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현은 예전에 장안(長安)1)에 있으면서 율장(律藏)이 부족함을 개탄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홍시(弘始) 원년(399)2) 기해(己亥)에 혜경(慧景)ㆍ도정(道整)ㆍ혜응(慧應)ㆍ혜외(慧嵬) 등과 인도[天竺]에 가서 계율의 책을 구해 오기로 뜻을 모으기에 이르렀다.
처음 장안을 출발하여 농(隴)3)을 지나 건귀국(乾歸國)4)에 이르러 하안거[夏坐]에 들어갔다. 하안거를 마치자 길을 재촉하여 욕단국(褥檀國)5)에 이르렀고, 다시 양루산(養樓山)6)을 지나 장액진(張掖鎭)7)에 이르렀는데 장액은 대란(大亂)이 일어나 도로가 불통이었다.
장액왕(張掖王:段業)8)은 은근하게 이들을 머무르게 하고 단월(檀越)이 되었다. 여기에서 지엄(智嚴)ㆍ혜간(慧簡)ㆍ승소(僧紹)ㆍ보운(寶雲)ㆍ승경(僧景) 등과 만나, 흔쾌히 뜻을 모으고 함께 하안거9)에 들어갔다.
하안거를 마치자 다시금 나아가 돈황(燉煌)10)에 이르렀는데, 이곳에는 동서가 약 80리, 남북이 40리나 되는 성(城)의 요새가 있었다.
여기서 일행은 함께 1개월 남짓 머무른 다음 법현 등 다섯 사람은 사신(使臣)들을 따라 먼저 출발하게 되어 다시 보운 등과 헤어지게 되었다.
돈황태수 이호(李暠)는 일행이 사하(沙河:고비사막)를 지나는 데 필요한 물자를 제공해 주었다. 사하에는 악귀(惡鬼)와 열풍(熱風)이 많아 이를 만나면 모두 죽고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위로는 날아가는 새도 없고 아래로는 달리는 짐승도 없었으니, 아무리 둘러보아도 망망하여 가야 할 길을 찾으려 해도 가야 할 곳을 알 수 없었다. 오직 죽은 사람의 고골(枯骨)만이 표지가 될 뿐이었다.
17일 만에 약 1,500리를 가서 선선국(鄯鄯國)11)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곳은 지형이 험하고 척박하였으며 속인들의 의복은 전갈(氈褐)을 사용하는 것이 다를 뿐 중국 사람들의 옷과 마찬가지로 거칠었다. 이 나라의 왕은 불교를 믿었으며 승려는 4천여 명 정도였는데 모두 소승(小乘)을 배우고 있었다. 모든 나라의 승려는 물론 속인들도 인도의 율법을 행하고 있었는데 단지 세련됨과 조잡함에 차이가 있을 뿐이며 이곳뿐 아니라 서쪽에 걸쳐 있는 여러 나라들도 대개 이와 비슷하였다. 다만 나라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지만 출가한 사람들은 모두 인도의 책을 익히고 인도의 말을 배우고 있었다.
여기서 1개월을 머문 후 다시 서북쪽으로 15일 동안 가다가 오이국(烏夷國)12)에 이르렀다. 여기에도 승려가 역시 4천여 명이나 되었는데 모두 소승을 배우고 있었으며, 예법을 따름에 있어 가지런하고 정연하여 중국[秦土]의 어떤 승려들도 이런 점에서 그 승려들에게 미칠 수가 없었다.
법현은 부행당공손(符行當公孫)의 경제적인 도움을 얻어 2개월 남짓 이곳에서 머물렀는데, 이곳에서 다시 보운 등과 합류하게 되었다. 오이국 사람들은 예의를 지킬 줄 모르고 손님을 맞이해도 매우 야박했으므로 지엄ㆍ혜간ㆍ혜외 등13)은 여행할 물자를 구하고자 결국 고창(高昌)14)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 [pt op tr] ▼mus0fl--Mireille Mathieu - Tu Es Celui.lrc
○ [pt op tr]Lady_George_Darwin_by_Cecilia_Beaux_1889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ady_George_Darwin_by_Cecilia_Beaux_1889.jpeg English: "The Lady George Darwin, Cecilia Beaux (1855–1942) ● [pt op tr] fr
♥ 잡담 ♥
○ [pt op tr] ▼mus0fl--Daniel Lavoie - Ils S'aiment.lrc
현장스님이나 법현 스님 그리고 혜초스님과 같은 분들이 그 먼 길을 오고 간 바탕에는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구도의 마음으로 그 먼 길을 오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생사고통의 문제를 일으키는 본 바탕에는 본래는 그렇지 않은데 가상적으로 현실에서 실답게 자신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내용을 얻게 되고 그것이 하나같이 본래는 실답지 않는 것들인데 그러나 각 주체가 그것을 놓고 그것들이 곧 실다운 자신과 자신의 것이라는 전도망상을 일으킨 가운데 그에 바탕해 탐욕과 분노를 일으켜 집착을 일으키고 임하는 가운데 행위를 하고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무한히 반복해 받아나가는 관계가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이런 가상현실의 사정이 어떻게 전개되기 시작한 것인가를 살피기 위하여 다시 한번 심혈을 기울여서 그림을 하나 완성했다.
위 두 그림은 이미 많이 반복해 설명했는데 위 두 그림을 살피는 가운데 다시 아래 그림을 보기로 하자.
부처님은 현실에서 본래 생사고통과 생멸을 얻을 수 없고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라고 제시하는 데
그런데 왜 중생은 이런 현실에서 자신이 여기서 태어나서 저기서 죽고 그리고 사는 동안 이런 저런 수많은 번뇌와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인가. 이런 문제를 이해하려면 처음에 이 과정이 어떻게 전개된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img2-9] 08pfl--image/8식-9.jpg
위 그림에서 1! 라고 표현된 것은 감각현실 가운데 눈으로 얻는 감각현실을 의미한다.
그런 부분에서 ◇ 도형과 같은 부분을 일단 a! 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자신이 현실에서 문제삼는 자신일 수도 있고 또는 다른 사람 영희나 철수일 수도 있고 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보면서 그 부분이 그처럼 자신이나 영희 철수 꽃 등이라고 생각하면서 분별을 하게 될 때 그 분별 내용을 a@ 이런 식으로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우선 정신을 위 그림 형태처럼 일단 여러 종류로 나누어 제시하는 사정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어떤 정신이 1 과 같은 내용을 얻을 때 그런 한 정신 영역이 그런 내용을 그렇게 얻는 한편 그런 내용도 얻고 그와 동시에 그 각 부분이 무엇이라고 자체적으로 분별까지 행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처음 1 이 위와 같이 a! 와 같은 내용을 얻는 경우 그런 내용을 생생하게 얻는 것으로 일단 임무를 마치게 되는데
이제 이 내용을 가지고 또 다른 정신 부분이 그 각 부분을 이렇게 저렇게 묶고 나누고 하면서 각 부분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고
그래서 이 두 정신 작용은 일단 서로 구분되는 별도의 정신 영역에서 행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여하튼 그런 정신활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 자리잡고 그렇게 행하게 되는가는 이런 생각을 행하는 주체가 스스로 그 마음으로 마음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기에 곤란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각 주체는 1,2,3,4,5 와 같은 감각내용과 6@ 로 표시한 것과 같은 분별 내용은 자신 스스로 각 감각기관을 열고 닫고 하면서 그에 따라 얻거나 얻지 못하게 되는 내용과 감각기관을 열고 닫는 것과 관계없이 계속 생각할 수 있다고 보는 내용이 서로 구분되는 것을 통해서 구분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각 감각기관을 열고 닫는 것은 예를 들어 눈의 경우에서는 눈을 뜨고 감는 활동을 하는 가운데 얻거나 얻지 못하는 내용이 무언가를 스스로 확인하여서 그런 것은 각 감관과 관련된 감각현실이라고 할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눈을 감고 뜨거나 관계없이 또는 귀를 막거나 열거나 관계없이 일정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은 그런 감각내용과는 구분하여 관념분별이라고 부른다는 의미다.
자신이 현실에서 눈을 뜬 가운데 어떤 부분을 보면서 동시에 그 부분이 영희나 철수라고 생각할 때는 이 두 내용이 서로 잘 구분이 안 될 수 있지만, 앞과 같은 실험을 통해서 이것을 먼저 잘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미 앞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를 많이 살폈는데 반복을 피해서 결론부분만 다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이 현실에서 눈을 뜰 때 보게 되는 내용을 감각현실이라고 하고 그것을 붙잡어 놓는다면
그 감각현실을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외부에 있는 외부 세계의 내용과 자신의 몸 부분이라고 여기게 되고 또 그런 것을 자신이 대상으로 삼아서 그런 내용을 얻는다고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눈을 뜨고 자신이 손을 내밀어 컵을 두드리면 그 순간에 소리도 듣게 되고 또 손은 손대로 촉감도 느끼게 되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바라보는 그 컵 모습은 바로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라고 여기면서 그것들은 그처럼 또 자신의 외부에 있는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컵에 댄 자신의 손 부분은 또 손 부분대로 그런 촉감을 얻는 감각기관이기도 하고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손으로 만져보는 눈도 그런 것이고 그런 부분이 자신 및 자신의 주관이 위치한 부분이라고 여기고
또 이에 준해서 옆에 영희나 철수가 있을 경우 자신이 바라보는 그런 영희나 철수의 눈이나 귀 코 입 몸 등이 또 그런 영희나 철수에 있어서 그들이 각기 얻는 그런 감각을 담당하는 기관이라고 보게 된다는 의미다.
현실에서는 이런 내용은 너무 당연하고 상식적인 내용이어서 이런 내용이 무엇이 잘못인가 이해하지 못하기 쉬운데 그것이 사실은 전도망상 증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온 것은 이렇게 일반적으로 보게 되는 그 모든 내용이 일단 자신의 마음에 맺힌 내용이고
특히 자신이 눈을 떠서 보게 되는 그 일체 내용은 위 그림에서 1 ! 과 같은 마음 영역에 맺혀져 있는 내용인 것이고 이 안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기본적으로 살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은 비록 그가 그것을 놓고 다시 각 부분이 무엇이라는 등으로 관념분별을 행할 때는 그런 관념분별을 행하는 대상이 된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러나 정작 그런 감각현실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은 그것이 아니고 그런 외부 대상은 그런 내용에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유식무경]
그런데 여기서 그 정체를 문제삼는 것이 일반적인 사물이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일 때는 또 다른 형태로 추가적인 전도된 망상을 일으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이 눈을 떠서 얻게 되는 내용은 그 일체가 다 자신의 마음에서 얻고, 마음안 내용물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차이가 없는데
그런데 그 주체는 그렇게 얻은 내용 가운데 일부분은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고 또 그 나머지는 외부 세계라고 이들은 분할해 이해하는 가운데 삶을 살고 죽어간다는 사정을 이미 많이 반복했다.
그래서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은 다 같이 자신의 마음에 머무는 감각현실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놓고 자신과 외부를 나누어 구분하는 것은 본래 곤란하다고 해야 할 것인데 그런데 이상하게 현실에서는 그렇게 구분해서 분리시켜 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전도몽상을 일으키게 된 기본 사정은 무엇이고 이 전도몽상을 해소시켜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고 또 그런 바탕에서 중생제도를 위해서 무량한 수행을 해나가려고 한다면 앞의 전도된 분별 망상을 어떻게 시정해야 한다고 볼 것인가 이것이 처음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자신이 눈을 떠서 꽃이나 자신이라고 보는 몸 부분을 보거나 영희나 철수의 몸을 본다거나 하는 경우 이것은 과연 어떤 무엇을 대상으로 해서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자신이 얻게 되는가 이 부분도 이와 함께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미 그에 관련된 여러 입장을 살폈는데 각 입장이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눈을 뜨고 바라본 내용을 놓고 그것이 그대로 외부실재라고 여길 때는 어떤 해결하기 곤란한 문제점이 있다고 할 것인가. 이런 것도 기본적으로 헤아려야 하고,
다시 자신이 눈을 떠서 보게 되는 내용이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고 그 내용들은 모두 자신의 마음에서 얻어지고 머무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이들 내용은 도대체 어떤 관계로 그런 내용을 현실에서 얻게 된 것인가에 대해서 제시되는 여러 입장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내용은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해서 얻게 되었다고 하거나 또는 마음이 자체적으로 분화하고 변화를 일으켜서 그런 내용을 일으켰다고 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사정이 그렇다면 왜 자신은 영희나 철수가 활동하는 것을 그렇게 그런 형태로 보게 되고
또 왜 자신은 자신이 보게 되는 일 부분을 자신의 몸이라고 여기는 가운데 자신이 손으로 보게 되는 부분을 컵으로 보게 되는 부분에 대면 그 때마다 반복해서 촉감도 얻게 되고 소리도 듣게 되는가 이런 여러가지 관련 문제를 함께 살펴야 하는 것이다.
처음 자신이 보는 내용이 곧 외부실재라거나 그런 외부실재가 겹쳐져 있다고 하면, 자신이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또는 눈을 뜨고 색안경을 바꿔 쓸 때마다 자신과 별개라고 할 그 외부실재가 왜 같이 그렇게 변화하고 사라지고 나타나고 하는가. 그 가운데 그렇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놓고 살펴야 한다. 그것은 자신 혼자만 헤아리지 말고 다른 영희나 철수를 놓고 영희나 철수가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눈을 감고 뜨고를 반복할 때마다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는 어떤 내용이 있을 때 그것을 그대로 그들 자신 밖에 있는 외부 실재 내용이라고 주장하게 되면 이들을 관찰하고 제 3 자적 입장에 있는 자신으로서는 이들 주장에 어떤 문제가 있고 무엇이 이상하다고 보게 되는가. 이런 문제들을 놓고 이를 잘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한편 어떤 이가 얻는 그 모든 것은 그 자신의 마음에 내장된 것을 바탕으로 마음 자신이 스스로 변화시켜 냈다고 한다거나 또는 그 마음이 그런 마음을 대상으로 해서 그런 내용을 얻는다고 이해하면 또 어떤 문제가 있게 된다고 보는가를 놓고 이런 문제도 잘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보게 된다.
이런 경우는 어떤 이는 그가 그 자신 외에 다른 철수나 영희 심지어 다른 부처님 보살님들을 보게 된다면 이처럼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생명이나 자신이 보는 그 모든 사물들은 본래 모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내용이라고 해야 하거나,
또는 그런 것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을 대상으로 삼아서 그렇게 마음에 일으켜 낸 것이라는 해석을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과연 그렇다고 할 것인가.
그래서 자신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게 된다면 그 일체가 자신의 마음에 머무는 내용들이라고 함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앞과 같은 결론까지 반드시 요구한다고 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놓고 잘 검토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일단 이 문제가 논의하기 복잡한데 본래 이들 논의가 현실에서 그 각각이 실답다고 여기고 집착을 갖고 대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는 논의인 것인데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자신의 외부에 있다고 보고 대하던 꽃이나 바위 등과 같은 경우와는 달리 그것이 자기 자신과 관련될 때는 이 문제를 조금 달리 놓고 대하게 된다는 것을 또 주의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처음 꽃이나 바위와 같은 외부사물의 본 정체를 놓고 그 실재를 파악할 때는 다음과 같이 그 논의를 시작하게 된다.
즉, 자신이 눈을 뜨면 어떤 꽃이나 바위의 모습을 보지만, 눈을 감게 되면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될 때 눈을 감았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세상에서 다 없게 된 것이라고 할 것인가. 그래서 그런 모습을 얻게 한 실재는 자신이 본 내용 외에는 전혀 없다고 할 것인가.
그러나 그렇지 않고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그런 실재는 과연 무엇인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처음 어떤 것의 본 정체로서 실재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바위의 정체를 문제삼는다면 자신이 눈으로 보는 그런 모습을 얻게 하는 본 바탕이 되는 바위의 실재가 무엇이고
그것은 자신이 눈을 떠 보게 되는 바위모습과 같은 감각현실이나 그에 대해 행하는 관념분별 들과는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등을 살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이들 내용을 살핀다고 할 때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각 내용을 일단 다음과 같이 기호로 구분해서
#바위의 실재 ~~ 바위에 대한 감각현실 ! - 바위에 대한 분별내용@ 로 표시한다면 그들 간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원칙적으로 살펴보게 된다고 제시하였다.
즉, 우선 어떤 감각현실! 그 자체가 곧 그런 내용의 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인가 또 반대로 그러한 실재#는 곧 그런 감각현실! 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렇게 묻고
그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보게 되지만, 다시 그렇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런 감각현실!이 그런 실재#를 떠나서 얻어지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살펴서 이들 상호관계를 살피고 그 정체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제시한 것이다.
또 실재나 감각현실 실재나 관념분별들의 각 상호관계도 역시 위와 같은 형식으로 그 관게를 잘 살펴야 한다고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곧 문제되는 각 존재의 본 정체와 상호관계를 살피는 기본 형식으로 경전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서 살피는 어떤 내용이 자신이 자신의 외부사물로 보는 바위나 꽃과 같은 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이라거나 또는 다른 사람인 영희나 철수라고 할 때는 이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앞의 논의는 결국 어떤 바위나 꽃에 대해 집착을 갖고 있다면 그런 내용이 실재가 아니고 실답지 않음을 관해서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내용인 것인데
문제는 평소 자신이라고 본 부분이 사정이 그렇다고 하면 이제 그런 내용을 그렇게 관하는 자신 그리고 그러한 바탕에서 또 수행을 해야 하는 자신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이 그처럼 실다운 내용도 아니라면 그러한 내용이 현실에서 부서지고 파괴되면 이제 그것을 의존해서 그런 생각도 하고 수행도 하던 자신은 이제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조금 문제를 달리 보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에는 단순히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가의 문제 뿐만 아니라, 처음 그런 부분을 놓고 자기 자신이란 관념분별을 어떤 사정으로 일으키게 되었는가가 또 덧붙여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처음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하게 된 데에는 자신이 그런 부분과 관련해서 상-락-아-정의 측면에서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게 된 사정이 있음을 이미 제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정확하게 살피면 본 사정이 그렇게 볼 수 없는 것인데도 바로 그런 사정들로 인해서 현실에서는 자신이 평소 자신이나 자신의 몸이라고 여기게 되는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하게끔 된 나름대로 깊은 사정이 있고
바로 그런 사정 때문에 대부분 그렇게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전도몽상을 일으키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매순간 생각하고 살아 나가게 되고 그런 가운데 또 다음 생도 그 다음 생 그렇게 무한하게 이어나가게 된다는 사정을 제시한 바 있다.
[img2-9] 08pfl--image/8식-9.jpg
사실 위 그림에서 제시하고자 한 바는 현실에서 어떤 이가 처음 앞과 같은 사정으로 a 와 같은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그런 부분을 취하고 머무는 것은 곤란하고,
굳이 그런 상-락-아-정과 같은 측면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찾으려면 앞의 a처럼 매 순간 자신의 마음에 임시적으로 들어와 머물고 사라져서 마치 손님이나 티끌[객진]과 같은 내용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붙잡지 말고
자신에 대해서 어떠한 분별을 하려면 차라리 위 그림에서 '갑A@' 와 화살표가 가리키는 형태처럼
오히려 그런 손님이나 티끌을 매 순간 받아들이는 각 정신 자체를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보는 것이고
또 그런 여러 정신 가운데에서도 가장 근본된다고 볼 정신을 잡는 것이 낫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이 마음을 볼 수 없지만,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떠서 세상의 모습을 본다면 평소 자신이라고 보는 모습이나 세상의 모습을 놓고 그런 내용을 모두 그 안에 담는 어떤 그릇과 같은 것을 다시 떠올려서 그런 그릇이 우선 자신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보아야 하고 그 그릇이 담고 있는 일부를 거꾸로 자신이라고 여기면 뒤집혀진 전도된 판단이어서 곤란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것은 이번 생에서 얻은 눈으로 본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고 좀 더 근본적으로 그 근원을 찾아나가면 매 생마다 그런 각 정신을 분화생성시키는 근본정신을 또 더 본질적인 내용으로 보아야 한다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a 와 같은 부분을 자신이라고 놓고 살피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경우거나,
또는 그런 판단을 떠나 그런 내용을 담게 되는 정신 자체 즉 위 그림에서 1,2,3,4,5 나 6, 7, 8 과 같은 정신 자체를 자의 본질이라고 여기거나,
여하튼 현실에서 그런 상태에서 매 순간 보게 되는 각 내용들은 도대체 어떤 것을 바탕으로 얻게 되는 것인가라는 문제에서는 또 다시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고 보는 것이다.
즉 앞에 제시한 것처럼 자신이 눈을 떠서 무엇을 보게 될 때 그 일체의 내용이 모두 자신의 마음에 머무는 내용이라고 할 때
그렇다면 이제 그런 내용은 앞과 같은 여러 정신들이 스스로 자체적으로 변화해서 그렇게 나타난 것인가.
또는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삼아서 즉 예를 들어 1 과 같은 마음은 다른 8 과 같은 마음이나 그 안의 어떤 내용을 매번 대상으로 삼아서 그런 내용을 보게 되는 것인가. 이런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본다면 현실에서 꽃이나 바위를 보거나 또는 자신과 비슷한 영희나 철수를 보거나 이들 내용은 모두 자신의 8 과 같은 정신 안에서 모두 변화해서 나온 것이라고 그런 자신의 정신을 대상으로 삼아서 그런 내용을 보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어떤 바위에 대해서 문제를 삼을 때는
바위의 실재# ~~ 바위에 대한 감각현실! - 바위에 대한 관념분별내용 @ 이렇게 관계를 살피다가
자신의 정신을 놓고 살필 때는 그런 정신의 실재# ~ 그런 정신 이런 관계로 놓고
그런 정신을 곧 실재라고 할 수 있는가. 또는 반대로 실재를 그 자체로 그런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한다고 해도
그런 실재를 떠나서 그런 정신이 있다고 할 것인가. 이렇게 그 관계와 그 본 정체를 살피려고 하기 보다는
곧바로 자신의 정신이 세상의 모든 것의 본 바탕이고 그런 정신 외에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경전에서 말하는 실재 진여라는 것은 바로 그런 정신 그 자체라고 하며 건너 뛰는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판단이 옳은가 아닌가를 일단 별개로 하고
일단 이런 입장도 있을 수 있다고 할 때 그런 입장이 과연 타당한가 아닌가를
현실에서 자신이 보게 되는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영희나 철수를 비롯해서 또 다른 생명체도 관찰해보는 가운데 잘 검토해보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언어상의 혼동도 작용하기 쉽다고 본다.
예를 들어 처음에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자신의 외부에 있고 외부대상이라고 보게 되는 내용들이 알고보면 자신의 마음안 내용물이라고 제시할 때
이 내용을 놓고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자신이 얻는 경우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은 곧 마음안 내용이다 이렇게 잘못 혼동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앞 내용과 뒷 내용은 서로 다른 의미인 것이다.
앞 내용은 현실에서 어떤 A 라는 내용을 얻게 될 때 이것을 일반인들이 자신 외부에 있는 대상으로 보는데 그것은 사실은 그런 외부 대상이 아니고 그것은 마음안에서 얻는 내용이다. 이렇게 처음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A 는 그런 대상이 아님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처음 갖게 된 대상에 대한 관념을 혼동한 가운데 이제 그것을 여전히 대상으로 보는 한편 그런 대상에 해당하는 그 내용은 곧 마음에 머무는 내용이다.
그래서 마음이나 마음안의 내용이 대상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혼동을 이중으로 일으키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말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얻게 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 대상은 마음이나 마음안의 내용물을 놓고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인가를 또 잘 헤아려 보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 그런 논의도 논의이지만, 왜 위 그림들에서 현실에서는 그 존재가 잘 파악이 되지 않는 7 이나 8 과 같은 이상한 정신영역이 있다고 그림에서 표시헤 제시하는가 하는 사정도 같이 살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우선 현실에서 자신이 감각을 하지 않거나 분별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자신이 평소 생체로 보는 부분을 여전히 자신으로서 관리하고 유지하는 활동이 일정하게 유지되는데 그렇게 되는 데에는 그것을 따로 맡아 행하는 정신이 따로 있다고 일단 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 현실에서 자신이라고 보는 부분을 놓고 자신이라고 여기고 또 자신의 손이라고 보는 부분을 컵 등에 내밀면 촉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상 이미 앞에서 본 것처럼 뒤집혀진 전도망상의 하나이고 또 시각정보를 얻는 영역에서 어떤 내용을 본다고 해서 그런 시각정보로 다른 촉각이나 청각을 얻게 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인데
그렇게 현실에서는 이상하게 그런 내용들과 그런 관계를 반복해 보게 되는 사정은
그 이전에 앞에 제시한 것과 같은 별도의 정신이 기본적으로 먼저 일정한 부분을 그처럼 자신이라고 보는 가운데 그런 부분에 오늘말 생리학적 표현으로 감각신경도 생성시키고 운동신경도 생성시키고 그래서 그런 관계가 나타날 상태를 기본적으로 만들어두었기에
그 바탕에서 눈으로는 그런 시각정보를 그렇게 얻게 되고 그리고 다른 내용과의 관계도 그처럼 얻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앞의 7 이라고 표시한 정신이 처음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그처럼 일정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대하는 가운데 그런 내용을 생성시킨 것이 그렇게 된 바탕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아치, 아견, 아만, 아애]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 처음 제시했듯 처음 7 이 그런 분별을 행하면서 그런 작용을 행할 수 있으려면,
그런 내용을 얻는 정신이 어떤 내용을 얻으면서 동시에 그 내용 각각이 무엇이라고 그렇게 분별을 행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어서
일단 다른 한 정신이 기본적인 내용을 얻고 그런 바탕에서 그 가운데 일정 부분을 자신이라고 분별하는 정신활동이 다시 일어나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이 관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런 사정으로 7 과 8 식과 같은 내용이 시설되어 제시되게 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또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 처음 눈으로 시각정보를 얻은 상태에서 다시 이 내용을 놓고 제 6 의식이 이들 각 부분을 놓고 이 가운데 어느 부분은 외부 세계의 내용이고 그 가운데 일 부분은 자신의 몸 부분이라고 분별하는 관게처럼
그런 관계가 형성하기 이전에 제 8 식과 제 7 식이 그런 관계를 형성한 것이고 또 그런 전제가 충족되어야 위와 같은 내용이 이뤄진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8 식은 현실에서는 표면적으로는 그 존재가 잘 파악이 되지 않지만, 현실에서 행하고 분별하는 활동을 하면 그런 내용을 그 안에 저장해두었다가
또 때가 되면 마치 씨가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 내용을 다시 나타나게 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정신으로 제시되는 것이고
그리고 바로 이런 정신이 각 생마다 각각의 생명형태에 얹혀져서 그 각 생마다 앞에 나열한 여러 정신들을 분화 생성시켜서 그렇게 각기 다른 형태로 매 생을 맞이하고 살고 죽는 것을 반복해 나가게 된다고 그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여러 정신을 나열해 놓고 그런 관계로 매 생마다 생활한다고 할 때
그런 가운데 매 순간 얻게 되는 내용 예를 들어 눈을 통해 얻는 정신 내용은 어떤 관계로 나타난다고 할 것인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 그런 내용이 외부 실재에 바탕한 것이 아니고 매번 그 근본 정신 안의 내용이 변화해서 나타난다고 이해하거나
또는 정신은 근본정신이나 다른 정신만을 상대로 해서 그런 내용을 얻는다고 이해할 것인가. 이 부분이 또 문제가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외부대상을 실재 영역에 설정할 경우 그런 실재는 있다거나 없다거나를 분별할 수 없고 무엇을 넣고 빼고 함에 따른 차이를 분별할 수도 없기에 사실 실재에 무엇을 대상으로 각 주체가 매 순간 그런 내용을 얻는가는 실재와 관련해서는 판단 자체가 곤란하다는 사정도 또 헤아려야 한다.
그러나 여하튼 일단 위와 같은 여러 입장이 있으므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런 문제들을 살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일단 이런 문제를 살피는 근본 취지는 현실에서 대하는 것들이 사실은 이런 여러 사정으로 실답다고 할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판단이 거꾸로 뒤집혀진 상황인데
그러나 현실에서 각 주체는 그런 내용을 놓고 그것이 실다운 자신이나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면서 집착하고 행위를 해나가기에 그런 바탕에서는 그렇게 생사고통의 상황을 만나고 겪어나갈 도리 밖에 없게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다시 가상현실 vr 방법을 동원해서 또 거기에 집착하면 예를 들어 그 실질 내용은 예를 들어 컴퓨터 디스크에 적힌 숫자들 뿐인데도 마치 그것이 어떤 중요한 자신이나 자신의 분신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면서 문제상황에 진입할 수 있다고 또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도 문제지만, 현실에서 평소 자신이나 자신의 것이라고 무엇을 보고 대하고 집착을 갖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집착을 갖게 되면 그 집착으로 인해서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번뇌에 묶여 사역을 당하고 또 다른 생명을 그처럼 묶어 사역을 시켜나가면서 마치 곰과 같은 상태가 된다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집착의 근본은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이나 자신의 것이라고 보면서 대하는 그것들인데
사실은 그런 내용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고 깨달아서 벗어나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나 자신의 것을 보고자 한다면 이미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차라리 그런 내용들을 매 순간 얻어나가게 만들면서 매 생마다 그리고 각 순간마다 자신을 그렇게 이끌고 다니는 그런 근본정신과 그 근본정신이 분화 생성시킨 정신들을 차라리 그런 자신의 실질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 것이 낫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일단 글이 길어졌으므로 쉬기로 한다. 쉬는 동안 그림을 놓고 논점을 잘 정리해보기로 한다.
쉬는 동안 옥상기지에서 소신공양도 하고 밀린 식사도 하고 이미 쓴 글을 보면서 일단 올린 글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 표현을 수정하고 고치면서 위 음악을 들었는데 위 동영상을 보면 한 여인이 별 일도 아닌데 대단히 심각한 일인 것처럼 삐지는 모습도 보게 된다.
노래 전반에서 외롭게 지내기 보다 어디에 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슬기롭게 잘 노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담배로 자신의 몸을 태우는 듯한 소신공양을 반복하면 폐암 걸리기 쉽다는 메세지를 듣게 되는데
여하튼 생사문제와 관련해서 그리고 자신의 마음 현상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잘 이해하고 해결할 문제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쉽게 생각해서 본인이 담배도 태우고 그래서 몸도 피로하게 하고 또 식사도 해서 영양도 보충한다면 그렇게 생각만 한다거나, 또는 그런 생각도 않고 전혀 그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과는 차이를 만든다고 보는데 여하튼 그런 일들이 자신의 정신 영역에서 맺힌 정신안 내용물로서 시각정보나 후각정보 등을 그렇게 관계시키기에 그런 상태가 나타난다고 할 것인가. 또는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그것이 8 식에 들어 있는 정신적 내용물 때문에 그렇다고 할 것인가. 이런 것을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또 각 생명이 처음 근본 무명을 바탕으로 망상을 일으키고 이에 바탕해 행위를 해서 다음 생의 단계에 생명형태를 전개시키는 과정과 관련해서
무명 - 행 - 식 - 명색 - 6 입 -촉 ... 이런 식으로 그 관계를 제시하는 내용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내용이 된다고 본다.
위 내용에서 명색이라는 것은 결국 현재의 입장에서 본다면 감각현실로 얻게 된다고 보는 형태의 내용들로서 색과 그런 내용으로 볼 수 없고 그래서 색이라고 볼 수 없는 정신적 요소들이 서로 결합된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런 명색과 처음 식이 서로 관계하고 식이 이런 상태에 얹혀서 그 이후 그 생의 단계에서 각 감각과 인식을 담당하는 6입을 이후 분화 전개시켜 나가는 과정을 놓고 잘 살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만일 식만으로 모든 것이 다 분화생성되고 식은 이후 식을 대상으로 내용을 얻게 된다거나 자체적으로 내용을 변화시켜 나타내게 된다고 본다면 사실은 위 내용과 잘 부합되지 않는 해석이 된다고 일단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글이 너무 길어졌다고 보고 이와 관련해 살펴야 할 복잡한 문제가 상당히 많이 있다고 보므로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런 문제를 이어서 살펴나가기로 한다.