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느니라.
또 모두에게 덕(德)이 있다고 칭송받는 사람은
기쁜 마음이 아니더라도
동요되거나 산란하지 않고 항상 마음을 바르게 하고 있다면,
설령 집에 있을 때라도 음행을 계속 하지 않는다.
만약 어느 때에 크나큰 못이 있는 곳에서 음식을 먹고자 한다면,
도적을 두려워하여 빨리 가려고 마음속으로,
‘언제나 이 큰 못을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부인(婦人)의 오로(惡露)는 깨끗하지 않은 것이며,
나의 법은 깨끗한 법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리니,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시방에 있는 사람들을 안온하게 해 주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하여 그 복이 갖추어지면
명도의 위신력을 얻어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며,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느니라.
또 화이원익(和夷洹翼:金剛手菩薩 또는 執金剛神)이,
다른 귀신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위할 때는
마음에 담은 의지를 잃지 않고 마음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니,
몸에 다친 데가 없게 되고,
6정(情:根)이 잘 갖추어져 성스럽고 웅장하되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여인을 유혹하지 않으며,
만약 주문[呪]과 약(藥)을 의지하더라도 가지 않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음욕이나 더러운 행을 하지 않게 하고,
입을 더럽히지 않게 하며,
법이 아닌 나쁜 생각이 생겨나지 않게 하느니라.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느니라.
또한 선업이여,
어떠한 행을 하기에 물러나지 않는다고 이름하겠느냐?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도를 갖추지 않은 주인,
아첨하는 신하,
노략질을 일삼는 도적,
사람을 해치는 싸움을 일삼는 병사,
법이 아닌 것을 행하는 남자와 여자,
도를 미혹시키는 음탕한 여자,
돈과 곡식과 고기와 술로 지내는 제사,
비단과 향을 태우며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광대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니라.
이들을 가까이하면 바다에 들어가 몸을 던지더라도
영화와 이익을 구하기는 어려우니,
이와 같은 무리들은 끝내 친구로 삼지 않아야 하느니라.
개사는 하는 일마다 일체지(一切智)를 여의지 않고
항상 명망 있는 현자들과 이야기하여 어리석음을 멀리하고
성스러운 것을 가까이하며 존귀하신 삼보(三寶)를 따라 서원하기를,
‘물러나지 않는 개사는 항상 타방에 있는 불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니,
이 높은 서원으로 반드시 왕생극락하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하느니라.
그러므로 항상 부처님을 뵙고 공양을 하되
이와 같이 욕심이 있는 세계[欲處],
색이 있는 세계[色處],
공한 세계[空處]에서 저 불국토로 가서 태어나기를 원하느니라.
개사라는 집[家]에 대명(大明)이라는 사람[卿]이
여덟 가지 바른 도에 대해 말하며,
의전(義典)에 대해 일을 거슬러 주저하지 않으면,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는 먼 변방에 있다 하더라도 성품이 청정하여 법을 범하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상과 행을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느니라.
■ 물러나지 않는 개사는
나는 옳다고도 말하지 않고,
나는 틀리다고 의심하지도 않으며,
의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구항도(溝港道)를 얻고는
그 지위에 대해 조금도 의혹을 일으키지 않으며,
마침 삿된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곧 깨달아 알고
차라리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면,
그 지위에 대해 스스로 의심을 하거나 게으르지 않게 되어
응의나 연일각의 마음이 없어지느니라.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 지위에 안온하게 머무르기 어려우며,
마음에 용맹을 나타내지 않게 되어 뛰어남이 없어지는데,
그 이유는 이와 같이 머무르되 넘어서지 않기 때문이니라.
■ 그렇기 때문에 폐사[邪]가 독을 품고 조화를 부려 부처님의 몸을 만들어서,
‘만약 이것을 취하면 응의도를 증득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만약 그것을 믿는다면 무상정진도와 최정각의 수기를 받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만약 개사의 이러한 상과 행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부처님이 아니고 폐사의 행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느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보고
그것은 자신을 미혹시키려는 폐사의 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령 동요하지 않더라도
이미 과거불 시대에 무상정진도와 최정각의 수기를 받았다는 것을 알면,
그 법에 대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이를 알고 충실하고 바르게 행하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명도의 법을 모두 받고
그것을 모두 수호하고 지니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게으르거나 싫증내지 않으며,
여래와 모든 제자들이 경을 설하실 때에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느니라.
왜냐하면 태어남이 없는 법의 법락(法樂)을 성취하여
그 가운데 이러한 공덕을 세우고 지니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것을 모두 갖추고 있으므로 물러나지 않는 개사 대사라는 것을 아느니라.”
■ 16. 항갈청신녀품(恒竭淸信女品)
선업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물러나지 않는 개사는 명도로부터 큰 공덕을 일으키게 되니,
마땅히 그를 위하여 명도를 설하여 깊은 법으로 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
개사로 하여금 깊은 법으로 들어가도록 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깊고 공한 법인가?
깊어서 생각함이 없으며 원하는 것이 없고 분별이 없으며 생멸이 없는 법이며,
이는 니원(泥洹:열반)을 구경으로 하느니라.”
선업이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니원을 구경으로 하는 것이지,
제법(諸法)을 구경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법은 깊고도 깊은 것이고,
색(色)ㆍ통양(痛痒)1)ㆍ사상(思想)ㆍ생사(生死)ㆍ식(識)은 깊고도 깊은 것이니라.
5음(陰)은 깊고도 깊은 것으로
이는 마치 본래 없는 것[本無]과 같기 때문에 깊고도 깊은 것이니라.”
■ 선업이 말하였다.
“말로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어떻게 없애야 색(色)이 곧 니원이 됩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명도(明度)와 상응하여 이와 같이 머무르되,
마치 명도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과 같이 해야 하느니라.
개사는 이것을 따라 행하고 사유(思惟)하고 하루 동안 생각하되,
마치 꿈속에서와 같이 몇 겁 동안의 나고 죽는 것을 없애는 것을 가르쳐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음욕이 많은 남자가 있는데
여자를 보면 만나고 싶어 하나 여자를 만나는 게 자유스럽지 못하니,
어찌 생각이 더 많이 나지 않겠느냐?”
선업이 말하였다.
“남자는 색(色)에 의지하여
그 얼굴을 보고 어리석은 정(情)을 펼쳐 보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루 동안몇 번이나 생각하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매우 많을 것입니다,
천중천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하루 동안 마음이 여러 번 전전하면서 생각할 것이니라.
개사도 이와 같아서 청정한 행[淨行]을 배우되
하루 동안이라도 악한 일과 죄를 아주 많이 없애고
명도(明度)를 여의게 된다면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겁 동안 보시를 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또 수명(壽命)을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겁과 똑같게 하고,
아울러 앞의 행을 구항ㆍ빈래ㆍ불환ㆍ응의ㆍ연일각에서 부처에 이르도록 행하되,
명도의 행이 그 가운데에서 가르치는 것만큼 얻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모두 그 행보다 못한 것이 되어
그러한 행 안에서 개사를 가르치는 것과 같게 되느니라.
또한 수명에다가 보시와 지계를 앞에서와 같이 갖추어
명도를 구하고 경을 설하려는 생각을 일으키면
그 덕이 위의 것보다 더 뛰어나며,
경을 보시하고 무상정진도를 지어 스스로 깊은 가르침 속으로 들어가면 그 덕은 더 높아질 것이며,
스스로 깊은 가르침 속으로 들어가서 명도를 수호하되 항상 여의지 않으면
그 덕이 더욱더 많아지느니라.”
선업이 여쭈었다.
“천중천이시여,
아는 것[識]과 집착하는 것[著]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의 공덕이 더 많습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개사가 명도를 알고 나서 명도를 구하되
존재하지 않음을 좋아하고,
다하여 없어지는 것을 좋아하며,
항상 생각함이 없는 것을 좋아하면,
명도를 여의지 않게 되어
셀 수 없고 칭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數)의 덕을 얻게 되느니라.”
선업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셀 수 없는 수[不可計]에다가 또 칭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이 다릅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칭량할 수 없이 많은 수란 그 숫자가 끝없이 많다는 것이고,
셀 수 없다는 것은 그 양이 한 없다는 뜻이니라.
그러므로 셀 수 없고 칭량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 것이니라.”
선업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셀 수 없는 5음(陰)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은 것과 같은 이유 때문에 5음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니라.”
선업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셀 수 없다[無量]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공한 가운데 세는 것[計]이므로 이러한 법을 셀 수 없다[不可計]고 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업이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내가 일찍이 모든 법은 공하다고 말하였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천중천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법은 다 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모든 법은 다 공하며 셀 수 없느니라.
경(經)의 지혜도 그것과 다른 부류는 아니지만
여래께서는 단지 분별하여 따로 따로 설하셨을 뿐이다.
끝을 셀 수 있지 않으므로 공한 것[空]이고,
상(想)이며, 발원[願]이고 식(識)이며 멸도(滅度)이다.
여래께서는 기뻐하는 데에 따라
이와 같이 설하시고 보여주시며 교화한다.”
선업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말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천중천이시여,
경은 본래 공한 것인데,
어째서 공한 가운데서 또 경을 설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경은 성취할 수 없으며,
제가 아는 것과 같이 부처님과 제법(諸法)은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제법은 성취할 수 없으며
법은 공한 것이니라.
부처가 설한 것은 본래 성취할 수 없는데
풀이하기를 원해도 성취할 수 없는 지혜에는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있겠느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없느니라.”
선업이 말하였다.
“성취할 수 없는 지혜는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
6도무극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그것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왜 개사는 무상정진도에 가까이 가서 정각(正覺)을 얻습니까?
설혹 줄어들지 않는 것이라면 개사가 명도를 구하고
변모명혜(變謀明慧)를 지키며
보시를 생각하지 않고,
늘어나거나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다만 보시도무극(布施度無極)이라고 할 따름입니다.
베푸는 것으로 이러한 공덕을 생각하고 지녀서 무상정진도를 짓는 것이며,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도 모두 이와 같습니다.
개사는 명도를 구하고 그것을 지키며,
변모명혜를 얻되 이러한 생각을 짓지 않으며,
늘거나 주는 것은 모두 이름뿐입니다.
저는 생각하고 발심하기를 무상정진도와 같이 하며 이와 같이 베풀었습니다.
어째서 무상정진도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래 없기[本無] 때문이니라.
본래 없는 것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항상 이러한 생각을 따라 여의지 않고 가까워지느니라.”
선업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개사는 처음 내는 마음으로 무상정진도에 가까워집니까,
나중의 마음으로 가까워집니까?
이 두 가지 마음이 아니라면
어떤 공덕으로 태어나고 자라게 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등불이 타고 있을 때
처음 내는 불로 밝아지느냐?
나중의 불로 밝아지느냐?”
선업이 말하였다.
“처음 내는 불로 밝아지는 것이 아니나,
또한 처음 내는 불을 여의지도 않습니다.
나중의 불로 밝아지는 것도 아니나,
또한 나중의 불을 여의지도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이와 같이 처음 내는 마음으로 무상정진도를 얻는 것은 아니나,
또한 처음 낸 마음을 여의지 않고,
나중의 마음으로 무상정진도를 얻는 것은 아니나
또한 나중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니,
이것을 정각을 얻는 것이라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음은 앞으로 가면서 없어졌다가
나중에 다시 생기는 것이냐?”
선업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음이 처음에 생기면 없어질 수 있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없어진 것이 없어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래 없음에 머무를 수 있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본래 없음에 머무르려면 마땅히 본래 없음에 머물러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령 본래 없음 가운데 머문다 하더라도 오래도록 견고하게 머물 수 있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본래 없음은 깊고도 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래 없는 것에 어떻게 마음이 있겠느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래 없음을 여의었는데 어떻게 마음이 있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래 없음을 볼 수 있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볼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구하는 것이 깊이 구하는 것이겠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이와 같이 구하되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을 알되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개사 대사는 명도를 구하되 어떠한 것을 구하느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공(空)을 구합니다.
공을 구한다면 어떤 것을 구하는 것이냐?”
무상(無想)을 구하는 것입니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각은 없어지는 것이냐?”
선업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생각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냐?”
선업이 말하였다.
“개사는 이와 같이 구하되 망령되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중천이시여,
왜냐하면 개사는 생각이 모두 없어지는 것을 구하며,
이렇게 하면 곧 응의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개사의 변모명혜(變謀明慧)는 생각을 없애서 증득하는 것이 아니고,
무상(無想)을 향해 그것에 따라 가르치는 것입니다.”
추로자가 선업에게 말하였다.
■ “세 가지 일[三事]에 있어서 정(定)을 향하고 정의 문을 지키는 것인데,
세 가지 일이란 공(空)ㆍ불원(不願)ㆍ무상(無想)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명도에 대해 이로움 있으며,
단지 낮에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밤에 꾸는 꿈에도 역시 이로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낮이든 밤의 꿈속에서든 부처님의 말씀은 다르지 않고 똑같기 때문입니다.”
선업이 추로자에게 말하였다.
“만약 개사가 낮에도 이익이 있다면,
밤중의 꿈속에서도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또 묻겠습니다.
“꿈속에서 생긴 일을 어찌 얻는 바가 있지 않겠습니까?
경(經)의 경우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
선업이 말하였다.
“꿈속에서 선(善)을 행하여 기뻐하면 이익이 있고,
악을 행하여 화를 내고 근심하면 이익이 감소할 것입니다.
설사 꿈속에서 사람을 죽였을 때
그것을 알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업이 말하였다.
“마음속으로 괴롭지 않더라도 그것에는 대상[所緣]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듣거나 혹 생각하는 것이 인(因)과 연(緣)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사람의 마음에 집착이 있게 되는 것이며,
혹 집착이 없다면 망념[妄]이 없는 것이니,
그것에도 모두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추로자가 말하였다.
“지어지는 것들은 공한데,
어찌 마음에 대상이 있게 됩니까?”
선업이 말하였다.
“마음속에서 인(因)과 연(緣)을 생각하게 되니,
인과 연이 곧 일어나는 것입니다.”
추로자가 말하였다.
“개사는 꿈속에서 보시(布施)를 하여
이러한 베풂[施與]을 지님으로써 무상정진도를 짓는다면
베푼 것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선업이 대답하였다.
“미륵(彌勒) 개사는
부처님 가까이에서 아침ㆍ저녁으로 부처님을 보좌하시니
그대가 알고 싶으면 여쭈어 보십시오.”
추로자가 미륵에게 여쭈었다.
■ 미륵이 말하였다.
“내 명호가 미륵이듯이 색(色)은 지혜로 풀어야 합니다.
통양(痛痒)ㆍ사상(思想)ㆍ생사(生死)ㆍ식(識)은 지혜로 풀어야 합니다.
이러한 몸[身]의 풀이를 지니되,
만약 5음을 공(空)과 같다고 풀이한다면
5음은 공하나 힘이 없게 되니,
마땅히 풀어지게 되는 법을 보지 말아야 하고,
또 풀어지는 사람이 얻는 도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추로자가 말하였다.
“말씀하신 것을 증득하셨습니까?”
미륵이 대답하였다.
“내가 말한 것을 증득하지 않았습니다.”
추로자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미륵께서는 깊고도 깊은 지혜에 들어가 계시는구나.
그 이유는 명도(明度)를 행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응의도를 지었느냐?”
추로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천중천이시여.”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개사가 그와 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수기[受決]를 주느니라.
이러한 법이 만약 법에 대하여 그 가운데에서 정각(正覺)을 얻었든지 정각을 얻지 못하였든지 이와 같이 행하며,
명도를 구하되 정각을 얻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러한 법의 가르침을 따르면,
용감하여 두려움이 없어져서 호랑이나 이리가 있는 곳에 가더라도
‘나를 잡아먹겠다면 내 몸을 마땅히 네게 보시하리라’고 생각하여
보시 도무극(布施度無極)을 행한다면 무상정진도에 가까워지게 되느니라.
내가 부처가 되기를 원할 때에 나의 국토에 있게 되면 사나운 짐승이 있지 않게 될 것이고,
설혹 길에서 도적을 만나서 죽게 되었을 때라도 마음속으로,
‘내 몸을 원하면 마땅히 바치리라.
설사 나를 죽이더라도 절대로 화를 내거나 미워하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하면,
인욕 도무극(忍辱度無極)을 행하게 되어 불도(佛道)에 가까워지게 되느니라.
내가 부처가 되었을 때에 나의 국토에 도적이 없게 될 것이고,
마실 물이 없는 곳에 가게 되더라도 마음속으로 생각하여,
‘백성들에게 덕(德)이 없으므로 이렇게 해 주어야겠다’라고 말하느니라.
내가 부처가 되었을 때에 내 국토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일체지(一切知)의 여덟 가지 맛[八味]을 얻게 하여 모두들 정진(精進)하게 하니,
곡식이 귀한 곳에 가게 되더라도 정진하여 부처님의 도를 취하리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부처가 되었을 때 나의 국토 가운데 곡식이 부족한 곳이 없게 하고,
사람들이 원하고 찾는 음식을 그 앞에 갖추도록 하여서
마치 도리천( 利天)에 있는 것과 같도록 하리라’고 발원하는데,
이는 중생으로 인하여 정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악행이 성한 때에 몸에 재난을 당해 악행이 성한 때에 죽게 되더라도
나의 마음은 다름이 없으니,
폐사의 권속[官屬]을 항복시키고 정진을 행하여 불도를 찾느니라.
내가 부처를 지었을 때에 나의 국토에 있는 사람이 악행이 성하여 죽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내가 한 말은 나중에 부처가 되었을 때와 다름이 없느니라.
또한 추로자여,
개사는 이것을 듣고 나면 곧 무상정진도를 염원하거나,
혹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부처님의 도를 얻는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본제(本際)2)에 의해 내내 한 가지 뜻을 품고 염원하느니라.
왜냐하면 본제가 없으면 부처를 얻게 되어 마음이 안온해지고 두려움이 없어지기 때문이니라.”
■ 이때 어떤 청신녀(淸信女)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가서 예배를 올리고는 단정하게 꿇어앉아서 말하였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니,
두려움을 제거한자리에서 반드시 불도(佛道)를 찾아 부처가 되어 이 경(經)을 설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시자 입에서 금빛 광명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청신녀는 곧 금빛이 나는 꽃을 부처님께 뿌려드렸는데,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인해 그 꽃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아난(阿難)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를 정돈하고
부처님 앞에 가서 예배를 올리고는 단정하게 꿇어앉아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헛되이 웃으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웃으시니 그 이유를 말씀을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아난아,
이 항갈(恒竭) 청신녀는
나중에 성수(星宿)라는 겁의 시대가 오면 부처가 될 것이며,
그 부처의 명호는 금화(金花)라고 할 것이니라.
이 청신녀는 나중에 여자의 몸을 버리고 남자가 될 것이며,
반드시 화냄이 없는 불국토[無怒佛刹]에 태어나고,
그 태어나는 국토마다 불국토를 맞게 되는데,
이는 마치 금륜성왕(金輪聖王)이 보시는 것마다 그것에 머물게 되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발을 땅에 대지 않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이 청신녀는 이와 같이 하나의 불국토에서 다른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항상 부처님을 뵙게 될 것이며,
발을 땅에 대지 않고 스스로 부처가 될 것이니라.”
아난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무노불찰(無怒佛刹)에는 개사(闓士)들이 모여 있으며,
부처님이 모여 있으실까?’
부처님께서 곧 아난의 생각을 아시고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 생사를 이미 뛰어넘었느니라.
청신녀는 나중에 금화불(金花佛)이라는 부처가 되고,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응의(應儀)를 제도하여 3독(毒)을 모두 없애게 될 것이며,
그 불국토는 사나운 짐승이나 도적,
물과 곡식과 병액이 없는 곳이며,
어떤 나쁜 일이든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니라.”
아난이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청신녀는 어떤 부처님께 공덕을 지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정광불(定光佛)께 공덕을 지었으며,
처음 내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빌었느니라.
그때에도 역시 금빛 나는 꽃을 부처님께 뿌려 드렸으며,
이러한 공덕을 지니고 베풀기를 발원하여 무상정진도를 지었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다섯 가지 꽃을 정광불 위에 뿌려드려
곧 태어남이 없는 법락(法樂)을 성취하였으며,
부처님께서 나에게 나중에 91겁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석가모니[釋迦文]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수기를 주신 것과 같으니라.
이 청신녀는 그때에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나는 반드시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무상정진도를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였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청신녀는 바라던 대로 이루었습니다.”
■ 17. 수공품(守空品)
선업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개사 대사가 명도무극을 행할 때
어떻게 공(空)에 들어가서 공정(空定)을 행할 수 있습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색(色)ㆍ통양(痛痒)ㆍ사상(思想)이 공하고,
사(死)와 식(識)이 공하다고 관찰해야 하니,
한마음으로 이와 같이 관찰하되 법을 보지 않느니라.
법에 대하여 증득하지 않느니라.”
■ 부처님께서 공에서 증득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개사가 정(定)에 들어서 그 가운데서 증득하지 않습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개사는 생각이 모두 공하기 때문에 증득하지 않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관찰하되 취하여 증득하지 않는데
관찰하여 들어간 자리에서 비로소 욕(欲)으로 향하게 되며,
이때 취하여 증득하지 않고
정(定)의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집착하여 잃게 되지 않느니라.
개사는 법이 본래 없음에서
중도를 취하여 증득하느니라.
왜냐하면 본원력으로써 중생을 수호하여
널리 자비로운 생각을 일으켜서 공덕을 갖추되,
그 가운데 서서 취하거나 증득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개사 대사는 명도(明度)를 얻어 증득하고 성취한 공덕이 큰 힘이 되니,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용감하여 능히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것과 같아서,
그 사람은 단정하고 용감하여 어떤 병법이든 못하는 것이 없으며,
예순네 가지의 기이한 병법을 모두 갖추었으며,
그 기술을 잘 알고 닦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가는 곳마다 그 힘을 얻지 못하는 곳이 없으며,
이렇게 얻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마음에 기뻐하였느니라.
만약 다른 일로 부모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아주 위험한 길을 지나가게 된다면,
그 사람은 가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어려움을 면하게 해 주겠다’고 말하며,
비록 많은 적(敵)들이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온갖 병술로써 친척들을 위험으로부터 구제하여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니라.
그리하여 종문(宗門)이 편안하고 원한이 없으며,
또 좋지 않은 일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 사람은 기교와 변술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니라.
그 사람은 용감함과 지혜로 변술을 부릴 수 있어
변술로 병사를 만들어 원수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며
각기 흩어져 도망가게 하니,
그 고장에서 그의 덕을 칭송하며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되느니라.
■ 이러한 개사 대사는
중생에 대하여 큰 자비의 마음을 행하여
응의(應儀)를 벗어나고 연일각(緣一覺)의 지위를 버려서
정(定) 가운데에 세우되,
모든 중생에 대하여 가엾은 마음으로 보지 않고,
그 가운데서 취하여 증득하지 않으며,
공(空)으로 들어가 응의(應儀)가 되지 않고,
정(定)을 행하여 니원문(泥洹門)을 향하게 하느니라.
상(想)을 가지고 있지 않고
공(空)에 들어가지 않음을 취하고 증득하는 것이
마치 새가 허공을 날아갈 때 부딪치거나 걸리는 것이 없는 것과 같으며,
이와 같이 행해야 비로소 공을 향해 가되 공에 이를 수 있고,
무상(無想)을 향해 가되 무상에 이를 수 있으며,
결국 공과 무상에 떨어지지 않게 되어,
바라는 대로 부처님의 모든 법을 갖출 수 있게 되느니라.
예를 들면 활을 쏘는 사수가 허공을 향해 화살을 쏘면
뒤의 화살이 앞의 화살의 자리로 오게 되고,
계속해서 뒤에 오는 화살이 전전하여 앞의 화살의 자리로 오게 되어,
나중에는 화살이 그 사람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떨어지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 이와 같이 명도를 행하고 변모명혜를 수호한다면,
그가 살고 있는 국토에서 스스로 중도를 취하여 증득하여
두 가지 도의 행3)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이러한 공덕으로 무상정진도를 성취하여 원만함을 이루니,
곧 부처를 이루게 되며,
경의 근본에 대해 그것을 관하되 취하여 집착하지 않느니라.”
선업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괴로움[苦]을 싫어하여 이와 같이 수행하되 중도를 취하여 집착하지 않습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정(定)을 수호하되 멸도문(滅度門)을 향해 가서
마음으로 분별을 생각하느니라.
어떤 것이 분별인가?
수공정분별(守空定分別)과 무상정분별(無想定分別)이니라.
■ 변모명혜를 수호하되 중도를 취하여 증득하지 않느니라.
왜 변모명혜를 수호하는가?
마음에 중생을 수호하려는 생각을 일으켜 이러한 생각을 지니되
중도를 취하여 증득하지 않느니라.
또한 괴로움을 관하고 공정(空定)에 깊이 들어가
멸도문을 향해 가기 때문에
분별하여 오래도록 사람들의 인연(因緣)을 생각하되,
그 속에서 무상정진도를 구하여 경을 설하느니라.
이러한 인연을 버리게 해야 하며,
수공정(守空定)ㆍ무상정(無想定)ㆍ무원정(無願定)이 멸도문을 향해 가서
중도를 취하여 증득하지 않느니라.
또한 개사는 오래도록 생각하되
‘중생들이 항상 있다는 생각[有想],
내가 있다는 생각[有我想],
좋은 것이 있다는 생각[有好想]을 따로따로 구하며,
나는 무상정진도를 지었다’고 하면,
그때 어떤 사람에게든 경을 설하여 주어
이러한 모든 상(想)이 끊어지도록 해 주면
모두 끊어짐을 구하게 되느니라.
어떻게 끊어야
항상된 것[常]은 항상되지 않은 것[非常]이 되고,
즐거움[樂]은 모두 괴로운 것[苦]이 되며,
몸[身]은 몸이 아닌 것[非身]이 되고,
아름다운 것[好]은 매우 추한 것[醜]이 되는가?
개사는 변모명혜를 생각하되
무원정(無願定)을 수호하며,
멸도문을 향해 가서 중도를 취하여 증득하지 않느니라.
만약 개사 대사가 마음속으로,
‘중생은 오래전부터 인연(因緣)을 구하고 상(想)을 구하며 바라는 것[欲]을 구하고
모인 것이라는 생각[聚想]을 구하며
공한 생각[空想]을 구한다’고 생각하여,
‘나는 중생들로 하여금 이러한 생각을 없게 해서
자비가 널리 펼쳐지도록 해서
변모명혜를 얻도록 해 주겠다’고 하느니라.
■ 이러한 법은 공(空)ㆍ상(想)ㆍ원(願)ㆍ식(識)ㆍ태어남이 없음[無所從生]의 한계[齊限]를 관하되,
중도를 취하여 증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 개사는 어떻게 명도를 구하는가?
알고 익히는 법 가운데 마음이 어떻게 반연하는가?
수공정(守空定)에 들어가기를 구하여 멸도문을 향해 간다면,
이러한 개사는 지혜를 얻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수공념(守空念)ㆍ무상념[無想]ㆍ무원념[無願]ㆍ무식념[無識]ㆍ무소종생념(無所從生念)의 정(定)의 마음을 수호하는 것이니라.
묻는 사람이 있을 때
곧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지니고서 풀이해 준다면
물러나지 않는 개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데 무엇 때문에 물러나지 않는 개사는
헤아릴 수 없는 무앙수(無央數)의 마음에 대해 모두 알고 있겠느냐?
이와 같이 행하되,
안다는 생각[知]을 갖추지 않으면
물러나지 않는 명도를 얻을 수 없게 되느니라.”
선업이 말하였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개사의 도를 구하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아는 사람은 수기를 받게 되며,
공덕 가운데 지극히 뛰어나 법을 알게 되는데,
이러한 것을 응의(應儀)ㆍ연일각(緣一覺)ㆍ
모든 천ㆍ인(天人)ㆍ귀신(鬼神)ㆍ용(龍)ㆍ질량신(質諒神)은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니라.”
--------
1 팔리어 vedana를 의역한 것으로,
감수(感受)ㆍ감각(感覺)ㆍ수(受)라고 번역하고 있다.
12인연 중 일곱 번째인 수(受)에 해당한다.
2 진여ㆍ열반의 별칭이다.
3 응의(應儀)와 연일각(緣一覺)의 도를 말한다.
○ [pt op tr]
◈Lab value 불기2564/0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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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정보 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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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대명도경_K0009_T0225.txt ☞제4권 sfd8--불교단상_2564_01.txt ☞◆vcuc1828 불기2564-01-13 θθ |
보조자료
03fl--nirvana\r20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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