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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진리와실천
불기2558-01-01_변중변론송_001 본문
『변중변론송』
K0599
T1601
변중변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변중변론송_K0599_T1601 핵심요약
♣0599-001♧
『변중변론송』
변중변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변중변론송
○ [pt op tr]
변중변론송(辯中邊論頌)★★
미륵보살(彌勒菩薩) 지음
현장(玄奘) 한역
송성수 번역
■ 1. 변상품(辯相品)
■ 다만 모양[相]과 장애[障]와 진실함[眞實]과
모든 다스림을 닦음[修對治]이다
곧 이 닦음의 나누어진 위치[修分位]와
과위를 얻음[得果]과 무상승(無上乘)만이 있다
허망한 분별은 있고
이것에 두 가지는 도무지 없으며
이 안에는 ≺공≻이 있을 뿐이요
그것에도 역시 이것만이 있다
그러므로 온갖 법은
≺공≻이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라고 말하나니
있음[有]과 없음[無]과 및 있음[有] 때문에
이는 곧 중도(中道)에 꼭 들어맞는다
의식[識]이 나서 변하여
뜻[義]ㆍ유정(有情)ㆍ≺나≻[我]와 알음[了]과 비슷하되
이 대경[境]은 실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대경이 없는지라 의식도 없다
허망한 분별의 성품은
이 뜻으로 말미암아 서로 있음[實有]도
전혀 없음[全無]도 아님을 이룩하게 되나니
사라져서 해탈(解脫)한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오직 제나름 분별[遍計所執性]과 새로 의지성[依他起性]과
두루 진실성[圓成實性]만은
대경[境]이기 때문이요 분별(分別)이기 때문이니
두 가지가 ≺공≻하기 때문에 말한다
의식[識]은 얻는 바[所得]가 있는 데에 의지하고
대경은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기며
대경은 얻는 바가 없는 데에 의지하고
의식은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긴다
의식의 얻음이 있는 성품[有得性]도
얻는 바가 없음[無所得]을 이루므로 말미암아
그러므로 두 가지의 얻음이 있음[有得]은
얻음이 없는 성품[無得性]과 평등한 줄 알아라
세 가지 세계[三界]의 심, 심소[心心所]는
이야말로 허망한 분별인 것이니
대경을 아는 것만을 임자 마음이라고 하고
또한 차별하는 것을 딸린 마음이라 한다
첫째를 곧 연식(緣識)이라고 하고
둘째를 받는 이[受者]라고 하나니
이 가운데서 능히 수용(受用)하고
분별하여 추리함[推]은 딸린 마음이다
가려 막음[覆障]과 편히 세움[安立]과
거느려 인도함[將導]과 포섭함[攝]과 원만함[圓滿]이며
세 가지 분별[三分別]과 받아 씀[受用]과
끌어 일으킴[引起]과 연달아 맴[連縛]이며
앞에 나타남[現前]과 괴로움의 결과[苦果] 때문에
이것만이 세간을 괴롭히나니
세[三]과 둘[二]과 일곱[七]의 섞여 더러움[雜染]은
허망한 분별로 말미암아서이다
모든 모양[相諸] 및 다른 문[異門]과
뜻[義]과 차별(差別)과 성립(成立)은
두 가지가 ≺공≻한 성품인 줄 알지니
간략히 말하면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가 없고[無二]없음이 있기[有無]때문이요
있음[有]도 아니고 없음[無]도 아니며
다름[異]도 아니고 또한 동일함[一]도 아니니
이것을 말하여 ≺공≻한 모양이라고 한다
■ ≺공≻의 다른 문을 간략히 말하자면 진여(眞如)와 실제(實際)와
모양 없음[無相]과 뛰어난 이치의 성품[勝義性]과
법계(法界) 따위인 줄 알아야 하리라
변함이 없음[無邊]과 뒤바뀜이 없음[無倒]과
모양의 사라짐[相滅]과 거룩한 지혜의 경계[聖智境]와
모든 거룩한 법의 원인[聖法因]으로 말미암아서이니
다른 문의 뜻은 다음과 같으니라
이것은 섞여 더러움[雜染]과 맑고 깨끗하여[淸淨]
때 있음[有垢]과 때 없음[無垢]으로 말미암아서이니
마치 물 경계[水界]와 온전한 허공[空]처럼
깨끗하므로 인정하여 깨끗함[淨]이라고 한다
능히 먹음[能食]과 먹을 바[所食]와
능히 이것을 봄[能見此]과 그대로의 이치[如理]는
구하는 바 두 가지 깨끗함의 ≺공≻[二淨空]이며
언제나 유정들을 이롭게 하기를 위하고
나고 죽음[生死]을 버리지 않기를 위하고
착함[善]의 다함이 없기를 위하여
그 때문에 이를 살피어 ≺공≻으로 삼는다
종성(種性)의 맑고 깨끗함을 위하고
모든 좋은 모습[相好]를 얻기 위하고
모든 부처님 법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그 때문에 보살은 ≺공≻임을 살핀다
보특가라[補特伽羅]와 법(法)의
실제 성품[實性]은 다 같이 있음[有]이 아니며
이 없는 성품[無性]이 있는 성품[有性]이므로
두 가지의 ≺공≻[二空]을 세운다
이것이 만약 섞여 더러움이 없다면
온갖 것은 저절로 해탈되어야 하고
이것이 만약 맑고 깨끗함이 없다면
하욤[功用]은 결과가 없어야 하리
더러움[染]도 아니고 더럽지 않음[不染]도 아니며
깨끗함[淨]도 아니고 깨끗하지 않음[不淨]도 아니니
마음의 성품[心性]은 본래 깨끗하지마는
손티[客塵]로 말미암아 더럽게 된다
■ 2. 변장품(變障品)
전체 부분[具分]과 한 부분[一分]과
더욱 왕성함[增盛]과
나고 죽음에 있어서 가지거나 버림[取捨]은
두 가지 종성(種性)을 장애한다고 말한다
아홉 가지 번뇌의 모양[煩惱相]이라 함은
사랑함[愛] 따위의 아홉 가지 맺음[口結]이니
첫째와 둘째는 싫어함[厭]과 버림[捨]을 장애하고
나머지의 일곱은 참된 소견[眞見]을 장애한다
말하자면 몸에 대한 소견[身見]과 그의 일[事]과
사라짐[滅]과 도(道)와 보배[寶]와
이끗 공경함[利養恭敬] 따위와 멀리 여읨[遠離]과의
두루 앎[徧智]을 장애하기 때문이니라
행을 더함이 없음[無加行]과 그릇된 곳[非處]과
이치답지 않음[不如理]과 내지 않음[不生]과
바른 생각[正思惟]을 일으키지 아니함과
양식[資糧]이 아직 원만하지 못함이며
종성(種性)과 착한 벗[善友]과를 궐(闕)함과
마음이 극히 고달프고 싫증나는 성품과
바른 행[正行]을 궐함과
비루하고 나쁜 이와 함께 사는 것이며
뒤바뀐 거칠고 무거움[倒麤重]과 셋의 나머지와
반야(般若)가 아직 성숙되지 못함과
본래 성품[本性]의 거칠고 무거움과
게으름[怠惰]과 방일(放逸)과의 성품이며
존재[有]에 집착함과 재물[資材]에 집착함과
마음 성품의 낮고 열등함과
믿지 않음[不信]과 훌륭한 알음[勝解]이며
법을 가벼이 하고 명리[名利]를 중히 여김과
유정에게 가엾이 여김이 없음과
들음이 모자람[匱聞]과 들음이 적음[少聞]과
미묘한 선정[妙定]을 닦고 다스리지 않음이다
착함[善]과 보리(菩提)와 섭수함[攝愛]과
지혜 있음[有慧]과 어지러움[亂]도 장애도 없음과
회향함[廻向]과 두려움[怖]도 아낌[慳]도 아님과
자재함[自在]을 착함 따위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은 착함 따위의 열 가지 것은
각각 앞의 세 가지씩 장애를 보유하며
깨달음 장래[覺分]와 건넘[度]과 자리[他]에선
따로[別]의 장애가 있는 줄 알지니라
일에 있어 잘하고 교묘하지 않음과
게으름과 선정에 둘을 줄게 함[定滅二]과
심지 아니함과 파괴하고 열등한 성품[嬴劣性]과
소견[見]과 거칠고 무거움[麤重]과의 허물이다
부귀(富貴)와 착한 갈래[善趣]와
모든 유정들을 버리지 아니함과
허물[失]과 덕(德)에 있어 줄어짐과 불음[減增]과
나아가 들게 함[趣入]과 해탈을 장애함과
보시[施] 따위의 모든 선행과
그지없음[無盡]과 끊임없음[無間]과
할 일을 잘 결정함[所作善決定]과
법을 수용하여 성숙케 함을 장애함이다
두루한 행[徧行]과 가장 훌륭함[最勝]과
훌륭한 종류[勝流]와 포섭함이 없음[無攝]과
서로 잇달아서 차별이 없음[相續無差別]과
섞여 더러움도 맑고 깨끗함도 없음이며
가지가지 법의 차별이 없음[種種法無別]과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함[不增不滅]과
아울러 분별함이 없는 따위의
네 가지 자재함의 의지[四自在依]의 이치니라
이 열 가지 법계[十法界]에서는
물들지 아니하는 무명[不染無明]이것이
10지의 공덕을 장애함이 있는지라
그러므로 열 가지 장애[十障]라고 하느니라
■ 이미 모든 번뇌장(煩惱障)과
모든 소지장(所知障)을 설명하였나니
이 두 가지가 다하였기 때문에
온갖 장애[一切障]는 해탈되었다 하리라
■ 3. 변진실품(辯眞實品)
진실함[眞實]은 열 가지가 있을 뿐이니
근본(根本)과 모양[相]과
뒤바뀜이 없음[無顚倒]과 인과(因果)와
굵고 가늘음[麤細]의 진실함이며
지극하게 이루짐[極成]과 깨끗함으로 행하는 바[淨所行]와
받아들임[攝受]과 차별(差別)과
열 가지 교묘함[十善巧]의 진실함이니
다 ≺나≻라는 소견[我見]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세 가지의 제 성품[三自性]에 있어서
하나만은 언제나 있음이 아님[非有]이고
하나는 있음[有]이면서 진실함이 아니며
하나는 있음[有]ㆍ없음[無]이면서 진실함이다
법(法)과 보특가라[數取趣]와
취할 바[所取]와 능히 취하는 것[能取]과
있음과 있음이 아닌 성품[有非有性] 중에는
더 늘음[增益]과 줄어짐[損滅]의 소견이 있다
이를 알기 때문에 바꾸지 아니하면
이것을 진실한 모양[眞實相]이라고 하며
성품 없음[無性]과 나고 없어짐[生滅]과
때 끼고 깨끗함[垢淨]이 셋의 무상함이다
취할 바[所取]와 일 모양[事相]과
어울려 합함[和合]이 괴로움의 세 가지[苦三種]며
≺공≻함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나니
없음[無]과 다름[異]과 각자[自]의 성품이다
모양이 없음[無相]과 모양이 다름[異相]과
제만의 모양[自相]이 셋의 ≺나≻ 없음이며
다음과 같이 네 번의 세 가지는
근본의 진실함에 의지함인 것이다
괴로움의 세 모양[苦三相]은 이미 설명하였고
쌓임[集]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나니
습기(習氣)와 등기(等起)와
모양의 매임을 여의지 못함[未離繫]이다★★
제 성품[自性]과 두 가지의 나지 않음[不生]과
때와 고요함[垢寂]의 둘은 셋의 사라짐[滅]이며
두루 앎[遍知]과 영원히 끊음[永斷]과
증득함[證得]은 세 가지 도의 진리[道諦]이다
알아야 하리니 세속의 진리[世俗諦]는
차별하자면 세 가지가 있어서
거짓[假]과 행함[行]과 나타나 앎[顯了]이니
차례대로 세 가지의 근본(根本)에 의한다
■ 으뜸가는 진리[勝義諦]에도 세 가지가 있어서
뜻[義]과 얻음[得]과 바른 행[正行]이니
근본의 하나에 의한 변함이 없음[無變]과
뒤바뀜이 없음[無倒]의 둘은 두루 진실[圓實]이다
■ 세간이 지극하게 이뤄짐[世極成]은 첫째에 의하고
도리가 지극하게 이뤄짐[理極成]은 셋째에 의하여
깨끗함으로 행하는 바[淨所行]에 두 가지 있나니
하나의 두루 진실성[圓成實]에 의하느니라
이름[名]은 제나름 분별성[遍計所執]이고
모양[相]과 분별(分別)은 서로 의지성[依他起]이며
진여(眞如) 및 바른 지혜[正智]는
두루 진실성의 소속이니라
헤맴[流轉]과 편히 세움[安立]과
삿된 행[邪行]은 처음과 둘째에 의하고
실제 모양[實相]과 오직 의식[唯識]과 깨끗함[淨]과
바른 행[正行]은 뒤의 하나에 의한다
쌓임[蘊] 등에 있어서 ≺나≻라는 소견[我見]은
하나[一]와 원인[因]과 받는 것[受者]과
짓는 것[作者]과 자재로이 바꿈[自在轉]과
더 위가는 이치[增上義]와 항상 함[常]이며
섞여 더러우며 맑고 깨끗함의 의지[雜染淸淨依]와
관(觀)과 묶고 푸는 것의 성품[縛解者性]을 집착하며
이 집착할 바[所執]와 분별(分別)과
법의 성품[法性]의 이치가 거기에 있다
하나가 아님[非一]과 묶어 간략히 함[總略]과
나눈 대문[分段]의 이치를 쌓임이라 하며
능히 취함[能取]과 취할 바[所取]와
저 취함[取]의 종자(種子)의 이치를 경계[界]라 한다
능히 받음[能受]과 알 바 대경[所了境]과의
받아 쓰는 문[受用門]의 이치를 처소라 하며
연기(緣起)의 이치는 원인[因]과
결과[果]와 작용[用]에서 더하고 덜함이 없음이다
사랑스럽지 않음[非愛]과 사랑스러움[愛]과 깨끗함[淨]과
함께 남[俱生]과 훌륭한 임금[勝主]과
얻음[得]과 행함[行]에 자재(自在)하지 아니함이
도리에 계합하고 못함[處非處]의 이치이다
뿌리는 취함[取]과 머무름[住]과 이어짐[續]과
씀[用]과 두 가지 깨끗함[二淨]에서 더함[增上]이며
원인[因]ㆍ결과[果]와 이미[已]ㆍ아직[未]의 수용은
바로 세상[世]의 이치인 줄 알라
느낌[受]과 느낌의 양식[受資糧]과
저 원인하는 바의 모든 행[所因諸行]과
두 가지 고요히 사라짐[二寂滅]과 다스림[對治]은
이는 진리[諦]의 이치인 줄 알라
공덕(公德)과 허물[過失]과
분별이 없는 지혜[無分別智]로 말미암아
다른 이에 의하거나 스스로가 벗어남[出離]은
이는 승[乘]의 이치인 줄 알아야 한다
함이 있고 함이 없는[有爲無爲]이치라 함은
거짓[假]이거나 원인[因]이거나
모양[相]이거나 고요함[寂靜]이거나
또는 저 살필 바[所觀]의 이치이니라
■ 4. 변수대치품(辯修對治品)
거칠고 무거움[麤重]과 사랑의 원인[愛因]과
≺나≻라는 일[我事]과 헷갈림 없음[無迷] 때문에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들기 위하여
염주(念住)를 닦는 줄 알아야 한다
장애[障]와 다스림[治]의 온갖 차별을
이미 두루하게 알았다고 하면
멀리 여읨[遠離]과 닦아 쌓음[修集]을 위하여
네 가지 정단[四正斷]을 부지런히 닦는다
감당하는 성품[堪能性]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온갖 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다섯 가지 허물[五過失]을 없애버려서
여덟 가지 끊는 행[斷行]을 부지런히 닦는다
게으름[懈怠]과 성인 말씀[聖言]을 잊음과
흐리멍텅[惛沈]하고 들뜸[悼擧]과
행을 짓지 않음[不作行]과 행을 지음[作行]
바로 다섯 가지의 허물[五失]인 줄 알아라
게으름을 끊어서 없애기 위하여
하고자 함[欲],
부지런함[勤],
믿음[信],
편안함[安]을 닦음이니
곧 의지할 바[所依]와 능히 의지함[能依]과
원인한 바[所因]와 능한 결과[能果]이며
그 밖의 네 허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기억[念]ㆍ지혜[智]ㆍ생각[思]ㆍ버림[捨]을 닦음이니
말씀 기억함과 흐리멍덩하고 들뜸을 깨달음과
조복의 행[伏行]과 없애서 평등하게 흐름[滅等流]이다
이미 순해탈(順解脫)을 심었지마는
다시 다섯 가지 더함[五增上]을 닦나니
하고자 함[欲]과 행함[行]과 잊지 않음[不忘]과
산란하지 않음[不敬亂]과 생각하여 가림[思擇]이다
곧 장애 줄이는 것을 힘[力]이라고 하나니
원인과 결과로 차례를 세우며
순결택분(順決擇分)의 두 가지와 두 가지는
5근(根)에 있고 5력(力)에 있다
깨달음 갈래[覺支]를 요약하면 다섯 가지 있나니
의지할 바[所依]아 제 성품[自性]과
벗어남[出離]과 아울러 이익(利益)이며
그리고 세 가지의 물듦 없는 갈래[三無染支]이다
인연(因緣)과 의지할 바와
제 성품으로 말미암아 뜻이 차별되나니
그러므로 가뿐함[輕安]과 선정[定]과 버림[捨]을
말하여 물듦 없는 갈래라고 한다
분별(分別)과 가르쳐 보임[誨示]과
다른 이를 믿게 함에 세 가지가 있음과
장애 다스림[對治障]에도 세 가지가 있으므로
도의 갈래[道支]는 여덟 가지가 된다
소견[見]과 계율[戒]과 멀리 여읨[遠離]을 나타내어
다른 이로 하여금 깊이 믿어 받게 하며
근본과 따름의 미혹[本隨惑] 및
자재의 장애[自在障]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 뒤바뀜 있음[有倒]에서 뒤바뀜 없음[無倒]에 따름과
뒤바뀜 없음에서 뒤바뀜 있음에 따름과
뒤바뀜 없음에서 뒤바뀜 없음에 따름의
이것이 다스림을 닦는 것의 차별이다
■ 보살로서 닦아 익히는 바는
반연할 바[所緣]와 뜻 지음[作意]과
증득함[證得]의 자못 뛰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때문에 2승과는 차별이 있다
■ 5. 변수분위품(辯修分位品)
통틀어서 세 가지 위 없음[三無上]으로 말미암아
무상승(無上乘)이라고 말하나니
바른 행[正行]과 반연할 바[所緣]와
닦아 증득함[修證]의 위 없음이다
바른 행에는 여섯 가지 있나니
가장 훌륭함[最勝]과 뜻 지음[作意]과
법을 따름[隨法]과 두 편을 여읨[離二邊]과
차별(差別)과 차별 없음[無差別]이 그것이니라
가장 훌륭함에는 열두 가지 있나니
넓고 큼[廣大]과 오랜 동안[長時]과
의지할 곳[依處]과 그지없음[無盡]과
끊임없음[無間]과 어려움 없는 성품[無離性]이며
자재(自在)와 섭수(攝受)와 일으킴[發起]과
얻음[得]과 같은 종류[等流]와 마지막[究竟]이니
이로 말미암아 열 가지 건넘[十度]을 말하여
바라밀다(波羅蜜多)라고 이름하게 된다
■ 열 가지의 바라밀다라고 함은
보시[施]와 계율[戒]과 편안히 참음[安忍]과
힘써 나아감[精進]과 선정[定]과 반야(般若)와
방편(方便)과 소원[願]과 힘[力]과 지혜[智]이다
이롭게 함과 해치지 않음과 받음[受]과
공덕을 더함과 들임[入]과 벗어남과
그지없음과 항상 일으킴과 결정함과
수용하여 다른 이를 성숙시킴이다
보살은 세 가지의 지혜[三慧]로써 ★★
한결같이 대승(大乘)을 생각하면서
베풀어 설치하는 법[施設法] 그대로를
뜻 지음의 바른 행이라고 한다
이는 착한 경계[善界]를 더욱 자라게 함과
뜻에 들어감과 일을 이룩함이며
이 돕는 짝[助伴]은 바로
열 가지 법의 행[法行]인 줄 알아야 한다
쓰고 베낌과 공양함과
남에게 베풂과 들음과 펼쳐 읽음과
받아 지님과 바르게 열어 폄과
읊고 욈과 그리고 생각함과 닦음이다
열 가지 법의 행[十法行]을 행하게 되면
복 더미[福聚]를 얻음이 한량없나니
훌륭하기 때문이고 그지없기 때문이며
남을 거둬 주되 쉬지 않기 때문이다
법을 따른 행[隨法行]은 두 가지여서
모든 산란함이 없음[無散亂]과
뒤바뀜이 없음[無顚倒]이 변하여 바뀜[轉變]이니
모든 보살은 알아야 한다
선정에서 나옴[出定]과 대경에서 흐름[於境流]과
맛ㆍ흐림ㆍ들뜸[味ㆍ沈ㆍ掉]과 속여 보임[矯示]과
≺나≻라는 고집[我執]과 마음의 열등[心下劣]이니
지혜로운 이들은 알아야 한다
알고 봄[知見]의 글[文]과 뜻[義]과
뜻 지음[作意] 및 움직이지 않음[不動]과
두 모양[二相]과 더럽거나 깨끗함[染淨]과 손[客]과
두려움도 뽐냄도 없음[無怖高]에 대한 뒤바뀜 없음이다
서로 응함[相應]과 많이 익힘[串習]과
혹은 이것을 뒤집음으로 말미암아
뜻이 있고 있지 않는 줄을 아나니
이것이 글에 있어 뒤바뀜 없음이다
두 가지 성품[二性]에 비슷하게 나타남과
현실 같이는 실제 있음이 아님과
있음과 있음 아닌 것을 여읜 줄 앎이
이것이 뜻에 있어 뒤바뀜 없음이다
뜻 지음에 있어서 뒤바뀜이 없다 함은
저 말의 훈습(熏習)함이
말의 뜻 지음이며 그의 의지[依]라고 알지니
나타나서 두 원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음에 있어 뒤바뀜이 없다 함은
뜻[義]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눈흘림[幻] 따위인 줄 알지니
있음[有]ㆍ없음[無]에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모양[自相]에 있어 뒤바뀜이 없다 함은
온갖 것은 이름뿐인 줄을 알아서
온갖 분별을 여의는 것이니
으뜸가는 뜻의 자기만의 모양[勝義自相]에 의한다
참된 법계[眞法界]를 여읨으로써
따로 하나의 법도 없는지라
그러므로 이것을 통달한다면
공통의 모양[共相]에서 뒤바뀜이 없다
뒤바뀜의 뜻 지음이 아직 사라지지 못함과
이미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면
법계의 섞여 더러움[雜染]과
맑고 깨끗함[淸淨]에 있어 뒤바뀜이 없음이다
■ 법계의 본래 성품은
맑고 깨끗함이 허공과 같은지라
더럽거나 깨끗함[染淨]이 주인이 아님을 안다면
이것이 손[客]에 대한 뒤바뀜 없음이다
유정(有情)과 법(法)은 없기 때문에
더럽거나 깨끗함의 성품조차 없나니
이 두렵거나 뽐냄 없음[無怖高]을 안다면
이것이 두 가지에 있어 뒤바뀜 없음이다
다른 성품[異性]과 동일한 성품[一性]이고
외도(外道)와 그리고 성문(聲聞)의 치우침은
유정(有情)과 법(法)에 두 가지씩이다
다스릴 바[所治]와 능히 다스림[能治]이고
항상 머무름[常住]과 아주 없음[斷滅]이며
취할 바[所取]과 깨끗함[淨]의 둘에는 세 가지 있다
두 치우침[二邊]의 성품을 분별한다면
다시 일곱 가지가 있는 줄 알지니
있음과[有] 있지 않음[非有]의 치우침이며
능소(能所)의 고요함[寂]ㆍ두려움[怖]ㆍ무서움[畏]이다
취할 바와 능히 취함과 바름[正]과 삿됨[邪]이고
쓸데 있음[有用]과 쓸데없음[無用]이며
일으키지 않음[不起]과 시간[時] 따위이니
이것이 두 치우침을 분별함이다
■ 차별과 차별이 없음이라고 함은
알아야 한다 10지(地)에 있어
열 가지의 바라밀다[十波羅密多]의
더함[增上]과 평등한 것[等]의 닦아 모음이다
반연할 바[所緣]★★라 함은 벌려 세움[安]과 법계[法界]와
세울 바[所立]와 능히 세움[能立]과 지녀 있음[任持]과
새겨 지님[引持]과 안에 지님[內持]과 통달함[通達]과
더함[增]과 분증(分證)과 등운(等運)과 가장 훌륭함[最勝]이다
닦아 증득함[修證]이란 모자람이 없음[無闕]과
헐뜯지 않음[不毁]과 요동 않음[不動]과 원만함[圓滿]과
일으킴[起]과 견고함[堅固]과 고르고 부드러움[調柔]과
머무르지 않음[不住],
장애 없음[無障],
쉼이 없음[無息]이다.
이 논(論)의 변중변(辯中邊)은
길고 은밀함[深密]과 굳고 착실함[堅實]의 뜻과
넓고 큼[廣大]과 온갖 것[一空]의 뜻을 말하여
모든 상서롭지 않은 것[不吉祥]을 없앴네
● [pt op tr] fr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Lab value 불기2564/03/11/수/21:16
[오래된 조각글재정리 안내]
☎잡담☎ = 순전한 잡담부분
● = 논의부분
오직 제나름 분별[遍計所執性]과 새로 의지성[依他起性]과
두루 진실성[圓成實性]만은
대경[境]이기 때문이요 분별(分別)이기 때문이니
두 가지가 ≺공≻하기 때문에 말한다
의식[識]은 얻는 바[所得]가 있는 데에 의지하고
대경은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기며
대경은 얻는 바가 없는 데에 의지하고
의식은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긴다
K0599V17P0351a10L;
境無故識無 虛妄分別性 由此義得成
非實有全無 許滅解脫故 唯所執依他
及圓成實性 境故分別故 及二空故說
依識有所得 境無所得生 依境無所得
識無所得生 由識有得性 亦成無所得
故知二有得 無得性平等 三界心心所
是虛妄分別 唯了境名心 亦別名心所
==>
◈Lab value 불기2558/01/01 |
Lab value 불기2564/03/11/수/21:16 [오래된 조각글재정리 안내]
○ 2019_1106_103443_nikon_ct1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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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부_단상_2014_0101
08gfl--불교공부_단상_2014_0101.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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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부_단상_2014_0101~~0430
[ 불교 음악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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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 radio http://46.105.50.104:9200/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아뢴다.
『대반야바라밀다경』 9. 행상품(行相品) .
한편 분별하지 말라는 것도
그리고 공함, 무자성은
그래서 공하고 무자성이다.
매우 기이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분별을 일으키면서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면
이 내용을 잘못 새기면,
우선 분별은 예를 들어 어떤 이가 A라고 분별을 갖는다면,
한편, 어떤 관념을 가질 때
그러나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
더 나아가 자신이 갖는 관념은
그리고 그는
또 그런 집착에 바탕하여 행위하기 때문에
또한 그런 관념이나 그런 관념을 갖게한 감각현실은
따라서 진짜의 내용이 아니다. [승의무자성, 무아, 무자성]
또 그 실재의 내용은 얻을 수 없어 공하다.
관념은 감각현실과 같은 자상도 갖지 않는다. [ 상무자성]
이런 사정을 관하여
그리고 집착을 가질만한 것들이 아님을 관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집착을 버림으로써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의 결과를 모두 떠나 해탈을 이룰 수 있다.
이는 처음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영원불변한 실체성을 갖는 진짜의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집착하는 태도를 떠나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감각현실(의타기상)이나 분별이나 관념(변계소집상)은
진여 실재의 원성실상에 바탕하여
그리고 다시 관념이나 분별과 같은 변계소집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자칫, 옳고 올바른 판단마저도 모두 중지하고 떠나는 것을
다만, 무아 무자성이고 공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그러면 그 분별과 집착에 얽매여 행하게 된다.
따라서 경전에서 위와 같은 표현으로 경계시킨다.
그래서 앞과 같은 잘못된 분별을 떠나야 한다.
爾時具壽善現白佛言世尊言菩薩
그 이유는 이런 단어[구]가 '본래 생겨나지 않음'이고
...
반야경에서의 가르침은
이런 실재의 측면에서는
예를 들어 부처나 또는 바위나 꽃의 의미를 묻는다 해도
이 관계는 다음과 같다.
그리고 관념을 일으켜 갖는다.
그런 가운데 생활한다.
그리고 이러 생사현실에서
그러나 이러한 세속의 현실 모습, 현상적 내용들을 일으키는
즉, 우리가 얻는 감각과 관념, 언어 등이 일어나는 본 바탕으로서 실재의 내용[실상]은 무엇인가.
○ 본 바탕으로서 실재
그렇다고 하여 이제 그 바위나 나무, 새가 아주 없어진 것인가.
그런데 그 순간 또 자신이 눈을 떠
이런 경우 그 순간에 없던 바위나 나무, 새가 새로 생겨난 것인가.
그리고 자신이 눈을 떠 어떤 모습을 보는 것은
본래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이 무엇인가를 찾게 된다.
예를 들어 바위나 나무, 새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자.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즉, 보살의 실재내용에 대해서 승의제적 차원에서의 답이다.
○ 현실내용으로 감각과 관념, 언어,
한편, 우리가 관념으로 생각하는 내용이나,
한편 관념이나 언어의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이런 관념은 눈을 떠 모습을 얻거나 눈을 감아 얻지 못하거나,
이런 생각에 대해서도
그런데 이것을 가리키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함께 감각하여 그것을 얻을 수 있는 형태로
그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인 것이다.
이는 감각현실과 그에 대한 관념의 성격을 갖고 있다.
즉 감각현실로 말이나 글자를 표현한 경우
이에 대해 그에 대해 말소리나 글자 관념을 다시 얻는다.
그러면 이때 bawi namu sae 이런 식으로 낸 소리나 글자,
이처럼 언어로서의 감각내용과 관념내용은
우리가 현실에서 얻는 이런 내용을 모두 현상적 내용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러나 그 질문이 이들을 얻게 한
그래서 자신의 주관과 관계하지 않고 본래 있는 실재의 내용을
그런 관계로 어떤 것의 실재내용을 찾는 경우에는
그래서 언어를 떠난 상태가 된다.
실재내용이 이와 같다.
따라서 보살에 대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처음 보살이란 언어, 또는 그 언어로 가리킨
그리고 이런 내용을 얻게 한 실재내용이 무엇인가를 묻게 된ㄷ.
이 경우 현실의 내용은 생하고 멸하는 현상적 내용이다.
그러나 그 실재내용은 이런 생멸을 세울 수 없다.
따라서 본래 생함이 없다고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 현상 안에서 얻는 어떤 뜻이나 의미가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뜻이 없음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 para-end-return ◧◧◧
문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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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잡담☎
◈Prajna Citta 2014/04/26/토/0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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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테이블
◈Prajna Citta 2014/02/23/일/1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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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Lab value 2014/01/28/화/15:09 |
♥ 잡담 ♥불교공부시 경전파일의 정리와 연구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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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Lab value 2014/01/29/수/00:26 |
현재 PRAJNA 님이 파일 안에서 논의 부분을 $$ [시작부분] /$$ [ 끝부분]을 기호로 사용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기호를 제안해본다. ▶1 ◀1 번역 수정, 교정, ▶2 ◀2 개인적 논의 ▶3 ◀3 주석, 사전 내용 작업 내용을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0 원문텍스트 1 한글본을 일단 읽어가며 이해가 쉽게 단락을 끊어가며 단순 정리한 파일이 필요하다. 2 그 다음은 이 한글본의 각 단락을 이해하기 쉽게 끊어 제목 표시를 해주는 파일이 필요하다. 3 그 다음은 표현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을 교정해주는 파일이 필요하다. 4 더 나아가 각 부분과 원문 한본본과 대조하면서 번역을 좀 더 자세히 살피는 파일이 필요하다. 5 그 다음은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나 사전 참조 내용들을 적고 + 자신의 논의를 전개해나가는 파일이다. ▶1 ◀1 번역 수정, 교정, ▶2 ◀2 개인적 논의 ▶3 ◀3 주석, 사전 내용 기타 위 숫자는 숫자나 영문자 등으로 추가될 수 있다. ▶0 ◀0 - 한문원문 첨가의 시작부분과 끝부분을 표시하는 기호 이런 식으로 기호를 마련해서 한 파일에서 작업을 해나간다. 그리고 나중에 처음과 끝을 원래 원문이 나타날 것이다. 또는 ▶1 기호 부분은 남기고 ▶+ 나머지 번호가 붙은 부분은 삭제하는 등으로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을 것이다. ▶ 기호가 문서안에서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적다. 따라서 이런 목적으로 ▶ 기호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처음과 끝부분을 표시할 때 이 부분만 찾아 자동으로 삭제하거나 교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 LITTLE 님이 다음의 방안을 우선 제시했다. 조금 번잡하다. 1 문서 처음 부분에 커서를 놓고 첫부분 ▶ 시작 부분을 찾는다. 1 그 부분에서 문서 첫부분까지를 잘라내어 문서 맨끝에 붙여 놓는다. 1 다시 문서 처음으로 가서 끝나는 부분의 기호 ◀ 부분을 찾는다. 1 여기서 첫 부분까지 블록 설정한다. 1 그러면 이 부분이 바로 ▶ [시작부분] ◀[끝부분] 사이의 내용이다. 1 문서 안에 이런 부분이 많으면 이 작업을 계속 순환해나가면 된다.
이렇게 제시했다. 그러나 조금 원시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정 다른 방법이 없으면 이렇게 편집작업을 하면 되기는 된다. 상당히 번잡해 보인다. 정규식이나 조금 더 깔끔한 방법이 있었으면 한다. 여하튼 연구 과정의 특성상 여러가지 작업이 산발적으로 또는 동시적으로 또는 이리저리 순서가 뒤섞여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하나의 파일 안에서 이 모든 작업을 동시에 다 진행하기로 한다. 다만 각각의 필요에 따라서 이 하나의 파일에서 여러 형태를 출력해 낼 편집방안이 필요하다. |
문서정보 |
댓글의 댓글
◈Mun Tokyun 2014/01/29/수/19:15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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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4/02/23/일/1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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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Pun tarika 2014/01/16/목/19:07 |
♥ 잡담 ♥글 정리의 복잡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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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댓글의 댓글
◈Prajna Citta 2014/01/16/목/20:15 |
♥ 잡담 ♥경전내용의 압축 암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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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테이블
◈Prajna Citta 2014/01/09/목/13:41 |
♥ 잡담 ♥새 페이지의 개설과 이용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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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2014/01/09/목/01:35 |
♥ 잡담 ♥ 페이지 개설 축하 Om Mani Padme Hum 미니버전을 제작해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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